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6호_조필호-김은정_20세기 중후반 유럽 애니메이션의 촉각성에 관한 연구.pdf(4.3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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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 (사)한국일러스트레이션학회 학술지-일러스트레이션 포름 2008. Vol.16. 목차 1. 서 론 1.1. 문제 제기 및 연구 목적 1.2. 연구 범위 및 방법 2. 20세기 중후반 유럽 애니메이션과 촉각성 2.1. 촉각성의 복원 3. 작품 분석 3.1. 얀 슈반크마이에르의 매너리즘과 초현실주의 3.3. 조르주 슈비츠게벨의 회화성 4. 결 론 참고문헌 (요약). 21세기를 살아간다는 것은 어떤 의미에서 지난 세 기보다 개선된 삶을 살아가고 있다는 것이다. 특히 디 지털과 인터넷이 열어준 삶은 인류가 보내왔던 시간 에 비하면 개선의 폭과 속도가 생소할 만큼 모든 것 이 기록적이다. 예술의 세계에 있어서도 이러한 디지 털화는 함께 진행이 되었고 여전히 진행의 과정 중이 다. 본 연구는 이러한 일련의 흐름을 경험하며 느껴왔 던 불편함에 대한 질문으로 시작된다. 굳이 디지털이 라는 흔한 이름을 다시 붙일 필요는 없겠지만 컴퓨터 를 이용한 일러스트레이션과 사진작업 등 디자인 프 로세스에서 왜 이렇게 비슷한 이미지가 많은 것인가 라는 것이다. 왜 일러스트레이터와 디자이너의 흔적은 사라지고 소프트웨어의 흔적만 남는 것인가? 우리는 그 이유를 바로 촉각성에서 찾고자 한다. 예술가의 손 이 사라졌다는 것이다. 이러한 문제제기를 통해 본 연 구는 이와 유사한 갈등과 탐험을 겪었던 20세기 중후 반의 유럽에서 시각의 가능성을 넘어 촉각을 통해 신 체성을 회복하고 몸의 지각을 이론화하며 작품 속에 서 증명하고자 하였던 작가와 작품을 살펴보기로 하 였다. 물론 우리가 겪고 있는 오늘의 문제를 과거를 통해 해결하는 것에는 한계가 있다. 하지만 본고는 문 제를 해결하려는 어떠한 연구의 결과도 가지고 있지 는 않다. 단지 불과 십 수 년 전에 예술가와 이론가들 의 고민들이 무엇이었고 그것을 어떻게 해석하고 바 라보는 것이 옳은 것인지를 현재의 우리에게 다시 질 문하고 싶은 것이다. 주제어 : 20세기 중후반, 유럽 애니메이션, 촉각성. (Abstract). Living in the 21st century means living a more improved life than in the past centuries in a sense. Particularly digital technology and the Internet have made improvements greater and faster than any other past times, which is record-breaking throughout human history. This digitization has been made in the world of art. This study began from the question about inconvenience experienced through a series of this stream. The question is why there are so many similar images in the design processes like computer illustration and photo works. Why do only traces of software remain eliminating vestiges of illustrators and designers? We seek to find the answer in tactility: vanish of artists’ hands. By raising this matter, this study aimed to look into artists and their works that tried to recover physical body through the tactile sense going beyond the sense of sight, and to prove the sense of body in the works of art theorizing it. There are some limits to solve today’s problems with the past as well. However, this study doesn’t contain any results from attempts to settle the problems. It just tries to ask us what artists and theorists were concerned several decades ago and how we should interpret and view them. Keyword : middle and late 20th Century, animations of Europe, tactility.
