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高麗時代 遺蹟 出土 宋代 靑白瓷의 현황과 특징 / 金允貞 /
29
0
0
전체 글
(2) 국문초록 ●○ 고려시대 유적에서 출토되는 中國 瓷器의 종류는 越州窯, 長沙窯, 耀州窯, 定 窯, 邢窯, 景德鎭窯 등 비교적 다양한 편이다. 고려청자의 제작이 본격화되는 12세기 이후에 中國靑瓷의 출토 예가 확인되지 않지만, 형요·정요·경덕진요 등에서 생산된 다양한 중국 백자는 고려시대 유적에서 全時期에 걸쳐서 출토되고 있다. 고려시대 유 적에서 출토되는 中國 白瓷 중에서도 靑白瓷가 많은 비중을 차지하였으며, 고려에 유 입되는 器種과 유통 범위가 시기별로 변화하면서 고려청자와의 組合 양상도 달랐던 상 황을 알 수 있었다. 첫째, 송대 청백자가 주로 출토되는 고려 유적은 크게 墳墓, 官廳 關聯 遺蹟, 寺址 로 나누어진다. 북송대 청백자는 주로 개성 일대 분묘에서 확인되며, 남송대 청백자는 한반도 전역의 관청 관련 유적과 절터에서 확인되었다. 북송대 청백자 중에 화형접시의 경우는 일부 寺址에서 출토되었지만 송대 청백자가 한반도 전역에서 유통되는 시기는 남송대 청백자가 유입되는 13세기경으로 추정하였다. 둘째, 고려시대 유적에서 출토되는 청백자와 景德鎭 일대 窯址 및 宋·元代 窖藏· 무덤 출토 청백자를 비교하여 제작지와 제작 시기를 검토하였다. 우리나라에서 출토되 는 청백자는 대부분 경덕진요 일대에서 제작되었으며, 북송대 청백자는 10세기 말경부 터 12세기 전반 경까지, 남송대 청백자는 13세기경에 제작된 것으로 추정되었다. 따 라서 청백자가 고려에 유입된 시기는 북송과 남송대로 나누어 볼 수 있다. 기종에서도 북송대 청백자는 완·잔·접시·주자·병류·잔탁·베개·향로·합 등 매우 다양하게 보이지만 남송대 청백자는 발, 접시, 小碗으로 한정되는 현격한 차이를 보인다. 셋째, 개성 일대 분묘에서 출토되는 북송대 청백자는 기종이 다양하고 품질이 우수한 예가 많아서 개성 일대에 거주하던 文公裕와 같이 고위 관료나 귀족들이 사용하였을 것 으로 추정하였다. 따라서 당시 使臣 등의 신분으로 중국 來往을 통해서 구입하거나 선 물 받았을 가능성을 제시하였다. 그러나 전국 寺址에서 출토되는 남송대 청백자는 무 역 자기로 대량 유입되었을 것으로 추정하였다. 넷째, 송대 청백자가 고려청자와 조합되는 양상도 시기별로 차이가 있었다. 11세기 에서 12세기 전반경에는 청백자 甁이나 注子類와 고려청자 완이나 접시가 함께 사용 되었다. 이와 반대로 남송대 청백자는 주로 발과 접시만이 확인되어 고려청자나 금속기 등과 함께 사용된 것으로 추정된다. 주제어 : 청백자, 고려청자, 寺址, 窖藏, 문공유. 92. 야외고고학 제16호.
(3) Ⅰ. 머리말 고려시대 유적에서 출토되는 中國 瓷器의 종류는 越州窯, 長沙窯, 耀州窯, 建窯, 定 窯, 邢窯, 景德鎭窯 등 다양하지만 출토 현황과 개별 유물에 대한 연구는 미비한 편이 다. 고려시대 유적에서 출토되는 中國 瓷器를 조사하는 과정에서 宋代 靑白瓷가 器種 과 數量에서 매우 비중이 크다는 점을 인지할 수 있었다. 청백자에 대해서는 이미 몇 논문에서 다루어진 적은 있으나 국립중앙박물관 소장품에 한정하였거나 고려 유적에 서 출토되는 여러 종류의 송대 자기와 함께 언급되는 정도였다(金英美 2010: 79; 任眞娥 2002: 51-57; 崔淳雨 1977: 292-293). 최근 글에서 고려 중기에 수입된 중국 백자 중에서 청백자의 출토 양상과 특징을 비중있게 다루었지만(이종민 2011: 149-153), 고려 유적 에서 출토되는 청백자만을 대상으로 전체적인 출토 현황과 특징을 구체적으로 연구한 예는 없었다. 따라서 본고에서는 韓國 出土 中國 瓷器를 조사하는 과정에서 宋代 청백자가 時期別 로 出土 遺蹟의 성격과 器種 등에서 차이가 있음을 확인하여, 그동안 越州靑磁나 定窯 白瓷 등의 중국 자기에 비해 주목받지 못했던 景德鎭窯 靑白瓷의 출토 양상과 특징에 대해서 논의해 보고자 한다. 첫째, 청백자가 주로 출토되는 유적의 성격과 지역적인 분 포를 통해서, 고려시대에 中國産 청백자의 사용 장소와 송대 청백자의 時期別 流通 範 圍에 대해서 살펴볼 것이다. 둘째, 고려 유적 출토 청백자와 遼·宋代 紀年墓 출토 청 백자, 景德鎭 일대 窯址 출토품과의 비교를 통해서, 제작 시기와 제작지를 고찰해 보고 자 한다. 셋째, 송대 청백자의 출토 현황을 통하여, 청백자 유입의 시기별 변화와 유통 지역과의 관계, 사용 계층의 성격, 고려청자와 宋代 靑白瓷가 組合되는 양상을 검토해 보고자 한다.. Ⅱ. 靑白瓷 出土 遺蹟의 성격과 분포 지역 청백자가 출토되는 유적의 성격과 지역적인 분포 현황을 파악하여 당시 청백자를 사용 하던 장소와 고려에 유입된 청백자의 유통 범위를 파악해 보고자 한다. 현재까지 조사된 청백자가 출토되는 고려 유적의 성격은 크게 墳墓, 官廳 關聯 遺蹟, 寺址로 나눌 수 있다. 국립중앙박물관에 소장된 청백자 300여점은 대부분 開京[現 開城] 일대에서 출토된 것 이며, 파손된 부분이 거의 없이 형태가 완전하게 남아 있는 점으로 볼 때, 무덤 부장품이. 高麗時代 遺蹟 出土 宋代 靑白瓷의 현황과 특징. 93.
(4) 1). 었을 것으로 추정된다 . 무덤 에서 출토된 청백자는 대부분 1900년대 초부터 1930년대까 지 도굴되어 구입되었기 때문 에 무덤의 위치, 墓主의 신분, 副葬된 일괄 유물 등 출토 상 황을 정확하게 알 수 없다. 墓 葬 출토품 중에 墓主가 알려 진 경우는 文公裕(1088〜1159) 가 유일하며, 墓誌石과 靑白瓷 鳳首甁, 靑白瓷小執壺, 定窯 白瓷碗, 靑瓷象嵌寶相唐草文 碗, 靑瓷象嵌菊花文접시가 함 께 나온 것으로 전해진다(野守 <그림 1> 청백자주자, 청백자봉수병, 정요백자완, 청자상감보상당초문완, 청자상감국화문접시. 문공유(1088〜1159) 묘 출토. 健 1944: 73-77) <그림1>. 개성 이외 지역의 무덤에서 청백자 가 출토되는 경우는 江原道 三. 陟 三和里 石室墓가 알려져 있다. 정식 발굴 조사가 아니었기 때문에 정확한 출토 상황은 알려지지 않았지만 청백자접시 5점, 청백자발 2점, 정요백자잔 2점, 고려청자 唾盂·香 爐·大缸·碗, 고려백자 매병·접시, 도기 등 많은 유물이 일괄 출토되었다(鄭良謨 1976: 190-199). 官廳 關聯 유적은 慈江道 熙川市 西門洞 窖藏, 坡州 惠陰院址, 開城 滿月臺 宮城址, 江 華島 中城 遺蹟을 들 수 있다. 서문동 교장에서는 고려청자 196점, 남송 청백자 47점, 청 동기물 67점 등이 출토되었다<그림2>. 출토된 유물은 희천에서 멀리 떨어진 宣州 林畔驛 客舍에서 1252년경에 사용하였던 것으로 밝혀졌다. 고려시대 역은 중앙과 지방을 연결하 는 중간 전달 체계로 국가체제의 운영에서 필수적인 기관이었다. 선주는 사신들이 중국 을 오가며 거치는 주요한 지역으로, 선주 북쪽에 위치한 임반역은 중앙과 지방 및 외국과 의 신속한 전령을 행하고 사신 왕래에 불편함이 없도록 영송을 지원하는 중요한 행정 및 군사 기관이었다. 林畔驛에 설치된 객사는 사신들의 숙소로 사용되었을 뿐만 아니라 국 1) 국립중앙박물관에 소장된 고려 유적에서 출토된 다양한 품종의 중국 자기는 대부분 개성 부근에서 출토된 것이며 (국립중앙박물관 2007), 소장된 전체 수량은 耀州窯靑瓷는 60여점, 越窯靑瓷 10여점, 定窯白瓷 80여점, 磁州窯 白瓷 20여 점, 山西·福建·廣 東 白瓷 小量, 景德鎭窯 靑白瓷 300여점, 黑釉瓷器 120여점, 醬釉瓷器 20여점으로 소개되었다(金英美 2010: 78-80).. 94. 야외고고학 제16호.
