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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깝고도먼, 평양에서의 5 박 6 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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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9차 평양 국제상품전람회 참관행사에 동행할 기 회를 얻게 되었다. 이 행사는 중앙일보와 KDI가 공 동으로 주관했고 기업인, 공기업 및 관련 연구기관 의 전문가, 정부부처 관계자와 중앙일보의 취재진 등 약 70명이 참가하여 5박 6일에 걸쳐 평양과 주 변지역을 참관하였다.

북한을 여러 번 방문한 사람들의 말에 의하면 때 마침 남북 화해무드가 이어지는 시점이라 북측 관 계자들도 유례없이 부드러운 분위기 속에서 보다 많은 곳을 볼 수 있도록 허용했다고 한다.

출발 및 도착

우리 일행은 북한 고려항공 전세기를 타고 김포공 항을 떠나 평양공항으로 향했다. 비행시간은 1시간 정도 소요되었다. 비행기에 올라타니‘걸상띠(=안 전벨트)를 매시오’등 다소 낯선 표현이 눈에 띈다.

비즈니스석을‘공무석’이라고 하고 이코노미석을

‘일반석’이라고 하는 것은 관 주도 사회의 전형을 보여주는 것 같기도 하다.

평양공항에 착륙할 즈음에는 모두들 목을 쭉 빼 고서 창밖을 내다 보았다. 평야지대인데 생각보다 경지정리가 잘 되어 있다는 인상을 받았다. 계류장 마당에서 단체로 기념사진을 찍고 엑스레이 검색 대를 통과하고 나니 입국절차가 끝이다. 평양국제 공항은 우리나라의 작은 지방공항만한 규모여서 활주로쪽 청사 입구에서 검색대 끝까지가 10여m 남짓밖에 되지 않는 듯하다.

공항에서 나와서 미리 대기된 버스에 오르니 짙 은 선그라스를 낀 안내원이‘달리는 차 안에서 사 진촬영을 하지말 것’등 주의사항을 알려주었다.

순안공항을 떠나 평양으로 들어서는 길 양편으로 는 한적한 농촌풍경이 이어졌지만 시내에 들어서 니 오가는 사람들도 보이고, 김일성 시신을 안치했

가깝고도 먼, 평양에서의 5박 6일 주)

김경욱|건설교통부 수도권정책팀장 기 고

주) 지난 2006. 5. 15~20 제9차 평양 국제상품전람회 참관단의 일원으로 평양과 그 주변 일부지역을 참관하고 돌아와 정리한 글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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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는 금수산 궁전을 비롯해서 대규모 건축물들이 눈에 들어왔다. 평양시내에 있는 고려호텔에 도착 하니 호텔직원들이 한복을 입고 나와 도열해서 박 수를 쳐주었다. 호텔로비의 식당에서 평양냉면으 로 식사를 하고나서 짐을 풀었다. 고려호텔은 1985 년에 완공된 특급호텔로서 45층의 쌍둥이 빌딩이 다. 방을 배치받고 들어가 보니 TV와 간단한 소파 가 있고, 허리 높이의 칸막이로 분리된 곳에 싱글침 대 두 개가 놓여 있다.

TV는 모두 10개 정도의 채널이 나오는데 1~3 번은 북한방송, 그 다음 러시아 방송이 3개, 중국방 송 2개(그 중 한 개는 CCTV 영어방송), BBC 1개, NHK 1개 채널로 되어 있다. 그 중 북한 TV는 실제 로 1번 한 개만 나오고 가끔 2`~3번채널이 잡혔지

산된 지 20~30년은 되어 보이는 벤츠부터 5년 정 도 되어 보이는 일제 차까지 다양하다. 그런데 운전 대 방향이 제각각이어서 놀라웠다. 북한지역은 우 리처럼 우측통행이므로 운전대가 좌측에 달려 있 어야 하지만, 시내에 돌아다니는 차 중 1/3 정도는 운전대가 우측에 있는 점이 특이했다.

