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검색 결과가 없습니다.

[小考] 初志一貫과 始終一貫

N/A
N/A
Protected

Academic year: 2021

Share "[小考] 初志一貫과 始終一貫"

Copied!
3
0
0

로드 중.... (전체 텍스트 보기)

전체 글

(1)

KIC News, Volume 12, No. 3, 2009

61

【小考】

初志一貫과 始終一貫

이 철 태 교수 (단국대학교)

‘初志一貫’의 사전적 의미는 ‘처음에 먹은 마음을 끝까지 밀고 나감’이며, ‘始終一貫’은 ‘처음부터 끝까지 한결같이 함’이라고 합니다. 의미에 약간의 차이는 있을 수 있으나 시작부터 마지막까지 변하지 않음이라는 공통의 의미를 담고 있습니다. 人間事에 있어 이 말이 많이 그리고 자주 사용 되는 것은 그것을 행함이 쉽지 않기 때문이 아닌가 싶습니다. 우리들의 삶속에서 ‘初志一貫’, ‘始 終一貫’ 이라는 말이 적용될 수 있는 대상은 참으로 다양하리라 생각합니다. 그 대상은 자기 자신 일 수도 있고 상대가 있을 수도 있습니다. 상대가 小數일 수도 있고 多數일 수도 있으며, 자신보 다 큰 힘을 가진 대상일 수도 있고 상대적으로 미약한 대상일 수도 있습니다. 또 사람과 사람사 이의 關係가 시작이 어디에 있고 끝은 어디란 말입니까? 시작은 因緣의 맺음이라고 한다면 끝은 어디가 되어야 하는 것입니까? 인간관계에서 끝은 끝이 아니라 진행형이라는 생각이 듭니다.

한동안 우리사회에는 폭력조직을 소재로 한 영화가 많이 제작되었고 아주 인기리에 상영된 적 이 있습니다. 그러자 폭력을 미화한다고 하여 많은 비판도 있었습니다. 그러나 그런 비판에 아랑 곳 없이 큰 흥행으로 제작사는 많은 수익을 얻게 되었습니다. 많은 사람들이 이러한 폭력조직의 영화를 보면서 ‘義理’라는 것에 감동을 느낀다고 합니다. 이는 자신이 ‘義理’를 지키기 어렵기 때 문에 영화 속 주인공의 ‘義理’에 대한 연기를 통해 대리 만족을 느끼기 때문이 아닐까도 생각합니 다. 영화 속 폭력조직의 ‘義理’라는 것이 대상과 형태는 辭典的인 의미와는 다를지 모르나 이 ‘義 理’라는 것도 또 하나의 ‘初志一貫’이나 ‘始終一貫’이라는 것과 맥이 통하는 것이 아닌가 싶습니다.

아주 최근에 우리는 전직 대통령이 용의자의 신분으로 봉화마을이라는 곳에서부터 서초동으로 소환되어 가는 안타까운 사태를 쳐다보아야 했으며 또, 안타까움은 그것으로 그치지 아니하고 스 스로 세상과의 단절을 하고만 불행하고 가슴 아픈 사태를 피할 수 없게 되었습니다. 그 사람을 지지했었던 지지하지 않았던 간에 한때나마 우리나라의 최고 지도자였던 사람이 오늘날 이와 같 은 catastrophe를 피할 수 없었던 근본적인 이유도 초심을 잃어버렸기 때문이라 생각합니다. 대통 령 취임식장에서 그의 가슴속에 있었던 그 초심이 始終一貫하지 못했기 때문이라 생각합니다. 물 론 그의 초심의 무게는 凡人과는 次元이 다른 것이었다고 생각 합니다. 아무튼 ‘初志一貫’, ‘始終 一貫’의 자세를 갖고 산다는 것이 모든 사람들에게 각각 나름대로 참으로 어려운 모양입니다.

나는 교수직에 몸담은 지 올해로 25년이 지나갑니다. 그동안 나름대로 많은 사람들을 보아왔고 여러 사람들과도 다양한 인연을 맺었습니다. 그동안 저와 인연을 맺은 많은 사람들 중에 ‘初志一 貫’하고 ‘始終一貫’해온 한 사람에 대한 이야기를 하고 싶습니다.

