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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 신종교의 선도사상 연구 (나권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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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나권수*49)

Ⅰ. 서론

Ⅱ. 한국 선도의 특징

1. 인간존중의 정신

2. 재세이화(在世理化)의 이념 3. 포함삼교(包含三敎)의 문화

Ⅲ. 한국 신종교의 선도사상

1. 수운의 선도사상 2. 증산의 선도사상 3. 소태산의 선도사상

Ⅳ. 결론

국문요약

한국 선도(仙道)의 특징에는 전통적으로 공유되어 오던 일련의 가 치들이 확인된다. 인간존중의 정신, 재세이화의 이념, 포함삼교의 문 화가 그것이다. 이러한 가치들은 특정 시기에 국한된 사고유형이 아 니며, 통시적으로 우리 문화 속에서 일관되게 반복 재현되어 왔다.

한국 근대에 출현한 신종교 또한 이러한 사상적 흐름을 공유하고 있

* 대진대학교 대순종학과 박사과정 수료

(2)

다. 이는 한국 고유의 선도가 역사의 이면을 관류(貫流)하여 신종교 에 수용되었음을 시사한다.

최수운의 ‘시천주(侍天主)’, 강증산의 ‘천지공사(天地公事)’, 소태산의

‘일원상(一圓相)의 진리(眞理)’는 모두 자신의 종교체험을 승화시켜 구 현한 독창적인 사상체계이다. 하지만, 한국 선도의 사상사적 흐름 위 에서 신종교를 살펴보면 양자 간의 긴밀한 개연성이 발견된다. 아울 러 그러한 사유의 원형은 한민족의 문화원형이 투사되어 있는 단군신 화로까지 소급된다. 따라서 한국 선도는 외래사조의 유입 이후에 그 명맥이 단절되거나 와해되지 않은 채 불교, 유교 등의 이론적 틀 내에 서 그 원형을 면면히 유지하였다고 할 수 있다. 이러한 흐름은 조선조 후기 기층민중 속에 내재하고 있던 개벽(開闢)의 열망과 조응하면서 새로운 종교 운동으로 역사의 전면에 등장한 것이다.

오늘날의 한국 사회는 전통문화의 외면 속에서 외래문화의 대량유 입을 경험하고 있다. 이는 전통문화의 상대적 소외라는 결과를 초래 하였다. 한국 선도의 올바른 이해는 문화 주체성을 회복하고 전통문 화를 계승 발전해 나가는 데 기여하리라 생각한다. 아울러 한국 신종 교를 바라보는 시각도 고유문화의 계승이라는 점에서 하나의 재평가 가 이루어져야 하리라 본다.

주제어: 선도, 인간존중, 재세이화, 포함삼교, 한국 신종교, 최수운, 강증산, 소태산

. 서론

한국 신종교의 개창자들은 각기 자신의 종교체험을 기반으로 유례 를 찾아보기 어려운 독창적인 사상체계를 구현했다. 하지만 신종교

(3)

사상이 오로지 개창자의 종교체험을 통해서 완성되었다고 단정하기 는 어렵다. 신종교의 교리체계에는 전통적으로 공유되어 오던 일련의 가치들이 확인된다. 이는 신종교가 기성종교의 사회적 폐단과 한계를 지적하면서 자신의 정체성을 확보해 나갔지만, 모든 사상체계는 전통 과 시대의 일정한 영향 속에서 형성 될 수밖에 없기 때문이다.1)

우선 신종교에서 발견되는 이념들이 조선조 후기에 국한된 사고유 형이 아니며, 통시적으로 우리 문화 속에서 일관되게 반복 재현되고 있음이 주목된다. 인간존중의 정신, 재세이화의 이념, 포함삼교의 문 화가 그것이다. 이는 개창자들이 민중들과의 공감대를 형성하기 위 해 당시에 통용되고 있는 친근한 사유체계를 빌어 전달한 것으로 이 해할 수도 있다. 하지만, 신종교가 이러한 사상적 흐름을 공유한다는 점은 한국 고유의 원형적 사고인 ‘선도(仙道)’2)가 누천년의 시간을 거 치면서 역사의 이면을 관류(貫流)하여 신종교에 수용되었다는 가능 성을 시사한다.

신종교에 전승된 고유사상이 한국 선도의 근대적 계승이라는 측면 에서는 의미규정에 따라 이견이 있을 수도 있다.3) 하지만 분명한 것

1) 윤이흠은 새로운 종교의 출현 또는 개혁을 창조가 아니라 기성 가치체계의 쇄신으로 보았다. 그는 개별 종교 전통은 고정된 것이 아닌 하나의 문화복 합이므로 첫째, 완전히 새로운 종교적 신념체계는 없으며, 그러므로 둘째, 완전히 순수한 종교 전통은 없다고 하였다.(윤이흠, 󰡔한국종교연구󰡕 권1, 집 문당, 1991, 9-11쪽 참조)

2) 한국의 고유한 문화와 사상을 정의하는 용어에는 연구자간의 차이가 있다.

신채호, 정인보, 안재홍은 ‘선교(仙敎)’, 현상윤은 ‘신도(神道)’, 이능화는 ‘신교 (神敎)’, 그리고 최남선은 ‘고신도(古神道)’ 등으로 부르고 있다. 한편, 안호상, 최민홍, 이을호, 송호수, 김상일, 오강남, 임균택 등의 학자들은 ‘한사상’ 또 는 ‘한철학’이란 용어로서 민족 전통사상을 정립하고자 시도하였다. 근래에 는 민족 고유의 종교와 사상을 ‘선도’로 규정하고 있다. 이에 본 논문에서도

‘선도’라는 용어를 사용하기로 한다.

3) 김동환,

근대의 선도사상과 문화

」, 󰡔한국 선도의 역사와 문화󰡕, 제1회 국제

평화대학원대학교 학술대회 논문집, 2005, 173쪽, 201쪽; 이승호, 󰡔한국 선도 사상에 관한 연구󰡕, 대전대학교 박사학위 논문, 2010, 76쪽.

(4)

은 문화원형으로서 선도가 외래사조의 유입 이후에 그 명맥이 단절 되거나 와해되지 않은 채 불교, 유교 등의 이론적 틀 내에서 그 원형 을 면면히 유지하여 왔으며, 조선조 후기 기층민중 속에 내재하고 있 던 개벽(開闢)의 열망과 조응하면서 새로운 종교 운동으로 역사의 전 면에 등장한 것이다. 류병덕이 한국 신종교의 효시인 동학사상의 가 치에 대해서 “동학사상은 한국에서 처음으로 일으킨 민족혼이요, 한 국적 종교혼이었다. 이는 전래의 선적(仙的) 종교심성이 되살아난 것 이다”4)라고 평가한 것은 동학을 위시한 신종교의 목적의식이 그 당 시 쓰러져가는 한국과 고통 받는 민중을 순수한 한국적 종교혼을 기 반으로 일으키고자 하는 데 있었음을 명확히 지적한 것이다.5)

한민족의 사상적 흐름과 신종교의 긴말한 개연성이 주목되면서 양 자 간의 연결고리를 탐구하는 일련의 작업이 진행되어 왔다. 첫째는 민족 전통사상을 새롭게 정립하고자 하는 일련의 시도였던 ‘한사상’

의 흐름 속에서 신종교를 이해하였다.6) 대체로 천도교, 증산교단, 대 종교, 원불교를 중심으로 이루어졌으며, 그들의 종교사상이 갖는 사

4) 류병덕,

한국 현대 종교사상의 변천과 그 반성

」, 󰡔철학ㆍ

종교사상의 제문제󰡕

Ⅶ, 정신문화연구원, 1990, 85쪽.

