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트12] 산업혁명과 비유럽의 탈산업화
[학습과제]
1. 산업혁명의 원인에 대해 알아본다.
2. 산업혁명과 제국주의에 대해 알아본다.
3. 산업혁명과 비유럽세계의 탈산업화에 대해 알아본다.
[학습목표]
1. 산업혁명은 세계사적으로 큰 변화를 만들어냈고 이것이 서양이 중심이 되는 오늘날의 세계를 만든 근본적인 힘이라는 주장에 대해 생각해 보자.
2. 산업혁명이 영국과 유럽에서 시작되었다 해도 눈을 세계사적인 차원으 로 돌리지 않으면 충분히 이해할 수 없는바, 그것이 바로 식민지의 약탈과 노동착취, 그리고 비유럽세계의 탈산업화와 밀접한 관련을 맺고 있기 때문 이라는 주장에 대해 생각해 보자.
[개관]
산업혁명과 비유럽의 탈산업화
1. 산업혁명이란
산업혁명은 보통 18세기 말에서 19세기 전반에 걸쳐 영국에서 처음 시작 된 급격한 산업생산력의 증대를 의미한다. 증기기관이라는 새로운 동력과 기계가 결합하며 그 전에는 결코 상상할 수 없었던 생산력의 증대를 가져 온 것이다.
18세기까지도 인간이 사용할 수 있는 에너지의 양은 매우 제한되어 있었 다. 사람이나 가축의 힘이 대부분을 차지했고 그것은 식량이나 사료를 제 대로 조달하지 못하면 유지될 수 없었다. 무한정한 확대는 불가능했다.
풍력이나 수력도 이용할 수는 있었으나 그것은 장소의 제한을 받았다. 풍 력은 바람이 많이 부는 지역에서나 가능했고 수력은 수량도 많고 개울물의 낙차가 커야 이용할 수 있었다.
또 연료로 사용하는 나무도 쉽게 고갈되었으므로 함부로 사용할 수는 없었 다. 유럽의 많은 대장간들은 근대 이전에 일년 중 몇 개월밖에 가동을 못 했는데 그것은 쇠를 녹이려고 해도 숯을 생산할 나무가 부족했기 때문이 다. 그래서 산업활동에 원천적인 제약이 가해졌다.
그런 점에서 석탄을 연료로 사용하는 증기기관의 발전과 새로운 기계의 결 합은 획기적인 것이었다. 석탄만 있으면 필요한 곳 어디서든지 동력을 만 들어내어 공장을 세울 수 있었기 때문이다.
물론 초기의 공장들은 오늘날 같지 않아서 여러 대의 기계들이 굴대와 벨 트를 통해 증기기관과 복잡하게 연결되어 돌아가는 소음과 먼지가 가득한 곳이었지만 새로운 형태의 공장이 갖는 의미가 얼마나 큰 것이었는지는 말 할 필요도 없을 것이다.
1851년에 영국 런던의 하이드파크에서는 만국박람회가 대대적으로 열렸 다. 철골로 뼈대를 만들고 유리로 지붕을 씌워 오늘날의 대형 온실과 같은 모양을 한 전시실들에는 처음으로 산업혁명을 완수한 영국이 그 동안 발명
▲ 18세기 말 면직공장의 모습. 여러 대의 방직기들 이 증기기관과 연결된 굴대(천정에 붙어 있는)와 벨트 로 연결되어 구동된다.
한 대규모의 기계들을 포함하여 온갖 공산품들이 자랑스럽게 전시되었다.
영국인들은 이것을 구 경하기 위해 막 개통 된 철도를 이용하여 전국 방방곡곡에서 모 여들었다. 그리고 그 동안에 영국이 이룩한 성과에 입을 다물지 못했다. 많은 외국인 들도 이를 구경하며 찬사를 아끼지 않았 다.
