투고일_2021.08.10 심사기간_2021.09.01-14 게재확정일_2021.10.05 DOI https://doi.org/10.47294/KSBDA.22.5.31
토비아스 레베르거(Tobias Rehberger)의 작품을 통해 본 예술작품의 장소성 연구
A Study on the Placement of Art Works Viewed through Tobias Rehberger’s Work.
장준호, 홍익대학교 대학원 미술학과 조소전공 / 고경호(교신저자), 홍익대학교 조소과
Jang, Jun Ho_Department of Sculpture, Graduate School of Hongik University / Ko, Kyoung Ho(Corresponding author)_Department of Sculpture, Hongik University
차례 1. 서론
2. 장소 없는 장소의 탄생 2.1. 공간과 장소의 관계 2.2. 장소 상실과 DMZ 2.3. 개념미술과 장소의 상관성
3. 토비아스 레베르거의 작품 속 장소와 실재의 장소
3.1. 장소의 생산 <당신이 사랑하는 것도 당신을 울게 만든다>
3.2. 장소의 치유 <듀플렉스 하우스>
4. 결론 및 제언 References
토비아스 레베르거(Tobias Rehberger)의 작품을 통해 본 예술작품의 장소성 연구
A Study on the Placement of Art Works Viewed through Tobias Rehberger’s Work.
장준호, 홍익대학교 대학원 미술학과 조소전공 / 고경호(교신저자), 홍익대학교 조소과
Jang, Jun Ho_Department of Sculpture, Graduate School of Hongik University / Ko, Kyoung Ho(Corresponding author)_Department of Sculpture, Hongik University
요약
중심어 장소 비무장지대 듀플렉스 하우스 토비아스 레베르거
이 연구는 토비아스 레베르거(Tobias Rehberger)의 작품에서 보여지는 예술작품과 장소와의 관계를 통해 레베르거의 작품을 분석하고 나아가 현대미술에서의 장소성에 대한 해석을 돕고자하는데 목적이 있다. 연구방법으로 레베르거의 작품 <듀플렉스 하우스(Duplex House)>(2017)의 연구 장소이자 설 치 예정 장소인 DMZ의 장소적 특수성을 고려해 인간과 장소의 관계부터 되짚어 볼 필요성을 느꼈다.
따라서 2장 장소 없는 장소의 탄생에서는 우선 공간과 장소의 관계를 정의하고 인간이 장소에 갖는 애착의 근원에 대해 이-푸 투안의 ‘장소 사랑’ 개념을 알아본다. 이어 에드워드 렐프의 장소와 장소 상실에서 보여지는 장소감과 장소감 상실에 따른 무장소성에 대해 고찰하고 이를 통해 DMZ 장소감 의 상실 근거를 다각도로 분석해보았다. 또한 레베르거 이전 실제 장소를 작품의 개념으로 사용한 개 념미술에 대해 연구한다. 이를 위해 리처드 롱의 <도보 위에 만들어진 선 [영국]>(1967)과 로버트 스미드슨의 <거울 전치 [포틀랜드 섬, 영국]>(1969)을 분석하여 레베르거의 장소개념과 구별한다. 3 장 토비아스 레베르거의 작품 속 장소와 실재의 장소에서는 신체활동을 통한 인간과 장소의 관계를 시각적으로 풀어낸 레베르거의 <당신이 사랑하는 것도 당신을 울게 만든다>(2009)를 장소의 생산으 로 정의하여 분석한다. 이어서 거주를 통한 커뮤니티 형성이 현재 남북한 주민의 차이를 좁힐 수 있다 는 개념에서 출발한 <듀플렉스 하우스>(2017)는 점차 상실되고 있는 DMZ의 장소감과 비교해 장소 의 치유의 역할을 할 수 있는 작품으로 분석했다. 이처럼 대지미술에서 시작된 미술작품과 장소의 관 계성은 레베르거의 작품을 통해 ‘재료’, ‘생산’, ‘치유’의 세 가지 방법으로 정의할 수 있으며, 현대미술 에서 장소에 대한 다양한 해석이 가능함을 보여준다.
ABSTRACT
Keywords place DMZ
Duplex House Tobias Rehberger
This study is meaningful in that it analyzes Rehberger’s work through the relationship between the work of art and its installation site that is shown in Tobias Rehberger’s work, and furthermore helps in the interpretation of ‘placeness’ in contemporary art. In Chapter 2, we first define the relationship between space and place, and it is necessary to review the relationship between humans and places in consideration of the spatial specificity of the DMZ, the research and installation site of Reberger’s <Duplex House>(2017). Therefore, first, Yi-Pu Tuan’s concept of ‘Place Love’ will be investigated, to consider the origin of human attachment to places. Next, we examine the sense of place and disarmament caused by the loss of sense of place in Edward Relf’s Place and Placelessness, and analyze the reasons for the loss of sense of place in the DMZ from various angles. I also examine conceptual art before Reberger that uses ‘place’ as a concept. To this end, we analyze Richard Long’s <A line made by walking, [England]>(1967) and Robert Smithson’s <Mirror Displacement [Portland, England]>(1969), two representative works, to distinguish their approach from Reberger’s concept of place. In Chapter 3, Reberger’s <What You Love Makes You Cry>(2009), which visually unravels the relationship between humans and places through physical activity, is defined and analyzed as the production of places. Subsequently, <Duplex House>(2017), which started from the concept that community formation through residence can narrow the gap between the current residents of the two Koreas, was analyzed as a work that can play a role in healing the place compared to the sense of place in the DMZ, which is gradually being lost. As such, the relationship between works of art and places that began in land art can be defined in three ways: “Materials”,
“Production” and “Healing” through Reberger’s works. It also shows that various interpretations of
‘place’ are possible in contemporary art.
