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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강의안01] 현대의 형이상학적 미학 (크로체, 하트만, 하이데거) [학습목표] 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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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의안01] 현대의 형이상학적 미학 (크로체, 하트만, 하이데거)

[학습목표]

1. 현대 예술철학과 미학에 나타나는 형이상학적 사고와 그 의미에 대해 알아본다.

2. 현대미학에 있어서 전통 형이상학의 방법적 특성을 유지하면서 해당하는 사유 대상에 그 방법을 적용해가는 고전적인 방식에 속하는 크로체와 하르트만의 미학사 상에 대해 알아본다.

3. 현대미학에 있어서 전통 형이상학과 유사성을 지닌다는 이유로 현대미학 내부에 서 형이상학적으로 불리지만 스스로는 전통 형이상학과 단호히 선을 긋는 새로운 경향성의 형이상학적 미학으로서 하이데거의 미학사상과 그 의미에 대해 알아본다.

[주요용어] 표현, 직관, 존재, 미적 가치, 로고스, 형이상학, 동일성

[학습과제]

철학사에서 치밀한 체계성을 보여주었던 전통적 형이상학이 근대의 마지막 위대한 사상가 헤겔에서 그 완성과 동시에 종결을 이룬 이후 어떤 식으로 현대 철학사에서 형이상학은 종래의 그 찬란했던 지위를 잃어가기 시작하는지에 대해 생각해 보자.

[개관]

현대의 형이상학적 미학

1. 들어가는 말

형이상학은 모든 존재하는 것들의 존재 의미와 이유를 보편성과 근원성의 측면에 서 물어 가며 그리고 그것에 대한 답변을 우리가 사는 이 물리적 자연 세계 너머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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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 찾는다. 철학의 여러 분야 중 그 어떤 분야보다 역사가 오래된 형이상학은 우리 가 알고 있는 개별 학문들과는 여러 측면에서 다르다. 예를 들어 물리학이나 역사 학과 같은 개별 학문은 우선 그 연구 영역이 제한적이다. 물리학은 이 세상의 모든 존재자 중에서 자연의 물리 현상이 그 연구 영역이고 역사학은 역사 현상이 그 연 구 영역이다. 물리학이나 역사학은 자신의 연구 영역인 물리 현상이나 역사 현상을 연구 대상으로 삼아 그것의 운동 원리나 진행 원리를 탐구하고 또 그 원리에 대한 답변을 현실 세계에서 찾을 수 있거나 또는 현실적으로 납득할 수 있는 데서 찾는 다.

하지만 형이상학은 그렇지 않다. 서구의 대표적인 형이상학인 플라톤과 헤겔의 형이상학을 예로 들어보자. 플라톤은 이 세상 모든 것의 근본 원리가 무엇인가를 물었고 그 근본 원리를 ‘선의 이데아’라고 답했다. 그의 물음의 대상은 특정한 존재 자 영역이 아니라 존재자 일반이었다. 그리고 그는 존재자 일반의 존재 의미와 근 본 이유를 우리가 사는 이 현실 세계에서는 찾으려 해도 찾을 수 없는 것, 즉 자연 세계를 넘어 저편에 있는 이데아의 세계에서 찾았다. 이러한 방식은 헤겔의 형이상 학의 경우도 마찬가지다. 헤겔은 지상의 모든 존재자의 변화와 운동의 근본 원리를

‘절대정신’ 혹은 ‘이념’으로 보았다. 그 역시 지상의 특정한 이것저것을 물음의 대상 으로 삼지 않고 이 세상 모든 것을 물음의 대상으로 삼았다. 그리고 이 모든 것의 존재 의미와 근본 이유를 이 세상에서는 찾을 수 없는 ‘절대정신’이라는 것으로 파 악했다.

물론 형이상학자들은 그들이 제시한 답변을 사람들이 수긍할 수 있도록 하기 위 해 반드시 자신이 제시하는 근본 원리가 어떻게 현실 세계와 연결되어 작동하는지 를 해명한다. 플라톤의 경우 선의 이데아는 현실 세계에 분유(分有: metxis)해 있다 는 식으로, 헤겔의 경우에는 절대정신의 변증법적 외화(外化: Entaeusserung)라는 방식을 통해 근본 원리와 현실 세계는 연결되어 움직인다. 그리고 이 연결 고리들 은 나름대로 치밀한 연결성과 정합성을 지니고 있기에 다른 이들이 쉽게 반박하기 힘들다. 우리는 이처럼 사상의 정점에 그 어떤 것으로도 치환할 수 없는 근본 원리 를 놓고 그 아래로는 차례로 하위 개념들을 위치시키면서 이들 모든 개념들을 쉽게 논박할 수 없는 논리로 엮어 놓은 사상을 ‘체계적 사상’이라 일컫는다. 체계성은 형 이상학이 만들어 후세에 물려 준 대표적인 유산이다.