(3) Journal of The Korea Society of Illustration Research Vol.16. 1. 서론 1.1. 문제 제기 및 연구 목적 본 연구는 20세기 중후반을 거치면서 제작되고 발 표되었던 유럽의 애니메이션 작품들을 통하여 서양미 술사의 흐름 속에서 예술 감상에 있어서의 대상과 주 체에 대한 19세기 이전의 고전적인 이론을 거부하고 촉각성이라는 담론을 통해 이제는 시각이 주도하던 예술이 죽었고 촉각이 바로 예술에 있어서 최고의 가 능성이라는 것을 매너리즘과 초현실주의, 미니멀리즘 과 바로크, 포스트모더니즘에 이르는 서양미술사의 이 론의 흐름을 통해 증명하고자 하였던 작가들의 실험 을 살펴보는 것으로 진행된다. 이를 통해 얻어졌던 미 술이론과 예술가의 경험들이 직업적 유산을 잇는 적 통의 장자들이 예술가로서 여전히 존재하기에 그들에 게는 미치지 못할지라도 21세기의 시각디자이너와 일 러스트레이터로서 우리가 너무 쉽게 폐기하였거나 대 체해버린 촉각성에 대해 질문하고 시각디자인으로 분 류되는 비교적 폭넓은 영역에 있어서 실무위주의 발 전을 거듭할 수 있었던 점은 자축할 만하며 우리에게 는 큰 유산이지만 실무 분야에 비하면 이론 연구자의 수나 연구의 질에 있어서는 자성의 자세가 필요하다 는 취지의 제언을 통해 촉각성을 비롯한 다양한 미학 적 가치들을 오늘에 적용할 수 있도록 하고, 또한 오 늘의 이미지들 속에서 새로운 미학적 가치를 분석해 낼 수 있도록 제언하는 것을 목적으로 한다. 또한 목 적을 밝힘과 동시에 한 가지 질문을 던지기 원한다. 20세기 후반부터 양산되기 시작한 디지털이미지에게 성적을 매긴다면 당신은 과연 얼마를 주겠는가? 질문 의 범위는 20세기 후반부터 21세기 초반까지 국내에 서 생산되어져 온 디지털이미지로 제한하겠다. 국내라 는 공간적 제약이 과거만큼의 의미를 가지지는 못하 지만 물리적 공간이 주는 의미이기 보다는 동일한 시 대를 살아가는 문화집단체로서의 경계로 이해하기를 바란다. 그것은 일러스트를 포함한 다양한 이미지와 텍스트를 동일하게 수용하게 되는 특징을 공유하기 때문이다. 본 연구자는 이에 대해 상당히 낮은 수준의 점수를 가지고 있다. 가령 그라데이션 같은 효과를 보 았을 때 에어브러시라는 도구를 통해 물감을 분사시 켜 표현했던 상황1 )과 그래픽 소프트웨어를 통해 명령 1) 에어브러시에 의한 표현도 엄격한 의미에서 이전의 도구에 비하면 예술가의 손이 많이 사라지도록 했던 것이지만 과도기 적으로 비교적 짧은 시간 이용되었고 디지털화를 설명하기에 적절성이 높다고 판단하여 예를 들었음.. 을 수행하게 하는 것에는 디지털기술에 의해 대체된 예술가의 시간이라는 것이 필요했다는 것을 알지만 이제 위치 값과 칼라 값을 지정하는 것으로 재현할 수 있다는 엄청난 혜택과 그 혜택을 통해 양산되어온 이미지들을 볼 때, 그 매끄러움과 완벽함의 반복에 불 편한 부담감을 느끼게 되기도 한다. 또한 스타일=손 이라는, 과거에서부터 이어져온 전통이 디지털이라는 필터를 통과하며 스타일=기능이 되어 전혀 다른 사람 이 만들어냈지만 같은 결과가 나오는 희한한 시기까 지 거쳐야했다는 것과 이러한 현상에 대한 학문적인 접근이 필요하다는 생각이 복합적으로 작용하여 연구 가 진행될 수 있었고 이러한 맥락이 더 많은 사람들 의 통찰력 속에서 고민거리로서 쌓여 있을 것이라는 확신으로 비록 이론적 배경이나 학문적 깊이가 미천 하지만 또한 논의의 대상이 국내가 아니라는 많은 단 점이 존재하지만 21세기 초반의 오늘날 촉각성을 회 복하는 디자인과 일러스트레이션이 발표되기를 바라 며 연구를 진행해야할 이유를 스스로에게 부여할 수 있었다. 1.2. 연구 범위 및 방법 연구의 대상으로서 20세기 중후반에 유럽에서 제작 되어온 애니메이션을 선정하였고 따라서 연구의 범위 는 당시의 유럽 애니메이션 작가의 작품을 중심으로 이루어지게 된다. 퍼핏 애니메이션을 통해 체코와 동 유럽의 애니메이션을 최고의 수준에 끌어올린 얀 슈 반크마이에르((Jan Svankmajer)와 한 폭의 포스트모 더니즘 회화와 비교할 만큼 완성도 높은 작품을 기대 해도 좋은 스위스의 조르주 슈비츠게벨(Georges Schwizgebel)이 그 두 명의 작가가 될 것이고 미술이 론이라는 것이 자로 긋듯 선명하게 구분되어질 수 없 는 측면을 수용하면서 이들이 디디고 있는 매너리즘 과 초현실주의, 미니멀리즘과 바로크, 포스트모더니즘 의 세계를 관통하며 이어온 촉각성에 대한 탐험과 실 험의 의미를 살펴보도록 할 것이다. 아직까지는 해소 되지 않은 많은 궁금증이 남아있을 것으로 안다. 촉각 성을 연구함에 있어 왜 20세기 중후반의 유럽 애니메 이션을 연구의 대상으로 삼고자 한 것인가라는 의문 이 있을 것이다. 디지털시대인 21세기와 20세기 중반 은 서로 차이가 있으나 20세기 중반을 굳이 오늘날의 대척점으로 볼 수 있는 것은 아니다. 단지 세계대전이 끝나고 유럽은 그 어느 시대보다 격렬한 과거와의 결 별과 숱한 미술이론의 주장이 명멸한 시대를 거치게 되었고 그 과정에서 두 명의 작가들이 각기 다른 양.
(4) (사)한국일러스트레이션학회 학술지-일러스트레이션 포름 2008. Vol.16. 식을 통해 촉각성에 대해 끈임 없이 탐험을 하였고 디지털이미지 속에 살아가는 우리에게 촉각성이 바로 예술의 가능성을 여는 열쇠라는 믿음을 그들의 철두. 중요한 변화의 시기를 겪게 된다. 시각예술에서 시각 이 필수불가결한 것으로 받아들여지고 있었으나 그에 대한 질문이 생겨나고 있었다. 20세기 초의 형식주의. 철미한 예술적 사유와 노력이 낳은 산물로서 인정할 수 있기 때문에 연구의 대상으로 삼은 것이다. 덧붙여 설명하기를 원하는 것은 애니메이션을 만화영화의 다 른 이름으로 인식하고 있는 국내의 인식을 경계하는 의미에서 유럽 애니메이션은 적절성을 부여 받기에. 자들은 시각예술을 이루는 것이 비단 시각적 요소라 고 할 수 있는 형(Shape), 색(Color), 형식(Form), 양 식(Style)만으로 가능할 수 있는지 혹은 이것만으로 어떤 의미를 가지게 할 수 있는지에 의문을 제가하였 다.3 ) 그린버그의 이론도 도전을 받기 시작하였고 미. 