UN의 한국문제 기여와 북한 위기상황 시 UN의 참여
노동영*
1)Ⅰ. 서론
Ⅱ. 한국문제와 UN
Ⅲ. 북한 위기상황 시 휴전협정과 UN
Ⅳ. 북한 위기상황 시 UN의 참여
Ⅴ. 결론
Abstract
UN’s Contribution to the Korean Question and Its Participation in Crisis Situations of North Korea
From its beginning as a country with sovereignty since the independence from Japan together with the establishment of UN, South Korea has been involved in an inseparable relationship with UN. This article was intended to discuss UN’s con- tribution to the Korean Question in the past and its potential contribution to uni- fication during the course of its preparation. This is because UN’s roles that have contributed to the Korean Question are still valid and necessary to promote peace and unification of the Korean Peninsula aimed at‘One Korea’. In general, efforts to prepare for ‘contingency’in North Korea and lead such changes to unification are es- pecially important but it should be carefully reviewed the current Armistice Agreement’s effect during the crisis situations of North Korea and the replacement by a new peace agreement. Since the Korean Question is not only domestic but also in- ternational matters, it should be noted that we need to expect UN’s participation in the crisis situations of North Korea while preparing for fully secured territorial su- premacy and right of self-determination of ours.
Key Words : Korean Question, Crisis Situations, United Nations, Security Council, Armistice Agreement, Peace Agreement, Humanitarian Intervention, Right of Self-Defense, Right of Self-Determination
* 충북대학교 법률지원실 변호사, 법학 박사과정 수료, [email protected]
Ⅰ. 서론
1945년 12월부터 시작된 美・英・蘇 모스크바 외상회의에서 전후 처리의 하나 로 한국에 대한 임시민주정부 수립과 연합국의 신탁통치의 구체적 실시방안이 다루어졌는데, 美는 UN의 감시하에 인구비례에 따른 남북한의 총선거를 실시하 고 이에 따라 선출된 대의원들이 전국적인 임시의회를 구성할 것과, 수립된 임시 정부가 美・英・中・蘇 4대국과 완전한 독립 및 美・蘇 점령군 철수에 관한 구체적 사항을 토의할 것을 제안하였다. 英・中의 동의에도 불구하고 蘇가 거부함에 따 라, 1947년 9월 17일 美가 ‘한국문제(Korean Question)’를 UN총회 의제로 상정 시킴으로써 한국문제는 마침내 UN의 무대로 옮겨지게 되었다(이한기, 1976, pp.
181-182).
이렇게 ‘한국문제’는 일본으로부터 독립에 이은 전후 처리, 남북분단에 따른 하나의 민주정부 수립, 한국전쟁과 휴전, UN의 동시가입, 북한문제를 넓은 의미 의 한국문제로 본다면 북한의 인권문제와 핵문제 등 UN에서 논의되었거나 논의 되고 있는 문제를 말하며, UN과는 불가분의 관계이다. 한국이 광복 후 정상적인 국가로 출발하려는 순간부터 UN의 창설과 함께 UN과는 뗄 수 없는 관계가 되었 다는 것이다.1) 한반도의 분단 원인이 냉전구도에 따른 외세의 개입이었지만 UN 의 지원하에 자유민주주의국가로 발돋움하였고 동시에 UN 역시 한국문제의 처 리를 통해 국제평화와 안전 유지라는 본연의 기능을 발휘하고 국제법을 발전시 켰다고 볼 수 있다. 본고는 한국문제에 있어서 또 앞으로 통일을 대비하는 과정 에서 UN의 기여를 논하고자 한다. 과거 한국문제에 기여한 UN의 역할이 ‘하나 의 한국(One Korea)’을 위해 한반도의 평화와 통일을 조성함에 있어서 여전히 유효하고 반드시 필요하다고 보기 때문이다.
보통 북한의 ‘급변사태’로 논의되는 한반도의 위기상황에 대비하여 이를 통일
1) 현재 UN이 창설된 1945년의 10월 24일을 각종 기념일 등에 관한 규정에 의해 국제연합일로 법정 기념하고 있다. 동 규정은 ‘국제연합 창립과 한국동란 중 국제연합군이 참전한 뜻을 기념하 는 행사를 한다’고 명시한다. 또한 부산에 UN의 유일한 공식묘지인 UN기념공원이 있다.
로 연결시키려는 노력이 매우 중요한데, 이 때 반드시 검토되어야 할 것이 북한 위기상황 시 현 휴전협정의 효력 여부와 이에 따라 휴전협정을 평화협정으로 대체하는 문제이다. 북한 정권이 소멸했다고 볼 수 있는 수준의 위기상황이라면 휴전협정이 종료되는가 하는 문제가 제기될 수 있고 UN을 휴전협정 및 차후 평화협정의 당사자로 볼 수 있다면 UN의 역할에 관한 검토가 필요할 것이다.
한편, 북한 위기상황 시 대한민국의 관할권 행사 및 주변국의 개입 논리를 분 석한 연구가 선행되어 있지만, 본고에서는 그 중에도 한국문제 및 통일문제가 국내문제인 동시에 국제문제라는 점에서 국제사회의 광범위한 지지를 이끌어낼 수 있기 위해서는 국제법적 정당성이 부여되는 UN의 참여가 현실적이므로, 북 한 위기상황에서 우리로서는 UN의 참여를 예정하면서 헌법 등에 의한 영토고권 및 민족자결권이 충분히 고려될 수 있도록 준비하는 것이 필요하다는 것을 강조 하고자 한다.
Ⅱ. 한국문제와 UN
1. 한국문제의 개념
위에서 한국문제의 개념을 간략히 살펴본 바 있는데, ‘한국문제’를 ‘Korean Question’으로 표기하는 것은 광복과 남북분단, 남과 북의 각각 정부수립 과정을 거쳐서 남과 북이 대치하고 1991년 동시에 UN에 가입하는 동안 UN총회에서 토의되었던 주제가 ‘Korean Question’이었기 때문이다. 남과 북 상호 간 전개되 어 온 모든 관계는 바로 한국문제와 관련된다(김부찬, 2015, p. 52).
‘북한문제(North Korea Problem)’는 최근 북한 내부나 북한과 관련하여 야기되 는 문제로서 널리 한국문제와 관련되며, 한반도 평화 및 남북통일과 관련하여 논의될 수 있다. 즉 북한문제는 우리에게는 통일문제로써, 국제사회에는 평화문 제로써 국제문제의 성격을 띠고 있다. 북한문제는 대한민국의 정부수립, 한국전
쟁 및 휴전협정, 핵문제를 포함한 북한의 군사적 도발, 북한주민의 인권침해문제 에 이르기까지 단순히 내부문제(Domestic Matters)가 아니라 국제문제 (International Matters)2)이다. UN은 국제사회의 평화와 안전의 유지를 주된 목적 으로 하여 창설되었고, 북한문제는 모두 국제사회의 평화와 안전의 유지에 직결 되므로 넓은 의미에서 한국문제로서 북한문제는 UN을 중심으로 국제사회가 해 결해야 한다. 특히 인권문제는 국가안보의 범위를 넘어 ‘인간안보’ 차원에서 논 의되고 있으며 결국 평화와 관련한 문제가 된다(김부찬, 2015, pp. 50-51).
