투고일_2019.04.10 심사기간_2019.05.01-14 게재확정일_2019.05.15
시의 분행(分行)으로 살펴본 타이포그래피의 분절(分節) 유형 연구
A Study on the Articulation of Typography based on the Line-break of Poetry
김효남_서울과학기술대학교 대학원
Kim, Hyo Nam_Graduate School of Seoul National University of Science and Technology
차례 1. 서론
1.1. 연구의 배경 및 목적 1.2. 연구의 방법 및 범위
2. 분행 및 분절의 배경
2.1. 현대 시와 타이포그래피의 사상적 배경 2.2. 시의 분행
2.3. 타이포그래피의 분절
3. 시의 분행 유형 3.1. 의미 강조의 분행 3.2. 비통사적인 분행 3.3. 조형적인 분행
4. 시의 분행으로 살펴본 타이포그래피의 분절 유형 4.1. 기능적인 분절
4.2. 비관습적인 분절 4.3. 조형적인 분절
5. 결론 참고문헌
시의 분행(分行)으로 살펴본 타이포그래피의 분절(分節) 유형 연구
A Study on the Articulation of Typography based on the Line-break of Poetry
김효남_서울과학기술대학교 대학원
Kim, Hyo Nam_Graduate School of Seoul National University of Science and Technology
요약 시와 타이포그래피는 작품의 주 재료인 글을 세밀하게 다루는 예술과 디자인 분야이다. 19세기 말에서 20세기 초에 두 분야는 유럽의 전위 예술 운동들의 영향으로 과거의 엄격한 규율에서 벗어나 현대적인 이론들을 정립 하게 되는 중요한 전환점을 맞았다. 이런 국제적이며 급진적인 예술 운동들로 인해 시이면서 타이포그래피적인, 즉 두 분야를 넘나드는 작품이 많이 등장하게 되었으며, 기법의 측면에서도 공통적인 속성을 공유하게 되었다.
이 논문은 시와 타이포그래피가 언어적 의미와 시각적 조형성을 고려하여 시행(혹은 텍스트의 글줄)을 나눈다는 공통적인 속성에 주목하였다. 따라서 시의 분행(分行)을 분석한 후, 그것을 바탕으로 타이포그래피의 분절(分節) 유형을 이론적으로 분석하는 것을 목표로 연구를 진행하였다. 분석 대상은 국내작품으로 한정하였는데, 시는 1894년 이후의 한국 근대시부터 현재까지의 시 전체이며, 타이포그래피는 2000년대 이후에 발표된 작품들이 다. 연구 순서로는 먼저 시의 분행과 타이포그래피의 분절의 개념 및 배경을 살펴보았다. 이후 시의 분행을 유 형별로 구분한 후, 해당하는 이론으로 예시작품을 분석하였다. 시의 분행 유형은 첫째, 의미강조의 분행이다. 둘 째, 비통사적인 분행이다. 셋째, 조형적인 분행이다. 이러한 분석을 토대로 타이포그래피의 분절을 유형별로 나 누어 작품에 적용되는 효과를 이론적으로 분석하였다. 타이포그래피의 분절 유형은 첫째, 기능적인 분절이다.
텍스트를 논리적이고 명료하게 배열하는 한편, 단어의 의미를 강조하는 분절이다. 둘째, 비관습적인 분절이다.
일반적인 타이포그래피 규칙으로는 끊지 않는 부분에서 글줄을 끊어서 독자들이 한번 더 의미를 음미하도록 하 는 분절이다. 셋째, 조형적인 분절이다. 주제를 보다 효과적으로 전달하기 위해 텍스트로 시각적인 형태를 만드 는 분절이다. 이러한 분석 결과를 통해 타이포그래피의 분절의 유형 및 효과를 논증할 수 있었다. 이번 연구가 분행 혹은 분절에 따라 달라지는 텍스트의 의미와 배열, 시각적 형태에 대한 기초적인 논의가 되었으면 한다.
Both poetry and typography are classified as art and design fields that deal with writing, a major material for work, in an elaborate manner. The two fields grew out of old strict rules under the influence of avant-garde in Europe and established modern theories during a turning point in the late 19th century and early 20th century. These radical art movements gave birth to a myriad of work that crossed the line between the two fields, which also shared common attributes in the aspect of technique. This study focused on a common attribute of breaking lines in a text by taking into consideration the linguistic meaning and visual formativeness of poetry and typography. After analyzing the line-break of poetry, the study aimed to analyze the articulation of typography based on the analysis results. The scope of poetry spanned modern Korean poems from 1894 to the present day. The scope of typography includes work published since the 2000s. The study first examined the background of line-break in poems and articulation in typography. The study then distinguished the line-break of poetry according to its types and analyzed example work. There were three types of line-break in poems: a line-break to emphasize meanings, a non-syntactic line-break, and a formative line-break. Based on these analysis results, the investigator divided the articulation of typography into different types and analyzed their effects theoretically. There were three articulation types of typography: first, functional articulation put an emphasis on the meanings of words; second, unconventional articulation helps readers appreciate meanings once more by breaking a line at points different from general typography rules; finally, formative articulation creates a visual form of the text.
Based on these analysis results, the study was able to demonstrate the articulation types of typography and their effects. The findings of the study will hopefully provide a discussion about the meanings of texts that vary according to line-break or articulation.
중심어
분행 분절 낯설게하기 시행엇붙임 구체시
ABSTRACT Keyword
line-break articulation defamiliarization enjambment concrete poetry
1. 서론
1.1. 연구의 배경 및 목적
시가 시인이 특별히 선택한 시어들을 조탁하여 배열한 예술적인 글이라면, 타이포그래피 작품 은 디자이너가 텍스트를 분석하여 의미와 조형성, 기능성 등을 고려해 배열한 디자인 결과물이 다. 두 분야는 글을 주 재료로 삼기 때문에 각기 다른 분야임에도 불구하고 발전 과정에서 예술적인 유사성을 보인다. 특히 19세기 말부터 20세기 초에 일어난 유럽의 전위적인 예술 운동들이 전 세계적으로 퍼지면서 시와 타이포그래피 역시 그 영향을 받아 급진적으로 변했다.
이 시기에는 시와 타이포그래피, 두 분야의 경계를 넘나드는 실험적인 작업들이 많이 시도되었 고, 이는 결과적으로 두 분야의 스펙트럼을 더욱 폭넓게 하는 계기가 되었다. 두 분야에 걸친 실험적인 시도들 중 이 논문에서 논의하고자 하는 것은 시의 행갈이(‘분행(分行)’으로 통일)와 이를 통해 살펴본 타이포그래피에서 글줄을 분절(分節)하는 방식이다. 즉, 한국 현대시의 분행 의 이론 및 효과에 대해 분석한 후, 이를 토대로 타이포그래피의 분절의 원리와 효과를 논하고 기존의 타이포그래피 작품들을 분절의 관점에서 해석하는 것이 이 논문의 목적이다. 이를 위해 분행 및 분절의 배경을 각각 살펴본 후, 시의 분행을 유형별로 분석하였다. 시의 분행은 시어의 의미를 강조하고, 비통사적인 분행으로 낯설게 하며, 조형적인 분행으로 예술성을 높이는 방식 으로 구분할 수 있었다. 또한 시의 분행에 대한 분석을 토대로 타이포그래피에서 글줄을 분절 하는 방식을 살펴보았다. 타이포그래피의 분절은 기능적으로 분절하고, 비관습적인 분절로 낯설게 하며, 조형적인 분절로 시각적인 효과를 높이는 방식으로 분류할 수 있었으며, 이론적 인 고찰과 함께 각 유형별로 예시 작품들을 분석하였다.
