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시낭송 목차
1. 가을의 기도 -김현승 2. 낙화(落花) -이형기
3. 눈길 - 고은
4. 내 마음의 빈터 - 이정하 5. 매일 우리가 하는 말은 - 이해인 6. 우리가 물이 되어 -강은교 7. 우화의 강 - 마종기
8. 인연설 -한용운
9. 참 좋은 당신 - 김용택 10. 희망을 만드는 사람이 되라 - 정호승
2 가을의 기도 -김현승
가을에는
기도하게 하소서 …
낙엽들이 지는 때를 기다려 내게 주신 겸허한 모국어로 나를 채우소서.
가을에는
사랑하게 하소서 …
오직 한 사람을 택하게 하소서
가장 아름다운 열매를 위하여 이 비옥한 시간을 가꾸게 하소서.
가을에는
호올로 있게 하소서 …
나의 영혼, 굽이치는 바다와 백합의 골짜기를 지나,
마른 나뭇가지 위에 다다른 까마귀같이.
3 낙화(落花) -이형기
가야 할 때가 언제인가를 분명히 알고 가는 이의 뒷 모습은 얼마나 아름다운가
봄 한철 격정을 인내한
나의 사랑은 지고 있다
분분한 낙화
결별이 이룩하는 축복에 쌓여 지금은 가야 할 때
무성한 녹음과 그리고 머지 않아 열매 맺는 가을을 향하여
나의 청춘은 꽃답게 죽는다
헤어지자
섬세한 손길을 흔들며
하롱하롱 꽃잎이 지는 어느 날
나의 사랑 나의 결별 샘터에 고인 듯 성숙하는 내 영혼의 슬픈 눈
4
눈길 - 고은
이제 바라보노라.
지난 것이 다 덮여 있는 눈길을.
온 겨울을 떠돌고 와
여기 있는 낯선 지역을 바라보노라.
나의 마음속에 처음으로 눈 내리는 풍경.
세상은 지금 묵념의 가장자리 지나 온 어느 나라에도 없었던 설레이는 평화로소 덮이노라.
바라보노라, 온갖 것의 보이지 않는 움직임을.
눈 내리는 하늘은 무엇인가.
내리는 눈 사이로
귀 기울어 들리나니 대지(大地)의 고백(告白).
나는 처음으로 귀를 가졌노라.
나의 마음은 밖에서는 눈길 안에서는 어둠이노라.
온 겨울의 누리 떠돌다가
이제 와 위대한 적막(寂寞)을 지킴으로써 쌓이는 눈더미 앞에
나의 마음은 어둠이노라.
5 내 마음의 빈터 - 이정하
가득찬 것 보다는
어딘가 좀 엉성한 구석이 있으면 왠지 마음이 편해지는 걸 느낍니다
심지어는 아주 완벽하게 잘 생긴 사람보다는 외려 못생긴 사람에게
자꾸만 마음이 가는 것을 느낍니다
그런 사람을 만나면 난 나의 많은 것을
솔직하게 털어놓고 싶어지지요
조금 덜 채우더라도 우리 가슴 어딘가에
그런 빈터를 가졌으면 좋겠습니다
밑지는 한이 있더라도
우리가 조금 어리숙할 수는 없을까요
그러면 그런 빈터가 우리에게 편안한 휴식과
생활의 여유로운 공간이 될 터인데
언제 까지나
나의 빈터가 되어주는 그대 그대가 정말 고맙습니다.
6 매일 우리가 하는 말은 - 이해인
매일 우리가 하는 말은 역겨운 냄새가 아닌 향기로운 말로
향기로운 여운을 남기게 하소서 우리의 모든 말들이
이웃의 가슴에 꽂히는 기쁨의 꽃이 되고 평화의 노래가 되어
세상이 조금씩 더 밝아지게 하소서
누구에게도 도움이 될 리 없는 험담과 헛된 소문을
실어나르지 않는 깨끗한 마음으로 깨끗한 말을 하게 하소서
늘 상대방의 입장을 헤아리는 사랑의 마음으로
사랑의 말을 하게 하시고 남의 나쁜 점 보다는 좋은 점을 먼저 보는 긍정적인 마음으로
긍정적인 말을 하게 하소서
매일 정성껏 물을 주어 한 포기의 난(蘭)을 가꾸듯 침묵과 기도의 샘에서 길어 올린
지혜의 맑은 물로
우리의 말씨를 가다듬게 하소서 겸손의 그윽한 향기
그 안에 스며들게 하소서
7 우리가 물이 되어 -강은교
우리가 물이 되어 만난다면
가문 어느 집에선들 좋아하지 않으랴.