1. 서론
불과 몇 해 전까지 전 세계인의 시선이 집중되었던 한반도 남과 북의 경계, 비무장지대 (Demilitarized Zone)는 현재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COVID-19)의 세계적 대유행과 함께 자연스레 우리의 관심에서 멀어졌다. 2018년 4월 27일 판문점 평화의 집에서 개최된 남북정상 회담은 다양한 미디어를 통해 전 세계에 보도되었다. 수행원을 대동하지 않은 채 50m 남짓의 목조 다리 위를 걸으며 대화하는 양국 정상의 모습은 전 세계인의 이목을 집중시키기에 충분했 다. 물론 그 ‘도보다리’가 미디어 송출을 위해 연출된 것이라는 후일담을 남기기도 했지만, 역사 적 사건을 장식한 공간이라는 것은 분명한 사실이다. 이처럼 ‘장소’의 새로운 개념 정립은 뜻하 지 않은 사건이나 우연에 의해서도 이뤄지기도 하며, 그 과정에 새로운 경험을 제공하기도 한 다. 한때는 외딴 곳의 작은 습지에 불과했던 바로 그 ‘도보다리’, 그리고 주변에 위치한 판문점 등의 장소는 방문자로 하여금 각기 다른 기억과 감정을 갖게 만든다(Kim, S., 2019).
이전까지 아무 의미 없던 자연 공간에 파란색 페인트로 급하게 장식된 목조 다리는 이제 평화와 화합의 상징으로 우리 모두에게 각인되었다. 그렇다면 ‘도보다리’라는 구조물 대신 야외에 설치 된 예술작품으로 그 대상을 옮기면 어떨까? 예술작품과 작품이 놓인 장소와의 관계는 무엇인 가? 장소에 대한 감정은 어떻게 달라질 수 있을까? 지표의 자연현상을 연구·관찰하는 자연지리 학의 관점이 아니라 인본주의 지리학(humanistic geography)의 관점으로 파악해 본다면 이곳 의 장소성은 어떻게 정의할 수 있을까? 이러한 물음에서 시작된 본 연구는 이-푸 투안(Yi-Fu Tuan, 1930~), 에드워드 렐프(Edward Relph, 1944~), 마르크 오제(Marc Auge, 1935~), 미셸 드 세르토(Michel de Certeau, 1925~)의 공간과 장소에 대한 개념을 바탕으로 인간과 자연의 관계를 시각적으로 풀어낸 장소 특정적 미술의 사례를 알아보며, 독일의 설치예술가인 토비아스 레베르거(Tobias Rehberger)의 작품 <당신이 사랑하는 것도 당신을 울게 만든다 (Was du liebst, bringt dich auch zum Weinen)>와 <듀플렉스 하우스(Duplex House)>를 통해 예술작품에 나타나는 장소의 특징을 장소의 ‘생산’과 ‘치유’의 측면에서 다루어 본다. 결국 이와 같은 분석을 통해 예술작품과 장소의 관계성을 연구하는데 그 목적이 있다.
2. 장소 없는 장소의 탄생 2.1. 공간과 장소의 관계
일상생활에서 흔히 사용되는 ‘공간’과 ‘장소’라는 단어는 명확한 의미구분을 하지 않고 사용되 는 경우가 빈번하다. “서울 북촌에 위치한 우리집은 40년째 삼대가 함께 사는 화목한 공간이 다.”라는 문장을 예로 들어보자. 이 말에서 어색함을 크게 느끼지 못하는 사람들도 다수 있을 것이라고 판단된다. 국립국어원의 표준국어대사전에 따르면 ‘공간’은 ‘아무도 없는 빈 곳’이며,
‘심리적, 물리적으로 널리 퍼져 있는 범위’를 의미한다. 또한 ‘어떤 물질 혹은 물체가 실재할 수 있거나 어떤 일이 일어날 수도 있는 자리’로 정의되기도 한다. 반면 ‘장소’는 ‘어떤 일이 일어나거나 이루어지는 곳’이다. 사전적 의미만을 놓고 보면 ‘장소’의 개념은 ‘자리’ 또는 ‘범위’
등의 물리적 개념 외에 ‘발생되었거나 발생 가능한 어떤 일’, 즉 사건·사고와의 연관성을 갖고 있다는 것을 알 수 있다. 즉 사람들에 의한 경험과 그 과정에서의 인지를 통해 의미가 부여된 곳임을 짐작하게 된다. 따라서 위 사례 문장이 내포하는 의미를 정확하게 전달하기 위해서는
‘공간’ 보다 오히려 ‘장소’라고 표현하는 것이 바람직해 보인다.
그럼 이제 장소의 소유와 관련된 간단한 예를 들어보자. “넘어오지 마! 넘어오면 다 내꺼야!”
아마도 대부분의 사람들은 유년 시절에 한 번쯤 이런 이야기를 듣거나 스스로 해봤을 것이다.