한국문제 내지 북한문제를 논의하는 것은 결국 한반도 통일을 고려하기 때문 일 것이다. 본고에서는 현재의 한반도 안보상황을 규율하는 직접적 계기가 된 한국전쟁 및 휴전협정을 중심으로 UN의 한국문제 처리를 먼저 검토한 후 북한 의 급변사태를 포함한 위기상황 시 휴전협정의 존속 여부와 차후 평화협정 체결 의 경우에 UN이 당사자로서 한반도에 기여하게 될 측면에서 분석의 범위를 한 정할 것이다. UN의 참여를 북한 위기상황을 중심으로 논의하는 것은 지금과 같 은 사실상 평화에 가까운 시기에 남북한이 통일 논의를 하는 경우 UN의 비중이 적다고 보기 때문이다. 이어서 그러한 UN은 한반도 통일과정에서 국제법의 이 름으로 국제사회의 강력한 지지세력이 될 것이고, UN이 대한민국 주도의 자결 권 행사를 뒷받침할 수 있도록 우리는 철저히 준비해야 한다는 것으로 결론에 이르고자 한다.
2) 평화와 안전에 대한 파괴 내지 위협에 대한 국제사회의 노력과 관련하여 한국문제와 유사하게 국제문제가 되었거나 되고 있는 것이 ‘독일문제(German Question)’와 ‘중국문제(Chinese Problem)’
이다. 여기에는 모두 역외국가이지만 가장 중요한 행위자인 미국이 관여하여 전개되었거나 전개 되고 있다. 1871년 프로이센-프랑스 전쟁에서 승리하면서 오토 폰 비스마르크에 의해 등장한 독 일제국이 유럽대륙의 평화를 교란하기 시작한 이후, 1989년 11월 9일 베를린장벽의 갑작스런 붕괴 후 1990년 10월 3일 독일이 통일되면서 독일문제가 다시 등장하였지만 단일화폐를 도입하 기로 하는 유럽통합의 틀 안에서의 통일을 이룩하였기에 독일문제는 해결되었다. 한편, 14억의 인구에 육박하고 2018년이면 국내총생산(GDP)에서 미국을 제치고 세계 최대의 경제대국이 될 중국을 어떤 국제체제가 제어할 수 있는가를 중국문제로 정의할 수 있겠다(안병억, 2013, pp.
91-97).
2. 한반도 유일합법정부론
헌법학계에서 헌법 제3조의 영토조항과 제4조의 평화통일조항이 규범충돌인 가, 아니면 규범조화적 해석이 가능한 것인가 관련하여 논의되는 이론 중 하나로 한반도 유일합법정부론이 제시되고 있다. 헌법 제3조에 따라 북한지역도 대한민 국 영토의 일부로서 대한민국의 주권이 북한지역에도 미치고 대한민국만이 한 반도의 유일한 합법정부이며 북한지역은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이라는 불법 적인 반국가단체가 지배하고 있는 미수복지역이라고 한다(미수복지역론 또는 실지회복론, 제성호, 2004, p. 185).
1947년 11월 14일 UN총회 결의 제112호3)에 의해 파견된 UN한국임시위원단 의 감시로 실시된 1948년 5월 30일 총선거를 근거로 국회가 구성되고 헌법이 제정되면서 8월 15일 정부가 수립되었는데, 대한민국은 1948년 12월 12일 UN총 회 결의 제195호4)에 의해 승인된 ‘한반도에서 유일한 합법정부(the only legitimate government in korea)’였다. 한반도 이북지역에서는 UN한국임시위원 단의 입국이 거부된 채 소련 지원하 김일성 정권이 수립되었다.
국내에서는 대한민국이 한반도 유일합법정부로 승인받았다는 것을 북한이 이 북지역을 점거하는 불법의 반국가단체로 이해하기도 하지만, UN의 인식은 UN 이 개입한 민주선거에 의하지 않은 북한정권을 승인할 수 없었다는 것으로 보는 것이 정확할 것이다(이상면, 2007, p. 237). 미국의 요청에 따른 안보리 긴급소집 결과 북한의 남침 당일 안보리 결의 제82호5)에서 북한에 대해서는 정부가 아닌 북한 또는 ‘북한당국(the authorities of North Korea)’이라는 표현이 사용되었다 (이영진・노동영, 2015, p. 3).
3) UN General Assembly A/Res/112(Ⅱ), “The problem of the independence of Korea”
4) UN General Assembly A/Res/195(Ⅲ),“The problem of the independence of Korea”
5) UN Security Counsil A/Res/82(1950),“Complaint of aggression upon the Republic of Korea”
3. 한국전쟁
6)과 UN군사행동
가. 소련의 불참과 안보리 결의
1949년 10월 중국대륙이 공산당 정부에 의해 장악됨에 따라 소련은 중국의 대표권이 국민당 정부에 의해 행사되는 것은 불법이라면서 1950년 1월 17일자 제462차 회의부터 안보리에 무기한 불참하고 있었다(정인섭, 2015, p. 90). 소련 의 안보리 불참 중에 한국전쟁이 일어났고, 3개의 안보리 결의가 채택되었다(이 영진・노동영, 2015, p. 5).
첫째, 북한의 남침 당일 미국은 안보리의 긴급소집을 요청하고 안보리가 당일 14시에 개최되었다. 1950년 6월 25일 안보리 결의 제82호에서 한국의 합법정부 가 북한군의 무력공격을 받았음을 비난하고 이러한 무력공격은 평화를 파괴시 킨다며 북한당국(the authorities of North Korea)에 즉시 군대를 철수하도록 요구 하는 안이 채택되었다.
둘째, 1950년 6월 27일 안보리 결의 제83호7)에서 모든 회원국들에게 침략자를 격퇴하고 한반도의 평화를 회복할 수 있도록 모든 필요한 원조를 한국정부에 제공하도록 권고하였다.
셋째, 1950년 7월 7일 안보리 결의 제84호8)에서 회원국들은 미국이 지휘하는 통합사령부에 군대를 보낼 것, 미국이 군사령관을 임명할 것, 참전 회원국들은 작전 중 자국기와 함께 UN기를 사용할 수 있다는 것, 미국은 작전수행에 관한 보고서를 안보리에 제출할 것이 채택되었다.
ICJ는 상임이사국의 기권이 안보리의 결의에 영향을 주지 않고, 이것이 UN회 원국에 의해 일반적으로 받아들여져 왔다고 권고한 바 있다.9) 상임이사국의 불
6) 한반도 이북지역을 불법점거하는 반란단체에 의해 남침되었다는 점에서 6・25사변, 6・25동란 등 으로도 사용되고 있으나, 내란에 그치지 않고 국제전으로 확대되었다는 점에서 국방부와 국사편 찬위원회 등에서 공식 사용되는 한국전쟁 또는 6・25전쟁이라는 명칭을 사용하기로 한다. 국제적 으로도 대체로 한국전쟁(Korean War)으로 불리는 것으로 보여진다.
7) UN Security Counsil S/Res/83(1950),“Complaint of aggression upon the Republic of Korea”
8) UN Security Counsil S/Res/84(1950),“Complaint of aggression upon the Republic of Korea”
9) Legal Consequences for States of the Continued Presence of South Africa in Namibia
참과 기권은 표결에 영향을 주지 않는다는 것이 확립된 관행이다(이한기, 1998, p. 699). UN헌장 제27조 3항에 따르면, 절차사항 외 모든 사항은 상임이사국의 동의투표를 포함한 9개 이사국의 찬성투표에 의하므로 결의를 부결시키기 위해 서는 반대투표를 해야 하는 것이고, 반대투표를 통해 결의를 부결시킬 수 있음에 도 불참이나 기권은 상임이사국의 거부권이라는 특권을 포기한 것이며, 결의의 성립을 방해하려는 목적은 아닌 것으로 보는 것이 합리적이다(정인섭, 2015, p.
95). 이것은 국제평화와 안전에 관한 1차적 책임을 지는 안보리의 기능 마비에 대처하고 UN헌장의 목적에 부합하는 것이기도 하다.
