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학부제와 대학교육의 파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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학부제와 대학교육의 파행

: 외부효과와 정보의 비대칭성에 의한 시장실패를 중심으로* 1)

이 태 정

(연세대학교 경법대학 경제학과 교수)

Ⅰ. 여는 말

Ⅱ. 현행 학부제의 실체와 도입과정

Ⅲ. 학부제와 외부효과로 인한 교육시장의 실패 : 기초학문의 위축

Ⅳ. 학부제와 기업의 수요에 부합하는 대학교육 : 잘못된 문제의식과 처방

Ⅴ. 역선택의 문제로 인한 교육시장실패와 학부제 : 교육의 질적 하락

Ⅵ. 맺는 말 : 정책적 시사점

* 본 연구는 한국경제연구원과 매지학술연구소의 지원으로 이루어졌으며, 본 논문에 제시된 관점과 의견은 저자 개인의 것임을 밝힙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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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육부가 학부제라고 통칭되는 모집단위광역화를1) 도입하게 된 취지는 첫째, 학생 들의 전공선택권을 확대한다는 것이고, 둘째, 그렇게 하여 경제구조의 변화에 유연하 게 반응할 수 있는 전문인력의 공급체계를 만들자는 것이며, 셋째, 학문내 또는 학문 간의 경쟁을 활성화시켜 교육과 연구의 질을 향상시키자는 것으로 요약할 수 있다.

한마디로 교육수요자의 선택권을 강화하여 대학교육에 시장원리를 도입함으로써 효 율성을 높이자는 것이다. 대학교육의 수요자는 크게 교육서비스를 직접 구매하는 학 생과 학부모, 그리고 대학에서 배출된 고급인력을 고용함으로써 대학교육을 간접적으 로 수요하는 기업과 관공서 등의 경제주체로 나눌 수 있다. 따라서 수요자위주의 교육 이란 곧 학생과 학부모가 원하는 교육, 그리고 기업과 사회가 원하는 교육을 대학이 공급해야 한다는 것이다. 즉 제도적으로 수요자의 선택권을 확보함으로써 학문간의 경쟁을 강화시키고 학생 또는 노동시장이 원하지 않는 교육서비스를 제공하는 대학 교, 학과 또는 학문은 축소되거나 퇴출되어야 함을 의미한다.

현재 한국의 대학교육이 국제적 경쟁력을 갖지 못하고 있으며 사회 경제적 요구에 적절히 부응하지 못하고 있다는 것은 너무도 명백한 사실이다. 따라서 한국의 대학교 육은 개혁되어야 한다는 사회적 합의가 이루어져 있다는 것 또한 사실이다. 그러나 이와 같이 문제를 지적하고 많은 사람들이 문제의식을 공유하는 것은 문제해결을 향 한 첫 걸음일 뿐이다. 그 문제를 해결할 수 있는 효과적인 치유책을 마련하기 위해서

1) 이하의 논의에서 ‘학부제’라 함은 ‘모집단위광역화’를 의미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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는 문제의 본질에 대한 정확하고 깊은 이해가 반드시 필요하다. 본 연구에서는 문제해 결책의 하나로 제시된 학부제가 한국의 대학구조와 대학교육을 둘러싼 한국의 사회구 조 속에서는 외부효과externality와 정보의 비대칭성asymmetric information으로 인한 고등교 육시장의 실패를 심화시키는 특성을 갖고 있다는 점을 지적하고 이 분석에 근거하여 정책적 대안을 제시하고자 한다.

교육은 인적자본에 대한 투자이고 희소한 자원을 배분하는 경제적 행위로서 장기적 으로 국민경제의 생산성을 결정짓는 가장 중요한 요인 중의 하나이다. 그럼에도 불구 하고 많은 경우 교육정책의 입안과 집행과정에서 경제학적 고려가 충분히 반영되지 못하고 있는 것이 현실이다. 학부제의 입안과 시행 역시 예외가 아니라고 보여진다.

본 연구에서는 이와 같은 불균형을 시정하는 의미에서 학부제의 문제점을 분석함에 있어 경제학적인 관점에서의 문제의식과 분석에 치중하고자 한다. 언급할 필요도 없 겠지만, 궁극적으로 한국의 교육문제에 대한 올바른 이해를 도모하고 바람직한 교육 정책의 청사진이 마련되기 위해서는 관련된 인접학문간의 더욱 적극적이고 긴밀한 교 류가 필요할 것이다.

기능적 측면에서 경제학자들이 교육을 바라보는 시각은 크게 두 가지로 나누어 볼 수 있다. T. Schulz(1981), G. Becker(1993), R. Lucas(1988)로 이어지는 일군의 학자들 은 인적자본human capital의 축적과정이라는 시각에서 교육을 바라보는 반면 M. Spence (1973), J. Riley(1979) 등 정보의 불완전성을 연구하는 일군의 학자들은 교육을 각자의 타고난 능력에 대한 신호signal 또는 변별장치screening device로 인식한다. 전자가 능력개 발과 지식함양이라는 교육의 적극적인 기능을 강조한 것이라면, 후자는 “간판 따기”

라는 교육의 소극적 기능을 강조한 것이다. 교육은 이 두 가지 기능을 동시에 수행한 다고 생각된다. 다만 어떤 가능이 더 강하게 작용하는지는 대학이 배출한 인력을 노동 시장이 어떤 방식으로 소화해 내는가에 따라 크게 달라질 것이다.

그런데 한 개인이 교육을 통해 인적자본을 축적하면, 교육을 받은 개인뿐 아니라 그가 속해 있는 사회 역시 혜택을 입게 된다. 교육을 받은 개인은 높아진 생산성으로 인하여 노동시장에서 높은 임금을 보상받게 된다. 동시에 사회 전체적으로도 문맹률 이 낮을수록 정치, 사회가 안정되고 국가 운영비용이 절감되므로 전반적인 국가경쟁 력이 높아진다. 또 기업 내에서도 교육을 많이 받은 능력 있는 전문가가 속해 있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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팀에서는 팀원들 모두의 생산성이 덩달아 높아진다. 이와 같이 긍정적 외부효과가 존 재하는 경우, 시장에서 결정된 교육투자의 양은 사회적으로 바람직한 수준보다 작게 된다. Gary Becker(1993)의 실증적 연구에 의하면 초등 중등교육 등 기초교육에 외부 효과가 더 크게 작용하는 것으로 밝혀지고 있다. 이를 고등교육에 연장시켜 생각한다 면, 기초학문에 작용하는 외부효과가 응용학문에 작용하는 외부효과보다 클 것이라고 유추할 수 있다. 이런 특성을 갖고 있는 고등교육에 대한 자원배분을 시장에만 맡길 경우, 기초학문에 대한 과소투자가 상대적으로 심각할 것이라는 것을 알 수 있다.

이와 연관되어 있는 또 다른 문제점은 일반교양교육liberal arts education 중심의 대학교 육과 직업교육vocational education 중심의 대학교육의 차이와 역할을 고려하지 않은 채 학부제라는 제도를 획일적으로 적용하고 있다는 점이다. 현재 교육부가 강조하는 산 업구조의 변화에 유연하게 대처하는 대학교육이란 일반교양교육보다는 직업교육에 비중을 둔 논의이다. 기업들 역시 대학교육이 기업경영에 유용하게 쓸 수 있는 인재를 양성하는 데 실패하고 있다는 비판을 한다. 시장원리에 대한 믿음이 어느 때보다 강해 진 지금 이러한 비판은 타당성이 큰 주장으로 받아들여지고 있다. 그러나 한국 대학교 육의 낙후성과 비효율성을 언급할 때 비교의 대상으로 자주 언급되는 서구의 명문대 학들은 주로 일반교양교육 중심의 학사운영을 하고 있는 대학들임을 상기할 필요가 있다. 학부에서 강도 높은 일반교양교육을 통해 높은 자질을 함양한 명문대학의 졸업 생들은 사회각계의 지도층으로 활동하게 되고 이들이 심화된 전문가적 소양을 쌓고자 할 경우 전문대학원이나 일반대학원에 진학하여 세분화된 전문지식을 배우고 익힌다.

더욱이 실증조사자료들을 통해 볼 때 한국의 고등교육 수급불일치는 기초학문과 응용 학문간의 불균형이 아니라 인문사회계와 이공계간의 불균형이라는 점이다. 따라서 학 부제는 실질적으로 인문사회계와 이공계간의 불균형을 해소하는 데는 아무런 도움을 주지 못하고 있다. 기업과 산업의 단기적인 인력수요를 충족시키는 것은 직업교육을 위주로 하는 전문대학에 더 큰 역할이 주어져야 하며, 장기적으로 대학교육에서 이공 계의 비중이 확대되기 위해서는 기업들이 대학교육에 대한 적극적인 투자와 산학협동 을 통해 특정분야에 대한 수요의 강도를 교육시장에 알리는 동시에 교육비용의 일부 를 부담하는 것이 바람직한 시장원리의 구현방식이 될 것이다.