충분하다는 판단 하에 연구의 대상으로 삼게 되었다 는 것이다.2 ) 2장에서는 시각예술의 본질로서 시각을 주체로 여겨 왔지만 현대 미술을 통해 기존의 생각들 이 도전을 받게 되고 그 가운데 퐁티의 지각에 대한 이론을 통해 촉각의 가능성에 대한 이론적인 접근을 시도한다. 그리고 두 명의 작가를 차례로 살펴보는 과. 니멀리즘을 시작으로 그린버그의 시각의 순수성과 자 율성은 신화에 불과하며 비판받고 해체되어야한다는 주장이 생겨나기 시작하였다. 이는 반대되는 입장이라 고 하기 보다는 확장된 이론의 측면이라고 할 수도 있는데 이를테면 시각이 시각예술에서 본질임에도 불 구하고 그것이 순수하게 오직 눈과 관련되어야만 한. 정을 통해 작품 속에서 발견되는 촉각성을 매너리즘 과 초현실주의, 미니멀리즘과 바로크, 포스트모더니즘 에 이르는 서양미술사 이론을 배경으로 해석하여 본 연구의 이론적인 배경을 획득하도록 하겠다.. 다거나 시각이 여타의 다른 감각들이나 신체, 삶, 현 실, 역사 등과 유리해서 존재할 수 없다는 것이다. 20 세기 중반을 시작으로 현대 미술은 이처럼 모더니즘 과 모더니즘 이후로 크게 나누어지게 되고 이 시기를 본 연구의 대상으로 삼은 것은 시각예술의 지각에 있. 2. 20세기 중후반 유럽 애니메이션의 촉각성. 어서 상이한 태도와 문제의식에서 접근이 가능한 시 기로서의 특징을 잘 나타내고 있기 때문이다. 결국 지 각의 세계에서 시각의 독점권이 신체로 확장되어 가 게 된다. 이러한 맥락 속에서 프랑스의 철학자인 메를 로 퐁티Maurice Merleau-Ponty(1908-1961)는 이러한 지각의 근원을 신체로 되돌리고 있다. 그의 현상학은. 2.1. 촉각성의 복원 예술을 구성하는 다양한 표현방식 가운데 시각예술 이라는 범주에 속하는 미술, 일러스트레이션, 사진, 디 자인이나 서사성을 지니며 시간성까지 부여해야할 영 화나 애니메이션을 비롯한 다양한 예술 행위를 언급 함에 있어서 이미 시각 혹은 시지각은 그 예술을 생 산하고 체험하게 하는데 있어 가장 본질적인 요소가 된다. 그린버그Clement Greenberg(1909-1994)는 20세 기 중반 이전까지의 서양미술사를 회화의 순수성, 평 면성이라는 것으로 규정하며 모더니즘 미술비평 이론 을 정립하는 선두적인 역할을 한다. 그는 시각만이 시 각예술의 본질이라 주장하였다. 하지만 전후 1950년대 는 모더니즘이 정점을 치달았던 시기로 현대 미술은 2) 영국의 최초의 장편 애니메이션 <동물농장(Animal Farm)> 은 1954년 4년여의 작업을 통해 제작된다. 존할라스에 의해 제 작된 이 작품의 일면을 보면 유럽 애니메이션을 선정하여 살펴 본 이유를 나름대로 이해하는데 도움이 된다. 이 작품은 당시 전세계에 거의 모든 애니메이션을 공급하던 미국이 아닌 다른 나라에서 제작되었으며 뿐만 아니라 코미디물이 아니라는 점에 서 획기적인 의미를 지닌다. 조지 오웰(George Orwell)의 동명 소설을 토대로 만든 이 애니메이션은 오랫동안 학대를 받아오 던 동물들이 농장을 탈출한다는 내용을 진지하게 풍자한 작품 이다. 또한 이 작품의 출현으로 애니메이션계는 한층 성숙해지 고 진일보하게 된다 John Hallas ․ 한창완 역, 존 할라스의 유 럽 애니메이션 이야기, 한울, 2008. p.4. 전통적인 의미에서 형이상학에 대한 반성으로부터 출 발한다. 그의 신체에 의한 지각의 현상학은 합리론과 경험론에서의 주체와 대상, 의식과 신체, 물질과 영혼 등의 이분법적인 사고를 그 본래적인 기원인 신체로 되돌리며, 원초적이고 근원적인 지각의 세계로 돌아가 고자 하는 시도를 보여주고 있다. 그에게 지각이란 의 식의 구성도 아니고, 신경계에 대상이 생리화학적인 반응을 일으키는 작용도 아니다. 또한 지각이란 모든 의식과 반성적 사고에 우선하며 애매모호하고 복합적 이다. 지각은 미리 주어진 것이 아닌 살아있는 생생한 것이다. 그리고 이 지각의 근원에 바로 신체가 존재한 다는 것이다.4 ) 메를로 퐁티는 신체론이 지각론이라는 글 속에 한 가지 예를 설명하며 우리의 고유한 신체 가 세계 안에 있음을 설명한다.5) 또한 이러한 몸의 3) 이금희는 시지각과 신체에 대해 본 연구와 유사한 문제를 제기한다. 하지만 본 연구는 신체성 가운데 촉각성을 중심으로 다루고자 한다. 이금희, 회화공간에 있어서 시지각과 신체 : 프 랭크 스텔라와 프란시스 베이컨을 중심으로, 홍익대 대학원 박 사논문, 2006 4) 이금희, 위의 논문, p.43.
(5) Journal of The Korea Society of Illustration Research Vol.16. 지각이 일상에서도 자주 일어나고 있음도 떠올려보기 를 바란다. 내리막길의 계단을 내려가고 있다고 할 때, 높은 폭의 계단이 계속되다가 폭이 낮아졌을 경. 모더니즘, 초현실주의의 노선을 밟아왔으며 부인 에바 슈반크아이에로바Eva Svankmajerova와 함께 미술가 로서 많은 개인전7 )을 개최하기도 하였다. 그의 작품. 우, 발은 계단을 자연스럽게 걷지 못하고 마치 땅이 올라와 발바닥에 붙는 느낌을 받고 잠깐이지만 몹시 불편함을 느끼며 새로운 환경에 적응하게 된다. 이때 에 계단에 대한 지각을 시각이 아닌 신체가 하고 있 음을 경험할 수 있다. 이러한 경우도 재미있는 경험이. 과 생애는 체코의 사회적 배경을 통해 이해할 수 있 다. 1964년 우연한 계기로 <슈바르츠발트와 애드가의 마지막 트릭The Last Trick/Posledni trik pana Schwarcewalldea a pana Edgara>을 감독하게 된다. 이전까지 전문적인 영화 수업을 받은 경험이 없었음. 라고 생각하는데 멈춰있는 에스컬레이터를 올라갈 때 의 불편한 기분 역시 신체론이 바로 지각론이라는 것 을 이해할 수 있도록 하는 예이다. 