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접수▸2010년 2월 27일 수정▸2010년 3월 15일 채택▸2010년 3월 22일
▒ 교신저자 이민호, 서울시 서초구 서초동 1599-2 LG에클라트 308호 Tel 02-790-2014 Fax 02-795-2015 E-mail [email protected]
中醫學의 ‘UNESCO 세계무형유산’ 登載 試圖와 그 意味
이민호
한국한의학연구원Attempt at the Register of Traditional Chinese Medicine as UNESCO's Intangible Cultural Heritage and its Significance
Minho Lee
Korea Institute of Oriental Medicine
Objective : This article reviewed China's intent and aim of the failed attempt to register Traditional Chinese Medicine(TCM) as UNESCO's Intangible Cultural Heritage, its process and implication as a policy of 21st Traditional Chinese Medicine(TCM) promotion on the landscape of North East Asian medical geopolitcs.
Methods : This article utilized mainly the discourse analysis of vernacular Chinese journals and newspaper reports.
Conclusions : It is needed to design effective strategies for securing Traditional Korean Medicine(TKM)'s identity and authenticity to cope with so-called 'Chinese Medicine Domination Project'.
Keywords : Traditional Chinese Medicine(TCM), UNESCO's Intangible Cultural Heritage, 'Chinese Medicine Domination Project', Traditional Korean Medicine(TKM), Donguibogam(東醫寶鑑)
I. 서 론
지리적으로 인접하고 있으면서 역사적으로 문화교류가 많았던 한국과 중국은 1992년 한중수교 이후 우호적인 관 계가 지속되고 있지만, ‘문화의 세기’인 21세기 들어서는 다 양한 분야에서 이견과 마찰이 일어나고 있다. 과거 역사문 제를 둘러싼 중국의 ‘동북공정’은 수많은 ‘충돌’의 서막에 불 과했다. 최근에는 전통의학 분야에서 갈등이 전개되고 있는 데, 중국은 한의학을 중의학의 일부로 간주하고 중국 내 조 선족이 소수민족으로 생활하고 있는 점을 이용하여 ‘조의학’
을 중의학의 범주에 포함시키는 ‘중의학 공정’을 추진하고 있다.
양국 간의 갈등관계는 자국 전통의학의 세계유산 등재와 맞물려 더욱 첨예하게 전개되었다. 이와 관련 2008년 3월 중국 관영 신화통신사의 자매지인 國際先驅導報는 중국의 아시아 태평양 지역 무형문화유산센터 설립 준비 작업을 공 개하면서 한국과 중국 양국의 문화유산 쟁탈이 재연되고 있 다고 보도하였다.1) 그리고 같은 해 한국은 東醫寶鑑을 세계기록유산으로 신청하였고, 중국은 중의학을 세계무형 유산으로 신청하였다.
하지만 2009년이 되어 양국이 추진한 세계유산 등재 결 과는 극명하게 엇갈렸다. 東醫寶鑑은 등재에 성공했지만 중의학은 세계무형유산 목록에 이름을 올리지 못했다. 東
1) 國際先驅導報 2008년 3월 27일.
醫寶鑑의 등재 성공 이후 국내에서는 등재 과정과 역사적 의의에 관한 논의가 전개되었지만, 중의학의 등재 시도와 실패에 관해서는 연구가 많지 않았다. 따라서 본고에서는 중의학의 세계무형유산 등재 시도와 그 배경, 그리고 실패 가 갖는 역사적 의의가 무엇인지를 분석해보고자 한다.
그런데 단순히 ‘성공과 실패’의 결과만을 분석의 대상으 로 설정할 경우 중국 정부가 추진한 ‘중의학 공정’으로 대표 되는 문화 침략의 양상을 파악하는데 한계가 있을 수밖에 없다. 그러므로 중의학을 세계유산으로 등재시키고자 한 목 적 및 과정과 더불어 그들이 21세기 들어와 추진했던 전반 적인 중의학 진흥정책과 세계유산 등재 실패 이후의 행보, 그리고 미래에 대한 예측도 필요하다.
Ⅱ. 21세기 중국의 중의학 진흥정책
1. 中醫藥 發展 3大 工程의 추진
21세기 들어 세계의 전통의학 시장 규모는 꾸준히 확대 되고 있는데, WHO에 의하면 2008년 약 2,000억 달러에 달한 것으로 파악된다. 이에 각 국은 자국의 전통의학을 세 계에 알리고 시장 점유율을 높이기 위한 노력을 경주하고 있다. 이미 세계 시장의 50% 이상을 점유한 것으로 생각되 는 중국은 세계의 중요한 시장을 ①동남아 및 화교 시장,
②한․일 시장, ③서방 시장, ④아프리카 및 아랍 시장2)으 로 구분하고 ‘중의학’의 표준화․현대화를 통해 지배력을 더욱 강화하고자 하고 있다.
