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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폴 틸리히의 신학방법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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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폴 틸리히의 신학방법론

I. 들어가는 말

폴 틸리히(1886-1965)는 지난 20세기의 대표적인 신학자로서 다방면에서 위대한 업적을 쌓 아 우리에게 많은 신학 전통과 유산을 남겨 준 신학자이다. 틸리히는 일반적으로 “매개의 신학 자”, “철학적 신학자”, “문화의 신학자”, “경계선의 신학자”로서 일컬어지고 있는데 이러한 칭호 들은 그의 신학의 방대함과 그의 사상의 깊이와 그의 신학의 방향을 뚜렷이 드러내는 명칭들이 다.1) 틸리히가 우리에게 남겨 준 그의 신학의 주도적인 의의는 무엇보다도 신학개념이 가지고 있 는 실존적인 의미(현상학적인 의미를 포함하여)를 명확하게 제시해 주었다는 점이다. “기독교 신 학의 전통적인 주제들에 대한 폴 틸리히의 실존론적인 재해석은 20세기 중반에 이루어진 지적 업적들 중에서 가장 기념비적인 것이다.”2) 예를 들어 바르트가 신학의 교의적인-성서적인 지평 을 발견해 주었고, 몰트만이 신학의 사회적인-역사적인 지평을 확장해 주었다면, 틸리히는 신학 의 실존적인-존재론적인 지평을 열어 주었다. 우리는 이와 같은 틸리히의 신학의 실존적인 의의 를 그의 조직신학 전권(Systematic Theology I-V)을 통해서 찾아 볼 수 있다.3)

그러나 틸리히의 조직신학은 이해하기가 쉬운 글이 아니다. 그 이유는 그의 조직신학이 철학, 심 리학, 사회학, 종교학 등을 포괄하는 방대한 영역을 다루고 있기 때문이요, 또한 그의 조직신학이

‘상관관계의 방법’이라는 그의 독특한 신학방법에 의해서 체계적으로 구성되어 있기 때문이다. 여 기서 방대함에 대한 무지가 그의 신학사상을 피상적으로만 소개하게 만든 양적인 이유라면 방법 에 대한 무지는 틸리히가 그의 조직신학을 통해서 말하고자한 본래의 의도를 파악하지 못하도록 우리의 시야를 가로막은 질적인 이유이다. 이러한 점에서 볼 때, 우리가 틸리히의 신학사상을 이 해하기 위해서는 무엇보다도 그의 신학방법을 보다 철저하게 이해하지 않으면 안된다. 이것은 그 의 조직신학에 있어서 신학방법과 신학체계가 서로를 결정하고 있다는 점에서 분명한 것이다.

1) cf. 틸리히의 생애와 사상에 대한 개괄적인 이해를 위해서는 다음과 같은 책들을 참조해 보시오. Paul Tillich, On the Boundary (New York: Charles Scribner's Sons,1966) ; 김경재, 「폴 틸리히의 생애와 사상」(서울; 대한기독교서회, 1979) ; Charles W. Kegley and Robert W. Bretall, The Theology of Paul Tillich (New York: The Macmillan Company, 1959).

2) James C. Livingston, Modern Christian Thought(New York: Macmillan Publishing Co.,1971) p. 370.

3) 예를들어 계시론을 살펴보면 계시의 지식은 계시의 실존적인 상황으로부터 분리될 수 없기 때문에 계시 의 지식은 일반적인 지식의 맥락 안으로 들어갈 수도 없고 일반적인 지식을 증가시킬 수도 없다. “우리 는 ‘계시된 지식’이란 용어를 사용해서는 안된다. 왜냐하면 이 용어는 지식의 일반적인 내용이 특별한 방 법으로 전달되고 있다는 인상을 줌으로써 그 결과 계시된 지식을 계시의 상황으로부터 분리하고 있기 때 문이다. 이것이 바로 계시나 계시를 통해서 전달된 지식에 대한 대다수의 통속적인 해석 속에 놓여 있는 근본적인 오류이다. 이런 점에서 ‘계시의 지식’이란 용어는 지식과 상황이 서로 분리될 수 없는 통일성 속 에 있다는 것을 강조하는 의미이다.” Paul Tillich, Systematic Theology Vol. I.(Chicago : The University of Chicago Press, 1951), p. 12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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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체계와 방법은 서로에 속해 있고, 서로를 통해서 판단된다.”4) 따라서 본 글은 우리에게 위대한 신학전통과 유산을 남겨 준 틸리히의 신학을 바르게 이해하기 위한 전제로서 틸리히의 신학방법 인 상관관계의 방법에 대해서 보다 세밀하게 고찰하려는 데에 그 목적이 있다. 주요 물음은 다 음과 같은 것들이다. 첫째, 상관관계의 방법의 본질과 의의는 무엇인가. 둘째, 상관관계의 방법에 대한 기존의 비판들은 옳은 것들인가. 셋째, 상관관계의 방법에 대해서 오늘날 제기되고 있는 비 판은 무엇이며 그 대안은 무엇인가.

II. 상관관계의 방법의 본질

틸리히는 그의 조직신학의 전 체계를 세우는데 있어서 “상관관계의 방법”(the method of correlation)을 사용한다. “나의 조직신학은 메시지와 상황을 결합하려는 한 방법으로서 상관관 계의 방법을 사용하려는 시도이다.”5) 이처럼 틸리히의 신학체계의 근본적인 방법인 상관관계의 방법은 틸리히에 의하면 상황이 안고 있는 물음을 메시지가 지니고 있는 대답과 연관시키려는 방 법을 의미한다. “상관관계의 방법은 물음과 대답, 상황과 메시지, 인간의 실존과 하나님의 계시를 상관시키려는 방법이다.”6) 다시 말하면 “상관관계의 방법은 실존적인 물음과 신학적인 대답의 상 호의존을 통해서 그리스도교 신앙의 내용을 설명하려는 방법이다.”7)

우리가 이와 같은 틸리히의 상관관계의 방법을 이해하기 위해서는 그리스도교 메시지에 대해 서 물음을 제기하는 ‘상황’이란 개념과 메시지와 상황을 연결하는 ‘상관’이란 개념을 바르게 이해 하지 않으면 안된다.