1.2. 연구의 방법 및 범위
이 논문의 직접적인 분석의 대상이 되는 한국 현대시와 타이포그래피 작품들은 서적·논문·웹 사이트를 중심으로 수집하였다. 타이포그래피 작품은 필요한 경우 텍스트의 분석을 위해 간단 한 보정작업을 거쳤다. 대부분의 작품들은 가장 왼편에 원작을, 오른편으로 갈수록 원작을 분석한 이미지들을 제시하여 논의를 진행하였다.
연구의 범위는 수월한 논의를 위해 공론이 형성된 우리나라의 현대시인 혹은 디자이너들의 작품들 중 분행 및 분절이 뚜렷하게 나타나는 작품들을 주요한 분석 대상으로 삼았다. 현대시 의 연구 범주는 학자들마다 이견이 있을 수 있지만, 고전시가의 정형률을 점차 벗어나고 노래 체로부터 분리되기 시작한 1894년 갑오경장 이후1)의 근대시부터 현재까지의 시 전체로 하였 다. 타이포그래피의 경우 작품에서 텍스트의 비관습적인 분절이 두드러지게 나타나기 시작했 으며 타이포그래피에 대한 학술적인 연구가 비약적으로 증가한 2000년대 이후2)의 국내 디자 인 작품으로 하였다.
2. 분행 및 분절의 배경
디이터 람핑(1994)은「서정시: 이론과 역사」에서 시를 ‘시행을 통한 발화’로 규정하고 있으 며, 이 시행 발화는 ‘특별한 분절’을 통해 리듬이 정상 언어적인 발화에서 벗어난 모든 발화를 일컫는다고 말한다. 또한 람핑은 이 분절은 일반적인 산문의 통사론적인 분절로는 요구되지 않는 휴지(pause)를 가지는 것이라고 말한다.3) 따라서 이 논문에서는 분행을 ‘시인이 특별한 의도를 가지고 시어의 의미와 리듬 등을 고려하여 행을 나누는 행위’로 정의하였다. 또한 타이 포그래피의 분절을 ‘디자이너의 의도에 따라 원문(text)을 분절한 후, 의미와 기능성, 시각적 인 조형성 등을 고려하여 공간에 배열하는 행위’로 정의한 후 논지를 전개하였다.
1) 오세영, 김영철, 최동호, 남기혁, 고형진, 김현자, 송기한, 이숭원, 박현수, 유성호, 맹문재, 『한국 현대시사』, 서울:(주)민음사, 2007, p.7
2) 함성아, 「타입과 타이포그래피 연구 동향 분석 : 국내 석·박사 학위 논문을 중심으로」, 한성대학교 석사학위논문, 2015, p.58 3) 디이터 람핑, 『서정시: 이론과 역사』, 장영태 역, 서울: 문학과지성사, 1994, pp.38-40
2.1. 현대 시와 타이포그래피의 사상적 배경
현대 시와 현대 타이포그래피에서는 글을 배열하는 방식이나 글줄의 시각적인 형태, 과감한 언어실험 형식의 측면에서 학문의 경계를 구분하기 어려운 작품들이 종종 등장하는데, 그 배경 으로는 19세기 말에서 20세기 초에 유럽을 중심으로 활발히 진행된 실험적인 예술 운동의 영향을 들 수 있다. 그 당시 유럽에서는 정치, 문화, 경제 등 사회 전반에 걸쳐 근본적인 변화가 일어났다. 많은 나라에서 군주제가 폐지되고 민주주의 혹은 공산주의가 세워졌으며, 과학기술 이 비약적으로 발전함과 동시에 제 1~2차 세계대전으로 수많은 사람들이 목숨을 잃는 등 정세 가 급변하던 시기였다. 이런 불안정한 기류 속에서 유럽의 예술가들 역시 시대의 영향을 받아 전통과의 단절을 통해 혁신을 꿈꾸었으며, 이들의 예술 운동은 회화, 시, 건축, 그래픽디자인 등이 서로 긴밀하게 교류하면서 발전하는 사상적 기반이 되었다. 1909년에 미래파 선언으로 시작한 미래파, 제 1차 세계대전이라는 시대적 배경 가운데 일어난 다다 및 러시아 형식주의자 들은 전통적인 시작법에서 벗어나 그들의 이론에 따른 다소 과격하고 실험적인 작품들을 선보 였다. 아래의 시들은 그 당시 예술 운동의 실험적인 성향을 반영하는 대표적인 작품들인데, 이들의 작품은 시이면서 동시에 타이포그래피적인 특징을 지닌다.
상징파 시인인 스테판 말라르메는 <주사위 던지기>4)에서 대문자, 소문자, 이탤릭체 등을 사용하여 시행을 지면에 감각적으로 배열하였으며, 시의 억양 및 리듬 등을 활자의 종류 및 무게로 구분을 두어 타이포그래피 기법을 사용한 악보와 같이 나타냈다. 미래파 시인인 필리포 마리네티는 <장 툼 툼>5)을 통해 단어를 지면 위에 적절히 배열하고, 활자의 무게와 크기를 다르게 하여 타이포그래피적인 방식으로 소리와 분위기를 표현하고 있다. 기욤 아폴리네르는
<칼리그람>에서 「상처 입은 비둘기와 분수」6) 등의 시들을 조형적인 시행배열을 통해 타이 포그래피와 회화의 영역에서 표현하고 있다.
이처럼 유럽 아방가르드의 예술 운동들은 시인과 디자이너들로 하여금 시행 및 글줄을 분행 및 분절하여 공간에 자유롭게 배열하도록 이끌었으며, 활자의 종류와 무게, 컬러를 다양하게 변용한 글자들을 한 지면에 동시에 사용하는 등의 타이포그래피적인 방법을 활용하여 작품의 시각적인 표현성을 높였다.
2.2. 시의 분행
우리나라의 시에서 자유로운 분행이 시작된 것은 개화 이후 일본을 통해 유입된 서양 문화의 영향을 받은 근대시부터다. 개화 전 고전시가들은 비교적 엄격한 정형률의 틀 안에서 지어졌기 때문에 시인이 자유롭게 분행할 수 없었고, 행의 배치 역시 고정되어 있었다. 이런 엄격한 제약을 벗어나 근대시가 형성되었던 배경에는 서구의 신식 인쇄기술의 영향과 앞에서 기술한 20세기 초에 유럽에서 활발히 진행되었던 급진적이고 실험적인 예술 운동들이 있었다.
