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흔적읽기를 통한 공간과 오브제에 대한 고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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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cademic year: 20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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투고일_2018.10.10 심사기간_2018.11.01-18 게재확정일_2018.11.26

흔적읽기를 통한 공간과 오브제에 대한 고찰

Study on Space and Object Based on Trace Reading

이지영, 홍익대학교

Lee, Jee Young, Hongik University

차례 1. 서론

2. 흔적과 그 잠재성의 탐색

2.1. 흔적의 의의 2.2. 흔적읽기의 방법

3. 흔적과 오브제

3.1. 파운드 오브제에서 흔적읽기 3.2. 오브제와 공간의 관계

4. 흔적과 공간

4.1. 공간의 재 맥락화와 흔적 4.2. 주조된 공간의 경험

5. 결론

참고문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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흔적읽기를 통한 공간과 오브제에 대한 고찰

Study on Space and Object Based on Trace Reading

이지영, 홍익대학교

Lee, Jee Young, Hongik University

요약 본 연구는 시각예술 영역의 작가들이 흔적과 기억의 문제를 독자적인 언어로 직조해내는 방식 중에서도 공간과 오브제(object)의 사용에 치중한다. 이러한 조명의 과정에서 발터 벤야민(Walter Benjamin)의 흔적읽기를 기 반으로 다층적인 구조의 예술 텍스트를 독해한다. 벤야민에 따르면 흔적읽기는 흔적과 아우라(aura)에 대한 속 성 및 흔적을 읽어내고 성찰을 유도하는 장치인 산책하기(flânerie)를 통해 이루어진다. 발터 벤야민은 도시공간 에 내재된 의미가 개인의 일상적인 경험에 각인되는 원리를 밝히는 것에 관심을 두었고 개인의 기억이 도시의 건조(建造)환경에 밀착되어 있다고 보았다. 따라서 본 연구는 흔적읽기를 통해 도시공간을 분석하려고 했던 벤 야민의 관점을 바탕으로 공간과 오브제가 흔적과 기억의 문제를 탐구하는 데 사용될 수 있는 적확한 조형언어 이자 전면적인 성찰을 촉발하는 매개체라는 것을 확인한다.

이러한 견지에서 동시대 예술실천에서 파운드 오브제(found object)가 기억의 문제를 체현하는 방식을 이해할 수 있다. 또한 이 과정에서 파운드 오브제가 지니는 의의와 일반적인 속성을 아울러 오브제가 공간경험을 촉발 하는 주된 요소로 기능하며 오브제가 설치된 장소와 주변의 환경까지 작품의 맥락에 포섭하는 관계를 밝힐 수 있게 된다.

나아가, 오브제와 더불어 공간이라는 요소가 작가들에 의해서 어떻게 사용되어 왔는지를 재고한다. 그리하여, 공간의 문제를 탐구하였던 작가들의 개별적인 조형언어의 특이성을 이해할 수 있을 뿐 아니라, 그들이 사용한 공간에 소서사로서의 사적인 기억과 역사적 서사가 중첩되고 예술적 의미가 기입되어 새로운 장소성을 획득하 는 방식을 다루게 된다. 덧붙여, 이 과정에서 공간과 오브제가 상호작용하며 공간경험을 생성해내는 원리를 확 인하게 된다. 그리고 주조기법(casting)을 통해 사물화되어 드러난 공간이 제공하는 새로운 공간경험과 흔적과 기억을 지시할 수 있는 파운드 오브제의 속성에 또 다른 의미의 층위를 덧입히는 방식을 도출하게 된다.

This study focuses on the use of space and object among the ways for the artists in visual art to weave the matter of trace and memory in their own languages. In the process, multi-layered art texts are read based on Walter Benjamin’s trace reading(Spurlesen). According to Benjamin, the trace reading is realized by reading the attribute and trace about trace and aura and by the concept of flânerie that induces contemplation. Walter Benjamin was greatly interested in elucidating the principle on how a certain meaning filled in city space is imprinted in a personal experience, and he thought personal memory was stuck to the environment where a city was built. Therefore, this study aims to assure that space and object are the accurate figurative language for studying trace and memory, and the medium that provokes outright reflection, based on the perspectives of Benjamin who tried to analyze the city space by trace reading.

Therefore, based on this understanding, the study is able to enunciate that the way found object in contemporary art practice embodies the matter of memory. In addition to the significance and general properties of the found object, the found object is the main component for prompting spatial experience and how the space installed with found object and its surroundings are embraced in the context of the artwork.

Also, this study reconsiders how artists have used space so far. Then, the study focuses on understanding the peculiarity of each artist’s figurative language who have explored the matter of space, and on how personal memory and historical narrative are overlapped with artistic meanings to achieve the new placeness. In addition, the study confirms that space and object interact to create spatial experience. Furthermore, the study sheds light on how the casted space by casting technique adds another layer of meaning to the properties of found object that can direct trace and memory and provides a new spatial experience.

중심어

흔적 흔적읽기 비자발적 기억 파운드 오브제 공간경험

ABSTRACT Keyword

Spur Spurlesen

Mémoire Involontaire Found Object Spatial Experience

(3)

1. 서론

본 연구의 목적은 사물과 공간을 기반으로 우리의 삶에서 흔적과 그것이 촉발하는 기억이 어떻 게 직조되어 있는지를 분석하고 이것이 시각예술에서 발현되고 있는 원리를 이해하는 것에 있다. 그리하여, 동시대 예술에서 빈번하게 사용되고 있는 공간과 오브제(object)에 주목하여 이 두 가지 매개체(medium)가 흔적의 속성과 기억을 지시하는 유효한 도구로 기능하고 있음 을 확인하고자 한다. 이 과정에서 흔적에 대한 발터 벤야민(Walter Benjamin)의 논의가 이러 한 문제를 탐구하는 예술적 실천들을 분석하는 것에 중심이 되는 관점을 제공할 것이다.

발터 벤야민은 역사와 기억, 경험, 건조(建造) 환경, 거리와 삶 등에 대한 복합적인 접근을 통해 도시의 공간을 탐구하였다. 게오르그 짐멜(George Simmel)의 표현을 빌어 “도시는 역사 적 형상물”로서, 도시를 탐색하는 일은 그 지형에 남겨진 흔적들을 통해 모든 관련성을 밝히는 작업이라고도 볼 수 있을 것이다. 벤야민은 짐멜과 같은 견지에서 도시가 근대성을 특징으로 한다고 이해하였으나 그의 도시공간에 대한 탐구는 짐멜과는 다르게 전개되었다. 벤야민은 근대적 도시의 조건들을 밝히는 것보다도, 도시공간에 내재된 의미가 어떻게 개인의 일상적인 경험에 각인되는지에 관심을 두었다. 그리고 그는 도시의 건조 환경에 다양한 개인들의 기억이 밀착되어 있다고 보았다. 따라서, 본 연구는 흔적읽기를 통해 도시공간을 분석하려고 했던 벤야민의 관점을 근간으로 동시대 예술에 사용된 공간과 사물이 어떠한 방식으로 흔적의 문제 를 담아내고 있는지를 밝히고자 한다.

한편, 시각예술에서 오브제는 다양한 방식으로 변주되어 사용되어 왔으며 동시대 예술에서는 이미 하나의 보편적인 질료이자 언어로 자리매김하게 되었다. 주지하다시피, 마르셀 뒤샹 (Marcel Duchamp)의 <샘Fontaine>, 1917 이후, 예술은 미메시스적 재현행위로부터 해방될 수 있었다. 작가가 일상의 사물을 선택하고 그것에 새로운 의미를 부여함으로써 오브제는 예술 적 지위를 획득하게 되었던 것이다. 또한, 일상의 사물체계에 속한 사물을 사용함으로써 생활 세계와 예술의 이분법적 구도의 폐기가 일어날 수 있다는 경이를 불러일으켰다. 그러나 본 연구에서 다루게 될 오브제는 직관에 의해 일용품을 예술작품으로 변용한 레디메이드(ready made)의 전략보다는 오히려 흔적이 기억과 같은 어떠한 사유를 촉발하는 방식에 초점이 맞추 어져 있으므로 파운드 오브제(found object)에 가깝다. 그 이유인즉, 오브제의 세속적 성질 중에서도 본 연구에서 다루는 삶을 통해 형성된 파운드 오브제는 특정한 사물이 지니게 된 고유의 역사를 발굴할 수 있는 유일한 매개체로 기능하기 때문이다. 나아가, 본 연구는 이러한 파운드 오브제의 맥락에서 공간의 사용을 이해할 수 있다는 견지에서 오브제와 공간의 관계를 다루게 될 것이다.

