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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2주: 국제관계의 역사와 이론(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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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2주: 국제관계의 역사와 이론(1)

★ 국제정치사적으로 본 5가지 체제 (이기택『국제관계사』)

1. 유럽지도체제(Le Directoire) 또는 비엔나체제: 나폴레옹전쟁을 통해 형 성된 체제로서, 처음에 나폴레옹의 프랑스에 대항하는 유럽 4열강인 영국, 오스트리아, 프러시아, 러시아 4강체제로 출발했으나 1818년 프랑스 참여

* 1815년 Vienna 회의를 근간으로 유럽의 현상유지를 이들 5개국이 공동유 지하기로 합의: 프랑스혁명의 재발방지에 목적이 있었고, 이후 벨기에와 그 리스의 독립문제 등을 다룸.

2. 유럽동맹체제 Bismark 체제: 1871년 독일과 프랑스가 맺은 비밀동맹을 계기로 비엔나 체제는 균열 또는 약화됨. 이후 독일과 이탈리아의 독립을 계 기로 유럽은 이중 삼중의 동맹이 체결. 주로 비스마르크에 의해 다중으로 맺 어진 동맹 체제를 말하지만, 비스마르크 사후에도 상당기간 지속. 특히 3국 동맹과 3국 협상으로 나누어져 진행되다가 1차 대전으로 이어짐.

* 1+2 = Concert of Europe 100년(By Balance of Power)

3. 집단안보체제, Versailles 체제: 국제연맹의 탄생은 바로 국제문제의 집단 안보적 해결의 시작이며 다자간 해결의 출발을 의미.

* 그러나 국제연맹은 출발부터 한계: 1930년대 Hitler의 등장과 독일의 재무 장, 그리고 국제연맹정신에 정면으로 위배되는 각종 비밀조약의 재현으로 유 명무실해짐, 결국 2차 대전 발발을 막지 못함.

4. Yalta 체제: 제2차 대전 이후에 형성된 체제로 이전 3체제 특성을 모두 조합한 성격을 가지고 있다.

1) 초기 미,영,소의 지도체제와 냉전기간 미소 정상들에 의한 지도체제 성격 2) 미-소를 중심의 자본주의와 사회주의의 동맹의 대결에 의한 냉전체제 3) UN을 비롯한 집단안보체제 성격

5. Malta 체제: 탈냉전-1989.12.2 몰타회담에서 부시대통령과 고르바초프 공 산당서기장이 냉전시대 마감을 선언. 독일통일과 소련 및 동유럽의 붕괴는 얄타체제의 붕괴를 의미.

★ 1차대전 이전의 국제정치(1648-1914)

▶ 시기: 근대국가의 탄생시기를 기점으로 하는 것이 가장 자연스러운 분류.

근대국가-절대주권, 군사력과 독립외교 1648년 Westphalia 조약 이후 크게 3 시기로 크게 나눌 수 있다

1) 전쟁의 소용돌이: 절대군주가 된 영주나 제왕들 간의 전쟁; 각종 왕위계승 전쟁(스페인, 오스트리아...), 북방전쟁(발트해를 놓고 스웨덴과 러시아의 전 쟁, 1700~21) 등...그 절정이 나폴레옹전쟁

2) 비엔나체제: 나폴레옹 전쟁을 처리하는 비엔나회의에서 메테르니히의 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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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로 비엔나체제가 성립되고 이것이 1848년 메테르니히 실각 때까지 지속 3) 비스마르크 체제: 메테르니히 실각 후 비스마르크의 주도로 동맹질서 계 속. 이는 독일통일을 이끌기 위한 중첩동맹의 체제

▶ 1648년 이전: 유럽을 중심으로 하는 봉건체제

* 권력분립; 국제정치적으로 보자면 일종의 권력분립 또는 공유; 각 국가의 군주가 봉건사회 이전부터 있었지만, 그 왕들의 세력은 절대적이라고 할 수 없었다. 국내적으로는 각 지방영주들과 권력을, 대외적으로는 교황에 의해 상당부분 통치 권력을 제한 당해야 했다.

