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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교철학원론 11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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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교철학원론 11강

2013년 5월 30일 목요일 오후 2:07

자, 여러분- 왠지 굉장히 오랜만에 보는 기분이에요. 살짝 일찍 지난주에 끝난 것에 불과한다 고 해도, 굉장히 오랜만에 본 거 같아요. 두 시간 만에 보는 것은 본 거 같지 않아서 그런 거 같 아요. 다음 주는 현충- 원래는 6월 둘째 주까지 하는 것까지 하는 것은 그렇다- 그런데 현충일 이더라고. 그래서 오늘 끝내야 해. 그럴 수도 있지. 그런데 화장실에서 다 밀어내지 않고 적당히 나온 듯 한 느낌이어서, 할 수 없이 6월 13일까지 가야하지 않나 싶어요.

그래서 다음에는 3개월 반- 마지막 주는 reading period이라는 말이 있어요. 그걸 적극 활용 하겠다고 생각해요. 개별연구가 필요하겠다 싶으면 두 주 간 하겠습니다. 유연하게, 탄력적으로 해야겠다고 생각합니다. 이번에는 어쨌든 6월 13일까지 갑니다. 더더욱 그래야하는 이유가 있어.

4개 챕터야. 적지 않은 내용이야. 화두도 하나 가지고도, 신정론 하나 가지고도, 신의 세상 개입, 기적, 내세 하나만 해도 3-4시간의 토론이 모자를 정도로 중후한 화두들이죠. 종교의 일상인데, 상아탑 안에서만의 문제가 아니라 진짜인데. 이 땅에 신이 어떻게 행동하는가. 이론에만 머물지 않는 중요한 문제인데, 한번에 4개를- 상당히 무리입니다. 읽기 위한 읽기라는 느낌을 피할 수 없는데, 극복할 수 있는 방법을 도모할 수밖에 없어요. 욕심껏 잡기는 했지만, 다 그렇게 지르지 는 못하더라도- 토론에서 겉핥기로 살피기보다는, 이렇게 저렇게 엮어서, 조금 더 입체적으로 살 피기를 바랍니다. 사실 화두는 많고, 양은 많지만, 패턴은 또 비슷합니다.

이 책은 헤센하고 비교하면, 깊이보다는, 좀… 그… 우리에게 요구되는 것은 뭘까요? 헤센 책 이 요구하는 것과 이 책이 요구하는 것은 다릅니다. 뭘 요구받고 있습니까? 새로운 대안은 당연 히 요구받아요. 여러분 토론, 새로운 대안까지 가야합니다. 그런데 같이 따라가면서 살피려면, 뭐 가 요구 돼. 깊이보다는, 빠른 회전이야. 빠른 전환이라고 해야 하나. 이게 분석철학 전통의 강점 이기도 하거든요. 우리가 상대적으로, 여러분과 함께 나눈 것으로는 덜 익숙한데- 동서신학포럼 있어요. 거기서 제가 논문을 발표했더니- 영국에서 온 토렌스라는 양반이 커멘트하기를, 굉장히 유로피언 필로소피 분위기가 나온다고- 왜 저거야말로 한국적인데 왜 니들꺼냐 한판 붙었어. 하 여간- 나도 어쩔 수 없이, 냄새가 낫겄지. 이렇게 노골적으로 하지는 않았지만, 미국에서도 공부 를 했지만- 내가 채택한 것이 거의 다 독일 책이고, 어쩌다 프랑스고- 그래요. 그러다 급기야는, 오랫동안 먼지 쌓인 됙일어를 다시 읽어야겠다는 생각으로, 다다음 학기에 칸트의 실천이성비판 과 이성의 한계 안에 있는 종교를 독일어로 읽어볼까, 시도해볼까 궁리하고 있어요. 한국 와서 독일어 읽을 일이 없었어. 91년에 박사 받았으니, 20년이 넘었어. 단어를 많이 까먹었어. 문장 구조는 그림으로 쫙쫙 들어오는데, 단어가 그래. 그래서 역시 모국어가 아니니 그렇구나. 하여간, 유로피언- 분석철학, 빠른 사고의 전환. 기교적이기도 한 기술을 이런 맥락에서 배워보는 것도 괜찮아요. 제가 많이 사용하는 텍스트는 아닌데, 종합적인 통찰력보다는, 예리한 분석력이 필요하 기도 해요. 구조는 굉장히 단순해요. 쭉쭉쭉 간다고. 하지만 한 줄 그 다음 튀어나오는 한 줄- 친절하게 설파하지 않아도, 그 관계를 보는 게 논리 훈련이에요. 엑스트라 워크로 부탁하는 거예 요. 그런 식으로 그림 그리면 병렬적인 방식이라고 할 정도로 단순해요. 하지만 줄줄 사이를 잇 는 추가의 방식이에요. 분석적 훈련의 방식으로 중요해요. 그 다음, 형식 다음, 내용으로 가야해 요. 신의 역사가 introvantion. 섭리. 필연과 우연 사이의 긴장인데, 저기서 보면 섭리가 되고, 그 범위를 어떻게 가늠하느냐에 따라 다층의 영역을 갈라낼 수 있는데, 그런 게 복잡다단하게 구 성되잖아요. 그래서 발제로 정리하고, 토론할 때는, 다 싸잡아서 겉핥기로 가기보다는, 의제를 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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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서 전개하기를 바라겠습니다.

