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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자못 전설 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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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cademic year: 20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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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장자못 전설 1

(충남 온양)

거 장자못이유 부자가 폭싹 망했는데유, 거 가난한 사람이유, 동냥을 달랬대유. 동냥을 안 주서 그 동냥한 이가유 산으로 데리고 가서유, 가는데유, 뒤 안보고 가는데유, 구두쇠 영감이 뒤쳐다 보니까 큰 장 자못이 돼서 물이 되고유. 그 구두쇠는 싹 망한 거지유. 거 잘 됐어 유.

장자못 전설 2

(충남 온양)

저가 장자가 살았어유. 그래 누가 왔냐하면은 중이 동냥 왔어유. 그 집 마누라가 동냥을 안주고 똥을 주었어유. 그래 그 중이 따라오라 해서 그이가 똥 준 이를 데려가니 뒤쳐다 보라구 해유. 그런데 쳐다 보니까 그만 그래 갖고 망했어유.

(2)

용소와 며느리바위

(황해도 장연)

용소는 장연읍에서 한 이십 리 되는 거리에 있는데, 에 장연읍에 서 그서도 민요로 유명한 몽금포 타령이 있는 데거든. 그 몽금포 가 는 길 옆에 그 인지 바로 길 옆에 그 용소라는 것이 있는데 그 전설 이 어떻게 됐냐 할 거 같으면, 그렇게 옛날 옛적 얘기지. 옛날에 그 지금 용소 있는 자리가 장재 첨지네 집터자리라 그래. 장재 첨지네 집터자린데, 거게서 그 영감이 인지 수천 석 하는 부자루 아주 잘 살구 인지 거기다 좋은 집을 짓구서 있었는데, 그 영감이 아주 깍쟁 이가 돼서, 인지 뭐 다른 사람 도무지 뭐 도와두 주지않구, 돈만 모 으던 그런 유명한 영감이래서 거기 사람들이 인지 말하자면, ‘돼지, 돼지’ 하는 그런 영감이라네. 그래서 응 구걸하는 사람이 구걸을 와 두 당최 주질 않구, 또 대개 중들이 인지 그 시주를 하러 와두 도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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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 주지를 않구, 그런 아주 소문이 나쁘게 나 있는 영갬인데, 어느 여름철에 거기서 인지 그 용, 용소 있는 데서 한 이십 리 가면 불타 산이라는 산이 있는데, 그 불타산은 절이 많기 때문에 불타산이라는 그런 절이 있는데 거게서 그 도승이, 그 영감이 아주 나쁘다는 소리 를 듣구서, 우정 인지 그 집을 찾어가서 목탁을 치면서 인지 시주를 해 달라고, 그러니까 이 영감이 뛰어나가면설람,

“이놈, 너이 중놈들이란 것은 불능불사하구, 댕기면서 얻어만 먹 구 그러는데 우리 집에서는 절대루 인지 쌀 한 톨이라두 줄 수 가 없으니까 가라구.”

소리를 질러두 그대루 인지 그 중이 이제 가지를 않구섬날 독경을 하구 있으니까, 이 영감이 성이 나서 지금은 인지 대개 삽이라는 게 있지마는 옛날에는 저 그것을 뭐이라구 하나. 부, 부삽이라구 하나, 인지 그거 있는데 그걸루 두엄더미에섬낭 쇠똥을 퍼 가주구섬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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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 집에 쌀은 줄 거 없으니까 이거나 가져가라.”

하구섬낭 바랑에다가 쇠똥을 옇단 말야. 그래두 그 중은 조금두 낯 색두 변하지 않구서, 거저 ‘나무아미타불’만 부르다가섬낭을 그 쇠똥 을 걸머진 채 바깥으루 나오는데, 그 마당 옆에 우물이 있었는데 우 물가에서 그 장재 첨지의 며느리가 인제 쌀을 씻구 있다가, 그 광경 을 보구서, 그 중 보구섬낭 얘기하는 말이,

“우리 아버지 천생[天性]이 고약해서 그런 일이 있으니까, 조금두 나쁘게 생각하지 말라구.”

그러면서 쌀, 씻든 쌀을 바가지에다 한 바가지 퍼섬낭, 그 바랑에다 여 줬단 말야. 그러니께 그 중이 며느리 보구 하는 말이,

“당신 감 집에 인제 조금 있다가 큰 재앙이 내릴 테니까, 당신 빨리 집으루 들어가서, 평소에 제일 귀중하게 생각하는 것이 무 어 있는지, 두세 가지만 가지구서 빨리 나와섬낭, 저 불타산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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향해서 빨리 도망질하라구.”

그랬단 말야. 그러니까 그 며느리가 급히 자기 집으루 들어가서, 방 안에 자기 아들을, 뉘어서 재우든 아이를 들쳐 업구, 또 그 여자가 인지 명지를 짜던 그 명지 도토마리를 끊어 삼나를 이구 나오다가, 그 또 자기네 집에서 개를, 아주 오마 잘 거시기 하던 모낭이야. 귀 엽게 기르던 개를 불러 가지구서 나와섬낭, 그 불타산을 향해서 달 음박질루 가는데, 명주 도토마리, 개, 어린애. 어린애를 업구 명주 도 토마리를 이구, 개를 불러 가지구섬낭을 인지 그 불타산을 향해서 얼마쯤 가는데, 그 때까지 아주 명랑하던 하늘이 갑자기 흐리면서 뇌성벽력을 하드니 말야. 근데 그 중이 먼저 무슨 주의를 시켰나면,