4) 필립 B. 멕스, 『그래픽 디자인의 역사』, 황인화 역, 경기: 미진사, 2011, p.274 5) https://www.moma.org/collection/works/31450
6) 앞의 책, 필립 B. 멕스, p.274
<그림 1> 좌측부터 순서대로 스테판 말라르메의 <주사위 던지기>, 필리포 마리네티의 <장 툼 툼>, 기욤 아폴리네르의 <칼리그람>
중 「상처 입은 비둘기와 분수」
먼저 1880년대에 서구의 신식 인쇄기술이 근대식 납활자와 인쇄기와 함께 일본으로부터 조선 에 도입되었으며, 이는 근대시 형성에 중요한 영향을 끼쳤다. 1908년에 발행된 우리나라 최초 의 근대 잡지 <소년>에 수록된 최남선의 시 「우리의 운동장」7)은 시행의 형태적인 부분에 서 고전시가에서는 볼 수 없었던 새로운 배치를 보여주고 있다.8)
최남선은 당시 인쇄소를 설립하고 편집과 조판 및 인쇄과정 전반을 직접 담당할 만큼 남다른 인쇄지식을 가지고 있었기 때문에 그의 시 역시 근대식 인쇄기술로부터 직·간접적인 영향을 받았다. 이처럼 서구의 발달된 활판인쇄 방식이 조선에 적극적으로 도입되면서 낭송하거나 노래로 부르던 청각적인 시에서 점차 인쇄매체를 통해 감상하는 시각적인 시로 전환되었다.9) 이에 따라 시인들은 지면에 인쇄된 시의 활자성10)에 관심을 가지게 되었고, 자연스럽게 타이 포그래피적인 표현방식에 주목하였다. 개화 이후의 시에 나타난 이러한 변화들은 1910년대에 이르러 정형률이 파괴되고 행과 연의 자수 구속과 노래체가 제거된 자유시11)의 형성에 중요한 역할을 하였다.
또한 우리나라는 유럽의 아방가르드 운동의 흐름을 일제강점기 시절 간접적으로 수용하였다.
한국 문단에서 처음 수용했다고 거론되는 서구의 예술 운동은 상징주의인데, 1920년대 초기 에 큰 영향을 끼쳤다.12) 그 후 1920년대 중반 다다, 러시아 형식주의 등을 받아들이는 단계를 거쳐 1930년대에 등장한 모더니즘 시들부터 우리나라의 현대시가 본격적으로 펼쳐졌다.13) 이러한 배경 하에 우리나라의 시는 고전시가에서 신체시를 거쳐 자유시로 전환되었다. 또한 시 형식의 변화과정에서 활자성이 주목받기 시작하면서 이상과 같은 몇몇 실험적인 시인들은 다양한 활자 크기, 바탕체와 돋움체의 혼용, 콜라주, 독특한 분행 및 배열 등의 시각적인 방식
7) 최남선, 『綜合索引集 : 六堂 崔南善全集』, 서울: 문학자료원문사, 1977, pp.32-33
8) 류순태는 이러한 형태화는 1910년대 후반의 시가에서도 보기 힘든 독특한 것이며, 마치 ‘타이포그라피’와 같은 적극적인 활자의 배치가 그렇게 배치하기 전과 다른 색다른 리듬을 낳았다고 하였다. (류순태, 『한국 현대시의 방법과 이론』, 서울:푸른사상사, 2008, p.140)
9) 김준오는 신체시의 의의는 형식의 새로움보다 제시형식의 변화, 즉 노래로 불리던 듣는 시가(詩歌) 에서 인쇄물로써 전달되는 보는 시(詩)로의 전환에 그 의의가 있다고 밝혔다. (김준오, 『시론』, 제4판; 서울: 삼지원, 2011, p.55) 또한 월터 J. 옹은 구술문화에서 문자문화로의 변화를 가져온 중요한 요인 중의 하나는 ‘인쇄’였으며, 이는 서구의 생활양식을 전반적으로 변화시켰다고 밝혔다. (월 터 J. 옹, 『구술문화와 문자문화』, 이기우·임명진 역, 제2판; 서울: 문예출판사, 1997, pp.179-180 참조) 이는 언어의 전달 방식 이 변하는 것은 단순히 매체가 바뀐 것을 의미하지 않으며, 문학의 형식과 더 나아가 삶 전반에 중대한 변화를 가져오는 역할을 하였음을 시사한다.
10) 활자성(type-ness)이란 언어가 활자로 인쇄되었을 때 가지게 되는 형태적인 인상 및 물성에 대한 관심이다. 즉 활자가 가진 고유 의 표현적인 성질이자 활자가 모여 이룬 텍스트 전체의 형태와도 관계가 있다. (안상수, 「타이포그라피적 관점에서 본 李箱 시에 대한 연구」, 한양대학교 박사학위논문, 1995, p.67)
11) 오세영, 김영철, 최동호, 남기혁, 고형진, 김현자, 송기한, 이숭원, 박현수, 유성호, 맹문재, 『한국 현대시사』, 서울:(주)민음 사, 2008, p.83
12) 1920년대 한국 근대 시단에서 이 운동의 영향을 받지 않은 시인이 드물었다고 밝힐 만큼 상징주의는 자유시의 운율과 기법 등 에 큰 영향을 끼쳤다. (위의 책, p.101)
13) 위의 책, pp.111-112
<그림 2> 최남선의 「우리의 운동장」 중 행 배치 변화 전(좌)과 후(우)
으로 시를 표현하였다. 이러한 예술 흐름들은 우리나라의 시에서 분행이 일어나게 된 과정이자 타이포그래피적인 표현이 시에 나타나게 된 배경이 되었다.
2.3. 타이포그래피의 분절
타이포그래피가 다루는 범위는 그래픽디자인 전반이라 할 만큼 폭이 넓어졌지만, 일반적으로 는 인쇄와 출판, 글꼴과 관련한 제반 기술 및 거기에서 파생되는 지식을 일컬을 것이다. 이용제 (2011)는 타이포그래피에 대해 “<활자>를 <배열>하면서 <공간을 구성>하는 <운용>의 과정 전체”로 용어를 구분지어 설명하였다.14) 이번 연구는 텍스트의 배열·공간구성 및 운용의 영역에서 분절이 어떻게 발생하는지에 초점을 맞춰 진행하였다.