5) 이와 관련하여 민영현은 문화원형으로써 선이 한국문화 속에 면면히 그 맥 을 이어 19세기 민족종교사상으로 연결되었다고 보았으며,(민영현,

한국 선 의 생명사상과 그 철학적 인간학

」, 󰡔대동철학󰡕 30, 대동철학회, 2005, 1쪽)

김용휘는 신종교를 기층민중 속에 내재하고 있던 선도적 열망이 민중적 차 원으로 승화되어 역사의 전면에 등장한 것으로 이해하였다.(김용휘,

「한국선

도의 전개와 신종교의 성립」, 󰡔동양철학연구󰡕 55, 동양철학연구회, 2008, 148-149쪽 참조) 한편, 이경원은 사상적 원형으로서 선은 정형화된 종교로서 포장되어 역사적으로 불교, 유교 등의 이론적 틀 내에서 그 원형을 발전시키 게 되는데 신라

고려조의 불교사상과 조선조의 유교사상이 그것이며, 조선 후기 기층 민중을 중심으로 새로운 종교적 각성으로 일어난 신종교 또한 해 당된다고 보았다.(이경원, 󰡔한국의 종교사상󰡕, 문사철, 2010, 23-27쪽 참조) 6) 류병덕,

개화기

일제기의 민중종교사상에 관한 연구

」, 󰡔철학사상의 제문

제󰡕, 한국정신문화연구원, 1985; 김상일, 󰡔한사상󰡕, 온누리, 1986; 이을호 외,

󰡔한사상과 민족종교󰡕, 일지사, 1990; 김상일 외, 󰡔한사상의 이론과 실제󰡕, 지 식산업사, 1990; 최민홍, 󰡔한철학사󰡕, 성문사, 1997.

(5)

상사적 의미와 특징을 검증하고, 그것이 외우내환의 시대적 난관을 극복하는 데 일익을 담당하였다고 보았다. 하지만 이러한 일련의 연 구는 민족정신의 예찬과 피상적 연결 짓기의 경향이 없지 않다. 둘째 는 각 경전의 용어를 중심으로 한국 신종교에 나타난 도교적 요소를 추출하였다.7) 다양한 시도가 진행되어 신종교에 수용된 도교적 면모 를 충분히 드러내었다. 그렇지만 한국 선도와 중국 도교와의 미묘한 차이를 사전적으로 규명하지 않고 시도되었다. 그 결과 추출한 내용 이 신종교의 이면에 스며있는 문화원형으로서의 한국 선도인지,8) 니면 중국 도교의 수용 양상인지가 명확하지 않아 다소의 모호함이 남는다.

이상의 연구 성과에 기초하여 한국 신종교의 사상적 동력으로 기 능한 선도와의 관련성을 규명하고, 선도의 근대적 재현을 밝히는 데 주안점을 두고 전개하고자 한다. 이에 장에서는 인간존중의 정신, 재세이화의 이념, 포함삼교의 문화라는 세 가지 축으로 한국 선도의 특징을 규명하고자 한다. 이러한 분석을 토대로 Ⅲ장에서 한국 신종 교 가운데 최수운, 강증산, 소태산을 중심으로 Ⅱ장에서 살펴본 한국 선도의 특징이 수용된 양상과 재해석된 면모를 조명하기로 한다. 이 같은 시도는 신종교에 수용된 문화 이해와 해석에 있어 표층의 관찰

7) 신일철,

동학사상의 도교적 성격문제

」, 󰡔한국사상󰡕 20, 한국사상연구회,

1985; 김용휘,

동학에 나타난 도교적 요소

」, 󰡔도교문화연구󰡕 24, 한국도교문

화학회, 2006; 김홍철,

「한국신종교에 나타난 도교사상」, 󰡔도교사상의 한국적

전개󰡕, 한국도교사상연구회, 1989; 김탁,

「한국종교사에서의 도교와 증산교

의 만남

」, 󰡔도교의 한국적 수용과 전이󰡕, 한국도교사상연구회, 1994; 김낙필,

초기교단의 도교사상 수용

」, 󰡔원불교사상󰡕 10ㆍ11, 1987; 박병수, 「

원불교사 상에 나타난 도교사상의 유형

」, 󰡔원불교사상󰡕 20, 1996; 고시용, 「

원불교 교 리형성과 도교사상

」, 󰡔도교문화연구󰡕 24, 한국도교문화학회, 2006.

8) 이에 대한 연구는 민영현에 의해 시도된 다수의 연구 성과가 있다.

「동학과

, 그 인간관과 생명사상에 관하여」, 󰡔동학학보󰡕 9, 동학학회, 2005; 「한국 선의 생명사상과 그 철학적 인간학

」, 󰡔대동철학󰡕 30, 대동철학회, 2005; 「

국 선과 증산사상의 특징 및 그 도교성에 대해

」, 󰡔도교문화연구󰡕 26, 한국도

교문화학회, 2007.

(6)

이 아닌 기층의 이해에 접근하게 하여, 한민족의 고유한 원형이 한국 사상사를 통시적으로 관류하고 있다는 사실을 음미하게 할 것으로 기대한다.

. 한국 선도의 특징

한국에 유불도 삼교(三敎)가 소개된 것은 삼국시대 이후이다. 따라 서 한국의 고유사상은 삼국시대 이전에 순수한 원형으로 존재하였을 것이며, 최치원이 「난랑비서(鸞郞碑序)」에서 언급한 현묘지도(玄妙之 道)로서 이른바 풍류(風流)를 통해 그 실재를 확인할 수 있다.9) 그는 그 가르침이 선사(仙史)에 집약되어 있으며, 또한 그것이 삼교의 요 지를 포괄한다고 하였다. 따라서 한국 선도의 존재여부에 대해서는 이견은 없다. 하지만 그 구체적인 내용은 선명하게 파악되지 않고 있 다.10) 이에 그간의 연구 성과를 기초로 하여 단군신화와 난랑비서 의 편린을 통해 한국 선도의 특징에 접근하기로 한다.

1. 인간존중의 정신

서양의 전통적 유신론에서 다루는 신은 초월적이며 전지전능하고 자존(自存)한다는 데서 그 특징을 찾을 수 있다. 하지만 이러한 전통 은 신과 인간을 주객의 이분법으로 단절하기 때문에 신은 지고의 존 재로 추앙되고 인간은 신이 지니는 강압성과 그 지배적인 성격으로

9) 󰡔三國史記󰡕

卷4 「新羅本紀」 眞興王三十七年條.

10) 이승호는 고유사상을 탐구하는 작업이 난해할 수밖에 없는 배경을 선도 경 전의 희귀성과 위서논쟁, 유불도에 편향된 연구 풍토, 무속으로 간주하는 경 향, 중국 도교와의 혼효(混淆), 쇼비니즘(chauvinism)으로 치부되는 경향을 들 고 있다.(이승호, 앞의 논문, 4쪽 참조)

(7)

말미암아 자유를 잃어버리게 된다. 현대 서양의 종교철학에서 논의 되는 신의 죽음이나 신의 부재, 신의 초월과 같은 문제는 모두 신과 인간을 주객의 이분법으로 구분한 유신론 전통이 야기한 결과라고 할 수 있다.11)

이와는 대조적으로 동양에서는 일찍이 신을 배타적이며 초월적인 면에서 바라보지 않고 항상 현실 세계 안에서 인식하였다. 신은 인간 과 상합관계를 이루고 있으면서 현실의 주체는 언제나 인간에게 놓 여 있었다. 따라서 오늘날 종교적 과제로 대두되는 신관념의 새로운 모색과 보완에 있어서 그 대안으로 동양사상에 초점이 맞추어지고 있으며, 특히 한국 선도에 나타난 인간존중의 정신은 이와 관련하여 새로운 지평을 제시한다.