21세기 들어와 중국 정부는 중의학을 중요한 성장 산업 으로 인식하고 발전시키기 위해 많은 노력을 경주하고 있 다. 2006년 중국 중의과학원장 曹洪欣은 중의과학원 사업 보고를 하면서 중의과학원에서 장차 “岐黄工程”,“仲景工 程”과 “時珍工程”의 三大科技工程을 실시할 것이라고 밝 힌 바 있다.3) 이어서 2008년 9월 中國衛生部部長 陳竺은 중의과학원을 방문하여 ‘중의약의 발전을 촉진시키는 것이 국가의 전략적 선택’이라면서 위생부는 앞으로 전력을 다해 중의과학원의 발전을 도모할 것이라고 하였다. 이와 더불어 그는 중의약 발전을 위한 3대 공정 즉 仲景工程, 時珍工程 과 岐黄工程은 의약과 기초 이론을 결합한 매우 좋은 계획 으로 중의과학원이 중심이 되어 좀 더 좋은 역할을 발휘해
2) 文化, 喬成棟. 民族醫藥作爲非物質文化遺産的保護與傳乘 . 中醫兒科雜志. 2006;2(5). p.55.
3) 中国医药报 2006년 5월 11일.
줄 것을 당부하였다.4)
岐黄工程은 중의약 이론을 풍부하게 하고 발전시키는 것 을 주된 임무로 삼아 중의약 이론의 전승과 창신을 위해 추 진하고 있다.
仲景工程은 병의 예방과 치료능력을 높이는 것을 주요 임무로 삼고 있으며, 중의약이 치료 분야에서 우세를 점하 고 있는 임상 연구를 중점으로 암, 심뇌혈관병, 당뇨병, 에 이즈, B형 간염 등 질병을 연구하는 것이다. 또 뼈와 관절 계통의 질병, 망막과 시신경 질병 등 중의가 우세를 보이는 병에 대한 연구를 통해 임상 치료 효과를 높이고자 한다.
중의약의 양생과 보건에 관한 이론과 방법을 체계적으로 연 구하여 중의약이 우위를 차지하는 영역을 넓히고자 한다.
時珍工程은 진료, 치료효과에 대한 평가와 공공성 기술 연구를 주요 임무로 삼아 중의약 자체의 발전 규율에 적합 한 기술과 방법을 연구한다. 중의약 기초 표준, 기술 표준, 관리와 작업 표준의 연구 강화를 통해 중의약 치료 평가체 계를 구축하고 중의이론과 실천에 적합한 선진 기술 중의진 료기술, 중약포제기술, 중약자원을 지속적으로 이용할 수 있는 기술과 중약의 제약기술을 연구․개발하고자 한다.
이처럼 중의학 발전을 위한 3대공정은 中醫 과학기술의 능력을 增强시켜 세계 시장에 진출하는 기반을 조성하기 위한 프로젝트다.
2. 少數民族醫學의 中國化
중국은 동아시아 전통의학이 중국에서 발원하여 주변 지 역으로 확산되었다고 주장한다. 또한 우리 한의학을 ‘朝醫 學’의 이름으로 중의학의 일부로 삼으려 시도하고 있다. 물 론 중국의 소수민족의학에 대한 중국화는 단순히 조의학에 만 한정되지 않는다. 티벳이나 몽골, 위구르 등 중국 내 다 른 소수민족의학에 대해서도 같은 방식으로 진행되고 있다.
중국 정부의 이러한 소수민족의학 정책은 ‘통일적 다민족국 가론’의 사상적 배경 하에 하나의 중국을 추구하는 국가 정 책과 밀접히 관련되어 있다.
중국의 소수민족은 서로 다른 자연 지리 환경과 사회 문 화적 배경 아래 각기 독특한 소수민족의학을 탄생시켰다.
2002년 통계에 의하면 중국 내에는 165개소의 소수민족의 원이 있는데 그 중 藏醫醫院이 57개, 蒙醫醫院이 43개, 維 吾爾(위구르)醫醫院이 37개로 다른 소수민족에 비해 비교 적 많은 의원을 가지고 있다.5)2003년에는 북경에 소수민
4) 科学时报 2008년 9월 2일.
5) 文化, 喬成棟. 民族醫藥作爲非物質文化遺産的保護與傳乘 .
족 의학을 종합한 북경민족의원이 성립되었다. 그리고 서 장, 신강, 내몽고, 청해, 사천, 운남, 호남, 길림, 요녕 등 자치 구에서는 민족의약연구소를 건립하고 사회조사, 문헌 정리, 임상 관찰 및 약물 연구를 진행하였다. 중국에는 약 13,000 여 명의 민족의약 전문 인력이 활동하고 있으며, 그밖에 상 당수의 인력은 민간에 분산되어 있다. 1980년대부터 藏醫, 蒙醫, 위구르醫 등은 모두 소수민족의학 관련 전문학교를 수립하였고, 감숙중의학원, 성도중의약대학, 운남중의학원 내에 藏醫專業을 설립하고, 광서중의학원에는 壯醫專業을, 중앙민족대학에는 2002년 藏醫系를 설립하였다. 1980년대 부터 중국에는 소수민족의 약을 생산하는 기업이 출현하기 시작하여, 2002년말 국가표준에 도달한 소수민족약이 906 개에 달하였다.6)
중국의 소수민족의학은 임상 방면에 있어서 풍부한 실천 경험과 독특한 이론을 지니고 있으면서 질병의 치료와 예방 에 효과적이다. 예를 들면 몽고족 의학은 약물 이외에도 전 통적인 灸療와 鍼刺, 正骨, 冷熱敷, 馬奶酒療法, 飮食療法, 正腦術, 藥浴, 天然溫泉療法 등이 있고, 藏醫의 질병에 대 한 예방법에는 약물요법 외에 灸法, 搽涂外敷法, 藥浴, 藥 膳 등이 있으며, 위구르族의 치료 방법에는 형식상 護理療 法, 飮食療法, 藥物療法, 手治療法의 4가지 종류가 있다.