한국의 기업과 관공서들은 입으로는 대학교육의 무용성을 지적하면서도 학벌위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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의 인력관리를 고착시킴으로써 대학교육의 전문성 향상에 오히려 장애요인으로 작용 하고 있는 것이 현실이다. 학벌위주의 인사관리는 학벌위주의 사회구조와 정보의 비 대칭성에 대응하는 기업의 전략적 선택으로 이해할 수 있다. 사회의 주요 요직이 명문 대 출신들로 채워져 있는 현실 속에서 명문대 출신을 고용해야 영업이 순조로워진다.

또한 개별 대학졸업자들의 능력과 자질을 정확히 관찰할 수 없는 비대칭적 정보구조 하에서는 평균적으로 능력이 뛰어난 명문대학 출신을 고용하는 것이 생산성이 높은 노동자를 확보할 확률을 높여준다. 이렇게 한국의 노동시장에서처럼 기업들이 개별 노동자의 능력과 특성을 파악하는 데 투자를 하지 않고 학벌 또는 친분관계에 따라 노동자의 가치를 평가하는 환경 속에서는 교육의 소극적인 기능인 태생적 능력에 대 한 변별장치로서의 기능이 과도하게 작용한다. 즉 교육의 “간판 따기” 기능이 증폭되 는 것이다. “간판 따기”가 대학교육의 주요기능이 된다면 명문대학에 입학한 학생도 비명문대학에 입학한 학생도 모두 대학에서 열심히 공부하고자 하는 동기를 상실하게 된다. 이러한 환경하에서는 학생들은 내면적 가치보다 외형적인 모양새를 중시하게 되고 이는 곧 “학점관리를 위한 학점관리 전략”으로 이어진다. 학부제로 인해 선택의 폭이 넓어진 교육수요자들은 어렵지만 능력개발에 도움이 되는 과목보다 쉽고 학점취 득이 용이한 과목을 선택하게 될 것이다. 즉 한국적인 상황하에서는 학부제의 도입이 역선택adverse selection현상을 심화시켜 대학교육의 질을 저하시키는 역할을 하게 될 것 이다.

제Ⅱ장에서는 학부제라고 불리는 제도의 실체적 의미를 되짚어 본다. 제Ⅲ장에서는 기초학문과 응용학문이 학부과정에 같이 개설되어 있는 한국의 대학구조하에서 학부 제의 도입이 외부효과의 크기의 차이로 인한 시장의 비대칭적 실패로 인해 기초학문 을 적정수준 이상으로 위축시키는 메카니즘을 설명한다. 제Ⅳ장에서는 산업의 수요에 유연하게 대응하는 대학교육이라는 것이 무엇을 뜻하는지를 되짚어 보고 학부제가 과 연 이를 실현시키는 최선의 방책인지에 대해 생각해 본다. 제Ⅴ장에서는 한국적인 상 황에서 학부제 도입이 정보의 비대칭성 때문에 발생하는 역선택adverse selection현상을 심화시켜 대학교육의 질을 저하시키는 메카니즘에 대해 설명한다. 제Ⅵ장에서는 이상 의 분석과 논의를 바탕으로 정책적 시사점을 도출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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Ⅱ. 현행 학부제의 실체와 도입과정

학부제 본래의 의미는 학문의 영역이 지나치게 세분화될 때 나타나는 비효율성을 줄이기 위해 학문의 성격이 비슷하거나 보완적인 학과들이 통폐합함으로써 대학운영 의 효율성을 높이고 학문간의 유기적인 연계를 도모하고자 하는 취지에서 입안된 제 도이다. “이 제도는 서울대학교 공과대학에서 한국의 공학교육을 반성하면서 연구가 시작되었고, 입시에서 유사학과를 「전기․전자․제어․계측공학과군」이라는 학과군 으로 묶어 모집하면서, 지나치게 세분화된 학과를 통합하는 개념으로서 「학부」를 구 상하고 이를 법적인 근거를 갖는 학사조직단위로 하기 위하여 1993년 정부에 입법화 를 건의하였다. 교육부는 이 건의에 따라 1994년 교육법시행령에 「대학에는 학과와 학부를 둔다」는 규정을 만들게 되었다. 이에 따라 학부제는 지나치게 세분화된 학과를 통폐합하는 것을 의미하는 조직개편의 의미로 사용되어 주로 공과대학을 중심으로 학 부제가 출현하게 되었다.”2) 즉 학부제는 같은 학부에 속한 학과들이 완전히 벽을 허물 고 교과과정의 설계, 교수충원 및 학사운영에서 하나의 행정단위로 움직이게 되는 화 학적 융합과정을 의미한다.

그러나 그 이후 학부제를 도입한 일부대학들이 학부제를 시행하는 과정에서 학부제 원래의 목적이 희석된 변형된 형태의 학부제가 나타나기 시작했다. 변형된 학부제 내 에서는 ‘학과’가 ‘전공’으로 이름만 바뀌었을 뿐 동일학부에 속한 각 전공들이 여전히 독립적인 학사운영단위로 존속한다. 여기서 학부는 신입생 선발단위로서의 의미를 가 질 뿐, 1년 또는 2년의 탐색과정을 거쳐 학생들이 동일 학부에 속해 있는 전공을 비교 적 자유롭게 선택하도록 하는 입시관련 내지 학사운영관련제도로 변질되어 간 것이 다.

현재 많은 대학에서 시행하고 있는 변형된 학부제의 성격을 이해하기 위해서는 교 육부에 의해 기안되고 1998년 3월 1일부터 시행된 ‘모집단위광역화’라는 대학입시 및 학사운영제도를 이해할 필요가 있다.3) 모집단위광역화란 학생선발 단위를 학과별로

2) 김화진(1999), 「모집단위광역화와 기초학문 육성의 올바른 방향」, pp.67-73.

3) 1998년 이전 학부제를 도입한 대학들은 자율적 구조조정이라는 형식을 취하였지만, 교육부는 이러 한 방향으로의 구조조정을 한 대학에 대해 우선적으로 재정적 지원을 제공함으로써 간접적인 유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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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던 것을 두 개 이상의 학과를 묶어 복수학과, 학부, 단과대, 계열 또는 대학전체로 광역화하는 것을 의미한다. 이 제도하에서는 학과별 정원은 없어지고 모집단위별 정 원만이 인정된다. 학생선발은 모집단위별로 하고 선발된 학생들은 1년 또는 2년간의 전공탐색기간을 거친 다음 소속 모집단위에 속해 있는 전공 중 하나 또는 둘(이중전 공, 복수전공의 경우)을 거의 제약없이 선택할 수 있게 된다.

원래 의미의 학부제는 모집단위광역화에 비해 훨씬 더 강도 높은 기존 학과들간 의 화학적 융합과정으로 이해할 수 있다. 그러나 현재 학부제라는 이름으로 많은 대학 들이 도입 시행하고 있는 제도에서는 동일 학부에 소속된 전공들이 화학적으로 융합 되어 교과과정의 설계와 교수충원, 학사운영을 공동으로 하고 있다는 증거는 찾아보 기 힘들다. 다만 모집단위가 학부라는 단위로 광역화되었고 입학한 학생들은 결국 1년 또는 2년 후에 독립적으로 각각 운영되는 전공을 선택하게 된다. 대학교육협의회가 1997년 현재 학부제를 시행하고 있는 217개 단과대학, 413개 학부, 1030개 (통합)학과 의 실태에 대한 연구보고서에서도 한국에서 시행되고 있는 학부제의 특성을 다음과 같이 지적하고 있다. “…… 현재 많은 대학에서 운영하고 있는 학부제는 기존의 학과 나 단과대학체제를 거의 그대로 유지하면서 부분적으로 또는 최소한의 협력체만을 유 지하는 불완전한 학부제로 …… 대학별 특성에 기초한 대학내 필요에 의해 시행되는 학부제라기보다는 교육부의 권장이나 재정지원과 대학의 재정절감을 의식하여 인위 적으로 학과나 단과대학을 통폐합하여 운영하기 때문에 나타나는 현상이라고 말할 수 있다.”4) 현행 학부제하에서는 모집단위가 학부, 통합학과, 단과대학, 또는 계열이라는 단위로 다양하게 광역화되었을 뿐 입학한 학생들은 결국 1년 또는 2년 후에 독립적으 로 각각 운영되는 전공을 선택하게 된다. 따라서 현재 학부제라고 불리는 제도의 실체 는 사실 모집단위광역화라고 이해하는 것이 옳다고 판단된다.