우리나라의 현대 타이포그래피는 세계적인 타이포그래피의 발전과정과 맥을 같이한다. 현대 타이포그래피는 시와 마찬가지로 앞서 살펴본 유럽 아방가르드, 특히 미래파의 실험적인 시 및 입체파 회화, 러시아 구성주의 등의 영향을 받아 발전하였으며, 이들이 깨뜨린 전통적인 레이아웃은 타이포그래피의 텍스트 분절방식에 영향을 미쳤다. 산세리프와 비대칭적인 정렬 이 특징인 뉴 타이포그래피 운동으로 얀 치홀트를 비롯한 디자이너들은 기능성과 명료성을 드러내는 방식으로 텍스트를 분절하여 배치하기 시작했다. 이후 1950년대에는 바젤과 취리히 에서 국제 타이포그래피 양식이 일어났다. 스위스는 4개 언어를 사용하는 만큼 복잡한 텍스트 를 명료하면서도 일관성있게 표현해야 하는 사회적 필요가 있었으며, 이들은 텍스트를 기능적 으로 분절하여 엄격한 그리드에 맞춰 이성적이고 논리적인 방법으로 배치하였다.
이러한 발전 과정을 거쳐 2000년대 이후의 타이포그래피에서는 텍스트를 비관습적인 위치에 서 분절하여 배열하는 작품들이 등장했다. 이런 작품들의 텍스트의 분절을 김형진·최성민 (2016)은 ‘글줄 끊어 쌓기’라는 용어로 설명하고 있다. 글줄 끊어 쌓기란 텍스트를 여러 행으 로 나눠 쌓아 의미를 강조하고, 시각적인 리듬 효과를 일으키거나 혹은 그리드에 맞춰 텍스트 를 배열하였을 때 짜임새를 강조하는 효과가 있는 기법이다.15) 이 용어에서 주목할 부분은
‘쌓기’인데, 이 단어를 통하여 텍스트가 드러내는 조형적인 성질을 효과적으로 설명하고 있다.
또한 이전에는 시도하지 않았던 좀더 낯설고 과감한 위치에서 글줄을 분절하여 조형성과 언어 적 속성을 함께 고려한 시적인 타이포그래피 작업들이 주목받고 있다. 그 예로 <타이포잔치 2013>에서는 디자이너가 글을 해석하고 표현하는 전 과정을 통해 타이포그래피의 문학적인 속성을 탐구하였다. 그중 ‘무중력 글쓰기’에서는 디자이너 7인과 시인 7인이 짝을 이루어 협업 하였는데, 그 결과물로 시를 키네틱 타이포그래피로 표현하여 서울스퀘어의 미디어 캔버스에 서 상영했다. 그중 <그림 3>은 박준×강경탁의 「슬픔은 자랑이 될 수 있다」16), 심보선×노 은유의 「둘」17), 오은×크리스 로의 「말」18) 의 도판인데, 시가 어떤 표현 방식으로 디자이 너에게 재해석되어 공간상에 분절 및 배치되는 지를 살펴볼 수 있다. 이처럼 타이포그래피는 디자인의 영역뿐만 아니라 언어예술 분야와의 협업을 통해 텍스트의 문자적 속성에 대한 탐구 를 지속하고 있다.
14) 이용제, 「한글 타이포그라피 교육의 공유와 연대 제안」, 『글짜씨』, 3권 1호, 2011년 6월, p.813
15) 김형진, 최성민, 『그래픽 디자인, 2005~2015, 서울―299개 어휘』, 서울: 일민문화재단·작업실유령, 2016, p.56 16) http://typojanchi.org/2013/kr/dictation_kr/#contents
17) http://typojanchi.org/2013/kr/ambiguity_kr/#contents 18) http://typojanchi.org/2013/kr/process_kr/#contents
<그림 3> 타이포잔치 2013 무중력 글쓰기 중 순서대로 박준×강경탁의 「슬픔은 자랑이 될 수 있다」, 심보선×노은유의
「둘」, 오은×크리스 로의 「말」 (ㅁ은 빈공간으로 표기)의 도판
3. 시의 분행 유형 3.1. 의미 강조의 분행
시는 산문에 비해 적은 단어로 함축적인 의미를 표현한다. 또한 시어는 사전적이고 일상적인 단어의 의미뿐만 아니라 시적인 의미를 내포하는 등 다의성을 지닌다. 이렇듯 시에서는 호흡 하나, 단어 하나에도 의미를 두고 배열하기 때문에 시의 분행은 시인의 의도가 적극적으로 반영된 것이다. 독자들은 분행된 곳에서 시선의 흐름을 멈추고 휴지를 가지게 되며, 이 시각적 흐름의 단절로 인해 시어를 보다 깊이 음미하게 되고, 결과적으로 의미가 강조된다.
우리나라의 시에서 분행을 기법적으로 사용한 것은 근대시부터인데, 우리나라 근대시인들은 전 통율격을 계승하면서도 한편으로는 분행이나 합행, 음보의 혼합 등을 통해 다양한 변용을 시도하 였다.19) 이때 그들이 사용한 분행은 러시아 형식주의자들의 ‘낯설게 하기(defamiliarization)’라 는 개념을 통해 설명할 수 있다. 1910년대 중반부터 1920년대에 활동한 러시아 형식주의자들 은 ‘낯설게 하기’로 인식의 자동화를 파괴함으로써 독자들이 신선한 감각으로 보게 하는 것이 예술의 목적이라고 생각하였다. 이들은 시의 정형률을 파괴하면 시가 독특한 리듬을 형성한다 고 보았는데, 우리나라 현대시에서는 김소월과 박목월의 시가 민요조이면서 동시에 정형률을 파괴하여 독특한 리듬을 생성한 좋은 예시다.
김소월의 「산유화」20)는 3음보의 전통율격에서 분행으로 시행의 변화를 주고 있다. 3음보를 2음보와 1음보로 분행하거나, 1음보씩 분행하거나, 3음보 그대로인 행 등 다양한 시행 구성을 보인다. 3음보의 정형률이 분행으로 파괴되면서 독자에게 리듬면에서 신선한 효과를 주는 것 과 동시에 시어의 의미가 강조되고 있다.
박목월의 「청노루」21)는 4음보의 전통율격을 1음보와 3음보로, 다음 4음보는 1음보씩 분행 한 후 ‘맑은 눈에’에서 연을 구분하여 동양화적인 아름다움을 표현하고 있다. 이 시는 느릅나 무, 청노루, 구름 등 체언에서 분행한 시행이 많으며, 잦은 분행으로 인해 상대적으로 시어 하나 하나가 감응시키는 공간이 넓어졌다. 분행은 시어의 의미를 강조해주는 동시에 시적 공간 에 울림을 준다.
19) 전영근, 「한국 현대시의 시행 구성 연구」, 조선대학교 박사학위논문, 2004, p.15 20) 민예원 편, 『한국인이 가장 좋아하는 명시 100선』, 서울: 민예원, 2003, p.98 21) 위의 책, p.112
<그림 4> 김소월의 「산유화」 중 일부(좌)와 분석(우)
<그림 5> 박목월의 「청노루」 중 일부(좌)와 분석(우)
이렇듯 시어의 공간적인 울림에 관한 시로 김종삼의 「성당」22)을 들 수 있는데, 분행을 활용 하여 성당이라는 공간을 효과적으로 표현하고 시어의 의미 하나 하나를 강조하고 있다. 행과 행 사이에 한 행 만큼의 거리를 두고 분행하여 성당에서 느낄 수 있는 경건한 분위기와 공간의 울림을 효과적으로 표현하였고, 체언으로 끝나는 시행에서는 호흡이 단어의 끝에서 잠시 중지 되면서 시어의 의미를 음미하는 동시에 심상이 극대화되고 있다.
