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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도연구 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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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도연구 4

좌승희․○○○ 엮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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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도연구 4

1판1쇄 인쇄/2002년 3월 11일 1판1쇄 발행/2002년 3월 15일

발행처/한국경제연구원 발행인/좌승희 편집인/좌승희 등록번호/제13-53

(150-756) 서울특별시 영등포구 여의도동 28-1 전경련회관 전화(대표)3771-0001 (직통)3771-0057 팩시밀리 785-0270∼1

http://www.keri.org/

ⓒ 한국경제연구원, 2002 한국경제연구원에서 발간한 간행물은 전국 대형서점에서 구입하실 수 있습니다.

(구입문의) 3771-0057

ISBN 89-8031-229-6 8,000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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발 간 사

경제발전을 위한 새 패러다임의 확립을 위해서는 정치․경제․

사회 등 모든 부문에서의 제도변화가 필요하다. 제도는 사회에서 의 게임의 법칙이며 인간 사이의 상호작용을 구체화한 것이다. 제 도변화는 시간에 걸쳐 사회가 진화하는 양식을 구체화하는 것으로 경제적 성과에 많은 영향을 준다. 제도변화를 성공적으로 수행하 기 위해서는 무엇보다도 제도의 본질적 속성과 그것이 수행하는 기능․역할에 대한 명확한 인식이 선행되어야 한다. 그래야만 과 거 제도개혁의 실패사례를 반복하지 않고 지속성장에 필요한 제도 적 토대를 마련할 수 있을 것이기 때문이다. 그러나 우리나라의 경우 그 동안 제도에 대한 연구나 논의가 극히 미흡했고, 제도에 대한 충분한 이해가 부족한 상태에서 제도개혁이 추진되어 온 것 이 사실이다. 최근에서야 제도가 무엇인지, 왜 중요한지, 기능과 역할은 무엇인지, 한국경제가 제도적인 측면에서 어떤 문제점을 가지고 있는지에 대한 근본적 분석이나 이해가 시도되고 있는 것 이 현실이다.

본 보고서에서는 그동안 제도연구회에서 발표하고 토론한 논문 을 수정․보완하여 수록한 것으로, 제도의 역사적․이론적․실증 적 측면 등 다양한 제도관련 논문을 수록하고 있다. 본 보고서는 본 연구원에서 이전에 발간하여 오던 제도연구시리즈의 명칭을 바 꾸어 제도연구 로 발간하는 것이다. 본 보고서를 편집하는 데 수 고한 이병기 박사에게 감사의 말씀드린다. 또한 본 보고서에 논문 을 보내 주신 고려대 최윤재 교수, 강원대 민경국 교수, 연세대 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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훈 교수, 한국외국어대 박명호 교수, 서울대 이근 교수, 한국경제 연구원 한현옥 박사, 국방대학원 이상목 교수, 통일정책연구소 정 형곤 박사께 감사의 말씀을 드린다. 그리고 각 논문에 대해 유익 한 서면논평을 주신 논평자 여러분께도 감사의 말씀을 드린다. 또 한 제도연구회 회원들께 심심한 감사의 말씀을 드린다. 어려운 여 건 속에서도 제도연구회에 적극적으로 참여하여 주신 학자들의 학 문적인 열정과 노력이 제도연구의 가장 든든한 기반이 되고 있기 때문이다. 끝으로 본 보고서에 수록된 논문의 내용은 필자 자신의 견해이며, 한국경제연구원의 공식적인 의견과 무관하다는 점을 밝 혀둔다.

2002년 3월 한국경제연구원 원장 좌승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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차 례

제1장 연구의 목적과 내용요약 -이병기 / 11

제2장 유가적 전통과 법가적 제도 -최윤재 / 23

Ⅰ. 서 론 / 25

Ⅱ. 유가․법가 대

묵가(우파 대 좌파, 또는 지배층 대 피지배층) / 30

Ⅲ. 유가․묵가 대

법가(이타주의 대 이기주의, 또는 정부 대 민간) / 33

1. 이타주의 대

이기주의 / 33 2. 정부 대

민간 / 39

3. 강제력 / 43 4. 부 패 / 49

Ⅳ. 유가 대

법가․묵가(수구 대 개혁, 또는 차별 대 평등) / 53

Ⅴ. 결 론 / 58 참고문헌 / 62 영문초록 / 65

제3장 문화, 비공식제도 그리고 제도의 경쟁 -민경국 /67

Ⅰ. 서 론 / 69

Ⅱ. 논의의 출발점: 경로의존성에 관한 이론 / 70

1. 행동규칙으로서 제도의 종류 / 7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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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 경로의존성 요인 / 75

Ⅲ. 문화적 제도의 진화와 특성 / 78 1. 경로의존성 개념의 막연함 / 79 2. 문화적 제도의 경로의존성 / 80

3. 문화적 제도의 경로의존성과 권력 / 82 4. 공법의 경로의존성과 권력 / 84

5. 문화적 제도의 지식경제학적 의미 / 85 6. 문화적 제도의 민사판례적 의미 / 86 7. 문화적 제도의 암묵적 성격 / 88

Ⅳ. 경로이탈정책과 제도적 경쟁 / 90 1. 인식론적 관점 / 90

2. 정치적 입법과정의 특성 / 92

3. 제도의 경쟁과 자유의 존재이유 / 94

Ⅴ. 결 론 / 95 참고문헌 / 98 영문초록 / 100

제4장 경제, 자연 그리고 제도 및 문화 -홍 훈 / 103

Ⅰ. 고전학파 경제학에서의 경제와 자연 / 106

Ⅱ. 신고전학파 경제학의 경제와 자연 / 112

Ⅲ. 자연과 제도 및 문화 / 123

Ⅳ. 우리에게 주는 시사점 / 134 참고문헌 / 136

영문초록 / 140

제5장 경제전문가의 성향분석: 주요 일간지의 기고문 및 사설 분석 -박명호․유희태/ 141

Ⅰ. 서 론 / 14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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Ⅱ. 조사방법 / 146

Ⅲ. 기고문 및 사설에서 경제부문이 차지하는 비중 / 149

Ⅳ. 데이터 분석 / 152

1. 이론적 성향, 분석수준 및 정책찬반 여부에 따른 분석 / 152

2. 주요 일간지의 특성분석 / 154

Ⅴ. 군집분석 / 158

1. 군집수 3개인 경우 / 159 2. 군집수 4개인 경우 / 161 3. 군집수 5개인 경우 / 163

Ⅵ. 요약 및 결론 / 165 참고문헌 / 172

영문초록 / 173

제6장 제도와 경제적 효율성에 대한 진화경제학적 분석 -이 근 / 175

Ⅰ. 서 론 / 177

Ⅱ. 합리성 추구와 최적화에의 제약요건 / 178

Ⅲ. 효율성과 복수균형의 존재 / 180

1. 복수균형의 존재: 경로의존성과 전략적 보완성 / 180

2. 비대칭적 복수균형 사이의 선택문제: 자본제 기업과 자주관리기업 / 184

3. 비대칭적 복수균형과 코즈정리 / 187

Ⅳ. 효율로의 진화와 비효율에의 고착 / 190 1. 효율로의 진화와 진화적 안정균형 / 191 2. 비효율적 균형에의 고착 / 192

3. 사회개혁과 비효율적 균형의 파괴 / 19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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Ⅴ. 결 론 / 195 참고문헌 / 198 영문초록 / 200

제7장 한국 정치시장의 특성과 정치개혁과제

-좌승희․한현옥 / 201

Ⅰ. 연구의 목적 / 203

Ⅱ. 정치시장에 대한 분석틀 및 적용 / 205

1. 높은 시장집중도: 소수정당에 의한 과점체제 / 205

2. 진입장벽의 존재 / 207 3. 적 용 / 210

Ⅲ. 한국 정치시장의 특성 / 215

1. 국회의원 선거를 통해 본 특성 / 216 2. 정치시장의 주요 특성 / 228

Ⅳ. 정치개혁과제 및 결론 / 235 참고문헌 / 240

영문초록 / 243

제8장 병역제도의 형평성과 효율성에 대한 소고: 비교분석과 정책대안 -이상목/ 245

Ⅰ. 서 론 / 247

Ⅱ. 병역제도의 유형과 유형별 장․단점에 대한 논의 / 249

Ⅲ. 병역제도의 운용실태와 병역제도에 대한 국민의식 / 250

Ⅳ. 분석의 틀: 국방의무 분담의 형평성과 인적 자원 배분의 효율성 / 257

1. 모델개관 / 25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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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 병역부담의 형평성 / 260 3. 가용인력 배분의 효율성 / 261

