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나라는 1997년 IMF 구제금융 이후부터 정부주도하에 소위 법제도적 기업지배구 조 개선작업을 단행하고 있다. 그러나 우리나라의 기업지배구조 개선작업은 외국과는 달리 자본시장육성보다는 투자자보호를 우선 과제로 삼고, 이를 실현하기 위해 기업의 자율성을 인정하는 임의규정보다는 강행규정을 중심으로, 경영투명성 제고와 소수주주 보호 강화에 중점을 두고 법 개정이 이루어졌다는 비판을 받고 있다.
2013년 3월 법무부는 지배주주의 부당한 사익추구행위를 견제하고, 소액주주의 이익 을 보호하며 경영 투명성을 높여 기업의 경쟁력을 제고하기 위하여 “기업지배구조 상 법개정위원회”를 발족시켰고, 동 위원회는 최근 이사회 감독 기능 정상화·독립적 사외 이사 제도 구축, 다중대표소송 단계적 도입, 집중투표제 간접적 의무화, 전자투표제 단 계적 의무화 등을 주요 내용으로 하는 상법개정안을 7월에 입법예고하였다. 지난 대선 과정에서 소수주주 등이 독립적으로 사외이사를 선임할 수 있는 시스템 구축, 공적 연 기금의 의결권 행사 강화, 집중투표제 의무화 등 기업지배구조개선 공약을 내건 바 있 으며, 그 산물의 일환이 이번 개정안이다.
집중투표제를 의무화하고 있는 국가는 러시아, 멕시코, 칠레 뿐
집중투표제(cumulative voting)는 소수주주의 이익을 대표할 수 있는 이사의 선임이 가능하도록 하기 위하여 2인 이상 이사의 선임 시 의결권 있는 발행주식 총 수의 100 분의 3 이상의 주식을 보유한 주주의 청구가 있는 경우, 1주마다 선임할 이사의 수만 큼의 표(의결권)를 갖도록 하여 이를 이사후보자 1인에게 집중하거나 후보자들에게 분 산하여 이사를 선임하는 방법을 말한다(상법 제382조의2). 집중투표제는 소수자에 대 한 대표선출권부여라는 정치적 이념을 바탕으로 한 것으로, 시작은 하원의원을 선임하 기 위한 것이었다. 1870년 일리노이(Illinois)주는 주하원의원을 선임하기 위한 투표방 식으로써 집중투표제를 도입하였고, 모든 기업에 집중투표를 강제하는 조항을 두었다.
집중투표의 실시유형에는 이를 강제하는 방식과 강제하지 않고 허용하는 방식이 있 으며, 후자는 집중투표제를 원칙으로 인정하지 않되 정관에 의하여 도입할 수 있도록
집중투표의무화는 재고되어야 한다
박수영 전북대학교 법학전문대학원 교수
2013-08-23
하는 opt-in 방식과 정관에 아무런 언급이 없으면 집중투표제를 실시하는 것이고, 이 를 배제하기 위하여는 정관에 규정을 두어야 하는 opt-out 방식으로 나뉜다. 우리 상 법은 집중투표제를 도입할 당시부터 ‘opt-out 방식’으로 설계되었고, 이에 많은 기업들 이 정관변경을 통하여 집중투표제를 미리 배제하여 그 제도의 활용성이 떨어진다는 비 판이 제기되었다. 이에 집중투표제를 활성화하기 위하여 강행규정화하고 의무화하자는 논의가 2000년과 2003년에 있었고, 2004년에는 공정거래위원회가 사외이사제와 집중 투표제 등 내부통제장치를 갖춘 기업에 대해 부당내부거래 직권조사를 3년 간 면제하 는 내용의 ‘직권조사면제기준’을 발표하기도 하였다.
2013년 4월 현재 정관규정으로서 집중투표를 배제하고 있는 상장기업의 수는 722개 사(외국회사 5개사 제외) 중 665개사로서 상장기업 전체의 92.1%에 달하고 있으며, 집중투표제를 의무화하고 있는 것은 러시아, 멕시코, 칠레 3개국뿐이며, 유럽에서는 이 사선임에 있어 집중투표제가 존재하지 않는다.
집중투표 실시여부는 기업의 자율에 맡기는 것이 좋아,
의무화 보다는 현행제도의 범위 안에서 효율적인 운용방안 모색이 필요
개정안은 상장회사의 경우, 그 특례규정인 제542조의7 제3항과 제4항에서 규정하고 있는 집중투표를 배제할 수 있는 방법을 삭제하여 집중투표를 실시하기 위한 전제조건 인 “정관상 집중투표 배제규정이 없을 것(opt-out 방식)”이라는 요건을 차단하여, 소 수주주가 소수주주권행사를 위한 지분율 요건을 갖추고 행사할 경우 회사가 이를 채택 하도록 간접적으로 의무화하는 내용을 담고 있다. 또한 집중투표청구를 위한 소수주주 권 지분비율을 현행 자산총액 2조원 이상의 상장회사의 경우 의결권 없는 주식을 제외 한 발행주식총수의 100분의 1 이상 (1%) 인 것을, 자산총액 2조원 미만의 상장회사의 경우 1천분의 10 (1%), 자산총액 2조원 이상의 상장회사는 1천분의 5 (0.5%) 이상으 로 하향시키는 내용이다.
이와 함께 개정안은 이사와 감사위원회위원의 일괄선출방식(상법 제542조의12 제2 항)을 개정하여 분리선출방식을 도입하는 내용을 담고 있다. 분리선출방식은 주주총회 에서 이사를 선임하는 단계부터 감사위원회위원을 분리하여 선출하므로 감사위원회위 원 후보에 대하여서는 3% 의결권제한규정을 적용할 수 있어, 선임단계에서 지배주주 로부터 감사위원회위원의 독립성을 확보할 수 있다고 보고 있다. 그러나 집중투표제를 의무화하면서 동시에 감사위원회위원의 분리선출이 강제될 경우 감사위원회위원을 선 임하는 때에는 의결권 제한 규정으로 최대주주의 권한 행사가 제한되고, 감사위원회위 원이 아닌 이사를 선임하는 때에는 집중투표제가 활용되면 이사회를 구성함에 있어 최 대주주의 권한이 약해지게 되며, 주주권 등의 재산권 침해로 이어질 수 있다.
2013년 3월 대한상공회의소의 주주총회 관련 기업애로 실태조사 결과에 따르면 98.1%가 집중투표제의 의무화보다는 현재처럼 기업 자율로 도입 여부를 결정해야 한 다고 답하였다. 이는 집중투표의 실시여부를 기업의 자율에 맡겨달라는 것이다. 집중투 표제는 긍정적인 면과 부정적인 면을 동시에 가지고 있으며, 각 기업이 처한 상황에 따라 추구하는 방향이 있을 것이므로 집중투표제를 실시할 것인지의 여부는 기업의 자 율에 맡기는 것이 좋다. 집중투표제도가 의무화되면 우선적으로 외국의 투기펀드들에 의하여 우리 기업들이 많은 피해를 볼 것이다. 따라서 집중투표제도의 의무화보다는 현행제도의 범위 안에서 효율적인 운용방안을 모색하는 것이 필요하다고 본다. 인위적 인 이사회규모의 조정이나 시차임기제를 통하여 집중투표제도의 효용을 감소시키는 방 안에 대한 개선이 요구되며, 기관투자가를 포함한 소수주주의 활발한 의결권행사를 촉 진하는 방안도 적극적으로 고려하여야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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