첫째 날

1. 개선문, 주체사상탑

평양시내 관람의 첫 번째는 만경대였다. 만경대는 김일성 주석의 생가가 남아 있는 곳으로 1945년 김 일성이 소련에서 귀국할 때 조부모가 살고 있었다 고 한다. 우리나라 민속촌에서도 흔히 볼 수 있는 세 칸짜리 초가집 농가다.

다음 방문지는 개선문이었는데 높이가 60m로 써, 규모가 엄청나게 크다. 김일성의 70회 생일인 1982년에 세워졌으며, 개선문의 한쪽 기둥에는 김 일성이 고향을 떠난 1925년이, 다른 기둥에는 김일 성이 귀국한 1945년이 새겨져 있다.

다음은 주체사상탑을 방문했다. 주체사상탑도 김일성의 70회 생일을 기념하여 1982년에 세워졌 고 높이 170m로 석탑 중에서는 세계 최고라고 한 다. 개선문과 주체사상탑 등 주요 시설물은 평양시 도시설계사업소에서 설계했다고 한다. 주체사상탑 은 대동강변에 자리잡고 있다. 대동강은 강폭이 500m쯤 되어 보이는데 하구에 갑문이 있기 때문에 항상 일정하게 수량이 유지된다. 주체사상탑 앞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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있는 광장을 걸어 강변에 접근이 가능하고 강 건너 편에서도 인민대학습당 앞의 광장을 통해 강변에 접근할 수 있도록 배치해서 대동강을 가로지르는 수변축이 형성되어 있다. 시내를 가로지르는 대동 강과 보통강으로 인해 평양은 수변도시의 풍채를 나타내고 있다. 대동강에 있는 섬인 능라도에는 15 만 명을 수용한다는 능라도경기장이 있고, 양각도 에는 최고급 호텔인 양각도 호텔을 건설하는 등 강 변을 따라 상징 건출물들이 들어서 있다. 조금 작은 규모인 보통강변으로는 시민들이 쉽게 갈 수 있는 숲들이 조성되어 있다.

2. 평양시의 모습

평양은 말 그대로 넓은 평지인데 마치 호남평야의 한복판에 있는 것처럼 넓고 평탄한 평야지대가 끝 없이 이어진다. 평양시의 인구는 약 250만 명이고

면적은 약 2,629km2다. 인구는 서울시의 1/4인 반 면 면적은 4배이므로, 1인당 면적이 16배에 이를 정도로 공간적인 여유가 있다.

다만, 이 면적은 주변의 농촌지역을 모두 포함한 것으로 보이고 실제 시가지는 가로 15km, 세로 10km정도의 크기다. 이 경우 면적은 150km2로 서 울의 1/4 수준이니까 인구밀도는 비슷하다고 보면 될 것 같다. 단, 서울과는 달리 산이 없으므로 실제 공간적인 여유는 훨씬 많다.

평양은 계획도시의 전형이라고 볼 수 있다. 우선 인구통제를 전제로 지난 1980년대에 도시 전체를 리모델링했다고 한다. 사람들은 전부 아파트에 살 고 단독주택은 사실상 없다. 아파트는 5층짜리부터 20~30층짜리가 있는데 단지의 개념은 없고 도로 를 따라 띄엄띄엄 배치되어 있다. 대부분의 아파트 들은 주상복합 아파트로, 1층에는 상점들이 있고 위에는 살림집이 있는 형태다.

건물들은 반듯하게 각이 져 있거나, 둥근 모양, 탑상형 등 나름대로 멋을 부려서 다양한 형태로 건 설해 놓았고, 동 간의 간격을 충분히 띄우고 사이에 는 녹지공간을 확보해 놓았다. 다만, 주차공간이 절 대 부족하고 북한의 물자부족을 반영하듯 베란다 의 유리창이 2/3 이상 깨져 있어 흉물스럽다. 건물 의 외부도색도 제대로 되어 있지 않아 전체적으로 잿빛도시의 인상을 주고 있다.