Ⅴ. 형평성과 효율성의 조화가능성과 한계 / 265 1. 군역형평조세 / 265

2. 무작위차출 / 266

Ⅵ. 모병제의 도입과 국방예산의 증가가능성에 대한 검토 / 267

Ⅶ. 결론 및 정책적 시사점: 최선책과 차선책 / 269 참고문헌 / 273

영문초록 / 276

제9장 제도개혁의 방법론에 대한 고찰: 중국과 동유럽 사회주의 경제체제의 전환을 중심으로

-정형곤 / 277

Ⅰ. 들어가는 말 / 279

Ⅱ. 제도개혁의 방법론 / 280 1. 점진적 개혁 / 281 2. 급진적 개혁 / 284

3. 중국과 동유럽 국가의 전환전략 비교 / 286

Ⅲ. 나오는 말 / 304

참고문헌 / 309

영문초록 / 3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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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구의 목적과 내용요약

이 병 기

(한국경제연구원 전문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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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근 금융위기 이후 제도개혁에 대한 논의가 매우 활발히 전개 되고 있다. 경제발전을 위한 새 패러다임의 확립을 위해서는 정 치․경제․사회 등 각 부문의 제도변화가 필요하다. 현재 금융위 기 이후 진행중인 제도개혁이 불충분하며 더디다는 우려의 목소 리가 점증하는 한편으로 개혁이 잘못된 방향으로 추진되고 있다 는 목소리도 터져 나오고 있다. 제도변화를 성공적으로 수행하기 위해서는 무엇보다도 제도의 본질적 속성과 그것이 수행하는 기 능․역할을 명확히 인식할 필요가 있다. 그래야만 과거의 제도개 혁 실패를 반복하지 않고 지속성장에 필요한 제도적 토대를 마련 할 수 있을 것이기 때문이다. 그러나 우리나라의 경우 그 동안 제 도에 대한 연구나 논의가 극히 미흡했고, 제도에 대한 충분한 이 해가 부족한 상태에서 제도개혁이 추진되어 온 것이 사실이다. 최 근에서야 제도가 무엇이며 왜 중요한지, 한국경제가 제도적인 측 면에서 어떤 문제점을 가지고 있는지에 대한 분석이 시도되고 있 는 실정이다.

제도는 사회에서의 게임의 법칙이며 인간 사이의 상호작용을 구체화한 것이다. 제도는 인간이 고안한 규칙과 같은 공식적인 제 도와 관습이나 행동양식 같은 비공식적인 제도를 포함하며, 제도 가 얼마나 잘 집행되는지의 문제도 제도분석에서 매우 중요하다.

공식적인 제도들을 바꾸는 경우에도 관습, 전통 등과 같은 비공식 적인 제도들은 쉽게 바뀌지 않는다. 이에 따라 새로 생성된 공식 적인 제도들은 기존의 비공식적인 제도들과 충돌하기도 하고 이 러한 알력과 충돌이 제도의 원활한 작동을 지연시키기도 한다. 제 도변화는 시간에 걸쳐 사회가 진화하는 양식을 구체화하는 것으 로 경제적 성과에 심대한 영향을 미친다. 더구나 제도변화는 불연 속적으로 이루어지기보다는 점진적이고 연속적인 과정으로 이루 어진다. 금융위기 이후 시장경제를 강화하는 방향으로 일련의 제 도개혁이 이루어지고 있다는 데 많은 학자들이 공감하고 있는 것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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으로 보인다. 이 같은 일련의 제도개혁은 향후 한국경제의 성과에 지대한 영향을 줄 것으로 보인다.

이 책은 제도연구회에서 발표된 논문들을 엮은 것이다. 제도연 구회는 한국경제를 둘러싼 제도문제에 대한 이론적․실증적 결과 를 발표하고 토론함으로써 이 분야의 연구활동을 촉진하는 동시 에 바람직한 제도개혁방안을 모색하는 데 그 취지가 있다. 이 보 고서에서는 그 동안 제도연구회에서 논의된 바 있는 제도의 역사 적인 전통, 제도개혁과정에서의 비공식적 제도의 중요성, 경제전 문가들의 성향, 진화경제학 관점에서 본 제도, 한국 정치시장의 특성, 병역제도의 문제 그리고 체제전환국의 제도개혁 등 실로 다 양한 주제의 논문들을 한 권의 책으로 엮은 것이다. 다음은 이 책 에 수록된 논문들의 주요 내용을 간단히 요약․정리한 것이다.

제2장에서는 유가적 전통과 법가적 제도를 분석하고 있다. 이 논문은 최근 시장경제 강화를 두고 나타나는 의견대립은 이해관 계의 차이뿐 아니라 사고방식의 차이에서도 비롯된 것이라고 지 적하고 있다. 흔히 사고방식은 동양식과 서양식으로 구분된다. 그 러나 사고방식간의 유사한 대립양상을 동양과 서양에서 각각 찾 아볼 수 있다. 사상의 대립은 궁극적으로 각 사상의 지지기반이 되는 계층간의 이해관계 차이를 반영하는 것으로 해석해 볼 수 있다. 사회를 크게 기득권층, 신흥계층 및 소외계층으로 나누어 볼 때 기득권층은 차별성을 미화하고 전통과 권위를 중시하며, 기 득권 다툼을 억제하기 위해 이기심을 부정적인 것으로 간주하고 대신 조화와 화합을 강조한다. 이미 기득권층이 장악한 정부는 기 득권 유지의 중요 수단이다. 정부는 도덕적이며 믿을 만하다고 생 각한다. 이러한 생각들은 동양의 유가, 서양의 귀족주의 및 보수 주의 등에서 공통적으로 발견할 수 있으며, 경쟁을 제한하고 독점 을 용인하고 정부의 간섭에 의존하는 중상주의적 관치재벌경제에 적합한 사고방식이다. 반면 능력이 있으나 기득권층의 장벽을 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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답하게 여기는 신흥계층은 투명하고 공정한 경쟁을 통해 능력에 따라 더 얻을 수 있는 기회를 요구하며 이기심을 칭송할 것이다.

기득권층이 장악한 정부는 부패해 있으며 믿을 수 없고, 정부는 공정한 경쟁을 보장하는 것 이상의 일을 해서는 안 된다. 소외계 층에 대해서는 자신들과 동등한 기회를 주는 것으로 충분하다고 생각한다. 이러한 생각들은 동양의 법가와 서양의 자유주의에서 공통적으로 볼 수 있으며, 경쟁을 중시하는 자유시장경제에 적합 한 사고방식이다. 끝으로 가진 것도 더 얻을 가능성도 별로 없는 소외계층은 현재 사회에 있는 것을 균등하게 나누는 문제에 주로 관심을 가질 것이다. 정부는 아무도 더 갖지 못하도록 감시하는 중요한 일을 맡으며, 누구나 정부의 말을 따라야 한다고 믿는다.

이러한 것은 동양의 묵가와 서양의 사회주의가 공통적으로 갖는 생각이라고 지적하고 있다.

제3장에서는 문화, 비공식제도 그리고 제도의 경쟁문제를 다루 고 있다. 이 논문은 오늘날 정부의 개혁정책이 범하고 있는 가장 큰 오류는 민법에 대한 공법우위 사상에 입각하여 개혁정책을 추 진하고 있는 데 있다고 지적하고 있다. 공법우위 사상은 자생적으 로 형성된 비공식제도, 즉 문화적 제도의 존재와 문화적 제도의 자생적 형성가능성을 무시하는 사상이다. 문화적 제도는 수많은 세대 동안 수많은 사람들이 가지고 있는 지식들을 취사선택하여 담아 놓은 그릇이다. 그 속에는 수많은 조상들의 지혜가 담겨져 있다. 공법우위 사상에 따라 이러한 제도가 마음에 들지 않는다고 해서 정부가 이를 인위적으로 개혁해서도 안 되고 또 개혁할 수 도 없다. 그리고 그러한 개혁이 성공할 수도 없다. 정부는 자생적 으로 제도들이 형성될 수 있고 제도들끼리 경쟁할 수 있는 틀을 중시해야 한다. 그 틀이 바로 민법이다. 그렇기 때문에 공법보다 민법을 중시해야 한다는 것이다. 공법우위 사상은 자생적으로 형 성된 기존의 문화적 제도를 파괴한다. 예컨대 성실성, 솔직성, 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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임감 등과 같은 문화적 제도, 즉 시민적 덕성을 파괴할 뿐이다.