그리고 오늘의 특수 사정을 말해야 하는데-

제가 있든 없던 상관없이, 마치 있는 것처럼 그냥 하세요. 도저히 물리적인 시간이 안 돼서, 특별히 익스큐즈를 합니다. 종교와 사회 연구 프로젝트, 한국연구재단에 사회학 행정학 법학 생 물학 종교학 철학, 박사급 연구원 등 해서 연구티임이 10명 정도로 꾸려지는데, 기획서를 나눠서 막 쓰고 있어요. 그런데 제가 또 순전히 인생 짬밥으로 팀장이 됩니다. 월요일 제출해야 하거든 요. 그런데 이 순간 되어야 하는 단계- 그래서 7시에 오늘도 모여야 하고- 또 돌리고 해야 하는 데- 물리적으로 시간이 없어요. 왜 이렇게 되었느냐- 조직이 늦게 출범했고, 프로젝트를 시작하 고 보니 일정이 이렇고. 시간은 과거로 못 돌리는 것은 신도 못한다는데- 과거로 돌릴 수 있을지 한번 토론 해보세요. 없으면 더 잘할 것으로 기대하기 때문에, 준비된 순서에 따라 발제하고 토 론하고. 부지불식간에 저는 도적 같이 임하도록 하겠습니다. 기름 준비 잘하고, 불 잘 붙이고 하 시기 바라겠습니다.

대신에 굉장히 따끈한 화두가 많기 때문에-

녹음은 해야 할 것 아니냐. 서기관은 있어도- 서기관 옆에는 바리새인이 있지.

이렇게- 도청이라고 할 수는 없고- 학부 수업에서도 여럿이 녹음을 하더라고. 제 것이 녹음 퀄 리티가 더 좋을 거라는 아이도 학부 때 있던데. 요즘 계속 그렇게 녹음 되죠? 토론도? 예. 그래 서 열심히 잘 하시기 바라겠습니다. 그러면 발제부터 하죠.

(휴식)

쉬는 시간 다 끝났습니다. 시작하시죠. 질문하실 거 질문하시고요. 발제 의문 나시는 거 질문 하시기 바랍니다.

김종우 학우, 질문하시죠.

종우) 범서신론을 설명해주세요.

범서) 내세에 대한 이야기가 사실 논리적인 필연성을 가져야한다는 생각을 했어요. 설명을 위 해서도 그렇고, 이런 논변을 위해서 종교인들에게 내세가 없다고 말할 수는 없거든요. 그 확신 없이는 종교도 없고- 그런데 그건 악의 문제와 연관되어야 해요. 그래서 열린 신론 같은 것이 대 안으로 책에서 제시한 건데요 좀 더 보완해야 해서요.

최초 목적은 신이고, 주관목적은 인간이다- 이걸 좀 더 확대해서, 인격적 신과 비인격적 신.

종교를 나누다보면, 그런 부류가 있죠. 그 두 개가 상호 보완적인 입장이 될 것이다. 최초 목적 을 비인격적 신. 브라만, 공, 무로 대체했을 때, 야웨는 인격 신이다보니… 악의 문제에 대해 내 세는 대안인 셈이어서- 열린 유신론보다는 조금 더 강화된 신론이 필요해서, 인격신과 비인격신 이 합쳐지는 것이 필요하다고 봤어요. 틸리히도 그런 말을 해서 논리적인 타당성이 있다고 보면 서 제안을 해봤습니다. 악에 대한 문제를 설명하기 위해서 그랬습니다.

종우) 교회에서 이렇게 말하기에는 논란이 있지 않을까요?