일반 살림집들과는 달리 공공시설과 광장은 매 우 훌륭하다. 각종 도서관, 체육관, 기념관, 문화시 설 등이 도시 곳곳에 배치되어 있고 각각의 시설들 은 넓은 광장을 가지고 있어 오픈 스페이스가 많다.

4~10차선 정도의 가로망을 잘 갖추어 놓았는데 다니는 차들이 없기 때문에 교차로마다 신호등 대 기 고

<사진 2> 주체사상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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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 안내원들이 배치되어 있다. 평양시내에는 노면 전차와 궤도전차들이 이리저리 운행하고 있다. 2개 노선의 지하철도 있다는데 타보지는 못했다.

평양은 건물도색을 다시 하고, 유리창을 다시 끼 우는 등 정비를 하고 나면 스스로 자랑하듯이‘공 원 속의 도시’로서 면모를 갖출 수 있을 것이다. 그 런데 다시 한 번 생각해 보면 사람의 욕구를 무시하 고 도시설계 전문가들이 이상적으로 조성한 도시 구조물 속에 사람들을 집어넣은 형태 같아 보인다.

주민들의 편의보다는 겉으로 보이기 위한 도시형 태에 더 신경을 쓴 모습이다. 완전한 통제사회에는 적합할지 몰라도 경제사회적 여건이 조금만 변동 되어도 수용하기 어려운 구조다.

3. 평양시민들의 모습

평양시민들의 옷차림은 남자들의 경우 검은(또는 짙은 회색) 인민복을 입고 다니는 사람들이 절반 이상 되고, 간혹 정장에 넥타이 차림도 있다. 여성 들은 원피스나 투피스 차림에 파마머리가 많다.

한복을 입은 사람들도 많은데 그 중 대다수는 흰 저고리에 무릎 가까이까지 내려 오는 검은 치마를 입고 있다. 여대생들의 경우는 흰 저고리에 검은 치

마가 교복이다. 소학교나 중학생들은 흰 셔츠와 빨 간색 삼각수건 비슷한 넥타이를 매고 다닌다. 그리 고 모든 북한 주민들은 김일성 배지를 차고 다니는 데 배지의 크기와 모양은 다양하다.

젊은 여자들은 대부분 쌍꺼풀이 있다. 처음에는 자연적인 것으로 생각했는데 알고 보니 모두‘인 공’이다. 김정일의 지시에 의해서 국가에서 무료로 쌍꺼풀 수술을 해준다고 한다.

출퇴근은 주로 전철을 이용하는데 출퇴근 시차 제를 적용하는 것 같다. 간혹 버스들도 다니는데 대 형버스가 아닌 마이크로 버스들이다. 출퇴근 시간 의 전철과 버스들은 만원이다. 자전거를 타고 다니 는 사람들도 많은데 타고 가는 사람보다 끌고 가는 사람이 더 많은 것이 특이하다.

해가 저물고 나면 길거리는 적막강산이다. 다니 는 차는 전혀 없다고 볼 수 있고, 가로등도 거의 없 기 때문에 평양의 밤거리는 여기가 도로인가 싶을 정도로 구분이 되지 않는다. 너무도 조용한 가운데 희미한 불빛들만 언뜻 보이는 적막한 시내 모습을 바라보니 이런 환경에서 오래 있다 보면 철학자가 될 것 같은 느낌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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둘째 날

1. 전선공장, 컴퓨터 프로그래머들

둘째 날에는 평양 3. 26 전선공장을 방문했다. 에나 멜 전선, 통신 케이블 등을 생산하는 곳인데 중국산 설비들이 활발히 돌아가고 있다. 다만, 컴퓨터용 잭 을 연결하는 작업 등 일부는 수작업으로 진행되고 있었다.

소프트웨어를 개발하는 조선컴퓨터센터를 방문 했는데 보안시스템, 화상인식시스템, 작곡프로그 램, 의료지원프로그램, 워드프로세서 등 다양한 프 로그램을 자체적으로 개발하고 있었다. 사용하고 있는 PC는 모두 중국산 제품이었다.