(5) <그림 2> 자강도 희천시 서문동 교장 출토 일괄품, 1252年. 2). 가에서 공식적으로 행하는 각종 의례가 행해지기도 하였다 . 坡州 惠陰院은 開京[현 개성]과 南京[현 서울]을 오가는 여행자들의 편의를 제공하기 위해서 세워진 숙박 시설이었다. 혜음원은 사찰의 역할을 하면서 왕실 후원으로 국왕의 행차에 대비하여 別院이 축조되는 등 왕실의 직접적인 지원을 받는 半公半私적인 성격의 숙박시설을 갖추고 있었다. 혜음원지에서 출토된 중국 자기 128점 중에 111점이 경덕진 계 청백자와 정요계 백자로 추정되었다(檀國大學校 埋藏文化硏究所 2006: 273-279). 개성 3). 만월대 궁성지에서는 약 12점의 청백자가 확인되었고 , 고려 왕실이 몽고군을 피해 강화 도에 천도한 시기에 축조되었다가 헐린 강화도 中城의 일부 유적 발굴에서도 청백자 3점 이 확인되었다. 임반역 객사나 혜음원과 같은 중요 숙박 시설에서 중국 자기가 비교적 많 이 출토되었다는 점이 주목된다. 이러한 출토 상황을 통해서, 중국 자기는 왕실의 후원을 받거나 국가에서 운영하는 관청 성격의 기관에서 많이 사용되었음을 알 수 있다. 寺址는 한반도 이남에서 발굴조사된 유적 중에 청백자가 가장 빈번하게 출토되는 유 적이다. 청백자가 출토된 16개 유적 중에 11개 유적이 사지이며, 사지에서는 청백자뿐만. 2) 청동대야에는 ‘壬子八月 日 造上宣州北林畔驛客舍祖鐁鑼壹入重拾貳斤拾貳兩’라는 명문이 음각되어 있어서 壬子年인 1252년에 宣州 林畔驛 客舍에서 사용하기 위해 제작된 것으로 추정하였다(김윤정 2009: 7-35). 3) 2012년에 발간된 開城 宮城址 1차보고서에서 수록된 中國 瓷器는 7점이며, 이 중에 6점이 청백자로 추정된다 (國立文化財硏究所 2012 參考). 이보다 앞서 2009년에 발간된 도록과 논문에서 청백자 12점, 정요 백자 1점, 요주요 청자 1점, 흑유자기 1점이 소 개되었다(國立文化財硏究所 2009; 한나래 2009: 164 參考).. 高麗時代 遺蹟 出土 宋代 靑白瓷의 현황과 특징. 95.
(6) 아니라 다양한 중국 자기들이 출토되 고 있어서 고려시대 중국 자기의 주요 한 소비처였음을 알 수 있다<그림3>, <표1>. 사지 발굴은 寺域의 全面이 아 니라 부분만을 하기 때문에 사지에서 출토되는 청백자의 수량에 많은 의미 를 두기는 힘들지만 출토되는 중국 자 기의 전체 수량에서 청백자의 비중이 높은 편이다. 사지에서 출토되는 청백 자는 북송대 청백자화형접시가 몇 점 확인되지만 주로 남송대에 해당하는 13 세기경으로 추정되는 것이 많다. 다음 장에서 고려 유적에서 출토되는 청백자 의 제작 시기와 특징을 살펴보고, 시기 별 청백자의 특징과 유통 범위의 변화 를 살펴볼 것이다. <그림 3> 청백자 출토 고려 유적. <표 1> 靑白瓷 出土 寺址와 出土 數量 地 域. 96. 地名 寺名 (靑白瓷/中國瓷器). 京畿道. 坡州 惠陰院址(26/53), 龍仁 麻北里寺址(2/7), 驪州 高達寺址(16/30), 驪州 元香寺址(7), 安城 奉業寺址. 江原道. 原州 法泉寺址(11/26). 忠淸道. 保寧 聖住寺址, 扶餘 王興寺址. 全羅道. 益山 彌勒寺址(12), 全州 實相寺址(10). 慶尙道. 慶州 佛國寺 境內(15/38). 야외고고학 제16호.
(7) Ⅱ. 遺蹟 出土 靑白瓷의 종류와 양상 1. 北宋代 靑白瓷 국내에서 출토된 청백자는 북송과 남송 시기로 구분되며, 시기별로 출토 유적의 성격 과 지역적 분포, 기종 등에서 확실하게 차이점을 보인다. 북송대 청백자는 대부분 무덤에 서 출토된 것으로 전해지며, 지역적으로 개성 일대에 한정되어 있다. 국립중앙박물관에 는 개성 일대 무덤에서 출토된 것으로 전해지는 청백자 300여 점이 소장되어 있으며, 고 려 유적에서 출토된 중국 자기 중에 압도적으로 많은 수량이다. 2007년에 공개된 61점을 비롯하여 野守健이 소개한 문공유 묘 출토 청백자 2점, 기타 고려 무덤 출토 盒 22점 등 이 알려져 있다. 2007년에 공개된 국립중앙박물관 소장 청백자 61점 중에 2점을 제외하고 모두 북송대 작품이며, 완, 접시, 주자, 병류, 잔탁, 합, 침, 향로 등 중국 자기 중에 가장 다양한 기종으로 구성되어 있다. 고려유적 출토 북송대 청백자 중에 몇 작품을 기종별로 遼·宋 紀年墓 출토 청백자나 요지 출토품과 비교하여 고려 고분 출토 청백자의 제작 시 기와 제작지를 구체적으로 살펴보고자 한다. 청백자주자와 주완(德壽2572)은 河北省 宣化縣 遼墓에서 출토된 주자와 기형과 크기. 청백자주자·주완 주자 높이 17cm , 밑지름 6.3cm 주완 높이 11.4cm , 밑지름 9.5cm 개성 출토 국립중앙박물관. 청백자주자·주완 주자 높이 16.5cm , 입지름 3.3cm 주완 높이 14.4cm , 입지름 17.1cm 統和 12年(994) 河北省 宣化縣 遼 姜承義 墓 출토. <그림 4> 개성 유적과 요대 기년묘 출토 청백자주자·주완. 高麗時代 遺蹟 出土 宋代 靑白瓷의 현황과 특징. 97.
(8) 등이 매우 유사하여 같은 시기에 제작된 것으로 추정된다. 墓主 姜承義는 統和12年(994) 에 장례를 치루었기 때문에 적어도 10세기 후반 경부터 청백자가 고려에 유입된 것을 알 수 있다(張家口市文管所·宣化縣文管所 1991: 67-71)<그림4>. 청백자주자(德壽992)는 江西省 景德鎭市 治平2年(1065) 舒氏夫人 묘에서 출토된 靑白瓷 蝶結文注子와 유사한 작품으로 언급되었지만 세부 표현에서 많은 차이가 있다(국립중앙 박물관 2007: 254). 서씨부인 묘 출토 주자는 구연 끝부분이 굵고 둥글게 말려있지만 국립 중앙박물관 소장 주자는 구연이 약간 외반하면서 두껍게 말리지 않았다. 또한 개성 출토 주자는 서씨부인 묘 출토 주자보다 頸部가 훨씬 가늘고 胴體는 매우 풍만하다. 또한 出水 口 아래에 장식된 띠의 형태도 서씨부인 묘 출토 집호는 네 개의 원으로 구성되어 나비모 양이지만 고려 유적 출토 집호는 띠가 세 개의 원으로 연결되어 있다. 景德鎭 湖田窯址나 鳳凰山窯址에서 출토된 주자는 서씨부인 묘에서 출토된 주자와 유사하다(張文江·何敬 2009: 52-62). 개성 출토 주자가 북송대 청백자인 것은 확실하지만 서씨부인 묘 출토품보 다 늦게 제작되었을 가능성이 있다<그림5>. 청백자발(德壽5385)은 胴體에서 구연으로 가면서 좁아졌다가 구연에서 다시 외반하 는 형태이다. 이러한 기종은 景祐4年(1037) 蔡淸 墓(彭適凡·唐昌朴 1980: 28), 皇祐5年 (1053) 北宋墓(于少先 1992: 32-33), 建中靖國 元年(1101) 合葬墓(彭適凡·唐昌朴 1980:. 청백자주자 높이 16.3cm, 입지름 5.5cm, 밑지름7cm 개성 출토, 국립중앙박물관 소장. 청백자접결문주자 높이 19.4cm, 입지름 6.8cm, 밑지름 7cm 治平2年(1065) 舒氏夫人墓 出土. 청백자접결문주자 높이 19.6cm 景德鎭 湖田窯址 出土. <그림 5> 개성과 북송대 유적 출토 청백자주자. 98. 야외고고학 제16호.