또한 이러한 신체 론은 다른 경우에서도 어렵지 않게 볼 수 있다. 모더 니즘에 대한 저항으로 신체적 지각성을 보여주는 잭 슨 폴록Jackson Pollock의 드리핑 작업들은 신체의. 에도 그의 특유의 위트와 놀라운 인형 테크닉으로 베 오그라드, 만하임, 부에노스아이레스 등의 각종 영화 제에서 수상하게 되고 그 이후로도 다른 작품들을 통 해 크로메지시, 칸, 코르도바 등 국제적인 영화제를 통해 명성이 높아지게 된다. 슈반크마이에르의 작품에 영향을 끼친 두 가지 미학적 조류로 매너리즘. 개입방식에서 행위의 퍼포먼스 성격을 띠고 있다. 자 발적 행위를 통한 우연성과 필연성 둘 다를 인식했던 최초의 미술가로서 폴록은 제작 과정 자체를 중요시 하였다. 이는 작업에서 근육 운동 감각의 중요성과 작 가 자신의 신체와 회화를 통일시하고 있음을 보여준. Mannerism과 초현실주의Surrealism를 꼽을 수 있다. 매너리즘의 원래의 뜻은 기교적이고 타성적인 스타일 을 추출해낸 16세기 중반의 로마와 피렌체의 화가그 룹의 미술을 지칭하는 다분히 경멸적인 말이었다. 아 르침볼도Giuseppe Arcimboldo는 슈반크마이에르에게. 것이다.6). 가장 큰 영향을 미친 16세기 이탈리아의 매너리즘 화 가로서 궁정에서 일했으며 물고기 또는 과일과 같은 사물을 조합해서 만든 두상을 그려 명성을 얻었다. 그 의 그림은 ‘기괴한 발명’으로 불리우기도 하는데 매너 리스트 그림은 형태와 내용이 매우 복잡하고 관객들 에게 호기심을 돋구는 것을 목적으로 하였다. 매너리. 3. 작품분석 3.1. 얀 슈반크마이에르의 매너리즘과 초현실주 의 1934년 프라하 태생인 얀 슈반크마이에르Jan Svankmajer는 체코의 애니메이션 전통 속에서 성장 하였으나 고전주의적 굴레에 얽매이기보다는 오히려 5) 내가 아파트를 걸어 다닐 때, 그 아파트가 나에게 자기 모습 을 드러내게 되는 여러 가지 국면들이 제각각 여기서 또는 저 기서 보여진 아파트를 표상한다는 것을 내가 모른다면, 나 자신 의 운동을 내가 의식하지 않고 나의 신체를 그 운동의 단계들 을 통해서 동일한 것으로 내가 의식하지 않는다면, 그 국면들은 동일한 사물의 측면들로 나에게 나타나지 않을 것이다. 분명히, 나는 그 아파트를 생각으로 훑어볼 수도 있고 상상할 수도 있 으며 또는 종이 위에 도면으로 그릴 수도 있다. 그러나 그때라 고 해도 나는 신체적 경험의 매개가 없다면 대상의 통일성을 파악할 수 없다. 왜냐하면 내가 도면이라고 부르는 것은 보다 폭넓은 조망일 뿐이기 때문이다. 그것은 ‘ 높은 곳에서 보여진’ 아파트이다. 내가 그 속에 모든 습관적 조망들을 요약할 수 있 다면, 그것은 하나의 동일한 육화된 주체가 다른 위치에서 차례 차례로 볼 수 있다는 것을 안다는 조건 아래에서이다. Maurice Merleau-Ponty, 류의근 역, 지각의 현상학, 문학과 지성사, 2002. p. 311 6) Robert Morris, "Some Notes on the Phenomenology of Making: The Search for the Motivated", Artforum 8, no. 8 (April 1970), reprinted in Continuous Project Altered Daily. The Writing of Robert Morris (MIT, 1994), pp. 77-78 재인용.. 즘의 가장 기초적인 요소는 몽타쥬 혹은 편집의 형식, 이미지의 붕괴 등이다. 주제는 일부러 불명료하거나 혹은 이해하기 힘들도록 처리되며 어떤 예리함이나 미묘한 것, 기이한 것, 긴장된 것, 난해하고 자극적인 것, 통렬하고 대담하며 도전적인 것들을 좋아하는 일 은 매너리즘의 전성기에 통하는 특징이며, 어떤 작품 의 매너리즘적 성격이 처음에 뚜렷해지는 것은 흔히 예리함 때문이다. 그들이 언제나 과시해 보이는 능숙 한 기교는. 이 예리함을 두드러지게 조장하고 있다.8 ) 이러한 매너리즘적 회화의 특성을 슈반크마이에르는 그의 초기 작품에서 예술적인 기교를 펼쳐 보이는 것 7) 동유럽의 예술과 초현실주의는 깊은 연관성이 있다. 미술에 어서는 더욱 밀접했으며 슈반크마이에르의 미술작업은 레스토 랑 비올라에서의 오브제 개인전, 프라하 J.S. 아틀리에에서의 체코 초현실주의자 그룹전, 프랑스 리옹의 베리에르 갤러리에서 의 ‘무기와 크렁크’ 단체전, 뮌스터 존네링크 갤러리의 ‘무시무 시한 쾌락’전 등으로 초현실주의 작가로도 활동한다. 김준양, 카 프카와 루이스 캐롤 그 사이에서의 줄타기, Kino, June, 1996, p.209. 8) 아놀드 하우저, 김진욱 역, 예술과 소외, 종로서적, 1981, p.21 재인용.
(6) (사)한국일러스트레이션학회 학술지-일러스트레이션 포름 2008. Vol.16. 으로 충실히 따르고 있다. 초기 작품의 기교는 극단적 인 카메라 앵글, 움직임으로 나타났고 주제나 형태를 거의 압도하였다. 슈반크마이에르는 초기 작품을 살펴 보면 매너리스트라고도 얘기할 수 있고 초현실주의자 라고 할 수도 있다. 이 두 양식 사이의 차이를 구분해 내기는 어려우며 미약하지만 폐쇄적이면서도 유희적 인 매너리즘 보다 초현실주의는 더 사회적이고 정치 적인 메시지를 담는 다는 것으로 구분할 수 있다. 슈 반크마이에르는 이러한 두 양식의 특징을 함께 보여 주는 작가이다. 슈반크마이에르를 연구의 대상으로 삼 은 것은 이러한 다양한 가능성도 기인하였다. 미술과 애니메이션을 나누는 것이 아니라 미술 속에서 애니 메이션의 가능성을 탐험하고 애니메이션 속에서 미술 의 가능성을 탐험할 수 있었던 것은 그의 탁월함 때 문일 것이다. 