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검색 결과가 없습니다.

동남아시아의 고대 교역과 글로벌 커넥션, 기원전 2000년~기원후 500년

N/A
N/A
Protected

Academic year: 2022

Share "동남아시아의 고대 교역과 글로벌 커넥션, 기원전 2000년~기원후 500년"

Copied!
28
0
0

로드 중.... (전체 텍스트 보기)

전체 글

(1)

동남아시아의 고대 교역과 글로벌 커넥션, 기원전 2000년~기원후 500년

39) Hsiao-chun, Hung(저)*·소동섭(역)**

❙국문초록❙

예부터 동남아는 동·서방과 해상에서 교류하는 요지였다. 본고는 동남아를 위주로, 세 개의 문화단계를 나 누어 동남아의 신석기 시대부터 철기시대까지 있었던 교역과 교류 활동을 다룬 것이다. 또한, 본고는 특이한 기물, 동식물, 공예 기술이 동남아와 다른 지역 사이에서 장거리로 유통되었다는 것을 고고학적 증거로 제시한 다. 초보적 교역과 교류 활동은 동남아 이외의 다른 지역에도 문화적 영향을 깊게 주었을 뿐만 아니라 장거리 교역을 통해 동남아의 내부 사회구조도 더욱 복잡해졌고 문화적 함의로 더욱 다양해졌다. 세계사적 맥락에서 동남아의 고대 교역활동을 보면, 고대 동남아의 특수성을 더욱 잘 볼 수 있다.

[주제어] 동남아, 해상 실크로드, 고대 교역, 고대 교류, 문화적 접촉

❘목 차❘

Ⅰ. 서 론

Ⅱ. 기원전 2000년~기원전 500년: 동남아 교역 교류의 초기

Ⅲ. 기원전 500년~기원전 200년: ‘해상 실크로드’ 이전의 ‘해상 실크로드’(Maritime Silk Road before Maritime Silk Road)

Ⅳ. 기원전 200년~기원후 500년: 초보적 단계의 ‘해상 실크로드’

Ⅴ. 결 론

Ⅰ. 서 론

우리는 인도와 중국이라는 두 거대 문명국 사이에 위치한 동남아시아(Southeast Asia, 이하 동남아)를 항 상 문화적 변경이나 문화적으로 정체된 곳으로 여기면서 세계 고대문명을 다룰 때, 동남아의 중요성을 소홀

* 오스트레일리아대학교(Australian National University) 교수 / hsiao-chun.hung@anu.edu.au

**단국대학교 대학원 사학과 졸 / soh0108@naver.com

(2)

<그림 1> 동남아의 지리적 위치

히 했다. 아시아의 동남부에 위치한 동남아에서 서쪽과 북쪽으로 인도와 중국이 각각 위치해 있고 동쪽에는 태평양의 여러 섬들이 있어서 태평양과 인도양 사이의 교차로에 위치한 지역이다. 동남아는 유리한 지리적 조건을 가졌기 때문에, 全 지구적인 장거리 교역이 활발해지기 시작한 기원전 500년부터 세계 교역 네트워크 에서 중요한 위치를 차지했다.

동남아 지역은 광활하며, 이곳의 민족과 문화는 다양하다. 본고에서 다루는 시간적 배경은 주로 기원전 2000년부터 기원후 500년까지이다. 이 시기의 동남아에는 고유 문자 체계를 발전시키지 못했다. 물론 동남 아의 고고 유물에서 산스크리트어(梵語, sanskrit)가 간혹 확인된다. 예컨대, 기원후 2세기까지 소급될 수 있 는 시기의 황금 도장이나 비문에서 문자가 확인된다. 그러나 이들은 주로 5세기에 이르러서야 흔히 확인된 다. 즉, 동남아의 초기문자 기록은 굉장히 적고 기록의 연대도 늦다. 이러한 이유에서 우리는 인접한 중국과 인도의 고대 문헌 기록이나 심지어 로마를 통해서 동남아 고대 문화를 이해해야만 한다. 그밖에 고대 동남아 를 이해할 수 있는 직접적인 증거는 동남아나 그 인근 지역의 고고 유적에서 출토된 자료들이다. 고대 문헌 과 고고학적 증거는 고대 동남아 경제 발전의 척도, 다른 문명과의 교류 양상을 재구성하는데 이바지한다. 본고는 고대 동남아 문화를 세 단계로 나누어 ‘동남아의 고대 교역과 글로벌 커넥션’을 논의할 것이다. 첫 번 째 단계는 기원전 2000년부터 기원전 500년(동남아의 신석기 시대)에 나타나기 시작한 지역적 교환(exchange)

(3)

시기이다. 두 번째 단계는 기원전 500년부터 기원전 200년(동남아의 완전 금속시대)인데, 이 시기의 동남아 에 각 지역의 사회와 문화에 뚜렷한 변화가 발생했고 수많은 장거리 교역과 다자교역이 존재했다. 이 시기에 동남아는 인접한 중국, 인도와 빈번히 교류했다. 세 번째 단계는 동남아가 기원전 200년부터 기원후 500년 에 나타난 해상 실크로드(Maritime Silk Road)를 통해 유라시아 대륙과 연결되어 세계 각지나 여러 고대 문 명과 장거리로 교역하기 시작한 시기이다. 첫 번째 유라시아 세계 체제(the first Eurasian World System) 가 이 시기에 구체적으로 형성되었다고 할 수 있다.

본고에서 다루는 동남아(공간적 배경)는 동남아 본토(Mainland Southeast Asia)와 동남아의 도서(島嶼) 지역(Island Southeast Asia)을 포괄한다(그림 1). 동남아 본토는 인도차이나 반도에 있는 다섯 개의 현대 국가(베트남, 라오스, 캄보디아, 태국, 미얀마)를 지칭한다. 동남아의 도서 지역은 남태평양에 위치한 여섯 개의 현대 국가(말레이시아, 인도네시아, 필리핀, 보르네오, 싱가포르, 동티모르)이다. 물론 타이완(臺灣)은 필리핀의 북쪽에 위치해 있지만, 신석기 시대부터 동남아의 여러 섬들과 밀접한 관계에 있었기 때문에 (Bellwood, 2007) 본고에서 다루는 동남아의 도서 지역의 범주에 타이완을 포함할 것이다. 여러 고고학적 증거와 고대 문헌기록은 교역이나 교환 활동가 다양했다는 것을 반영하지만, 본고에서는 지면 관계상, 세 문 화 단계의 사례만을 제시하여 각 시기 교역의 성격, 규모, 형식을 증명할 것이다. 이를 통해 동남아가 고대 문명사에서 가지는 역할과 위상을 알 수 있을 것이다.

Ⅱ. 기원전 2000년~기원전 500년: 동남아 교역 교류의 초기

동남아의 신석기 문화(Neolithic Culture)는 지금으로부터 4000년 전에 시작되었다. 신석기 시대 동남아 사람의 기원에 대한 문제는 동남아 고고학에서 가장 활발한 연구 중 하나이다. 고고학(Zhang and Hung, 2010; Bellwood, 2005, 2017; Higham, 2014)과 형질(形質)인류학(Matsumura et al., 2019) 등의 연구는 신석기 시대의 동남아 사람들이 주로 남중국에서부터 왔다고 밝혔다. 최근에는 고인류 유전자연구(McColl et al., 2018; Lipson et al., 2018) 등을 통해, 현재 동남아 사람들의 주요 집단이 지금으로부터 약 5000~4000 년 전의 남중국에서부터 왔다는 사실도 이미 증명됐다. 본고는 선사시대 동남아의 교역을 주로 다루기 때문 에 동남아의 선사시기에 대해 자세히 논할 수 없다. 그러나 신석기 시대의 동남아 사람들의 기원과 이동 문 제가 향후 교역권 형성과 밀접한 관계가 있다는 것만큼은 분명히 알 수 있다.

지금으로부터 4000년 전부터 2500년 전까지의 동남아에서 다양한 형식의 교환이나 교역 행위가 출현했는 데, 이들 대부분은 지역적인 성격을 가진다. 이 시기에 교환이나 교역했던 물품과 형식에 대한 실마리가 고 고유적 중에서 보존상태가 양호한 석기와 토기를 통해서 확인된다. 그러나 당시에는 식물, 동물 혹은 먹을거 리가 주요 교역 품목이었기 때문에 유기물이 주를 이룬다. 교역품의 기원과 분포 범위를 분석하여 당시의 교 환과 교역 활동의 규모를 추론할 수 있다. 당시의 몇몇 사례가 여기서 설명될 수 있는데, 타이완 해협의 감람

(4)

석 현무암(olivine basalt) 석기 교역, 보르네오의 흑요석 교역(obsidian trade), 베트남과 중국 싼싱두이(三 星堆)에서 있었던 아장(牙璋, Yazhang blades)과 유령환(有領環, T-sectioned bracelets) 등과 같은 특수 옥기의 교환이다. 이들은 아래에서 간단히 언급할 것이다.

1. 타이완 해협의 석기 무역

타이완 해협의 펑후(澎湖) 제도(諸島)에는 감람석 현무암이 풍부하다. 펑후 제도 중 치메이(七美) 섬에서 는 기원전 2200년~기원전 1800년의 연대로 추정되는 세 곳의 대형 선사시대 석기 제작터 유적이 확인됐다. 유적 곳곳에는 감람석 현무암으로 만든 반제품(毛胚, preforms), 격지, 타제석기용 망치돌 등이 있었다(그림 2). 타이완의 서해안 평원에 석기 제작에 좋은 돌감이 부족했기 때문에, 4000년 전에는 배를 통해 치메이 섬 의 많은 반제품을 타이완 서해안으로 운송하여 가공했다.

