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과타리의 생태철학에서 주체성 생산의 미학적 패러다임에 관한 연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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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미학적 패러다임에 관한 연구

김 성 하*

1)

Ⅰ. 서론

Ⅱ. 세 가지의 생태철학

Ⅲ. 생태철학의 실천으로서 주체성 생산

Ⅳ. 주체성 생산의 미학적 패러다임

Ⅴ. 결론

Ⅰ. 서론

과타리(Férix Guattari, 1930-1992)의 생태 철학적 사유는 그의 저서 세 가 지 생태학 Les trois ecology(1989)에서 주요하게 드러난다. 과타리의 다른 저서 에 비해 적다면 적은, 짧고 간소한 형식을 띠는 이 글을 통해 과타리의 생태철학

* 홍익대학교 박사

이 논문은 한국미학예술학회 2016년 봄 정기학술대회에서 자유주제로 발표한 원고를 수 정보완하여 게재한 것임.

* DOI http://dx.doi.org/10.17527/JASA.47.0.0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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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écosophie)을 논의할 수 있는가의 문제를 제기한다면 그것은 하나의 기우에 불과 하다. 그것은 마치 과타리의 탁월하고 독특한 사유가 들뢰즈(G. Deleuze)와의 공 동 저작에서 종종 들뢰즈 철학의 부산물로 취급되는 현상과 유사하다고 볼 수 있 는데, 왜냐하면 “과타리는 바로 번개이고 나는 피뢰침, 나는 번개를 대지에 던져 넣는다”1)는 들뢰즈의 언급처럼, 과타리의 생태철학은 역사상 생태철학의 논의에 서 획기적이면서 종합적인 사유를 함축하고 있기 때문이다. 그것은 단적으로 과 타리의 생태 철학적 사유가 생태철학의 강력한 윤리적 실천방식을 제시하며, 이 것이 곧 생태철학의 미학적 실천이라는 점에서 그렇다.

과타리 생태철학은 그의 철학적 사유의 여정 중에서 말기에 정립된 것으로, 과타리 자신의 전철학을 생태철학의 논의로 포괄하고 있다. 그것은 현시대의 생 태적 위기를 ‘환경적인 것’을 비롯하여 ‘사회적인 것’ 그리고 ‘정신적인 것’을 포괄 하는 인간 실존의 생산과 관련된 윤리적이고 정치적인 문제로 설정하는 과타리 생태철학의 고유한 특징에서 드러난다.2) 이러한 측면은 실천 철학자로서 일생을 현장운동과 함께한 과타리의 철학적 행보를 명확히 보여준다. 결국 과타리의 생 태철학은 사회적이고 정치적인 실천을 통해 이 시대의 생태 위기를 극복하고자 한다. 이것은 자본주의 사회의 병리적 측면을 진단하고 그 문제점을 극복하기 위 한 급진적인 이론과 정치적이고 사회적인 실천에 있어 혁신적인 방법론을 제공한 다는 점에서 의의가 있다. 그리고 과타리는 이러한 생태철학의 실천 논리를 ‘미학 적-패러다임(paradigme esthétique)’에 상응하는 것으로 상정함으로써, 생태철학의 논의를 생태미학의 논의로, 즉 윤리-미적 영역으로 확장시키는 고유한 특징을 드 러낸다.3) 그것은 과타리 자신이 “철학은 그 자체의 비철학적인 이해”4)를 요청해

1) ドゥル-ズ, 宇野邦一, いかに複数で書いたか , 現代思想, 12-11号 (1984), pp. 8-11, p. 9.

2) Guattari, Les trois ecology (Paris: Galilée, 1989), pp. 21-22 (이하 이 저서는 TE로 약어 표기함).

3) TE, p. 70.

4) Guattari/Deleuze, Qu'est ce que la philosophie? (Paris: Minuit, 1991), p. 219 (이하 이 저서는 QP로 약어 표기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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야하며, 특히 비철학적인 이해를 예술과 연관시켜 사유하고자하기 때문이다. 뿐만 아니라 예술의 형성 과정이란 인간의 창조적 차원으로 자연의 창조적 과정, 곧 자연 생성의 차원들과 분리될 수 없기 때문이다. 왜냐하면 그것은 자연으로서의 인간 실존의 생산과 다른 것이 아니기 때문이다.

본 논문은 과타리 생태철학의 사유들에 관한 논의를 먼저 살펴보고 그것의 윤리적이고 미학적인 생태 철학적 실천에 관한 논의를 고찰하고자 한다. 그것은 과타리 생태철학의 주요한 실천 개념인 ‘주체성(subjectivité) 생산’의 윤리적이고 정치적인 것으로서의 미학적 패러다임에 대한 것이다. 이러한 논의의 구성은 과 타리 말기의 저서들 세 가지 생태학을 비롯하여, 철학이란 무엇인가 Qu'est ce que la philosophie?(1991) 그리고 카오스모제 Chaosmose(1992)를 중심으 로 이루어진다. 우리는 이러한 일련의 저서들을 살펴봄으로써 과타리 후기 생태 철학적 사유를 통해 새롭게 확장된 생태미학의 논의를 접하게 될 것이다.

Ⅱ. 세 가지의 생태철학

1980년대 중반 이후부터 과타리는 프랑스 녹색당의 당원으로서 이론적, 실 천적 활동들을 활발하게 개진한다. 그는 당시 프랑스의 ‘녹색당’과 ‘생태 세대’라는 두 정치적 생태운동 집단 사이의 사상적 교류 역할을 하면서, 새로운 형태의 연 합 운동 조직을 구축하고자 한다. 이러한 그의 행보는 1992년 3월 프랑스 지방위 회 선거에서 생태파 후보에 오르는 것으로 이어진다. 같은 해 10월 과타리는 <녹 색당 당대회>를 위해 쓴 새로운 생태민주주의를 향하여 “Vers une nouvelle démocratie écologique” (1992)라는 글의 서두에서 “생태주의자들만이 우리 시대 의 본질적인 문제들을 혁신적인 방식으로 문제제기할 수 있는 유일한 세력”이라 고 언급하고, 이 글의 말미에서 “모든 실천 영역에서 집단적인 행동으로서의 이행 을 시작하는 것이 필요하다. 결국 그것은 지성, 연대, 협의, 책임윤리의 동의어인 새로운 생태민주주의의 출현을 의미한다”고 진술한다.5) 이러한 지점은 과타리 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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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이 현시대의 생태문제를 사회적인 것, 정치적인 것, 실존적인 것이라는 보다 일 반적인 위기에서 비롯되는 것으로 파악하고 있음을 보여준다. 따라서 과타리는 환경 문제를 중심으로 과학 기술의 관료적인 관점에서만 생태학을 논의하는 것은 현대 사회의 전면적인 생태위기를 극복할 수 없다고 진단하고,6) 그 대안으로 ‘세 가지 생태학’을 제안한다.

“내가 생태철학이라고 말하는 것의 세 가지 생태학적 작용 영역 ― 즉 환 경(environnement), 사회관계(사회적 상호작용, rapports sociaux), 인간 주 체성(subjectivité humaine)이라는 세 가지 작용 영역 ― 의 윤리-정치적 접 합을 통해서만 이 문제들에 적절하게 대응할 수 있을 것이다.”7)

과타리는 ‘환경 생태학’을 비롯하여 ‘사회 생태학’과 ‘정신 생태학’의 접합을 시도한다. 그는 환경 생태학에 ‘환경’을, 사회 생태학에 ‘사회관계’를, 정신 생태학 에 ‘주체성’을 대응시키고, 이 세 가지 접점으로서의 윤리-정치적 실천을 생태철 학이라고 규정한다. 요컨대, 과타리의 생태철학이란 기존의 환경을 중심으로 한 환경 생태학을 사회 생태학의 사회적 관계 그리고 정신 생태학의 주체성이라는 영역으로 확장시켜 ‘새로운 사회 구성의 모델’을 구축하고자하는 철학적 기획이다.

이러한 논의는 과타리 자신이 현시대에 동시다발적으로 나타나는 생태위기의 현 상들을 사회적 존재로서의 인간의 외적 조건뿐만 아니라 내적 조건을 연결하는 포괄적인 성질을 갖는 것으로 파악하고 있으며, 이러한 문제의 대안 또한 포괄적 인 영역에서의 접합으로 제기해야 한다는 것을 전제하는 것이다.

