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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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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1)김진환*

목 차 1. 들어가는 말

2. 경찰은 경찰인가

3. <미국 독립선언>의 ‘독립성’

4. 나아가며

<국문초록>

현상과 본질, 기원과 결말, 선과 악, 주체와 객체 등의 이분법은 서양 사유의 기본 틀을 이룬다. 이분법적 사고는 필연적으로 배제적 구조를 갖는다. 한 번 추방된 자는 다시 기존 질서에 편입되지 못한다. 이러한 사고방식은 여러 현상으로 드러난 다. 국가 차원에서는 제국주의로, 문화 차원에서는 인종주의로, 성별과 관련해서는 성차별로 나타난다.

그러나 이항대립구조는 그 자체로 불안하고 불완전하다. 본질이 있을 수 있는 것은 오직 현상을 통해서다. 기원이 있을 수 있는 것은 결과가 기원을 사후적으로 설명해주기 때문이다. 선의 존재는 악의 존재를 상정함으로써만 가능하다. 만약 본질이 있다면 본질 자체가 자기 분열적이라는 점일 뿐이다. 선과 악은 선 내부의 악, 악 내부의 선과 겹쳐있다. A도 B도 아닌 지점, A이면서 B인 지점이 바로 ‘괴 물성’의 지점이다.

조지 플로이드의 죽음 이후 나타나는 수많은 사건은 단지 자유와 평등의 보편 성을 주장하는 것일 뿐 아니라, 법 또는 국가체계의 기원성이 그 자체로 불완전한 것임을, 사후적으로 구성된 신화임을 표지하는 현상들이다. 역사란 언제나 새로

* 고려대학교 독어독문학과 박사과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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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생성 중임을 말하는 ‘유일무이한 중간적 상황’, 즉 공백에 개입하는 것이 지젝 의 ‘까다로운 주체’다.

주제어 : 지젝, 조지 플로이드, 기원, 공백, 상실의 상실, 법, 폭력, 인종주의, 제국주의, 까다 로운 주체

1. 들어가는 말

상징계의 바깥은 없다. 기표의 바깥은 없다. 텍스트 바깥은 없다. 환상의 바깥은 없다. 인간은 그 안으로 내던져졌을 뿐이다. 그렇다면 그 내부에는 무엇이 있는가. 또는 무엇이 있을 수 있는가. 바깥이 없는 안은 어떻게 존속 되어왔으며 어떻게 존속시켜가야 마땅한가.

2020년 5월 25일, 조지 플로이드는 미국 미네소타주 미니애폴리스에서 경찰에게 체포되는 과정에서 질식사로 사망한다. 당시 플로이드는 수갑이 채워지고 땅에 엎드려 제압된 채로 저항할 수 없는 상태였다. 그를 사망에 이르게 한 데릭 쇼빈은 8분 46초간 플로이드의 목을 압박했고, 그가 의식을 잃은 뒤에도 2분 53초간이나 더 같은 자세로 있었다. 행인들이 찍은 영상에 는 “Please, please, please, I can’t breathe. Please, man, please, somebody help me”라는 외침이 담겨있다.

이후 경찰이 발표한 성명은 거짓으로 드러났다. 성명에 따르면 체포과정 에서 플로이드가 무력 저항을 했고, 이를 제압하며 수갑을 채우게 되었다고 한다.1)그러나 근처 CCTV를 확인한 결과 경찰과 처음 마주한 순간부터 마 지막 순간까지 어떤 물리적인 저항도 없었다.2)처음 출동한 경찰은 플로이

1) CBS News, “Video shows Minneapolis cop with knee on neck of motionless, moaning man who later died”, 27.05.2020.

2) Newshub, “George Floyd death: Newly emerged surveillance footage shows no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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드를 차에서 내리게 한 직후 바로 수갑을 채웠다. 이처럼 플로이드 사건은 법과 질서의 수호자로 상징되는 경찰의 존재가 갖는 폭력성의 얼굴이 다시 금 수면 위로 드러난 사건일 뿐 아니라, 경찰이 공권력으로서 갖는 지위의 근거, 토대에 대해 물음을 제기하게 만든다.3)

법은 폭력일 수 있다. 법이 폭력일 수 있을 때, 그 폭력은 어디에서 연유 하는 것인가. 어떤 지면 위에 올라 거짓을 진실처럼 제시하는가. 거짓과 진 실은 분리 가능한 범주들인가. 법과 폭력 간의 식별 불가능한 경계, 자연적 인 것으로 상정되는 ‘주인기표’의 정당성의 문제가 본고의 주제다.

2. 경찰은 경찰인가

19세기 초반 영국에서 최초로 설립된 근대적 경찰은 현대 국가에서 국가의 법질서 및 치안을 유지하기 위한 국가의 권력작용으로 이해된다. 한국민족문 화대백과사전은 경찰을 “국민의 생명과 재산 보호 및 공공의 안녕과 질서유 지를 위하여 국민을 계몽, 지도 또는 명령, 강제하는 국가의 특수행정작용”으 로 정의한다. 공권력의 행사를 통해 법질서를 유지하고 공공의 안녕을 도모하 는 것이 경찰의 존재 목적이다.

이처럼 경찰은 순수한 질서의 수호자 이미지로 그려져 왔다. 사회적으로

evidence of resistance”, 29.05.2020.

3) 여러 매체를 통한 상징계적 표현에서 중요한 것은 그 내용의 참, 거짓 여부가 아니다.

뉴올리언스의 카트리나 사태에서와 마찬가지로 ‘약탈하고 강간한다고 가정된 주체’로서 의 흑인과 관련한 보도에서 문제의 핵심은 ‘진실을 가장한 거짓’이다. ‘내가 말한 내용이 아무리 진실이라도, 그것을 말하게 만든 동기는 거짓’이다: Žižek, Slavoj, “The Subject Supposed to Loot and Rape”, In These Times, 20.10.2005. 참, 거짓 여부와 무관하게 특정한 실질적 결과- 약탈, 폭력, 공포심의 야기 등- 를 만들어내는 진실을 가장한 거짓 은 한국인에 대한 일본의 행태에서도, 더 나아가 모든 제국주의적 행태에서도 관찰된다.