이처럼 중국의 소수민족의학은 민족과 지역의 특성에 따 라 중국의 지배민족인 한족과는 다른 의료 체계를 형성하고 발전시켜 왔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중국은 이들 소수민족의 학을 자국의 전통의학 체계 내에 편입시키기 위해 다양한 활동을 전개하고 있다. 그 대표적인 예의 하나가 바로 중국 소수민족의약박람회의 개최이다.
중국의 첫 번째 民族醫藥博覽會는 2007년 9월 北京民族 文化宫에서 개최되었다. 당시 박람회는 중국 소수민족의약 의 발전성과를 展示하는 한편, 藏, 蒙古, 위구르, 彝, 瑶, 朝 鲜, 壮, 苗, 回, 傣族 等의 민족의원, 제약기업 및 연구 기관 이 참가하여 중국 소수민족의 고유한 치료법과 근 1,000종 에 달하는 의약 상품을 전시하였다.
중화민국국가민족사무위원회의 비준을 거쳐 개최된 당 시 박람회는 두 단계로 나뉘어 진행되었다. 9月1日-2日에 는 “全國民族醫藥發展論壇”을 열어 관련 전문가와 의약기 업 대표들이 민족의약산업정책과 관련하여 민족의약자원과 지적재산권의 보호, 민족의약의 연구 개발 응용 및 산업화, 민족의약의 시장개척과 판매 전략 등에 대해 광범하고 깊이
中醫兒科雜志. 2006;2(5). pp.55-56.
6) 文化, 喬成棟. 民族醫藥作爲非物質文化遺産的保護與傳乘 .
中醫兒科雜志. 2006;2(5). p.56.
있는 연구와 토론을 진행하였다. 9月2日-5日까지는 박람회 에 참가한 藏, 蒙古, 위구르, 彝, 瑶, 朝鲜, 壮, 苗, 回, 傣 等 민족의약의 독특한 진료법과 의약 상품을 전시하였다.
이처럼 박람회를 통해 각각의 소수민족의학이 중국 전통 문화의 일부임을 국내외에 선전하고, 또한 이들 소수민족의 학을 중의학의 범주에 포섭하여 국가의 非物質(無形)文化 遺産 목록에 등재시킴으로써 중국화를 가속화하였다.
3. 中國 地域中醫界의 無形遺産 發掘 ․ 傳承
21세기 들어 중국정부는 중의학을 하나의 중요한 문화유 산으로 인식하고 이를 유네스코에 등재시켜 보호하고 전승 함은 물론이고 세계적으로 그 가치를 인정받기 위한 노력을 지속적으로 전개하고 있다. 이러한 정부 정책에 호응하여 중국의 각 지역 중의계도 지역의 중의문화를 발굴 계승하는 작업을 시도하였다. 특히 2006년 중의학이 중국의 國家級 非物質(無形)文化遺産에 등재되고, 유네스코에 세계무형 유산 으로 등재시키겠다는 계획이 발표되자 경쟁적으로 지 역의 중의학 문화를 발굴하여 보호하고 전승해야 한다는 취 지의 글을 발표하였다. 특히 명․청 이래 중의학의 중심지 역이라 할 수 있는 江浙 지역과 新安(徽州) 지역에서 이러 한 움직임이 두드러지게 나타나고 있다. 이하에서는 이들 두 지역의 사례를 통해 중국 지역 중의계의 움직임을 검토 하고자 한다.
1) 江蘇省 常熟의 中醫無形遺産
강소성은 중국 문화의 젖줄이라고 할 수 있는 양자강 하 류에 위치하여 중세 이래 중국의 경제와 문화의 중심지였 다. 이 지역은 막강한 경제력을 바탕으로 명․청시대에는 중의학도 크게 발전하였다. 현재 이곳 중의학계를 대표하는 학자 가운데 한사람인 余信은 江蘇省 常熟이 ‘由儒而醫가 천년 이래 이 지역 의가를 표현하는 방식이다’7)고 하면서 常熟醫家의 유교적 전통을 강조하였다. 그러면서 상숙의 전통의약문화 특징으로 唱診案․唱診方과 裴麥粉, 藥名文 化, 余聽鴻의 ‘看小兒面色捷徑法’ 을 들고 있다.
