디자인의 여러 양상들
금 빛 내 렴*
1)
Ⅰ. 머리말
Ⅱ. 칸트 미학 내 디자인에 관한 고찰
1. 칸트의 학적 체계에 대한 디자인적 은유 2. 판단력비판 내 예술의 분류와 디자인 3. 판단력비판 내에 있는 디자인의 모습들
⑴ 선(線)과 패턴 관련
⑵ 조형 관련
⑶ 색과 소리 관련
⑷ 디자이너 관련 역할 및 경고
Ⅲ. 맺음말
* 강원대학교 강사
* DOI http://dx.doi.org/10.17527/JASA.50.0.08
Ⅰ. 머리말
한때 “기술이 경쟁력이다”라고 외쳤던 때가 있었다. 이 말은 여전히 유효하 지만 그에 못지않게 “디자인이 경쟁력이다”라는 말이 말머리로 떠오른 지도 이미 오래 되었다. 이러한 표어들은 산업이 주도하는 사회 속에서 자본의 논리에 따라 기술과 디자인이 영리의 수단화로서 얼마나 강조되고 있는지를 보여주는 예이다.
그러나 이제 디자인은 더 이상 산업사회의 부가적인 개념이나 사업 및 기업 운영 의 보조수단으로서가 아니라 문화적 상징들을 창조하는 데 관여하는 인간의 전반 적인 활동으로서 그 인식이 확대되고 있다.
그런데, 아마도 인류 최초의 디자인은 석기시대 도구의 제작에서 찾을 수 있을 것이다. 흥미롭게도 이와 관련하여 우리는 칸트가 판단력비판에서 직접적 으로 ‘돌도끼’라고 지칭하고 있지는 않지만 “석기류(石器類, steinernen Geräte)”를 언급하고 있음을 찾아볼 수 있는데, 그는 석기류를 “어떤 의도 및 일정한 목적”과 관련시키고 있다.
가끔 고분(古墳)에서 발굴되는 석기류에는 손잡이를 끼우기 위한 것으로 보 이는 구멍이 있는데, 이러한 석기류는 그 형태에서는 분명히 하나의 합목적 성을 보여주고 있고, 우리는 그 목적을 알지 못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리는 그 때문에 이 석기류를 아름답다고 언명(言明)하지는 않는다 … 그 러나 우리가 이러한 석기류를 하나의 기술[기예, 예술] 작품(Kunstwerk)으 로 간주한다고 하는 사실만으로도 이미, 우리가 그것의 형상을 어떤 하나의 의도와 일정한 목적에 관련시키고 있다고 함을 승인하지 않을 수 없게 하 는 데에 충분하다.1)
이런 ‘목적’ 개념을 전제로 하는 예술 분야가 디자인인 바, 우리는 일련의 연 1) KdU, §17, 61주. 참고로, 이 글에서 칸트의 책 Kritik der Urteilskraft를 판단력비판, 제3비판서 또는 약호인 KdU로 표기한다. 아울러 §는 절(節)을, 숫자는 원서 2판의 쪽 수를 나타낸다.
구에서 칸트의 판단력비판을 통해 디자인을 고찰할 수 있음을 보게 된다. 칸트 는 비록 현대적 의미의 ‘디자인’이란 말을 지칭하지는 않았으나 이미 제3비판서에 서 ‘자유미’와 ‘부속미’를 구분하면서 디자인과 관련된 목적 개념을 잘 부각시키고 있는데, 여기에서 우리는 ‘부속미로서 디자인’에 관한 의미를 고찰할 수 있는 것이 다.2) 또한 우리는 그의 책 판단력비판 뿐 아니라 순전한 이성의 한계들 안의 종교, 그리고 칸트 미학에 대해 비판적 고찰을 한 데리다의 회화 안의 진리를 통해서도, 디자인을 ‘파레르곤’의 개념에 맞추어 분석하면서 디자인이 단순히 인간 삶에 장식적인 것이 아니라 우리의 삶 자체를 부가적으로 완성시키는 ‘파레르곤 으로서 디자인’에 관해서도 숙고할 수 있다.3)
이러한 앞선 연구들은 칸트 미학에서 디자인 일반에 관한 넓은 의미의 보편 적 특성을 도출하는 데 커다란 의의가 있는 것들이다. 하지만 디자인 개개 산물 에 대하여서는 상세히 주목하지 못했다는 아쉬움을 남긴다. 이에 본 논문은 디자 인 산물 자체에 초점을 맞추어 칸트가 당대의 산물을 어떻게 바라보고 이해하였 는지 살펴보고자 한다. 물론 칸트가 살았던 시대의 상황은 현재 우리가 살고 있 는 시대와 판이하게 다르며, 근대의 산업 디자인 개념을 갖고 인공물들이 활발히 양산되었던 것도 아니다. 하지만 인공의 산물로서 기예(기술, 예술, Kunst)에 대 한 칸트의 비평은 현대의 디자인 산물에 대해 온고지신의 시도를 통해 새롭고 의 미 있는 시각을 제공할 수 있을 것이다.
우리가 칸트의 판단력비판에서 현대적 의미의 조형 및 시각(그리고 청각)
2) ‘자유미’와 ‘부속미’는 미의 두 가지 종류로서 칸트가 판단력비판 §16에서 구분한 것 이다. 본 논문에서 종종 ‘자유미’와 ‘부속미’가 언급되고 있는데, 이들 개념에 관한 구 분 및 ‘부속미로서 디자인’에 관한 고찰로는 다음 글을 참고하기 바람. 금빛내렴, 부 속미(부용미)로서 디자인의 의미 , 미학예술학연구 제28집, 한국미학예술학회 (2008), pp. 5-28.
3) ‘파레르곤(parergon)’ 개념은 칸트의 판단력비판 §14, 43에 ‘파레르가(parerga)’라는 복수형으로 등장한다. ‘파레르곤으로서 디자인’에 관해서는 다음 글을 참고하기 바람.
금빛내렴, 파레르곤으로서 디자인에 관한 고찰 : 칸트의 ‘파레르곤’ 개념을 중심으로,
미학예술학연구 제45집, 한국미학예술학회 (2015), pp. 243-281.
디자인에 해당하는 부분을 찾아 분석해 보고, 또한 각각의 장르별 특징도 함께 살펴보는 것은, 칸트 시대의 삶과 우리 시대의 삶이 별반 다르지 않음을 깨닫고, 디자인된 대상에 대한 과거와 현대의 관점과 기준이 어떻게 차이가 나고 연결될 수 있는지 알아보는 것도 나름 의미가 있기 때문이다.
Ⅱ. 칸트 미학 내 디자인에 관한 고찰
1. 칸트의 학적 체계에 대한 디자인적 은유
칸트가 애초에 순수이성비판과 판단력비판에서 건축학[건축술]을 언급 할 때, 물론 오늘날과 같은 건축 디자인과 직접적으로 연계된 것이 아니라, 학문 의 체계를 형성하는 방법을 은유로서 사용하고 있는 것은 사실이다.
“건축술(Architektonik)이란 것은 [학적] 체계를 구성하는 기술을 말한다. 체 계적 통일을 보통의 인식을 학(學)이도록 하는 것, 즉 인식의 한갓 집합(集 合)에서 하나의 체계를 만들어 내는 것이다. 그러므로, 건축술은 우리의 인 식 안의 학적인 것 일반의 이설(理設)이요, 따라서 그것은 필연적으로 방법 론에 속한다.”4)
4) KdrV, B860. 순수이성비판의 또 다른 곳에서는 다음과 같이 기록되어 있다. “인간 의 이성은 본성상으로 건축술적이다. 즉 그것은 모든 인식을 하나의 체계에 속하게 할 수 있다고 간주하고, 따라서 눈앞의 인식을 어떠한 체계 중에서 딴 인식과 합치시 키는 것을, 적어도 불가능하게 하지 않는 원리만을 허용한다”(KdrV, B502). “선험철학 이란 여기서는 단지 하나의 이념일 뿐이다(A13)/단지 한 학문의 이념[구상]이다(B27).
그리고 순수이성의 비판은 이런 이념에 대한 전설계(全設計)를 건축술적으로 그려(描) 야 한다”(KdrV, A13/B27). 참고로, 이 글에서 칸트의 Kritik der reinen Vernunft는 순수이성비판 또는 약호인 KdrV로 표기한다. 아울러 A는 1판, B는 2판을, 이어진 숫자는 원서의 쪽수를 나타낸다.