1780년대에 영국에서 시작된 산업혁명은 1830년대에는 인접한 벨기에와 프랑스로 퍼지고, 1850년대에는 독일, 1860년대에는 남북전쟁을 끝낸 미 국으로도 확산되었다. 일본과 러시아는 뒤늦게 1890년대에 이에 합세하며 점차 전 세계가 그 물결에 휩싸이게 되었다.
산업혁명에 의해 가능해진 거대한 생산력은 국가들의 힘까지도 완전히 뒤 바꿔놓았다. 유럽의 변두리에 있는 조그만 섬나라인 영국은 이제 산업혁명 을 통해 세계 최강대국으로 떠오르게 되었다.
러시아 같은 전통적인 유럽 강대국도 자기혁신을 하지 못하면 낙후하게 된 다는 것을 절실히 깨닫고 1860년대에 농노해방을 비롯한 대대적인 정치, 사회개혁에 나섰다. 반면 제대로 산업화의 길로 들어서지 못한 인도, 중 국, 튀르크 같은 아시아의 대국들은 역사의 뒤안길로 물러서지 않으면 안 되었다.
이렇게 산업혁명은 세계사적으로 큰 변화를 만들어냈고 이것이 서양이 중 심이 되는 오늘날의 세계를 만든 근본적인 힘이다. 19세기 말에 등장한 제
국주의는 바로 그 현격한 힘의 차이를 국제정치에 투사한 결과물인 것이 다.
2. 산업혁명을 어떻게 볼 것인가
산업혁명이 서양 중심의 세계를 만들어 냈으니 서양인들이 이에 대해 갖는 시각은 우호적일 수밖에 없다. 그래서 그것이 인류의 물질적 생산능력을 크게 확장함으로써 현대 자본주의 문명의 기초를 만들었다고 믿는다.
좌파에 속하는 사람들은 어느 정도 비판적인 입장을 갖고 있다. 맑스는 산 업혁명이라는 말을 사용하지는 않았지만 공장제도가 가져오는 노동착취 등 비인간화에 대해 매우 비판적인 시각을 보여준다. 그럼에도 그것이 생산력 을 크게 확대하여 인간의 삶을 풍요하게 만들었다는 점에서는 긍정적이다.
사회주의자들은 대체로 이런 태도를 따르고 있다.
서양학자들은 산업혁명의 원인을 위대한 발명가들, 앞선 과학기술, 선행 운동으로서의 농업혁명, 축적된 자본 등에서 찾는다. 그들은 또 산업혁명 을 통한 이 시기의 자본주의적 경제발전과 그에 따른 유럽의 흥기를 서유 럽의 효율적인 경제조직, 제도적 변화, 재산권의 발전, 자본주의에 우호적 인 독특한 정신문화 속에서도 찾는다.
산업혁명을 위해서는 물질적인 조건 만이 아니라 정신적, 문화적 조건도 매우 중요하다고 생각하는 것이다. 그러므로 산업혁명은 유럽에서만 발전 할 수 있었고 그 원인도 유럽 내부에서만 발견될 수 있다고 믿는다.
‘지난 2세기 동안 기술적 변화와 산업발전을 위한 문화적 조건은 서유럽에 만 있었다’라는 주장이나 ‘산업혁명은 기본적으로 사회-문화적 현상으로 단순히 기술혁명은 아니다. 그것은 산업화한 최초의 나라들이 영국과 문화 적, 사회적으로 매우 닮은 나라라는 것을 보면 확실하다’라는 말은 이런 의미를 포함하는 것이다.
우리의 인식도 여기에서 별로 벗어나지 않는다. 가장 대표적인 서양사 개 설책의 하나를 보면 그것을 프랑스혁명과 함께 유럽 근대사회 확립의 가장 중요한 계기로 보고 있고 그것이 생산력의 비약적인 발전과 지속적인 경제 성장을 가능하게 했다고 주장한다. 유럽에서 일어난 이러한 생산력의 비약 적인 증대가 인류의 삶에 긍정적 역할을 했다는 것이다.
