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1.
디지털 환경에서의 일/노동 개념:
지속, 변화, 긴장
목 차
1. 주제의 해묵음과 쟁점의 새로움 ··· 1
2. 사회변화와 개념지체 ··· 3
2.1 노동에서 일로? ··· 5
2.2 생존형 필요성과 삶의 자율성 ··· 8
2.3 자유시간과 언어투쟁 ··· 8
3. 일=노동 패러다임의 변화 ··· 11
3.1 자본주의적 노동윤리의 성찰 ··· 13
3.2 주변적인 것에 대한 관심 ··· 16
3.3 정상적 노동개념의 해체? ··· 18
4. 전망과 과제 ··· 21
4.1 개념지체와 혼란의 정비 ··· 21
4.2. 노동윤리와 시민성의 재구성 ··· 23
4.3 관련법 및 제도의 조정 ··· 25
참고 문헌 ··· 26
1. 주제의 해묵음과 쟁점의 새로움
노동은 욕구를 충족시키기 위한 의식적인 행위이자 이를 넘어 인간존재를 완성시키는 활동으로 간주되어왔다. 노동이 상품화하고 일이 조직 및 기술체계 와 밀접하게 연결된 근대 이후에는 사회갈등과 정치이념의 핵심 쟁점이 되었 다. 4차산업혁명과 인공지능이 부각되며 고령화가 심화되는 시대에 삶의 양식 과 가치구조는 꽤 달라지고 있지만 취업난과 고용불안정의 조건 속에서 일자리 창출과 노사정 대타협을 추구하는 노력들은 이전부터 겪어온 낯익은 사안들이 다.. 하지만 해묵은 주제를 바라보는 문제의식은 매우 새롭고 전과는 다른 쟁점 화가 나타나고 있다. 그 새로움은 노동이 배치되고 조직화되는 사회적 조건이 급격히 변하고 있다는 현실인식에서 유래한다. 세계화의 진전과 디지털화가 진 행되면서 평생직장의 소멸, 노동의 유연화, 네트워크화와 영역파괴가 광범위하 게 진행되고 있고 이에 부응하는 새로운 대응, 복합적 관점이 필요하다는 인식 이 확대되고 있다.1)
물론 일상의 현장에서 확인되는 문제는 여전히 과거의 쟁점과 크게 다르지 않다. 정규직과 비정규직의 구별선은 강고하고 정규직 취업을 최대 목표로 삼 는 청년층의 절박함을 보면, 노동권 강화를 위한 노동정책과 고용안정과 노동 자 권익보호를 위한 노동운동의 과제가 여전히 중요해 보인다. 그렇지만 세계 화와 디지털화가 미치는 광범위하고 지속적인 구조적 영향력을 제대로 해명하 지 않고서는 오래된 과제도 해결되기가 어렵다. 다시 말해 쟁점의 새로움, 혁신 성을 민감하게 수용할 때에야 비로소 해묵은 주제도 해결의 가능성이 높아질 수 있다. ‘4차산업혁명’이라는 말로 표현되는 디지털 환경이 전지구적으로 확 대, 심화되고 있는 조건 하에서 이로 인한 긍정적, 부정적 전망을 모두 염두에 두고 ‘최적의 대응’ 방식을 모색하는 것이 중요해 보인다. 독일이 산업 4.0과 대
1) 최근 ILO, EU, OECD 등에서 간행되고 있는 일련의 보고서들은 “The Future of Work”을 21세기 최대의 쟁점으로 다룬다. 특히 디지털화, 4차산업혁명, Gig Economy, Industry 4.0 등으로 표현되는 전례없는 기술사회의 충격에 주목하고 있다. Eurofound, Developments in Working Life in Europe: EuroWork annual review 2016; ILO, Inception Report for the Global Commission on the Future of Work, 2017; Eurofound, Non-standard forms of employment: Recent trends and future prospects, 2017 등 참조.
응하는 노동 4.0 의제를 중시하는 것처럼 한국사회 역시 시대적 변화와 국내적 조건을 함께 고려한 진지한 대응논리 구축이 절실하다.
그런데 해묵은 주제를 새롭게 바라보고자 할 때 우리의 인지 활동과 평가의 도구가 되는 개념이 적합한지 살펴보는 것이 긴요하다. 개념은 가변적인 현실 을 정의하고 정형화하며 이론적으로 문제화하고 판단을 내리는데 필수적인 인 식론적 기초다. 그것은 오랜 지식활동의 결과물로서 일정하게 구조화되고 특정 한 이론과 세계관의 틀 속에 자리매김되어 있다. 따라서 현장에서 진행되는 새 로움을 기존의 방식으로 해석하게 만들고 새로운 이해에 장애를 초래하기도 한 다. ILO 역시 현 시점에서 “적합한 개념”을 재구성하는 것이 시급한 과제임을 지적하고 있다2). 현실을 개념이 따라가지 못해 나타나는 인식의 부적합성을
“개념지체”라 할 수 있는데 이 글은 일과 노동의 영역에서 그러한 측면이 나타 날 가능성을 점검하고 새로운 변화를 새롭게 포착하기 위한 개념적 노력에 무 엇이 요구되는지를 살펴보려는 것이다.
2. 사회변화와 개념지체
개념은 시대의 변화와 성격을 드러내는데 매우 중요한 요소다. 따라서 개념 의 출현과 확산, 그 변용을 이해하는 개념사는 중요한 사회문화적 변동과 정치 경제적 문제를 드러내는데도 유용하다3). 개념은 그 자체가 변화의 동학을 가지 는 바, 특정한 현상에 대한 집합적 인지, 평가, 해석이 이루어지는 과정과 깊이 연동되어 활용된다. 개념의 형성과 사회현실의 변화 간에는 연결성 못지 않게 시차도 존재한다. 때로는 개념이 현실에 앞서 수용되고 공유됨으로써 현실의 변화를 추동하거나 견인하는 경우도 있고, 그 반대로 현실의 변화를 채 따라가 지 못하고 낡은 현상에 결박된 개념지체의 현상을 보일 때도 있다. 또 현실의
2) “It is a matter of urgency to have well-defined concepts so that the platform economy can be regulated and the laws adequately enforced
.”
ILO, The Future of Work We Want, p.7.
3) 개념사의 고전적인 시각은 R.Koselleck, The Practice of Conceptual History, Stanford University Press, 2002 및 멜빈 릭터, 송승철, 김용수 옮김, [정치사회적 개념의 역사], 소 화, 2010 참조..
어떤 모습을 정당하고 자연스러운 것으로 승인하는 효과를 가져오기도 한다.
그 결과 주요한 역사적 개념들은 유토피아적인 미래전망을 추동하기도 하고 변 화하는 현실을 가로막는 이데올로기의 근간이 되기도 한다. 코젤렉은 개념의 이러한 특징을 과거로부터 축적되어온 지나간 시간과 미래로 열린 기대지평으 로 설명했다.
노동 개념은 근대로의 전환을 설명하려 할 때 반드시 검토되어야 할 역사적 기본개념의 하나로 간주된다.4) 자연과의 관계 속에서 욕구를 충족시키는 노동 과 사회관계를 통해 자기를 표현하려는 활동을 동시적으로 수행하는 과정에서 노동이라는 개념은 복합적이고 다면적인 함의를 포함했다. 근대 이전에는 노동 이 주로 수고, 고생, 고통의 의미와 연결되는 경우가 많았고 근대로의 이행과정 에서 노동이 비로소 인간의 자기실현, 기본적 권리의 영역으로 자리매김된 것 으로 이해되는 것이 보통이다. 따라서 노동 개념사는 주로 근대 이후에 주목하 는 경향이 있고 노동을 인간존재의 중요한 속성으로 의미부여하는 것 자체가 근대를 특징짓는 문화적 지표로 간주되기도 했다5). 한말 이래 전반적인 근대화 과정과 더불어 노동 개념은 생존, 자아실현, 책임과 의무 등과 깊이 연관되는 방식으로 한국 사회에 자리 잡았고 20세기에 들어와서는 다양한 사회운동의 핵 심요소가 되었다.6) 식민지 시기 이래 노동문제, 노동자, 노동계급, 노동해방 등 의 어휘는 좌파와 급진, 민중적 지향성과 친화력이 높은 말로 이해되었고 분단 상황 하에서 종종 기피되는 어휘가 되기도 했다.7) 힘들었던 한국의 초기 노동 운동사는 노동 개념의 정상성, 보편성, 당위성을 사회적으로 확인하려는 인정 투쟁의 과정이기도 했다8). 노동은 신성하고 노동자는 사회발전의 근간이라는
4) 노동의 개념사는 서구의 개념사 연구에서 중요한 주제의 하나다. W.Conze, 이진모 옮김, [코젤렉 개념사 사전 10: 노동과 노동자], 푸른역사, 2014; Peter Anthony, The Ideology of Work,(1977) Herbert Appelbaum, The Concept of Work: Ancient, Medieval, and Modern, State University of NewYork Press, 1992 등 참조.
5) 개념사의 근대중심적 편향이 노동과 관련된 어휘에서 가장 두드러지게 나타난다. 김경일, [노동], 소화, 2016. 30쪽.
6) 박명규, [국민, 인민, 시민 – 개념사로 본 한국의 정치주체], 소화, 2009.