5) Guattari, “Vers une nouvelle démocratie écologique”, in: Libération, vol 77 (1992), pp. 1-2, pp. 1-2.

6) 과타리는 세 가지 생태학의 서두에서 “잡초의 생태학이 있는 것처럼 잘못된 사상의 생태학도 있다”는 베이트슨(G. Bateson)의 말을 인용하면서, 환경문제에만 치우친 생 태학과 생태위기의 대안으로 기술 관료적인 입장을 고수하는 정치집단과 행정기관을 비판한다 (TE, p. 12).

7) TE, pp. 12-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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과타리는 세 가지 생태학에서 표준화된 주체성에 독자적인 ‘특이성 (singularité)’8)의 층위들을 발전시키는 예들 ― 소수민족의 요구 증가, 여성(어린 이)노동 착취의 변화, 청년들의 초국적 문화현상(록 문화) 등 ― 을 제시하면서, 최근 도처에서 특이성에 대한 욕구가 폭발하고 있다고 진단한다. 그리고 이러한 특이화 과정들의 폭발과 탈중심화의 분산 속에서 새로운 생태 철학적 문제 설정 이 제기된다고 언급한다.9) 이러한 생태 철학적 문제설정은 새로운 역사적 맥락에 서의 인간 실존의 생산이라는 문제와 긴밀한 연관성을 갖는 것으로, 이러한 논의 는 필연적으로 윤리적이고 정치적인 문제를 함축한다. 따라서 과타리 자신의 초 중기 철학적 사유들, 이를테면 ‘횡단성(transversalité)’10) 개념이나 ‘분자혁명 8) 과타리는 ‘특수성(particularité)’이라는 개념과 구분하여 ‘특이성(sigularitè)’이라는 개념 을 사용한다. ‘특수성’이란 보편성과 개별성의 이항대립 속에서 보편성과 개별성의 연 결지점으로 인식되지만, ‘특이성’은 개체가 지니는 고유한 특성을 나타내는 개별성이나 동일자나 본질의 관념으로 귀속되는 보편성으로 환원되지 않는 것을 의미한다. 특이 성은 일반적인 법칙이나 보편적인 구조의 관념을 허물어뜨리고 특정한 시기와 특정한 장소에서 특정한 사회적 실천을 둘러싸고 구성되는 계열의 고유한 가치를 의미한다.

즉, 실천의 장이나 관계에서 고유하게 유일무이한 것을 특이성이라고 한다. 특이성에 기반을 둔 사회의 구성은 개별성들의 공통성에서 보편성을 도출하는 것이 아니라 특 이성들의 집합적 구성을 통한 새로운 사회의 구축을 의미한다. 그리고 개인과 관련된 특이화나 재특이화는 스스로 다른 것이 되어가면서도 고립되는 것이 아니라 오히려 서로 소통해 나가는 과정을 의미한다 (과타리, 펠릭스, 카오스모제, 윤수종 역 [동문 선, 2003], p. 12, 역주 2) 참조).

9) TE, p. 20.

10) ‘횡단성(transversalité)’개념은 ‘정신분석과 제도분석’의 교착점, 즉 1960년대 과타리가

‘의사-간호사-환자’라는 제도적으로 결합된 삼자 관계를 기존의 위계적 틀에서 해방시 키고 새로운 ‘사회 변형의 모델’을 구상하는 과정에서 창안된다. ‘횡단성’ 개념이란 사 회제도 안에서의 일반적인 인간관계, 즉 형식상 수직관계가 수평관계를 이끄는 이 양 자의 관계 안에는 ‘사선으로 횡단하는 무수한 관계가 내재적으로 존재한다는 것’을 의 미한다. 따라서 과타리는 ‘사회 제도적’이라는 관념보다는 ‘집단 속에서의 횡단성’이라 는 새로운 개념을 도입할 것을 제안한다. 과타리의 ‘횡단성’ 개념은 반체제에 의한 혁 명을 지향하는 것이 아니기 때문에 항상 권력과 반권력에 상반되는 벡터(vector, 크기 와 방향을 동시에 지시하는 변위, 속도나 힘)을 포함한 ‘양의적인 장’으로 상정된다.

그것은 여러 다른 영역들을 돌파하면서 연결시키는 운동으로, 수직적이고 수평적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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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évolution moléculaire)’11)의 사유들을 생태적 사고의 틀 속에서 정립하고, 이를 통해 새로운 사회 혁명론을 구상하는 것으로 볼 수 있다. 즉 과타리의 후기 철학 적 사유인 생태철학은 그의 철학적 사유의 종합적 틀로 제시된 것이라고 보는 것 이 적확하다.

이러한 맥락에서 과타리는 세 가지 생태학에 상응하는 각각의 특유한 원리 를 제시하고, 그에 따른 실천 방식을 촉구한다. 우선, ‘환경 생태학’의 특유한 원리 는 “최악의 파국으로부터 부드러운 변화까지 모든 것이 가능한”12) 유연성이라는 특징을 나타낸다. 이것은 실천 방식의 유연성을 의미하는 것으로, 과타리는 자연 의 균형은 이제 점점 인간의 개입에 달려 있으며 환경 생태와 관련한 적합한 철 학적 윤리의 채택이 긴급히 요구될 뿐만 아니라 인류의 운명에 초점을 맞춘 정책

관계에 횡단적인 사선을 일으켜 기존 권력의 틀에 균열을 가하는 것이다. 그러므로

‘횡단성의 현실화’란 권력에 의한 위로부터의 현실화가 아니라 ‘억압된 집단적 무의식 의 주체화’를 해방시켜 아래로부터의 권력과 제도에 ‘횡단성 계수’를 높여 나가는 것 이다.

11) 과타리의 ‘분자혁명(révolution moléculaire)’은 그의 저서 분자혁명 La révolution moléculaire(1977)에서 주로 논의된다. 분자혁명은 ‘욕망과 권력의 관계’에 대한 이 론을 제시하는 것으로, 스피노자의 역량(역량의 인간학적 규정인 욕망) 개념을 도입 하고, 그것을 기반으로 생산하는 욕망을 설정하여, 그것의 미시적, 분자적 움직임을 통해 권력을 파괴해 나가고자 한다. 즉, 과타리는 기존의 중앙 집권적 집중의 ‘거시 정치’에 대해 ‘미시 정치’를 강조하고 일상적 과정들 자체를 바꾸어 가는 ‘분자혁명’을 촉구한다. 따라서 과타리는 기존의 투쟁이 계급 권력 장악에 집착하고 ‘국가주의적 도식’에 사로잡혀 있는 것에 반대하여 사회 경제적 분석을 보안할 ‘리비도 경제’ 분석 과 ‘욕망 경제’ 분석을 도입한다. 실물생산과 관련하여 움직이는 현실의 흐름을 ‘정치 경제’라고 한다면, 과타리는 ‘리비도 욕망의 움직임’을 지칭하기 위해 ‘리비도 경제’,

‘욕망 경제’라는 개념을 사용한다. 이것은 ‘계급 전선의 투쟁’과 상반된 ‘욕망 전선의 투쟁’으로, ‘욕망의 정치학’을 강조하는 것이다. 그러므로 과타리의 분자혁명은 어떠한 표상체계나 구조적 제약에 의해서 완벽하게 포획될 수 없는 욕망의 본질적 속성을 통해 탈주의 가능성을 타진하는 것이다. 과타리의 이러한 논의는 기존의 권력 대체에 불과한 계급투쟁의 혁명에서 벗어나 다양한 사회 투쟁과 결합해 나가면서, 장기적이 고 복합적 혁명 과정인 ‘분자혁명’을 이루어 나가자는 새로운 제안으로 평가된다.

12) TE, p. 6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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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필요하다고 촉구한다. 뿐만 아니라 환경 생태학의 함축적인 의미는 자연 애호 가나 자격이 있는 소수 전문가의 이미지와 연결되어서는 안 되고, 그보다는 자본 주의 권력 구성체와 주체성 전체에 대한 문제제기로 나아가야한다고 강조한다.13) 이것은 환경에 치우친 생태학의 논의를 넘어 그것을 사회적이고 정치적인 논의로 확장시키고자 하는 과타리의 의도로 해석된다.

