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검색 결과가 없습니다.

소태산의 선도사상

소태산(少太山) 박중빈(朴重彬, 1891~1943)은 7세의 어릴 적부터 우주 자연현상에 대한 깊은 지적 호기심이 있었으며, 9세에는 인간만 사에까지 의문을 확장시켜 나갔다. 이를 해소하기 위해 그는 산신과 도사 같은 초인적 능력을 가진 존재와의 만남을 통해 해결하고자 하 였다. 그러나 결국 뜻을 이루지 못하였다. 22세부터는 사색과 명상, 기도생활 등 자신의 내면세계로 구도의 방향을 돌렸으며, 그 결과 1916년 26세에 그동안 쌓였던 의심에서 깨어나 우주의 모든 진리에 두렷하게 통달하였다.67)

대각 후에 소태산은 유불도의 주요 경전들을 열람한 후 자신의 깨 달음이 삼교를 비롯한 모든 종교의 교지와 통함을 알았고, 특히 불교 에 연원을 두고 있음을 선언하였다. 또한 “물질이 개벽되니 정신을 개벽하자”68)는 표어를 내걸고, 물질문명에 끌려가는 인류의 정신을 개벽하기 위해 1924년 불법연구회(佛法硏究會)69)를 창립하여 불법의

67) 󰡔원불교 교사󰡕, 1034-1040쪽.

68) 󰡔원불교 교전󰡕, 대종경서품 4장, 95-96쪽.

69) 교단의 명칭은 1917년 8월에 ‘저축 조합’, 1918년 10월 구간도실(조합실) 기 둥에 쓰인 ‘대명국영성소좌우통달만물건판양생소(大明局靈性巢左右通達萬物 建判養生所)’, 1919년 10월에 ‘불법연구회 기성조합(佛法硏究會期成組合)’, 1924년 4월에 불법연구회 창립총회를 열어 ‘불법연구회’로 교단의 임시 명칭 을 확정하였다. 이어 1948년 4월에 총대회를 열고 정산(鼎山) 송규(宋奎, 1900-1962)의 주재하에 ‘원불교’라는 정식 명칭을 고시하였다.(한기두, 「정산

시대화ㆍ생활화ㆍ대중화를 목표로 본격적인 종교 활동을 전개하였다.

불법에 연원을 두고 전개되는 일련의 종교 이력을 보면 소태산의 교리체계는 수운, 증산처럼 초월적 대상이 부각되기보다는 이성적 자각을 통한 진리의 획득이 중시되고 있음이 특징적이다. 소태산은 진리의 본체는 어떤 신비적 대상이 아닌 이성적 자각에 의해 획득되 어지는 것임을 밝혔으며, 이를 ‘일원(一圓)’이라는 용어로 규정하고,

‘일원상(一圓相:○)’으로 표현한다.70) 일원은 소태산이 대각한 후에 당 시의 심경을 “만유(萬有)가 한 체성(體性)이며 만법(萬法)이 한 근원 이로다. 이 가운데 생멸 없는 도와 인과 보응되는 이치가 서로 바탕 하여 한 두렷한 기틀을 지었도다”71)라고 선언한 말에서 연원한다. 여 기서 ‘한 두렷한 기틀’이 뒤에 일원으로 명명되고, 이 일원은 원불교 인들의 신앙의 대상이요 수행의 표본으로서 받들어진다.72)

일원이 신앙의 대상이라고 하여 이것을 초감각적인 특성과 절대적 인 권능을 가진 존재로 간주하지는 않는다. 단지 일원은 우주의 삼라 만상 일체만유를 존재케 하는 본원자(本源者)인 동시에 만유 속의 내 재자(內在者)를 의미한다. 말하자면 나무 한 그루, 풀 한 포기에 이르 기까지 일원의 진리가 갊아 있지 않은 것이 없으므로 우주 만물과 인간의 궁극적 모습이 일원이라는 것이다.73) 이러한 설명은 인간과 모든 생명에게 신성, 하늘의 존귀함, 진리성, 불성이 그대로 담겨 있 음을 밝혀 하늘에 있던 천권을 인간사회로 끌어내렸다. 소태산이 처 처불상(處處佛像) 사사불공(事事佛供)이라 하여 부처나 진리적 실체 가 따로 있지 않으며,74) 개인 각자가 조물주이므로 자심(自心)이 곧

종사의 교단관」, 󰡔원불교사상󰡕 15, 원불교사상연구원, 1992, 201쪽; 󰡔원불교 교사󰡕, 1048쪽, 1057쪽, 1066쪽, 1105쪽)

70) 노길명, 󰡔한국신흥종교연구󰡕, 경세원, 1996, 96쪽.

71) 󰡔원불교 교전󰡕, 대종경서품 1장, 95쪽

72) 김홍철, 󰡔한국 신종교 사상의 연구󰡕, 집문당, 1989, 89쪽.

73) 노길명, 앞의 책, 98쪽 참조.

신이요 상(像)이라고 가르친 면모75)는 온 생명이 하늘과 같은 존귀함 을 가지고 있다는 만인평등의 원리를 밝혀 인간존중의 정신을 한층 현대적으로 해석한 것이다.76)

하지만 마음속에 신성이 갊아 있다고 하더라도 허욕에 물든 인간 은 참된 자아를 발현할 수 없다. 때문에 소태산은 일원의 진리를 대 각하고 그것을 수행의 측면에 적용하여 참된 인간을 육성하고자 하 였다. 구체적으로 그는 일원상의 진리를 신앙의 대상과 수행의 표본 으로 삼도록 하고, 그 전자를 ‘인과보응의 신앙문(信仰門)’, 후자를

‘진공묘유(眞空妙有)의 수행문’이라 천명하였다. 이를 근간으로 그가 제창한 수행법은 대중들이 일상 속에서 자기의 근기에 따라 쉽게 실 천하도록 한 실질적인 도덕실천의 공부라고 할 수 있다.