3.2. 비통사적인 분행
시에서는 일상적인 산문에서는 글줄이 나뉘지 않을 부분, 즉 통사적인 연결을 의도적으로 끊는 분행을 사용하여 특정 시어를 강조하거나, 시어의 의미가 양행에 걸쳐서 적용되게 하는 시행엇 붙임(앙장브망, enjambment)과 같은 장치를 사용한다. 시의 전개에 있어서 중요한 순간에 통사적인 연결을 끊고 분행할 경우, 독자는 호흡이 멈추는 곳에서 시어의 의미를 다시 한 번 생각하게 되고, 이것이 반복될 경우 시에 독특한 분위기가 형성된다. 윤동주의 시와 김수영의 시에서 이러한 장치를 살펴볼 수 있다.
윤동주의 「십자가」23)를 먼저 살펴보면, 예수 그리스도가 여러 시적 장치에 의해 강조되고 있다. 일차적으로 ‘괴로웠으나 행복한’이라는 역설적인 표현으로 강조하였고, 이후 ‘예수 그리 스도에게처럼’에서 ‘에게’와 ‘처럼’을 분행하였다. 이들은 조사이므로 함께 한 행에 있는 것이 통사적으로 자연스러우나, 의미의 연결을 끊고 분행하여 독자들이 한 행에 남겨진 ‘처럼’을 통해 시인의 소망을 재차 확인하게 된다.
다음으로는 본격적인 시행엇붙임을 통해 시어의 의미를 한 행에서 다른 행까지 확장시키는 경우다. 시행엇붙임은 자유시에서 행을 바꿀 때 시어간의 통사적인 연결을 끊고 아래 행으로 내리거나, 또한 아래 행에 있어야 통사적인 시어를 윗 행에 올려두는 기법이다. 김수영은 시행 엇붙임을 시적 장치로써 빈번하게 사용하였으며, 그의 「어느 날 고궁을 나오면서」24)도 그러 한 시들 중 하나다.
이 시에서 ‘서 있지/ 않고’ 와 ‘조금쯤/ 비겁한 것’은 한 행에 있는 것이 통사적으로 자연스럽다.
그러나 의미의 연결을 강제적인 분행으로 끊어 시어의 의미가 다른 행으로 걸치게 하였다.
22) 권명옥 편, 『김종삼 전집』, 파주: 나남출판, 2005, p.198
23) 민예원 편, 『한국인이 가장 좋아하는 명시 100선』, 서울: 민예원, 2003, p.92 24) 김수영, 『김수영전집: 시. Vol. 1.』, 개정판; 서울: 민음사, 2003, p.314
<그림 7> 윤동주의 「십자가」 중 일부(좌)와 분석(우)
<그림 6> 김종삼의 「성당」 전문(좌)와 분석(우)
시행엇붙임이 일어난 부분은 행의 말미에서 양행 모두 영향을 받는 것을 알 수 있다.
3.3. 조형적인 분행
시에서 분행을 통해 조형성을 드러낸다면, 이는 시를 통해 전달하고자 하는 전반적인 분위기를 느끼도록 분행하는 경우부터 시행의 형태가 시각 기호로서 직접적인 대상을 본뜬 것까지 다양 할 것이다. 대개 시의 경우 시어의 의미와 행이 만드는 시각적 형태를 함께 고려하여 분행하지 만, 시어의 의미보다는 언어로서의 물성 및 조형성에 주목한 구체시의 경우 형태 그 자체가 직접적인 대상을 지칭하기도 한다. 이육사는 「광야」25)에서 분행을 통해 시행의 길이를 조절 하여, 뻗어나가는 민족적 기상이라는 의미를 효과적으로 전달하고 있다.
「광야」의 경우, 전체 5연에 각 연이 3행으로 이루어진 시다. 강홍기(1999)는 이 시가 아래 행으로 내려갈수록 2음보에서 음보수가 하나씩 많아지면서 시행이 길어지는 형태26)가 되도록 의도적으로 배치되었고, 이를 통해 남성적인 어조와 강직함을 느끼게 해준다고 하였다. 시의 형태와 그로부터 느껴지는 정서가 불가분의 관계라는 사실을 이 시의 분행을 통해 확인할 수 있다.
이런 조형적인 분행이 극대화된 경우가 바로 구체시다. 구체시는 시행을 분행하여 시의 주제를 시각적으로 표현하거나, 극히 제한된 단어의 반복으로 공간을 채워 형태를 만든다. 황지우의
「무등」27)은 산을 시각적으로 형상화한 구체시다.
이 시는 산 꼭대기에서 아래로 내려갈수록 황폐한 산의 이미지에서 점점 힘차게 일어나는 산의 이미지로 전개되고 있다. 이는 시행이 단순히 무등산의 형태를 기호화 한 것이 아니라, 5.18을 겪은 광주의 고통에서 산 아래로 내려갈수록 단단하게 바닥을 받치고 있는 것은 넉넉하게 감싸 주는 어머니같은 산이라는 의미를 드러내고 있다. 시는 중간 중간 비통사적인 분행과 띄어쓰기 없이 쏟아지는 듯한 시어들로 호흡을 불규칙하게 조절하여, 불안정하고 급박하지만 힘찬 생명 력을 느끼도록 표현하고 있다. 무등산의 의미가 고통으로부터 점차 역동적인 생명력으로 변모 하는 과정을 조형적인 분행을 통해 효과적으로 드러냈다.
25) 홍철부 편, 『내 영혼의 숲에 내리는 마음의 시』, 서울: 문지사, 2009, p.302
26) 강홍기는 이렇듯 행이나 연이 길이나 양감이 점차 가중되거나, 내용이 심화되는 구조는 상승적이며 팽창적 리듬인 ‘점층률’을 만 들어낸다고 설명한다. (강홍기, 『현대시 운율 구조론』, 서울:태학사, 1999, p.196)
27) 황지우, 『겨울-나무로부터 봄-나무에로』, 제2판; 서울: 민음사, 2011, p.78
<그림 9> 이육사의 「광야」 중 일부(좌)와 분석(우)
<그림 8> 김수영의 「어느 날 고궁을 나오면서」 중 일부(좌)와 분석(우)
다음으로는 구체시의 특징을 단적으로 보여주는 고원의 「구체시」28), 「구체시(부제: 구체 시, 혁신인가 구식인가)」29), 「훈민정음 사계」 중 가을30)을 살펴보도록 하겠다.