다음으로, ‘사회 생태학’은 사회관계에 상응하는 것으로 그 특유한 원리는

“다양한 규모의 인간 집단에 대한 감정적이고 실용적인 개입을 촉진”14)하는 것이 다. 과타리는 ‘사회체(socius)’15)의 모든 수준에서 인간관계를 재구축하고 기존의 존재방식을 수정하고 재발명하는 실천적 방법을 모색해야 함을 주장한다.16) 이것 은 집단적 존재 양식 전체를 재구축할 것을 촉구하는 것이다.17) 단지 소통을 통 한 개입을 의미하는 것이 아니라 주체성의 본질과 관련된 실존적인 돌연변이(변 화)에 의해 이루어지는 것을 의미한다. 과타리는 이러한 변화는 단순히 일반적인 지향에 머물러서는 안 되고 미시적인 사회적 수준에서 또는 대규모의 제도적 수 준에서 실효성 있는 실험적인 실천적 행위가 되어야 한다고 강조한다. 따라서 “자 본주의 권력에 대해 단순히 외부의 조합 활동이나 전통적인 정치 활동으로 대항 하려는 것은 더 이상 불가능하다. [… 따라서] 합일을 추구하는 것이 아니라 앞으 로는 ‘불일치’와 ‘실존의 특이한 생산’을 기르는 것이 중요할 것이다.”18)

특히, 과타리는 ‘자본주의 사회체’를 사회 전체에 대한 대중매체의 지배적인 가속화를 통해 ‘세 가지 유형의 주체성’을 강제함으로써 자본주의 체제에 봉사하 도록 하며 그 세 가지 구분을 더욱더 명료화시키는 것으로 파악한다.19) 그것은

13) TE, p. 48.

14) TE, pp. 58-59.

15) ‘사회체(socius)’란 사회를 하나의 ‘거대한 신체’로 바라보는, 즉 다양한 사회적 힘들의 관계이자 사회적 생산이 등록되는 표면을 이루는 것(기계)으로 바라보는 관점을 의미 한다.

16) TE, p. 43.

17) TE, p. 22.

18) TE, p. 4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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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가 기구나 권력체들이 거대매체를 장악하고 여론을 형성함으로써 대중의 태도 나 무의식적인 가치 도식을 지배적 규범에 적응하도록 강제한다는 것이다. 따라 서 과타리는 사회 생태학의 일차적인 강령은 자본주의 사회를 대중매체 시대에서 탈-매체 시대로 이행시키는 것이 중요하다고 본다. 여기서 탈-매체란 매체를 재 특이화할 수 있는 복수의 주체 집단이 매체를 재전유하는 것을 의미한다.20) 예를 들어, 과타리는 소형 라디오 채널들이 대형 방송 체계를 대체하고 다양한 표현 방식을 획득해가는 전유방식을 제시한다.21) 소형매체의 이동성(휴대성)을 통해 거 대매체에 대한 횡단적 네트워킹이 가능하다는 것이다. 뿐만 아니라 매체의 집단 적 소유를 지향하는 소형매체의 특징은 광범위한 대중뿐만 아니라 소수자, 주변 자, 모든 종류의 일탈자들에게도 적합한 소통수단을 제공한다고 본다.

마지막으로, ‘정신 생태학’에 상응하는 것은 주체성으로, 과타리는 이와 관련 하여 “신체, 환상, 지나간 생과 사의 신비에 대한 주체의 관계를 재발명하는 것”22)으로 나아가야 한다고 언급한다. 여기서 주체의 관계를 재발명하는 것은 곧 주체성 생산을 의미한다. 정신 생태학의 특유한 원리는 주체성 생산에 의해 “개인 적 혹은 집단적인 차원에서 기존의 안정된 집합체들을 넘어서 부상할 수 있다는 점”23)이다. 따라서 과타리는 정치적이고 문화적인(예술적인) 개입을 위해 개인적, 19) 과타리에 의하면 ‘자본주의 사회’는 ‘세 가지 유형의 주체성’을 만들어 내고 그것을 통 해 자본주의 체제를 유지한다고 본다. 하나는 ‘임금 노동자 계급에 일치하는 계열적인 주체성’이고, 다른 하나는 ‘보장 없는 방대한 대중들에 일치하는 주체성’을 말하고, 나 머지는 ‘지배 계층에 일치하는 엘리트적인 주체성’을 의미한다. 과타리는 “엘리트 계층 은 물질 재화나 문화 수단을 충분히 향유하고 독서와 글쓰기는 최소한에 그치면서

‘결정과 관련된 권한과 정당성’의 감각을 몸에 지닌다. 그에 반해 종속적인 계층들(임 금노동자, 대중)은 될 대로 대라는 식의 태도를 보이고, 자신의 삶의 의미를 부여하는 희망을 상실한 것이 일반적인 것으로 보인다”고 언급한다 (TE, pp. 60-61).

20) TE, p 61.

21) 실제로, 과타리는 1970년대 이탈리아의 자유 라디오 운동의 영향을 받아 자택에 ‘민중 자유 라디오 연합 본부’를 설립하고 프랑스의 자유 라디오 운동에 적극적으로 참여한 다.

22) TE, p. 22.

23) TE, p. 5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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집단적, 제도적 층위들에 의해서 생산되는 ‘주체성’을 강조한다. 과타리는 정신 생 태학의 ‘주체성 생산’에서 무엇보다도 특히 중요한 지점은 그 실천 방식이 과학적 인 사실의 측면에서가 아니라 미적이고 실존적인 효과의 측면에서 설명되는 점이 라고 언급한다. “정신 생태학의 실행 방식은 과학성이란 시대에 뒤진 이상에 집착 하는 정신분석 전문가들의 방식보다는 예술가들의 방식에 더 가까울 것이다.”24)

과타리는 세 가지 생태철학의 특유한 원리들, 즉 환경 생태학은 환경 문제 를 자본주의 권력구성체와 관련시켜 나가고, 사회 생태학은 사회의 모든 수준에 서 인간관계의 재구축을 촉구하며, 정신 생태학은 정신적 대상들과의 관계 속에 서 주체성을 예술적 방식으로 재구성해 나아갈 것을 주장한다. 이렇듯 세 가지 생태학은 각각을 특징짓는 실천의 관점에서는 서로 구별되지만 과타리는 이 세 가지 생태학의 근본적인 작용 영역에서의 윤리적이고 정치적인 재접합을 생태철 학이라고 정의하고 그것을 하나의 윤리적이고 미적인 영역에 속하는 것으로 규정 한다. 왜냐하면 세 가지 생태학’의 작용 영역에서의 끊임없는 ‘이질 발생성 (hétérogenése)’은 곧 재특이화의 지속적인 과정 그 자체를 의미하기 때문이다.25) 따라서 세 가지 생태학의 작용 영역에서의 ‘주체성’은 횡단적인 축을 통해 환경 세계(환경 생태학)와 사회적이고 제도적 배치 속에 동시에 설립(사회 생태학)되 며, 이것들과 대조적이지만 개인의 가장 친밀한(은밀한) 부문에 주재하고 있는 환 상과 풍경 속에도 설립(정신 생태학)된다.26) 과타리는 세 가지 생태학의 재접합을 통한 윤리적이고 정치적 문제 설정이 없는 한 모든 위협(인종주의, 종교적 광신, 반동적인 재폐쇄 속에서 동요할 수밖에 없는 소수 민족의 분열, 어린이 노동의 착취, 여성의 억압)은 증가할 수밖에 없다고 본다. 즉 윤리-정치적인 재접합을 통 한 세 가지 생태 철학적인 발상의 사유가 회복되지 않는 한 이러한 파국은 지속

24) TE, p. 23.

25) TE, p. 72.