나. UN군사행동의 근거와 성격
1) 집단적 자위권 행사로 보는 견해
집단적 자위권 행사로 보는 견해에는, 안보리의 권고는 법적 구속력이 없으므 로 한국에 파병된 유엔군은 유엔의 보조기관이 아니며, UN의 지휘감독을 받지 않고 미국의 통제에 있었으므로 헌장 제51조의 집단적 자위권에 의거 한국의 요청과 우방국의 승낙으로 자위권이 행사된 한국군 지원 통합군대라고 보는 견 해(신용호, 1999, p. 316), 헌장 제51조의 집단적 자위권에 기초하여 헌장 제2조 6항에 따라 비회원국인 한국에 집단적 자위권 행사를 확장 적용한 것이라는 견 해(이상면, 2007, p. 237; Michael Akehurst, 1987, pp. 223-224; James. L. Brierly, 1963, p. 394), 헌장 제42조의 강제조치가 아니라 제40조의 군사적 잠정조치가 권고된 회원국의 자발적인 집합적 지원군이라는 견해(김정균, 1985, p. 110) 등 이 있다. 또한 헌장 제43조의 병력 제공을 위한 특별협정 및 헌장 제47조의 군사 참모위원회가 없었으므로 헌장 7장의 강제조치가 아닌, 집단적 자위권 행사로 보기도 한다.
notwithstanding Security Council Resolution 276(1970)(Advisory Opinion), 1971 ICJ Reports 16.
2) 군사적 강제조치로 보는 견해
군사적 강제조치로 보는 견해에는, UN의 개입이 있는 이상 넓은 의미에서 유 엔군이라고 보는 견해(이한기, 1997, p. 699), 엄연히 안보리 결의에 의한 헌장 7장상의 조치였다는 견해(제성호, 2010, p. 36; Georg Schwarzenberger, 1967, p.
297; Rosalyn Higgins, 1969-1981, p. 178), 헌장 제7조 2항에 따른 UN의 보조기 관 및 제29조에 따른 안보리의 보조기관으로서 안보리 결의 제83호에 따라 회원 국들이 제공한 군대로 안보리 결의 제84호에 따른 미국 통제 하에 통합사령부를 구성하여 강제조치인 군사행동을 수행한 것이라는 견해(유병화・박노형・박기갑, 2000, p. 717), 참전국들이 UN의 공식요청에 의하였고 UN기를 사용하며 공식적 으로도 UN군으로 호칭되었기 때문에 참전병력이 UN과 무관한 자발적 행동이 라는 해석은 비현실적이라면서 헌장 제43조가 예정한 체제가 아니더라도 국제 평화와 안전에 군사적으로 대응하는 최초의 선례였다는 점에서 헌장이 예정하 지 않은 UN군이라는 견해(정인섭, 2015, pp. 108-111) 등이 있다.
3) 소결
앞서 언급한 안보리 결의 제82호 및 제83호는 북한의 남침을 평화의 파괴로 확인하고 북한군 철수 및 대한민국에 필요한 원조를 제공하도록 잠정조치를 회 원국에 권고하였다는 점에서 헌장 제39조 및 제40조와 부합한다. 안보리 결의 제84호는 헌장 제7조 2항 및 제29조의 UN 보조기관으로서 미국을 주관으로 하 는 통합군사령부를 구성하고 UN의 대리기관이 되어 북한군과 교전하도록 한 것이다. 또한 UN 비회원국인 경우에도 UN의 국제평화와 안전을 유지하도록 하 는 원칙과 행동이 적용된다는 헌장 제2조 6항과, 제39조 및 제40조에 기초하고 국제평화와 안전의 유지 또는 회복에 필요한 안보리의 강제조치를 정한 헌장 제42조에 근거한 군사적 강제조치를 채택한 것이다. 헌장 제51조에서는 안보리 가 국제평화와 안전을 유지하기 위해 필요한 조치를 취할 때까지 집단적 자위권 을 침해하지 아니한다고 규정하여 그 필요한 조치와 집단적 자위권10)을 명백히
구별하고 있다.
따라서 유엔군은 안보리 결의에 따라 UN의 보조기관으로 설치되고 UN의 대 리기관으로서 북한 및 중공과 교전한 것이며, 당시 헌장의 효용성 및 소련의 비 협조 측면에서 헌장이 규정한 완전한 군사적 강제조치 실행이 불가능하였으므 로 불완전하나마 헌장 7장의 군사적 강제조치를 최초로 실현한 사례로 보아야 한다(이영진・노동영, 2015, p. 7).
다. 평화를 위한 단결 결의
1950년 11월 3일 UN총회 결의 제377호11)에서 평화를 위한 단결 결의가 채택 되었는데, 이는 당시 소련이 1950년 8월부터 안보리 의장국 역할을 수행하기 위해 복귀하였으나 거부권 행사로 안보리 기능이 마비된 것에 연유한다. 따라서 미국 국무장관인 Acheson의 제안에 따라 헌장 7장의 집단안전보장제도를 수행 할 수 있도록 구체적 시행조치를 취하도록 하고, 안보리가 임무를 수행하지 못하 는 경우 총회의 국제평화유지의무가 배제되는 것은 아니며 필요한 권고를 회원 국들에게 할 수 있도록 채택된 것이었다.
이는 헌장 제24조 1항이 국제평화와 안전의 유지의무를 안보리에 주된 책임으 로 규정하였으나 배타적 책임을 규정한 것은 아니며(유병화・박노형・박기갑, 2000, p. 716),12) UN총회의 임무 및 권한에 관한 헌장 제10조, 제11조, 제12조를 유기적으로 해석할 때 총회는 헌장상 어떠한 문제도 토의할 수 있고, 특히 안보 리가 임무를 수행하지 못하는 동안에 국제평화와 안전의 유지를 위해 총회가 어떠한 문제도 권고할 수 있기 때문이다. 평화를 위한 단결 결의가 가지는 국제
10) 맥아더 장군의 요청에 따른 미국 트루먼 대통령의 지시로 스미스부대(미 제24사단 21연대 1대대 일부)가 1950년 7월 1일 최초 한반도에 투입되고 동년 7월 7일 안보리 결의 제84호에 근거한 유엔군사령부가 7월 25일 설치되기 전까지 미군의 파병은 집단적 자위권의 행사가 될 것이다.
11) UN General Assembly A/Res/377(Ⅴ),“Uniting for peace”
12) 국제사법재판소(ICJ)에서도 UN의 실행은 지지되었는데, 헌장 제11조 2항에 따라 총회가 반드시 안보리로 회부해야 하는 사항은 안보리의 영역에 속하는 7장의 강제조치를 의미한다고 권고하 였다. Certain Expenses of the United Nations(Advisory Opinion), 1962 ICJ Reports 151.
법적인 중요성은 안보리와 함께 UN의 양대 기관인 총회가 헌장의 명확한 해석 을 통해 국제평화와 안전 유지에 있어 강제조치를 회원국에게 권고할 수 있다고 봄으로써 그 책임과 임무를 확인하였다는 것이다(정인섭, 2015, pp. 107-108).
이 역시 국제평화와 안전에 관한 1차적 책임을 지는 안보리의 기능 마비에 대처 하고 UN헌장의 목적에 부합하는 것이기도 하다.
Ⅲ. 북한 위기상황 시 휴전협정과 UN
1. 북한 위기상황과 휴전협정의 효력
가. 북한 위기상황 또는 급변사태
지금까지의 북한 위기상황13) 또는 급변사태(Contingency, Sudden Change) 논 의들을 정리하면, 북한에서 최고 지도자의 사망이나 내란과 같은 갑작스런 사태
13) 본고를 쓰면서 참고하게 된 주요 논문들을 살피면 북한의 ‘급변사태’라는 용어가 다수를 차지하 고 있다. 박휘락. (2014). “북한 급변사태 논의의 현실성 분석과 과제: 부작용의 인식과 최소화.”
