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검색 결과가 없습니다.

인문학으로서의 미술론 강의

N/A
N/A
Protected

Academic year: 2022

Share "인문학으로서의 미술론 강의"

Copied!
32
0
0

로드 중.... (전체 텍스트 보기)

전체 글

(1)
(2)

제8강

인문학으로서의 미술론 강의

제1주. 인문학으로서의 미술론 제2주. 이성과 규칙으로서의 예술 제3주. 상상과 감정으로서의 예술 제4주. 현대 미술의 두 흐름과 특성 제5주. 종합 토론

강 연 : 오 병 남 ( 서울대학교 명예교수)

사 회 : 이 해 완 (서울대학교 부교수) 토 론 : 오 종 환 (서울대학교 교수) 토 론 : 김 승 환 (조선대학교 교수) 토 론 : 정 수 경 (홍익대학교 강사)

이 책자에 서술된 내용 또는 자료는 필자의 동의 없이 활용하거나 인용할 수 없습니다.

(3)

I. 토론 1 : 오종환 선생님의 토론문과 답변 ………… 5

II. 토론 2 : 김승환 선생님의 토론문과 답변 ……… 9

Ⅲ. 토론 3 : 정수경 선생님의 토론문과 답변 ……… 13

Ⅳ. 청중 질문과 답변 ……… 22

제8강

인문학으로서의 미술론 강의

제5주_ 종합토론

(4)

제8인문학으로서의 미술론 강의

종합토론

오 병 남 ( 서울대학교 명예교수)

서구 미술의 역사에 대한 미학적 접근을 강연해주신 오병남 선생 님에게 감사드립니다. 지금까지(4주까지) 선생님께서 발표하신 내용 에 대해 크게 의견을 달리하지 않습니다. 따라서 저의 질문은 다소 세부적인 내용에 대한 것입니다.

토론 1

토론자 : 오 종 환 (서울대학교 교수)

서구 미술의 역사에 대한 미학적 접근을 강연해주신 오병남 선생 님에게 감사드립니다. 지금까지(4주까지) 선생님께서 발표하신 내용 에 대해 크게 의견을 달리하지 않습니다. 따라서 저의 질문은 다소 세부적인 내용에 대한 것입니다.

(5)

석학과 함께하는 인문강좌 5제8 인문학으로서의 미술론 강의

질문 1. 인상주의의 성립에 대한 설명에서 그 사회적 요인으로 현대 도시 속에서의 외로운 개인의 출현과 그에 따른 “시각적 주관 성의 원리”를 언급하셨는데, “시각적 주관성”은 선생님도 언급하신 인상주의에 대한 일반적 설명인 “사물이 반사하는 빛 또는 인상의 기록”이라는 주장과 모순되게 들립니다. 사물이 반사하는 빛의 기 록은 “세계에 대한 객관적-과학적 태도에 기초”하고 있기 때문입니 다. 현대도시가 성립하면서 나타난 소외된 개인이라는 현상과 인상 주의의 연관 관계는, 만일 그런 관계가 있다면, 다른 식으로 설명되 어야 할 것 같습니다.

답변 : 오종환 교수의 첫 번째 질문은 이런 것입니다. 요지인즉, 인상주의는 개인의 사적인 “시각적 주관성”을 원리로 하고 있는데, 그것은 “사물이 반사하는 빛 또는 인상의 기록”이라고 하는 인상주 의자들의 입장과 모순되지 않느냐는 것입니다. 제 원고를 검토해 보니 설명이 부족해서 그러한 의문이 제기될 수도 있다고 생각했습 니다. 여기서 제가 언급한 시각적 주관성의 원리라고 하는 것은 우 리의 눈에 의해 대상이 구성된다는 그런 의미로서가 아니라, 주어 진 대상에 대한 수동적 인상을 카메라처럼 눈이 그대로 수용한다는 의미에서입니다. 나의 사고나 감정과는 무관하게 단순히 내 망막에 비치는 인상이라는 그런 의미로서의 개인의 주관성을 말하는 것입 니다. 따라서 타인에 대한 사고나 감정이 전혀 개입되지 않고 있는 고립된 단독의 개인은 순전히 시각적 인상을 수용하는 인상주의자 들에게는 아주 적합한 주제가 될 수 있습니다. 왜냐하면 그러한 개 인이라면 인상주의자들에게는 단순히 빛을 반사하는 무표정의 자연 과 다를 바가 없는 존재이기 때문입니다. 그러므로 인상주의자들이 말하는 “사물이 반사하는 빛 또는 인상의 기록”이라는 인상주의자 들의 주장은 “시각적 주관성”이라는 그들의 원리와 모순되지 않는 다고 생각합니다.

(6)

제5주_ 종합토론

질문 2. 인상주의가 그 이후의 미술의 발전을 규정짓는 결정적인 유파로서 현대미술을 사실주의적 경향과 표현주의적 경향으로 나누 어 설명할 수 있다는 선생님의 전체적인 구도에 동의합니다. 또 그 러한 경향이 역사적으로는 모방과 영감의 대립 선상에서 이해될 수 있다는 선생님의 해석도 가능하다고 생각합니다. 선생님은 이러한 두 경향의 다양한 조합이 현대미술의 특성으로, 이러한 조합으로부 터 일종의 “기준 상실의 상황”이 초래되었다고 말씀하셨습니다.(4 주까지)

답변 : 저의 관점에서 볼 때 현대미술의 특징은 추상미술의 경우 처럼 새로운 실재의 구성이냐, 아니면 표현주의의 경우처럼 내적인 자아의 표출이냐와 같은 입장에서 규정짓기보다는 서로 다른 성격 의 두 흐름의 예술이 동일한 설득력을 가지고 다같이 기준임을 자 처하고 나서는, 기준상실의 상황에서 찾아져야 한다는 생각입니다.

제 1강에서 피력된 미학적인 개념을 가지고 설명한다면 제작으로서 의 모방과 뮤즈에 의한 영감의 두 전통에 기초한 예술 현상이 오늘 날에는 다같이 기준임을 주장하고 있는 데서 현대예술의 장에 기준 상실의 상황이 초래되었다는 주장입니다. 이러한 주장에 대해 오종 환 교수는 현대미술이 모방이나 영감의 개념만으로 설명될 수 없는 것이라면 그 모두를 아우를 수 있는 설명방식은 없을까, 동시에 현 대미술이 직면하고 있는 이 기준상실의 상황을 극복할 수 있는 대 안의 예술관은 무엇일 수 있는가 하는 점을 질문해 주셨습니다. 이 것은 정말로 엄청나게 중요한 의미를 지닌 문제입니다.

이 같은 문제를 해결해 줄 단서로서 저는 다음과 같은 견해를 피 력해 보겠습니다. 고대 그리스인들의 설명 방식대로 뮤즈에 의한 영감의 소산이라던 시에도 알고 보면 거기에도 실제로는 규칙의 요 소가 포함되어 있고, 규칙의 준수에 따라 수행되는 것으로 생각된 회화에도 실제로는 상상의 요소가 개입하고 있었던 것이 아니었는 가하고 생각해 보자는 것입니다. 왜냐하면 실제로 예술의 창조는

(7)

석학과 함께하는 인문강좌 5제8 인문학으로서의 미술론 강의

상상만으로 또는 규칙만으로는 가능하지 않은 활동이기 때문입니 다. 다만 예술의 창조에 있어 어느 쪽이 더 강조되고 있느냐 하는 점에 차이가 있을 분인 것 같습니다. 그렇다면 이처럼 두 요소 모 두를 지니고 있는 소지가 인간에게 있고, 그것을 어떠한 개념으로 규정하느냐의 문제가 남아 있습니다. 그에 관해서는 정수경 박사가 제기한 질문에 답변하는 자리에서 어떤 단서를 제시해 볼까 합니 다.

