NEWS & INFORMATION FOR CHEMICAL ENGINEERS, Vol. 33, No. 2, 5015 … 209
특 별 기 고
저자 노명선(魯明善)은 아버지의 字를 姓으로 삼은 특이한 사람이다(이러한 성명법은 러시아 계 민족의 이름 짓는 방법, 즉, 아버지의 이름을 자기 의 성으로 택하는 부칭법이다). 자는 명선이고 명 은 鐵柱이다. 지금의 新疆省 투르판 지역인 高昌 에서 태어났으나 생몰 연대는 정확하지 않다. 元 대 후기의 사람으로서 원래 위구르족(Uigur; 維吾 兒;중국 신장 회족)이다. 그의 부친 “쟈루나다스 (伽魯纳答思)”는 유명한 번역 통역자였으며, 동시 에 외교관이고 학자였다. 그는 인도어, 중앙아시 아어, 漢語, 티벳어 등의 언어와 문자에 모두 능통 하였으므로 여러 나라를 방문하여 외교활동을 벌 였다. 또한 많은 외국 사신들을 맞이하고 접대하 는데 익숙하여, 언행이 관대하고 후하였으며 기지 가 넘치고 청렴 결백하였다. 元 世祖때에 서역을 경유하여 大都(지금의 北京)에 이주해 와서 佛經 번역업무에 종사하였으며 동시에 황태자의 스승 (師傅)로 일하였다. 그는 元 世祖, 成宗, 武宗, 仁 宗 등 4대의 왕에게 봉사하면서 “금위영행인(禁衛 領行人)” 등 여러 관직을 맡아서 지위가 혁혁하였 고 조정에 높이 중용되었다.
아들 노명선은 이러한 아버지를 따라 함께 漢 족 거주지역에 오랫동안 살면서 한족 문화의 영 향을 깊이 받고 성현들의 학문을 배웠다. 노명
선을 이름으로 정한 것도 儒家 문화의 영향을 깊 이 받은 증거이다. 노명선은 아버지 세대의 음덕 (陰德; 부친이 벼슬하면 아들도 벼슬하는 제도) 을 받아서 관리가 되고 조정에서 황제를 위하여 문학과 역사 정리 작업을 맡았으며, 후에는 한나 라 “大夫”의 자격으로 江西行省에 파견되어 소송 사건을 처리하는 직책을 맡았었다. 1314년에는
“중순대부”에 임명되어 안휘성 안풍로에서 “다로 화적”의 직으로 근무하였다. 다음해에는 “야중대 부”, “태평로총관”으로 임명되었다. 그 후에 지주 부, 형양, 계양, 정주(池州府, 衡陽, 桂陽, 靖州) 등에 임직되었다. 매번 받은 임직 기간은 길지 아 니하였으나, 다스린 업적은 혁혁하여 명성이 조 야에 쟁쟁하였다. 그는 농업생산을 중시하여 가 는 곳마다 “가르치면서 농사를 권장하거나 농사 와 누에치기를 책으로 삼아서 사람들을 가르치기 를 거듭하거나, 혹은 농서를 편수하고 친히 경작 을 권장하였다”. 그가 근무하였던 지역의 사람들 은 그를 잊을 수 없어서 비석을 세워 후세에 전하 였다. 그의 저서 “농상의식촬요”는 1314년 安豊 路에서 근무할 때 문장을 쓰고 판각 인쇄한 것이 며, 1330년에 원나라 國子監에서 다시 간행하였 다. 노명선은 사람이 자비롭고 상냥하였으며, 관 직에서는 청렴 결백하였다고 한다. 그는 평상시
중국명저 60부 중 과학 기술 관련서적 15종 소개(12);
농상의식촬요(農桑衣食撮要)
-원나라 시대의 대표적 농업서적-
강석호 역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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특 별 기 고
에 거문고 타기나 책 쓰기를 즐겼다. 그는 “농상 의식촬요”이외에 “금보(琴譜;거문고 악보)” 등 8 권을 찬술하였다.