범서) 교회보다는 절에서 이야기하는 것이 더 은혜로울 것 같아요. 부연설명하자면, 원래 비인 격적인 존재를 믿잖아요. 무라는- 아미타불은 인격적인 성격이 강해요. 악의 문제와 관련해서 설 명할 때, 최초의 목적, 무- 공사상- 인격신 종교에서 주관적 목적의 신을 말할 때, 큰 불협화음 이 없을 것 같아요. 교회에서는 어떨지 모르겠지만. 교회에서는 사실 좀 힘들겠죠. 그래도 한번 해볼 생각입니다.

종우) 니체를 전에 얘기하시고 힘들었다고…

범서) 아뇨. 힘들지는 않았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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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그러면 이런 비인격적인 신들과 야웨는 어떤 관계에요?

범서) 주관적 목적이라나는 부분이 있는 거죠. 브라만이라는 비인격적인 존재가 절대적인 존재 로 상정될 때- 힌두교는 굉장히 다신적이죠. 브라만이라는 비인격. 근데 공과 무도 조금 다르죠.

다른데- 글쎄. 신정론 얘기할 때 차용한 부분이지만, 본격적으로 들어가면 논의할 부분이 많죠.

하지만 악의 문제를 설명할 때, 공과 무에 대한 부분으로 설명할 수 있지 않을까. 틸리히의 God above God에서 위에 있는 하나님은 인격신이 아니라 존재의 심연이거든요. 그래서 전통적인 유 신론과는 상당히 거리가 있죠.

광우) 저도 비슷한 생각을 했는데, 공, 브라만을 빌리지 않아도, 기독교적인 언어로 표현할 수 있다고 봐요. 칼뱅의 기독교강요에서 예정론은 구원론에서 나와요. 하나님 뜻에 달려 있으니 걱 정 말라는 듯이에요. 섭리론은 하나님이 존재기반으로 있다는 거거든요. 열린 유신론 등을 다 말 하는데, 신과 피조물이 있는데, 나뉠 수 있을까. 생각이 들어요. 하나님의 뜻입니다- 말하는데 나 의 해석이 아닐까 생각해요. 존재의 기반 위에 서있는데, 지나고 돌이키면, 그 속에서 하나님의 흔적이 밝혀지죠. 데리다의 표현에 따르면, 흔적은 있음도 없음도 아니에요. 자유 안에서 섭리가 발견되고, 교호관계가 나와요. 기도는 내 안에 발견하는 흔적을 발견하고, 간구하면서 바꿔나가는 데- 신과 피조물을 따로 보지 말자. 안다는 것도 얽히는 것- 따로 무 이야기 안 해도, 존재의 기 반인 하나님- 자유가 있어도 알 수 있다- 그러면 우리의 용어로도 충분히 교회서도 말할 수 있 지 않을까 싶어요.

범서) 예. 그렇죠. 그- 사실 공 브라만 무- 다른 종교가 사용하는 궁극적인 존재를 표현할 때 사용하는 단어죠. 기독교에 그런 용어가 없어서 그렇지만, 존재의 심연과 같은 용어들을 틸리히 가 사용하거든요. 우리가 앞으로 신론에 깊이 들어가서 공부하다보면, 필요하지 않을까 싶습니다.

광우) 제 질문인데요- 신이 존재한다와 신은 선하다가 필연적으로 얽혀야 하나요?

범서) 그 키워드가 인격적이라는 거잖아요. 인격적인 신- 인간의 고통에 대해 외면하지 않는 신이잖아요. 무인격적이다, 야수적이다. 그러면 신을 숭배해야 하는가로 연결되죠.

광우) 신이 인격적이라고 하는데, 우리의 쾌 불쾌이거든요. 하나님은 선악을 넘어서는 분인데- 필연적이지 않을 수 있잖아요. 존재론과 속성- 근데 왜 필연적으로 엮는지-

종우) 선악의 판단은 우리에게 있는데- 하나님이 선하다는 굉장히 위안이 되죠. 그 고통 가운 데 있을 때.

&) 안셀름의 존재론적 논증할 때, 신에 대한 가정에서 완전함- 악은 정합성을 지닐 수 없잖아 요.

가정 자체에 완전함을 속성으로 잡았을 때, 악은 매칭이 안 되죠. 선한 신으로 유추해야 완전 함이 나오고, 논리로 나올 수 있는 거죠. 아까 말하는 것처럼, 존재와 속성의 범주의 관계성을 배제하고 투사하면, 오히려 말이 안 될 거 같아요.

광우) 불완전하다고 해서 없다고 말할 수는 없다고 봐요. 논리적 비약 같아요.

&) 책에서도 부족하다고 하지만, 논리적 단계는 참고할 수 있다고 말해요. 신은 완전하다고 전 제는 공유할 수 있다고 봐요.