7) 김윤희, “근대 노동 개념의 위계성,” [사림] 제52호. 2015.
8) 구해근, [한국 노동계급의 형성], 창작과 비평사, 2002; 김원, [여공 1970], 이매진, 2005.
참조.
생각을 승인하면서, 동시에 그것이 자유민주주의의 질서원리와 공존할 수 있음 을 승인받는 것, 한마디로 근대적 노동개념의 공유과정이 민주화 운동의 중요 한 과제였다. 실제로 1987년 이후 노동과 노동문제, 노동정치라는 말에 대한 거 리감은 크게 줄었고 노동, 고용, 일, 직업 등에 대한 논의가 일상적인 것이 되 었다. 이후 취업난, 실직, 고용유연성 등의 변화를 겪으면서 노동과 노동조건은 더욱 개인 및 가족의 안정적 삶과 불가분의 것으로 되었고 노동정책은 국가적 아젠다의 핵심적 사안으로 자리잡았다9).
사회정치적 개념은 현실에서 억압될수록 유토피아적 지향을 지니게 된다. 민 주주의라는 개념, 인권이라는 어휘, 해방이라는 말이 가졌던 시대적 함의를 떠 올려보면 이런 점을 확인할 수 있다. 내부의 민주화와 고도소비사회로의 전환, 외부의 탈냉전과 세계화 등에 힘입어 노동이란 말에 덧붙여졌던 유토피아적 지 향이나 미래전망적 아우라가 약화된 것은 사실이지만, ‘근로’라는 중성적 표현 과는 달리 ‘노동’이라는 개념에는 근대 이래의 가치함의적 성격이 포함되어 있 다. 인공지능과 로봇이 단순노동을 대체하는 효과가 광범위하게 확인되고 비정 규직이 전면화, 일상화하며 부가가치의 창출방식이 탈공장화하는 현실에서 ‘노 동’으로 불리던 인간의 활동은 어떻게 재조명되고 재인식되어야 할 것인가가 큰 문제로 부각되고 있다. 급변하고 있는 현실을 제대로 포착할 개념을 찾지 못 해 많은 말들을 덧붙여야 하는 상황도 보고 있다. 고착화된 기존개념의 고수가 또 다른 개념지체, 또는 개념왜곡 현상을 강화시킬 개연성도 없지 않다. 최근 소개된 몇 몇 논저와 사회적 담론 속에서 이런 쟁점이 다루어지고 있는 방식을 통해 개념지체의 가능성, 새로운 개념화의 시도라는 관점에서 살펴보기로 하겠 다.
2.1 노동에서 일로?
인공지능, 4차 산업혁명, 빅 데이터 등으로 불리는 최근의 변화를 논의하는
9) 정부 수립 후 사회부의 노동국에서 시작하여 1963년 노동청이 되었다가 1981년 노동부로 독립하여 2010년 현재의 고용노동부로 변화해온 정부조직변화 자체도 노동 영역에 대한 범사회적 관심의 변화과정을 잘 드러내준다.
기본적인 문제의식은 기술이 인간의 노동에 미치는 영향력을 주목한다는 점에 서 이전의 관심사와 유사하다. 그런데 노동이라는 말과 일이라는 말이 구별되 고 그 의미가 새롭게 분화되고 있는 경향이 확인된다. 이런 단어의 선택이 목 적의식적이거나 명시적으로 이루어지는 경우가 얼마일지는 확인할 수 없지만 언어의 사회적 사용과 공감의 효과라는 점에서 주목할 가치는 충분해 보인다.
사전적인 의미에서 노동은 “사람이 생활에 필요한 물자를 얻기 위하여 육체 적 노력이나 정신적 노력을 들이는 행위”로 정의된다. 반면 일은 “무엇을 이루 려고 어떤 장소에서 일정한 시간 동안 몸을 움직이거나 머리를 쓰는 활동”이라 고 되어 있다. 양자는 몸울 움직이거나 머리를 쓰는 점에서 유사하지만 그 목적 에 다르다는 점이 부각된다. 즉 노동은 ‘생활에 필요한 물자를 얻기 위함’이 명 시되어 있는데 비해 일은 ‘무엇을 이루려고’라고 되어 있어서 좀더 포괄적이고 불특정적이다. 이를 다시 말하면 노동은 일의 일종이면서 특히 ‘생계유지’라는 목적을 뚜렷하게 지니는 유형의 일을 의미한다고 할 수 있다.
서구의 노동 개념사를 정리한 콘체의 연구에 따르면 여러 언어권에서 labor와 work에 대응되는 두 어휘가 대비되어 사용되면서 이중적 의미가 존재했다고 한 다.10) 같은 맥락에서 레이먼드 윌리엄스는 영어에서 labor 라는 단어가 work 이 라는 의미와 pain 이라는 두 의미를 함축한다고 했다.11) Cambridge Dictionary 에 따르면 labor 는 practical work, especially when it involves hard physical effort/ to do hard work/ workers who do the practical work with their hands 로 설명되어 있 다. 또 work 은 an activity such as a job, that a person use a physical or mental effort to do usually for money/ something created as a result of effort, espectially a painting, book or piece of music 등으로 설명되어 있다. labor 와 work 개념의 의미차가 한국어의 노동/일 개념과 정확하게 대비된다고 보기는 어렵지만, 유 사한 의미의 분화가 확인되는 점은 흥미롭다12). 이런 의미에서 최근 labor 대신
10) 콘체, 앞의 책 및 김경일, 앞의 책, 53-55쪽. 모든 사례에서 labor는 work과 달리 고통과 번뇌, 수고의 의미가 강하게 포함되어 있었다.
11) R.Williams, Keywords: A Vocabulary of Culture and Society, Oxford University Press, 1983. pp. 176-177.,
12) 노동 개념의 적합성을 다루고 있는 연구로는 Harry Coenen, Roelof Hortulanus, “The Concept of Labour in a European Perspective, TRANSFER 1/01; Jaques de Bandt,”The
work 이 더 빈번하게 사용되는 흐름과 한국어 용례에서 노동 대신 일이 더 자주 사용되는 경향 사이의 어떤 연관성을 추론할 개연성은 충분하다. 최근 ILO는 설립 100주년을 앞두고 특별위원회를 출범시켰는데 그 주제가 ‘The Future of Work’이다. OECD 역시 최근 ‘The Future of Work Initiative’를 출범시켰고 McKinsey&Company 가 시작한 Global Initiative 역시 ‘Technology, Jobs and the Future of Work’ 이라는 부제를 갖고 있는 것을 보면 이미 work 이란 어휘가 시 대적인 화두로 자리잡은 모양새다. 자동화, 디지털 플랫폼, 혁신 등으로 인해 크게 달라지고 있는 현실을 설명해야 한다는 시대적인 과제가 강조되는 시점에 서 전통적으로 강조되어오던 labor 개념 대신 work 이라는 단어가 강조되는 이 유는 무엇일까? 내용적으로는 노동시장, 노동정책, 직업안정성 등을 언급하면 서도 총체적으로 ‘labor의 미래’가 아닌 ‘work의 미래’를 내걸고 있는 것은 미래 형 과제를 다루는데 ‘Work’이란 어휘가 보다 적실함을 반영하는 것이 아닐까?
최근 job과 career를 구별하는 논의에서도 유사한 분위기가 느껴진다. 즉 기계생 산 산업화 단계와 부응한 job이라는 어휘가 조직화된 기업이나 공장에서 정기 적인 출퇴근의 형식으로 정형화된 직장의 의미를 내포하는데 반해 career는 ,가 변적인 직장, 유연한 노동형태, 업무방식의 유동성, 일생을 거쳐 이동하고 변화 하는 삶의 어떤 궤적을 포함하고자 한다. 최근 ILO에서 발간한 보고서에서도 개인과 사회에게 일이란 무엇인가를 논의하는 방식 자체가 예전과는 크게 달라 지고 있음을 지적하고 있는데 이런 새로움, 변화를 포착하기 위한 새로운 개념 찾기의 노력으로 이해됨직 하다.13)
물론 노동과 일, labor와 work이란 어휘는 많은 경우 혼용되거나 동의어처럼 사용된다. 기술혁명이 일자리를 현저하게 감소시킬 가능성을 일찍이 언급했던 리프킨의 책 The End of Work은 [노동의 종말]로 번역되었다. 던롭의 책 Why the Future is Workless 역시 [노동없는 미래]로 번역되었다. Shadow Work 이라는 제 목의 크레이그 램버트의 책은 [그림자 노동의 역습]이라 번역되었다. 하지만
‘일’이라는 단어의 사용빈도가 확실히 늘어나고 있다. 데이비드 프레인의 책
Concept of Labour and Competence Requirements in a Service Economy,“ The Service Industrial Journal, Vol. 19. No. 1 (Jan. 1999) 참조.
13) ILO, The Future of Work We Want, p.7.