(9) 청백자발 높이 11.5cm, 밑지름 7.6cm 개성 출토 국립중앙박물관. 청백자발 높이 9.9cm, 입지름 21.0cm, 밑지름 8.4cm 景祐4年(1037) 江西省 德安縣 出土. 청백자발 높이 9.5cm, 입지름 21.5cm, 밑지름 6.0cm 建中靖國 元年(1101) 江西省 星子 出土. <그림 6> 개성과 북송대 기년묘 출토 청백자발. 30-31) 등에서 출토된 예가 있다. 시기가 늦을수록 구연이 外反하는 정도가 점점 약해지 는 것을 알 수 있다. 개성 출토 청백자발은 건중정국 원년 묘 출토품과 같이 12세기 초경 에 제작되었을 것으로 추정된다<그림6>. 청백자잔탁(德壽678)은 구연이 꺾여서 끝부분에 홈을 내어 六花形으로 만들었고, 밖으 로 벌어진 받침도 끝을 살짝 도려내어 六花形으로 만들고, ‘∞’형 구멍을 뚫어 장식하였 다. 이와 유사한 형태의 잔탁이 浙江省 蘭溪縣 元祐6年(1091) 杜氏夫人 墓, 湖北省 英山縣 宋代 政和 4年(1114) 胡氏夫人 墓에서 출토되었다(黃風地區博物館 1988: 23-31). 이러한 종류 의 잔탁은 景德鎭 湖田, 銀坑塢, 柳家灣, 湘湖窯址(江西省文物考古硏究所·景德鎭民窯博物 館 2007: 146; 香港大學馮平山博物館 1992: 118), 南豊 白舍窯 饒家山窯址에서 출토되어(江西 省文物考古硏究所 2008: 31-32) 11세기 후반에서 12세기 전반 경까지 성행하였다<그림7>.. 청백자잔탁 높이 4.9cm, 지름13.9cm, 밑지름 7.7cm 개성 출토 국립중앙박물관 소장. 청백자잔탁 北宋 元祐6年(1091) 浙江省 蘭溪縣 杜氏夫人 墓. 청백자잔탁 景德鎭 銀坑塢 出土. <그림 7> 개성과 북송대 유적 출토 청백자잔탁. 高麗時代 遺蹟 出土 宋代 靑白瓷의 현황과 특징. 99.
(10) 청백자주자 총높이 16.8cm, 밑지름 8.7cm 개성 출토 국립중앙박물관 소장. 청백자주자 총높이 16.1cm, 입지름 6.4cm, 밑지름 8.9cm 北宋 元祐6年(1091) 浙江省 蘭溪縣 杜氏夫人墓 出土. 청백자주자 높이 18.0cm, 입지름 6.2cm, 밑지름 8.5cm 江蘇省 鎭江市 磷肥廠 北宋 墓 鎭江市博物館 所藏. <그림 8> 개성과 북송대 유적 출토 청백자주자. 두씨부인 묘에서는 잔탁과 함께 출토된 청백자주자도 개성에서 출토된 靑白瓷唐草文 瓜形注子(德壽683)와 유사하다. 높이가 17cm 내외 소형 과형주자는 浙江省 武義縣 元豊6 年(1083) 墓, 江蘇省 鎭江市 磷肥廠 北宋 墓에서도 출토된 예가 있다(李知宴·童炎 1984: 91-93). 이 盞托과 注子는 朝鮮總督府博物館이 1908년 7월 9일에 시로이시 마스히꼬(白石 益彦)라는 사람에게 함께 구입한 것으로 확인되었다<그림8>. 화형접시는 花形 수가 10형과 12형으로 분류되며, 개성 출토 화형접시(德壽3725) 외에 도 국내 여러 사지에서 출토되는 유일한 북송대 청백자이다. 사지에서 출토되는 북송대 청백자는 10형과 12형 화형접시 정도만 확인되며, 주자, 병, 잔탁류는 출토된 예가 없다. 화형접시는 原州 法泉寺址, 驪州 高達寺址, 안성 奉業寺址, 保寧 聖住寺址, 扶餘 王興寺 址 등에서 출토되며, 全州 實相寺址의 경우, 출토된 10여점의 청백자 중에 7점이 화형접 4). 시편으로 확인되었다 <그림9>. 송대 기년묘 중에 10形 화형접시는 元祐 4年(1089)에 죽고 元祐 7年(1092)에 장례를 지낸 安徽省 全椒縣 張之紇 墓(滁縣地區行署文化局·全椒縣文 化局 1988: 66-71), 江西 彭澤縣 元祐5年(1090) 易氏夫人 墓에서 출토되었다(彭適凡·唐昌 朴 1980: 28-29). 12형 화형접시는 건립 연대가 天慶 5年(1115)으로 밝혀진 河北省 易縣 淨 覺寺 舍利塔 地宮에서 10점이 출토된 예가 있다(河北省文物管理處 1986: 76-83)<그림10>.. 4) 발굴보고서에 수록되지 않았으나 부여문화재연구소에서 실견한 청백자가 포함된 수량이다(국립부여문화재연구소 2006: 302305).. 100. 야외고고학 제16호.
(11) 원주 법천사지. 여주 고달사지. 안성 봉업사지. 전주 실상사지 (8건). 보령 성주사지. 부여 왕흥사지. <그림 9> 寺址 出土 청백자화형접시편. 청백자화형접시 높이 2.2cm, 입지름 10.6cm, 밑지름 4.6cm 개성 출토 국립중앙박물관 소장. 청백자화형접시 높이 2.0cm, 입지름 11.0cm, 밑지름 3.6cm 元祐5年(1090) 江西 彭澤縣 易氏夫人 墓. 청백자화형접시 높이 2.0cm, 입지름11.0cm, 밑지름 3.6cm 天慶5年(1115) 河北省 易縣 淨覺寺 舍利塔地宮 出土. <그림 10> 개성과 북송대 유적 출토 청백자화형접시. 高麗時代 遺蹟 出土 宋代 靑白瓷의 현황과 특징 101.
(12) 청백자소주자 높이 7.9cm, 입지름 2.4cm, 밑지름 7.5cm 문공유(1088〜1159) 묘 출토. 청백자소주자 높이 7.5cm, 입지름 2.5cm, 밑지름 6.9cm 河北省 宣化 遼 張世卿(1042〜1116) 墓 出土. 청백자소주자 경덕진 호전요지. <그림 11> 문공유 묘와 요·북송대 유적 출토 청백자소주자. 문공유(1088〜1159) 묘에서 출토된 청백자소주자와 청백자봉수병은 묘주가 알려진 유 일한 북송대 청백자이다. 청백자소주자는 뚜껑은 분실되고 출수구는 파손되었지만 河北 省 宣化 遼 張世卿(1042〜1116) 묘에서 출토된 소주자와 크기, 기형, 문양 등 조형적으로 유사하여 비슷한 시기에 제작되었을 것으로 추정된다(河北省文物硏究所 2001: 219-220). 어깨 양쪽에 곡선형의 장식이 붙은 소주자는 江西省 貴溪縣과 湖北省 武漢市에서 출토 된 예가 있다. 이러한 소주자는 경덕진 호전요지에서 출토된 예와 매우 유사하여 정확한 제작지를 추정하는데 도움이 된다(江西省文物考古硏究所·景德鎭民窯博物館 2007: 187) <그림11>. 청백자봉수병 은 구연 일부가 파손되 었지만 전체적으로 상태 는 매우 양호한 편이며 봉황의 형상을 매우 구체 적으로 표현하였다 <그 림12>. 경덕진 호전요지 에서 봉수호편이 출토된 예가 있지만 편의 크기 가 작고 문공유 묘 출토 <그림 12> 청백자봉수병 <그림 13> 청백자봉수병. 높이 29.7cm,. 높이 12.5cm, 몸통지름 15.8cm, 밑지름 4.1cm 밑지름 8.8cm. 廣東省 潮州窯. 문공유(1088〜1159)묘 출토. 102. 야외고고학 제16호. 품과는 차이가 있다(江 西省文物考古硏究所· 景德鎭民窯博物館 2007:.