그러나 예술이 더 이상 과학과 연속선 상에 있는 것이 아니라는 생각이 확립된 오늘날의 미술 현상을 과학으로부터 영향을 받는 모 방의 개념으로 설명하기에는 문제가 발생할 것 같습니다. 현대의 미술을 모방과 영감의 대립쌍에 의하지 않고 설명할 수 있는 가능 성은 없을까요? 그리고 현대의 “기준 상실의 상황”을 극복할 수 있 는 방안이 무엇이라고 생각하시는지 궁금합니다.

(8)

제5주_ 종합토론

토론 2

토론자 : 김 승 환 (조선대학교 교수)

고등학교 시절 정독 도서관을 오가며 입시의 중압감과 청춘의 열 기를 덜어내기 위해 자주 들렀던 프랑스문화원은 대학생이 되어 민 주화와 자유에 목마른 저에게 영화를 통해 새로운 세계와 문화를 보여주었던, 일종의 문화적 소도였습니다. 그런 연유로 대학교에 입 학하고 일 년 후 철학, 미학, 종교학 중에서 전공을 선택할 때, 제 가 주저 없이 미학을 선택했던 것은 순전히 영화 때문이었습니다.

그런데 막상 미학을 공부하게 되면서, 저의 관심은 영화에서 미술 로 옮겨가게 되었습니다. 그러한 변심은 바로 오병남 선생님의 강 의와 선생님께서 번역하신 모리스 그로써의『화가와 그의 눈』이란 책이 계기가 되었습니다.

강의 첫 시간에 강좌 소개를 하시던 중 선생님께서는 강의실 창 밖의 나무를 불현듯 가리키시며, “리포트 제출은 저 나무의 낙엽이 다 떨어지기 전까지 제출하도록...”이란 말씀을 하셨지요. 무슨 연유 인지 그 말씀은 저의 심장을 마구 뛰게 하였습니다. 당시의 그 어 떤 강의에서도 들을 수 없었던 시적 표현은 마치 뮤즈로부터 인스 피라레(inspirare)를 받은 듯 저를 사로잡았던 것입니다. 이후 선생 님의 강의는 때론 코레이아(choreia)처럼 미와 예술의 제의이자 축 제이기도 했고, 때론 우리를 엔토우시아스모스(enthousiamos)에 빠 뜨리기도 했습니다. 그런 과정 속에서도 제가 인문학도로서 미와 예술을 바라볼 수 있게 만드신 힘은 선생님 강의의 저변을 흐르고 있던 해박한 지식과 냉철한 논리, 촌철살인의 수사학과 유머 감각 에 있었습니다.

저를 미술의 길로 이끈 또 다른 인스피라레는 모리스 그로써의

『화가와 그의 눈』이었습니다. 이 책은 다양한 안료와 색 등 회화 의 실제적인 측면에 대한 소개와 함께 미술의 재료나 기법이 화가

(9)

석학과 함께하는 인문강좌 5제8 인문학으로서의 미술론 강의

가 선택하는 주제와 어떻게 상호 관련을 맺고 있는가 등을 설득력 있게 보여줍니다. 미술에 대한 다양한 입문서와 이론서가 많지 않 던 시절인 80년대 초에 이 책은 붓 한 번 제대로 잡아 본 적이 없 는 문외한에게 신선한 자극이자 정보였을 뿐만 아니라, 인문 교육 으로서 회화를 바라보는 신선한 저자의 태도를 보여주었습니다. 이 러한 책을 선택하여 번역함으로써 당시 척박했던 우리의 미술 문화 에 씨앗을 뿌리신 것은 오 선생님의 혜안이었다고 평가하지 않을 수 없을 것입니다. 그 혜택을 받은 사람이 현재 미술 대학에서 미 술사와 미술이론을 가르치는 저뿐만 이겠습니까?

<인문학으로서 미술론 강의>의 토론자로 섭외를 받았을 때, 거의 삼십 년 만에 선생님의 명강의를 다시 들을 수 있다는 기대에 부풀 었습니다. 그러나 애석하게도 강의 일정 기간에 해외출장이 겹쳐서 강의 현장에 참여할 수 없었습니다. 대신에 이메일을 통해 선생님 의 강의록을 접할 수 있었습니다. 강의록을 읽으면서 저는, 선생님 의 강의가 고대 그리스로부터 르네상스의 리버럴 아트로서의 미술 개념에 이르기까지 미술이란 말과 체제가 어떻게 자리를 잡아갔는 가를 보여주는 제 1강에서 출발하여 이탈리아 르네상스와 프랑스의 고전주의, 18-19세기의 낭만주의를 거쳐 인상주의에 이르는 서양 미술의 흐름을 개념 중심으로 통찰하고 정리하시려는 원대한 뜻이 있음을 알게 되었습니다. 아울러 그러한 개념사로서의 서양미술론 의 정리를 위해 얼마나 다양하고 폭 넓은 문헌을 참고하셨는지, 선 명한 개념의 분석을 위해 얼마나 섬세하고 주의 깊은 통찰력을 경 주하셨는지에 놀랐습니다. 아마도 교양이 풍부하신 청중들께서는 매주 다채로운 미술론의 향연을 만끽하셨으리라 믿습니다.

청중들의 다양한 질문이 예상되는 바, 저는 제 1강과 제 4강을 결합해서 하나의 질문을 드리고자 합니다. 선생님께서 제 1강에서 설명해 주셨듯이, 현재 우리가 미술이란 말로 이해하여 사용하고

(10)

제5주_ 종합토론

있는 회화와 조각이 고대 그리스의 테크네(technē)라는 말로부터 시작된 긴 여정을 거쳐 마침내 18세기 fine arts(혹은 beaux-arts) 로 정착해서 현재에 이르고 있습니다. 이러한 변화는 그러한 행위 나 개념을 바라보고 이해하는 방식의 변화를 전제한다고 볼 수 있 습니다. 아울러 그렇게 바라보고 이해하는 방식의 변화를 야기한 것은 실례로 사회의 변화에 따른 미술가의 사회적 지위의 변화, 매 체에 대한 이해 방식의 변화 등에서 그 이유를 찾을 수 있을 것입 니다. 그런 점에서 볼 때, 18세기 이래로 미의 범주가 매우 다양해 져 왔고, 특히 인상주의를 지나 큐비즘을 거치면서 미술이 더 이상 문학이나 종교, 역사와의 관계를 청산하고 순수하게 조형적인 (plastic) 측면에 매진하면서 현대 미술은 급진적으로 변모했습니다.

이를 반영하듯, 20세기 중반이후 프랑스의 미술대학은 더 이상 fine art가 아닌 plastic art란 용어를 사용하고 있습니다. 더욱이 1980년대 이후에는 디지털 매체의 발달과 함께 기존의 고급 미술 에 대한 연구를 넘어 대중적 시각 이미지에 대한 관심을 포섭하고, 또한 이미지의 제작자만큼이나 수용자의 측면을 중시하는 개념인 시각미술(visual art) 혹은 시각문화(visual culture)라는 용어를 사 용하는 영미권 대학이 나오고 있습니다. 또한 프랑스의 경우, 초중 등 미술교과교육의 목표가 ‘시각문화의 이해’를 표방하고 있습니다.

이러한 현상을 어떻게 바라보아야 할까요? 일시적인 현상으로 이해 해야 하는 것인지, 아니면 약 300여 년간 그 효력을 유지했던 파인 아트란 개념의 효용성이 약화되어 곧 그 수명을 다할 날이 가까워 졌다고 보아야 할까요? 이 질문에 대한 답에 따라 미술을 바라보는 우리의 태도도 많이 바뀌어야 하지 않을까요?

감사합니다.