한국 선도의 인간존중 정신은 한민족의 고유한 문화원형이 투사되 어 있는 단군신화를 통해 그 사유의 단초를 엿볼 수 있다. 단군신화는 비교적 단순한 줄거리를 통해 정리된다. 첫째는 환웅의 하강, 둘째는 웅녀와의 결합, 셋째는 단군의 즉위로 나눌 수 있다. 이러한 서사구조 는 기록된 문헌에 따라 다소의 차이를 보이고 있다. 하지만 특징적인 것은 단군신화가 단지 신들의 이야기만을 주축으로 이루어지는 것이 아니라, 명확히 인간 세상을 중심으로 전개되고 있는 점이다.12)

환웅의 하강은 기본적으로 그가 인간 세상을 탐하였기 때문에 시 작되었다. 이는 관점을 달리하면 인간 세상은 이미 나름의 질서 속에 유지되고 있었음을 의미하며, 인간 세상을 신들이 지배하는 수직적 이거나 강압적인 신중심의 가치관이 아닌 인간 본위의 가치관이 그 이면에 담겨있는 것이다. 또한 단군은 하늘을 상징하는 환웅과 땅을 상징하는 웅녀의 사이에서 탄생하였다. 그 결과 그는 신과 인간을 교

11) 김하태,

「현대 서양종교철학에 있어서 신관의 탈 서양화」, 󰡔동방사상논고󰡕,

종로서적, 1983, 868쪽 참조.

12) 박범석,

단군신화 상징의 종교학적 해석

」, 󰡔선도문화󰡕 1, 국학연구원, 2006,

245-246쪽 참조.

(8)

량하고, 하늘과 땅의 두 요소를 동시에 간직한 신인(神人)으로서의 위격을 지닌다. 이는 인간의 온전성 및 존재의 조화와 원융이라는 특 성을 확보하면서 새롭고도 보편적인 인간이해를 가능하게 하였다.

이처럼 단군신화는 신본주의(神本主義)나 인본주의(人本主義)의 일변 도로 설명되지 않는 신인상화(神人相和)의 특성을 담지한 한국적 인 간관의 참모습을 역설하고 있다.13)

단군신화에 의해 완성된 신인상화의 구도는 더 나아가 신인상화의 경지를 이상으로 삼아 그 실현을 궁극적으로 지향하게 한다. 한민족 이 단군의 위격을 신인으로 상정하고, 그를 시조이자 국조로 이해한 것은 한민족 스스로를 신과 인간의 결합체라는 자기 정체성으로 확 립된다.14) 이러한 규정은 신선이 숭배의 대상 혹은 요원한 존재가 아 닌 삶의 현실에서 인간에 의해 획득 가능한 존재라는 사유로 어어 진다. 󰡔삼일신고󰡕에서 읽을 수 있는 성선(成仙)과 관련한 논리적 근 거와 체계적인 방법들은 이 같은 사유를 대변한다고 볼 수 있다.

신훈에서는 사람이 절대적인 존재인 신을 인식할 수 있게 되는 근거를 뇌 속에 강재이뇌(降在爾腦)한 신이 이미 존재하고 있기 때문 이라고 밝히고 있다.15) 강재이뇌를 통해 신은 초월적으로 외재한 타자 화된 신이 아니라 선험적으로 내재해 있으며 수행을 통해 체험적으로 인식이 가능한 존재가 된다. 신이 이미 인간의 뇌에 내려와 있다는 것 은 바로 신으로부터 신의 속성을 부여 받았음을 의미한다.16)

이에 근거하여 진리훈에서는 삼진(三眞; 性ㆍ命ㆍ精)을 받은 완전 한 존재인 인간이 완성의 길에 이르지 못한 이유를 삼망(三妄; 心ㆍ氣 13) 류승국, 󰡔한국사상의 연원과 역사적 전망󰡕, 성균관대학교 출판부, 2009,

581-585쪽 참조.

14) 민영현,

「한국 정신문화의 기원과 단군, 그리고 선의 사상」, 󰡔단군학연구󰡕

10, 단군학회, 2004, 104쪽 참조.

15) 󰡔三一神誥󰡕,

「神訓」, “聲氣願禱 絶親見 自性求子 降在爾腦”

16) 이승호,

한국선도의 기원과 전승

홍익인간사상과 신인합일사상을 중심으 로」, 󰡔도교문화연구󰡕 23, 2004, 145쪽; 이승호, 앞의 논문, 150-151쪽 참조.

(9)

ㆍ身)과 삼도(三途; 感ㆍ息ㆍ觸)에 빠졌기 때문으로 설명한다.17) 하지 만 삼수행(三修行; 止感ㆍ調息ㆍ禁觸)을 제시해 삼망에서 삼진으로 나아가 근본상태로 다시 돌아갈 수 있음을 주장한다.18) 궁극적으로 회복해야 할 목표인 삼진은 선도의 오랜 역사에서 다양하게 표현되 었다. ‘一’을 인격화 한 것이 ‘하나님’이라면 ‘三’을 인격화 한 것은 ‘삼 신(三神)’19)이며, 이 삼신은 삼진에 다름 아니라고 보고 있다. 따라서 삼수행을 통해 내면의 삼진을 회복한다는 것은 자신 속의 하느님을 회복함을 의미한다.20) 󰡔삼일신고󰡕에서는 이를 구체적으로 ‘성통(性 通)’이라고 표현한다.

한국 선도는 모든 인간이 신과 같은 고귀한 존재임을 천명하였다.

신이 인간 안에 신성으로 내재해 있으며, 주객의 분열과 주종으로서 가 아니라 상호합일의 사상적 구조를 열어 놓았다. 이러한 인간존중 의 정신은 전형적인 한국적 사유의 중추를 형성하게 된다. 신라의 화 랑이 영육쌍전(靈肉雙全)을 추구한 것이 그것이며, 고려의 도승들이 인간주체의 자각을 강조하고, 조선조 성리학이 인간주체의 각성에 학문적 본령을 두었던 것은 모두 인간을 가치실현의 주체로 본 한국 선도의 원형적 사고가 일관되게 투영되었던 것이다.21) 한국 신종교 또한 최수운이 제창한 ‘지상신선(地上神仙)’을 비롯하여, 그의 뒤를 이은 최시형의 ‘사인여천(事人如天)’과 손병희의 ‘인내천(人乃天)’, 그 리고 강증산의 ‘인존(人尊)’과 소태산의 ‘처처불상(處處佛像)’ 등은 모 두 인간이 참으로 소중한 존재임을 일깨우고 있다.

17) 󰡔三一神誥󰡕,

「眞理訓」, “衆 善惡淸濁厚薄 相雜 從境途任走 墮生長消病歿苦 哲 止感調息禁觸 一意化行 返妄卽眞 發大神機 性通功完 是”

18) 이승호, 앞의 글, 146-147쪽 참조.

19) 󰡔桓檀古記󰡕,

「太白逸事」, 三神五帝本紀, “自上界 却有三神 卽一上帝 主體則 爲一神 非各有神也 作用卽三神也”

20) 정경희,

한국선도의 수행법과 제천의례

」, 󰡔도교문화연구󰡕 21, 한국도교문화

학회, 2004, 62-63쪽 참조.

21) 류승국, 앞의 책, 530-531쪽 참조.

(10)

2. 재세이화(在世理化)의 이념

풍요한 시대가 오면 편리하고 행복한 삶이 약속될 것이라는 인류 의 막연한 믿음과 욕구는 물질만능주의를 다른 모든 가치에 우선하 게 하였다. 과학기술의 발달과 산업화는 이러한 인간의 욕망과 결부 되어 현대인을 역사상 가장 찬란한 시대에 물질적 풍요를 누리며 살 게 하였다. 하지만 끝없는 인간의 탐욕은 삶의 질을 급속도로 향상시 킨 반면 자연 파괴라는 인재를 가져왔으며, 이는 다시 인간 존재 자 체를 위협하는 결과를 낳고 있다.

주지하듯이 이러한 악순환의 고리는 자연을 단순한 기계적 결합으 로 보는 서양 근대의 세계관과 그로 인해 부여된 인간의 특별한 지위 에서 시작하였다. 이를테면 기계론적 세계관은 인간으로 하여금 자연 을 지배하고 통제할 수 있다는 자연의 지배자 혹은 조작자로서의 지 위를 부여하였으며, 자연을 단지 착취의 대상으로 간주하는 결과를 낳은 것이다. 사태의 심각성이 구체적으로 인식됨에 따라 이를 근본 적으로 해결하기 위한 성찰과 새로운 패러다임이 모색되고 있다.

