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검색 결과가 없습니다.

정상적 노동개념의 해체?

문서에서 지속 (페이지 19-22)

3. 일=노동 패러다임의 변화

3.3 정상적 노동개념의 해체?

이런 관심 변화가 가져오는 또 하나의 중요한 결과는 정상적 노동이란 개념 이 약화되는 것이다. 흔히 ‘정규직’이라는 말로 지칭되는 정상적 일자리, 그와 연결된 노동의 정상성은 대체로 풀타임, 상용, 직접고용, 안정적 임금. 교육훈 련, 복지, 노동법의 보호 등을 포함하는 노동형태를 가리킨다. 직업의 안정성이 보장되고 그로 인해 생계의 불안정을 크게 염려하지 않아도 좋은 노동을 가리 킨다. ‘정규직화’를 내건 정치적 슬로건이 대중의 지지를 받는 최근 상황에서 볼 수 있듯이 노동정책, 노동법, 노동운동의 중요한 목표로서 사회적으로 폭넓 은 공감을 얻고 있는 가치이기도 하다.

정상적 노동이라는 개념은 일 중심으로 삶을 이해하는 근대사회의 생활세계 와 조응한다. 모든 개인은 일정한 양육과 준비기를 거쳐 사회로 진출하게 되는 데 사회진출의 핵심이 ‘직업’을 얻는 일이고 그것은 곧 정규노동의 담당자가 되 는 것을 의미한다. 상시적으로 고용되어 소속감을 갖고 정기적인 급여를 받음 으로써 개인 및 가족의 생계를 영위하는 것이 이런 정상성의 또 다른 측면이다.

개인적으로는 일생을 거쳐 특정한 일의 영역에서 전문성을 키우고 승진의 기회 를 가지며 생활수준을 높여갈 꿈을 가질 수도 있다. 직장은 그런 의미에서 정상 적인 사회생활, 시민적 존재양식의 바탕으로 여겨진다. 직장을 갖지 못하는 것, 가졌더라도 정규직이 되지 못하는 임시직, 비정규직은 부분적이고 불완전한 사 회인이 되는 것으로 간주되고 퇴직은 공식적인 사회생활로부터의 은퇴를 의미 하는 것이 된다. 자동화와 기계화로 인해 정규직 일자리가 늘어나는 효과도 급 감하고 노동방식도 점점 더 유연해 짐으로써 제도적인 보장효과도 약화되는 경

향을 보인다. 노조의 결속을 통해 안정성을 확보하는 전통적 전략도 이들의 노 조조직률에서 알 수 있듯 대부분의 노동형태를 포괄하지 못한다. 4차 산업혁명 이 미칠 일자리 감소효과에 대한 광범위한 염려도 이런 맥락과 직결되어 있다.

던롭의 다음과 같은 말은 현재의 변화가 노동의 정상성을 크게 뛰어넘는 차원 에서 전개되고 있음을 지적한다.

2007년과 2008년의 금융위기로 발생한 전 세계적인 경기침체는 단순히 일반 적인 경기순환 내의 또 다른 경기 저점이 아니라 우리가 ‘정상적’이라고 생각하 는 예전 것들로부터의 완전한 일탈이다. 그러니까 우리가 해온 일 (생활수준이 라는 개념을 뒷받침하는 유급 노동)을 해온 방식이 그 뿌리부터 근본적으로 변 화하고 있는 것이다. 이는 제조업을 통해 이루어지던 부의 창조가 이제는 육체 노동을 별로 필요로 하지 않는 금융, 지식, 기술 산업을 통해 이루어지고 있는 것과도 일부 관련이 있다. 그러나 일과 취업의 본질이 이렇게 변화하고 있음에 도 불구하고 직업윤리는 여전히 통용되고 있어 일에 대한 우리의 사고방식을 계속 왜곡시키고 있다.