방금 인용한 것은 칸트가 순수이성비판에서 순수이성의 건축술을 설명한 부분이다.
칸트의 경우 건축술은 일차적으로 특히 ‘순수 이성의 건축술’로서 다양한 이 성적 인식 속에서 체계적 통일을 수립하는 방법을 의미한다. 지식의 단순한 집적 과는 구별된다. 체계란 하나의 이념 하에 세워지는 다양한 인식의 통일을 의미한 다.5) 이념에 따라서만, 즉 이성이 아프리오리하게6) 부과한 목적에 따라서 구상되 는 경우 “건축술적(architektonisch)”이라고 불리는 바, 후자만이 건축술적 학문을 가능하게 한다.7) 칸트는 또한 자연의 이론적인 부분과 자유의 실천적인 부분의 연결 가능성을 말하기 위해서, 동일한 은유를 제시한다. “그는 그것을 예술로부터, 건축의 기술, 즉 건축술[지식체계론]로부터 빌려온다. 즉, 순수 철학자, 곧 형이상 학자는 훌륭한 건축가처럼, 즉 훌륭한 건설[체계수립, 교화(l'edification)]의 기예자 (technites)8)처럼 효력을 나타내야 할 것이다. 그는 일종의 예술가가 될 것이다.
자, 칸트에 따르면, 훌륭한 건축가는 무엇을 행할 것인가? 그 건축가는 무엇보다 도 지반, 기초, 토대를(du fond, de la fondation ou du fondement) 확고히 하지 않으면 안 된다.”9)
이는 형이상학의 체계를 세우는 학자를 예술가에 빗대어 설명한 것이긴 하 지만, 반대로 예술가에게도 적용할 수 있는 것이다. 곧, 예술가로서 (건축) 디자이 너는 확실한 토대를 갖고 있어야 하는 바, 이때 디자이너는 인식론적 토대와 기 술적 토대 둘 다를 겸비해야 할 것이다.
5) 사카베 메구미․아리후쿠 고가쿠 공동엮음, 칸트사전, 이신철 옮김 (도서출판 b, 2009), p. 18.
6) 라틴어 ‘a priori’는 ‘먼저’라는 뜻을 지니며, 칸트 철학에서는 ‘경험 이전에 성립함’ 또 는 ‘경험에서 비롯하지 않음’을 뜻하므로 우리말로는 ‘선험적’으로 옮기는 것이 타당하 나, 논자들 가운데는 독일어 transzendental을 ‘선험적’으로 옮기는 경우도 있어 우리 말 번역어로만 보아선 분간이 안갈 수도 있기에 여기서는 발음 그대로 ‘아프리오리’로 옮기고 문맥에 따라 ‘아프리오리한’ 또는 ‘아프리오리하게’로 표기한다.
7) 사카베 메구미․아리후쿠 고가쿠 공동엮음, 칸트사전, p. 19.
8) technites. 그리스어로 무언가를 제작하는 사람을 일컫는다. 직인(職人), 기술자, 예술가.
9) Jacques Derrida, La Vérité en peinture (Flammarion, Paris, 1978), p. 47.
“판단력도 그 자신 인식능력으로서 아프리오리한 원리들을 요구한다. 그러 므로 비록 이 판단력의 원리들은 순수철학의 한 체계에서 이론철학과 실천 철학의 중간의 특수한 부문을 형성하는 것이 아니라, 필요에 따라(im Notfalle) 그때그때(gelegentlich) 양 철학의 어느 것에도 병합될 (angeschlossen) 수 있는 것이기는 하지만, 만일 그러한 판단력의 비판이 순수이성비판의 한 특수한 부문으로서 다루어지지 않는다면, 순수이성의 비 판, 다시 말하면 아프리오리한 원리들에 따라 판단하는 우리의 능력의 비판 은 불완전한 것이 될 것이다. 왜냐하면, 그러한 체계가 형이상학이라고 하 는 일반적 명칭 아래에 언젠가는 성립되어야만(zustande kommen) 한다면 (그러한 체계를 아주 완전히 성취한다는 것은 가능한 일이요, 또 이성의 사 용을 위해서는 모든 점에서 극히 중요한 일이다), 비판은 이 [체계라는] 건 물의 어느 한 부분이 기울어져서[내려앉아(an irgend einem Teile sinke)], 그것이 건물 전체의 붕괴(Einsturz)를 불가피하게 초래하는 일이 없도록, 미 리 이 건물의 지반을 경험에 의존되지 않은 원리들의 능력의 최초의 기초 (Grundlage)가 놓여 있는 데까지 깊이 탐색해 두지 않으면 안 되기 때문이 다.”10)
칸트가 그의 학문 체계를 구성하면서 독자로 하여금 이해를 쉽게 할 수 있 도록 ‘건축’을 은유로 사용하는 것은, 그의 학문과 삶이 유리되지 않음을 반증할 뿐 아니라 그가 일상의 생활 속 대상에 얼마나 관심을 기울였는지 알 수 있는 증 거가 된다. 또한 그가 판단력비판에서 건축을 비롯한 여러 디자인된 예술의 실 례로서 많은 대상들을 열거하고 있기도 한데, 이것들은 무슨무슨 디자인에 해당 하는 여러 디자인 분야들에 관한 예시들이기도 하다.
우선 주의해야 할 점은, 이곳에서 우리가 디자인과 관련하여 한정적으로 고 찰할 때, 어떤 이상을 찾아야 하는 미는, 막연히 부유하는 미가 아니라, “객관적 합목적성 개념에 의해 고정된 미”여야만 한다는 것이다.11) 우리는 일정한 목적에 10) KdU, Vorrede, VI.
11) KdU, §17, 55.
결부된 미, “예를 들어 아름다운 주택, 아름다운 나무, 아름다운 정원 등”을 나열 할 수 있는데, “오직 자기의 실존의 목적을 자신 안에 가지고 있는 자, 즉 인간만 이 이성에 의해 자기의 목적들을 스스로 규정할 수 있으며, 인간만이 자기의 목 적들을 본질적이고 보편적인 목적들과 견주어 볼 수 있으며, 이 목적들과 부합하 는지를 미감적으로 판정할 수 있”는 것이다.12) 따라서 늘 목적 개념과 연관된 디 자이너라면 마땅히 인간의 본질적이고 보편적인 목적들이 무엇이며 내가 하고 있 는 디자인 작업이 그 목적과 합치하는지 합치하지 않는지를 고민해야 할 것이다.
어떤 의도에 의해서만 가능한 사물에서, 예를 들면 건물에서, 좌우대칭에서 형성되는 규칙성은 목적의 개념에 수반되는 직관의 통일성을 동반해야 하지만,
“표상들의 자유로운 유희가 유지되어야만 할 경우에는, 즉 유원지[놀이공원, 테마 파크]나 실내장식, 갖가지 취향을 살린 가구류 등에서는 강제를 보여주는 규칙성 은 가능한 한 피한다.” 그렇게 되면 디자이너는 단 하나의 규칙에 속박될 필요 없 이 상상력의 자유를 맘껏 펼쳐서, 곧, “취미가 상상력의 구상들에서 최대의 완전 성을 발휘할 수 있”어서, 때로는 “영국식 취미의 정원”, 때로는 “바로크식 취미의 가구들”을 디자인할 수도 있으며, “이렇게 규칙의 모든 강제를 벗어나는 경우”,
“상상력의 자유를 심지어 거의 기괴함[그로테스크한 것]의 수준에까지 접근하도록 몰아가”기도 하는 것이다.13)
이는 디자인이 천편일률적인 하나의 기능에 대해 하나의 양식[스타일]만이 아니라 수많은 상상력을 통하여 다종다양하고 개성 넘치는 여러 디자인을 가능케 하는 근거이기도 하다.
12) KdU, §17, 55.
13) KdU, §22 이후, 분석론 제일장(第一章)에 대한 총주(總註), 71-72.