통일정책연구, 제23권 제1호. 통일연구원; 김열수. (2012). “북한 급변사태시 중국의 군사개입:
목적・양상・형태를 중심으로.” 신아세아, 제19권 제2호. 신아시아연구소; 신범철. (2008). “안보 적 관점에서 본 북한 급변사태의 법적 문제.” 서울국제법연구, 제15권 제1호. 서울국제법연구 원; 제성호. (2013). “북한 급변사태 시 한국의 국제법적 대응.” 중앙법학, 제15집 제1호. 중앙 법학회; 김병기. (2010). “북한 급변사태 시 대한민국의 관할권 주장을 위한 법정책적 대응방안 과 법적 근거.” 중앙법학, 제12집 제4호. 중앙법학회; 홍성필. (2012). “북한급변시 개입의 국제 법적 정당성 연구-한국의 경우를 중심으로.” 서울국제법연구, 제19권 제1호. 서울국제법연구 원; 김명기. (1997). “북한 급변사태시 한국의 개입에 따른 법적 문제.” 「한반도 급변사태와 국제 법」. 민족통일연구원. p. 44; ‘유사시’ 라는 용어도 쓰이는데, 정대진. (2014). “한반도 유사시 북한지역 개입문제-판단기준과 국제법적 쟁점-.” 국제법 학회논총, 제59권 제3호. 대한국제법 학회; 위기상황과 급변사태를 혼용하고 있는 논문으로는 이근관. (2011). “북한위기상황시 주변 국의 개입가능성과 그 국제법적 논리에 대한 검토.” 서울국제법연구, 제18권 제2호. 서울국제 법연구원; 신범철. (2011). “우리나라 주도의 개입논리와 대량탈북사태 관련 국제법적 검토.” 서 울국제법연구, 제18권 제2호. 서울국제법연구원; 위기상황이라는 표현이 급변사태보다 어의적 으로 더 넓은 표현으로 볼 수 있지만, 내부통제가 가능한 불안정사태는 특별히 논의의 실익이 없고 북한에 외부개입이 필요한 경우(쿠데타나 전국적인 소요사태, 내전, 대량살상무기 유출, 대규모 인권침해사태나 대량탈북사태, 대규모 자연재해 등)를 더 유연하게 고려할 수 있다는 점에서 ‘위기상황’이라는 표현을 쓰기로 한다.
가 발생하면 북한의 내부 정세가 급격하게 불안정해지고 한국이 개입하여 사태 를 안정시킨 후 통일로 연결시킨다는 것이다. 북한의 위기상황 논의는 1990년대 초반 독일 통일과 소련 및 동유럽에서 급격한 변화가 발생한 것이 계기가 되었 고, 1994년 7월과 2011년 12월 각 김일성과 김정일이 사망한 후 또는 이들의 건강 악화에 따라 권력 공백이 생기면서 북한 정권이 붕괴되고 무정부상태에 이르게 되면 외부의 개입이 필요하다는 가정에서 연구되기 시작하였다(Bruce W. Bennet, 2013, p. 5).14) UN 등록조약 중‘Contingency’를 다루는 다자조약은 없고 몇 개의 양자조약이 있을 뿐이다. 용어 사용에 있어서는 정치적 개념에서 유래한 것이고, 국제법상 명확히 정의된 것도 아니어서 연구자의 편의에 따라 혼용되고 있다고 볼 수 있다(정대진, 2014, pp. 197-200).
북한의 위기상황에 관한 국내외의 많은 논의에도 불구하고 불편한 진실은 위 기상황 자체가 발생할 가능성이 낮고 급변사태가 발생했다 하더라도 한국이 군 사적으로 개입할 수 있는 근거가 충분치 않다는 것, 또 군사적 개입을 위한 충분 한 군사력의 확보나 이동이 현실적으로 쉽지 않고 한국이 개입하여 북한을 안정 화시켰다고 하여 자동으로 통일이 이행되는 것도 아니며, 급변사태를 논의하는 것 자체가 남북관계를 적대적으로 만들어 통일을 어렵게 만들 수 있다는 것이다 (박휘락, 2014, pp. 55-56). 북한 위기상황에 대한 접근과 대비는 조기 통일국면 으로 승화할 수 있어야 한다는 당위하에서만 궁극적 의의를 가지며(김병기, 2010, p. 200), UN의 참여와 함께 한국의 관할권을 확대하는데 기여할 국제법적 논리를 개발하는 것이 우리 헌법과 남북기본합의서의 정신에 부합하는 것이다.
나. 북한 위기상황에 따른 휴전협정의 종료 여부
북한의 위기상황이 휴전협정의 효력에 어떠한 영향을 미치는가, 영향을 미친 다면 휴전협정을 평화협정으로 대체해야 하는 것 아닌가 하는 문제와 관련하여
14) Contingency는 체제붕괴(resime collapse)로는 부족하고 북한이 무정부상태에 빠진 정부붕괴 (government collapse)여야 한다고 보고 있다.
이를 언급하는 논의는 거의 없다고 볼 수 있는데, 북한의 위기상황을 통일과 연 계시키기 위한 대외적 과제로 북한 신정부와의 통일헌법에 대한 협의 이전에 휴전협정의 평화협정으로의 대체 작업이 반드시 선행되어야 한다는 견해가 있 다(김병기, 2010, p. 208). 한편, 북한의 위기상황에 한국이 개입하게 되어 북한을 흡수하게 되는 경우, 휴전협정의 서명당사자 일방인 북한이 소멸하고 한국정부 가 한반도 전역의 유일한 정부가 됨으로써 평화협정을 체결할 필요성이 사라진 다는 견해가 있는데(신범철, 2011, p. 6), 이는 휴전협정의 효력이 종료된다고 직접 언급하고 있지 않지만 북한의 소멸로 휴전협정의 효력이 종료하고 휴전협 정을 평화협정으로 대체할 필요가 없다는 주장으로 보여진다. 또한 이 견해는 중국이라는 일방당사자는 존재해도 실익이 없으며, 중국의 한국전쟁 참전은 정 부차원이 아니라 민간차원인 중국인민지원군이었다는 점을 지적하고 있다.
북한의 위기상황을 내부 통제가 가능한 상황과 통제가 불가능하여 북한 정권 의 붕괴로 인해 무정부상태가 된 상황으로 나누었을 때, 전자의 경우는 지금과 같이 휴전협정체제에 의해 규율되고 장차 통일여건 조성에 따라 평화협정에 의 해 휴전협정이 대체되고 통일 합의과정이 진행되어야 겠으나, 후자의 경우는 무 정부상태라 하여 국제법상 북한의 국가성이 소멸되는 것은 아니다. 임시적인 무 정부상태를 대체할 신정부의 수립이 가능할 것이고, 거의 전체라 할 정도의 북한 주민의 대량탈북사태에 따른 주민의 부존재가 아닌 한 북한의 국가성은 존립되 는 것이다. 또한 설령 북한이 소멸한다 할지라도 여전히 휴전협정의 공산 측 당 사자인 중국이 존재하고, 중국군이 북한지역에서 철수하였더라도 휴전협정 효력 에는 아무런 영향이 없다. 한국전쟁 중 중국군의 참전은 모택동의 공산당 정부가 중국대륙을 장악하면서 1949년 10월 1일 중화인민공화국을 수립한 후 전격적으 로 이루어진 것이고, 공히 중국군으로 인식되었다. 중국인민지원군 사령관인 팽 덕회가 휴전협정의 서명 당사자로 등장하고 휴전 이후 국방부장에 올랐다는 것 은 민간차원의 지원이 아닌 중국군의 참전이기 때문이다.
북한의 국가성이 소멸할 가능성이 거의 없다고 본다면 휴전협정의 일방 당사 자인 한국과 UN, 타방 당사자인 북한과 중국이 모두 존재하는 것이므로, 휴전협
정은 여전히 한반도를 규율하며, 통일 한국 이전에 한반도 평화체제를 규율할 평화협정으로의 대체문제는 당연히 필요하다고 본다.