먼저 상황(situation)이란 “개인이나 집단이 속해 있는 단순한 심리적인, 사회적인 상태를 가리 키는 것이 아니고, 인간의 실존에 대한 해석을 표현하고 있는 과학적인, 예술적인, 경제적인, 정 치적인, 윤리적인 형식을 의미한다.”8) 곧 그리스도교의 메시지와 상관되는 상황은 단순히 개인이 나 집단의 상황을 가리키는 것이 아니고, 역사적인 조건 아래에 놓여 있는 실존에 대한 창조적인 해석을 뜻한다. 이런 점에서 신학의 과제는 어느 특정한 시대의 심리적인 또는 사회적인 조건 자 체를 다루는 것이 아니고 그에 대한 문화적인 표현(실존적인 해석)을 다루는 것이다. 예를 들어 신학은 동서의 정치적 분열에 직접 관여하는 것이 아니라 이 분열에 대한 정치적인 해석에 관여

4) Paul Tillich, Systematic Theology Vol. I.(Chicago : The University of Chicago Press, 1951), p. 8. (이 후부터는 Systematic Theology를 ST.로 표기하겠음)

5) ST. I., p.8. cf. ST. I., Preface vii-viii.틸리히 신학이 상관관계적인 신학이란 점은 무엇보다도 그의 조직 신학 제1권 서문에 잘 나타나고 있다. “나의 목적은, 나는 이 목적이 정당하다고 생각하는데, 변증적인 관 점에서 쓰여지고 또한 철학과의 끊임없는 상호연관 속에서 완성된 신학체계의 방법과 구조를 제시하려는 데 있다. 곧, 나의 조직신학의 각 권의 근본적인 주제는 상관관계의 방법이며, 각 권의 내용은 신학의 주 요 문제에 대한 논의를 통해서 해명된 이 상관관계의 방법의 체계적인 결과들이다. 만일 내가 이 신학방 법의 변증론적인 적합성과 체계적인 유용성을 증명하는데 성공했다면 나는 이 체계가 가지고 있는 여러 가지 한계들을 유감으로 생각하지 않을 것이다.”

6) ST. I, p. 8. It correlates questions and answers, situation and message, human existence and divine manifestation.

7) ST. I, p. 60.

8) ST. I, pp. 3-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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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는 것이다. 또한 신학은 오늘날 만연되고 있는 정신병 자체를 다루는 것이 아니라 이러한 경 향에 대한 심리적인 해석에 관여하는 것이다. 결국 틸리히에게 있어서 “상황은 어느 특정한 시기 에 수행된 인간의 창조적인 자기 해석의 총체를 의미한다.”9)

다음으로 상관(correlation)이란 용어는 일반적으로 다음과 같은 세 가지 의미로 사용되고 있 다. 첫째 통계 자료에서 볼 수 있는 것처럼 서로 상이한 자료들의 상응을 의미하는 것으로서, 둘 째 대극적 관계에서처럼 개념들의 논리적인 상호의존성을 뜻하는 것으로서, 셋째 총체적인 구조 속에 있는 사물이나 사건의 실제적인 상호의존성을 뜻하는 것으로서 사용되고 있다. 틸리히는 이 러한 의미를 가지고 있는 ‘상관’이란 용어를 신학에 적용하면 각각 의미 있는 신학의 방법론을 낳 게 된다고 말한다. “곧 첫째 종교적인 상징과 이 상징에 의해서 상징되고 있는 것 사이의 상응을 뜻하는 상관관계, 둘째 인간적인 것을 지시하는 개념과 신적인 것을 지시하는 개념 사이의 논리 적인 의존성을 뜻하는 상관관계, 셋째 인간의 궁극적인 관심과 인간의 궁극적인 관심의 대상 사 이의 실제적인 의존성을 뜻하는 상관관계가 그것이다.”10) 이러한 상관관계는 각각 틸리히의 조직 신학에서 구체적으로 적용되고 있는데 첫째의 것은 종교적인 지식의 문제를 다룰 때(이성과 계 시)사용되고 있고, 둘째의 것은 하나님과 세계의 상관관계를 밝히고자 할 때(존재와 하나님) 사용 되고 있고, 셋째의 것은 종교적인 경험 속에서 신-인 관계를 설명하고자 할 때 사용되고 있다.

이런 점에서 틸리히는 어떤 종류이든지 신과 인간의 상관관계는 신으로 하여금 부분적으로 인간 에게 의존하게 만든다고 비판하는 칼 바르트와 같은 신학자들에 대해서 신-인의 상관관계의 본래 적인 의미를 해명함으로써 대답한다. “비록 본성의 심연 속에 있는 하나님은 결코 인간에게 의존 하고 있지 않다고 할지라도 인간에 대한 계시 속에 계신 하나님은 인간이 그 계시를 받아들이는 방식에 의존하고 있다. 곧, 우리를 향한 하나님(God for us)과 하나님을 향한 우리(we for God) 사이에는 상호의존성이 있다.”11) 참으로 이것은 예정론에서 인간이 계시를 받아들이는 방식이 완 전히 하나님에 의해서 주도된다는 것을 주장할 때도 그렇다. 왜냐하면 하나님과 인간의 관계는 계시의 역사적인 단계에 따라서 그리고 인간의 발달 단계에 따라서 변해왔기 때문이다.