노명선이 활동하던 시대는 몽고가 금나라(金;
1115~1234)와 전쟁하고 있을 때였으며, 중국 북방에서는 인구가 크게 감소하였으므로 생산력 은 심하게 감소하였다. 또한 칭기스칸(Chinggis;
1206~1227) 이후 원 세조(Khubilai; 1215~1294) 에 이르기까지 계속하여 농토를 더 확보할 것인가 목초지를 더 확보할 것인가가 정치적 쟁점이었 다. 중원과 강남지구에서는 선진 농업경제의 영 향하에 있었으므로, 몽고 통치자들은 부득이 몽 고의 낙후된 유목경제와 농사 짓기만 하고 농토 를 보존하지 않는 방식(剝削方式)을 포기하고 “농 사와 누에치기를 급선무로” 삼는 정책을 채용하 였다. 원나라 군사가 송나라를 공격하는 과정에 서, 농업생산의 훼손은 북방에 비교하여 남방에 서는 더 적었다. 따라서 “백성으로 하여금 직업에 안정하여 농업에 힘을 쏟는” 사상이 원나라 조정 과 기타 허다한 행정 조치와 명령에서 일관되게 적용되었다. 1261년 “쿠비라이(忽必烈)”는 “권농 사(勸农司)”를 설립하고 많은 권농관리들을 각지 에 파견하여 농상(農桑)을 정돈하고, 후에도 계속 하여 권농조직을 개편 강화하면서 농상(農桑) 정 책을 중요시하였다. 또한 정부가 농업을 중시하
였으므로, 개인들도 농업서적을 찬술하는 풍조가 유행하였다. 원 왕조는 1백 년 정도 존속하였으 나(1271~1368), 그때에 후대의 사람들에게 크게 참고되는 농업서적이 십 수 종류 발간되었다. “農 桑衣食撮要”도 그 중의 한 책이다.
“농상(의식)촬요”는 “農桑撮要”라고도 부르는 데, 상, 하 양 권으로 되어 있고, “월령”체제로 찬 술된 농업서적이며, 208조항에 약 1만 5천 글자 로 구성되어있다. “月令”이란 음력 달력으로 어느 달의 기후와 생물과의 계절적 관계를 설명한다 는 뜻이다(조선 세종대왕 때 저술된 “農家月令歌”
는 이런 내용에 가락을 첨부한 농민용 가요이다).
이 책의 체제는 東漢의 최원(崔瑗)이 쓴 “四民月 令”이나, 唐나라 末期의 한악(韓鄂)이 쓴 “사시찬 요(四時纂要)”와 매우 비슷하다. 1년 12개월을 기 준으로 삼아, 매월의 농사를 간명하게 나누어 설 명하였다. 자료의 주요부분은 元 초기에 관청에 서 반포한 “농상집요”에서 채택되었으나, 몇 가지 새로운 재료를 선택하여 내용을 증가시켜 편성 하였다. 내용이 풍부하여 농작물, 채소, 과수, 대 나무 등의 재배, 가금(집 날짐승), 가축, 꿀벌, 누 에 등의 사육, 농산품 가공, 저장, 발효 등이 모 두 상세하게 기술되어 있다. 이 책 중에서 노명선 은 農桑(농업과 뽕나무/누에)을 국가의 근본적 사 상으로 세우고 공고히 할 것을 강조하였으며, 농 상 생산 발전을 위해서 정부가 기술지도를 강력 히 실시할 것을 건의하는 동시에, 당시에 목축을 위해서 농업을 패지하자는 잘못된 주장을 반대하 였다. 또한 그는 천시(天時)와 지리(地利)에 알맞 은 이점을 정확하게 이용할 것과 농사에서 시기 를 놓치면 안됨을 강조하였다. 또한 다품종 영농 을 통해서 경제적 효과와 이익을 증대시키도록 주장하였다. 이미 있는 토지의 지리적 이점과 토 양의 유실을 방지하여 토양의 비옥도를 증가시키 고, 토지의 훼손이나 약탈적 이용은 절대로 불가 함을 강조하였다. 생산을 증가시키고 다품종 경
그림 1. 魯明善의 “농상의식촬요”의 제목과 내용 일부(문헌 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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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을 실행하는 기본 위에서 화식(貨殖; 상공업을 경영함)의 이점을 힘써 쟁취하고 모두 받아들여 서 도시와 농촌간의 상품교환을 발전시키도록 하 고, 이렇게 하는 것이 경제적 효과와 이익을 증가 시키는 중요한 수단임을 주장하였다.
