증산(甑山) 강일순(姜一淳, 1871~1909)은 경제적으로 매우 가난한 하층 계급의 생활을 하면서 신분상으로는 상류 계급의 자손이라는 계 급구조상의 이중성을 가지고 있었다. 아울러 증산의 출생지인 고부 지방은 민란과 동학농민전쟁이 일어난 지역으로 지방 관리의 착취와 노략이 가장 극심하였던 지역이었다. 이러한 내외적 환경으로 인하여 증산은 그 누구보다 사회의 부조화와 모순을 절감한 것으로 보인다.
1897년 증산은 해결방안을 모색하기 위해 세태(世態)의 인심과 속 정을 살피고자 유력의 길에 오른다. 팔도 유력을 마치고 1900년 고향 으로 돌아온 그는 시루산에서의 공부를 시작한다. 구제창생(救濟蒼 生)에 뜻을 두고 팔도를 주유한 연후에 시행된 증산의 구체적 행위가
‘시루산 공부’라는 종교적 형태로 표출되었다는 점에 주목할 필요가 있다.54) 그는 주유를 통해 사회 혼란을 극복하고 도탄에 빠진 민중을 구제하기 위해서는 인간의 능력으로는 불가능하며 오직 종교적 법리
54) 시루산에서 행한 공부의 방법과 의미는 구체적으로 전해지고 있지는 않지만 호둔(虎遁)을 하여 주위 사람을 당황하게 한 일, 산천이 크게 울리도록 소리 를 지른 일, 공부를 하다가 우는 일 등의 기이한 행동으로 인해 주변 사람들 은 요술공부로 인식하였다고 한다. 또한 증산이 시루봉에서 진법주(眞法呪) 를 외우고 오방신장(五方神將), 사십팔장(四十八將), 이십팔장(二十八將) 등 의 종교적 행위를 했다는 내용이 전하고 있다.(전경, 「행록」 2장 7절-11 절); 이 논문의 논의는 증산 관련 전승기록 가운데 전경(典經)(대순진리회 교무부, 대순진리회 출판부, 2010)을 중심으로 한다.
로서 해결할 수 있다는 사태의 심각성을 인식하게 해준 계기가 된 것이다.
시루산 공부에 이어 증산은 1901년 5월 중순부터 49일간 대원사에 서의 공부를 행한다. 대원사 공부는 증산이 천지신명을 심판한 곳으 로 알려져 있다.55) 여기서 그가 천지신명을 심판하였다는 것은 첫째 는 천지신명이 바르지 못하다는 시각이 전제되어 있는 것이며, 둘째 는 증산이 천지신명을 심판할 능력의 소유주라는 종교적 각성이 내 포되어 있다. 말하자면, 대원사 공부는 증산 자신이 천지대권의 소유 주라는 자기인식을 기반으로 당시의 사회문제를 천지신명에 대한 심 판으로부터 바루어 가겠다는 종교적 방향성을 가늠하게 한다. 하늘 과 땅의 운행질서를 근본적으로 뜯어고치는 이른바 ‘천지공사(天地公 事, 1901~1909)’가 그것이다.
천지공사의 이념적 방향성은 해원상생(解冤相生)이라고 할 수 있 다. 증산은 참혹한 지경에 이른 선천(先天)의 현실을 분석하여 그 원 인을 상극(相克)과 그것으로 생겨난 원(冤)에 있다고 진단하였다. 이 것은 현실 사회문제를 단지 대인(對人)의 차원에 귀속시키지 않고 우 주적 차원으로 확장하여 본질적 해결방안을 모색하고자 한 특징이 있다.56) 다시 말하면 문제의 인식과 교화의 대상을 인간 본성에 초점 을 맞춰 온 전통적 시각과는 달리 외계사물에 내재된 문제의 본연으 로부터 그 해결의 실마리를 찾고자 한 것이다. 따라서 천지공사는 인 간을 둘러싼 우주 환경 전체를 새롭게 구성함으로써 그동안 쌓였던 원을 해소하고(解冤)하고, 상극의 운행원리를 상생(相生)으로 변역하 는 구제의 역사이자, 설계의 역사이다.57)
수운이 한울님을 통한 계시를 통해 시천주의 종교성을 획득하였다
55) 전경, 「교운」 2장 21절.