과거 이 지역의 명의들은 제자를 거느리고 진료할 때 ‘선 생’으로 칭해졌던 명의들이 정신을 집중하고 바르게 앉아
‘望問聞切’할 때 ‘소선생’으로 불리는 학생들은 각자 종이와 붓을 준비하여 선생의 곁 환자 옆에 둘러앉아 있다가 ‘선생’
7) 余信. 常熟中醫非物質文化遺産存要 . 中醫藥文化. 2008;1.
p.52.
이 진찰을 마치면 ‘소선생’들이 재빨리 윤번으로 試診하였 다. 진찰이 끝나면 잠시 정숙한 뒤에 ‘선생’은 소리의 높낮 이와 곡절이 조화되고 리드미컬하게 증상과 처방을 노래로 읊으면 ‘소선생’들은 각자 정신을 가다듬고 빠르게 기록하 며, 환자와 그 가족들은 공손히 듣는다. 이는 일종의 중의 전통문화의 표현 형식이자 의가 교육 방법이기도 하다.
裴麥粉은 청대 乾隆․嘉慶年間의 裴蕙芳이 만든 것으로 道光․咸豊․光緖年間의 裴應鐘이 널리 보급하였다. 두 사 람은 모두 상숙의 명의로 영유아 질병의 치료에 뛰어났다.
소아들은 복약이 불편하기 때문에 맥류(보리, 귀리, 호밀 등)를 볶아 가루를 낸 다음 약품으로 적합하게 선택하여 섞 고 食糖을 더해 어린이들이 먹기 편리하게 만든 것이다. 이 는 상숙 지역에서 근 300년을 전해 내려오고 있다.
상숙 지역에 현존하는 의가 의학생은 물론이고 대중들도 좋아하는 중의와 관계된 무형문화유산으로 대량의 ‘약명문 화’, 즉 약명시․사․문․미 등이 있다. 비록 이들 약명과 중약의 효과가 커다란 관계는 없지만 이러한 특수한 문화표 현형식은 중의약의 깊은 영향을 받아 이루어진 것이며, 이 와 군중생활이 밀접한 상관관계를 증명하는 것이며, 세대를 내려오면서 전해진 문화표현형식이다.
2) 新安醫學의 無形遺産 特徵
명․청 시대 유․상․의의 3위 일체의 문화적 배경 아래 의학 분야에서도 전성기를 구가하였던 신안 지역 역시 다양 한 전통의학의 문화유산을 간직하고 있으며, 이를 보호하고 자 하는 움직임이 강하게 일어났다.8) 명․청시대 이래 휘상 의 ‘賈而好儒’의 가치관은 휘상이 문화를 중시하는 기반이 되었고, 수많은 신안 의학 저작의 출판은 신안의학이 경제 적 번성에 수반하여 이루어진 결과라고 할 수 있다.
신안 지역에는 당․송이래 郡邑에 보편적으로 학교가 설 립되었고, ‘徽墨’, ‘歙硯’으로 유명하였으며, 중원지역에서 관원과 문인 학사들이 신안으로 이주해 왔으니 이는 신안 지역의 문화 발전에 일정한 영향을 주었다.9) 특히 명청시대 에는 서원이 들어서고 문사의 결성이 유행하였는데, 이러한 문화적 요소의 영향으로 신안의가가 대량으로 배출될 수 있 었다.
8) 이민호, 안상우. 명청시대의 신안의학-유상의 삼위일체의 문화 구조 . 한국의사학회지. 2009;22(2).
9) 李艶, 李梢. 徽商與新安醫學的文化成因初探 . 中醫敎育.
1996;15.
項長生, 項鴻. 徽州的文化經濟與“新安醫學” . 中華醫史雜 志. 1998;28(4).
황산 아래의 신안지역에 위치한 신안은 중약재 자원이 풍부하여 대략 400여종에 달하는데, 그 중에는 지역 특산의 진귀한 품종이 약 60여종이나 되어 신안의학 발전의 유리 한 조건을 제공해주고 있다. 이 때문에 신안의가 중 많은 수가 약물을 연구하여 54부에 달하는 본초 관련 저서를 편 찬하였다. 본초 관련해서는 藥性硏究를 비롯하여 藥物臨床 應用, 藥物採集, 加工, 炮製, 本草文獻, 食物本草, 藥物配 伍, 本草簡要歌訣 등 분야에까지 미치고 있다. 新安醫籍 考의 기재에 의하면 신안 지역의 의가가 편찬한 중의 학술 저작은 800여부에 달하고 있다. 이들 저작을 분류하면 醫經 類 107종, 傷寒類 70종, 診法類 40종, 本草類 54종, 鍼灸類 22종, 內科類 210종, 外科類 15종, 婦科類 24종, 小兒科類 84종, 五官科類 84종, 醫案醫活類 77종, 養生類 15종, 叢書 類 37종 등이다.10)
신안의학은 휘주상인의 굴기에 따라 명․청 시대에 전성 기를 구가하였는데 醫家가 거의 전국 각지에 미쳤다. 이들 은 전국 각지에서 의료를 행함과 동시에 약국을 개설하였 다. 가장 일찍 약국을 개설하고 운영한 것은 송대의 ‘陸氏保 和堂’이다. 명대 비교적 저명한 약국으로는 徐春甫家의 ‘徐 保元堂’, 汪一龍의 ‘正田藥店’, 洪基의 ‘胞與堂’ 등이 있었 다. 이 시기는 신안약국의 초기 발전단계로 약국은 대부분 의가가 개설하고 名方 · 秘方의 수집을 중시하여 이후 중약 업이 기업화되고, 청대 휘상이 약국을 경영하는 선례를 제 공하였다. 청대 가장 저명한 약국으로는 항주에서 胡光墉 이 개설한 ‘胡慶餘堂’이 있는데, 이는 신안 최대의 약국으로 이는 신안 사람이 중약을 경영함에 있어서 전성기에 이르렀 음을 나타내는 것으로 후세 신안약국 발달에 크게 영향을 주었다.
