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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리장엄구를 통해서 본 고려 금속공예 (舍利莊嚴具를 통해서 본 高麗 金屬工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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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사리장엄구를 통해서 본 고려 금속공예 (舍利莊嚴具를 통해서 본 高麗 金屬工藝)

전 경 미

(원광대학교강사)

목 차

Ⅰ.머리말 4. 瓢形 사리구

Ⅱ.고려시대 사리구 형식 Ⅲ. 기법의 변천

1. 四角形 사리구 1. 板金期 2. 塔型 사리구 2. 成形期

(1)복발탑형 사리구 3 .裝飾意匠期

(2)승탑형 사리구 Ⅳ. 사리구의 미술사적 의의

(3)라마탑형 사리구 Ⅴ. 맺음말

3. 圓筒形 사리구

Ⅰ.머리말

사리는 공경, 예배되는 불교 신앙의 중심대상으로 사리를 모신 장엄구는 금, 은, 동을 비롯한 여러 가지로 공들여 꾸며 만들었다. 우리나라에서는 불교의 전래와 함께 제작되 었을 것으로 추측하지만 7세기 중엽 자장에 의해서 본격적으로 일어났다고 본다. 이렇 게 제작되기 시작한 사리구는 각 시대마다 재료, 형태, 기법에서 다양하게 발전하였다.

고려시대 사리구는 역시 금 은, 동 유리, 자기 등 다양한 재료로 제작되었으며, 그 가 운데 금속으로 제작된 사리구는 고려 공예사에 있어서 중요한 자료라 할 수 있다. 즉 고려시대 공예는 자기, 칠기, 은입사향완, 범종, 반자 등 나름의 특성 안에서 형태, 문양 의 변화만을 보여주고 있다. 그러나 사리구는 금속을 재료로 하여 다양한 기법을 보여 주고 있는 것으로, 금속공예 기법사에 있어서 중요한 자료라 할 수 있다. 금속공예 기법 사에 있어서 판금기, 성형기, 장식의장기로 나뉘어지는 기법의 발전 단계를 보여주며, 고려자기, 나전칠기 등의 상감기법에 영향을 주었고, 따라서 그것들의 발전에 따라 금속 공예 제작이 주춤하게 되었음을 보여주는 시각적 자료이다.

그러나 고려시대 사리구에 대한 연구가 거의 없이 고려시대 금속공예사는 주로 주조

기법에 의한 공예품만을 다루었다. 그리하여 필자는 사리구를 통한 고려시대 금속공예

사를 연구하기로 하고 그 범위를 다음과 같이 한다. 우선 어떠한 형식을 지니고 있는지

구분하여 보고 어떠한 기법으로 제작되었는가와 그 제작 기법은 어떠한 변천을 하는지

(2)

살펴본다. 더불어 사리구가 갖는 고려 미술사적 의의를 짚어본다.

Ⅱ. 고려시대 사리구 형식

고려는 불교를 국교로 삼아 불교미술이 그 절정에 이르렀다 이 시대 미술의 특징은 궁 정생활, 귀족생활을 통한 섬려, 호화, 사치스러움과 동시에 불교의 공식적인 승인에 따라 이루어진 불교화이다. 불교가 국교로 숭상됨에 따라 궁정, 귀족, 서민 모두가 불교와 밀 착하게 되었고 궁정, 귀족의 시주에 따른 불교미술품은 다소 그들의 취향에 맞는 경향을 띠게 되었다. 따라서 고려 미술의 전반적인 성향은 호화롭고 섬려한 불교적인 것이다.

고려시대 미술품으로는 고려불화, 탑, 범종, 사리구, 반자 등의 불교 미술품과 고려자 기, 나전칠기, 장신구 등의 일상 용품이 있다. 이 가운데 사리구는 고려시대 공예사의 흐름을 파악하는데 중요한 장르로 13세기 금속공예의 쇠퇴에 따른 자기나 칠기의 발달 요인이 되기도 하였다.

고려시대 사리구 형식은 다른 미술품과 마찬가지로 통일신라 시대의 영향을 많이 받 으며 발전하였다. 통일신라 시대 사리구 형식은 탑형(塔型), 전각형(殿閣形), 관함형(棺 函形), 합형(盒形)으로 분류되는데

1)

고려시대 사리구 형식은 통일신라시대의 그 범주에 서 크게 벗어나지 않는 사각형(四角形), 탑형(塔型), 원통형(圓筒形), 표형(瓢形)으로 나 누어 볼 수 있다.

1. 사각형 사리구(四角形 舍利具)

사각형 사리구는 정확하게 사각진 형식을 갖추고 있지 않았으나 거의 사각의 꼴에 가까 운 형식을 이름하여 부른다. 사각형 사리구는 통일신라 시대 사리구 형식 가운데 관함형식 (棺函形式), 방합형식(方盒形式)과 상통하지만 크게 사각형이라는 울타리 안에 묶어 본다.

사각형에 속하는 사리구는 안동(安東) 임하사(臨河寺) 전탑지(塼塔址) 사리구, 서산 (瑞山) 보원사지(普願寺址) 오층석탑 사리구, 월정사(月精寺) 팔각구층석탑 사리구, 광산 (光山) 신용리(新龍里) 오층석탑 사리구, 청양(靑陽) 도림사지(道林寺址) 삼층석탑 사리 구 등이 있다. 이 가운데 안동 임하사 전탑지 사리구, 광산 신룡리 오층석탑 사리구는 신라시대의 관함형식에서 이어져 온 형식으로 구분할 수 있으며 서산 보원사지 오층석 탑 사리구, 월정사 팔각구층석탑 사리구, 청양 도림사지 삼층석찹 사리구 등은 신라시대 방합형식에 그 기본을 두고 있다고 할 수 있다.

(1)안동(安東) 임하사(臨河寺) 전탑지(塼塔址) 은제사리내함 (銀製舍利內函)

이 사리구는 안동시(安東市) 옥동(玉洞) 임하사로 추정되는 사지(寺址)의 전탑지(塼 塔址)에서 출토되었다.

2)

높이 2.9cm의 사각형 은제사리내함은 몸체 부분과 뚜껑으로 간 단한 구성을 하고 있다.

사리내함은 전(傳) 황복사지 삼층석탑 금동사리외함, 불국사 석가탑 금동장방형사리 합, 익산 왕궁리 오층석탑 금동제 사리외함, 경주 동천동 출토 청동사리방합 등과 그 형

1) 강순형(1987), “新羅사리裝置硏究”, p.24, 홍익대학교 대학교 대학원 석사학위논문 2) 秦弘燮(1966), “安東臨河洞三層石塔內 舍利裝置”, p.158, 『考古美術』7-1, 韓國美術史學會

(3)

식에 있어 유사하다고 할 수 있다. 다만 뚜껑 부분에 있어서 다른 점이 있는데 그것은 손잡이 장식의 유무(有無)와 전체적인 제작 기법에 있다고 할 수 있다.

사리내함과 동시에 출토된 은제도금사리외함은 몸체부분이 사각형이지만 뚜껑에 해당 되는 부분은 지붕형식을 하고 있다. 이러한 형식은 아마 감은사지서사층석탑(感恩寺址 西四層石塔)의 금동사리외함, 익산 왕궁리 오층석탑 금제사리내합의 변형이 아닌가 생 각된다.