현대미술의 역사에서 공간은 여러 단계의 기념비적 전환을 거치며 그 중요성을 획득하였다.

공간에 대한 본격적인 논의의 시작은 1940년대 초반에서60년대 후반에 걸친 추상표현주의 회화의 전개와 함께 작품의 감상을 위해 고안된, 극도로 정제된 화이트큐브(white cube)가 지배적인 흐름을 형성하게 된 시점으로 볼 수 있을 것이다. 그리하여 20세기부터 현재에 이르 기까지 화이트큐브는 전 세계 미술관에 단일한 형태의 중성적인 공간을 생산하며 그 효용성 을 입증하고 있다. 반면에, 일부 작가들은 비판적 예술실천을 통해 화이트큐브가 야기할 수 있는 여러 가지 결과들, 이를테면 폐쇄성과 권위의 문제를 지속적으로 논의해왔다. 그리고 미니멀리즘(minimalism)에 의한 장소의 중요성에 대한 인식 이후의 경향, 즉 작품이 특정장 소에 귀속되어 실존하는 공간과의 관계에 의해 형성되는 설치미술(installation), 공공미술 (public art), 대지미술(land art)과 같은 장소특정적(site specific) 예술도 이러한 흐름으로 부터 전개되었다.1)

미리 밝히건대, 본 연구에서 다루고자 하는 흔적의 문제 또한 강한 장소특정성을 띈다고 할 수 있다. 그것은 작품의 문맥에 흔적으로써의 공간이 지닌 개인과 집단의 기억과 역사적 서사 가 중첩되고 귀속됨으로써 비로소 유일무이한 의미를 견인할 수 있게 되기 때문이다. 나아가, 원본의 흔적을 복제하여 가시화할 수 있는 주조기법(casting)으로 복제된 공간 또한 파운드

1) 구레사와 다케미, 서지수 옮김, [현대미술용어100], (주)안그라픽스, 2012, p.176참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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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브제의 개념을 기반으로 논의되어질 수 있으며 제작기법의 특이성을 통해 새로운 의미의 층위를 획득하는 방식을 확인하고자 한다. 그리고 이 과정을 통해 오브제와 공간의 관계에 대해 복합적으로 접근하고 이해할 수 있을 것이라 기대한다.

정리하건대, 본 연구를 통해서 전개하고자 하는 핵심적인 논의는 흔적의 의의를 파악하여 흔적 을 읽고 그 표상인 기억을 환기시키는 소재로 실재의 사물과 공간을 사용하는 것이 그 어떤 재현보다도 적실한 미적체험을 일으키는 매개체가 될 수 있다는 것이다. 또한, 흔적을 주제로 여러 예술적 실천 사례들을 분석하는 과정에서 오브제와 공간의 관계를 해석하고 이들의 관계 를 바탕으로 어떠한 공간경험이 유발되는지도 살펴볼 수 있을 것이다. 그리고 다음에서 다루어 질 벤야민의 흔적에 대한 논의가 동시대 예술에서 사용되고 있는 공간과 오브제의 의미획득 전략과 그 궤를 같이 하는 것을 확인하게 될 것이다.

2. 흔적과 그 잠재성의 탐색 2.1. 흔적의 의의

근래 벤야민의 도시연구가 새롭게 그 독창성을 주목받고 있으며 그 중에서도 특히 일부 흥미로 운 연구가 역사, 기억을 환기하는 흔적과 도시의 건조(建造) 환경 사이의 관련성을 밝히는 접근 방법을 제시하고 있다. 이러한 연구들은 공통적으로 벤야민의 도시연구에서 흔적의 개념 이 중요한 장치로 사용되고 있음을 강조하고 있다.2) 벤야민은 자신의 도시연구 이론의 확립에 있어서 도시공간이 품고 있는 흔적을 통해 격발되는 기억과 성찰의 관련성과 그 중요도를 파악 하여, “19세기의 수도” 파리의 과거와 현재를 독해할 뿐 아니라 미래 또한 상상할 수 있었다.

이는 흔적의 일반적인 속성을 통해서 이해할 수 있는데 흔적은 공간에 남겨지며 본래의 존재는 부재한 상태가 된다. 그렇기에 흔적은 과거에 그곳에 있었던 존재를 지시하며 현재에 머무른 다. 그리고 우리는 흔적이 환기하는 과거의 표상을 통해 그 존재가 향해 간 방향, 즉 미래를 유추할 수 있게 된다.

벤야민의 흔적에 대한 관심은 브루주아 계급의 실내와 그것을 구성하는 취향에 대한 단편적인 서술을 통해서 드러나기도 하였다. 브루주아 계급의 실내는 “습관들에 의해 만들어진 어떤 흔적”을 담고 있는 공간으로, 이러한 거주의 흔적은 “쿠션과 안락의자, 사진 속, 소유물이 담겼 던 케이스” 따위에 남게 된다.3) 한편, 벤야민은 수집품을 통해 과거, 혹은 먼 곳을 자신의 영역에 불러들이는 부르주아적 취향에 대해서도 잘 알고 있었다.4)

논의를 전개하기에 앞서, 흔적의 속성에 대한 파악이 이루어져야 할 것이다. 벤야민은 그의 저작 [아케이드 프로젝트]를 통해 흔적과 아우라(aura)의 지각방식에 대해 다음과 같이 정의 하였다. “흔적과 아우라. 흔적은 흔적을 남긴 것이 아무리 멀리 떨어져 있더라도 가까이 있는 것의 현상이다. 아우라는 설령 그것을 불러일으키는 것이 아무리 가까이 있어도 멀리 있는 것의 현상이다. 흔적 속에서는 우리가 사물을 소유한다. 아우라에서는 사물이 우리를 자기 것으로 만든다.”[M 16a, 4]5) 다시 말해, 흔적은 멀리 있는 것, 즉 우리의 앞에 현존하지 않는 것을 가까이로 불러온다. 예를 들어 앞서 언급한 “수집품”과 같은 사물에 대한 기억은 우리를 회상의 주체로 만들기 때문에 우리는 사물을 “소유”할 수 있다. 반면에 아우라는 우리 앞에 현존하는 사물이 멀어지는 경험으로 사물이 우리를 압도한다.

따라서 벤야민은 예술작품을 통한 미적체험을 아우라로 정의하고 이러한 아우라의 개념을 도 시에 적용하였다. 그리고 고유한 특징, 즉 차이를 지워버리는 건축물의 대량복제를 통한 도시 의 재건과정이 공간에 기입된 흔적을 말살하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어째서 도시의 특이성과 아우라적인 성질을 제거할 수 없는지에 대해 주의를 기울였다.6)

2) 본 연구는 특히, 마이크 새비지(Mike Savage)의 1995년 논문인 <발터 벤야민의 도시 사상: 비판적 분석(Walter Benjamin’s Urban Thought: A Critical Analysis)>에서 영감을 얻었음을 밝힌다.

3) 윤미애, [흔적과 문지방, 벤야민 해석의 두 열쇠], 브레히트와 현대연극 28권 0호, 2013, p.191에서 재인용.

4) 윤미애(2013), p.192의 각주 재인용.

5) 발터 벤야민(Walter Benjamin), 조형준 옮김, [아케이드 프로젝트 3, 도시의 산책자], 새물결, 2008, p.71.