2. 판단력비판 내 예술의 분류와 디자인
예술은 시대와 학자에 따라 다르게 분류되었다.14) 예술과 관련하여 서양에 서 고대와 중세, 그리고 르네상스 시대의 구분이 달랐다. 순수예술과 기능술의 구 분은 계몽주의 시대에 이르러서였으며, 19세기 이후 순수예술의 구분은 더욱 세 분화되었다. 하지만, 예술 분류에 관한 여러 시도들을 하는 가운데 데스와르는
“조건은 다양하고 유동적이다. 모든 요구 사항을 충족시키는 (예술) 체계는 없는 것 같다”15)고 인정하고 있다. 이렇듯 시대마다 달라진 예술의 구분들을 고려해 볼 때, 우리는 과거의 예술의 범주와 오늘날의 예술의 범주에서 차이를 보이기는 하지만 디자인 개념으로 과거의 예술을 고찰하면서 오늘날의 디자인에 새로운 시 각을 부여할 수 있을 것이라 본다. 특히 근대미학의 토대를 확고히 세운 칸트의 저작을 통해서, 과거의 인공 산물과 오늘날의 디자인 산물을 연관시켜 재조명해 보는 것은 디자인에 관한 사유를 더 풍부하게 하고 디자인의 의의를 더 확장할 수 있는 것이다.
우리가 칸트의 제3비판서에서 본격적으로 디자인 산물들을 분석하기에 앞서 그의 미학 체계 내에서 상세하게 서술한 여러 예술들의 분류에 관해 이곳에서 간 단히 정리하면 다음과 같다.
우선, 칸트가 생각하는 기술(예술, 기예) 일반은 크게 세 가지 면에서 즉, 자 연․학문․수공과 구분된다. 자연과 구분되는 기술은 이념, 목적, 자유에 의해 형 성되는 산물이다. 학문과 구분되는 기술은 이론적이 아니며 실천적이다. 수공과 구분되는 기술은 노동 자체에 얽매이지 않는 자유로운 유희의 산물이다(KdU, 173-176).
14) 참고. W. 타타르키비츠 지음, 미학의 기본 개념사, 손효주 옮김 (미술문화, 1999), pp. 67-91.
15) “So vielfältig und flüssig sind die Verhältnisse. Es scheint kein System zu geben, das allen Ansprüchen genügte.” Max Dessoir, Ästhetik und allgemeine Kunstwissenschaft in den Grundzügen dargestellt, Stuttgart: Verlag von Ferdinand Enke, 1906, S. 308.
칸트는 이러한 기술 일반에서 다시 두 가지로, 즉 대상의 현실화를 위한 기 계적 기술과 쾌의 감정을 의도하는 미감적 기술로 나눈다(KdU, 177). 그런데 미 감적 기술은 쾌적한 기술이거나 미적 예술이다. 전자는 단지 향락만을 목표로 삼 는 기술인 반면에, 후자는 그 자체로 합목적적이며 비록 목적이 없음에도 사회적 전달을 위한 심의력들의 도야를 촉진하는 표상방식인 것이다(KdU, 178-179). 후 자인 미적 예술이 바로 우리가 흔히 지칭하는 순수 예술인 바, 계몽기에 이르러 여타의 예술과 구분되는 새로운 개념을 획득하게 되었는데, 이 미적 예술에 관해 칸트는 여러 특징들을 상술하고 있다. 곧 쾌가 표상에 수반되어야 하는 미적 예 술은 천재의 예술이면서(KdU, 181-183),16) 상상력과 지성과 정신과 취미가 필요 한 예술이며(KdU, 203), 추한 것을 아름답게 묘사한다는 특장이 있다(KdU, 189).
아울러 이 미적 예술은 자유로운 예술이며(KdU, 206), 도덕적 이념과 결합한다 (KdU, 214).
이 미적 예술 아래에 칸트는 다시 세 가지 예술인 언어예술, 조형예술, 그리 고 감각의 아름다운 유희의 예술로 나누고, 또 다시 각각의 아래에 두 가지씩, 곧 언어예술 아래에 웅변술과 시예술, 조형예술 아래에 조소와 회화, 감각의 아름다 운 유희의 예술 아래에 음악과 색채예술을 두고 있으며, 조소 아래 조각 예술과 건축 예술을, 회화 아래 본래적 회화와 조원술을 덧붙이고 있다(KdU, 204-213).
칸트가 분류한 기술(예술)을 단순하게 도식화하면 다음과 같다.
16) 예술을 가능케 하는 천재에 관해서는 다음을 참고하기 바람. 금빛내렴, 칸트의 천재 개념의 전개 , 미학예술학연구 제19집, 한국미학예술학회 (2004), pp. 227-266.
[도 1] 칸트의 판단력비판 내 예술의 분류 (참고. KdU, §43, B173-§53, B222)
오늘날의 기준에서 보면, 칸트가 의도한 예술 분류의 기준과 정의가 현대와 달라지거나 동떨어진 것이 있을 수 있다. 대표적인 예로 우리가 오늘날 넓은 의 미의 디자인에 포함하여 건축 디자인이라고 하는 건축 예술은 당대에는 미적 예 술, 곧 순수 예술의 위상이었는데, 목적과 결부된 ‘부속미’ 개념에서 건축뿐 아니 라 그 안에 포함되는 실내 디자인, 가구 및 제품 디자인 들을 바라볼 때 과연 이 것들을 명확하게 순수 자유미나 부속미로 구분할 수 있는가 하는 의문이 제기될 수 있다. 하지만 연구자가 주목하는 것은, ‘디자인’의 개념이 이미 건축․조각․회 화 등을 다 아우르면서 분리하지 않고 포괄적으로 사용된다는 점이다.
디자인(디세뇨; disegno)은 건축, 조각, 회화라고 하는 우리가 지니고 있는 세 예술의 아버지인데, 다양하게 비례를 갖춘 모든 자연 대상들의 형상이나 이념인 듯한 일반적인 판단을 많은 사물들로부터 이끌어낸다. 이런 방식으 로 디자인은 인간과 동물의 몸뿐만 아니라 식물, 건물, 조각상 및 그림들에 서도 전체와 부분 간의, 부분들 상호간의, 부분과 전체 간의 비례를 파악한 다. 이러한 파악은 마음 속의 어떠한 판단으로 인도하는데, 이 판단이 나중 에 손으로 표현되고 디자인이라고 불리는 것을 형성한다. 따라서 추론할 수 있는 바, 디자인이란 자기의 마음 속에 가지고 있는 개념의, 또는 아이디어
에 따라 작업 중인 누군가에 의해 창안된 개념의 표현이며 현시일 뿐인 것 이다.17)
여기서 중요한 것은 디자인 자체의 의미는 예술가를 포함한 디자이너가 자 기 마음 속에 지닌 개념을 표현하거나 드러낸다는 것이다. 이러한 디세뇨(디자인) 개념은 르네상스 이후부터 건축․조각․회화를 포함한 모든 예술에 통합적으로 적용되었으며, 미적 예술(순수 예술) 하에 각 장르별로 세분되었던 계몽기에도 그 의미는 퇴색되지 않았음을 고려할 때, 칸트 미학 체계 내의 성격 규정은 다소 차 이가 있을지라도 칸트의 예술 분류에 있는 다양한 장르들을 디자인 개념으로 읽 어낼 수 있다는 것이다.
디자인이란 명칭은 없었을지라도 디자인 행위는 인류 역사와 함께 했음을 감안하건대, 칸트 시대에도 무슨무슨 디자인(“○○ 디자인”)이라는 칭호만 갖지 않았을 뿐이지 분명 디자인은 존재했고 칸트 또한 이것들에 종종 관심을 갖고 있 음을 그의 저작들 속에서 찾아볼 수 있다. 무슨무슨 디자인에 다음과 같은 단어 들을 집어넣어 보자.
가구, 의복, 반지, 담배갑, 장신구, 융단[양탄자], 벽지, 액자, 주택, 종교 건축 물, 공공 시설물, 주랑(柱廊), 화단, 정원[조경, 원예], 놀이공원, 축제, 도안[선묘], 색채 … 그리고 청각적인 음향까지.
이것들은 모두 판단력비판 안에서 발견되는 단어들인데, 우리들이 일상적 으로 살아갈 때 다들 이러저러한 방식으로 필요하거나 마주치는 것들로서 오늘날 관점에서 충분히 디자인 영역의 한 부분을 담당하는 것들이기도 하다.
우리가 칸트의 미학과 예술을 참조하여 디자인을 보는 이유는, 당시 구분에 는 없었거나 부각되지 않았지만 현대에 활성화된 디자인 분야를 그가 미적 예술
17) G. 바사리, 미술가 열전, 제1판(밀라노 편), I, 168. Vasari, The lives of the most excellent painters, sculptors, and architects (1550). 다음 책에서 재인용. Wladyslaw Tatarkiewicz, History of Aesthetics III : Modern Aesthetics (PWN-Polish Scientific Publishers Ltd., Warsaw, 1974), p. 213.