“당신, 가다가서 뒤에서 아무런 소리가 나두 절대루 뒤를 돌아보 면 안된다”

는 거를 인지 부탁을 했는데, 이 연이 가는데 갑자기 뇌성벽력을 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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면서 그 벼락치는 소리가 나니까, 깜짝 놀래서 인지 뒤를 돌아봤단 말야. 그러니까 그 자리에서 그만 화석이 돼서, 그 사람이 그만 회석 이 되구 말았다는 게야. 개두 그렇게 화석이 돼서 그 자리에 서 있 다고 하는데, 그 지금두 불타산 아래서 인지 얼마 내려오다가서 그 비슥하니 인지 거기 사람들은 이것이 인지 으 며느리가 화석된 게라 고 인지 하는 바위가 있는데, 역시 인지 사람 모양하구, 인지 뭐 머 리에 뭐 인 거 같은 거 하구, 그 아래 개 모양 겉은, 그런 화석이 상 게두 있단 말야. 한데 그 때 그 이 벼락을 치면서 장재 첨지네 그 집이 전부 없어지면서 그만 거기에 멫백 길이 되는지 모르는, 이제 큰 소가 됐단 말야. 한데 그 소가 어느만침 넓으냐 하면, 여기 어린 이 놀이터보담두 더 넓은데, 이거 고만 두 배쯤 되는 품인데 그 소 에서 물이 얼마나 많이 나오는지, 물 나오는 소리가 쿵쿵쿵쿵쿵쿵 하면서 그 곁에 가면 이제 지반이 울린단 말야. 이리이리 너무 물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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많이 나와서 그래 갖구, 그 물 나오는, 그 물을 가지구서 에 오마 멫 만 석인지 되는, 이제 말할 것 같은면, 에 수천 정보에 그 인지 평야 에, 논에 물을 그 인지 소에서 나오는 물 가지구서 대는데, 그 물은 에 아무리 비가 와두 느는 벱이 없구, 에 아무리 인지 가물어두 주 는 벱이 없는데, 사람들이 그게 얼마나 깊은나 볼라구 명지실을 갖 다가, 돌을 넣어섬낭 하니까 명지실 멫을 넣어도 도무지 끝을 몰른 다는, 그만침 깊은 소가 됐단 말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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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기 장수 전설

옛날 영월군 수주면 도원리 손씨 집안에 남자아이가 태어났는데, 갓난아이답지 않게 골격이 크고 당당하였으며, 겨드랑이에는 날개가 돋았다. 아이는 하루가 다르게 자라 3일이 지났을 때, 저 혼자 걸어 다니는 것은 물론 방안의 선반 위에 올라가는 등 마음대로 돌아다녔 다.

손씨 부부는 남자아이가 태어나 기쁘기 한량이 없었지만, 아이가 자라는 모습을 보고는 덜컥 겁이 나기 시작했다.

“여보, 아무래도 예사 아이가 아니어요. 우리같이 미천한 집안에 저런 아이가 태어나다니 어쩜 좋아요.”

“글세 가뜩이나 나라 안이 어수선한데, 만약 우리 집안에 저런 장수 기질의 아이가 태어난 걸 알면 관가에서 가만 있지 않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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것이오.”

집안 식구들은 어쩔 줄 몰랐다. 그러는 사이에 이 소문이 마을에 퍼졌다. 마을의 지각 있는 노인들도 모두 근심스런 표정으로,

“그렇지 않아도 장수가 태어나 나라를 뒤집으려 한다는 소문이 자자한데, 장수 아기를 출산했으니 손씨 집에 앞으로 닥칠 일이 걱정되는군.”

하며 수군거렸다.

손씨 집안에서는 눈물을 머금고 그 아이를 죽여 버려야 했다. 아기 장수가 역도(逆徒)가 되어 멸문지화(滅門之禍)를 당할까 두려웠기 때 문이다.

그런 지 3일 후 그 마을 동쪽의 후미진 곳에 있는 깊은 못에서 우 렁차게 말의 울음소리가 들려왔다. 이에 마을 사람들은 모두 아기장 수를 태울 용마가 났다고 말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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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용마는 아기 장수를 찾아 사방으로 날아다녔다. 하지만 아기장 수는 이미 죽었으니 어찌하랴. 결국 용마는 주인을 찾지 못하고, 수 주면 무릉리 동북쪽 강 건너 마을의 벼랑에서 슬프게 울부짖다가 나 왔던 곳으로 되돌아와 죽었다고 한다. 그래서 용마가 나왔던 못을 용소(龍沼)라 하며, 그 옆에 용마의 무덤까지 있다고 한다. 또 무릉 리의 강 건너 마을은 용마가 울부짖은 곳이라 하여 명마동(鳴馬洞) 이라 부르고 있으며 지도에도 그렇게 표기되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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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깨비 비형랑( 鼻荊朗)

제25대 사륜왕의 시호는 진지대왕인데, 성은 김씨고, 왕비는 기오공 의 딸 지도부인이다. 대건 8년 병신에 즉위했다. 나라를 4년 동안 다 스렸는데, 정치가 어지러운데다 음란한짓에만 빠졌다. 그래서 나라 사람들이 그를 내어쫓았다.

그전에 사량부에 자태와 얼굴이 아름다운 여자가 있었는데, 당시 사 람들이 도화아가씨라고 불렀다. 왕이 그 소문을 듣고 궁중으로 불러 들여 사랑하려고 하자, 그 여자가 말했다.