신안의학은 하나의 종합성 지역의학으로 경전 고증, 상 한학설, 온병학설, 방제학, 본초학, 침구추나, 임상특색전과, 의학교육 등 중의전통이론체계와 신안 지역의 특수한 지리·
인문 환경, 신안의학의 특수성을 내포하고 있는데 예를 들 면 지리상의 산구의학 특성, 문화상의 가족중심 의학 특성, 학술상의 지방유파 특징 등 다른 지역의 의학과 구별되는 지방적 특성을 지니고 있다.
신안의학을 무형문화유산으로 인식하고 있는 학자들은
“모든 무형문화의 탄생은 그의 민족·지역과 연계되어 문화 종합체를 구성하고 있으며, 아울러 그것이 처한 환경과 자 연계의 상호 관계, 역사조건의 변천에 따라 끊임없이 대대 로 전해지면서 창신·발전할 수 있다.”11)고 주장한다.
10) 王樂陶 主編. 新安醫籍考. 安徽科學技術出版社. 1999. p.5.
11) 王鍵, 牛淑平. 新安醫學的非物質文化遺産特徵 . 中醫藥文
Ⅲ. 中醫學의 세계무형유산 등재 시도
1. 등재 추진 배경
중국에서 중의학을 무형유산으로 인식하고 이를 보호 전 승함으로써 세계시장에서 독점적 지위를 갖게 하겠다고 시 도한 것은 2003년 ‘세계무형문화유산보호협정’의 체결이 계 기가 되었다. 이후 중국은 2005년부터 5개년 계획으로 중의 학을 세계유산으로 등재시키겠다는 목표를 설정하고 이를 추진해왔다. 그들은 특히 한국이 ‘강릉단오절’을 세계유산 으로 등재한 것에 자극을 받아 전통의학 분야에서만큼은 우 리나라보다 먼저 등재시키기 위해 준비를 서둘러왔다.
21세기에 들어와 중국은 ‘중화민족주의’의 대두와 더불 어 중의학의 한계를 뛰어넘어 좀 더 큰 범위에서 ‘전통의약’
전체를 연구 대상으로 설정하고, 이를 통해 경제적 부를 창 출할 수 있는 하나의 산업으로 인식하고 그에 접근하고 있 다. 중국의 이러한 인식의 전환에는 최근 중국이 처한 국내 외 정세와 밀접한 관련이 있다. 개혁 · 개방정책을 추진한 지 30년이 지나면서 국민들의 사상 또한 변모하였고, 특히 경제적인 측면에서 자본주의 요소를 도입함으로써 전반적 인 사회 분위기도 많이 달라졌다. 이러한 와중에 그 간 소련 이 해체되는 등 세계적으로 사회주의 정권이 붕괴되고 새로 운 민족국가가 탄생하는 외부적 요인에 자극받아 내부에서 일어날 수 있는 각 소수민족의 분리 독립 움직임을 차단해 야 하는 과제를 안게 되었다. 그러한 과정에서 새롭게 ‘중화 민족주의’가 출현하였으니 중국 지도부는 중국 현대화의 최 종 목표로 ‘중화민족의 위대한 부흥’을 제시하였다. 그런데 여기서 주목해야 할 점은 중화민족의 범위가 예전 ‘漢族’에 국한되었던 것에 비해 최근에는 소수민족까지 확대되었다 는 점이다. 전근대 시기의 중국에는 민족국가 대신 ‘天下’가, 민족주의 대신 ‘문화주의’ 혹은 ‘중화사상’이 존재했다.12) 그러다가 서구 제국주의의 침략을 계기로 근대적 의미의 민 족주의가 대두하였으니 중국 민족주의의 시작은 排外思想 을 지닌 저항의 형태로 나타났다.13)하지만 최근의 민족주 의는 쇠락하는 공산주의 이데올로기의 공백을 메우기 위한 대체 이데올로기의 역할을 수행하고 있다. 또 경제성장을 바탕으로 국제적 위상이 높아지고 있는 현실에서 국가가 분
化. 2007;5. p.48.
12) 이정남. 천하에서 민족국가로-중국의 근대 민족주의의 형성 및 현재적 의의를 중심으로 . 중소연구. 2006;30(1).
pp.70-73.
13) 이동률. 중국 민족주의가 대외관계에 미치는 영향 . 국제정 치논총. 2001;41(3). pp.259-260.