<그림 2> 타이완 해협의 펑후 치메이 섬 중 시베이완(西北灣) 선사시대 석기 제작 터 유적 4000년 전에 이곳의 많은 반제품이 타이완 서해안으로 수입되어 가공되고 사용됐다(직접촬영)

타이완 서해안인 타이난(臺南)의 몇몇 신석기 유적에서는 치메이 섬의 석기 제작 터와 비슷한 연대의 간석 기가 다수 발견되었다. 이곳의 간석기들은 치메이 섬에서 수입한 반제품을 갈아 만든 석기로, 타이난 지역에 공급되어 사용된 것이다. 같은 시기에 타이완의 일부 물품이 펑후 제도로 수입됐는데, 벼와 좁쌀처럼 펑후의 환경에서 비교적 자라기 어려운 농작물이 포함되었을 것이다. 그밖의 여러 고고 유적에서 타이완 동부의 화롄 옥(花蓮玉)으로 만든 옥기가 펑후 제도로 수입된 사실이 확인되었다(Tsang, 1992; Hung, 2004). 펑후 제도

(5)

로 운송된 것 이외에도 옥기들은 기원전 2000년을 전후한 시기에 고(古) 오스트로네시아 어족(Austronesian speaking population)의 이주 경로를 따라 타이완에서부터 필리핀의 여러 섬과 타이완 동부까지 분포된다 (Hung et al., 2007). 펑후 제도와 타이완 서해안까지의 거리는 약 90㎞~100㎞에 달한다. 게다가 펑후 제도 와 타이완 서해안 사이의 ‘펑후 수도(澎湖水道)’, 이른바 ‘헤이수이거우(黑水溝)’라고 불리는 해구를 항행하기 에 상당히 어려웠다. 그럼에도 타이완 서해안에서 발견되는 치메이 섬의 감람석 현무암으로 제작된 다량의 석기들을 통해, 당시 타이완의 신석기 시대 사람들이 숙련된 항해기술로 타이완 해협을 이미 왕래했다는 사 실을 알 수 있다.

2. 보르네오와 멜라니시아의 흑요석 교역

부킷 텅코락(Bukit Tengkorak)은 보르네오 샤바(Sabah)의 동북부에 위치한 신석기 유적이다. 이 유적의 연대는 기원전 1300년에서 기원전 1000년 사이이다. 이곳에서 멜라네시아의 라피타(Lapita) 문화기에 사용 된 두 종류 화산 유리(흑요석)가 출토되었다. 이들 흑요석은 뉴기니 북부의 애드미랄티(Admiralty) 섬과 뉴 브리튼 북부의 탈라시(Talasea) 반도에서 기원한 것이다(Bellwood, 1989; Chia, 2003). 샤바부터 뉴기니 북부 부근의 흑요석 산지까지 거리는 약 3500㎞에 달한다(그림 3).

이외에도 부킷 텅코락 유적에서 필리핀 중부의 민도로(Mindoro) 섬에서 유입된 것 같은 녹색 운모(雲母, mica) 장식품이 발견되었다(Hung and Iizuka, 2017). 발견된 흑요석과 녹색 운모를 통해서 당시 부킷 텅 코락 사람들이 남북의 섬 주민들과 장거리 교역을 했다는 것을 알 수 있다.

<그림 3> 보르네오 샤바의 동북부에 위치한 부킷 텅코락 유적에서 뉴기니 북부의 작은 섬이 산지인 흑요석이 출토되었다(Chia, 2016)

(6)

3. 베트남에서 출토된 아장, 유령환 등의 옥기

베트남과 중국에서는 서로 유사한 신석기 시대와 청동기 시대의 유물들이 출토되었다. 그 중에서 비교적 특 이한 유물은 아장(牙璋)과 유령환(有領環)이다. 이들은 일반적으로 연옥(軟玉, nephrite jade)으로 제작된다. 아장의 출현 시기는 북중국의 롱산(龍山)문화 시기까지 거슬러 올라갈 수 있다. 중국 중원 지역이 아닌 다 른 곳에서 발견된 아장을 두고, 많은 학자들은 아장의 전파가 청동기 시대 상(商)나라 문명의 영향과 관련이 있을 것으로 생각한다. 베트남 북부의 몇몇 지방 즉, 썸 렌(Xom Ren), 풍 응우옌(Phung Nguyen), 쿠 드엉 (Khu Duong), 짱 껜(Trang Kenh) 유적에서 아장이 출토되었다(Ha, 1994; Hoa, 1996; 鄧聰, 1994).

신석기 시대부터 중국은 유령환을 사용했고 유령환의 지리적 분포범위는 북중국에서부터 말레이 반도까지 뻗어있다. 유령환이 출토된 곳은 동남아 본토(인도차이나 반도)에 많은데, 주로 베트남, 태국, 말레이시아가 그 범위에 포함된다(吉開將人, 1994; Huang, 2017). 필리핀과 인도네시아에서는 소량의 유령환이 확인된 다. 동남아의 유령환은 기원전 1800년부터 기원전 1500년까지 거슬러 올라갈 수 있다. 동남아에서는 연옥 (軟玉)과 기타 돌감, 조가비로 제작된 유령환을 확인할 수 있으며 늦은 시기에는 청동으로도 제작되었다. 일 부 학자는 유령환이 북중국의 황허(黃河) 지역에서 기원했을 것으로 보지만(楊建芳, 1994; 吉開將人, 1994), 어떤 학자들은 중국 서남부의 쓰촨(四川) 청두(成都)의 싼싱두이(三星堆) 문화와 연관이 있을 것으로 본다(孫 華, 1993; 黃翠梅, 2015).

몇몇 학자들은 유령환이 중국에서 유구한 전통을 가지고 있기 때문에, 이러한 물품이 동남아에서 발견된 다는 사실이 당시 중국의 영향력을 반영하는 것이라고 생각한다. 그러나 일각에서는 유령환이 동남아에서 독 립적으로 기원한 것이지, 반드시 중국에서 유입되었다고 할 수 없다고 본다. 가령, 베트남의 고고학자는 베트 남을 유령환의 기원지로 보고 있다. 베트남에서 출토된 유령환의 연대가 북중국의 것에 비해 늦지만, 남중국 의 것에 비해서는 이르기 때문이다. 지금까지의 고고학적 증거로 볼 때, 당시 중국과 베트남 각각의 현지에 서 유령환을 제조한 증거도 있지만, 두 지역 사이에서 유령환을 교류했던 흔적도 존재한다.

<그림 4> 북부 베트남의 썸 렌 유적에서 출토된 옥제 아장(左)과 유령환(右).

썸 렌에서 출토된 두 종류의 유물은 대부분 중국 쓰촨 싼싱두이 유적에서 왔을 것이다 (직접 촬영, 베트남의 푸 타오(Phu Thao)박물관에 감사를 표합니다.).

(7)

베트남 북부의 썸 렌(Xom Ren) 유적에서는 연옥으로 제작된 아장과 유령환이 동시에 출토되었다(그림 4). 썸 렌 유적에서 출토된 두 종류의 유물은 형태와 재질 측면에서 모두 중국 쓰촨 청두 싼싱두이의 것과 매우 흡사하다. 썸 렌 유적에서 출토된 세 점의 아장과 네 점의 유령환은 모두 싼싱두이에서 왔다고 볼 수 있다(Huang, 2017).

베트남 북부와 남중국이 빈번하게 교류했던 시기를 적어도 신석기 시대까지 소급시킬 수 있다. 중국 고대 의 문헌에는 고대 촉인(蜀人)이 쓰촨에서 베트남 북부로 이주했다는 기록이 있다(孫華, 2000: 347-353). 중 국 서남부에 위치한 남방 실크로드(Southern Silk Road)는 신석기 시대부터 이미 존재한 듯하다. 남방 실크 로드는 고대 중국과 베트남 북부를 연결했을 뿐만 아니라 중국과 태국, 라오스, 미얀마 심지어 남아시아의 인도까지도 연결했다. 베트남 북부의 썸 렌 유적과 중국 쓰촨의 싼싱두이에서 나타나듯이, 중국과 베트남은 이미 유사한 문화적 관습, 인공제품, 아장과 유령환 등을 공유하였다. 이는 기원전 1500년 전에 장거리 교역 이 이미 존재했다는 것을 보여준다. 두 지역 간 거리는 1000㎞가 넘고 험준한 산맥이 많다. 쓰촨 싼싱두이에 서 다른 지역으로부터 수입한 바다조가비와 상아들이 출토되었는데, 이들은 인도나 동남아에서 남방 실크로 드를 경유하여 중국의 서남부로 유입됐을 가능성이 농후하다.

Ⅲ. 기원전 500년~기원전 200년: ‘해상 실크로드’ 이전의 ‘해상 실크로드’

(Maritime Silk Road before Maritime Silk Road)

동남아 본토는 기원전 1200년에 청동기 시대(Bronze Age)를 맞았고 기원전 500년에 철기 시대(Iron Age)에 진입했다. 동남아 섬의 경우, 신석기 시대가 기원전 500년까지 지속되다가 청동기와 철기가 동시에 출현하는 금속 시대를 맞이했다. 기원전 500년 이후 금속 공구의 출현에 따라, 동남아의 조선술(造船術)이 급속히 발전하였고 각 지역 간 해상 교류와 교역이 더욱 빈번해졌다.