(2) 광산(光山) 신용리(新龍里) 오층석탑(五層石塔) 금동장방형합(金銅長方形盒)

이 사리구는 1981年 전남 광산군 임곡면 신룡리에 있는 오층석탑의 복원공사중 일층 탑신 방형(方形) 사리공(舍利孔)에서 금동장방형(金銅長方形)과 금동사리병(金銅舍利 甁), 소형목탑(小型木塔), 죽편(竹片) 8점이 수습된 사리구

3)

가운데 하나이다.

금동장방형합은 높이 9.4cm로 앞서 살펴본 안동 임하사 전탑지 사리내함과 비슷한 형 식으로 외합과 내함이라는 점에서 크기의 차이를 보이고 있다. 이 사리기는 사각형 몸 체와 뚜껑으로 二分되어 있을 뿐 아무런 조식(彫飾)이 없는 간단한 형식을 하고 있다.

(3) 서산(瑞山) 보현사지(普願寺址) 오층석탑(五層石塔) 사리구(舍利具)

이 사리구는 1968年 서산 보원사지 오층탑을 해체 보수하면서 4층 옥개석과 기단적석 층(基壇積石層)에서 발견한 것이다.

4)

금동장방형사리통(金銅長方形舍利筒)은 높이 5.0cm 로 수호신(守護神)이 선각(線刻)되어 있고, 금동방형사리외합은 높이 8.2cm 로 앞쪽에는 두 인물을 선각하여 묘사하였고 뒤쪽에는 쌍구체로

5)

쓰여진 명문이 있다.

금동장방형사리통은 고려시대에 새롭게 등장한 형식으로 방형의 지루함에서 벗어나 보려는 형식이라 할 수 있다. 또한 금동방형사리외합은 오대산(五臺山)에 문수(文殊)가 실제로 현존한다는 믿음을 보여주는 자료로 연기법송(緣起法頌)의 원전과 게송(偈頌)이 한국으로 전래된 경로를 시각적으로 표현한 것을 결합한 것으로 볼 수 있다.

6)

금동방형 사리외합은 국립청주박물관 소장 금동신장상문경갑(金銅神將像文經匣)과 그 형식이 매 우 비슷하며 이후 월정사 팔각구층석탑의 금동방형합과 청양 도림사지 삼층석찹의 시원 으로도 볼 수 있는 12세기

7)

형식이다.

(4) 월정사(月精寺) 팔각구층석탑(八各九層石塔) 금동방형합(金銅方形盒)

이 사리구는 1970年 기울어졌던 탑을 해체 복원하면서 탑의 초층과 5층에서 사리구가 발견되었다.

8)

금동방형은 국립청주박물관 소장 금동신장상문경갑과 매우 유사한 합으로 다소 시대가 떨어지는 작품이라고 생각한다.

3)『佛舍利莊嚴』(1991), p.120, 국립중앙박물관 4)『佛舍利莊嚴』(1991), p.118

5) 얀 폰테인(1991), “瑞山 普願寺址 五層石塔에서 발견된 舍利盒”, p.94『美術資料』제47호, 국립중앙박물관 6) 폰테인(1991), 전게논문, p.100

7) 李殷昌(1966), “瑞山 普願寺址의 調査”, ,p.186, 『考古美術』, 통권69호 8)『佛舍利莊嚴』,p .119

(4)

월정사 금도앙형합은 앞 뒷면에 2구의 신장을 표현하였는데 금동신장문경갑은 앞면에 서 3구의 신장을 표현하고, 뒷면에는 탑을 외호하는 2구의 신장을 표현하였다. 금동신장 상문경갑은 앞서 살펴 본 불국사 석가탑 금동장방형사리합과 유사하다. 다만 불국사 금 동장방형사리합의 경우 넓은쪽 몸체의 양면에 3층탑을 가운데 두고 마주 보고선 보살상 이 선각되었고, 좁은쪽 면에는 인왕상으로 여겨지는 무기를 들고 서 있는 신장상이 하 나씩 선각되어 있어 크기와 내용에 있어 약간의 차이를 지니고 있으나 기법에 있어서 유사함을 알 수 있다.

따라서 신라시대 불국사 석가탑 금동장방형사리합의 형식이 고려 전기에 제작된 국립 청주박물관 소장 금동신장상문경갑에 나타나고, 같은 기법과 내용을 가졌다고 할 수는 있으나 다소 후행하는 것으로 보이는 월정사 금동방형합이 제작되었다.

그러나 이러한 형식은 점차 사라지면서 10세기말 청양 도림사지 삼층석탑 금동방형사 리합을 마지막으로 나타나며 부여 장하리 삼층석탑 금동제외사리병에서 표현기법들 찾 아 볼 수 있다.

(5) 청양(靑陽) 도림사지(道林寺址) 삼층석탑(三層石塔) 금동방형합(金銅方形舍利盒)

1973年 도림사지 삼층석탑을 해체 수리시 발견한 것으로 앞에서 살펴 본 국립청주박 물관 소장 금동신장상문경갑, 월정사 팔각구층석탑 금동방형합과 유사한 형태와 제작 기법을 보이고 있다. 이 사리합은 10세기 작품으로 평가받고 있으나 제작 기법과 내용 의 단순성에 의해 11세기 작품으로 추정한다.

2. 탑형(塔形) 사리구(舍利具)

탑형 사리구는 신라시대의 경우 복발탑, 팔각탑으로 분류되기도 하지만

9)

고려시대의 경우 복발탑, 라마탑 형식으로 나누어 볼 수 있다.

(1)복발탑형(覆鉢塔形) 사리구(舍利具)

이 형식은 인도 탑인 복발형 탑을 모방한 것으로 통일신라 후기부터 제작되어 사용되 었으며 통일신라시대 화장 풍습에 따른 토제골호(土製骨壺)에서도 유사한 예를 볼 수 있다.

10)

복발탑형사리기는 받침대의 높고 낮음에 따라 두 형식으로 구분할 수 있다. 그

Ⅰ형식은 높은 받침대와 둥그런 답신, 그리고 층층으로 올려진 상륜의 3부분으로 구성 된 간다라 형식의 복발탑을 따르고 있고

11)

그 Ⅱ형식은 낮은 받침대와 둥그런 탑신, 간 단한 3중의 상륜으로 구성되어 있다.

Ⅰ형식은 9세기 말에서 10세기 사이에 처음 제작되어 시작했을 것으로 여겨지는 형식 으로 호림박물관 소장 청동복발탑형사리기, 금동제복발탑형사리기, 호암미술관 소장 청 동 복발탑형사리기, 부산 시립박물관 소장 청동복발탑형사리기 등이 있다.

Ⅱ형식은 인도의 피프라하와 대탑에서 나온 곱돌사리호

12)

와 비슷한 형식을 하고 있

9) 강순형(1987), 전게논문, pp. 25-42 10)『佛舍利長嚴』 (1991), p.118

11) 강순형(1987), 전게논문, p.26에서는 이러한 형식을 복발탑 Ⅰ형식으로 세분하고 있다.

12) 高田 修(1969), “イソトの佛塔と舍利安置法”, 『佛敎美術史論考』,p.43, 中央公論美術出版

(5)

다. 피프라하와 곱돌사리호 가운데 하나에는 “석가족 부처인 세존의 유골 용기이다”라 는 명문이 뚜껑 겉에 새겨져 있어"

13)

인도 유골 안치법을 우리나라에서도 찾아 볼 수 있 는 형식이다.