(13) 187). 북송대 봉수병은 廣東省 潮州窯, 廣東窯, 廣州 西村窯 등 남방요에서 많이 제작되었 지만 만듦새가 조잡한 경우가 많고 남방요 특유의 조형적인 특징이 있다(廣州市文物管理 委員會 1987: 95; 東武美術館 外 1999: 91; 李炳炎 2004: 47)<그림13>. 문공유 묘 출토 봉수 병은 태토와 유색이 좋고 전체적인 만듦새가 정세하여 경덕진요에서 제작된 것으로 추정 된다. 5). 청백자과릉형주자(德壽2313)는 元祐 7年(1092) 張之紇墓 出土 청백자주자 , 청백자주 자(德壽1181)는 熙寧 10年(1077) 謝文詣 묘 출토 청백자주자(黃岡地區博物館 1993: 3435), 靑白瓷刻花花文접시(德壽4770)는 政和 8年(1118) 江西 銅鼓 榮詢夫婦 合葬墓 出土 盤, 청백자화구고족완(德壽97)은 元祐 6年(1091) 李彬夫婦 墓 出土 高足碗(鎭江市博物 館 1980: 34-44), 靑白瓷花口盞托(德壽1183)은 嘉祐 2年(1057) 墓 出土 盞托(薛堯 1965: 571-576), 靑白瓷盞托(德壽4299)는 1071年 章岷 墓 出土 盞托(鎭江市博物館 1977: 5558), 靑白瓷刻花菊瓣文甁(德壽1060)은 天慶 5年(1115) 淨覺寺 舍利塔 地宮 出土 靑白瓷 甁과 유사하다. 이외에도 향로와 합도 대부분 북송대 청백자이며, 野守健이 소개한 22점의 청백자합은 6). 모두 굽바닥에 姓氏가 찍혀 있다 . 제작자를 의미하는 성씨가 북송대 합에만 찍혀 있고 남송대 합에서는 보이지 않는다는 점과 여러 조형적인 특징을 고려하면(范鳳妹 1988: 8893), 22점은 모두 북송대 청백자로 추정된다. 북송대 청백자는 적어도 10세기 말부터 유입되기 시작하였으며, 1159년에 죽은 문공유 묘에서 북송대 청백자가 출토되는 예로 보아 12세기 중반 경까지 사용된 것으로 추정된 다. 북송대 청백자는 11세기와 12세기 1/4분경에 집중적으로 고려에 유입되었던 것을 알 수 있다.. 2. 南宋代 靑白瓷 남송대 청백자는 개성 지역을 비롯한 한반도 전역에서 출토되지만, 주로 韓半島 以南 지역의 寺址에서 많이 확인된다. 남송대 청백자는 다음과 같은 네 가지 유형의 발과 접시 가 주요 器種을 이루고 있다. 청백자발은 內底面 圓刻의 直徑이 넓고 높이가 낮은 鉢은 Ⅰ식, 內底面 圓刻의 직경이. 5) 張之紇 무덤에서 경덕진요 청백자가 17점 출토되었으며, 10화형접시, 주자[執壺], 완류, 합 등은 고려 무덤 출토 청백자와 유사한 점이 많다. 張之紇은 北宋 元祐 4年(1089)에 沒하여 元祐 7년(1092)에 全椒縣에 遷葬하였다 (滁縣地區行署文化局·全椒縣文化 局 1988: 66-71). 6) 野守健은 朝鮮總督府博物館과 李王家美術館에 소장된 송대 청백자합 22점을 소개하였으며, 22점 모두 합 바닥에 製作者를 의미 하는 銘文이 찍혀 있다고 기술하였다(野守健 1944: 70-73).. 高麗時代 遺蹟 出土 宋代 靑白瓷의 현황과 특징 103.
(14) 청백자발Ⅰ. 청백자발 Ⅱ. 청백자연지어문절요접시. 청백자선문절요접시. <그림 14> 남송대 청백자, 1252年, 慈江道 熙川市 西門洞 窖藏 出土. 좁고 높이가 높은 Ⅱ식으로 구분하였다. Ⅰ·Ⅱ식의 청백자발은 모두 내측면에 두 명 의 동자가 화당초 줄기를 잡고 노는 ‘童子花唐草文’이 음각되었으며, 경덕진 호전요지 보고서에서는 ‘雙嬰孩攀花文’으로 명명하였다. 두 명의 동자는 비교적 선명하게 보이 지만 화당초문은 복잡하고 모호하여 파도나 구름 등으로 오인하여 서술한 경우가 많 다. 청백자접시는 동체에서 저부로 가면서 직각으로 꺾이는 절요접시이며, 平底에 覆 燒法으로 번조되었다. 절요접시는 蓮池魚文이 壓印된 유형과 線文이 陰刻된 유형이 가장 많다. 자강도 희천시 서문동 교장에서 출토된 중국 백자 47점 중에 네 유형의 청백자가 상당 량포함되어 있으며, ‘壬子年’에 제작되었다는 명문이 있는 청동대야와 함께 함께 출토되 었다. 壬子年은 고려청자와 남송대 청백자의 편년이나 고려 유적에서 전례가 없는 항아 리 안에 자기를 넣어서 땅에 묻는 교장 형식의 매납 방식, 동반 출토된 금속기의 양식 등 을 고려해서 1252년으로 추정되었다(金允貞 2009: 7-35). 고려 유적에서 출토된 남송대 청백자는 이 네 유형이 주로 출토되는 특징을 보인다<그림14>.. 파주 혜음원지. 여주 고달사지. <그림 15> 사지 출토 Ⅰ식 청백자동자화당초문발편. 104. 야외고고학 제16호. 삼척 삼화리 석실분.
(15) 파주 혜음원지. 삼척 삼화리 석실분. 강화도 중성. 익산 미륵사지. 전주 실상사지. 여주 고달사지. <그림 16> 사지 출토 Ⅱ식 청백자동자화당초문발편. 강화 중성 유적에서는 Ⅰ·Ⅱ式 靑白瓷童子花唐草文鉢片 3점이 출토되었다. 中城은 고 려 왕실이 몽고군을 피해 강화로 천도한 시기에 축조된 것으로, 문헌기록에 의하면 1250 년에 처음 쌓았으며, 1259년에 강화 內城과 外城이 헐릴 때 함께 헐렸을 가능성이 높다 (中原文化財硏究院 2012: 30). 이외에도 파주 혜음원지, 여주 고달사지, 삼척 삼화리 묘, 원주 법천사지, 익산 미륵사지, 전주 실상사지, 경주 불국사 경내 유적에서 Ⅰ·Ⅱ식 청 백자동자화당초문발편이 출토되었다<그림15, 16>. 7). Ⅱ식 청백자발은 江西省 宜黃縣 南宋 嘉泰元年(1201) 墓 , 南宋 淳祐年間(1241~1252) 甲 8). 辰年(1244) 墓에서 출토된 예가 있다 . 이외에도 江西省 臨川市 金家山 宋墓(『中國出土瓷 器全集 14 江西』 2008: 76)와 甘肅省 庄浪縣 水洛鎭 西關村(『中國出土瓷器全集 16』 2008: 15) 등 주로 남송대 무덤에서 출토되었지만 四川省 簡陽縣 元代 墓에서도 출토된 예가 있어서 제작된 시기가 상당히 길었던 것으로 보인다(四川省文物管理委員會 987: 74-77). 경덕진 호전요지에서 Ac型侈口碗으로 분류되었으며, ‘雙嬰孩攀花文’이 시문된 靑白瓷. 7) 江西省 宜黃縣에서 발견된 嘉泰 元年(1201) 宋墓에서 <影靑劃花碗> 2건이 출토되었다. 문양은 아이가 물에서 노는 ‘孩兒戱水’문 으로 보았으나 동자화당초문을 오인하여 서술한 것이다. 墓主의 沒年이 嘉泰元年(1201)으로 記載된 地券이 발견되었다(李家和 1976: 91; 彭適凡 1998: 69). 8) 靑白瓷孩兒戱水文碗의 문양은 동자 두 명이 모란당초 줄기를 잡고 노는 문양이지만 물속에서 노는 ‘戱水’로 잘못 보았다. 굽 바닥에 墨書된 ‘甲辰年◯◯’를 1201年 宜黃縣 宋墓에서 출토된 靑白瓷碗을 근거하여 1244年으로 추정하였다(范鳳妹·吳志紅 1983: 78).. 高麗時代 遺蹟 出土 宋代 靑白瓷의 현황과 특징 105.
(16) 청백자동자화당초문발 입지름 20.0cm 1252년 자강도 희천시 서문동 교장. 청백자동자화당초문발 높이 7.5cm, 입지름 20.5cm, 밑지름 6.2cm 嘉泰 元年(1201) 江西省 宜黃縣 南宋墓. 청백자동자화당초문발 높이 7.9cm, 입지름 20.7cm, 밑지름 5.5cm 淳祐年間 甲辰年(1244) 江西省 南宋墓. <그림 17> 서문동 교장과 남송 기년묘 출토 Ⅱ식 청백자동자화당초문발. 파주 혜음원지. 원주 법천사지. 여주 원향사지. 용인 마북리사지. 익산 미륵사지. 개성 궁성지. <그림 18> 사지 출토 청백자연지어문절요접시 9). Ac型侈口碗은 5期(1225~1279)에서 6期(1279~1320)까지 제작되었던 것으로 보고되었다 <그림17>.. 9) 본고에서 명명한 Ⅱ식 청백자동자화당초문발은 경덕진 호전요지 95A·T8④A, 95A·F9:28 구역에서 출토되었으며, 시대순으 로 정리한 층위 배열와 기물 변천에서 7組와 8組에 해당하여 7組는 5期, 8組는 6期로 편년되었다(江西省文物考古硏究所·景德 鎭民窯博物館 2007: 84-85). . 106. 야외고고학 제16호.