고원은 그의 논문에서 시의 한 가운데에 자음 ㅅ(그는 ㅅ을 알파벳 A의 상징성과 비슷하게 보았다.)을 두고, 이를 ‘구’라는 한글 한 음절로 둘러싼 한글구체시를 선보였다. 그후 구체시에 대해 독자들이 가질 법한 질문에 맞추어 시를 유희적으로 개작하였다. 가로 세로 5음절이 되도 록 균일하게 분행한 직사각 형태에서, 훈민정음 사계에 이르러 화살표 모양의 조형적인 행으로 시각적으로 재배열하고, 글자에 둘러싸여 있던 ㅅ 역시 ㅈ,ㅊ,ㅎ으로 변형하여 한자로 이루어 진 화살표 앞에 둠으로써 한자 문화권 가운데 드러난 한글의 혁신성과 아름다움을 상징적으로 나타냈다.
4. 시의 분행으로 살펴본 타이포그래피의 분절 유형 4.1. 기능적인 분절
타이포그래피에서 분절은 가독성을 위한 시각적 조정 방법으로 사용되거나, 텍스트를 논리적 인 법칙에 따라 공간에 배열하거나, 시에서와 같이 단어의 의미를 강조하기 위해 사용된다.
이때 디자이너의 판단이 본래의 텍스트에 개입하게 되며, 독자는 텍스트의 위계구조에 따라 정보의 중요도를 한눈에 파악할 수 있다.
기능적인 분절은 먼저 텍스트가 소설이나 단행본같이 긴 글줄의 형태로 이어지는 경우에 필요 하다. 왼끝맞추기의 경우, 디자이너는 행이 끝나는 오른쪽 끝 부분의 형태가 두드러져 독서의 흐름을 방해하지 않도록 분절하거나, 통사적인 흐름이 끊겨 행의 끝에서 다음 행의 앞부분으로 가야 의미가 파악되는 경우가 생기지 않도록 적절하게 분절한다.31)
28) 고원, 「선한 한글의 구체시」, 『나라사랑』, 123, 2014년 12월, p.174 29) 고원, 「선한 한글의 구체시」, 『나라사랑』, 123, 2014년 12월, p.175 30) 고원, 「선한 한글의 구체시」, 『나라사랑』, 123, 2014년 12월, p.177
31) 데이비드 주어리는 타이포그래퍼가 언어학적인 근거나 텍스트의 의미에 맞춰 “의도적으로 줄 바꿈(nonarbitrary line breaks)”
을 실행하는 것은 독서의 효율성을 위한 것이라고 말한다. (데이비드 주어리, 『What is Typography?』, 김두섭 역, 서울: 홍디
<그림 10> 황지우의 「무등」 전문(화살표: 필자)
<그림 11> 좌측부터 순서대로 고원의 「구체시」, 「구체시(부제: 구체시, 혁신인가 구식인가)」, 「훈민정음 사계」 중 가을
또한 디자이너가 규칙을 세워 기능적으로 텍스트를 분절하는 경우도 해당하는데, 이와 관련하 여 박우혁(2014)은 타이포그래피의 실질적인 방법론으로 ‘분해’와 ‘조립’을 제시한다. 디자이 너가 가공하지 않은 글줄 상태의 텍스트의 연결을 해제(분절)하고 규칙을 생성하여 다시 조립 하는 일련의 과정에서, 분해된 텍스트는 디자이너가 뼈대와 질서를 파악해서 세운 규칙에 따라 적절하게 조립된다.32) 이는 다양한 정보를 한 면에 명료하게 전달할 수 있게 해주며, 독자가 잘 짜여진 구조 속에서 원하는 정보를 선별적으로 빠르게 찾을 수 있도록 작용한다. 관련된 예시로 워크룸의 「기억의 미래를 좇는 사람들」의 인쇄물33)을 들 수 있다.
이 작업에서는 전시제목, 참여작가, 주최, 일 시, 국·영문 등 각기 다른 정보들이 위계에 맞 게 분절된 후 글자 크기, 글자 무게, 공간 배열 등을 달리하여 명료하게 전달되고 있다. 또한 전시제목은 어절단위로 분절하여 배치되었는 데, 제목에 드러난 3가지 시제를 다른 방식으 로 표현하여 효과적으로 강조하고 있다.
이처럼 디자이너들은 어절 단위로 분절하여 배치하는 방법을 포스터나 책 표지의 제목이 나 주제 등 중요한 정보들의 의미를 강조하기 위해 사용한다. 독자는 분절된 짧은 행의 끝에 서 호흡을 잠시 멈추고 텍스트에 담긴 의미를 되새기면서 어절마다 강조점을 두게 된다. 일상 의실천의「끝나지 않은, 강정: 너와 나는 서로 연결되어 있다」 프로젝트 포스터들34) 역시 어절 단위의 분행이 가져오는 효과를 극적으로 나타낸다.
4.2. 비관습적인 분절
시에서 비통사적인 분행인 시행 엇붙임을 통해서 시어의 의미가 양행에 걸쳐서 작용하는 장치 를 사용하듯, 타이포그래피에서 역시 텍스트의 비관습적인 분절을 사용한다. 독자가 텍스트를 접했을 때 그것이 관습적인 글줄의 형태로 제시될 경우, 새로움이나 흥미를 느끼지 못하고 지나칠 수 있다. 디자이너는 이런 일을 방지하기 위해서 텍스트의 다소 낯선 위치에서 분절을 시도하며, 결과적으로 같은 텍스트라도 분절의 위치에 따라 전달하는 의미나 보여지는 방식이 달라지도록 독자의 시선을 이끈다. 이것은 디자이너가 시를 작품에 적용할 때 원문에는 없었던 의미가 독특한 분절로 어떻게 생성되는지를 통해 확인할 수 있으며, 이에 대한 예시는 박노해 의 「그러니 그대 사라지지 말아라」35)의 마지막 시행을 재해석한 진달래&박우혁의 「아카 이브안녕 신문 vol 02」36) 작품이다.
자인, 2016, p.102 참조.)
32) Park, Woohyuk, Typography Principle by Viewpoint of Part and Whole, Archives of Design Research 27.1, 2014, pp.47-53 참조.
33) 닉 카터, 개릭 웹스터, 에드 리케츠, 딘 에반스, 롭 카니, 배유리, 『print design』, 임형, 정은주 역, 서울: (주)퓨처미디어, 2012, p.341
34) http://everyday-practice.com/portfolio/gj_poster/
35) 박노해, 『그러니 그대 사라지지 말아라』, 서울: 느린걸음, 2010, p.554
<그림 13> 일상의실천의 「끝나지 않은, 강정: 너와 나는 서로 연결되어 있다」 프로젝트 포스터들
<그림 12> 워크룸의 「기억의 미래를 좇는 사람들」 도록
진달래&박우혁은 이 시의 텍스트를 그들의 방 식으로 재해석하였다. 박노해 시의 마지막 부 분은 두 행으로 이루어진 선형적인 글줄이다.