답변 : 김승환 교수의 질의서를 받고 보니 김교수는 30년 전이 회상된다고 했습니다만 저는 실로 60여년 전의 일이 회고됩니다.

그 사이 여러 가지 많은 일이 있었습니다만 김교수에게까지 그렇게

(11)

석학과 함께하는 인문강좌 5제8 인문학으로서의 미술론 강의

나쁜 영향을 준 일이 있을 줄은 몰랐습니다. 이 시대에 인문학, 그 것도 미학과 같은 학문을 한다는 것은 백수가 되는 길이니 잘 생각 해서 결정을 내리라고 했을망정 그것을 권하지는 않았을 것이기 때 문입니다. 최근에는 인문학이 거리에까지 진출하고 있습니다만, 그 래서 “거리의 인문학”이란 말까지 유행하고 있습니다만 지금부터 60년 전의 저의 경우에 있어서나, 30년 전의 김교수의 경우에 있어 서 역시 “미학”은 그 자체가 백수가 된다는 것이나 다름없는 말이 었습니다. 그렇지만 이 세상에는 백수가 있어야 한다고 생각했고, 저는 지금도 그렇게 생각하고 있습니다. 흰 백(白) 자에 손 수(手) 자, 세상에는 정말 손이 깨끗한 사람이 있어야 한다는 생각에는 지 금도 변함이 없습니다. 인문학을 하는 사람은 특히 그래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아니, 그럴 수밖에 없습니다. 그래서 저는 “백수는 거 지다”라는 말을 합니다. 강의를 들으신 분 중에 제가 왜 미학을 택 했느냐는 질문을 하신 분이 있는데, 저는 거지가 되기 위해서 미학 을 택했다고 말씀드리고 싶습니다. 구걸하는 사람이라는 뜻의 거지 가 아니라, 클 거(巨) 자에 뜻 지(志) 자를 말합니다. 인문학을 하는 사람은 옛날이나 지금이나 큰 뜻을 품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아 마도 김교수는 그런 제 말의 영향을 받지 않았나 생각합니다.

김교수가 한 질문의 핵심은 서구의 18세기 근대 시기를 통해서 형성된 “예술”(fine arts)이란 말과 체제와 개념 - 그것이 고전적인 개념이든 낭만적인 개념이든 아니면 현대적인 개념이든 - 의 한계 가 온 것인지, 그렇다면 그 대안은 무엇인지를 물은 것으로 이해하 고 있습니다. 저는 그 점에 대해 틈틈이 의견을 밝히면서 그러한 근대적인 사고에 한계가 온 것 같다는 생각을 피력해 왔습니다. 기 본적으로 “fine arts”란 말은 “beauty”(가치)와 “arts”(기술)의 결 합인데, 이제는 “파인 아트”라는 말과 체제가 성립되기 이전처럼 미 - 그것이 이념으로서의 미이든 형식으로서의 미이든 아니면 감 정으로서의 미이든 - 의 개념과 기술의 개념의 관계가 그렇게 긴밀 하지 않은 가운데 오히려 양자가 분리되고 있는 것 같다는 생각을

(12)

제5주_ 종합토론

갖고 있기 때문입니다. 그렇다고 할 때, “파인 아트”란 말은 그 존 재 이유를 잃고 맙니다. 그 같은 사실을 예시해주는 사례로서 20세 기 이후 현재까지 확대되어 온 예술의 폭을 열거해 보면 좋습니다.

그 중에는 사진이나 영화도 있으며, 만화나 광고를 포함하여 다양 한 시각미술 이라 이름 붙이는 현상들이 열거될 수 있습니다. 그들 을 18세기의 예술이란 개념과 체제 속에 포함 시키기 힘들다고 할 때, 따라서 김승환 교수가 이미 인식하고 있듯이 “예술”이란 말보 다는 대안으로 “visual art”니 “visual culture”니 하는 말을 사용 해 오고 있는 것이 그 같은 사실을 말해주고 있습니다.

따라서 18세기 바움가르텐이 “감성의 학”으로서의 미학을 제시 했듯이 현재의 미학자들에게는 새로운 미학을 구축해야 할 과제가 주어졌다고 생각합니다. 그래서 예술(fine arts)을 대체할 수 있는 새로운 말과 체제와 개념을 수립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제 개인 적인 견해로는 이런 개념을 올바로 정립할 수 있을 때 그것은 오늘 날 진행되고 있는 현상을 포함하여 새롭게 등장하는 문화를 바라보 는 시각의 성립에 기여할 수 있으리라 생각합니다. 왜냐하면 한 시 대의 예술 혹은 문화를 이해한다는 것은 결국 그 시대의 소산에 대 한 개념을 이해하는 일이기 때문입니다.

토론 3

토론자 : 정 수 경 (홍익대학교 교수)

1. 선생님께서는 르네상스기의 회화에 대해 설명하시면서, “과학 으로서의 회화”라는 개념을 사용하셨습니다. 과학으로서의 회화는 마치 과학자들이 다양하고 무한한 자연현상들에 대해 관찰하면서 수학을 통해 법칙을 발견해내듯이, 화가도 수학을 통해 인간이라는

(13)

석학과 함께하는 인문강좌 5제8 인문학으로서의 미술론 강의

자연(human Nature)에 관해서도 그 조화로운 비밀을 밝혀내고 그 것을 회화로 그려낼 수 있다는 뜻이라고 하셨습니다. 그리하여 회 화가 자연을 모방함에 있어 한갓된 개별 양상을 모방하는 것이 아 니라 보편적 자연(universal Nature)을 모방한다면, 그 회화는 아름 다운 것이 된다고 설명하셨습니다. 그런데, 이러한 모방은 필경 이 상화된 모방일 것이며, 그런 한 실제 눈에 보이는 감각적 자연의 양상에 대한 일정한 조정 혹은 변형을 수행하는 것이 될 텐데, 이 러한 변형은 언뜻 플라톤이 피디아스의 신상을 비난하며 적용했던

‘판타스마’의 개념을 떠올리게 합니다. 그러나 르네상스 화가들이 실물과 다르게 인물이나 자연을 이상적으로 그린 것은 비난의 대상 이 되지 않는데, 그 까닭은 무엇인지, 이 지점에서 피디아스의 신상 의 비례 문제와 르네상스 화가들의 비례 사용의 경우의 차이를 다 시 한 번 구분하여 설명해주시면 좋겠습니다.

나아가 이러한 이상화된 자연의 모방도 모방이라고 부르는 것이 적절한 것인지요? 비슷한 맥락에서, “아리스토텔레스에 따르면 음 악도 모방예술로 분류할 수 있다”고 쓴 미학 논문도 있습니다. 음 악과 미분화된 상태의 시를 아리스토텔레스가 <시학>에서 모방 개 념을 통해 설명한 것을 가지고 하는 이야기입니다. 이때 아리스토 텔레스의 모방은 외양 모방이 아니라 본질 모방이라고 이야기됩니 다. 이상화된 자연의 모방이라는 르네상스의 생각은 바로 이러한 아리스토텔레스의 본질 모방 개념에 입각한 것이기도 합니다. 그런 데 모방 개념의 이러한 용법은 모방에 대한 일상적이고 상식적인 이해에는 부합하지 않는 듯합니다. 본질의 ‘구현’이라고 하면 좋을 것을 굳이 본질의 ‘모방’이라고 하는 까닭은 무엇인지요?