* 유럽의 왕들끼리의 혼인과 왕위계승조차도 교환했던 것을 보면, 그 당시 국가간 구별이 그리 절대적이지 않았고, 교황이 상당부분 간섭

* 30년 전쟁: 프랑스 주도의 신교국가들의 승리로 끝나고 1648년 웨스트팔리 아조약이 체결됨; 먼저 종교적으로 신교가 교황세력에 눌려있던 위치에서 부 상하는 계기가 되었고, 유럽에서의 패권이 스페인에서 프랑스로 넘어갔으며, 봉건주의적 경제체제에서 본격적으로 근대자본주의경제체제로 넘어가는 전 환점이 되었다. 그러나 국제정치적으로 가장 의미 있는 변화는 곧 봉건국가 에서 절대왕정에 의한 민족국가로의 이동이었다. 이는 막스 베버의 유명한 국가의 정의인 영토(territory), 국민(people), 그리고 주권(sovereignty) 의 3요 소를 갖춘 국가의 탄생을 의미한다.

* 17-18세기의 유럽은 밖으로는 제국주의(포르투갈과 스페인), 안으로는 민족주의의 세계

2. Vienna System

* 19세기 유럽정치사의 핵심은 보수 세력에 대항한 자유 민족국가의 쟁취라 고 할 수 있음: 나폴레옹의 패배이후 처음에는 반동 보수 세력이 승리했지만 그리 오래가지 않음.

* 프랑스 혁명=인민주의 + 민족주의: 스페인을 누르고 승승장구하던 1789 년 프랑스가 대혁명과 나폴레옹전쟁, 그리고 몰락. 전쟁처리를 위한 비엔나 회의에서 오스트리아 메테르니히의 주도로 영, 러, 프의 4국협조체제를 결성 하고 유럽의 혁명물결을 차단하고 구질서를 회복하겠다는 공동의지 과시. 후 에 다시 프랑스 참여로 5개국이 집단지도체제의 형태를 띠고 유럽질서 관장.

* 비엔나체제의 특성: 메테르니히의 주도로 위로부터의 개혁을 시도하면서 정치기반을 유지하자는 것, 즉 프랑스혁명의 이전으로 돌아가자는 시도 (ancient regime)

* 문제점: 협조체제 내부에 여전히 보수적인 오스트리아, 프러시아, 그리고 어느 정도 개혁적이면서 메테르니히의 주도권과 지나친 정치적 간섭에 대해 반기를 든 영국과 프랑스의 반발로 분열이 일어나고, 더욱이 프랑스의 1830 년 7월 혁명과 1848년 2월 혁명, 벨기에의 독립, 그리고 결정적으로 1848년 메테르니히 실각(비엔나봉기로)으로 급속히 약화.

3. Bismark Syste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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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오스트리아를 중심의 보수적인 비엔나체제가 종식되긴 했으나, 그렇다고 유럽에서의 기본적 세력균형체제가 무너진 것은 아니다. BOP는 1648년 근대 국가의 성립이후 1차대전 전까지 유럽을 관통했던 체제. 오히려 비엔나체제 의 붕괴는 더욱 강화된 동맹체제인 비스마르크체제를 불러왔다.

* 비스마르크: 국내적으로는 언론, 종교(가톨릭), 사회주의 탄압을 한 비민주 적, 대외적으로는 동맹정책으로 독일 통일을 이룸. 철혈재상(Blut und Eisen politik-수상취임연설에서 지금 독일문제를 해결할 수 있는 것은 언론이나 다 수결이 아니라 피와 철이라고 선언).

* 시작: 베를린봉기를 수습하는 회의에서 1848년 프랑크푸르트 회의를 계기 로 그 동안의 오스트리아 위주가 아닌 프러시아의 주도로 독일 통일을 주창 (소독일통일론)하면서 시작. 1862년 프러시아의 수상으로 등용된 비스마르크 는 그때까지 수십 개의 영토로 분할되어있던 독일의 정치적 통일을 추진.

▶ 현상타파 + 현상유지

1) Bismark 체제의 I기(1862.9월 프로이센의 수상으로 등용된 이후부터 보 불전쟁(Franco-Prussian War)의 승리인 1871년까지)=현상타파

* 통일의 장애물이었던 오스트리아와 프랑스를 제거: 1866년 그 동안의 오스 트리아의 독주를 막는다는 명분과 적당한 영토적 보상을 통해 프랑스와 러 시아를 안심시킨 후 전쟁을 통해 오스트리아를 배제한다.