동남아 지역 문화의 발전에 있어서 기원전 500년에서 기원전 200년까지의 시기는 전환기였다. 지역 내의 교류와 교역도 더욱 밀접하게 발전되고 조정되었는데, 우리는 이 시기를 ‘해상 실크로드 이전의 해상 실크로 드’라고 부를 수 있다. 기원전 200년 경에 한(漢)나라가 영토를 남중국과 베트남 북부까지 확장하면서 해상 실크로드의 발전에도 직접적인 영향을 주었다.

본 장은 기원전 500년부터 기원전 200년까지의 동남아 여러 섬 간에 교역이 활발했던 것을 예로 들어 설 명할 것이다. 대표적인 예는 타이완 동부의 타이완 옥(台灣玉, Taiwan nephrite jade)과 베트남 북부 동손 의 청동 북(東山銅鼓, Dong Son bronze drums)으로 나눌 수 있다.

(8)

<그림 5> 타이완 옥으로 가공된 옥 귀걸이 (필리핀 사람들은 이들을 링링오(lingling-o)라고 부른다.) 위의 세 점은 다른 곳에서 각각 출토되었다. (A)는 베트남 중부의 고 마 보이(Go Ma Voi) 유적에서 출토되었으며, (B)는 필리핀 팔 라완 타본(Tabon)의 유야우(Uyaw) 동굴에서 발견되었고, (C)는 필 리핀 팔라완 타본의 두용(Duyong) 동굴에서 출토되었다. 이들은 모두 약 2500년 전의 것이다(Hung et al., 2007).

1. 타이완 옥

우리는 선사시기 타이완 옥의 산지를 연 구(sourcing study)함으로써, 타이완 동부 의 화롄(花蓮) 펑톈(豐田)에서 기원한 연옥 으로 제작된 옥기와 돌감이 이미 선사시기 에 동남아의 여러 지역으로 유통되었다는 사실을 알 수 있었다. 기원전 2000년부터 기 원전 500년까지 즉, 타이완과 필리핀의 신 석기 제 1단계에는 타이완 옥이 필리핀 북부 의 바타네스(Batanes) 제도와 루손(Luzon) 섬에서 주로 발견되었다. 필리핀의 타이완 옥 장식이 타이완 본토에서 발견되는 옥과 매우 흡사한 것을 보면, 타이완의 오스트로 네시아 어족이 선사시기에 이주하면서 옥기 도 필리핀에 같이 전해진 듯하다.

제 2단계는 기원전 500년부터 서기 원년 을 전후한 시기인데, 타이완 옥이 더욱 남 쪽으로 확산되면서 필리핀 서남부의 팔라완(Palawan), 보르네오 북부, 베트남 중남부와 심지어 태국 중부와 태국 남부 반도에서도 발견된다(그림 5, 6). 이 시기에는 옥기 유통의 형식이 타이완 옥의 원재료가 유출되 는 것으로 점차 변모하여, 란위(蘭嶼)섬, 바타네스 제도, 필리핀 팔라완, 베트남 남부, 태국 남부 등지에서 옥 기를 제작하였다. 우리는 타이완 옥의 원재료가 가공되는 과정 중 버려진 폐기물을 여러 유적에서 확인할 수 있었다. 이 시기에 동남아에서 제작된 옥기와 타이완 본토의 옥기 사이에서 기형의 차이가 확연했고 다량의 옥기 형태에서 동남아 특유의 양식이 보였다. 동남아 원주민들이 선호하는 스타일을 가미한 듯하다. 타이완 부터 태국 남부까지의 거리는 약 3000㎞이다.

요컨대, 동남아에서 발견되는 두 단계 시기의 타이완 옥을 가공한 옥기는 서로 다르며, 옥기가 동남아에서 발생한 원인과 과정도 다르다(Hung et al., 2007). 게다가 동남아에 분포된 타이완 옥은 동남아의 오스트로 네시아 어족 분포 지역과 밀접한 관계를 가진다.

2. 동손의 청동 북

기원전 500년부터 기원후 300년까지 존속한 베트남 북부의 동손(東山, Dong Son) 문화에서는 고도의 공 예 기술이라고 알려진 청동 공업이 발달했다. 가장 유명한 청동기는 실납법(失蠟法, lost wax)으로 주조된

(9)

<그림 6> 선사시대 동남아의 타이완 옥 분포도

녹색 영역이 현재까지 알려진 동남아에서 확인된 타이완 옥의 분포 범위이다. 녹색 삼각형은 타이완 펑톈의 옥 광산이 위치한 곳이며 붉은 점선은 오스트로네시아 어족이 분포했던 지역이다(Hung et al., 2007의 도판 인용).

청동 북, 청동 도끼, 청동 창, 청동 팔찌 등 청동 기물과 청동 장식품이다.

청동 북 <그림 7>은 독특한 양식과 광범위한 분포로 많은 관심을 받았다. 다양한 동손의 청동 북 중에서 오스트리아 민속학자인 프란츠 헤거(Franz Heger, 1853~1931)에 의해 제 1유형으로 분류된 기물이 가장 광범위하게 나타나는데, 이를 일반적으로 ‘헤거 Ⅰ’라고 부른다. 이 유형은 남중국(남중국의 광시(廣西), 윈난 (雲南), 구이저우(貴州)에서도 자체적으로 청동 북을 생산했다), 라오스, 태국, 미얀마, 말레이시아, 인도네시 아 심지어 뉴기니 서부에서도 확인된다(Bernet Kempers, 1988; Imamura, 2012; Calo, 2014; Oliveira et al., 2019). 동손 북은 주로 동남아에 분포해 있다. 동남아 본토와 인도네시아 수마트라 섬에서부터 동쪽의 대(大) 순다 섬과 소(小) 순다 섬 열도(the Sunda and Lesser Sunda Island chains)를 지나 뉴기니에 이르 기까지 4500㎞가 넘는 거리에 걸쳐 동손 북이 확인된다. 그러나 보르네오 섬에서는 이 청동 북이 드물게 나 타나고 필리핀 제도나 타이완에서는 아직 출토된 적이 없다. 따라서 현재로서는 동손 청동 북은 아주 특수한

(10)

<그림 7> 1973년 베트남 하노이의 푸 푸엉(Phu Phuong)에서 발견된 동손의 청동 북

유물은 지금으로부터 2500년~2000년 전의 것이다 (직접 촬영. 베트남국가역사박물관에 감사를 표합니다.).

유통 네트워크를 통해서만 존재했다고 할 수 있다.

동남아의 동손 청동 북과 타이완 옥이 광범위하게 분포되는 시기는 비슷하지만, 두 종류의 유물은 거의 특수한 교역 루트 와 유통 범위에서만 존재했다. 두 유물의 교역 네트워크가 겹치는 구간은 베트남 남 부와 태국 남부 반도 정도이다. 이는 서로 다른 집단(族群)이 해상 교역 네트워크를 통제했다는 것을 보여주는 사례가 아닐까 한다.

Ⅳ. 기원전 200년~기원후 500년:

초보적 단계의 ‘해상 실크로드’

해상 실크로드에 관한 연구는 꽤 많다. 기원전 200여 년의 중국 한대(漢代, 기원전 206년~기원후 220년) 에 남중국의 오랜 항구 도시는 중국, 동남아시아, 인도, 로마와 연결되었는데, 이를 이른바 해상 실크로드라 한다(그림 8). 해상 실크로드에 대한 가장 이른 문자 기록은 중국 한대의 반고(班固, 32~92)가 저술한 󰡔한서 (漢書)󰡕「지리지(地理志)」이다.

“일남(日南)에서부터 육로가 막혀 서문(徐聞), 합포(合浦)에서 뱃길로 다섯 달 정도 가면 도원국(都 元國)이 있다. 거기서 또 배로 네 달 정도 가면 읍로몰국(邑盧沒國)이 있다. 또다시 배로 20여 일 가 면, 심리국(諶離國)이 나온다. 이곳에서부터 걸어서 10여 일 가면 부감도로국(夫甘都盧國)이 있다. 또 이곳에서부터 배로 2달 남짓 가면 황지국(黃支國)이 나온다. 이 나라들은 풍속이 대략 주애(珠厓)와 비 슷하다. 그 땅은 광대하고 인구가 많으며, 특이한 물건이 많다. 무제(武帝) 이래 모두 공물을 헌상하고 알현한다. 통역하는 장이 있고 (이들은) 황문(黃門)에 속하는데, 응모자들과 함께 해시(海市)로 들어오 면, 명주(明珠), 벽유리(壁流離), 기이한 돌, 특이한 물건을 팔고 황금과 비단을 가지고 간다. 도착하는 나라마다 모두 풍족하게 먹고 서로 짝을 찾는다. 남쪽 이민족들은 배를 사서 이동한다. 또 이들이 교역 에 있으면, 겁박하고 사람을 죽이기도 한다. 모진 풍파를 만나면 익사하거나 몇 년 동안 돌아오지 못하 는 사람도 생긴다. 큰 구슬도 둘레가 2촌(寸)에 미치지 못한다. 평제(平帝)의 원시(元始) 때에 왕망(王 莽)이 정사를 보조하면서 위엄과 덕을 빛내고자 황지국의 국왕에게 (선물을) 후하게 보냈다. 그랬더니 사신을 보내어 살아있는 물소를 헌상하였다. 황지국에서 뱃길로 여덟 달 정도 가면, 피종(皮宗)에 도착

(11)

한다. 그곳에서 배로 두 달쯤 가면 일남과 상림계(象林界)에 도착한다고 한다. 황지국의 남쪽에는 이정 불국(已程不國)이 있는데, 한나라의 통역사신이 이곳에서 돌아왔다.1)

이 문헌에는 중국과 동남아의 교역 경로와 교역 활동이 보인다. 물론 몇몇 지명을 현재 지리에 비정하는 것에 대해 합의가 이루어지지 않았지만, 이 문헌은 동남아 대륙과 말레이시아 반도 연안에 존재했던 한대의 교역 활동을 명확히 기록했다. 지금의 베트남, 캄보디아, 미얀마, 태국, 싱가포르, 말레이시아, 인도네시아, 인 도, 스리랑카가 그 지역에 포함된다. 이번 장은 동남아를 위주로 이 시기의 동남아 교역 도시를 먼저 확인한 뒤, 동남아와 중국, 인도, 이집트, 로마, 동북아의 한반도와 일본 등지까지 행해졌던 교류를 설명할 것이다.