"여자가 지켜야 할 것은 두 남편을 섬기지 않는 것입니다. 남편 이 있는데도 다른 남자에게 가게 하는 것은 비록 만승천자의 위 엄으로도 끝내할 수가 없습니다."

왕이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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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죽이겠다면 어쩌겠는냐?"

여자가 말했다.

"차라리 저자에서 죽임을 당할지언정 다른 남자를 따르고 싶지는 않습니다."

왕이 장난삼아 말했다.

"네 남편이 없으면 되느냐?"

"네, 괜찮습니다."

왕이 그를 놓아 보냈다. 그 해에 왕이 쫓겨나 죽었다. 2년 뒤에 그의 남편도 역시 죽었다.

열흘 뒤 별안간 밤중에 왕이 생시와 같은 모습으로 그 여자의 방에 와서 말했다.

"네가 예전에 허락한 적이 있었는데, 이제 네 남편이 없어졌으니 괜찮겠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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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여자가 가볍게 하락하지 않고 부모에게 알렸더니, 부모가 말했다.

"임금의 명령을 어찌 피할 수 있겠느냐?"

그 딸을 방으로 들여보내 이레 동안 모시게 했는데, 늘 오색 구름이 집을 덮고 향기가 방안에 가득했다. 이레 뒤에 왕이 별안간 사라졌 다. 그 여자는 곧 임신했는데, 달이 차서 해산하려고 하자 천지가 진 동했다. 한 사내 아이를 낳았는데, 이름을 비형이라고 했다. 진평대 왕이 그 이상한 소문을 듣고 궁중에 데려다 길렀다.

비형랑이 열 다섯 살 되자 집사 벼슬을 주었다. 그런데 밤마다 먼곳 으로 달아나 놀기 때문에, 왕이 용사 50명을 시켜서 지키게 했다. 그 는 언제나 월성을 날아 넘어서 서쪽에 있는 황천 언덕 위까지 가서, 여러 귀신들을 거느리고 놀았다. 용사가 숲 속에 숨어 엿보았더니, 여러귀신들이 여기저기서 들려오는 새벽 종 소리를 듣고는 각기 흩 어져버리고, 비형랑도 역시 돌아오는 것이었다. 군사가 사실대로 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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뢰자, 왕이 비형을 불러 물었다.

"네가 귀신을 거느리고 논다니 참말이냐?"

비형랑이 말했다.

"그렇습니다."

왕이 말했다.

"그렇다면 네가 귀신들을 부려서 신광사 북쪽 개천에 다리를 놓 아보아라."

비형은 칙명을 받들고 그 무리들로 하여금 돌을 다듬게 해서 하룻밤 에 큰 다리를 이루었으므로 그 다리 이름을 귀교라고 했다. 왕이 또 물었다.

"귀신들 가운데 인간 세상에 몸을 나타내어 조정의 정치를 도울 만한자가 있느냐?"

"길달이란 자가 있는데, 나라 정치를 도울 만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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왕이 말했다.

"데리고 오라."

이튿날 비형이 길달과 함께 와서 알현하자 집사 벼슬을 내렸는데, 과연 충직하기 짝이 없었다. 이때 각간 임종에게 아들이 없었으므로, 왕이 칙명을 내려 길달을 양자로 삼게 했다. 임종이 길달에게 명하 여 홍륜사 남쪽에 누문을 세우고 밤마다 그 문 위에 가서 자게 했으 므로, 그 이름을 길달문이라고 했다. 어느 날 길달이 여우로 변해 달 아났다. 비형이 귀신을 시켜 잡아 죽였으므로, 그 무리가 비형의 이 름만 들어도 무서워하며 달아났다. 당시 사람들이 비형을 두고 글을 지었다.

성스런 임금 영혼이 아들을 낳았으니 비형랑이 여기에 집을 지었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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날고 뛰는 온갖 귀신들아

이곳에 함부로 머물지 말아라.

민간에서는 이 말을 써 붙여 귀신을 물리쳤다.

<삼국유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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선덕여왕지기삼사( 善德女王知機三事)

제27대 덕만(德曼; 만曼은 만萬으로도 씀)의 시호(諡號)는 선덕여대왕 (善德女大王), 성(姓)은 김씨(金氏), 아버지는 진평왕(眞平王)이다. 정관 (貞觀) 6년 임진(壬辰; 632)에 즉위하여 나라를 다스린 지 16년 동안 에 미리 안 일이 세 가지가 있었다.

첫째는, 당(唐)나라 태종(太宗)이 붉은빛·자줏빛·흰빛의 세 가지 빛 으로 그린 모란[牧丹]과 그 씨 서 되[升]를 보내 온 일이 있었다. 왕 은 그림의 꽃을 보더니 말하기를, "이 꽃은 필경 향기가 없을 것이 다" 하고 씨를 뜰에 심도록 했다. 거기에서 꽃이 피어 떨어질 때까 지 과연 왕의 말과 같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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둘째는, 영묘사(靈廟寺) 옥문지(玉門池)에 겨울인데도 개구리들이 많이 모여들어 3, 4일 동안 울어 댄 일이 있었다. 나라 사람들이 괴 상히 여겨 왕에게 물었다. 그러자 왕은 급히 각간(角干) 알천(閼川)·

필탄(弼呑) 등에게 명하여 정병(精兵) 2,000명을 뽑아 가지고 속히 서 교(西郊)로 가서 여근곡(女根谷)이 어딘지 찾아 가면 반드시 적병(賊 兵)이 있을 것이니 엄습해서 모두 죽이라고 했다. 두 각간이 명을 받 고 각각 군사 1,000명을 거느리고 서교(西郊)에 가 보니 부산(富山) 아래 과연 여근곡(女根谷)이 있고 백제(百濟) 군사 500명이 와서 거 기에 숨어 있었으므로 이들을 모두 죽여 버렸다. 백제의 장군(將軍) 우소(우召)란 자가 남산 고개 바위 위에 숨어 있었으므로 포위하고 활을 쏘아 죽였다. 또 뒤에 군사 1,200명이 따라오고 있었는데, 모두 쳐서 죽여 한 사람도 남기지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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셋째는, 왕이 아무 병도 없을 때 여러 신하들에게 일렀다.

