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파괴하면서 창조하는 자, 니체
(F. Nietzsche, 1844-1900)의 생애 2. 니체의 저작을 통해 본 핵심사상
3. 니체의 철학정신: 건강한 삶의 문제 4. 니체의 인간론
5. 창조적 인간의 출발점에 서서
- 1844년 10월 25일 독일 라이프치히 근처 뢰켄에서 출생 - 1849년(5세) 아버지의 죽음
- 1858년 슐포르타(인문계 중등학교) 입학
“지식과 광범위한 교양에 대한 열정이 지금 나를 사로잡는다.”
- 1864년(20세) 본대학 입학(고전문헌학과 신학 전공) - 1865년 라이프치히 대학으로 옮김
-
1869년(25세) 스위스 바젤대학 교수로 취임(고전어 및 고전문학 전공)
- 1870년 독불전쟁에 위생병으로 참전하였으나 이질과 디프테리아 감
염으로 그해 귀대함.
- 1872년(28세) <음악정신으로부터 비극의 탄생> 출간 - 1879년 바젤대학 사직
“사는 것 자체가 끔직한 고통이다. 만일 내가 정신과 도덕에 관한 분야에서 교훈적인 여러 가지 시험이나 시도를 하지 않았다면 나는 이미 오래전에 나의 삶을 던져버렸을 것이다.”
- 1883-1885년 스위스, 이탈리아 요양차 여행, 사색과 저술에 집중
<차라투스트라는 이렇게 말했다> 1-4권 완성함. 영원회귀, 위버멘쉬 사상의 구체화 “열악한 건강상태에도 불구하고 최선을 다했으므로 이제는 명예롭게 사라져도 되지 않 을 까 하는 생각이 들기도 한다.”
- 1888년(44세) <우상의 황혼> <안티크리스트> <이 사람을 보라> 완성
- 1889년(45세) 이탈리아 토리노 광장에서 발작을 일으킴. 저술가로서 사망선고 받음.
- 1894년 니체 전집을 위한 아키브 설립 - 1900년 사망
★ 『비극의 탄생』
(원제: 음악정신으로부터 비극의 탄생)
- 비극은 디오니소스 찬가와 영웅숭배의 결합
- 음악은 ‘인간과 세계의 변혁을 초래할 수 있는 힘’을 소유
→ ‘바그너’의 음악에서 그리스인의 비극정신, 즉 생의 고통 과 무상함에도 불구하고 생을 긍정하는 정신을 찾아냄 - 니체는 비극시대의 그리스인들이 ‘고통을 신성화하는 능력’
을 가지고 있다고 봄.
- 『비극의 탄생』 에서 디오니소스의 의미
→ 삶을 긍정하는 정열적 표현으로 모든 예술작품에 가로놓 이는 원리.
★ 『차라투스트라는 이렇게 말했다』
(부제: 모든 사람을 위한 책이자 동시에 그 어 느 누구를 위한 것도 아닌 책)
- “이 책의 진정한 이해는 단지 머리로만 이해하 지 않고, 그것의 의미를 찾아 자신의 삶에 체 화하여 자신의 삶을 바꾸는 것이다.” ―『이 사 람을 보라』
- BC 7세기 페르시아 종교지도자 차라투스트라
를 등장시켜 서양지성사에 대한 깊은 탐색을
보여준 책
- 니체 철학의 중심주제인 영원회귀, 위버 멘쉬, 힘에의 의지, 신의 죽음 등이 집약 됨
- 어떻게 원한과 증오에 의해 병든 인간이 아니라 생명력 넘치는 건강한 인간이 될 수 있는가?
→ 미래의 건강한 인간은 초월자 없는 현 세를 약속하고, 신의 죽음을 인정하며, 삶에 대한 위대한 긍정을 하는 인간
★ 『선악의 저편』, 『도덕의 계보』
- 절대적이고, 보편적인 도덕은 존재하지 않으며, 모든 도덕 은 역사적 상황에 따라 변하는 상대적인 것에 불과
- 보편적 도덕, 신의 명령이나 천부적 양심에서 비롯된 도 덕은, 연약한 자들이 강한 자를 순화하고 제어하기 위해 만들어낸 ‘노예도덕’에 불과
→ 신과 피안의 세계, 소크라테스(플라톤)와 이데아의 세 계는 강자들과의 전투에서 사용되는 약자들의 날카로운 창이자 방패
- 약자들이 승리함으로써 문명사적 비극이 시작됨
- 삶에 대한 철학의 공과(功過)
→ 철학은 삶에 어떤 기여를 하고 있으며, 얼마나 가치 있는 학문인가?