26) 과타리는 이들 세 영역 중에서 어떤 특수한 영역 속에서 일정 정도의 창조적인 자율 성이 획득(재창조)된다면, 동시에 다른 영역들에서도 그것들을 획득할 수 있게 된다고 본다 (TE, p. 7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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될 것이라고 예견한다.27) 따라서 과타리의 생태위기에 대한 생태 철학적 문제 설 정은 인간 실존의 생산성 전체에 대한 문제 설정이며, 새로운 인간 실존의 생산 즉 주체성 생산은 환경 생태학과 사회 생태학 그리고 정신 생태학의 근본적인 작 용 영역의 윤리-정치적인 재접합을 통해 생산되는 것이다.

Ⅲ. 생태철학의 실천으로서 주체성 생산

과타리의 세 가지 생태학은 개인과 집단의 본원적인 자립화 작용을 의미 하는 특이성에 기반을 둔 주체성 개념의 중요성을 강조하면서 동시에, 주체성 생 산을 새로운 사회 구성 이념으로서의 생태철학이라는 사유의 틀로 확장해 나간다.

그의 마지막 저서인 카오스모제는 생성으로서의 주체성 생산 문제에서 시작해 서 윤리-미적 패러다임 그리고 새로운 미학적 패러다임의 실천 대상으로서의 생 태철학을 다루는 것으로 마무리된다. 이 유작의 서두에서 과타리는 주체적 요인 들의 활동이 전면에 등장하고, 주체성의 기계(machine)28)적 생산이 대량 발생하 27) TE, p. 23.

28) 과타리에 의해 창안된 ‘기계(machine)’ 개념은 1969년 그의 기계와 구조 “Machine et structure” 라는 글에서 처음 사용된다. 과타리의 기계 개념은 라캉(J. Lacan)의 모든 주체적 움직임을 틀 지우는 ‘구조’ 개념에 반하는 의미를 함축한다. 과타리는 ‘기계’라 는 개념에서 기계적 ‘작동(operation)’에 주목하고 기계들이 서로 얽혀서 움직이는 연 결 관계 즉 ‘배치(agencement)’을 강조한다. 따라서 과타리는 결정론적인 의미의 ‘기계 학(mécanique)’과 달리 기계적 작동을 강조하기 위해 ‘기계론(machinisme)’을 말한다.

‘기계론’은 기계들의 접속에 초점을 맞추기 때문에 기계들이 서로 밀어내고 선택하고 배제하는 새로운 가능성의 선을 출현시키지만, ‘기계학’은 상대적으로 자기 폐쇄적이고 외부 흐름과 단절된 코드화된 관계만을 나타낸다. ‘기계’는 넓은 의미에서 ‘이론적, 사 회적, 예술적 기계’를 포함하며, 고립되어서 작동하지 않고 ‘집합적 배치’로 작동한다.

과타리가 ‘주체 집단’을 자기 생산적인 ‘기계적 배치’로 설정하는 이유는 ‘사회 구조에 의한 자율적 생산의 부재’를 지적하기 위한 것으로, 과타리의 ‘기계’는 접속, 조립, 연 결에 따라 그 속성이 무한히 변화되는 특징을 갖는다. 이것은 초월적 세계가 아닌 실 재계에서 작동하는 것으로, ‘사회기계’ 및 ‘기술기계’까지 적용되는 ‘무의식의 실존양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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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 또한 인간 주체성에 대한 행동학적이고 생태학적인 양상들이 부각되고 있다는 점에서 개인적인 주체와 사회 사이의 고전적인 대립을 넘어 주체성의 정의가 확 대되고 있다고 언급한다.29) 이어서 주체성을 “스스로 주체적인 타자성과 인접한 혹은 규정된 관계 하에서 자기 준거적인 실존적 영토로서 개인적 그리고 혹은 집 단적 층위들의 출현을 가능하게 만드는 조건들 전체”30)라고 정의한다. 그리고 이 러한 주체성 생산의 목적은 “새로운 생산적 배치의 근원에 존재하는 비신체적 가 치 체계와 관련한 인식, 문화, 감수성 그리고 사교성을 생산”31)하는 것으로 삼아 야 한다고 강조한다. 결국 과타리의 주체성 생산 개념은 새로운 인간 실존의 생 산을 목적으로 하며, 이것은 지배 권력이 배열한 주체화의 집합적 설비에 이질 발생을 생성시킴으로써 새로운 혁명을 가능하게 만드는 원리이다.

그렇다면 여기서 과타리 생태철학의 실천 개념으로서의 주체성 생산의 근원 적인 동력은 무엇인가라는 물음을 제기할 수 있다. 과타리는 생태철학의 주요한 실천 개념인 주체성 생산의 실질적 동력을 ‘욕망(désir)의 흐름’으로 규정한다.32)

속에 존재하는 주체성’을 설명하는 것이다.

29) Guattari, Chaosmosis: an ethico-aesthetic paradigm, Bains, P./Pefanis, J. (trans.), (Indiana University Press, 1995), pp. 1-2 (이하 이 저서는 C로 약어 표기함). 여기서 과타리는 ‘주체성 생산의 특징’을 다음과 같이 규정한다. 첫째, ‘주체성 생산’이란 ‘물 질적 하부구조-이데올로기적 상부구조’의 전통적인 이항적인 ‘결정 관계’가 아니다. 둘 째, ‘주체성 생산’의 다양한 기호적 작용영역은 고정되고 의무적인 ‘위계 관계’가 아니 다. 셋째, ‘주체성’은 다원적이며 다성적이다. 넷째, ‘주체성’은 단일한 인과율에 따라서 다른 모든 층위들을 인도하는 지배적인 결정적 층위를 인정하지 않는다.

30) C, p. 9.

31) TE, p. 43.

32) 과타리는 자신의 욕망 이론이 전통적인 관점과는 다른 (과타리의 표현에 의하면) 가 히 ‘선각자의 혁명’이라고 할 만한 생산적인 욕망 이론의 근거가 스피노자(B.

Spinoza)에게서 온 것임을 분명히 밝히고 있다 (Guattari/Deleuze, L'anti-oedipe:

Capitalisme et schizophrénie [Paris: Minuit, 1972], p. 35. 이하 이 저서는 AO로 약 어 표기함). 과타리는 “스피노자를 철학자들의 그리스도이며, 가장 위대한 철학자들이 란 거의 스피노자의 생성으로서의 생산적 욕망이론의 ‘무한한 생성’에 멀어지거나 가 까이 다가간 사도들에 지나지 않는다”고 진술한다 (QP, p. 59). 스피노자의 ‘욕망 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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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기서 욕망이란 표상으로 환원되지 않는 신체적이고 현실적인 무의식의 차원이 며, 심리적 생산인 동시에, 사회적 생산이기도 한 자연의 질서인 보편적인 생산으 로서의 욕망을 의미한다. 이러한 과타리의 욕망으로서의 주체성 생산은 직접적으 로 사회에 투여됨으로써 사회적 질서와 그로부터의 탈주를 동시에 만들어낸다.

즉 과타리는 욕망으로서의 주체성 개념을 능동적이고 긍정적인 전복적 힘으로 상 정함으로써 다양한 정치적이고 사회적인 이론들의 계기를 끌어내고 그것의 변혁 을 시도한다.

“욕망이 억제되는 것은 아무리 작은 욕망이라도 일단 욕망이 생기면 사회 의 기존 질서가 의문시되기 때문이다. 그렇다고 욕망이 비사회적인 것은 아 니다. 그렇지 않고 욕망은 사회를 뒤집어엎는다. […] 욕망은 본질적으로 혁 명적이다. 혁명적인 것은 욕망이지, 좌익의 제전이 아니다.”33)

우선, 과타리 생태철학의 실천 개념인 ‘주체성 생산’의 근거로서의 욕망 개 념은 첫째, ‘생산적인 욕망’이라는 특징을 나타낸다. 이것은 결여나 결핍에 의한 욕망이 아닌 긍정적이고 능동적인 생산적 욕망을 의미하는 것으로, 무의식을 구 성하는 현실적 요소들의 결합과 단절 그리고 분기를 통해 끊임없는 분자적인 새 로운 생성을 만들어 내는 것이다. 이러한 과타리의 욕망 규정에서 가장 주목해야 할 지점은 전통 철학에서 보통 결여나 결핍으로 개념화되는 욕망 개념과 달리 과 타리의 실천 개념인 주체성 생산으로서의 욕망 개념은 그 규정 자체가 긍정적이 고 생산적인 욕망으로 규정된다는 것이다. 따라서 과타리는 결여나 결핍으로 정 론’은 인간을 ‘실존과 행위의 역량’ 즉, 욕망을 ‘현행적 본질’로 규정하고 이를 통해 ‘욕 망 개념의 무의식적이고 신체적인(유물론적인) 속성’을 강조하는 측면을 드러낸다. 이 러한 스피노자의 ‘무의식의 내재적인 욕망 이론’은 또한 과타리에 의해 ‘기관 없는 신 체(corps sans organs)’로 펼쳐진다 (우노 구니이치, 유동의 철학, 이정우/김동선 역 [그린비, 2008], p. 63). 따라서 과타리는 주체성 생산으로서의 욕망 이론에 대한 근거 를 스피노자의 ‘생산적 욕망’이론으로 제시하고, 이를 통해 사회적 질서와 현상들의 생성 및 변화를 설명하고 사회를 변혁할 수 있는 ‘사회이론’을 구상한다.