2. 휴전협정의 당사자로서 UN
가. 휴전협정의 당사자에 관한 학설(이영진・노동영, 2015, pp. 10-12)
김일성과 팽덕회가 협정에 서명한 공산 측에서는 당사자가 북한과 중국이라 는데 별 문제가 없다. 휴전협정의 당사자문제는 휴전협정이 체결되면서 우리 측 서명 당사자의 국적과 협정의 구속을 받는 주체가 일치하지 않아 발생하는 문제 이다. 여기서는 북한의 주장, 학계의 다수설로써 한국과 참전 16개국이 일방 당 사자라는 견해, 필자가 지지하는 견해로써 한국과 UN이 일방 당사자라는 견해 로 좁혀서 논하기로 한다.
첫째, 휴전협정의 타방 당사자는 미국이라는 것이 북한의 주장인데, 한국은 정전협정의 당사자가 아니므로 평화체제 구축에 대한 문제는 북한과 미국이 논 의해야 한다고 하는 반면, 우리는 한반도 평화체제 구축은 남북 당사자 간에 논 의되어야 한다는 입장이다. 1960년대까지 북한은 남북한 간 평화협정 체결을 주장하였으나, 1970년대부터 한국을 배제한 채 미국에 평화협정 논의를 요구하 고 있다. 북한 주장을 구체적으로 보면, ① 서명 당사자는 미국의 클라크(M. W.
Clark) 육군대장이므로 당사자는 미국이고 한국은 정전협정의 서명 당사자가 아 니므로 평화협정 문제를 논의할 수 없고, ② 미국이 한국에 대한 군사통수권을 갖고 있기 때문에 한국은 군사문제인 정전협정의 당사자가 될 수 없으며, ③ 한 국이 정전협정 체결에 반대하였기 때문에 평화협정에 참여할 자격이 없다는 것 이다. ④ 중국은 이미 1958년에 북한에서 모두 철수하였기 때문에 정전협정의 실질 당사자는 북한과 미국이라는 것이다. 특히 북한은 남북한 간에는 이미 불가 침합의서가 채택되었기 때문에 미국과 평화협정만 체결되면 한반도의 공고한 평화보장체제가 수립될 수 있다는 주장을 반복해왔다(백진현, 2000, p. 279). 한
국이 정전협정의 당사자가 아니므로 평화체제 구축에 대한 문제는 미국과 논의 되어야 한다는 북한의 주장은 궁극적으로 조국해방전쟁관에 입각해 주한미군 철수를 관철시키기 위한 목적의 선전적 주장에 지나지 않는다. 미국과 평화협정 을 체결하여 한반도에 주둔한 주한미군의 철수를 유도하고 북한이 원하는 우리 끼리의 위장된 평화상태를 원하기 때문이다.
그러나 UN군사령관이 미국 국적이기 때문에 미국이 당사자가 된다는 것은 조약의 당사자와 서명자를 혼동한 것이다. 조약 당사자와 조약 서명자의 국적은 전혀 별개의 사항이며, UN군사령관이 휴전협정에 서명한 것은 UN의 보조기관 으로서 UN을 위해 UN이 그에게 부여한 권한을 당연히 행사하기 위한 것이었다.
또한, 휴전협정이 직접 적용될 한국의 동의 없이 협정이 체결될 수 없었다. 한국 이 당사자가 아니라면 미국과 북한에서도 최종 순간까지 협정 체결에 한국의 동의를 얻어내려고 하지 않았을 것이다. 이승만 대통령은 휴전협정을 실질적으 로 뒷받침할 한미상호방위조약 체결에 대한 미국의 동의가 있은 후에 휴전협정 을 반대하지 않았다. 그리고 한국은 휴전협정을 준수하였고 또 위반한 부분에 대해서는 북한의 항의를 받아 왔으며, 휴전 이후 1954년 4월 26일부터 6월 15일 까지 개최된 제네바 정치회담에 한국이 참여했다는 관행에서도 한국이 당사자 임을 알 수 있다.
둘째, 한국과 참전 16개국이 일방 당사자라는 견해이다. 2차 대전 연합군 구성 및 휴전협정 체결의 경험에 입각한 것으로 연합군이론(coalition army theory)으 로 불리운다. 1943년 9월 3일 이탈리아 시칠리아에서 연합군 총사령관 아이젠하 워 대장이 연합국의 이익을 대표하여 이탈리아 바도글리오 원수와 휴전협정을 체결했다. 연합군 총사령관은 휴전협정의 서명자에 지나지 않으며 휴전협정의 당사자는 전 교전당사국이다. 이를 한국전쟁으로 연결시키면 UN군사령관은 참 전국을 대표(리)하여 서명한 것이므로, 한국과 16개의 참전국15)이 휴전협정의 당사자가 된다는 것이 학계의 다수설로 보여진다(이장희, 1995, p. 197; 이상면,
15) 의료 및 물자지원국을 제외하고 전투부대 파병국인 미국, 영국, 호주, 네덜란드, 캐나다, 뉴질랜 드, 프랑스, 필리핀, 터키, 태국, 그리스, 남아프리카공화국, 벨기에, 룩셈부르크, 콜롬비아, 에티 오피아를 말한다.
2007, p. 251; 백진현, 2000, p. 283; Choung-Il Chee, 1976, p. 150).16)
셋째, 한국과 UN이 일방 당사자라는 견해로써(유병화・박노형・박기갑, 2000, pp. 718-728; Byoung-Hwa Lyou, 1986, pp. 55-56.), 한국전쟁에서 UN군은 안보 리 결의에 의해 설치된 UN의 보조기관이고 UN만이 법률행위를 자기 명의로 할 수 있고 권리의무의 주체가 될 수 있는 법인격 주체이므로, 유엔군사령관의 휴전협정 체결의 효력은 UN으로 귀속된다고 한다. 이 견해는 한국이 왜 당사자 가 되는지에 대해 세 가지로 나누어 설명하고 있다. ① 한국전쟁 발발부터 미군 이 단독으로 참전한 1950년 7월 1일 전까지는 한국만이 교전자였고, 미군 참전 과 이후 유엔군의 참전에서도 한국군이 지상군 40%의 비중을 차지한 데서 알 수 있듯이 한국이 주된 교전자였다. ② 한국전쟁이 남북 간에 그리고 한반도에서 만 이루어졌기 때문에 한국이 한국전쟁과 휴전협정에서 주인국가이다. ③ 한반 도에서 한국만이 유일한 합법정부였는데 합법정부를 당사자에서 제외하고 비합 법자인 북한은 당사자가 된다는 것은 모순이다. 따라서 전쟁 동안 UN군사령관 의 지휘 아래 2개의 군대 즉 한국군17)과 고유의 UN군이 연합관계를 형성함에 따라 UN군의 휴전협정 서명으로 한국과 UN이 공동 일방 당사자를 구성하게 된다고 본다.
나. 소결
한국전쟁에서 UN군사행동이 불완전하나마 헌장 7장의 강제조치를 최초로 실 현한 사례로 보아야 한다는 것은 앞서 검토한 바와 같다. UN의 군사행동을 집단 적 자위권에 기초한 다국적군의 형태로 보면 우리 측 당사자를 한국과 16개의 참전국으로 보게 되고, UN의 군사행동을 안보리 결의에 의한 UN의 보조기관이 행하는 군사적 강제조치로 보면 우리 측 당사자를 한국과 UN으로 보는 것이 논리적으로 부합한다. 후자와 같이 우리 측 당사자를 한국과 UN으로 보는 것이
16) 故 지정일 교수는 “유엔군사령부는 16개 참전국과 한국을 대표하여 기능한 기구에 지나지 않는 다.”고 하였다.