‘계몽’ 또는 ‘문명화’의 얼굴을 한 제국주의는 자신들보다 ‘못한’ 누군가를 상정하는 인종주 의라는 환상을 유지해야만 가능하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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받아들여질 수 없는 행위가 발생했을 때, ‘법’에 위반하는 행위가 발생했을 때 일차적으로 의지하게 되는 것이 바로 경찰이다. 그러나 경찰은 또한 어떤 이유에서든 발발하게 되는 폭력적 행태에 대해 지속적인 비판을 받는 존재이 기도 하다. 국제앰네스티(Amnesty International)는 올해 6월 18일 <집중 분석: 각국 시위에서 남용되고 있는 최루가스>라는 제목의 뉴스를 냈다. “여 러 폭력 속에서 시민을 보호할 의무를 가지고” 있는 경찰은 때로 비살상 무기를 사용해야만 하기도 하지만, 최루가스는 “엄격한 기준에 의거해 사용 해야 하는 비살상 무기”임에도 “많은 시위 현장에서 오용, 남용되고 있다”는 것이다.4)에일린 톰슨 Vanessa Eileen Thompson은 ‘민주주의를 보장한다고 하는 경찰이 억압적 존재로 변할 수 있을 뿐만 아니라, 일상생활 차원에서 민주주의 원칙을 위협한다’고 말한다.5) 더불어 인종 프로파일링은 “차별금지 에 근본적으로 반하는 것이자 행동의 자유를 전면적으로 제한하는 것”6)이다.

에일린 톰슨은 합리성이 얼마나 쉽게 비합리성으로 전복될 수 있는지 제시 한 아도르노의 비판을 경찰과 관련해 구체적으로 개진해 보인다. 경찰의 치안 행위(Polizieren/policing)와 폭력적 강제성은 그 경계가 불분명하다. 이 같은 폭력성이 합리적 권력 행사로 비춰질 수 있는 것은 그것의 “사회적 비가시 성”7)에서 연유한다. 법폭력의 직접적 피해자는 그 폭력성을 느끼고 볼 수 있다. 그러나 그것은 사회적인 차원에서 본다면 비가시적인 것으로 남는다.8)

4) 국제앰네스티, 「집중 분석: 각국 시위에서 남용되고 있는 최루가스」, 2020.06.18.

5) El-Tayeb, Fatima/Thompson, Vanessa Eileen, Alltagsrassismus, staatliche Gewalt und koloniale Tradition. Ein Gespräch über Racial Profiling und intersektionale Widerstände in Europa. In: Mohamed Wa Baile et la.(eds.), Racial Profiling:

Struktureller Rassismus und antirassistischer Widerstand, Postcolonial Studies, 2019, p.317.

6) Ibid.

7) Ibid.

8) 이는 경찰의 폭력성이 이미 지젝이 말하는 ‘시스템적 폭력’의 한 양상이 되었음을 뜻한다.

시스템 폭력이란 “시스템에 내재되어 있는” 폭력이다. “그것은 직접적인 신체적 폭력을 뜻할 뿐 아니라, 지배와 착취관계를 유지하는 교묘한 형식의 억압을 뜻한다.”: Žižek,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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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렇다면 이 같은 폭력성은 (온전한) 법의 집행과정에서 나타날 수밖에 없는 (필연적인) 결과로 받아들여야 할까? 질서의 수호를 위해 발생할 수밖 에 없는 ‘부수 현상’으로 받아들일 수 있을 뿐일까? 혹은 질문을 다음처럼 바꿔볼 수 있다. 법의 탄생은 과연 비폭력적이었는가? 이에 대해 톰슨은 경 찰의 탄생 자체를 폭력성과 연결 짓는다. 그가 보기에 19세기 미국의 근대 경찰은 “노예제의 정신에서” 탄생한 것이며, 그 과정은 “노예가 된 이들을 붙잡는 행위”9)와 결부되어있다. 그렇다면 우리는 위에서 제기한 질문을 한 층 더 발전시킬 수 있다. 만일 법과 질서를 대변하는 경찰이 그 출현에서부 터 폭력이었다면, 과연 ‘법’과 ‘질서’는 우리가 생각하는 그런 법과 질서라고 할 수 있는 것인가?10)

이 지점에서 우리는 지젝의 “상실의 상실”과 마주하게 된다. 기원적인 것 은 없다. 기원적인 것, 그것은 환상으로 채워질 뿐이다. 우리가 온전한 것으 로 받아들이(려)는 기원의 자리에는 본래 아무것도 없다.

달리 말해, 우리가 속은 것은 우리는 반영에 의해 잃어버린 것을 한 번도 소유한 적이 없었다는 점이다. (…) 상실의 상실은 상실의 소멸이 아니라, 혹은 상실된 대상을 충만한 현존 속에서 재전유하는 게 아니라, 우리는 우리가 상실한 것을

Slavoj, Gewalt: Sechs abseitige Reflexionen, Hamburg: LAIKA Verlag, 2011, 17.

9) Thompson, Vanessa Eileen, “Rassismus, Polizeigewalt und die Zukunft der Demokratie”, Sternstunde Philosophie, SRF Kultur, 14.06.2020