답변 : 정수경 선생이 제기 했던 첫 번째 질의는 이렇게 요약될 수 있습니다. 1) 이른바 “보편적인 자연”에 “모방”이란 말이 적용 될 수 있는가 하는 것입니다. 그리고 2) 르네상스 시대에 그런 것 을 모방한 회화는 아름다운 것으로 평가되었는데, 고대 그리스 시

(14)

제5주_ 종합토론

대에 제작된 비슷한 작품, 예컨대 피디아스의 아테네 신상에 대해 서는 왜 플라톤이 비난했었는지, 그리고 3) 아테네 신상에 적용된 비례와 르네상스 시대의 회화나 조각에 적용된 비례의 차이가 무엇 인지 하는 것입니다. 사실 이것은 제 2강을 다시 되풀이해 달라는 얘기나 다름 없는 주문입니다. 이들 질문에 간단히 답변하자면 다 음과 같습니다. 르네상스인들은 고대인들과 마찬가지로 그런 “보편 적인 자연”의 구현에 대해서도 “모방”이란 말을 적용했습니다. 그 것이 옳으냐 그르냐는 별개 문제로 당시 르네상스 이론가들은 그 모방 개념을 고대 그리스로부터 차용해서 거기에도 적용했습니다.

두 번째로, 플라톤에게 있어서 판타스마는 미의 개념에 결부되지 않았고, 따라서 그것은 찬미의 대상이 될 수가 없었습니다. 세 번째 로, 비례의 문제에 관해서는 정확한 기록이 없었기 때문에 르네상 스인들은 그것을 자기들 입장에서 수학을 가지고 정형화하려 했다 는 점에 그들의 특징이 있습니다.

2. 선생님께서는 3강에서 낭만주의의 두 원리로 상상력과 감정을 제시하시고 각각의 개념을 보다 세분화하여 정밀하게 설명해주셨습 니다. 그런 가운데 퍼스트를 인용하여 상상력이라는 능력에 대한 서로 다른 두 이해방식에 대해 제시하셨습니다. 그 첫째는 “과거에 이미 겪었던 경험들을 마음에 환기시켜 그것을 다소 상세히 재현시 키는 힘”이었고, 둘째는 “전에 경험되지 않고 단순히 암시되거나 떠올려졌던 사물의 심적 이미지들을 구성하여 창조하는 힘”이었습 니다. 이 중 후자가 이후에 상상력을 이해하는 데 있어 더 주류가 된 듯하며, 우리가 일반적으로 상상력을 창조력과 직결된 것으로 생각하게 된 기원이 된 듯합니다. 그런데, 만약 상상력에 대한 이 견해를 조금 더 끌고 나가자면, 경험의 유무와 무관하게 떠오르는 이미지들을 구성하고 창조하는 힘이 강한 사람들은 어린 아이들이 거나, 극단적으로는 정신병자들일 수도 있습니다. 간혹 정신병자들

(15)

석학과 함께하는 인문강좌 5제8 인문학으로서의 미술론 강의

의 그림에 대해 관심을 갖는 미술가들이나 이론가들이 있었던 까닭 도 그들의 상상력이 그 누구의 것보다도 생생하고 강렬한 것이었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그들의 그림은 일반적으로는 훌륭한 예술로 여 겨지지는 않습니다. 정신병자들의 그림에서 많은 영감을 얻었다고 스스로 밝히고 있는 장 드뷔페의 그림은 막상 정신병자의 그림도 아니고, 그들의 그림과 동질적인 것으로 여겨지지도 않습니다. 이러 한 상황에서 우리는 상상력이 예술의 창조에 중요한 필요조건이기 는 하지만, 충분조건까지 형성하지는 않는 것 같다는 생각을 하게 됩니다. 즉, 상상력이 진정한 예술의 창조력이 되기 위해서는 무엇 인가 더 있어야 하지 않냐는 것입니다. 상상력과 예술의 창조의 상 관관계에 대한, 혹은 좀 더 일반화시켜 창조력으로서의 상상력이라 는 생각에 대한 선생님의 견해를 듣고 싶습니다.

답변 : 정수경 선생의 두 번째 질문은 이렇게 요약할 수 있겠습 니다. 예술이 창조적 상상력만으로 가능할 수 있겠느냐는 것입니다.

왜냐하면 어린아이들이거나 극단적으로 정신병자들의 그림들도 상 상적 창조로 간주되고 있다는 점 때문입니다. 그들의 소산이 예술 작품으로 간주될 수 있다면 모르되, 그렇지 않다면 예술 창조에 있 어서 상상력은 필요조건이지 충분조건은 아니지 않겠느냐 하는 것 이 질문의 요지입니다. 진정 상상만으로 예술 창조가 가능할 수 있 을까? 실제로 그러한 입장에서 활동하고 있는 현대 미술가들이 있 습니다. 저는 그러한 예술과 그러한 예술을 정당화하는 이론에 대 해서 이견을 표합니다. 왜냐하면 정수경 선생이 문제로 제기했듯 상상 그 자체가 무의미한 것이 되지 않기 위해서는 그것이 예술창 조로 되기 위한 충분조건이 충족되어야 하기 때문입니다.

3. [청중질문과 연결]

선생님께서는 4강에서 낭만주의에 대한 반발로서 등장한 ‘리얼리

(16)

제5주_ 종합토론

티의 추구’라는 것을 현대미술의 ‘현대성’으로 규정하고 계신 듯합 니다. “사실주의는 현대미술의 초기에 두 경향으로 나타나고 있다.

하나는 G. 쿠르베의 사회적 현실에 대한 주목이요, 다른 하나가 인 상주의자들의 시각적 인상에 대한 주목이다. 그 연장으로서 서양의 현대미술은 크게 두 경향, 즉 추상미술과 사회주의 리얼리즘 (socialist realism)으로 전개되어 왔다.”(4강 6쪽)고 쓰고 계십니 다. 그런데 여기서 인상주의에서 추상미술로 이어지는 한 계보에 관해 의문이 듭니다. 현대미술의 현대성이 ‘리얼리티의 추구’에 있 고 인상주의의 ‘시각적 인상’에 대한 추구도 그 일환이라는 것은 충 분히 이해가 되는 일이나, 이 연장에서 추상이 나온다는 것은 좀 더 설명이 필요해보입니다. 추상 회화는 그 어떤 회화보다도 리얼 리티와 멀리 떨어져있는 듯하기 때문입니다. 인상주의 회화의 ‘등가 화된 화면’이 양식적인 면에서 추상으로 향한 과도기적인 것으로 해석될 수 있다는 점과 별개로, 현대회화로서의 추상회화는 리얼리 티의 추구라는 현대미술의 현대성과 어떻게 연관될 수 있을지 궁금 합니다.

혹은 리얼리티의 추구는 현대미술의 초기 경향일 뿐이며, 이후로 는 한편으로는 그 추구가 계속 되는 쪽도 있고 (동유럽의 사회주의 리얼리즘처럼) 다른 한편으로는 그 추구로부터의 점진적인 결별이 이행되는 쪽이 있었던 (서유럽에서 발전된 추상미술처럼) 것일까 요? 그렇다면 현대미술은 그 전성기의 국면에서는 무엇인가 다른

‘현대성’ 개념을 통해 규정되어야 하는 것일까요?

‘리얼리티의 추구’라는 현대성의 적용 범위 및 추상미술과의 관계 에 대한 선생님의 견해를 듣고 싶습니다.

답변 : 세 번째 질문에 대해서는 다음과 같이 답변하겠습니다. 현 대 미술의 “현대성”을 리얼리티의 추구라고 말한 적은 없습니다.