를 도모하였다.

4) 대학교육협의회(1997), 「대학 학부제 개선방안 연구」, p.3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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Ⅲ. 학부제와 외부효과로 인한 교육시장의 실패 : 기초학문의 위축

학부제의 핵심은 수요자의 선택권보장을 통해 고등교육에 시장원리를 도입함으로 써 효율을 제고하고자 하는 것이다. 본 장에서는 외부효과로 인해 시장이 실패하는 교육시장에서 특히 한국의 고등교육시장에서 이와 같은 교육수요자의 선택권확대가 어떤 작용을 하게 되는지를 분석하고자 한다.

1. 교육시장에서의 외부효과

교육의 혜택은 교육을 받은 당사자에게 모두 귀속되는 것이 아니라 그 일부는 그 사람이 속해 있는 사회에 돌아간다. 그런데 개인들이 교육을 얼마나 받을지, 즉 교육 에 얼마나 투자할지를 결정할 때 자신에게 돌아오는 혜택만을 고려할 뿐 사회가 받는 혜택의 크기는 생각하지 않게 된다. 사회전체에는 유용하지만 개인들의 의사결정과정 에서 고려되지 않는 바로 이 부분이 외부효과로 남게 되는 것이다. 따라서 교육활동을 시장에만 맡겨 놓으면, 교육에 대한 투자는 사회적으로 바람직한 수준 이하로 이루어 지게 되는데, 외부효과가 클수록 그 괴리가 커지게 된다.

대학교육에서 외부효과가 발생하는 경로는 크게 세 가지 정도로 나누어 볼 수 있다.

그 하나는, 대학교육을 통해 한 개인의 전문지식과 판단력이 향상되었을 때 그 당사자 의 생산성만 높아지는 것이 아니라 그와 함께 팀을 이루어 일하게 될 동료들의 생산성 도 같이 높아진다는 것이다. 대학교육이 외부효과를 유발하는 또 다른 경로는 대학교 육은 독자적인 학습능력(혼자 읽고 이해하며 생각하고 판단할 수 있는 능력)을 제고시 킴으로써 기업의 신입사원 훈련비용을 절감할 뿐 아니라 변화하는 산업구조와 과학기 술에 맞추어 노동력을 재교육하는 데 소요되는 사회적 비용을 크게 줄여주는 것이다.

특히 21세기를 특징짓는 숨가쁜 과학기술의 발전과 이와 함께 빠르게 변하는 산업구 조에 적응하여 생존하기 위해서는 지속적인 학습이 필요하며, 어느 때보다 높은 독자 적 학습능력이 요구된다. 만약 대학이 이 역할을 제대로 수행하지 못한다면, 과학기술 과 산업구조의 변화에 적응하지 못한 노동력이 대량으로 생길 것이며5) 이에 따라 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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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실업률natural rate of unemployment이 높아지게 된다.6) 자연실업률의 상승은 실업연금, 또는 보험, 그리고 유휴노동력에 대한 재교육 및 직업알선 등 사회복지비용을 크게 상승시킨다. 따라서 교육에 의한 독자적 학습능력의 제고는 사회적 비용을 낮추어 주 는 역할을 한다. 셋째, 대학교육은 인간과 사회, 자연환경에 대한 이해의 폭과 깊이를 더해 줌으로써 균형잡힌 사고력과 판단능력을 배양한다. 이와 같은 자질은 본인에게 도 가치있는 것이지만, 올바른 가치관과 윤리의식 그리고 판단력으로 무장된 사람이 많은 사회일수록 경제적인 비용은 차치하고라도 정치적 사회적 비용을 줄이는 데 크 게 기여할 수 있다.

그런데 직업교육vocational education보다는 일반교양교육liberal education의 외부효과가 훨씬 크게 작용한다. 첫 번째 종류의 외부효과는 기업내 같은 부서에서 일하는 동료들 간의 팀워크를 통해 발현되는데, 세분화된 전문지식을 갖고 있는 사람들로 구성된 팀 일수록 서로간의 의사소통이 원활하게 이루어져야 구성원간의 시너지효과가 발휘될 수 있다. 원활한 의사소통을 위해서는 세분화된 전문지식의 공통분모인 기초학문에 대한 훈련이 잘 되어 있어야 한다. 따라서 팀원과 원활하게 의사소통할 수 있는 훈련 이 잘된 일반교양교육을 충실히 받은 사람의 외부효과가 그렇지 않은 사람에 비해 더 클 것이라는 사실은 쉽게 추론할 수 있다. 두 번째 외부효과인 독자적인 학습능력의 향상 역시 세분화된 전문지식보다는 충실한 일반교양교육의 역할이 더 크게 작용한 다. 세분화된 전문지식은 기초지식을 응용 발전시킨 것이므로 그 근본이 되는 기초이 론에 대한 이해 없이 응용된 결과만을 알고 있다면 새로 개발응용된 전문지식을 혼자 의 힘으로 해득할 수 있는 능력이 자연히 약할 수밖에 없다. 예를 들어 반도체회로 디자인이나 소프트웨어 개발에 필요한 신기술을 습득하기 위해서는 수학, 물리학, 화 학 등의 튼튼한 기초가 필요할 것이며 금융구조나 신금융상품의 출현에 따른 금융관

5) 최근 심각한 사회문제로 대두되는 40-50대 노동력의 대량실직이 그 예이다.

6) 자연실업률은 한 국민경제의 장기평균실업률이다. 만약 노동시장이 장기적으로 균형에 도달한다면 장기평균실업률은 0이 되어야 한다. 자연실업률이 0이 되지 않는 이유 중의 하나는 최저임금, 노동 조합, 효율임금(efficiency wage) 등 임금의 균형수준으로의 조정을 가로막는 제도적, 비제도적 요인 들이다. 자연실업률이 0이 아닌 또 다른 이유는 정보의 불완전성, 그리고 일자리가 요구하는 능력과 구직자가 갖고 있는 능력의 불일치 등에 따른 마찰적 실업이 존재하기 때문이다. 노동자들이 기업의 노동수요 변화에 맞추어 변신하는 노력과 능력이 부족할 때, 마찰적 요인에 의한 자연실업률이 높아 질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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행의 변화를 이해하기 위해서는 탄탄한 경제학적 기초가 필요할 것이고, 새로운 마케 팅이론을 이해하기 위해서는 심리학에 대한 이해가 도움이 되며, 관광상품을 개발하 기 위해서는 역사학과 지리학에 대한 해박한 이해가 필요할 것이다. 세 번째 외부효과 는 인격과 상식 그리고 윤리의식의 함양을 통해 실현되는 것인데 이것이야말로 전문 지식보다는 일반교양교육에 의해 효과적으로 이루어지는 것이다.

R. Barro & X. Sala-i-Martin(1995)과 R. Levine & D. Renelt(1992) 등의 교육에 대한 투자가 경제성장에 미치는 영향에 대한 실증적 연구결과를 보면, 고등교육보다는 중 등교육이 경제성장에 유의적인 영향을 주는 것으로 밝혀지고 있다. 이 결과는 각종 통제변수의 추가 또는 배제와 무관하게 매우 안정적으로 밝혀져 있다. 이는 심화된 전문지식보다는 보편적인 기초소양이 장기적인 경제성장에 더 유용한 역할을 한다는 것으로 해석할 수 있다. 이는 거시총량 데이터를 이용한 실증분석의 결과로서 이 문제 에 대한 보다 심층적인 이해를 위해서는 노동시장에서의 미시적 데이터를 이용한 대 학교육의 유형별 생산성 증대효과에 대한 실증적 분석이 행해져야 할 것이다. 현재 한국의 노동시장에 대한 그러한 분석이 아직 없는 상태에서 거시적 실증결과를 연장 시켜 대학교육에 적용해 보면, 직업교육보다는 일반교양교육이 생산성 증가에 큰 영 향을 미치게 된다고 추론할 수 있을 것이다.

학문별 외부효과의 크기에 대한 직접적인 실증연구는 아니지만, 기업과 산업단위의 인력관리에 관한 미시적 설문조사 결과에서도 충실한 일반교양교육에 의한 기초능력 함양의 중요성이 강조되고 있으며 미래의 산업구조와 직업이 요구하는 근로자의 자질 에 대한 전망에서도 더욱 탄탄한 기초능력을 더욱 중요해질 것이라고 말하고 있다.