단군신화에서 보이는 세계관은 대결과 갈등을 통해 자연을 정복하 고 그것을 합리화하는 것이 아니라 자연과 동반하는 공존의 덕을 강 조하고 있다. 천상세계와 지상세계, 신과 인간, 초월적인 것과 현실적 인 것을 단절적으로 이해하지 않고 포괄적이며 상호의존적인 단일체 로 파악하는 사유방식을 견지한다. 이 같은 인식의 방법은 만물의 차 별성과 다양성이 시공을 초월하여 융합되는 ‘큰 하나’의 자리를 항상 상정하고 있다는 점에서 ‘한사상’으로도 불리며, 대립적 세계를 거부 한다는 점에서 불이적(不二的) 인식론이라 표현되기도 한다.22) 한국 선도의 큰 하나 됨의 사유는 현대사회가 안고 있는 기계론적 사유를

22) 정영훈,

단군신화의 정치사상

」, 󰡔동양정치사상사󰡕 8-2, 한국동양정치사상사

학회, 2009, 13쪽 참조.

(11)

전환하는 분명한 시각을 제공한다.

한국 선도의 목적의식은 단군신화를 통해 ‘신시(神市)’의 건설에 있 음을 짐작할 수 있다. 신시는 환웅이 인간세상을 탐하여(貪求人世) 하 늘로부터 내려와 건설한 곳이며, 단군이 홍익인간의 이상을 펴고자 하여 조선이라는 나라를 세운 도읍지이다. 곧 신시란 하늘과 땅의 만 남으로 열린 터전이면서 하늘의 뜻이 이 땅 위에 펼치진 시발처이다.

신시의 이상은 이 세상에서 저 세상으로 탈출하려 하는 출세간주 의가 아니다. 철저히 이 세상으로 들어오는 사상이다. 한국 선도에서 는 지혜와 덕을 갖춘 위대한 선인(仙人)들이 나와서 나라를 다스리고 백성을 교화하는 데 힘쓰기를 추구한다. 이에 선인은 현실 도피적 은 둔자가 아닌, 그들이 터득한 생명철학으로 인간을 바르게 인도하고 자 하는 서원을 가진 존재라고 할 수 있다.23)

이러한 내용은 중국 도교와 대별되는 특징으로 주목된다. 한국 선 도는 수행을 통해 신인합일에 이른 자가 자신만을 위한 신선술에 머 물지 않고 적극적으로 사회 교화를 실천하고자 한 점이라고 할 수 있 다.24) 󰡔삼일신고󰡕에서는 이를 ‘공완(功完)’이라고 표현한다. 물론 중국 도교에서도 사회 참여적 면모가 전혀 없다고는 할 수 없다.25) 그러나 어디까지나 개인적 차원인 도덕률의 실천과 선행이 득선(得仙)의 필

23) 최삼룡,

선인 설화로 본 한국 고유의 선가에 대한 연구

」, 󰡔도교와 한국사상󰡕,

한국도교사상연구회, 1987, 373-374쪽 참조.

24) 이근철,

「삼일신고에 나타난 한국 선도의 수행법」, 󰡔도교문화연구󰡕 33, 한국

도교문화학회, 2010, 87쪽 참조.

25) 정재서는 신선이 그 초월자적 성격으로 인하여 흔히 사회와는 유리된 존재 로 인식되어 왔으나, 󰡔열선전󰡕 및 󰡔신선전󰡕의 내용을 파악해 보면 그들이 권위주의 역사의 침탈에 대해 비판적이고 저항적인 면모가 있음을 지적하였 다. 아울러 그들이 민중을 위한 치병, 시여(施輿), 의례 등의 방법을 동원하 여 민중의 고난을 해결하고자 노력한 흔적들을 볼 때 단순히 신선을 배타적 자애주의(自愛主義)의 소산으로서만 파악하려는 종래 일부의 시각은 더 검 토가 되어야 할 것으로 제안하였다.(정재서,

신선과 사회

」, 󰡔도교와 한국문

화󰡕, 한국도교사상연구회, 1988, 415-416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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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조건으로 인식됨에 따른 것이었으며, 사회 전체의 개혁을 위한 적 극적 실천운동의 차원은 부족한 편이다. 더욱이 춘추전국시대라는 난 세와 유가(儒家)에 대립하는 세태 속에서 초연한 자세로 생을 영위하 려는 처세철학으로서의 성격을 강하게 띤 것이 사실이다.26)

󰡔삼일신고󰡕에서는 성통(性通)을 체득한 존재가 전 인류를 널리 구 제할 수 있는 이유를 삼원(三元)사상으로 설명하고 있다. 삼원사상은 인간을 포함한 모든 존재를 하나(一)로 보되 이것이 성ㆍ정(천ㆍ 인) 삼원의 차원을 갖고 있어서 우주의 생성과 소멸이 구조적으 로 삼원의 원리 속에서 이루어진다는 것을 의미한다.27) 한국선도에 서는 개체와 전체의 문제를 같은 것으로 보고 있는데, 이는 개체의 삼원이 전체의 삼원과 같기 때문에 성립할 수 있는 논리이다. 선도가 인간뿐 아니라 전체 인류의 삼진 회복까지 함께 도모할 수 있는 것 은 바로 이 때문이다. 개체의 삼진과 전체의 삼진이 같으므로, 개체 의 삼진 회복은 전체의 삼진 회복에 기여하는 것이 된다. 이것이 개 인의 삼진 회복(성통)을 인류 차원으로 확대(공완)하는 성통공완사상 이요, 재세이화의 정신이다.28) 말하자면, 삼수행을 통해 성통이라는 깨달음을 얻은 존재가 소아적(小我的) 가치 속에 머무르는 것이 아닌 대아적(大我的)적 삶인 공완으로 승화시키는 것이 바로 한국 선도의 경세(經世)이념이라고 할 수 있다.

신라시대 불국사의 건설과 조광조의 태화지역(泰和之域), 이황의 인수지역(仁壽之域), 이이의 대동세계(大同世界)에 대한 희구는 모두 홍익하는 현실 공동체의 완성을 염원하였던 것이다. 이는 현실을 부

26) 최삼룡은 중국에 있어서 상대(上代)의 성군이나 재상을 선인(仙人)으로 호칭 하고 있는 점으로 보아, 황제의 도 역시 백성을 다스리고, 인간의 삶을 보다 향상시키려는 뜻을 지녔을 것으로 보이지만, 노자 이후 장자로 이어지는 후 세의 도선가(道仙家)는 소극적이고 은둔적이며 현실 도피적 정신의 방향으 로 흐른 바가 적지 않다고 보았다.(최삼룡, 앞의 글, 380쪽)

27) 정경희, 앞의 글, 44-45쪽 참조.

28) 위의 글, 53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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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하고 천국을 따로 건설하는 것이 아니라, 현실 그 자체에서 이상이 현실이 되도록 하는 것이 그 특징이다. 한국 신종교에서 공유하는 현 세중심적 가치관 또한 시공간을 초월한 요원한 공간이 아니라, 지상 이라는 현실에 위치한 현실적 낙원이라는 특징을 지니고 있다. 최수 운의 ‘지상천국’, 강증산의 ‘후천선경’, 소태산의 ‘용화회상(龍華會上)’은 그 시대의 사회구조를 넘어서 우주적 문제를 향한 통시적이고 보편적 인 이념을 추구한다는 점에서 한국 선도의 재세이화를 표방한다.

3. 포함삼교(包含三敎)의 문화

종교는 절대적 신념체계로서 그 시대의 규범적 가치를 창조하고 주도하는 문화의 원동력이라 할 수 있다. 나아가 보편적 윤리 및 철 학체계에 의해서 병든 사회를 치유하며 다가올 미래의 올바른 방향 성을 제시한다. 하지만 종교는 자기 신념체계의 외적 요인과 대응했 을 때, 그것이 무엇이든 상대의 가치관을 인정하지 않으려는 성향을 보인다. 그 결과 다양한 종교들이 서로 접촉하는 경우에 종교는 평화 를 지향하는 힘이 아닌 갈등의 원천이 되기도 하였다. 서로 다른 종 교와 문화가 어떠한 방법으로 타자를 위해 공간을 내줄 수 있는가의 문제는 현시점에서 시급한 선결과제로 대두되고 있다.29) 이와 관련 하여 한국의 종교 상황은 종교의 진로를 모색하는 데 중요한 시사점 을 제공해 준다.