이처럼 틸리히의 상관관계의 방법은 상황이 안고 있는 물음을 메시지가 지니고 있는 대답과 상 관시키려는 방법이며, 여기서 상황은 실존의 자기해석을 뜻하고 상관은 하나님과 인간 사이의 상 호의존성을 전제하는 것이다.

이와 같은 상관관계의 방법의 본질은 무엇보다도 이제까지 사용되어온 잘못된 신학 방법들 곧 초자연주의적인 방법, 자연주의적인 방법, 이원론적인 방법을 비판하고 동시에 그것을 대체한다는 데에 그 의의가 있다.

첫째로 초자연주의적인 방법(supranaturalistic method)은 20세기의 신정통주의 신학이 대표하 는 것으로서 “그리스도교 메시지를 낯선 세계에서 온 낯선 물체처럼 인간의 상황 속에 내던져진

9) ST. I, p. 4.

10) ST. I, p. 60.

11) ST. I, p. 61. 여기서 his abysmal nature는 칼빈의 in his essence에 해당되는 것이다. 에밀 부룬너의 말 처럼 ‘신과 인간의 만남’은 양쪽 모두에 있어서 실제적인 만남 곧 신과 인간 사이의 실제적인 상관관계을 의미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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계시된 진리의 총체로 생각한다.”12) 여기서는 인간의 상황에 대한 어떠한 중재도 가능하지 않으 며, 인간은 신성을 받아들이기 위해서 인간 이상의 것이 되지 않으면 안된다. 전통적인 이단의 견 지에서 보면 이러한 초자연적인 방법은 가현설적이며 단성론적인(monophysitic) 특성을 가지고 있다. 그러나 인간은 결코 자기가 묻지 않았던 물음에 대한 대답을 받아들일 수 없다. 더욱이 그 리스도교의 대답은 인간이 그 자신의 실존 속에서 그리고 그의 정신적인 창조행위 하나 하나 속 에서 물어왔던 물음에 대한 대답이다.

둘째로 자연주의적인 방법(naturalistic method) 또는 인본주의적인 방법(humanistic method) 은 그리스도교 메시지를 인간의 자연상태에서 이끌어 내려고 한다. 곧 “자연주의적 방법은 인간 의 실존 자체가 물음이라는 것을 알지 못하고서 인간의 실존으로부터 대답을 이끌어 내려고 한 다.”13) 이런 점에서 볼 때 19세기의 자유주의의 신학은 인본주의적인 방법을 사용했다고 볼 수 있다. 왜냐하면 자유주의 신학은 인간의 실존의 상태와 본질의 상태 사이의 분열을 간과하고서 이 둘 사이를 동일시하였기 때문이다. 그 결과 자유주의 신학에서는 물음과 대답이 똑같이 인간 의 창조성 위에 위치하고 있었다. 그러나 모든 것은 인간이 말한 것이지만 계시는 “인간에게 말 해진 것”이며, 인간에 의해서 그 자신에게 말해진 것이 아니다.

셋째로 이원론적인 방법(dualistic method)은 자연 신학이 대표하는 것으로서 “자연주의적인 하부구조 위에 초자연주의적인 상부구조를 세우려는 방법이다.”14) 사실 이 방법은 다른 어떤 방 법보다도 상관관계의 방법이 해결하려고한 문제점을 의식하고 있었다. 곧, 이원론적인 방법은 하 나님의 영과 인간의 영 사이에는 무한한 간격이 있음에도 불구하고 이 둘 사이에는 적극적인 관 계가 있어야만 된다는 것을 알고 있었다. 그래서 이 방법을 추종한 사람들은 자신의 노력을 통해 서 곧 자연 계시를 통해서 일련의 신학적인 진리를 구축함으로써 이 관계를 표현하고자 했다.

(예를 들면, 신 존재 증명과 같은 방법이 그것이다) 그러나 이원론적인 방법은 인간의 유한성과 그 안에 포함되어 있는 물음을 분석하는 데서는 옳았지만 대답을 물음의 형식으로부터 이끌어 내 려고 하는 데서는 잘못된 것이었다. 이에 반해서 상관관계의 방법은 “자연 신학을 실존의 분석으 로 환원시키고 초자연주의 신학을 실존이 안고 있는 물음에 대한 대답으로 환원함으로써 이러한 역사적이며 조직적인 수수께끼를 해결한 방법이다.”15)

결국, 초자연주의적인 방법은 실존적인 상황에 대한 참여가 없는 대답만을 제시하기 때문에 타 율적인 초자연주의 신학 또는 신본주의가 되기 쉬운 방법이고, 자연주의적인 방법은 계시적인 조 명이 없는 실존만을 해명하기 때문에 자율적인 자연주의 신학 또는 인본주의가 되기 쉬운 방법이 다. 이에 비해서 틸리히의 상관관계의 방법은 실존적인 물음과 신학적인 대답 사이의 상호연관속 에서 그리스도교의 메시지를 해명하려는 방법으로서 19세기의 자유주의 신학의 자연주의적인 신 학방법을 실존의 분석으로 환원하고 20세기의 신정통주의 신학의 초자연주의 신학방법을 실존의 물음에 대한 대답으로 환원하여 이 둘을 서로 상관시키려는 방법이다. 이런 점에서 볼 때, 틸리히

12) ST. I, p. 64.

13) ST. I, p. 65.

14) ST. I, p. 65.