열될 경우 발전에 치명적인 장애가 될 수 있기에 소수민족 의 이탈을 방지하기 위해서라도 민족주의는 필요하였다.
다음 중국의 전통의학을 세계무형문화유산으로 등재함 으로써 얻을 수 있는 경제적인 이익이 적지 않다는 계산에 서이다. 거기에는 최근 세계적으로 확대되고 있는 대체의학 시장을 선점하기 위한 포석이 깔려 있으며, 이를 지체할 경 우 중의학 관련 특허를 다른 나라에 빼앗길 수 있다는 위기 감이 자리 잡고 있다. 이러한 위기의식은 “일본의 漢方醫學, 한국의 韓醫 등은 모두 중국전통의학의 이론 체계를 기본 구조로 삼고 있지만 점차 (중국을) 추월하고 있는 추세이다.
중의학은 ‘中國原産, 韓國開花, 日本結果, 歐美收獲’의 난 처한 상황에 직면하여 외국에 탈취당한 중약특허가 1,000 여 건에 달한다.”14)는 글 속에 잘 나타나 있다.
이러한 배경 아래 중의학에 대한 접근 방법에도 변화가 발생하였으니 소수민족 의학과 민간요법을 포함한 전통의 약 개념으로 이 문제에 접근하고 있는 것이다. 따라서 현대 중국에서 언급하고 있는 ‘전통의약’의 범주 안에는 중의약 과 기타 민족의약, 민간의 의약기술, 방법과 약물 등을 포함 한다.15) 중의약은 한문화를 배경으로 한 중국 고대의학의 주류의학으로 이론의 여지없이 학술적 지위와 사회적 지위 를 가지고 있으며 중국 전통의약을 대표한다. 민족의약은 중국 소수민족의 전통의약으로 여기에는 藏․蒙․維吾 爾․傣․壯․苗․瑤․彛․侗․土家族․回族․朝鮮族醫 藥 등이 포함된다. 민간의약에는 민간의 양생습속, 단방경 험, 草醫․草藥과 의료방면의 특별한 기술 등이 포함된다.
중국은 자신들의 전통의학 문화유산을 보호해야 하는 이 유를 다음과 같이 설명하고 있다. 첫째, 인체 생명의 오묘하 고 깊은 부분은 아직 열리지 않고 있는 상황에서 어떤 의학 이건 모두 장단점을 지니고 있는데, 중국 의약학도 방치할 수 없다. 둘째, 문화는 다양성의 특징을 지니고 있는데, 의 약문화유산 또한 예외가 아니며, 다원문화유산의 등재 신청 은 세계유산협정의 대의이다. 셋째, 중국의약문화유산이 수 천 년에 걸쳐 쌓아놓은 것이 매우 두텁고, 매우 풍부한 동방 의 지혜를 지니고 있으며, 문화 가치를 가지고 있으며, 과학 가치를 지니고 있다. 세계문화유산으로 신청하고자 하는 목 적은 좀 더 잘 보호하여 이용할 수 있게 하기 위해서이지 봉쇄하기 위함이 아니다. 명확하게 귀속시키기 위함이며, 연구에 제한을 가하기 위함이 아니라고 밝히고 있다.16)
14) 鄭蓉, 庄乾竹. 中醫藥學申報世界非物質文化遺産的若干問題 探討 . 鄭蓉外主編. 中國醫藥文化遺産考論. 北京:中醫古籍 出版社. 2005. p.222.
15) 國家級非物質文化遺産大觀編寫組編. 國家級非物質文化遺 産大觀. 北京:北京工業大學出版社. 2006. p.331.
2. 등재 추진 과정
중의학을 세계문화유산으로 등재시키기로 결정한 이후 중국은 작업을 수행하였다.17) 그들은 ‘중의약학 세계문화 유산 등재 준비 위원회’를 만들었고, 초보적인 중의약 무형 문화유산 등재 원칙과 중의약 무형문화유산의 10년 보호 계획을 제정하였다. 2005년 7월 유네스코 문화담당 사무총 장보인 무니르 부시나키(Mounir Bouchenaki)씨가 중국 을 방문했을 때 국가 중의학관리국에서 중의학의 세계문화 유산 등재에 관한 업무 보고를 듣고, 특별한 관심을 표명하 면서 몇 가지 귀중한 건의를 제기하기도 하였다.
‘세계문화유산 등재’ 작업은 2005년 11월 해남성에서 개 최된 중국 의약문화유산 학술연토회에 무니르 부시나키씨 등 유네스코의 관계 인물들에게 중의학의 세계문화유산 신 청과 관련한 문제를 깊이 있게 검토해 줄 것을 요청하였다.
중의학 문화유산을 세계문화유산으로 끌어올리기 위해 2006년 4월 다시 한 번 연토회를 개최하고 당시에도 유네스 코의 관계자를 초청하였다.
그 후 7단계 절차에 따라 등재 신청과 평가 과정을 거쳐 중의학의 유네스코 세계무형유산 등재를 시도하였다.
