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차 내전과 2차 내전 사이(기원전 79- 42년)
스파르타쿠스의 노예 반란(기원전 73-71년)
크라수스가 진압
2년간 전직 검투사 스파르타쿠스가 이끈 1만의 노 예가 이탈리아 전역을 돌아다니며 약탈
기원전 70년부터 폼페이우스, 크라수스, 카이사르 가 두각을 나타냄
폼페이우스는 해적 소탕과 미;트리다태스 전쟁 참 여로 명성
카이사르는 포풀라레스의 대표자로 신망 얻음
원로원의 3인에 대한 반감 커짐
제 1차 삼두정치
기원전 60년 폼페이우스와 카이사르, 크라수스는 정치적 투쟁에서 서로를 지원해 줄 것을 합의
카이사르는 기원전 59년 집정관에 선출되고, 그 이 후 갈리아에서의 지휘권을 얻어냄 -> 갈리아 전쟁 (기원전 58-50년)
로마의 혼란 : 군중 폭력과 정치 투쟁의 빈발
그 사이 크라수스가 기원전 53년 파르티아와 전쟁 에서 패사
폼페이우스와 원로원은 정치적 결합, 연합전선 구 축
제 2차 내전(기원전 49-30년)
카이사르는 49-45년 사이 대담하고 전격적인 작전 과 지휘로 전쟁에서 승리
기원전 47년 계승 투쟁 과정으로 무너진 이집트 질 서를 회복하며 클레오파트라와 결합
기원전 47년 독재관 취임, 44년 종신독재관 취임
일련의 개혁 : 속주 총독 권한 축소, 일부 퇴역병과 빈민을 식민지에 정착시킴
44년 3월 15일 카이사르 암살 : 브루투스와 카시우스 등 원로원 의원들이 주도
카이사르 측에서 안토니우스, 레피두스, 옥타위아 누스(Octavianus)가 나타남
원로원 일파와 카이사르 일파의 전쟁
기원전 43년 카이사르파의 세 지도자는 삼두정치에 합의 : 제 2차 삼두정
마케도니아의 필리피 전투로 원로원파 패배
기원전 36년 레피두스 은퇴 : 안토니우스와 옥타위 아누스의 대결
각기 동방과 서방 장악
기원전 31년 악티온 번 바다의 해전에서 옥타위아 누스 승리
기원전 30년 이집트 정복
내전의 종식
옥타위아누스를 위해 일한 일련의 사람들 중 마이 케나스와 아그리파는 특기할 만 함
이제 내전이 종식되기만 한다면 온건한 군주정은 받아들일 준비가 된 로마 시민들
기원전 1세기 내전기의 로마는 페리클레스 시대의 고전기 아테네와 비교될 만큼 자금과 인재가 집중 되었고, 예술과 문학 방면의 성취도 컸다.
제정 초기(기원전 27년 – 서기 193년)
아우구스투스
옥타위아누스의 통치 – 강력한 비공식적 권위 (auctoritas)
기원전 27년 조치 : 원로원에 권한 반납, 공화정 재 건 선포, -> 아우구스투스(Augustus)라는 존칭 받음, 집정관 권한, 여러 곳의 총독 권한 받음, 원수정
(prinipatus) <- 원수 혹은 제 1시민(princeps)
집정관, 호민관, 총도 권한 등의 권한 결합 -> 황제 적 통치, 이론상으로는 공화적 체제 유지
토가를 입은 아우구스투스
아우구스투스의 대리석 조상
원로원과 민회의 권한 감소
군대 : 30만 정도의 상비군 운용
그 중 절반은 속주 출신의 보조군단
속주민은 25년간 보조병으로 근무한 후 로마 시민 권 받아 정착
황제 숭배의 정착
아우구스투스 시대의 라틴 문학
아우구스투스 시대의 선전적 문화
황금기
웨르길리우스(Vergilius)의 아이네아드(Aenead)가 대 표적
호라티우스, 리위우스(로마사), 타키투스(연대기, 게르마니아)
아우구스투스 시대의 정복들
이 시기에 북서 스페인, 알프스, 다뉴브 평원지역 정 복, 라인 강이 제국의 북방 국경선이 됨
아우구스투스 통치기가 끝나면서 제국의 주요한 정 복의 시대도 끝남 -> 이후는 방어로 전략적 기조가 운영됨, 팽창의 절정기가 지나감
라인 강, 다뉴브 강, 유프라테스 강, 사하라 사막이 제국의 자연적 테두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