우리가 키 큰 나무와 함께 서서
우르르 우르르 비 오는 소리로 흐른다면.
흐르고 흘러서 저물 녘엔 저 혼자 깊어지는 강물에 누워 죽은 나무 뿌리를 적시기도 한다면.
아아, 아직 처녀인
부끄러운 바다에 닿는다면.
그러나 지금 우리는 불로 만나려 한다.
벌써 숯이 된 뼈 하나가
세상에 불타는 것들을 쓰다듬고 있나니.
만 리 밖에서 기다리는 그대여 저 불 지난 뒤에
흐르는 물로 만나자.
푸시시 푸시시 불 꺼지는 소리로 말하면서 올 때는 인적 그친
넓고 깨끗한 하늘로 오라.
8 우화의 강 - 마종기
사람이 사람을 만나 서로 좋아하면 두 사람 사이에 서로 물길이 튼다 한 쪽이 슬퍼지면 친구도 가슴이 메이고 기뻐서 출렁이면 그 물살은 밝게 빛나서 친구의 웃음소리가 강물의 끝에서도 들린다.
처음 열린 물길은 짧고 어색해서 서로 물을 보내고 자주 섞여야겠지만
한 세상 유장한 정성의 물길이 흔할 수야 없겠지
넘치지도 마르지도 않는 수려한 강물이 흔할 수야 없겠지
긴 말 전하지 않아도 미리 물살로 알아듣고 몇 해쯤 만나지 못해도 밤잠이 어렵지 않은 강 아무려면 큰 강이 아무 의미도 없이 흐르고 있으랴 세상에서 사람을 만나 오래 좋아하는 것이
죽고 사는 일처럼 가벼울 수 있으랴
큰 강의 시작과 끝은 어차피 알 수 없는 일이지만 물길을 항상 맑게 고집하는 사람과 친하고 싶다.
내 혼이 잠잘 때 그대가 나를 지켜보아 주고 그대를 생각할 때면 언제나 싱싱한 강물이 보이는 시원하고 고운 사람을 친하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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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연설 -한용운
함께 있을 수 없음을 슬퍼하지 말고 잠시라도 곁에 있을 수 있음을 기뻐하고
더 좋아해 주지 않음을 노여워 말고 이 만큼 좋아해 주는 것에 만족하고
나만 애태운다고 원망하지 말고
애처롭기까지 만한 사랑을 할 수 있음에 감사하고
주기만 하는 사랑에 지치지 말고 더 많이 줄 수 없었음을 아파하고
남과 함께 즐거워한다고 질투하지 말고 그의 기쁨이라 여겨 함께 기뻐하고
이루어질 수 없는 사랑이라 일찍 포기하지 말고 깨끗한 사랑으로 오래 간직할 수 있는
나는 그렇게 당신을 사랑합니다
10 참 좋은 당신 - 김용택
어느 봄날 당신의 사랑으로 응달지던 내 뒤란에 햇님이 들이치는 기쁨을 나는 보았습니다
어둠 속에서 사랑의 불가로 나를 가만히 불러내신 당신은 어둠을 건너온 자만이 만들 수 있는 밝고 환한 빛으로 내 앞에 서서 들꽃처럼 깨끗하게 웃었지요 아,
생각만해도 참
좋은 당신
11 희망을 만드는 사람이 되라 - 정호승
이 세상 사람들 모두 잠들고
어둠 속에 갇혀서 꿈조차 잠이 들 때 홀로 일어난 새벽을 두려워 말고 별을 보고 걸어가는 사람이 되라 희망을 만드는 사람이 되라
겨울 밤은 깊어서 눈만 내리고 돌아갈 길 없는 오늘 눈 오는 밤도 하루의 일을 끝낸 작업장 부근 촛불도 꺼져가는 어두운 방에서 슬픔을 사랑하는 사람이 되라 희망을 만드는 사람이 되라
절망도 없는 이 절망의 세상 슬픔도 없는 이 슬픔의 세상 사랑하며 살아가면 봄눈이 온다.
눈 맞으며 기다리던 기다림 만나 눈 맞으며 그리웁던 기다림 만나 얼씨구나 부둥켜안고 웃어 보아라 절씨구나 뺨 부비며 울어 보아라
별을 보고 걸어가는 사람이 되어 희망을 만드는 사람이 되어
봄 눈 내리는 보리밭 길 걷는 자들은 누구든지 달려와서 가슴 가득히 꿈을 받아라
꿈을 받아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