이 파괴의 결과는 흔히 말하듯이 도덕적 해이이다. 도덕적 해이는 공법우위 사상에서 비롯된 개혁정책의 필연적 결과이고, 공법우위 사상은 이 시민적 덕성의 자생적 형성을 방해할 뿐이라고 지적하 고 있다.

제4장은 경제, 자연 그리고 제도 및 문화에 대한 논문이다. 이 논문은 경제에서 자연스러움 또는 자연성이 무엇인지에 대해 주 류경제학을 중심으로 논의하고, 이에 대한 대안적인 생각을 제시 하는 데 목표를 둔 것이다. 일차적으로 주류경제학이 생각하는 자 연성은 다음과 같은 요소들로 구성되어 있다. 첫째로 인간에게는 보편적인 본성으로서 이기심이 존재한다. 둘째로 이런 이기심에 근거해 개인들이 벌인 경제활동이 시장에서 전체적으로 자연스런 결과를 낳는다. 셋째로 경제가 여러 가지 자연적인 요인이나 외적 인 요인에 의존한다. 넷째로 경제학의 방법은 자연과학적인 것이 어야 하며, 경제현상은 물리적 현상과 유사하다. 그런데 이런 생 각으로 주류경제학은 인간의 이기심과 시장에 과도한 보편성이나 불변성을 부여한다는 문제가 있다. 마르크스, 하이에크 그리고 구 제도학파의 논리를 종합하여 제도적으로 접근하는 경우 이런 경 직된 자연성은 완화될 수 있다. 이들은 모두 인간성과 경제체제가 상호작용하는 가운데 각기 변화 또는 진화한다고 보는데, 자연성 도 이런 주장에 부합되는 방식으로 재구성될 수 있다. 이런 재구 성에서 핵심적인 존재들이 제도, 규칙 그리고 문화이다. 외견상 이들에게 자연성은 주어짐, 자기작동성 그리고 구체성 등으로 규 정될 수 있는데, 모두 사회관계와 연결되어 있다는 점에서 주류경 제학의 자연성과 그 성격이 다르다. 이런 의미에서 이들은 모두 단순한 자연성이 아니라 ‘사회적 자연성’ 또는 ‘자연적 사회성’을 주장했다고 말할 수 있다. 이런 입장에서 필자는 한국경제의 성장 과정에는 일방적으로 효율성만을 추구함으로써 고유의 제도나 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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화를 고려하지 않아 자연스러움이 결여되어 있다고 진단하고 있 다.

제5장은 경제전문가의 성향분석에 관한 실증논문이다. 이 논문 은 주요 일간지의 기고문 및 사설분석을 통해 경제전문가의 성향 을 분석하였다. 우리나라 경제분야의 여론을 주도하는 경제전문가 는 무슨 생각을 갖고 어떤 내용의 글을 어떻게 표현하는지를 분 석하였다. 본 논문은 경제전문가의 이론적 성향, 분석수준, 정책에 대한 견해 등에 대해 2000년 7월 17일에서 10월 16일까지 3개월 간 주요 일간지 6개의 기고문 및 사설을 분석하였는데, 그 결과는 다음과 같다. 첫째, 이론적 성향과 관련하여 가장 중요한 특징의 하나는 대다수 경제전문가들이 시장지향적인 입장을 표명하였다 는 점이다. 우리 사회의 일각에서는 경제전문가 역시 사안에 따라 서는 정부의 개입을 강력히 주장하는 경우도 종종 접할 수 있었 다. 바로 이런 점에서 과연 우리 사회의 경제분야 여론주도층이 시장론자가 다수인지 개입주의자가 다수인지에 대해 의구심을 지 닌 경제전문가들이 적지 않았다. 그러나 본 연구를 통해 일단 경 제전문가의 성향에 대해서는 더 이상 이론이 없음이 확인되었다 고 볼 수 있다. 둘째, 분석수준은 주요 일간지의 사설 및 칼럼의 평균점수가 6.18점으로 실증분석이나 이론적 근거에 기초하기보다 는 부분적인 사례나 일반론에 입각하여 기술하고 있음을 볼 수 있다. 그러나 사설과 칼럼을 분리해서 본다면 칼럼은 어느 정도의 분석수준을 유지하고 있음에 반해, 사설의 분석능력은 이에 비해 훨씬 떨어지는 것으로 분석되고 있다. 셋째, 정부정책에 대해서는 주요 일간지의 사설 및 칼럼은 대체로 찬성도 반대도 아닌 다소 유보적인 입장을 취하고 있다. 그러나 정부정책에 대해 찬성과 반 대의 두 입장으로 나눈다면 찬성보다는 반대비율이 높게 나타났 다. 이것을 종합해 보면 우리나라 경제전문가들이 신문에 기고하 는 글들은 대체로 시장지향적이면서 정부정책에 대해서는 적극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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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 찬성도 반대도 아닌 채 정책에 대한 나름대로의 권고를 담고 있는 글을 쓰는 것으로 나타났다.

제6장은 진화경제학적인 시각에서 제도와 경제적 효율성의 문 제를 분석하고 있는 논문이다. 완벽한 합리성에 대한 의문, 단일 한 효율적 균형의 존재에 대한 회의와 의문은 바로 진화경제학적 사고로의 출발이다. 진화경제학적 사고란, 쉽게 말하면 인간은 제 한적으로만 합리적일 수밖에 없으며, 따라서 이득을 추구하기는 하지만 이득을 극대화하지는 않으며, 사회는 보다 효율적인 상태 로 진화가 일어나기도 하지만 비효율적 상태로 고착될 수 있다는 것이다. 그렇다고 진화경제학적 사고가 합리적 행동원칙을 부정하 는 것은 아니다. 단지 사전적으로 어떤 행동이 완전히 합리적인가 하는 것이 정의되지 않으며, 따라서 인간은 그 한계 내에서 비용 이 덜 드는 근사적으로 또는 국지적으로 합리적인 행동을 취한다 는 사실이다. 예를 들어, 좌측통행이라는 관행 또는 제도의 탄생 과 정착은 일정한 의도적 조정과 명령 없이도 발생할 수 있는데, 여기에도 개인차원의 합리적 행동이라는 원칙이 개입된다. 우측통 행이든 좌측통행이든 사회후생차원에서는 동일하여 우월이 없기 때문에 사전적으로 어떤 것이 선별될지 모른다 할지라도, 자연스 럽게 놓아 두면 둘 중에 하나로 반드시 수렴될 것이라는 사고가 진화경제학적인 접근방법이다. 이 때 우연적 요소 등 합리성과는 상관없는 요소들이 개입하기도 하여 특정 균형이 선택되는 것이 며, 이 경우 관행 사이의 선별은 합리성 기준이 적용되지 않을 수 도 있다. 사회적으로는 비효율적이라 하더라도 주위의 모든 사람 이 좌측통행을 하는 한 나도 좌측통행을 하는 것이 나의 손실을 최소화하는 합리적 선택이기 때문이다. 이와 같이 최초에 어떤 이 유에서 특정 전략을 선호하는 사람이 많으면 그 쪽으로 균형이 성립하며, 일단 그 쪽으로 간 후에는 다른 균형으로 가기 어렵다 는 것이 경로의존성이다. 그리고 전략적 보완성이란 특정 전략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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채택하는 사람이 많을수록 자기도 같은 전략을 채택하는 것이 유 리한 상황을 의미한다. 또한 역사적 초기조건에 따라 사회 전체 이익극대화 원칙에서 보면 똑같은 두 균형 사이에서 어느 한 쪽 이 특정 계급의 권력우위에 의해 특정 계급에 더 이득이 되는 균 형이 선택될 수 있음을 보였다. 이는 사회적 균형상태가 순수히 경제적 효율성만 가지고 설명될 수 없음을 시사한다. 또한 효율성 으로 진화가 사전적인 최적화나 조정게임을 통해서가 아니라 우 연적인 사건, 즉 돌연변이에 의해서도 발생할 수 있다. 반면에 사 회가 열등한 상태로 진화되고 이 상태로 고착될 수 있음도 보여, 자연스러운 진화가 항상 합리성 증진적이 아닐 수도 있으며, 극단 적으로 인류멸망도 가져올 수 있음을 보여 주고 있다.