33) AO, p. 13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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립되는 욕망을 사회적 생산 안에서 지배 계급들에 의해 조성되는 ‘반생산’으로 규 정한다. 즉 욕망으로서의 주체성 생산은 결코 그에 앞서는 ‘결여’에 의해 생산되는 것이 아니라 오히려 반대로 ‘풍부한 욕망’(생산적 욕망)에서 생산되는 것이다. 모 든 결여나 결핍은 사회적 생산 속에서 지배적인 권력에 의해 풍부한 욕망 속에 결여가 조성되고 조직되는 것이다. 이러한 결여나 결핍의 조작은 모든 생산적 욕 망이 사회적 생산 속에서 환상의 영역으로 포획되는 것을 의미한다. 이렇듯, 과타 리가 욕망을 결핍에 의한 역동으로 규정하는 모든 관점을 배제시키는 이유는 그 러한 관점에 전제된 관념론적 세계에 대한 비판에서 기인한다. 대상의 결여나 결 핍은 언제나 그 논리 속에 또 다른 세계, 결핍이 부재하는 초월적 세계를 상정하 기 때문이다.

이어서, 과타리 생태철학의 실천 개념인 ‘주체성 생산’의 근거로서의 욕망 개념은 둘째, ‘유물론적인 무의식의 욕망’이라는 특징을 나타낸다. 이것은 물질적 이고 현실적인 신체들의 변화에 관련된 무의식적인 것으로, 미시적이고 복수적이 며, 총체화되지 않는 운동들을 의미하는 것이다. 이러한 과타리의 무의식에 대한 논의는 ‘무의식적 주체성’이라는 인간 실존의 존재 양상으로 나타난다. 과타리는

“[…] 무의식이란 무언가 우리 주위 어디에나 붙어 다니는 것, 몸짓에도, 매일 매 일의 일상에서도, TV에서도, 기상 징후에도, 당면한 커다란 문제에서조차도 우리 에게 붙어 다니는 어떤 것”34)이라고 규정한다. 과타리의 무의식적 주체성에 대한 논의는 하나의 은유가 아니라 무의식의 차원에서 실제로 존재하는 주체성을 의미 하는 것이며, 또한 현실에서 실존하는 욕망의 주체성을 의미하는 것이기도 하다.

즉 이것은 현실에 서식하는 유물론적인 무의식적 주체성을 의미한다.

과타리의 ‘무의식적 욕망’ 개념이란 표상으로 환원되지 않는 실재계의 모든 요소들을 포함하는 것으로 타자의 욕망이 아니라 직접적으로 신체와 관련된 주체 를 생산하는 그 자체가 주체성인 무의식적인 생산적 욕망이다. 결국, 과타리의 ‘주 체성 생산으로서의 욕망’ 개념은 결여나 결핍으로 규정되는 정신분석에서의 욕망 34) Guattari, L'inconscient machinique: Essais de schizo-analyse (Paris: Recherches,

1979), pp. 7-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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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념과 달리 능동적이고 긍정적인 생산적 욕망으로 규정되며, 또한 표상으로 환 원되지 않는 실재계의 모든 요소들을 포함하는 실재계에 현존하는 유물론적 무의 식의 욕망으로 규정된다.35) 따라서 과타리의 욕망 개념은 인격적 주체와 무관한 기계적 흐름이며, 의식적 주체와 무관한 무의식적 흐름인 광기의 분열적 흐름일 뿐만 아니라 결핍과 무관한 생산적 흐름으로 제시된다. 이러한 욕망은 개인들의 차이를 통합하고 그것의 공통성을 보편화함으로써 권력을 만들어 가는 방식이 아 니라 개인의 특이성에 기초하여 ‘새로운 집단적 주체성’을 생성함으로써 권력을 파괴하고 또 다른 특이성으로 나아가는 것이다. 따라서 이러한 과타리의 ‘욕망으 로서의 주체성 생산’ 개념은 ‘집단적 주체’36)라는 개념에 근거하는 것으로 규정된 다. 이러한 과타리의 ‘집단적 주체’ 개념을 이해하기 위해 그의 ‘인격적 주체’에 대 한 논의를 살펴보자.

“당신이 주체란 무엇인가라고 질문하면 나는 답하지 못한다. 왜냐하면 나는 35) 과타리는 정신 분석학의 표상이론(오이디푸스 이론)을 ‘사회적 생산의 억압적 형식들’

로 간주한다. 왜냐하면 과타리는 정신 분석학의 표상이론에서 어머니를 욕망하는 아 이의 욕망은 어머니라는 전인격체를 향하는 것이 아니라 그것은 ‘부분대상’에 불과하 며, 어머니와 함께하기 위해 아버지를 제거하려는 욕망은 오히려 아버지로 상징되는 기성세대가 아이에게 부과한 ‘죄의식’ 즉, ‘사회적 생산의 억압적 형식’이라고 보기 때 문에 정신분석학의 오이디푸스적 표상이론을 비판한다. 따라서 정신분석은 오이디푸 스화를 통하여 욕망이 ‘사회규범의 상징적 표상체계’나 ‘언어적 표상체계’에 의해 순치 되고 승화됨으로써 창조적인 사회적 생산에 투여된다고 본 반면 과타리의 ‘생산적 욕 망’은 능동적인 생성으로서 ‘무의식의 작동 방식’에 의해 직접적으로 사회적 장에 투 여됨으로써 사회 질서를 만들고 동시에 그것으로부터 탈주를 가능하게 한다.

36) 과타리의 독자적이고 근본적인 사상은 그의 ‘집단적 주체’라는 개념에 근거한다. 이 개 념은 상대적으로 개인 지향적인 들뢰즈와 비교할 때, 과타리의 강한 정치개입적인 성 향을 드러낸다. 집단적 주체성에 대한 과타리의 이론적, 실천적 추구는 이탈리아의 급 진주의자 네그리(A. Negri)와의 공저 자유의 새로운 공간 Les nouveaux espaces de liberté(1985)에서도 잘 드러난다. 이 개념은 기존 좌파의 ‘관료주의’와 정신분석의 ‘오 이디푸스적 가족주의’에 대한 그의 지속적인 비판의 근거로 작동하며, 이를 통해 근대 적 주체를 탈중심화하고 새로운 혁명적 ‘주체성의 생산’을 긍정적으로 모색하는 방향 으로 한 걸음 더 나아갈 수 있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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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체가 있는지 알지 못하기 때문이다. 나는 주체는 없고 하나의 행위자, 정 말 하나의 집합적 표현 배치가 있다고 말하겠다. 나는 주체에 배치를 대립 시키고 개별화된 주체에 집합체를 대립시킨다. 나는 대표화된 위임자로서 생산의 대표와 분리된 개별화된 주체의 집적 대신에 비주체적이고 비기표 적인 배치가 있다고 주장한다. 이러한 배치는 개인, 목표, 교환체계의 궁극 적인 목적이든지 간에 어떤 하나의 계기로 분리될 수 없는 채로, 생산적이 고 대표하며, 유용하며, 욕망하며 행동을 촉진하는 전체이다.”37)

이 논의에서 과타리는 먼저 ‘주체’의 존재를 부정하는 것이 아니라 배제시키 고 그것을 비주체적인 ‘배치(agencement)’38) 즉 ‘집합적 표현 배치’로 대체한다.