그러나 치밀한 체계성을 보여주었던 전통적 형이상학이 근대의 마지막 위대한 사 상가 헤겔에서 그 완성과 동시에 종결을 이룬 이후 현대 철학사에서 형이상학은 종 래의 그 찬란했던 지위를 잃어가기 시작한다. 이러한 현상은 현대 철학의 흐름을 선도했던 주요 사상가들이 공통적으로 형이상학을 비판하는 것을 보아도 알 수 있 다. 우리는 전통 형이상학의 ‘무근거성’을 주장하는 니체에서도, 형이상학의 ‘사변 성’을 공격하는 마르크스에서도, 형이상학적 명제들의 ‘무의미성’을 주장하는 무어 나 비트겐슈타인에서도 형이상학이 더 이상 현대 철학자들의 환영받는 사유거리가 아님을 목격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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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지만 소멸하는 유성도 막바지에는 자신의 꼬리를 남기듯이 오랜 기간 철학의 대표적 이름으로 행세했던 형이상학도 현대의 예술철학과 미학이 진행되는 이 시점 에 아직 그 자취를 남겨놓고 있다. 현대 예술철학과 미학에 나타나는 형이상학적 사고는 크게 두 가지 모습으로 진행된다. 그 하나는 전통 형이상학의 방법적 특성 을 유지하면서 해당하는 사유 대상에 그 방법을 적용해가는 고전적인 방식이며, 다 른 하나는 전통 형이상학과 유사성을 지닌다는 이유로 현대미학 내부에서 형이상학 적으로 불리지만 스스로는 전통 형이상학과 단호히 선을 긋는 새로운 경향성의 형 이상학적 미학이다. 현대 미학에서 전자에 속하는 대표적인 형이상학적 미학을 손 꼽으라면 크로체와 하르트만의 미학 사상을 꼽을 수 있고, 후자의 경우는 하이데거 에서부터 시작된 미학 사상을 들 수 있다.

2. 크로체와 하르트만의 형이상학적 미학

크로체의 미학 사상이나 하르트만의 미학 사상은 더 이상 전통 형이상학처럼 그 정점에 이데아나 절대정신처럼 압도적 규정자를 상정하고 거기로부터 연역적으로 하위 개념들을 도출하는 식의 사상을 펼치지는 않는다. 그러나 그들의 사상에도 형 이상학적 잔재는 강하게 남아 있다.

먼저 ‘표현론적 예술론’을 펼친 크로체의 미학은 과거의 형이상학처럼 체계적이고 관념론적이다. 그의 철학 전체는 ‘정신 철학’이라는 큰 체계를 지니며 미학은 그 중 에서 정신 철학의 기초적인 부분에 해당한다. 그의 체계론적 정신 철학은 정신을 크게 지적 활동과 의지적 활동으로 구분하고, 다시 지적 활동을 직관적 지식과 개 념적 지식, 의지적 활동을 경제적 의지와 도덕적 의지로 분류한다. 여기서 그의 표 현론적 예술론의 핵심을 이루는 직관적 지식은 개념적 지식의 토대가 되고, 이들 두 지식을 포괄하는 지식 이론적 활동 일반은 다시 의지 실천적 활동 일반의 토대 가 된다는 식으로 그의 정신 철학은 하나의 전체적인 체계를 구성한다.

크로체의 미학은 또한 철저하게 관념론적이다. 그의 미학 사상의 핵심인 ‘표현적 직관’ 자체가 무엇보다 그렇다. 물론 크로체가 말하는 표현적 직관은 전통 형이상학 이 말했던 어떤 신비스러운 것을 알아채는 창조적 직관처럼 우리들이 납득하기 힘 든 것은 아니다. 오히려 그의 직관은 바깥에 실재하는 사물이든, 정신적으로 떠오 르는 것이든 우리가 그들에 관한 형상과 이미지를 얻는 과정을 가리키며, 그것은 우리에게 아주 일반적인 행위로서 우리가 어떤 사물이든 그것과 애초에 만날 때 최 초로 수행하는 행위이다. 그러나 그의 관념론적 입장은 형상과 이미지를 생산하는 이 같은 직관 과정을 ‘표현’이라는 또 하나의 의미 있는 행위로 파악하는 데서 나타 나기 시작한다. 크로체의 생각은 직관적으로 생산된 이미지는 그것이 어떻든 우리 의 정신적인 지적 활동이 작용하여 일어난 활동이며 그래서 그것은 우리의 지적 정 신이 어떤 식으로든 표현된 행위라는 것이다. 그리고 표현적 직관은 예술가의 창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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행위의 가장 핵심적인 부분이며, 설사 예술가가 실제로 예술 작품을 형성하지 않더 라도 머리 속에서 일어난 표현적 직관 행위만으로도 예술이 진행되는 것이며 또 그 것 자체가 하나의 예술 작품이라고 파악한다. 이 정도까지 이르면 크로체의 미학은 극단적인 관념론이라는 규정을 회피하기 어렵다.