제7장은 한국 정치시장의 구조와 정치개혁과제에 대한 실증적 인 논문이다. 정치시장이란 국민을 수요자로 하고 정치인을 공급 자로 하는 국민생활과 관련된 정책입안이나 법률제정 등과 같은 서비스가 거래되는 시장으로 정의할 수 있다. 한 시장의 특성과 효율적인 운영에 영향을 미치는 가장 중요한 요인 중 하나가 진 입의 용이성이다. 본고에서는 정치시장의 진입단계라고 할 수 있 는 선거를 중심으로 한국 정치시장의 특성을 분석하였다. 국회의 원 선거에 출마한 후보자들에 대한 데이터를 통한 실증분석결과 에 의하면, 한국 정치시장으로의 진입단계에서 여당소속 후보자가 압도적으로 유리하다. 야당 후보자들간에도 제1야당 소속 여부에 따라 당선율에서 큰 차이를 보여 당공천권의 획득 여부가 국회의 원 당선에 결정적인 영향을 미치는 것으로 나타났다. 후보자들 중 첫 출마자의 비중이 높아 매번 국회의원의 약 60% 정도가 초선 의원으로 구성되어 국회의원 중 전문역량을 축적한 의원의 수가 별로 많지 않다. 그 밖에 당소속 후보와 현직 국회의원 후보에게 유리한 선거비용을 비롯한 선거관련 제도는 무소속 후보자의 기 회비용을 높여 진입장벽의 하나로 작용한다. 정치개혁과제로 당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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천권의 중요성에도 불구하고 투명하지 않은 현행 공천과정을 민 주화하여 정치시장의 진입장벽을 제거하여 정치시장의 효율성을 제고하여야 한다. 엄정한 법집행을 통해 공정한 경쟁이 이루어질 수 있도록 하여야 하며, 국회의원 의정활동 정보의 투명성을 제고 하여 유권자가 올바른 선택을 할 수 있는 여건을 조성하여야 한 다고 지적하였다.

제8장에서는 병역제도의 형평성과 효율성 문제를 다루고 있다.

이 논문에서는 병역제도의 유형과 특징을 비교․분석하고, 통계자 료와 설문조사의 결과를 기초로 우리나라 병역제도의 운용실태와 병역제도에 대한 국민의식을 논의하였다. 또한 공공정책의 판단기 준으로 작용하는 국방의무 분담의 형평성과 국가인적자원의 효율 적 배분을 설명하는 이론적 모델을 제시하고 각 제도의 장․단점 을 도출하는 한편, 징병제의 보완방안으로 과거 선진국에서 시행 했거나 현재 시행하고 있는 군역형평조세와 무작위차출제도를 개 관하여 형평성과 효율성의 동시달성 가능성과 한계를 분석하였다.

이러한 분석결과를 토대로 병역부담의 형평성과 국가인적자원의 효율적 배분을 동시에 달성할 수 있는 최선의 병역제도를 도출함 과 동시에 최선책으로의 제도전환에 앞서 형평성과 효율성을 보 장하는 과도기적 차선책을 제시하였다.

제9장은 중국과 동유럽 국가를 중심으로 하여 제도개혁의 방법 론을 분석하고 있다. 1990년대 이후 세계의 경제질서가 시장경제 로 재편되면서 자본주의 국가든 사회주의를 추구했던 국가든 나 라에 따라 규모의 차이는 있으나 시장메커니즘의 도입과 원활한 작동을 위한 개혁을 꾸준히 추진하고 있다. 특히 1990년대 이후 동유럽 국가들의 시장경제로의 전환은 과거 사회주의 정부의 경 제에 대한 규제를 완화하고 독점적 산업을 해체하며, 사유화해야 한다는 점에서 엄청난 제도적 변화를 요구하고 있다. 이 논문은 이러한 제도적 개혁에 대한 방법론을 중국 및 동유럽 국가를 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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로 들어 논의하고 있다. 시장경제로의 개혁을 논하는 데 있어서 현재 점진적인 개혁을 추진한 중국이 급진적 개혁을 추진한 동유 럽 국가들보다 더 나은 경제적 성과를 나타내고 있어 중국식의 개혁이 동유럽식의 개혁보다 우월한 전략인 것처럼 보인다. 그러 나 이 논문에서는 중국과 동유럽의 개혁 당시의 정치적 조건, 거 시경제적 조건, 산업구조상의 조건, 시장의 경험문제, 행정체제의 조건 등을 비교분석함으로써 중국과 동유럽이 각각 초기조건의 차이로 서로 다른 모델을 선택할 수밖에 없었다고 보고 있다. 따 라서 제도개혁은 단순히 급진적이냐 점진적이냐의 이분법적 논리 가 아니라 초기조건에 따라 결정된다는 것이다. 제도개혁과 관련 하여 이 논문에서 주장하고 있는 것은 제도개혁이 그 사회에 존 재하고 있는 법, 문화, 경제, 지리 그리고 도덕적 측면 등과 같은 체제 내적인 요인들을 신중히 고려해야 한다는 것이다. 이 같은 체제 내적인 요인들은 한 나라의 경제질서와 깊은 관련을 가지고 있어 서로 분리될 수 없으며, 따라서 미래의 경제정책과 제도개혁 도 이러한 현재의 틀 내에서 고려되어야 한다는 점을 강조하고 있다. 특히 경계해야 할 것은 경제주체들의 이성적 한계와 제도의 역사적 종속성 등으로 인해 어느 한 순간에 모든 제도를 다 바꾸 었다고 해서 개혁이 성공적으로 이루어지는 것은 아니라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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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가적 전통과 법가적 제도

*

최 윤 재 (고려대 경제학과 교수)

Ⅰ. 서 론 ··· 25

Ⅱ. 유가․법가 대 묵가(우파 대 좌파, 또는 지배층 대 피지배층) ··· 30

Ⅲ. 유가․묵가 대 법가(이타주의 대 이기주의, 또는 정부 대 민간) ··· 33

Ⅳ. 유가 대 법가․묵가(수구 대 개혁, 또는 차별 대 평등) ··· 53

Ⅴ. 결 론 ··· 58

참고문헌 ··· 62

영문초록 ··· 65

1)

* 제도경제 세미나 참석자들과 이재룡 박사, 이승환 교수 등의 비판에 감사드린다.

지적을 다 따르지 않은 책임이 필자에게 돌아옴은 물론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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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릇 나라를 세움에 있어서는 제도를 살피지 않을 수 없다. … 제도가 시대에 맞으면 나라의 풍속이 변할 수 있고 백성이 제도를 따르게 된다.

凡將立國 制度不可不察也 … 制度時 則國俗可化 而民從制( 商君書 壹言)

Ⅰ. 서 론

경제위기 이후 한국경제에는 광범위한 제도개혁의 필요성이 제 기되어 왔고, 일부(또는 보기에 따라 상당 부분) 개혁작업이 진행 되고 있다. 논자에 따라 세부사항에서 다소 차이가 있기는 하겠으 나, 개혁의 큰 방향이 일단 시장경제를 강화하는 쪽으로 잡혀 있 다는 데 대해서는 많은 사람들이 - 특히 경제학자들을 중심으로 - 공감하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 그러나 최근 진행중인 개혁이 불충 분하며 너무 더디다는 우려의 목소리가 높아지고 있는 한편, 사회 의 다른 한쪽에서는 개혁이 지나치게 또는 잘못된 방향으로 추진 되고 있다는 불만의 목소리도 여전히 높다. 어느 쪽 눈으로 보든 지 간에 그 동안의 개혁작업이 이 나라 경제, 정치, 사회에 만족 할 만한 변화를 무리 없이 수행하였다고 평가하는 데에는 거의 모두가 인색한 듯하다.

개혁의 어려움이 오늘날의 한국적 상황에서만 찾아볼 수 있는 것은 물론 아니다. 동서고금을 막론하고 개혁은 늘 크고 작은 저 항에 부딪치게 마련이다. 이해관계의 상충에 따른 개혁의 어려움 에 관한 일반적인 이론에 대해서는 다른 곳에서(최윤재, 2000b) 다룬 바 있으므로 본고에서는 오늘날의 한국적 상황의 특수한 측 면, 그 중에서도 사고방식1)과 관련된 부분을 중심으로 살펴보고

1) 본고에서 사고방식이라는 다소 느슨한 표현을 사용하는 것은 의도적이다. 이는 한 편으로는 철학자들의 ‘사상’ 외에도 일반인들의 (보다 덜 엄밀한) 생각까지 포함하 기 위한 것이며, 다른 한편으로는 시대배경을 전혀 달리하는 사상들을 같은 유형 으로 묶기 위한 것이다. 비슷한 사고방식을 사회구성원 대부분이 공유한다면 이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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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 한다.