본 논문에서 현대미술에서의 현대성이라는 말을 했을 때 그것은 평 면구성(composition)을 뜻하는 것이었습니다. 그리고 이 구성이 주

(17)

석학과 함께하는 인문강좌 5제8 인문학으로서의 미술론 강의

제가 된 것이 추상미술이라고 했습니다. 이러한 구성의 개념이 인 상주의에서 그 싹이 자란 것이라는 점에서 인상주의를 거론한 것입 니다. 어떻든 정 박사의 질문은 추상미술에서의 구성과 리얼리티 사이에 어떤 관계가 성립할 수 있느냐의 문제가 될 것입니다. 추상 미술도 처음에는 리얼리티를 추구하려고 했습니다. 그러나 그것은 기존의 실재가 아니라는 점에서 실재의 창조입니다. 그러나 새로운 실재의 창조를 밀고 나가다 보면 그것은 무의미한 것으로 귀결되고 맙니다. 그 실재를 창조하다보니까 바로 앞서 얘기한 대로 상상적 인 무의미가 되어 버리고 만 것입니다. 이 무의미를 옹호하는 개념 으로 주장되고 있는 것이 창의성입니다. 그래서 앞의 질문 2와 관 련시켜서 얘기할 때, 상상만으로 창조가 가능하느냐는 물음은 창의 성만으로 예술이 가능할 수 있느냐 하는 질문과 같은 것입니다. 다 시 반복하지만 이와 같은 의미의 창의성은 넌센스하다고 생각합니 다. 바로 이 점과 관련하여 칸트의 천재 개념에 대한 유명한 정의 인 “천재의 특징은 창의성에 있으나 그 창의성이 규칙과 조화하지 않을 때에는 공상에 지나지 않는다”는 말을 음미해 볼 필요가 있습 니다. 그렇다고 칸트가 당시의 예술을 전적으로 옳게만 설명했다는 것은 아닙니다.

4. 위의 질문의 연장이라고 할 수 있는 질문입니다. 선생님께서는 4강에서 그린버그의 모더니즘 이론을 소개하시고 현대미술의 전개 에 관해 그의 견해를 일정하게 수용하시면서도, 그가 자신의 이론 에서 다루는 회화들이 현대회화의 전부일 수는 없다는 점을 지적하 셨습니다. 이는 매우 정확하고도 중요한 지적입니다. 그린버그의 모 더니즘 회화에 포함되지 않는 회화들 중에는 선생님께서도 언급하 셨던 표현주의 회화, 그리고 1930년대 전세계를 풍미했던 초현실주 의회화도 있고, 1920년대 러시아에서 새롭게 등장한, 어찌 보면 그 린버그가 옹호했던 추상의 선구인 듯이 보이는 말레비치, 몬드리안,

(18)

제5주_ 종합토론

칸딘스키 등의 추상회화도 있습니다. 결국, 그린버그의 모더니즘 미 술론은 현대 회화 일반을 설명하는 포괄적인 설명적 이론은 되지 못하는 셈입니다. 이런 문제에 관해 선생님께서는 “현대미술 전체 를 아우를 수 있는 시각과 접근이 요구된다 함을 제언하는 것으로 만족하려 한다”고 말씀하셨는데, 그러한 선긋기에도 불구하고, 이러 한 포괄적인 시각 혹은 접근을 가능하게 해줄 핵심적 개념이 될만 한 것은 무엇이라고 생각하시는지, 선생님의 고견을 듣고 싶습니다.

답변 : 정수경 박사의 네 번째 질문은 정말 중요하게 받아들이고 싶습니다. 동시에 그것은 앞서 오종환 교수의 질문과 관련된 것이 기도 합니다. 요컨대 추상미술도 현대미술이요 표현주의도 현대미 술이라고 한다면 현대성의 개념을 추상미술에만 적용시킬 수가 없 다는 것입니다. 그 양자 중 하나만이 현대적인 미술이라고 한다면 모르되 그렇지 않다면, 양자 모두를 현대적인 것으로 포괄할 수 있 는 현대성의 개념에 대한 정립이 요구됩니다. 그렇다면 이 양자를 포괄할 수 있는 현대성의 개념은 무엇일까? 이런 문제제기에 대한 답변을 하고자 하는 것이 저의 미학적인 사고의 여정 중에서 마지 막 과제로 되고 있습니다.

여기서 그러한 과제를 해결하기 위해서 근본적으로 어떤 대안의 개념을 제시하기 전에 예술의 역사와 예술활동의 본질을 반성해볼 필요가 있습니다. 어느 시대의 경우에 있어서나 예술은 인간의 예 술이요, 인간에 의한 특수한 활동입니다. 그러한 활동이 사회적인 요구에 따라 어떨 때는 이성의 이름으로 정당화 되어야 했고, 어느 때는 상상의 이름으로 정당화되어 찬미되기도 했습니다. 또 한편으 로 이성이나 상상이 인간 정신이라고 할 때, 예술 활동은 그 같은 인간 정신과는 반대되는 자연적인 힘의 발현으로서 이해되기도 했 습니다. 그래서 오늘날엔 극단적으로 정신 중에 가장 자유로운 정 신인 상상만을 강조하는 예술이 있고, 다른 한편으로는 그 정신에 반대되는 자연을 예술의 힘으로 인정하는 경우도 있습니다. 그러나

(19)

석학과 함께하는 인문강좌 5제8 인문학으로서의 미술론 강의

예술은 그 어느 쪽에서의 활동만도 아닙니다. 왜냐하면 그것은 예 술이 인간의 예술이기 때문입니다. 그런 점에서 상상으로서의 예술, 자연적 힘에 의한 예술이라는 입장은 인간을 정신적 존재로만 잘못 이해한 데서 나오는 예술이요, 자연적인 힘이 자발적으로 표출된다 는 예술관도 사실은 잘못된 것입니다. 이 문제를 다른 식으로 제기 하면 한쪽에서는 인간이 정신만의 존재라고 생각하는 입장이고, 다 른 한쪽에서는 인간이 자연이라고 생각하는 사고방식에서 비롯된 것입니다. 어느 경우나 그 같은 예술관은 기본적으로 잘못된 인간 관에 기초된 사고에서 나온 입장들입니다.

따라서 정수경 박사가 질문에서 지적한 바 있는, “현대 미술 전 체를 아우를 수 있는 시각과 접근이 요구된다는 것을 제언하는 것 으로 만족하려 한다”는 저의 말은 결국 앞으로의 예술은 예술만의 문제가 아니라 인간에 대한 이해의 문제와 직결되어 있는 것이라는 사실을 인식할 때 그 방향의 실마리가 제공될 수 있다는 생각입니 다. 인간에게는 예술을 가능케 하는 어떤 소지로서 정신만도 아니 요 자연만도 아닌 양자를 내포하고 있는 어떤 토대가 있다는 생각 입니다. 그것이 예술을 가능케 하는 샘(泉)입니다. 사실상은 그러한 토대가 앞서 언급했듯 그 시대의 사회적인 요건에 따라서, 달리 말 하면 사회의 요구를 정당화한 당시의 철학적인 입장에 따라서 이성 이나 신성으로, 또는 감정이나 상상으로 단극적으로 이해되어 왔다 는 점을 지적하고 싶습니다. 결론적으로 예술의 문제는 인간 본질 파악의 문제와 직결되어 있습니다. 이런 입장에서라면 사실상 추상 미술도 같은 뿌리에서 나온 것이고 표현주의도 같은 뿌리에서 나온 것이고 오늘날의 포스트 모던도 같은 뿌리에서 나온 것이라고 생각 하고 있는 중입니다. 바로 이것이 제가 주장하고자 하는 예술창조 의 샘으로서 인간의 토대요, 모든 인간은 예술을 가능케 하는 그런 토대를 가지고 있습니다. 그것이 제가 제언하고자 하는 바, 정상인 (正常人)이라면 누구에게나 공통적으로 내재되어 있는 정상적 토대 라는 것입니다. 이 같은 토대로부터 또 어느 요소가 발휘되어 새로

(20)

제5주_ 종합토론

운 예술을 창조할지 모르고 있는 중이 아닌가 합니다. 그러나 그것 의 실체를 아직은 완전히 파악하지 못하고 있습니다. 이와 같은 사 실을 염두에 둘 때 우리 인간은 아직도 인간을 완전히 이해하고 있 지는 못한 것 같습니다. 앞으로 예술가나 미학자는 과학자가 새로 운 원소를 발견하듯이 새로운 예술의 장을 개시(開示)할 미지의 인 간적 요소를 자각하는 일에 주목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21)

석학과 함께하는 인문강좌 5제8 인문학으로서의 미술론 강의

강연 참가 청중의 질문

※ 다음 질문들은 강연에 참여하신 청중들께서 강연을 수강하신 이후 주신 질문들입니다. 사무국에서는 원활한 토론회의 진행을 위해 청중들의 질문을 취합․정리하여 요약하였습니다.