<그림 8> 기원전 200년부터 기원후 500년까지의 해상 실크로드와 육상 실크로드는 유라시아를 연결하였다.

세계 고대문명은 장거리 교역으로 연결되기 시작했으며, 동남아는 해상 실크로드의 교차로에 위치해 있다.

1. 동남아의 교역 중심: 루이 러우(Luy Lâu, 嬴婁)와 옥 에오(Óc Eo)

기원전 200년에서 기원후 500년까지의 동남아에는 추방(酋邦) 사회와 왕국이 출현하였다. 동시에 몇몇의 중요한 교역 도시나 교역 항구도 발생하였다. 본 절에서는 베트남 북부의 루이 러우(Luy Lâu, 嬴婁)와 베트

1) 󰡔漢書󰡕 「地理志」:自日南障塞徐聞合浦船行可五月, 有都元國. 又船行可四月, 有邑盧沒國. 又船行可二十餘日, 有諶離國. 步行 可十餘日, 有夫甘都盧國. 自夫甘都盧國船行可二月餘, 有黃支國. 民俗略與珠厓相類. 其州廣大, 戶口多, 多異物. 自武帝以來皆 獻見. 有譯長, 屬黃門, 與應募者俱入海巿明珠璧流離奇石異物, 齎黃金雜繒而往. 所至國皆稟食爲耦. 蠻夷賈船, 轉送致之. 亦利 交易, 剽殺人. 又苦逢風波溺死, 不者數年來還. 大珠至圍二寸以下. 平帝元始中, 王莽輔政, 欲燿威德, 厚遺黃支王, 令遣使獻生犀 . 自黃支船行可八月, 到皮宗. 船行可八月, 到日南象林界云. 黃支之南, 有已程不國, 漢之譯使自此還矣.”

(12)

남 남부의 옥 에오(Óc Eo)를 간략히 소개할 것이다. 루이 러우는 지금의 베트남 박닌성(Bac Ninh Province, 北宁省)에 위치한 곳으로 한나라에 예속되었던 교주(交州, Giao Châu)의 수도였다. 이 지역은 베트남 본토 의 문화와 인도, 중국의 문화가 교차된 곳이라고 할 수 있다. 당시의 루이 러우 사람들은 뽕나무를 심어 양잠 업에 종사하며 비단과 옷감을 생산했고 숲에서 진귀한 목재, 단향, 향료, 상아를 얻었다. 베트남 북부와 서부 의 물산은 모두 루이 러우로 모였다. 기원후 1~2세기경에 인도와 중앙아시아 상인들이 이곳으로 모이면서 루이 러우는 국제 상업의 중심지로 부상했다. 상인들과 여행객들은 화물뿐만 아니라 각지의 지식, 의학, 농 업, 천문, 습속과 신앙까지도 가지고 왔다. 어떤 사람들은 이곳에서 잠시 어학을 공부하여 당시 중국의 큰 도 시인 장안(長安)과 낙양(洛陽)으로 이동하기도 했다(Bui, 2018).

<그림 9> 베트남 옥 에오의 린 손 남 (Linh Son Nam) 건축물 유적

(필자 촬영)

<그림 10> 베트남 옥 에오에서 출토된 인도 태평양 유리 구슬 (베트남 안강성박물관의 호의로 필자 촬영)

<그림 11> 베트남 옥에 오에서 출토된 각종 구슬 장식품 (베트남 안강성박물관의 호의로 필자 촬영)

<그림 12> 옥 에오에서 출토된 금귀걸이 (베트남 호치민시 역사박물관소장품, Khah Trung Kien Nguyen의 호의에 감사)

(13)

최근, 루이 러우의 발굴(일본 東亞大와 베트남 역사박물관 진행)을 통해 규모가 크지 않지만 문화적으로 풍부한 루이 러우 성(城)이 확인되었다. 발굴과 조사를 통해 도자기, 금속기, 칠목기, 동식물 등의 유물을 확 인하였다. 베트남 동손 문화의 전형적인 기물인 청동 북의 주형 틀 토기와 거푸집이 루이 러우 성 안에서 다 량으로 발견되었다. 한나라가 베트남 북부로 영역을 확장한 이후에는 루이 러우의 동손 문화는 송코이 강 (Sonkoi, 중국 명칭은 紅河) 하류 삼각주 지역에서 더 이상 존재하지 않게 된다. 그러나 한나라 문화가 루이 러우와 융합되고 병존되기 시작하면서 독특한 문화를 형성하였다.

베트남 북부에서 한나라의 문화적 영향을 크게 받은 루이 러우와 달리, 옥 에오(Óc Eo)는 베트남 남부의 메콩강 하류 즉, 현재의 베트남 안장성(An Giang Province, 安江省)에 위치했기 때문에 인도의 영향을 많이 받았다. 옥 에오는 기원후 1세기 이후부터 번화했던 푸난(扶南, Funan) 왕국의 항구였다. 옥 에오는 푸난 왕 국의 핵심 도시인 앙코르 보레이(Angkor Borei, 현재는 캄보디아에 속해 있음)와 운하로 80㎞ 거리에 떨어 져있다. 또한, 옥 에오는 타 케브(Ta Kev, 당시에는 이곳이 실질적 항구로 사용된 듯하다)와 운하로 15㎞의 거리에 있다. 옥 에오는 운하 이외에도 수리 관개시설, 웅장한 건축물(그림 9), 각양각색의 국제 교역상품을 보유했다. 국제적 교역상품은 로마, 인도, 중국, 동남아 각지에서 온 것들이다(Malleret, 1959~63; Manguin, 2010; Bùi et al., 2018).

옥 에오는 공예품 가공의 중심지였다. 고고 발굴을 통해 옥 에오에서 다량의 정교한 보석(그림 10~12), 공예품, 이들의 원료, 가공 부산물이 확인되었다. 옥 에오는 해상 실크로드의 필수 경유지이기 때문에, 푸난 왕국은 옥 에오를 통해 넓은 해역을 통제할 수 있었다. 이곳의 풍부한 고고학적 성과는 해상 실크로드와 푸 난 왕국의 정치·경제의 운영을 연구하는 우리에게 매우 중요하다.

2. 동남아와 중국의 교류

중국이 해상 실크로드를 이용하여 동남아시아로 운반한 상품은 주로 황금과 비단 등이었다. 중국이 동남 아에서 얻은 상품은 󰡔한서󰡕 「지리지」에 기재된 진주, 청금석(璧琉璃, lapis lazuli), 기괴석 등을 제외하고도 각종 광물, 향료, 상아 등이 있다. 동남아의 물산은 풍부했는데, 이를 테면 푸난 왕국에는 많은 물산이 있었 다. 󰡔낙양가람기(洛陽伽藍紀)󰡕는 푸난에 대해 “사람들이 아주 많았고 진주, 금, 옥, 수정 등 기이한 것들이 생산됐고 빈랑나무가 풍요로웠다.2)”라고 하였다. 󰡔양서(梁書)󰡕에서도 “금, 은, 동, 주석, 침향목, 상아, 공작 새, 비취, 오색 빛 앵무새가 나왔다.3)”라고 푸난을 설명하였다. 󰡔제번지(諸蕃志)󰡕에서 동남아의 옛 나라가 가진 특산물이 상세히 기록된 것처럼, 많은 산물들이 중국이나 다른 지역으로 수입되었다(馬勇, 2001: 79).

우리는 해상 실크로드가 연결된 지역에서 나오는 고고학적 증거를 통해서도 󰡔한서󰡕의 기록을 증명할 수 있다. 중국 고대의 항구, 가령, 광시(廣西)의 허푸(合浦)에서는 동남아에서 생산되었거나 서방에서 동남아를 경유해 중국으로 수입된 공예품이 발견되었다(Xiong, 2014; 熊昭明, 2018). 공예품을 제외하고도 식물류 향 2) 󰡔洛陽伽藍紀󰡕 「扶南」:民戶殷多, 出明珠金玉及水精珍異, 饒檳榔.”

3) 󰡔梁書󰡕 「扶南」:出金銀銅錫沉木香象牙孔翠五色鸚鵡.”

(14)

료, 희귀 동물, 특이한 기예도 동남아를 거쳐 중국으로 수입되었다. 동남아에서 수입된 각종 향료 중에서 정 향(丁香, clove)이 대표적이다(그림 13). 정향은 오직 인도네시아 말루쿠(Maluku) 북부의 작은 섬에서만 생 산된다. 중국인들은 한대부터 이미 정향을 사용하기 시작했다. 󰡔한관의(漢官儀)󰡕(기원후 2세기)에 근거하면, 조정의 대신들이 황제를 알현할 때에 입 냄새를 깨끗하게 하기 위해 정향을 씹어야 했고, 그래야만 황제와 대화할 수 있었다. 정향은 당시에 이미 중국 고대 사회에서 지위를 나타내는 상징물이었다. 위진남북조(魏晉 南北朝, 220년~589년)시기의 문헌에는 인도네시아의 반다(Banda) 제도에서만 생산되는 넛멕(Nutmeg, 肉 荳蔲)이 언급되어 있다.