The Refusal of Work 은 [일하지 않을 권리]로 번역되었고 [노동없는 미래]로 번 역된 던롭의 책에서도 실제 내용에서는 ‘일’이란 단어가 훨씬 더 많이 사용되고 각 장의 제목도 ‘일의 과거’, ‘일의 현재’, ‘일의 변화’로 되어 있다. 정부의 정책 논의에서도 [일자리 위원회]라는 이름에서 보듯 일이라는 말이 노동이나 직업 이라는 어휘를 대체하고 있다. 이런 현상은 한글전용세대의 어휘감각을 반영 한 편집상의 선택, 즉 단순한 감각적 변화에 지나지 않을 수도 있다. 실제로 구체적인 글 속에서 두 어휘는 큰 의미차이 없이 편의적으로 혼용되는 경우가 적지 않다. 하지만 필자는 한국사회에서도 노동이라는 말이 갖고 있던 어의론 적 맥락과 일이라는 말이 갖는 개념화의 내용에는 중대한 차이가 있고 의식하 든 안하든 용어의 구별, 선호하는 단어의 변화에는 이런 감각, 감수성, 느낌과 태도의 변화가 반영된다고 생각한다.
노동이 생활에 필요한 물자를 얻기 위한 행위로 정의되는데 반해 일은 ‘무엇 을 이루거나 적절한 대가를 받기 위하여 어떤 장소에서 일정한 시간동안 몸을 움직이는 것’으로 간주된다. 의미의 포용관계에서 일이 노동보다 포괄적이다.
즉 일의 하나이긴 하지만 노동으로 간주되지 않는 영역이 있다는 것, 노동시장 의 정상적 고용관계로부터 벗어난 여러 활동들이 일의 형태로 존재한다는 것이 다. 예컨대 자녀양육, 이웃과의 대화, 취미생활 등은 오랫동안 노동으로 개념화 되지 않았고 학술활동, 정치활동, 예술활동 역시 노동으로 간주되지는 않았다.
학생, 주부, 봉사자와 같이 노동으로 간주되지 않는 일을 하고 있는 사람들도 많고 이런 저런 일을 하고 있지만 노동자로 일컬어지지 않는 사람도 적지 않다.
이런 현실은 노동의 성별분업구조에 대한 페미니즘의 비판에서도 잘 나타난다.
페미니스트들은 노동의 제도적인 특성은 성별 분업구조와 밀접하게 연결되어 있고 여성이 수행하는 많은 ‘일’이 ‘노동’으로 평가받지 못했다는 것을 지적한 다14). 여성이 주로 전담해온 가사, 육아, 배려 등은 중요한 ‘일’이긴 하지만 공 식적인 보상체계로부터 벗어나 있음으로서 제대로 된 ‘노동’으로 평가받지 못 했다는 것을 지적한다. 혹실드가 감정과 관련한 활동을 ‘감정적 일’과 ‘감정 노 동’으로 구분하고 감정적 일은 보상과는 관련이 없는 활동을 가리키는 것으로
14) 강이수, 신경아 외, [여성과 일: 일터에서 평등을 찾다], 동녘, 2015.
분류했던 것도 마찬가지 함의를 갖는다. 노동이 보상과 관련을 맺는 개념으로 자리잡으면서 일은 그에 미치지 못하는, 비공식적이고 사적인 활동으로 부차화, 폄하되고 있는 것이라는 문제제기가 담겨있다. 이런 점에서 페미니즘의 비판은 일차적으로 젠더의 차별을 극복하려는 것이지만 한편으로는 노동이라는 개념 그 자체가 성별분업구조와 밀접하게 연결되어 있는 인지체계임을 보여주는 것 이기도 하다. 결론적으로 노동이라는 말 대신 일이란 말을 중시하게 되는 것은 임금노동의 영역을 넘어서 인간의 삶 전체, 노동시장 안팎을 포괄하는 활동 전 반을 문제시해야 할 시점에 와 있음을 드러내는 한 징후적 변화로 간주됨직 하 다.
2.2 생존형 필연성과 삶의 자율성
일과 노동, 노동과 일의 차이는 단지 인상적인 어감이나 표현의 문제가 아니 다. 연관된 어휘군이 공유하는 어떤 관점, 해석틀, 세계관의 차이에까지 이르는 중요한 의미차를 포함한다. 가장 중요한 의미의 하나는 일/노동의 성격과 관련 된 것이다. 노동이 임금을 전제로 하는 직장생활로 이해되는 데 반해 일은 생계 와는 무관한 자율적인 인간활동을 포괄하는 것으로 사용되면서 두 의미가 분화 되고 있다. 현대사회에서 labor 와 work이라는 어휘의 차이에 특별히 주목했던 사람은 한나 아렌트였다. 그녀는 [인간의 조건]에서 노동(labor)과 일(work)과 행 위(action)를 구별하면서 인간의 삶, 활동적인 실존의 현실을 분석 한다15). 노동 은 인간신체의 생물학적 과정에 상응하는 활동이고 일은 비자연적인 인공세계 와의 상호작용을 말하며, 행위는 사물이나 물질의 매개 없이 인간 사이에 직접 적으로 수행되는 활동으로 구별된다는 것이 아렌트의 해석이었다. 그에 의하면 labor 는 생존에 필요한 활동이지만 필연성에 종속되어 있는, 자유롭지 못한 활 동영역이었고 끝이 날 수 없는 수고이며 지속되는 고통이었다. 반면 work은 도 구를 만들어 내는 창조적 행위로서 아이디어 구상, 재료의 확보, 제작과 완성으
15) 한나 아렌트, [인간의 조건], 한길사. 1996.한국어 역서에서는 work 을 ‘작업’으로 번역하 고 있고 김경일 역시 작업으로 설명하고 있다. 이 글에서도 필요한 경우는 작업으로, 논의 의 일관성을 위해서 부분적으로는 ‘일’로 표기한다.
로 이어지는 일련의 과정을 의미한다. work은 뚜렷한 목표와 이를 이루기 위한 수단을 포함하며 시작과 끝이 구별될 수 있는 행위이기도 하다. action은 언어와 정치의 영역에서 인간들이 스스로를 타집단과 구별하면서 공적인 쟁점을 논의 하고 토론하는 활동을 가리킨다.
서구의 사상사적 전통에서는 아리스토텔레스 이래로 인간생계를 위해 어쩔 수 없이 행해져야 했던 노동은, ‘필연성에 종속되는’ 노예적인 것이라고 간주되 었다. 당연히 자유 시민들의 미적, 정치적 활동은 노동과는 질적으로 구별되는 활동을 통해서 이루어져야 하는 것으로 간주되었다. 근대 이후의 노동개념은 여러 맥락에서 보다 긍정적이고 적극적으로 해석되었고 인간존재의 필수적인 근간으로 자리매김되었다. 노동이 공공의 쟁점이 되고 공동체의 주요 관심사 가 되기 시작한 것이 근대자본주의적 산업화가 가져온 변화였다고 아렌트는 이 해한다. 산업사회에서 기계제 생산, 대규모 공장조직, 시장체계 등에 부응하면 서 발전한 ‘작업’ 역시 노동과 함께 근대의 핵심요소가 되었고 생계를 위한 경 제문제가 사회적 의제가 된 것이다. 시장을 중시했던 아담 스미스와 노동가치 를 강조한 칼 마르크스가 결과적으로는 같은 노동중심의 패러다임을 공유했던 것, 자본주의와 사회주의의 두 이념적 대결로 진행된 19,20세기의 세계사가 꼭 같이 노동중심 패러다임을 공유하였다는 이들이 모두 근대성을 공통분모로 하 고 있었음을 보여준다. 아렌트가 말한 일과 행위는 생존의 필연성에 종속되지 않는 시민적인 영역, 주체적인 인간활동의 장이지만 현대 사회에서는 그것이 제도화되고 재생산될 수 있는 공간이 점점 더 줄어들었다. 생활세계의 식민화 는 이러한 자율적인 삶의 영역이 노동의 필연성 속에 포섭되는 변화이기도 하 다. 하지만 그 속에서도 노동으로부터의 해방을 희구하는 시각, 자유로운 존재 로서의 인간활동을 중시하는 유토피아적 사고가 노동의 상품화, 소외, 부품화 를 비판하는 시각 속에, 또 부분적으로는 ‘게으름’을 상찬하는 문화적 저항 속 에서 부분적으로 존속해왔다.16)
최근 노동과 일의 개념적 차이에 주목하면서 노동의 질적 변화에 따르는 개 념적 전환이 필요하다는 주장이 점차 많아지고 있다. 앙드레 고르는 자유시간
16) 김경일, 앞의 책, 3장 참조.