익숙하지 않은 타인과 아주 좁은 거리에서 생활하며 공존하는 것을 배우는 장소로 초등학교 교실을 생각할 수 있다. 학교생활에서 대부분의 불협화음은 자신의 자리를 타인이 침범하는 것에서부터 시작된다. 위의 경우처럼 짝꿍과 함께 쓰는 책상에 금을 그어 영역을 나누고 각자의 영역에 대한 소유권을 주장하는 행위 역시 장소에 대한 애착에서 시작되는 것은 아닐까? 어린
시절 우리 반, 혹은 우리 교실이라는 장소는 하루일상 중 많은 시간을 보내고 같은 반 친구들과 여러 다양한 경험을 함께 하는 장소이다. 또한 그러면서 자연스럽게 그곳에 대한 애착이 생기기 마련이다. 혹여 다른 반 학생이 우리 반에 놀러와 마음에 안 드는 행동을 한다면 “우리 반에서 나가!”라고 당당하게 요구하기도 하니 같은 공간을 점유한 구성원들에 대한 동질감과 장소에 대한 애착, 소유욕은 분명 인간의 본성과도 연관이 있을 것이다.
인본주의 사회학자 이-푸 투안은 장소에 대한 새로운 개념을 제시한다. 그는 인간이 장소에 대해 갖는 애착과 인간과 장소 사이에 생겨나는 유대감에 대해 그리스어의 장소, 땅을 뜻하는 토포스(topos)와 사랑을 뜻하는 필리아(philia)를 합성해 “장소 사랑”이라는 신조어를 통해 설 명했는데 그의 저서 토포필리아(Topophilia)가 바로 그것이다(Tuan. Y., 1974/2011). 그는 또 다른 저서 공간과 장소(Space and Place)에서 논하길 어린 아이가 성장하는 과정에서 아이의 애착 대상이 중요한 사람에서 다른 대상, 작은 사물에서 결국 장소로 이어진다고 보았 다. 아이에게 장소는 거의 움직일 수 없는 거대한 존재이며 어머니를 통해 느끼는 친숙함과 안식처와 같은 의지의 대상이다. 또한 아이는 장소에 대해 명확한 이미지나 그곳에서의 구체적 인 경험이 없더라도 ‘어디에?’라는 물음에 대한 답변으로 구체적인 단어가 제시된다면 장소감 과 안정감을 획득한다고 말한다(Tuan. Y., 1977/2007). 아마도 이런 장소에 대한 감정은 인간 의 언어체계에도 영향을 미쳤으며 그에 따라 장소를 뜻하는 대부분의 단어들이 여성형을 띄고 있는 것이다. 한 예로 프랑스어의 장소를 의미하는 단어 ‘place’는 여성형이며 따라서 단어 앞에 여성형 관사인 une 또는 la를 사용한다. 이처럼 장소는 인간이 태어나 그것을 인지하는 순간부 터 애착과 의지의 대상이자 욕망의 대상이다.
또한 하이데거(Heidegger, M., 1958)에 의하면 ‘장소‘란 인간 실존이 외부와 맺는 유대를 보여 주며 동시에 인간의 자유와 실제 존재함을 지속적으로 확인할 수 있는 곳이다. 즉, 장소를 인간 실존에 있어 근원적 중심으로 본 것으로 다르게 말하면 결국 인간은 오랜 시간 동안 장소와의 경계가 모호한 채 존재해온 것이다. 이러한 장소에서 인간은 기본적으로 자신의 주변 환경에 대한 다급함과 절박함을 통해 자신만의 장소를 만들어왔으며, 나아가 지리와 역사를 형성해왔 다(Lee, Y., 2003).
2.2. 장소 상실과 DMZ
앞서 장소가 생산되는 과정과 인간이 장소를 인식하는 방법에 대해 알아보았다면 이제는 장소 의 지속성 측면에서 알아볼 필요가 있겠다. 시간이 흐름에 따라 사람들의 의식과 삶의 형태는 바뀌기 마련이며 그에 따라 장소도 또한 변화된다. 대한민국은 한국전쟁 이후 70여 년 동안 급격한 사회적 변화를 겪었으며 생활방식의 변화에 따른 새로운 공간과 장소들이 생겨났다.
하지만 이런 눈부신 경제 발전 속도와 도시화로 인해 장소의 외형적 변화의 주기는 매우 짧아졌 고 현재는 하나의 큰 사회적 문제로 인식되고 있다. 그런데 이런 변화 속에서도 인간의 개입이 최소화된 장소로 그 모습을 수십 년간 유지해온 곳이 바로 DMZ지역이다. 따라서 이런 장소의 지속성과 앞으로 3장에서 이어질 토비아스 레베르거(Tobias Rehberger) 작품의 설치 장소이 며 주요 개념이 된 DMZ의 특징에 대해 먼저 살펴보고자 한다.
경기도 파주부터 강원도 고성에 이르는 한반도의 횡축인 248km의 비무장지대, DMZ는 물리적 으로 가까운 거리임에도 불구하고 한국전쟁 이후 70여년 가까이 일반인의 출입이 금지된 지역 이다. 연구자는 이렇게 특수한 상황이 만들어 내고 있는 이 장소의 실재성을 감안하였을 때 이곳을 ‘장소감(sense of place)이 상실된 공간’으로 볼 수 있다고 판단하였다. 에드워드 렐프 (Relph, E., 1976/2005)는 그의 저서 장소와 장소상실(Place and Placelessness)을 통해 인간이라면 누구나 독특하고 고유한 물리적 공간에서 어떠한 감정을 느끼게 된다고 보았고 이를 ‘장소감’이라 표현했다. 그는 장소의 원형을 개인적인 안정감과 의미의 중심을 제공하는 인간 실존의 근원적 중심으로서의 집 또는 보금자리라 주장하며 이러한 집의 확장된 이미지로
서의 장소를 수직적 구조와 수평적 구조로 나눠서 설명한다. 수직적 구조는 경험의 강도와 깊이 의 구조로서 다양한 수준의 외부성과 내부성의 경험에 대응하는 층위들을 가지며, 수평적 구조 는 개인, 집단, 대중의 장소에 대한 지식의 사회적 분포로 이루어져 있다(Kwon, J., 2005).