중국은 동남아에서 희귀 동물도 수입했다. 시안(西安, 漢代의 長安) 난링(南陵)의 물소 뼈가 자바섬에서 기원했다는 사실은 이미 밝혀졌다(王學理, 1981). 게다가 󰡔한서󰡕 「지리지」, 「평제기(平帝紀), 「왕망전(王莽 傳)」에는 평제(平帝) 시기(기원전 9년~기원후 6년)에 황지국(黃支國) 국왕이 살아있는 물소를 장안으로 운송 했다는 기록도 있다. 황지국이 수마트라 서북부 지역이라는 고증을 따를 수 있다면(周連寬·張榮芳, 1980), 수마트라 물소의 고향도 황지국이 된다(孫機, 1991).

동식물이외에도 한나라 장안(長安)의 여러 가지 곡예 중 심동(尋橦, Xuntong)4)은 고대인들이 나무막대를 받침대로 삼아 하는 일종의 운동이었다. 한 사람이 대나무 막대를 손에 쥐거나 머리에 두고 여러 사람들이 나무를 연이어 올리는 것도 고대의 곡예 중 하나였다. 심동은 한대 문헌에서 도로심동(都盧尋橦)이라고도 전 해진다. 󰡔전한서(前漢書)󰡕 「지리지」에서 “합남포에는 도로국이 있다.5)”라고 했기 때문에 일반적으로 도로 (都盧)를 교지군(交趾郡)의 남쪽에 있었던 나라 이름으로 여긴다(馬海松, 2017). 그러므로 고대 중국의 문헌 과 고고학적 증거를 통해 한대 이후에 많은 동남아의 유·무형 문화가 중국으로 유입되었음을 알 수 있다.

<그림 13> 정향은 고대 교역 역사에서 가장 중요한 향료이다.

<그림 14> 인도네시아 발리의 뺑꿍 빠룩 유적에서 출토된 서한 후기~동한 초기로 편년되는 청동 거울

(I. Wayan Ardika의 호의로 필자 촬영).

4) 심동은 도로심동(都盧尋橦), 연동(緣橦), 연우(緣竽), 파간(爬竿), 간목(竿木), 대간(戴竿), 상간기(上竿伎) 등으로도 불린다. 5) 󰡔前漢書󰡕 「地理志」:合南浦有都盧國.”

(15)

동시에 한나라의 생산품도 동남아의 광범위한 지역으로 수입되었는데, 이는 지역 간 교역과 교류 활동을 증명한다. 베트남, 태국, 인도네시아 등지에서는 한나라 스타일의 토기가 발견되었다. 예컨대, 인도네시아의 자카르타 박물관에는 중국 한나라의 녹유(綠釉) 토기와 흑유(黑釉) 토기가 진열되어져 있다. 이 유물들은 자 카르타 섬과 수마트라 섬에서 출토되었다고 알려져 있다(三上次男, 1969; Orsoy De Flines, 1975). 동남아 에서도 한나라 양식의 청동 거울이 발견되었다. 세계에서 가장 오래된 청동 거울은 서아시아의 것이지만 (Enoch, 2006: 775-781), 상대(商代) 후기(기원전 1200년)부터 중국 중원에서도 청동 거울을 사용하기 시 작하였다(Jaang, 2011: 34-49). 전국시대 후기까지도 청동 거울이 사용되면서 청동 거울은 중국의 상류층에 서 유행하는 물품이 되었다. 기원전 156년부터 기원전 87년까지의 한 무제(武帝) 통치기에 한족의 영토가 확장되면서 중국에서의 청동 거울 유행이 최고조에 달했다. 동남아 특히, 베트남과 태국 유적에서 한대의 청 동 거울이 이미 발견된 바 있다(Srischat, 1996; Yamagata et al., 2001, p. 101). 이들보다 더욱 남쪽에 있 는 발리의 팽꿍 빠룩(Pandkung Paruk) 유적에서도 청동 거울이 확인된다(Ardika, 2016; Calo et al., 2020). 이곳의 청동 거울은 대체로 중국 동한(東漢) 시기와 위진남북조 시기의 양식을 가지고 있다(그림 14).

동남아에서 보이는 한나라 양식의 기물들은 아마도 기원전 2세기 이후 한나라가 광둥(廣東)과 베트남 북 부로 영토를 확장하면서 분포됐거나 남중국과 베트남 북부에서 제조됐을 것이다. 그러나 타이완과 필리핀에 서 한나라 양식의 청동 거울과 토기 등의 유물들이 아직까지도 발견되지 않았다. 이는 동남아의 특정 지역과 한나라 사이의 교역 관계나 정치 연맹이 강하게 연결되었음을 반영하는 것일지도 모른다.

3. 동남아와 인도의 교류

기원전 500년 이래로 남겨진 풍부한 증거와 유산은 동남아와 인도 간 교역 활동을 증명한다. 그리고 기원 후 200년 이후에 동남아와 인도 간의 교역은 더욱 빈번해졌다. 인도의 서사시인 󰡔라마야나(

Ramayana

)󰡕와

󰡔마하바라타(

Mahabharata

)󰡕에 인도네시아, 특히 인도네시아 수마트라 섬, 자바 섬이 적어도 기원전 400년 부터 인도와 밀접하게 교류했다는 것이 기록되어있다(Coedes, 1968: 16-17). 그밖에도 기원전 1세기에 인 도네시아에서 정향을 수입했다는 기록도 있다(Swadling, 1996). 이후 정향은 인도에서 해상 실크로드를 경 유해 중앙아시아와 로마 제국 등 서방의 지역까지 전래되었다.

인도와 동남아 사이의 초기 교역은 주로 공예품과 관련 기술이었던 것으로 보인다. 예컨대, 유리구슬, 마 노 – 코르넬리안 구슬(agate-carnelian beads), 마노 – 코르넬리안으로 만든 작은 사자와 다른 동물 조각상, 인도 토기편, 청동 제품 등이 있다. 이 같은 유물들은 기원전 500년 이후 동남아에서 나타났다. 게다가 기원 후 200년 이후에는 이 유물들이 동남아에서 더욱 많아졌으며, 인도의 기술이 적용되어 제작된 유리구슬과 마 노 – 코르넬리안 구슬을 제작했던 터(workshop)도 다수 확인되었다.

인도 태평양의 유리구슬(Indo-Pacific glass beads)은 인류 역사상 가장 중요했던 교역 품목으로(Francis 2002), 이를 ‘무역풍의 구슬(trade wind beads)’이라고도 한다(van der Sleen, 1956, pp. 27~29). 인도 태 평양 유리구슬은 동남아의 철기 시대에 가장 흔히 확인되는 유물인데, 연대는 기원전 500년까지 거슬러 올라

(16)

<그림 15> 태국 중부의 반 돈 따 펫(Ban Don Ta Phet) 유적지에서 출토된 작은 사자 조각상

(이안 글로버(Ian Glover)의 호의로 직접 촬영).

간다. 기원후 1500년 심지어 그 이후까지도 지속적으로 출현한다. 각양각색의 인도 태평양 유리구슬은 동남 아 이외의 지역에서도 흔히 발견된다. 인도 태평양 유리구슬이 처음으로 생산된 지역은 인도이지만 스리랑 카, 태국, 말레이시아, 베트남, 수마트라 등지에서도 유리구슬을 제조했던 제작 터가 확인되었다. 동남아의 공예품 장인들이 제조법을 빠르게 익히면서, 동남아의 현지 생산 기지도 더욱 발전하였다(Reinecke et al., 2009, pp. 123~124). 초보적 인도 태평양의 유리구슬이 동남아의 무덤 유적에서도 다수 확인되는데, 이는 유리구슬이 부장품으로서 특별한 가치를 가졌음을 보여준다.

인도 하라파 시대(Harappan Period) 초기(약 기원전 2500년)에 마노 ‒ 코르넬리안이 구슬과 장식품 제작 에 활용되었다. 이들의 생산은 기원전 600년에 증가하기 시작했고 기원전 400년부터 기원후 200년까지의 연대를 가진 동남아의 여러 유적에서 완성품이 확인된다. 태국의 반 돈 따 펫(Ban Don Ta Phet), 카오 삼 께오(Khao Sam Kaeo), 넌 유 – 로크(Noen U-Loke), 베트남의 지옹 까 버(Giong Ca Vo), 꼬 마 버이(Go Ma Voi), 라이 응히(Lai Nghi), 사 후잉(Sa Huynh), 필리핀의 타본(Tabon) 동굴, 인도네시아 발리의 길리 마눅(Gilimanuk) 등의 유적이 포함된다(Fox, 1970; Indraningsih, 1985; Reinecke et al., 2002; Belina and Glover; 2004). 마노 – 코르넬리안은 타이완 철기시대의 유적, 남중국 광시(廣西) 허푸 한묘(合浦漢墓), 윈난(雲南) 스짜이산(石寨山), 리쟈산(李家山) 등지에서도 확인된다. 동남아에서 발견된 초기 인도의 장식품 들은 대부분 숙련된 인도 기술로 만들어진 것들이다. 그러나 몇 세기 이후에 동남아 현지에서 제조하는 공방 들이 점차 출현했고 동남아로 원료가 공급되기 시작하였다(Theunissen et al., 2010). 그러면서 구슬 장식 품의 생산량은 증대되었지만 그만큼 품질은 낮아졌다(Bellina, 2003, pp. 291~293). 마노 – 코르넬리안 구 슬을 가공하는 인도의 기술이외에도 인도 특유의 에칭기술(etched beads)도 동남아로 유입됐다.