Ⅱ형식에는 영남대학교박물관(嶺南大學敎博物館) 소장 수정복발형탑(水晶覆鉢形塔)사 리기와 국립중앙박물관 소장 수정복발형 탑사리기가 있다.

이 형식은 피프라하와 곱돌사리호 외에 소나리 2탑 곱돌사리호

14)

에서도 찾아 볼 수 있으며 경주에서 출토된 토골흐도 비슷한 유형이라 할 수 있다.

이 형식은 기단부가 연꽃좌로 이루어져 있고 그 위에 2중의 앙연이 수정탑신부를 받 치고 있으며 상륜부는 10편의 연꽃잎으로 탑신부를 덮고 그 위에 3중, 또는 4중의 층급 이 있고 맨 위에는 보주형 꼭지로 장식하였다.

15)

(2) 승탑형(僧塔形) 사리구(舍利具)

승탑형 사리구는 전각형 사리구 또는 누각형 사리구로 세분하여 볼 수도 있으나16) 고려시 대 사리구에서는 승탑형으로 일괄하여 묶어 본다. 그 이유는 사각형, 육각형, 팔각형 등의 사 리구가 불탑과 같이 다층의 탑신부를 갖지 않고 기단부, 단층탑신부, 옥개석으로 이루어진 승탑과 형식에 있어서 유사하기 때문이다.

①광주(光州) 서오층석탑(西五層石塔) 금동제승탑형사리기(金銅製僧塔形舍利器)

이 사리구는 1961年 광주 시내의 동 서탑 해체 수리때 서탑의 이층옥신 방형사리공에 서 발견된 것이다.

17)

사리기의 옥신사면(屋身四面)에는 압출(押出)된 보살상 4구를 부착 하였으나 현재는 3구만 남아 있으며 옥신 이상의 부분을 뚜껑으로 삼았는데 그 안에는 기단 윗면의 중앙에 연화좌를 마련하고 사리를 담은 은제사리호를 안치하였다.

이 사리기는 국립전주박물관 소장 남원출토 사리기와 같이 모서리마다 사천왕을 세웠 다. 이것으로 보아 탑과 마찬가지로 사리기 자체에도 수호 장치를 배려하였고 예배 대 상으로 삼았음을 알 수 있다. 이 형식은 멀리 불국사 3층 석탑 금동외사리함에서 그 기 본 단위를 찾아 볼 수 있으나 불국사 사리기는 오히려 전각형식에 가까운 것이며 승탑 형 사리구는 조선새대의 승탑에서 많이 볼 수 있는 형식을 하고 있다.

② 전(傳) 부여(夫餘) 보광사지탑(普光寺址塔) 금동팔각승탑형사리기(金銅八角僧塔形 舍利器)

이 사리구는 일제 때 발견된 것으로 부여 가신리 보관사로 전칭되는 어느 탑에서 수습 된 것이다. 사리를 봉안한 금동팔각승탑형사리기는 기단부가 결실되어 있으며 신부(身 部)의 8명에 사천왕상과 어자문(漁子文) 장식이 교대로 배치되어 있다. 이 사리기는 염거 화상 8각 승탑과 비슷한 유형으로 승탑형식을 응용하여 만든 14세기 사리기라 여겨진다.

③수종사(水鐘寺) 승탑형 사리구

이 사리구는 1939年 수종사 부도에서 발견되었다고 전해지며 금동제9층탑, 은제도금 육각함, 청자유개호가 출토되었다. 은제도금육각함은 기단부와 탑신부, 옥개부로 나뉘어

13) 高山 修(1969), 전게서, p.55

14) 河田 貞(1983),“イソト中國朝鮮の佛舍利莊嚴”, 佛舍利の莊嚴, p.245, 同明舍

15) 보주형 꼭지가 용기에 나타나는 것은 불교의 寶珠思想에 의해 생긴 것으로 보고 있다. 강순형(1987), 전게논 문,p.37

16) 강순형(1987), 전게논문,pp.43-50

17) 秦弘變91962), “光州西五層石塔의 舍利裝置”,『美術資料』5, p.4, 국립중앙박물관

(6)

진다. 기단부는 6각하호부터 위로 복연판25엽, 양연판 18엽으로 장식하고 그 위에는 사 리기를 안치할 연화대좌를 마련하였는데 연화대좌는 수정사리기의 구형 탑신이 안치되 도록 반구형으로 파고 만들었다.

사리공은 수정사리기의 구형탑신과 그 위 옥개에 각각 설치되었는데 현재 사리는 전 자에만 안치되었다. 옥개부는 기와단이 도합 5단이나 맨 아랫단은 탑신부와 한몸이고, 상류는 2층 보륜 위에 앙연화와 연봉형 종마루로 구성되었다.

이렇게 승탑형사리구는 앞서 살펴 본 8각승탑 형식과 아울러 6각승탑 형식이 제작되는 데 이것은 고려시대 다층다각의 조탑 기류와 같은 맥락에서 이해하여야 한다고 생각한다.

④승주(昇州) 선암사(仙嚴寺) 동삼층석탑(銅三層石塔) 동제팔각승탑형사리감(銅製八角 僧塔形舍利龕)

선암사 동삼층석탑 보수시 발견된 것으로 3부분으로 구분해 볼 수 있다. 즉 대좌, 탑 신 내부사리기, 8각 외부사리기와 지붕으로 구성되어 있다.

대좌는 8개의 다리가 있고 그 위에 한겹의 복련이 새겨져 있다. 그 위에는 팔각의 대 좌중대석과 3겹의 복련좌가 있고 양련의 중앙에는 수정사리기를 감입할 수 있도록 작은 동제(銅製)촉수가 있는데 그 끝은 둥글게 파여져 있어 사리안치시 용이함을 고려하였다.

수정사리기는 팔각이면서 하부는 평평하고 상부는 첨형을 이루고 있다. 그 아래로부터 둥근 구멍이 파여져 있는 사리공이 있으며 여기에는 대좌의 동제 촉수를 연결할 수 있 게 배려한 것으로 생각된다.

외탑신부(外塔身部)는 팔각으로, 지붕은 3단의 기와단을 설치하였으며 상륜부는 결실 되었다. 전체적으로 부식이 심하여 11곳이나 구멍이 있어 보존처리가 시급함을 알 수 있다. 팔각의 탑신부에는 각칸마다 사화문(四花文)으로 문살을 장식하고 있는데 이것은 3단의 기와단과 함께 영전사지보제존자사리탑의 육각함형사리기에서도 찾아 볼 수 있는 의장이다.

이 사리기는 통일신라시대 석탑양식을 보여주는 석탑에서 발견된 것으로 청자, 백자 등과 함께 출토되었는데 창자는 시대가 올라가고 사리감(舍利龕), 백자 등은 고려말 조 선초기 양식을 보여주고 있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18)

그러나 사리기 자체만으로는 고려 후기 양식임을 알 수 있어 편년은 기법을 다루는 과정에서 다시 생각해 보기로 하겠다.