종우) 완전하다 악하다 있다 는 모두 우리의 삶에서 의미부여 되는데, 그걸 하나님에 적용하니 신정론 문제가 나오죠. 그러니 성서에서 하나님을 보면서 판단해야 한다고 봐야해요.

광우) 의미론적인 것과는 다른 것 같아요. 저는 밑에 거를 말하잖아요. 밑의 전제들을 다시 생 각해봐야 한다고 봐요. 모르는 것이 솔직하지 않을까. 알 수 있는 계기가 있는데, 그리스도 사건 으로 저는 생각해요.

(4)

종우) 그것도 계시사건.

광우) 그리스도의 사건이 전적으로 선하냐- 그것은 퀘스천 마크죠. 우리는 그렇게 고백하기는 하지만, 성서에 기록된 모습을 보면- 수로보니게 여인처럼-

&) 개인적인 질문 가지고 말하시는데- 질문을 이렇게 하시면서 논지를 전개하는 과정 중에 모 순이 있는 거 같아요.

신이 존재한다는 논증 자체도 인간의 경험에 의해 투사된 것 같다고 하면서 나의 증언은 나의 경험이다-

^) 모른다고 보시는 것 같은데- 인식하고 현상학적으로 바라보고… 근데 전제 없이 말하지는 않잖아요. 그래도 우리가 이런 작업을 할 수밖에 없는 것이, 실용주의적인 정초 안에서 전통 언 어적인 체계 안에서, 합리적인 체계, 정합성을 찾아가지 않는다고 했을 때, 과연 신에 관해서 알 수 없지만- 그건 칸트에서 끝났죠- 삶의 신앙에서 요청되지 않을까요.

광우) 제가 이야기하고자 하는 것은, 신에 대해 명제를 내리는 것이 아니라, 판단이 아니라, 한 개인에서 시작해야 한다는 거죠.

^) 그것도 개인의 신앙에서 시작하는 거잖아요.

광우) 제가 말하는 것도 애덤스와 비슷해요. 그리스도를 믿지 않고 그냥 봐라. 믿지 않더라도 봐라. 석가도 보고 마호메트도 보고- 근데 예수의 삶을 보면 신성이 나올 것이다. 서른 살에 십 자가에서 고통스럽게 죽었고- 얼마나 솔직해요. 바리새인한테도 욕하고. 그 삶을 보라는 거죠. 애 덤스가 거기에 초점을 맞추면 설득력을 가졌을 거라고 봐요.

&) 이런 논증을 하는 사람들은 기독교를 전제로 하지만, 신의 속성들을 무시하는 사람들에게 하는 사람들이죠. 핵심 코어에 대해서는 어느 정도- 베일을 가리고, 대화가 가능하도록 소통 가 능하게 접근하는 거죠. 이런 카테고리가 서로 이어질 수 있느냐? 부정 입장에서 그리스도로 가 면, 이 사람들의 고민을 그냥 치고, 개인적인 논증을 펼치는 건데, 그게 효과적인가.

광우) 거기서 계시가 나와야 하는 거죠.

%) 논의를 정돈하려면- 존재와 선이 같이 가야 하나. 범주의 오류가 아니냐- 고대 존재론에는 존재는 하나고, 하나는 선하다. 플로티누스, 중세까지 흐르는 흐름이어서 기독교 신학에서 만든 것은 아닌 것 같고. 또 인격이라고 할 때, 도덕적인 것은 아닌 거 같아요. 이성과 의지를 말하는 거죠. 이성이 완전하려면 전지, 의지가 완전하려면 전선- 이게 있어야 전통적인 신이 가능한 거 죠. 다른 논의가 필요하지 않을까.

광우) 그리스 철학이 맞는데- 어디서 시작했는지. 그 근원을 알면 어디서 시작했는지 알겠다.

다 변화하는 가운데서, 반대급부로서, 없어지는 것은 불쾌라고 보니까 그런 거죠.

정우) 그러면 악은 어디에 기인하나요? 그런 식으로 하면 이신론이 아닌가요? 악신과 선신으로 나눠지면 편한데- 그거 아니라고 해서 필연적으로 나와야하거든요. 이신론적인 사고가 가능한지 물어보는 거예요.

%) 존재-선함이 단순히 우주론적에서 나오지는 않고, 플라톤의 이데아에서 나오는 건데, 그렇 게 한 마디로 말할 수는 없어요.

&) 역사적인 것을 깨는 식으로 말하는 것은 무의미하지는 않고요.