제도변화는 불연속적이기보다는 연속적․점진적인 경우가 압도 적으로 많다는 노스(North, 1990, p.89)의 결론은 공식적인 제도의 배후에서 비공식적인 제도가 중대한 영향을 지속적으로 미치고 있다는 인식에 따른 것이다. 실정법이나 조직체계 등과 같은 공식 적인 제도를 쉽게 바꿀 수 있는 경우에도 전통, 관습, 가치관 등 과 같은 비공식적인 제도는 쉽게 바뀌지 않는다. 이에 따라 새로 도입된 공식적 제도는 기존의 비공식적 제도와 마찰을 빚기도 하 며, 그 마찰은 때로 심각한 지경에 이르러 제도의 원활한 작동을 방해한다. 현재 우리나라에는 여러 가지 상이한 사고방식이 혼재 한 채 서로 충돌하면서, 시장경제를 강화시키는 방향으로의 개혁 에 대해 서로 다른 평가를 하고 있는 것으로 생각된다.

크게 보면 여기에는 오랜 기간 다져진 유교적 전통 위에 일제 시대 및 개발독재시대의 군대식 문화의 영향을 받으며 형성되어 온 권위주의적 사고방식이 한편에 있으며, 시장경쟁을 중시하는 사고방식이 - 특히 경제위기 이후 부각되면서 - 다른 편에, 그리 고 사회주의적 좌파 사고방식이 또 다른 편에 있다. 이 중 첫째와 둘째는 ‘아시아적 가치’를 둘러싼 논란2)에서처럼 동양과 서양의 사고방식 차이로 간주되는 경우가 많으며, 둘째와 셋째는 이와 별 개의 맥락에서 발생한 서양사상사 내의 논란으로 취급되는 것이 보통이다. 이러한 대비에는 장점도 있지만 단점도 따른다. 동․서 양의 사고방식을 별개의 것으로만 간주해서는 상이한 사고방식간 의 보다 근원적인 차이가 충분히 드러나지 않게 되며, 이에 따라

생각뿐 아니라 실제 사회생활에도 광범위한 영향을 미칠 것이며, 문화의 일부가 될 것이다. 사고방식이라는 표현은 아직 일반적인 문화로까지는 진화하지 못한 상 태를 폭넓게 포함한다.

2) Han(1999), 경제사학회(2000)에 실린 논문들 및 ‘민주주의와 시장경제’에 관한 학술 회의에서 발표된 Fukuyama와 Sen의 논문들 참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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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들간의 ‘평화공존’ 가능성을 과대평가할 위험이 있다. ‘동양 정 신문명 대 서양 물질문명’에서와 같이 동․서양 사상의 관심주 제 자체를 상이한 것으로 보기보다는 동일한 주제에 대해 어떻게 달리 생각하였는가를 보다 주의 깊게 살펴볼 필요가 있다. 또한 동양 대 서양의 ‘싸움’에서는 동양의 편을 들어 ‘사라져 가는 전 통문화’를 지켜야만 할 것 같은 강박감에 자기도 모르게 빠지기 쉽다(상대적으로 이성보다 감성을 더 중시하는 동양식 사고방식에 서 이는 종종 나타날 수 있는 위험이다).

이러한 한계를 극복하는 한 가지 방법으로 본고에서는 동․서 양에 각각 유사한 유형의 사회경제사상이 존재하였음에 주목하고 자 한다. 동양사상에서 유가가 독존적인 위치를 차지하기 전인 춘 추전국시대에는 과장해서 제자백가라 불릴 만큼 다양한 사상이 경쟁적으로 존재하였다. 이 중 유가, 법가, 묵가의 차이는(세부적 인 점들을 눈감아 준다는 전제하에) 기본적인 성향에서 서양의 여 러 사상들과 비교될 만하다(<그림 1> 참조). 서양사상에 대해서는 상대적으로 잘 알려져 있다는 전제하에 본고에서는 주로 동양사 상을 중심으로 논의할 것이다. 법가사상을 자유주의에 견주어 보 는 본고의 해석은3) 동양철학계의 기존 해석과 커다란 차이가 있 다. 따라서 본고에서는 법가에 대한 설명에 비교적 많은 지면이 소요될 것이다. 법가사상을 자유주의와 동일시하려는 것은 결코 아니라는 점을 미리 밝혀둘 필요가 있겠다. 법가사상에는 다른 동 양사상에서와 마찬가지로 반자유주의적 요소들도 많이 포함되어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몇 가지 기준에서 법가사상과 자유주의 사이에 중요한 공통점들을 발견할 수 있다. 법가에 각별히 주목하 는 것은 이를 통해 유가의 특징을 더 뚜렷이 볼 수 있다고 생각 하기 때문이다. 법가에 대비하여 보면 유가는 서양에서 자유주의

3) 이는 앞서 최윤재(2000a)에서도 다룬 바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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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림 1> 사고방식들간의 비교

유가

묵가 법가

귀족주의

사회주의 자유주의

관치재벌경제

사회주의경제 경쟁시장경제

에 대비되는 근대 이전의 귀족주의4) 또는 근대 이후의 보수주의5)

4) 여기에서 귀족주의라 함은 근대 이전 서유럽에서 정치와 경제를 장악하였던 귀족 계층의 사고방식을 의미한다. 귀족주의에 대해서는 Powis(1984) 참조.

5) 보수주의는 나라와 시대에 따라 워낙 다양한 형태로 나타나기 때문에 이들을 모두 한 부류로 보는 것은 불가능하다. 본고에서 보수주의라 함은 기본적으로 18∼19세 기 영국에서 자유주의적인 휘그와 대립되던 시절의 토리를 가리킨다. 이에 비해 오늘날의 영국 보수당은 특히 대처 이래 자유주의 성향을 때로는 과격하게 보이고 있으며, 미국의 ‘보수주의’ 역시 본고의 분류로는 보수주의 대신 자유주의에 포함 될 것이다. 우리나라의 정치적 보수주의는 최소한 본고에서 논하는 주제에 관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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와 더 많은 공통점을 갖는 것으로 볼 수 있다. 경제와 관련해서 보면, 유가적 사고방식은 우리나라의 관치재벌경제 및 서양의 중 상주의와, 법가적 사고방식은 경쟁지향적 시장경제와, 그리고 묵 가적 사고방식은 사회주의적 경제와 각각 결부될 수 있을 것이다.

사고방식을 분류한다는 것은 적잖이 무모한 일임을 인정하고 시작하기로 한다. 본고에서의 분류는 다분히 상징적일 수밖에 없 다. 여러 가지 사상은 각각 특수한 시대상황을 배경으로 고유한 문제의식을 가지고 형성된 것이어서 어느 것 하나도 특수하지 않 은 것이 없다. 그러나 몇 가지 핵심주제를 놓고 비교해 보면 이것 들은 시대상황을 초월하여 공통된 유형의 사고방식으로 분류할 수 있음을 볼 수 있다. 이는 한 가지 사상유형이 다른 유형과 비 교하여 갖는 공통점에 주목하고자 하는 것이며, 한 부류로 묶은 다양한 사상들을 동일시하고자 하는 것은 아니다. 복잡한 것 속에 서 특징만을 취하여 단순한 형태로 일부러 ‘왜곡’시키는 것이 경 제학방법론의 일반적인 단점이자 장점이다. <그림 1>의 단순화는 나름대로 장점을 갖는다고 생각하여 만들어 본 것이다. 앞으로 논 하겠지만, 특히 세 가지 유형의 사고방식을 각각 삼각구도로 나타 낸 것은 일차원의 선 위에 좌파, 중도파, 우파 등을 스펙트럼처럼 나타내는 일반적인 방식에 비해 유리한 점이 있다. 세 가지 가운 데 유가적 사고방식은 우리나라의 과거를, 법가적 사고방식은 미 래를 각각 상징한다고 볼 수 있다. 그런 의미에서 본고의 제목은 묵가를 빼고 “유가적 전통과 법가적 제도”로 붙여 보았다.