⑤ 원주(原州) 영전사지(令傳寺址) 조제존자승탑출사(普濟尊者僧塔出土) 은제도금육각사 리감(銀製鍍金六角舍利龕)

원주 영전사지에 있던 2기의 탑을 경복궁으로 옮기는 중 알려진 사리구로 이 사리기는 석탑에서 발견된 것이다.

19)

이 은제도금육각사리감은 수종사부도탑육각감과 선암사 동삼층석탑의 청동제팔각승탑 형사리기와 비교 가능한 사리기이다. 대좌는 6개의 다리가 있고 그 위 각면에 3개씩 복 련으로 조식하였으며 중대석이 마련되어져 있다.

탑신부는 육각으로 각칸마다 사화문(四花文)으로 문살을 장식하고 있으며 3단의 기와 단이 단정하게 자리하고 있고 그 위에 장반원형에 가까운 보주를 얹고 있다. 이 사리기 는 승주 선암사 동삼층석탑 팔각동제도금사리감과 매우 유사한 형식으로 기와단의 경사 가 완만하고 대좌의 장식이 다소 도식화되고 간단하게 마무리한 점으로 보아 선암사 사 리기보다는 후행하는 것으로 추정된다.

18)『佛舍利莊嚴』(1991), p.122 19)『佛舍利莊嚴』(1991), p.1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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⑥ 이성계(李成桂) 발원(發願) 은제팔각승탑형사리감(銀製八角僧塔形舍利龕)

이 사리기는 이성계를 중심으로 한 승(僧), 속인만여인(俗人萬餘人)의 발원을 담은 것 으로 1932年 금강산 원출봉의 석함내(石函內)에서 발견되었다. 대좌부는 8각에 가까운 원통형으로 단편앙연을 작각으로 세워 조식하였고, 그 위에 은판을 두들겨 원형에 가까 운 8각통을 만들어 세웠다. 이것은 아마 은제도금라마형사리기를 안치하기 위해 만든 것으로 생각된다.

탑신은 하단에 당초문을 양각하고 8각의 각모서리에는 기둥이 음각되었으며 각면마다 합장한 여래입상 1구가 음각되어 있으며 불상 위에는 산개모양을 간단하게 선각하였다.

지붕은 탑신과 마찬가지로 8각이며, 기와는 2단으로 올려져 있고 정상에는 연화가 장식 되어 있다.

이 외에도 삼층탑형식의 일례(一例)가 있는데 현재 국립중앙박물관 소장품으로 사각 형 일매(一枚)의 동판(銅板)으로 만든 기단부, 3층의 탑신부로 구성되어 있으며 상륜부 는 결실되었다. 탑신부와 기단부는 분리가 가능하며 탑신부의 옥개마다 기왓골이 표현 되어 있어 승탑형 사리구의 이형으로 여겨진다.

(3) 라마탑형 사리구

이 형식은 14세기를 전후하여 새롭게 등장하는 사리장엄형식으로 중국 원의 라마탑을 모방한 형식이다. 라마탑 형식은 고려 후기에 자주 볼 수 있는 석탑의 상륜부 장식과 비슷한 것으로 원과의 교섭에 의한 새로운 형식임을 알 수 있으나 너무나 장식에만 치 우쳐 있음을 알 수 있다.

① 국립중앙박물관 소장 금동라마탑형사리기

이 사리기는 기단부, 탑신부, 상륜부의 3부분으로 나누어진다. 기단부는 다시 기단부, 중단부, 상단부로 나누어 볼 수 있고 기단부는 원형에 가까운 8각면으로 하고 받침대에 는 16곳에 보석을 감입하였고, 받침대 위에는 8곳에 보석을 감입하였다. 중단부는 6각으 로 단을 만들었는데 아무런 조식이 없고, 상단부는 다시 원형에 가까운 8각면을 만들어 각각 보석을 감입하였다.

② 호암미술관 소장 금동라마탑형사리기

이 사리기는 형태상 탑신부와 옥개부로 나누어 볼 수 있다. 탑신부는 다시 기단부와 탑 신부로 구분하여 볼 수 있으나 별도로 제작하지 않고 이어 만들었다. 기단부는 하문대(下 文帶)와 상문대(上文帶)를 사각형 띠로 조식하였고, 하문대 바로 윗부분에는 네곳에 각각 3조와 1조의 홈을 파내었으며 층을 경사지게 하여 복련과 앙련을 둘렀다. 탑신부는 3조의 선을 도드라지게 하여 장식하였고 그 위에 원형 홈을 파고 보석을 감입한 듯하다.

3. 원통형

이 형식은 고려 초기의 몇몇 사리구에서 찾아 볼 수 있는 것으로 시대의 변이 과정에

서 오는 정체적 유형이라 할 수 있겠다. 이 형식의 예로는 금산사(金山寺) 오층석탑의

청동제원통형사리합, 안성(安城) 장명사명(長命寺銘) 청동제원통형사리합, 동아대학교

(銅亞大學校)박물관 소장 청동제원통형사리합, 함양승안사지(咸陽昇安寺址) 삼층석탑의

청동사리합, 국립중앙박물관 소장 은제원통형사리합은 2기 등이 있다.

(8)

금산사 오층석탑 청동제원통형사리합과 안성 장명사명 청동제원통형사리합은 상하 2 단, 뚜껑 부분으로 구성되어 있고 장식 의장은 없으나 주물에 의한 자국으로 보이는 세 선이 전체를 덮고 있다.

동아대학교박물관 소장 청동제원통형사리합은 위 2기의 사리기를 압축해 놓은 듯한 외형으로 전신에 일정한 간격의 세선이 표현되어 있는데 의도적임을 알 수 있다. 뚜껑 에는 화문을 새기고 있다.

승안사지 청동사리합과 국립중앙박물관 소장 은제원통형사리합 2기는 손잡이 뚜껑을 가진 공통점 외에 형태상 아주 다른 분위기를 갖고 있다. 전자의 경우

20)

그 형식은 위 에서 살펴 본 동아대학교 박물관 소장 청동제원통형사리합과 매우 비슷하지만 뚜껑에 구슬모양의 손잡이를 지니고 있어 이후 원통형사리구의 모본형식이라 생각된다.

국립중앙박물관 소장 은제원통형사리합 2기는 고려 말기에 나타나는 형식으로 뚜껑으 로 끝 부분이 거치문으로 마감되어 있고 손잡이는 원봉으로 만들었다. 이러한 형식은 승안사지 원통형 사리구를 출발점으로 하여 고려 말기부터 제작되기 시작하여 조선시대 에는 많이 제작되었음을 알 수 있다.

4. 표형 사리구

이 형식은 외관상 표형을 하고 있는 것으로 초기에는 장식의장이 전혀 없는 밋밋한 형태를 지니고 있다가 12세기 후반에 이르러 거의 평면에 가까운 장식의장을 거치면서 12세기 말 13세기 초에는 매우 화려하게 장식되는 특징이 있다.

고려 초기의 작품으로 생각되는 안성(安成) 죽산리(竹山里) 오층석탑(五層石塔) 금동 제사리병(金銅製舍利甁)과 광산(光山) 신용리(新龍里) 오층석탑(五層石塔) 금동사리병 (金銅舍利甁)은 장식 의장이 전혀 없다. 전자의 경우 뚜껑이 없는 일체형(一體形)으로 복부(腹部)와 경부(頸部)를 이어 만든 것으로 생각된다. 후자는 복부를 이분(二分)하여 접합하였으며 뚜껑은 구슬모양의 손잡이를 일교(一校)의 동판에 접합하여 만든 것으로 생각된다.

