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 일=노동 패러다임의 변화
3.1 자본주의적 노동윤리의 성찰
노동이 공적인 활동이자 사회적 이슈가 되는 과정은 가정의 일, 여성의 삶, 소수자의 생존이 공적인 영역에서 배제되어온 역사와도 일치한다. 기업과 공장, 국가와 노동이 중시되던 근대의 흐름은 사적 영역, 가정과 친교, 봉사와 돌봄의 일들을 사소하고도 부차적인 자리로 밀어내는 과정이기도 했다. 생산이 중시되
21) 데이비드 프레인, 정상미 옮김, [일하지 않을 권리], 동녘, 2017. 309쪽.
고 효용이 강조되며 부가가치창출에 주목하는 문화 속에서 비생산적이고 효용 성이 낮은 활동은 무시되기 십상이었다. 마르크스는 생산을 수행하는 노동을 가치의 핵심이라고 보았고 스미스는 분업의 발달과 더불어 분절된 노동행위가 중요한 생산요소라는 점을 강조했다. 비록 노동의 미래를 보는 관점에서 스미 스와 마르크스는 크게 달랐지만 생산적 노동을 중시하고 비생산적 노동을 경시 한 점은 기본적으로 같았다.22) 막스 베버의 ‘프로테스탄트 윤리와 자본주의 정 신’이 새롭게 읽혀지고 논의되는 이유도 여기에 있는 것으로 생각된다. 즉 베버 가 강조한 것은 일과 노동을 도덕적으로 또 윤리적으로 당연시하게 만드는 독 특한 문화기제가 어떻게 근대의 출현과 더불어 형성되었는가 하는 점이었다.
프로테스탄트 윤리의 특징에 착목하여 베버는 열심히 일하는 것, 생활비를 벌 기 위해 최선을 다하게 하는 ‘도덕적 강제’를 내면에서 수용하는 인간형이 출현 하는 것이 서구 자본주의의 핵심적 조건이었음을 밝혀냈다. 베버의 논지에 바 탕을 두고 노동은 사회적으로는 물론이고 개인의 심성에서도 정상적 삶의 핵심 요소가 되었다. 매일 규칙적으로 출근하고 정해진 절차에 따른 업무를 수행하 고 그에 따른 급여로 가정의 생계를 이끌어가는 일상생활의 형성이 이로 인해 이루어지는 것이다.
일과 노동의 개념 차이를 주목하는 최근의 글들은 대체로 일=노동 패러다임 이 오늘날 진행되고 있는 디지털 환경, 자동화와 정보화와는 정합적이기 어렵 다는 점을 강조한다. 그것은 단순히 기술진보가 일자리를 빼앗아 가리라는 부 담 때문만은 아니다. 오히려 노동의 영역을 벗어나 지속적으로 다양해지고 있 는 일의 영역을 전형적인 일=노동 패러다임이 제대로 포착하지 못한다는 인식 론적 문제가 커지고 있다. 고도의 생산력발달이 일=노동 패러다임으로부터 벗 어난 새로운 삶의 양식을 창출해줄 가능성에 대한 논의도 제한되고 있다. 아렌 트는 일찍이 ‘과학기술의 발전이 인간조건에 심대한 영향을 미칠 것’임을 지적 했다. 그녀는 [인간의 조건]에서 ‘자동화는 몇십년 안에 공장을 텅 비게 만들 것 이고 인간을 노동과 필연성에의 구속이라는 가장 자연적이고 오래된 속박으로 부터 해방시킬 것’이라고 주장했다. 그런 논지의 바탕위에서 ‘우리는 노동이 없
22) 톰 던롭, 위의 책, 35쪽.
는 노동자의 사회를 생각해야 할 사태에 직면해 있다’고 주장했다. (53) [노동의 종말]이란 책을 썼던 제프리도 결국 3차 산업혁명 이후의 자동화, 컴퓨터화, 기 술혁신이 시대적 전환을 가져오리라고 언급했다. 미래학자로 알려져 있는 앨빈 토플러는 [미래쇼크] 또는 [부의 미래], [제3의 물결] 등에서 과학기술혁명이 초 래할 수 있는 다양한 사회변화를 예시한 바 있다. 던롭은 ‘일을 우리 존재의 중 심으로까지 끌어올린 것은 거의 일종의 정신병적 현상’이라고까지 언급하는데 (54) 이것은 제조업 기반 경제의 형성이라는 근대자본주의 특유의 사회구조, 생 활양식과 밀접한 관련이 있다는 것이다. 아렌트의 시각을 기본적으로 수용하고 있는 던롭의 다음과 같은 말은 현 시점에서 겪고 있는 변화를 잘 지적하고 있 다.
나는 지금 만일 기술이 일부 사람이 주장하는 방향으로 발전해 많은 일자리 가 사라지게 된다면, 우리는 결국 노동과 일에 대한 생각을 바꾸지 않을 수 없 게 될 거라는 말을 하는 것이다. 아마 시민으로 산다는 것과 직업을 갖는다는 것을 동일시하는 노동관을 포기해야 할 것이다. 그러니까 우리는 지금 세상을 뒤바꿔놓을 모순 속으로 뛰어들고 있는 것...,
데이비드 프레인의 [일하지 않을 권리]는 이러한 일=노동 중심의 패러다임에 대한 가장 직접적인 비판이자 반론이라 할 수 있다23). 그는 노동윤리에 대응하 는 “쓸모의 윤리”를 강조하면서 사회구성원은 다양한 방식으로 자신의 쓸모를 증명할 수 있다고 주장한다. 그의 주장을 장황하게 살펴볼 필요는 없으나 책의 목차제목만을 살펴보아도 대략적인 논지를 알 수 있다. “일하는 괴로움”(2장) 때문에 “일이 우리를 지배하는 힘”(3장)을 갖게 되었고 “일하는 이유”(4장)가 매 우 수동적이고 타율적이 되고 말았지만, 최근의 사회적 기술적 변화가 가져다 주는 “단절점” (5장)을 잘 통과하면 “대안적 즐거움”(6장)이 발견될 수 있고 “제 구실 못하는 사람”(7장)으로 낙인찍혔던 사람들도 자신감을 갖고 “도피에서 자 율로”(8장) 옮겨 갈 수 있다는 것이다. 그의 책제목에 사용된 ‘일하지 않을 권
23) 데이비드 프레인, 정상미 옮김, [일하지 않을 권리], 동녘, 2017.
리’는 보다 자율적이고 창의적인 일을 추구할 수 있는 권리의 또 다른 표현인 셈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