이 더 많고 자율적인 삶의 기회가 더 늘어나도록 ‘자신을 위한 자율적 활동’이 더 강화되어야 한다고 보고 임금이나 노동조건 중심으로 인간의 노동을 파악하 는 것을 거부한다. 고르의 논지를 적극 수용하는 데이비드 프레인은 일 개념을 보다 혁신적인 개념으로 활용한다. 그는 ”반복되는 힘겨운 일상을 감내해야만 생존할 수 있는,“ 그리고 ”잡일, 고역, 부담 같은 단어와 엮여 두려운 감정을 불 러일으키는“ 노동과는 전혀 다른 ”창조적 활동형태로서의 일 개념“을 제안하고 있다.17) 그는 앙드레 고르의 논지를 빌어 ”임금을 받기 위해서 일정한 생산 시 간을 계약을 통해 교환하는 행위“인 경제적 일과 구별되는 자율적 활동을 확대 시키자고 주장한다. 즉 ”누가 강요해서가 아니라 행위자가 의식적으로 선택하 는 자기주도적 활동“으로서 ”활동의 목적은 돈 버는 것이 아니며 ...수행하는 당 사자가 정의하는 진, 선, 미를 추구한다.” 18)
최근 ILO 역시 노동 개념의 재구성, “잘 정의된 (노동) 개념”이 시급한 과제 임을 역설하면서 비정상적 노동, 플랫폼 경제와 같은 변화를 주목하고 있다. 던 롭은 아렌트의 저술에 근거하여 일과 노동의 구별을 4차 산업혁명의 흐름과 연 결시켜 논의를 심화시키고자 한다. 그에 의하면 노동은 ‘한 인간으로서 삶의 정상적인 과정에서 그야말로 생존을 위해 수행하는 것이다. 그런 활동은 모두 필요에 의해 강요되며 삶을 지속하기 위해 반복적으로 행해져야 하는 지겨운 것으로 인간의 자유를 침해하는 노예상태와 흡사하다. 반면에 일은 “무엇보다 먼저 인간의 활동이다. 일은 노동처럼 자연 속에서 생물학적이고 동물적인 필 요성에 의해 행해지지 않는다. 일은 본질적으로 자유로운 활동이며, 시민 즉 자 유인이 온전한 시민권과 인간적인 성취를 추구하려고 행해지는 활동이다. 일은 또 공적인 활동이라는 점에서 노동과는 다르다”고 적고 있다. (28-29) 이와 유 사한 생각은 최근 한국사회에서도 일상의 영역에서 적지 않게 확인된다. 일에 대한 평범한 시민들의 생각에서 더 이상 전통적인 노동, 임금, 상품의 차원과 결부되지 않는, 다양한 주체적 활동, 자율적 행위를 강조하려는 경향이 강화되 고 있다. 임금과는 무관하게 ‘자아실현을 위해서’ 하는 일, ‘사람손이 필요한
17) 팀 던럽, 김형수 옮김, [노동없는 미래], 비즈니스맵, 2016. 31쪽.
18) 위의 책, 33쪽.
곳’, ‘남이 하지 않는 궂은 일’ 등 다양한 일을 주목하자고 주장한다. 고령화로 제2, 제3의 인생을 살아야 하는 노인층에게 생존의 이유를 제공해줄 것도 이러 한 일이라는 생각이 확산되고 있다. 인터넷에서 공유되고 있는 다음과 같은 논 의는 사회영역에서 자생적으로 나타나고 있는 일/노동 개념의 전환필요성을 잘 보여주고 있다.19)
“마음 관리해야죠, 가족들 돌봐야죠, 사회가 양심적으로 가게 뭔가 나도 일조 해야죠, ...요즘 또 사회 제대로 돌아가라고 페북 들어가서 좋아요나 공유 좀 해 야죠, 뉴스에 대해서 악플도 좀 달아야죠, 이거 사회나랏일 하는 거 아닌가요?
그거는 일 아닌가요? 직장에서 일하는 분들 보다 더 엄청나게 중요한 일을 하고 있을 수 있어요...,”
2.3 자유시간과 언어투쟁
4차 산업혁명이 가져올 충격이 주로 일자리 감소에 맞추어져 있지만, 이것은 기술혁명에 뒷받침되어 인간의 힘을 빌지 않고서도 고도의 생산력 증대가 가능 해지는 현실을 말하는 것이기도 하다. 제조업 부문에서 보편화하고 있는 스마 트 팩토리, 유통부문의 자동화, 고도전문지식의 영역에까지 영향을 미치는 인 공지능과 빅 데이터 활용 등은 앞으로 인류가 전에 보지 못한 생산력 증대를 볼 수 있음을 의미한다. 문제는 이것이 미칠 사회정치적 충격을 어떻게 조정하 는가 하는 것이다. 마르크스의 고전적 비유를 든다면 생산력의 변화가 야기하 는 생산관계의 긴장을 어떻게 혁신적으로 재편성할 것인가의 문제일 수도 있 다. 임금부담을 최소화하기 위한 고용감축을 능사로 여기는 우파의 논리나 노 동현장을 넘어서 풍요롭고 즐거운 삶을 영위하려는 새로운 욕구를 무시하는 좌 파나 모두 충실한 대응이라 보기 어렵다.
생산성을 고도화함으로써 생겨나는 노동단축, 절감되는 시간을 사회적으로 어떻게 해석하고 대응할 것인가가 중요한 문제로 부각된다. 한국에서는 한때
19) 윤홍식,
‘잉여’라는 말과 ‘삼포, 오포’ 등의 말이 유행했고 최근에는 ‘취준생’ ‘희망고문’
등의 말이 널리 회자된다. 젊은 세대는 정규직 취업을 위해 졸업을 연기하고 수 년을 낭비한다. 객관적으로 정규직 일자리가 새롭게 배출되는 신규 세대를 모 두 고용할 수 없는 상황이 계속될 것이 예상되는 조건에서 ‘정규직화’를 내건 정책의 적실성은 점점 약해질 것이다. 그렇다고 기업으로 하여금 기술혁명의 노동감축효과를 무시하라고 요구할 수도 없다. 많은 학자들은 이런 상황을 적 극적으로 혁신의 계기로 삼아야 한다고 주장한다. 즉 4차 산업혁명이 가져다 줄 생산성 향상효과, 그로부터 초래되는 노동시간 감축효과를 사회가 어떻게 분배 할 것인지에 대해 비판적이고 개방적인 “시간을 둘러싼 정치”가 필요함을 강조 한다.20) 앙드레 고르에 의하면 “생산성이 높아지면 필수노동의 총량은 줄어들 수 있어도 그 결과로 얻는 시간의 해방이 저절로 모두를 위한 해방이 되는 것은 아니”기 때문에 이런 시간절감을 이용하여 임금에 묶이지 않은 자유롭고 자기 계발적인 활동을 확대시킬 수 있는 방안을 마련해야 한다. 강정한 역시 데이터 경제가 사유화함으로써 공공재의 성격이 약화되고 오히려 양극화를 심화시킬 가능성을 경계했다.
데이비드 프레인은 사회학자 어빙 고프만의 이론을 활용하여 “무슨 일 하세 요?”라고 묻는 관행적 질문이 왜 ‘불명예스러움’을 드러내는 상황을 창출하는 지를 언급하였다. 실직자 또는 괜찮은 직장이 없는 사람은 그런 질문에 대해 표 현할 것인가 말 것인가, 거짓말할 것인가 말 것인가, 털어놓을 것인가 말 것인 가, 그리고 누구에게 어떻게 언제 어디서 그렇게 할 것인가를 결정해야 하는 매 우 불편한 심사를 경험하게 된다. 프레인은 이런 상황에서 삶의 모든 시간을 직 장에서 보내는 것만 정상적인 것이 아니라 스스로 관리하는 자유로운 시간을 활용하여 수행하는 모든 활동을 떳떳하게 이야기할 수 있는 것이 필요하다고 주장한다. 그리고 전형적인 형태의 노동을 수행하지 않는 자신을 ‘자격미달자’
또는 ‘제구실 못하는 사람’이라고 간주하지 않는 건강한 내면을 갖출 것을 권유 한다. 그는 현실이 주는 어려움에 대하여 ‘도피에서 자율로’ 그 태도를 바꾸는 것이 절실하다고 보았다. 그는 일중심 패러다임이 주는 사회적 압력에 대한 싸
20) 팀 던럽, 김형수 옮김, [노동없는 미래], 비즈니스맵, 2016. 52쪽.
움은 ”언어를 두고 벌이는 투쟁“이라고 보고 이를 위한 특별한 준비와 무장을 강조한다.21) 다시 말해 노동의 형태로 영위되지 않는 삶을 긍정하고 다양한 일 을 수행하고 있는 것에서 자존감과 정체성을 확인할 수 있도록 하는 개념적인 지지가 필요하다는 것이다.
“보다 창조적으로 언어를 사용하면서 일 윤리의 낡은 소석을 폭로하는 방식 으로 토론을 이끌어 갈 필요가 있다. 비노동 활동 나름의 문화적, 사회적 가치 를 이야기할 다양한 방법을 찾아내 경제적 합리성에 도전해야 한다. 유급 고용 만이 아니라 훨씬 더 폭넓은 활동을 아우르는 의미로 일 개념을 재창조해야 하 며, 일하지 않는 사람은 어떤 가치 있는 활동도 하지 않는다는 이분법적 오류를 제거해야 한다.”
3. 일=노동 패러다임의 변화
일과 노동의 구별은, 일과 노동을 동일시하는 삶의 형태에 대한 근본적인 성 찰로 이어진다. 다시 말하면 일과 노동이 일체화된 생활양식이 특정한 역사적 조건 하에서 구성된 것이고 결코 인간실존의 불변의 원칙, 절대적 법칙은 아니 라는 점이 부각되는 것이다. 일이 노동과 동일시되고 노동의 정상적인 형태가 제도화된 것은 근대 자본주의 사회의 특징임을 강조한 글들은 그동안도 적지 않았다. 최근의 논의는 그러한 일 중심 패러다임이 미래사회와의 정합성을 보 장할 수 있느냐에 대한 성찰에 좀 더 관심을 기울이는 경향을 보인다.