광우) 한번 그렇게 봐야한다는 거죠. 그리스 철학 기원을 말하려는 거고. 삶에 대한 급부로 나 오는 것이 아닌가 싶고.

%) 당연히 모든 지식은 삶에 대한 반성이죠. 모든 것이 다 그렇게 빨려드는데, 생산적이지 않 을 수 있어요.

범서) 죄송한데, 시간이 없어서- 너무 펼치지 마시고, 내세에 관하여- 책을 다 읽어오셨잖아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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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떤 게 중요하다. 각자 생각하시는 게 있을 텐데, 각자 중시하는 것을 분석철학적으로 이야기하 면 좋을 거 같아요. 발표 안한 분들이 많은데, 이 기회에 같이 참여하시면 좋을 거 같아요.

^) 갑자기 왜 교수님처럼…

범서) 마이크 잡으면 원래 그래요. 우리 태진 형제가 질문할 게 있을 거 같아요.

태진) 방금 전까지 논의와 관련된 것을 생각하다보니…

철학적인 얘기는 다 나왔으니까 반복 안 하고. 신정론 관해 말할 때, 아직도 하냐고 교수님이 말씀하시는데, 왜 그럴까 생각했거든요. 제 이해수준에서 드는 생각은- 속성 이야기 말했지만, 속 성이 왜 존재로 가느냐- 속성에 대한 이야기는 -이다 인데. 이념에 관한 이야기를 존재로 끌고 간 게 형이상학이고, 그 과정에서 신정론이 나오는 건데, 왜 형이상학을 지난 요즘에 아직도 이 거 하냐. 많은 철학적 신학적 반성이 지나가도 아직도 이거 하냐는 질문 같아요.

제 결론은- 그런 논의들은 우리가 해야 하나 싶으신 거 같고.

내세에 관해서, 마침 신약학 수업에서 요한복음을 다루고 있는데, 내세가 없을 경우 종교가 뭘 할 수 있냐고 용세 학우가 질문을 했는데. 이번 수업에서 무언가 결론을 내려줬으면 좋겠다는 생 각을 했어요. 이런 장점 저런 단점- 결국 저자들이 생각하는 것은 뭔데- 그거는 이야기가 없는 것 같아서- 그래서 저의 커밍아웃 전에 다른 사람들의 생각을 조금 더 들었으면 좋겠다는 생각 을 했어요.

범서) 논의에 기름을 붓기 위해- 바울의 이야기. 부활이 없으면 우리가 전파하는 것도 헛것이 다. 내세가 있다는 것을 이야기하는 거겠죠? 어떤 식이든, 여러분의 이야기를 듣고 싶습니다. 책 에서 그런 이야기하면 시원할 텐데, 그야말로 분석철학으로 말하기 때문에- 내세인지 과학인지- 하여간 여러분 이야기를 듣고 싶습니다.

주한) 자아동일성을 말하지 않습니까? 그게 동일하게 지속될 수 있는가- 시간이 곤고하게- 영 속적인 측면. 거기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시는지 궁금합니다. 영혼과 몸에 대한 개념도 먼저 생각 해야 하지만… 몸이 동일한 질적 상태로 지속될 수 있는가.

종우) 자아동일성을 말하기 때문에, 몸이 사라질 때- 새로운 몸이 나올 때- 그 사람과 나가 어 떻게 같다고 볼 수 있는지. 그래서 나오는 것이 기억, 일인칭의 관점, 연속성. 기억으로 하나 말 하자면- 본 슈프리머시, 과거를 완전히 다 잊죠. 새로운 인간이 되는데, 과거를 전혀 기억하지 못했을 때, 옛날 그 사람인지. 우리는 다른 사람과의 관계성으로, 같은 몸을 지니니까 같은 사람 이라고 보는데- 마음에 우리가 더 주목할 때. 내가 누구인지 기억하지 못할 때, 새로운 인격인 가.

주한) 굉장히 의미론적으로 볼 수 있다고 봐요. 의미론적인 차원- 이 땅에서의 의미가 기억 없 이 존재할 때, 같은 의미의 존재인가.

종우) 기억도 같이 왜곡될 수 있는데. 다른 사람의 기억이 주입된다. 그러면 그 사람의 삶인지.

&) 천주실의 하권에서- 우리는 전생이 있고 현생이 있고 내생이 있어서… 서양선비 왈. 만약 그렇다면, 내가 어떻게 살았는지 그 기억이 있어야 하는데, 그 기억이 없다. 그 기억은 인간의 정체성- 연속선상에 없으니… 소멸된 자아라고 한다면,

종우) 살인했는데 완전히 잊어버렸는데 사형을 한다고 하면- 어거스틴 삼위일체론, 기억 이해 의지. 여기서는 기억을 바라보는 거죠.