* 이어서 1871-2년 보불전쟁을 일으켜 프랑스를 물리치고, 통일제국 탄생

* 오스트리아와의 전쟁에서 승리함으로써 독일통일의 장애물이자 경쟁자를 제압했고, 프랑스와 전쟁에서 승리함으로써 한편으로는 보상금과 알사스 로 렌을 획득하고, 다른 한편으로는 독일인의 민족의식(애국심)을 고취함.

2) Bismark체제 II기(1871~1890.3 빌헬름과의 충돌로 사임)=현상유지

* 기존 유럽의 세력균형을 적절하게 이용하여 유지 전략: 구체적으로 독일통 일의 과정에서 피해를 입은 오스트리아와 프랑스의 복수를 막고, 틈틈이 남 하정책을 통해 세력확장을 꾀하고 있는 러시아를 견제하기 위해 거의 모든 국가와 중첩된 동맹을 비밀조약으로 맺음

* 비스마르크 동맹체제는 종래의 동맹의 주요 끈이 되었던 종교나 이념과는 상관없는 열강의 다각적인 힘의 대립관계를 이용하여 그야말로 순전한 세력 균형의 틀 안에서 작동하는 체제.

3) Bismark 체제의 III 기(빌헬름의 현상타파)

* 비스마르크가 사임하자 체제의 안정성에 균열: 독일은 공격적 외교로 전 환, 이는 우선 동맹을 중첩시킴으로서 서로에 대한 위협을 할 수 없도록 조 절하던 전략을 수정하고 동맹에 대한 선호를 결정. 즉 독일은 이탈리아와 오 스트리아와 함께 소위 삼국동맹으로 기존의 동맹을 강화하고(=삼국동맹), 동 시에 비스마르크의 퇴진을 기회로 그 동안 독일과의 동맹을 통해서만 연결 되어 온 프랑스, 러시아, 영국이 서로 협력하여, 이는 곧 삼국협상을 형성해 서 독일을 중심으로 한 삼국동맹과 대립하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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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동맹체제의 붕괴: 결국 1차대전까지 독-오-이의 삼국동맹과 영-불-러의 삼 국협상의 대결구조에 의한 세력균형의 형태를 띠기는 하지만, 이는 그동안 비스마르크체제하에서 오랜 시간동안 잠재되어 있던 변화의 욕구를 담고 있 는 상당히 불안한 구조였다. 특히, 이는 20세기초에 그 절정을 이루는 제국 주의국가간의 식민지쟁탈전으로 인해 더욱 불안정했음. 빌헬름 2세의 세계정 복의 야심이 본격화되던 중 마침내 발칸에서 러시아의 남하정책인 범슬라브 주의와 독 & 오의 범게르만주의가 충돌해 마침내 1차대전.

★ 1차대전 이전 국제정치의 양면성: Realism vs Idealism

1) 세력균형체제: 군사력 중심의 세력균형의 형성과 유지, 그리고 붕괴로 요 약되는 약육강식의 힘의 논리가 지배하고, 따라서 안보위협이 상존하는 갈등 구조이며, 그리고 마침내 비극적인 세계대전에 이르고 마는 현실주의적 세계 2) 계몽주의의 절정: 다른 한편으로는 18세기 이래 지속적으로 진행되어온 과학기술의 발전과 산업혁명의 영향으로 급속한 통신, 운송, 무역이 확대되 는 등 국가협력과 통합의 가능성에 대한 논의가 활발하게 진행되는 이상주 의적 세계; 제국주의 현상 역시 본질적으로는 힘의 논리에 의한 것이긴 하지 만, 세계의 각 지역을 군사적, 정치적, 문화적 그리고 무엇보다도 경제적으로 접촉시키고 동화시키는 역할을 수행

▶ 계몽주의(Enlightenment): 산업혁명으로 인한 과학만능주의와 근대사회 의 도래를 불러온 계몽주의 영향으로 긍정적인 인간관과 낙관적인 세계관이 여전. 국제정치적으로 무력보다는 국제법/국제중재를 더 신뢰했고, 국제협력 을 위해 자신들의 편협한 이익을 어느 정도 희생할 수 있는 인간과 그 인간 으로 이루어진 국가에 대한 신뢰의 무드가 존재. 특히 19세기 초반부터 차츰 국제회의가 증가하기 시작했고, 마침내 1899년에는 헤이그 만국회의가 열려 서 평화에 관한 국가간의 협력을 논하는 역사적인 시도가 있기까지 발전.