<표 1>에 요약된 내용은 “22개로 분류된 산업분야 중 다른 직종에 비해 고도의 전문 성을 요구한다고 판단되는 전문직(변호사, 판사, 검사, 의사 등), 군인 등을 제외한 산 업분야의 근로자와 고용주를 대상으로 현장조사를 실시하여 최종적으로 의사소통능 력, 수리능력, 문제해결능력, 자기관리 및 개발능력, 자원활용능력, 대인관계능력, 정 보능력, 기술능력, 조직이해능력 등 9개의 직업기초능력 영역을 추출”한 것이다. 이 표에 요약된 기초직업능력의 정의를 볼 때도 탄탄한 일반교양교육의 기초 위에 세분 화된 전문지식과 기술교육이 쌓아 올려졌을 때 소기의 생산성 증대효과를 낼 수 있을 것이라는 것을 미루어 짐작할 수 있다. 한편, 미국의 상무부, 교육부, 노동부, NIL 및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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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표 1> 직업기초능력의 영역과 하위요소 영 역 하 위 요 소

의사소통능력

․읽기능력 ․쓰기능력

․듣기능력 ․말하기능력

․비언어적 표현능력 ․외국어(영어)읽기능력

수리능력

․사칙연산이해능력

․통계와 확률에 대한 이해능력

․도표해석 및 표현능력

문제해결능력

․사고력 ․문제인식능력

․대안선택능력 ․대안적용능력

․대안평가능력

자기관리 및 개발능력

․자기관리능력

․진로개발능력

․직업에 대한 건전한 가치관과 태도

자원활용능력 ․자원확인능력 ․자원조직능력

․자원계획능력 ․자원할당능력

대인관계능력

․협동능력 ․리더십능력

․갈등관리능력 ․협상능력

․고객서비스능력

정보능력

․정보수집능력 ․정보분석능력

․정보조직능력 ․정보관리능력

․정보활용능력 ․컴퓨터사용능력

기술능력 ․기술이해능력 ․기술선택능력

․기술적용능력

조직이해능력 ․국제감각 ․체제이해능력

․경영이해능력 ․업무이해능력

자료 : 정철영 외(1998), 직업기초능력에 관한 국민공통 기본교육과정 분석 , 서울 : 한국직업능력개발 원, p.184.

중소기업청이 공동으로 작성한 보고서에서는 21세기의 산업구조변화에 따른 직업의 특성변화를 <표 2>에서와 같이 요약하고 있다. 현대와 미래의 직업은 근로자들에게 원활한 의사소통 능력과 다양한 업무의 소화능력, 조직의 분권화에 따른 신뢰할 수 있는 개인의 자율적 판단능력, 계속 변화하는 작업과정에 대한 뛰어난 적응능력 등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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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표 2> 기업경영 및 조직상 변화에 의한 직업변화

구 분 과거의 시스템 새로운 시스템

업무조직 수직적 기능별 분업화

경직적(rigid)

수평적 다기능 팀간의 네트워크 유연(flexible)

업무성격 협소 하나의 업무수행

단순․반복․표준화된 작업

광범위 여러 가지 업무수행 다양한 책무

종업원의 기술능력 전문화된 기술 다양한 직능

인력관리 통제와 명령체계 자율적 관리

의사소통 상명하달 알 필요가 있는 것들만

넓게 확산된 큰 그림의 바탕에서

의사결정의 책임 명령체계에 따름 분권화됨

작업과정 표준화, 고정된 작업과정 계속 변화되는 작업과정

종업원의 자율성 낮음 높음

조직에 대한 종업원의 지식 제한적 광범위

자료 : 미국 상무부, 교육부, 노동부, NIL 및 중소기업청 공동보고서 21st Century Skills for 21st Century Jobs, 1999. 1.(강성원 외(2001)에서 재인용)

요구할 것으로 전망하고 있다. 같은 보고서에서는 이와 같은 요구에 부응하고 새로운 유형의 직업에 적응하기 위해서 근로자들이 갖추어야 할 숙련의 유형과 특성을 <표 3>과 같이 요약하고 있다. 한마디로 표현하자면 기초능력이 뛰어나고 끊임없이 변화 하는 상황과 환경에 창의적으로 적응할 수 있는 능력을 갖춘 인력을 미래의 직업은 요구하고 있다는 것이다.

이상에 제시된 자료들을 종합해 볼 때 기초학문에 의한 일반교양교육의 중요성이 미래의 직업과 산업구조의 특성에 더욱 강조될 것이라는 점을 쉽게 이해할 수 있다.

따라서 대학의 효과를 높이기 위해서는 기초학문과 응용학문간의 보완성이 그 어느 때보다 요구되고 있으며 교육제도의 개혁 내지 구조조정 역시 이러한 방향으로 설정 되는 것이 바람직하다고 결론지을 수 있다. 그러나 현재 시행되고 있는 학부제는 기초 학문과 응용학문간의 불필요한 경쟁을 유발시키고 있으며 이와 같이 잘못 정의된 시 장의 범주는 외부효과가 상대적으로 큰 기초학문을 고사시키고 미래의 산업이 요구하 는 탄탄한 기초실력을 가진 인력을 육성하는 데 오히려 걸림돌이 될 것이다. 효율성을

(13)

<표 3> 21세기 근로자에게 요구되는 숙련의 유형 및 특성

숙 련 특 성

기초적 숙련 (Basic Skills)

- 이해능력 : 정보취득을 위해 중요

- 연산능력 : 문제해결 및 분석을 위해 필요

- 저작능력 : 정보저장 및 교환을 위해 필수적으로 필요

기술적 숙련 (Technological Skills)

- 컴퓨터 능력은 많은 직종에 있어 필수요건이 되고 있음 - 생산성과 효율성을 높이기 위해 신기술을 도입해 감에 따라 근

로자들의 기술연마 필요성이 더욱 확대됨

- 정보통신 기술의 급격한 발전은 끊임없는 향상훈련의 필요성을 부여하고 있음

조직적 숙련 (Organizational Skills)

- 새로운 형태의 경영, 기업조직 및 소비자 관계는 학문적, 기술 적 지식뿐 아니라 의사소통능력, 분석능력, 문제해결능력, 창의 력, 협상능력, 자기관리능력 등을 요구

기업 특정의 숙련능력 (Company Specific

Skills)

- 신기술, 시장변화 및 경쟁은 기업들로 하여금 제품과 서비스는 물론 업무과정을 끊임없이 개선하도록 촉진

- 따라서 종업원들은 기업의 제품, 서비스, 제조과정 등에 대한 신지식과 능력을 계속해서 습득해야 함

자료 : 미국 상무부, 교육부, 노동부, NIL 및 중소기업청 공동보고서(1999), 21st Century Skills for 21st Century Jobs(강성원 외(2001)에서 재인용)

제고하기 위해 활성화되어야 하는 것은 동일 대학 내에 개설된 서로 다른 학문들간의 경쟁이 아니라 서로 다른 대학에 개설된 동종 학문끼리의 경쟁이다.

2. 외부효과로 인한 교육시장의 실패와 자원배분의 왜곡

교육의 사회적 가치는 교육을 받은 개인에게 직접 돌아가는 혜택, 즉 시장가치와 사회에 돌아가는 혜택인 외부효과의 크기를 더한 것이다. 따라서 시장에서 평가되는 가치만으로 교육을 저울질한다면7) 외부효과가 큰 일반교양교육의 가치가 직업교육의

7) 최근 부각되고 있는 ‘신지식인론’은 부가가치의 창출에 대한 강조를 인력양성뿐 아니라 대학의 지식 창출 기능에까지 확대시킨 것으로 해석할 수 있다. 신지식인론의 핵심은 지식의 가치를 그 지식이 창출하는 부가가치의 크기를 기준으로 평가하고 자원의 배분 또한 그에 비례해서 이루어져야 한다 는 주장이기 때문이다. 그런데 기초학문에서 창출되는 지식은 외부효과가 강하여 사회적 가치에 비 해 시장가치가 크게 낮은 경향이 있다. 반면 응용학문에서 창출되는 지식은 상대적으로 외부효과가

(14)

작아서 사회적 가치와 시장가치의 차이가 그다지 크지 않은 경향이 있다. 이와 같은 지식의 속성의 차이를 무시하는 신지식인론은 기초학문에서 창출한 지식은 가치 없는 것이고, 응용학문에서 창출 된 지식은 가치 있는 것이라는 잘못된 인식을 확산시킬 수 있는 위험을 안고 있다. 예를 들어 아인슈 타인의 상대성이론을 담은 학술논문의 경제적 가치는 영에 가깝다. 그렇다고 하여 상대성이론이 쓸 모없는 지식이라고 믿는 사람은 없을 것이다. 상대성이론이 갖는 사회적 가치는 원자력발전소 수백 개를 합쳐놓은 것만 못할 리 없기 때문이다. 이와 같이 지식시장 또한 교육시장에 못지 않게 외부효 과가 강하게 작용하는 시장이 실패하는 시장이므로 함부로 시장가치를 잣대로 자원배분을 재단하는 오류를 범하지 않기 위해서는 세심한 주의가 필요하다.