정우) 신정론과는 다르게, 내세는 당연하게 말하는 거 같은데. 왜 속성만 다루는지.

종우) 그게 아니고 자기동일성이 해결될 때 가능한 거니까 그런 거죠.

태진) 내세 없이 종교가 불가능한지.

범서) 이 책과 관련해서, 이 책에서는 논리적 필연성으로 제시하거든요. 악이 존재하는데, 끔찍

(6)

한 악- 사후 세계에 보상이 있어야 한다. 종교라는 측면에서 만약 내세가 없다. 현실에서의 삶이 전부라면, 과연 기독교라는 종교가 성립할 수 있을까. 예수의 승천 이후, 이렇게까지 많은 사람들 이 열광하면서 믿을 수 있을까. 논리적으로 내세가 아닌 기독교가

정우) 악은 하나의 단계에 불과하는데- 그러면 내세에 가면 해결되구나, 마약이에요. 조건적으 로 내세가 필요하냐. 신정론도 그렇죠. 악이 실제로 존재하는데, 악이 하나의 도구에 불과하게 돼 요. 근데 악이 실제로 있잖아요. 전 내세가 그런 식으로 다가오면 안 된다고 봐요. 그게 종교라 면 그렇죠. 하나의 필요로 설정되어야 한다. 왜 악은 깔면 안 되는데, 내세는 안 그러냐. 그러면 있으면 좋지- 있으면 좋으니까 필요한 거죠.

광우) 논리적 필요성으로만 가면, 굉장히 수동적으로 가는 거 같아요. 바울도 말했지만, 저쪽에 서 일어나는 것으로 봤을까. 지금 일어난다고 봤을까- 그건 신약학자들의 주석이 더 필요하다고 본다고 생각해요. 저는 이 세상에 이미 임한 것으로 봐요. 패치 아담스를 봤는데, 췌장암 환자에 게 의사가 말하는 게 있어요. 죽어가는 환자에게 웃게 하고- 근데 마지막에 의사들 앞에서 죽음 을 받아들이라고 말해요. 내세도 이런 의미가 아닐까 싶어요.

범서) 지난 번, 종교 왜곡 비판할 때, 현실 긍정하는 신앙이 내세가 힘을 주고, 희망을 주는- 그게 역작용으로, 내세 때문에 현실을 부정하고, 이런 삶은 불행하지만, 내세가 있기 때문에, 희 망을 주는 것도 사실이거든요. 양쪽 다 내세는 필요하다고 봐요. 그러면 너절한 거 아니냐. 신정 론과 결부해서. 인간의 필요해서 있어도 되고 없어도 되고- 그렇게 볼 수도 있겠죠. 적어도 현실 의 삶에

진호)

%) 현세의 도덕과 내세의 필요성- 칸트의 구도거든요. 불가지론으로 묶고, 도덕적 실천이 필요 하지 않냐. 자아동일성, 내세, 신- 요청하잖아요. 그런데 두 분이 이야기하는 것을 받아들이자면, 칸트 논의 같아요. 요청, 가공되는 것이라고 봐요. 근데 그거 넘어서는 것이- 도덕의 하위 범주 가 되거든요. 도덕적 가치를 완성하기 위해 도덕 내세가 정립되는 거니까, 신학이 윤리학의 분파 가 되는 거죠. 분명 실용적이기는 하지만, 그것만으로는 충분한지는 생각이 들죠.

근데 정우씨와 관련해서는 도덕적 방만을 말하는 것은 칸트와는 다른 거 같아요.

광우) 고통을 어떻게 수용하냐. 일원론적인 하나님을 어떻게 말하냐- 고통을 받아들이게끔 하 는 것. 죽음을 받아들이게끔 하는 것. 도덕적인 의미가 아니라- 융엘 질문을 하시는데, 저는 융 엘에 동의하거든요. 죽음을 배제하기보다는 수용하고, 그 자체가 초월 같아요.

종우) 기능적으로만 보면, 성서의 이야기가 뻥 같아요. 애 달래는 이야기 같아요. 우리의 토대 는 완전히 새롭게 작업해요.