의 어떤 장르와 분류 속에서 바라보며 어떤 의미를 부여하는가를 살펴보면서, 역 으로 또 다른 시각으로 오늘날의 디자인에 대한 재조명을 시도할 수 있기 때문이 다. 그럼, 이제 본격적으로 칸트의 판단력비판에서 디자인과 관련된 예술들로서 어떠한 것들을 찾아낼 수 있는지, 그리고 그는 그것들의 성격을 어떻게 규정하고 있는지 고찰해 보도록 하자.
3. 판단력비판 내에 있는 디자인의 모습들
⑴ 선(線)과 패턴 관련
가. 디자인 조형의 기본인 선(線)
어떤 것을 디자인할 때 그 대상의 선(善)과 미(美)의 종합에 관해서 생각해 볼 여지를 칸트는 판단력비판 4절에서 제공하고 있는데, 이때 그는 선묘[도안, 스케치(Zeichnung)]를 중요하게 다루고 있다.
“어떤 것이 좋다는 것을 알아내기 위해서는, 나는 항상 그 대상이 어떤 종류 의 사물이어야 하는가를 알아야” 한다. 다시 말해 디자이너는 일차적으로 “그 대 상에 관한 개념을 가지고 있지 않으면 안 된다.”18) 하지만 칸트는 대상의 미에 관해 언급하면서, 오늘날 우리가 디자인 요소의 기초라 할 만한 선(線)적인 요소 를 언급하고 있는데 그것은 다름 아닌 독일어 차이히눙(Zeichnung)이다(KdU, §4,
§14). 이 ‘차이히눙’은 어떤 것을 그리는 기초 행위인 도안이나 스케치를 뜻하고, 선(線)으로 이루어진 소묘를 뜻하기도 하고, 어떤 것의 표시나 기호를 말하기도 하고, 자연상태의 동식물에서 볼 수 있는 무늬나 색채를 의미하기도 하는 말인데, 공통의 기본 뜻으로 선적인 묘사[선묘(線描)]를 지칭한다고 할 수 있다.
한편, 칸트는 선묘(線描)를 모든 조형예술에 있는 본질적인 것이라고 표현하 고 있다. “모든 조형예술에서(in allen bildenden Kunsten), 따라서 건축예술과 조 18) KdU, §4, 10.
원예술에서도 그것이 미적 예술인 한, 본질적인 것은 도안[선묘]이다.”19) 확실히
‘선(線)’은 일반 예술에서든 디자인에서든, 문자든 그래픽이든 모든 형상을 구체화 하는 주요 요소이다.20) 그리고 “도안[선묘]에서 취미에 맞는 일체의 구도의 기초 를 결정하는 것은 … 단지 그 형식에 의해서 만족을 주는 것”이다.21)
즉, 디자이너의 최초의 조형작업인 드로잉(스케치)의 선으로부터 출발하여 하나의 완벽한 형식에 도달하면 우리는 그 최종 형태를 통해 만족감을 얻을 수 있게 된다.
나. 패턴 디자인
칸트는, 대상의 좋음과는 반대로, 대상에서 미를 찾기 위해서는, 그 대상이 어떠한 사물이어야 하는지를, 곧 그 대상에 관한 개념을 가질 필요가 없다고 한
19) KdU, §14, 42. 또한 칸트는 판단력비판 53절에서, 소묘예술로서 회화를 지칭하기도 하는데, 이는 조형예술의 기초를 선묘[도안]에 두고 있기 때문이다. “조형예술들 가운 데에서 나는 회화(Malerei)에 우선권을 주었으면 하는데, 이는 한편으로 소묘예술로서 (als Zeichnungskunst) 회화는 다른 모든 조형예술의 기초가 되기 때문이며, 또 한편 으로 회화는 다른 예술들에게 허용되어 있는 것보다도 훨씬 더 이념들의 영역에 파고 들어가서, 직관의 분야까지도 이 이념들에 맞도록 더욱 확장할 수가 있기 때문이다.”
KdU, §53, 222.
20) 선(線)에 관한 설명으로는 또한 다음의 글을 참고하라. “선은 그림을 통해 시각적 형 태를 만들어 내며, 화가나 건축가, 디자이너들은 선을 이용해 사고나 개념, 분위기, 표 현, 다양한 정보 등을 표현한다. 가시적인 선은 형이나 형태, 물체, 구조물을 표현하는 데 이용될 수 있다. 선은 의미와 상징성을 전달하고, 시각적 형상을 표현하며, 메시지 를 전달할 수 있다. 선은 폭넓게 사용될 수 있는데, 예를 들어, 화살표, 제품이나 건축 의 도면, 도표, 지도 등에서 필요한 정보를 표시하는 데 이용된다. 선은 형태를 표현 하고 창조하는 데 필수적인 요소이다. 선은 명암이나 질감과 같은 표면의 특성을 표 현할 수 있다. 선은 굵고, 가늘고, 우아하고, 활동적이고, 팽팽하거나 자연스러울 수 있 다.” 찰스 왈쉬레거․신디아 부식-스나이더 함께 지음, 디자인의 개념과 원리, 원유 홍 옮김 (안그라픽스, 2001), p. 93.
21) KdU, §14, 42.
다. 그는 자연 속의 꽃들 말고도, 또 다른 예를 들고 있는데, “자유로운 선묘[스케 치]들, 잎사귀 무늬 아래 서로 얽혀 있는 선형(線型)의 무늬들”이다. 이것들은 “아 무런 것도 의미하지 않고, 어떤 특정한 개념에 의존하지 않으면서도, 마음에 든 다.” 덧붙여 칸트는 “아름다운 것에 관한 만족은 어떤 하나의 개념(그것이 어떠한 개념인가는 미규정적이지만)에 이르는, 대상에 관한 반성에 의존할 수밖에 없고, 그로 인해 또한 전적으로 감각에 기인하는 쾌적한 것과는 구별된다”22)고 말하고 있다.
칸트의 견해에 따르면, 확실히 선형으로 이루어진 패턴 디자인은 일정한 대 상에 관한 개념이나 목적이 없이도 전적으로 아름다운 것이며, 감각에 의거하는 쾌적한 것과 구별되는 것이지만, 오늘날의 디자이너의 시각에서 볼 때, 이들 패턴 도 구체적인 목적 개념과 결부되면 ― 예를 들어, 벽지나 커튼이나 옷감의 패턴 무늬 등을 생각해 보면 ― 칸트가 말하는 대상의 선(善)과 미(美), 다시 말하면 대상의 합목적성과 심미성이라는 일거양득의 결과를 얻게 되는 것이다.
또 다른 한편, 패턴 디자인의 시각에서 보자면, 칸트는 “그리스풍의 도안들, 액자테나 벽지의 나뭇잎 무늬 등”을 꽃들이나 새들과 같은 자연 형태에서 발견되 는 자유로운 자연미들이라고 언급하고 있기도 하다.
“꽃들은 자유로운 자연미들이다. 꽃이란 어떤 종류의 사물이어야 하는가는 식물학자 외에는 누구도 알기 어렵다. 꽃이 식물의 생식기관임을 인식하는 식물학자조차도 그가 그것에 대해 취미에 의해 판단할 때에는 이 자연목적 을 고려하지 않는다. 그러므로 어떤 종류의 완전성도, 즉 다양한 것의 결합 과 연관되어 있는 어떤 내적 합목적성도 이 판단의 기초에 놓이지 않는다.
많은 새들(앵무새, 벌새, 극락조 등), 바다의 풍부한 갑각류는 그 자체로 미 들로, 이 미들은 그 목적이 개념들에 따라 규정된 대상들에 속하는 것이 아 니라, 자유롭게 그리고 그 자체로 마음에 드는 것이다. 그처럼 그리스풍의 도안들, 액자테[의 나뭇잎무늬]나 벽지의 나뭇잎 무늬 등은 그 자체로는 아 22) KdU, §4, 10-11.
무것도 의미하지 않는다. 그것들은 아무것도 표상하는 바가 없고, 일정한 개념 아래서 어떤 객관을 표상하지 않으며, 자유로운 미들이다. 사람들이 음악에서 (주제 없는) 환상곡이라고 부르는 것, 아니 가사 없는 모든 악곡 도 이런 종류의 미에 포함시킬 수 있다.”23)
칸트가 그리스풍의 무늬의 패턴 디자인들을 자유로운 자연미의 범주에 분류 하는 근거는 그것들이 아무런 의미를 포함하거나 특정한 개념 하에 어떠한 대상 을 표상하지 않기 때문이라 하지만, 오늘날의 디자이너들은 이러한 것들을 자유 미로서도 부속미로서도 드러낼 수 있다는 점은 분명하다. 다만 그러한 패턴들 속 에 어떠한 개념과 객관 없이 아무것도 표상하지 않을 것인가, 아니면 일정한 개 념 아래에 일정한 객관을 표상할 것인가 하는 것은 전적으로 그 패턴들을 다루는
─ 또한 그 패턴들을 소유하는 대중들과 호흡하는 ─ 디자이너의 선택인 것이다.