한 자유주의에 대비되는 의미로서의 보수주의에 가깝다고 볼 수 있다. 물론 우리 나라의 보수주의와 영국 토리의 보수주의 사이에는 차이점 역시 많으나 이에 대해 서는 일일이 논의하지 않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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Ⅱ. 유가․법가 대 묵가(우파 대 좌파, 또는 지배층 대 피지배층)

사회주의적인 좌파를 먼저 상정하고 나서 좌파에 반대되는 것 을 한데 묶어 우파라고 하는 것은 오늘날 가장 흔한 사상분류방 식이다. 온건한 사회주의에서 독재적인 공산주의에 이르기까지 좌 파는 이념적으로 지배층보다는 피지배층, 또는 가진 자보다는 못 가진 자의 입장에 서며 평등지향적이라 하겠다. 이러한 좌우의 구 분에 따르면 18∼19세기 영국에서 지주계층을 기반으로 하였던 보수주의적인 토리와(일부 지주를 포함하여) 부르주아계층을 기반 으로 하였던 자유주의적인 휘그는 둘 사이의 대립에도 불구하고 19세기 말 이후 본격적으로 등장한 좌파와 대비되어 다 함께 우 파로 분류된다. 또한 파시즘과 나치즘도 우파가 되고, 자유주의적 인 미국의 공화당과 자유주의적 색채를 거의 찾아보기 어려운 우 리나라의 ‘보수파’도 다 함께 우파가 된다(‘우파’ 내의 구분은 다 음 절 이후에 다룬다).

이러한 구도에서 유가와 법가는 한데 묶여 묵가와 대립되는 것 으로 볼 수 있다. 묵자에서 비롯된 묵가사상은 겸상애 교상리兼相

愛 交相利, 즉 사람을 차별하지 말고 골고루 서로 사랑하며 이익을

서로 나누라는 것이 그 핵심으로, 평등을 중시하는 오늘날의 좌파 적 사고방식과 상당히 비슷하다. 유가에 대한 묵가 비판의 핵심은 유가의 충과 효가 기본적으로 아랫사람의 윗사람에 대한 일방 적인 사랑을 강조하는 것이라는 데에 있다. 예컨대, 묵자는 “신하 와 자식이 임금과 아버지에게 불효하는 것을 어지러움이라 한다.

… 아버지가 자식을 사랑하지 않고 형이 동생을 사랑하지 않고 임금이 신하를 사랑하지 않는 것 역시 천하의 어지러움이라 한 다”( 묵자 겸애上)라고 하면서 위와 아래를 동등하게 취급할 것 을 요구하였다. 오늘날의 신유가가 충과 효에서 과거의 일방적인 모습을 지우려고 애쓰고 있는 것은 사실이지만 일찍이 묵가가 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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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한 정도에는 미치지 못한다. 더욱이 지난 2000년간의 유가적 전 통이 일방적인 사랑을 강조한 쪽에 더 가까우며, 실제로 사회에 그런 방향으로 주된 영향을 미쳤다는 사실은 부인하기 어렵다. 그 밖에 다음과 같은 것들도 묵가의 사회주의적인 면을 나타내는 구 절들이다: “차별은 그르고 평등은 옳다”( 묵자 겸애下); “굶주리 면 먹여 주고, 헐벗으면 입혀 주고, 병들면 돌보아 준다”( 묵자 겸애下); “재산이 많으면 가난한 사람에게 나누어 준다”( 묵자 노문).

사회계층을 임금․귀족․평민 등 세 부류로 크게 나누어 볼 때, 상대적으로 묵가는 평민의 입장을 가장 강하게 옹호한 것으로 볼 수 있다. 묵가는 “귀족들이 주옥珠玉, 조수鳥獸, 견마犬馬 등을 모으 기”( 묵자 절용上)나 좋아하고 “남는 재물이 썩어도 서로 나누어 가지지 않는”( 묵자 상동上) 것을 질타하면서 지배계층의 절용 을 요구하였으며, 굶주리는 백성을 놓고 음악을 즐기는 것은 용 납할 수 없는 사치라는 비악非樂,6) 그리고 보통사람이나 천한 사 람으로서는 “집안의 재산을 거의 없앨 지경”( 묵자 절장下)에 이 르도록 임금과 귀족들이 호화로운 장례를 치르는 데 대해서 이를 간소히 하자는 단상短喪 등과 같은 주장 역시 임금과 귀족 등 당 시 기득권층이 누리던 호화로운 생활상에 대한 평민들의 비판적 인 시각을 대변한 것이라 하겠다.7) 묵가는 또한 (특히 묵자 상

6) “굶는 사람이 먹을 것을 얻지 못하고, 추위에 떠는 사람이 옷을 얻지 못하고, 수고 하는 사람이 쉬지 못하는 세 가지는 백성의 큰 근심거리다. 그런데 큰 종을 두드 리고 북을 치고 거문고와 비파를 뜯고 피리와 생황을 불면서 방패와 도끼를 들고 춤을 춘다면 백성들이 입고 먹을 재물은 장차 어디서 얻을 수 있겠는가”( 묵자 비악上). 공자 이래 유가에서는 음악이 매우 중요하게 취급되었음을 참고할 필요가 있다.

7) 여기에는 반론도 있다. 예컨대, 손동완(1994)은 묵가가 단순히 평민의 이익을 대변 했다기보다는 평민을 안정․유지시킴으로써 체제를 공고히 하려는 지배층의 입장 에서 접근한 것이라고 주장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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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편에서) 임금과 귀족이 세습적으로 누리는 특권에 대해 비판적 이었다. “세상이 어지러운 것은 지도자가 없기 때문이다. 그래서 세상의 현명한 사람을 선택하여 천자로 세운다”( 묵자 상동上)는 묵자의 말은 세습군주제보다는 공화제에 가까운 발언이다.

묵가의 비판적 시각에 반사적으로 나타나는 유가의 모습은 근 대 이전의 서양 귀족주의에서도 쉽게 찾아볼 수 있다. 혈통에 기 득권의 바탕을 두는 귀족주의 역시 가부장과 나아가 가문에 대한 복종을 (십계명 중 부모에게 효도하라는 부분을 즐겨 인용하며) 중시하였으며, 효도는 유가에서와 같이 임금에 대한 충성으로 연 장되었다. 또한 귀족들은 가문의 명예를 과시하기 위한 수단으로 호화로운 장례, 손님접대, 예술에 대한 후원, 저택의 건축 및 유지 등에 지출을 아끼지 않았다(Powis, 1984).8)

임금-귀족-평민 중에서 주로 평민의 편이었던 묵가에 비해 상대 적으로 법가는 임금을, 유가는 귀족을 중하게 여겼다(이 차이에 대해서는 아래에서 다시 논할 것이다). 그러나 유가와 법가의 이 러한 차이는 묵가적 시각에서는 단지 지배계층 내의 다툼으로 보 일 수 있다. 이와 유사한 상황에 있는 것이 오늘날 우리나라에서 유행하고 있는 이른바 ‘신자유주의’라는 용어이다. 이 용어는 관 치재벌경제와 자유주의적 시장경제를 구분하지 않고 지칭하면서 사용되는 경향이 적지 않다.9) 관치재벌경제나 자유주의적 시장경 제나 모두 잘 사는 사람만 위하고 못 사는 사람은 괴롭히는 것으

8) 서양 귀족주의에 대해서는 Powis(1984) 참조. 토지에 대부분의 경제적 기반을 둔 귀족들의 소득은 산업혁명 이후 등장한 부르주아에 비해 상대적으로 제자리에 머 물렀을 뿐 아니라 불규칙하였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신분에 걸맞은 소비를 지속하 려는 경향이 강하여 상당수는 부채를 만성적으로 떠안게 되었으며, 이는 결국 귀 족계층의 전반적인 몰락을 재촉하게 되었다.

9) 유럽의 신자유주의가 좌파적 정책으로부터 탈피하는 것을 목표로 하는 반면, 한국 에서의 ‘신자유주의’는 관치재벌경제로부터 탈피하는 것을 목표로 하고 있다는 점 에서 둘은 크게 다르다. 이 점은 최윤재(2000a), pp.274∼280 참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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로 한데 묶어서 보는 것은 기본적으로 좌파적 시각이다. 다른 기 준으로 볼 때, 흔히 우파로 함께 분류되는 사상들 사이에는 중대 한 차이가 나타나며, 이 중 일부는 오히려 묵가적 사고방식과 공 통점을 갖는다.