한글 입력을 어떻게 하는지 관심을 가지고 보았 는데, 한글 자판은 없고 영어나 중국어 자판을 쓰고 있었다. 더 물어보니 조선어(=한글)는 소프트웨어 프로그램을 통해 키별로 글자를 지정해서 쓰고 있 는데, ‘ㄱ’이 가운데 줄에 있는 등 자판배열이 우리 와 달랐다.

2. 인민대학습당

다음으로 방문한 인민대학습당은 1982년 건립된

일종의 중앙도서관이다. 연면적이 10만m2(3만 평) 에 이르는 큰 건물인데 청기와를 얹어서 멋지게 지 었다. 3천만 권의 장서 보유능력이 있다고 하며 600여 개의 방이 있다. 아침 8시에서부터 밤 8시까 지 운영한다.

개가식과 폐가식 도서실이 모두 운영되며 영상자 료실, 음악자료실 등도 있다. 전문가들의 강의를 들 을 수 있는 다양한 크기의 강의실들도 있다. 각 방마 다 공부하고 있는 학생과 성인들을 볼 수 있었다.

3. 북한의 음식

평양에 머무르는 동안 아침은 주로 호텔식당에서 한식으로 먹었고, 점심과 저녁은 주로 외부 식당들 을 이용했다. 아쉽게도 옥류관이 수리 중이어서 호 텔 내 식당에서 냉면을 먹었는데, 개인적으로는 그 리 감동적인 맛을 느끼지 못했다. 면발은 약간 더 굵고 덜 질긴 것이었고, 국물은 시원하기는 한데 뭔 가 빠진 듯했다.

서울에서 먹던 냉면은 맛이 자극적인데 비해 평 양냉면은 원래의 순수한 맛을 유지하고 있다고 한 다. 그런데 몇 번 먹어서 그 맛을 익히면 중독성이 생겨서 다시 찾지 않으면 안될 정도가 된다고 한다.

개인적으로는 아직 평양냉면에 입문도 못한 셈이다.

북한의 별미로 유명한 평양 단고기도 맛보았다.

국물이 유명하다고 하는데 지금까지 먹었던 얼큰 한 보신탕에 비해 약간 단맛이 났다. 그리고 찍어먹 을 양념장이 없었다. 수육을 달라고 했더니(부위별 로 시키라고 해서 다리를 시켰음) 접시 위에 작은 크기의 다리 한 짝이 통째로 나온다. 젓가락으로 이 리저리 발라서 먹어야 했고 양념장이 없어서 상당 히 느끼했다.

기 고

<사진 5> 적막강산처럼 보이는 평양시내 야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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셋째 날에는 평양 인근의 도시인 남포를 방문했다.

평양을 벗어나서 교외지역을 볼 수 있다는 것 때문 에 기대가 컸다. 남포는 평양에서 서남쪽으로 약 50km벗어난 곳으로 북한 제2의 도시다.

남포에 있는 유리공장을 방문했는데 중국과 북 한 간 친선을 기념하여 중국에서 지어준 현대식 유 리공장이었다. 연건평 5만여m2에 3mm 두께의 유 리를 연간 1천만m2생산할 수 있다고 한다.

남포지역에는 많은 공장들이 있었는데 제대로 가동되는 공장은 적어 보였다. 일부 공장을 리모델 링하고 있는 듯했고, 어떤 공장들은 가동중단 상태 로 방치된 듯했다. 농가의 모습들도 보였는데 똑같 이 생긴 단층 블록집(+기와집)들이 10개 내외씩 가지런히 모여 있었다. 농가주변의 야산들은 나무 가 모두 베어지고 없는데 밭으로 개간된 것도 아니 어서 안타까움을 갖게 했다. 마을에서 멀리 떨어져 있거나 제법 규모가 큰 산들은 남한의 여느 산과 비 슷하게 숲이 우거져 있다. 모내기 준비를 하느라 한 창 바쁜 것 같은데 트랙터로 논밭을 가는 사람과 소 를 이용해서 논밭을 가는 사람들이 절반씩 섞여 있 는 것 같다.