6) 마이크 크랭, 나이절 스리프트 엮, 최병두 옮김, [공간적 사유] 1부-원본과 시작점, 에코리브르, 2013, p.86.

(5)

주지하다시피 대량복제에 의한 아우라의 상실은 그의 주요한 화두였으나, 한편 그는 아우라가 이분법적으로 나눌 수 없는 변증법적인 속성을 가지고 있음을 인식하였다. 따라서 벤야민은 흔적과 아우라를 통해 도시의 이중적 속성에 대해 설명할 수 있었다. 그리하여, 그는 도시개발 에 의해 독특한 건축물과 풍경이 복제됨에 따라 도시의 풍경이 아우라를 박탈당하게 되었음에 도 역설적으로 도시는 아우라적인 것이라고 이해하였다.7) 가령, 오늘날 도시는 새로운 자본이 유입되기 위해 파괴-재생의 순환을 하며 생기를 잃은 대규모 건조 환경을 만들어 내고 있다.

아파트와 같은 균질한 건조 환경과 뚜렷하게 구별되는 차이를 지녔던 주택들이 구역 단위로 파괴되는 거대한 풍경을 생산해내는 현 상황은 도시의 새로운 아우라를 생산하기 위해 흔적을 지워버리는 일과 같다.

또한, 벤야민은 도시가 일정한 거리를 유지하고 “우리를 다시 쳐다보는 능력”을 가졌다고 서술 하였다.8) 달리 말하면, 도시의 공간은 인간의 삶을 규제하고 구축하기도 하지만, 역으로 도시 는 인간에 의해서 계획되고 구축되는 것이기도 하다. 이런 연유로, 우리의 삶이 도시의 건조 환경 속에 존재하고 있기 때문에 도시공간은 개인의 기억을 복원하기 위한 잠재력을 보유하고 있다. 그러므로 흔적을 통해 우리는 도시 공간 -기억- 을 소유할 수 있게 된다. 따라서 역설적 으로 도시는 최신의 유행과 난개발에 의해 사라져버린 기억이 깃든 곳이 된다. 그리고 벤야민 은 흔적읽기를 위한 방법으로 “산책하기(flânerie)” 행위가 이러한 성찰을 발생시키는 유용한 장치가 될 수 있다고 보았다.

2.2. 흔적읽기의 방법

벤야민에게 산책하기는 사물체계에 기록된 흔적을 통해 도시의 표상을 독해하기에 적합한 행 위이며 도시공간의 다양한 조건에 의해 촉발될 수 있는 일련의 성찰을 가능케하였다. 따라서 산책하기는 실제적 행위가 아니라 흔적읽기를 위한 장치이다. 본 연구에서 산책하기 개념이 자체로 분석의 틀로써 사용되지는 않지만 산책하기 개념을 이해하는 과정에서 논의되는 흔적 과 기억의 속성과 예술에 내재된 구원(救援)의 가능성이 이후에 다루어질 예술적 실천들을 분석하는 것에 근간이 된다.

벤야민은 도시공간에서의 산보에 대해서 다음과 같이 서술하였다. “극히 이질적인 시대의 요 소들이 도시 속에서 공존하고 있다. 18세기 건물에서 나와 16세기 건물로 들어가면 시간의 언덕을 내려가는 셈이 된다. (…) 도시에 들어서는 사람이면 누구나 극히 먼 과거도 오늘날의 사건들과 연결되어 있는 꿈의 망 속에 있는 듯이 느끼게 된다. 건물은 시간의 어떤 층에서 유래하든 다음 건물과 이어져 하나의 거리가 태어난다. (…)”9) 덧붙여, 벤야민은 “산책을 통해 공간적으로나 시간적으로 아득히 먼 것이 풍경과 시간 속으로 침입해 온다는 것이 잘 알려져 있다”10) 고 언급했다. 이 두 가지 서술을 종합하면 개별 공간과 사물들이 제각기 다른 시간과 기억을 품고 있는 파편화된 흔적으로 존재하고 있으나 역설적으로 그 단편들을 품은 도시의 공간은 시간의 켜들을 연결하여 현재의 촉지 가능한 한 점들로 현전하고 있다고 이해할 수 있을 것이다.

나아가, 그는 산책하기를 다음과 같이 비유하기도 하였다. “(…) 산책이 파리를 완벽하게 하나 의 실내로, 즉 각 구역은 하나하나의 방이 되며 작은 방들은 실제 방들처럼 문턱으로 분명하게 구분되지 않는 하나의 집으로 바꿀 수 있는 면도 있으나 다른 한편 이 도시 또한 산책자에게 모든 문턱을 잃고 주변 풍경처럼 전개될 수도 있다.”11) 이것은 개인이 거주한 흔적을 담고있는 실내의 공간에서 내밀한 추억이 형성된다는 것에 기인한 서술일 것이다. 그리하여 산책자는 자신과 타자에 의해 형성된 흔적을 통해 어느덧 도시의 외부 공간을 자신의 거주지처럼 내밀한 공간으로 인식할 수 있게 되는 것이다.

7) 위의 책, p.85.

8) 마이크 새비지, 최병두 옮김(2013), p.88.

9) 발터 벤야민, 조형준 옮김, [아케이드 프로젝트 3, 도시의 산책자], 새물결, 2008, p.46.

10) 위의 책, p.16.

11) 발터 벤야민, 조형준 옮김, [아케이드 프로젝트 3, 도시의 산책자], 새물결, 2008, p.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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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편, 문예 비평가였던 벤야민은 예술로부터 받은 영감을 자신의 이론형성의 토대로 삼고 또 다시 그것을 문학을 이해하는데 사용하였다. 그리고 예술을 통해서 도시에 내재된 잠재성을 발견하고자 하였다. 벤야민의 예술에 대한 이러한 관점은 그가 예술에 내재된 구원적 속성을 인식하고 있었음을 보여주는 것이며 본 연구에서 다루게 될 예술적 실천들이 공통적으로 갖는 중요한 속성을 시사하는 바이기도 하다.

일례로, 벤야민은 샤를 보들레르(Charles Baudelaire)의 작품을 통해 산책자(flâneur) 개념을 발굴하였다. 산책자는 벤야민의 도시연구에 중요한 개념으로 보들레르에 의해서 예술적 의미 를 획득하게 되었다. 벤야민에게 산책자는 실제적 사회 유형이 아니라 도시에 대한 비판과 잠재성을 발견하기 위한 도구였으며 본 연구에서는 예술가의 시점으로 이해할 수 있을 것이다.

벤야민은 산책자와 구경꾼의 차이를 통해 산책자의 개성을 설명하였는데, 그에 따르면 구경꾼 은 외부 세계에 열광하고 도취되기 때문에 그들의 개성이 외부 세계에 흡수되어 사라지고 만 다. 즉, 구경꾼은 비인격적 존재로, 공중, 군중이 된다.12) 그러나 산책자는 비판적이고 자율적 인 인물로 군중과는 분리된 채 존재한다. 나아가, 그는 산책자에게 있어 그의 도시는 -보들레 르처럼 그곳에서 태어나는 경우라도 마찬가지로- 이미 고향이 아니라 하나의 무대라고 하였 다.13) 이것은 산책자가 늘 대상과의 적정거리를 유지한 채 철저히 관찰자적 시점을 취하고 있음을 의미한다. 그리하여 산책자는 구경꾼의 도취된 시각과는 다르게 흔적읽기를 통해 아우 라가 제거된 도시 공간을 소유할 수 있게 되는 것이다.