"나는 아무 해 아무 날에 죽을 것이니 나를 도리천(忉利天) 속에 장사지내도록 하라."

여러 신하들이 그게 어느 곳인지 알지 못해서 물으니 왕이 말하였 다.

"낭산(狼山) 남쪽이니라."

그 날이 이르니 왕은 과연 죽었고, 여러 신하들은 낭산 양지에 장사 지냈다. 10여 년이 지난 뒤 문호대왕(文虎(武)大王)이 왕의 무덤 아래 에 사천왕사(四天王寺)를 세웠는데 불경(佛經)에 말하기를, "사천왕천 (四天王天) 위에 도리천(忉利天)이 있다"고 했으니 그제야 대왕(大王) 의 신령하고 성스러움을 알 수가 있었다.

왕이 죽기 전에 여러 신하들이 왕에게 아뢰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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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떻게 해서 모란꽃에 향기가 없고, 개구리 우는 것으로 변이 있다는 것을 아셨습니까."

왕이 대답했다.

"꽃을 그렸는데 나비가 없으므로 그 향기가 없는 것을 알 수가 있었다. 이것은 당나라 임금이 나에게 짝이 없는 것을 희롱한 것 이다. 또 개구리가 성난 모양을 하는 것은 병사(兵士)의 형상이 요. 옥문(玉門)이란 곧 여자의 음부(陰部)이다. 여자는 음이고 그 빛은 흰데 흰빛은 서쪽을 뜻하므로 군사가 서쪽에 있다는 것을 알았다. 또 남근(男根)은 여근(女根)이 들어가면 죽는 법이니 그래 서 잡기가 쉽다는 것을 알 수 있었다."

이에 여러 신하들은 모두 왕의 성스럽고 슬기로움에 탄복했다. 꽃은 세 빛으로 그려 보낸 것은 대개 신라에는 세 여왕(女王)이 있을 것 을 알고 한 일이었던가. 세 여왕이란 선덕(善德)·진덕(眞德)·진성(眞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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聖)이니 당나라 임금도 짐작하여 아는 밝은 지혜가 있었던 것이다.

선덕왕(善德王)이 영묘사(靈廟寺)를 세운 일은 <양지사전(良志師 傳)>에 자세히 실려 있다. <별기(別記)>에 말하기를, "이 임금 때에 돌을 다듬어서 첨성대(瞻星臺)를 쌓았다"고 했다.

<삼국유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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심화요탑( 心火繞塔)

신라 선덕 여왕 때에 지귀(志鬼)라는 젊은이가 있었다. 지귀는 활리 역(活里驛) 사람인데, 하루는 서라벌에 나왔다가 지나가는 선덕 여왕 을 보았다. 그런데 여왕이 어찌나 아름다웠던지 그는 단번에 여왕을 사모하게 되었다.

선덕 여왕은 진평왕의 맏딸로, 그 성품이 인자하고 지혜로울 뿐만 아니라 용모가 아름다워서 모든 백성들로부터 칭송(稱頌)과 찬사를 받았다. 그래서 여왕이 한번 행차(行次)를 하면 모든 사람들이 여왕 을 보려고 거리를 온통 메웠다. 지귀도 그러한 사람들 틈에서 여왕 을 한 번 본 뒤에는 여왕이 너무 아름다워서 혼자 여왕을 사모(思 慕)하게 되었던 것이다. 그뿐만 아니라 그는 잠도 자지 않고 밥도 먹 지 않으며 정신이 나간 사람처럼 선덕 여왕을 부르다가, 그만 미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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버리고 말았다.

“아름다운 여왕이여, 나의 사랑하는 선덕 여왕이여!”

지귀는 거리로 뛰어다니며 이렇게 외쳐댔다. 이를 본 관리들은 지 귀가 지껄이는 소리를 여왕이 들을까 봐 걱정이었다. 그래서 관리들 은 지귀를 붙잡아다가 매질을 하며 야단을 쳤지만 아무 소용이 없었 다.

어느 날 여왕이 행차를 하게 되었다. 그 때 어느 골목에서 지귀가 선덕 여왕을 부르면서 나오다가 사람들에게 붙들렸다. 그래서 사람 들은 웅성거리기 시작했고 떠들썩했다. 이를 본 여왕은 뒤에 있는 관리에게 물었다.

“대체 무슨 일이냐?”

“미친 사람이 여왕님 앞으로 뛰어나오다가 다른 사람들에게 붙 들려서 그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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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한테 온다는데 왜 붙잡았느냐?”

“아뢰옵기 황송합니다만, 저 사람은 지귀라고 하는 미친 사람인 데, 여왕님을 사모하고 있다고 합니다.”

관리는 큰 죄나 진 사람처럼 머리를 숙이며 말했다.

“고마운 일이로구나!”