또 산업혁명의 원인으로는 18세기에 서유럽은 지구상의 어느 지역보다 부 유했고, 초기 형태이지만 자본주의가 발전했으며, 상공업자와 금융업자 등 기업가 계층이 전례 없는 사회적, 정치적 활력을 갖고 영향력을 발휘할 수 있었으며, 르네상스 이래 싹튼 사물에 대한 합리적 태도와 사회 및 자연환 경에 대한 무한한 통제 및 지배 욕구를 갖고 있었다는 사실을 들고 있다.
또 17세기 후반 이후 영국에서의 농업혁명도 중요하다. 그러니까 영국에서 산업혁명이 일어난 것은 위에서 말한 온갖 좋은 조건이 다 갖추어져 자연 스럽게 가능했던 것으로 설명하는 것이다.
물론 이런 주장에는 오류도 포함되어 있으나 문제는 부분적인 오류가 아니 라 이런 주장의 배후에 있는 잘못된 인식체계이다. 그런 주장이 유럽에는 여러 좋은 조건들이 있어서 산업혁명이 가능했고 비유럽지역에는 그런 것 이 결여되어 있어 불가능했다는 이분법적, 결정론적 인식을 가능하게 하기 때문이다. 그런 인식은 당연히 유럽을 우러러 보고 비유럽세계를 폄하하게 만들 수밖에 없다.
더 큰 문제는 산업혁명이 그런 시각으로는 절대로 잘 이해될 수 없다는 것 이다. 유럽인의 과학적 사고, 기계의 발명, 경제조직이나 제도의 변화, 농 업혁명 등 유럽 내부적인 요인만으로 결코 설명할 수 없다.
여기에서 빠진 것은 산업혁명을 가능하게 한 정치·군사적인 요인들, 원료 조달의 문제, 물건을 내다 팔 시장 같은 것의 문제이다. 이런 것들이 오히 려 더 본질적이라고 할 수 있는데 그것은 당연히 비유럽세계와의 관련에서
접근하지 않으면 안 되는 것들이다.
그러므로 산업혁명은 영국과 유럽에서 시작되었다 해도 눈을 세계사적인 차원으로 돌리지 않으면 충분히 이해할 수 없다. 그것이 바로 식민지의 약 탈과 노동착취, 그리고 비유럽세계의 탈산업화와 밀접한 관련을 맺고 있기 때문이다. 그리고 그것은 산업혁명의 기둥이라고 할 수 있는 면직산업이 기초를 마련하고 성장해 가는 과정을 통해 잘 알 수 있다.
3. 비유럽세계의 탈산업화
유럽의 산업화는 비유럽의 탈산업화를 동반했다. 그 가장 현저한 예가 세 계에서 가장 큰 식민지였던 인도이다. 서양학자들은 그 동안 식민지화 이 전의 인도 경제를 매우 경시해왔으나 최근에 연구에 의하면 그렇지 않다.
인도는 18세기까지 세계에서 가장 발전한 경제를 가진 나라 가운데 하나 였다. 무굴제국이 붕괴했으나 정치적 혼란 속에서도 경제는 한 동안 계속 발전했다. 그래서 인도는 1750년에 세계 산업 생산의 근 24.5%를 차지하 던 나라이다. 중국의 32.8%에 이어 세계 2위였다(P. Bairoch의 1982년 추계).
또 인도는 국제적으로도 면직물, 견직물의 주된 수출국으로서 큰 무역흑자 를 보았다. 반면에 수입품은 커피, 차, 설탕, 술, 향료 같은 기호품과 보석 같은 것에 제한되었다. 금속제품은 가끔 대포를 수입한 것 외에는 거의 수 입하지 않았다.