렐프의 장소감은 개인에게 중요한 정체성의 근원을 제공하며 이에 따라 장소감은 사람마다 각기 다른 경험에 비추어 다르게 갖게 되는데, 김상호(Kim, S., 2019)가 「미디어와 공간, 그리 고 장소의 문제-몸을 중심으로 한 비판적 검토」에서 주장했듯, 장소가 특정 방식으로 재탄생하 는 과정에서 그 장소는 우리를 다른 존재로 만들어 간다. 이러한 맥락에서 우리는 신체를 통해 실천에 개입하며 커뮤니케이션을 이룰 수 있는 공간을 형성하는 주체임과 동시에, 장소를 만들 어가는 주체라고 볼 수 있다. 또한 이런 커뮤니케이션의 반복과 확장은 커뮤니티를 형성하며 자발적 선택을 기반으로 구성원 사이에서 사회적인 상호작용이 끊임없이 일어나는 것을 의미 한다(Oh, Y. & Kang S., 2018). 렐프는 현대사회에서 도시화로 인해 점차 가속화되고 있는 장소 상실에 대한 현상을 장소감의 상실, 즉 ‘무장소성’이라는 개념으로 고찰한다. 이것의 대표 적인 현상으로 장소들이 점점 획일화되고, 상품화 된 가짜 장소들의 등장을 꼽을 수 있으며 자본주의의 발달과 그에 따른 세계화, 매스미디어의 발달로 인해 세계 여러 도시들의 생활방식 이 유사해지며 이것은 관광객을 위해 조성된 디즈니랜드 같이 ‘무장소성’을 보여주는 사례라 말한다. ‘비진정성’이란 또한 세계와 인간의 가능성에 대한 닫힌 태도를 의미한다. 렐프는 이러 한 비진정적 태도를 통해 장소에서 느끼는 개개인의 감정, 즉 장소감이 상실된다고 하였다 (Park, M. & Choi, I., 2016).
렐프가 말하는 무장소성은 인간의 진정성이 결여된 상태, 즉 인간의 감정에 집중되어 장소와 분리된다. 하지만 앞서 거론한 하이데거는 현상학적 입장으로써 그에게 장소란 미리 앞서 주어 지는 것이 아니라, 때마다 전체와 일정한 관계를 맺음으로써 현시하는 것이다. 즉 인간 실존이 외부와 연결된 ‘실존적 공간’이다. 그 관계를 드러냄과 동시에 인간의 자유와 현전성의 깊이를 확인하는 방식으로 존재한다고 설명하였다(Hong, S., Park, J. & Im, S., 2011, p. 17). 장소는 인간의 실존을 드러내며 그곳에서 인간은 스스로를 증명한다. 결국 인간과 장소는 둘 중에 하나 만 존재할 수 없음으로 경계가 모호함은 물론 구분 짓는 대상이 될 수 없다.
한편 프랑스의 인류학자 마르크 오제(Augé M., 1992/2017)에 따르면 의미가 부여될 수 있는 공간에서는 개인의 경험으로 매개되는 ‘인간적 장소’뿐 만이 아니라, 텍스트나 이미지가 중심이 되어 매개되는 ‘비장소(non-place)’ 역시 존재한다고 보았다. 이러한 구분은 어떠한 공간 내에 서 함께 공간에 머무는 이용자들의 정체성과 관계, 그들 사이의 커뮤니케이션 방식 등을 기준으 로 하며 기존의 전통적 인류학적 장소(Anthropological Place)와 현대 사회의 특징으로 나타난 역사성, 관계성, 정체성을 갖지 못하는 곳을 비장소(Non-Place)로 구분한 것이다. 그에게 장 소는 개인의 정체성과 관련되며, 항상 관계적이고 역사적인 것으로 규정된다(Park, J. & Lee, J., 2018, p. 69). 또한 그가 ‘비장소’라는 개념을 통해 제시하고자 하는 바는 ‘장소’와 ‘비장소’
라는 모호한 양극성이 이루는 개념이 결코 순수한 형태로 존재하지 않는다는 것이었다(Jung, H., 2013). 이는 근대적 이분법의 사유 방식으로 공간과 장소에 대한 개념이 성립되기에는 한계가 있다는 주장과도 같다. 또한 장소는 진행 중인 어떤 사건이며 하나의 한정된 사물일 수 없다는 측면에서 논의되어야 한다는 반증이기도 하다.
미셸 드 세르토(Michel de Certeau)는 ‘장소(place)’와 ‘공간(space)’의 차이를 설명한다. 그에 따르면 장소는 위치의 즉각적인 환경을 말하고, ‘안정성(stability)’의 상징으로 나타난다. 반면 에 공간은 방향, 속도, 시간의 변화 속에서 존재한다. 즉, 장소와의 관계 속에서 공간은 특정 현재, 시간의 행위 속에 위치하는데 장소의 반대적 위치에서 공간은 완전한 안정성이 부재한다 (De Certeau, M., 1984). 이렇듯 장소의 의미에 대해 다양한 해석과 혼란이 발생하는 이유는 장소란 정확하게 정의되지 않은 개념이며 지리적 경험의 가변적인 표현이기 때문이다. 인간을 쉽게 정의할 수 없는 만큼 인간과의 경계가 모호한 장소를 쉽사리 규정하기는 어려운 것이다.