이어서 과타리는 주체 개념이 어떤 맥락에서 인격적 주체를 넘어서는 자신의 ‘집 단적 주체’ 즉 ‘집단적 욕망으로서의 주체성’으로 규정되어야 하는지를 설명한다.

“주체라는 생각은 관념론 철학과 유기적으로 결합되어 있기 때문이다. 자기 자신과 우주의 주인으로서 즉 지각, 의지, 말, 관계를 통제하는 작은 기호적 기계로서 주체라는 생각은 결정과 자유에 관한 관념론적 세계관을 나타내 며, 인간이 기호화되고 자기인식에 이르는 영역과 실천, 사회, 소통의 영역 사이의 균열, 틈새를 함의한다. 정말 인식과 주체는 존재하지만 인식도 주 체도 실천과정의 주인이 아니다.”39)

이 규정에 의하면, 과타리는 실제적으로 인격적 주체와 의식을 부정하기보 다는 그것이 새로운 형태의 주체성을 생산하는 혁명적인 실천 운동의 주체가 아 니라는 것을 강조한다. 결국, 욕망의 새로운 혁명적 기제로서의 주체성은 집합적

37) 과타리, 가타리가 실천하는 욕망과 혁명, 윤수종 편역 (문학과학사, 2004), p. 65.

38) ‘배치(agencement)’란 초기에 프로이트의 ‘컴플렉스’ 개념을 대치하기 위해 고안된 것 이다. 배치는 다양한 구성 요소들을 포함하며 코드화나 영토화에 의해 고정되지 않고 끊임없이 새로운 흐름들을 생산하는 것으로 다양한 기계들이 작동하면서 이루어 내는 결합들의 상태를 의미한다.

39) 과타리, 가타리가 실천하는 욕망과 혁명, p. 6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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배치에 의해 생산된다는 것이다. 과타리의 이러한 논의에 따르면 근대적 이성에 기초한 인간 주체는 이제 이질적인 생성의 다양한 주체들, 즉 사회의 다양한 주 체 집단들로 대체된다. 그러므로 과타리의 ‘욕망의 정치학’에서 주체의 경계는 철 저히 와해되고 그것은 전개인적이며 몰인격적인 분자적 단위로서 욕망하는 기계 들의 ‘집단적 배치’로 대체된다. 과타리의 이러한 논의가 함축하는 것은 근대적 주 체를 탈중심화하면서도 구조주의 및 후기 구조주의자들이 빠졌던 결정주의와 정 치적 비관주의에서 벗어나서 ‘새로운 혁명적이고 자율적인 주체성의 생산’을 긍정 적으로 모색하기 위한 의도를 갖는다. 따라서 과타리 철학에서의 집단적 주체성 의 강조는 기존의 인격적 주체 개념을 비판하고 극복하고자 하는 의도에서 비롯 한 것으로, 그것은 의식적 주체의 부재라기보다는 기존의 인격적 주체에 대한 배 제이며 보다 더 집단적 주체에 의한 주체성 생산을 강조하기 위한 것으로 해석하 는 것이 적확하다.

그러므로 과타리의 주체성 생산으로서의 욕망 개념은 능동적이고 생산적인 욕망 그리고 유물론적 무의식의 욕망이라는 특성을 갖는다. 이러한 주체성으로서 의 욕망은 무의식적이고 몰인격적인 기계적인 흐름이며, 어떠한 고정된 상징적 표상체계에도 포획될 수 없는 역동적이고 능동적인 흐름이다. 그리고 이러한 욕 망으로서의 주체성 생산 개념은 집단적 주체라는 개념을 전제한다. 결국 과타리 생태철학의 주요한 실천 개념인 주체성 생산은 세 가지 생태철학의 작용 영역에 서의 윤리-정치적 접합을 위한 정치적이고 사회적인 분석과 변혁을 가능하게 하 는 욕망으로 규정된다.

과타리는 오늘날 과학 기술적 변혁에 의한 환경 파괴는 생태학적 불균형이 라는 환경 위기를 발생시키고, 정보 혁명에 따른 인간 노동의 해방은 인간 생활 양식에 실업, 주변자, 고독, 무위, 불안, 신경증을 야기하며, 대중 매체나 소비체제, 복지 등에 의한 ‘주체성의 계열화’ ― 동일한 생활, 동일한 양식, 동일한 유형의 문화 ― 가 전반적으로 뿌리 깊게 확산된 것으로 진단한다. 이러한 추세 속에서 양극화된 동질적 주체인 자본가와 노동자의 계급적 적대는 완화된 것처럼 보이지 만 현시대의 ‘통합된 세계 자본주의(calpitalisme mondial intégré)’40)는 빈곤과 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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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 죽음이 팽배한 광대한 지대를 양산해 내고 있으며, 더 많은 부분을 소외시키 는 ‘주변화’를 양산하고 있다고 파악한다. 따라서 과타리는 통합된 세계 자본주의 가 지속적인 경제 성장을 보증하려고 했지만 국가나 인종간의 시련들을 격화시키 고 있기 때문에, 이것은 실패한 것이라고 본다. 또한 국가 기계들의 관료화, 경직 화, 전체주의화의 경향이 확산되고 있기 때문에 국가(국가기능)의 변혁이 시급하 다고 본다. 이러한 맥락에서 과타리는 자신의 생태 철학적인 인식을 통해 원칙적 으로 생산을 위한 생산이라는 이데올로기, 즉 자본주의적 맥락에서 이윤에만 집 중된 ‘생산 이데올로기’에 문제를 제기한다. 따라서 과타리는 ‘국가’을 모든 주체적 인 집단의 출현을 방해하고 금지하기 위해 존재하는 반-생산의 기표로 규정한다.

이어서 ‘자본주의’를 영토화를 탈영토화시키면서 재영토화를 동시에 수반하는 힘 으로 규정한다. 그러므로 ‘혁명’이란 이미 수립되어 있는 사회적 코드들과 지배 구 조들을 깨뜨리는 집단적 주체성을 형성해 나가는 과정으로 규정된다. 그리고 이 제 더 이상 이러한 문제 설정의 대안은 단순히 국가 권력을 통제하려는 것이 아 니라 대신에 재구축할 것을 목적으로 삼아야 한다고 말한다. 결국 과타리는 현시 대의 생태 철학적 대상으로 ‘국가와 자본주의’라는 두 가지 주제를 전면에 제시한 다. 하나는 국가를 재정의 하는 것 더 정확히 말하면, 실제로 다양하고 이질적이 며 종종 모순적인 국가 기능을 재정의 하는 것이다. 그리고 다른 하나는 시장 개 념을 해체하는 것, 이를 통해 경제적인 활동을 주체성 생산에 재집중하는 것이 다.41)

40) 과타리의 ‘통합된 세계 자본주의(calpitalisme mondial intégré)’ 개념은 기존의 자본이

‘한 국가의 사회적 자본’을 거점으로 움직였다면, 이제는 세계적으로 ‘통합된 자본’을 거점으로 움직인다는 것을 의미한다. 즉, 정치와 경제, 자본과 국가는 완전히 통합되 었고 이러한 자본주의적 재구조화는 국민경제의 국제적 통합이 점차 세계적 규모에서 이루어지고, 그것을 다방면에서 엄격하게 계획된 통제 기획 안에 종속시키는 방향으 로 전개되는 것을 말한다. 과타리는 세계시장의 통일성을 조정하면서도 그것의 ‘의사 국가주의적인 성격’을 지닌 생산적 계획, 금융적 통제, 정치적 영향력 등의 수단에 종 속시키는 지배를 ‘통합된 세계 자본주의’로 규정한다 (과타리, 펠릭스/네그리, 안토니 오, 자유의 새로운 공간, 이원영 역 [갈무리, 1995], p. 61, 참조).