Ⅲ. 유가․묵가 대 법가(이타주의 대 이기주의, 또는 정부 대 민간)

1. 이타주의 대 이기주의

기반계층의 차이에도 불구하고 유가와 묵가는 법가와 구분되는 공통점들을 가지고 있다. 유가와 묵가는 둘 다 욕심에 대해 부정 적이었다. 공동체 내에서 개인적 욕심을 앞세우는 것은 바람직하 지 않으며10) 분란을 일으키는 일이다. 욕심은 억제되어야 하며 억 제될 수 있다. 유가가 인이라 하고 묵가가 겸애兼愛라고 하는 이 타주의에 따르면, 자신에 앞서 남을 사랑하는 것이 바람직하며, (교육 등을 통해 적절히 인도한다면) 사람들은 별 무리 없이 서로 양보하며 사이좋게 살 수 있을 것이다. 그러나 욕심을 억제하는 방법은 서로 달라 묵가는 평등주의로, 유가는 차별주의로 나아갔

10) 유가와 묵가에는 차이가 있다. 유가는 개인의 이익뿐 아니라( 맹자 양혜왕편의 유명한 첫 구절이 보여 주듯) 나라의 이익도 생각하지 말아야 하며, 오로지 옳고 그름에 따라 판단해야 한다고 주장한 반면, 묵가는 개인의 이익을 생각하지 않는 것이 나라의 이익에, 그리고 결국은 자신의 이익에 보탬이 된다고 생각하였다. 다 시 말하면, 묵가는 본능적인 이기심을 이성적인 이타심으로 바꾸는 것이 진정한 이익이라고 한 것이다. 이러한 점에서 유가는 묵가도 법가와 마찬가지로 기본적으로 이익을 중시한 공리(功利)주의적 사상이라고 본다(여기서 공리주의는 utilitarianism 과는 다른 의미다). 묵가와 마찬가지로 사회주의 사상 역시 경제적 이익을 중시한 유물론적 사상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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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 묵가가 주로 지배계층의 사치를 비판한 데 반해, 유가는 욕심 때문에 다투는 것을 막기 위해 신분제를 옹호하였다. “세력과 지 위가 같고, 좋아하고 싫어하는 것이 같으면, 물건이 넉넉하지 않 으므로 반드시 다툼이 일어난다. … 그래서 예의를 만들어 신분을 정하고 빈부귀천의 등급이 있게 한다. … ‘가지런하다는 것이 똑 같다는 것은 아니다’라고 한 것은 이를 말함이다”( 순자 왕제).

유가에서도 지도층의 절약을 말하기는 한다. 그러나 유가에서 말 하는 욕심이란 기본적으로 분수에 맞지 않는 것, 즉 높은 신분을 함부로 넘보는 것을 가리키며, 이는 사회의 질서와 평화를 파괴하 는 것이므로 억제되어야 한다. 예컨대, 공자는 천자만이 즐길 수 있도록 되어 있는 팔일무라는 춤을 대부大夫의 신분으로 즐긴 사 람이 있다는 사실에 대해 개탄하였다( 논어 팔일). 동시에 유가 는 윗사람이 아랫사람보다 높은 생활수준을 누려야 한다는 점을 당연시하였다. 공자는 “대부의 말석에 몸담았기 때문에 걸어다닐 수 없었고”( 논어 선진), “곡식은 정미한 것을 원했고, 회는 가늘 게 썰어 먹기를 원했고, … 시장에서 사 온 술이나 건포 따위는 먹지 않았으며”( 논어 향당), 맹자는 “수십 대의 수레가 뒤따랐고 수백 명의 시종을 거느렸다”( 맹자 등문공下). 이들이 “꼭 사치를 즐겼다기보다는 그렇게 하지 않으면 ‘예가 아니기’ 때문이었을 것 이다”(풍우란, 1961, p.97).11) 유가의 차별적 측면에 대해서는 다 음 절에서 다시 살펴보기로 한다.

유가와 묵가에 비해 법가는 (서양의 자유주의와 같이) 욕심에 대해 긍정적이었다. 사람은 본래 남보다는 자신을 위하며, 욕심을

11) 실제로는 평민에 비해 많은 부를 소유하며 사치를 즐기면서도 겉으로는 이익추구 행위를 경시하는 이중적 태도에서 유가와 귀족주의는 다시 한번 닮은꼴을 보인다.

서양의 귀족들은 동양의 사대부들과 마찬가지로 육체노동은 물론이고 상업으로 돈버는 것도 천시하였다. 토지소유를 통해 토지에 딸린 사람들을 동시에 지배하 는 것이 이들의 ‘품위’를 지키는 요체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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채우려고 애쓰는 존재이다. 다음은 애덤 스미스의 국부론 에 등 장하는 빵집주인의 이기심에 관한 유명한 대목을 빼닮은 부분이 다.

어렸을 때 부모의 보살핌이 허술했다면 자식은 자라서 부모를 원망하며, 자식이 장성하여 부모공양을 소홀히 하면 부모는 화를 내며 꾸짖는다. 자식과 부모는 가장 친한 관계인데도 혹은 꾸짖고 혹은 원망하니, 이는 서로 남을 위하는 마음으로 하라고 하기 때문 이다. 무릇 머슴을 사서 밭을 갈게 할 때, 주인이 가산을 축내 가면 서 좋은 음식을 먹이고 많은 품삯을 주는 것은 밖에서 데려온 머슴 을 사랑해서가 아니다. 그렇게 해야 머슴이 밭을 깊이 갈고, 김을 알뜰하게 매기 때문이다. 머슴이 힘을 다해 열심히 김을 매고 공을 들여 고르게 밭갈이를 하는 것은 주인을 사랑해서가 아니다. 그렇 게 해야 좋은 음식을 대접받고 넉넉한 품삯을 받기 때문이다. 이렇 게 서로 공을 들임이 부자父子 사이와 같으니 두루 이와 같이 하는 것은 각자 자신을 위하는 마음으로 하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사람 이 세상일을 함에 있어서 이롭게 하려는 마음을 가지면 멀리 월 나라 사람과도 쉽게 친할 수 있고, 해롭게 하려는 마음을 가지면 부자 사이도 멀어지고 원망하게 된다.

( 한비자 외저설左上)

법가에 의하면 이기심은 억제하는 대신 활용해야 한다: “남을 위하는 마음으로 하라고 하면 책망이 나오고, 자신을 위하는 마음 으로 하라고 하면 일이 된다”( 한비자 외저설左上). 그렇지만 이 기심 자체를 무조건 칭송하는 것은 아니다. “세상에 큰 이익이 된 다고 해도 정강이의 털 하나와 바꾸지 않으려는”( 한비자 현학) 양주楊朱와 같은 식의 이기심이나, “옛 친구를 위하여 사사로움을 행하고… 공공재물을 나누어 주고… 법을 왜곡하여 친척에게 곡 진히 하며”( 한비자 팔설), “서로 짜고 한덩어리가 되어 임금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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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리우고, 속으로는 서로 돕고 겉으로는 서로 배척하여 사사로움 이 없음을 내보이면서, 서로 눈과 귀가 되어 임금의 틈을 살피 며”( 한비자 비내) 법을 멋대로 행사하는 식으로 공을 버리고 사를 위하는 관리의 이기심은 마땅히 막아야 한다. 그러나 그것 은 도덕으로 설교하거나 솔선수범을 보인다고 될 일이 아니다. 법 가의 입장에서는 오히려 도덕심에 호소하려는 유가적 체제에서 관리가 사익私益을 추구할 위험성이 더 높다고 본다.

사익을 공익으로 바꾸어 주는 수단이 상벌이다: “사람의 성정에 좋아하고 싫어하는 마음이 있으므로 상과 벌을 쓸 수 있고, 상벌 을 쓰면 금지하는 것과 명령하는 것이 확립되므로, 이로써 나라를 다스리는 길이 갖추어진다”( 한비자 팔경). 문제가 있다면 상과 벌이 잘못 시행되는 데 있는 것이지 욕심 자체에 있는 것이 아니 다. 상과 벌을 적절히 활용하면 욕심은 오히려 나라를 위해 앞다 투어 일하게 만드는 큰 힘이 될 수 있다. 이기주의에서 출발하는 법가가 추구하는 바는 사익이 아니라 공익이며, 그래서 법을 통해 상과 벌을 바로잡는 것을 중시한다: “무릇 법령을 마련하는 것은 사사로움을 없애기 위한 것이다”( 한비자 궤사). 이 점에서 법가 는 이기심이 시장경쟁을 통해 공익에 도움이 된다는 자유주의적 시장경제논리와 내면적으로 거의 일치한다.12)

욕심 때문에 다투는 것을 막기 위해 묵가가 평등주의를, 유가가 신분제를 각각 옹호한 데 반해, 법가는 재산권 확립을 강조하였 다.13) 상앙의 표현을 빌면, “토끼 한 마리가 뛰면 백 사람이 쫓는 것은, 토끼가 백 사람의 것이 될 수 있기 때문이 아니라 아직 누 구의 것인지 정해지지 않았기 때문이다. … 소유가 정해지지 않으

12) 그러나 상벌의 기준을 누가 어떻게 정하느냐 하는 문제에 대해서는 양자가 크게 엇갈린다. 시장에서 자율적으로 결정되어야 한다는 것이 시장경제논리인 반면, 법 가는 도(道)에 따라 군주가 정해야 하는 것으로 보았다.