DMZ의 장소성을 정의하기 위해 장소에 관한 여러 이론들의 개념을 살펴보았다. 물론 현대 사회의 발달에 따른 장소에 대한 새로운 개념들, 예를 들어 ‘인류학적 장소’라 명명한 전통적 장소와 대비되는 비장소의 개념으로 ‘단절’이라는 키워드로 대표되는 DMZ를 설명하기에 부족 함이 존재한다. 하지만 남북정상회담 당시 큰 이슈가 되었던 ‘도보다리’가 놓인 장소의 이전과 이후는 분명히 다른 맥락의 장소인 것처럼 DMZ의 장소와 공간에 대한 다학제적 논의가 꾸준히 진행되고 있는 현재, 다양한 논의가 필요한 것은 의심의 여지가 없다.
2.3. 개념미술과 장소의 상관성
앞에서 언급한 투안과 렐프 등 인문지리학자들의 장소에 대한 연구는 1960년대 중반이후부터 진행되었는데 이와 비슷한 시기에 미술계에서도 미술관을 벗어나 새로운 장소에 대한 연구가 활발히 진행됐다. 당시 미술계의 행태에 대한 회의감과 사회적 분위기의 변화로 새로운 돌파구 를 찾길 원했던 예술가들은 자연으로 눈을 돌리기 시작했다. 그 결과 인간과 자연의 관계를 주제로 자연 속에서 행해지는 인간의 활동이 작품화되기 시작했고, 이것은 인간과 공간이 서로 관계 맺는 것에 대한 시각적 탐구로써 그 의미가 깊다. 따라서 이번 장에는 자연과 인간 그리고 예술 활동으로 연결되는 과정에서 발생되는 장소에 대해 살펴본다.
<Figure 1> A Line Made by Walking, England
(http://www.richardlong.org/Sculptures/2011sculptures/l inewalking.html)
<Figure 2> Mirror Displacement[Portland, England]
(https://holtsmithsonfoundation.org/mirror-displacement -grassy-slope)
영국의 대지미술가인 리처드 롱(Richard Long, 1945~)과 로버트 스미드슨(Robert Smythson, 1938~1973)의 작품을 예로 살펴보자. 우선 롱의 작품 <도보에 의해 만들어진 선, 영국(A line made by walking, England)>(1967)은 작가가 공원 안 잔디밭을 가로질러 왔다갔다 하면서 몸의 흔적을 시각화한 것이다<Figure 1>. 사진으로 기억된 이 작품은 오리지 널 작품을 판매할 수 있는 형태도 아니며 상업갤러리의 밖에 존재하고 자연환경에 지속적인 손상을 주지 않기 때문에 생태학적으로도 문제가 없다. 작가는 자연을 그저 바라보는 대상이 아니라 그 안에 있음을 나타냄으로써 그 속의 존재의 가능성을 제기하고 나아가 우리의 존재방 식에 대해서까지 생각하게 만든다.
다음으로 스미드슨의 작품 <거울 전치[포틀랜드 섬, 영국](Mirror Displacement [Portland, England])>(1969)은 좀 더 자연 속 인간의 개입이 드러나 있다<Figure 2>. 작가는 총 일곱 개의 거울이 채석장 언덕에 차례로 놓여지는 과정을 연속적으로 촬영한 사진작품과 그 곳의 위치를 알 수 있는 지도를 함께 제시했는데, 작가는 실제 거울의 존재와 상[像]을 비추는 거울 의 성질, 반영이라는 개념을 동시에 사용하여 인간의 의식과 거울의 유사성을 표현했다. 여기서
유사성이란 인간이 무언가를 깨닫는 것은 곧 그 대상으로부터의 분리(전치)를 의미한다는 것 이다. 만약 스미드슨이 갤러리나 미술관 공간에 한 무더기의 돌을 쌓아 작품을 완성했다면 어땠 을까. 물론 자연의 공간 자체가 작품의 중요한 요소인 만큼 공간을 재현(再現)할 필요가 없었지 만, 만약 그렇다면 작품이 위치한 공간은 장소가 아닌 비장소의 개념으로 넘어간다(Godfrey, T., 1998/2002).
위에서도 거론했듯 이런 대지미술작품의 탄생배경을 좀 더 이해하기 위해서는 먼저 1960년대 미술계를 관통하는 두 가지 관심사를 이해해야 한다. 하나는 미술의 상업화에 반대하는 움직임 이 생겨났다는 것과 또 다른 하나는 당시 사회 전반에 걸쳐 부상한 환경운동이다. 이는 결국 동시대 예술가들에게 대지에 작품을 설치함으로써 판매가 불가능한 작품을 제작하게 만들었 고, 이를 통해 순수한 창작 작품을 제작하고 그것의 감상에 집중하고자 하는 의미를 갖는다.
또 반도시화주의와 우리가 살고 있는 지구라는 행성에 대한 정신적인 접근 방법 등이 작품 안에 표현되어 있다(Monthlyart, 1999).