10) 대립적인 것의 동시성은 낭만주의적 의미론이자 존재론으로 이해할 수 있다. 특히 독 일 낭만주의를 근거로 들 수 있다. 노발리스(Novalis)는 낮과 밤의 경계를 없애고, 삶(사 랑)과 죽음의 구분을 허문다. 슐레겔(Friedrich Schlegel)은 세계는 질서가 아닌 혼돈으 로부터 탄생했으며, 이해 가능성보다 불가해성으로 설명할 수밖에 없음을 주장한다. 이 들의 사유는 의미론적으로 계몽적․이성적 사유를 벗어난다. 합리주의적 사유는 질서, 기원, 온전함 등의 어휘로 세상을 설명하기 때문이다. 동시에 서양의 철학사 또는 학문 사에서 ‘낭만주의’는 설명 불가능한 비합리적 타자로 치부되어왔다. 합리적 사고방식이 전통적인 것으로 여겨진 서양 정신사에서 ‘낭만주의’는 설명되지 않는 것(죽음, 밤, 그리 움, 혼돈, 봉해지지 않는 보편성 등)을 끊임없이 주장하는 타자, 타자를 주장하는 타자, 서양사의 타자로서 존재하는 틈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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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 번도 가져본 적이 없었다는 경험, 상실은 결코 상실된 것보다 앞서지 않는다는 경험이다. ‘태초에’ 언제나 이미 상실이 있었다. 그리고 이 상실이 대상에 의해 채워질 공간을 개방한다.11)

“대상에 의해 채워질 공간을 개방”하는 것은 질서를 흔들리게 만든다. 따 라서 태초에는 상실 자체가 없었다는 사실의 은폐가 바로 법의 존속을 위 한 조건이 된다.

법의 존속을 위한 위법적 폭력은 무슨 수를 써서라도 은폐되어야 한다. 왜냐 하면 이런 은폐야말로 법적 효력의 긍정적 조건이기 때문이다. 법은 그것의 주 체들이 속는 한에서만, 그들이 법의 권위를 ‘정당하고 영원한’ 것으로 경험하고

‘불법적 강탈에 관한 진실’을 간과하는 한에서만 작동한다.12)

경찰의 법이 정당하다고 생각하게 만드는 것은 이데올로기의 기만 전략 이다. 우리가 그것에 “속는 한에서만” 경찰의 폭력은 정당한 법의 행사로 유지될 수 있다. 법은 “사람들로 하여금 법 속에서 진리를 발견할 수 있다 고 믿도록 하는 필연적이고 구조적인 환영”13)을 필요로 한다.

우리가 마주하길 두려워하는 것은 궁극적으로 경찰의 폭력이 아니다. 두 려움의 대상은 본래 ‘경찰’이라는 것이 없다는 사실 자체다. 그러나 그러한 사실은 새로이 채워질 공간의 개방이라는 점에서 적극적으로 마주해야 할 대상이기도 하다. 은폐의 탈은폐가 요구된다. 경찰은 법 위에 있지만, 동시 에 법 아래에 있다. 법이자 폭력인 경찰의 모습은 인간이자 신인 예수와 구 조적으로 닮아있다. 그 모습의 본질은 괴물성이다. 경찰 조직이 갖는 이 괴 물성이 플로이드 사건에서 다시금 드러나는 것이다. “‘상실의 상실’은 이전

11) 지젝, 슬라보예, 뺷그들은 자기가 하는 일을 알지 못하나이다: 정치적 요인으로서의 향 뺸, 박정수 옮김, 고양: 인간사랑, 2004, 373~374쪽. 이하 직접 인용문에서의 작은따옴 표, 기타 강조 표시는 모두 원문에 의함.

12) 같은 책, 421쪽.

13) 지젝, 슬라보예, 뺷이데올로기의 숭고한 대상뺸, 이수련 옮김, 서울: 새물결, 2013a, 77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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의 안정성이란 그 자체로 거짓이었음을, 그것은 내적 투쟁의 가장이었음을 깨닫게 되는 경험을 지칭한다.”14)데리다 Jacques Derrida 또한 다음과 같 이 적는다.

사람들이 종종 믿고 싶은 유혹을 받는 것과는 정반대로 주인은 아무것도 아니 다. 주인은 어떤 것에 대해서도 배타적인 소유권을 갖지 않는다. 주인은 스스로 자신의 언어라고 부르는 것을 배타적으로 그리고 자연적으로소유하고 있는 것 이 아니기 때문이다.15)

본래부터 주인이었던 존재는 없다. 본래부터 노예였던 존재는 없다. 주인과 노예의 변증법은 주인 자체가 없다는 사실로 향해야 한다. 주인과 노예의 변증법은 주인과 노예라는 이분법적 대립구조가 사후적으로 만들어진 허구 임을 말하는 곳으로 나아가야 한다. 상실의 상실이 존재하는 공간은 완전성을 담지하는 “보편성이 구성되기 위해 ‘억압’되어야”16)하는 공간임을 상기해야 한다. 억압된 그 공간에서 우리는 정제된 외향의 이면, 즉 ‘검열된 양식’ 뒤에 붙어있는 ‘살인적인 꿈’17)의 모습을 보아야 한다. 그 공간은 모든 체계의 구조 적 이면성, 필연적일 수밖에 없는 사후적 구성성을 표지하는 공간이다.

3. <미국 독립선언>의 ‘독립성’

이처럼 태초에 온전한 것은 없다. 기존 질서는 자신의 존속을 위해 폭력 을 행사할 뿐 아니라, 태초의 탄생에 있어서 이미 비(非)질서와 구분되지

14) 지젝, 위의 책, 2004, 375쪽.

15) Derrida, Jacques, Of Grammatology, transl. by Gayatri Chakravorty Spivak, corrected ed., Baltimore: JHUP, 1998a, p.23.

16) 지젝, 위의 책, 2004, 363쪽.

17) Žižek, Slavoj, “The Subject Supposed to Loot and Rape”, In These Times, 20.10.

20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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않음을 은폐한다. 은폐의 공간은 온갖 환상들로 채워진다. ‘플로이드’를 통 해 드러난 경찰의 모순, 폭력성, 기만의 구조는 비단 경찰이라는 기관에서 만 관찰되는 것이 아니다. 그것은 미국이라는 한 국가의 설립과 존속 과정 에 동일하게 적용된다.

미국은 1776년 7월 4일 영국의 식민지배로부터 독립을 선언한다. 미국의 독립선언을 기록한 <미국 독립선언>은 자연법사상을 바탕으로 모든 인간 은 평등하게 창조되었으며, 창조주로부터 불가양의 권리를 부여받았고, 정 당한 권력은 피치자의 동의로부터 나옴을 말하고 있다.