1단계 : 중화인민공화국 국가중의약관리국
① 중의약 영역 가운데 특히 세계적 가치가 있다고 생각 되는 문화와 자원에 대한 초보적인 목록 작성
② 세계문화유산으로 등재할 중의약 자원의 선출
③ 등재 요구에 근거하여 등재 신청서 및 등재표 작성 준비
2단계 : 중화인민공화국 문화부 대외문화 연락국
① 등재 신청서의 접수
② 등재표의 작성 상황 검사
3단계 : 유네스코 중국위원회
① 등재 신청서의 심사
② 세계문화유산으로 신청 4단계 : 세계유산센터
16) 鄭蓉, 庄乾竹. 中醫藥學申報世界非物質文化遺産的若干問題 探討 . 鄭蓉外主編. 中國醫藥文化遺産考論. 北京:中醫古籍 出版社. 2005. p.224.
17) 이민호, 안상우. 현대중국의 문화전략과 전통의학의 세계문화 유산 등재 움직임에 관한 고찰 . 대한한의학회지.
2008;29(4). pp.83-93.
신청서가 완비되었는지의 여부 검사(세계유산센터는 1992년 설립되어 유네스코에 예속되어 있다.)
5단계 : 국제 기념물유적협회(ICOMOS)와 국제자연보 전연맹(IUCN)
① 등재신청 자원의 소재지에 대한 전문가 고찰, 관리와 보호 상황에 대한 평가
② 기술 보고의 기초(평가서 작성)
③ 등재 신청한 자원이 ‘세계적 가치’를 지니고 있는지 평가
6단계 : 세계유산국(세계유산위원회 중의 7명으로 구성 된 하나의 작은 집행기관)
① 평가 결과의 검사
7단계 : 세계유산위원회(세계유산협정 회원국의 21명 대표로 구성)
① 등재 신청한 자원을 세계문화유산 목록에 가입시킬 것인가를 최종적으로 결정
중국 정부는 중의학은 세계무형유산으로 등재 신청하면 서 만약 중의학이 보호 목록에 등재된다면 중국정부는 중의 약 문화의 전승과 발전을 법으로 보호하겠다고 밝혔다. 보 호의 구체적 방법으로 입법을 통한 보호와 국가급 중의약박 물관의 건립, 전통중의 전승반의 개최 등을 제시했다. 하지 만 2009년 9월 중의학은 세계유산위원회 회의에서 세계무 형유산으로 등재되지 못하였다.
Ⅳ. 등재 실패, 그리고 그 후
중의학은 결과적으로 세계무형유산으로 등재되지 못하 였는데, 중의학 관계자들 중에는 심사 결과가 발표되기 이 전부터 그들 스스로도 등재에 약간의 의문을 품고 있는 것 으로 보인다. 그러한 사정은 중국 정협위원이자 남경중의약 대학 중의약문헌연구소 왕쉬뚱(王旭東) 소장의 다음과 같 은 우려 섞인 발언을 통해 짐작할 수 있다. 즉 그는 중국의 신청문에 본래부터 약간의 문제가 있는데, 아직 중의약 문 화정신이 유실되지 않은 상황에서 심사위원들이 ‘왜 보호해 야 하는가’에 대해 의문을 가질 수 있다고 말했다.18)
18) 이민호. 한의학의 세계무형유산 등재를 검토하자 . 한의신문 2009년 3월 23일.
2009년 7월, 東醫寶鑑이 세계기록유산으로 등재된 상 태에서 중의학이 세계무형유산에 등재되지 못하자 중의계 는 충격에 빠졌다. 그리고 세계시장에서 한의학에 주도권을 넘겨줄 수 있다는 위기감 속에 東醫寶鑑과 한의학에 대 한 폄훼를 시도하였다. 그 단적인 예로 중국 중의약관리국 소속 기관인 ‘중국중의약보사’에서 발행하고 있는 中國中醫 藥報 2009년 9월 30일자 장링옌(張凌燕) 기자가 쓴 기사 내용은 단순한 시기와 질투를 넘어 한의학을 중의학의 일부 로 간주하려는 ‘중의학공정’을 단적으로 보여준다.
동 기사에서 ‘한의는 중의의 分枝’에 지나지 않는다고 하 면서 중국의 전문 학자들은 “동의보감 90% 이상의 내용 이 중의 저작물에서 편집 수록한 것으로 창작물이 아니며,
‘한의학’의 精華를 총결한 저작이라고 한 것은 역사적 사실 을 무시한 것이고, 한사람의 조선인이 중의학을 학습한 이 후에 편찬한 中醫集成讀本으로 위치지울 수 있다.”고 주장 하였다. 또한 “중의와 한의는 근원(源)과 흐름(流)의 관계 이다.”라고 주장한 中醫藥文化硏究與傳播中心의 주임인 마오쟈링(毛嘉陵)의 “한의의 뿌리가 중의에 있다고 생각한 다. 한의와 중의는 본질상 구별이 없고, 의학의 관점에서 봤 을 때 의학이론, 임상진료방식 등 방면에서 양자는 기본적 으로 일치하고 있다.”는 견해를 제시하고 있다.