3.1 자본주의적 노동윤리의 성찰
노동이 공적인 활동이자 사회적 이슈가 되는 과정은 가정의 일, 여성의 삶, 소수자의 생존이 공적인 영역에서 배제되어온 역사와도 일치한다. 기업과 공장, 국가와 노동이 중시되던 근대의 흐름은 사적 영역, 가정과 친교, 봉사와 돌봄의 일들을 사소하고도 부차적인 자리로 밀어내는 과정이기도 했다. 생산이 중시되
21) 데이비드 프레인, 정상미 옮김, [일하지 않을 권리], 동녘, 2017. 309쪽.
고 효용이 강조되며 부가가치창출에 주목하는 문화 속에서 비생산적이고 효용 성이 낮은 활동은 무시되기 십상이었다. 마르크스는 생산을 수행하는 노동을 가치의 핵심이라고 보았고 스미스는 분업의 발달과 더불어 분절된 노동행위가 중요한 생산요소라는 점을 강조했다. 비록 노동의 미래를 보는 관점에서 스미 스와 마르크스는 크게 달랐지만 생산적 노동을 중시하고 비생산적 노동을 경시 한 점은 기본적으로 같았다.22) 막스 베버의 ‘프로테스탄트 윤리와 자본주의 정 신’이 새롭게 읽혀지고 논의되는 이유도 여기에 있는 것으로 생각된다. 즉 베버 가 강조한 것은 일과 노동을 도덕적으로 또 윤리적으로 당연시하게 만드는 독 특한 문화기제가 어떻게 근대의 출현과 더불어 형성되었는가 하는 점이었다.
프로테스탄트 윤리의 특징에 착목하여 베버는 열심히 일하는 것, 생활비를 벌 기 위해 최선을 다하게 하는 ‘도덕적 강제’를 내면에서 수용하는 인간형이 출현 하는 것이 서구 자본주의의 핵심적 조건이었음을 밝혀냈다. 베버의 논지에 바 탕을 두고 노동은 사회적으로는 물론이고 개인의 심성에서도 정상적 삶의 핵심 요소가 되었다. 매일 규칙적으로 출근하고 정해진 절차에 따른 업무를 수행하 고 그에 따른 급여로 가정의 생계를 이끌어가는 일상생활의 형성이 이로 인해 이루어지는 것이다.
일과 노동의 개념 차이를 주목하는 최근의 글들은 대체로 일=노동 패러다임 이 오늘날 진행되고 있는 디지털 환경, 자동화와 정보화와는 정합적이기 어렵 다는 점을 강조한다. 그것은 단순히 기술진보가 일자리를 빼앗아 가리라는 부 담 때문만은 아니다. 오히려 노동의 영역을 벗어나 지속적으로 다양해지고 있 는 일의 영역을 전형적인 일=노동 패러다임이 제대로 포착하지 못한다는 인식 론적 문제가 커지고 있다. 고도의 생산력발달이 일=노동 패러다임으로부터 벗 어난 새로운 삶의 양식을 창출해줄 가능성에 대한 논의도 제한되고 있다. 아렌 트는 일찍이 ‘과학기술의 발전이 인간조건에 심대한 영향을 미칠 것’임을 지적 했다. 그녀는 [인간의 조건]에서 ‘자동화는 몇십년 안에 공장을 텅 비게 만들 것 이고 인간을 노동과 필연성에의 구속이라는 가장 자연적이고 오래된 속박으로 부터 해방시킬 것’이라고 주장했다. 그런 논지의 바탕위에서 ‘우리는 노동이 없
22) 톰 던롭, 위의 책, 35쪽.
는 노동자의 사회를 생각해야 할 사태에 직면해 있다’고 주장했다. (53) [노동의 종말]이란 책을 썼던 제프리도 결국 3차 산업혁명 이후의 자동화, 컴퓨터화, 기 술혁신이 시대적 전환을 가져오리라고 언급했다. 미래학자로 알려져 있는 앨빈 토플러는 [미래쇼크] 또는 [부의 미래], [제3의 물결] 등에서 과학기술혁명이 초 래할 수 있는 다양한 사회변화를 예시한 바 있다. 던롭은 ‘일을 우리 존재의 중 심으로까지 끌어올린 것은 거의 일종의 정신병적 현상’이라고까지 언급하는데 (54) 이것은 제조업 기반 경제의 형성이라는 근대자본주의 특유의 사회구조, 생 활양식과 밀접한 관련이 있다는 것이다. 아렌트의 시각을 기본적으로 수용하고 있는 던롭의 다음과 같은 말은 현 시점에서 겪고 있는 변화를 잘 지적하고 있 다.
나는 지금 만일 기술이 일부 사람이 주장하는 방향으로 발전해 많은 일자리 가 사라지게 된다면, 우리는 결국 노동과 일에 대한 생각을 바꾸지 않을 수 없 게 될 거라는 말을 하는 것이다. 아마 시민으로 산다는 것과 직업을 갖는다는 것을 동일시하는 노동관을 포기해야 할 것이다. 그러니까 우리는 지금 세상을 뒤바꿔놓을 모순 속으로 뛰어들고 있는 것...,
데이비드 프레인의 [일하지 않을 권리]는 이러한 일=노동 중심의 패러다임에 대한 가장 직접적인 비판이자 반론이라 할 수 있다23). 그는 노동윤리에 대응하 는 “쓸모의 윤리”를 강조하면서 사회구성원은 다양한 방식으로 자신의 쓸모를 증명할 수 있다고 주장한다. 그의 주장을 장황하게 살펴볼 필요는 없으나 책의 목차제목만을 살펴보아도 대략적인 논지를 알 수 있다. “일하는 괴로움”(2장) 때문에 “일이 우리를 지배하는 힘”(3장)을 갖게 되었고 “일하는 이유”(4장)가 매 우 수동적이고 타율적이 되고 말았지만, 최근의 사회적 기술적 변화가 가져다 주는 “단절점” (5장)을 잘 통과하면 “대안적 즐거움”(6장)이 발견될 수 있고 “제 구실 못하는 사람”(7장)으로 낙인찍혔던 사람들도 자신감을 갖고 “도피에서 자 율로”(8장) 옮겨 갈 수 있다는 것이다. 그의 책제목에 사용된 ‘일하지 않을 권
23) 데이비드 프레인, 정상미 옮김, [일하지 않을 권리], 동녘, 2017.
리’는 보다 자율적이고 창의적인 일을 추구할 수 있는 권리의 또 다른 표현인 셈이다.
3.2 주변적인 것에 대한 관심
최근의 일에 대한 담론은 고전적 노동담론의 주요 관심사에 포괄되지 않던 주변부, 비정규, 임시 영역을 주목하는 특징이 있다. 정통적인 노동정책, 노동운 동, 노동조합, 노동정치에 대한 관심이 여전히 강고하지만 이를 넘어서 제도로 부터 소외된 영역, 주변적인 것으로 간주되는 일들에 대한 관심이 점점 많아지 고 있다. 그 주된 동기는 물론 양극화 과정에서 지위가 약화되고 생계가 위협을 받는 하층집단에 대한 관심, 기술혁명으로 줄어들고 있는 일자리의 부정적 영 향을 완화시키기 위한 사회복지적 문제의식이라 할 수 있다. 이러한 주목받지 못하는 일들을 포괄적으로 [기록되지 않는 노동]이라고 묶어 정리한 한 책에서 는 ‘아가씨, 아줌마로 불리우면서 노동자로서의 정당한 지위, 권리, 인권을 부정 당한 사람들, 돌봄노동이라는 이름 하에 불안정성과 고약한 노동환경을 감내해 야 하는 사람들, 어떤 몸부림을 쳐도 좀처럼 언론의 관심을 받지 못하는 하청공 장, 예술노동자, 외국인 노동자 등의 삶을 다루고 있다. 바버라 에런라이크는 [노동의 배신]이란 책에서 ‘일을 해도, 아니 일을 할수록 가난해지는 사람들’ 즉 워킹푸어의 체험들을 추적해서 기록하고 있다. 식당 웨이트리스, 호텔 청소부, 가정집 청소부, 매장 판매직원 등 최저임금수준의 급여로 살아가기 어려운 일 들을 조명하고 있다. 더불어 전통적으로 가정과 사적 영역으로 간주되어 부차 화 되었던 일에 대한 관심도 확대되고 있다.
주변적 노동의 포용과 배려 차원을 넘어서 이러한 변화 자체를 혁신적인 전 환의 주요한 흐름을 간주하는 논의도 나타나고 있다. 다시 말해 흔히 ‘비정규’
라고 불리는 유형의 일들이 4차 산업혁명 시대의 주도적인 유형이 되리라는 과 감한 논의들이 출현하고 있는 것이다. 오스트리아의 철학가이자 사회비평가인 이반 일리치는 1981년에 “그림자 노동”이라는 개념을 발표했다. 이것은 지금까 지 우리가 정상적인 노동형태라고 생각하지 못한 다양한 일거리들이 속출하고 있을 뿐 아니라 점점 더 현대인의 일상을 지배하게 된다는 견해를 반영한다. 이
반 일리치는 엄밀하게 말한다면 그림자 노동은 임금 노동보다 훨씬 근본적이고 오늘날 경제활동 전반을 가능케 해주는 필수조건이다. 그는 다음과 같이 언급 하고 있다.