마노 – 코르넬리안 구슬이나 호박(琥珀, amber)으로 가공된 작은 사자<그림 15>, 다른 동물 조각품들은 태국, 미얀마, 베트남 중부에서 발견된다.

한나라 무덤 중, 광시 허푸의 펑먼링(風門 嶺)에서는 마노 – 코르넬리안 사자 장식품 이 출토되었다(廣西壯族自治區考古隊和合 浦縣博物館, 2006). 2000여 년 전의 동남 아나 남중국에 사자가 없었고, 당시의 사자 는 인도와 스리랑카에서만 서식했다. 따라 서 일반적으로 작은 조각상이 인도에서 제 작되었다고 보여지며, 심지어 이 조각상은 한반도까지도 이르게 된다(후술).

그밖에도 인도 토기의 가치는 당시 동남 아에서 높았다(Manguin and Indradjaja, 2011). 동남아 여러 지역에서는 이 시기의 인도 토기가 발견되었다. 이를테면, 태국

(17)

<그림 16> 베트남 남부 옥 에오의 룽 런(Lung Lón) 유적에서 출토된 금박 유리구슬(gold-glass).

이집트에서 왔을 가능성이 있다 (Nguyen et al., 2020, Khanh Trung Kien

Nguyen에게 감사).

반도의 카오 삼 께오(Khao Sam Kaeo)(Bouvet, 2011),베트남 중부의 짜 끼우(Tra Kieu), 꼬 깜(Go Cam) 등의 참(Cham) 초기 유적(Nguyen, 2005; Lam, 2011),자바 섬 서부의 꼬박 껜달(Kobak Kendal), 시바닥(Cibadak), 시반고(Cibango) 유적(Walker and Santoso, 1977; Ardika, 1996)와 바뚜자야(Batujaya) 의 세가란(Segaran) IIA(Manguin and Indradjaja, 2011), 발리 섬 북부의 슴비란(Sembiran)와 빠쭝 (Pacung)(Ardika and Bellwood, 1991) 등이 있다. 발리 섬에서 출토된 토기 조각 한 점에는 카로슈티 (Kharosthi) 문자나 바라흐미(Brahmi) 문자로 서사된 것들이 있었다(Ardika, 2016). 자바 섬의 슴비란 (Sembiran)에서 출토된 인도 토기를 지화학(Geochemical)적으로 분석한 결과, 인도에서 기원했다는 사실 이 증명되었다(Ardika and Bellwood, 1991; Ardika el a1., 1997).

물품의 이동, 교역과 교환활동 이외에도 인도 사람들은 일찍이 동남아로 갔다. 자바 섬의 슴비란에서 출토 된 어금니에서는 인도인의 미토콘드리아 DNA 계열이 검출되었다(Lansing et al., 2004). 또 다른 연구는 인도인이 인도네시아 여러 섬으로 이주한 시기가 현재 우리가 고고학 자료를 통해서 알 수 있는 연대보다 더 욱 이를 수 있다고 밝혔다(Kusuma et al., 2016).

4. 동남아와 이집트, 로마 등지의 교류

동남아와 중앙아시아, 로마제국, 아프리카 대륙 사이의 초기 접촉은 아마도 ‘중개 무역의 고리(chains of intermediary trading)’를 통해서 진행되었을 것이다. 중앙아시아와 로마에서 동남아로 들어오는 교역로에도 중개 상인이 존재했다. 로마의 박물학자인 대 플리니우스(Pliny the Elder)는 기원후 70년에 로마에서 상당 히 귀했던 인도의 정향을 기록하였다(Swadling, 1996). 정향은 기원후 100년 전부터 동아프리카까지 교역 되면서 이집트에도 전래되었다(Brierley, 1994). 그밖에도 베트남 남부의 옥 에오, 남중국의 허푸, 광저우에 서도 로마, 이집트, 중앙아시아에서 유입된 상품들이 많이 발견되었다. 예컨대, 베트남 옥 에오와 광저우 교 외의 헝지강(橫枝崗) 한대(漢代) 무덤에서는 로마에서

제조된 유리그릇이 출토되었다. 필리핀의 민도로 섬에 서도 목이 긴 페니키아(Phoenician) 양식의 작은 유 리 주전자와 남색의 로마식 유리그릇이 출토되었다(三 上次男, 1969).

베트남 옥 에오의 룽 런(Lung Lón) 유적(Nguyen et al., 2020)과 인도네시아 발리 섬의 슴비란, 팽꿍 빠룩(Pangkung Paruk)에서는 로마 유리 성분의 금 박 유리구슬이 출토되었다(Gede, 2009; Calo et al., 2015, 2020; <그림 16>). 이처럼 특수하게 제조된 금 박 구슬은 모두 전형적인 로마 구슬이지만, 기원전 400년에서 기원 전후까지 이르는 시기에 이집트에서

(18)

만들어진 구슬로도 여겨지고 있다. 그밖에 동남아와 로마 간의 문화 교류는 대체로 간접 교류의 형식이다. 게다가 시공(時空)이 달랐기 때문에 어떤 물품은 다른 기능을 하기도 했다. 대표적인 예가 동남아에서 발견 된 모조품의 로마주화이다. 이런 모조품은 펜던트 형식으로 많이 제작되었다. 모조 로마주화가 발견된 유적 은 베트남 남부의 옥 에오, 태국의 유 통(U Thong)과 크롱 톰(Khlong Thom) 등이다. 크롱 톰 유적에서 발견된 모조 주화는 돌로 만들어졌다. 이처럼 로마 주화나 이를 모조한 펜던트를 몸에 지니는 풍습은 인도 남부에서 전래된 것인 듯하다(Borell, 2014).

5. 동남아시아와 한반도, 일본과의 교류

중국과 한반도 사이의 해상이나 육상 교역은 신석기 시대부터 이미 존재했지만 두 지역 간 비교적 큰 규 모의 해상 교역활동은 ‘동방의 해상 실크로드’를 활용한 중국의 춘추시대(기원전 770년~기원전 476년)부터 시작되었다(劉鳳鳴, 2009). 한반도와 일본으로 대표되는 동북아와 동남아는 거의 해상 실크로드를 통해서만 물품이 유통되었다. 동남아 상품은 아마도 중국 대륙의 연안 항로를 통해서 한반도와 일본으로 유입되었을 것이다.

한반도에서는 관련 고고학 증거들이 다수 발견되었는데, 모두 동남아에서 온 것들인 듯하다. 한국에서 발 견된 고대 유리구슬의 기원은 다양하다. 그 중에서도 인도 태평양 유리구슬이라고 부르는 탄산칼륨 유리 (potash glass)구슬이 다양하게 출토되었다. 이 구슬들은 기원후 1세기의 것이고 인도나 동남아에서 제조되 었다. 학자들은 이 구슬이 인도 아리카메두(Arikamedu)와 태국 크롱 톰, 베트남 옥 에오 등의 유적과 관련 있을 것으로 본다. 한국 서울 근방의 미사리 유적에서는 소다 유리(soda glass)로 제작한 불투명 황색의 유 리구슬(opaque yellow glass bead)이 출토되었다. 유물의 연대는 1세기로 추정되며, 유물의 성분은 태국 크롱 톰 유적에서 발견된 황색 구슬과 유사한 것으로 분석됐다. 경주의 신라 무덤에서는 자팀(Jatim)이라고 불리는 네 점의 구슬이 발견되었다. 구슬 연대는 5세기 말~6세기 초까지 거슬러 올라갈 수 있다. 양감기법 (鑲嵌技法)으로 제작된 유리구슬의 표면에 얼굴, 새, 나무들의 도상이 있어서 학자들은 이 유물의 기원을 인 도네시아에서 찾는다(Lankton and Bernbaum, 2007; Lee, 2009, <그림 17>). 그러나 최근 베트남 옥 에 오에서도 유사한 것이 발견되었기 때문에, 구슬의 산지가 옥 에오일 가능성도 있다.

유리구슬 이외에 낙랑(樂浪)의 묘지에서도 다량의 진귀한 유물들이 출토되었다. 이들의 연대는 기원전 109년부터 기원후 4세기까지이다. 이런 진귀한 유물들은 주로 중국에서 건너온 것이지만 일부 유물의 산지 는 동남아이다. 대부분이 동물 장식품인데, 대체로 가로로 누운 사자 형상이며 조류나 다른 동물의 형상을 가진 것도 있다. 이들은 유리, 호박, 바다거북의 등껍질, 대모(玳瑁)로 만들어진 것들로, 동남아나 인도의 보 석들을 가공해 제작된 것인 듯하다(Joo, 2019). 앞에서 언급하였듯이, 태국, 미얀마, 베트남, 남중국의 고대 유적에서 유사한 유물들이 출토되었고 이들 중 사자 조각상은 인도에서 왔을 가능성이 크다.

(19)

<그림 17> 한국의 국보 634호.

구슬의 표면에는 조류(b), 꽃이 핀 나무(c), 사람 얼굴(d)이 있다. 이 구슬이 인도네시아에서 왔을 가능성이 있다고 본다 (국립경주박물관 소장, Lankton and Bernbaum. 2007, 인용).