또 18세기까지 인도인들은 비교적 잘 살았다. 요사이의 실증적인 비교연구 에 의하면 인도 남부 지역 농업노동자나 직조업 노동자들의 임금은 잉글랜 드 농업 노동자나 직조업 노동자들의 임금을 오히려 상회한다. 예를 들어 동인도회사가 1795년에 조사한 바에 따르면 마드라스 근교의 쌀 생산지역 에서 인도 사회의 최하층인 불가촉천민 농업노동자의 임금은 쌀로 쳐서 주
당 30파운드에 해당했다. 이는 현물급여나 부조 등 다른 많은 수입을 뺀 금액이다.
이에 비해 아서 영이라는 학자가 1760년대에 조사한 것을 보면 잉글랜드 북부나 동부의 임금은 위의 잡수입을 포함해 주당 곡물로 쳐서 30-35파운 드에 해당했다. 인도의 임금은 최저선으로 박하게 계산한 것이므로 실제 차이는 더 크게 나타날 수밖에 없다. 이는 인도인들이 옛날부터 매우 빈곤 하게 살았다는 서양인들의 전통적인 견해를 깨뜨리는 것이다.
(Parthasarathi의 1998년 연구)
이렇던 나라가 영국의 식민지로 전락하며 급격한 경제쇠퇴 과정을 밟게 된 다. 그리하여 인도는 19세기 초반에 공산품 수입국으로 전락하게 되고 1860년의 산업생산은 세계 전체의 8.6%로, 1900년이면 1.7%로 떨어지며 거의 산업기반이 붕괴하다시피 된다. 그 결과 인도는 얼마 전까지만 해도 세계 최빈국에 속해왔다.
이는 물론 인도를 최대한 착취하려 한 영국 식민주의 정책의 결과이다. 인 도산 공산품이 영국에 들어오려면 매우 높은 관세를 물어야 했다. 1812년 에 캘리코는 72%, 다른 상품은 100-600% 정도의 고율 관세를 지불해야 했다. 반면 영국산은 인도에서 관세 면제이거나 최대 2.5%를 물면 되었 다. 그러니 인도 산업이 온전하게 남아날 리가 없었던 것이다. 영국 산업 혁명의 성공은 상당부분 이에 의존한 것이다.
서양학자들은 인도 면직산업의 붕괴가 공장에서 생산한 품질이 좋고 싼 영 국 면직물의 경쟁이 되지 못했기 때문이라고 주장해 왔다. 그러나 이런 주 장은 공장제에 대한 환상에서 나온 것이다.
실제로 초기의 공장들은 수공업에 비해 그렇게 능률적인 작업장은 아니었 다. 아크라이트가 1771년에 처음으로 수직기 공장을 건설했으나 편사는 쉬워도 직조는 기계화가 곤란하여 1800년 이후에야 상업적 이용이 가능했 다. 그럼에도 기계를 이용한 직조보다 손으로 하는 직조 비용이 더 쌌으므
로 1830년대까지도 수공업자의 고용이 증가했다. 기계화된 방직의 승리가 분명해진 것은 1830년대 말이다.
증기기관의 채용도 단순한 것이 아니다. 증기기관이 공장에 채용된 것은 1786년이나 초기의 증기기관이 대단한 것도 아니었다. 볼튼과 와트의 증 기기관 공장에서 만든 496개 증기엔진 가운데 몇 개만이 15-16 마력 정 도를 낼 수 있었다. 당시의 금속 기술로는 고압력에 견디는 부품을 만들 수 없었기 때문이다.
1835년이 되어서야 면직산업 기계의 3/4가 증기에 의해 가동되었다. 또 노동자 2교대제로 하루 종일 기계를 돌림으로써 엄청난 생산 효율성을 가 져왔다. 그러니 이는 훨씬 뒤의 일인 셈이다.
그럼에도 제국의 우월한 힘에 의존한 영국의 면직산업은 18세기 후반부터 해외에서 점차 인도 면직물 시장을 잠식하기 시작했다. 게다가 무방비 상 태의 인도로 영국 면직물들이 밀려들어오며 이미 1820년대부터 인도 면직 물 산업의 쇠퇴가 시작된다.