(17) 청백자연지어문절요접시 입지름 14.0cm, 1252년 자강도 희천시 서문동 교장. 백자연지어문절요접시 입지름 14.3cm 江西省 宜春市 남송 묘 출토. 청백자연지어문절요접시 높이 2.5cm, 입지름 14.8cm, 밑지름 9.8cm 元代 初期 景德鎭 落馬橋 元代 灰坑 出土. <그림 19> 서문동 교장과 원대 유적 출토 청백자연지어문접시. 蓮池魚文이 壓印된 절요접시는 직경이 10~15cm 로 크기가 다양하며, 연꽃·연잎·물 고기가 주요 소재로 등장하지만 구성과 배치에 따라서 약간 차이가 있다. 내면 바닥에 연 꽃을 중심으로 위·아래에 물고기가 배치되거나 연잎을 중심으로 양 옆에 연꽃이, 위아 래에는 물고기가 배치되는 예도 있다. 내측면에는 蓮花唐草文帶와 雷文帶가 구성되거나 3단 연판문대와 뇌문대로 구성되는 예도 있다. 서문동 교장, 개성 궁성지, 파주 혜음원지 (단국대학교 매장문화연구소 2006: 675), 여주 고달사지, 여주 원향사지, 용인 마북리사지 (한신대학교박물관 2003: 82), 원주 법천사지, 익산 미륵사지, 경주 불국사 경내 유적(慶州 大學校博物館 2006: 283, 493) 에서 출토되었다<그림18>. 중국에서 청백자연지어문절요접시는 江西省 宜春市 高士路 南宋墓와(『中國出土磁器全 10). 集』14 江西省 2008: 73), 남송말·원대초 四川省 遂寧市 金魚村 窖藏 , 경덕진 落馬橋 元 代 초기 灰坑(馮平山博物館 1992: 123), 1303年 元代 窖藏에서 출토되었다(謝志杰·王虹 光 1992: 5-6). 청백자연지어문절요접시는 기형과 문양이 조금씩 변화하면서 남송에서 원 11). 대 초까지 제작되었던 것으로 추정된다 <그림19>. 線文이 음각된 절요접시는 기형, 平底, 내면 바닥에 음각된 선문, 복소법으로 번조하여 구연에 시유가 안 되어 있는 점 등에서 경덕진 호전요지에서 Aa型芒口접시로 분류된 청 백자접시와 유사하다. 이러한 특징을 가진 접시는 호전요지에서 5期(1225~1279)로 편년. 10) 四川省 遂寧市 金魚村 窖藏 출토 자기는 남송과 원대에 걸쳐서 제작된 예가 확인되기 때문에 교장 시기를 기존에 13세기 2/4분 기경보다 늦은 남송말에서 원대초로 추정하였다(陸明華 2001: 96-105 참조). 11) 14세기 전중반경에 제작되는 <연지어문 절요접시>는 남송 말기에 제작된 전형적인 <연지어문절요접시>와 기형과 문양에서 차이를 보이는데, 저부에서 동체로 꺾이는 부분이 각이 지지 않고 둥글고, 물결문양이나 뇌문대가 표현되지 않았다(江西省文物考古硏究 所·景德鎭民窯博物館 2007: 140, 446, 460-462). . 高麗時代 遺蹟 出土 宋代 靑白瓷의 현황과 특징 107.
(18) 12). 되는 95A·T8 4층과 6期(1279~1320)로 편년되는 99H·F1 구역에서 모두 출토되었다. <그림20>. 청백자선문접시도 13세기경부터 14세기 1/4분기 경까지 상당히 오랫동안 만들 어진 기종이다. 혜음원지에서 이러한 유형으로 크기만 다른 접시가 5점 출토되었으며, 경. 청백자음각선문절요접시 입지름 13.3cm, 1252년 자강도 희천시 서문동 교장. 청백자음각선문절요접시 높이 1.3cm, 입지름 9.6cm, 밑지름 8cm 경덕진 호전요지 5기(1225~1279). 청백자음각선문절요접시 높이 2.2cm, 입지름 13cm, 밑지름 9.8cm 경덕진 호전요지 6기(1279-1320). <그림 20> 서문동 교장과 경덕진 호전요지 출토 청백자음각선문절요접시. 파주 혜음원지. 여주 원향사지. 전주 실상사지. 경주 불국사 경내 유적. 경주 왕경유적. 개성 궁성지. <그림 21> 사지 출토 청백자음각선문접시. 12) 95A·T8④A층은 芒口 상태의 청백자가 주를 이루고, 層位는 7組로 5期에 해당한다. 99H·F1은 99H·T12 지역에 4層位의 上層에 해당하며, 청백자와 卵白釉瓷가 모두 보인다. 95A·T8④A층과 99H·T12④층의 출토품 양상이 거의 유사하다고 하였 으며, 99H·F1은 그 뒤로 이어지는 8組 층위 중에 하나이며, 6期(1279~1320년경)에 해당한다(江西省文物考古硏究所·景德 鎭民窯博物館 2007: 444-448, 459-460).. 108. 야외고고학 제16호.
(19) 13). 주 불국사 경내 유적에서도 동일한 청백자접시가 6점 출토되었다.. 이외에도 개성 궁성. 지, 여주 원향사지, 원주 법천사지, 전주 실상사지 등에서 출토되었다<그림21>. 이러한 청백자완과 절요접시 외에 최근에 나주 송월동 유적에서 청백자화형완 3점이 출토되었다(목포대학교박물관 2010: 122-123) <그림22>. 송월동 유적에서 출토된 세 점의 청백자화형완은 기형, 크기 등이 유사하며, 고려시대 기와 가마의 퇴적토에서 출토된 것 14). 으로 알려졌다. 완의 형태가 압출되어 화형으로 제작된 남송대 청백자는 국내에서 처음 출토된 예이며, 보고서에서 12세기 전반으로 비정하였지만 그보다 늦은 시기인 13세기경 에 제작되어 수입된 것으로 추정된다. 중국 廣東 南海 1號 宋代 침몰선에서 이와 유사한 형태의 청백자화형완과 앞서 언급한 Ⅰ·Ⅱ식 청백자동자화당초문발이 함께 발견되었다 15). <그림23>. Ⅰ·Ⅱ식 청백자동자화당초문발이 13세기 전반경의 기년묘나 1252년경으로. 추정되는 서문동 교장에서 출토되는 점으로 볼 때, 청백자화형완도 13세기경에 제작된 것으로 추정된다. 寺址에서 주로 확인되는 남송대 청백자는 위에서 언급한 네 개의 기종이 동반 출토되 는 경우가 많다. 이 네 기종은 중국에서 남송대에서 원대 초기 유적에서까지 출토되어 제 작 시기가 길었지만 국내에 유입된 시기는 대략 13세기를 넘지 않을 것으로 추정된다. Ⅰ·Ⅱ식 청백자동자화당초문발이 출토되는 삼화리고분, 서문동교장, 강화 중성, 파주. <그림 22> 청백자화형완. 나주 송월동 7호 기와 가마 퇴적토 출토 목포대학교박물관. <그림 23> 청백자화형완 廣東 南海 1號 宋代 침몰선 出水 中國國家博物館. 13) 불국사 경내 유적에서 출토 청백자선문접시는 크기·기형·문양이 거의 일정하며, 6점 모두 남북 석축 서쪽 황갈색토에서 출토되 었다(慶州大學校博物館 2006: 278-279). 14) 나주 송월동 유적에서는 고려시대 건물지와 통일신라에서 고려시대에 이르는 기와가마군이 확인되었다. 7호 기와가마에서 출토된 남송대 청백자화형완도 주변 건물지와 관련될 것으로 추정되지만, 건물지의 성격이 명확하게 밝혀지지 않았다. 그러나 건물지에서 출토된 명문 기와 등을 근거로 興龍寺와의 연관성이 제시되었다(목포대학교박물관 2010: 159-162). 15) 2001년부터 2004년까지 조사된 廣東 南海 1號 宋代 침몰선에 대한 보고서는 아직 출간되지 않았으나 中國國家博物館 水中考 古成果展에 전시된 廣東 南海 1號 宋代 침몰선에서 발견된 남송대 청백자 중에 포함되어 있었다. . 高麗時代 遺蹟 出土 宋代 靑白瓷의 현황과 특징 109.