우리들은 다음과 같은 것을 자명한 진리라고 생각한다. 즉, 모든 사람은 평등 하게 태어났으며, 조물주는 몇 개의 양도할 수 없는 권리를 부여했으며, 그 권리 중에는 생명과 자유와 행복의 추구가 있다. 이 권리를 확보하기 위하여 인류는 정부를 조직했으며, 이 정부의 정당한 권력은 인민의 동의로부터 유래하고 있는 것이다.(미국 독립선언 제2장)

역사적으로 봉건제나 군주제가 존재하지 않았던 미국은 그리스 이후 주 권재민 사상을 헌법으로 보장한 첫 국가가 된다.18)

그러나 만인평등 사상을 천명하는 듯 보이는 <미국 독립선언>은 이미 만인평등을 실질적으로 거부하고 있었다. 독립선언서가 자유와 평등을 이 야기할 때, 노예제도는 그대로 유지되었기 때문이다. ‘만인’은 만인이 아니 다. 노예제도 폐지는 1863년 링컨 대통령의 해방 선언 이후 1865년이 돼서 야 헌법에 반영되었다. “인류의 역사에서 한 민족이 다른 한 민족과의 정치 적 결합을 해체하고 (…) 자연법과 자연의 신의 법이 부여한 독립, 평등의 지위를 차지하는 것이 필요하게 되었을 때 (…)”(미국 독립선언 제1장)라며 자신의 정당성의 근거에 대한 언급으로 시작하는 <미국 독립선언>은 그 탄생에서부터 자기 분열적이었다.

18) 윤용희․윤이화, 「미국의 건국정신과 헌법정신의 함의」, 뺷사회과학뺸 17, 2005, 16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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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러한 사실은 위의 표현에서 ‘한 민족’이라는 단어의 숨겨진 뜻을 묻게 만든다. 본래 한 민족이라 함은 누구나 평등하게, 적어도 공통된 법 앞에 평등하게 설 수 있어야 함을 뜻하는 것이 아닌가? 과연 ‘한’ 민족이라는 것 은 성립될 수 있는 표현인가? 미국의 독립이, 한 국가의 건립이, 법체계의 확립이 언제나 바깥으로 추방된 내부의 틈을 갖는다는 사실은 원주민 정책 에서 더욱 뚜렷해진다. 흑인 노예와 원주민은 모두 ‘미국’에 포함되지 못하 고 배제된 존재라는 점에서 미국의 폭력성을 드러낸다. 한 가지 차이점이 있다면, 원주민은 말 그대로 원주민, 즉 백인들의 미국이 성립되기 전부터 이미 그 대륙을 자신의 집으로 여겨오던 사람들이라는 점이다.19)

미국이 이해하는 미국인과 원주민의 관계는 20세기에 만들어진 수많은 서부 개척 영화들에서 쉽게 관찰된다. 이주민과 원주민의 관계는 역설적으 로 각 명칭을 정확히 반대로 반전시키면 된다. 이주민은 원주민이 되고 원 주민은 이주민이 된다. 백인 이주민은 자신을 신의 위치로 승격시키고 원주 민을 인간의 위치로 타락시킨다. 서양의 오랜 전통인 선악의 이분법이다.

실제로 미국 독립 초기, 각 주 정부들은 새로운 이주민들에게 토지를 안정 적으로 공급하기 위해 원주민의 독립적이고 자주적인 법집행에 강력한 제 재를 가했다.20)미국의 독립선언 이전 인디언 공동체는 정치적으로 독립적 인 존재로서 유럽 열강과 나름의 경쟁과 교역을 하는 존재였다면, 미국 독 립 이후 그들 공동체는 사회․지리적으로 배제되며 추방 정책과 동화 조치 에 따라 차츰 와해된다.21)

19) 지젝은 자신의 ‘인디언 친구’ 이야기를 종종 언급한다. 그 친구는 자신이 ‘원주민(native American)’으로 불리기보다 ‘인디언(Indian)’으로 불리길 원한다는 것이다. 원주민이라는 단어는 이주해온 백인들이 더 ‘문화적인 미국인(cultural American)’임을 함의하기 때문 이다. 적어도 ‘인디언’이라는 명칭은 백인들의 우둔함을 환기할 수는 있지 않느냐는 것이 다: Bewes, Timothy/Ravindranathan, Thangam, “Bewes, Ravindranathan: Žižek’s hypocrisy, The Brown Daily Herald, 19.10.2015. ‘인디언’ 대신 ‘원래 살던 미국인’이라는 뜻의 단어를 사용하는 것은 그 자체로 자신의 (부끄러운) 비밀을 숨기려는 은밀한 시도가 아닌가?

20) 안용흔, 「미 연방정부의 인디언원주민 정책」, 뺷민족연구뺸 49, 2012, 7쪽.

(10)

결과적으로 미국의 건립 과정은 자신의 폭력성을 드러내는 과정에 다름 아니다.22)그 과정은 순수하게 ‘독립적’이지 못하다. 타자가 없는 듯이 행동 하지만, 언제나 타자의 억압과 추방을 기반으로 전개되는 서사다. 영국에 대항해 자신의 독립을 쟁취하려는 ‘정당한’ 폭력의 행사, 그것은 이미 자신 의 존립을 미리 약속하는 억압적 폭력이기도 하다. 데리다의 말처럼 법 정 초적 폭력과 법 보존적 폭력의 경계는 희미하다.

순수한 법의 정초나 순수한 정립, 따라서 순수한 정초적 폭력이란 존재하지 않으며, 순수하게 보존적인 폭력도 역시 존재하지 않는다. 정립은 이미 되풀이 (불)가능성이며, 자기 보존적인 반복에 대한 요구다. 역으로 자신이 정초한다고 주장하는 것을 보존할 수 있기 위해서 정초는 재정초적인 것이어야 한다.23)

미합중국의 독립이 수행적으로 선언되는 순간, 그것은 새로운 정립이자 동시에 존속적 질서, 즉 폭력의 질서가 된다. 정초는 언제나 재정초이자 동 시에 자신의 존속을 약속하는 행위이기 때문이다. 독립선언문으로 시작된 미국의 역사는 폭력과 결부되지 않은 때가 없었던 것이다. 자신의 언어를 타자에게 강요한다는 점에서 “모든 문화는 원초적으로 식민주의적”24)이다.