17) 이승만 대통령은 1950년 7월 15일 맥아더 유엔군사령관에게 작전지휘권을 이양하였다.
타당하다고 생각된다. 대리 또는 위임의 법률관계가 적용되어 UN의 기관의 행 위가 UN으로 귀속되고, 한국군의 작전지휘권을 이양한 것에 따라 UN의 기관의 행위가 한국으로도 귀속되는 것이다.
3. 평화협정의 당사자로서 UN
가. 북한의 UN군 해체 주장
휴전협정에 우리 측 서명자로 UN군사령관이 나섰는데 북한의 주장대로 UN 군이 해체되면 휴전협정의 당사자문제에 어떠한 영향을 미치는가, 또 평화협정 이 체결되는 경우 UN군은 UN과 관련하여 당사자문제에 어떠한 영향을 미칠 수 있는가 문제이다.
북한은 휴전협정 이후 1954년 제네바 정치회담에서 외국군대의 철수를 주장 한 이래 70년대 미국과 평화협정 체결을 요구하면서 UN군의 해체를 주한미군의 철수와 연계하여 적극 주장하였다. 최근에는 2013년 1월 14일 외무성 비망록을 통해 UN군사령부의 해체를 촉구하였고, 동년 6월 21일 신석호 유엔주재 북한대 사가 기자회견을 통해 UN군사령부를 해체하고 정전협정을 평화협정으로 전환 시켜야 한다고 하였다(국방부, 2014, p. 245).
한국전쟁 초기 안보리 결의에 의해 투입된 UN군의 주 임무는 휴전협정 후 군사 정전위원회의 활동을 통해 휴전협정을 집행・감독하는 것이고 부가적으로는 유사 시를 대비하여 회원국의 재참전과 통제임무를 수행하면서 일본의 UN후방기지 사용권을 계속 확보하는 것이다. 전쟁 기간 동안 전쟁 병력이 가장 많았을 때가 70여만 명이었는데 이 중 30만 명 정도가 한국군이었다. 현재는 대부분 모두 철수 하고 300명 정도만 남아 있는데(임덕규, 1988, p. 49), 주로 UN군사령부의 참모직을 맡는 미군이고 나머지는 의장대와 무관임무를 겸한 연락장교들이다.18)
18) 현재 UN사 회원국은 한국전쟁 참전 16개국 중 룩셈부르크와 에티오피아를 제외하고 의료지원 을 했던 덴마크, 이탈리아, 노르웨이 및 한국까지 18개국이다. UN군은 UN사의 참모직을 겸임하 고 군사정전위원회 비서처를 맡는 미군, 군사정전위원회 고문단(무관임무를 겸한 회원국 연락장
UN군이 해체되면 휴전협정은 종료되는 것인가, 아니면 휴전협정의 존속 또는 이행과는 무관한 것인가. 휴전협정상 UN군은 협정의 준수・집행을 책임지는 주 체이므로 UN군의 해체는 휴전협정의 이행과 직결된 문제이다(백진현, 2000, p.
291). 휴전협정의 제61항, 제62항에 따라 상호 합의에 의해서만 협정의 구속력을 대체할 수 있으므로 UN군의 해체로 휴전협정이 실효하거나 종료되는 것은 아니 다. UN군은 협정의 준수・집행을 위한 기관으로 UN군의 해체와 휴전협정의 존 속은 별개의 문제인 것이다. UN의 보조기관인 UN군이 해체되어도 UN은 여전 히 휴전협정의 당사자인 것이다.
한편, 일본은 1951년 미일안전보장조약과 애치슨・요시다 교환공문을 통해 한 국을 지원하는 UN군을 위해 시설 및 역무를 제공하기로 하였는데, 이에 따라 일본에서 6개의 주요 기지를 제공하고 있다(백진현, 2000, p. 292). 이 의무는 한국에서 UN군이 철수하는 날로부터 90일 이내에 종료하게 되어 있어 UN군의 해체는 유사시 미군 증원에 중대한 차질로 이어지게 된다. UN군이 해체될 경우 미국과 일본은 기지 사용에 대한 새로운 합의를 해야 할 것이다.
한국전쟁에 기여한 UN의 역할과 장차 한반도 평화체제 구축을 위한 UN의 역할을 고려할 때, UN군은 한미동맹에 의한 주한미군과 함께 전쟁을 억제하였 고 성공적인 국제사회의 조정자였으며, 앞으로도 UN군의 존재가 북한의 위기상 황 시 한반도 평화체제를 구축하는데 UN 참여의 명분으로 작용할 것이다. 특히 전시작전통제권 전환이 문제되는 가운데 한국이 전시작전통제권을 환수하는 경 우 연합사령부가 폐지되면 UN군사령부의 역할과 기능이 확대될 수 있다.19) 안 보리의 결의에 의해 설치되고 주둔해 온 UN군은 안보리의 조치에 의해서만 해 체될 수 있다.
교단), 주로 태국과 필리핀 병력으로 이루어진 의장대 등이 남아 있다.
19) 주한미군사령관은 유엔군사령관과 1978년 11월에 창설된 한미연합사의 사령관을 모두 겸직하 는데, 한국군의 전시작전통제권은 연합사에서 행사하지만 휴전협정 준수와 관련된 군사활동에 관한 작전통제권은 유엔군사령부가 행사한다. 따라서 연합사가 폐지되더라도 여전히 한미동맹 에 의한 주한미군사령관은 유엔군사령관을 겸직하고 있기 때문에 유사시를 대비하여 회원국의 재참전과 통제임무를 강화하려 할 것이다.
나. 국제사회의 평화협정 당사자 참여
한국과 북한은 한반도문제에서 직접적인 이익을 갖는 휴전협정의 당사자이면 서 동시에 평화협정의 당사자임이 당연하다. 이는 헌법 제4조의 평화통일원칙과 국제법상 기본원칙으로 자리 잡은 민족자결권에 부합하는 것이다.
직접 당사자인 한국과 북한을 빼고 휴전협정의 당사자가 평화협정의 당사자 와 반드시 일치하는 것은 아니다. 직접 당사자인 남북한이 배타적으로 한반도문 제를 논의할 수 없다. 한반도문제는 국내문제인 동시에 국제문제이기 때문이다.
휴전협정 대체의 구체적 방식과 관련하여 당사자 해결원칙의 취지(한반도문제 의 자주적 해결), 실현가능성(북한과 타협 가능성), 실효성(평화보장력), 법리적 타당성 등의 기준을 적절히 고려해야 한다는 견해가 제시되고 있다(백진현, 2000, p. 287). 타당하다고 생각된다. 이와 같은 견해를 고려하여 평화체제의 논 의의 주체이자 평화협정의 당사자에 대한 형식 논의를 가장 현실적이고 유력할 것으로 예상되는 방안을 중심으로 살펴본다.
첫째, 南・北・美・中의 4자 형식으로, 휴전협정의 당사자, 법리적 타당성, 실효성 면에서 가장 합리적이라는 평가를 받고 있으며 정부가 지지하는 방식이다.
둘째, 위 4자에 더하여 일본과 러시아가 참여하는 형식이다. 한반도 비핵화와 평화체제에 관한 다자논의의 장인 6자회담을 고려하고 한반도와 러시아가 국경 을 접한다는 측면에서 러시아의 참여로 실효성은 있겠으나, 구 소련은 한국전쟁 의 공산측에 대한 배후로써 원죄가 있다. 또한 일본과 러시아가 한국전쟁에 직접 참여하지 않았고 휴전협정의 당사자도 아니라는 점에서 법리적 타당성이 약하 며, 일본의 참여에 대해 한국・북한・중국의 반발이 예상된다.