15) ST. I, pp. 65-6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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의 신학방법의 위대성은 20세기의 초자연주의적인 신정통주의 신학과 19세기의 자연주의적인 자 유주의의 신학 모두를 극복했을 뿐만 아니라 인간의 실존 상황과 그리스도교 메시지, 그 둘 중 어느 것 하나도 버리거나 약화시키지 않고 신학의 근본적인 과제를 성취했다는 데에 있다.16)

III. 기존의 비판들의 문제점

일반적으로 신학자들은 신학방법을 ‘위로부터의 신학방법’과 ‘아래로부터의 신학방법’으로 양분 한 후에 틸리히의 신학방법을 ‘아래로부터의 방법’의 전형으로 평가한다. “전형적인 아래로부터의 그리스도론은 틸리히와 판네베르크의 그리스도론이다. 틸리히의 아래로부터의 그리스도론은 인간 의 상황과 접촉하는 그의 상관관계 신학의 귀결이다.”17) 그 결과 틸리히의 신학방법은 아래로부 터 시작하고 아래로부터 신학적인 대답을 이끌어 왔다고 비판받고 있다. “틸리히에게서 예수 그 리스도는 아래로부터 사고되었을 뿐만 아니라 예수 그리스도가 아래로부터 온 자가 되었다. 만약 예수가 하느님으로서 본질과 실존간의 갈등 넘어에 있지 않다면 어떻게 그가 그 갈등을 극복할 수 있겠는가?”18) 그러나 엄밀한 의미에서 볼 때 틸리히의 신학방법은 앞에서 살펴본 것처럼 (비 록 인간의 물음으로부터 시작하고 있을지라도) 물음과 대답 곧, 아래와 위를 서로 상관시키고 있 는 방법이지 결코 물음으로부터 신학적인 대답을 이끌어 오는 방법이 아니다. 사실, 틸리히의 그 리스도론에 있어서 예수 그리스도 안에 나타난 새로운 존재는 하나님의 역사이지 인간 예수 그 자체에 토대를 두고 있지 않다. “틸리히에게 있어서 유일무이하고 변형적이며 결정적인 사건인 새로운 존재의 충만한 현현은 오직 하나님의 역사이다. 이 사건은 신적인 사건이며, 이 사건의 주 체는 성령으로서의 하나님이다.(ST. III. : 144ff.) 따라서 틸리히에게 있어서 예수의 하나님과의 통일성은 인간 예수의 역사가 아니다. 어느 인간도 실존의 곤경성을 꿰뚫을 수 없고 실존 안에서 의 본질적인 인간성을 창조할 수 없다.”19) 이러한 맥락에서 볼 때 틸리히의 신학방법을 아래로부 터의 방법으로 규정하고서 비판한 신정통주의자들의 잘못된 비판들은 수정되어야할 필요가 있다 고 생각된다.

먼저 구체적으로 신정통주의자들이 제기한 비판을 살펴보면, 하밀톤(Hamilton)은 상관관계의 방 법에서는 대답이 물음에 의해서 결정되고 있다고 비판한다. “상관관계의 방법의 가장 큰 문제점 은 대답이 물음에 의해서 좌우되고 있다는 점이다. 예를 들면, 틸리히는 인간의 유한성에 대한 대답이 하나님이라고 말하는데 인간의 유한성에 대한 대답인 하나님이 실존의 분석에서 얻은 것 이 아니라는 그의 주장은 결코 용납될 수 없는 억지 주장이다. 왜냐하면 하나님의 의미에 대한 그의 설명을 보면 하나님은 존재에 대한 존재론적인 분석에 의존하고 있기 때문이다.”20) 같은 맥

16) 김경재, 「폴 틸리히의 생애와 사상」(서울: 기독교서회, 1979), p. 219.

17) Horst G. Pöhlmann, 이신건역, 교의학(서울; 한국신학연구소, 1989), p. 270. cf. 이외에도 대다수의 신학 자들이 틸리히의 신학방법을 아래로부터의 방법으로 분류하고서 비판하고 있다. 김균진, 기독교 조직신학 II( 서울;연세대 출판부,1987), pp. 154-166

18) Ibid., p. 275.

19) Longdon Gilkey, "The New Bing And Christology" in The Thought of Paul Tillich (San Francisco;

Harper & Row, 1985), p. 318.

20) 케넷 하밀톤, 옥한흠역,「폴 틸리히」(서울: 개혁주의신행협회, 1973),p. 60. cf. Kenneth Hamilton, Th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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락에서 토마스(Thomas)도 상관관계의 방법에서는 상황을 분석할 때 신율이 아니라 자율에 뿌리 를 둔 철학을 사용하고 있다고 비판한다. “틸리히의 입장에서 보면, 오직 신율적인 이성 곧 구원 받은 이성만이 상황의 진리를 분명하게 제시할 수 있는 것처럼 보인다. 그러나 그리스도교 믿음 에 의해서 완전히 ‘회심하지 않은’ 철학적 이성이 정말로 존재의 구조와 범주들을 정확하게 제시 하고 실존 속에 포함되어 있는 가장 깊은 문제들을 제대로 제시할 수 있겠는가? 만일 그럴 수 없다면 물음에 의해서 결정되는 대답은 왜곡되거나 애매하게 되는 것이 아닌가?”21) 칼 바르트(K.

Barth)도 틸리히의 신학방법을 직접적으로 비판한다. 그는 상관 관계의 방법이 오히려 신학적인 대답에서(위로부터) 철학적인 물음에로(아래로) 전개되어야 한다고 주장한다. “틸리히에게 있어서 신학적인 대답은 성서뿐만 아니라 교회사, 일반 문화사, 종교사로부터도 이끌어 온 것이기 때문에 그리고 무엇보다도 그들의 의미와 위치가 철학적인 물음과의 관계에 의존하고 있기 때문에 이러 한 대답들은 신학으로서 간주될 수 있을 뿐만 아니라(아니 신학보다 더) 철학으로서도 간주될 수 있는 것이 아닌가? 틸리히에게 있어서는 철학적인 물음을 가지고 있는 인간이 상관관계의 방법의 출발점 이상으로 위치하고 있는 것이 아닌가? 곧 인간은 자신이 무엇을 물어야 하는지를 알고 있 다는 점에서 그는 이미 대답과 그 결과들을 소유하고 있는 것이 아닌가? 그러나 신학적인 대답 이 철학적인 물음보다 보다 근본적인 것으로, 보다 본질적으로 우월한 것으로서 간주되어야만 하 는 것이 아닌가? 만일 그렇게 간주된다면 그 때에는 물음과 대답이 철학적으로 이해된 주체에서