평양으로 돌아오는 길에 보니 대동강변에서 고 기잡는 사람들이 무척 많다. 낚시를 하는 사람, 투 망을 하는 사람, 강 속에 몸을 담그고 무엇인가 하 는 사람들이 거의 10~20m에 한 명씩은 있었다.

2. 국제상품전람회 관람

남포에서 돌아온 뒤 3대 혁명전시관에서 개최된 제

서 부품을 들여와서 조립한 것이었다.

자동차 이외에는 볼 만한 물건이 별로 없었다.

북한 기업들이 전시한 제품들은 주로 건강보조식 품과 의류 위주였고 공작기계와 자전거가 포함되 어 있었다. 중국기업들은 TV 등 가전제품과 오토 바이 등 북한에서 팔릴 만한 제품들을 전시해 놓았 는데 우리 수준에서 흥미를 끌 만한 것들은 없었다.

3. 남포항, 배수리 공장

오후에는 남포항을 방문했다. 두 번째 가는 길에는 평양-남포 간 총 연장 46km의 고속도로를 이용했 다. 왕복 10차선의 고속도로에는 다니는 차가 하나 도 없이 텅 비어 있기 때문에 지평선 너머로 수십m 폭의 광장이 계속 이어진 듯한‘장관’이 연출되었 다. 이따금씩 갓길로 자전거를 타고 지나가는 사람 들이 눈에 띄었다.

남포항은 서해안 최대의 무역항이라고 하는데 9개의 부두가 있고 접안능력은 2만~5만 톤 내외인 것 같다. 하역능력이 700만 톤이라고는 하는데 실 제 그 정도 하역을 해보았는지는 의문이 든다.

영남 배수리 공장은 총 부지면적 72만m2에 5만 톤급 1개, 2만 톤급 7개의 도크를 보유하고 있다.

배수리 공장은 실제 수리작업이 진행 중에 있고 도 크도 계속 증설하고 있는 것으로 보아 상당한 수요 가 있는 것으로 보인다.

4. 서해갑문

북한사람들이 매우 자랑스러워 하고 있는 서해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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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 고

문은 1981년 5월~1986년 6월 사이에 건설된 하구 둑이다. 서해갑문의 건설로 인해 대동강의 홍수피 해를 방지하고 29억 톤에 이르는 용수를 확보했다 고 한다. 서해갑문은 길이가 8km에 이르고 5만 톤 급 배가 통행할 수 있는 갑문이 설치되어 있다. 또 한 방조제 위로 평남 남포와 황해남도 은율을 연결 하는 도로와 철도(단선)이 놓여 있다.

더 검토는 해봐야 하겠지만 서해갑문의 위치와 관련해서는 몇 가지 의문이 든다. 서해갑문은 대동 강 하구 중에서도 최대한 바다쪽으로 나가서 건설 되었다. 문제는 남포항이 대동강변의 내항으로 전 환되었다는 점이다.

조수와 관계없이 항상 이용할 수 있는 항구가 된 점은 좋지만 스스로 발전 가능성을 제약한 것 아닌 가 하는 생각도 든다. 남포항에는 5만 톤급 이상의 배가 들어올 수 없고, 영남 배수리 공장 등의 조선 소에서 수리하거나 건조할 수 있는 배의 한계도 5만 톤이다.

포항, 울산, 광양항 등의 접안능력이 15~30만 톤에 이르고 있는 점을 감안할 때 갑문의 건설로 인 해 남포를 포함한 평양 남서부 일대는 대규모 기간 산업이 자리잡기에는 부족한 지역이 되었다.

5. 청산리 농장

남포에서 돌아오는 길에 청산리 협동농장에 들렀 다. 청산리 협동농장은 북한의 대표적 시범농장으 로서 김일성이 수차례에 걸쳐 현지지도를 한 것으 로 유명하다. 농장에 들어서니 안내원이 기념관으 로 안내하는데 아니나 다를까 김일성, 김정일이 언 제 와서 무슨 말을 했는지를 열심히 설명한다.