<그림 18> 낙랑 묘지에서 출토된 대모 빗 (朝鮮古跡硏究會 編 1926, 401쪽, 인용)

대모를 다른 형식으로 가공한 것들도 낙랑 묘지에서 출토되었는데, 빗, 동곳(髻), 벽(璧) 등이다(朝鮮古蹟 硏究會編 1926; 王培新 2007, <그림 18>). 진귀한 대모로 만든 유물들이 어디서 제조되었는지는 아직 모른 다. 그러나 앞에서 다룬 것처럼, ‘대모’를 다룬 󰡔한서󰡕에는 대모가 한나라가 동남아와 교역하여 얻은 진귀한 유물 중 하나라고 언급했다. 한반도에서 발견되는 대모도 동남아와 연관되어 있는지를 연구해볼만 하다. 지 금까지 보았을 때, 동남아의 유리구슬, 동물 모양의 구슬장식, 대모는 교역 상품으로서 해상 실크로드를 통해 남방에서 한반도로 유입된 듯하다.

일본의 경우, 약 기원전 300년부터 기원후 250년까지의 야요이(彌生, Yayoi) 시대 무덤에서 인도 – 태평 양 유리구슬이 처음으로 발견되었다. 야요이 시대의 유리구슬 중 가장 흔한 것은 남색 구슬이다. 이들의 대 다수가 규슈(九州, Kyushu) 동북부와 혼슈(本州, Honshu) 남부에서 발견되었다(Katsuhiko and Gupta, 2000). 이 유리구슬의 유형, 시기, 화학 성분을 분석한 연구는 인도 태평양 유리구슬이 기원후 1세기경에 동 남아나 남아시아로부터 유입되면서 급증했음을 밝혔다(Oga and Tamura, 2003). 유리구슬 이외에도 교토의 오후로 미나미(Ohfuro Minami) 무덤 유적에서 투명한 연남색 유리팔찌가 발견되었다. 유리 팔찌의 연대는 약 기원후 2세기이다. 이 유리팔찌는 태국의 반 돈 따 펫 유적에서 발견된 것과 유사하여(Koezuka and Yamasaki, 2009) 동남아에서 전래되었을 가능성이 크다.

(20)

Ⅴ. 결 론

예부터 동남아에는 활발한 교역활동이 있었다. 신석기시대 이래로 동남아의 섬들과 대륙에는 다양한 교환 혹은 교역 권역이 있었다. 이런 교환, 교역활동을 통해 해양 장벽을 빈번하게 넘나들었고 활동 거리와 범위 는 광활해졌다. 예컨대, 말레이시아 사바(Sabah) 동북부의 부킷 텅코락(Bukit Tengkorak) 유적에서 발견된 흑요석은 3500여 ㎞에 떨어진 곳에 위치한 멜라네시아(Melanesia) 광산에서 왔고 태국 남부의 반도에서 출 토된 옥은 거의 3000㎞ 떨어진 타이완 동부 화롄 펑톈의 것이다. 이러한 석재 교역이나 교환 활동은 대체로 문헌에 기록된 ‘해상 실크로드’의 이전 시기에 발생한 것들이다.

기원전 200년에 동남아의 크고 작은 구역에 다양하게 분산되어 있던 교역권은 여러 형식으로 통합되었다. 동남아의 무역 체계는 유럽이나 동아시아 무역 네트워크와 연결되었다. 서쪽으로는 남아시아, 홍해, 지중해 지역을 지나 유럽에 있는 로마까지 도달하였고 북쪽으로는 중국 대륙, 한반도, 일본까지 이르렀다. 이 시기에 처음으로 ‘세계체제(World system)’를 갖춘 세계적 교역 활동이 출현한 것이다. 교역 체계는 밀집 교역을 통 해서 인적과 물적 자산이 연결되었고 도시와 제국 사이도 긴밀해졌다. 물품과 원료의 유통이외에도 동식물, 사람, 지식, 기술 교류도 거대한 교역 네트워크에 따라 유통되었다. 이에 따라 동남아의 내부 사회구조도 빠 르게 변화하였다.

지역 사회문화의 발전적 측면에서 지식과 기술의 전파는 영향력을 가진다. 동남아에서 수많은 지식과 기술 의 흔적이 확인되며, 서로 교역하고 교류하면서 이들도 발전해나간다. 조선 기술과 항해 지식이 대표적인 예 이다. 동남아는 전통 방식의 조선술을 가지고 있었지만 장거리 교역을 통해서 외래의 영향을 받게 되었다. 실 제로 베트남 북부 송코이 강(Sonkoi, 중국 명칭은 紅河) 하류의 동손 문화 유적에서는 온전한 상태의 통나무 배(獨木舟) 몇 척이 발견되었다. 배의 연대는 약 기원전 400년에서 기원후 200년 사이로 추정된다(Bellwood and Cameron, 2007).6) 이 배의 옆면에는 밧줄 구멍이 있고 장붓구멍으로 나무를 조립하는 기술(locked mortise and tenon technology)을 사용하여 목판을 끼워 맞추었다. 이런 특수 기술은 기원전 2000년까지 소급될 수 있는 이집트 중왕국(Egyptian Middle Kingdom) 시기의 지중해나 이집트 지역의 배에서 흔히 보 이는 기술이며, 이 기술은 또다시 로마나 비잔티움 제국으로 전래된다. 다시 말해, 이 기술은 동남아나 동아 시아의 전통적 조선술이 아니라는 것이다. 흥미로운 점은 북중국 한나라의 도성인 장안(長安, 지금의 西安) 의 웨이챠오(渭橋) 유적에도 이 기술을 이용하여 만들어진 목선(木船)이 발견되었다는 것이다(陝西省考古研 究院等, 2015). 이는 현재까지 중국에서 발견된 유물 중 유일하게 지중해식 기술로 만들어진 배이다.

이런 특수 기술은 로마에서부터 장안이나 베트남 북부로 전래되었다. 로마와 장안은 당시 실크로드의 종 착점이었고 베트남 북부는 해상 실크로드의 연접 지역이었다. 물론 이 특수 기술이 장안에 먼저 도착했었는 지, 베트남 북부에 먼저 도착했었는지, 혹은 또 다른 경로를 통해 로마에서 장안과 북부 베트남으로 각각 전 래된 것이었는지를 알 수 없다. 그럼에도 당시의 기술이 실크로드와 해상 실크로드를 따라 빠르게 전파됐다 6) Collection of Dr. Nguyen Viet.

(21)

는 점은 명백하다. 게다가 2000여 년 전의 두 실크로드는 서로 연결되어 있었으므로 독립적으로 존재한 교 역로가 아니었다.

동남아 지역은 신석기 시대부터 금속 시대까지 교역 활동이 지속적으로 활발했음을 알 수 있다. 동남아의 고대 사회는 고립되지 않았고 문화 발전도 낙후되지 않았으며, 동남아의 항해술과 동남아 여러 섬 간 각종 교역 활동도 신석기 시대부터 이미 활발했음을 알 수 있다. 남중국해(South China Sea)는 지금까지도 여전 히 전 세계에서 가장 바쁜 해역이다.

감사의 글

단국대학교 ‘제 50주년 동양학연구원 국제학술회의’에 참가할 수 있도록 저를 초청해준 단국대학교의 박성진 선생님께 특별히 감사 인사를 드립니다. 아울러 한국어 통·번역을 맡아준 단국대학교 소동섭과 저의 글에 토론을 맡아주신 서강대학교의 윤대영 선생님께도 감사드립니다.

<참고문헌>

廣西壯族自治區考古隊和合浦縣博物館, 󰡔合浦風門嶺漢墓 –2003~2005年發掘報告󰡕, 北京: 科學出版社, 2006.

吉開將人, 「論“T型玉環”, 鄧聰 主編, 󰡔南中國及鄰近地區古文化硏究: 慶祝鄭德坤教授從事學術活動六十週年 論文集󰡕, 香港: 中文大學出版社, 1994.

鄧聰, 「越南馮原遺址與香港大灣遺址玉石器對比試釋」, 鄧聰 主編, 󰡔南中國及鄰近地區古文化硏究: 慶祝鄭德坤 教授從事學術活動六十週年論文集󰡕, 香港: 中文大學出版社, 1994.

劉鳳鳴, 「齊國開闢了“東方海上絲綢之路”, 󰡔齊魯文化研究󰡕 第八輯, 2009.

馬勇, 「東南亞與海上絲綢之路」, 󰡔雲南社會科學󰡕 6, 2001.

馬海松, 「古代尋橦淵源考」, 󰡔體育科技文獻通報󰡕 9, 2017.

陝西省考古研究院·中國社會科學院考古研究所渭橋考古隊·西安市文物保護考古研究院, 「西安市漢長安城北渭 橋遺址出土的古船」, 󰡔考古󰡕 2015: 9, 2015.

孫機, 「古文物中所見之犀牛」, 󰡔文物叢談󰡕, 北京: 文物出版社, 1991.

孫華, 「凸好郭器的淵源」, 󰡔中國文物報󰡕 1993年 11月 14日. 孫華, 󰡔四川盆地的青銅時代󰡕, 北京: 科學出版社, 2000.

楊建芳, 「略論有領環的起源·傳播與用途」, 󰡔中國文物報󰡕, 1994年1月9日. 熊昭明, 󰡔漢代合浦港的考古學研究󰡕, 北京: 文物出版社, 2018.

王培新, 󰡔樂浪文化―以墓葬爲中心的考古學研究󰡕, 北京: 科學出版社, 2007.

王學理, 「漢南陵從葬坑的初步清理」, 󰡔文物󰡕 11, 1981.

(22)

周連寬·張榮芳, 「漢代我國與東南亞國家的海上交通和貿易關係」, 󰡔文史󰡕 9, 1980.

黃翠梅, 「殷墟出土的有領玉環及其相關問題」, 李永迪 主編, 󰡔紀念殷墟發掘八十週年學術研討會論文集󰡕, 臺北: 中央研究院歷史語言研究所, 2015.