(20) 혜음원지 등은 출토 유물과 역사적 상황 등으로 12세기 후반에서 13세기경에 해당하는 유적이다. 중국에서도 1201년과 1244년 기년묘에서 출토된 예가 확인되었다. 또한 국내 유적 중에서도 네 기종이 모두 출토되는 서문동 유적이 1252년으로 추정되는 점을 보더 라도 청백자동자화당초문발과 함께 출토되는 연지어문이나 선문 절요접시가 고려에 유 입되는 시기는 13세기를 넘지 않을 것으로 추정된다.. Ⅳ. 遺蹟 出土 靑白瓷의 특징 고려 유적에서 출토되는 송대 청백자는 기종 구성, 출토 유적의 성격과 출토 범위, 고 려청자와의 조합 양상 등에서 북송과 남송으로 대별되는 양상을 보인다. 먼저, 청백자의 기종을 보면, 국립중앙박물관에 소장된 청백자는 개성 일대 무덤에서 출토된 것이며, 대 부분 북송대로 편년되며 다른 중국 자기에 비해서 기종이 매우 다양하고 수량도 현저하 16). 게 많은 것을 알 수 있다 <표2>. 이러한 다양한 기종의 북송대 청백자는 개성 이외 지역 에서 확인된 예가 없다. 남송대 청백자는 주로 발과 절요접시 등 기본적인 기종 외에 확 인되는 기종이 거의 없고, 한반도 전역에 위치한 窖藏, 寺址, 무덤 등에서 출토되었다. <표 2> 국립중앙박물관 소장 고려유적 출토 중국 자기의 품종 및 수량 품종. 가마. 기종. 수량. 耀州窯. 碗>盤>盞. 60여 점. 注子, 唾壺. 10여 점. 청자 越窯. 罐·甁·盒·盞托 定窯. 청백자. 80여 점 盤·碗·盞 → 日常生活用器. 백자 磁州窯. 香爐·甁·罐·碗碗·盞·杯·盆. 20여 점. 景德鎭窯. 碗·盤·접시·注子·甁·注碗·香爐·唾壺·盞托·盒. 300여 점. 白地黑花瓷器, 白地剔花瓷器. 碗·盤·甁. 30여 점. 碗·盞. 120여 점. 磁州窯 定窯 흑유자기 建窯 吉州窯 定窯. 碗·盞托. 當陽峪窯. 碗·盞·盒·唾壺. 장유자기. 20여 점. 16) 현재 국립중앙박물관에 소장 중인 개성에서 출토된 중국 자기는 대부분 20세기 전반 경에 朝鮮總督府博物館이나 李王家美術館에 서 구입한 것이다. <표 2>는 김영미의 글 내용을 요약 정리한 것이다(김영미 2010). . 110. 야외고고학 제16호.
(21) 청백자의 제작 시기와 출토 지역을 연결 하여 보면, 청백자의 유통 범위도 북송에 서 남송으로 가면서 변화하고 있음을 알 수 있다. 11세기에서 12세기 1/4분기 경에 고려에 유입된 북송대 청백자의 유통 범 위는 주로 개성 일대 지역이었고, 화형접 시 한 기종만이 여주, 원주, 보령, 부여, 익 산, 전주 등에서 출토되었다. 남송대 청백 자는 교장, 무덤, 사지 등 한반도 전역에 위치한 유적에서 출토되고 있다. 따라서 청백자의 유통이 전국적으로 확산되는 시 기는 13세기경으로 판단된다<그림24>. 고려에 유입된 북송대 자기는 대부분 완, 반, 잔류가 많지만 청백자의 경우는 완이나 접시 같은 일상 器種부터 주자류, 타호, 잔탁, 향로 등 특수 기종까지 포함 하고 있다<표2>. 다양한 기종의 북송대 청. <그림 24> 송대 청백자의 출토 지역과 유통 범위. 백자는 10세기 말부터 12세기 1/4분기 경 까지 유입되었으며, 문공유(1088~1159) 묘의 출토 예와 같이, 병과 주자류는 청백자로, 완 과 접시는 고려청자로 조합되었을 것이다. 남송대 청백자가 출토되는 유적에서는 이와 반대되는 양상이 보이는데, 완과 접시류가 청백자로 병과 주자는 금속기나 고려청자 혹 은 고려백자로 구성되었다. 1252년으로 추정되는 서문동 유적에서 출토된 청백자 47점은 대부분 완과 접시류였으며, 병과 주자는 금속기였다. 삼척 삼화리 석실묘에서도 청백자 는 발과 접시류, 주자나 잔탁 등은 모두 고려청자, 매병은 고려백자였다. 고려에 유입되 는 청백자의 기종에 따라서 조합되는 고려 자기의 기종도 변하였음을 알 수 있다. 고려에 유입된 남송대 청백자는 기종이 단순하고 무역 상품으로 대량 제작된 예이기 17). 때문에 고려백자를 대체하는 그릇이었을 가능성이 높다. 그러나 북송대 청백자는 단순 히 고려 백자의 대체품으로 보기에는 특수 기종이 많고, 품질이 우수한 예가 많다. 문공 유 묘 출토 청백자봉수병을 비롯하여 개성 일대 고분에서 출토된 북송대 청백자 중에는 17) 최근 발표된 글에서도 고려시대 수입 백자가 출토지의 사례 등으로 보아서 상류층의 전유물이었다는 견해가 제시되었다. 이 글에 서 주로 송과의 외교 관계가 적극적으로 이루어지고 宋商의 왕래가 잦은 시기에 송대 자기가 유입되었을 것으로 보았다. 제작 기술 과 품질이 떨어지는 고려백자의 대체품으로 중국 백자가 선호된 것으로 추정하였다(이종민 2011: 146-154).. 高麗時代 遺蹟 出土 宋代 靑白瓷의 현황과 특징 111.
(22) 중국 유적에서도 찾아보기 힘든 특이한 기형과 문양을 가진 예가 적지 않다. 북송대 청백 자의 경우에 고려백자를 대체하기 위한 그릇보다는 당시 고려에서 청자나 백자로 제작하 기 힘들거나 고려내에서 구입하기 어려운 특수 기종들이 많이 유입된 것으로 추정된다. 북송과 남송대 청백자가 유입되는 배경을 다르게 보는 것은 사용 계층과 유입과정의 문제와도 관련된다. 앞서 언급하였지만 문공유 묘 출토 청백자봉수병을 비롯하여 개성 일대 무덤에서 출토된 북송대 청백자 중에는 조형적으로 품질이 우수한 작품이 많다. 이 러한 청백자들은 왕실이나 고위 관료 등 상위 계층에서 사용되었을 가능성이 높다. 문공 유도 從一品의 判三司事를 지낸 고위 관료였으며, 1115년에 宋 使臣, 1129년과 1150년에 18). 金 使臣으로 파견되기도 하였다.. 품질이 높은 다양한 기종의 북송대 청백자는 고위 관. 료들이 사신 등의 신분으로 중국을 내왕하면서 구입하거나 선물 받았을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다. 반면에 남송대 청백자발과 접시는 무역 상품으로 대량 생산된 것이며, 고려에 수입되어 한반도 전역에 위치한 관청, 객사, 사찰 등지에서 사용되었을 것으로 추정된다. 고려시대 유적에서 출토되는 남송대 청백자동자화당초문발과 청백자화형완이 무역 자기 를 실었던 廣東 南海 1호 침몰선에서 다량 발견된 점이 이를 뒷받침한다. 중국 내에서도 경덕진 청백자가 출토되는 묘는 묘주가 사회적·경제적으로 높은 지위 에 있거나 상위 계층의 무덤 형식인 石板墓에서 출토된다(黃義軍 2010: 216-221). 고려 유 적 출토 청백자와 유사한 청백자가 출토된 중국 기년묘 중에, 묘주의 신분은 지방 호족과 관료로 구분된다. 易氏夫人은 彭澤에 世居하는 豪族이었으며, 杜氏夫人의 남편, 李彬, 閻 良佐는 모두 관직에 진출하지 못한 호족이었다. 관직을 역임한 墓主는 張之紇과 張世卿 인데, 張之紇은 進士였으며, 祖父는 從五品 太常寺小卿, 張之紇이나 그의 아버지는 正七 品 左朝奉郞을 역임하였다(滁縣地區行署文化局 외 1988: 66-71). 張世卿(1042~1116)은 漢 族이지만 遼에서 正八品 監察御史 등을 거쳐 正七品 云騎尉를 역임하였다(河北省文物硏 究所 2001: 237-238). 墓主의 신분이 정확하게 밝혀지지 않은 紀年墓도 磚室墓, 石槨墓, 石室墓로 築造된 점으로 보아서 묘주가 사회적·경제적으로 상위 계층인 것으로 추정된 다. 남송대 청백자가 출토된 高麗 三陟 三和里 墓도 石室墓이며, 묘주가 삼척 지역에 호 족 정도의 신분이었을 가능성이 높다. 고려에 유입된 중국 자기 중에 가장 양적으로 많은 비중으로 차지하는 품종은 백자이 다. 파주 혜음원지의 경우는 128점의 중국 자기 중에서 백자 111점, 청자 7점, 교태자기 7 점, 녹유자 3점으로, 중국 백자의 비중이 매우 높다. 혜음원의 창건 연대가 1122년이기 때 18) 『高麗史』 卷 97 列傳 卷第 10 諸臣 郭輿 “賜別業西華門外, 輿嘗請餞入宋使王字之·文公裕于別業,…” ; 『高麗史節要』 卷 9 仁 宗 7年 “遣文公裕,如金,謝賀生辰”; 『海東歷史』 第 35 卷 交聘志 3 朝貢 3 高麗 “海陵 天德二年[庚午]三月 丙戌 遣知樞密院 事文公裕·殿中監朴純中, 賀登寶位”.. 112. 야외고고학 제16호.