41) C, p. 1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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과타리는 “통합된 세계 자본주의가 가져온 피해에 직면하기 위해서는 사회 기구의 대대적인 재건이 필요하다. 단 그러한 재건은 법률, 칙령, 관료적 계획의 정상에서의 개혁을 통해서 이루어지는 것이 아니라 오히려, 특이성의 존중과 주 체성 생산의 항상적인 작업에 집중된 혁신적인 실천의 촉구와 대안적인 경험의 축적이 사회의 나머지에 적절하게 접합되면서 전적으로 자율화됨으로써 실현된 다”고 본다.42) 그러므로 과타리 ‘생태철학의 목적’은 세 가지 생태학적 작용 영역 인 환경과 사회관계 그리고 인간 주체성의 윤리-정치적 접합을 통해서 자본주의 권력 구성체와 그것이 만들어 내는 주체성 전체에 관해 문제를 제기하는 것이라 고 할 수 있다.

Ⅳ. 주체성 생산의 미학적 패러다임

“실천적이며 동시에 사색적인 윤리-정치적이고 동시에 미학적인 새로운 유 형의 생태철학이 낡은 종교적, 정치적, 연합적 참여 형태를 대신해야 한다 고 나는 생각한다. […] 분석적이며 생산적인 주체성의 배열 장치들과 층위 들을 설치하려는 다각적인 운동이 중요할 것이다.”43)

과타리의 생태철학은 사회적 상호관계, 사적인 것, 정치적인 것을 자의적으 로 구분하는 낡은 이념을 대체하기 위해 환경, 사회관계, 주체성 사이의 윤리-정 치적인 작용 영역의 접합을 통한 주체성 생산을 촉구한다. 그리고 이러한 주체성 생산의 실천 과정에서 예술이 유용한 역할을 담당하는 것으로 간주한다. 과타리 의 생태철학에서 예술은 생태 논리로서 주체성 생산의 모델로 제시되며 새로운 미학적 패러다임으로의 전환에 있어 본질적인 것으로 사유된다. 이것은 “근본적인 연구 및 예술의 미래 전체에 대한 것”44)이다.

42) TE, pp. 57-58.

43) TE, p. 7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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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람들은 어떤 예술가가 자신이 다루는 팔레트에서 새로운 형식들을 창조 하는 것과 같은 방식으로 새로운 주체화 양태들을 창조한다. […] 우리는 즉자적인 것으로서의 주어진 주체성과 마주하고 있는 것이 아니라 자율성 의 실현 과정들 또는 자기 생산(autopoïèse)의 과정들과 마주하고 있다.”45)

이 논의에 따르면, 과타리의 주체성 생산은 현실에 자리 잡고 있는 지배 체 계의 질서를 파괴하거나 대체하는 것을 의미하는 것이 아니라 지극히 새로운 주 체성의 생산, 즉 예술적인 생성을 의미한다. 뿐만 아니라 이것은 미학적 질서의

‘자율성의 차원’을 포함하고 있다. 이러한 측면은 자기준거에 기초한 이질 발생과 재특이화의 지속적인 과정 즉 환경, 사회체, 정신이라는 세 가지 생태학에 포함된

“미학적이고 분석적인 차원들”46)을 경유하는 것이다. 이것은 세 가지 생태학의 공 통점을 찾아 보편으로 종합하는 것이 아니라 세 가지, 아니 그 이상의 무수한 n 개의 생태 철학적 대상들의 존재론적 차원들을 원을 그려가듯 접속시켜 그 존재 론적 차원들을 횡단하는 흐름을 만들어내는 것이다. 그리고 이것이 과타리 생태 철학의 실천전략인 새로운 윤리적이고 미학적인 패러다임으로의 전환이다. 따라 서 주체성 생산의 미학적-패러다임은 윤리의 문제임과 동시에, 생성이라는 자연 의 본성에 관한 것 즉 ‘생태-논리’에 관한 것이라고 말할 수 있다.

그리고 이러한 새로운 윤리-미적 패러다임으로의 전환은 ‘카오스(chaos, 혼 돈)’와 ‘코스모스(cosmos, 질서)’의 ‘오스모제(osmose, 상호침투)’를 의미하는 ‘카오 스모제(chaosmose)’를 통해 이루어진다. 과타리는 철학이란 무엇인가에서 ‘카오 스’를 무질서라기보다는 “희미하게 떠오르다가 이내 사방으로 흩어져 버리는 모든 형태들의 무한한 속도”47)로 규정한다. 다시 말해, 카오스는 무가 아니라 모든 가 능한 미립자들을 포함하며 일관성이나 지시 관계 그리고 결과도 없이 나타났다가 금세 사라져버리는 모든 가능한 형태를 이끌어내는 잠재태로서의 공백을 의미한 44) TE, p. 67.

45) C, p. 7.

46) C, p. 20.

47) QP, pp. 111-1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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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 즉 이것은 탄생과 소멸의 무한한 속도를 말한다. 과타리는 이러한 카오스 개 념을 철학과 예술에서의 생성의 문제와 연관시킨다. 카오스로부터 철학자들이 가 지고 오는 것은 ‘변주들(variations)’인 반면, 예술가들이 카오스로부터 가져오는 것은 ‘다양성들(variétés)’이다.48) 전자의 경우, ‘철학의 변주들’은 여전히 무한한 것이지만 내재성의 분할구도를 설정하는 ‘절대 평면들 위’ 혹은 ‘절대 부피들 내’

에서 서로 분리 불가능한 변주들이다. 그것은 더 이상 분리된 관념들의 연상들이 아니라 한 개념 내의 불분명한 지대를 통과한 ‘재연결들’이다.49) 이러한 맥락에서 과타리는 “철학적 선별체는 카오스를 재단하는 내재성의 구도로서 사유의 무한한 운동을 선별하며, 사유만큼이나 빠르게 옮겨 다니는 일관된 입자들처럼 형성된 개념들로 채워져 있다”50)고 말한다. 반면 후자의 경우, 즉 ‘예술의 다양성들’은 더 이상 기관 내에서 감각을 재생시키는 것이 아니라 무한을 되돌릴 수 있는 비유기 체적 구성의 구도 상에서 ‘지각의(sensible, 감각하는) 존재’, ‘감각(sensation)의 존 재’를 세우는 것이라고 말한다.51) 결국 예술가는 카오스가 아니라 카오스에 구원 을 요청하는 존재들로, 즉 고정된 사유들에 대항하는 전사와 같다. 그리고 과타리 는 이러한 예술과 카오스의 투쟁은 카오스를 밝혀내는 하나의 비전, 즉 하나의 감각을 발현시키는 것과 다른 것이 아니라고 언급한다. 따라서 예술은 카오스가 아니라 비전이나 감각을 생산하는 ‘카오스의 구성’이다. 그러므로 예술은 카오스의 가변성을 ‘재편된 카오스(chaoïde)’의 다양성으로 변형시킴으로써 카오스적 우주 론, 즉 ‘구성된 카오스’를 구축하는 것이다.52) 결국 ‘예술 생성으로서의 주체성 생 산’이란 각각의 인간이 각 사회적 역량의 관계로서의 카오스에 직면하면서 ‘감각 을 생성하는 것’ 즉 어떤 종류의 ‘주름(pli)’을 구성하는 것과 동일한 것이다. 그것 은 무형의 힘을 접고 어떤 내부성을 만들어내는 것으로, 이러한 주름을 만드는

48) QP, p. 190.

49) QP, p. 190.

50) QP, p. 112.

51) QP, p. 190.

52) QP, p. 19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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과정이 주체성 생산의 과정이다.

따라서 예술과 철학이 모두 카오스를 재단하고 카오스와 대면하지만, 그것 은 동일한 단면의 구도가 아니며, 그 구도를 채우는 방식 또한 동일하지 않다. 과 타리는 예술을 “우주 혹은 감정(affect)과 지각(percept)들의 자리매김이며, 철학을 내재성 혹은 개념들의 복합체”53)라고 규정한다. 즉 과타리는 철학을 “개념을 창안 하고 형성하며 만들어 내는 기술” 54)이라고 정의하는 한편, “예술은 감각을 개념 으로 대체시키는 것이 아니라 감각을 창조하는 것”55)이라고 정의함으로써 철학과 예술을 구분한다. 하지만 과타리는 또한 예술도 철학과 유사하게 사유하며 예술 은 감정과 지각들을 통한 사유라고 규정하고 있다.56) 결국 예술은 비언어적 기호 화의 과정을 통해 감정과 지각들을 사유하고 창조하며, 이러한 지각과 감정들에 의해 세계를 인식한다.