현재 한국의 사회ㆍ문화 현실을 특징짓는 가장 대표적인 요인은 종 교 다원화 현상이라고 할 수 있다. 유교, 불교, 기독교와 같은 이른바 세계종교들과 19세기 이후 동학을 위시하여 발흥한 신종교까지 무수 한 종교들이 공존하고 있는 것이다. 이것은 현재 한국 사회만이 안고 29) Jonathan Sacks, 임재석 역, 󰡔차이의 존중-문명의 충돌을 넘어서󰡕, 말글빛냄,

2007, 6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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있는 문화정황으로 그 유례를 찾아 볼 수 없는 독특한 현상으로 평가 된다. 물론 종교의 배타적 성격으로 야기될 수 있는 잠재적 위험에 노 출되어 있는 것도 사실이다.30) 하지만 관점을 달리하면 종교의 다원 적 상황은 우리 사회가 폐쇄되지 않고 오히려 개방되어 있으며, 여러 종교에 대한 관용성을 갖고 있음을 시사한다. 곧 한국인은 여러 종교 에 동시적으로 친화력을 갖는 태도를 지니고 있는 것이다.31)

이에 대한 이유를 한국의 문화나 한국인들의 종교적 심성이 본원 적으로 분열이나 개성보다는 원융과 회통을 지향하고 있음을 지적한 다. 삼국시대 국가의 왕권강화 차원에서 삼교가 수용되었을 때를 보 더라도 큰 충돌과 대립 없이 진행된 수용의 양상은 배타와 차별이 아닌 다양한 문화를 역동적으로 포용하고 조화하는 특질을 보유하고 있음을 증언한다. 즉 한민족 문화의 기층에는 종교들 간의 분열과 대 립을 조화하는 포함삼교의 문화적 특성이 선험적으로 내재해 있다고 할 수 있다.

다양한 종교를 접목할 수 있는 가능성이 전통적으로 내재해 있다 는 사실과 원리를 논리적으로 천명하고자 시도한 인물이 바로 최치 원(崔致遠)이다. 그는 난랑비서32)에서 당시 동아시아 문화의 정수 였던 유불도 삼교와의 직접적인 대비를 통해, 한국 선도로서 ‘풍류 (風流)’를 밝히고, 그 특징을 ‘포함삼교’를 통해 드러내었다. 현묘지도

30) 한국은 아직까지 극단적인 종교 분쟁을 경험하지 않았다. 그러나 급속도로 진 행되고 있는 다문화사회로의 진입과 다문화가정의 형성은 이전과는 다른 종교 적 갈등을 증폭시킬 수 있어 새로운 국면을 맞이하고 있다. 더욱이 이주민에 대 한 발전적인 정책방안이 수립되고 있는 것과는 달리 다문화사회의 종교 정책과 관련해서는 정부의 불개입 혹은 불간섭원칙을 고수하여 종교간 균형과 공존에 대한 배려라기보다는 언제든지 폭발할 수 있는 개연성을 부추기고 있다. 31) 윤이흠, 앞의 책, 211-213쪽 참조.

32) 󰡔三國史記󰡕

卷4 「新羅本紀」 眞興王 37年條, “崔致遠鸞郞碑序曰 國有玄妙之

道 曰風流 設敎之源 備詳仙史 實乃包含三敎 接化群生 且如入則孝於家 出則

忠於國 魯司寇之旨也 處無爲之事 行不言之敎 周柱史之宗也 諸惡莫作 諸善

奉行 竺乾太子之化也”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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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玄妙之道)로서 풍류가 있었다는 최치원의 언명은 신라에 예로부터 전해지던 선도의 정통과 문화가 계승되고 있음을 명백히 한 것이다.

나아가 풍류에 본래부터 삼교의 정신을 모두 포함할 수 있는 이치가 담겨 있음을 설명하여 한국 선도의 사상적 폭과 포용력을 역설하였 . 최치원의 이 같은 시도는 포함삼교의 문화가 반복 재현될 수 있 었던 종교적 심성이 한국 선도의 한 측면으로 자리하고 있음을 밝혔 다는 데 의의가 있다.

최치원을 비롯하여 김시습이 삼교의 융화를 지향하였고, 휴정은 󰡔삼 가귀감(三家龜鑑)󰡕을 저술해 상이하게 이해되었던 삼교의 공통분모를 모색한 것은 어떠한 종파나 이질적인 사상체계도 받아들일 수 있는 종 교적 심성이 면면히 계승되고 있음을 증언한다. 아울러 원효의 원융회 통(圓融會通), 의천의 선교합일(禪敎合一), 지눌의 정혜쌍수(定慧雙修), 율곡의 이기지묘(理氣之妙) 등은 서로 상반된 상대를 부정하지 않고 긍 정하면서 화합과 평화를 지향한 선각자들의 노력을 가늠하게 한다.

한국 신종교의 개창자들 또한 통합적 종교관을 기반으로 삼교의 정 수를 용해하여 자신들의 이념을 표방하는 새로운 가치관을 세웠다.

최수운은 “오도(吾道)는 원래 유(儒)도 아니며 불(佛)도 아니며 선(仙) 도 아니니라. 오도는 유, 불, 선 삼합(三合)이니라”33)고 하여 삼교를 모두 중시하였다. 강증산은 민족들의 제각기 문화의 정수를 걷어 후 천에 이룩할 문명의 기초를 정하였으며,34) 소태산 또한 삼교가 각각 그 분야만의 교화를 주로 하여 왔지마는, 앞으로는 그 일부만 가지고 는 널리 세상을 구원하지 못할 것이므로 모든 교리를 통합하여야 함 을 역설하였다.35) 이는 포함삼교의 문화를 바탕으로 상생지도(相生之 道)의 세계를 구축하고자 한 개창자들의 의지를 말해준다.

33) 이돈화, 󰡔천도교창건사󰡕 제1편, 천도교중앙종리원, 1933, 47쪽.

34) 󰡔전경󰡕,

교법

」 3장 23절

35) 󰡔원불교 교전󰡕,

「대종경」 제2 교의품 1장, 111-112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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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한국 신종교의 선도사상

한국 신종교는 병든 사회를 치유하고 미래대망이라는 민중의 열망 을 충족시켜 주면서 역사의 전면에 등장하였다. 당시 신종교의 수효 는 정확히 짐작할 수 없을 정도였으며, 신자수 또한 상당할 것으로 추산하고 있다. 신종교의 강한 생명력과 전파력은 우선 민중의 아픔 을 절감하고 시대문제를 타개하고자 한 신종교 개창자들의 고뇌가 종교적 형태로 응결되었기에 가능하였다. 하지만 그 이면에는 조선 조 후기에 발생한 사고유형이 아닌 민족 정신사를 통시적으로 관류 한 사상적 흐름을 공유하고 있다. 이러한 관점을 견지하여 한국 신종 교에 갊아 있는 선도사상을 조명하기로 한다.

1. 수운의 선도사상

수운(水雲) 최제우(崔濟愚, 1824~1864)는 몰락한 양반의 아들로 당 시 조선사회의 소외계층이었던 서자로 출생한다. 그는 영민했던 천 성과 뛰어난 재주로 유학을 두루 섭렵했으며, 시대적 고난을 걱정하 고 나아가 적극적으로 개선하고자 하였다. 그러나 자신의 신분적 한 계로 인한 차별과 지배 이데올로기로서의 유학에 대한 회의는 종교 적 갈망으로 연결되었다. 결국 그는 당시 사회가 안고 있었던 여러 모순과 불합리를 해결하고자 명산대천을 유력하며 구도생활에 매진 하게 된다.

