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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쉼터] 로마로 가는 길은 여러 갈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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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36 Polymer Science and Technology Vol. 17, No. 2, April 2006

3월 초에 고분자 과학과 기술지에 “쉼터” 원고를 써 달라는 부탁을 받았다. 4월 10일까지만 쓰면 된다고 하는 넉넉함에 넘어가서 승낙을 하였는데 막상 4월 초에 쓰려고 하니 뭘 써야 되는지 생각이 나지 않는다. 앞에 게재된 원고를 보니 진정일 교수님은 좋은 책을 소장하고 계시고 조의환 교수님은 고서에도 박식하시고 한자도 많이 쓰셨는데 뒤돌아 보면 나는 너무 단조롭고 메마른 생활을 하여 쉼터에 쓸 소재가 없다. 강의하고 학생들 실험 잔소리하고 매일 똑같은 생활에 별 취미도 다양하지 못하여(사실 한 가지 특별 한 취미(?)는 있지만 쉼 터에 쓰기는 좀 곤란한 소재라서) 며칠을 궁리하다 결국 옛날 KIST에서 연구수(硏究手)로 일하던 때의 얘 기를 쓰기로 하였는데 과연 고분자 과학과 기술지의 독자에게 쉼터가 될지 의문이다.

KIST 설립 초기인 1960년대 말에는 한국의 외환사정이 어려워 외국여행은 규제가 많았고 외제품의 수입도 매우 드물었다. 중소 기업 사장님들이 모처럼 해외여행을 하시면 주로 미국의 슈퍼마켓에서 한국에서 장사가 될 만한 물건을 사들고 KIST를 찾아 오셔 서 이 제품을 개발해 달라는 요청이 종종 있었다. 물론 연구하는 손(手)인 나에게 오지는 않고 김은영 고분자 연구실장님에게 오시 는데 그렇게 하여 맡은 프로젝트가 PP flexible straw이다. 폴리프로필렌을 튜브로 압출하여 직관의 스트로로 쓰이는 국산 제품은 있지만 이 flexible straw는 튜브 위쪽에 굴곡부분(접이부분 혹은 자바라부분)이 있어 여러 각도로 자유롭게 똑 똑 똑 소리 내며 구 부려진다. 제품은 내 기억에는 미국의 유니온 카바이드사제품으로 알록달록한 색깔에 한 20개들이 포장을 여러 개 사 오셨다. 병원 에서 환자가 누워서도 음료수를 마실 수 있는 것이 장점이란다. 보통 프로젝트를 시작하면 특허 조사부터 하는데 이 flexible straw 는 특허도 안 나오고 아마 너무 쉬운 기술이라 특허가 없는가 하였다. 처음 생각에 그 접이부분은 blow molding을 하여 만들면 될 것으로 쉽게 생각되어 우선 blow molding 금형을 만들었다. 압출기에서 parison으로 PP 튜브가 내려오면 금형으로 잡아 밑에서 공 기로 불어 넣어 모양이 좋은 flexible straw가 만들어 졌다. 그러나 이 blow molding한 제품은 모양은 갖추어 졌는데 아무리 구부려 도 잘 구부려 지지가 않았다. 유심히 살펴보니 금형 두 쪽이 만나는 접합선이 있는 측면에 가는 줄이 나 있어 그곳의 두께가 튜브의 두께보다 약간 두꺼워지기 때문에 구부려지지 않는 것이다. 처음에 너무 쉽게 생각하고 시작하였던 터라 한번 난관에 부딪치니까 아 무런 아이디어가 생각나지 않았다. 내 기억에는 몇 달을 궁리하고 꿈에서도 생각을 하였는데 좋은 방안은 없고 그렇다고 문헌에 나 오지도 않았다. 어느 날 문득 그 스트로의 단면을 찍어 볼 생각이 났다. 스트로를 면도칼로 잘라 단면을 현미경으로 들여다 보니 접 이 부분의 접히는 산과 골 부분이 약간 패여 있고 두께가 튜브 두께보다 얇았다. 아 하 이렇게 접히는 산과 골 부분의 두께가 얇아 야 잘 접히는 구나. 그럼 blow molding 보다는 두께가 얇아지기 위해선 좀 깎아 내면서 저온 연신 성형을 해야 되겠다는 생각이 떠 올랐다. 우선 직관의 PP 튜브를 만든 후 접이부분 요철(凹凸)의 凸 부분을 스테인리스 봉 가운데에 가공하고 이 봉을 공작실의 선 반에 물렸다 그 봉 바깥으로 PP 튜브를 끼우고 외부에서 凹 부분이 가공된 스테인리스 봉을 서서히 맞물리면서 밀어 넣어 상온연신 가공을 한 결과 접이부분의 산과 골이 약간 깎이면서 훌륭한 접이 부분이 성형되었고 구부리면 똑, 똑, 똑 소리 내며 멋지게 꺾이지 않는가. 마치 해 묵은 빚을 다 청산하고 숙제도 다 끝낸 기분이었다. 이 flexible straw를 양산하는 기술은 KIST 공작실에서 선반대 신 회전축이 많은 기계를 만들고 PP직관도 pneumatic으로 이송하여 다량 성형하는 제조기를 만들어 공장도 지었다. 동남아에 많은 수출도 하여 성공한 것으로 알고 있다.