한국과 북한이 직접 당사자로서 평화협정의 당사자가 됨은 당연하다. 주변국 중 누가 참여하느냐가 문제인데, 원칙적으로 정부가 지지하는 4자 형식이 타당 하다고 생각된다. 다만 6자 형식을 취할 때 지적되는 단점을 극복하면서 앞서 휴전협정의 당사자로 본 UN의 참여20)를 더하여 UN에서 공론화를 통해 국제사
20) 최철영 교수는 직접당사자인 남한과 북한, 미국과 중국 외 당사자는 제외되어야 하나, UN은
회에서의 광범위한 지지를 받는 것이 바람직하리라고 본다. 즉 4자+UN 형식21) 을 말하는 것이다. UN이 휴전협정의 당사자이므로 평화협정의 당사자로서도 참 여하여 국제사회의 조정자 역할을 계속하는 것은 한반도 평화체제 구축의 논의 에서 북한과 중국에 대한 난항을 완화시키고 설득하는 명분을 제공할 것이다.
Ⅳ. 북한 위기상황 시 UN의 참여
1. UN결의를 통한 국제법적 정당성 부여
UN헌장 제103조에 따라 회원국은 다른 법적 의무보다 헌장상의 의무를 우선 해야 하고, 헌장 제25조에 따라 회원국은 헌장상의 의무이행을 위한 안보리의 결정을 수락하고 이행해야 하므로, 안보리 결의는 그 자체가 국제법이며, 합법성 내지 정당성의 근거가 된다. 일반적으로 총회 결의는 법적 구속력이 인정되지 않지만 만장일치나 압도적 과반수로 채택된 총회 결의는 국제관습법 특히 법적 확신의 증거가 된다고 볼 수 있다. 따라서 북한의 위기상황에서 UN의 안보리나 총회의 결의는 주도적으로 한국이 관할권을 행사하는데 국제법적 정당성을 부 여하게 될 것이다. 북한의 위기상황에 한국이나 국제사회가 개입할 수 있는 국제 법적 근거로 논의되는 것이 국제평화와 안전 유지를 위한 개입, 인도적 개입 또 는 보호책임, 자위권, 북한의 요청에 의한 개입, 자결권, 남북한 특수관계론 등인 데, 어느 경우라도 UN의 결의는 국제법적 정당성을 부여하는 가장 적절한 수단 이 된다.
북한주민에 대한 대량학살이나 집단 강제이주, 대량탈북사태 등에 대한 중대 한 인권침해사태가 발생하는 경우 ‘인도적 개입(간섭: Humanitarian Intervention)’
이 현안으로 등장할 가능성이 높을 것이다. 인도적 개입이 전면으로 등장한 계기 는 1994년 르완다사태와 1999년 코소보사태인데, 인도적 개입의 합법성에 대해
규범촉진자로서 당사자 참여가 가능할 것이라고 한다. 최철영. (2013). p. 18.
21) 4개국 대표가 서명하고, UN 대표가 하기서명 또는 보증하는 형태가 될 것이다.
브라운리는 인도적 개입이 대단히 선택적・정치적・전략적 이익에 의해 좌우될 것이고, UN헌장에 어떠한 근거도 없다고 한다(Ian Brownlie, 2003, pp. 710-712).
그러나 미국의 국제법학자들은 대체로 인도적 개입의 압도적 필요성・급박성, 인 도적 목적의 순수성, 조치의 비례성・적절성 등을 요건으로 국제법상 허용되어야 한다고 하면서 UN헌장의 근거가 없다는 이유로 인도적 개입을 행하지 않는다면 국제사회의 요구를 저버림으로써 UN과 국제법에 대한 신뢰를 훼손할 것이라고 한다(이근관, 2011, p. 53).
한편, 대규모 인권침해사태에 대응하기 위해 최근에 등장하여 논의되기 시작 한 것이 보호책임(Responsibility to Protect: R2P)인데, 인도적 간섭을 새로운 각 도에서 조명한 것이다. 국가주권에 책임이 포함되어 해당 국가가 1차적 보호책 임을 지고, 그렇지 못한 경우 2차적으로 국제사회가 무력개입과 같은 보호책임 을 진다는 것이다. 보호책임은 집단살해, 전쟁범죄, 반인도범죄, 인종청소 등 대 량의 인명살상을 동반하는 경우로 제한되는데, 이 경우에 보호책임은 전통적인 인도적 개입과 평시 재난대응을 위한 개입을 모두 포함한다는 점에서 이론적인 혼란을 야기하고 있다(홍성필, 2012, p. 257). 여하튼 인도적 개입과 보호책임은 형성되어 가는 국제법으로써 아직 확립된 규범이 아니지만, 2011년 리비아사태 에 안보리가 보호책임을 적용한 결의 제1973호를 채택하였듯이22) UN의 결의를 통해 법적 구속력을 갖게 될 수 있으므로, 북한 위기상황에 인도적 개입 또는 보호책임이 문제되는 경우 이에 대한 UN의 결의를 통해 북한지역에 UN의 참여 가 가능할 것이다.23)
2. 주변국의 자위권에 의한 개입 통제
북한과 중국은 1961년 ‘조중 우호협조 및 상호원조에 관한 조약’을 통해 일방 이 무력공격을 당했을 때 군사원조를 제공한다는 군사 자동개입조항을 두고 있
22) UN Security Counsil S/Res/1973(2011), “Libya”
23) 따라서, 주변국의 개별적 인도적 개입은 통하지 못할 것이나, UN의 결의에 근거한 국제사회의
‘집단적’ 인도적 개입은 타당성을 갖는다.
다. 한국 측에서 무력공격을 먼저 감행할 리 없으므로, 중국이 위 조약을 통해 집단적 자위권을 실현하는 것이 어려울 것 같지만, 북한의 위기상황 시 한국 단 독 또는 미국과 연합으로 개입하는 경우 중국은 이를 무력공격으로 보고 위 조약 에 의거 집단적 자위권을 행사할 가능성이 있다. 만약, 북한에서 내란이 발생한 경우 중국이 이를 적대세력의 북한정권에 대한 무력공격이라는 이유로 북한에 개입하게 된다면, UN헌장 제2조 4항에 따른 UN의 목적과 양립하지 않는 일체의 무력행사 금지, 제2조 7항에 따른 국내문제 불간섭, 총회결의 제2131호24)로 채 택된 「국가의 국내문제에 대한 간섭 금지 및 독립・주권의 보호에 관한 선언」
준수를 강력히 요구해야 할 것이다(제성호, 2013, p. 166).
다음 북한의 무력공격이 있는 경우, 헌장 제51조에 의해 자위권을 행사하여 응전하겠지만, 휴전선을 넘어 북한지역 전체를 대상으로 할 수 있는가에 대하여, 자위권은 현상을 회복하기 위한 무력공격까지만 허용된다고 볼 수도 있으나 한 반도 상황에 맞는 목적론적 관점에서 한반도의 분단과정과 한국전쟁, UN군의 주둔, 휴전체제의 특수성, 남북한 특수관계 등을 고려하여 안보리 결의 없이 북 한지역 전체에 대한 자위권 행사가 가능하다는 견해가 있다(제성호, 2013, pp.