하르트만이 그의 미학에서 형이상학적 방법론을 고수했던 것은 절대주의와 상대 주의의 대립을 나름대로 피해보려는 의도 때문이었다. 그는 절대주의와 상대주의를 절충하는 입장에서, 모든 존재는 그 자체로 존재하지만 그러나 그 존재들은 우리의 인식을 통해 드러난다고 보았고, 이 때 우리의 인식은 그 존재를 완전히 파악하지 못할 수도 있다는 기본 입장을 가졌다. 그리고 이런 기본 입장에서 그는 대상을 지 향하고자 애쓰면서 자신의 존재론과 미론을 연결한 이른바 미적 존재론을 펼친다.

하르트만의 미적 존재론은 그의 존재론의 전체 체계 속의 한 부분이다. 그는 모 든 존재하는 것을 그 존재 방식(Seinsweise)에 따라 크게 이념적 존재와 실재적 존 재로 나눈다. 이 때 이념적 존재이든 실재적 존재이든 그것은 우리의 인식 가능성 이나 우리의 인식 내용과는 독립적인 것이며, 그런 의미에서 우리에 대해 존재하는 것(das fuer uns Seiende)이 아니라 자체적으로 존재하는 것(das an sich Seiende)이다. 하르트만은 이념적 존재에 속하는 것 중 하나로 가치를 위치시키고, 다시금 가치를 재화적 가치, 쾌감적 가치, 생명적 가치, 정신적 가치, 종교적 가치 로 나눈다. 이들 가치들은 높고 낮음의 서열을 가지고 있으며 앞에 열거된 것이 가 장 낮은 가치이고 뒤로 갈수록 높은 가치이다. 또한 낮은 서열의 가치는 높은 서열 의 가치의 토대가 되며, 미적 가치는 진과 선의 가치와 함께 서열이 높은 정신적 가치에 속한다고 그는 보았다.

미적 가치 역시 다른 가치들과 마찬가지로 존재적 측면에서는 절대적이며, 인식 적 측면에서는 상대적이다. 다시 말해, 미적 가치에 대한 판단이 보편적으로 드러 날 수 있는 것은 미적 가치의 존재의 절대성 때문이며, 여러 예술에서의 미가 역사 적 다양성을 가지는 것은 미적 가치에 대한 감정과 판단이 상대적이기 때문이다.

하르트만에 의하면 미적 가치는 인간이나 자연사물 그리고 예술작품과 같은 실재에 직접 붙어있는 것이 아니라, 그런 실재를 통해 내비춰지고 실재에 의해 떠받쳐지고 있는 실재의 배경층(Hintergrundschicht)에 속해 있다. 미적 가치는 그 본질상 결코 실현될 수 없는 것이며, 실재 속에서 현출되거나 묘사될 뿐이다. 그러나 미적 가치 가 아무리 그 현출과 실현에서 대상적 존재에 의존하기는 하지만 그 자체로 이미 절대적 존재임은 변함이 없다.

3. 하이데거와 그 이후의 형이상학적 미학

하이데거의 미학을 형이상학적인 것으로 볼 것인가는 조금 복잡한 문제이다. 왜 냐하면 현대 철학 내부에서의 논란에도 불구하고 하이데거는 자신의 존재론적 사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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를 형이상학이라고 생각한 적이 한 번도 없었으며, 오히려 그의 중요한 사상적 길 목 곳곳에서 그는 끊임없이 전통 형이상학과의 대결을 시도했기 때문이다. 사실 하 이데거를 포함해서 그에 앞선 딜타이, 후설 등의 해석학적, 현상학적 사유를 모두 다 무의미한 형이상학적 언어의 유희로 규정하고 그들을 비판하기 시작한 철학자들 은 분석 철학을 태동시켰던 이른바 비엔나 서클에 속하는 철학자들이었다. 이들 분 석철학자들을 제외하고, 하이데거 사상의 형이상학적 성격을 비판한 철학자들은 오 히려 하이데거를 누구보다 가깝게 사숙했던 포스트 모더니스트들, 특히 쟈끄 데리 다였다. 데리다는 하이데거 사상의 기본 축이었던 ‘존재’라는 개념 자체가 전통 형 이상학에서 제시했던 근본 개념으로서의 절대자가 지니는 성격과 유사하다고 보고 하이데거의 철학을 “로고스 중심주의”로 비판한다.