한 가지 분명한 점은, 자유미이든 부속미이든 디자이너는 어느 한 가지로서만 미 감적 향수(享受)를 강요할 수는 없다는 것이다, 물론 디자이너가 대중들에게 미적 향수를 불러일으키는 역할을 지니고 있다 하더라도 말이다.
⑵ 조형 관련
가. 건축(공간․실내․가구) 디자인
디자인 산물들을 한마디로 “임의의 목적”을 갖는 “기예[인공]에 의해서만 가 능한 사물들”(KdU, §51, 207)로 이해한다면, 우리는 칸트가 판단력비판 51절에 서 언급하는 건축예술(Baukunst)을 통해서 디자인에 관해 좀 더 고찰할 수 있을 것이다. 칸트는 조형예술의 한 종류로서 건축예술을 언급하면서 다음과 같이 정 의하고 있다.
23) KdU, §16, 49.
“건축예술은 … 단지 기예[인공(人工)]에 의해서만(nur durch Kunst) 가능 한 사물들 ― 따라서 이 사물들의 형식을 제시하는 근거는 자연이 아니라 임의의 목적이다 ― 의 개념을 이러한〔입체적 현시의〕 의도를 위하여, 그 러면서도 또 동시에 미감적-합목적적으로도 현시하는 예술이다.”24)
한마디로, 임의의 목적을 가진 사물들을 구체적으로 시각화․현실화하면서 도 그 사물들이 미감적이면서 합목적적으로 드러나게 하는 것이 곧 디자인이라고 할 수 있다. 이렇게 볼 때 디자인이란 “기예적[인공적] 대상의 일정한 사용이 주 안점이요, 미감적 이념들은 이 주안점을 조건으로 하여 이 주안점에 한정된다.”25) 곧, 디자인은 어떤 대상의 사용 목적을 조건으로 삼는 예술이라 할 수 있는 것이 다.
또한 칸트는 건축디자인에 속하는 하위 범주들을 열거하고 있는데, 예를 들 면 종교건물, 공공시설, 기념물, 주택 및 각종 실내 비품 들이다.
“신전이나 공공집회를 위한 전당, 또는 주택, 개선문, 기둥, 명예의 기념을 위해서 세워진 석비 등은 건축예술에 속한다. 그 뿐만 아니라 모든 가구류 (가구사[소목장이]의 제작품이나 그밖에 사용하기 위한 사물들)도 건축예술 에 넣을 수 있다. 왜냐하면 작품이 일정한 사용에 적합하다는 것이 건축물 의 본질이기 때문이다.”26)
여기서 거론된 종교적․공적․사적 건물과 각종 사물들은 오늘날의 디자인 의 분류 체계에선, 건축디자인, 공간디자인, 제품디자인, 실내디자인 등에 해당하 는 것들이다. 이때 디자인의 본질은 “작품이 일정한 사용에 적합하다”는 것인데,
“그러면서도 또 동시에 미감적-합목적적으로도 현시하는 예술”이어야 함은 당연 한 것이다.
24) KdU, §51, 207-208.
25) KdU, §51, 208.
26) KdU, §51, 208.
나. 조경 디자인
한편 칸트는 조형예술의 또 다른 종류인 회화예술 속에 오늘날의 조경 디자 인에 해당하는 조원술[원예술]을 포함시키고 있는데, 역시 판단력비판 51절에서 다음과 같이 말하고 있다.
“조형예술의 제이의 종류인 회화예술은 감관적 가상(假象)을 인위적[기예 적]으로 이념과 결합시켜서 현시하는 것인데, 나는 이 회화예술을 자연의 미적 묘사의 예술과 자연의 산물들의 미적 배치[편성]의 예술로 구분하려 고 한다. 전자는 본래적인 회화요, 후자는 조원술(造園術)[원예술]이라 할 것이다. 왜냐하면, 전자는 단지 입체적 연장의 가상만을 주는데, 후자는 입 체적 연장을 진실 그대로, 그러나 단지 그 형식들을 관조할 때의 상상력의 유희라는 목적뿐만 아니라 그 밖의 다른 목적을 위한 이용(Benutzung)과 사용(Gebrauch)에 관한 가상을 주기 때문이다.”27)
여기서 우리가 읽어 낼 수 있는 것은, 조경 디자인이란, “자연의 산물들의 미적 배치(der schonen Zusammenstellung ihrer[Natur] Produkte)의 예술”이라는 점, “입체적 연장을 진상대로 나타내기는 하나, 단지 그 형식들을 바라볼 때의 상 상력의 유희라는 목적”을 준다는 점, 그뿐 아니라 “그 밖의 다른 목적들을 위한 이용과 사용에 관한 가상(假象)”을 준다는 점이다.28)
27) KdU, §51, 208-209. 단어의 강조는 원서의 것임.
28) 칸트는 조원술[조경디자인]을 회화예술로 간주할 때의 의아함에 대해서, 주석을 달아 보충설명을 하고 있기도 하다. 그는, 조원술은 “그 형식들을 입체적으로 현시하는 것”
이나 “그 형식들을 실제로는 자연으로부터 가져오는 것”이며, 또한 “조원술의 배치의 조건도 관조하는 데 있는 상상력의 자유로운 유희이기 때문에, … 조원술은 특정한 주제를 갖지 않는 … 순전히 미감적인 회화와 그런 한에서 합치한다”고 언급하면서
“아무튼 독자는 이것을 단지 여러 미적 예술들을 하나의 원리 아래에 결합하려는 시 도로만 판정하”리라 기대하고 있다(KdU, §51, 209 주). 하지만 우리는 오늘날 조경디 자인의 시각에서 볼 때, 좀 더 확대하여 생각해도 좋을 것이다. “특정한 주제를 가지
화가가 회화를 통해 자연을 아름답게 묘사하는 이라면, 조경 디자이너는 무 위자연의 산물들을 이용해 자연 그대로를 인위적으로 아름답게 배치하는 이인 것 이다. 자연이 우리에게 현시하는 것과 마찬가지로, 조원술은 “다양성(풀, 꽃, 관목, 수목, 또 그 위에 하천, 구릉, 계곡)을 가지고 대지를 장식하되, 다만 자연(自然)과 는 다르게, 일정한 이념에 적합하게 배치하는 것”29)이다. 자연은 우리가 관조할 때 대지를 다양하게 현시한다. 마찬가지로, 조경디자이너는 자연이 산출한 다양한 것들 ─ 풀, 꽃, 덤불, 나무, 심지어는 하천, 언덕, 계곡 ─ 을 가지고 자신의 미감 적 이념, 즉 아이디어에 맞춰 재편성하는 것이다.
다. 제품 및 장신구 디자인
한편으로, 칸트는 앞서 가구 디자인을 건축예술에 포함하였으나, 규모가 작 은 관람용 실내 장식 비품, 그리고 개인의 취향에 따른 장신구 등은 회화예술에 포함시키고 있는데, 오늘의 시각으로, 이들 또한 제품 디자인이나 장신구[액세서 리] 디자인에 해당되는 것들이다.
“그밖에 벽지[양탄자], 가구의 머리장식, 그리고 단지 관람에만 쓰이는 모든 아름다운 가구설비를 통한 실내장식도 나는 넓은 의미의 회화에 넣었으면 한다.
또 취미에 따른 의상[착용장신구](반지, 담배통 등)의 예술도 마찬가지이다. 왜냐 하면 온갖 꽃들이 피어 있는 화단, 갖가지 장식품(부인의 성장(盛裝)까지도 그 가 운데 포함시켜서)으로 꾸며진 실내는 화려한 축제 때에는 일종의 회화를 이루게 되거니와”, 이때 언급한 각종 디자인은 “단지 관조를 위해서만 존재하여, 상상력 으로 하여금 이념들과 함께 자유롭게 유희하는 가운데에서 즐기게 하며, 미감적 판단력으로 하여금 특정한 목적을 떠나서 활동케 하”는 것이다.30)
지 않은” 채 단순히 “관조하는 데 있는 상상력의 자유로운 유희”만을 염두에 둔 조경 디자인만 있는 것은 아니다. 요즘의 조경디자인은 “특정한 주제[테마]”를 가지고 조성 하는 경우도 많기 때문이다.