‘신적인’ 객체로 진행되기 보다는 신학적으로 이해된 객체(참된 주체로서)에서 인간적 주체로 곧 성령에서 삶으로, 하나님 나라에서 역사에로 진행해야만 될 것이다.”22) 종합적으로 말하자면 이 들 모두의 비판은, ‘아래로부터’ 곧 인간의 상황으로부터 출발하는 틸리히의 신학방법은 결국 그 리스도교의 메시지를 인간의 상황아래에 종속시키게 될 것이라는 것이다.

그러나 이와 같은 모든 비판들은 근본적으로 상관관계의 방법에 대한 잘못된 이해에 근거하고 있기 때문에 부당한 비판들이다. 왜냐하면 상관관계의 방법은 물음이 대답에 의해서 결정되거나 대답이 물음에 의해서 결정되는 방법이 아니고 물음과 대답의 상호 의존 속에서 그리스도교의 메 시지를 해명하려는 방법이기 때문이고 또한 상관관계의 방법은 바르트와 같은 ‘위로부터의 신학 방법’은 실존의 상황을 배제함으로 그 결과 신학의 의미를 상실할 수밖에 없다는 인식에서 비롯 된 방법이기 때문이다. “오늘날 만연하고 있는 근본주의 신학과 신정통주의 신학은 인간의 상황 을 다루어야만 신학의 과제를 거부하고 있기 때문에 스스로 신학의 의미를 상실하고 있다.”23) 이런 점에서 볼 때 틸리히 자신이 그의 조직신학 제2권에서 밝힌 상관관계의 방법의 두 가지 원 리는 이러한 비판들에 대한 역비판이 될 수 있을 것으로 생각된다.24)

System and The Gospel (London: SCM Press, 1963), pp. 116-137. 하밀톤은 상관관계의 방법은 동일성 의 존재론 처럼 신앙에 대해서 사변의 우월성을 주장한다고 비판한다.

21) Charles W. Kegley and Robert W. Bretall, The Theology of Paul Tillich (New York: The Macmillan Company, 1959), pp. 103-104.

22) A. J. Mckelway, The Systematic Theology of Paul Tillich, (London : Lutterworth Press,1964), p. 13.

23) ST. I., p. 4.

24) Paul Tillich, Systematic Theology Vol. II. ( Chicago : The University of Chicago Press, 1957 ), pp.

13-16.

(7)

먼저 상관관계의 방법에 있어서 물음과 대답은 서로 독립적인 것이다. 곧 상관관계의 방법은 물음에서 대답을 유추하려는 방법도 아니고 대답에서 물음을 유추하려는 방법도 아니다. 이런 점 에서 초자연주의적인 신학이 자유주의의 신학을 비판하면서 인간은 그 자신의 힘으로는 하나님에 게 도달할 수 없다고 주장한 것은 옳은 일이었다. 왜냐하면 인간은 대답이 아니고 물음이기 때문 이다. 그러나 초자연주의적인 신학이 계시적인 대답에서 인간 실존이 안고 있는 물음을 이끌어 내려고 한 것은 잘못된 것이다. 이것은 불가능한 것이다. 더욱이 계시적인 대답은 그것이 대답이 되는 물음이 없다면 무의미한 것이 될 수 밖에 없다. 그러므로 신학적인 대답과 실존적인 물음 사이의 상호 독립성을 전제하고 있는 상관관계의 방법은 물음에서 대답을 유추하려고한 자유주의 의 신학의 문제점과 대답에서 물음을 유추하려고한 초자연주의의 신학의 문제점을 극복한 신학방 법인 것이다.

다음으로 상관관계의 방법에 있어서 물음과 대답은 한편으로는 서로 독립적인 것이지만 다른 한편으로는 서로 의존적인 것이다. 먼저 실존적인 물음의 내용은 인간의 곤경성의 표현이지만 그 물음의 형식은 전체 체계에 의해서 그리고 그 안에서 주어지는 대답에 의해서 결정되는 것이다.

예를 들어 인간의 유한성이 안고 있는 물음은 ‘영원한 것’이라는 대답을 지향한다. 또한 인간의 소외가 안고 있는 물음은 ‘용서’라는 대답을 지향한다. 이와 같이 물음은 물음을 이끄는 방향(목 표)에 의해서 그리고 전체신학의 체계에 의해서 그 형식이 결정되어 있다는 점에서 물음과 대답 은 의존적인 관계에 있는 것이다. 다음으로 신학적인 대답에 대한 실존적인 물음의 영향도 마찬 가지이다. 여기서도 대답은 결코 물음으로부터 유추될 수 없다. 곧 대답의 내용과 물음은 서로 독 립적이다. 그러나 신학적인 대답의 형식과 실존적 물음의 형식은 서로 독립될 수 없다. “만일 신 학이 인간의 소외가 안고 있는 물음에 대해서 ‘그리스도’라는 대답을 준다면 그 대답은 그 지시 대상이 유대 율법주의의 갈등이냐 희랍의 회의주의냐 또는 허무주의의 위협이냐에 따라서 달라지 게 된다.”25) 그러므로 상관관계의 방법에 있어서 물음과 대답은 대답의 내용이 물음으로부터 유 추될 수 없고 물음의 내용이 대답에 의해서 결정될 수 없다는 점에서는 서로 독립적이지만, 대답 의 형식은 물음에 의해서 결정되고 또한 물음의 형식은 대답에 의해서 부여된다는 점에서는 상호 의존적인 것이다.