“농상의식촬요”는 책 이름과 내용으로 보건대, 당시의 농사관할 기관이었던 “司農司”가 찬술한
“농상집요”와 같은 내용들이 있다.
첫째로, 이 두 책은 모두 “제민요술”의 전통을 계승하여, 백과사전적, 종합적 농서로서 내용은 농업생산과 농촌생활의 이모저모를 섭렵하고 있 다. 주요내용은 기상, 생물과 기후의 관계, 논밭, 수리, 작물재배(곡물, 뿌리작물, 유류작물, 섬유 작물, 녹비작물, 약재, 염료작물, 향신료 작물, 음 료용 작물 등), 채소 재배, 박과식물, 과수재배, 대나무재배, 뽕나무재배와 누에 기르기, 가축 가 금 사육, 양봉과 꿀 채집, 저장, 가공 등을 포괄하 고 있다.
둘째로, 두 책 중에 누에와 뽕나무가 상당히 중
요한 지위를 차지한다. ”농상집요” 중 뽕나무 재 배, 양잠은 각각 1권을 차지하는데, 책의 부피나 조항 수로 보면 전체 책의 1/3을 차지한다. 한편,
“농상의식촬요”에서는 누에와 뽕이 조항 수에서 1/5을 차지한다. 두 책은 모두 桑과 农을 함께 나 열함으로써, 잠상(蝅桑; 누에와 뽕)을 농사와 함 께 중시하였음을 반영하고 있다.
셋째로, “농상집요”중에 새로이 첨가된 내용이
“촬요”에도 반영되어있다. “집요”에 첨가되어 있 는 몇 가지 새로운 내용은 대부분 “촬요” 중에 개 편 삽입되어 있다. 예를 들면, 저마(苧麻), 목면, 수박, 무, 시금치, 은행, 솔, 향나무, 염료용 쥐엄 나무, 치자, 칠 채취, 양봉 등이다.
두 책의 차이점도 허다하다. 첫째, 체제상 “촬 요”는 예부터 내려오는 “월령”체를 채용하고 있는 데, 책 중에 “종자를 거두어 저장할 시기를 조사 하고, 수확 시에는 여름 삼복더위와 겨울 철 추위 때의 수요를 생각하고, 농사일을 달 별로 연결시 키고, 종류별로 편찬하여 책을 만들다”라고 설명 하고 있다. 이것으로 인해서 明나라 시대에 어떤 작자가 이 책을 “양민월의(養民月宜)”라고 개명 하였다. 비록, 후에 추가된 “농상집요”의 부록인
“세용잡사(歲用雜事)”에는 월령체의 구절이 있기 는 하나, 내용은 매우 간략하여, 다만 “촬요”의 목 록 정도의 내용이므로, “촬요”의 매월 해야 할 일 의 내용의 기록에는 미치지 못한다. 또한, “촬요”
에는 해야 할 일마다 구체적으로 어떻게 해야 하 는지를 통속적인 쉬운 말로 기록하여 바로 이해 하고 곧 바로 실행할 수 있어서, 독자가 “한번 읽 으면 곧 바로 이해할 수 있게” 서술되어 있다.
둘째 차이점은, “촬요”가 “집요”에 비교하여 내 용상 새로운 것이 증가하였다는 점이다. 예를 들 면, 소맥의 파종시기와 파종 양에 관해서 “제민요 술” 등의 농서에는 기재만 되어있을 뿐이므로, 파 종시기를 놓쳤을 때는 적용하기가 부적합하다.