특히 가장 먼저 식민화된 벵골 지방의 면직물산업은 1830년까지는 거의 완전히 붕괴했다. 그러나 이런 쇠퇴가 경제논리 만에 의해 이루어진 것은 아니다. 동인도회사는 면직물에 대한 독점 구매자로서 터무니없는 가격과 조건에 그것을 사들여서 폭리를 취했다. 또 수공업자들을 별 다른 이유 없 이 채찍질하고 투옥했으며 심지어 직조기를 부수거나 직조공의 손가락을 잘라 버리는 만행까지도 저질렀다. 인도 면직물 산업을 짓밟기 위해서였 다.
영국 면직물의 인도 침투가 본격화하는 것은 19세기 중반부터이다. 그전에 는 인도 내부의 교통이 아직 불편했을 뿐 아니라 영국산이 인도인의 기호 에 잘 맞지 않았기 때문이다. 그러나 철도의 전국적 개통과 인도 시장에 침투하려는 영국인의 적극적인 노력이 그 장애를 없앴다.
▲ 직조공의 손가락을 자르는 만행을 저 지르는 식민지 관리
인도에서 철도는 1853년에 처음 개설되었으나 1870년까지 7,200킬로가 부설되었고 1936년의 전체 철도망은 6만9천 킬로미터로 세계 4위일 정도 로 급성장했다. 이 철도망을 타고 영국 상품들이 지방까지도 침투해 들어 갈 수 있었다.
또 영국 인도부는 인도 시장을 뚫고 들어가기 위해 1866년에 인 도 면직물을 세세히 조사한 18권 짜리의 견본책을 만들어 업계에 배포했다. 여기에는 총 700종의 인도 면직물 견본이 수록되어 있 는데 이를 통해 영국 면직업자들 은 영국산의 경쟁력을 크게 높일 수 있었다. 1860년대 이후 쏟아 져 들어온 영국 면직물은 인도산 을 모방했으나 색깔이 인도산 보
다 더 밝았고 조성도 더 치밀했으며 가격은 30%가 더 쌌다. 따라서 인도 인의 인기를 끌어 곧 시장의 큰 부분을 장악할 수 있었다. 20세기 초에 수 입직물이 인도 소비시장의 60%를 차지할 정도였다. 그러니 인도 면직산업 이 몰락하는 것은 피할 수 없는 일이었다.
이는 면직산업 만에 한한 것이 아니라 모든 산업들이 다 마찬가지이다. 그 리하여 한때 번영하던 인도경제는 원자재를 빼앗기고 반대로 기계로 생산 한 완제품을 사서 쓰는 한심한 신세로 전락하고 말았다. 이는 오늘날의 제 3세계 국가들이 과거 식민지 시대에 대부분 똑 같이 경험했던 일이다.
4. 비유럽세계의 식민화
지금까지 산업혁명이 어떤 행태로 전개되었는지를 간략히 살펴보았다. 그 리고 그것이 석탄과 철, 증기기관 같은 것의 단순한 결합에 의해 이루어진
사건이 아니라는 것을 알 수 있었다. 가장 중요한 부문인 면직산업의 경우 그것은 식민지 착취와 노예노동, 그리고 제국의 힘에 의해 이루어진 매우 복잡한 사건이다.
그러나 다른 산업도 큰 차이는 없다. 철강산업도 18세기의 유럽은 기술이 나 생산성면에서 특별히 나은 상태에 있지 않았다. 1790년에 영국인들이 실험한 바에 의하면 일본 산 강철이, 스웨덴 산과 마찬가지로 영국 산보다 우수한 것으로 나타났다.
또 이 시기에 인도 제철업의 단위 생산비용은 영국보다 싸고, 생산시간도 덜 걸리는 것으로 조사되었다. 같은 양을 생산하는 데 영국에서는 4시간이 걸리나 인도에서는 2시간 반이면 생산이 가능했다.