(15)

<그림 1> 외부효과에 의한 교육시장의 왜곡

0 0

SB SA

교 육 투 자 교 육 투 자

기 초 학 문 관 련 전 공 의 시 장 실 패 응 용 학 문 관 련 전 공 의 시 장 실 패

기 초 학 문 관 련 전 공 은 외 부 효 과 가 크 기 때 문 에 시 장 에 만 맡 겨 놓 을 경 우 자 원 배 분 의 왜 곡 의 크 기 가 응 용 학 문 관 련 전 공 의 자 원 배 분 의 왜 곡 보 다 크 다 .

*

EB ESB EE*AAS

)

(ESBE*B (ESAE*A)

P

DB S

DB

P

DA S

DA S

PB

*

PB

*

PA S

PA

기초학문관련 전공은 외부효과가 크기 때문에 시장에만 맡겨놓을 경우 자원배분의 왜곡

(

ESB- EB

)

의 크기가 응용학문관련 전공의 자원배분의 왜곡

(

ESA- EA

)

보다 크다.

가치에 비해 과소평가되고 사회적으로 바람직한 수준에 비해 자원의 배분이 너무 작 게 이루어질 수밖에 없다. 이러한 상황이 일반교양교육시장과 직업교육시장으로 나뉘 어 <그림 1>에 표시되어 있다. 여기서, SB는 일반교양교육의 공급곡선이고 DPB는 교 육을 받은 당사자가 받는 혜택의 가치만을 고려한 일반교양교육에 대한 수요곡선이며

DSB는 개인적 혜택뿐 아니라 외부효과까지를 고려한 사회적 혜택의 가치에 기초한 일반교양교육에 대한 수요이다. 자원의 배분을 시장에만 맡겨 놓는다면 일반교양교육 에 대한 투자는EB만큼만 일어날 것이다. 그러나 외부효과의 가치까지 감안한 사회 적으로 바람직한 수준의 투자는 EA이다. 따라서 시장에만 맡겨 놓는다면 일반교양교 육에 대해 ESB- EB만큼 과소투자되는 자원배분의 왜곡현상이 발생한다. 이러한 자 원배분의 왜곡현상은 직업교육시장에도 유사하게 나타난다. 그러나 <그림 1>에 표시 되어 있는 바와 같이 직업교육의 외부효과는 일반교양교육에 비해 상대적으로 작기 때문에 직업교육의 사회적 가치와 개인적 가치의 괴리 역시 상대적으로 작고 따라서 시장에서 이루어진 자원배분이 사회적으로 바람직한 자원배분의 크기에서 이탈되는

SB SA

(16)

정도가 상대적으로 작다. 즉 ESA- EA의 크기가 ESB- EB에 비해 상대적으로 작은 것이다.

그런데 학문의 성격상 일반교양교육은 대부분 기초학문관련 전공에 의해 이루어지 고 직업교육은 많은 경우 응용학문관련 전공에 의해 이루어진다. 기초학문이란 자연 과학에 속하는 수학, 물리학, 화학, 생물학, 인문과학에 속하는 철학, 역사학, 심리학, 문학, 사회과학에 속하는 정치학, 사회학, 경제학 등을 꼽을 수 있다. 응용학문이란 자 연과학에 속하는 의학, 공학, 인문 사회과학에 속하는 경영학, 법학, 행정학, 교육학, 사회사업학, 신문방송학 등을 꼽을 수 있다. 따라서 일반교양교육과 직업교육의 구분 이 모호하며 기초학문관련 전공과 응용학문관련 전공이 구별없이 개설되어 있는 한국 의 4년제 종합대학구조하에서 학생의 전공선택권이 확대되면 학생들의 선택은 당연 히 교육의 수혜자가 향유하는 시장가치가 높은 응용학문 쪽으로 편중될 수밖에 없다.

이와 같은 구조하에서 시행되고 있는 한국의 학부제는 시장의 범주를 잘못 규정하여 상호보완성을 유지하여야 할 학문들을 상호경쟁적인 관계로 변질시키고 이에 따라 외 부효과가 큰 기초학문의 지나친 위축, 그리고 기초가 부실한 채 응용지식만을 채득한 대학졸업자들의 양산이라는 부작용을 낳고 있는 것이다. 예를 들어 서로 다른 대학의 공과대학끼리의 경쟁, 경영학과끼리의 경쟁, 혹은 철학과끼리의 경쟁은 마땅히 고무 되고 장려되어야 하지만, 같은 대학 내에서의 수학 또는 물리학과와 전자전산학과와 의 경쟁은 시장의 실패를 가중시키는 결과를 초래한다.

다음절에 소개된 특정대학의 학부제 운영사례를 통해 문제의 심각성을 엿볼 수 있 을 것이다.

(17)

3. 사례분석

본 절에서는 1996년부터 가장 전격적인 형태로 학부제를 도입하여 운영해 오고 있 는 한 4년제 대학교(이하에서는 A대학교로 칭함)의 예를 통해 학부제의 도입으로 학 생들의 전공선택권이 발현된 결과가 어떻게 나타나고 있고 학생들의 전공선택에 대한 의사결정에 영향을 주는 요인이 무엇인지를 살펴보고자 한다. 학부제를 시행하기 전 인 1995년, A대학교는 문리대학, 경법대학, 보건과학대학, 의과대학의 4개 단과대학과 23개의 학과로 구성되어 있었다. 이후 1996년에 경법대학에 경영정보학과가 신설되고 그 다음해인 1997년에는 의과대학에 간호학과가 신설되었으며 보건과학대학의 산업 보건학과가 산업환경학과로 개명하는 등 약간의 변화가 있었다.

무엇보다 큰 변화는 이 학교가 1996년부터 시행한 학부제이다. 의과대학을 제외한 나머지 대학에 대해 기존의 과단위의 신입생모집을 전면 개편하여 모집단위를 인문사 회계열과 자연과학계열의 두 개로 광역화하였다. 이 제도하에서는 학부단위로 선발된 신입생들은 1년 동안의 탐색과정을 거친 다음 2학년 진급시에 학부 내에 개설된 전공 들 중 하나를 선택하게 되어 있다. 그러나 모집단위가 너무 큰 데서 오는 인기전공과 비인기전공간의 불균형현상이 심각하게 노정될 것을 우려하여 이 학교는 그 다음해인 1997년부터 모집단위를 인문학부와 경법학부, 자연과학부와 보건과학부의 4개로 축 소 개편하여 2001년까지 시행하고 있다(2002년부터는 학부를 더 세분화하고 궁극적으 로 더 세분화된 학부단위로 모집단위를 조정할 계획이다). 뿐만 아니라 각 학부는 학 생들의 전공선택권의 정도를 서로 달리 부여하고 있다. 가장 극단적인 경우가 사회과 학관련 전공들이 모여 있는 경법학부로서 이 학부에서는 학생들의 전공선택에 아무런 제약을 가하지 않고 있다. 반면 보건과학부는 구성전공들의 매우 상이한 속성들 때문 에 보건행정전공, 임상병리학, 재활학들은 신입생을 1학년 때부터 전공별로 모집하고 있으며 이 학부의 학부제는 사실상 의용전자공학과와 환경공학과간에만 이루어지고 있는 것으로 볼 수 있다.

따라서 1996년부터 각 전공별 재적생은 1학년을 제외한 2, 3, 4학년들로 구성된다.

그런데 1996년의 재적생들은 학부제도입 이전에 과별로 입학한 학생들이므로 학부제 의 도입 이후의 전공별 학생수의 변화를 보기 위해서는 1996년의 전공별 재적생수를

(18)

기준으로 삼는 것이 타당하다. <그림 2>에 표시된 내용은 각 전공별로 학부제도입 이 후 학생수가 1996년에 비해 어떻게 변해 왔는지를 보여주고 있다.