이렇듯 대지미술가들은 의미 없던 자연 속 공간을 작품의 주요 요소(재료)로 사용했으며 미술 작품이 놓인 공간은 사람들에게 경험되고 인지되어 의미가 발생한다. 결국 인간의 존재를 대변 하는 설치물, 인간의 활동으로 인해 자연 공간의 변화가 발생하며 이것은 곧, 장소로의 치환을 뜻한다.
3. 토비아스 레베르거의 작품 속 장소와 실재의 장소 3.1. 장소의 생산 <당신이 사랑하는 것도 당신을 울게 만든다>
롱과 스미드슨의 경우 자연 공간은 개념적인 요소로 작품을 이루는 하나의 큰 축을 담당한다.
이번 장에서는 공간이 작품의 주요 요소를 넘어 작품이 곧 새로운 ‘공간의 생산’이자 관람객이 작품 안에 존재함으로써 완성되는 새로운 형태에 대해 알아보겠다. 2009년 제53회 베니스 비 엔날레 황금사자상을 수상한 독일 태생의 현대미술가 토비아스 레베르거의 작품을 살펴보자.
<당신이 사랑하는 것도 당신을 울게 만든다(Was du liebst, bringt dich auch zum Weinen)>(2009)는 그의 독창적인 아이디어와 뛰어난 감각이 한데 집약된 프로젝트이다
<Figure 3>. 레베르거는 특유의 ‘대즐 카모프라쥬(Dazzle camouflage)’를 이용해 자르디니의 영국 해군이 사용한 것으로 군용트럭이나 탱크, 대포 등을 숨기기 위한 보통의 위장이 아닌 전함의 등급과 이동 방향 등을 교란하기 위해 고안된 현란한 위장 무늬를 말한다. 이 작품은 비엔날레 기간 동안 실제 카페로 계획된 것이기 때문에 결국 ‘진정성’과 ‘거주 공간’을 바탕으로 한 렐프의 장소 개념과 상충되는 부분이 존재하다. 결국 카페 공간은 잠시 머무는 공간으로 인류학적 장소가 아니기에 오제의 비장소에 속한다.
<Figure 3> What you love also brings you to wine (Was Du Liebst, Bringt Dich Auch zum Weinen)
(https://monthlyart.com/portfolio-item/%ED%86%A0%EB%B9%84%EC%95%84%EC%8A%A4-%EB%A0%88%EB%B 2%A0%EB%A5%B4%EA%B1%B0-truths-maddening-without-love/)
어지러울 정도로 현란한 색상과 패턴으로 마무리된 이 독특한 공간은 현실 속 공간과 구분되는 또 다른 리얼리티를 가진다. 또한 카페라는 일상적 장소의 기능과 서로 융합되는 동시에 충돌됨
을 보인다. 따라서 일종의 ‘사이의 장소’가 만들어 진다. 아무래도 카페 공간의 중심은 사람들이 머무를 수 있는 테이블과 의자 등의 사물인데 사진에서 보듯 벽과 바닥, 테이블과 의자 심지어 중간중간 위치한 환기시설의 파이프들까지 패턴으로 마감되어 사물의 원형을 알아차리기 어렵 다. 레베르거는 이렇게 어디가 의자이고, 테이블인지 한눈에 구분되기 어려운 공간으로 우리가 당연시 생각하는 ‘보는 행위’와 ‘보이는 사물’에 의문을 제기하는 것이다. 하지만 우측 사진에서 볼 수 있듯이 카페 공간에 사람들이 들어와 위치함으로써 테이블과 의자, 바닥과 벽의 위치가 눈에 들어오기 시작한다. 결국 어지러웠던 공간은 사람들로 하여금 사물의 존재가 드러나고 공간 본래의 기능이 시작된다. 사람을 통해 눈에 보이는 풍경이 완성되는 것이다.
우리는 레베르거가 선택한 공간이 전시장이 아니라 ‘카페’라는 점을 다시 눈여겨 볼 필요가 있다. 타인과의 소통이 제한된 전시장은 작품을 수동적으로 관람하고 빠져나오는 공간인 반면, 카페는 사람이 누군가를 기다리고 잠시 머물며 만남과 대화를 위한 공간이다. 사람의 존재와 그들에게서 발생하는 여러 요소들이 카페에 생기를 불어 넣는다. 이렇듯 레베르거는 우리가 살아가는 공간은 인간을 통해 의미가 생기고 완성되며 인간과 구분될 수 없음을 보여준다. 또한 그는 인간과 작품을 병치함으로써 인간과 공간의 동일성을 표현했다. 렐프는 인간과 장소와의 깊은 관계는 다른 사람들과의 깊은 관계만큼이나 필수적이고 불가피한 것이라 말한다. 그런 관계가 없다면 인간 존재의 의미인 그 고유의 가능성을 대부분을 잃고 말 것이라 말하며 인간과 장소의 관계를 규정하였다(Relph, E., 1976/2005) 또한 그는 장소는 추상적인 개념이 아니며 생활 세계가 직접적으로 경험되는 현상이라고 정의한다. 따라서 장소의 의미는 실재 사물과 인간의 지속적인 활동으로 가득 차 있고 이 모두는 개인과 공동체 정체성의 중요한 원천이 된다고 말한다.(Relph, E., 1976/2005) 따라서 레베르거의 설치작품에서 보여지는 위장을 통 한 ‘숨김’과 인간을 통한 ‘드러냄’도 결국은 렐프가 정의한 인간과 장소의 관계를 시각적으로 풀어낸 것이라 하겠다.