소태산이 도덕실천을 통한 인격 도야를 강조한 것은 인간성 상실의 병폐가 과학문명의 발달과 이기(利器)에 편승하여 야기된 정신문화의 황폐화에서 비롯되었다고 보았기 때문이다. 다시 말해서 과학 문명의 비약적 발달에 비해 물질을 사용할 인간의 정신은 쇠약해져 물질의 노예생활을 면하지 못할 것으로 진단하였다. 따라서 소태산은 ‘진리적 종교의 신앙과 사실적 도덕의 훈련’으로써 정신의 세력을 확장하고, 물질의 세력을 항복 받아야만 파란고해(波瀾苦海)에서 고통 받고 있 는 일체 생령을 광대무량한 낙원으로 인도할 수 있다고 역설하였 다.77) 곧 개교표어에 천명되어 있는 ‘정신개벽’만이 정신과 물질이 고 루 발전된 문명을 이루는 근본적인 대책으로 생각했던 것이다.

정신개벽을 통해 그가 전망한 미래는 일제치하에서 고통 받는 조 선의 어두운 상황과는 달리 밝은 양(陽)시대가 도래할 것으로 예견하

74) 󰡔원불교 교전󰡕, 대종경제2 교의품 9-15장, 116-121쪽.

75) 󰡔원불교 교전󰡕, 「대종경」 변의품 9장, 240-241쪽.

76) 박광수, 한국 신종교의 근본주의와 회통적 다원주의」, 󰡔한국종교연구󰡕 9, 한국종교학회, 2007, 104쪽 참조.

77) 󰡔원불교 교전󰡕, 「정전」 총서편, 제1장 개교의 동기, 21쪽.

였다. 또한 오는 세상에는 남에게 주지 못해 한이고, 남에게 지지 못 해 근심이 되는 상생과 균등의 세계가 될 것으로 내다보았다.78) 특히 개벽의 주체는 한국이 되며, 한국이 세계의 도덕적, 정치적, 또는 문 명적 중심지가 될 것으로 확신하였다. 이러한 양상은 한국 신종교의 이상 세계관과 동일선상에 있으며, 재세이화의 계승으로 볼 수 있다.

그런데 그는 미륵불이나 정도령이 출현하여 이끄는 것이 아닌 수많 은 바른 지도자들이 편만하여 인도하는 세상을 그리고 있다.79) 이는 신비하고 난해한 종교의 영적 체험보다 건강한 일상의 도덕을 강조 한 보다 현세 중심적 가치관을 표방한 것이다.80)

소태산이 대각을 이룬 후 모든 종교의 경전을 두루 열람한 다음 종교적 연원을 불법에 두고, 장차 회상(會上)을 열 때에도 불법으로 주체를 삼아 완전무결한 큰 회상을 이 세상에 건설하리라고 선언한 바 있다. 하지만 신앙이나 수행의 방법을 비롯하여 다양한 교의사상 을 적극적으로 수용내지 참고하고 있다.81) 이는 과거에는 삼교가 각 각 그 분야만의 교화를 주로 하여 왔지만, 앞으로는 그 일부만 가지 고는 널리 세상을 구원하지 못할 것으로 예측했기 때문이다. 이에 삼 교의 교리를 일원화하고 영육쌍전(靈肉雙全)과 이사병행(理事竝行)의 방법으로 공부하다면 삼교의 종지를 일관할 뿐 아니라 능히 사통오 달(四通五達)의 큰 도를 얻게 되리라 보았다.82) 이러한 소태산의 삼 교합일 내지 수용 정신은 정산(鼎山) 송규(宋奎, 1900-1962) 이후로 계 승되면서 원불교 교의사상의 한 흐름을 형성한다.83)

78) 󰡔원불교 교전󰡕, 「대종경」 전망품 20장, 392-393쪽.

79) 󰡔원불교 교전󰡕, 대종경전망품 16장, 390쪽; 변의품 33장, 255쪽.

80) 김정관, 원불교의 개벽사상」, 󰡔종교교육학연구󰡕 7, 한국종교교육학회, 1998, 129쪽 참조.

81) 양은용, 「한국 신종교의 성립과 삼교회통사상」, 󰡔한중철학󰡕 2, 한중철학회, 1996, 88쪽.

82) 원불교 교전󰡕, 대종경제2 교의품 1장, 111-112쪽.

83) 양은용, 앞의 책, 90쪽.

소태산은 시기적으로 근대화라는 역사적 변천과 맞닿아 종교 활동 을 시작하였다. 따라서 수운과 증산이 초자연적 존재에 투사시킴으 로서 현실사회의 구조적 모순을 해결하고자 하였다면, 소태산은 물 질의 개벽에 조응하는 정신의 개벽을 주창하고, 도덕적 훈련을 통해 이상적인 사회가 도래할 수 있다는 신념을 가지고 있었다. 이는 한국 선도의 특징들이 일상화 및 대중화 되어 두드러지게 나타나는 기제 로 작용하였다고 할 수 있다.

관련 문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