그런데 경법대학의 경우 1998년에 입학정원이 300명에서 450명으로 50% 증원되었 기 때문에 1996년 대비 재적생수의 전공별 편중도를 알아보기 위해서는 1996년의 기 준 재적생수를 적절히 조정할 필요가 있다. 입학정원 50% 증원이 재적생수에 미치는 영향은 증원 후 첫해에는 12.5%, 두 번째 해에는 25%, 세 번째 해에는 37.5%, 네 번째 해에는 50%의 증가효과가 있다. 이와 같은 입학정원 증가효과를 통제하고 계산한 1996년 대비 재적생수가 1보다 크면 그 해의 2, 3, 4학년 재적생수가 1996년에 비해 더 많아졌다는 의미이며, 1보다 작으면 그 해의 재적생수가 1996년에 비해 더 작아졌 다는 것을 뜻한다.

네 개 학부에 공통적으로 나타난 패턴은 학부제도입 이후 처음 2년 동안은 전공별 재적생수의 변동이 크지 않다는 점이다. 이는 새로 전공을 선택하는 2학년 진급생들의 인기전공에 대한 강한 편중현상이 있음에도 불구하고 기존의 학과단위 입학생들의 비 중이 상대적으로 크기 때문에 그 효과가 크게 드러나지 않는 것으로 파악된다. 그러나 학부제도입 이후 3년째부터는 입대휴학한 기존재학생들의 재고가 바닥나기 시작하고 따라서 학생들의 편중된 인기전공 선택현상이 전공별 재적생수에도 큰 영향을 미치게 된다.

어문학 전공(국어국문학, 영어영문학)과 인문학전공(사학, 철학)이 같이 포함되어 있는 인문과학부의 경우 어문학전공 쪽으로의 편중현상이 뚜렷하며 특히 영어영문학 으로의 편중현상이 매우 심한 것으로 파악된다. 반면 사학과 철학 전공이 크게 위축되 고 있다. 자연과학부의 경우 응용학문의 성격이 짙은 전산학전공이 급속히 팽창하고 있으며 수학, 물리학, 통계학 등의 기초학문이 크게 위축되고 있다. 생물자원공학 역시 위축되고 있는데 이는 생명과학전공과의 강한 대체성 때문인 것으로 이해된다. 사회 과학계통의 전공들로 구성된 경법학부의 경우 경영정보학전공과 법학전공이 급격히 팽창하였으며 유일한 기초학문인 경제학전공의 재적생수는 절반 수준으로 감소하였 다. 행정학전공은 응용학문임에도 불구하고 감소추세를 보이고 있는데 이는 법학전공 과의 강한 대체성 때문인 것으로 이해된다. 보건과학부의 경우 모두 응용학문으로 구 성되어 있을 뿐 아니라 매우 제한된 범주 내에서의 학부제를 실시하고 있어 의용공학

(19)

<그림 2> 학부제도입 이후 A대학교의 전공별 재적생수의 변화추이

인 문 과 학 부 전 공 별 재 적 생 수

0.00 0.50 1.00 1.50 2.00 2.50

96 97 98 99 2000 2001 년 도

96년

국 어 국 문 학 영 어 영 문 학 사 학 철 학

자 연 과 학 부 전 공 별 재 적 생 수

0 .0 0 0 .5 0 1 .0 0 1 .5 0 2 .0 0 2 .5 0 3 .0 0

9 6 9 7 9 8 9 9 2 0 00 2 0 01 년 도

96년대비 재적생 수 학

물 리 학 화 학 생 명 과 학 전 산 학 통 계 학 생 자 공

경 법 학 부 전 공 별 재 적 생 수

0 .0 0 0 .5 0 1 .0 0 1 .5 0 2 .0 0 2 .5 0

9 6 9 7 9 8 9 9 2 00 0 2 00 1 년 도

96년 대비 재적생수 경 제 학

경 영 학

경 영 정 보 행 정 학

법 학 국 제 관 계

(20)

보 건 과 학 부 (보 건 ,환 경 , 의 공 학 부 ) 전 공 별 재 적 생 수

0 .0 0 0 .5 0 1 .0 0 1 .5 0 2 .0 0 2 .5 0 3 .0 0 3 .5 0

9 6 9 7 9 8 9 9 2 0 00 2 0 01 년 도

96년대비 재적생 보 건 행 정

임 상 병 리

재 활 학 의 공 학

환 경 공 학

보 건과학부 (보 건, 환경, 의 공학부) 전공별 재적 생수

(21)

과를 제외하고는 각 전공의 재적생수의 변화가 그리 크지 않은 것을 볼 수 있다.

일반적으로 <그림 2>에서 볼 수 있는 것은 학부제의 도입 이후 기초학문관련 전공 의 재적생수가 현저하게 줄고 있으며 일부 응용학문관련 인기전공에 학생들의 편중현 상이 매우 두드러지게 나타나고 있음을 알 수 있다.

이와 같은 인기전공 편중현상의 배후에는 학생들의 특성화된 응용학문에 대한 선호 와 학부모의 의견이 강하게 작용하고 있는 것으로 파악된다. 2000학년도에 이 대학 경법학부에 입학한 1학년학생들이 전공선택을 끝낸 직후인 12월초에 설문조사를 시 행하였다. 450명 중 341명이 응답하였는데, 그 결과 중의 일부가 <그림 3>과 <그림 4>에 표시되어 있다. <그림 3>은 전공지식의 유형에 대한 선호를 요약한 것으로서 응답자의 약 26%만이 일반적인 사회과학지식을 가르치는 전공을 선호한다고 하였으 며, 대부분이 특성화된 전문지식을 가르치는 전공을 선호한다고 대답한 것을 볼 수 있다. 이에 더하여 학생들이 일부 응용학문에 집중되는 현상을 심화시키는 요인 중의 하나는 학생들의 전공선택과정에서 작용하는 학부모의 영향력인 것으로 보인다. 한국 에서는 대학교육의 비용을 대부분 학부모가 부담하기 때문에8) 학생들의 전공선택과 정에 학부모가 강한 영향력을 행사하는 경향이 있다. <그림 4>에서 볼 수 있듯이 약 38%만이 각 전공의 특성에 대한 정보를 바탕으로 전공을 선택하였음에 반해 약 25%

에 달하는 학생들이 학부모의 의견에 따라 전공선택을 하였음을 알 수 있다. 학부모들 은 흔히 사회적으로 소위 “인기전공”으로 인식되는 전공을 자녀들에게 권장하는 경향 이 있고 그 인기전공이란 대부분 응용학문관련 전공임을 고려할 때 학부모의 영향력 행사는 기초학문의 도태와 일부 인기전공으로의 학생편중을 가중시키는 한 요인으로 작용하는 것으로 보여진다.

이와 같은 특정전공에의 학생 편중현상은 교육의 질을 떨어뜨리는 하나의 요인으로 작용한다. 제한된 교수진과 교육기자재로 갑자기 많아진 학생들에게 질 높은 교육을

8) 미국과 유럽의 경우 대학교육비를 부모가 부담하는 것은 예외적인 경우이고 일반적으로 학생자신이 부담하거나 정부가 부담하는 형식이 보편적이다. 유럽의 많은 나라(영국, 프랑스, 독일 등)에서는 대학교육의 공익성을 인정하여 학비를 정부가 부담한다. 미국의 경우 주립대학에는 막대한 주정부 와 연방정부 보조금이 투입되어 학비가 상대적으로 싸다. 사립대학의 경우 학생이 부담하여야 하는 등록금이 상당히 비싸지만, 대학생에 대한 장기저리융자제도가 잘 발달되어 있어 대학생들이 학업 을 마치고 취업한 후에 서서히 갚을 수 있다.

(22)

<그림 3> 전공지식의 유형에 대한 선호도

9 0

2 3 2

0 5 0 1 00 1 50 2 00 2 50

일 반 적 인 지 식 특 성 화 된 지 식

<그림 4> 전공선택에 영향을 준 요인

45

86 26

21 14

103 10

11 25

0 20 40 60 80 100 120

선배 부모님 교수님 친구 과설명회 전공탐색과목 팜플렛(홍보지) 전공별특강

기타

제공한다는 것은 거의 불가능한 일이다. 더욱이 이들 인기전공들은 학생들을 유치하 려고 노력하지 않아도 학생들이 몰리기 때문에 교과과정이나 교육내용을 학생들의 필 요와 사회의 요구에 맞게 개선하려는 인센티브가 오히려 약해지는 경향이 있다. 대부 분의 인기전공이 응용학문관련 분야이고, 응용학문의 교육내용은 오랜 역사를 통해 교육과정이 상당부분 정형화된 기초학문에 비해 수시로 바뀌어야 하는 특성이 있는 점을 고려한다면, 학생의 인기전공 편중현상은 장기적으로 국가경쟁력 저하의 한 요 인으로 작용할 수도 있다.