중의학자 중 일부는 아예 東醫寶鑑을 중의 저작으로 단정하고 있어 우려를 낳고 있다. 중국민족의약학회 회장 쥬궈뻔(諸國本)은 “東醫寶鑑은 주로 중의학 이론과 방약 의 기초 위에서 조선인민 자신의 의학지식과 작자 본인의 임상경험을 결합하여 형성한 고전 의학 저작이다.”고 하면 서 “중국의학사에서는 시종 東醫寶鑑을 중국 의학의 일 부분으로 다루었고, 이 책이 비록 창조적인 면이 있다고는 하지만 종합적으로 봤을 때 중의학의 기본적인 저작이다.”
고 하였다.
기사에서는 또 “東醫寶鑑과 같은 책은 중국에 수백 수 천 권이나 되며, 허준 같은 고명한 중의는 부지기수로 많 다.”고 하여 허준과 東醫寶鑑을 폄하하면서 東醫寶鑑
이 세계기록유산으로 등재에 성공할 수 있었던 주된 요인은
“세계가 중국문화와 중의에 대한 이해가 부족하고, 중의 전 적에 대해서는 더더욱 이해를 못했기 때문”이라고 하면서
“세계적으로 문화유산에 대해 관심이 있는 사람 중 절대다 수는 중국 언어를 알지 못하고, 중국과 한국의 역사와 문화 에 대한 이해에도 한계가 있으며, ‘중의’와 ‘한의’가 어떤 차 이가 있는지 구분할 방법이 없고, 東醫寶鑑의 내용의 유 래에 대해서는 더더욱 분별할 방법이 없다.”고 하였다.
중국이 이처럼 한의학과 동의보감의 위상을 깎아내리
는 목적은 너무도 자명하다. ‘중의학’을 무기로 세계 전통의 학시장 석권을 노리는 그들에게 東醫寶鑑을 브랜드로 한 한의학의 도전이 거세질 것이라는 위기감 때문일 것이다.
기사에서는 중의를 세계로 확대하고 세계가 중의를 이해할 수 있도록 하기 위해 뤄시원(羅希文)교수는 30여년의 노력 끝에 중의학 관련 서적 중 가장 저명한 10대 경전 전체를 영문으로 번역하였다고 한다.
그런데 그 중에는 황제내경(정화본), 본초강목(전 문), 천금방(정화본), 상한론(중영문대조 전문), 금궤 요략(중영문대조 전문), 상한론오백의안, 금궤요략삼 백의안 등 중의고전은 물론 우리의 동의보감(전문), 의 방유취(정화본)는 물론 일본의 의심방(정화본)이 포함 되어 있다는 데에 주목할 필요가 있다. 동아시아 전체의 전 통의학을 중의학의 범주에 포섭하려는 그들의 의도를 다시 한 번 읽을 수 있는 부분이라 할 수 있다.
Ⅴ. 결론
근대 이후 중의학은 다른 중국의 전통문화와 마찬가지로 중국 지식인들에게는 비판의 대상이 되기도 했으며, 다른 한편 서양의학을 보조하는 수단으로 인식되기도 했다. 그러 다가 1970년대 후반 개혁․개방과 현대화를 추진하면서 이 에 대한 재해석이 시작되었고, 21세기에 들어와서는 보호하 고 반드시 후대에까지 전승해야할 문화유산으로 중요시하 고 있다. 그들이 등재하고자 하는 중의학의 범위 속에는 단 순한 ‘조의학’을 포함한 중국의 소수민족의학이 포함되어 있었던 사실을 주목해야 한다.
그들이 중의학을 세계문화유산으로 등재시키고자 한 이 유는 다음 몇 가지 측면에서 생각해볼 수 있다. 첫째 자신들 문화의 우수성을 세계에 알리고 국제적으로 공인받고자 하 는 생각에서이다. 둘째, 다음 중의학을 세계문화유산으로 등재하면 지적재산권 보호에 유리하다고 인식하였다. 셋째, 동아시아에서 전통의학의 주도권을 다른 국가 특히 한국에 넘겨준다면 그 영향이 후세에까지 미친다고 판단하고 있다.
정부차원에서 중의학을 세계문화유산으로 등재시키고자 하는 노력은 실패하였지만 이러한 상황에서 우리도 한의학 의 정통성을 확보할 수 있는 방안들을 적극적으로 검토하고 연구하는 노력이 필요하다고 생각한다. 그러한 점에서 지난 해에 한국한의학연구원 동의보감사업단에서 東醫寶鑑을 UNESCO 세계기록문화유산으로 등재시킨 것은 높은 평 가를 받을만하다.
아울러 우리 전통의학을 세계에 알리는 작업도 매우 중 요하다. 이를 위해 동의보감 등 우리의 전통의학 관련 서 적을 영어로 번역하고 세계인이 공유할 수 있는 한의학 관 련 도서들을 개발하는 작업 등도 함께 진행되어야 할 것이 다. 또한 시기적으로 늦은 감이 없지 않지만 지금부터라도 우리 역시 한의학을 세계유산으로 등재시킬 수 있는 방안을 마련해야 한다고 생각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