이를 진달래&박우혁은 한 행으로 이은 후,
<그림 15>와 같이 비관습적인 위치에서 분 절하였다. 관습적으로는 ‘희미한 불빛/만’처럼 체언과 보조사 사이를 분절하거나, ‘살아 있다 /면’ 이나 ‘사라지지 말/아라’와 같이 단어를 끊 어 분절하지 않으므로, 디자이너가 의도적으 로 사용한 장치다. 그들은 시에서의 시행 엇붙 임 기법과 같이 비통사적인 위치에서 분절하 여 글줄을 아래로 내렸고, 이를 통해 독자가 시각적으로 낯선 리듬감을 느끼게 하여 글의 의미 를 한 번 더 숙고하도록 하였다.
또한 텍스트를 음절(홀로 발화가 가능한 최소단위)로 분절하여 배열하는 경우도 있다. 일반적 인 본문 타이포그래피의 경우 이름이나 제목의 단어를 한 음절씩 분절하지 않지만37), 눈길을 사로잡아야 하는 포스터나 표지 같은 경우 음절 단위로 분절하여 공간에 배열하면 주목성을 높이고 의미를 강조하는 효과를 낼 수 있다. 슬기와 민이 디자인한 「배영환 展: Song For Nobody」브로셔38)가 그 예시다.
관습적인 본문 타이포그래피에서는 행의 끝 부분에서 다음 행으로 넘어갈 때 어쩔 수 없는 경우에 단어 내부를 끊고 하이픈으로 연결한 다. 그러나 이 브로셔의 표지는 텍스트의 분량 과 공간의 크기 등을 고려했을 때 하이픈으로 연결해야 할 필요성이 있다기보다는, 단어들 을 음절단위로 분절하여 작가명과 전시 제목 이라는 중요한 정보를 강조하여 읽도록 유도 하는 장치로 사용하였다.
마지막으로 비관습적인 분절은 복잡한 시각적 장치로 텍스트의 해석이 난해하게 하여, 전달 하고자 하는 텍스트의 의미의 층위를 깊게 해줄 수도 있다. 이에 대한 예시로는 기욤 아폴리네 르의 시의 한 구절을 인용한 전시 제목, mykc의 「삶은 어찌 이리 느리며 희망은 또 어찌 이리 격렬한가 展」 39)포스터를 들 수 있다.
이 포스터는 한 문장을 크게 두 부분으로 분절한 후, 어절 단위와 음절 단위로 다시 분절하고 있다. mykc는 문장을 삶과 희망으로 크게 분절한 후, 희망에 관한 내용을 밝게 표현하여 강조 하고자 하였다. 따라서 ‘삶-’부분이 왼쪽 위부터 배열되었지만, ‘희망-’부분이 먼저 감상자의
36) https://jinandpark.com/Archiv-Annyeong-Newspaper-vol-02-2011
37) 데이비드 주어리는 “단어 끊기(word break)는 타이포그래퍼가 독자에게 행하는 가장 파괴적인 행위 중 하나”라고 말하며 어떤 위치이든 가능한 피할 것을 권고하고 있다.(데이비드 주어리, 『What is Typography?』, 김두섭 역, 서울: 홍디자인, 2016, p.106), 이는 그것이 일반적인 본문 타이포그래피에서 적용되는 규칙이기 때문이다. 따라서 비관습적인 분절을 할 경우 독자는 신선한 충격을 받게 되고, 결과적으로 텍스트의 의미가 강조된다.
38) http://www.sulki-min.com/wp/bae-young-whan-brochure/
39) http://www.mykc.kr/?portfolio=삶은-어찌-이리-느리며-희망은-또-어찌-이리-격렬한가
<그림 14> 박노해의 「그러니 그대 사라지지 말아라」 중 일부
<그림 15> 진달래&박우혁의 「아카이브안녕 신문 vol 02」 중 일부(좌)와 분석(우)
<그림 16> 슬기와 민의 「배영환 展: Song For Nobody」 브 로셔(좌)와 분석(우)
시야에 들어오게 된다. 또 삶/은, 어/찌, 이/리 등 음절단위로 분절하여 감상자가 텍스트를 한 눈에 분석하는 것을 어렵게 하였다. 그림에서 보듯 감상자는 두 번째와 세 번째의 순서를 거쳐 해독하듯 의미를 파악한 후, 마지막에 문장을 재조합하여 다시 파악하는 복잡한 과정을 거치게 된다. 이러한 비관습적인 분절은 독자가 텍스트를 빠르게 인지하는 것을 방해하여 해독하듯 분석하는 과정을 통해 타이포그래피 작품에 적극적으로 몰입하게 하고, 낯설고 독특한 분위기 를 형성하도록 해준다.
4.3. 조형적인 분절
타이포그래피의 조형적인 분절은 디자이너가 텍스트의 의미와 시각적인 형태를 통해 전반적 인 주제를 효과적으로 전달하기 위해 분절하는 방법이다. 이는 시에서의 조형적인 분행과 함께 살펴볼 수 있는데, 형태와 밀접한 관련이 있는 내용이나 디자인 컨셉에 맞추어 텍스트를 분절 하여 시각적인 형태를 만들어 사용하는 경우부터 시각적인 조형 방식이나 배열 그 자체로 하나 의 주제를 전달하는 경우까지 다양한 방식으로 조형적인 분절이 사용된다. 디자인 컨셉과 방법 에 따라 이러한 조형적인 분절은 텍스트가 가진 의미를 보다 시각적으로 적절하게 전달할 수 있는 방법이 된다. 먼저 구체시에서처럼 텍스트의 형태가 시각 기호로써 전하고자 하는 대상을 직접 본뜬 조형적인 분절을 살펴보려 한다. 이는 안병국의 「안병국 展: 한글로 만나는 한국인 전」 포스터40)에서 확인할 수 있다.
안병국의 「안병국 展: 한글로 만나는 한국인 전」 포스터는 전시제목을 적절히 분절하여 한반도의 모습을 시각적으로 형상화하였다.
독자는 먼저 제목의 의미를 파악한 후에야 한 반도의 형태를 인지하게 된다. ‘한/글로/ 만나/
는/ 한/국인/ 전’이라는 분절의 위치에서 볼 수 있듯이 음절 단위에서 단어 내부의 분절이 이 루어졌으며, 분절한 텍스트로 한반도를 시각 적인 형태를 만들어 전시의 주제를 강조하고 있음을 알 수 있다.