여왕은 혼잣말처럼 이렇게 말하고는, 지귀에게 자기를 따라오도록 관리에게 말한 다음, 절을 향하여 발걸음을 떼어 놓았다.

한편, 여왕의 명령을 전해 들은 사람들은 모두 깜짝 놀랐다. 그러나 지귀는 너무도 기뻐서 춤을 덩실덩실 추며 여왕의 행렬을 뒤따랐다.

선덕 여왕은 절에 이르러 부처에게 기도를 올리었다. 그러는 동안 지귀는 절 앞의 탑 아래에 앉아서 여왕이 나오기를 기다렸다. 그러 나 여왕은 좀체로 나오지 않았다. 지귀는 지루했다. 그리고 시간이 흐를수록 안타깝고 초조했다. 그러다가 심신이 쇠약해질 대로 쇠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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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진 지귀는 그 자리에서 그만 잠이 들고 말았다.

여왕은 기도를 마치고 나오다가 탑 아래에 잠들어 있는 지귀를 보 았다. 여왕은 그가 가엾다는 듯이 물끄러미 바라보고는 팔목에 감았 던 금팔찌를 뽑아서 지귀의 가슴 위에 놓은 다음 발길을 옮기었다.

여왕이 지나간 뒤에 비로소 잠이 깬 지귀는 가슴 위에 놓인 여왕의 금팔찌를 보고는 놀랐다. 그는 여왕의 금팔찌를 가슴에 꼭 껴안고 기뻐서 어찌할 줄을 몰랐다. 그러자 그 기쁨은 다시 불씨가 되어 가 슴 속에서 활활 타오르고 있었다. 그러다가 온몸이 불덩어리가 되는 가 싶더니, 이내 숨이 막히는 것 같았다.

가슴 속에 있는 불길은 몸 밖으로 터져 나와 지귀를 어느 새 새빨 간 불덩어리로 만들고 말았다. 처음에는 가슴이 타더니 다음에는 머 리와 팔다리로 옮아져서 마치 기름이 묻은 솜뭉치처럼 활활 타올랐 다. 지귀는 있는 힘을 다하여 탑을 잡고 일어서는데, 불길은 탑으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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옮겨져서 이내 탑도 불기둥에 휩싸였다. 지귀는 꺼져 가는 숨을 내 쉬며 멀리 사라지고 있는 여왕을 따라가려고 허위적허위적 걸어가는 데, 지귀 몸에 있는 불 기운은 거리에까지 퍼져서 온 거리가 불바다 를 이루었다.

이런 일이 있은 뒤부터 지귀는 불귀신으로 변하여 온 세상을 떠돌 아디니게 되었다. 사람들은 불귀신을 두려워하게 되었는데, 이 때 선 덕 여왕은 불귀신을 쫓는 주문(呪文)을 지어 백성들에게 내놓았다.

지귀는 마음에서 불이 일어 志鬼心中火 몸을 태우고 화신이 되었네. 燒身變火神 푸른 바다 밖 멀리 흘러갔으니, 流移滄海外 보지도 말고 친하지도 말지어다. 不見不相親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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백성들은 선덕 여왕이 지어 준 주문을 써서 대문에 붙이었다. 그랬 더니 비로소 화재를 면할 수 있었다. 이런 일이 있은 뒤부터 사람들 은 불귀신을 물리치는 주문을 쓰게 되었는데, 이는 불귀신이 된 지 귀가 선덕 여왕의 뜻만 좇기 때문이라고 한다.

<대동운부군옥(大東韻府群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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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오랑( 延烏郞)과 세오녀(細烏女)

제8대(第八代) 아달라왕(阿達羅王) 즉위 4년 정유(丁酉)에 동해 바 닷가에 연오랑과 세오녀 부부가 살고 있었다. 어느 날 연오가 바다 에 나가 해조(海藻)를 따고 있는데, 갑자기 바위 하나가 나타나더니 연오를 싣고 일본으로 가 버렸다. 이것을 본 그 나라 사람들은, “이 는 범상한 사람이 아니다.” 하고는 연오를 세워 왕으로 삼았다. 세오 는 남편이 돌아오지 않자 이상히 여겨 바닷가에 나가 찾다가 남편이 벗어 놓은 신을 발견했다. 세오가 그 바위 위에 올라갔더니, 바위는 또한 전처럼 세오를 싣고 일본으로 갔다. 그 나라 사람들은 놀라 왕 에게 사실을 아뢰었다. 마침내 부부가 서로 만나게 되어 그녀를 귀 비(貴妃)로 삼았다.

이 때 신라에서는 해와 달이 광채를 잃었다. 일관(日官)이 왕께 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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뢰길,

“해와 달의 정기(精氣)가 우리 나라에 내려와 있었는데, 이제 일 본으로 가서 이런 괴변이 생겼습니다.”

라고 했다.

왕이 사자(使者)를 보내서 두 사람을 찾으니 연오가 말하길,

“내가 이 나라에 온 것은 하늘이 시킨 일인데 어찌 돌아갈 수가 있겠소. 그러나 나의 비(妃)가 짠 고운 비단이 있으니 이것으로 하늘에 제사를 드리면 될 것이오.”

하고는 사자에게 비단을 주니, 사자가 돌아와서 사실대로 고했다. 그 의 말대로 하늘에 제사를 드렸더니, 해와 달의 정기가 전과 같이 되 었다. 이에 그 비단을 어고(御庫)에 간수하고 국보로 삼았다. 그 창 고를 귀비고(貴妃庫)라 하고, 하늘에 제사 지낸 곳을 영일현(迎日縣) 또는 도기야(都祈野)라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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후백제 견훤( 甄萱)

옛날 광주 북촌에 한 부자가 살고 있었다. 그에게 딸 하나가 있었는 데, 자태와 얼굴이 단정했다. 하루는 딸이 아버지에게 말했다.