수운의 구도활동은 을묘년인 1855년 초봄 처가 동네인 울산 유곡 동에 있는 어느 초당에서 이인(異人)으로부터 천서를 받는다는, 을묘 천서(乙卯天書)의 사건을 통해 전환을 맞게 된다. 수운은 을묘천서의 경험을 겪은 이후, 세상을 떠돌며 했던 구도 행위를 멈추고 천성산 적멸굴이나 내원암 등지에서 수련을 하며 도를 구하게 된다. 이는 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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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 방식의 변화를 뜻한다. 그는 세상으로부터 도를 얻고자 했던 방식 을 버리고 기도를 통해 한울님이라는 궁극적 실재로부터 도를 얻고 자 한 것이다. 즉 을묘천서 이전까지는 무신론의 입장에서 가르침을 얻고자 했다면, 이후부터는 유신론의 입장에서 신으로부터 도를 받 고자 했던 것이다.36)

이러한 노정 끝에 1860년 4월 5일에 수운은 독특한 종교체험을 바 탕으로 동학을 창도하였다. 수운의 체험은 이성에 의한 지각을 넘어 선 최고 주재자로부터의 계시의 성격을 지니며, 이 계시를 근간으로 수운의 종교 활동은 전개되어 나간다. 여기서 주목되는 것은 수운이 파악한 신적 존재에 관한 것이다. 󰡔용담유사󰡕에서는 그 존재를 ‘한울 님’으로 언급하고 있다.37) 수운이 체험한 한울님은 당시의 성리학적 천과는 다른 특성을 보여주고 있다. 인간의 행동을 규제해 나가는 이 법천(理法天)이 아니라 인간 앞에 나타나 자신을 설명하고 구체적인 명령을 내리는 인격성이 부각된다. 또한 천지자연의 섭리를 담당하 는 조화주(造化主)이자,38) 인간의 생사와 화복을 주관하는 전능자(全 能者)의 속성을 지닌다.39)

수운은 한울님의 계시를 통해 천명과 천리에 부합하지 못하는 지 금까지 인류의 삶을 청산하고 ‘다시개벽’40)의 대전환을 통해 후천이

36) 윤석산,

동학의 개벽 사상 연구

」, 󰡔한국언어문화󰡕 42, 한국언어문화학회,

2010, 338-339쪽 참조.

37) 󰡔龍潭遺詞󰡕,

「龍潭歌」

38) 󰡔東經大全󰡕,

「布德文」, “盖自上古以來 春秋迭代 四時盛衰 不遷不易 是亦天 主造化之迹 昭然于天下也”

󰡔

東經大全

󰡕,

「論學文」, “四時盛衰 風露霜雪 不失其時 不變其序 如露蒼生 莫 知其端 或云天主之恩 或云化工之迹 然而以恩言之 惟爲不見之事 以工言之 亦爲難狀之言 何者 於古及今 其中未必者也”

39) 󰡔龍潭遺詞󰡕,

「安心歌」, “대저 생령(生靈) 초목군생 사생재천(死生在天) 아닐

런가 나도또한 한울님께 명복받아 출세하니

한울님께 명복받아 부귀자는 공경이오 빈천자는 백성이라”

40) 󰡔龍潭遺詞󰡕,

「安心歌」; 「夢中老少問答歌」, “십이제국(十二諸國) 괴질운수(怪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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라는 새로운 세상이 열릴 것을 선언하였다. 이것은 민중들로 하여금

‘다시개벽’이라는 시운적(時運的) 도래의 이해를 촉구하고 그 불가피 성을 알린 것이다. 하지만 그렇다고 해서 개벽을 좌시한 채 인간의 역할이 전면 배제된 것은 아니다. 수운은 개벽의 시점에서 우주적 차 원의 변화에 상응할 수 있는 사람들의 주체적인 노력을 통해 군자의 덕을 함양하는 것이 개벽의 과정에서 할 수 있는 인간의 역할이며 말세를 극복하는 첫걸음으로 보았기 때문이다.41) 수운은 그 단서를

‘시천주(侍天主)’42)에서 찾고 있다.43)

인간에 대해 수운은 삼계를 두루 관통하고 활연대오(豁然大悟)할 수 있는 종합적인 존재로 보았다. 그는 사람들이 품부(稟賦) 받은 신 령한 영과 기운을 망각하고 살아가지만 종교적인 수행을 통하여 이 상실했던 것을 회복하면, 사람들은 비로소 자신이 본원적으로 한울 님을 모실 수 있다는 시천주를 깨닫게 된다고 보았다. 즉 내유신령 (內有神靈)을 통해 한울님과 하나가 되어 있음을 자각하고, 외유기화 (外有氣化)로 한울님과 같은 기운으로 연결되어 있음을 인식한 순간 자신이 단순한 개체가 아니라, 우주의 커다란 생명체임을 깨닫게 된 다. 이러한 수운의 시천주 사상은 당시의 시대적 배경을 감안할 때 혁명적 인간이해를 가능하게 하였다. 모든 사람이 한울님을 모신다 는 자각은 만연되어 있던 신분 차별적 인간이해에 근본적인 변화를

疾運數) 다시개벽(開闢) 아닐런가”

41) 󰡔東經大全󰡕,

「論學文」, “君子之德 氣有正而心有定故 與天地合其德 小人之德 氣不正而心有移故 與天地違其命 此非盛衰之理耶”

42) 시천주란 무궁한 존재인 한울님을 내 안에 모셨으므로, 궁극적으로 무한한 우주와 더불어 ‘무궁한 나’가 됨을 의미한다. 즉 무궁한 존재인 한울님을 내 안에 모시고 있기(侍天主) 때문에 그 인간 존재 역시 무궁하다는 것이다.(윤 석산,

「동학의 종교사상가 실천운동, 그 상관관계와 의미」, 󰡔한국언어문화󰡕

33, 한국언어문화학회, 2007, 161쪽)

43) 나권수,

대순진리회의 정신개벽론 연구

」, 󰡔신종교연구󰡕 25, 한국신종교학

회, 2011, 204-205쪽.

(19)

일으켰으며, 신분질서와 계급을 벗어나서 모두가 대등하고 상호 배 려하는 인간존중의 정신을 일깨워 주었다.

수운은 시천주를 통해 거듭난 존재를 ‘군자’ 또는 ‘지상신선(地上神 仙)’이라고 이름 지었으며,44) 이를 이루기 위한 구체적인 수도의 요 체로서 수심정기(守心正氣)를 제시하였다. ‘수심’이 성리학적 마음공 부를 가리킨다면, ‘정기’는 선도적인 기운공부에 해당한다고 할 수 있 다. 그는 마음뿐만 아니라 기운을 다스려서 심화기화(心和氣和)의 화 평한 상태에 이르러 자발적인 실천이 가능하도록 하였다. 또한 간이 (簡易)한 주문 수련법을 통해 일부 지식층만의 전유물이 아닌 누구나 수심정기가 되고 성품을 깨달을 수 있도록 하였다.45) 즉 마음공부와 기운공부를 병행하고 보다 실천적이고 원만한 수련법을 제시함으로 써 세상의 모든 사람이 무궁한 한울님의 덕을 체득한 지상신선이 될 수 있는 가능성을 열어 놓았으며, 반상의 구분이나 귀천의 구별이 없 는 인간의 주체성을 확립하였다.

절망적인 시대상황을 목도한 수운은 시운에 따라 말세적 현실이 개벽되고 도성덕립의 이상적 새 시대가 오리라는 종교적 신념을 가 지고 있었다. 그는 앞으로 올 좋은 세상을 󰡔동경대전󰡕의 결(訣)」 서 ‘봄’ 또는 ‘봄소식’을 통해 은유적으로 표현하였다. 이는 엄동의 겨 울을 보내고 이내 다가올 ‘봄’이라는 상징적 용어로 후천을 묘사한 것이다.46) 하지만 그 구체적인 묘사에 있어서는 현실과 괴리된 요원 한 선계가 아닌, 이상적 낙원이 바로 이 지상에 건설될 것을 천명하 였다.47) 이를테면 그는 다른 시공간에 자리한 낙원이 아닌, 지상신선

44) 󰡔龍潭遺詞󰡕,

「敎訓歌」

45) 김용휘,

「한국선도와 신종교의 수련」, 󰡔도교문화연구󰡕 34, 한국도교문화연구

회, 2011, 75-82쪽 참조.