12세기의 작품으로 부여(扶餘) 장하리(長蝦里) 삼층석탑(三層石塔) 사리구(舍利具)가 있는데

21)

은제사리내병(銀製舍利內甁)과 금동사리외병(金銅舍利外甁)이 발견되었으며 현 재 국립부여박물관에서 전시중이다. 이 사리구들은 고려 초기와 후기를 이어주는 중요한 작품의 형태와 기법을 가지고 있다. 즉 형태에 있어서 고려 초기 작품인 안성 죽산리 금 동제사리병과 광산 신용리 금동사리병 보다 형식미를 추구하였으며 이 단계에서 발전하 여 12세기 말 13세기초 표형 은제도금사리병의 표현이 가능하였을 것으로 짐작된다.

12세기말 13세기 초의 작품으로 추정되는 국립청주박물관 소장 은제도금표형 사리병 은 외관상 매우 아름다운 형태를 지니고 있는 것으로 굽이 없고 상하 2단으로 분리하여 접합하였으며 뚜껑은 연봉형이다.

20) 洪思俊(1962), “昇安寺址 三層石塔內 發見遺物”, p.298, 『考古美術』 통권27호, 한지에 써 있는 ‘홍치’라는 묵서 명에 따라 조선시대로 보고 있으나 이 사리구는 기법상 고려시대 작품으로 추정되며 한지는 후대에 장신구와 함께 넣었을 것으로 생각된다.

21) 金永培(1963), “扶餘 長蝦里 石塔의 舍利藏置”, p.367, 『考古美術』, 통권32호

(9)

Ⅲ. 기법의 변천

고려시대는 불교의 교세가 활발하고 융성하였지만 불상, 석탑과 같은 불교조각은 통 일신라 시대보다 쇠퇴하였고 오히려 공예미술이 상당히 발전하였다. 공예미술품은 통일 신라시대까지의 그것과 비교해 볼 때 종류와 수에 있어서 우월하다. 즉 범종, 반자, 사 리장엄구, 정병, 동경, 고려청자, 나전칠기 등의 제작이 활발하여 이전시대의 장신구 정 도에 그친다고 할 수 있는 공예물에 비해 현격한 발전을 이루었다.

고려시대 공예미술품 가운데 범종, 반자, 사리장엄구, 정병, 향로 등은 금속공예사에 있어 수적, 양적인 발전과 발달을 이룩하였는데 그 원인은 불교의 공인에 있다고 할 수 있다. 즉 고려시대 불교는 선종불교(禪宗佛敎)가 우세하여 불상 예배보다는 사경이 유행 하였으며, 영산회, 팔관회, 연등회 등의 불교의식 성행으로

22)

많은 금속공예품이 제작 되었다. 이로 인해 고려시대에는 건축, 조각, 공예, 단청, 기와를 만드는 뛰어난 승장도 있었고, 귀족사회에 의한 그들의 호화로운 생활을 충족시키기 위해 여러 가지 공예미술 품 제작이 활발하였다.

다종다수로 제작된 고려시대 금속공예품 가운데 사리구는 제작 기법을 다양하게 보여 주고 있는 예로써 기법을 통한 편년 추정이 가능하리라 생각된다. 고려시대는 대개 태 조부터 예종까지를 전기, 인종부터 고려말까지를 후기로 상정하는 것이 보편적이나 사 리구의 기법에 따르면 3기로 나누어 볼 수 있다. 즉 9세기에서 10세기에 해당되는 판금 기, 11세기에서 12세기에 해당되는 성형기, 14세기의 장식의장기로 나눌 수 있다.

1. 판금기(板金期)

금속공예 작업을 하는데 있어서 형태를 성형하는 방법에는 크게 판금, 단금, 주조, 조 금기법으로 나누어진다. 그 중 판금기법은 형태를 만들어가는 가장 기본적인 작업 과정 이다. 이 기법은 금속 板 상태에서 작업을 시작하여 형태를 이루어가는 것으로 판을 자 르는 절단, 접거나 꺾는 절곡, 곡면으로 구부리기 등의 과정이 있다.

판금기법은 금속문화가 가장 발달했던 신라시대에 주로 사용된 기법으로

23)

판을 자르 고 절곡하여 땜을 한다. 이것을 기반으로 하여 고려시대 9-10세기의 사리구는 거의 이 판금기법을 사용하고 있다. 대표적인 판금기법 작품으로는 안동 임하사 전탑지 은세사 각형사리내합(사진1)으로 몸체 부분은 은판을 열풀림한 뒤 4면으로 절곡하여 이음새를 땜으로 고정하였다. 바닥은 은판을 절곡한 사각 크기에 맞게 실톱이나 금속가위를 이용 하여 절단하고 땜으로 고정하였다.

뚜껑 부분은 절곡하여 만든 4면체보다 크게 절단하고 각 모서리에서 뚜껑의 구연부에 해당되는 정도를 톱이나 금속가위를 이용하여 직선의 홈을 내고 4면체와 닿는 부분은 절곡하여 만들었다. 뚜껑의 장식물은 꽃무늬를 은판 위에 철필로 그리고 난 후 실톱을 이용하여 형태를 만들었으며 자방에 해당하는 부분을 이용하여 뚜껑과 리베팅한 것으로 익산 왕궁리 오층석탑에서 발견된 사리구들 보다 표현 기법이 완화된 9세기 작품이다.

위의 판금기법은 함께 발견된 은제도금사리외함(도(圖) 2)에서도 찾아 볼 수 있다. 첫 째, 은판을 열풀림한 뒤 사각 모양을 철필로 그리고 금속가위를 사용하여 절단한 뒤 절

22) 임영주(1993), “繕의 예술로 승화시킨 고려 나전칠기”, p.74, 『미술과 공예』

23) 안용희(1992), “판금기법”, p.72, 『미술과 공예』

(10)

곡하였다. 지붕과 처마의 장식물들은 절단하여 표현하였고 장식물 이음새는 운봉을 이 용하여 보석과 함께 리베팅한 9세기 작품이다.

위의 판금기법과는 달리 주조기법에 의해 제작된 사리구가 있는데

24)

호림박물관 소장 청동제복발탑형사리기 (사진 3), 호암미술관 소장 청동제복발탑형사리기 (사진 4), 부산 시립박물관 소장 청동제복발탑형사리기 (사진 5) 등이 있다.

주조기법은 신라시대 범종의 제작과 더불어 고려시대에 이르러 불상, 은입사향료, 정 병, 반자 등에서 많은 발전을 이루었다. 위의 사리구에서 볼 수 있는 주조기법은 굽과 하복부를 일체(一體)로 상복부와 상륜부를 일체(一體)로 주조하였다.

이 사리구들은 구리, 주석, 납, 아연을 주성분으로 하고 있는데 상륜부의 복잡한 장식 은 잘 나타나게 하기 위하여 보통의 납과 아연의 비율인 6.8%보다는 약간 높은 비율을 사용하였을 것으로 짐작된다. 이 사리구들은 갈항사지 사리구보다 시대가 떨어지는 9세 기 작품으로 추정한다.