덧붙여, 벤야민은 [보들레르의 몇 가지 모티브에 관하여]에서 마르셀 프루스트(Marcel Proust)의 비자발적 기억(mémoire involontaire)에 대해 이야기하였는데, 프루스트의 비자 발적 기억은 흔적에 대한 벤야민의 접근을 명확하게 밝혀준다. 비자발적 기억은 현재의 우연 한 사건 -마들렌의 맛- 에 의해 뜻밖의 기억 -유년시절의 사건- 을 우리 가까이에 불러일 으키는 것이다. 순간적으로 의식의 표면을 뚫고 부상하는 유년의 비자발적 기억은 우리에게 잃어버린 희망과 꿈을 가져다주는 것으로 보인다. 그렇기에 프루스트의 비자발적 기억은 아 우라의 상실을 나타내며 흔적의 속성과도 상통하는 것으로 이해할 수 있다. 프루스트에게 이런 종류의 기억은 사람들이 살았던 특정 장소에 깃들어 있으며, 이 장소들은 과거 경험의 흔적을 계속 담고 있다. 따라서 우리는 이러한 장소들을 재방문함으로써 때로 과거를 환기하 고, 이를 계기로 이전에는 지나쳐버린 과거의 희망과 욕망을 풀어주는 것이 가능한 것이다 (Szondi, 1988).14)

가령, 벤야민은 아래의 글을 통해 거리가 비자발적 기억을 환기시키는 문제를 다루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 “거리는 산책자를 아주 먼 옛날에 사라져버린 시간으로 데려간다. 산책자에게 는 어떠한 거리도 급경사를 이루고 있다. 거리는 그를 |신화적인| 어머니의 나라들까지는 아 니더라도 어떤 과거로 데리고 가는데, 이 과거는 산책자 본인의 것, 사적인 것이 아닌 만큼 그 만큼 더 매혹적인 것으로 다가올 수밖에 없다. 그럼에도 이 과거는 항상 어떤 유년 시절의 시간 그대로이다. 그런데 왜 자신이 전에 살았던 유년 시절의 시간일까? 아스팔트 위를 걸어가 는 그의 발자국은 경이로운 반향을 불러일으킨다. 포석 위에 쏟아지는 가스등 불빛은 이러한 이중의 땅 위에 양의적인 빛을 던지고 있다.” [M 1,2]15) 여기서 거리가 인도하는 과거는 역사 적 서사이자 소서사인 산책자 자신의 유년시절의 기억이며 그것들은 중첩된다.

이렇듯, 도시에 내재된 구원의 잠재성을 발굴하기 위한 벤야민의 접근은 기억과 밀접한 관계를 맺고 있으며 이러한 기억은 도시공간의 특정 장소들과 거리 위에서 다층적으로 환기된다. 정리 하자면, 특정 장소의 방문이나 사물을 통해 먼 것을 가까이로 불러오는 회상의 기술이 산책하 기와 같은 흔적읽기를 통해 이루어지며 이러한 작용은 비자발적 기억의 환기에 의해 가능한 것이다. 앞으로 이루어질 다양한 예술적 실천 사례들의 분석은 지금까지 논의된 흔적의 속성과 비자발적 기억을 중심으로 전개될 것이다.

12) 발터 벤야민, 조형준 옮김, [아케이드 프로젝트 3, 도시의 산책자], 새물결, 2008, p.35.

13) 발터 벤야민, 조형준 옮김, [아케이드 프로젝트 2, 보들레르의 파리], 새물결, 2008, p. 299.

14) 마이크 새비지, 최병두 옮김(2013), P.81.

15) 발터 벤야민, 조형준 옮김, [아케이드 프로젝트 3, 도시의 산책자], 새물결, 2008, p.10.

(7)

3. 흔적과 오브제

3.1. 파운드 오브제(found object)에서 흔적읽기

벤야민의 아우라의 작동원리를 대입하자면 파운드 오브제는 기존의 원본성(originality)이 강 조되는 예술작품이 갖는 아우라적 속성을 폐기하였다고 볼 수도 있을 것이다. 주지하다시피 아우라는 유일무이한 존재로부터 오는 숭고함으로 ‘가까이 있어도 멀리 있는 것의 현상’의 속 성을 지닌다. 그러나 파운드 오브제는 우리가 일상에서 흔히 볼 수 있는 세속적 사물들로 ‘멀리 있어도 가까이 있는 것의 현상’인 흔적의 속성에 가깝다고 볼 수 있다. 그러나 결과적으로 파운 드 오브제는 작가에 의해 선택된 생활세계에 속한 일상적인 사물이 작업의 맥락을 통해 작품으 로서의 가치와 의미를 부여받은 것이므로 역설적으로 아우라를 획득한 오브제로 이해할 수도 있을 것이다. 즉, 파운드 오브제는 작품으로 기능함과 동시에 아우라의 변증법적인 속성을 지니게 된다.

먼저, 파운드 오브제와 흔적의 관계에 대해서 잘 보여줄 수 있는 사례로, 일리야 카바코브(Ilya Kabakov)에 대해 언급하고자 한다. 그는 1980년대 초반부터 작업의 재료로써 삶을 통해 축적 된 부산물(Rubbish)을 사용하였는데, 자신과 타인의 쓰레기들을 수집하고 목록화하여 보관하 였다. 그에게 쓰레기는 개인적이면서도 동시에 사회적인 중요성을 갖는 재료였다.16) 이에, 아메이 왈락(Amei Wallach)은 쓰레기를 다음과 같이 해석하였다. “카바코브는 심오하 고 복합적인 방식으로 쓰레기를 사용하였는데 그것은 쓰레기가 기억이자 역사이기 때문이다.

또한, 카바코브는 “쓰레기는 -중요한 문서와 스크랩 된 것들이 분류되지 않고 한데 섞여있는- 내 삶에서 정말로 진실(truly genuine)되고 유일하게 실제적인 물질(only real material)을 정확하게 상징하고 있다고 느낀다.”고 언급하였다.17) 쓰레기는 그의 작품에서 이데올로기와 일상의 혼성 공간 내에서 체제의 폭력성에 대한 대립항으로서 개인의 기억을 은유하는 사물이 었으며, 한편 유토피아 건설을 목표했던 소비에트 연방 그 자체를 상징하기도 하는 중의적인 재료였다.

일례로, 그는 작품 <10 인물들 10 Characters>, 1981-88 중 <결코 아무 것도 버리지 않는 사람 The Man Who Never Through Anything Away>

(도판1)을 통해 종이조각, 빈 박스, 병 등의 쓰레기 들에 번호를 매기고 라벨을 붙여 벽, 캐비넷, 케이스 등에 정렬해 놓았다. 그리고 <쓰레기 더미 A Dump>

에서 쓰레기에 대한 자신의 개념을 다음과 같이 말 하고 있다. “여기 나를 둘러싸고 있는 모든 것, 전 세 계는 나에게 어떤 경계나 끝없이, 고갈될 줄 모르는 다양한 쓰레기의 바다일 뿐이다. 이렇게 거대한 도

시의 쓰레기 속에서 한 가지, 그것들의 전체 과거에 대한 강렬한 숨소리를 느낄 수 있다. 이 쓰레기들은 문화의 반짝이는 별, 즉, 잔상(reflection)과 편린들로 가득 차 있다. (…) 거대한 과거가 이 박스(crates), 병(vials), 그리고 자루들(sacks) 사이에서 봉기한다. 과거에 사람들 이 필요로 했던 모든 형태의 포장들은 그 생김새를 잃지 않고, 그것들이 버려질 때 죽은 것이 되지는 않는다. 그들은 과거의 삶에 대해 외치고 있고, 그것을 보존하고 있다. (…) 이것은 어쩌면 한 특정문명이 알 수 없는 대재앙의 압력에 의해 서서히 가라앉는 이미지일지도 모른 다. (…) 그러나 반대로 그것들의 귀환, 하나의 충만한 순환의 느낌이다. 왜냐하면 기억이 존재 하는 한 그것은 영위될 삶과 연결되어 있기 때문이다.”18) 이 서술을 통해서 오브제에 기록된 흔적의 속성, 즉 흔적이 보존하고 있는 기억은 앞으로 영위될 삶과 연결되어 있으므로 촉지

16) Barbara Steiner and Jun Yang, [Political Systems, ART WORKS-AUTOBIOGRAPHY], Thames & Hudson, 2004, p.132 참조.