다음으로 살펴볼 작업은 오디너리피플의 「호 기심 상자 속 원숭이 展」 시각아이덴티티41) 작업이다. 이는 조형적인 분절로 전시의 주제를 시각적으로 형상화하여 강조한 작업인데, 오디너리피플은 ‘MONKEYS IN THE CABINET OF CURIOSITIES’를 상자 안에 넣고 이것을 쌓아올려 캐비넷을 구성했다고 말한다.42) 이를 위해 단어 내부를 알파벳 단위로 끊는 비통사적인 분절이 사용되었다. 한 행 당 최대 5개의 알파벳이 들어갈 수 있도록 하여 총 8행을 쌓았고, 휴지(休止)는 빈 상자로 두어 결과적으로 캐비넷에 알파벳이 들어가있는 형태를 효과적으로 표현하였다. 이는 ‘호기심 상자 속 원숭이’
40) http://byeongguk.com/220815925459
41) http://www.ordinarypeople.kr/event--exhibit/monkeys-in-the-cabinet-of-curiosities/
42) http://www.ordinarypeople.kr/event--exhibit/monkeys-in-the-cabinet-of-curiosities/
<그림 18> 안병국의 「안병국 展: 한글로 만나는 한국인 전」
포스터(좌)와 분석(우)
<그림 17> mykc의 「삶은 어찌 이리 느리며 희망은 또 어찌 이리 격렬한가 展」 포스터(좌)와 분석(두 번째, 세 번째, 네 번째 그림.)
라는 전시 제목을 시각적 조형성을 활용하여 드러냈을 뿐만 아니라, 호기심 상자 속에 가득 한 원숭이들을 보는 것처럼 전시의 유희적인 속성이 조형적인 분절을 통해 함께 전달되고 있다.
또한 단어가 가진 기의보다는 기표에 주목하여 활용한 조형적인 분절도 살펴볼 수 있는데, 이 에 대한 예시로는 스튜디오 홍단의 「이동영 기증 특별展: 만인산」 포스터43)를 들 수 있다.
만인산(萬人傘)은 선정을 베푼 고을의 수령에 게 백성들이 제작하여 주는 기념품으로, 만인 의 이름이 수놓아져 있다는 의미다. 이 전시에 기증된 만인산에는 2,091명의 고을 사람들의 이름이 수놓아져 있었는데, 이들의 이름을 적 절히 분절해 ‘만인산’이라는 글자의 형태를 만 드는 데 활용하였다. 이는 이름 하나 하나의 의 미보다 그들의 이름들이 모여 만든 만인산이라 는 형태와, 만인산이라는 기념품의 의미를 조 형적인 분절을 통해 효과적으로 드러내고 있으 며, 마치 구체시처럼 단어로 시각적 형태를 이 루는 방법을 사용하였다.
5. 결론
이 논문은 시와 타이포그래피가 글을 주 재료로 삼아 작품 활동을 한다는 공통된 속성에 주목 하여 두 분야에서 사용하는 분행 및 분절 기법을 살펴보고 이를 이론적으로 분석하고자 했다.
유종호(1995)는 시는 “기표를 두고 시인이 벌이는 사랑놀이”라는 말을 통해 시에서 표현의 중요성에 대하여 얘기하였다.44) 시에서는 시어의 의미부터 시행의 시각적 형태까지 두루 상호 작용하여 전반적인 주제를 전달하며, 타이포그래피 역시 텍스트의 의미에 맞게 시각적으로 어떻게 디자인하느냐에 따라 전하려는 메시지가 훨씬 효과적으로 전달된다는 점에서 의미를 고려한 표현이 중요한 분야다. 이 논문에서는 본격적인 논의를 시작하기에 앞서 현대 시와 타이포그래피의 사상적인 배경 및 각 분야의 분행 및 분절이 나타나게 된 배경을 역사적으로 살펴보았다. 이를 통해 두 분야가 20세기 예술 운동들의 사상을 기반으로 함께 발전하였음을 확인하였으며, 시이면서 타이포그래피적인, 분야를 구분짓기 어려운 작품들과 기법들이 나오 게 된 배경을 살펴보았다. 이후 시의 분행을 관련 이론과 작품분석을 통해 유형별로 살펴본 후, 타이포그래피의 분절의 유형 및 작품을 분석하는 방식으로 그 효과를 밝혔다.
시의 분행 유형은 첫째, 의미 강조의 분행이다. 우리나라 현대시의 분행은 서구 예술운동의 영향을 받아 고전시가의 전통적인 율격이 파괴되면서 나타났으며, 이는 러시아 형식주의자들 의 ‘낯설게하기’ 기법과 관계가 있다. 둘째, 비통사적인 분행이다. 이는 통사적인 연결을 끊는
‘시행엇붙임’을 통해 한 행에서 다른 행으로 시어를 올리거나 내렸을 때, 시어가 가진 의미가 양 행에 걸쳐 강조되는 분행이다. 셋째, 조형적인 분행이다. 이러한 조형적인 분행은 형태와 의미가 불가분의 관계를 맺으며, 특히 적극적이며 유희적으로 시의 시각적 조형성을 추구하는 시로 ‘구체시’를 들 수 있었다. 이렇듯 시의 분행 유형 및 이론을 살펴본 후, 타이포그래피의 분절을 유형별로 구분하여 분석하였다.
타이포그래피의 분절 유형은 첫째, 기능적인 분절이다. 텍스트를 논리적으로 분절하고 규칙에
43) http://hongdan201.com/?t=17&p=532
44) 유종호, 『시란 무엇인가:경험의 시학』, 서울: (주)민음사, 2010, p.49
<그림 19> 스튜디오 홍단의 「이동영 기증 특별展: 만인산」 포 스터(좌)와 분석(우)
<그림 18> 오디너리피플의 「호기심 상자 속 원숭이 展」 시각 아이덴티티(좌)와 분석(우)
따라 배열하여 명료한 구조를 보여주는 한편, 어절 단위의 분절을 통하여 단어 하나하나의 의미에 강조를 두는 분절이다. 둘째, 비관습적인 분절이다. 일반적인 타이포그래피 규칙으로는 끊지 않는 부분에서 글줄을 끊어서 독자들로 하여금 한번 더 의미를 생각하게 함과 동시에 신선한 감각을 느끼게 하는 분절이다. 셋째, 조형적인 분절이다. 디자인 컨셉에 따라 의미와 형태가 불가분의 관계에 있을 경우, 텍스트를 분절하여 시각적인 형태를 만드는 것이 주제를 보다 효과적으로 전달하는 디자인적 접근이 되는 것을 확인했다.
이번 연구에서는 타이포그래피를 대상으로 하기 때문에 그래픽디자인을 이루는 요소들 중 텍 스트를 주요 분석의 대상으로 삼고 있다. 또한 시의 분행과 타이포그래피의 분절과 관련한 작품은 상당히 다양하며, 따라서 그 종류를 더욱 세부적으로 나눌 수도 있겠지만 유형별로 대표적인 작품들 위주로 간략하게 살펴보았다. 따라서 후속 연구로는 시의 분행 및 타이포그래 피의 분절의 유형들을 더욱 세부적으로 논하고, 좀더 다양한 스펙트럼의 작품들을 다룰 수 있을 것이다. 또한 후속 연구에서는 타이포그래피의 시각 언어적인 속성에 주목하여 텍스트의 의미와 배열에 따른 시각적 조형성에 대한 연구들이 좀더 심도 있게 진행되었으면 한다.
참고문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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