노동의 정상성 개념이 약화되는 것은 “비정상적” 노동형태들에 대한 여러 개 념화가 시도되고 있는 데서도 확인된다25). 불안정 고용, 비정규직, 임시직 등으 로 불리는 일의 형태가 급증하면서 이러한 범주를 새롭게 개념화하려는 시도도 늘어나고 있다. 현재 비정규/비정상/주변부 노동을 가리키는 말들을 꼽아보면 파트타이머, 임시노동, 계약노동, 계절노동, 파견노동, 원격노동, 호출노동, 프리 랜서 등 다양하다. 영어로도 다양한 표현들 – contingent, non-standard, temporary, atypical, flexible, market-mediated, nontraditional, alternative, marginal, precarious, disposal, secondary이 사용된다, 정상과 비정상으로 나누는 방식 대신 유연노동 이라는 이름을 사용하기도 하고 프레카리아트라는 새로운 어휘를 만들기도 한 다. 심상완은 이런 범주에 속하는 노동을 비정규/ 비전형/ 비정형의 세 하위유

25) Arne L. Kalleberg, “Non-standard Employment Relations: Part-time, Temporary, and Contract Work,” Annual Review of Sociology, 2000, 26: 341-65.

형으로 나누어 살펴볼 것은 제안하고 있다. 비정규노동은 사회적 권리나 보호 로부터 배제된 노동을, 비전형 노동은 전형적인 고용관계로부터 이탈한 노동을, 비정형노동은 고용형태의 고정성이 없거나 미약한 노동을 대상으로 한다고 했 다. 이병훈은 이보다 좀 더 분석적으로 더 많은 차원에서 노동의 비정규화가 진 행되는 다양한 면모를 포착하고자 시도했다. 그는 직무특성에 따라 정규적 보 완형, 정규직 대체형, 정규직 별개형을 구분하고 보장체계에 따라 일부보장(정 규직 일치), 일부보장(정규직 불일치), 미보장으로 나누었다. 또 고용자발성에 따라 자발적 선택형, 자기 합리화된 자발적 선택형, 비자발적 유형을 구분하고 공식성 여부에 따라 공식형과 비공식형을 나누었다. 직업위세에 따라서는 상위 층, 중위층, 하위층을 구분했고 시대성과 관련하여 전통적 비정규형과 새로운 비정규형을 나누었다. 이동가능성에 따라 가교형과 함정형을, 성별에 따라 남 성편중형, 여성편중형, 성중립형 등으로 세분화했다. (이병훈, 24) 이런 유형분 류는 정성적이고 표준적인 관점의 노동, 고용의 개념으로 포착되기 어려운 변 화가 얼마나 깊고 다양하게 진행되고 있는지를 보여주는 한 지표이기도 하다.

이병훈의 다음과 같은 말은 이런 현실을 잘 언급한 것이라 할 수 있다.

많은 경우 정상적인 범주에 포함되지 않는 노동, 단순한 일은 제도적인 보호 대상에서 배제되어 있다. 현재 비정규직의 설움을 이야기하는 것이 정규직의 안정성과 대비되고 있는 것도 각종 법적, 정치적 보호막이 정상/비정상의 영역 구분을 따라 이루어지고 있는 상황을 반영한다. 하지만 “비정규노동이 전체 노 동시장의 1/2 정도로 추정되는 현재 시점에서 포드주의 노동체제에서 적용되었 던 고용형태가 보편적으로 지배적인 노동유형 – 정형 혹은 전형이라는 이름으 로- 기준으로 여전히 유효하게 사용된다는 것은 유연화되고 다각적으로 변화되 고 있는 노동시장의 특성을 반영하지 못하게 된다. 뿐만 아니라 어떤 노동형태 가 전통적, 통상적, 표준적, 전형적이라는 인식은 노동형태의 변화가능성을 간 과할 수 있으며 새롭게 등장하는 노동형태가 지배적이 될 수 있다는 가능성을 차단할 수 있다.”26)

26) 이병훈, 윤정향 “비정규 노동의 개념정의와 유형화에 관한 연구”, [산업노동연구] 7-2,

문서에서 지속 (페이지 19-22)

관련 문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