다시 판금기법의 사리구로 돌아와 국립청주박물관 소장 금동신장상문경갑(金銅神將像 文經匣)(사진 6,7)을 살펴 보기로 한다. 이 경갑은 앞에서 살펴 본 임하사 은제사리구의 제작기법과 동일하다. 또한 표면장식기법이 전대(前代)부터 이어져온 방법을 사용하고 있다. 신장상은 공군정

25)

으로 음각하였다. 또한 바탕은 방울정으로 찍어서 마치 어자문 (魚子文)과 비슷한 효과를 주고 있다. 이러한 음각과 바탕의 표현은 불국사 석가탑에서 발견된 금동사각형사리합(金銅四角形舍利盒)(사진 8)과 매우 유사하나 표현이 다소 완 화된 9세기 작품이며 이후의 작품에서도 많이 볼 수 있는 평면 표면장식 기법이다.

위와 같은 예로는 국립부여박물관 소장 서산 보원사지 금동사각형사리통(瑞山 普願寺 址 金銅四角形舍利筒)(사진 9,10)이 있다. 이것은 동판을 열풀림한 뒤 자르고 절곡하고 땜을 하여 형태를 만들고, 형태 안에 가탕을 붓고 공군정과 방울정을 사용하여 조식하 였다. 함께 발견된 금동사각형사리외갑(金銅四角形舍利外匣)(사진 11)은 보살상과 스님 을 음각하였는데 이때 사용된 표면장식 도구는 촛정

26)

이다.

10세기의 원통형 사리구는 주조기법에 의하여 제작되었는데 그 예로는 금산사 오층 석탑에서 발견된 사리구 (사진 12)와 장명사명 사리구(사진 13)가 있다.

월정사 팔각구층석탑 금동제사각형사리합 (사진 14, 15)은 제작기법이 국립청주박물 관 소장 금동신장상문경갑과 서산 보원사지 금동사각형사리외갑, 금동사각형사리통과 유사하다. 뚜껑과 몸체는 동판을 사각형으로 자른 후 각 모서리에서 홈을 파고 땜하여 세워 만들었다. 표면장식으로는 신장상을 선각하였다. 신장상의 외곽선은 촛정을 사용하 였고 장식과 옷 등에는 공군정을 사용하였다. 바탕은 방울정으로 일정한 규칙을 두고 찍어 표현하였다.

위와 비숫한 기법을 사용하여 제작된 사리구로는 청양(靑陽) 도림사지 삼층석탑금동 사각형사리합(道林寺址 三層石塔金銅四角形舍利盒) (사진 16)이 있다. 다만 표면장식기 법은 위에서 살펴 본 사리구들과 약간의 차이점을 지니고 있다. 중앙에 커다란 원권을 두고 사방으로 팔메트형 초화문을 새겼으며, 바깥쪽 구획과의 경계는 굵은 연주문으로 표현하고 있다. 팔메트문이나 원권, 연주문, 사각 테두리는 운풍정

27)

으로 초벌 음각을

24) 이것은 주조기법에 의한 사리구이지만 범종, 반자와 같이 장식 의장이 없는 주조의 기초 기법을 사용하고 있으 므로 판금기 작품으로 분류한다.

25)정의 끝부분이 약간 평평하며 직각에 가까울 만큼 세워잡고 뒤쪽을 망치로 치면서 사용한다.

26) 끝이 세모지고 뾰족하여 평조각기법에 주로 쓰인다. 사용방법은 정의 끝부분이 바탕금속과 30도 정도 경사지게 잡고 망치로 뒤쪽을 치면서 표현한다.

(11)

하고 촛정으로 다시 깊고 정확하게 표현하였다.

삼국시대 이후 통일신라 시대 금속공예품에 있어서 선각이나 음각은 주로 앞에서 혹 은 뒤에서 방울정이나 운풍정으로 때려 표현한 정도에 (사진 17) 그쳤지만 고려 10세기 의 작품에서는 방울정이나 촛정을 함께 사용하여 음각을 보다 선명하고 정확하게 하고 자 한 의도가 보인다. 또한 보살상, 신장상 등을 주로 음각하였으나 초화문을 도식화하 여 표현한 것도 특징이다.

판금기의 가장 마지막 사리구로 추정되는 것은 광주 서오층석탑의 금동탑형사리구(사 진 18)이다. 이 사리구는 판금기의 총체적 기법을 보여주는 것이라고 할 수 있다. 기단 부는 3층으로, 동판을 땜하여 4면을 고정하였고 4각 모서리에 신장상을 주조하여 세웠 으며 탑신은 기둥을 압출하고 바탕에는 보살상을 주조하여 세웠다. 주조기법은 모형을 나무로 만든 듯하다. 지붕은 임하사지 사각가옥형 사리기에서 볼 수 있었던 판금기법에 의한 장식물과 비슷해 보인다. 지붕의 연봉형 장식은 단조기법을 사용하여 매우 깔끔하 게 처리한 것으로 이 사리기는 위의 판금기 작품들을 기본으로 절단, 절곡, 리베팅, 투 각, 주조, 단조기법을 계승, 발전시킨 10세기 작품으로 추정한다.

2. 성형기

성형기의 작품은 형태를 결정짓는 기본적인 기법이라 할 수 있는 판금, 주조, 단금기 법 가운데 단금기법에 의한 제작품을 말한다. 고려시대 초기의 작품들은 주로 판금과 주조기법에 의한 사리구들이 많았으나 11세기에 들어서면서부터 절단, 절곡, 땜, 리베팅, 주조 등과 같은 기본적인 기법에서 한단계 올라선, 망치로 두들겨 형태를 만들어내는 단금기법

28)

을 사용하는 특징이 있다.

이 시기의 사리구는 병형이나 표주형을 하고 있다. 즉 절단, 절곡, 주조와 같은 평면 적인 표현기법에서, 판을 열풀림한 뒤 망치로 두들겨 형태를 성형하는 능력을 갖게 되 었다. 이러한 능력은 10세기를 지난 11세기부터 나타나는 양식으로 대표적인 예는 안성 죽산리 금동제사리내병 (사진 19)이 있다. 이것은 동판을 상하 2단의 병형으로 절단한 뒤 열풀림과 망치질을 계속하면서 형태를 잡아 나갔다. 굽과 복부를 일체(一體)로, 경부 와 구연부를 일체(一體)로 제작하여 땜하였다.

위의 사리병과 비슷한 형식인 광산 신용리 오층석탑 금동사리병 (사진 20)도 같은 제 작기법을 보이고 있다. 다만 위의 사리병은 2분하여 제작하였고 이 사리병은 3분하여 제작한 차이점을 지니고 있다.

위 2기의 사리병 제작 기법을 기본으로 하여 발전시킨 사리구는 부여(扶餘) 장하리 (長蝦里) 삼층석탑(三層石塔) 은제사리내병(銀製舍利內甁)(사진 21)과 금동사리외병(金 銅舍利外甁) (사진 22)이다. 전자는 몸체와 뚜껑을 이분하여 제작한 것으로 은판을 병 모양대로 절단한 후 열풀림을 계속하면서 형태를 잡아 나갔다. 오목과 볼록의 형상은 우선 메로 망치작업하여 돋아 올리고 곡형모루와 주림모루에 대고 꼭두망치, 주림망치 와 돋을망치, 우김질망치를 사용하여 완성하였다. 뚜껑 역시 원추형 모루에 대고 메로 망치작업하여 돋아 올리고 원추형 모루에 대고 꼭두망치와 주림망치를 사용하여 형태를

27) 끝이 송곳모양으로 뾰족하며 점을 찍듯이 선을 이어가는데 쓰이는 정이다. 점선조각기법이라고도 불리운다.