그림자 경제의 출현에서 내가 중시하는 것은 임금으로 보상받지도 못하고 시 장으로부터 가계의 독립을 지키는데 기여하지도 않는 노역 형태가 등장했다는 사실이다. 새로운 비자급자조적 가내 공간에서 주부가 행하는 그림자 노동이 좋은 예다. 이 새로운 종류의 활동은 다른 가족 구성원이 임금취득자로 계속 일 할 수 있게 해주는 필요조건이다. 따라서 그림자노동은 근대의 임금노동과 더 불어 나타난 현상이지만 노동집약적 상품사회가 존속할 수 있는 조건으로 보자 면 그림자노동이 임금 노동부다 훨씬 근본적일 것이다.
이 개념을 수용하여 [그림자 노동의 역습]이란 책을 펴낸 크레이그 램버트는 사회생활의 제도적 공간을 점유하고 있는 무대의 옆과 뒤에서 일어나고 있는 일들을 통해 “그림자 노동에 일어나고 있는 심오하고 대대적인 변화와 그것이 일에 대한 사람들의 생각을 다시 규정해 나가는 과정”을 파악하고자 한다.24) 그는 그림자 노동이 급격하게 증대하는 요인으로 네 가지를 들었는데 그 중 가장 첫 번째가 기술과 로봇의 등장이고 두 번째가 전문지식의 정보화, 세 번째 는 정보그물망이 형성되었다는 점과 마지막으로 끊임없이 진화하는 사회적 기 준을 꼽았다. 이 모든 요인이 요즘 4차 산업혁명이라고 불리는 디지털화와 인공 지능 효과와 관련된 것이다.
이런 주변적이고 눈에 잘 띄지 않는 일들은 노동정책이나 노동법제의 시야로 부터 벗어나 있기 쉽다. 최근 정규직과 구별되는 영역에 대한 관심이 학술적, 정책적으로도 활발하게 진행되고 있다. 다양한 실존적 삶의 양태들과 연결되어 나타나는 일의 문제들은 전통적인 의미에서 노동조합 정책이나 정부정책의 대 상에서 제외되는 경우가 많아 노동의 비정규화 현상을 다음과 같은 세 차원에 서 논의되고 있다. 첫째로는 비정규 고용형태가 지배적인 경제부문의 팽창현상
24) 크레이그 램버트, 이현주 옮김, [그림자 노동의 역습], 민음사, 2015.
을 주로 유통서비스, 문화서비스, 사회서비스, 운수물류서비스, 파트타임, 호출 노동 등에서 확인하고 있다. 둘째로는 직접 고용형태를 띄고 있는 비정규노동 의 현저한 증가 현상으로서 임시적, 촉탁직, 간접고용, 파견근무 등 다양한 형태 가 나타난다. 셋째로는 비공식부문의 비정규노동형태도 꾸준하게 증대하는데 이것은 앞서 ‘그림자 노동’이라는 말로 표현되는 가사노동, 하청노동, 돌봄노동 등의 영역이다.
3.3 정상적 노동 개념의 해체?
이런 관심 변화가 가져오는 또 하나의 중요한 결과는 정상적 노동이란 개념 이 약화되는 것이다. 흔히 ‘정규직’이라는 말로 지칭되는 정상적 일자리, 그와 연결된 노동의 정상성은 대체로 풀타임, 상용, 직접고용, 안정적 임금. 교육훈 련, 복지, 노동법의 보호 등을 포함하는 노동형태를 가리킨다. 직업의 안정성이 보장되고 그로 인해 생계의 불안정을 크게 염려하지 않아도 좋은 노동을 가리 킨다. ‘정규직화’를 내건 정치적 슬로건이 대중의 지지를 받는 최근 상황에서 볼 수 있듯이 노동정책, 노동법, 노동운동의 중요한 목표로서 사회적으로 폭넓 은 공감을 얻고 있는 가치이기도 하다.
정상적 노동이라는 개념은 일 중심으로 삶을 이해하는 근대사회의 생활세계 와 조응한다. 모든 개인은 일정한 양육과 준비기를 거쳐 사회로 진출하게 되는 데 사회진출의 핵심이 ‘직업’을 얻는 일이고 그것은 곧 정규노동의 담당자가 되 는 것을 의미한다. 상시적으로 고용되어 소속감을 갖고 정기적인 급여를 받음 으로써 개인 및 가족의 생계를 영위하는 것이 이런 정상성의 또 다른 측면이다.
개인적으로는 일생을 거쳐 특정한 일의 영역에서 전문성을 키우고 승진의 기회 를 가지며 생활수준을 높여갈 꿈을 가질 수도 있다. 직장은 그런 의미에서 정상 적인 사회생활, 시민적 존재양식의 바탕으로 여겨진다. 직장을 갖지 못하는 것, 가졌더라도 정규직이 되지 못하는 임시직, 비정규직은 부분적이고 불완전한 사 회인이 되는 것으로 간주되고 퇴직은 공식적인 사회생활로부터의 은퇴를 의미 하는 것이 된다. 자동화와 기계화로 인해 정규직 일자리가 늘어나는 효과도 급 감하고 노동방식도 점점 더 유연해 짐으로써 제도적인 보장효과도 약화되는 경
향을 보인다. 노조의 결속을 통해 안정성을 확보하는 전통적 전략도 이들의 노 조조직률에서 알 수 있듯 대부분의 노동형태를 포괄하지 못한다. 4차 산업혁명 이 미칠 일자리 감소효과에 대한 광범위한 염려도 이런 맥락과 직결되어 있다.
던롭의 다음과 같은 말은 현재의 변화가 노동의 정상성을 크게 뛰어넘는 차원 에서 전개되고 있음을 지적한다.
2007년과 2008년의 금융위기로 발생한 전 세계적인 경기침체는 단순히 일반 적인 경기순환 내의 또 다른 경기 저점이 아니라 우리가 ‘정상적’이라고 생각하 는 예전 것들로부터의 완전한 일탈이다. 그러니까 우리가 해온 일 (생활수준이 라는 개념을 뒷받침하는 유급 노동)을 해온 방식이 그 뿌리부터 근본적으로 변 화하고 있는 것이다. 이는 제조업을 통해 이루어지던 부의 창조가 이제는 육체 노동을 별로 필요로 하지 않는 금융, 지식, 기술 산업을 통해 이루어지고 있는 것과도 일부 관련이 있다. 그러나 일과 취업의 본질이 이렇게 변화하고 있음에 도 불구하고 직업윤리는 여전히 통용되고 있어 일에 대한 우리의 사고방식을 계속 왜곡시키고 있다.
노동의 정상성 개념이 약화되는 것은 “비정상적” 노동형태들에 대한 여러 개 념화가 시도되고 있는 데서도 확인된다25). 불안정 고용, 비정규직, 임시직 등으 로 불리는 일의 형태가 급증하면서 이러한 범주를 새롭게 개념화하려는 시도도 늘어나고 있다. 현재 비정규/비정상/주변부 노동을 가리키는 말들을 꼽아보면 파트타이머, 임시노동, 계약노동, 계절노동, 파견노동, 원격노동, 호출노동, 프리 랜서 등 다양하다. 영어로도 다양한 표현들 – contingent, non-standard, temporary, atypical, flexible, market-mediated, nontraditional, alternative, marginal, precarious, disposal, secondary이 사용된다, 정상과 비정상으로 나누는 방식 대신 유연노동 이라는 이름을 사용하기도 하고 프레카리아트라는 새로운 어휘를 만들기도 한 다. 심상완은 이런 범주에 속하는 노동을 비정규/ 비전형/ 비정형의 세 하위유
25) Arne L. Kalleberg, “Non-standard Employment Relations: Part-time, Temporary, and Contract Work,” Annual Review of Sociology, 2000, 26: 341-65.
형으로 나누어 살펴볼 것은 제안하고 있다. 비정규노동은 사회적 권리나 보호 로부터 배제된 노동을, 비전형 노동은 전형적인 고용관계로부터 이탈한 노동을, 비정형노동은 고용형태의 고정성이 없거나 미약한 노동을 대상으로 한다고 했 다. 이병훈은 이보다 좀 더 분석적으로 더 많은 차원에서 노동의 비정규화가 진 행되는 다양한 면모를 포착하고자 시도했다. 그는 직무특성에 따라 정규적 보 완형, 정규직 대체형, 정규직 별개형을 구분하고 보장체계에 따라 일부보장(정 규직 일치), 일부보장(정규직 불일치), 미보장으로 나누었다. 또 고용자발성에 따라 자발적 선택형, 자기 합리화된 자발적 선택형, 비자발적 유형을 구분하고 공식성 여부에 따라 공식형과 비공식형을 나누었다. 직업위세에 따라서는 상위 층, 중위층, 하위층을 구분했고 시대성과 관련하여 전통적 비정규형과 새로운 비정규형을 나누었다. 이동가능성에 따라 가교형과 함정형을, 성별에 따라 남 성편중형, 여성편중형, 성중립형 등으로 세분화했다. (이병훈, 24) 이런 유형분 류는 정성적이고 표준적인 관점의 노동, 고용의 개념으로 포착되기 어려운 변 화가 얼마나 깊고 다양하게 진행되고 있는지를 보여주는 한 지표이기도 하다.