三上次男, 󰡔陶磁の道 – 東西文明の接点をたずねて󰡕, 東京: 岩波書店, 1969.

朝鮮古蹟研究會編, 󰡔古蹟調査特別報告(第4冊)󰡕, 東京: 朝鮮古蹟研究會(日文), 1926.

Ardika, I. W. “Social complexity in late prehistoric Java”, J. D. Miksic(ed.),

Indonesian Heritage:

Ancient History

, Jakarta: Archipelago Press, 1996.

Ardika, I. W. “Bali in the global contacts and the rise of complex society”, B. Prasetyo, T. S.

Nastiti and T. Simanjuntak(eds),

Austronesian Diaspora: A New Perspective

, Yogyakarta:

Gadjah Mada University Press, 2016.

Ardika, I. W.·Bellwood, P. “Sembiran: The beginnings of Indian contact with Bali”

Antiquity

65:

247, 1991.

Ardika, I. W.·Bellwood, P.·I. M. Sutaba·K. C. Yuliati, “Sembiran and the first Indian contacts with Bali: an update”,

Antiquity

71: 271, 1997.

Bellina, B. “Beads, social change and interaction between India and South-east Asia”

Antiquity

77:

296, 2003.

Bellina, B.·Glover, I. C. “The archaeology of early contact with India and the Mediterranean World, from the fourth century BC to the fourth century AD”, I. C. Glover·P. Bellwood (eds),

Southeast Asia-From Prehistory to History

, London: Routledge Curzon Press, 2004.

Bellwood, P. “Archaeological investigations at Bukit Tengkorak and Segarong, Southeastern Sabah”

Bulletin of the Indo-Pacific Prehistory Association

9, 1989.

Bellwood, P.

First Farmers: The Origins of Agricultural Societies

, Malden, MA: Wiley-Blackwell, 2005.

Bellwood, P.·Cameron, J. “Ancient boats, boat timbers, and locked mortise-and-tenon joints from Bronze/Iron-Age northern Vietnam.”,

The International Journal of Nautical Archaeology

36:

1, 2007.

Bellwood, P.

First Islanders: Prehistory and Human Migrationin Island Southeast Asia

, Hoboken(NJ):

Wiley Blackwell, 2017.

Bernet Kempers, A. J. “The kettle drums of Southeast Asia”,

Modern Quaternary Research in Southeast Asia

10, 1988.

Borell, B. “The power of imagescoin portraits of Roman Emperors on jewellery pendants in early

(23)

Southeast Asia”,

Zeitschriftfür Archäologie Aussereuropäischer Kulturen

6, 2014.

Bouvet, P. “Preliminary study of Indian and Indian style wares from Khao Sam Kaeo (Chumphon, Peninsular Thailand), Fourth-second centuries BCE”, P. Y. Manguin·A. Mani·G. Wade (eds),

Early Interactions between South and Southeast Asia: Reflectionson Cross-cultural Exchange

, Singapore: Institute of Southeast Asian Studies, 2011.

Brierley, J. H.

Spices: The Story of Indonesia’s Spice Trade

, Kuala Lumpur: Oxford University Press, 1994.

Bùi, C. H. et al.

Khảo Cổ Học Nam Bộ Thời Sơ Sử (Tập 2)

, Ha Noi: Nhà Xuất Bản Khoa Học Xã Hội, 2018.

Bui, M. D. L. “Luy Lau: The first buddhist center in Vietnam”,

International Journal of Science and Research 7

(12), 2018.

Calo, A.

Trails of Bronze Drums across Early Southeast Asia: Exchange Routes and Connected Cultural Spheres

, Singapore: Institute of Southeast Asian Studies, 2014.

Calo, A.·B. Prasetyo·P. Bellwood·J. W. Lankton, “Sembiran and Pacung on the north coast of Bali: a strategic crossroads for early trans-Asiatic exchange”,

Antiquity

89: 344, 2015.

Calo, A.·P. Bellwood·J. Lankton·A. Reinecke, “Trans-Asiatic exchange of glass, gold and bronze:

analysis of finds from the late prehistoric Pangkung Paruk site Bali”,

Antiquity

94: 373, 2020.

Chia, S. “Obsidian sourcing at Bukit Tengkorak, Sabah, Malaysia”,

Sabah Society Journal

20, 2003.

Chia, S.

Arkeologi Bukit Tengkorak, Sabah

, Penang: Universiti Sains Malaysia Press, 2016.

Coedes, G.

The Indianized states of Southeast Asia

, Honolulu: University of Hawai’i Press, 1968.

Enoch, J. M. “History of mirrors dating back 8000 years”,

Optometry and Vision Science

83: 10, 2006.

Fox, R.

The Tabon Caves

, Manila: National Museum of the Philippines, 1970.

Francis, P.

Asia’s Maritime Bead Trade: 300B.C. to the Present

, Honolulu: University of Hawai’i Press, 2002.

Gede, I. D. K. “Budaya Penguburan Pra-Hindu, Pangkung Paruk, Kec. Seririt Kabupaten Buleleng”,

Forum Arkeologi

II, 2009.

Ha, V. T. “Yazhang in Viet Nam”, C. Tang(ed.),

Ancient Cultures of South China and Neighboring Regions

, Hong Kong: The Chinese University of Hong Kong Press, 1994.

Higham, C.

Early Mainland Southeast Asia: From First Humans to Angkor

, Bangkok: River Books Press, 2014.

Hoa, D. D. “New findings on Zhang in the Phung Nguyen culture”,

South Pacific Studies

17,

(24)

1996.

Huang, C. “T-Sectioned Bangles and Yazhang in Ancient China and Mainland Southeast Asia(ca.

2300~500 BC)”, Canberra: Australian National University(PhD thesis), 2017.

Hung, H. C. “A sourcing study of Taiwan stone adzes”,

Bulletin of the Indo-Pacific Prehistory Association

24, 2004.

Hung, H. C.·Iizuka, Y. “Nephrite and Mica industries: a link towards the Austronesian world”, B.

Bellina(ed.),

Khao Sam Kaeo: An Early Port-City between the Indian Ocean and the South China Sea

, Paris: Ecolefrançaised’ Extrême-Orient, 2017.

Hung, H. C.·Y. Iizuka·P. Bellwood, Ancient jades map 3000 years of prehistoric exchange in Southeast Asia, 104: 50, 2007.

Imamura, K. “The distribution of bronze drums of the Heger I and Pre-I types: Temporal changes and historical background”,

Bulletin of the Department of Archaeology, University of Tokyo

24, 2012.

Indraningsih, R. “Research on prehistoric beads in Indonesia”,

Bulletin of the Indo-Pacific Prehistory Association

6, 1985.

Jaang, L. “Long-distance interactions as reflected in the earliest Chinese bronze mirrors”, L. von Falkenhausen(ed.),

The Lloyd Cotsen Study Collection of Chinese Bronze Mirrors (volumeII:

Studies)

, Los Angeles: Cotsen Occasional Press, 2011.

Joo, K. “Rethinking the animal-shaped beads found in ancient Nangnang Tombs”,

Paper presented at The 3rd SEAMEO SPAFA International Conference on Southeast Asian Archaeology

, Bangkok, 19 June 2019.

Katsuhiko, O.·Gupta, S. “The Far East, Southeast and South Asia: Indo-Pacific Beads from Yayoi Tombs as indicators of Early Maritime Exchange”,

South Asian Studies

16: 1, 2000.

Koezuka, T.·Yamasaki, K. “Scientific study of the glass objects found in Japan from the Third Century BC to the Third Century AD”, F. Gan·R. H. Brill·S. Tian(eds),

Ancient Glass Research Along The Silk Road

, Singapore: World Scientific Publishing Company, 2009.

Kusuma, P.·M. P. Cox·N. Brucato·H. Sudoyo·T. Letellier·F.-X. Ricaut, “Western Eurasian genetic influences in the Indonesian archipelago”,

Quaternary International

416, 2016.

Lam, T. M. D. “Central Vietnam during the period from 500 BCE to CE 500”, P.-Y. Manguin·A.

Mani·G. Wade(eds),

Early Interactions between South and Southeast Asia: Reflections on Cross-cultural Exchange

, Singapore: Institute of Southeast Asian Studies, 2011.

Lankton, J. W. and Bernbaum, M. “An archaeological approach to understanding the meaning of beads using the example of Korean National Treasure 634, a bead from a 5th/6th-century

참조

관련 문서

In Indonesia and Myanmar, two Southeast Asian countries with long histories of military involvement in politics, the armed forces are trying to maintain or expand their

Our lead article is by Pavin Chachavalpongpun (Associate Professor at Kyoto University’s Center for Southeast Asian Studies, Japan) on “Is Defending Human Rights in

Keywords: Southeast Asian Studies, Southeast Asia, ASEAN, Region, Identity, Culture, Community, Institutions, Imagination, Zomia.. * Professor of Contemporary

Keywords: Indigenous, methodology, Southeast Asian Studies, area studies, Kaupapa Maori, Sikolohiyang Pilipino.. * Programme Leader, History and International Studies,

As I have argued previously (Aguilar 1994; 2007), elections constitute a ritualized social practice, with each election filled with ritual performances involving

With the multiple belongings of Timor-Leste between Southeast Asia, the Pacific and the Lusophone connexion, this paper focuses on the construction of Timor-Leste’s regional

By observing this spread process, we can find the cross section in the passage of cultural exchanges between Southwest Asia and Northeast Asia.. By looking

Keywords: Southeast Asia, international history, global economy, area studies, Association of Southeast Asian Nations