56) 윤재근, 「한국신종교의 도교문화와 생명관」, 종교교육학연구 33, 한국종교 교육학회, 2010, 160쪽 참조.
57) 이경원, 앞의 책, 410-411쪽 참조.
면, 증산은 자신이 인신강세(人身降世)한 최고신 상제(上帝)임을 스스 로 천명하여 천지공사의 위상을 근거 삼았다고 볼 수 있다.58) 증산의 주장을 사실적 표현으로 보아야 할지 아니면 은유ㆍ상징적 표현으로 이해해야 할지는 역사적 인물로서 실재하였던 증산에 대한 이해방식 에 따라 차이를 보인다.59) 하지만 분명한 것은 그가 민중의 입장에서 동학의 실패를 목도하였고, 그로 인해 민중의 종교적 열망에 부응하 기 위해서는 최고신의 강림이 아니면 안 된다는 종교적 자각이 있었 다고 해석할 수 있다. 곧 자신이 상제의 강세임을 표명하고, 그 권능 에 의한 역사를 단행함으로써 자신의 종교적 행위가 단지 사변적 담 론이 아닌 실제적 역사로 증명될 것임을 민중들에게 확언하고자 한 것이다. 실제로 증산에게 큰 호응을 보인 지지기반 대부분이 당시 사 회적으로 억류되고 지배층으로부터 수탈의 대상이 되었던 영세 농민 과 상인들이었으며, 종교적 배경이 직간접적으로 동학과 동학혁명에 참여했던 사실은 이를 뒷받침해준다.60)
증산이 중개자로서 가르침을 베푸는 것이 아니라 스스로의 신격을 확보하고, 변역의 개벽장(開闢長)임을 선언하였다고 하여 그 자신이 모든 일을 독단으로 처결하지는 않았다. 오히려 종도들과의 상의와 신명들과의 상보를 중시하였다. 그가 신ㆍ인과 더불어 공사를 관장 한 것은 우주가 개별적 객체로 유리되어 있는 것이 아니라 유기적
58) 고남식, 「증산의 강세 전승에 대한 문학치료적 접근」, 문학치료연구 2, 한 국문학치료학회, 2005, 139-142쪽 참조.
59) 이능화는 조선도교사에서 증산이 천지공사를 시작한 신축(1901)년부터 천 지공사를 마치고 화천한 기유(1909)년까지 9년간의 이적을 민중에 대한 맹 신자들의 우롱으로 평가하였다.(이능화, 이종은 역, 조선도교사, 보성문화 사, 1977, 323쪽, 338-339쪽 참조) 반면 증산을 추종하였던 종도들과 증산을 신봉하는 증산교단에서는 그가 행한 천지공사를 하늘과 땅을 뜯어고쳐 물샐 틈 없는 도수를 짜 놓는 실재적인 행위로 신앙하고 있다. 양단의 상반된 이 해는 간명하게 절충될 수 있는 성질의 문제는 아니다.
60) 노길명, 「신흥종교 창시자와 추종자의 사회적 배경과 그들 간의 관계-증산 교를 중심으로」, 증산사상연구 3, 증산사상연구회, 1977, 149-153쪽 참조.
관계 속에 존재한다고 보았기 때문이다. 증산은 “일이 마땅히 왕성해 지는 것은 천지에 있어서 반드시 사람에게 달려 있는 것은 아니다.
하지만 사람이 없으면 천지도 없기 때문에 천지가 사람을 낳아 쓴 다”61)라고 상호 의존적 관계에 있음을 밝혔고, 더욱이 “선천에는 모 사(謀事)가 재인(在人)하고 성사(成事)는 재천(在天)이었지만, 이제는 모사는 재천하고 성사는 재인이니라”62)고 하여 천지공사의 향방에 인간의 중추적 역할을 전면에 내세우고 있다. 즉 증산의 천지공사에 있어서 주요한 초점은 무엇보다 인간 존재에 맞추어져 있다.