29) KdU, §51, 209.
이들 디자인 제품들은 “(목적을 고려하지 않고) 단지 형식들만을, 그 형식들 이 눈앞에 나타나는 그대로, 그리고 그 형식들이 상상력에 대하여 미치는 효과에 따라서, 하나씩 하나씩 판정하거나 또는 한꺼번에 판정하는 것이다.”31)
그런데, 오늘날 특히 산업 디자인 사회에서 이미 우리는 칸트가 말한 “특정 한 목적을 떠나서 미감적 판단력을 행사하는” 어떤 사물이나 제품을 수없이 마주 하고 있다. 우리가 어떤 제품을 선택할 때의 경우를 생각해 보자. 예를 들어, 스마 트폰을 구입하기 위해 매장에 들어간 소비자는, 동일한 목적들을 구현한 여러 제 품들이 기왕에 출시된 상태에서는, 이미 특정한 목적을 떠나 자유로운 미감적 판 단력을 행사하여 구매를 결정하게 된다. 그때 그 휴대폰 제품의 디자인 형식들은 우리의 상상력에 개별적으로 또는 총체적으로 판정하는 데 영향을 미치는 것이다.
⑶ 색과 소리 관련 가. 컬러 디자인
그런데 칸트는 이러한 형식에 영향을 주는 색채에 관해서도 함께 언급하고 있다.
“윤곽을 채식하는 색채들은 자극[매력, Reiz]에 속한다. 이러한 색채들은 과 연 감각에 대하여 대상 자체를 생생하게 해줄 수는 있으나, 그것을 관조할 만한 가치가 있게 하고 아름답게 해주지는 못한다. 오히려 색채는 아름다운 형식이 요구하는 바에 의해서 몹시 제한을 받는 일이 많으며, 자극의 부가 가 허용되어 있는 경우에조차도, 오직 이 아름다운 형식에 의해서만 순화 (醇化)되는[세련되게, 고상하게 되는] 것이다.”32)
30) KdU, §51, 210.
31) KdU, §51, 210.
32) KdU, §14, 42.
이는 형식과 색채의 관계를 생각해 볼 수 있는 부분인데, 칸트의 견해에 따 르면 색은 그 자체로 관조할 만한 아름다움을 지니지는 못하고,33) 아름다운 형식 에 제한을 받지만 오히려 그 아름다운 형식에 의해 색은 더욱 세련되고 고상하게 드러나는 것이다. 디자이너의 입장에서 보자면, 도안[선묘, Zeichnung]과 색채 (Farben)의 중요성을 모두 함께 강조하고 있는 부분이기도 하다. 오늘날 많은 디 자인 이론서들이 디자인의 조형 요소를 언급할 때 이 둘을 주요하게 다루고 있다 는 점만 보아도 그러한 사실은 그때나 지금이나 여전히 유효한 것이다.
디자이너는 형식을 산출하면서, 그 형식에 어울리는 색과 함께 그 색이 지 니는 이념을 함께 현시할 수 있는데, 칸트는 42절에서 색과 소리에 관해 언급하 면서 ‘이념을 지닌 색’에 관해 다음과 같이 제시하고 있다.
“아름다운 자연 속의 자극[매력]들은 흔히 아름다운 형식과 이를테면 한데 융합되어 있는 일이 많거니와, 이러한 자극[매력]들은 (채색에서) 빛의 변양 (變樣)들에 속하거나, 또는 (조음에서) 음향의 변양들에 속하는 것이다. 왜 냐하면 이러한 변양들은 감관적 감정뿐만 아니라 또한 감관의 이러한 변양 들의 형식에 관한 반성까지도 허용하는 유일한 감각들이며, 그리하여 이를 테면 자연이 우리에게 건네는 언어, 더 높은 의미를 가지고 있는 것 같이 보이는 언어를 체현(體現)하고 있는 유일한 감각들이기 때문이다. 그리하여 백합의 흰 색은 심의(心意)로 하여금 순결의 이념을 가지게 하고, 또 빨강 으로부터 보라에 이르기까지의 일곱 가지의 색34)도 그 순서에 따라 1. 숭고 성, 2. 용감, 3. 공명정대[솔직], 4. 친절, 5. 겸손[겸양], 6. 직강[강직], 7. 유 화[상냥함]의 이념을 가지게 하는 듯이 보인다. 새들의 노래소리는 즐거움 과 그 생존의 만족을 알려준다. 자연의 의도가 그러하건 그렇지 않건, 적어 도 우리는 자연을 그렇게 해석하는 것이다.”35)
33) 물론, 오늘날 색채 자체를 관조의 대상으로 표현하는 현대미술의 시각으로는 충분히 이의를 제기할 수도 있을 것이다.
34) 곧, 무지개의 일곱 가지 빛깔을 말한다. 빨강․주황․노랑․초록․파랑․남색․보라.
35) KdU, §42, 171-172.
위 인용문을 통해서 우리는 색채가 지닌 상징 이념이 어떻게 대중에게 소통 될 수 있는지를 알 수 있는데, 이러한 색채 이념들을 잘 파악하고 있는 디자이너 라면 자신이 의도하는 메시지를 자기가 표출하는 디자인 산물들을 통해 훨씬 더 잘 대중에게 전달할 수 있을 것이다. 예를 들어, 어느 시각 디자이너가 반전(反戰) 평화(平和)를 주제로 한 포스터를 제작한다고 생각해 보자. 그는 누구라도 쉽게 떠올릴 수 있는 새를 상징물로 삼을 수 있을 것인데, 우리가 그 동물이 바로 비 둘기임을 금방 예측할 수 있음은 어렵지 않은 일이다. 그런데 그는 그 비둘기의 색을 검정색이나 회색으로 채색하지는 않을 것이다. 왜냐하면 검정이나 회색의 이념이 제공하는 언어는 곧, 죽음이거나 어두움이거나 깨끗하지 못함이거나 불확 실함 등이기 때문이다. 당연히 그는 비둘기의 색을 하양으로 할 것인데, “자연의 의도가 그러하건 그렇지 않건” 당연히 디자이너를 포함한 우리 모두는 “하양”을 깨끗함이나 평화로움으로 해석하기 때문이다.
여기서 디자이너들이 디자인 과정에서 유의해야 할 것은, 어떠한 소리나 색 채의 이념을 제시할 때 그것은 대중이 인지하거나 해석하고 있는 것과 동떨어져 서는 안 된다는 점이다. 만일 어떤 색채가 가지고 있는 이념 외에 또 다른 이념 을 제시하려 한다면 새로 제시하는 디자이너로서는 그것을 수용할 수 있는 여러 여건 ─ 그 색채가 대중과 사회에 끼치는 문화적 사회적 심리적 효과 등 ─ 을 재설정하고 그 새로운 해석이 확산될 수 있는 시간까지도 고려하여야 할 것이다.
나. 사운드 디자인
칸트의 ‘악음(Ton)’ 관련 언급을 오늘날 ‘사운드 디자인’으로까지 확장시킬 수 있는가 하는 의문이 제기될 수 있다. 하지만 독일어 Ton은 영어의 tone뿐만 아니라 sound까지 포괄하는 말로서, 우리말로는 (미술의 ‘색조’라는 용어는 별도 로 한다 하더라도) 한자어 및 외래어를 포함하여 ‘음, 음색, 음조, 음향, 어조, 톤, 사운드’로 번역할 수 있고, 고유어로는 그냥 ‘소리’라는 말로 음과 관련된 모든 것 을 포함할 수 있다. 그러므로 칸트가 사용한 ‘악음(Ton)’ 및 ‘소리예술(음악,
Tonkunst)’은 짧고 작은 규모의 로고 사운드에서 좀 더 긴 가곡이나 가요, 그리고 더 큰 규모의 교향곡에까지 다 적용될 수 있는 것이다.
칸트에 따르면, 소리(악음)는 음들의 수학적 균형에 입각한 것이다(KdU, 212). 음악을 포함한 모든 소리예술(Tonkunst)은 개념 없이 오로지 감각들만으로 말하고, 우리의 마음을 내적으로 움직이며(KdU, 218), 정서의 언어를 구사하면서, 형언할 수 없이 풍부한 사상을 표현해낸다(KdU, 219). 칸트에게서 악음들의 “음 악은 연상 작용을 가져온다. … 감각적인 것이 음악의 특징이라고 생각한다. 음악 은 언어가 가진 내용(개념)이 없고 순수하게 느낌들을 통해서 말한다는 것이다.