이병훈의 다음과 같은 말은 이런 현실을 잘 언급한 것이라 할 수 있다.
많은 경우 정상적인 범주에 포함되지 않는 노동, 단순한 일은 제도적인 보호 대상에서 배제되어 있다. 현재 비정규직의 설움을 이야기하는 것이 정규직의 안정성과 대비되고 있는 것도 각종 법적, 정치적 보호막이 정상/비정상의 영역 구분을 따라 이루어지고 있는 상황을 반영한다. 하지만 “비정규노동이 전체 노 동시장의 1/2 정도로 추정되는 현재 시점에서 포드주의 노동체제에서 적용되었 던 고용형태가 보편적으로 지배적인 노동유형 – 정형 혹은 전형이라는 이름으 로- 기준으로 여전히 유효하게 사용된다는 것은 유연화되고 다각적으로 변화되 고 있는 노동시장의 특성을 반영하지 못하게 된다. 뿐만 아니라 어떤 노동형태 가 전통적, 통상적, 표준적, 전형적이라는 인식은 노동형태의 변화가능성을 간 과할 수 있으며 새롭게 등장하는 노동형태가 지배적이 될 수 있다는 가능성을 차단할 수 있다.”26)
26) 이병훈, 윤정향 “비정규 노동의 개념정의와 유형화에 관한 연구”, [산업노동연구] 7-2,
4. 전망과 과제
현재 기술 환경과 노동 상황에 대한 여러 논의들은 한 가지 점에서는 공감대 를 이루는 것 같다. 그것은 기존의 개념과 방식, 제도적인 틀의 적실성, 타당성 은 상당히 약화되었고 새로운 형태의 인식, 관행, 제도의 마련이 불가피하다는 점이다. 이를 거창하게 패러다임의 전환으로 주장하는 사람도 있고 좀더 구체 적인 개혁과제들을 지적하는 논자들도 있지만 시각의 전환, 문제의식의 공유가 필요하다는 점은 대체로 공감하고 있다. 어떤 대응이 필요한지, 어떤 방향으로 개선책이 마련되어야 하는지에 대해서는 여러 가지 견해가 나타나고 있지만 대략 다음과 같은 세 가지를 주목할 필요가 있다고 생각된다.
4.1 개념지체와 혼란의 정비
우선 4차 산업혁명에 걸 맞는 일/노동 개념의 재구성이 절실한 과제다. 기존 의 노동개념으로는 포착하기 어려운 다양한 현상이 확인되고 있고 부분적으로 그에 대응하는 논의가 없지 않지만 산업화시대에 형성된 개념과 담론의 영향력 을 벗어나지 못한 개념지체가 해결되어야 할 지적 과제로 부각되고 있기 때문 이다. 단순화해서 본다면 현재 노동관련 상황에 대한 대응은 전통적인 일=노동 패러다임을 강화할 것인가 아니면 새로운 형태의 패러다임 구축을 지향할 것인 가로 나뉘어질 수 있을 것 같다. 이러한 견해차는 이론적인 것임과 동시에 정치 적인 것이고 또 경제적인 이해충돌이 얽힌 복합적인 것이어서 쉽게 정리되기는 어렵다. 그런데 과학기술과 세계화, 고령화 등으로 전례없는 변화를 경험하고 있는 상황에서 새로운 시대상을 포착할 적절한 개념과 인지구조가 마련되어있 는가 하는 점을 물어볼 필요가 있다. 관련된 논의들이 정치적 대립이나 이념적 인 선호, 이익갈등의 차원에 머물지 않고 정치한 토론과 지적인 전망을 갖추려 면 개념적 재구성의 노력이 절실하다고 생각되는 이유이기도 하다. 노동의 정
2001, 16쪽..
상성을 중시하는 입장에서는 최근 기술효과에 대한 논의가 다소 과장되어 있으 며 노동패러다임을 대체할 새로운 논의들은 성급하거나 비현실적이기 쉬운 것 으로 간주될 수 있다. 실제로 고용과 취업, 노동권의 보장 등이 여전한 쟁점이 되고 있는 한국사회에서는 정상적 노동관계의 확산, 비정규직의 정규직화가 더 욱 중요한 과제로 부각되고 있다. 특히 노동시장의 유연화 조치를 노동에 대한 자본의 권한강화조치로 이해하고 자본주의의 위기를 신자유주의적인 방식으로 대응하려는 정책으로 이해하는 시각에서는 노동의 정상성을 여전히 중요한 원 리로 수용한다. 법적으로도 노동법의 적용대상을 결정하기 위해서 일정한 선을 그어야 할 현실적 필요성도 존재한다. 변화하는 노동현실을 포착한다는 명분으 로 노동의 정상성을 무시하는 것은 ‘함정’에 빠지는 일이라고 말하는 전문가들 도 적지 않다. 실제로 자본주의의 위기, 신자유주의 세계화 국면에서 자본과 기 업의 이윤극대화 전략으로 강조되는 측면이 분명히 있다.
하지만 ‘일 중심 패러다임’의 근본적인 혁신, 변화를 요구하는 논의의 적실 성을 무시할 수는 없다. 비전형적인 일에 종사하는 사람들, 플랫폼을 배경으로 분산되어 이루어지는 활동들, 자기관심을 좇아 독특한 생활방식을 고집하는 사 람들, 심지어 게으름뱅이로 규정되는 사람들이 단순히 ‘실패한 자’나 ‘부적응 자’ 또는 ‘산업예비군’이 아닌, 새로운 삶의 존재형태일 수 있을 가능성을 배제 할 수는 없다. 전형성으로부터 벗어나는 일의 유형들이 어떤 미래적 전망을 지 닐 수 있는지, 기존의 일 중심 패러다임이 놓치고 있는 부분은 무엇인지에 대해 개방적이고 열린 시야를 견지할 필요가 있다. ‘노동을 대체하는 기술’의 등장 이 우리를 위협할 빅브라더인지, 아니면 공공의 이익을 확대시켜줄 빅산타일지 를 추상적으로 예단하기 앞서 이것이 초래하고 있는 현실적인 상황변화를 열린 시야로 평가하는 일이 중요하다. 그러려면 디지털화에 대한 과잉기대, 장밋빛 선전에 빠지지 않으면서도 단순히 일자리의 증감으로 환원되지 않는 삶의 총체 적 조건의 변화, 일과 부의 창출방식의 전면적 혁신가능성에 대한 진지한 탐구 가 중요하다. 이를 위해서는 당장의 정책적 논의와는 거리가 있더라도 개념적 도구들을 전면적으로 재검토하면서 미래지향적인 개념화, 담론적 재구성, 언어 싸움에 관심을 기울여야 한다. 기계와 인공지능에 의해 단순노동, 반복노동, 필
수노동이 대체될 가능성이 높아지는 효과가 생계형 노동패러다임을 벗어나 혁 신적인 삶, 자기실현적 일을 구상할 수 있는 대안적 양식을 가져올 수 있을지에 대한 열린 토론, 창의적 대응이 가능한 지적 대응이 진지하게 모색되어야 한다.
그렇게 될 때 울리히 벡을 비롯하여 위험사회론, 피로사회론 등자본주의 문명 비판론의 문제의식과도 상통하는 이론적 논의가 가능해 질 것이다.
4.2 노동윤리와 시민성의 재구성
쉼 없이 다양한 일에 참여하고 있지만 “무슨 일을 하세요?”라는 질문이 강박 이 되는 시대는 무언가 잘못된 것이다. 강력한 조직에의 귀속, 제도적으로 보호 되는 정상노동, 이익을 지켜주는 노동조합과 법제 등에서 벗어나 있는 사람들, 그들은 어떻게 자신의 생활방식에 대한 자존감과 정체성을 유지할 수 있는가?
경제적 보상과 직결된 노동의 영역과 별도로 모든 인간의 존엄성을 보장하는 시민적 권리는 어떻게 제도화되어야 하는가? 우리 주변에서 일상적으로 접하는 비정규, 비정상, 그림자 노동은 ‘정규직화’ 되어야만 하는 비정상적 노동인가?
출퇴근의 시간감각과는 전혀 다르게 일상을 구성하고 있는 잉여자들, 덕후들, 괴짜들, 예술가들의 생활방식은 어떻게 평가되어야 할 것인가?
이 점에서 시민과 노동자, 시민성과 노동의 관계를 다시 검토해 보는 것이 필요하다. 시민은 현대민주주의 사회에서 가장 중시되는 헌법적 주체이지만 경 제적인 생활보장이 뒷받침되어야만 실질적인 주체가 될 수 있다. 고대 그리스 에서처럼 오늘날의 시민적 존재는 노동으로부터 면제되어 있는 비노동층일 수 없다. 하지만 시민적 존재가 노동하는 존재로 동일시되거나 환원될 수 있는 것 은 아니다. 노동이 수고와 고통의 이미지를 수반하기 때문만이 아니고, 경제적 인 기반과는 별개로 확보되어야 하는 사회정치적 요소가 시민성이기 때문이다.