3.2. 장소의 치유 <듀플렉스 하우스>
또 다른 레베르거의 작품 <듀플렉스 하우스(Duplex House)>(2017)에 대해 살펴보자
<Figure 4>. 2019년 ‘문화역서울 284’에서 진행된 <<DMZ>>전시에 선보인 작품으로, 작가 는 민통선 내에 위치한 양지리에서 볼 수 있는 주민들의 단독주택을 프로토타입으로 삼아 작업 을 진행했다. <듀플렉스 하우스>는 남과 북의 가족이 함께 살아가는 두 세대용 주거 형태를 제작한다는 아이디어에서 착상한 작업으로 총 3개의 층으로 구성된 이 집은 두 나라로 존재하 는 대한민국의 역사를 상징한다. 먼저, 남과 북의 가족들 모두는 1층에 있는 하나의 출구를 통해서만 집으로 들어갈 수 있으며 실제 주민들이 거주하고 있는 양지리의 집들은 1층의 같은 공간이 무기 창고로 활용되었다고 한다. 또한, 침실과 화장실로 이뤄진 2층 공간은 두 생활공간 으로 각각 분리되고 1층에서부터 따로 연결된 두 개의 계단을 통해서 올라갈 수 있다. 2층의 두 생활공간을 연결해주는 유일한 지점은 각각의 침실 벽에 뚫린 두 개의 동그란 창문뿐이다 (아래 사진 속 초록색 원으로 표시). 이 집에 거주하는 사람들은 이 창을 통해 서로의 시선을 교환할 수 있다. 마지막 3층은 아래층에서 각각 연결된 계단으로 올라올 수 있으며 칸막이를 쓰지 않는 오픈 플랜식(open-plan) 구조를 채택했다. 이곳은 공용 거실과 부엌 그리고 두 개의 발코니를 갖추고 있다.
<Figure 4> Duplex House (Photographed by Researcher)
<듀플렉스 하우스>는 이렇게 총 세 개의 층으로 이루어졌으며 현재 두 나라로 존재하는 우리 의 역사를 상징한다. 1층 출입구 공간은 공통의 과거를 보여주며, 2층의 공간은 두 개의 작은 창문을 통해 남과 북이 서로를 주시하고 있는 현재의 모습을 보여준다. 특히 창과 창 사이의 떨어진 공간은 심리적 거리감을 나타냄과 동시에 현실 속 DMZ를 표현한다. 꼭대기 3층은 훗날 두 나라가 통일된 모습으로 하나 된 미래를 나타낸다. 하지만 아쉽게도 통일을 이루기 전까지 이 집에는 결국 남한의 가족만이 살 수 있다. <듀플렉스 하우스>는 비록 가까운 미래가 아닐지 라도 언젠가 통일이 되면 남과 북의 가족이 더불어 함께 살 수 있길 바라는 작가의 생각을 담고 있으며, 앞으로 장기적 계획 속에 DMZ 내 실제로 구현될 예정임을 전시에서 확인할 수 있다.
레베르거의 작품을 좀 더 구체적으로 이해하기 위해서는 먼저 그의 작품의 모델이 된 양지리의 지역 특수성과 가옥의 구조를 파악해야 한다. 양지리는 강원도 철원군 동송읍에 위치한 작은 마을로 민통선 북쪽에 있어 예전부터 민북마을이라 불리던 곳이다. 민통선은 1954년 휴전선 일대의 군사 작전과 보안을 목적으로 생겨났으며, 1973년 정부의 주도하에 민통선 안쪽에 농가 를 분양했다. 특히 70년대는 북한과 서로 경제적 우위를 다투며 대북 심리전 또한 난무했던 시기로 양지리 마을의 탄생 배경 역시 대북선전마을의 의미가 짙다. 따라서 이 곳의 농가들은 남한의 부를 선전하기 위해 매우 특이한 구조로 설계됐는데, 두 채의 집을 서로 대칭으로 붙여 한 채로 만들었으며 이것은 최대한 집이 커보이도록 일종의 트릭을 쓴 것이다.
당초 주택 50여 채를 조성하여 9평 공간에 2가구씩 총 100호였던 마을은 2010년 기준으로 70여 가구가 남았으며 현재는 기존 반씩 나눠 쓰던 단독주택의 옆집을 매입하여 한 가족이 넓혀 사용하고 있다. 결국 전쟁과 휴전이라는 슬픈 역사의 흐름에서 이런 지역적 특수성이 민북 마을의 가옥을 탄생시켰고 나아가 한 이방인의 눈을 통해 미술작품의 소재가 된 것이다. 레베르 거의 작품에서 가장 눈에 띄는 부분은 현재의 상황을 표현한 2층의 생활공간인데, 두 개의 동그란 창으로 서로를 바라볼 수 있는 구조는 남과 북이 서로에게 갖는 경계심과 관심을 시각적 으로 풀어낸 것으로 볼 수 있다. 특히 서로 ‘보다’라는 행의는 둘 사이에 대화가 일어나기 직전 의 상황으로 여러 다양한 가능성을 내포하고 있다. 한 예로, 투명한 창으로 서로에게 수신호를 보내 3층 주방에서 만날 약속을 잡는 모습은 상상만으로도 미소를 짓게 한다. 이것은 결국
‘통일의 창’이며 남북한이 함께 커뮤니티를 이루는 가장 이상적인 모습이 될 것이다.