미국 또한 예외가 아니다. 미국은 언제나 자신의 질서를 배제와 억압의 구 조로 존속시켜왔다.25)

21) 같은 글, 4쪽.

22) 외부의 ‘적’과 일으키는 갈등은 결국 자기 내부의 적 또는 내부의 결핍을 은폐하기 위할 뿐이다. 미국이 이슬람 근본주의자들을 비난할 때, 어떤 의미에서 진정한 ‘근본주의자’

는 자신들의 교리에 따라 정당화되는 각종 테러를 자행하는 기독교인들이 아닌가? 타자 의 것으로 돌려지는 모든 속성은 이미 자신의 중심부에 존재하는 것이다. 이러한 맥락 에서, ‘문명의 충돌’을 말할 때 진정한 충돌은 문명 간 일어나는 것이 아니라 문명 내에 서 일어남을 확인할 수 있지 않은가?: 지젝, 슬라보예, 뺷실재의 사막에 오신 것을 환영합 니다: 9.11 테러 이후의 세계뺸, 이현우․김희진 옮김, 서울: 자음과모음, 2011, 65~67쪽.

23) 데리다, 자크, 뺷법의 힘뺸, 진태원 옮김, 서울: 문학과지성사, 2004, 36쪽.

24) Derrida, Jacques Monoligualism of the Other or The Prosthesis of Origin, transl.

by Patrick Mensah, Stanford: SUP, 1998b, p.39.

(11)

따라서 국가는 자신의 온전함을 제시하기 위해 자신의 실체를 은폐해야 한다. 이 은폐의 지점은 “기존 사회의 질서를 설명하기 위해 미리 전제해야 하는 (소급적으로 재구성되어야 하는) 불가능한 실재의 위상과 똑같다.”26) 현존하는 사회를 설명하기 위해 만들어낸 서사가 바로 모든 문화권에 존재 하는 ‘건립 신화’다. 신화는 사후적으로 구성되어야만 하는 사회의 기원을

“미리 전제”한다. 그래야만 사회의, 국가의 정당성이 초월적인 것으로 인정 되기 때문이다. 우리를 기만하는 “‘비밀’은 형식이 숨기고 있는 내용이 아니 라 형식 자체의 ‘비밀’이다.”27)시간의 형식을 반전시키면 그 비밀의 모습을 볼 수 있게 된다. 기원은 결과와 같아진다. 기원이 결과물이고 결과물이 기 원이다. “수수께끼 같은 외관의 신비는 그 외관 너머가 아니라 신비의 외관 자체에서 찾아져야 한다.”28)바로 그 허구적 외관을 표지하는 지점이 문화 와 자연, 법과 범죄, 질서와 무질서, 이주민과 원주민이 교차하는 “이 기괴 한 제3의 영역”29)이다.

비밀은 그 내용이 아니라 형식 자체에 있다는 것은 한 집단, 한 사회, 한 국가가 드러내는 지배적 위계질서로서의 이데올로기는 외부를 갖지 않는 다는 점을 의미한다. 한 이데올로기에 대한 외부로부터의 저항은 언제나 또 다른 이데올로기가 되어버린다. 이데올로기의 바깥은 없다. 오히려 이데올 로기는 자신 안에서 자기 자신과의 균열을 드러낸다.

25) 이것이 트럼프가 대통령이 될 수 있었던 이유다. 그가 얼마나 아슬아슬하게 혹은 ‘운 좋게’ 당선되었는지에 대한 설명은 부차적이다. 결론적으로 그는 한 나라의 대통령이 되었고, 그가 한 나라의 대통령이라는 사실은 결과적으로 그를 미국의 상징으로, 미국의 대변인으로 만들기 때문이다. 트럼프라는 상징이 미국 내부에, 더 나아가서는 서양 문화 내면에 깊게 깔린 배제적 구조에 다시금 주의를 돌리게 해주었을 뿐이다.

26) 지젝, 앞의 책, 2004, 427쪽.

27) 지젝, 앞의 책, 2013a, 36쪽.

28) 지젝, 앞의 책, 2004, 290쪽.

29) 같은 책, 423쪽.

(12)

의미 장 외부에서 내부로의 연속적 이행이란 존재하지 않는다. 알튀세르가 말 한 것처럼 이데올로기는 외부를 갖지 않는다. 이 악순환의 숨겨진 틈은 ‘법은 법 이다’, ‘신은 신이다’ 같은 동어반복의 외양 속에서 가장 순연하게 드러난다. (…)

‘신은 신이다’는 진술은 신의 불길한 이면을 시사하지 않는가? (…) ‘법은 법이다’

도 법적 지배근거 자체의 불법적 성격을 드러내지 않는가?30)

법의 수호자로서의 경찰, 온전한 질서의 최고 담지자로서의 국가는 자신 의 정당성을 초월적인 것으로 제시한다. 그러나 그것은 우리가 투영하는 환 영일 뿐이다. 이 환영은 ‘기원의 서사화’의 결과이다. 인과론에 의거한 단선 적인 서사화 작업은 언제나 허구다. 의미의 장 안에 위치한 우리는 지속적 인 반복을 통해 “신의 불길한 이면을”, 내부의 분열을, 틈을, 라캉적 의미에 서의 실재의 지점을 인지하고 경험해야 한다. 지젝은 칸트의 뺷도덕 형이상 학뺸을 통해 밝혀져서는 안 되는 환영의 기만성을 설명한다.

