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 목 출 처 보도일자 빅뱅과 급팽창이 그리는
태초 우주 모습 한겨레 2014. 04. 23( 수)
우주에서 오는 빛을 관측해 태초 우주의 원시 중력파 를 찾으려는 남극의 관측시설. 미국과 학재단 제공
테마산책
우주의 시초는 어떤 모습이었을까요? 태초의 한 장면을 엿보는 연구 결과가 최근 발표됐습 니다. 지난달 미국 천체물리학 연구진이 우주에서 오는 빛에서 우주 탄생의 빅뱅(대폭발) 직 후에 생겼을 중력파의 흔적을 관측했다고 발표해 큰 뉴스가 됐지요. 이 연구는 태초 우주에
‘빛보다 빠른 공간의 급팽창’ 순간이 있었다는 오랜 급팽창(인플레이션) 가설을 입증하는 것 으로 받아들여지고 있습니다. 그런데 빅뱅이나 급팽창 가설은 우리한테 무얼 말해주는 걸까 요?
빅뱅이라는 태초 우주의 모습은 지금 우주가 관측의 위치나 방향에 상관없이 동일하다(우주 의 균질성·등방성 원리)는 전제에서 아인슈타인의 일반상대성이론을 통해 얻어진 것입니다.
우주는 태초부터 지금까지 점점 팽창하고 있지요. 그런 우주의 태초가 ‘빅뱅’이었는데, 그 이 름처럼 실제 폭발이 있었다는 뜻은 아니고 이유를 알 순 없지만 우주가 아주 작은 점(특이
점)에서 시작해 지금처럼 점점 커졌다는 것입니다. 빅뱅 우주론은 우주의 구조와 역동을 가 장 잘 설명해주는 우주 진화의 이론으로 받아들여집니다.
하지만 빅뱅 우주론에도 약점은 있습니다. 너무 복잡한 얘기라 생략하고, 아무튼 그 약점을 보완하고자 30여년 전에 등장한 것이 바로 급팽창 가설입니다. 상대성이론에 의하면, 물질 은 빛보다 빠른 속도로 움직일 수 없지만 공간 자체는 빛보다 빠르게 팽창할 수 있고, 이처 럼 빠른 공간 팽창의 순간이 있었다는 것입니다.
급팽창 가설은 태초의 급팽창을 통해 좁은 각도 범위에 있는 근거리의 두 지점이 360도 전 각도 범위로 관측 가능한 전 우주에 퍼질 수 있었다고 말해줍니다. 즉 빛의 태초 출발점이 급팽창을 거쳤기에, 오늘날 이 거대한 우주 공간에서 날아와 관측되는 빛의 온도가 거의 동 일한 값을 지닌다는 거죠. 또한 급팽창은 우주가 지금 평탄하고 균일하다는 점을 설명해줍 니다. 아주 커다란 공 위를 걷는 개미는 자기가 둥근 공이 아니라 평면 위를 걷는다고 여기 는 것과 같은 이치입니다. 우주의 거대 구조인 행성, 은하, 은하단의 형성 과정을 가장 잘 설명하는 것도 급팽창 가설입니다.
여기서 물음을 하나 던져 보죠. 그렇다면 모든 우주론적 사유의 출발점인 우주의 균질성·등 방성 원리를 포기하면, 또는 일반상대성이론이 그저 근사치의 이론일 뿐이라고 생각하면, 빅 뱅이니 급팽창 같은 생소한 가설 없이도 우주를 설명할 수 있지 않을까요?
실제로 현대 우주론에서는 이를 위해 여러 변형의 이론 모형을 검토하고 있습니다. 하지만 현재 이런 모형들은 우주 관측량의 일부만을 설명하는 수준입니다. 아직 우주의 전 관측량 을 빅뱅과 급팽창 이론보다 더 잘 설명하는 모형은 존재하지 않습니다. 이는 바꿔 말하면 빅뱅과 급팽창 가설보다 실제 관측량을 더 잘 설명하는 이론이 등장한다면 그것을 수용할 준비가 돼 있다는 것입니다.
뉴턴 역학은 특수상대성이론의 근사식이고, 특수상대성이론의 상위 이론은 일반상대성이론 입니다. 그렇다면 일반상대성이론보다 더 높은 이론은 없을까요? 상대론과 양자역학을 동시 에 만족시키는 그야말로 완벽한 이론! 양자중력이론, 초끈이론 등이 그 가능성에 도전 중이 지만 지켜봐야 할 문제입니다.
만일 언젠가 이런 상위 이론이 등장한다면, 빅뱅과 급팽창 가설 없이도 관측되는 우주를 더 잘 설명할 수 있을지 모릅니다. 하지만 특수상대론의 근사식인 뉴턴 역학이 일상생활을 잘 설명하듯이, 빅뱅과 급팽창 가설은 현재 양자적 상대론을 기술하는 데 필요할 것입니다. 그 래서 빅뱅과 급팽창은 무언가 낯설고 어설픈 이름 같지만 지금 우주를 설명하는 가장 중요 한 방법이 됩니다.
이석천 고등과학원 물리학부 연구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