- 니체 철학의 핵심 주제는 삶과 건강의 문제
→ 그에게서 철학은 삶과 죽음, 생의 긍정과 부정, 건강과 질병이라는 첨예한 대립구도 속에서 작동함. 니체는 자신의 철학을 생리학
(physiology), 병리학(pathology), 징후학(symptomology), 영양철학 등으로 지칭함.
-“한 인간이 병들고 우울했을 때 생각해 낸 모든 진리들이 그 질병의 표
현이듯이, 병든 시대가 자랑하는 진리들 역시 그 시대가 지닌 질병의
표현이다.”
★ 연약한 인간이 날조한 자기기만으로서의 전통 형이상학과 기독교
“인간은 신이나 피안에 의지함으로써 고통스런 현실을 살아갈 힘을 얻 고자 한다. 그러나 그러한 허구에 의지할수록 인간은 더욱 약한 존재가 된다. 자신의 힘으로 살아가지 못하는 허약한 자들이 만들어낸 허구가 절대적 가치로 간주되면서 인간의 힘을 더욱 약화시키는 기제로 작용 한다.”
★ 신의 죽음과 허무주의
- 니체가 신의 죽음으로 선포한 피안의 세계에 대한 거부는 디오니소스 적 삶(삶에 대한 철저한 긍정)을 위협해 온 모든 억압의 뿌리, 즉 피안의 세계, 이상주의에 대한 단호한 부정을 의미
- 허무주의란 “이천 년 동안에서 걸쳐 기독교인이었던 것에 대해 우리가 감당하지 않으면 안 되는 시대”의 절망이다. 이른바 ‘최고의 가치’가 박 탈될 때의 허망함을 의미
★ 삶의 태도로서의 두 가지 허무주의(Nihilism)
․ 약자의 수동적 허무주의
→ 피안의 세계 혹은 가치의 붕괴와 함께 체념과 몰락으로 주저앉아버 리는 태도. 정신력의 하강과 퇴행으로서의 허무주의
․ 강자의 능동적 허무주의
→ 최고 가치의 몰락을 극복해야 할 것으로 받아들이는 태도. 상승된 정신력의 징후로서의 허무주의
※ 허무주의는 극복과 창조의 디오니소스적 삶을 위한 힘의 징후다.
★ 힘에의 의지(Wille zur Macht, Will to power)
- “힘에의 의지는 살아 있는 모든 것의 내적 역동성, 주인이 되고자 하 며 보다 더 크고 강력하고자 하는 의지다.”
→ 우리의 삶의 무상함과 고통을 긍정하면서 오히려 그것들을 자신을 강화할 수 기회로 전환할 수 있는 강한 의지력을 갖춘 사람만이 허무 주의적 상황을 극복할 수 있다. 힘에의 의지란 자기 강화와 자기 극복 에의 의지이며, 자신의 힘으로 자신을 구원하고자 하는 의지다.
★ 이행적 존재, 극복하는 인간으로서의 위버멘쉬
- 인간은 이행적 존재
→ 어느 단계에 머무른다는 것은 이미 하강을 의미. 삶은 “생존과 자기보존을 위한 투 쟁‘을 넘어선 자기고양의 운동이다.
- 진정한 자기극복의 길
→ 자기극복이란 독립적이고 자율적인 존재가 되는 것을 의미. 그것은 자신을 의존적 이고 나약한 존재로 만드는 모든 종류의 신앙이나 스승을 버리고 홀로 서는 것.