최고 권력의 기원은 그 어떤 실천적인 목적을 위해서도 그것에 복종하는 사람 들에 의해 밝혀져서는 안 된다. 다시 말해 신민은 자신의 성찰에 따라 행동하기 위해 권력의 기원에 대한 성찰에 몰두해서는 안 된다. (…) 이런 논증은 이미 시 민법에 복속된 사람들에게는 전적으로 무익한 것으로, 그것은 국가에 대한 위협 을 초래한다.31)

우리가 기원에 “복종하는 사람들”이라면, 우리에게 그 기원의 허구성은 어떤 식으로든 은폐된 상태로 지속된다. 그렇기에 자유를 추구한다는 것은

“성찰에 몰두”해야 함을 뜻한다. 데리다의 표현으로는 ‘새로운 언어’를 계속 해서 찾아야 한다.32)기원에 대한 성찰은 기원의 초월성이 필연적으로 지

30) 같은 책, 419~420쪽.

31) 같은 책, 421쪽.

32) “선(先)기원적 언어의 최초에 앞섬이라는 상태는 존재하지 않는다. 그것은 고안되어야 한다. 다른 글쓰기의 명령, 소환이라고 할 수 있다. 하지만 무엇보다 그것은 말하자면 언어들 안에서 쓰여야 한다. 주어진 언어 내부에서 글쓰기를 불러내야 한다.”: Derrida,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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니는 구성적 허구성과 마주할 수 있게 해준다.

따라서 우리는 다음과 같은 질문을 던져야 한다. 1863년 1월 1일 링컨 대 통령에 의해 미국 노예 해방이 선언되고, 1965년 8월 6일 린든 존슨 대통령 에 의해 흑인 투표권법에 서명될 때 그들은 어떤 정당성을 근거로 이 같은 행위를 하였는가?33) 1893, 1920, 1928, 1944년 뉴질랜드, 미국, 영국, 프랑스 가 각각 여성의 투표권을 ‘인정’할 때, 그 인정 행위의 정당성은 무엇을 토 대로 하고 있었는가? 좀 더 거슬러 올라가 1793년, 프랑스에서 남성에게만 주어진 자유와 평등 논의를 비판하며 「여성인권선언문」을 발표한 올랭프 드 구주를 처형할 근거는 어디에서 나온 것인가? ‘계몽’의 정당성은 무엇에 근거하는가?34)

Jacques, op. cit., 1998b, p.64.

33) 케네디는 링컨의 노예 해방과 관련해 다음과 같이 말한 바 있다. “진실의 가장 큰 적은 거짓이 아니라 신화다.” 미국 남북전쟁 당시 북군의 부족으로 인해 흑인 노예를 해방할 수밖에 없었던 것과 관련한 말이었다. 케네디의 언급은 절대적인 것으로 받아들여지는 기원의 합리성에 대해 의문을 제기하는 지젝의 입장과 겹쳐있다. 이렇게 물을 수 있을 것이다. 기원은 신화인가, 혹은 신화가 기원인가.

34) 인종 간 평등의 문제와 남녀평등의 문제를 함께 언급하는 것은 매우 조심스러워야 한 다. 두 문제는 각각 독립적인 것이 아니라 서로 얽혀있는 문제이기 때문이다. 일례로 미국의 ‘인종 간 결혼 금지법’을 들 수 있다. 1600년대 처음으로 생겨난 이 법은 1967년 이나 되어서야 연방대법원으로부터 위헌 판결이 내려졌다. 그렇다면 이 기간에 백인 여성은 흑인 남성보다 우월한 위치에 있었다고 해야 할까? 그렇지만 백인 여성 또한 백인 남성에 의해 억압받는 위치가 아니었는가? 인종 간 결혼이 ‘자연스러워진’ 현재, 흑인 남성은 백인 여성과 동등한 위치에 있는가? 일부 엘리트 여성들은 자신보다 아래 에 있는 같은 백인 여성을 억압하는 존재는 아닌가? 그렇다면 이런 질문에서 흑인 여성, 더 나아가 유색인종과 관련한 문제는 과연 어디에 있는가? 따라서 이 같은 문제들을 바라볼 때는 매우 포괄적인 시각이 요구된다. 인종 문제, 남녀 문제는 모두 성차별적 위계질서라는 동일한 제국주의 구조의 각기 다른 현상임을 보아야 한다. 이런 관점에서 페미니즘 운동을 모든 형태의 폭력을 종식하는 운동으로 바라보는 벨 훅스의 주장을 제시할 수 있다: “여성과 남성은 사회 통제의 수단으로 어떤 형태든 폭력을 행사하는 데 반대해야 한다. (…) 전쟁, 남성이 여성에게 가하는 폭력, 성인이 아동에게 가하는 폭력, 청소년 폭력, 인종차별적 폭력 등 (…). 남성이 여성에게 가하는 폭력을 멈추려는 페미니즘의 노력은 모든 형태의 폭력을 멈추려는 운동으로 확대되어야 한다. 넓게 본다 면, 위계 구조가 인간 상호작용의 기본이라는 사고를 뿌리 뽑으려는 노력의 일환으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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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원의 기원성은 텅 빈 공간의 은폐일 뿐이라는 사실이 “현실성으로부터 가능성으로의 이와 같은 ‘물러섬’”,35) “주인기표의 중지”36)에 천착하게 만 드는 윤리적 동인이다. ‘사라지는 매개자’의 존재를 의식하려는 노력이 바 로 지젝의 ‘까다로운 주체’가 되는 길이다.37)

법이 만들어진 ‘시초’에는 어떤 ‘무법’이 있었으니, 그 폭력의 실재는 법의 지 배를 수립한 행위 자체와 일치한다. 법의 지배에 관한 궁극적 진실은 불법적 강 탈이며, 모든 고전적인 정치-철학적 사유는 이 초석적 폭력행위의 부인에 의존 해 있다.38)

“모든 고전적인 정치-철학적 사유”가 드러내는 폭력, 강탈행위를 비판하 는 것을 넘어서야 한다. 그러한 비판은 탈이데올로기적 이데올로기가 될 수 있을 뿐이다. 고전적인 것에 대해 고전적이지 않은 모델을 대비시키는 행위 에는 궁극적인 한계가 있다. 그보다 고전적인 것이 고전적인 것과 달라지는 지점을, 서양이 서양과 달라지는 지점을, “법의 지배에 관한 궁극적 진실”

을 말해야 한다. 외향 뒤의 본질은 없다. 유일한 본질이란 “본질 자체가 현 상의 자기균열, 자기분열에 불과하다는 것”39)일 뿐이다.