28) 이 기법은 열을 가해 달궈진 금속을 다양한 형태의 모루에 놓고 망치와 여러 가지 공구를 사용하여 두드려 단 련시키면서 원하는 형태를 만드는 기법이다.

(12)

이루었다. 그후 닥달망치

29)

를 사용하여 마무리하였다.

후자는 전자와 같은 방법으로 제작하였으나 표면장식 유무의 차이점이 있다. 이 사리 기의 표면장식기법은 형태를 완성시킨 후 감탕을 붇고 촛정을 사용하여 산수(山水), 비 조(飛鳥), 연판(蓮瓣)을 선각하고 방울정을 사용하여 어자문을 새겼다. 이러한 음각기법 은 고려 13세기부터 유행한 은입사향완의 기초 과정이었을 것으로 생각되며, 따라서 이 사리기는 12세기 작품이다.

성형기 작품 과정을 거치면서 완성된 금속공예사적으로 매우 중요한 작품이다. 가운 데 이음새 부분은 별도로 제작하여 땜으로 고정하였다. 형태를 완성한 후 타출기법을 사용하여 화려한 문양을 나타내었다.

타출기법은 삼국시대부터 운풍정 등으로 선을 따라 점점이 찍는 기본적인 기법에서부 터 출발하여 고려시대 12세기에는 금속공예품에서 사용하게 되었다. 즉 우리나라 타출 기법은 평면적인 선각의 표현기법에서 출발하여 박육타출, 고육타출로

30)

나뉘어지며 12 세기에 나타나는 기법은 거의 고육타출이다. 고육타출기법으로 제작된 작품은 사리구 외에 은제도금탁잔(銀製鍍金托盞)(사진 24), 국립청주박물관 소장 은제장도(銀製粧刀)집 (사진 25), 은제도금팔찌 등이 있다.

31)

3. 장식의장기

`이 시기는 사리구는 앞에서 살펴 본 모든 제작기법을 사용하여 만든 것으로 판금, 주 조, 단금, 조금, 투각기법 모두를 이용하였다. 그러나 고려 말기에 이르면 그 훌륭한 제 작기법이 다만 형태를 위한 제작에 머무는 아쉬움이 있다.

장식의장기 작품으로 전 부여 보광사 금동팔각승탑형사리기 (사진 26)가 있다. 승탑형 탑신과 옥개 부분은 판금, 단금기법을 사용하여 제작하였고, 신부(身部) 4면은 사천왕 상, 4면은 어자문을 교대로 배치하였다.

위 양식에서 조금 발전된 사리기는 수종사 은제도금육각승탑형사리기 (사진 27)이다.

이 양식은 선암사, 영전사, 이성계발원 사리구 등에서 보이고 있어 고려 후기에 새롭게 등장, 유행한 것으로 생각한다. 수종사 육각승탑형사리기는 육각하호(六角下壺)부터 위 로 복련판 25엽, 양련판 18여을 단금기법으로 장식하고 그 위에는 사리기를 안치할 연 화대좌를 판금기법을 사용하여 마련하였다. 탑신부는 육각으로 각면마다 문호 1짝씩이 고 문살에는 연당초문과 꽃무늬를 투각하여 장식하고 각면을 땜하여 성형하였다. 옥개 부는 5단의 기와단을 목이 긴 곡면모루 위에 대고 주림망치로 좁혀가면서 성형하였고 4 단으로 분리된 은판을 땜작업하였다. 연봉형 꼭지는 은판을 모양대로 자른 후 성형하고 감탕을 부어 단금작업하였다.

선암사(仙巖寺) 은제팔각승탑형사리기(銀製八角僧塔形舍利器)(사진 28, 29)는 수종사 육각승탑형사리기와 같은 기법을 사용, 제작하였다. 다만 탑신부를 투각하지 않고 사판 화형문을 따라 운풍정을 이용하여 점선을 깊이 파 투조하였다. 기단부 역시 수종사 사 리기 보다는 제작기법이 압축된 듯하며 평면적인 단조기법을 사용한 14세기 중반의 작

29) 이 망치에는 망치 끝부분이 평평한 평닥달 망치와 둥근모양을 다듬을 때 사용하는 배불닥 망치가 있다.

30) 안용희(1993), “타출기법”, p.70,『미술과 공예』

31) 崔應天(1990), “ 高麗時代 打出技法 工藝品 四例”, 『박물관신문』, 고려시대 고분 부장품일 가능성을 제시하고 있다.

(13)

품으로 생각된다.

원주(原州) 영전사지(令傳寺址) 보제존자(普濟尊者) 은제도금팔각승탑형사리구(銀製鍍 金六角僧塔形舍利具)(사진 30)는 위의 서암사 팔각승탑형사리기와 제작 기법이 매우 비 슷하다. 다만 기단부가 형식성에 치우쳐 도식화 한 14세기 후기를 대표하는 작품이다.

32)

고려말기인 1390, 1391년 작품으로 알려진 이성계발원(李成桂發願) 사리구(舍利具)(사 진 31)는 위에서 살펴 본 보광사지, 수종사, 선암사, 영전사 사리구의 기법을 모두 사용 하여 종합적으로 만든 작품이라 할 수 있다.

고려말기 작품으로는 국립중앙박물관 소장 금제라마탑형사리기

33)

(사진 32), 호암미술 관 소장 금동라마탑형사리기(사진 33)가 있다. 이 2기의 사리기들은 기본적으로 판금기 법과 단금기법을 사용하였다. 보석을 감싸고 있는 테두리는 판을 오린 후 지판(地板)에 땜으로 고정하였다.

영남대학교박물관 (사진 34), 국립중앙박물관 소장의 수정복발탑형사리기 (사진 35)는 기단부가 선암사, 영전사 사리구의 기단부 제작기법으로 만들어졌으며 상륜부는 은판을 절단하여 연판과 보륜을 만들었다.

고려시대 후기 사리구 가운데 가장 극단적인 쇠퇴 예는 국립중앙박물관 소장 탑형사 리구와 2기의 원통형 사리구가 있다. 탑형살구는 (사진 36)사각형으로 동판을 잘라 기 대부를 만들고 그 위에 폭이 좁아지는 사각형을 4면 각각 잘라 땜하여 세웠다 지붕은 사각형으로 절단한 후 열풀림하고 지붕모양으로 모루에 대고 망치질하여 성형하였다.

이 작업이 끝난 후 조금망치를 이용하여 기왓골을 표현하였다. 상륜부는 결실되어 그 형태나 제작기법을 알 수 없지만 사각 모양으로 성형하여 땜하였을 것으로 생각된다.

원통형 사리구 2기 (사진 37)는 금산사, 장명사명 원통형 사리구의 가장 퇴보적인 양 식을 보여 주는 것으로 직사각형판을 절단하고 구부려 원통형을 땜하여 성형하고, 원통 형에 맞는 원찬을 절단하여 밑부분에 대고 땜하였다.