17) Amei Wallach, Ilya Kabakov, [The Man Never Threw Anything Away], Harry N. Abrams, Inc, 1996, p.68 참조.

18) Ilya Kavakov, [Ilya Kabakov, Ten Characters], ICA&Ronald Feldman Arts Inc.&Untitled II, Inc, 1989, p.45.

도판1. <결코 아무 것도 버리지 않는 사람 The Man Who Never Through Anything Away>, 1981-8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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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능한 현재에 포함된 과거인 동시에 존재할 수 있는 미래의 가능성들을 품고 있음을 다시 한 번 확인할 수 있다.

한편, 벤야민은 보를레르가 넝마주이에게서 자신의 모습을 보고 있음을 발견하였는데, 아래의 묘사는 일리야 카바코브가 쓰레기를 분류하는 방식과 닿아있다. “여기 수도에서 하루 종일 쏟아낸 쓰레기를 줍는 일을 하는 사람이 있다. 대도시가 버린 것, 잃어버린 것, 낭비한 것, 소홀히 한 것, 망가트린 것 모두를 그는 분류하고 수집한다. 그는 방탕의 고문서, 폐기물의 잡동사니들을 열람한다. 제각각 구분해서 현명하게 선별한다. 그는 수전노가 재산을 모으듯이 쓰레기를 모으는데, 이들 쓰레기는 산업의 여신에 의해 수리되어 실용품이나 향락품이 된다.”

포도주와 해시시에 대해, [작품집], 1권, p.249-5019) 보들레르가 묘사한 넝마주이와 카바코 브가 쓰레기를 취급하는 목적은 확연히 다르지만 쓰레기를 열람하고 수집하여 그것으로부터 가치를 찾아낼 수 있는 동일한 작업을 하고 있는 것이다. 이와 비슷한 맥락에서 아메이 왈락은 카바코브의 작업해석에서 쓰레기를 통해 가치혼란의 문제를 찾아내었다. 우리가 곡물의 껍질 과 알맹이를 분리하는 일을 예로 들어, 가치있는 것과 가치 없는 것을 구분하는 것이 우리의 보편적인 딜레마라고 말한다.20)

카바코브는 쓰레기가 이곳에서 저곳으로 이동할 뿐 사라지지 않는다고 하였다. 그에 따르면, 삶의 기억과 흔적을 담고 있는 일상의 파편들로서 쓰레기는 훗날 박물관에 유물로서 분류될 수 도 있을 것이다. 이렇듯 그가 쓰레기가 훗날 박물관에 전시될 수도 있다고 언급한 것은 파운드 오브제의 속성을 이해하면 결코 비약이 아니다. 현재 박물관에 전시되어 있는 유물들 중에는 본디 쓰임이 비천한 사물들도 있다. 파운드 오브제와 마찬가지로 박물관에서는 사물 자체의 가치가 아닌 역사의 증인으로서 사물에 권위가 부여되고 영속되기 때문이다. 요컨대, 우리는 카바코브의 예술실천을 통해서 파운드 오브제가 지속시키고 있는 기억에 의해 세속의 사물인 파운드 오브제가 우리의 삶에서 “유일하게 진실한 사물”로 기능한다는 것을 확인할 수 있는 것이다.

반면, 루이스 부르주아(Louise Bourgeois) 또한 다양한 종류의 오브제를 활용하는데, 부르주 아의 사례는 일리야 카바코브를 통해 서술된 파운드 오브제의 속성에 더하여 마르셀 프루스트 의 비자발적 기억에 대한 논의를 가능하게 한다. 그녀의 <밀실>연작에는 여러 종류의 파운드 오브제들이 사용되었다. 대부분의 오브제는 방을 위해 제작되었고 나머지는 수집한 것으로 그것은 침대 틀, 빈 향수 병, 유리관, 의자, 책상과 걸상, 긴 스탠드에 걸린 둥근 거울 등이었다.

이 오브제들은 오래된 물건들로 과거의 시간을 반영하며 시간에 의해 닳아진 것들이었다.21) 부르주아는 이러한 파운드 오브제들을 통해 작가 자신의 개인적인 기억과 관람자가 소유한 유사 기억을 매개하고자 하는데, 이것은 비자발적 기억을 격발시키는 매개체의 역할과도 같은 것이다.

가령, <밀실II Cell II>, 1991(도판2)에서 사용된 향 수병과 유리 용기들은 짙은 향기를 상기시켜 관객을 노 스탤지어에 젖어들도록 유도하였다. 그리고 그녀는 유 리라는 물질이 지니는 이중적 속성, 즉 부서지기 쉬운 약함과 강함의 공존 상태에 매력을 느꼈고, 그녀의 작 업에서 유리의 투명성은 깨어지기 쉬운 진실, 믿음 등 을 상징하였다.22)

또한, 그녀에게 작업은 자신에게 트라우마를 남긴 과거

를 재현하여 고통의 기억을 치유할 수 있게 해주는 것이었다. 그녀는 “나의 조각은 두려움을 다시 경험하게 하면서 그것에 실체성을 주어 내가 그것을 난도질할 수 있게 해준다. 두려움은 다룰 수 있는 실체가 된다. 조각은 과거를 다시 경험하게 함으로써 과거를 객관적이고 실제적

19) 발터 벤야민, 조형준 옮김, [아케이드 프로젝트2-보들레르의 파리], 새물결, 2008, p.305에서 재인용.

20) Amei Wallach(1996), p.68 참조.

21) 양현숙, [루이스 부르주아의 <밀실>연작 연구], 미술사 연구 19, 2005, p.342에서 재인용.

22) 양현숙(2005), p.342.

도판2. <밀실 II Cell II>, 199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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으로 다시 볼 수 있게 한다.”라고 하였다. 부르주아에게 이러한 조각의 기능은 과거의 기억을 가진 특정 공간을 재방문함으로써 예전에는 좌절되었던 욕망과 희망을 풀어줄 수 있는 프루스 트의 비자발적 기억과 상통한다고 볼 수 있다.

달리 말해, 부르주아의 작업에서 파운드 오브제는 기억을 바탕으로 이루어진 설치의 구성에 따라 기억을 실재하게 함으로써 트라우마를 넘어설 수 있게 하는 용기, 즉 구원의 속성을 뚜렷 하게 가지는 것으로 보인다. <밀실>은 가정의 폐쇄성에 의한 긴장과 밀실의 공포, 그리고 그 공간에서 생성되었던 고통과 두려움이 환기되었다가 소멸되는 공간이 된다. 따라서, 앞서 벤야민을 통해 논의된 도시공간에 남겨진 흔적의 잠재성과 예술 자체가 갖는 구원적 속성의 적시라 볼 수 있다. 다시 말해, 도시공간의 흔적들은 우리의 과거를 반추하여 현재에 대한 성찰을 촉발한다. 그렇기에 역설적으로 도시는 현재의 문제적 상황을 관찰하고 우리가 그에 대립할 수 있게 하는 구원의 공간이 될 수 있었다. 이러한 맥락에서 부르주아는 자족적인 예술 실천을 통해서 치유를 위한 용기를 얻었으며, 그녀의 예술실천이 자신의 삶을 구원할 수 있는 가능성을 내재하고 있음을 확인할 수 있다.

덧붙여, 부르주아는 <밀실>연작을 위해 방을 건축하여 그 속에서 과거를 재구성하는 방식을 취하고 있는데, 이러한 건축적 구조는 작품을 경험하게 하는 연극적인 무대로서 기능하며 오브 제와 공간의 유기적인 관계를 형성한다. 이러한 작업 방식은 그녀의 독자적인 어법이라기보다 는 여타 작가들에게서도 발견되는 것이며, 일리야 카바코브의 어법이기도 한데 다음 절에서 이러한 오브제와 공간의 관계에 대한 논의를 이어가고자 한다.