◉ 이 질문에 대해서는 강의 요약을 통해 어느 정도 답변이 되었으리라 생각되며, 오 선생님의 추가 답변을 듣겠습니다.

질문 1 : 서구인들의 예술은 과학이라는데 그렇다면 고전주의와 낭만주의의 차이점은 무엇인가요?

답변 1 : 압축적으로 도식화하자면, 고전주의는 합리적 규칙을 중시하는 “모방” 개념을, 낭만주의는 인간 내면의 감정과 상상력을 중시한다는 점에서 “영감” 개념을 강조하는 전통의 연장선상에 있 습니다. 다만 고대와 달리 고전주의는 합리적 규칙을 통해 “본질을 모방”할 수 있다고 보았고, 낭만주의는 영감이 뮤즈라는 신의 능력 에서 비롯된 것이 아니라 인간의 능력인 상상력이라 보았습니다.

예술을 일종의 과학으로 보는 견해는 고전주의적 사고입니다.

◉ 첫 시간 강의 내용과 관련한 질문입니다. 인문 교육과 관련된 것으 로, 이에 대한 교수님의 견해를 들어보겠습니다.

질문 1 : 고대 그리스인들에게 교양인을 양성하기 위한 교육의 첫 단계가 영혼과 몸을 위한 교육으로 시가와 체육이 제시되었다고

(22)

제5주_ 종합토론

합니다. 오늘날 과외활동으로서의 기능 위주의 교육방법과 차이점 이 있다면 어떤 내용이 있을지 들려주셨으면 합니다.

답변 1 : 플라톤이 『국가』에서 언급하고 있는 교육은 “철인(哲 人) 통치자”를 양성하는 목적에 따른 단계적 교육 과정입니다. 지 식 교육 이전에 건강한 정신과 신체를 다지는 유년기 교육이 바로 시가와 체육이었습니다. 시가를 통해서는 올바름을 내면화 할 수 있는 토대를 다지고자 했는데, 물론 이 때의 시가는 올바른 내용을 담고 있는 것으로 한정됩니다. 그리고 체육을 통해서는 건강한 정 신을 담기에 적합한 건강한 신체를 단련시키고자 했습니다. 그 이 후에 수학이나 천문학 등의 지식 교육이 이뤄지고 나중에 성인이 되어야 마지막 단계로서 변증론을 배우게 됩니다. 오늘날의 교육에 대한 질문자의 견해가 어떤지 정확히는 모르겠으나, “기능 위주”라 는 표현으로 볼 때 오늘날의 교육이 인성 도야보다는 직업적 능력 향상에 목적이 있다고 생각하신 것 같습니다. 오늘날의 교육에 그 런 측면이 강하게 부각되어 있다는 점에서는 저도 동의합니다.

◉ 둘째 시간 고전주의 강의와 관련해서 고전주의의 도덕적 성격을 설 명하실 때 미켈란젤로 <최후의 심판>을 예로 보여주신 적이 있는데, 그 에 관한 간단한 사실 확인 질문입니다.

질문 1 : <최후의 심판>이 원래는 모두 알몸이었으나, 후에 옷을 입혔다고 하셨는데 언제 / 누가 옷을 입혔나요?

답변 1 : <최후의 심판>은 1541년에 완성되어 공개된 이후 인물 들을 모두 나체로 그린 것 때문에 계속 문란하다는 비판에 시달렸 는데, 결국 1564년에 수정을 명하는 칙령이 반포되었습니다. 실제

(23)

석학과 함께하는 인문강좌 5제8 인문학으로서의 미술론 강의

수정작업은 미켈란젤로 사후에 그의 제자 볼테라에 의해 이뤄졌습 니다.

◉ 셋째 시간 낭만주의에 대한 강의 초반에 고딕 취향의 유행에 대해 말씀하신 부분이 있는데, 이에 대한 약간의 부연 설명이 필요할 것 같습 니다. 미학자의 고유한 연구 영역은 아니겠습니다만, 고딕과 바로크 건축 에 대한 답도 간단히 부탁드립니다.

질문 1 : 고딕과 고전을 대조시킨 것으로 보아서 고전에서 발전 된 것이 고딕으로 이해되는데, 고전에 향수를 느끼는 것 같기도 하 고 고전과 고딕의 두드러진 차이가 무엇인지? 혼란스럽습니다.

답변 1 : 이 항목의 질문 4에 대한 답변을 참조하시기 바랍니다.

질문 2 : 1700년대 당시 건축이 과거 르네상스 시대 건축보다 만족스럽지 못하여 고딕을 선호하는 시각이 부활된 것으로 보시는 것입니까?

답변 2 : 건축을 포함하여 프랑스 고전주의 예술에 대한 불만이 18세기 중엽에 낭만적인 요소를 지니고 있는 고딕의 부활로 이어졌 다는 말씀을 드린 것입니다.

질문 3 : 시기적으로 고딕이 고전시기 이후로 이해되나, 시기의 전후를 불문하고, 일반적으로 완결성이나 견고함, 우아함을 더 좋은 쪽으로, 더 발전된 것으로 분류될 것 같은데 고딕의 거칠고, 연약하 고, 기괴함을 변화 발전된 모습으로 또는 긍정적 변화로 보는 것인

(24)

제5주_ 종합토론

지 궁금합니다.

답변 3 : 고딕의 부활은 18세기 중엽 이후 취미의 변화에 따른 증상이라는 말씀을 드린 것이지, 어느 것이 더 좋고 나쁜 것이라는 평가의 입장을 밝힌 것이 아닙니다.

질문 4 : 고딕풍의 건축 양식과 바로크 건축 양식은 어떻게 다른 지 설명하여 주세요.

답변 4 : 르네상스 시기에는 고대 그리스-로마양식의 영향으로 그리스 신전의 특징(ex. 브라만테가 설계한 성 베드로 성당, 1506-1626)이 나타나며, 비례에 기초한 절제되고 실용적인 양식이 주류를 이룹니다. 평면적, 직선적인 공간 설계가 특징입니다.

바로크 건축은 르네상스의 고전주의 건축양식에 기초하지만 내부 와 외부의 화려한 장식이 특징입니다. 16세기 중반 이후 카톨릭 종 교개혁으로 신앙심 고취 차원에서 장식적 요소가 부활되었습니다.

큰 규모, 역동적인 곡면 형태의 공간 설계 등이 특징입니다. (ex.

베르사이유 궁전)

고딕 건축은 높이 솟아오른 첨탑, 복잡한 외부 조각, 부벽, 화려 한 스테인드 글라스가 특징입니다. 이러한 고딕 건축의 형태는 숭 고 개념과 어울리는 것으로 여겨졌으며, 낭만주의와 함께 형성된 중세에 대한 향수로 인해 18세기 후반에는 고딕의 부활이 일어납니 다. (ex. H. 월폴이 건축한 스트로베리 힐)

◉ 넷째 시간 인상주의에 대한 질문입니다.