이와 같은 우려가 기우가 아님을 A대학의 경우를 통해 확인해 볼 수 있다. <그림

(23)

<그림 5> A대학의 2000학년도 각 대학 전공별 현황

2000학년도 문리대학 전공별 현황

0.00 0.50 1.00 1.50 2.00 2.50

국어국문학 영어영문학 사학 철학 수학 물리학 화학 생명과학 전산학 통계학 생자공

96대비 재적생수 상대적 취업률 상대적 강의평가

2000학년도 경법대학 전공별 현황

0.00 0.50 1.00 1.50 2.00 2.50 3.00

경제학 경영학 경영정보학 행정학 법학 국제관계학

96대비 재적생수 상대적 취업률 상대적 강의평가

2000학년도 보건과학대학 전공별 현황

0.00 0.50 1.00 1.50 2.00 2.50 3.00

보건행정 임상병리 재활학 의공학 환경공학

96대비 재적생수 상대적 취업률 상대적 강의평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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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에는 1996년 대비 2000년도 전공별 재적생수, 2000년도 졸업생들의 전공별 상대적 취업률, 2000년도 2학기 전공별 상대적 강의평가가 함께 표시되어 있다. 전공별 상대 적 취업률은 각 전공 졸업생의 취업률을 그 전공이 속해 있는 대학졸업생의 평균취업 률로 나눈 것이다. 상대적 강의평가 역시 전공별 강의평가의 평균치를 그 전공이 속해 있는 대학의 강의평가 평균치로 나눈 것이다. 따라서 이 숫자들이 1보다 크면 대학 평균에 비해 그 전공이 더 높은 취업률을 달성했거나 또는 더 높은 강의평점을 받았다 는 의미이다.

문리대학에는 인문과학부와 자연과학부가 같이 포함되어 있는데, 인문과학부에서 인기몰이를 하고 있는 영어영문학전공의 취업률이 가장 저조하여 대학평균의 35%에 도 미달하는 것으로 밝혀졌다. 오히려 급격히 위축되고 있는 사학과 철학전공의 취업 률이 어문학 전공의 취업률을 앞서고 있으며 강의평점도 뒤지지 않는 것으로 나타나 있다. 자연과학부에서 가장 인기 있는 전공인 전산학의 취업률 또한 가장 저조한 것으 로 드러났다. 가장 심한 위축을 경험하고 있는 수학과 물리학전공의 취업률과 강의평 점이 오히려 평균을 웃도는 수준임을 볼 수 있다. 자연과학부 내에 속해 있는 전공들 간의 취업률 및 강의평점 편차가 상대적으로 적은 점도 주목할 만하다.

경법대학에서는 경영정보학과 법학전공이 가장 가파르게 팽창하였다. 경영정보학 전공은 취업률과 강의평점에서 모두 평균을 웃도는 성과를 보이고 있으나 법학전공의 경우 취업률이 극히 저조하여 대학 평균의 30%에도 못미치는 수준이다. 강의평점에 있어서도 경법대학에서 상대적으로 팽창하고 있는 경영학과 법학전공이 상대적으로 낮은 점수를 보이고 있다. 가장 심하게 위축되고 있는 경제학전공의 취업률과 강의평 점이 상대적으로 가장 높은 것도 앞의 인문과학부나 자연과학부의 경우와 궤를 같이 하고 있다.

모든 전공이 응용학문으로 분류되는 특성이 있는 보건과학대학의 경우에는 특정 전공으로의 지나친 편중현상이나 특정전공의 지나친 위축현상이 적은 것으로 나타나 고 있다. 여기서 특기할 것은 임상병리학전공 졸업생들의 취업률이 크게 낮은 것으로 보이지만 이는 임상병리사의 취업시점이 졸업시점과 일치하지 않기 때문에 생기는 현 상이며 사실상 임상병리학전공 학생들의 취업률은 매우 높은 수준인 것으로 알려져 있다. 의공학전공의 경우 취업률과 강의평점에 있어서 모두 평균수준을 웃돌고 있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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며 재활학의 경우 재적생수는 1996년에 비해 약간 줄었지만 취업률은 평균에 비해 두배 이상 높은 것으로 파악되고 있다.

결과적으로 학부제의 도입은 몇몇 인기전공으로의 학생편중현상을 야기시켰으나, 이들 인기전공이 제공하는 교육이 특히 사회적 요구와 더 잘 부합한다든지 혹은 더 양질의 교육이라는 증거를 포착하기는 거의 불가능한 것으로 보인다. A대학의 사례가 우리에게 말해 주는 것은 학생들의 전공선택이 장기적인 능력배양을 목적으로 이루어 지기보다는 근거없는 사회적 통념을 따르는 경우가 상당히 많다는 점이다. 특히 기초 학문과 응용학문이 같은 학부에 편재되어 있을 때 나타나는 기초학문 기피현상은 장 기적으로 개인의 생산성향상뿐 아니라 국가경쟁력의 제고에도 극히 부정적인 영향을 미칠 것으로 우려된다. 이와 같은 부작용의 큰 원인 중의 하나는 학부제를 도입하는 과정에서 시장의 범주를 잘못 설정하여 보완성이 강조되어야 할 기초학문과 응용학문 을 경쟁적인 관계로 만들었다는 것이다. 기초학문과 응용학문의 시장은 반드시 분리 시켜야 하며 동종학문의 대학간의 경쟁이 활성화되도록 시장의 범주가 형성되어야 한 다. 예를 들어 응용학문은 전문대학원화하고 학부는 기초학문 중심으로 편성하는 방 법, 그것이 현실적으로 어렵다면 학부라는 단위를 너무 크게 만들지 말고 비슷한 속성 을 가진 전공끼리 작게 묶는 방법 등을 생각해 볼 수 있을 것이다.

Ⅳ. 학부제와 기업의 수요에 부합하는 대학교육 : 잘못된 문제의식과 처방

기업은 대학이 육성한 고급인력을 고용하는 대학교육의 간접수요자이다. 언론과 그 리고 고등교육정책 담당자들이 현재의 대학교육이 산업현장에서의 필요를 충족시키 지 못하는 구태의연한 교육이라고 비판하는 소리를 우리는 자주 접하고 있다. 최근의 대학졸업자들의 저조한 취업률은 대학교육이 급속하게 변하는 산업구조와 기업의 필 요에 맞는 인력공급에 실패하고 있다는 증거로 자주 인용되고 있다. 요즘과 같이 시장 원리에 대한 믿음이 확산된 상황에서는 이와 같은 지적이 많은 사람들에게 쉽게 공감 을 불러일으키고 있다. 고급인력수급의 불균형은 졸업생의 수와 일자리 수의 불일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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에서 오는 양적인 불균형과 졸업생의 자질과 기업이 요구하는 능력의 불일치에서 오 는 질적인 불균형으로 나누어 생각해 볼 수 있다.

1. 고급인력수급의 양적 불균형

고급인력수급상의 양적 불균형의 핵심은 인문사회계열과 이공계열간의 불균형이라 는 점이 충분히 강조될 필요가 있다. <표 4>에서 보는 바와 같이 1980년대에 4년제 대학교육의 인문화 현상이 매우 뚜렷하다.9) 1981년 28.7%였던 인문계의 비중이 10년 후인 1990년에는 44.4%로 급격히 증가하였으나 이공계의 비중은 32.5%에서 26.3%로 크게 감소하였다. 1990년대 들어 이와 같은 고급인력수급의 계열간 불일치를 줄이기 위한 교육부의 정책적 노력으로 이공계의 대학정원이 인문사회계의 대학정원에 비해 훨씬 빠르게 증가함으로써 2000년에는 인문사회계와 이공계의 비중이 각각 41.6%와 39.9%로 조정되었으며 이와 같은 추세가 앞으로도 계속 이어진다면 이공계의 비중이

<표 4> 4년제 대학 계열별 졸업생 추이

(단위 : 명, %)

구 분 인문사회계 이공계 기 타 합 계

1981 1986 1990 1995 2000

16,310(28.7) 55,641(40.4) 73,626(44.4) 74,490(41.2) 89,146(41.6)

18,484(32.5) 37,986(27.6) 43,601(26.3) 57,205(31.7) 85,546(39.9)

22,047(38.8) 44,221(32.1) 48,689(29.3) 48,969(27.0) 39,806(18.6)

56,841(100) 137,848(100) 165,916(100) 180,664(100) 214,498(100) 연평균증가율

1981-1986 1986-1990 1990-1995 1995-2000

27.8 7.3 0.2 3.7

15.5 3.5 5.6 8.4

14.9 2.4 0.1 -4.1

19.4 4.7 1.7 3.5 주 : ( ) 안은 전체에서 차지하는 비중임.