* 최후의 인간(der letzte Mensch) : 위버멘쉬의 대립 개념으로 허무주의적 인간의 전형
“인간은 짐승과 초인 사이에 놓인 밧줄이다. 심연 위에 걸쳐진 밧줄이 다. 저쪽으로 건너가는 것도 위험하고 줄 가운데 있는 것도 위험하며 뒤돌아보는 것도 벌벌 떨고 있는 것도 멈춰 서는 것도 위험하다. 인간 의 위대함은 그가 다리일 뿐 목적이 아니라는 데 있다. 인간이 사랑스 러울 수 있는 것은 그가 건너가는 존재이며 몰락하는 존재라는 데 있 다. 나는 사랑한다. 몰락하는 자로서 살 뿐 그 밖의 삶은 모르는 자를.
왜냐하면 그는 건너가는 자이기 때문이다.”
―『차라투스투라는 이렇게 말했다』, 1부 「차라투스투라의 머리말」 4절.
“그대들에게 초인(Ü bermensch)을 가르치려 하노라. 인간은 극복되어야 할 그 무 엇이다. 그대들은 자신을 극복하기 위해 무엇을 했는가?
지금까지 모든 존재는 자신을 넘어서 그 무엇인가를 창조해 왔다. 그런데도 그대 들은 이 거대한 밀물의 한가운데서 썰물이 되기를, 자신을 극복하기보다는 동물로 되돌아가기를 원하는가?
(…) 보라, 나는 그대들에게 초인을 가르친다!
초인은 대지(大地)의 뜻이다. 그대들의 의지로 하여금 말하게 하라. 초인이 이 대 지의 뜻이 되어야 한다고! 형제들이여, 간곡히 바라노니 대지에 충실하라. 그리고 하늘나라에 대한 희망을 말하는 자들을 믿지 마라! 그들은 스스로 알든 모르든 독 을 타서 퍼뜨리는 자들이다.”
―『차라투스투라는 이렇게 말했다』,1부 「차라투스투라의 머리말」 3절
★ 위버멘쉬에 이르는 정신의 과정
1. 낙타의 정신: 기존의 가치(자명성)에 복 종하는 정신의 상태. 부정할 힘의 부재 2. 사자의 정신: 기존의 가치(자명성)을 부 정할 수 있는 자유와 힘을 획득한 상태 3. 어린아이의 정신: 창조성을 갖춘 정신.
새로운 가치(자명성)를 창출할 수 있는 능력을 가짐
※ 놀이하는 아이의 정신을 통해 니힐리즘
의 터널을 뚫고 나올 수 있는 계기 마련
“짐 깨나 지는 정신은 이처럼 더없이 무거운 짐 모두를 마다하지 않고 짊어진다. 그러고는 마 치 짐을 가득 지고 사막을 향해 서둘러 달리는 낙타처럼 그 자신의 사막으로 서둘러 달려간다.
그러나 외롭기 찍이 없는 저 사막에서 두 번째 변화가 일어난다. 여기에서 낙타는 사자로 변 하는 것이다. 사자가 된 낙타는 이제 자유를 쟁취하여 그 자신이 사막의 주인이 되고자 한다.
(……) 정신이 더 이상 주인 또는 신이라고 부르기를 마다하는 그 거대한 용의 정체는 무엇인 가? “너는 마땅히 해야 한다.” 그것이 그 거대한 용의 이름이다. 그러나 사자의 정신은 이에 맞 서 “나는 하고자 한다.”고 말한다. (……) 새로운 가치의 창조. 사자라도 아직은 그것을 해내지 못한다. 그러나 새로운 창조를 위한 자유의 쟁취, 적어도 그것을 사자의 힘은 해낸다. (……) 그러나 말해보라, 형제들이여. 사자조차 할 수 없는 일을 어떻게 어린아이는 해낼 수 있는가?
왜 강탈을 일삼는 사자는 이제 어린아이가 되어야 하는가? 어린아이는 순진무구요 망각이며 새로운 시작, 놀이, 스스로의 힘에 의해 돌아가는 바퀴이며 최초의 운동이자 거룩한 긍정이 필요하다. 정신은 이제 자기 자신의 의지를 원하며, 세계를 상실한 자는 자신의 세계를 획득 하게 된다.”
―『차라투스투라는 이렇게 말했다』, 1부, 「세단계의 변화에 대하여」
★ 영원회귀란?