말하자면 4~5가구씩 소조를 형성(그 위로도 여

러 단계의 조합이 구성되는 듯함)해서 공동으로 경 작을 하는 협동농장 방식이 효율적이라고 계속 주 장하고 수십 년 전 김일성이 교시한 방식에 오류가 없다는 것이다.

6. 모란봉과 을밀대

호텔에 갇혀서 지내다보니 너무 갑갑해서 밖에 나 가게 해달라고 거듭 요청한 결과 새벽녘에 단체로 모란봉 산책을 가게 되었다.

모란봉은 평양시내 대동강변에 자리잡은 아담 한 동산이다. 그리 높지 않은 곳이라 아침산책 코스 로는 그만이었다. 대동강이 잘 내려다 보이는 을밀 대에도 올라가 보고, 조용필이 공연했다는 잔디밭 에서 단체 사진도 찍었다. 많은 평양시민들이 아침 산책을 하고 있었고, 지나가면서 이게 누군가 하고 우리 일행을 쳐다보았다.

넷째 날

1. 김일성종합대학, 김책공업종합대학

넷째 날 오전에는 김일성종합대학과 김책공업종합 대학을 방문했다. 김일성종합대학의 안내원은 대 학 자체에 대한 설명은 하지 않고 김정일이 이 대학 에 다닐 때의 모습이 어땠는지 각 자료방들을 안내 하면서, 끊임없이‘그 분’이 얼마나 위대한지 설명 했다.

김일성종합대학은 평양시내에 있는데 학생수가 1만 2천 명 정도라는 것, 준박사와 박사학위를 준 다는 점(석사는 없고 학사를 준박사라 하는 듯함) 등은 우리가 따로 물어서 들은 내용이다.

이어서 김책공업종합대학의 전자도서관을 방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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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하는 모양이다.

김책공업종합대학의 전자도서관은 총 건평 1만 6,500m2의 5층 건물로 보유한 도서들을 전자자료 화하여 열람하도록 한 것이다. 소장도서들을 모두 입력하는 데 3~4년이 소요되었다고 한다. 빈 단말 기를 찾아서 인터넷 접속이 되는지 시험해 봤는데 역시 접속되지 않았다.

2. 만경대 학생소년궁전

오후에는 만경대 학생소년궁전을 방문했다. 학생 소년궁전은 평양시내 소학생과 중학생들이 과외활 동을 하는 곳이다. 1989년 5월에 개관하였으며 연 면적이 약 10만m2에 이르는 큰 규모다.

매일 5천 명씩 찾아와서 오후 3시부터 6시까지 여러 가지를 배운다고 한다. 서예, 각종 악기, 체조, 스포츠 등 약 60개의 코스에서 700여 명의 교사들 이 아이들을 지도하고 있다. 가야금, 아코디언, 생 활체조, 기계체조, 수예, 그림, 태권도, 수영, 바둑 교실을 둘러 봤는데 교사 1명당 10~15명 정도를 맡아서 가르치고 있었고 학생들의 수준이 상당히 높았다.

학생소년궁전에는 약 2천 석 규모의 공연장이 있다. 1주일에 두 번 학생들이 공연을 한다고 하는 데, 관람해 보니 감탄이 절로 나왔다. 이 정도 시설 을 유지하려면 상당한 자원이 소요될 텐데 체제의 우위를 과시할 만한 곳에는 정말로 아낌없이 자원 을 배분하고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에서 서북쪽으로 150km 정도 떨어진 평안북도와 자강도의 경계지점에 있다. 묘향산까지는 왕복 4차 로의 고속도로가 연결되어 있었는데 평양을 벗어 난 지점부터 묘향산까지 가는 1시간 40분 동안 달 리면서 발견한 차가 상∙하행선 합쳐서 채 10대가 되지 않았다.