그는 또한 라이브액션 영화와 애니메이 션의 경계 허물기에 있어서도 라이브액션 영화 속에 애니메이션을 단지 특수 효과의 기법으로서 도입하려 는 것과는 본질적으로 다른 시도를 하게 된다. 비조작 된 실재의 연속적(한층 영화적인) 운동과 조작된 허 구의 분절적(한층 회화적이며 애니메이션을 상징하는) 운동의 공존은 영화 속의 재현 대상에 의식과 무의식 이라는 인간의 중층적 내면세계를 투사한다.9 ) 초현실 주의자로서의 슈반크마이에르는 소련에 의해 붕괴된 체코의 현실에 대해 비판적이고 전복적인 작품이 시 도되며 작가로서 두드러지게 된다. <레오나르도의 일 기Leonardo's Diary>(1972)가 검열에 걸려 7년간 영 화를 만들 수 없게 되었다. 하지만 이 시기는 슈반크 마이에르에게 있어 다양한 촉각적인 실험에 전념할 수 있는 기회를 주는 시기이기도 했다. 이러한 그의 성과들은 82년 제작된 <대화의 가능성Dimensions of Dialogue/Moznosti dialogu>을 비롯한 이 후의 작품 에서 나타나게 된다. 이에 대해 슈반크마이에르는 다 음과 같이 말한다.. [ 그림 1] 대화의 가능성. 나는 그들이 나의 영화를 폭로할 때마다 그것을 비극이라고 생각지는 않는다. 나는 다른 것을 얻게 되었다. 즉 나의 시간을 무엇보다도 촉각적인 실험 에 몰두하게 되었다. 나는 꼴라쥬와 그래픽, 여러 종 류의 조각, 오브제를 만들었다. 10 ). 슈반크마이에르의 초현실주의에 대한 위치는 그의 대부분의 영화에서 필수적인 요소이다. 그의 상징과 시각적 구조는 초현실주의 상상과 관련되어 지고 동 유럽과 서유럽의 초현실주의가 다른 역사적 맥락을 통해 상이하게 발전하지만 공통점이 있는데 그것은 신체와 꼴라쥬에 대한 관심이다.11 ) 한편 이것은 슈반 크마이에르의 작업의 핵심이다. 나는 우리의 문명을 되살려내기 위해서는 감각이 매우 중요한 역할을 하고 있다는 생각이 점점 더 강 해지고 있다. 우리의 출생 이후로 감정적 안정은 어 머니의 몸과의 접촉으로부터 있었다. 그것은 우리가 외부 세계와의 첫 번째 접촉이었다. 볼 수 있기 전 부터 냄새를 맡고, 듣고, 맛보았다. 12). 예술에 있어 최고의 가능성을 촉각성에 두고자 하 는 슈반크마이에르의 예술적인 확신이 느껴진다. 그의 다른 작품 속에는 앞서 살펴 본 것처럼 매너리즘적인 소재이기도 한 다양한 소재가 등장한다. 그에게 있어 썩고 폐허가 된 것은 어머니와의 관계에 대한 무의식 의 기호이다. 이것은 그렇게 아름답지는 않은 것이지 만 거친 표면을 통해 한 때는 손상되었지만 회복되고 함께 사랑하기를 원하는 것이다. 물리적 복원과 감각 의 복원으로 연결되는 것이다. 이는 그가 느끼고 있는 현대 문명에 대한 상실감에서 기인하는 것이다. 그의 촉각적 실험은 그의 전형적인 기법들에서 계속 이어 진다. 익스트림 클로즈업, 빠른 카메라 움직임 등이 그것이다. 슈반크마이에르는 그의 스타일이 구성이 아 니라 몽타주에서 나온다고 말했었다. 그에게 최초의 영향을 준 것은 에이젠슈타인Eisenstein의 몽타주 영 화였다. 매너리즘적인 기법들이 일찍이 이러한 파편적 이고 해체된 스타일에 상당히 의존했다는 점을 논했 던 것을 상기하는 것 역시 중요한 가치이다. 익스트림. 9) 김준양, 애니메이션, 이미지의 연금술, 한나래, p.187 참조.. 10) Michael O'Pray, "Jan Svankmajer: A Mannerist Surrealist", Dark Alchemy : The Film of Jan Svankmajer. Praeger, 1995, p.48. 11) Michael O'Pray, 위의 책, p.48. 12) Michael O'Pray, 위의 책, p.64..
(7) Journal of The Korea Society of Illustration Research Vol.16. 클로즈업과 몽타주는 매너리즘 회화의 특징을 잘 표 현함과 동시에 슈반크마이에르의 촉각적 경험을 위한 형식이기도 하다. 거리가 가까워질 때 시각에 의지하. 과 회의로서 포스트모던을 정의하고 있다. 거기에서 대서사란 지금까지의 근대적 과학과 지식이 스스로의 지위를 정당화하기 위해 의지해온 장치들이라는 것을. 였던 지각은 촉각으로 이동한다. 익스트림 클로즈업을 통해 마치 시각이 아니라 촉각으로 사물의 본질을 지 각하도록 하려는 슈반크마이에르의 의도가 있는 것이 다.. 밝히고, 그러한 근대성에 기반을 둔 정당화의 담론들 이 오늘날에는 더 이상 유효할 수 없게 되었다고 설 명하고 있다. 따라서 슈비츠게벨의 작품을 분석함에 앞서 너무도 다양한 포스트모더지즘적 이해를 서사의 위기라는 문맥 위에 위치시키도록 하겠다. 1944년 스위스 베른 태생으로 제네바의 장식 미술 대학에서 공부한 슈비츠게벨은 졸업 후 약 5년간 광 고업계에서 종사하다가 1970년 GDS를 설립하면서 독 립 작가로서의 본격적인 활동을 시작한다. 작품 활동 은 GDS를 통해 이루어졌고 텔레비전 타이틀, 포스터, 광고 드로잉 등의 부수적인 작업들을 병행하였다. 스. [ 그림 2] 대화의 가능성. [그림 2]를 극장에서 본다면 관객은 무엇을 보게 될 까? 사실주의적 인식론에 길들여져 있었던 관객들은 주체로서 화면을 이해하고 분석하려고 하는 과정에서 이전에는 느껴보지 못한 불확실성에 빠지게 될 것이 다. 극장 안에서 스크린으로 본다면, 시각에 의해 판 단한다는 것은 어렵게 된다. 슈반크마이에르는 이러한 익스트림 클로즈업을 통해 시각이 아니라 촉각으로 사물의 본질을 보여주고자 하였다. 전혀 다른 속성의 재료는 서로를 먹어 삼킴으로서 재료의 본질이 혼합 되어져 가고 결국에는 둘 다 점토로 돌아가게 된다. 작가는 우리의 폭력적이고 공격적인 언어행위에 대한 메시지를 전달함에 있어 촉각적 경험을 이용하고 있 다. 3.2. 