질문 1 : 인상주의 논의에서, “눈에 보이는 대로” 그린다는 것은

(25)

석학과 함께하는 인문강좌 5제8 인문학으로서의 미술론 강의

객관적 사실이라기보다는 주관적 사실로 생각되는데, 선생님이 의 도하신 “사실”의 의미는 무엇인가요?

답변 1 : 오종환 교수의 질문 1에 대한 답변을 통해 대답이 되었 으리라 생각합니다. 요컨대, 화가 개인의 판단이나 감정을 개입하 지 않고 순수하게 눈에 보이는 그대로를 포착하려고 노력했다는 점 에서 인상주의는 객관적 사실을 표현하려는 시도였습니다. 따라서 그것이 “주관적”이라고 할 때는 개개인의 판단에 따라 대상이 구성 된다는 의미에서가 아니라, 순전히 물리적인 시간이나 위치나 각도 에 따라 대상이 다르게 보인다는 의미에서입니다. 예컨대 아침, 점 심, 저녁의 시간에 따라 다르게 보이는 성당의 모습을 그린 모네의

<루앙 대성당> 연작을 떠올리면 쉽게 이해될 것으로 생각합니다.

◉ 역시 인상주의 관련 질문입니다만, 동시에 작가와 비평가의 관계에 대한 질문입니다.

질문 1 : 서양에서 예술은 예술가가 새로운 것을 개척하는 것이 라고 설명해 주셨습니다. 궁금한 것은 루이 르르와라는 기자가 “인 상주의의 전시회”라는 기사를 쓰는 것에서 인상주의라는 말이 나왔 다면, 진정으로 새로운 것을 개척한 사람은 그 때 전시에 작품을 내건 작가들이 아니라 루이 르르와라는 기자와 비슷한 비평가들의 이름 짓기가 아닌가요? 이 내용과 연관지어 작가와 비평가의 관계 에 대해서 설명 해 주세요.

답변 1 : 이전과는 다른 새로운 시각으로 예술을 창조한 것은 분 명 인상주의 작가들입니다. 새로운 작품이 먼저 있고 난 후에 명칭 이 부여되었다는 점을 염두에 두시기 바랍니다.

작가와 비평가 사이에는 작품이 놓여 있습니다. 이 작품에 대해

(26)

제5주_ 종합토론

작가는 보통 말이 없거나 말을 아낍니다. 그 작품에 대해 그 말을 대신해 주는 사람이 비평가입니다. 그의 비평에는 세 형태가 있습 니다. 사실로서의 작품에 대한 설명, 그러한 작품의 의미를 밝히는 해석, 그리고 마지막으로 좋고 나쁨을 판정하는 평가가 있습니다.

◉ 난해한 현대 미술과 그 감상 방법, 현대에서 미술의 기능과 역할에 대해 질문을 여러 분들이 해 주셨습니다.

― 현대 예술의 난해함 관련

질문 1 : 현대 예술의 한 분야로 자리하는 행위예술에 대한 미학 을 연구하신 분으로써 견해를 말씀하여 주세요.

답변 1 : 최근 유행되고 있는 행위예술을 염두에 두고 말씀하신 것 같은데, 하도 다양하고 특이해서 일률적으로 해석하기에는 어려 움이 있습니다. 그래서 사례를 들어 보면 알몸을 매개로한 행위 예 술이 있습니다. 다른 예술형태를 통해서는 가능하지 않은 메시지 (의미)를 전달해준다는 점에서 분명 긍정적인 면이 있습니다. 그러 나 오락이나 관능으로 전락될 우려가 있습니다.

질문 2 : 서양의 모든 유화의 출발은 환영보다는 비아냥과 놀라 움에서 시작된 경우가 많습니다. 일반 대중의 이해와 아방가르드라 지칭되는 현대 미술가들의 괴리. 이는 미술의 속성일까요?

답변 2 : 작품에 대한 비아냥과 놀라움은 그에 대한 평가의 태도 입니다. 평가는 반드시 왜 그것이 나쁜지(비아냥) 혹은 좋은지(놀라 움) 하는 이유가 제시되어야 합니다. 그러한 근거 없이 이루어지는 비난이나 감탄은 개인적인 반응일 뿐입니다. 개인적으로 비난이나

(27)

석학과 함께하는 인문강좌 5제8 인문학으로서의 미술론 강의

경악을 가져다 주는 것이라면 어디 아방가르드 뿐이겠습니까?

질문 3 : 대중예술의 의미로 예술작품이 관객과 소통하기 위해서 순수예술 작품이 가교역할을 할 수 있다면, 무엇이 있을까요? 그 가능성이 무엇인지 구체적으로 알고 싶습니다.

답변 3 : 무엇을 대중예술이라고 하신 것인지 잘 모르겠습니다 만, 일반적으로 대중예술은 단순하여 이해하기 쉽고 접근하기가 용 이한 예술을 말합니다. 이에 비해 순수예술이라 하면 복잡하고 난 해하여 접근하기가 쉽지 않은 예술입니다. 그러므로 전자는 일반적 으로 감정에 호소하고, 후자는 지적 축적과 연마를 요구하고 있습 니다. 그렇다고 할 때 대중예술의 감상이나 이해를 위해 순수예술 작품이 가교역할을 할 필요가 있을까요? 물론, 대중예술이 품격을 높여 고차적인 예술로 탈바꿈하고자 할 때 순수예술의 참여는 많은 도움이 될 것입니다.

질문 4 : 일반적으로 현대예술이 난해 합니다. 그 난해성을 극복 하는 방법은 미술, 미술사 등에 대한 공부 밖에 없는지요? 그저 느 끼는 대로 생각하는 대로 판단하는 미술 감상 태도도 옳은 것인가 요?

답변 4 : 무엇이든지 생소한 것은 그에 대한 접근이 쉽지 않습니 다. 그런 입장에서 난해하다는 것은 생소하다는 것입니다. 아는 만 큼 보인다는 말이 있습니다. 그러니 자꾸 보고, 읽고, 이해하고자 하는 태도가 생소함의 극복을 위한 가장 빠른 길입니다. 한 예로, 어려운 고전음악인 베토벤의 「운명」이나 드보르작의 「신세계」

도 자꾸 들으면 유행가처럼 들리듯 말입니다.

(28)

제5주_ 종합토론

― 사회 속에서 예술의 기능

질문 1 : 미술과 사회의 관계와 “순수 예술”에 대한 교수님의 입 장은 무엇인가요?

답변 1: 제 개인적인 견해로는 사회를 떠나 있는 예술이란 없습 니다. 그런 의미에서 예컨대 “순수회화”마저도 그러한 개념으로서 의 예술을 요구했던 특정된 시대의 특정한 사회의 요구에 의한 소 산이라고 생각합니다.

― 도대체 미술이 어떤 가치를 가졌다는 것인지?

질문 1 : 고전주의, 낭만주의, 사실주의의 이론적 배경 하에 발전 한 미술이 현대의 사람들에게 현실적으로 (살아가는데) 어떠한 도 움을 주는지요? 혹 미술은 있는 사람들의 지적 호기심 내지 지적 유희의 도구가 아닌지요?

답변 1 : 이 질문에 대해서는 고전주의나 낭만주의 또는 사실주 의에 국한시키지 않고 예술 일반이 사람들에게 어떤 도움을 주는지 하는 물음으로 바꿔 설명해 드리도록 하겠습니다. 호머가 없었으면 신화의 세계를 떠올릴 수 있겠습니까? 고대 그리스 조각이 없었으 면 여성이 얼마나 아름다운 존재일 수 있는지를 상상할 수 있겠습 니까? 괴테 같은 소설가들이 없었으면 인간의 감정이 얼마나 깊고 오묘한지를 알 수가 있었겠습니까? 이처럼 예술은 우리가 호흡할 수 있는 의식의 장을 열어주었습니다. 물론 그처럼 훌륭한 예술이 아닌 예술이 더 많습니다.