3.2. 오브제와 공간의 관계

일반적으로 파운드 오브제는 설치의 일부로 놓여서 기능하는 경우가 많다. 그리고 설치는 ‘어 떤 공간 속에 사물을 놓는다.’는 것을 의미하는데, 그 행위는 인간의 일상적인 행위를 포괄하며 예술의 범주에 대입시켰을 때도 마찬가지다. 그러나 무엇보다도 공간을 창조하고 공간을 규정 짓고 그것을 구조화하는 과정에서, 그리고 항상 스스로가 만들어내는 공간과의 관계에서 의미 가 부여되는 것이다.23)

요컨대, 이 절은 오브제와 공간의 관계를 분리해서 논의할 수 없다는 견지에서 전개된다. 여기 에서는 앞서 다루었던 작가인 일리야 카바코브의 작업을 통해 논의를 이어가고자 한다. 그의 설치 방식은 조명, 공간, 음악, 동선 등 여러 가지 요소를 고려한 연극적인 방식으로 카바코브 자신이 총체적 설치(total installation)라고 명명한 것이었다. 그의 이러한 설치 방식은 카셀 도큐멘타(Documenta 9)에 출품한 <화장실 The Toilet>, 1992(도판 3)에서 관람객에게 매 우 직관적인 경험을 제공할 수 있었다.

1960-70년대 구소련의 공공 화장실을 재현한 이 작품 은 한쪽은 남자, 다른 한쪽은 여자 화장실로 구성되어 있었다. 그러나 관람자가 안으로 들어가면 전혀 예상치 못한 두 개의 방이 있는 실내가 나타나는데, 바로 남자 화장실은 거실로 여자 화장실은 침실로 꾸며져 있었던 것이다. 침실에는 구멍 난 침대 커버로 덮여 있는 침대 와 지저분한 인형, 빨랫줄에 걸린 옷가지와 장롱이 있 고 거실에는 신문을 테이블보 삼아 놓여있는 짝이 맞지 않는 각종 식기와 담배꽁초가 수북한 재떨이 등 궁색한

살림살이로 채워져 있었다. 이러한 오브제들은 사람이 결코 살 수 없을 것 같은 공공 화장실에 어떤 가족이 살고 있음을 암시하고 있었다. 그리고 이 작품에는 작가의 유년 시절 기억이 투영 되고 있었다. 기숙학교인 모스크바 미술학교 재학 당시 작가의 어머니는 그를 돌보기 위해 살던 곳과 직장을 포기하고 그 학교의 욕실이었던 창고에 간이침대를 놓고 기거했고 후에 이 사실이 발각되어 그곳에서 쫒겨났다.24)

23) 박남희, [일리야 카바코브 <Ten Characters>의 사회적 의미 해석], 현대미술사연구, 21, 2007, p.127에서 재인용.

도판 3. <화장실 The Toilet>, 199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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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품을 통해 알 수 있듯이 일리야 카바코브가 이 작품을 위해 고안한 것은 오브제들의 적절한 배치로 자신의 과거에 대한 기억이자 공론화되어야만 하는 어떤 상황을 연출하는 것이었다.

그러기 위해서는 선택된 사물들과 공간의 역설적인 관계가 매우 중요하였다. 가령, 이 작품에 사용된 거주의 흔적을 담고 있는 파운드 오브제들이 다른 공간에 전시되었다면 이 작업의 의미 는 상이해진다. 이 작업은 카바코브가 어머니와 함께 화장실에서 거주하였던 과거의 사적인 기억의 체현임과 동시에 관람객에게는 공공 화장실에 개인이 거주하는 모순적인 상황을 경험 하게 하는 특수한 장치이기 때문이다. 이러한 오브제와 공간의 보완적 기능을 통해 우리는 개별 요소들이 가지는 복합적인 관계에 대해 이해할 수 있게 된다.

한편, 이러한 카바코브의 예술적 실천을 통해 거주와 공간에 대해서도 논의할 수 있게 된다.

공간은 우리의 삶이 작동하는 현실로서 우리는 공간에 거주한다. 그리하여 거주지는 인간의 근본적 조건이자 삶이 육화된 내밀한 공간이다. 오토 볼노브(Bollnow, Otto Friedrich)는 거주 함이 없다면, 인간의 내적파괴는 피할 수 없다고 단언한다. 그는 인간은 거주자로서 있을 때에 만 자신의 고유한 본질을 찾을 수 있으며, 완전한 의미에서 인간일 수 있기 때문에 인간이 집 안에 거주한다는 사실은 실존함 이상의 의미를 가진다고 말한다.25)

따라서 인간이 자신의 삶을 수행하며 구축한 공간은 그곳에 거주하는 주체를 대변하는 것으로 이해되어야 한다. 앞 장에서 다루었던 바와 같이 벤야민이 말했던, 파리의 각 구역을 실내로 만들 수 있는 산책하기의 기술은 산책자 자신의 삶이 그 공간에 존재하기에 가능한 것이기도 하다. 그리고 부르주아의 취향, 즉 자신의 거주의 흔적을 남기고자 하는 욕구와도 같이, 우리는 스스로 구축한 공간에서 비로소 안정감을 얻을 수 있으며 그 안정감은 우리가 늘상 사용하는 사물과 공간에 각인된 기억으로부터 비롯되기 때문이다.

반면에, 소비에트의 이념과 같은 거대체제나 오늘날의 도시계획은 도시미관의 개조라는 명목 하에 개인의 삶이 뿌리내리고 있던 개별가치들을 파괴하였다. 이 과정에서 거주지로부터 강제 이주된 주체들은 새로운 공간에서 이전과는 다른 삶을 창조할 수밖에 없을 것이다. 카바코브의 작품은 이러한 강제성을 직접적으로 경험하고 그것을 토대로 폭압적인 거대 체제와 개인의 삶의 간극이 초래하는 비극을 다룰 수 있었다. 그리고 그는 카셀 도큐멘타에서 자신이 선택할 수 있었던 전시공간에 사적인 기억 속의 특정 공간을 재현하여 복합적인 의미를 환기시키는 전략을 취하였다.

나아가, 단지 공적 영역에 속해있는 공공 화장실이자 자신이 선택한 전시공간에 개인의 삶을 중첩시키는 시도 뿐 아니라 그는 이 화장실의 위치가 카셀 도큐멘타가 열리는 중심 건물에서 떨어진 뒤편에 위치한 것에 주목하였다. 그리고 그러한 지리적 특징이 카셀 도큐멘타가 개최되 는 서구 유럽에서 러시아의 위치를 상징하고 있음을 지적하였다. 따라서 단적인 예로 이 작품 이 공공 화장실이 아니라 도큐멘타의 전시장 내에 설치가 되었다고 가정하면 이 작품을 지탱하 는 구조와 다층적인 의미가 모두 파괴된다. 공간의 사용을 통한 바로 이러한 의미 획득의 상태 를 통해 우리는 이 작품에서 공간이 갖는 심대한 역할을 이해할 수 있게 된다. 그리고 앞으로 작가들의 예술 실천을 해석하는 과정에서 흔적과 기억의 문제를 탐구하기 위해 사용된 오브제 와 공간이 갖는 의미들을 더 수집할 수 있을 것이다.

4. 흔적과 공간

4.1. 흔적과 공간의 재 맥락화

흔적과 공간의 재 맥락화는 공간 자체에 내재된 흔적, 기억을 활용하면서도 작품을 통해 그 공간이 새로운 의미를 획득하게 되는 전략을 서술하기 위한 절이다. 따라서 앞서 다루었던 일리야 카바코브의 실천과는 다른 접근으로 공간을 선택한 사례를 통해 전개하고자 한다. 뮌스 터 조각 프로젝트(Skulptur Projekte Münster)를 위해 제작된 레베카 호른(Rebecca Horn)의

<뒤바뀐 콘서트 Concert in Reverse>, 1987(도판4)는 파란만장한 역사적 사건들에 의해 기

24) 주은정, [일리야 카바코프(Ilya Kabakov)의 설치에 나타난 제도 비판], 이화여자대학교, 2003, p.30-31.