46) 󰡔東經大全󰡕,

「訣」

47) 윤석산,

용담유사에 나타난 낙원사상 연구

」, 󰡔동아시아문화연구󰡕 8, 한양대

학교 한국학연구소, 1985, 200-202쪽 참조.

(20)

에 의해 만인이 공유하는 낙원을 바로 이 땅에 이룩하고자 하였다.

이는 한국 선도에서 지향한 재세이화의 경세이념과 다름 아니다.

새로운 하늘과 땅, 그리고 새로운 사람으로 개벽할 자신의 가르침 을 수운은 천도(天道)라는 명칭으로 설명하였다.48) 또한 그 교리적 가치를 만고(萬古) 없는 무극대도(無極大道)49)로서 지금도 옛날에도 듣지 못한 전혀 새로운 가르침이라고 표명하였다. 이러한 주장의 이 면에는 개벽의 새시대에는 삼교가 더 이상 인류의 정신을 이끌어갈 기능을 상실하였으며, 동학만이 대신할 수 있다는 확신이 담겨있다.

그러나 수운은 삼교의 장점들을 십분 활용하여 그의 사상을 전개하 고 있다. 이는 근본적으로 천도가 삼교를 비롯한 모든 종교의 진수를 담아내는 뿌리라는 인식이 있었기에 가능했던 것으로 보인다. 수운 “오도(吾道)는 유불선 삼합(三合)”50)이라는 선언과 “천도는 전적 (全的)이며 모든 진리의 원천이며 모든 사물의 생명”51)이라는 설명은 그의 종교관에 포함삼교의 문화가 관류하고 있음을 뒷받침해 준다.

해월(海月) 최시형(崔時亨, 1827~1898)과 의암(義菴) 손병희(孫秉熙, 1861~1922) 또한 삼교의 원리가 천도에 융해되어 있다는 정서를 가 지고 있었다.52) 즉, 삼교가 모두 천도라는 한 뿌리에 근원하여 피어 난 세 가지의 꽃이라는 관념53)이 수운의 사상적 토대가 되어 삼교를 자연스럽게 수용하게 하였던 것이다.

한울님의 계시로부터 발현된 수운의 사상은 ‘다시개벽’이라는 우주 적 변화에 상응할 수 있는 지상신선의 완성과 지상천국의 대망으로

48) 󰡔東經大全󰡕,

「論學文」

49) 󰡔龍潭遺詞󰡕,

「敎訓歌」

50) 이돈화, 앞의 책, 47쪽.

51) 위의 책, 22쪽.

52) 김홍철, 「동학

천도교사상에 나타난 유

도 삼교 교섭에 관한 연구

」 󰡔한

국종교사연구󰡕 6, 한국종교사학회, 1996, 465쪽.

53) 󰡔義菴聖師法說󰡕,

「三花一木」

(21)

요약되어진다. 무엇보다 수운의 사상 전환은 한울님에 대한 시천주 사상으로 정립되어 해월의 양천주(養天主), 의암의 인내천(人乃天)으 로 이어지는 사상적 조류를 형성하였다. 그 결과 모든 사람이 평등하 다는 인간존중의 의미를 재발견, 재창조함으로써 현대사회에 뿌리내 리게 하였다.

2. 증산의 선도사상

증산(甑山) 강일순(姜一淳, 1871~1909)은 경제적으로 매우 가난한 하층 계급의 생활을 하면서 신분상으로는 상류 계급의 자손이라는 계 급구조상의 이중성을 가지고 있었다. 아울러 증산의 출생지인 고부 지방은 민란과 동학농민전쟁이 일어난 지역으로 지방 관리의 착취와 노략이 가장 극심하였던 지역이었다. 이러한 내외적 환경으로 인하여 증산은 그 누구보다 사회의 부조화와 모순을 절감한 것으로 보인다.

1897년 증산은 해결방안을 모색하기 위해 세태(世態)의 인심과 속 정을 살피고자 유력의 길에 오른다. 팔도 유력을 마치고 1900년 고향 으로 돌아온 그는 시루산에서의 공부를 시작한다. 구제창생(救濟蒼 生)에 뜻을 두고 팔도를 주유한 연후에 시행된 증산의 구체적 행위가

‘시루산 공부’라는 종교적 형태로 표출되었다는 점에 주목할 필요가 있다.54) 그는 주유를 통해 사회 혼란을 극복하고 도탄에 빠진 민중을 구제하기 위해서는 인간의 능력으로는 불가능하며 오직 종교적 법리

54) 시루산에서 행한 공부의 방법과 의미는 구체적으로 전해지고 있지는 않지만 호둔(虎遁)을 하여 주위 사람을 당황하게 한 일, 산천이 크게 울리도록 소리 를 지른 일, 공부를 하다가 우는 일 등의 기이한 행동으로 인해 주변 사람들 은 요술공부로 인식하였다고 한다. 또한 증산이 시루봉에서 진법주(眞法呪) 를 외우고 오방신장(五方神將), 사십팔장(四十八將), 이십팔장(二十八將) 등 의 종교적 행위를 했다는 내용이 전하고 있다.(󰡔전경󰡕,

행록

」 2장 7절-11

절); 이 논문의 논의는 증산 관련 전승기록 가운데 󰡔전경(典經)󰡕(대순진리회 교무부, 대순진리회 출판부, 2010)을 중심으로 한다.

(22)

로서 해결할 수 있다는 사태의 심각성을 인식하게 해준 계기가 된 것이다.

시루산 공부에 이어 증산은 1901년 5월 중순부터 49일간 대원사에 서의 공부를 행한다. 대원사 공부는 증산이 천지신명을 심판한 곳으 로 알려져 있다.55) 여기서 그가 천지신명을 심판하였다는 것은 첫째 는 천지신명이 바르지 못하다는 시각이 전제되어 있는 것이며, 둘째 는 증산이 천지신명을 심판할 능력의 소유주라는 종교적 각성이 내 포되어 있다. 말하자면, 대원사 공부는 증산 자신이 천지대권의 소유 주라는 자기인식을 기반으로 당시의 사회문제를 천지신명에 대한 심 판으로부터 바루어 가겠다는 종교적 방향성을 가늠하게 한다. 하늘 과 땅의 운행질서를 근본적으로 뜯어고치는 이른바 ‘천지공사(天地公 事, 1901~1909)’가 그것이다.

천지공사의 이념적 방향성은 해원상생(解冤相生)이라고 할 수 있 다. 증산은 참혹한 지경에 이른 선천(先天)의 현실을 분석하여 그 원 인을 상극(相克)과 그것으로 생겨난 원(冤)에 있다고 진단하였다. 이 것은 현실 사회문제를 단지 대인(對人)의 차원에 귀속시키지 않고 우 주적 차원으로 확장하여 본질적 해결방안을 모색하고자 한 특징이 있다.56) 다시 말하면 문제의 인식과 교화의 대상을 인간 본성에 초점 을 맞춰 온 전통적 시각과는 달리 외계사물에 내재된 문제의 본연으 로부터 그 해결의 실마리를 찾고자 한 것이다. 따라서 천지공사는 인 간을 둘러싼 우주 환경 전체를 새롭게 구성함으로써 그동안 쌓였던 원을 해소하고(解冤)하고, 상극의 운행원리를 상생(相生)으로 변역하 는 구제의 역사이자, 설계의 역사이다.57)

수운이 한울님을 통한 계시를 통해 시천주의 종교성을 획득하였다

55) 󰡔전경󰡕,

「교운」 2장 21절.

56) 윤재근,

한국신종교의 도교문화와 생명관

」, 󰡔종교교육학연구󰡕 33, 한국종교

교육학회, 2010, 160쪽 참조.