“자주빛 옷을 입은 사내가 밤마다 와서 자고 갑니다”

“그러면 네가 긴 실을 바늘에 꿰어, 그의 옷에다 꽂아 두어라”

딸이 그 말대로 했다.

다음 날 북쪽 담장 아래에서 그 실을 찾았다. 바늘은 커다란 지렁이 의 허리에 꽂혀 있었다. 뒤에 임신을 하고 사내 아이를 낳았는데, 나 이 열 다섯살에 스스로 견훤이라 불렀다.

<삼국유사(三國遺事)>

(31)

구토지설( 龜兎之說)

누가 고구려왕에게 고하기를

“신라 사자는 보통 사람이 아닙니다. 이번에 온 것이 아마도 우 리의 형세를 살펴보려는 것이오니, 왕께서는 도모하시어 후환을 없게 하소서”

하였다. 왕은 무리한 질문으로 그가 대답하기 어렵게 하여 욕을 보 이려고 일러 말하기를,

“조령과 죽령은 본래 우리 나라 땅이니 우리에게 돌려주지 않으 면 돌아갈 수 없다.”

고 하였다. 춘추가 대답하기를

“국가의 토지는 신하로서 마음대로 하는 것이 아닙니다. 신은 감 히 명령을 좇을 수 없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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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였다. 왕이 노하여 그를 가두고 죽이려 하여 아직 수행하지 않았 는데, 춘추가 청포 삼백 포를 비밀히 왕이 총애하는 신하 선도해(先 道解)에게 주었다. 도해가 음식을 가지고 와서 함께 술을 마셨다. 한 창 취흥이 무르익을 즈음 도해가 웃음의 말로 다음과 같이 말했다.

“그대도 일찍이 거북과 토끼 이야기를 들었는가?

옛날에 동해 용왕의 딸이 병이 들어 앓고 있었다. 의원의 말이 토끼의 간을 얻어서 약을 지어 먹으면 능히 나을 것이라고 하였 다. 그러나 바다 속에는 토끼가 없으므로 어떻게 할 도리가 없었 다.

이 때 한 거북이가 용왕에게 아뢰기를,

내가 능히 토끼의 간을 얻어 올 것입니다.

하고, 드디어 육지로 올라가서 토끼를 만나 말하기를,

바다 속에 한 섬이 있는데, 샘물이 맑아 돌도 깨끗하고, 숲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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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거져 좋은 과일도 많이 열리고, 춥지도 덥지도 않고, 매나 독 수리와 같은 것들도 감히 침범할 수 없는 곳이다. 만약, 그 곳으 로 갈 것 같으면 아무런 근심도 없을 것이다.

하고 꾀어서는, 드디어 토끼를 등 위에 업고 바다에 떠서 한 이 삼 리쯤 가게 되었다.

이 때 거북은 토끼를 돌아보며 말하기를,

지금 용왕의 따님이 병이 들어 앓고 있는데, 꼭 토끼의 간을 약 으로 써야만 낫겠다고 하는 까닭으로 내가 수고스러움을 무릅쓰 고 너를 업고 가는 것이다.

하니, 토끼는 이 말을 듣고 말하기를,

아아 그런가, 나는 신명(神明)의 후예로서 능히 오장(五臟)을 꺼 내어 깨끗이 씻어 가지고 이를 다시 넣을 수 있다. 그런데 요사 이 마침 마음에 근심스러운 일이 생겨서 간을 꺼내어 깨끗하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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씻어서 잠시 동안 바윗돌 밑에 두었는데, 너의 좋다는 말만 듣고 오느라고 그만 간을 그대로 두고 왔다. 내 간은 아직 그 곳에 있 는데, 다시 돌아가서 간을 가지고 돌아오지 않으면, 어찌 네가 구하려는 간을 가지고 갈 수 있겠는가. 나는 비록 간이 없어도 살 수가 있으니, 그러면 어찌 둘이 다 좋은 일이 아니겠는가.

하니, 거북이는 이 말을 그대로 믿고 도로 육지로 올라왔다.

토끼는 풀숲으로 뛰어 들어가면서 거북에게 말하기를,

거북아, 너는 참으로 어리석구나. 어찌 간이 없이 사는 놈이 있 겠느냐?

하니, 거북이는 멋쩍어서 아무 말도 못하고 돌아갔다고 한다.”

하였다. 춘추가 그 말을 듣고 그 뜻을 알게 되었다. 고구려 왕에게 글월을 보내어 말하기를

“두 령은 본래 대국의 땅입니다. 신이 귀국하면 우리 왕께 청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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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 돌려드리겠습니다. 내 말을 믿지 못하신다면 저 해를 두고 맹 세하겠습니다.”

하니 왕이 그제야 기뻐하였다.

삼국사기(三國史記) 卷四十一 列傳 第一 金庾信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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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하국도적퇴치담( 地下國盜賊退治談)

옛날 한 사람의 한량(閑良)이 과거를 보려고 서울로 향하였다. 중도 에서 그는 어떤 큰 부자가 어떤 대적(大賊)에게 딸을 잃어버리고 비 탄(悲嘆)하고 있다는 말을 들었다.