조르주 슈비츠게벨의 회화성 슈반크마이에르가 매너리즘과 초현실주의로 해석될 수 있다고 한다면 조르주 슈비츠게벨은 미니멀리즘과 바로크로 해석하되 포스트모던 작가로서 설명할 수 있다. 20세기 후반에 이르러 서구사회를 다방면으로 변화시킨 포스트모더니즘의 특징을 이해하는 것은 슈 비츠게벨의 예술적 사유와 그의 작가적 일관성을 이 해하는데 도움이 될 것이다. J.F. 료타르J.F. Lyotard 는 『포스트모던의 조건』1 3 )에서 대서사에 대한 불신 13) 료타르는 포스트모던을 20세기 후반 미국의 사회학자와 비 평가들 사이에서 통용되고 있는 단어로 설명하며 이는 19세기. 튜디오의 설립과 같은 해에 데뷔작을 발표한다. <잡 동사니Patchwork>(1970)로 안시 국제 애니메이션 영 화제에서 상당한 주목을 받게 된 슈비츠게벨은 그 후 로도 오버하우젠, 자그레브, 히로시마, 칸, 베를린, 슈 투트가르트, 시카고 등 국제 영화제에서 그랑프리를 비롯한 각종 상을 수상하면서 국제적인 명성을 쌓았 고, 세계 각지에서 수차례의 전시회와 회고전을 개최 하였다.1 4 ) 슈비츠게벨의 작품은 마치 한 장의 포스트 모더니즘 회화 작품 같다. 이 처럼 회화 제작 기법으 로 그려진 작품은 불쑥불쑥 솟아오른 물감과 붓이 지 나간 촉각으로 가득하다. 슈비츠게벨의 회화적 특징과 는 차이가 존재하는 1974년에 제작되어 두 번째로 발 표된 <이카루스의 비상The Flight of Lcarus/Le Vol d'Icare>은 모더니즘의 흔적을 보게 되며 슈비츠게벨 의 초기 경향을 침작할 수 있게 하는 특별한 작품이 다. 모니터의 그리드 위에 동일한 크기와 간격의 원을 패턴화하여 배치하고 F.쿠프랭F.Couperin의 음악에 따라 그것들 각각의 색채가 켜지고 꺼짐을 독립적으 로 진행시키며 조절하고 있다. 규칙적으로 반복되는 원들을 통하여 표현하고 있는 기하학적인 추상성의 강조에서 모더니즘의 향취가 나타난다. 하지만 신인상 주의 화가인 쇠라Georges Pierre Seurat(1859-1891)의 점묘화나 초기 컴퓨터의 이미지를 절충시킨 것 같은 점에서 재현 미술로의 보수주의적 경향이 나타나며 이는 모더니즘과는 거리가 느껴지는 대목이다. 이처럼 상반된 경향들이 공존하고 있는 <이카루스의 비상> 말 이래 과학, 문학, 예술 분야의 규칙들을 바꾸어 놓은 여러 변화들과, 그 변화에 따른 현대 서구의 문화 상태를 지칭한다고 설명하고 있다. J. F. 료타르J. F. Lyotard, 유정완 역, 포스트모 던의 조건, 민음사, 1992, p.33 14) 김준양, 위의 책, p.163..
(8) (사)한국일러스트레이션학회 학술지-일러스트레이션 포름 2008. Vol.16. 은 이카루스의 신화를 재현하는 동시에 아무것도 재 현하지 않는다는 점에서 포스트모더니즘의 특징을 보 인다. 인간은 자신의 인식틀 안에서 재현되고 있는 무. 변과 사물들 간의 관계에 따라 결정되어지는 구조적 인 경향을 발견할 수 있다. 오프사이드라는 것은 선수 의 위치를 통해 반칙이 부여되는 게임의 규칙이다. 하. 언가를 인식해낸다. 그러나 <이카루스의 비상>은 인 식틀 자체를 기존의 세계와 인식 불가능한 세계로 나 누어서 함께 보여준다. 슈비츠게벨은 불확정성의 증폭 과 이를 바라보는 인식의 주체 사이에서 새로운 관계 맺기가 가능한지를 실험하고 있는 듯하다. <원근법. 지만 작품 속에서 위치는 무의미하게 되고 오프사이 드라는 규칙도 무의미하다. 오프사이드는 위치에 가장 민감한 것이지만 경기장에서 위치를 파악할 수 있는 것은 전부 삭제되었다. 그것은 잠시 선을 보여주는 순 간을 통해 우리들의 위치에 대해 지각하지 못하고 있. Perspective>(1975)부터 모더니스트의 미학적 흔적이 사라지며 회화성이 더욱 강화되어 가게 된다. 원근법 은 대표적인 대서사로써 슈비츠게벨은 소실점을 계속 적으로 변화시키고, 사실주의적 인식론이 이성적 주체 의 비존재성과 불확실성을 가시화하기 위해 사용된다. 여인, 스케이트 타는 남자, 개 등의 여러 형상들이 서. 음을 상기시켜 준다. <오프사이드> 역시 가까이에서 볼 때, 선수의 신체로 지각되기보다 물감의 덩어리가 엉켜있고 시각보다 촉각에 의해 지각될 수 있다. 재현 의 문제에서 시각의 관습을 포스트모던적인 입장에서 거부하고 있는 슈비츠게벨은 작가에 의해 결정되고 관습적으로 인식하였던 근대적 감상을 관람의 주체가. 로 다른 원근법으로 공간을 분절시키고 메타모포시스 Metamorphosis1 5)에 의해 다른 공간은 서로 침투하고 침투당하는 과정을 반복한다. <원근법>은 이러한 침 투 속에서 회화에서 없는 시간성을 통해 새로운 시도 를 하고 있다. 멀리 있을 때, 여인으로 인식을 할 수. 참여함으로 완성되어지도록 작가의 간섭을 지워내고 있음을 알 수 있다. <프랑크 N.슈타인의 약탈The Ravishing of Frank N. Stein/ Le Ravissement de Frank N. Stein>(1982)은 카메라의 시점 표현에 있어 서 이전까지의 작품 보다 한층 운동성을 강조한 작품. 있었지만 다가오면서 여인은 물감 덩어리로 보인다. 슈반크마이에르 처럼 익스트림 클로즈업을 통해 시각 이 아닌 촉각에 의해 우리가 인식하고 있는 세계에 대한 강한 질문을 제기하고 있다. 일관적이지 않은 공 간의 혼재 속에서 이해되지 않는 물감 덩어리 앞에서 관객은 주체로서의 확신을 점차 상실하게 된다. <오. 이다. 실험실에서 마치 누군가가 끝없이 이어지는 길 을 걸어가는 여정을 몽환적이면서 지루하게 묘사하는 <프랭크 N. 슈타인의 약탈>은 주관적 시점에서 3차 원적 이동의 카메라 트래킹으로 이루어진 작품이다. 