당시의 “농상집요”에도 그렇게 기록되어 있다. 그
그림 2. 元나라 王禎의 “農書”에 있는 “소사도(樔丝图; 실을 잣는 장면)”, (문헌 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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러나 저자 노명선은 이 조항을 책 중에 보충 설명 하여 ”8월에 대맥과 소맥을 파종한다”라는 조항 에 기록하기를; “백로절(白露節) 후의 상무일(上 戊日; 8월 초순)에는 1 亩(무; 약 170 평)당 종자 3升(승; 현대의 1 리터, 옛날 1 되=1.8 리터), 中 戊日(중순)에 파종할 때는 1무당 종자 5승, 下戊 日(하순)에는 1무당 종자 7승을 파종한다”라고 기 록하여, 파종 량과 파종 시기를 관련시켜서, 파종 기가 이를수록, 파종 량이 적음을 밝혔다.
또한, 주의할 가치가 있는 점은, 노명선이 위 그르(Uigur)족의 농학자였으므로, 몇몇 소수민족 들의 생산기술과 경험을 책에 소개한 점이다. 예 를 들면, 포도를 심는 기술, 응고 우유, 크림, 치 즈 만드는 방법 등이다. 동시에 남방 농업의 내용 을 증가시켜서, 몇 가지 남방 특산물; 가시 연밥, 마름 열매, 연근, 마초 죽순, 소귀나물(慈菇), 죽 순, 물고기의 쏘가리 등 고루고루 소개되어 있다.
또한. 새로운 내용을 증가시키는 이외에, 일부 옛 내용을 삭제하였다. 월령체의 농서를 만들기 위해서, 책 속에는 어떠한 형태의 상업행위도 서 술하지 않았다. 그러나 책 속에는 교육과 관련되 는 조문들이 있는데, 단지 농민을 대상으로 한 내 용임을 고려하면, 저자는 책 전체의 내용을 한층 더 간결하게 만드는데 집중하고, “農桑이 衣食의 根本”이라는 저자의 사상을 강조하였다.
농서의 발전은 원나라 당시에 이미 전문화되었 을 뿐만 아니라 앞 사람들이 이룩한 기초 위에서 계승되고 새로 만들어진 것이 비교적 많다. 농업 전문가들이 이 책을 읽을 때는, “왕정농서”나 “농 상집요”를 함께 읽으면, 책들의 차이점과 공통점
을 찾아내고 “농상촬요”가 그전의 내용보다 진일 보하였음을 파악할 수 있다. 어떤 기술을 거론할 때는 관련된 다른 서적들도 참고하는 것이 좋은 데, 예를 들면 양잠기술을 말할 때는 “蝅書”를 참 고하여 누에치기의 지식을 전면적으로 파악하는 것이 좋다. 宋, 元 시기에 저술된 “잠서”는 부피가 작으나(총 1천 여 자), 내용이 다양하여 품종 바꾸 기, 철에 따른 먹이, 누에 집 장만, 누에 알 씻기, 부화기술 등등 매우 자세하게 기록되어 있다.
“농상(의식)촬요”에 사용된 문자는 통속적이어 서, 이해하기 쉽고 간단 명료하게 요점을 파악하 기 좋다. 내용은 옛사람들의 생산 경험을 이미 흡 수하고, 당시 농민들의 선진기술을 한데 모았으 며, 농업생산의 중요성을 강조하였다. 이 책은 元 나라 시대의 농업생산 회복과 발전에 대단히 큰 영향을 미쳤다. 또한 한족 지구의 농업생산의 우 수한 전통을 계승하였을 뿐만 아니라, 중국 주변 소수 민족들의 농업, 목축업의 경험을 더욱 발전 시켰고, 중국 각 민족의 농업 지혜를 함께 모은 우수한 농학서이다.
◈ 참고문헌
1. 姚丽萍, 顔朝輝편, ”影响中学生一生的 60部中国名著”, 북 경, 中国戏剧出版社, 2005, p. 206
2. 魯明善 찬, 농상의식촬요(農桑衣食撮要), 艺文印书馆, 臺北, (原刻影印本)
3. 가사협(賈思勰)저, 한국농촌진흥청 역주, “제민요술(齊民要 術); 四庫全書 vol. 61”, 2006
4. 司農司 간행, “農桑輯要; 1, 2”, 商務印書館, 中國, (한국 농 촌진흥청 번역; 2008)
5. 왕정, “王禎农书”, (서지 미확인) 6. 秦觀 撰, “蝅書”, 藝文印書館, 中國