뚜껑도 같은 기법을 사용하여 제작하였으나 거치문은 실톱이나 금속가위로 자른 후 성형하였다. 손잡이는 은판(銀板)을 봉에 말아 두들긴 후 은봉을 만들어 땜하였다.

Ⅳ. 사리구의 고려 미술사적 의의

이상 살펴 본 사리구들은 제작기법에 의하여 9-10세기의 판금기, 11-12세기의 성형 기, 14세기의 장식의장기로 나누어 볼 수 있었다. 고려시대 사리구는 다른 미술품에서도 볼 수 있듯이 통일신라 시대의 기법의 연장이라 할 수 있을 정도로 그 기반 위에서 발 전하였다. 즉 통일신라 시대의 지판(地板)을 모양대로 절단한 후 투조하고, 투조한 문양 은 방울정을 사용하여 돋을점선으로 나타낸 선조기법(線彫技法)의 기반 위에서 고려 금 속공예는 출발하였다.

또한 사리구는 미술의 각 장르와 별개로 존재하지 않고 유기적인 관계를 맺으며 발전 하였다. 즉 사리구 형태면에서 볼 때, 사각 틀로부터 벗어나 정병, 완 등의 형식을 따랐 을 것으로 생각되며, 청자의 상감기법, 나전칠기 등은 금속공예의 선각기법에 기본을 두 고 발전한 공예라 할 수 있다. 이와 같이 고려시대 사리구는 다음과 같은 미술사적 의

32) 보제존자 나옹의 승탑은 여주 신륵사와 원주 영전사지, 회암사에 있는데 그의 생졸년대는 1330-1376년으로 원 주 영전사지 승탑은 탑지석으로 1388년에 세워졌음을 알 수 있다.

33) 黃壽永(1962), “ 高麗 金銅舍利塔과 靑瓷壺”, p.191, 『考古美術』

(14)

의를 지니고 있다.

첫째, 통일신라 시대금속공예의 연장선상에서 출발하였다.

둘째, 촛정에 의한 선각기법은 상감기법은 상감청자의 토대가 되었고 12세기 후반기 의 은입사 기법에 영향을 주었으며 12-13세기 나전칠기의 발달과 더불어 13세기 금속 공예기법은 주춤하였다.

셋째, 고려시대는 후장 풍습이 사라졌고, 금, 은의 사용금지

34)

에 의한 장신구 제작이 활발하지 못하였으나 고려시대 사리구는 판금, 단금, 주조, 투각, 조금 등 금속공예 모든 기법을 사용하고 있어 금속공예사의 중요한 위치를 차지하고 있다.

넷째, 13세기 사리구가 남아 있지 않는 점은 몽고의 침입으로 인한 어지러운 고려 사 회상을 반영하는 시각적 증거라 할 수 있으며, 동시에 13세기는 고려 청자와 나전칠기 의 발달에 의한 금속공예 잠정기였음을 알려준다.

다섯째, 고려청자, 나전칠기, 은입사향완, 범종, 반자 등은 청자, 칠기, 은입사, 주물이 라는 나름의 독특한 기법을 기본 단위로 하여 문양, 형태 등에서 차이를 보이고 있지만, 사리구는 매우 다양한 금속공예 기법을 사용, 제작하였기 때문에 금속공예 기법사에 중 요한 자료임을 알 수 있다.

Ⅴ. 맺음 말

고려시대 사리구는 통일신라시대 사리구 형식을 기본으로 전개되었지만 그 기법은 놀 라운 발전을 이루었다. 고려 전기에는 절단, 절곡, 땜, 리베팅정도의 작업에 그쳤지만, 11-12세기에 이르러 판금기법을 기본 단위로 하면서 고육타출과 같은 놀라운 금속공예 기법이 사용되었다.

그러나 13세기에는 어지러운 사회 상황의 반영과 아울러 청자, 나전칠기 등의 활발한 제작으로 금속공예 기법에 의한 사리구 제작이 주춤하였을 것으로 생각된다. 14세기에 는 고려시대 다층다각 석탑 양식의 영형을 받아 다각승탑형 사리구가 많이 제작되었고 고려 말기에는초기와 같이 판금 기법을 사용하는 쇠퇴적인 기법이 다시 나타났다. 이와 같은 사리구는 사치규제에 의해 장신구 제작이 둔화되었던 고려시대 금속공예 기법 변 천을 가장 잘 살펴 볼 수 있는 자료라고 할 수 있다.

미비하나마 이 글로써 고려시대 금속공예사 연구에 보탬이 되고자 하였다. 그러나 12 세기의 표형사리구, 은제도금탁잔, 은제장도집, 은제도금팔찌와 같은 훌륭한 타출기법이 13, 14세기에 나타나지 않는지 확실히 규명하지 못한 아쉬움이 있다.

34) 『增補文獻備考』, 第80券, 章服 2, 高麗條

(15)

사진 1. 안동 임하사 은제사리 내합

사진 2. 안동 임하사 은도급사리외합

사진 3. 안동 임하사 은세사리내합

(16)

사진 4. 호암미술관소장 청동제 복발탑형 사리기

사진 5. 부산시립박물관소장 청동제 복발탑형 사리기

(17)

사진 6. 국립청주박물관소장 금동신장상문경갑 앞면

사진 7. 국립청주박물관소장 금동신장상문경갑 뒷면

(18)

사진 8. 불국사 석가탑 금동사각형 사리합

사진 9. 서산 보원사지 금동사각형사리통 앞면

(19)

사진 10. 서산 보원사지 금동사각형사리통 뒷면

사진 11. 서산 보원사지 금동사각형 사리외갑

(20)

사진 12. 금산사 오층석탑 사리구

사진 13. 장명사명 사리기

(21)

사진 14. 월정사 팔각구층석탑 금동제 사각형사리합 앞면

사진 15. 월정사 팔각구층석탑 금동제 사각형사리합 뒷면

(22)

사진 16. 청양 도림사 삼층석탑 금동사각형 사리합

사진 17. 전 황복사지 삼층석탑 금동사각형사리외합

(23)

사진 18. 광주서오층석탑 금동사각형사리기

사진 19. 안성 죽산리 금동제사리내병

(24)

사진 20. 광산 신용리 오층석탑 금동사리병

사진 21. 부여장하리 삼층석탑 은제사리내병

(25)

사진 22. 부여장하리 삼층석탑 금동사리외병

사진 23. 국립청주박물관 소장 표형사리기

(26)

사진 24. 은제도금탁잔

사진 25. 국립청주박물관 소장 은제장도집

(27)

사진 26. 전 부여 보광사지 오층석탑 금동팔각승탑형 사리기

사진 27. 수종사 은제도금육각승탑형 사리기

(28)

사진 28. 선암사 은제팔각승탑형 사리기

사진 29. 원주영전사지 보제존자은제육각승탑형사리기

(29)

사진 30. 이성계 발원사리기

사진 31. 국립중앙박물관소장 금제라마탑형사리기

(30)

사진 32. 호암미술관소장 금동제라마탑형사리기

사진 33. 영남대 박물관소장 수정복발탑형사리기

(31)

사진 34. 국립중앙박물관소장 수정복발탑형사리기

사진 35. 국립중앙박물관소장 탑형사리기

(32)

사진 36. 국립중앙박물관소장 원통형사리기

참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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