또 이맘때 맡은 프로젝트의 하나가 셀룰로오스 스폰지 프로젝트다. 이 프로젝트도 어느 분이 미국의 슈퍼마켓에서 주방용 스폰지 를 구입하셔서 가져 오셨는데 노란색, 초록색, 파란색등 아주 깨끗한 색상에 물을 금방 흡수하고 물을 짜 내면 곧 다시 원상으로 복 원된다. 비위생적인 행주나 걸레대신 이 셀룰로오스 스폰지를 개발하면 주방용은 물론 여성용 생리대에도 쓸 수 있다는 것이 프로젝 트를 맡긴 분의 설명이다. 이 셀룰로오스 스폰지는 그러나 특허도 쉽게 찾을 수 있었고 그 제조법에 관한 문헌이 꽤 있었다. 원리는 비스코스 레이온이나 셀로판을 만드는 재생 셀룰로오스 제조방법에 스폰지의 기공을 만들기 위하여 황산 나트륨 결정을 넣고 대마, 아마등 보강 섬유를 배합하여 셀룰로오스 응고 시에 결정을 물에 녹여 내어 기공을 형성케 하는 것이다. 그 당시 서울 변두리 구리 시에 원진 레이온이 있어(지금은 공해문제로 폐쇄되어 아파트 단지가 들어 있음) 인견사 만드는 공장도 볼 수 있었고 원진 레이온에 서 재생 셀룰로오스의 원료인 알파-셀룰로오스도 얻을 수 있어 연구는 일사 천리로 잘 진행되었다. 알파-셀룰로오스를 가성소다용 액에 함침시켜 알칼리 셀룰로오스를 만들고 여기에 이유화 탄소(CS2)를 반응시켜 셀룰로오스 잔테이트로 변환시키면 알칼리 수용액

로마로 가는 길은 여러 갈래?

김 성 철 (KAIST 생명화학공학과) 쉼 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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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분자과학과 기술 제 17 권 2 호 2006년 4월 237

에 녹는 노란색의 점성이 높은 액을 얻을 수 있다. 아마도 비스코스 레이온으로 불리는 어원도 이 viscous한 용액 때문인 것 같다.

망초(황산 나트륨) 결정은 결정온도나 망초 수용액의 농도를 조절하여 그 크기를 잘 조절할 수 있었다. 니다(kneader)로 불리는 혼 합기에 비스코스원액과 망초 결정, 보강섬유인 아마섬뮤를 넣고 잘 섞은 다음 응고시켜 보기 좋은 셀룰로오스 스폰지를 얻었다. 이 공정은 요새 고분자 스캐폴드(scaffold) 제조에서 salt leaching 방법과 같다. 그러나 이렇게 쉽게 잘 진행되던 연구가 벽에 부딪쳤 다. 겉 모양이나 기공 형성은 잘 되었는데 물을 흡수하는 속도도 느리고 물을 짜 낸 후에도 원형으로 복원되는 데 시간이 걸렸다. 외 국 제품은 물도 금방 흡수하고 빠지기도 잘 하는데 영문을 알 수 없었다. 특허를 다시 읽어 보아도 뭐가 문제인지 알 수 없었다. 이 것도 한 달은 고민한 것으로 생각된다. 이 셀룰로오스 스폰지도 잘라서 현미경으로 들여다 보니 큰 기공의 벽면이 내가 만든 스폰지 는 매끈한데 비해 외국 제품은 미세한 기공이 많이 있었다. 아! 하! 이 미세한 기공이 있어야 물의 출입이 자유스럽게 되는구나. 이 미세한 기공은 결정이 아닌 무수망초를 갈아서 가는 분말을 만들고 이 분말을 배합에 넣어 성공하였다. 이 프로젝트를 맡긴 분은 곧 제조공장을 지어 백화점에도 납품하였으나 공짜로 얻어지는 헌 런닝셔츠를 재활용하는 걸레나 행주와 도저히 경제적으로 경쟁이 되 지 않아 문을 닫았다고 한다. 1970년대 초의 국민 소득 수준에 안 맞는 제품으로 실패한 것이다.

로마로 가는 길은 여러 갈래이다. 요즘의 학생들은 중, 고 시절부터 모범답안만 주입식으로 교육받아 모범답안이 안 나오면 어쩔 줄을 모르고 정답은 하나라는 생각에 사로잡혀 한번 장벽에 부딪치면 해결할 줄을 모른다. 로마로 가는 길이 여러 갈래이고 어느 길 이 정답인지는 세월에 따라 변한다는 생각을 한다면 길을 어떻게 하던 찾아 낼 텐데 하는 아쉬움이 많다. 건강을 생각한다면 산길을 지나는 것이 정답이고, 시간에 쫓기면 고속도로를 이용하는 것이 정답이다. 경치를 즐기며 간다면 해안가를 돌아 갈 수도 있다. 정답 은 하나가 아니라 여러 가지이고 조건에 따라 변한다. 고분자 제품의 제조 공정도 경제성이 우선인지 환경보호가 우선인지에 따라 정답이 바뀌고 경제성도 유가 변동에 따라 원료의 조달용이성에 따라 정답이 바뀐다. KAIST가 홍릉에서 대전으로 이전한 1990년 이후 매주 한 차례씩 서울-대전을 자동차로 다닌지 이제 15년이 넘었다. 서울 가는 길도 여러 갈래다. 처음에는 경부 고속도로가 시간이 덜 걸렸지만 요새는 중부 고속도로가 정답이다. 우리 학과 모 교수는 국도로 다닌다. 고분자를 합성, 가공, 개발하는 길도 여 러 갈래이다. 제발 정답이 하나라는 생각을 버려야 창의성도 나오고 혁신적 아이디어도 나온다. 또 어려움을 극복하는 힘도 나온다.

앞서 얘기한 PP flexible straw도 실제 유니온 카바이드에서 어떻게 제조했는지 또 다른 외국에서는 어떻게 제조하는지 30여년이 지난 지금도 모른다. 한번도 제조공장을 가본 적도 없다. 그러나 그때 KIST에서 개발한 공정이 로마로 가는 길 중의 한 갈래이고 아직도 이용되는 길임에는 틀림없다.

참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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