즉 음악은 일종의 개념 없는 언어로 파악된다.”36)
특별히 “가사가 없이 음조(Ton)로만 이루어진 음악은 그 어떤 개념과도 직 접 관계하지 않고 청각에만 관계하기 때문에 감각의 놀이의 예술에 속한다.”37) 이때 청각은 “소리에서 주어지는 인상을 통해 음악이 지시하는 개념이 무엇인지 를 인지하는 기초가 된다.”38) 이를 사운드 디자인에 초점을 맞추어 생각해 볼 수 있다. 우리가 주변의 수많은 기기를 접하거나 작동할 때 들을 수 있는 효과음이 나 음악 등을 떠올려 보자. 컴퓨터나 휴대폰에서 울리는 소리들을 통해 메시지가 도착했는지를, 아니면 기기가 켜질 때의 상태인지 꺼질 때의 상태인지를 쉽게 인 지할 수 있다. 지하철 승강장에서 열차의 도착 시 알림음을 통해 상행선인지 하 행선인지를 구분할 수 있다. 또한 어떤 사운드 로고(로고 사운드)를 듣고 바로 유 명 컴퓨터 CPU 회사를 떠올릴 수 있기도 하고, 어느 주유소나 통신회사를 상기 할 수도 있다. 그밖에 우리는 음악을 통해 특정 광고를 떠올리기도 하고 슬픈 드 라마의 애잔함을 느끼기도 하고, 추리 영화의 긴박감을 공유하기도 한다.
우리가 이러한 예들을 통해 알 수 있는 것은, 칸트는 “소리에 일정한 수학적 36) 홍정수, 칸트 음악미학의 이해 , 음악과 민족 제16권 (1998), p. 97.
37) 남정우, 재즈 즉흥연주(improvisation)에서 이루어지는 미감적 이념의 소통에 관하여 - 칸트의 음악미학에서 나타난 ‘미적 예술(schöne Kunst)’의 개념에 따라서 , 미학
제67집 (2011), p. 39.
38) 남정우, 재즈 즉흥연주(improvisation)에서 이루어지는 미감적 이념의 소통에 관하여 - 칸트의 음악미학에서 나타난 ‘미적 예술(schöne Kunst)’의 개념에 따라서 , p. 40.
인 규칙성, 즉 음계의 수(Zahl der Tonleiter)가 정해져 구분될 수 있고, 소리 진동 의 시간구분(Zeiteinteilung) 또한 수학적 특성으로써 균형을 이룰 수 있다면 (작 가의 미감적 이념이 포함된) 작곡(Komposition)과 미(Schonheit)가 결합될 수 있 다는 점을 지적한다”39)는 것이다.
다. 색과 소리의 유비
아울러 칸트는 제3비판서 14절에서 컬러 디자인뿐만 아니라 사운드 디자인 의 성격을 유비적으로 말하고 있기도 한데, 간단히 정리하면 다음과 같다.
취미판단은 개념이나 목적이 없는, 어떠한 목적의 개념적, 규정적 표상도 없 는 순수 형식적 합목적성에 관계한다. 그럼에도 두 가지 수학적 범주는 불가결한 것인데, 즉 악음[소리, 톤, 사운드]과 색채[컬러]는 그것들의 비형식성, 질료성으로 인해 매혹시키는 것에서 제외된다. 순수한 형식인 한에서, 악음과 색채도 취미판 단의 분량과 합치되는 보편적인 평가를 초래할 수 있다. 곧 그것들은 취미판단의 성질과 합치하는 무관심적인 쾌를 획득할 수 있는 것이다. 악음과 색채의 감각도, 그것이 “순수한” 한에서만 “정당하게” 아름답다고 인정될 수 있다. 순수하다는 이 러한 규정은 단지 형식에만 관계하는데, 그 형식만이 “확실하게 보편적으로 전달 될 수 있는 유일한 것”이다. 칸트에 따르면, 형식적 순수성에 부응하는 두 가지 방식이 있다. 하나는 비감관적인, 비감각적인 반성에 의해서, 다른 하나는 인상의 규칙적 활동에 의해서인데, “만약 우리가 오일러(Euler)의 말대로”, 색채는 동시적 으로 잇따르는 에테르의 진동들(pulsus)이요, 악음은 교란된 공기의 진동들에 의 한 규칙적인 리듬에 존재한다고 생각한다면, 그러하다는 것이다. 결국 이러한 가 설에 따르면 우리는 수용된 감각들의 질료적 내용을 다루는 것이 아니라 형식적 규정들을 다루고 있는 것이라는 사실이 된다. 그러한 까닭에 단순한 색채(원색)가 순수한 색채이며 따라서 아름다운 것 내부에 속할 수 있고, 보편적으로 전달가능 39) 남정우, 재즈 즉흥연주(improvisation)에서 이루어지는 미감적 이념의 소통에 관하여
- 칸트의 음악미학에서 나타난 ‘미적 예술(schöne Kunst)’의 개념에 따라서 , p. 40.
한 평가를 일으키게 된다는 것인데, 혼합색은 그렇지 않다. 여기에서 중요한 것은 규정적인 지각의 문제가 아니라 단지 쾌 혹은 불쾌의 문제인 것이다(KdU, §14, 39-41).
우리는 여기서 칸트가 소리든 색이든 단순한 것을 더 강조한다고 볼 수 있 는데, 그 이유는 무엇이든 거듭 덧붙이고 덧붙여지기만 하면 아무래도 그 순수함 에서 멀어지게 되기 때문일 것이다. 칸트는 “미에 자극들이 첨가되기도 하”나 그 러한 자극들이 “취미판단에 기여하기는커녕 오히려 이물질”이 될 우려가 있으며 오직 “아름다운 형식을 교란하지 않는 한에서만” 관대히 받아들여져야 한다고 주 장하고 있다(KdU, §14, 41).
이는 원색(또는 순색)이나 고명도, 고채도의 색채가 확실히 전달이 분명하다 는 점에 일리가 있는 부분이다. 반면에 혼합색은 단일하게 정확히 규정하기가 쉽 지는 않지만, 그 때문에 오히려 저마다 미묘한 감각을 잘 표현할 수 있는 바, 그 러한 색들은 “아름다운 형식을 교란하지 않는 한” “이물질”이 되지 않고 미에 “자 극[매력]들”로서 덧붙여질 수 있는 것이다.
한편, 다음 구절에서는 색채나 소리와 같은 자극들이 대상의 형식과 결합하 여 우리에게 그 대상을 더욱 생생히 표상해 줄 수 있음을 보여 준다.
“(외적인 또한 간접적으로는 내적인) 감관의 대상들의 일체의 형식(Form) 은 형태(Gestalt)이거나 유희(Spiel)이다. 후자의 경우에는 그것은 (공간에 있는) 형태의 유희(즉 몸짓과 무용)이거나 (시간에 있는) 감각의 한갓된 유 희이다. 색채 또는 악기의 쾌적한 악음들(angenehmer Tone)의 자극[매력]
이 여기에 부가(附加)되는 수도 있겠지만, 순수한 취미판단의 본래의 대상 이 되는 것은 형태의 유희에서는 도안이요, 감각의 유희에서는 악곡[작곡]
이다. 그리고 색채와 악음의 순수성(純粹性)이나 또는 그 다양성(多樣性)과 대조도 미에 기여하는 것같이 보인다고 하는 것은, … [색채들과 음들이]
다만 이 형식을 더욱 엄밀하게 또 더욱 명확하고 더욱 완전하게 직관할 수 있도록 하며, 또 그 위에 대상 그 자체에 대한 주의를 환기하고 지속시킴으 로써, 그것들이 가지는 자극에 의하여 표상을 생생하게 해주기 때문에 그렇
게 한다는 것을 의미하는 것이다.”40)
위의 설명을, 곧장 우리가 일상 접하는 스마트폰 디자인에 적용해 보자. 스 마트폰이라는 그 사물에 있는, 형태와 감각의 유희 속에서 도안과 색채 및 음향 들이 스마트폰이라는 형식을 더 정확하고 분명히 직관하게 하고 스마트폰이라는 대상에 주의를 기울이게 한다. 그리고 그때, 그 대상을 더욱 생생히 표상할 수 있 게 하는 것은 바로 그것들[색채와 음색들]이 지닌 매력을 통해서인 것이다.