(23) 문에 혜음원지에서 출토된 중국 백자 111점은 12세기에서 13세기경에 유입되었을 것이 다. 여주 고달사지에서 출토된 중국자기 30점 중에 경덕진요 청백자 16점, 남방계 백자 3 점, 형·정요 백자 4점으로 23점이 중국 백자이다. 경주 불국사 경내 유적 발굴조사에서 도 중국 자기 125점 중에 청자 6점, 백자 114점, 흑유자 5점으로 중국 백자의 비중이 압도 19). 적으로 높은 것을 알 수 있다. 실상사지에서는 중국 자기 35점 중에 정요백자편 8점, 청 백자편 10점, 남방계 백자편 1점으로 중국 백자가 19점이다. 중국 백자 중에서도 청백자 의 비중이 가장 높고, 기종도 가장 다양하다. 반대로 중국 청자는 고려 전기 유적에서 월 요나 요주요 청자가 출토되지만 수량에서 많지 않고, 중국에서 남송과 원대에 활발하게 수출되는 용천요 청자가 고려 유적에서 출토된 예는 없다. 고려시대 유적에서 다양한 종류의 중국 백자류가 다른 품종에 비해 많이 출토되는 양 상은 결국 고려가 중국 자기를 수용할 때 선호하였던 모습이 뚜렷하게 나타나는 것이다. 아마도 고려의 자기 제작 상황을 볼 때, 당시 고려에서 백자 제작이 원활하지 못했던 상 황과 관련이 있을 것이다(이종민 2011: 153). 그러나 청백자의 경우에 조형이 특이하고 품 질이 우수한 예들이 다른 중국 자기에 비해 많이 남아 있는 점을 고려할 때 색뿐이 아니 라 기형을 포함한 그 이상의 의미가 있었다고 생각된다.. Ⅴ. 結論 지금까지 고려 유적에서 출토되는 청백자의 현황을 통해서, 高麗에 유입되었던 청백자 의 出土 遺蹟의 성격, 出土 地域, 器種, 製作 時期, 사용 계층, 고려청자와의 조합 양상을 時期別로 살펴보았다. 청백자가 출토되는 고려 유적의 성격은 무덤, 객사·혜음원지·개 성 궁성지·강화도 中城 등 관청 관련 유적, 사찰터 등으로 크게 분류되었다. 고려 유적 출토 청백자와 중국의 편년 자료들을 비교·분석한 결과, 고려에 유입된 청백자는 기종 과 출토 유적의 성격, 유적의 분포 지역 등에서 북송과 남송으로 나누어지는 차이를 확인 하였다. 북송대 청백자는 주로 개성 일대 무덤에서 출토되었으며, 유입 시기는 10세기 말부터 12세기 1/4분기 경까지로 추정하였다. 남송대 청백자는 窖藏이나 寺址 등에서 출토된 예 가 많고, 유입 시기는 13세기경에 집중되어 있다. 북송대 청백자는 완·반·접시와 같은 일상 기명뿐만 아니라 주자·병·주완·향로·타호·잔탁·합·침 등 다른 중국 자기 19) 坡州 惠陰院址에서 출토된 128점 중에 器形과 文樣의 복원이 가능한 53점이 보고서에 수록되어 있으며, 慶州 佛國寺 境內 遺蹟 도 중국자기 125점 중에 38점만이 報告書에 수록되어 있다.. 高麗時代 遺蹟 出土 宋代 靑白瓷의 현황과 특징 113.
(24) 에서 보이지 않은 특수한 기종이 많이 확인되었다. 이러한 특수 기종들 중에 품질이 우수 한 경우도 적지 않아서 북송대 청백자는 왕실이나 개성 일대에 居住하던 文公裕와 같은 고위 官僚 계층에 의해 사용되었을 것으로 보았다. 북송대 청백자는 宋商들에 의해 고려 에 유입되었을 가능성도 있지만 본고에서는 고려 사신들이 중국에 내왕하는 과정에서 구 입하거나 선물받았을 가능성도 제시하였다. 남송대 청백자는 무역 상품으로 대량 생산된 발과 접시 기종으로 한정되며, 이와 동일한 기종의 청백자발과 화형접시가 송대 무역선 인 廣東 南海 1호 침몰선에서 다량 발견되었다. 송대 청백자는 고려 전기에는 주로 개성 일대에서 소비되다가 13세기경에 전국으로 유통되면서 寺院이나 客舍, 院과 같은 장소에 서 고려청자와 조합을 이루어 사용되었던 것으로 보인다. 고려시대 유적에서 출토되는 청백자의 양상이 시기별로 변화하고 중국 紀年 자료와의 비교를 통해 제작 시기와 제작지 등에 집중하여 당시 유입된 청백자의 현상을 파악하는 데 집중하였다. 청백자가 정요나 남방계 등 다른 중국 백자류보다 많이 유입된 원인이나 배경 등에 대해서는 깊이 있게 다루지 못했다. 경덕진의 청백자 제작 및 수출 상황이나 다른 나라에서 출토되는 청백자와의 비교 등에 대한 연구는 차후 과제로 남기고자 한다. ▶논문접수일(2013.1.7) ▶심사완료일(2013.2.13) ▶게재확정일(2013.3.8). 114. 야외고고학 제16호.
(25) [참고문헌] 江原文化財硏究所, 2009, 『原州 法泉寺 Ⅰ』, 江原文化財硏究所 學術叢書 101冊. 京畿道博物館·安城市, 2002, 『奉業寺』, 경기도박물관 유적조사보고 제8책. 慶州大學校博物館, 2006, 『慶州 佛國寺 境內 聖寶博物館 建立豫定敷地 發掘調査報告書』, 경주대학교박물관 학술연구총서 제5책. 國立大邱博物館, 2004, 『우리 문화속의 中國 陶磁器』, 大邱: 國立大邱博物館. 國立文化財硏究所, 2009, 『開城 高麗宮城』, 國立文化財硏究所. , 2012, 『개성 고려궁성 남북공동 발굴조사보고서Ⅰ』, 國立文化財硏究所. 國立扶餘文化財硏究所, 2006, 『實相寺 Ⅱ』 發掘調査報告, 國立夫餘文化財硏究所 學術硏 究叢書 第38輯. 國立中央博物館, 2007, 『中國陶磁』, 서울: 國立中央博物館. 김윤정, 2009, 「慈江道 熙川市 西門洞 窖藏出土 遺物의 性格과 編年」, 『陶磁文化』 2, 7-35, 京畿陶磁博物館. 畿甸文化財硏究院, 2003, 『元香寺』, 學術調査報告 第44冊. , 2007, 『高達寺址Ⅱ』, 學術調査報告 第77冊. 檀國大學校 埋藏文化硏究所, 2006, 『坡州 惠陰院址 發掘調査報告書 -1次~4次(本文)-』, 埋 藏文化硏究所 學術調査叢書 第41冊. 목포대학교박물관·나주시, 2010, 『나주 송월동유적Ⅱ -통일신라~고려시대-』, 목포대학 교박물관 학술총서 제166책. 이종민, 2011, 「高麗 中期 輸入 中國白磁의 系統과 性格」, 『미술사연구』 25, 137-160, 미술 사연구회. 任眞娥, 2002, 『高麗遺蹟 出土 宋代磁器 硏究』, 성균관대학교 대학원 사학과 석사학위논문. , 2005, 『高麗靑磁에 보이는 北宋·遼代 磁器의 影響』, 홍익대학교 대학원 美術史 學科 碩士學位論文. 鄭良謨, 1976, 「三陟郡北坪邑三和里出土高麗時代遺物一括」, 『考古美術』 129·130, 190199, 한국미술사학회. 中原文化財硏究院, 2012, 『江華 玉林里 遺蹟 Ⅰ. 本文·圖面』. 調査報告叢書 第128冊. 한나래, 2009, 「개성 고려궁성 출토 자기의 성격」, 『개성 고려궁성』, 158-165, 대전: 국립문 화재연구소. 한신대학교박물관, 2003, 『龍仁 麻北里寺址』, 한신대학교박물관총서 제17책.. 高麗時代 遺蹟 出土 宋代 靑白瓷의 현황과 특징 115.