모든 형태의 폭력을 멈추려는 운동은 의식을 급진화시킬 잠재력이 있으며 (…).”: 훅스, 벨, 뺷페미니즘: 주변에서 중심으로뺸, 윤은진 옮김, 서울: 모티브북, 2010, 205쪽.

35) 지젝, 슬라보예, 뺷부정적인 것과 함께 머물기: 칸트, 헤겔, 그리고 이데올로기 비판뺸, 이성민 옮김, 서울: 도서출판 b, 2007, 11쪽.

36) 같은 책, 12쪽.

37) “주체는 ‘그 자체로’ 세계라는 직물 속의 어떤 근본적인 전치, 어떤 상처 내지 절단에 붙여진 이름”이다: 지젝, 위의 책, 2004, 18쪽.

38) 지젝, 위의 책, 2004, 421쪽.

39) 지젝, 위의 책, 2013a, 335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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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 나아가며

조지 플로이드의 사망 이후 제국주의를 상징하는 인물들의 동상이 하나, 둘 쓰러지고 있다. 영국 브리스톨에서는 1895년 세워진 에드워드 콜스톤의 동상이 강물에 빠졌다. 그는 17세기 노예무역으로 부를 축적한 인물이다.

미국 미네소타주 미니애폴리스에서는 신대륙을 ‘발견’한 콜럼버스의 동상이 바닥에 쓰러졌고, 버지니아주 리치먼드에 세워진 콜럼버스 동상은 마찬가지 로 강물에 던져졌다. 벨기에에서는 레오폴 2세의 동상들이 훼손되고 있다.

레오폴 2세는 1884년 베를린 회담에서 열강들로부터 콩고 지배권을 인정받고 온갖 착취와 잔악 행위를 일삼은 인물이다.

본래 무언가로 채워져 있던 공간의 개방. 이에 대해 지젝은 다음과 같이 말할 것이다.

‘생성 중인’ 역사적 상황의, 즉, 이전의 주인기표가 이미 그 헤게모니적 권력을 상실했으나 아직 새로운 것으로 대체되지 않은 저 중간적 국면의 ‘열린’ 특성에 대한 이보다 더 현저한 표지를 상상하기는 어려울 것이다.40)

조지 플로이드는 사라짐 속에서 “칸트적 제스처”41)가 되었다. 칸트적 제스 처는 전래된 질서가 이미 자기 분열적이었음을, 자유와 기회를 상징하는 미국 이 이미 항상 ‘미국’이 아니었음을 재차 드러내는 제스처다. 그리고 그것은 앞선 체계를 “극복하는 새로운 정초적 제스처”42)로서의 가능성을 품고 있다.

한편으로 조지 플로이드 현상은 어느 한 체계의 “‘불가능성의 조건’이 사실상 그것의 내속적 가능성의 조건으로 기능한다는 것을 입증”43)해주기도 한다.

수많은 ‘조지 플로이드’들이 역사의 부수적 현상이 아니라 필연적인 조건으로

40) 지젝, 위의 책, 2007, 9쪽.

41) 같은 책, 16쪽.

42) 같은 책, 15쪽.

43) 같은 책, 13쪽.

(16)

언제나 존재해왔음을, 언제나 희생되어왔음을 상기해주기 때문이다. 배제와 억압의 구조는 포용과 관용의 분리 불가능한 이면이다.

상징계적 폭력 속에 죽음에 이를 수밖에 없었던 한 인물이 기표 속 유령이 된다. 그 유령은 각각의 구체적인 투쟁들 속에 잠재해 있다. 플로이드의 죽음 으로 촉발된 모든 현상은 “의미를 고정시키는 기표 연쇄의 ‘누빔’이 모두 일어난 후에”도 계속해서 남겨진 채인 “어떤 간극”, “구멍”44)을 겨냥해야 한다. 우리가 그것과 어떤 방식으로 마주했는지는 말 그대로 역사가 말해줄 수밖에 없다. 되돌아보았을 때, 그저 그렇게 흘러간 동일성의 시간이 아닌, 메시아성이 발현되었던 타자적 사건들의 시간으로 기억되어야 한다.

진리란 사건이고 “종교가 오직 자기-취소를 통해서만 그것의 진리에 도 달한다”45)면, 타자적 사건으로 기록되는 ‘플로이드’는 종교적 진리라고도 말할 수 있을 것이다. 한발 더 나아가, 혹은 반대로, 플로이드로 인해 야기 되고 있는 수많은 ‘서사’가 종교적인 것으로서 평가될 수 있도록 만들어내 야 한다. 후손들에게 관대한 평가를 바라는 브레히트의 시구절은 자조적인 변명으로 들릴 뿐이다.46)역사는 언제나 생성 중이다. 미래는 좀처럼 자신 을 드러내려 하지 않는 현재의 공백, “그 유일무이한 중간적 상황”47)에 이 미 존재한다. 그 중간적 상황에 대한 응답은 참여가, 개입이, 횡단이 되어야 한다. 이것만이 진정으로 ‘무한한 정의’를 실천하는 방식이다.48) “참여하지 않는 객관적 관찰자에게 사건은 존재하지 않는다.”49)

44) 지젝, 위의 책, 2004, 185쪽.

45) 지젝, 슬라보예․밀뱅크, 존, 뺷예수는 괴물이다뺸, 배성민․박치현 옮김, 서울: 마티, 2013b, 10쪽.

46) “진정, 나는 암울한 시대에 살고 있네!”로 시작하는 브레히트의 「후손들에게」는 브레히 트 자신이 경험하고 관찰한 시대적 상황을 후손들에게 전하는 시다. 체념적이고 자조적 인 어조로 시대 상황을 묘사하던 시는 다음과 같이 끝난다. “그러나 후손들이여, 인간이 인간을 돕는/ 그런 세상이 온다면/ 우리를 기억하라/ 관용으로.”: Lyrikline, “Bertolt Brecht, An die Nachgeborenen”

47) 지젝, 위의 책, 2007, 10쪽.