창밖으로는 블록집이 10여 개씩 모여 있는 농가 들과 아직 모내기를 하지 않은 논들, 나무가 모두 베어진 채 방치되어 있는 야산과 구릉들, 그리고 울 창한 산림이 유지되고 있는 제법 큰 산들이 반복되 었다.

평안북도 지역으로 갈수록 인구밀도가 상당히 낮아 보였다. 뻘건 흙을 내보이면서 방치되고 있는 구릉들에 뭔가 심을 게 없을까 하고 안타까운 마음 이 들었다.

묘향산에 도착하니 이미 어둑어둑해 있었고, 향 산호텔에 들러 늦은 저녁을 먹게 되었다. 먹는 도중 정전이 되어 칠흑 같은 어둠을 맛보았다. 북한에 5박 6일 체류하는 동안 유일한 정전이었다.

묘향산 어귀에는 김일성과 김정일이 받은 선물 들을 전시해 놓은 국제친선전람관이 있다. 생각보 다 규모가 크고 선물들도 다양했다. 김일성에 대한 선물이 16.5만 점, 김정일에 대한 선물이 5.5만 점 전시되어 있다고 한다.

서산대사의 유적이 깃든 보현사를 방문하고 나 서 묘향산 등반을 했다. 만폭동을 따라서 한 시간 가량을 올라갔는데, 설악산 백담사 계곡과 비슷한 느낌이 들었지만 설악산에 비해 계곡이 조금 더 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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았던 것 같다. 묘향산은 높이 1,909m로 지리산과 비슷하지만 산세가 더 가파르다.

강원도의 산들이 45도 각도라면 묘향산은 60도 각도쯤 되는 것으로 느껴진다고 할까. 높은 산봉우 리들이 멀리 보이는 게 아니라 가까이에서 바로 치 솟아 있다. 경치는 비경 그 자체! 다만 보는 맛이 조금씩 다르다.

마지막 날

1. 평양골프장

마지막 날에는 평양골프장을 찾았다. 평양골프장 은 18홀 정규홀로서 1980년대 중반 건설되었다. 평 양에서 서남쪽으로 약 40분 거리에 그리 높지 않은 구릉지에 조성되어 있었다. 한 가지 특징은 면적 제 한이 없이 만들어서 그런지 홀들이 붙어 있는 법이 없다. 골프 코스는 그리 길지는 않은 편(=regular tee에서 5,851야드)이었고 페어웨이는 넓고 해저드 는 거의 없었다.

2. 귀국 및 마무리

고려항공을 통해 평양을 떠나 김포공항으로 귀국 했다. 유화분위기 때문인지 공항에서 짐을 뒤지는 등의 심한 검사가 없었다. 평양에서의 5박 6일을 한마디로 정리할 수는 없겠지만, 이번 방문을 통해 남과 북은 워낙 문화적 동질성이 강하다는 점을 알 수 있었다. 다만, 체제유지에 지나치게 많은 자원을 투입한 나머지 사회나 경제적으로 비효율의 늪에 서 빠져나오지 못하고 있는 것처럼 보였다. 개선문 이나 주체사상탑과 같은 상징 건물들이 그렇고, 통 행량이나 교통수요의 개념이 없는 드넓은 고속도

로가 그랬다. 외국에서 이미 다 개발된 소프트웨어 프로그램을 수입하기보다는 스스로 개발해 내겠다 는 나홀로식 경제운영의 비효율도 느껴졌다. 학생 소년궁전이나 인민대학습당과 같은 학습시설에 막 대한 자원을 배분하는 자본주의 체제와는 또 다른 자원배분의 기준도 볼 수 있었다. 물론 여기에도 어 김없이 체제우월성 과시라는 정치적 고려가 작용 하고 있을 것이다.

북한과의 교류가 확대되면서 이런 점들은 계속 부딪히게 될 문제들이다. 차근차근 서로 접촉해 가 면서 점차 변화되어 갈 것으로 기대한다. 여러 분야 에서 북한과의 접촉이 이루어지고 있지만 특히 국 토계획과 인프라 분야에서의 관심도 제고할 필요 가 있다.

기 고

참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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