실제로 생계유지에 거의 전 시간을 할애하고 모든 삶을 경제적 이윤으로 파악 하는 노동중심의 논리로는 시민적 덕목을 보장할 수 없다. 시민의 시민됨은 그 러한 생계노동으로부터 벗어날 수 있는 시간적, 물질적, 신분적 여유를 바탕으 로 하는 것이고 고용관계로부터 자유를 얻으려는 유연함, 자율성, 독자성에의
욕구가 불가피하게 포함된다. 이런 시각을 현대 자본주의 질서에 대입하여 본 다면 시민적인 역능성, 존재감은 생계가 보장된 이후의 문제라는 것이기도 하 다. 삶의 거의 전 시간을 임금소득을 위한 노동에 투여해야하는 사람들은 시민 적인 덕성을 발휘할 여유를 갖기 어렵기 때문이다27). 이런 맥락에서 앤쏘니 기 든스는 산업적 권리를 시민권의 주요한 내용으로 포함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다시 말해 일하는 자들이 생산부문의 작업현장에서 그리고 그 외의 영역에서 사용자측과 책임있는 단체교섭을 할 수 있는 권리를 시민권의 일부로 인정해야 한다는 것이다28). 이러한 ‘산업적 시민권’이 여러 영역에서 구현될 수 있도록 노력하는 것이 필요하다.
동시에 새로운 시민권, 시민적 존재양식의 차원에서 전통적인 노동윤리, 일 의 함의를 재구성하는 노력도 필수적으로 요구된다. 디지털화와 기술혁신의 결 과 현재 한국사회도 전반적인 노동시간 단축, 휴가의 보장, 일자리 나누기 등이 절실한 과제로 부각되고 있다. 이런 상황에서 경제활동과 자유로운 활동의 균 형있는 시간 배분이 이루어져야만 시민적인 권리가 보장될 수 있다. 비생산적 이라고 간주되는 활동까지 포함하여 삶의 여러 행위, 활동의 다차원적 의미를 새롭게 수용하는 개념적 재구성이 필요한 것이다. 또 일을 정규직 중심의 정상 노동과 동일시하고 이로부터 벗어난 생활양식을 부정적으로 간주하는 문화적 인 압력도 재조정할 필요가 있다. “일하지 않는 자는 먹지도 말라”는 근면주의 적 관점이 지닌 긍정적 함의를 유지하면서도, 자칫 그것이 정상적 노동형태로 부터 벗어난 다양한 일들, 생활방식들을 폄하하거나 배제하고 차별하는 근거가 되지 않도록 의미의 재해석, 재구성 작업이 이루어져야 한다. 막스 베버의 자본 주의 정신에 대한 논의도 노동예찬론으로만 생각해서는 곤란하다. 한국사회의 근면주의는 근대화 과정에서 근검과 절약, 저축과 경영의 행동양식을 강화시켰 고 결과적으로 세속적 성공의 요소로 작용했다. 하지만 그러한 초기산업화 방 식의 노동윤리는 더 이상 현실적합성이 떨어진다. 이미 소비가 미덕인 시대를 넘어서, 놀이와 게임이 거대한 부가가치 창출의 소재가 되고 네트워크가 새로
27) 기본소득제에 대한 논의도 이런 맥락에서 고찰될 수 있다. 이명현, “시민권과 기본소득:
호혜성 원리 중심의 고찰,” [사회보장연구] 26권 4호, 2010.
28) 최장집, “노사관계의 민주화와 산업적 시민권의 실현을 향하여,” [노동사회] 192, 2017.
운 플랫폼 경제의 인프라가 되는 시대에 접어들었다. 따라서 근대적인 노동윤 리의 틀을 넘어서 일과 삶, 노동과 휴식, 생산과 놀이의 경계를 넘나드는 유연 한 관점, 혁신적 이해가 불가피하다. 베버의 논지 역시 노동과 일을 신이 부여 한 소명, 가치의 대상으로 본 자들의 역동성과 혁신성이었다는 점을 유념해 볼 필요가 대두된다. 디지털 환경과 세계화된 상황을 배경으로, 일하는 자로서의 노동자 의식과 자율적 주체로서의 시민적 자의식, 그리고 여가와 즐거움을 원 하는 유희적 존재성을 어떻게 결합할 수 있을지에 대한 전면적이고 혁신적인 토론, 상상, 실천이 필요할 것이다.
4.3 관련법 및 제도의 조정
디지털화가 새로운 일의 환경, 노동의 질적 전환을 가져오는 상황에서 기존 이 노동관련 법제 및 노동정치 체제 전반의 변화도 불가피하다29). 근로시간, 근 로제공방식, 장소, 임금산정 및 지불방식, 단결권, 노동조합 위상, 노사관계, 노 동정치 등 거의 모든 영역에서 견지해야 할 것과 변해야 할 것, 유연화가 불가 피한 것과 제도적 보호가 필요한 것 등을 새롭게 파악하는 시각이 필요하다. 비 동시적이고 탈중심적으로 제공되는 유연한 노동, 아웃소싱에 의한 생산 및 물 류기지 이전, 노동자가 스스로 자신의 업무과제를 찾아내고 조직함으로써 지휘 명령으로부터 벗어나고 있는 현상 등을 노동의 안정성과 혁신성, 자율성의 맥 락과 새롭게 결합시키는 지적 노력이 필요한 것이다.
현재 논란이 되고 있는 법적, 제도적 쟁점은 오랫동안 지속되어온 낯익은 것 들이지만, 그 전형적 쟁점화에 뭍혀 필요한 제도적 혁신을 놓치지 않도록 해야 할 것이다. 노동자의 개별적 권리와 관련해서는 파견근로자 보호 등에 관한 법 률에 뒤이어 특수형태근로종사자에 대한 법적 보호를 어떻게 할 것인지, 택배 기사, 학습지교수, 보험설계사, 골프장 경기보조원 등 일시적이고 유동적인 노 동형태는 어떻게 권리주체로 자리매김할 것인지 문제다. 노사관계와 관련해서 는 노동조합 중심의 관행으로 포괄되지 못하는 각종 비정규직화의 문제, 아웃
29) 이준희, “4차산업혁명 시대와 노동법의 과제,” KEF Comensation Quartely, Spring, 2017.
소싱의 문제 등을 어떻게 다룰 것인지, 노동의 개별화, 이질화가 조합의 조직률 하락현상으로 나타나는 상황에서 주변적 노동형태들의 이해를 어떻게 대변할 것인지 등도 큰 쟁점이다. 근로시간 법규, 임금산정 및 지급방식관련 법규, 휴가 및 휴게 관련 법규, 사업장 안전보건 및 산재관련 법규, 근로자 개인정보 보호 조치 등이 모두 급변하는 디지털 환경과 일의 성격변화로부터 자유롭지 못한 쟁점들이다.
이 모든 논의는 결국 노동하는 주체를 어떻게 개념화할 것인가의 문제로 귀 착된다. 노동의 정상성에 기초하여 확립된 지금의 개념으로는 달라지고 있는 현실을 충분히 포괄하기 어렵다는 점을 인정하고, 현재의 법규가 정의하고 있 는 근로자, 사업, 사업장 등의 개념을 재구성해야 한다. 예컨대 한명의 근로자가 다수의 사용자와 근로계약관계를 맺고 동시 또는 순차로 근로를 제공하는 사 례, 근로자의 업무수행 자율성이 높아지고 경제 기술적 독립성이 높아지면서 근로계약관계의 종속성이 약화되고 있는 상황, 근무 장소가 다양화하고 유동화 함으로써 사업장의 개념이 크게 달라지는 현실, 임금의 결정방식이나 지급형태 가 다원화하는 것 등 진행되고 있는 일의 다양화, 다종화, 유연화 전반을 열린 관점에서 포착하려는 노력이 요구되는 것이다. 임금과 직결되지 않은 다양한 일들에 대한 사회적 보호나 지원도 고려되어야 한다. .
현재 법체계 상 에서도 개념적 혼용, 전환, 상충, 미끄러짐을 찾아보기 어렵 지 않다. 헌법, 근로기준법, 고용정책기본법, 직업안정법 등에서 사용되는 개념 의 편차가 존재한다. 예컨대 헌법상의 노동기본권에는 ‘근로’라는 말이 사용되 고 있고, 근로기준법에서도 근로자와 사용자라는 어휘가 사용된다30). 근로자는
‘직업종류와 관계없이 임금을 목적으로 사업이나 사업장에 근로를 제공하는 자’라고 규정되어 있고 사용자는 ‘사업주 또는 사업경영담당자’라고 되어 있다.
근로는 정신노동과 육체노동의 두 유형으로 분류되고 근로계약이란 ‘근로자가 사용자에게 근로를 제공하고 사용자는 이에 대하여 임금을 지급하는 것을 목적 으로 체결된 계약’으로 규정되어 있다. 노동자는 노동력 제공과 임금지불을 약
30) ‘근로’라는 말에는 노동이라는 말과는 달리 수고와 고통, 땀흘려 일하는 육체노동이라는 의미가 덜 내포되어 있다. 따라서 특정한 정치적, 이데올로기적 함의 없이 통시대적으로 활용되는 어휘이다. 김경일, 앞의 책, 212-214쪽.