증산은 인간에 대한 가치를 인존(人尊)을 통해 보다 새롭게 주창하 였다. 인존의 개념은 “천존과 지존보다 인존이 크니 이제는 인존시대 라”63)는 말을 통해 잘 드러난다. 이는 종래의 인본주의와는 사고의 궤도를 달리한다. 천존(天尊)과 지존(地尊)이 과거 선천에서 하늘과 땅을 신격화하고 숭배한 것을 지칭한다면, 인존은 수도를 통해 인간 의 양심이 회복되어 신과 인간이 서로 조화(調化)하여 새로운 존재로 거듭나는 것을 의미한다. 나아가 신격을 부여받은 인간은 이 세상 어 떤 존재보다도 고귀하고 놀라운 능력을 발휘함으로써 후천 운행의 일익을 담당하게 된다. 즉, 인존은 선천에 천지에 부여되었던 신격이 후천에 인간에게 부여되는 패러다임의 일대 전환으로, 민족 정신사 에 깊게 작용한 인간존중의 정신을 창조적으로 계승하였다고 평가할 수 있다.
천지공사를 통해 수천 년 동안 쌓여온 원의 마디와 고가 풀리고 더 이상의 원이 맺히지 않게 되면 상생이 지배하는 지상 선경이 건 설될 것으로 증산은 전망하였다. 이 세계는 현실의 문제를 극복한 이 상적 사회의 전형을 그리고 있다. 대지는 인간의 노력 없이도 풍요로
61) 事之當旺在於天地 必不在人 然無人無天地 故天地生人 用人 以人生 不參於 天地用人之時 何可曰人生乎(전경, 「교법」 3장 47절)
62) 전경, 「교법」 3장 35절.
63) 전경, 「교법」 2장 56절.
움을 선사해 주어 경제적으로 빈부의 차별이 없어지고, 자연 재해가 사라져 상서가 무르녹는 안정된 사회가 지속된다. 또한 정치적으로 는 그 구성원들 각자가 선천적으로 본유하고 있는 도덕심을 회복하 여 위무(威武)와 형벌이 없이도 법리에 맞게 다스려진다. 그 결과 시 기 질투와 전쟁이 끊어져 모든 나라가 화평하게 된다. 더욱이 인간은 쇠병사장을 극복하여 불로불사의 장생을 얻음으로써 영원한 복록을 누릴 수 있게 된다.64)
증산이 그렸던 후천의 모습에서 대립과 투쟁이 아닌 온 누리가 화 합하는 상생의 시대를 엿볼 수 있다. 이에 그의 종교 이력 또한 반목 을 야기할 수 있는 요소를 일소하고 재발하지 않도록 하는 노력의 흔적들이 쉽게 발견된다. 그 중 근대에 접어들면서 야기된 동서간의 마찰을 적시하고, 특히 종교사상을 주축으로 하는 문명 간의 충돌이 전 지구적인 차원의 과제로 대두될 것으로 예견한 측면이 주목된다.
증산은 모든 민족의 문화에는 저마다의 전통적인 사고방식이 내재되 어 있으며, 그것은 풍토와 생활 경험의 전승에 따라 이룩된다고 보았 다. 또한 국가 간의 마찰은 이질적인 문화의 충돌이 불러일으킨 결과 로 해석하였다. 따라서 그는 후천의 하나 된 이상세계를 이루기 위해 서는 오곡을 거둬 결속하는 것과 같이 모든 민족 문화의 정수, 곧 종 교 문화를 아울러 문명의 기초를 구축할 때 가능하다고 이해하였
증산은 모든 민족의 문화에는 저마다의 전통적인 사고방식이 내재되 어 있으며, 그것은 풍토와 생활 경험의 전승에 따라 이룩된다고 보았 다. 또한 국가 간의 마찰은 이질적인 문화의 충돌이 불러일으킨 결과 로 해석하였다. 따라서 그는 후천의 하나 된 이상세계를 이루기 위해 서는 오곡을 거둬 결속하는 것과 같이 모든 민족 문화의 정수, 곧 종 교 문화를 아울러 문명의 기초를 구축할 때 가능하다고 이해하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