프랑스의 지리학자인 에릭 다르델(Dardel, E., 1952)은 집에 대해 우리가 어떠한 선택을 하기 도 전에 이 장소는 존재했고, 따라서 첫 만남에서 우리는 수동적이다 라고 밝힌다. 그러나 이 장소에서 인간조건과 지구상의 모든 실존의 토대가 확립된다고 규정한다. 또한 우리는 장소를 변화시키고 이동할 수 있는데 이것은 결국 지속적으로 장소를 찾는 행위라고 말한다. 우리의 존재를 한 곳에 정착시켜 그곳에서 우리의 가능성을 실현시키기 위한 기반으로 장소가 필요하 기 때문이라고 말한다. 우리가 정착한 집이라는 장소는 세계가 모습을 드러내는 곳이다. 이런 현상학적 방법론에서 장소는 본질적으로 결국 인간 실존의 근원이며, 인간의 실존이란 ‘거주한 다’는 것이다(Sim, S., 2005).
레베르거는 장기적인 계획을 통해 그의 <듀플렉스 하우스>를 DMZ공간에 위치시키고 실제 생활이 가능하도록 하겠다고 밝히면서 통일이 되기 전까지 남한의 사람들만 거주가 가능하다 는 단서도 달았다. 이 프로젝트가 현실화된다면 <듀플렉스 하우스>로 인해 국가적 공동체성 을 상실한 사람들이 자발적으로 하나의 공간에 모일 수 있다. 그리고 그 안에 모인 사람들은 소통을 하며 커뮤니티를 형성하게 된다. 이러한 행위는 DMZ라는 장소성을 상실한 공간에 새로 운 풍경을 만든다. 현재의 DMZ는 과거에 비해 70여년의 단절과 그곳을 직접적으로 기억하는 세대의 사라짐을 원인으로 여러 의미에서 장소감이 상실됐다. 장소감을 되찾는 것은 결국 거주 라는 형태를 통해 인간 본질을 되찾는 것이다. 이런 의미해서 거주를 위한 <듀플렉스 하우스>
를 설치하는 작업은 현재 DMZ 내 장소감의 회복, 즉 훼손된 장소성을 치유하는 계기가 될 것이다.
4. 결론 및 제언
본 연구를 통해 예술작품에서 나타는 여러 가지 장소성에 대해 고찰하였다. 먼저 자연 공간을 예술작품의 재료로 사용하는 방식이다. 1960년대 중반부터 리처드 롱과 로버트 스미드슨으로 대표되는 대지예술가들은 기존 미술관이라는 장소에서 벗어나 야외 공간에 작품을 설치하기 시작했다. 이것은 단순히 작품을 설치하기 위해 장소를 물색한 것이 아니라 작업의 구상 단계에 서부터 자연이라는 대상을 고려해 재료화한 것이다. 또한 이것은 ‘자연에 대한 인간의 개입’이 라는 개념을 시각화한 것으로, 장소를 대하는 예술가의 태도 변화를 상징한다. 그리고 공간 자체를 제작하는 방식이다. 레베르거의 <당신이 사랑하는 것도 당신을 울게 만든다>(2009) 는 비엔날레 파빌리온에 실제 카페를 제작함으로써 해당 공간을 작품화한다. 특히 앞서 대지예 술가들과는 다르게 카페 이용자의 유무를 통해 작품이 완성되는 형태로 공간과 인간을 병치시 키며 인간과 공간을 동일시한 것 또한 큰 특징이다. 인간은 장소다. “풍경이 내 속에서 자신을 생각한다. 나는 풍경의 의식이다.”(Merleau-Ponty, M., 1948)라는 세잔의 말처럼 풍경을 지 각하는 인간마저 풍경이 스스로를 드러내는 장소인 것이다. 마지막으로 과거의 의미가 퇴색된 장소에 작품을 설치함으로써 장소를 치유하는 방식이다. 레베르거의 <듀플렉스 하우스>
(2017)는 DMZ의 역사와 그에 따른 양지리의 탄생배경 그리고 가옥 구조의 이해를 바탕으로 실제 주거가 가능한 주택을 생각하며 프로토타입으로 제작되었다. 여기서 주목할 점은 해당 작품이 놓여질 장소이다. 물론 여러 현실적인 문제 때문에 정확한 지점을 결정하지 못했지만
‘DMZ 내 설치’라는 말이 주는 의미가 크다. 렐프의 경우처럼 장소를 인간실존의 근원적 중심으 로 보았을 때 결국 인간이 존재하지 않고, 신체를 통한 장소의 경험자들이 사라진다면 장소감은 존재하지 않는다. 현재의 장소도 의미를 잃어버리면 공간으로 회기하는 것이다. 따라서 DMZ는 앞서 연구자가 거론했듯이 장소감이 차츰 사라지는 곳으로 해당 작품이 실제 DMZ에 설치되어 남북한 주민들의 주거까지 현실화된다면 상실된 장소감을 되살리는 계기가 되고 이는 곧 작품 을 통한 장소의 치유가 된다.
이상에서 살펴본 것처럼, 예술작품과 장소의 관계성은 세 가지 방법으로 정리할 수 있었다.
하지만 방대한 미술사 전체를 놓고 본다면 미술작품과 장소의 관계의 무한한 해석이 가능할 것이다. 따라서 다시 한번 본 논문은 레베르거의 작품을 기준으로 장소성을 구분하여 연구하였 고, 이는 레베르거의 작품연구를 겸한 성격이 짙음을 밝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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