질문 2 : 미술이론이 시기에 따라 변화되어 왔고, 사람들이 좋아

(29)

석학과 함께하는 인문강좌 5제8 인문학으로서의 미술론 강의

하는 그림도 그래왔음을 알겠습니다. 그런데 현재는 어떤가요? 현 재 사람들은 회화에 어떤 가치를 두고 있나요?

답변 2 : 우리가 제 4강에서 언급한 추상미술을 예로 들어 설명 해 봅시다. 그것은 이제까지 있어본 적이 없는 창의적 구성을 목표 로 하고 있는 예술입니다. 이 같은 창의성은 상상력의 소산입니다.

상상력은 모든 규칙으로부터의 해방(자유)을 원리로 하고 있는 인 간의 능력입니다. 그러한 의미에서 창의성의 발휘는 자유를 원리로 하고 있는 상상력의 내재적 성질입니다. 요컨대, 추상미술은 자유 의 화신입니다. 자유를 덕목으로 하고 있는 것이 민주주의 정치라 면, 따라서 추상미술은 민주주의에 평행되는 예술입니다. 바로 이 점에서 우리가 추상미술을 즐겨 감상하지 않더라도 그것이 우리 시 대의 미술이라는 사실만은 인정해야 할 만큼 가치가 있는 것이라고 말씀드리고 싶습니다.

◉ 우리나라의 현대로 좀 더 한정한 질문입니다.

― 질문의 요지가 다소 불분명 합니다만,

질문 1 : 미술사강의는 서양근현대와 우리나라의 경우는 문화재/

유산 설명 위주가 아닌가 싶습니다. 전후 세대인 저에게는 20세기 초중반인 일제 강점기가 조선시대만큼 멀게 느껴지지만 저희 부모 님세대에게는 아직도 현재 진행형이 아닌가 싶을 때가 있습니다.

교수님께서 생각하시는 식민지사관 극복이란 어떤 의미일까요? (일 제 강점기 때 건축된 서양식 건물이나 회화작품에 한정해서 여쭙고 싶습니다. )

답변 1 : 적합한 답변이 될지 모르겠습니다만 예술(작품)의 경험 을 통해 축적된 소양을 취미라고 합니다. 이 취미는 주로 감각기관

(30)

제5주_ 종합토론

을 통해 우리에게 수용되면서 우리의 말초신경을 마비시키는 경향 이 있습니다. 그래서 일단 형성된 취미는 좀처럼 쉽사리 빠지지 않 습니다. 바로 이 점 때문에 도덕론자들이나 때로는 정치가들이 에 술을 위험시 해온 것입니다. 댁의 자녀들의 취미는 댁의 취미와 다 를 것입니다. 고치라고 해도 그들에게는 그네들 세대의 취미가 있 습니다. 사고의 문제는 바꾸기가 쉬워도 취미의 변화는 힘듭니다.

― 서양 미학 연구자의 견해를 듣는 것이 적절할지 모르겠습니다만

질문 1 : 우리나라의 묵화는 서양의 시대에 비추어 드로잉(선)을 중심하는 시대 아니면 색채를 중심하는 시대로 보는지 아니면 다른 무엇입니까?

질문 2 : 서구 낭만주의 사조가 한국 화단에 끼친 영향과 그에 따른 대표적인 한국 미술작품을 소개 해 주세요.

답변 1, 2 : 위의 두 질문에 대한 답변은 현재로서는 미루어 두 는 것이 좋겠습니다. 간단한 문제 같지만 사실은 복잡하고 긴 논의 를 요하는 문제이기 때문입니다.

◉ 예술 현실이 아닌 미학 연구의 방법론과 관련해서도 우리의 현실을 묻는 질문들이 있었습니다. 예술 개념의 역사는 서구의 사상적 맥락을 통 해 접근할 수밖에 없는 것입니다만, 선생님께서도 강의 중에 간간히 말씀 을 하셨다시피, 이러한 이해를 바탕으로 한 우리 것에 대한 적용 문제는 중요한 토론 거리가 아닐 수 없습니다.

질문 1 : 동양미술을 바라보는 미학적 접근은 없는지요?

(31)

석학과 함께하는 인문강좌 5제8 인문학으로서의 미술론 강의

답변 1 : 동양미학이라는 분야가 있습니다. 있고말고요. 어마어마 하답니다.

질문 2 : 석굴암과 아프로디테를 설명하는 동양적(한국적) 미학과 서양식 미학 개념의 차이를 말씀하신 것이 인상 깊었습니다. 서양 적 방법론을 사용하여 우리 것을 봐 왔다는 것을 새삼 자각하며 문 제의식을 가져야 함을 느꼈습니다. 그러나 한편 동양화 / 한국화가 아닌 서양화의 경우에는 태생적으로 우리의 것이 아니기에 다른 방 법론의 적용이 제한적일 수밖에 없는 것은 아닌가 싶습니다. 한국 적 미학 개념의 정립이란 주제에 한국 예술계의 반응은 어떠하며 어느 정도 진행되고 있는지요?

답변 2 : 한국 미학의 정립은 우리에게 던져진 많은 과제들 중의 하나입니다. 그러한 과제해결 중의 하나가 한국 미학의 정립을 위 한 기초개념의 발굴입니다. 쉽게 말해, 신라인들은 예컨대 석굴암 불상을 어떻게 생각했는지 관련된 개념을 발굴하는 일입니다.

◉ 이제 매우 일반적이고 큰 주제의 질문이 남았습니다.

― 먼저 선생님께서 최근 꾸준히 천착 중이신 연구 중이신 주제의 하나인 창조성에 관한 질문입니다.

질문 1 : 예술에서 창조적인 상상력의 범위는 과연 어디까지 인 가요?

답변 1 : 이 질문에 대한 답변은 이미 정수경 박사의 질문 4에 대한 답변 속에 피력되었다고 봅니다. 반복하건대, 상상력은 예술 창조에 있어서 필요조건이지 충분조건이 아니라고 생각합니다. 왜

(32)

제5주_ 종합토론

냐하면 얼마든지 무의미한 상상이 있을 수 있기 때문입니다.

― 마지막으로 미학이라는 학문의 성격에 대해 말씀해 주시면서, 미 학 공부를 평생의 업으로 택하시게 된 계기도 들어 보았으면 합니다.

질문 1 : 미학의 학문 성격과 연구 분야에 대하여 알고 싶습니 다.

답변 1 : 아이고! 어찌지! 저더러 여기서 또 한 편의 논문을 쓰라 는 말입니까?

질문 2 : 미학은 철학의 일종으로 해석하고 있었는데, 교수님은 어떻게 미학을 전공하게 되셨는지요?

답변 2 : 김승환 교수의 질문에 대한 답변 속에 이미 피력된 바 있습니다.

참조

관련 문서

그럼에도 불구하고 전낭만주의자들과 낭만주의자들 양자간에는 커다란 차이가 있다... Furst, Romanticism in perspective

물이 끓는 동안의

강의

행성에서 태양을 연결하는 직선은 같은 시간에 같은 면적을 지나간다... 구형의 질량

프란체스코회의 수사이며 수학자이자 레오나르도의 친구였던 파치올로는 신성한 비례에 관한 논문을 출판하였다... 이처럼

골지건 기관(golgi tendon organs) 관절수용기(joint

① “유해문구”라 함은 청소년에게 유해한 매체물임을 누구나 쉽게 인식 할 수 있도록 하는 다음 내용의 표시를 말한다.. ②“유해로고”라 함은 청소년에게 유해한 매체물임을

-판례-재량일탈남용없는 처분을 요구할 권리가 있다고 판단- 원고적격 인정(검사임용거부처분)했다고 설명되나 일반적인 판례상의 표현은 아님을 유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