‘딸을 찾아오는 사람에게는 내 재산의 반과 딸을 주리라.’ 하는 방 (榜)을 팔도에 붙였다는 것이었다. 한량은 그 여자를 구하여 보리라 고 결심하였다. 그러나 그 도적이 어디 있는지도 알 수 없었다. 방향 도 없이 찾아다니던 중, 어느 날 그는 노중(路中)에서 세 사람의 초 립동(草笠童)이를 만나서, 그들과 결의 형제(結義兄弟)를 하였다.

네 사람의 한량은 도적의 집을 찾으러 출발하였다. 도중에서 그들 은 다리 부러진 한 마리의 까치를 만났다 그들은 까치의 다리를 헝 겊으로 매어 주었다. 그 까치는 독수리에게 집과 알을 잃어버리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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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수리는 종종 까치의 집을 빼앗는 일이 있다―다리까지 부러진 것이었다.

까치는 무사들에게 향하여

“당신들은 아마 대적의 집을 찾으시겠지요. 여기서 저 쪽에 보이 는 산을 넘어가면, 거기에는 큰 바위가 있고, 그 바위 밑에는 흰 조개 껍질이 있습니다. 그것을 들어 내고 보면, 조개 껍질 밑에 바늘귀만한 구멍이 있을 것입니다. 그 곳이 바로 대적이 사는 곳 입니다.”

하였다.

그들은 까치와 작별하고 그 산을 넘고 바위를 발견하여 그 밑에 있 는 흰 조개 껍질을 들어 보았다. 정말 거기에는 조그마한 구멍이 있 었다. 그 구멍은 파 내려갈수록 커져, 그 밑바닥에는 넓은 별계가 보 였다. 그러나 그 구멍은 매우 깊었으므로 쉽게 내려갈 수 없었다. 그 들은 풀과 칡을 구하여 길다란 줄을 만들었다. 그리고 제일 나이 젊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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은 한량에게 먼저 내려가 보라고 하였다. 내려가는 도중에 무슨 위 험이 있을 때에는 줄을 흔들기만 하면 위에 있는 사람들이 곧 그 줄 을 끌어올리기로 약속하였다.

제일 젊은 한량은 조금 내려가다가 무서운 생각이 나서 줄을 흔들 었다. 다음 사람은 반쯤 내려갔을 때에 줄을 흔들었다. 또 그 다음 사람은 삼분의 이 정도 내려가다가 무서워 줄을 흔들었다. 마지막으 로 제일 형 되는 한량이 내려가게 되었다. 그는 동생들에게 말했다.

“너희들은 아직 나이 어려서 안 되겠다. 내가 내려가서 도적을 죽이고 돌아올 때까지 여기서 기다려라. 그 때에도 줄을 흔들 터 이니 너희들은 줄을 당겨 올려야 할 것이다.”

그는 구멍이 끝나는 곳까지 내려갔다. 넓은 지하국에 훌륭한 집도 많이 있었다. 그는 대적의 집인 듯한, 그 나라에서는 가장 큰 집 옆 에 있는 우물가에서 선 버드나무 위에 몸을 감추고 대적의 동정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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살피고 있었다.

조금 있으니, 한 예쁜 여자가 물을 긷고자 우물까지 왔다. 그 여자 는 물동이에 가득 물을 길어 가지고 그것을 들려고 하였다.

그 때에 한량은 버들잎을 한줌 훑어서 물동이 위에 뿌렸다.

“아이고 몹쓸 바람이구나!”

하면서 여자는 길었던 물을 버리고 다시 물을 길었다. 여자가 다시 물동이를 들려고 하였을 때에, 한량은 또다시 버들잎을 내뜨렸다.

“바람도 얄궂어라.”

하면서 여자는 다시 물을 길었다. 세 번만에 여자는 나무 위를 쳐다 보았다. 그래서 ‘이 세상 사람’을 발견하고 놀라면서 물었다.

“당신은 어떻게 해서 이런 곳에 들어왔습니까?”

한량은 그가 온 이유를 말하였다. 여자는 다시 놀라면서,

“당신이 찾으시는 사람이 바로 접니다. 그러나 대적은 무서운 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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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이므로 죽이기는 어렵습니다. 그러니 나를 따라 오십시오.”

하고 한량을 컴컴한 도장 속에 감추고 커다란 철판을 가지고 와서 그것을 한량 앞에 놓으면서,

“당신의 힘이 얼마나 되는지 이것을 들어 보십시오.”

하였다. 그는 겨우 그 철판을 들어 올렸다.

“그래서는 도저히 대적을 당할 수 없습니다.”

그렇게 말하고 여자는 도적의 집에 있는 동삼수(童蔘水)를 매일 몇 병씩 가져다 주었다. 그는 그 동삼수를 날마다 먹었다. 그래서 필경 은 대철퇴(大鐵槌) 둘을 양 손에 쥐고 자유로이 사용하게 되었다. 어 떤 날 여자는 큰 칼을 가지고 와서,

“이것은 대적이 쓰는 것입니다. 대적은 지금 잠자는 중입니다.

그놈은 한번 자기 시작하면 석달 열흘씩 자고, 도적질을 시작하 여도 석달 열흘 동안 하며, 먹기는 석달 열흘 동안씩 먹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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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금은 자기 시작 한 뒤로 꼭 열흘이 되었습니다. 이 칼로 그놈 의 목을 베십시오.”