* 유럽 내에 수많은 사적단체, 지금으로 말하면 비정부기관(NGOs)들이 우후 죽순처럼 생겨나기도 했다. 이런 분위기에서 전쟁의 필연성을 주장하고, 힘 에 의한 세력균형은 실제정치에서만 일어날 뿐 그것을 주장하는 것은 곧 호 전주의자거나 목적을 위해 수단을 불사하는 마키아벨리스트로 비난.

▶ 1차세계대전: 낙관적 분위기와는 달리 1차대전 발발. 그것도 유럽내 열강 간의 세력다툼으로 인하여 전쟁이 발발하자, 그 동안 이어져 오던 계몽주의 적 인간에 대한 신뢰가 도전을 받았다.

* 그럼에도 여전히 이상주의?: 일부의 비판에도 불구하고 여전히 강세; 1) 예외: 이상주의자들은 1차대전의 원인을 보다 근원적인 국가간 세력충돌에서 찾기보다는 예외적 사건으로 취급; 2) 국제기구 부재: 1차대전은 국가간 적 대심을 조정해줄 만한 국제기구가 부재했기 때문에 사소한 오해가 축적되어 일어남; 3) 비밀조약: 각국의 권력자들끼리 국민들에게 책임을 지는 공개조 약이 아닌 자신들의 권력유지를 위한 수많은 비밀조약을 맺었기 때문에 전 체국민의 의사와는 정반대로 개인적인 야욕을 위한 권력투쟁; 4) 교육부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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반문명적인 전쟁이 여전히 가능한 이유가 아직 충분하게 계몽되지 못한 국 제사회의 후진성 때문이므로, 전쟁의 비극은 당연히 계몽주의적 이상론 자체 의 잘못이 아니라 오히려 계몽주의가 덜 전파되었기 때문이라는 주장. 이상 주의자들은 한발 더 나아가서 새 시대를 향한 인류의 발전은 여전히 진행중 이며, 1차대전은 구시대 질서의 마지막 발악이었으며, 불행한 사건이긴 하지 만 인류가 치른 성장을 위한 고통이라고 해석.

▶ 당시의 이상주의의 3특징: 1) 제도나 법에 대한 신뢰가 그 기본이므로 연구방법 역시 제도나 법에 대한 것이 가장 중심; 2) 이상적인 규범을 해석 하고 이것을 적용하는데 관심; 3) 유토피아적 국제정치는 경험이나 실제적인 결과보다는 희망하는 사항을 우선적으로 고려

▶ 미국과 이상주의: 이상주의가 1차대전 이후에도 명맥을 잇게 되는 중요 한 현실적인 이유는 전후 국제정치에 새로운 리더로서 등장하는 미국의 존 재 때문이다. 미국은 유럽국가들에 비해서 상대적으로 적은 피해를 입었기 때문에 전쟁의 비극적 성격에 대해서도 아무래도 유럽국가들과는 달랐다.

* 윌슨주의(Wilsonianism): 미국이 평화를 위한 국제연맹의 건설을 통해서 집단안보를 도모한다면 전쟁을 반드시 방지할 수 있다고 보았다. 이상주의자 들은 여전히 전쟁은 여전히 대외정책의 합리적인 수단이 아니고, 어떤 나라 도 그것을 원하지 않는다고 믿었고, 당연히 전쟁은 오해로 일어난 것이므로 이에 대한 보완만 하면 전쟁은 다시 일어나지 않을 것으로 생각했다.

▶ 현실주의의 도전: 당연히 현실주의자를 중심으로 한 이상주의자들에 대 한 비판의 물결, 1930년 말에는 이런 이상주의의 방어논리와 현실주의의 비 판논리간의 논쟁이 최고조로 달하는데, 이를 가리켜 소위 국제정치의 제1차 대논쟁(The First Grand Debate)이라고 한다. 우리에게 너무나 잘 알려진 역 사서인 에드워드 Carr의 『20년간의 위기, 1919-1939』는 바로 이러한 국제 정치의 현실주의와 이상주의적 관점간의 상반된 관점을 비판적으로 기술.

참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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