틸리히는 이처럼 독립적이면서도 동시에 상호의존적인 물음과 대답의 관계를 실존적인 물음과 신학적인 대답이 각각 중심점을 이루고 있는 ‘타원형’(eclips)으로서 묘사한다. “신학자는 궁극적 인 관심, 종교적으로 말하면 특별한 계시적인 경험의 구체적인 표현에 참여한다. 신학자는 이러 한 참여에 근거해서 그의 진술의 보편성을 주장한다. 이러한 순환은 실존적인 물음과 신학적인 대답이 각각 중심점을 이루고 있는 타원형으로서 묘사될 수 있다.”26) 결국 상관관계의 방법은

25) ST. II., p. 16.

26) Ibid., p. 14. 틸리히는 타원형으로서의 상관관계의 신학방법은 신학자로 하여금 마음대로 계시적인 대답 을 소유했다는 교만된 주장을 하지 못하도록 막아주는 의의가 있다고 본다. “신학자는 그가 선언하는 신 학적인 대답 위에 안주할 수 없다. 그는 단지 그의 전 존재로서 물음의 상황에 곧 인간의 곤경성에 참 여할 때만 신학적인 대답을 확신을 가지고 제시할 수 있다. 이러한 요구의 빛 속에서 볼 때 상관관계는 신학자로 하여금 계시적인 대답을 마음대로 소유했다는 교만된 주장을 하지 못하도록 막아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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실존적인 물음과 신학적인 대답의 상호의존적인 순환 속에서 그리스도교의 메시지를 설명하려는 방법으로서 대답을 물음속에서 유추하려는 자유주의 신학에 대한 비판이며 동시에 물음과 상관없 이 대답을 제시하려는 초자연주의 신학에 대한 비판이다. 이런 점에서 볼 때 물음과 대답 사이의 상호의존성을 전제하고 있는 틸리히의 상관관계의 방법을 ‘아래로부터의 방법’이라고 비판하는 신 정통주의자들의 비판은 틸리히의 상관관계의 방법의 본질을 제대로 이해했다고 볼 수 없다. 오히 려 틸리히의 상관관계의 방법은 대답으로서의 위로부터의 방법과 물음으로서의 아래로부터의 방 법을 서로 상관시키고 있는 방법인 것이다.

IV. 새로운 대안

이제까지 우리는 틸리히의 상관관계의 방법의 본질이 실존적인 물음과 신학적인 대답의 상호의 존 속에서 그리스도교의 신앙의 내용을 설명하는 데에 있다는 것을 살펴 보았고, 그 의의가 20세 기의 초자연주의적인 신정통주의의 신학방법과 19세기의 자연주의적인 자유주의의 신학방법을 모두 극복했다는 데에 있다는 것을 살펴보았다. 또한 기존의 신정통주의자들의 비판은 상관관계 의 방법의 상호의존적인 순환성을 제대로 이해하지 못했다는 점도 살펴보았다. 그러나 문제는 상 관관계의 방법이 오늘날의 달라진 상황속에서도 여전히 효과적인 방법이 될 수 있는지의 여부이 다. 무엇보다도 오늘날의 다원적인 상황에서 볼 때 상관관계의 방법은 물음과 대답이 너무 단선 적이다는 문제점을 가지고 있다. “틸리히의 상호 연결방법은 실제로는 ‘상황’은 문제만을 주고

‘메시지’는 대답만을 주는 일직선상의 병렬에 불과하기 때문에 상황과 메시지에 대한 다양한 분석 방식들 중에서 어떤 것이 더 좋은지를 결정하는 비판의 기준과 이들의 분석 결과들을 상호 연결 하는 기준을 제시하지 못하였다. 또한 어떤 점에서 그리스도교의 메시지가 다른 세속적인 대안들 보다 더 적합한지 그 이유를 설명하는 비판적인 과정이 생략되어 있다.”27) 이런 점에서 데이비드 트레이시(David Tracy)는 상황과 메시지의 상호연결 대신에 인간의 공동경험과 그리스도교 전통 을 각각 비판적으로 분석하고 비판적으로 상호 연결하는 ‘상호 비판적인 상관관계의 방법’28)을 제안하여 이 방법을 통해서 탈근대적인 비판 정신으로 ‘수정된’ 인간의 공동의 경험(물음과 대답 둘 다 가능)과 역사 비평과 해석학으로 ‘재해석된’ 그리스도교 전통(물음과 대답 둘 다 가능)사이

27) David Tracy, Blessed Rage for Order (Mineapolis: The Winstern Seabury Press, 1975), pp. 47-48.

김덕기, “트레이시의 신학방법론”,「기독교사상」, 1994. 9월호 재인용, p. 114.

28) 트레이시의 비판적 상관관계에 대한 자세한 논의에 대해서는 Hans Küng and David Tracy,

"Hermenentical Reflections in the New Paradigm", in Paradigm Change in Theology (New York:

Crossroad, 1989), pp. 34-62.을 참조하라. 트레이시의 주요 주장은 다음과 같다: 모든 신학자는 신학의 두 상수 곧, 양면성과 우연성 그리고 변화가운데 있는 오늘날의 경험세계와 그리스도교의 메시지 곧 예수 그리스도의 복음에 궁극적으로 근거하고 있는 유대-그리스도교의 전통, 이 모두를 해석해야만 한다.(Each theologian must interpret both constants: The present world of experience in all its ambivalence, contingency and change and the Judaeo-Christian tradition which is ultimately based on the Christian message, the Gospel of Jesus Christ.): 그리스도교 신학은 그리스도교 전통의 해석과 현대적 경험의 해 석 사이에 상호 비판적인 상관 관계를 세우는 것이다: “mutually critical" correlation은 방법론이 아니라 주제자체가 모든 해석을 지배한다는 것을 의미한다: 공통적인 참여에 바탕을 둔 공동 연구로서의 신학이 해는 현대 신학자들 사이의 현실적인 차이에도 불구하고 실제적인 일치를 성립시킬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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의 대화를 시도한다. “현대적인 경험에 대한 일반적인 분석은 그리스도교 메시지의 의미와 진리 에 대한 옛 해석과 대립하고 있다. 예를 들어 창세기에 대한 문자적이고 근본주의적 해석은 진화 론과 대립하고 있고, 전통 신학의 그리스도론은 역사 비판이나 사회과학 방법에 의해서 제시된 것과 대립하고 있다. 또한 그리스도교 메시지에 대한 일반적인 분석은 현대인의 경험에 대한 지 배적인 이해와 대립하고 있다. 예를 들어 세속주의는 세속화 신학과 대립하고 있고, 발전이론은 해방신학자들과 정치신학자들이 묵시문학을 복귀시킨 것과 대립하고 있고, 전통 속에 내재해 있 는 성차별주의와 반유태주의는 오늘날의 해방운동과 이데올로기 비판적인 비판 이론과 대립하고 있다. 따라서 오늘날 신학자가 신학적인 해석을 바르게 하기 위해서는 주어진 신학적인 주제에 대해서 의미에 대한 물음을 물어야 할 뿐만 아니라 진리에 대한 물음도 철저히 물어야만 한다.

그 때에 비로소 신학자는 신학의 두 상수(constants)의 관계에 대하여 적절한 형태의 상관관계의 방법을 정립할 수 있을 것이다.”29)

이와 같이 트레이시에 있어서 올바른 신학방법이란 물음(현대인의 경험의 세계)과 대답(그리스 도교의 메시지) 모두를 철저하게 비판적으로 묻고 비판적으로 연관시키는 방법을 의미한다. 이런 점에서 볼 때 틸리히의 상관관계의 방법은 비록 물음과 대답이 상호의존 속에 있을 지라도 물음 과 대답이 단선적으로 연결되고 있기 때문에 물음에 대한 분석이 단순성을 벗어나지 못하고 있을 뿐만 아니라 물음에 대해서 대답으로 주어지는 신학적인 대답이 이데올로기적인 허구를 포함할 가능성이 있고, 현실적으로 긴급한 시대적인 과제를 도외시 할 수 있는 가능성도 있다.30) 예를 들어 성령론을 살펴보면, 틸리히는 삶을 실존적인 관점에서 ‘본질과 실존의 혼합’ 또는 ‘잠재적 존재의 현실화’로 규정한다. “삶은 존재의 현실성이다. ……… 삶은 본질적인 요소와 실존적인 요 소의 혼합이다.”31) 그러나 이것은 현대의 사회 역사적인 삶의 이해와 상반되는 것으로서 사회의 갈등과 모순을 은폐할 위험성이 있다. 또한 틸리히는 어거스틴의 전통을 받아들여 하나님의 영과 인간의 영의 관계만을 문제시하는데 이것은 성령을 인간의 영역을 넘어서 생태계 속에서 재발견 하려는 생태계의 신학과 상반된 것으로서 성령의 성전이 되어야 할 인간의 ‘육체’와 하나님이 이 미 자기의 성전으로 만드신 ‘자연’을 신학적인 사고에서 배제하는 문제점을 가지고 있다. “어거스 틴은 하나님과 인간의 영혼을 신학의 주요 문제로 삼았고, 루터의 신학은 죄된 인간과 의롭게 하 시는 하나님의 만남을 주요 관심사로 삼았다. 이로써 ‘성령의 전’이 되어야할 인간의 육체와 하나 님이 이미 자기의 성전으로 만드신 ‘자연’(사 66;1, 행7;49)은 신학적인 사고에서 탈락되었다. 따

29) Hans Küng and David Tracy, "Hermenentical Reflections in the New Paradigm", in Paradigm Change in Theology (New York: Crossroad, 1989), p. 61.

30) 물론 틸리히는 모든 전통을 무비판적으로 받아들이고 있지 않다. 이 점은 그가 삼위일체 상징에 있어서 여성적인 이미지를 회복하고자한 제4부 삶과 성령 제4장 ‘삼위일체의 의미’에 잘 나타나 있다. 그러나 그 럼에도 불구하고 그의 성령개념은 성서의 해방전통에서 나타나 있는 사회역사적인 이해와 오늘날 새롭게 대두되고 있는 생태학적인 이해를 결여하고 있다.