철강산업도 철도건설이 본격화하여 안정된 내수기반이 마련되는 1830년대 이전까지는 주로 해외시장에 의존하여 발전했다. 따라서 식민지와 해외시 장을 어떻게 확보하고 유지하느냐가 가장 중요했다. 이 점에서는 면직산업 과 본질적으로 같은 성격을 가졌다.
그 결과는 우리가 다 아는 것이다. 영국과 인도에 한정해서 말한다면 그것 은 한 편에서 영국을 부유하고 강하게 만들었지만 다른 한 편에서는 인도 경제를 파멸시키고 인도를 의존적인 경제를 가진 빈곤한 식민지로 전락시 켰다. 이는 산업혁명이 영국과 인도 사이의 제로섬 게임이라는 사실을 보 여주는 것이다. 한쪽의 이득은 다른 쪽의 손실이 될 수밖에 없었던 것이 다.
이런 관점에서 본다면 산업혁명은 결코 프로테스탄티즘에 의한 도덕적인 자본 축적, 위대한 발명가들, 앞선 과학, 모험적인 기업가들, 이로 인해 탄 생한 거대한 생산력, 이런 것들에 의해 미화될 수 있는 평화스럽고 단순한 경제적 사건이 아니다.
그것은 비유럽 지역 사람들의 땀과 고통, 살육 위에 서 있는 정치적, 사회
적 사건이다. 그러니 비유럽인들이 그것을 서양 사람들 마냥 찬양할 수는 없고 또 찬양해서도 안 되는 것이다.
산업혁명이 풀어 놓은 거대한 생산력은 19세기 중반 이후에 오면 이제 국 제질서에도 직접적인 영향을 미치게 되었다. 그리하여 산업화를 먼저 달성 한 몇몇 나라들이 국제정치를 좌우하게 되었다.
중국은 아편전쟁에서 패한 이후 강제로 개항을 당하며 점차 유럽국가들의 반식민지로 전락했다. 유럽의 전통적인 강대국의 하나였던 러시아도 1850 년대의 크림 전쟁에서 산업국가인 영국, 프랑스에게 패한 후 큰 충격을 받 고 개혁에 나서지 않을 수 없었다.
땅의 크기나 인구의 다과가 문제가 아니라 인구는 적더라도 기계와 동력을 이용해서 만들어내는 거대한 생산력이 이미 모든 것을 결정할 수 있는 시 대가 된 것이다. 그리하여 산업혁명을 먼저 경험한 국가들과 그렇지 않은 나라들 사이에 명확한 경계선이 그어지게 된 것이다.
그러니 이런 대국들은 그만두더라도 비유럽 지역의 대부분의 중, 소국가들 이 어떤 운명에 빠지게 될 것인지는 말할 필요도 없는 것이다. 거의 모든 나라가 1880년대 이후의 제국주의 시대에 몇몇 서양 국가들과 일본의 식 민지로 전락하지 않을 수 없었던 이유이다.
그리고 그 결과로 또한 탈산업화 되었다. 오늘날 제 3세계 빈곤의 많은 부 분은 여기에서 비롯하는 것이다. 그러므로 산업혁명과 식민주의의 깊은 연 관성을 다시 한번 생각해 볼 필요가 있다.
2005년도에 중국의 GDP는 영국, 프랑스를 제치고 세계 4위로 올라섰다.
20년 정도면 아마 세계 1, 2위 자리를 넘볼지도 모른다는 예측도 나오고 있다. 인도도 최근 급격한 성장세를 타고 있다. 한국도 10위권에 근접했고 20년 정도 지나면 10위권 안에 안착할 가능성도 있다.
산업혁명이 흐트러 놓은 세계질서가 200년 만에 제자리를 찾아 가고 있는 것이다. 이것은 산업혁명이 세계사에 얼마나 큰 영향을 미쳤고 비유럽세계 의 수많은 사람들에게 얼마나 큰 고통을 안겨 주었는가를 잘 보여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