(Ewige Wiederkehr, Eternal Recurrence)
→ 니체 철학에서 가장 핵심적인 사유. 허무주의 의 가장 극단적 형태로서, 인간을 궁극적 결단의 상황에 직면케 하는 최대의 무게를 갖는 사상.
★ 운명애(amor fati)와 인간의 위대함
→ 아무리 힘든 운명이라도 단순히 견디는 것을 넘어서 사랑하는 일. 인생에 있어서 변경을 요구 하지 않을 만큼 충실히 사는 것. 맹목적으로 순환 하는 것 같은 삶의 과정을 자기고양의 필연적 계 기로 승화시킬 수 있는 삶의 태도.
‘최대의 중량’ ― 어느 날 낮에 혹은 어느 날 밤에 악령이 너의 가장 깊은 고독 속 으로 살며시 찾아들어 이렇게 말한다면 그대는 어떻게 하겠는가? “네가 지금 살고 있고, 살아왔던 이 삶을 너는 다시 한 번 살아야만 하고, 또 무수히 반복해서 살아 야만 할 것이다. 거기에 새로운 것이란 없으며, 모든 고통, 모든 쾌락, 모든 사상 과 탄식, 네 삶에서 이루 말할 수 없이 크고 작은 모든 것들이 네게 다시 찾아올 것이다. 모든 것이 같은 차례와 순서로 티끌 중의 티끌인 너도 모래시계와 더불어 그렇게 될 것이다.” 그대는 땅에 몸을 내던지며, 그렇게 말하는 악령에게 이를 갈 며 저주를 퍼붓지 않겠는가? 아니면 그대는 악령에게 이렇게 대답하겠는가? “너 는 신이로다. 나는 이보다 더 신성한 이야기를 들어 보지 못했노라!” 그러한 생각 이 그대를 지배하게 되면, 그것은 지금의 그대를 변화시킬 것이다. “너는 이 삶을 다시 한 번, 그리고 무수히 반복해서 다시 살기를 원하는가?”라는 질문은 모든 경 우에 최대의 중량으로 그대의 행위 위에 얹힐 것이다!
―『즐거운 학문』, 341.
“인간은 가장 용감한 동물이다. 그리하여 인간은 모든 짐승을 극복했다. 승리의 음악을 울리면서 인간은 모든 고통을 극복했다. 인간의 고통은 더없이 깊은 고통 이었음에도. 용기는 심연 앞에서의 현기증도 살해한다. 인간이 서 있는 곳 그 어 디 심연 아닌 곳이 있던가! 본다는 것 자체가 심연을 들여다보는 것이 아닌가?
용기는 최상의 살해자다. 용기는 동정도 살해한다. 동정이야말로 가장 깊은 심연 임에도 불구하고. 삶을 깊이 통찰하는 만큼 인간은 고통도 깊이 통찰한다. 그러나 용기는, 공격하는 용기는 최상의 살해자다. 이 용기는 죽음조차도 살해한다. 왜냐 하면 용기는 “그것이 삶이었던가? 좋다! 그러면 다시 한번!”이라고 말하기 때문이 다. 이러한 말에는 승리의 음악이 힘차게 울려 퍼진다. 귀 있는 자는 들을지어다.”
―『차라투스투라는 이렇게 말했다』, 3부, 「환영(幻影)과 수수께끼에 대하여」 중에서
★ 예술과 삶의 유기적 연관성 - “우리의 삶은 예술작품이다.”
→ 자신의 삶을 스스로 조각하고, 스스로 삶을 영위해가는, 자기 자신의 삶의 주인이 될 때 자기 자신에 대한 진정한 사랑이 성립. ‘삶을 사랑하라’
는 말은 ‘삶을 아름답게 재창조하라“라는 말과 같은 의미 - “예술은 삶에 대한 디오니소스적 긍정을 가능하게 한다.”
→ 니체에게서 아름다움이란 강함을 의미. 고통과 슬픔으로 가득찬 세계
를 아름답게 보는 것, 삶의 가혹함과 파괴성을 인정하면서도 삶을 흔쾌히
긍정하는 것, 그것은 다름아닌 비극적인 아름다움의 세계이며, 디오니소
스적인 세계이다.
★ 세계에 대한 디오니소스적 긍정