31) ST. III., pp. 11-12. 틸리히에 의하면 성령은 인간의 영에 탈아적으로 현현하는 하나님의 임재를 의미한 다. 그리고 인간의 영의 세가지 기능인 도덕적인 자기 통전과 문화적인 자기 창조와 종교적인 자기 초월 의 모호성은 성령의 탈아적인 현현에 의해서 극복된다. 곧, 성령은 인간의 영 안에 탈아적으로 나타나는 주객초월의 힘으로서 인간의 영의 모호성의 물음에 대한 대답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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라서 오늘날 생태계의 위기와 파괴의 빛에서 볼 때 인간 중심적인, 단지 인간의 의식에만 관련되 어 있는 성령론은 수정이 불가피하다.”32) 더욱이 틸리히는 성령의 역할을 실존적인 관점에서 주 객분열 속에 있는 인간의 영의 모호성을 극복하는 주객초월의 힘으로 규정하고 있는데 이것은 오 늘날 억압과 착취 속에서 억압된 삶의 해방을 갈망하는 제3세계의 가난한 자들의 관점에서 볼 때 는 심각한 문제점이 아닐 수 없다. 한마디로 말해서 틸리히가 실존적인 물음이나 신학적인 대답 을 탐구할 때 사회적인, 정치적인 관점을 포함하지 않은 것은 그의 신학방법의 근본적인 문제점 이 아닐 수 없다. “틸리히는 실존적인 관점에서 신학을 그리스도교 메시지의 진리를 진술하는 일 과 그것을 모든 새 세대를 위해서 해석하는 일로 정의하였지 신학을 눌린 자를 ‘정치적인’ 포로상 태에서 해방하기 위해서 또 거기에 관해서 진술하는 학문으로 정의하지 않았다.”33) 이처럼 틸리 히의 상관관계의 방법에 있어서는 신학적인 대답을 요청하는 실존적인 물음이 실존적인 관점에서 만 전개되고 있기 때문에 그 물음은 실존적인 한계를 벗어 나지 못하고 있고, 실존적인 물음에 대한 대답으로 주어지고 있는 그리스도교의 메시지는 그 의미만이 해명되고 있기 때문에 그 진리 성이 의문시되고 있다. 따라서 물음과 대답의 상호의존을 근본원리로 하고 있는 틸리히의 상관관 계의 방법은 오늘날과 같은 다원적인 상황에서는 물음과 대답을 각각 비판적으로 묻고 서로 비판 적으로 연결하는 ‘상호 비판적인 상관관계의 방법’으로 발전될 때만 오늘의 다원적인 상황의 물음 과 그리스도교의 메시지의 대답 사이를 보다 효과적으로 매개할 수 있을 것이다.

V. 나오는 말

지금까지 살펴 본 것처럼 틸리히가 그의 조직신학에서 사용하고 있는 근본적인 신학방법은 상관 관계의 방법이다. 이 방법은 상황과 메시지, 실존적인 물음과 신학적인 대답, 인간의 실존과 하나 님의 현현을 상관시키려는 방법이다. 다시 말하면, 상관관계의 방법은 물음과 대답의 상호의존 속 에서 그리스도교의 메시지를 해명하려는 방법이다. 이와 같은 상관관계의 방법의 의의는 무엇보 다도 기존의 잘못된 신학방법들 곧, 물음에서 대답을 이끌어 내려고한 19세기의 자유주의 신학의 자연주의적인 신학방법과 대답에서 물음을 제기하려고한 20세기의 신정통주의의 초자연주의적인 신학방법을 각각 극복하고 이 둘 사이의 “위대한 종합”34)을 시도했다는 데에 있다. 물론 오늘날 32) 몰트만, 「생명의 영」(서울 ; 대한기독교서회,1992), p. 61. 틸리히는 ‘하나님의 영은 인간의 영안에 거한 다’는 어거스틴의 전통을 무비판적으로 받아들여 그 의미만을 해명하고 있지만 몰트만은 어거스틴의 전 통을 비판적으로 재해석하여 하나님의 영을 인간을 포함한 모든 피조물의 삶의 힘으로서 규정한다. 이런 점에서 몰트만은 영혼과 신체, 의식과 무의식, 인격과 공동체 모두를 포괄하는 인간의 전체성과 관련하여 그리고 모든 다른 피조물을 포괄하는 창조 공동체의 전체성과 관련하여 그의 성령론인 ‘삶의 영’을 전개 한다.

33) 제임스 H. 콘, 현영학역, 「눌린자의 하느님」( 서울; 이화여자대학교, 1980), p. 76.

34) Paul Tillich, ed., by Carl E. Braaten Perspectives on 19th and 20th Century Protestant Theology(New York: Harper & Row, 1967), pp. 91-92 틸리히에 따르면 오늘날 조직신학은 하나의 기 본적인 결단에 직면해 있다 --- 종합의 길이냐 아니면 전통의 길이냐. 여기서 틸리히는 비록 쉴라이에르 마허나 헤겔의 위대한 종합이 실패했지만 종합의 길이 정당하다고 본다. 그 이유는 첫째 종합의 길이 시 도될 수 없다면 체계적인 구성으로서의 신학은 포기되고 신학은 단지 성서구절을 반복하거나 기꺼해야 성서의 해석에 한정되고 만다. 둘째 과거의 종합의 길의 실패는 체계적인 구성으로서의 조직신학을 반대 하는 증거가 못된다. 오히려 전통적인 용어를 끊임없이 되풀이 하는 것 보다는 그러한 실패 속에서 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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과 같은 다원적인 상황에서 보면, 틸리히의 상관관계의 방법은 물음과 대답이 너무 단선적으로 연결되고 있다는 문제점과 실존적인 물음이나 신학적인 대답에 대해서 그 진리성을 철저하게 비 판하지 못했다는 문제점을 가지고 있다. 곧, 틸리히의 상관관계의 방법은 물음과 대답을 상호 연 관시킴으로써 신정통주의의 초자연주의적인 신학방법과 자유주의의 자연주의적인 신학방법 사이 의 대립을 극복한 점에서는 그 신학적인 의의가 있음에도 불구하고 물음과 대답의 진리성을 각각 철저하게 묻고 또한 물음과 대답을 서로 비판적으로 연관시켜야만 하는 오늘날과 같은 다원적인 상황 속에서는 문제가 아닐 수 없다. 따라서 우리는 오늘날과 같은 다원적인 상황에서는 틸리히 의 상관관계의 방법을 극복한 “비판적인 상관관계의 방법”을 사용하지 않으면 안된다. 그러나 그 럼에도 불구하고 틸리히가 물음과 대답의 상호의존성을 통해서 그리스도교 메시지의 실존적인 의 미를 해명해 준 점은 우리가 쉽게 간과할 수 없는 20세기의 대표적인 신학자의 위대한 업적이 아닐 수 없다.

깊은 통찰을 얻을 수 있다.

참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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