자료 : 교육부, 교육통계연보 , 각 연도.

9) 이와 같은 교육의 인문화 현상은 전문대학에서도 비슷하게 나타나고 있다. 전문대학에서는 인문화 현상이 1990년대 초반까지 계속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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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표 5> 산업기술인력 부족현황

(단위 : 명, %)

구 분 현 원 부족인원 부족률

박 사 4,885 1,025 21.0

석 사 29,827 3,055 10.2

학 사 218,152 11,466 5.2

전문대졸 113,257 10,599 9.4

고 졸 263,212 11,318 4.3

계 629,692 37,463 5.9

주 : 부족률=(부족인원/현원)×100

자료 : 산업자원부(1998.2), 산업기술인력 실태조사에 근거한 인력수급 원활화 방안 연구 (강성원 외 (2001)에서 재인용)

인문사회계의 비중을 곧 앞지르게 될 것으로 전망된다. 이와 같이 계열간 불균형이 조정되는 과정에 있지만 <표 5>에 나타난 산업기술인력의 부족현상은 여전히 심각한 수준이다. 따라서 앞으로도 이공계 쪽의 교육비중을 늘리는 방향의 정책이 계속되어 야 할 것이라는 것을 알 수 있다.

그렇다면 이와 같은 대학교육의 인문화 현상은 왜 일어난 것일까? 이 의문에 대한 대답의 실마리는 인문사회계 졸업자들과 이공계 졸업자들의 평균임금의 격차에서 찾 아볼 수 있다. <표 6>은 한국노동연구원이 만들고 있는 한국노동패널데이터의 첫 번 째 연도분인 1998년 자료를 이용하여 대학교육이수자의 전공별 임금분포를 보여주고 있다. 이 표에 의하면 인문사회계열(전공 1) 출신의 임금수준이 이공계(전공 2)나 기타 전공(전공 3) 출신에 비해 높은 것을 알 수 있다. 기능직에 비해 사무직을 선호하는 문화적 배경에 더해, 인문사회계열의 대학교육에 대한 투자가 노동시장에서 더 많은 보상을 받기 때문에 인문사회계열의 대학교육에 대한 수요가 자연히 많을 수밖에 없 는 것이다.

이러한 상황에서 만약 교육부가 계열별 정원을 통제하지 않고 시장에만 맡겨 놓는 다면 대학교육의 인문화 현상은 더욱 심화될 것이다. 예를 들어 미국의 많은 대학들처 럼 모집단위를 극단적으로 광역화하여 문과와 이과 구분없이 학생을 선발하고 입학한

(28)

<표 6> 대학교육 이수자의 전공별 분포 및 임금 노동자수

(명)

비율 (%)

평균교육년수 (년)

시간당 평균임금 (원)

전공1 282 20.9 15.7 7,517

전공2 529 39.2 15.4 6,792

전공3 531 39.4 15.6 6,965

미 상 7 0.5 14.9 5,812

주 : 전공1은 경상, 법정, 사회과학계열의 학과이고, 전공2는 컴퓨터, 건축, 공학, 자연과학, 의학, 수학과 등이고, 전공3은 기타의 모든 학과를 포함함.

자료 : 1998년 한국노동패널(장수명․이번송(2001)에서 인용)

학생들로 하여금 1년 또는 2년 후에 인문사회계열과 이공계의 전공 중 아무 제약없이 하나를 선택할 수 있게 한다면 대학의 인문화 현상은 더욱 심화될 수밖에 없다. 이러 한 관점에서 볼 때, 현재 일부 대학들이 시행하고 있는 교차지원허용제도는 고급인력 의 양적인 수급균형회복에 도움이 되지 않는 정책임을 알 수 있다.

과연 현재 시행되고 있는 형태의 학부제는 고급인력의 양적인 수급불균형 해소에 도움이 되는 제도인가? 학부제를 시행하는 모든 대학들은 인문사회계열과 이공계열 간에 모집단위를 구분하고 있으며 대부분의 대학들은 같은 계열 내에서도 모집단위를 학부라는 단위로 더 세분화하고 있다. 따라서 현재 많은 대학들이 시행하고 있는 형태 의 학부제는 고급인력의 양적 불균형을 특별히 심화시키지도 않지만 그렇다고 불균형 해소에 도움이 되는 것도 아니라는 것을 알 수 있다. 현행 학부제는 학부단위로 묶여 있는 전공들 중 응용성이 강한 쪽으로 학생들이 몰리게 하는 역할을 하고 있을 뿐이기 때문이다.

2. 고급인력수급의 질적 불균형

현재 한국의 대학교육은 산업현장에서 필요한 능력을 가진 양질의 인재를 육성하지 못한다는 비판을 우리는 자주 대할 수 있다. 그러나 산업현장에서 필요한 능력이 과연 무엇인지에 대한 조리있는 설명을 접하기는 그리 쉽지 않다. 막연하게 생각하면 산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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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장에서 필요한 인력이란 취업과 동시에 바로 현장에 투입되어 일할 수 있는 능력을 가진 근로자라고 생각하기 쉽다. 즉 “즉시” 사용가능한 “준비된” 졸업생을 양산할 수 있는 대학교육이 필요하다는 요구로 해석할 수 있는 소지가 다분하다. 이는 기업이 원하는 직업교육의 의미를 지극히 좁게 해석한 것으로서 일부 정책 당국자들, 언론 그리고 대학 경영자들이 갖고 있는 인식이다. 이와 같은 해석은 사실상 잘못된 것이라 는 것을 곧 보이겠지만 일단 이 해석이 옳다고 가정해 보자.

대학교육이 즉시 사용 가능한 고급인력을 육성해 내는 역할을 충실히 하기 위해서 는 대학교육이 직업교육vocational education 중심으로 대폭 재편되어야 하며 대학의 조직 과 교육내용도 산업구조의 변화와 더불어 계속적으로 변할 수 있는 형태로 바뀌어야 한다. 대학교육을 직업교육 중심으로 재편하기 위해서는 일반교양교육liberal education을 강조하는 4년제 종합대학을 대폭 축소 내지 폐지하고 기능습득과 자격증취득을 위주 로 하는 전문대학 중심의 고등교육체제로 전환하는 일이 불가피할 것이다. 한 걸음 더 나아가 특정산업이 요구하는 인력을 효과적으로 공급하는 체제를 갖추기 위해서는 사범대학, 경찰대학, 사관학교 등이 있는 것처럼, 금융산업대학, 자동차산업대학, 전자 /반도체산업대학, 컴퓨터 소프트웨어대학 등의 형태로 특정 산업 또는 관공서를 위한 맞춤식 교육을 하는 대학조직이 확산되어야 할 것이다. 그러나 현재 시행되고 있는 형태의 학부제로는 이와 같은 본질적인 대학개편작업을 이루어 낼 수 없다는 사실은 너무 자명한 것이다.

만약 고등교육기관이 기업활동에 즉시 사용될 수 있는 인력을 배출하고 기업이 이 들을 고용함으로써 기업의 경쟁력을 높이는 데 실제로 크게 기여할 수 있다면 기업들 은 자금을 투자하여 필요한 인력을 양성시키는 교육기관을 직접 설립하거나 기존 교 육기관의 교육내용을 기업의 필요에 부합하는 맞춤식 교육으로 바꾸는 데 소요되는 비용을 부담할 의사가 있을 것이다. 포항공대와 한라공대와 같은 기업에 의한 교육기 관의 설립과 최근 경영, 공학, 디자인 등을 중심으로 대학원 과정에서 활성화되고 있 는 산학협력에 의한 교육과정개발이 그 좋은 예이다. 이것이 바로 진정한 의미의 시장 원리이다. 왜냐하면 기업에 의한 교육참여와 교육비용분담이 제도화되어야 비로소 기 업들의 맞춤식 고등교육에 대한 수요의 강도가 얼마나 되는지가 교육시장에 효과적으 로 반영되고, 따라서 자원배분의 효율성이 크게 높아질 것이기 때문이다. 그러나 현재

참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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9) KDI: Korea Development Institute, KLI: Korea Labor Institute, KRIVET: Korea Research Institute for Vocational Education &amp; Training, STEPI: Scienc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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