광우) 기능적인 것 같아요. 살아있는 사람의 하나님이라고 했거든요. 초월을 이야기하셨고. 현 재적 종말론, 완전히 새로운 삶

^) 그것만 가지고 이야기하지는 않잖아요. 공의가 편만해지도록… 그러나 죽음 이후에 관해서 도 이야기하잖아요. 지금 말하시는 것은 already만 이야기하는 거고요. 역사를 상보해보면, 질서 와 선을 추구하고, 영원의 세계를 공경하는 것은 인간 안에 내재된 무언가라고 봐요. 그런- 인간 의 영혼 안에 내재된, 플라톤을 따르자면 이데아를 향하는 뭔가라고 봐요.

투사적인 접근이 있는 것은 사실이만, 내세가 없을 때, 그냥 이 땅에서 끝난다면, 굳이 질서를 찾고, 완성을 찾고, 발전을 위한 노력이 필요 없지 않은가.

정우) 초월적 특성으로만 말하는데- 하나의 내재성, 세상의 내재성을 말하기에- 단순 초월로 보기에는… 그래서 자기동일성...차원 다른 차원이 아니라… 삶과 연관될 수 있는 것- 그걸 정립 하려는 것 아닌가 싶었어요. 삶은 결국-

(7)

주한) 내용들이 다 안에 있고, 반론도 있고. 다 있어요. 그래서- 정우가 이야기한 것처럼, 분석 철학적인 견지에서 이야기하려는 것은 과학지식을 추구하는 것이 아니라, 과학적 방식으로 우리 가 아는 추상적 지식을 분석하려는 거거든요. 그래서 이 방식이라는 것이 우리 삶에 관한 고민이 죠. 그 실재를 분석하자는 건데- 이전의 논의들을 다 인정하고, 두 가지로 딱 정리가 되거든요.

내세를 믿는 것도 믿지 않는 것도 정당하다. 굳이 분석철학 하는 이유도, 정확하지 않는 것은 가 정하고 분석하자는 거에요. 그래서 내세라는 것이, 합리적으로 파고들어가면, 다시 돌아가서- 새 로워질 수 있다고 하기 때문에- 자아동일성과 기억이 더 깊이 들어가야 의미가 있을 거 같아요.

범서) 천문학과 교수님을 제가 알아요. 50억 광년 떨어진 별을 관측하잖아요. 근데 그거를 위 해 직경 28미터의 망원경을 만드느라 1조가 들었어요. 근데 그 별을 보기 위해 50억 년 전에 빛 이 나왔어요. 그 동안에 우주 안에는 그 시간이 다 안에 있어요. 무시간적인 하나님- 부활시키겠 다, 마음먹으시면- 길게 살아봐야 100년 우리는 사는데, 그 50억 광년에 비하면 점이죠. 근데 그 점 하나를 딱 집어서, 가령 아브라함은 모리아 산에서 얼마든지 부활시킬 수 있다고 봐요. 내 세에서는 제2, 제3의 세계를 만들 수 있다고 봐요.

블랙홀이 있어요. 아무도 들어가 본 적은 없어요. 들어가기만 하고, 나오는 것은 없어요. 하지 만 그 안에 다른 세상을 만들어놓으셨다면 가능하다고 봐요. 그리고 내세를 논리적으로 말했지 만, 내세 가고 싶지 않은 사람도 많아요. 그런 거죠. 내세와 관련해서 자아동일성- 하나님의 힘 으로는 충분히 가능하지 않을까.

주한) 그- 사실 이것도 전혀 정리하지 못하고 있어요. 기억에서 더 갔어야 하는데- 내세에서 기억이 동일하다고 할 때, 죄악의 기억도 있겠죠. 기억상실증이 부분적으로 일으킨다고 하다면- 그래서 롤랑 바르트가 반 기억이라고 하잖아요. 그런데 악한 기억까지 유지된 채로 내세에서 지 속된다면, 그것이 천국에서 온전하다고 할 수 있잖아요. 존재 차원에서 분열될 수 있지만.

종우) 기억을 가져가고, 내세가 있다고 치고- 좋은 기억만 가능하지 않을까요.

주한) 그게 불가능하죠.

진호)

주한) 안 좋은 기억들, 죄의 기억들이 사라질 수 있겠다고 저도 봐요.

정우) 강력한 매개체가 필요 없다고 하는데- 자연상태가 없다면, 추동자가 필요하다고 보잖아 요. 자연상태가 아니라고 …

종우) 해변에서 맛있는 거 먹고- 그거는 필요 없다는 거예요.

주한) 그래서 소외, 지옥의 개념이 필요하지 않는가 봐요.

종우) 애한테 사탕 주고 달래는 것처럼 거짓말하는 신은 아니라는 거죠. 묵시적인 언변들이 단 지 위로를 위해 주어지고 한다면- 어떻게 필요하나…

범서) 욥이 하나님을 신뢰하지 못하거든요. 거기에 끊임없이 항변하는데, 불가해한 거잖아요.