하지만 하이데거가 그의 예술론을 개진하던 중기의 사상 단계는 니체의 반형이상 학적 정신에 깊이 영향을 받았던 시기였다. 이 시기에 형이상학에 대한 하이데거의 입장은 철저한 ‘형이상학의 극복’이었다. 그는 존재가 스스로를 숨겨왔던 그래서 존 재가 망각되었던 긴 역사가 바로 형이상학의 역사이며 그래서 존재 망각사로서의 형이상학은 자신의 존재론이 극복해야 할 것으로 보았다. 그리고 그런 형이상학과 달리 존재의 숨기며 드러내는 참 모습을 제대로 담아내는 예술을 자신의 존재론이 주목해야할 중요한 영역이라고 간주하고 예술에 관한 글들을 쓰기 시작한다.『예술 작품의 근원』과『횔덜린 시의 해명』이 이 시기의 그의 주요 저작이다.

중기 사상 단계에서의 하이데거의 예술론을 간단히 요약하자면, 예술작품은 존재 의 진리를 잘 담아서 그것이 지속적으로 일어나도록 해주는 대표적인 영역이라는 것이며, 그 점에서 볼 때 예술작품 속에 살아 숨쉬는 예술이란 다름 아닌 “존재의 진리의 작품 속으로의 정립”이라는 것이다. 이 때 존재의 진리는 주체적인 측면도 지니며 객체적인 측면도 지닌다. 즉 존재의 진리는 그 스스로 작품 속으로 가려는 주체적인 움직임을 보이며 동시에 존재의 진리는 그러한 움직임의 측면에서 보호받 는 객체이기도 하다. 존재의 진리와 연관하여 양면성을 보이는 하이데거의 이런 예 술 규정은 그의 예술 창작 규정과 예술 감상 규정에도 드러난다. 그에게 있어 예술 창작이란 존재의 진리의 형태(Gestalt) 속으로의 확립이며, 예술 감상은 존재의 진 리가 지속적으로 잘 일어나도록 작품을 보호하는 것이다. 여기서 창작이나 감상은 모두 예술가나 감상자의 주체적인 행위는 아니다. 오히려 그 행위의 중심은 언제나 스스로를 숨기면서 드러내는 존재의 수수께끼같은 움직임이다.

하이데거의 존재론과 미학을 형이상학적 언어의 유희로 판단하는 것은 형이상학 에 관한 성격 규정과 또 우리가 만나는 사태의 다양성에 따라 그 결과가 달라질 수 있다. 영미 분석철학 일반의 토대가 보이는 것처럼 엄정한 존재자 지향성과 과학적 엄밀성의 기본 잣대에서는 하이데거의 사상은 형이상학적으로 판단될 여지가 다분 히 있다. 그러나 존재는 분명 존재자와 다르며 그 존재는 비록 감각의 대상은 아니 지만 그 어떤 감각적 대상보다 더 여실히 현존한다는 점을 인정한다면, 다시 말해 이 세계 저편의 어떤 것이 아니라는 점에서 본다면, 하이데거의 사상은 철저하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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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형이상학적이다. 또한 데리다가 언급한 하이데거의 로고스 중심주의는 하이데거 의 존재와 전통적인 로고스를 동일한 성격으로 볼 수 있는가에 대한 의견에 따라 비판의 합당성이 결정될 수 있다. 모든 것을 절대적 규정자 - 로고스 - 하나에로 환원시켰던 전통 형이상학의 모습을 상기한다면 모든 것을 존재에 입각해서 풀이하 려는 하이데거의 사상은 형이상학과 상당히 유사하다. 그러나 자기 동일성을 갖는 전통 형이상학의 절대자와 끊임없는 다름으로서의 생김 자체인 존재와는 명백히 차 이가 있다는 점을 인정한다면 하이데거의 존재론은 비형이상학적이다.

니체와 하이데거 그리고 부분적으로는 훗설의 사상을 천착해 들어갔던 푸꼬, 데 리다. 들뢰즈, 리오타르, 레비나스 등의 포스트 모더니스트들은 그들이 자양분을 받 아 온 사상적 원류를 그대로 닮아 전통 형이상학이 보도처럼 여겼던 ‘절대적 근거’

가 ‘없음’이라는 니힐리즘을 뼈 속 깊이 간직하고 있다. 오히려 그들은 형이상학적 무근거성을 더 철저히 밀고 나간다는 점에서 그들의 원류보다 더 반형이상학적이고 비체계적이다. 그들은 첫째 ‘동일성’에 입각한 전통 형이상학의 본질주의를 철저히 배격하여 사물들의 있는 그대로의 차이들에 주목하며, 둘째 이전의 형이상학이 화 려하게 세워 놓았던 진리 체계, 도덕 체계, 미적 체계를 부정하고 해체한다. 그들은 철저히 반체계적이고 해체적이다.

참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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