관객은 처음에 시점의 주체를 프랭켄슈타인으로 인식 한다. 하지만 여정이 끝나면서 공간 전체가 프랑켄슈. 프사이트Off-Side/Hors-Jeu>(1977)은 축구, 농구, 아 이스하키, 집단 난투극, 골프의 운동을 통해 신체의 움직임이 강조되고 있다. 슈비츠게벨의 작품 가운데에 서 회화성과 함께 촉각성을 가장 운동감 있도록 제작 하였으며 <원근법>과 함께 메타모포시스에 의해 구 성되어 공간은 부단히 서로 침투하거나 침투당하는. 타인의 얼굴이었다는 것을 알게 된다. 그리고 다시 카 메라가 뒤로 이동하면서 이제까지의 모든 3차원적 사 건들이 극장의 스크린 사에 투영된 2차원 이미지였으 며, 극장 역시 단지 필름 프레임상의 이미지였음을 깨 닫게 된다. 이성적 주체는 이러한 구조적인 경향을 통 해 주체에 대해서 보고 있다는 인식을 몇 번이고 번. 일련의 과정을 보여준다. <오프사이드>에서 이성적 주체에게 절대적이며 단일한 공간좌표는 없다. 그것은 여러 장면들이 여러 공간 속에서 서로 구별되지 않는 인물들의 개별적인 위치가 오로지 타인들과의 상대적 인 관계를 통해서만 규정될 수 있다는 것을 알게 한. 복하며 보는 주체에서 보임을 당하는 주체로서 인식 하게 되고, 주체에 대한 의미를 고정되거나 개별적으 로 인식할 수 있다는 확신을 할 수 없게 된다. 이러한 메타 공간을 통해 기존 공간의 리얼리티에 내제된 허 구를 폭로한다. 또한 불가해한 이미지의 촉각성은 이. 다. 그래서 이성적 주체는 절대적인 공간 좌표를 소유 하지 못한다. 이는 포스트모던 시대를 사는 관객 자신 의 존재 방식에 대한 냉철한 반영이기도 하다. 이성적 주체의 의미가 존재 자체에 의한 것이 아니라 그 주. 모든 반전을 위해서 몽환적으로 사용된다.. 15) 메타모포시스는 애니메이션의 특징을 가장 잘 나타내는 것 으로 형태의 변형을 뜻하며, 여인에서 스케이트 타는 남자로 변 하는 것을 보면 특수효과 없는 라이브액션 영화라면 할 수 없 지만 애니메이션의 세계에서는 너무나 자연스러운 것이다.. [그림 3] 이카루스의 비상. [ 그림 4] 원근법.
(9) Journal of The Korea Society of Illustration Research Vol.16. 작가가 사라지고 관객의 참여에 의해 완성되어지는 예술로서 미니멀리즘과 바로크는 슈비츠게벨에게도 관객의 주체성에 대해 탐구하게 한다. [그림9]는 벨라. [ 그림 5] 오프사이드 [ 그림 6] 프랑크N.슈타인의 약탈. [그림 7] 78회전. [ 그림 8] 회화의 주제. <78회전78 tours>(1985)는 메타 공간을 이동하며 최초의 공간에서 재회하며 서로의 공간 사이에서 형 태와 형태 사이는 무너진다. 슈비츠게벨이 만들어내는 시공간은 궁극적으로 3차원의 현실에서는 실현될 수 없다. 관객은 사물과 광경의 관계에서 의도를 도출하 려고 하지만 결국 작가들이 설치한 역설을 깨닫게 된 다. 이렇게 주체는 보는 역할에서 보임을 당하게 되며 이 점이 슈비츠게벨의 주체에 대한 의식이다.1 6) 이처 럼 대상과 주체에 대한 고민은 미니멀리즘과 바로크 에서 지속적으로 시도되어져 왔다.. 스케스Velaqzuez의 바로크 작품으로써 관객의 참여를 통해 작품을 완성할 수 있다고 믿었기 때문에 현장성 을 중요시하게 되었고, 결국 촉각이라는 감각은 대단 히 중요하게 되었다. 그림을 통해 옷의 질감까지 표현 하게 되어진 것이다. 벨라스케스를 비롯한 당시의 바 로크 예술가들은 독특한 자기만의 표현기법들을 개발 할 정도였다고 한다. 이 작품은 나는 보는 것인가? 보임을 당하는 것인가? 라는 새로운 관람의 경험을 요구했었다. 좌측에 커다란 캔버스가 있고 그 옆에는 붓을 들고 있는 화가가 이쪽을 응시한다. 그리고 공주 를 비롯한 모두의 시선은 모두 이쪽을 응시한다. 그리 고 작은 거울은 화가의 캔버스에 그려지고 있는 왕과 왕비가 비친다. 이 그림을 보고 있으면 우리는 전반적 으로 자연스럽게 내가 무엇을 보고 있는지 가늠해보 려고 노력한다. 하지만 내가 보는 것인지, 아니면 누 군가가 나를 보는 것인가? 그림은 관객에게 참가를 요구한다. 그것은 주위에서 구축하고 보는 장소를 고 정하는 개념을 거부한다. 그것은 전통적인 시선과 고 정된 장소를 박탈한다. 조르주 슈비츠게벨은 스스로의 지위를 정당화하기 위한 근대성의 장치들에 대해 더 이상 그와 같은 정당화의 담론들이 오늘날 유효할 수 없게 되었다는 사실을 작품을 통해 이야기하고 있다. 가시적인 것을 물감덩어리로 변태시켜가면서 말이다. 4. 결 론 21세기를 살아가고 있는 우리들은 과거의 고민을 반복하며 살아야 할 필요는 없다. 하지만 본 연구자는 어느 때부터 이러한 얘기를 들었고 나 또한 똑 같은 마음을 가진바가 있다. 모니터 말고 출력을 해서 보여 달라는 것이다. 웬만한 업무가 모두 컴퓨터상에서 이 루어지면서 간단한 텍스트부터 이미지까지 모니터 상 에서 생성되고 가공되고 완성되거나 버려지게 된다. 이러한 일련의 프로세스 속에서 소위 컴퓨터 세대가 아니라고 하시면서 굳이 프린트를 해오기를 요청하신. [그림 9]Las Meninas17 ). 16) 데카르트의 ‘ 나는 생각한다. 고로 존재한다.’를 ‘나는 내가 생각하지 않는 곳에 존재한다’로 라캉은 바꿔버린다. 김준양, 위 의 책, p.165 17) 현장성을 강조하는 바로크 미술은 관객이 직접 그림을 관. 다. 때로는 너무 사소한 것 까지 요청하신다는 생각이 들기도 하면서, 이러한 모니터와 프린터라는 두 개의. 람하며 참여해야함을 강조한다. 또한 그 이면에는 그들의 화가 로서 생명과 같은 특별한 기술들이 있었다. 그것은 옷의 세밀한 촉감까지 표현해내었던 당시의 화가들의 촉각에 대한 노력과 비중을 이해할 수 있게 한다..