57) 이경원, 앞의 책, 410-411쪽 참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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면, 증산은 자신이 인신강세(人身降世)한 최고신 상제(上帝)임을 스스 로 천명하여 천지공사의 위상을 근거 삼았다고 볼 수 있다.58) 증산의 주장을 사실적 표현으로 보아야 할지 아니면 은유ㆍ상징적 표현으로 이해해야 할지는 역사적 인물로서 실재하였던 증산에 대한 이해방식 에 따라 차이를 보인다.59) 하지만 분명한 것은 그가 민중의 입장에서 동학의 실패를 목도하였고, 그로 인해 민중의 종교적 열망에 부응하 기 위해서는 최고신의 강림이 아니면 안 된다는 종교적 자각이 있었 다고 해석할 수 있다. 곧 자신이 상제의 강세임을 표명하고, 그 권능 에 의한 역사를 단행함으로써 자신의 종교적 행위가 단지 사변적 담 론이 아닌 실제적 역사로 증명될 것임을 민중들에게 확언하고자 한 것이다. 실제로 증산에게 큰 호응을 보인 지지기반 대부분이 당시 사 회적으로 억류되고 지배층으로부터 수탈의 대상이 되었던 영세 농민 과 상인들이었으며, 종교적 배경이 직간접적으로 동학과 동학혁명에 참여했던 사실은 이를 뒷받침해준다.60)

증산이 중개자로서 가르침을 베푸는 것이 아니라 스스로의 신격을 확보하고, 변역의 개벽장(開闢長)임을 선언하였다고 하여 그 자신이 모든 일을 독단으로 처결하지는 않았다. 오히려 종도들과의 상의와 신명들과의 상보를 중시하였다. 그가 신ㆍ인과 더불어 공사를 관장 한 것은 우주가 개별적 객체로 유리되어 있는 것이 아니라 유기적

58) 고남식,

증산의 강세 전승에 대한 문학치료적 접근

」, 󰡔문학치료연구󰡕 2, 한

국문학치료학회, 2005, 139-142쪽 참조.

59) 이능화는 󰡔조선도교사󰡕에서 증산이 천지공사를 시작한 신축(1901)년부터 천 지공사를 마치고 화천한 기유(1909)년까지 9년간의 이적을 민중에 대한 맹 신자들의 우롱으로 평가하였다.(이능화, 이종은 역, 󰡔조선도교사󰡕, 보성문화 사, 1977, 323쪽, 338-339쪽 참조) 반면 증산을 추종하였던 종도들과 증산을 신봉하는 증산교단에서는 그가 행한 천지공사를 하늘과 땅을 뜯어고쳐 물샐 틈 없는 도수를 짜 놓는 실재적인 행위로 신앙하고 있다. 양단의 상반된 이 해는 간명하게 절충될 수 있는 성질의 문제는 아니다.

60) 노길명,

신흥종교 창시자와 추종자의 사회적 배경과 그들 간의 관계

증산 교를 중심으로」, 󰡔증산사상연구󰡕 3, 증산사상연구회, 1977, 149-153쪽 참조.

(24)

관계 속에 존재한다고 보았기 때문이다. 증산은 “일이 마땅히 왕성해 지는 것은 천지에 있어서 반드시 사람에게 달려 있는 것은 아니다.

하지만 사람이 없으면 천지도 없기 때문에 천지가 사람을 낳아 쓴 다”61)라고 상호 의존적 관계에 있음을 밝혔고, 더욱이 “선천에는 모 (謀事)가 재인(在人)하고 성사(成事)는 재천(在天)이었지만, 이제는 모사는 재천하고 성사는 재인이니라”62)고 하여 천지공사의 향방에 인간의 중추적 역할을 전면에 내세우고 있다. 즉 증산의 천지공사에 있어서 주요한 초점은 무엇보다 인간 존재에 맞추어져 있다.

증산은 인간에 대한 가치를 인존(人尊)을 통해 보다 새롭게 주창하 였다. 인존의 개념은 “천존과 지존보다 인존이 크니 이제는 인존시대 라”63)는 말을 통해 잘 드러난다. 이는 종래의 인본주의와는 사고의 궤도를 달리한다. 천존(天尊)과 지존(地尊)이 과거 선천에서 하늘과 땅을 신격화하고 숭배한 것을 지칭한다면, 인존은 수도를 통해 인간 의 양심이 회복되어 신과 인간이 서로 조화(調化)하여 새로운 존재로 거듭나는 것을 의미한다. 나아가 신격을 부여받은 인간은 이 세상 어 떤 존재보다도 고귀하고 놀라운 능력을 발휘함으로써 후천 운행의 일익을 담당하게 된다. 즉, 인존은 선천에 천지에 부여되었던 신격이 후천에 인간에게 부여되는 패러다임의 일대 전환으로, 민족 정신사 에 깊게 작용한 인간존중의 정신을 창조적으로 계승하였다고 평가할 수 있다.

천지공사를 통해 수천 년 동안 쌓여온 원의 마디와 고가 풀리고 더 이상의 원이 맺히지 않게 되면 상생이 지배하는 지상 선경이 건 설될 것으로 증산은 전망하였다. 이 세계는 현실의 문제를 극복한 이 상적 사회의 전형을 그리고 있다. 대지는 인간의 노력 없이도 풍요로

61)

事之當旺在於天地 必不在人 然無人無天地 故天地生人 用人 以人生 不參於 天地用人之時 何可曰人生乎(󰡔전경󰡕, 「

교법

」 3장 47절)

62) 󰡔전경󰡕,

교법

」 3장 35절.

63) 󰡔전경󰡕,

「교법」 2장 56절.

(25)

움을 선사해 주어 경제적으로 빈부의 차별이 없어지고, 자연 재해가 사라져 상서가 무르녹는 안정된 사회가 지속된다. 또한 정치적으로 는 그 구성원들 각자가 선천적으로 본유하고 있는 도덕심을 회복하 여 위무(威武)와 형벌이 없이도 법리에 맞게 다스려진다. 그 결과 시 기 질투와 전쟁이 끊어져 모든 나라가 화평하게 된다. 더욱이 인간은 쇠병사장을 극복하여 불로불사의 장생을 얻음으로써 영원한 복록을 누릴 수 있게 된다.64)

증산이 그렸던 후천의 모습에서 대립과 투쟁이 아닌 온 누리가 화 합하는 상생의 시대를 엿볼 수 있다. 이에 그의 종교 이력 또한 반목 을 야기할 수 있는 요소를 일소하고 재발하지 않도록 하는 노력의 흔적들이 쉽게 발견된다. 그 중 근대에 접어들면서 야기된 동서간의 마찰을 적시하고, 특히 종교사상을 주축으로 하는 문명 간의 충돌이 전 지구적인 차원의 과제로 대두될 것으로 예견한 측면이 주목된다.

증산은 모든 민족의 문화에는 저마다의 전통적인 사고방식이 내재되 어 있으며, 그것은 풍토와 생활 경험의 전승에 따라 이룩된다고 보았 다. 또한 국가 간의 마찰은 이질적인 문화의 충돌이 불러일으킨 결과 로 해석하였다. 따라서 그는 후천의 하나 된 이상세계를 이루기 위해 서는 오곡을 거둬 결속하는 것과 같이 모든 민족 문화의 정수, 곧 종 교 문화를 아울러 문명의 기초를 구축할 때 가능하다고 이해하였 다.65) 증산이 청년시절 유불선 음양참위(陰陽讖緯)를 통독하고, 이것 이 천하를 광구(廣求)함에 한 도움이 되리라66)는 생각은 세계관에 투 영되어 개벽의 근간이 되었던 것이다. 이는 삼교합일의 정신이 문화 의 기초로 자리매김 된 것이다.

한국 신종교의 개창자들은 모두 후천시대의 소식을 민중들에게 알 렸으며, 후천을 준비하고 이끌어가기 위한 방법과 역할을 제시하였 64) 󰡔전경󰡕,

교법

」 3장 41절; 「

예시

」 80절, 81절.

65) 󰡔전경󰡕,

공사

」 3장 35절; 「

예시

」 30절.

66) 󰡔전경󰡕,

「행록」 2장 1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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