(26) 江西省文物考古硏究所, 2008, 『南豊 白舍窯 饒家山窯址』, 北京: 文物出版社. 江西省文物考古硏究所·景德鎭民窯博物館, 2007, 『景德鎭 湖田窯址』-1988-1999年 考古 發掘報告, 文物出版社. 貢昌·金華地區文管會, 1985, 「浙江蘭溪縣北宋石室墓」, 『考古』 2, 155-157, 科學出版社. 廣州市文物管理委員會, 1987, 『廣州西村窯』, 香港: 香港中文大學中國文化硏究所. 金英美, 2010, 「韓國國立中央博物館藏高麗遺址出土中國瓷器」, 『文物』 4, 77-95, 文物出 版社. 范鳳妹, 1988, 「江西出土的宋代瓷盒」, 『文物』 3, 88-93, 文物出版社. 范鳳妹·吳志紅, 1983, 「江西宋代紀年墓出土靑白瓷器」, 『南方文物』 1, 77-79, 江西省文物 考古硏究所. 謝志杰·王虹光, 1992, 「江西宜春市元代窖藏淸理簡報」, 『南方文物』 2, 1-7, 江西省文物考 古硏究所. 四川省文物管理委員會, 1987, 「四川簡陽東溪園藝場元墓」, 『文物』 2, 70-87, 文物出版社. 薛堯, 1965, 「江西南城和永修的宋墓」, 『考古』 11, 571-576, 科學出版社. 于少先, 1990, 「江西德安北宋墓」, 『文物』 9, 95, 文物出版社. , 1992, 「江西德安發現北宋皇祐五年墓」, 『南方文物』 3, 32-33, 江西省文物考古硏 究所. 陸明華, 2001, 「四川遂寧出土瓷器及窖藏時代問題探討」, 『故宮文物』 219, 96-105, 臺灣國 立故宮博物院. 李家和, 1976, 「介紹江西出土的幾件宋代瓷器」, 『文物』 6, 91, 文物出版社. 李炳炎, 2004, 『宋代筆架山潮州窯』, 汕頭: 汕頭大學出版社. 李知宴·童炎, 1984, 「浙江省武義縣北宋紀年墓出土陶瓷器」, 『文物』 8, 91-93, 文物出版社. 張家口市文管所·宣化縣文管所, 1991, 「河北宣化遼姜承義墓」, 『北方文物』 4, 67-71, 北方 文物雜誌社. 張文江·何敬, 2009, 「從銅鑼山等幾處窯址的發掘看宋代景德鎭窯業狀況」, 『東方博物』 30, 52-63, 浙江大學出版社. 滁縣地區行署文化局·全椒縣文化局, 1988, 「安徽全椒西石北宋墓」, 『文物』 11, 66-71, 文 物出版社. 『中國出土瓷器全集 14 -江西-』, 2008, 北京: 科學出版社. 『中國出土瓷器全集 16 -甘肅·靑海·寧夏·新疆·云南·貴州·西藏-』, 2008, 北京: 科學 出版社.. 116. 야외고고학 제16호.
(27) 鎭江市博物館, 1977, 「鎭江市南郊北宋章岷墓」, 『文物』 3, 55-58, 文物出版社. , 1980, 「江蘇溧陽竹」北宋李彬夫婦墓」, 『文物』 5, 34-44, 文物出版社. 彭適凡 主編, 1998, 『宋元紀年靑白瓷』, 莊萬里文化基金會. 彭適凡·唐昌朴, 1980, 「江西發現幾座北宋紀年墓」, 『文物』 5, 28-33, 文物出版社. 馮平山博物館, 1992, 『景德鎭出土陶瓷』, 香港: 香港大學馮平山博物館. 河北省文物管理處, 1986, 「河北省易縣淨覺寺舍利塔地宮淸理記」, 『文物』 9, 76-83, 文物出 版社. 河北省文物硏究所, 2001, 『宣化遼墓』, 北京: 文物出版社. 香港大學馮平山博物館, 1992, 『景德鎭出土陶瓷』, 香港: 香港大學馮平山博物館. 黃岡地區博物館, 1993, 「湖北英山三座宋墓的發掘」, 『考古』 1, 29-36, 科學出版社. 黃義軍, 2010, 『宋代靑白瓷的歷史地理硏究』, 北京: 文物出版社. 黃風地區博物館, 1988, 「英山縣茅竹灣宋墓發掘」, 『江漢考古』 1, 23-31, 湖北省文物考古硏 究所. 東武美術館 外, 1999, 『宋磁』, 東京: 朝日新聞社. 野守健, 1944, 『高麗陶磁の硏究』, 東京: 淸閑舍. 崔淳雨, 1977, 「韓國出土の宋代陶磁」, 『世界陶磁全集』 12(宋), 292-294, 小學館.. 高麗時代 遺蹟 出土 宋代 靑白瓷의 현황과 특징 117.
(28) The Current State and Characteristics of the Song Dynasty Qingbai Wares Unearthed from Goryeo Sites Kim, Yun-Jeong. (Yongin University). The Chinese wares that have been unearthed from archaeological contexts dating to the Goryeo Dynasty were produced at many sites, including the Yuezhou Kiln (越州窯), Changsha Kiln (長沙窯), Yaozhou Kiln (耀州窯), Ding Kiln (定窯), Xing Kiln (邢窯) and Jingdezhen Kiln (景德鎭窯). Although there are no reports of Chinese celadons found in archaeological contexts after the 12th century, which is when the production of Goryeo celadons began, many Chinese white wares produced in the Xing Kiln, Ding Kiln and Jingdezhen Kiln have been found at sites throughout the whole period of the Goryeo Dynasty. The Chinese white wares unearthed from the Goryeo Dynasty sites are mostly qingbai wares. As the types of wares introduced into Goryeo and their distribution range changed over the years, their combination with Goryeo celadons also changed. First, the types of Goryeo sites from which qingbai wares from the Song Dynasty have been unearthed can be classified into tombs, the remains of government offices, and Buddhist temples. The qingbai wares from the northern Song Dynasty were found in the tombs located in the Gaeseong area and the ones from the southern Song Dynasty were found at government office and Buddhist temple sites throughout the Korean peninsula. Of the northern Song Dynasty qingbai wares, flower-shaped plates were unearthed from some Buddhist temple sites, but it is assumed that the distribution of Song Dynasty wares throughout the Korean peninsula began around the 13th century, when the qingbai wares from the southern Song Dynasty were introduced. Second, the production place and period of the qingbai wares found in the sites of the Goryeo Dynasty was identified by comparing them with those wares found at the porcelain factories of the Jingdezhen Kiln, and those stored in the cellars or buried in the tombs of the Song and Yuan Dynasties. Most of the qingbai wares found in Korea were produced at the Jingdezhen Kiln. It is assumed that the qingbai wares from the northern Song Dynasty were produced from the late 10th century to the early 12th century, and the ones from the southern Song Dynasty produced in the 13th century. Therefore, the period of the inflow of qingbai porcelain wares can be divided into the northern and southern Song periods. There is also a clear difference in the variety of qingbai wares: the wares from northern Song include a wide range of products such as bowls, cups, plates, kettles, bottles, cup saucers, pillows, incense burners and tureens. 118. 야외고고학 제16호.
(29) whereas the wares from the southern Song are limited to feet, plates, and small bowls. Third, the qingbai wares from the northern Song Dynasty found in the tombs of the Gaeseong area consist of various types and are high-quality products. Therefore, it is assumed that they were used by high-ranking officials and nobles such as Moon Gong Yu (文公裕), who lived in Gaeseong. Based on this assumption, there is a possibility that the wares were purchased or received as gifts while visiting China as an envoy. However, for the qingbai wares from southern Song, which are found throughout the country, it is assumed that they were objects of trade which were brought in large amounts. Fourth, the combination of Song Dynasty wares and Goryeo celadons also demonstrates periodic differences. From the 11th century to the early 12th century, qingbai bottles and kettles were used alongside bowls and plates made by Goryeo potters. On the other hand, only feet and plates have been observed in the case of qingbai wares from the southern Song Dynasty and it is assumed that they were used along with Goryeo celadons and metal wares. Key words : Qingbai wares, Goryeo celadons, Buddhist temples sites, Store things in a cellar, Moon Gong Yu. 高麗時代 遺蹟 出土 宋代 靑白瓷의 현황과 특징 119.
(30)
관련 문서
모하메드 나리 출토 설법도 부분 (거대한 연화대좌와 용왕의 호위)... 모하메드 나리
바지푸르 출토 불입상, 럭나우 박물관 소장...
兒馬 아질게 aǯirγa 土黃馬 고라 qula 栗色馬 구렁 küreng 白角鷹 궉진 kögsin 帖裏 텰릭 terlig.. 중고
면백 面白 구순지갑담백 설담 舌淡 맥세
예천동 출토 토기 철기... 예천동
폐기허증 面色㿠白 폐기쇠절증 面色㿠白 신기허증 面色㿠白 신기불고증 面色㿠白.
익산 왕궁리 오층석탑 출토 경판 및 경판함... 익산 왕궁리사지
부여 규암 출토 금동보살입상 뒷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