끔찍한 악인데. 신앙에서 떠날 수도 있었거든요. 근데 인간 법정에 불러 세워서, 왜 그러느냐. 그 래도 하나님은 창조 이야기만 하는 것 자체가, 하나님이 얼마든지 인간의 의의를 뺏어갈 수 있 다. 진정한 신앙은 거기서 드러난다. 이런 부분들을 설명할 수 있지 않나. 개인적으로 자유의지 등을 부여받아서- 자연적인 악이잖아요. 욥이 당한 것은- 목적이-

종우) 이 모든 논의는 사회와 종교가 평행선만이 아니라- 우리 이야기만 정우) 악이 중간고사와 뭐가 다르냐. 완전한 형식이거든요.

%) 그런 측면도 있어요. 왜 악으로 테스트하냐- 근데 의를 추구하는 신관 때문에 기독교로 오 기도 해요.

정우) 그러면 또 도덕으로 환원될 수 있는 것 아닌가 싶어요.

(8)

종우) 세계 2차 대전으로 다 헷갈리거든요. 신학자들이. 그래서 신의 역사 이 부분을 논의해야 할 것 같아요.

성욱) 예수님과 바울- 당시의 상황에서 나온 말이라고 생각하고, 비유들도 예수님이 과연 한 적이 있는지-

태진) 영생 내세 할 때- 요한복음은 좀 다르잖아요. 정말 예수가 하고 싶던 이야기가- 보여준 십자가 삶, 본질적인 것과 직결되느냐- 좀 다르게 생각하거든요. 요한복음이 소종파, 축출 당했 고, 신적인 존재로 스스로 인식해서 돌아갈 곳, 로고스를 보고, 그런데 그런 식으로 보는 것도 의문이고요. 그런 식으로 믿으라는 말은 아닌 것 같다는 거 같아요. 그래서 내세가 없어도 종교 가 성립할 수 있다고 봐요.

&) 영혼이… 다음 세계나 또 다른 세계 에 대해 상정하지 않으면 대화가 안 되잖아요. 현세에 대해, 종말론적 공동체, 하나님나라 구현하라는 책임의 의미가 크다고 말하고. 그런 거 가지고 또 다른 내세 부정한다고 하기도.

광우) 죽은 다음 어디 간다고- 잠자고 있다고 루터 말대로 성경적으로 말하는 거 같다고. 욥도 결국 하나님 말씀하시는 거도 신비니까 모른다고. 결국 욥 친구들도 화목제로 봐요. 그리고 내재 적 초월.

&) 그것도 의미 있지만, 현세적인 차원, 사회적인 차원으로만 국한하면, 팩트가 이벤트화만 돼 요. 그런 비판도 많아요. 균형적인 개념 없이 해석하면, 내세에 관한 접근도 좁아지지 않나 싶어 요.

*) 이 책에서 말하는 내세가 어떤 모습인가. 어떻게 가나. 그거는 아닌거 같고. 그거 있어야 종 교가 되고- 그것도 아닌거 같고. 있을 수도, 없을 수도 있는데, 그러면 어떤 모습이고, 영혼이 있 다면 당연히 있어야 하고. 자기 동일성이 시공간적인 연속성. 전망의 이야기도 유신론적인 세계 관에서는 내세가 있을 수밖에 없는데. 지향한 삶의 이야기들이 풍성해지니까- 그러면 논의되는 것이 어떤 근거고, 어떤 추구고- 자기 투사인가, 내세의 개념이 더 풍성하게 하기 위한 것인가.

그런 부분에서 논의되는 것이 이야기하려는 것이 아닌가.

범서) 하나님 나라가 상징으로 표현된다. 하나님의 나라가 전제되지 않고- 하나의 종교적인 조 건일 뿐이에요. 그거 있으니까 믿는다. 그럴 수 있는데- 하나님 나라에 대해 제시되었다는 것은- 천국에 대한 소망이라는 것이. 그래서 현세에서의 삶의 헌신이 전제되지 않고서는- 시종일관 그 렇게 말하시잖아요. 주여주여 같은 구절들. 내세는 최종적으로 말하자면 그래요.

&) 내세관- 천국, 이 땅이 회복되는 거- 차이가 있지만. 기독교의 내세관이 그리 유치하지는 않아요. 내세가 없는 종교가 오히려 더 저차원적이에요. 창조부터 인간이 가야할 세상이 더 구체 화될수록 고등종교로 평가받아요. 그래서 그리 유치한 개념은 아니에요.

참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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