과타리는 이러한 ‘예술의 생성’ 즉 ‘감각의 창조’에 대한 일례로, 작가는 단어 들을 사용하지만 그것은 그 단어들을 감각 속으로 스며들게 하여, 일상적인 언어 를 더듬거리게 하거나 전율하게 하는 혹은 소리 지르거나 노래하게 하는 구문(스 타일, 어조, 감각들의 언어이거나 언어 속의 이방인의 언어)을 창조해낸다고 말한 다. 즉 작가는 지각 작용들로부터 지각을, 변용들로부터 감정을, 견해들로부터 감 각을 떼어내기 위해 언어를 뒤틀고, 진동시키고, 부둥켜안고 쪼갠다. 과타리는 회 화와 음악 역시 색체들과 소리들로부터 지각, 감정, 감각들을 떼어내어 그것들을 대지의 노래나 인간들의 절규로까지 고양시키는 새로운 조화들을, 또한 조형적이 거나 선율적인 풍경들뿐만 아니라 역동적인 인물들을 이끌어 내야 한다고 강조한 다.57) 그리고 바로 이것이 예술의 과업이라고 규정한다. 따라서 ‘예술가들’이란

“그가 우리에게 제공하는 지각들과 시각들에 관한 한 감정들의 제시자요, 창안자

53) QP, p. 64.

54) QP, p. 8.

55) QP, p. 187.

56) QP, p. 64.

57) QP, pp. 166-16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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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며, 창조자이다. 그리고 이것은 모든 예술에 해당되어야 할 것”58)이다.

이러한 과정에서 과타리는 예술 작품이 실존적 영토들을 구체화시키는 작용 을 한다고 파악한다. 즉 예술가는 단지 그의 작품 속에서만 감정들을 창조하는 것이 아니라 그것들을 우리에게 제시해 주며, 그것들과 더불어 우리가 생성되도 록 하며, 우리를 (생성의) 구성물 안으로 끌어들이는 자들이라고 규정한다.59) 더 자세히 설명하면, 실존적 영토에서 (예술 작품의) ‘이미지’는 ‘주체화의 매개체 역할’ 즉 우리의 지각이 다른 가능성들에 재접속되기 전에 지각을 탈영토화시키 는 ‘변속기’의 역할을 한다는 것이다. 이것은 주체성 생산에 있어 분기점을 조성하 는 역할이라고 볼 수 있다. 다시 말해, 이러한 과정은 ‘미학적 관조’에서의 ‘주체화 의 전이’를 의미한다. ‘주체화의 전이’란 과타리가 바흐친(M. Bakhtine)에게서 차 용한 개념으로 그 뜻은 “(고립화나 분리화를 통해) 표현의 질료가 형식적으로 창 조적이 되는 순간”60) 즉, 작가와 관람자 사이의 전이의 순간을 의미한다. 예를 들 어, 관객이 예술가가 실현하려고 계획했던 것과 실현한 것 사이의 차이를 통해 창작의 비밀에 침투함으로써 작품의 공동 창작자가 되거나 혹은 작품 앞에서 불 활성적인 질료를 마주한 관객의 반응은 일종의 미학적 상호침투를 의미한다. 이 순간, 한 예술 작품의 작가와 관람자 사이에 작동하는 주체화의 전이를 통해 작 가와 관람자는 ‘공동의 창조자’로 변모한다. 이러한 과정은 예술가가 전혀 의식하 지 못하는 주체화의 전이에 의한 것으로 이때, 예술 작품의 내용은 예술가 자신 의 인식적이고 윤리적인 명시적 의미에서 이탈한다. 이러한 이탈에 의한 고립이 나 분리는 사물로서의 작품에 관계하는 것이 아니라 작품의 의미 작용이나 내용 에 관계하는 것으로, 이러한 의미 작용이나 내용은 존재의 통일성이라는 어떤 필 연적인 연관성에서 벗어나 있다.61) 이것이 곧 ‘예술 생성 과정에서의 주체성의 창 조’를 의미한다.62)

58) QP, p. 166.

59) QP, p. 166.

60) C, p. 14.

61) Bakhtine, Esthétique ethéorie du roman (Paris: Galimard, 1978), p. 7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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과타리는 이러한 예술 작품에서의 주체의 전이 과정에 대한 분석을 통해 자 신의 주체성의 전이, 즉 그것의 유동적인 특징을 정립한다. 예술 작품은 시선을 고정시키지 않으며, 바로 그 미학적 시선의 매혹적이고 유사 최면적인 과정은 그 주위로 주체성의 각기 다른 구성 요소들을 결정화하고 새로운 시점들을 향해 재 분배된다. 즉 확장된 의미에서 미학적 관조에 주어진 실존적 모티브들은 주체성 의 각기 다른 구성 요소들을 포착하고 그것들에 영향을 끼친다. 그러므로 과타리 는 ‘분열분석(schizo-analyse)63)가’의 역할이 ‘주체성 생산’의 돌연변이적인 안식처

62) 이와 동일한 맥락에서, 과타리는 ‘주체성의 창조 과정’ 즉 정신 속에 삽입되는 능동적 양식들을 설명하기 위해 바흐친의 시론을 제시한다. 그는 바흐친의 시론이 예술 작품 에서의 인식적이고 윤리적인 내용의 자율화와 언표 행위의 재전유의 과정을 잘 드러 내고 있다고 평가한다. 예를 들어, 바흐친은 시의 영역에서 스스로를 자율화하는 ‘창 조적인 주체성’은 다음의 요소들에 사로잡힘으로써 자신을 완성한다고 본다. 그것은

“1. 말의 음향 즉 말의 음악적 측면 2. 미묘한 차이와 변이들을 지닌 말의 물질적인 의미 작용들 3. 말의 구어적 연독(liaision)들 4. 말의 정서적이고 의지적인 억양들 5.

발음, 몸짓, 표정의 동력적인 요소들(기표가 지닌 능동적인 구어적 느낌 등)”이다. 그 리고 마지막 다섯 번째 요소가 다른 네 가지 요소들을 포괄한다고 결론 내린다 (C, p.

15). 결국 과타리는 바흐친의 이러한 분석들이 ‘주체성 생산의 과정’에 대한 이해를 확 장시키며, ‘미학적 대상의 불가역성’ 즉 ‘자기 생산성’을 나타낸다고 해석한다.

63) 과타리의 ‘분열분석(schizo-analyse)’이란 욕망의 흐름을 몰적 집계로 재영토화시키는 편집증적이고 파시즘적 조작으로부터 탈주하려는 주체, 즉 분열적 주체성의 출현 가 능성을 분석하는 것이다. 과타리 철학의 방법론으로서 분열분석은 먼저 ‘몰적인 것’과

‘분자적인 것’을 구분하고 그것을 각각 다시 ‘생성 화용론’과 ‘변용 화용론’으로 나누어 분석하는 것이다. ‘몰적인 것’은 ‘편집증적인 방식’으로 분리나 차별을 근간으로 하여 중앙 집권적 권력을 따르는 몰적 기계 방식을 말하는 반면, ‘분자적인 것’은 ‘분열증적 인 방식’으로 욕망의 탈주선을 따라 끊임없이 이행하면서 진동하는 분자적 기계 방식 을 말한다. 다시 말해, ‘몰적’이라는 것은 어떤 하나의 모델이나 특정 대상을 중심으로 모든 것이 집중되고 모아지는 것을 말하며, ‘분자적’이라는 개념은 미세한 흐름을 통 해 다른 것으로 되는 생성을 지칭하는 것이다. ‘미세한 흐름’이란 단지 제도나 장치를 통해서만 이루어지는 것이 아니라 사회 전반적인 모든 분자적 움직임을 포함하기 때 문에 과타리는 ‘미시구조’나 ‘미시적 흐름’을 통해 욕망의 흐름을 파악하고자 한다. 그 렇다고 모든 ‘분자적인 집단’이 ‘몰적인 집단’보다 우위에 있다는 것을 의미하는 것은 아니다. 왜냐하면 욕망은 집단적이며, 집단은 끊임없이 ‘과도적 환상’(주체 집단의 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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