48) 지젝, 위의 책, 2011, 83쪽.

(17)

참고문헌 1. 단행본

데리다, 자크, 뺷법의 힘뺸, 진태원 옮김, 서울: 문학과지성사, 2004.

지젝, 슬라보예, 뺷그들은 자기가 하는 일을 알지 못하나이다: 정치적 요인으로서 의 향락뺸, 박정수 옮김, 고양: 인간사랑, 2004.

_____________, 뺷부정적인 것과 함께 머물기: 칸트, 헤겔, 그리고 이데올로기 비 판뺸, 이성민 옮김, 서울: 도서출판 b, 2007.

_____________, 뺷실재의 사막에 오신 것을 환영합니다: 9.11 테러 이후의 세계뺸, 이현우ㆍ김희진 옮김, 서울: 자음과모음, 2011.

_____________, 뺷이데올로기의 숭고한 대상뺸, 이수련 옮김, 서울: 새물결, 2013a.

_____________ㆍ밀뱅크, 존, 뺷예수는 괴물이다뺸, 배성민ㆍ박치현 옮김, 서울: 마 티, 2013b.

훅스, 벨, 뺷페미니즘: 주변에서 중심으로뺸, 윤은진 옮김, 서울: 모티브북, 2010.

Derrida, Jacques, Of Grammatology, transl. by Gayatri Chakravorty Spivak, corrected ed., Baltimore: JHUP, 1998a.

_______________, Monoligualism of the Other or The Prosthesis of Origin, transl.

by Patrick Mensah, Stanford: SUP, 1998b.

Žižek, Slavoj, Gewalt: Sechs abseitige Reflexionen, Hamburg: LAIKA Verlag, 2011.

2. 논문

안용흔, 「미 연방정부의 인디언원주민 정책」, 뺷민족연구뺸 49, 2012, 4∼17쪽.

윤용희ㆍ윤이화, 「미국의 건국정신과 헌법정신의 함의」, 뺷사회과학뺸 17, 2005, 1∼

38쪽.

El-Tayeb, Fatima/Thompson, Vanessa Eileen, Alltagsrassismus, staatliche

Gewalt und koloniale Tradition. Ein Gespräch über Racial Profiling und intersektionale Widerstände in Europa. In: Mohamed Wa Baile et

la.(eds.), Racial Profiling: Struktureller Rassismus und antirassistischer

Widerstand, Postcolonial Studies, 2019, pp.311-328.

49) 지젝, 위의 책, 2013b, 12쪽.

(18)

3. 인터넷

국제앰네스티, 「집중 분석: 각국 시위에서 남용되고 있는 최루가스」, 2020.06.18., 마지막 접속: 2020.08.26: https://amnesty.or.kr/36159/

Bewes, Timothy/Ravindranathan, Thangam, “Bewes, Ravindranathan: Žižek’s hypocrisy”, The Brown Daily Herald, 19.10.2015, last accessed: 26.08.

2020:

https://www.browndailyherald.com/2015/10/19/bewes-ravindranatha n-zizeks-hypocrisy/

CBS News, “Video shows Minneapolis cop with knee on neck of motionless, moaning man who later died”, 27.05.2020, last accessed: 26.08.2020:

https://www.cbsnews.com/news/minneapolis-police-george-floyd-di ed-officer-kneeling-neck-arrest/

Lyrikline, “Bertolt Brecht, An die Nachgeborenen”, last accessed: 26.08.2020:

https://www.lyrikline.org/de/gedichte/die-nachgeborenen-740

Newshub, “George Floyd death: Newly emerged surveillance footage shows no evidence of resistance”, 29.05.2020, last accessed: 26.08.2020:

https://www.newshub.co.nz/home/world/2020/05/george-floyd-death -newly-emerged-surveillance-footage-shows-no-evidence-of-resist ance.html

Thompson, Vanessa Eileen, “Rassismus, Polizeigewalt und die Zukunft der Demokratie”, Sternstunde Philosophie, SRF Kultur, 14.06.2020, last accessed: 26.08.2020:

https://www.youtube.com/watch?v=LJruLt5sLx4

Žižek, Slavoj, “The Subject Supposed to Loot and Rape”, In These Times, 20.10.2005, last accessed: 26.08.2020:

https://inthesetimes.com/article/2361/the_subject_supposed_to_loot_a nd_rape

(19)

Abstract

Reading ‘Floyd’ Phenomena with ‘Žižek’

- On the Originariness of ‘Origin’ -50)

Kim, Jin-hwan*

Dichotomies such as appearance and essence, origin and ending, good and evil, subject and object are the basic framework of Western thought.

Dichotomous thinking inevitably has an exclusionary structure. Those who are once deported can never be incorporated into the existing order. This way of thinking manifests itself in a number of phenomena; imperialism at the national level, racial discrimination at the cultural level, and sexism when it comes to gender.

However, the structure of binary opposition is in itself insecure and incomplete. Essence can only exist through appearances. Origin can always only be (re-)constructed ex post facto. Good exists only through the introduction of evil. The only ‘essence’ is that essence is always self-split.

The ‘monstrosity’ explains this very obscene point where good and evil lie upon one another.

The numerous events occurred after the death of George Floyd do not only claim the universality of freedom and equality. These are the phenomena that indicate that the origin of the law or the national system is inseparable with violence. It is imperfect in itself and it is a post- constructed myth. It is the very 'ticklish subject' of Žižek that intervenes in this 'unique void situation' which claims that history is always being newly (re-)created.

Key Words : Žižek, George Floyd, origin, void, loss of the loss, law, violence, racism, imperialism, ticklish subject

* Korea Universit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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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필자소개>

이름 : 김진환

소속 : 고려대학교 독어독문학과 전자우편 : komjesn@korea.ac.kr

논문투고일 : 2020년 7월 6일 심사완료일 : 2020년 8월 24일 게재확정일 : 2020년 8월 28일

참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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