13) 분(分), 즉 나뉨을 상앙은 소유권으로, 순자는 신분제로 각각 이해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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면 요․순도 뜻을 꺾어 나쁜 짓을 할 수 있는데, 하물며 보통사람 들이야 어떻겠는가”( 상군서 정분). 그런데 그 소유는 신분에 따 라 정해지는 것이 아니라 오로지 얼마나 열심히 일했느냐에 따라 서만 정해져야 한다: “나라를 잘 다스리는 사람은 백성에게 ‘누구 나 한 가지(즉, 농사지으면서 전쟁하는 농전農戰)를 통해서만 관직 과 작위를 얻을 수 있다. (농전에 힘쓰지 않으면) 관직도 작위도 없다’라고 가르친다”( 상군서 농전). 이러한 취지로 상앙은 봉건 제의 바탕이었던 정전井田을 폐지하고 토지를 봉건지주로부터 빼 앗아 농민에게 돌려 주었으며, 토지의 사적 소유와 자유로운 매매 를 허용했고, 관리의 수를 줄였으며, 세금체계를 간소화하고, 세금 을 정부에 직접 내도록 했다. 오늘날의 시장경제적 개혁과 그 핵 심에서 큰 차이가 없는 상앙의 이러한 개혁의 결과로, 당시 진나 라 경제는 급성장하여 후일 진시황의 통일에 밑거름이 되었다.14)

유가와 묵가의 사고방식이 갖는 공통점은 경쟁제한적이라는 데 있다. 이들은 양보 없이 자기 몫만 챙기려는 마음 때문에 세상이 어지러워지고 공동선이 파괴된다고 믿는다.15) 그런데 경쟁보다 조 화를 중시하는 태도는 동양의 유가뿐 아니라 서양의 귀족주의와 보수주의에서도 공통적으로 볼 수 있는 점이다. 귀족주의에서 정 의란 옳고 그름을 굳이 따지고 들기보다는 공동체의 평화를 유지 하는 데에서 찾아지며,16) 공동체 내의 다툼은 비공식적 타협과 정 치적 협상을 통해 해결하는 것이 바람직하다(Powis, 1984, pp.59∼

14) 유사한 ‘시장경제적’ 개혁을 통해 부국강병을 달성한 사례는 그 밖에도 위나라의 이회, 초나라의 오기, 더 거슬러 올라가서는 제나라의 관중에 이르는 법가의 선구 자들에게서 더 찾아볼 수 있다. 북경대 철학과(1980), pp.161∼163 참조. 상앙 등의 개혁에는 상업을 억제하는 등 오늘날에 볼 때 반(反)시장적인 조치도 다수 포함 되어 있다.

15) 유가의 이러한 측면은 특히 이승환(1994)에 잘 설명되어 있다.

16) 시비를 가리는 일과 공동체 평화를 유지하는 일이 상충할 때 유가의 입장도 역시 후자를 중시하는 경향이 있다. 이승환(1994) 참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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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1). 정부는 명망이 있는, 그에 따라 사회적 책임이 있는 귀족가 문들이 모여 이해관계를 조정하는 곳으로 이해된다. 이러한 생각 은 에드먼드 버크에서 비롯된 18∼19세기의 영국 보수주의의 핵 심이기도 하다. 보수주의는17) 개인의 이익추구나 섣부른 개인주장 을 부정적인 것으로 보는 대신 상호협력과 조화를 중시하며, 천부 적 평등 대신 전통에 따른 신분제를 옹호하고, 공동체에 대한 소 속감과 의무감, 충성심 등을 높이 평가한다. 버크는 정치도 기득 권을 가진 대세력간에 타협을 통해 균형을 이루는 것이 바람직하 다고 생각하였으며, 영국의 보수당에서는 최근까지도 당수선출을 포함하여 당정이 지도부에 의해 ‘비밀리에’ 주도되어 왔다. 나아 가 파시즘과 국가사회주의의 경우도 국가 내의 계급투쟁을 이기 적인 것으로 간주하고 이것을 인정하지 않았으며, 모든 이익은 국 가의 이익 안에서 조화되도록 국가에 의해 통제되어야 한다고 믿 었다.

경제적인 측면에서 관치재벌경제와 중상주의는 담합행위에 대 해 관대하며 ‘과도한’ 시장경쟁을 제한하려는 경향을 보인다는 점 에서 유가적 사고방식으로, 그리고 사회주의 경제는 아예 경쟁 자 체가 없는 계획경제를 선호한다는 점에서 묵가적인 사고방식으로 볼 수 있다.18) 경쟁제한은 대외적으로도 마찬가지여서 유가적․묵 가적 사고방식은 대체로 보호무역을 지지한다.19) 이러한 집단주의 적 사고방식은, 특히 유가적 사고방식의 경우, 전반적으로 감성

17) 세이빈․솔슨(1973), 제2권, 30장 참조.

18) 묵가의 상동(尙同)에 관해서는 아래에서 다시 설명한다.

19) 춘추전국시대에 빈번했던 침략전쟁에 대해서 유가와 묵가는 비판적이었으며, 특 히 묵가는 비공(非攻)을 강조하였다. 반면 법가는 “전쟁으로 전쟁을 없애는 것”

( 상군서 화책)은 좋은 일이라며 전쟁을 독려하였다. 이러한 입장차이는 위의 해 석과 정반대로 보인다. 그러나 춘추전국시대 제후국간의 전쟁을 대외적인 것이 아니라 대내적인 것, 즉 다 같은 주(周)나라 내의 일로 본다면, 이는 시장경쟁을 억제하거나 촉진하는 입장의 차이로 일관된 해석이 가능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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적․민족주의적인 성향이 강함을 지적할 수도 있다. 정치․군사적 대외진출면에서 볼 때 토리는 휘그보다 제국주의적 성향이 강하 였고,20) 파시즘과 국가사회주의 역시 그러하였다. 반면 자유주의 는 국내외를 막론하고 시장경쟁이 강화되어야 한다고 믿으며 국 수주의적인 면이 가장 약하다.

2. 정부 대 민간

욕심에 대한 입장차이는 정부를 보는 시각에도 연장된다. 유가 와 묵가는 다 같이 덕이 높은 지도자에 정부를 맡기자는 덕치를 중시했다. 지도자는 무엇보다도 도덕적이어야 하며, 또한 도덕적 인 존재라고 믿어도 된다고 보았다(이는 케인스 개입주의의 배후 에 깔린 이른바 ‘하비가의 전제’, 즉 유능하고 공평무사한 엘리 트가 정부를 맡아 운영해야 한다는 전제와 같은 맥락이다. 이에 대해 미국식 법가라고 할 수 있는 헌법적 자유주의를 내세운 뷰 캐넌은 이러한 전제가 비현실적인 것이라고 비판하였다. 이근식, 1999 참조). 묵가는 처음부터 도덕적인 사람을 가려서 지도자로 모셔야 한다고 하였으며, 유가는 (아주 가망 없는 지도자만 아니 라면 기존에 있는) 지도자를 가르쳐 도덕성을 높이고자 하였다.

지도자의 뜻을 받드는 면에서는 유가와 묵가간에 차이가 있다.

묵가의 경우, 같음을 숭상한다는 상동尙同은 물질적 생활수준의 평등을 뜻하기도 하지만 더 중요하게는 현명한 지도자의 뜻에 모 두가 일사불란하게 따라야 한다는 것을 뜻한다. 이에 대해 순자는

“묵자가 획일성만 알고 다양성은 모른다”( 순자 천론)라고 하며, 일찍이 평등주의의 공통적인 약점을 지적한 바 있다. 묵가집단은 실제로 거자鉅子라 불리는 지도자에게 철저히 복종하였다. 이러한

20) 대외무역에 관해서는, 예컨대 대륙으로부터의 곡물수입을 제한하는 곡물법을 놓 고 19세기 전반에 토리의 지지주장과 휘그의 철폐주장이 첨예하게 대립되었다.

참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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