191-192). 또한 UN군이 한국 전역에서 안정을 위한 조건을 보장하고 통일・독립・
민주정부를 수립(the establishment of a unified, independent and democratic Government of Korea)하는 한도에서 한국 어디서도 주둔할 수 있다는 1950년 10월 7일 총회 결의 제376호25)에 근거하여 추가 안보리 결의 없이도 UN군이 북진할 수 있다는 견해가 있다(김명기, 1997, p. 44; 제성호, 2013, p. 192). 그러 나 가장 바람직한 것은 예상되는 주변국의 강력한 반발이나 국제사회의 부정적 인 여론을 고려하여, 안보리 결의를 통해 정당성을 부여받는 것이다. 강력한 한・
미 동맹을 바탕으로 신정부의 수립, 통일 찬반투표, 평화협정 체결, 한반도 총선 거 실시, 통일에 이르기까지 UN의 틀 안에서 북한의 위기상황을 처리하고 이것 이 중국・러시아 등에도 이익이 된다는 것을 설득해 나가야 한다. 특히 중국은
24) UN General Assembly A/Res/2131(ⅩⅩ), “Declaration on the Inadmissibility of Intervention in the Domestic Affairs of States and the Protection of Their Independence and Sovereignty”
25) UN General Assembly A/Res/376(Ⅴ), “The problem of the independence of Korea”
북한에 대해 완충지대 및 전방방어라는 전통적인 전략적 이익을 갖고 있더라도, 중국 단독으로 북한에 개입하는 것은 현실 가능성이 떨어지기 때문에 UN이라는 다자의 틀에서 북한문제를 처리하려고 할 것이다. 주변국 중에 가장 우려되는 중국의 개입을 차단하기 위해 UN 결의로써 주변국의 불필요한 개입을 금지시키 고, 안보리 결의를 통해 한국에 주둔하는 UN군에 참여・증원하는 형태로써 국제 사회가 한반도의 평화와 안전을 확보할 수 있도록 해야 한다. 가령 공통적으로는 재건과 인도지원을, 한국군에게 치안과 사회질서 유지를 목적으로 하는 안정화 작전을, 미군에게 일부지역에 대한 안정화작전과 핵무기를 포함한 대량살상무기 해체를, 중국군에게는 대량의 북한이탈주민이 생기는 경우 중국으로의 유입을 차단하는 국경선 통제 및 접경지역에서 이들의 임시보호를 위한 임무26)를 부여 할 수 있겠다.
3. 자결권과 남북한 특수관계의 존중
1918년 우드로 윌슨 미국 대통령이 주창한 민족자결은 정치적 선언이었지만, UN헌장 제1조 2항 및 제55조에 규정되면서 국제관습법상 권리로 간주되고, 침 략・집단살해・노예제・인종차별・반인도범죄와 함께 강행규범(jus cogens)에 속하 는 것으로 인식된다(James Crawford, 2002, p. 188). 두 개의 국제인권규약 제1조 1항에서 “모든 인민은 자결권을 가진다. 이 권리에 기초하여 모든 인민은 그들의 정치적 지위를 자유로이 결정하고, 또한 그들의 경제적・사회적 및 문화적 발전 을 자유로이 추구한다”라고 규정하는 데서 자결권(right of self-determination)의 개념을 알 수 있다. 강행규범인 자결권은 대세적인 권리이므로, 북한의 위기상황 시 주변국들의 개입이 현실화되는 경우 자결권은 그 개입을 차단하고 한국의 관할권 행사를 뒷받침하는 가장 강력한 규범적 근거가 된다. 역사, 언어, 문화의
26) 대량의 탈북사태가 일어나는 경우, 해안을 통한 보트피플도 쉽지 않고, 개성공단을 위한 도로를 제외하고는 비무장지대의 매설된 지뢰 등을 이유로 휴전선을 통해 남한지역으로 오는 것 자체가 쉽지 않을 것이기 때문에 국경지역에서 북한이탈주민의 보호를 위해 UN인권최고대표부・난민기 구 및 중국의 협조가 반드시 필요할 것이다.
모든 부분에서 동일한 정체성을 가진 단일한 민족공동체가 식민지배, 외국의 점 령, 냉전으로 인하여 분단된 것은 당연히 자결권의 행사를 통하여 교정되어야 한다(홍성필, 2012, p. 265). 단 다수그룹인 남한주민이 자결권의 행사로 소수그 룹인 북한주민을 그들의 의사에 반하여 국민집단에서 배제하고 단독으로 남한 만의 독자적 국가를 구성할 수 없다(신용호, 1995, p. 21).
1992년 발효된 남북기본합의서의 서문에서 남북관계를 ‘쌍방 사이의 관계가 나라와 나라 사이의 관계가 아닌 통일을 지향하는 과정에서 잠정적으로 형성되 는 특수관계”라고 밝히고 있다. 남북한 특수관계는 국제법상 자결권과, 헌법상 영토조항에 의해 북한지역도 대한민국의 영토로써 북한을 국가로 인정할 수 없 는 영토고권을 동시에 반영한 것이다. 북한 위기상황 전개 시 국제법상 자결권과 남북한 특수관계론 또는 당사자 해결원칙을 토대로 외부세력의 부당한 개입을 차단하고, 장차 한국의 관할권 행사를 확대해 나가야 하며(제성호, 2013, pp.
175-176),27) 남북한이 자결권과 남북한 특수관계론에 기초하여 하나의 한국을 건설하는데 국제사회가 존중하고 부당한 개입의 행사를 감시하도록 하는 UN의 결의, 특히 구속력 있는 안보리 결의나 압도적인 총회의 결의가 채택되도록 노력 하여야 할 것이다.
Ⅴ. 결론
하나의 한국을 위한 한국문제를 UN과 분리하고는 생각할 수 없다. UN은 한국 문제 처리를 통해 본연의 기능인 국제평화와 안전을 유지하였고, 그러한 과정에 서 국제법 발전에 기여하였다. 특히 한국문제는 UN의 근간이라고 할 수 있는 집단안전보장제도를 구현하게 한 계기였다. 한국문제도 UN에 기여했고, UN이
27) 북한 급변사태 발생 시 한국이 안보리 비상임이사국이라면 특히 헌장 제31조 “안보리 이사국이 아닌 어떠한 회원국도 안보리가 그 회원국의 이해에 특히 영향이 있다고 인정하는 때에는 언제 든지 안보리에 회부된 어떠한 문제의 토의에도 투표권 없이 참가할 수 있다”는 규정에 유의하여 우리의 입장을 최대한 반영시키는 노력이 매우 필요하다고 한다.
한국문제에 기여한 것은 더 말할 것도 없다.
북한의 위기상황에 해당하는 어느 경우라도 북한의 국가성 소멸을 예상하기 힘들기 때문에 현 휴전협정은 여전히 존속되어 한반도를 규율할 것이고, 통일여 건 조성을 위한 한반도 종전 선언 및 평화체제 구축을 위해 적시에 휴전협정을 평화협정으로 대체하는 준비가 필요하겠다. UN은 휴전협정의 당사자이고, 장차 평화협정에서도 당사자로서 대한민국에 유리한 여론을 조성하여 통일에 기여할 수 있다(김병기, 2010, p. 214).28) 현재는 상징적으로 존재하는 UN군이지만 북한 위기상황 시 UN의 참여를 자연스럽게 유도할 수 있고, UN 결의를 통해 임무를 부여받아 증원된 UN군은 주변국과 국제사회의 거부감이 상쇄되어 보다 빨리 북한지역을 안정시키고 통일로 연결시키는 중요하고 효율적인 역할을 하게 될 것이다.
국제사회가 북한에 대한 한국의 관할권 행사를 당연하게 인정하려고 하지는 않을 것이다. 그러나 독일 통일의 예에서 보듯이 가장 중요한 것은 분단 당사자 의 자결권과 특수관계에 기초한 강력한 통일 의지이며, 이러한 통일 의지를 호소 할 때 국제사회가 모범적인 평화국가인 대한민국에 지지를 보낼 것이다. 또한 북한의 위기상황으로부터 통일로 가는 과정에서 북한의 핵무장 해제, 북한 지도 부의 반법치주의적 불법을 청산하기 위한 반인도적 범죄의 처리, 대량탈북사태 의 경우 난민문제 등 국제평화와 안전을 위한 UN의 역할은 반드시 필요하며, 적극적으로 UN을 활용하기 위한 대한민국의 노력이 절실히 요구된다.
논문 접수 : 2016년 5월 31일 논문 수정 : 2016년 10월 3일 게재 확정 : 2016년 10월 6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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