25) 김재철, [공간과 거주의 현상학], 철학논총 56, 2009, p.380에서 재인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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입된 흔적들이 담긴 츠빙거 유적(Zwinger ruin)에 설치되 었다.

이 공간은 본래 1526-36년 사이에 도시의 요새로 지어졌 다가 18세기에는 감옥으로 사용되었고 1차 세계대전 중에 는 대피소로 쓰였다. 이후에는 나치(nazis)에 의해 때때로 히틀러 유겐트(hitler youth)를 수용하였으며 마침내 1943년 게슈타포(gestapo)에 의해 러시아와 폴란드인 포 로들을 감금하고 처형을 집행하던 장소로 사용되었다. 츠

빙거는 1945년에는 폭격을 맞아 결국 벽돌로 봉쇄가 되었고 1980년대에 이르기까지 약 40년 간 이 건물은 접근이 불가능한 상태로 남겨져 건물 내부에 자연 서식지가 형성되었다. 레베카 호른은 츠빙거가 갖는 이러한 세세한 특이성을 작품에 채택하고자 하였고 그녀의 설치는 츠빙 거의 역사를 떠올릴 수 있는 개별적인 요소들로 구성되어 있었다.

<뒤바뀐 콘서트>는 이 유적의 역사에 접근하는 새로운 관점을 제시하여 그 역사를 확장시키 고 또한 독자적인 공간 경험을 가능케 하였다. 창문이 없는 지하 감옥의 파편들은 여전히 그곳 에 존재하고 있었으며, 반면에 지상 층의 외벽은 좁은 틈새를 형성하고 있었다. 그녀는 이 틈새에 빨간색의 추모의 촛불을 두었고 내벽에는 다양한 높이의 망치를 설치하였다. 이 망치들 은 기계적으로 벽을 두드리는 소리를 만들어내었다. 관람객은 이 소리로 가득 찬 공간의 밝은 빛이 만들어내는 강한 대비와 폐쇄되었던 안뜰의 변화된 상태에도 불구하고 그것이 여전히 감옥의 형태를 간직하고 있다는 것을 알아볼 수 있었다.

공간의 가운데에는 깔때기 형태의 유리 구조물이 지주에 매달려 있었고 20초마다 그 속의 물방울이 바닥에 놓인 대야 속으로 떨어져 물의 표면을 부수고 파문을 일으켰다. 레베카 호른 은 자신의 설치를 다음과 같이 묘사하였다. “원형의 파문이 검은 거울 속으로 침하하고 두 번째 물방울이 신호하는 바가 ‘뒤바뀐 콘서트’이다. 지상에 묶인 한 쌍의 뱀은 매 달(months) 이 지나가듯이 오고 감을 뒤 쫒는다.” 윗 층의 사육장에 있었던 한 쌍의 뱀은 1987년에 서로를 향해 느리게 다가가는 철조로 만들어진 팔로 교체되었다. 또 다른 파손위험성이 있는 설치는 위층에 있는 계단 가까이에 있었다. 그것은 철조로 만든 두 개의 임시적인 지주가 지탱하고 있는 거위의 알이었다.26)

앞서 언급한 바와 같이 이 작품은 일리야 카바코브의 공간과는 매우 상반되는 선택을 하였는 데, 그것은 공간 자체가 가지고 있는 거대한 역사적 서사가 만들어내는 아우라를 활용했다는 점이다. 카바코브가 사용한 공간은 화장실로 공공의 영역이라는 기표로 작용하는 세속의 공간 이며 그 곳에 역설적으로 거주의 흔적을 통해 소서사인 사적인 기억을 공론화하였다. 반면에, 레베카 호른이 선택한 공간은 이미 그 공간 자체가 함의하는 의미들이 섞이고 충돌하여 비현실 적일 만큼 복합적인데다 약 40년간 현실세계와는 격리되어 존재하였다. 이러한 공간은 대체 불가능한 강한 장소성을 가지는데 그녀는 그 공간이 가진 흔적과 의미들을 독해하고 그것들을 작품 속으로 흡수하였다. 그리하여 그 개별 요소들을 사용하여 작곡하듯이 자신의 오브제들을 섬세하게 고안된 하나의 공연으로 이 공간에 펼쳐놓음으로써 더욱 강렬한 경험을 이끌어내고 자 한 것이다.

앞서 오브제의 속성을 통해 언급한 바와 같이 설치는 사물의 설치를 통해 그 장소와 주변의 환경까지를 작품의 맥락에서 기능하게 한다. 그리하여 거듭 강조하건대, 오브제의 설치는 공간 의 경험과 분리할 수 없는 밀접한 관련성을 지닌다고 볼 수 있다. 즉, 관람자와 작품, 작품이 있는 물리적 공간이라는 세 요소가 서로를 보완하고 상호작용하는 관계에 놓여있는 것이다.27) 그리하여 레베카 호른이 고안한 공간의 특수한 경험이 이러한 작품읽기의 주요한 방법이 된다.

게다가, 공간을 사물체계에 속한 것으로 볼 때 파운드 오브제의 속성을 공간에 대입해 보면 작가가 작품의 소재가 되는 공간을 선택함으로써 그것에 새로운 권위를 부여할 수 있다는 것을

26) https://www.skulptur-projekte-archiv.de/en-us/1987/projects/16/참조. 접속일자 2018년 8월 9일.

27) 정연심, [현대공간과 설치미술], A&C, 2014, p.56 참조.

도판4. <뒤바뀐 콘서트 Concert in Reverse>, 198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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알 수 있다. 이것은 일상의 공간이 작품의 맥락으로 기능하게 되기 때문인데, 공간은 그것이 작품으로 읽힐 수 있는 상황에 놓임으로써 새로운 위치를 획득할 수 있는 것이다. 이러한 맥락 에서 시각예술의 작가들에게 오브제와 공간의 선택이 의미 생성의 전략에 복합적으로 기여하 고 있다는 것을 다시 한 번 확인할 수 있는 것이다.

4.2. 주조된 공간의 경험

주조된 공간의 경험은 본 연구자가 주조기법(casting)을 통해 제작된 사물화된 공간을 다루기 위해 고안한 제목이다. 이러한 조형 언어는 매우 드문 것이나 본 연구의 주제인 오브제와 공간 의 사용을 통한 흔적읽기의 문제에 적합한 사례이자 앞서 이루어진 논의의 의미가 전복되고 더욱 복합적인 논의가 중첩될 수 있는 유의미한 방식이라 사료하였다.

주조는 거푸집(mold)을 제작하고 그 속에 경화되는 속성을 가진 재료를 주입하여 사물을 똑같 이 복제해내는 방식으로 입체 사진과 같이 사물을 그대로 재현하는 속성을 가진다. 여기에서 살펴볼 작업은 보통 우리가 비어있는 것으로 인식하는 공간을 주조하는 형식을 취하는 레이첼 화이트리드(Rachel Whiteread)의 것이다. 이러한 화이트리드의 주조방식은 음화주조 (negative casting)기법으로 일반적인 주조의 과정을 전복한 것이다.

레이첼 화이트리드의 작품을 관통하는 주제는 기억, 유년시절의 경험, 은폐된 공간, 죽음 등이 다. 그녀의 작업은 매우 직관적이며 원본의 사물을 복제하는 것과는 상반되는 방식의 주조를 통해 내부의 음화된 공간을 끄집어낸다. 그로인해 우리가 경험할 수 있는 것은 우리의 출입을 거부하는 물질화되어 드러난 공간의 표면 뿐 이다. 그럼에도 그것은 부재하는 존재의 흔적을 되짚어가게 유도한다. 그리고 그녀의 작업과정에서 결과물이 남겨지기 위해서는 원본의 사물 이 폐기되어야만 했다. 그럼에도 작품의 표면으로부터 우리는 폐기되기 이전의 본래 사물을 읽어내고 감각할 수 있다. 가령, 화이트리드의 작품 <무제 Untitled>연작들은 주조과정을 거 치며 작품의 표면에 욕조의 물때, 책상에 슬은 녹, 매트리스의 체액 등이 그대로 전사되었다.