위의 인용 외에도 사운드 디자인과 컬러 디자인 부문의 특징을 다른 곳에서 도 찾아볼 수 있는데, 칸트는 51절에서 감각들의 미적 유희의 예술을 청각적 유 희 예술인 음악과 시각적 유희 예술인 색채예술로 구분하여 자세히 다루고 있 다.41)
⑷ 디자이너 관련 역할 및 경고 가. 디자이너의 역할
이제까지의 여러 디자인 양상들을 살펴보는 중에 우리는 칸트 식으로 해석 할 수 있는 디자이너의 역할을 발견할 수 있는데, 그는 51절에서 다음과 같이 표 명하고 있다. 물론 그는 예술가를 지칭하지만 예술을 아우르는 디세뇨 개념을 생 각해 볼 때 디자이너로 바꿔 읽어도 아무 문제가 없는 것이다.
“예술가의 정신은 이러한 형태들을 통해서 그의 사상(思想)과 사고방식에 관하여 형체적인 표현을 보여주며, 사상(事象) 그 자체로 하여금 이를테면 의태적(擬態的)으로 말하게 한다는 사실이다. 이것은 생명 없는 사물들에게 그것의 형식에 따라 하나의 정신을 부여하고, 정신으로 하여금 이 사물들을 40) KdU, §14, 42-43.
41) KdU, §51, 211-213.
통해서 말을 하게 하는 우리의 환상[공상]의 극히 통상적인 유희인 것이 다.”42)
곧, 디자이너는 자신이 무엇을 어떻게 생각했는지 자신이 구상한 형태들을 통해서 입체적으로 표현하는 자이다. 그는 그 물건 자체로 몸짓으로 말하게 하며, 사물들에게 형식에 맞는 정신을 부여하는데, 이때 정신은 그 사물을 통해 우리에 게 말을 건다. 곧 디자이너의 자유로운 생각, 공상, 상상력이 이 모든 유희를 가능 케 하는 것이다.
우리는 이러한 유희의 활동 가운데 어떤 사물을 존재할 수 있게 하는 원인 을 ‘창조’라고 하는데, 칸트는 판단력비판 87절에서 이를 “세계의, 또는 세계 내 의 사물들(실체들)의 현존의 원인”이라고 하면서 곧, “실체의 현실화가 창조 (actuatio substantiae est creatio)”라고 언명하고 있다.43) 그런데 “이는 칸트가 자 연의 합목적적 산물들과 관련하여 모든 자연의 최상의 원인으로서 신적 창조를 상정하고 있는 것이기도 하지만, ‘창조’라는 용어는 “하나의 궁극 목적”을 가지고 기존의 자연 산물들을 토대로 무언가 또 다른 새로운 산물을 만들어내려는 예술 가와 디자이너에게도 똑같이 적용가능하다 할 것이다.”44)
나. 지나친 장식, 허식에 대한 경고
하지만, 우리는 칸트가 모든 디자이너 및 예술가에게 마냥 자유로운 유희를 허용하며 긍정적인 기대만 하는 것은 아님을 발견할 수 있다. 그는 예술의 미적 인 것에 대한 관심에 “장식(Putz)” 및 “허영[허식, Eitelkeit]”과 관계된 자연미의 인공적 사용도 포함시키면서,45) 장식적인 것 자체를 부정하지 않으며 장식물 42) KdU, §51, 211.
43) KdU, §87, 421주. 강조는 원서의 것임.
44) 금빛내렴, 칸트의 판단력비판을 통한 디자인 미학 연구, 홍익대학교 대학원 박사 학위 논문 (2015), p. 108.
45) KdU, §42, 166.
(Zierat) 자체로 아름다운 형식을 갖는 데서 미를 찾을 수 있다고 여기지만, 또한 그는 그 장식이 지나쳐서 진정한 미를 해치는 허식[치장물, Schmuck]이 되는 것 에 우려를 표하고 있기도 하다.
“사람들이 장식물(Zieraten)[부수물(附隨物), Parerga]이라고 부르는 것조차, 다시 말해 대상의 전체 표상에 그 구성요소로서 내적으로 속해 있는 것이 아니라, 단지 외적으로 부가물로서 속하여 취미의 만족을 증대시켜주는 것 조차도, 이러한 작용을 단지 그 형식을 통해서만 하는 것이다. 가령 회화의 틀, 또는 조상(彫像)에 입히는 의복 또는 장려한 건축물을 둘러싼 주랑과 같은 것이 그러하다. 그러나 장식물(Zierat)이 그 자체로 아름다운 형식을 가지고 있지 못하면, 즉 그 장식물이 황금의 액자처럼 단지 그것의 자극[매 력]에 의해서 회화가 갈채를 받도록 하기 위해 만들어진 것이면, 그럴 경우 그러한 장식은 허식(虛飾)[치장물, 치레, 장신구, Schmuck]이라 일컬어지고, 진정한 미를 해치는 것이다.”46)
“자연의 산물은 그 형식의 면에서 그에게 만족을 줄 뿐만 아니라, 그것의 현 존재도 그에게 만족을 주는 것이요, 이 때 감관적 자극[매력]이 거기에 참여한다 든가, 또는 그가 어떤 목적을 그것과 결부시킨다든가 하는 일은 없는 것이 다”(KdU, §42, 167). 우리를 둘러싼 자연의 산물들은 감관적 매력이 한몫을 하거 나 그것을 어떤 목적과 결합할 필요 없이 우리에게 자연 형식 그 자체로 만족을 주는 것들이다. 하지만, 인공물을 제작하는 예술가나 디자이너는 일정한 목적을 감각적으로 매력 있는 것과 합치시킬 필요가 있는 것이다.
“그러나 여기서 주목할 만한 것은, 만약 사람들이 이 아름다운 것의 애호가 를 몰래 속여서, (생화와 아주 똑같이 만들 수 있는) 조화들을 땅에 꽂아 놓거나, 인공적으로 조각한 새들을 나뭇가지들 위에 올려놓았는데, 그가 바 로 그 기만을 발견했다고 한다면, 그가 앞서 그것들에 대해 가졌던 직접적 46) KdU, §14, 43.
[무개재적]인 관심은 곧장 사라지겠지만, 아마도 다른 관심, 곧 남들의 눈을 위해 그것으로 그의 방을 장식하려는 허영의 관심(das Interesse der Eitelkeit)이 대신 생길 것이라는 사실이다.”47)
디자인된 산물은 대상의 형식 자체로서, 또는 일정 목적과 감각적 매력의 합치 하에, 우리에게 미감적 만족을 줄 수 있다. 다만 디자인 과정 및 결과에서, 진정한 디자이너라면 기만의 디자인과 허영의 디자인을 지양할 책무를 지는 것은 당연하다 할 것이다. 칸트는 제3비판서에서 오늘날의 디자인 분야에서 고려되어 야 할 것들뿐만 아니라 디자인에 대해 조심하지 않으면 안될 점 ― 허영[허식] ― 도 언급하고 있는 바, 이는 또한 디자인이 산업사회에서 여러 중요한 역할을 맡 고 있긴 하지만 디자인의 모든 형식이 만능의 열쇠가 아님을 강조하고 있는 것이 라 할 수 있다.
Ⅲ. 맺음말
이제까지 우리는 칸트의 판단력비판을 중심으로 그 속에 나타난 구체적인 디자인 산물들에 대한 사례들을 찾아 분석, 고찰하였다.
우리는 우선 칸트가 그의 학적 체계에 대한 은유로서 건축을 예로 든 것에 주목하였는데, 그러한 예시는 하나의 미적 예술로서인 건축뿐만 아니라 삶과 분 리할 수 없는 주거라는 목적에 부합한 디자인으로서인 건축에 대하여서도 그가 관심을 지니고 있음을 보여주기 위한 것이었다. 이후 본격적으로 디자인에 관한 분류와 고찰을 하기에 앞서, 칸트의 미학 체계 내에서 예술이 어떻게 분류되는지 를 간략히 살펴보았다. 하지만 어느 시대든 모든 것을 만족시키는 예술의 분류와 정의는 가능하지 않다는 것을 우리는 알고 있다. 이는 시대에 따라 예술에 대한 인식이 변하고 있기 때문이다. 그럼에도 우리는 근대미학이 태동하고 발전하게 47) KdU, §42, 167.