하였다. 한량은 좋아라고 여자를 따라 대적의 침실로 들어갔다. 대 적은 무서운 눈을 뜬 채 자고 있었다. 한량은 도적의 목을 힘껏 쳤 다. 도적의 목은 끊어진 채 뛰어서 천장에 붙었다가 도로 목에 붙고 자 하였다. 여자는 예비하여 두었던 매운 재를 끊어진 목의 절단부 에 뿌렸다. 그러니까 목은 다시 붙지 못하고 대적은 마침내 죽어 버 렸다.

한량과 여자는 대적의 창고를 검사하여 보았다. 한 곳간을 열어 보 니 금은 보화(金銀寶貨)가 가득 쌓여 있었다. 또 한 곳간에는 쌀이 가득 쌓여 있었다. 또 한 곳간에는 소와 말이 차 있었다. 또 한 곳간 에는 사람의 해골이 가득 쌓여 있었다. 모두 대적에게 피살된 사람 의 해골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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또 한 곳간을 열어 보니 거기에는 반생 반사(半生半死)된 남녀가 가득 있었다. 한량과 여자는 급히 미음을 쑤어서 불쌍한 사람들을 구하여 주었다. 그리고 대적의 금은 보화와 쌀, 소, 말 등을 그 사람 들에게 나누어 주었다.

한량과 여자는 몸에 지닐 수 있는 한의 보화를 가지고, 또 여자와 마찬가지로 대적에게 잡혀 온 다른 세 사람의 예쁜 여자와 함께 내 려왔던 구멍 밑에까지 왔다. 그래서 줄을 흔들었다.

지상에서 기다리고 있던 세 사람의 초립동이 한량들은 형이 너무 오래 돌아오지 아니하므로, 벌써 대적의 손에 죽은 것이라고 단념하 고 돌아가자고 하였을 때에, 마침 줄이 흔들리므로 좋아라고 줄을 당겨 올렸다. 한량과 네 사람의 여자들도 일일이 끌어올렸다.

네 사람의 한량은 네 여인을 구해 가지고, 그들의 부모들에게 데려 다 주었다. 여자의 양친들은 한없이 좋아하며 그들의 딸을 각각 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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량들에게 주고, 그 위에 그들의 재산을 많이 나누어 주었다. 큰 부잣 집 딸을 제일 형 되는 한량이 얻은 것은 물론이다. 부자의 딸은 남 편에게 이렇게 말했다.

“나는 도적놈에게 붙들려 가던 그 날 밤부터 도적에게 몸을 바 치라는 강요를 당했습니다. 그러나 나는 몸에 병이 있다고 하고 속인 뒤에 가만히 나의 허벅다리의 살을 베어서 헐미를 내어 그 것을 도적에게 보였습니다. 도적은 나의 상처를 치료하고자 여러 가지 약을 써서, 나의 상처는 수일 내에 낫게 되었습니다. 그러 나 상처가 나을 때마다, 나는 다시 살을 베어서 헐미를 만들었습 니다. 그래서 지금까지 정조를 지켜왔습니다. 이것을 보아 주십 시오.”

하고 그는 상처를 내어 놓았다. 정말 큰 헐미가 있었다. 한량은 약 속과 같이 처녀와 부잣집 재산의 반을 얻어서 잘 먹고 잘 살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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북부여

고기에 이르길, 전한 선제 신작 3년 임술 4월 8일에 천제가 홀승골성에 내려왔는데 오룡거를 탔었다. 도읍을 정하여 왕이라 일컫고 북부여라 하고 스스로 이름하여 해모 수라 하였다. 아들을 낳아 이름을 부루라 하고 해로써 성을 삼았다. 왕을 위해 상제의 명령으로 동부여로 도읍을 옮겼다. 동명제는 북부여를 계승하여 일어나 졸본주에 도 읍을 정하여 졸본부여를 이룩하였으니 이가 곧 고구려의 시조였다.

동부여

북부여 왕 해부루의 대신 아란불의 꿈에 천제가 내려와 말했다. “장차 나의 자손으 로 이곳에 나라를 세울 것인즉 너는 다른 곳으로 피해 가라 ― 이것은 동명왕이 장차 일어날 조짐을 말하는 것이다.” …(중략)… 이에 아란불은 왕께 권하여 그곳에 도읍을 옮기고 국호를 동부여라 하였다.

고구려

고구려는 곧 졸본부여이다. 졸본주는 요동 방면에 있었다. 국사 고려 본기에 기술하 기를, 시조 동명성제의 성은 고씨이며 이름은 주몽이다. 이에 앞서 북부여왕 해부루가 이미 동부여로 피해 갔으며, 후에 부루가 세상을 떠나자 금와가 왕위를 계승했다. 이 때 금와는 태백산 남쪽 우발수에서 한 여자를 만나 물은즉 여자가 “저는 하백의 딸로 이름은 유화라 하옵니다. 여러 아우들과 노닐고 있을 때, 남자 하나가 나타나 자기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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천제의 아들 해모수라 하면서 저를 웅신산 밑 압록강가에 있는 집속으로 유인하여 남 몰래 정을 통하고 가더니 돌아오지 않았습니다. 부모는 내가 중매도 없이 혼인한 것 을 꾸짖으며 마침내 이곳으로 귀양보냈습니다. ― 단군기에 의하면, 단군이 서하의 하 백의 딸과 친하여 아들을 낳아 이름을 부루라 했다고 하였다. 그런데, 지금 삼국사의 기록을 보면 해모수가 하백의 딸과 정을 통해 주몽을 낳았다고 되어 있다. 이들 기록 을 분석해 살펴보면 아마도 부루와 주몽은 배가 다른 형제일 것이다. ―” 라고 하였 다.

참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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