이처럼 음화주조 방식은 대상이 가지고 있던 흔적들을 면밀하게 담아낼 수 있었다.

먼저, 레이첼 화이트리드의 <집 House>, 1993(도판 5)을 통해 주조된 공간이 갖는 의미를 고찰해보고자 한 다. <집>은 런던 동부의 철거지역에 위치한 전형적인 빅토리안 양식의 주택의 내부를 통째로 큰크리트로 주 조한 작업으로 규모가 큰 오브제라고도 볼 수 있다. 레 이첼 화이트리드가 이 집을 선택할 때 가장 중요하게 여 긴 조건은 반드시 그 공간에 누군가 거주했던 흔적이 남 아있어야 한다는 것이었다. 작업의 제작은 몇 개월에 걸

쳐 이루어졌다. 일단, 집 내부의 불필요한 구조들을 뜯어내고 집 자체를 거푸집으로 사용하여 지하에서부터 콘크리트를 부어 천장의 구멍으로 탈출하는 방식으로 이루어졌다. 그리하여, 최종적으로 공간은 고체(solid) 형태로 나타났다. 그리고 그 공간의 표면에는 인간이 점유했던 공간의 흔적이 남아있었다. 우리가 공간을 비어있는 것으로 인식하는 것과는 반대로 공간이 물질로 박제되어 나타난 것이다. 이것은 우리가 감각할 수 없는 비가시적인 공간을 주조해내어 음화된 공간경험을 생성한다.

그녀는 이러한 음화주조의 과정을 데드마스크를 만드는 것에 비유하였다. “한 사물을 본뜬다 는 것은 그것을 시간이라는 함정에 빠뜨리고, 궁극적으로 그것이 가진 고유의 과거와 그것의 복사물이 갖게 되는 과거라는 두 개의 역사를 보여준다. 이 이중성의 완벽한 표현이 바로 데드 마스크(dead mask)이다. 그것은 그 사람의 얼굴이 생전에 이루어낸 모습과 사후 경직된 장붓 구멍(a mortise)에 의해 그 모습이 붕괴로 치닫기 전에 그 얼굴이 축적해 놓은 그 모든 물리적 외형을 담고 있다. 그것은 우리가 죽은 이의 모습을 떠올리기 위하여 세상에 남아서 초상과 기억, 복제물과 사물들을 자기만의 권리로 표현한다.”28)

28) 최재원 [Rachel Whiteread의 작품연구], 홍익대학교, 2001, p.12에서 재인용.

도판5. <집 House>, 1993

(13)

이는 그녀가 파운드 오브제나 공간을 그대로 사용하지 않고 주조기법을 통해서 작품을 제작하 는 이유를 명확히 밝혀준다. 우리가 앞서 논의했던 흔적읽기는 흔히 사람의 얼굴과 관상의 관계에 비유되기도 하는데, 사람의 얼굴은 그가 살아온 인생에 의해 구축된다. 따라서 우리는 그의 얼굴을 통해 그의 과거를 읽을 수 있다. 주조된 형태는 화이트리드의 표현대로 데드마스 크처럼 붕괴로 치닫기 전에 그 얼굴이 축적해 놓은 그 모든 물리적 외형을 담고 있다. 그녀는 그 죽음의 순간에 개입함으로써 비로소 이중적 역사를 획득하게 되는 것이다.

한편, <집>은 철거지역 내의 도로에 존재하는 마지막 집이 되었고, 그 건물이 가졌던 구조와 특정시대의 양식은 그 지역에 거주했던 집단의 기억을 상기시켰다. 또한, 화이트리드의 조각이 사람들의 출입을 거부하는 봉쇄된 덩어리의 형태로 나타난 것은 결코 긍정적인 경험이 아니었 을 것이다. 그녀의 다른 조각들이 때로 무덤과 같은 죽음의 이미지를 연상시킨다는 점도 고려 해 볼 만하다. 화이트리드 자신도 방들을 ‘매장한다’고 표현하기도 하였는데 작품의 인상이 폐소공포증, 즉 밀도가 높은 재료로 주조한 공간의 표면에서 오는 질식할 것 같은 느낌을 주는 것이다. 이 작업은 작가의 예상보다 더욱 이목이 집중되어 논란의 중심에 서게 되었고 마침내 예정일보다 빠르게 철거되었다.

나아가, 그녀의 다른 작품 <홀로코스트 기념비 Holocaust Memorial>, 1995(도판6)는 사적이고 내밀한 일상의 사 물과 공간에서 더 나아가 처음으로 공공에 개방된 공간 에 설치되었다. 이 작품은 비엔나의 유대인 광장 (Judenplatz)에 제2차 세계대전 당시에 학살당했던 65,000명의 유대인을 추모하기 위한 기념비를 의뢰받아 제작되었다. 그녀가 생각하기에 이 추모비를 건축하는데 가장 적합한 사물은 책이었다. 따라서 이 작품을 제작하 기 위해 책으로 가득 채워진 책장을 거푸집으로 사용하 였다. 도서관의 내부에서 사람들은 보통 제목과 저자의

이름이 인쇄된 책의 등을 보게 되는 반면, 이 작품은 종이가 켜켜이 층을 이루고 있는 책이 펼쳐지는 좁은 면을 드러냈다.29)

또한, <홀로코스트 기념비>의 크기는 중의적인 의미를 가졌는데, 유대인광장에 살던 사람들 의 사적인 주거영역과 동시에 기념비를 세워야하는 공공의 영역을 이해하고 포섭하기 위함이 었다. 화이트리드 사적영역과 공공영역의 경계를 허물어 실내와 실외의 명확한 구분을 무너뜨 리고자 하였다. 가령, 이 작품의 크기는 양식화된 도서관을 보여주고 있는 듯하다. 그리고 다음 과 같은 사실에서 화이트리드가 사적영역을 역사적이고 정치적인 의미를 담은 기념비 안으로 통합시키려는 관심이 있었다는 것을 보여준다.

그녀는 작품의 크기를 유대인광장을 둘러싸고 있는 19세기 부르주아식 주택 거실의 크기를 바탕 으로 만들었으며, 그러한 양식의 주택의 문과 천장에서 작품의 세부장식을 차용하기도 했다.30) 이것은 앞서 언급한 오브제와 설치의 기본적인 속성 또한 환기시키는데, 바로 사물의 설치를 통해 그 장소와 주변의 환경까지를 작품의 맥락에서 기능하게 한다는 것이다. 따라서 오브제의 설치는 공간의 경험과 밀접한 관련성을 지니며 수용자와 작품, 작품이 있는 물리적 공간이 보완 적이고 상호적인 관계에 놓여있게 된다.31) 화이트리드는 이 기념비가 우리 삶의 일부로써 수용 되고 추모의 방식 자체에 대한 지속적인 논의의 장이 되기를 바랐던 것으로 보인다.

지금까지 레이첼 화이트리드의 작품을 통해 전개된 논의를 정리하자면, 음화주조기법은 사물 이나 공간이 가지고 있는 고유의 기억과 형태가 주조를 통해 획득한 새로운 신체로 전이됨을 알 수 있다. 즉, 기존의 신체가 소멸되면서 새로운 신체에 기억이 덧씌워지는 이중적인 상태를 지니게 되는 것이다. 이는 오로지 작가의 개입에 의해서만 일어날 수 있는 사물과 공간의 신체

29) 김지은, [레이첼 화이트리드(Rachel Whiteread)작품의 공간성 연구, 2006, p.26-27에서 재인용 및 참조.

30) 김지은(2006), p.26-27에서 재인용 및 참조.

31) 정연심(2014), A&C, p.56 참조.

도판6.

<홀로코스트 기념비 Holocaust Memorial>, 1995

참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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