(10) (사)한국일러스트레이션학회 학술지-일러스트레이션 포름 2008. Vol.16. 출력장비가 혹시나 작업량만 늘려가도록 하는 것은 아닌가라는 생각을 한 경험이 있다. 아직은 무엇이 옳 다는 판정을 내릴 단계는 아니라고 생각한다. 단지 왜. 만으로는 우리의 가능성을 다 찾은 것이라고 말할 수 없다. 본고를 마치면서 메를로퐁티의 글로 결론을 맺 을까한다. 몸으로 지각한다는 것을 저급하다고 여겨왔. 모니터를 통해 보는 것 보다 종이 위에 프린트 된 것 을 지각할 때 더 편하다는 감정을 가지게 되었느냐는 것이다. 해상도의 문제로만으로 치부하기에는 너무나 다양한 가치가 매몰될 수 있을 것이다. 두 손으로 평 평하게 펴지지도 않는 종이를 펼쳐서 눈과 손을 통해. 다는 것을 인정한다. 하지만 우리는 우리의 몸을 통해 감각하는 법을 다시 배웠다. 이것은 몸을 객관적이고 분리된 지식 아래 두는 것과는 다른 지식이다. 이것은 몸이 언제나 우리와 함께 있다는 것이고, 우리가 몸이 라는 것이다. 동일한 방식으로 우리가 우리의 몸에 의. 거리를 결정하고 손에서는 종이의 두께, 무게, 질감을 느끼고 종이의 냄새를 맡고 바스락 거리는 소리를 들 었던 것들은 어느 것도 내용과는 관계가 없다. 종이를 넘기면서 지각하였던 그 다양한 감각을 모니터 상의 화살표라는 시각기호로, 그것도 전혀 아이덴티티가 고 려되지 않은 똑 같은 화살표를 계속 누르는 것이 대. 해 세계에 존재하는 한, 우리의 몸으로 세계를 지각하 는 한, 세계의 경험을 세계가 우리에게 나타나는 대로 소생시키는 것이 필요할 것이다. 그러나 몸과 세계의 만남을 재파악하면서 우리가 재발견하게 될 것은 고 유한 신체로서의 우리 자신이다. 왜냐하면 사람들이 자신의 몸을 가지고 지각한다면, 몸은 자연적 자아이. 치할 수 있다고 주장할 수 있을까? 본 연구는 무엇이 옳은지를 판정할 수 있는 근거를 제시하거나 그와 관 련한 분석을 하고 있지는 않지만 이제 우리가 얼마나 몸의 지각에 대해 그린버그 이전의 시대적 기준에 머 물러 있었는지를 깨닫게는 되었을 것이다. 현대미술이. 자 말하자면 지각의 주체인 것이기 때문이다.18 ) 과거도 돌아보고 현재도 살펴보았다. 걱정도 하였지 만 희망도 얘기했다. 분명한 것은 탐험은 계속될 것이 다. 이론 연구는 그 탐험들을 위한 연료들이다. 조금 더 발전적인 연구가 계속되기를 바라며 연구를 마친. 시작되면서 도전 받고 해체되었던 시각의 순수성이 두 명의 작가를 비롯한 무수히 많은 작가들을 통해 탐험되었다는 것을 본 연구에서는 몇 가지 미술사조 의 발생 배경과 특징을 통해 살펴보았다. 이를 통해 촉각의 가능성의 오늘날에도 유효하다는 것을 알 수 있었다. 초기 디지털이미지의 공습이 뜸해지고 2008년. 다.. 의 디자인과 일러스트레이션을 볼 때, 촉각성을 위한 탐험이 시작되었음을 알게 되는 것은 너무나 다행스 럽고 반가운 일이다. 캘리그라프나 빈티지한 텍스쳐 등이 비록 트랜드라는 미덥지 못한 현상 속에 표현되 고 있지만 촉각을 향한 예술적 본능으로 보이는 것은 너무 긍정적인 것일까? 이처럼 촉각성에 대한 새로운 탐험은 예술가 뿐 아니라 디자이너와 일러스트레이터 들에게도 중요한 과제가 되었고, 희망적이게도 그것은 젊은 디자이너와 일러스트레이터에게서 자연스럽게 시도되어지고 있다는 것이다. 본 연구는 지속적으로 촉각성에 대한 가능성을 이 야기하였다. 그래서 메를로퐁티의 지각의 현상학을 언 급하면서 신체의 지각론을 설파하였으며, 매너리즘과 초현실주의, 미니멀리즘과 바로크, 포스트모더니즘에 이르는 미술이론 속에 숨겨진 촉각의 가능성에 대해 두 명의 작가와 그들에게 영향을 끼쳐온 예술가들의 작품들을 함께 살펴보았다. 본 연구는 20세기 중후반 에 유럽의 애니메이션 작가 두 명의 작업을 통해 촉 각성을 향한 탐험을 살펴보는 것이었다. 하지만 이것. 참고문헌 ∙Michael Bierut, 황현택 역, 마이클 베이르트의 디자인에세이, 비즈앤비즈, 2007. ∙Arnold Hauser, 백낙청․반성완 역, 문학과 예술의 사회사2, 창작과 비평사, 1999. ∙Eleanor Heartney, 이태호 역, 포스트모더니즘, 열화당, 2003. ∙David Batchelor, 정무정 역, 미니멀리즘, 열화당, 2003. ∙Maurice Merleau-Ponty, 류의근 역, 지각의 현상학, 문학과 지성사, 2002. ∙Jean-Francois Lyotard, 유정완․이삼출․민승기 역, 포스트모던의 조건, 민음사, 1992. ∙김준양, 애니메이션, 이미지의 연금술, 한나래, 2001. ∙임두빈, 한 권으로 보는 서양 미술사 이야기, 가람기획, 2003. ∙배상준, 유럽 애니메이션 대표작가 24 인, 쿠북, 2006. ∙이금희, 회화공간에 있어서 시지각과 신체 : 프랭크 스텔라와 프란시스 베이컨을 중심으로. 홍익대 대학원 박사논문, 2007.. 18) Maurice Merleau-Ponty, 위의 책, p.3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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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치
관련 문서
The Korean Society of Illustration Research Vol 36 스키마와 불일치하는 광고에 관한 연구 인쇄매체광고 중심으로 A Study on the Advertising Incongruent to Schema Focusing
The Korea S ociety of Ill ustrati on Research Vol 36 유아 독서 지도자 이 러닝 콘텐츠의 인터페이스 유형 사례 연구 A Case Study on Interface Types of E Learning