기억을 더듬어 보건대, 1990년 10월 한국화학공학회 추계학술 발표회가 개최된 시점으로 거슬

(2)

62

공업화학 전망, 제12권 제3호, 2009

러 갑니다. 당시에 나는 바로 그날 한국화학공학회에서 수여하는 학술상을 수상하여야 하였기에 전남대학교에 가게 되었고 그리고 그날 저녁 학회 간친회 장소는 그 후 몇 번이나 이름이 바뀌 어 “프린스”라는 이름의 호텔로도 사용되기도 하였는데 당시는 “광주 시티힐관광호텔”이었던 것 같습니다. 이 간친회 장소에서 여러 지인들로부터 축하인사를 받던 중 초면의 한분이 축하를 한 다고 하면서 명함을 내밀었으며 나 또한 명함을 건네자 나를 잘 알고 있으니 명함이 필요 없다 고 하면서, 간친회 이후에 잠깐만 시간을 내어 달라는 말씀을 하였습니다. 당시는 노태우 정부시 절로서 대학 교직에 몸담고 있는 교수들에게 박사 학위를 취득해야 한다는 강력한 정부의 시책 이 적용되고 있었으며 이로 인해 만학을 하기에는 너무나 연로하신 많은 교수님들이 힘들어 하 는 시기였습니다. 지난 노무현 정부시절에 정부의 핵심인물과의 love story로 유명세를 탄 신모 여성의 가짜 학력으로 비화되어 사회 여러 분야에서 많은 유명 인사들의 가짜 학력 파동이 일어 나기도 하였지만 당시는 국가정책상의 이유로 대학교육기관 내에 가짜 박사학위소지자가 특히나 많이 밝혀지기도 하였던 시절이었습니다. 대학 당국에서도 박사학위 취득에 대해 강력히 권장을 하는 사회의 분위기였고 그러한 흐름이 있었기에 전국적으로 박사 학위를 받지 않았던 많은 교 수님들이 학위취득에 신경을 써야 하는 상황이었습니다.

학회 간친회에서 만나 그 분도 물론 당시 현직 교수로 재직 중이셨습니다. 나와 전공이 같은 이유로 나를 지도교수로 삼고 박사 학위를 하고자 하는 뜻을 밝혔습니다. 그는 나보다 여덟 살이 많습니다. 어느 광고 카피에 “나이는 숫자에 불과하다”고 하였지만, 우리나라의 관습상 나이는 참 으로 강력한 힘을 갖습니다. 그러나 많은 나이가 때로는 오히려 불편함을 줄 때도 있습니다. 더구 나 연상의 입장에 계신 분이 연하의 사람에게 아쉬움이 있을 때 그 불편함은 더욱 크게 느껴지 는 법입니다. 그리고 그 다음해 3월 1일부터 그 교수님은 단국대학교 박사과정에 입학을 하고 박 사학위를 위한 코스워크를 시작하게 되었습니다.

그렇게 나와 인연을 맺은 그 분이 올해 8월 31일 자로 정년을 한다고 합니다. 지금은 말할 나 위도 없지만, 당시에 단국대학교 화학공학과 대학원에는 40대 중반미만 연령층의 교수로 100%

구성되어 있었고, 교육과 연구에 대한 열정이 넘치는 교수들의 대학원 수업은 결코 호락호락하지

않았습니다. 당시에 나 역시 “대학원은 학부에서 다진 체력을 소진하는 곳”이라 외치며 18명의

수강생 중 8명에게 낙제 점수를 주었고 이들 8명의 학생들은 한 학기를 더 등록을 하여야 하였

을 정도로 학생들에게 면학에 대한 노력을 요구하였습니다. 당시 대부분의 학생들이 석사 과정을

마치고 곧장 박사과정에 입학을 한 소위 풀타임 학생들이 80% 정도이었으며 나머지가 파트 타임

학생들이었습니다. 그러다 보니 교수들보다 고령자인 파트 타임 학생들도 타이트하고 강한 교육

과정의 그 흐름에 결코 예외일 수가 없었습니다. 그러나 그 학위 과정 속에서도 그는 매 수업시

간마다 광주로부터 서울 한남동까지 300 km 이상의 장거리 통학을 하여야 하였지만, 조금 과장

된 점이 있다고 말할지 모르겠으나 수업에 단 한 번의 결석은 물론 지각조차도 한 적이 없었으

며, 학과 내의 다른 교수님들로 부터도 결석을 하였다는 말은 들은 바가 없었습니다. 처음 그를

만났을 때 현직 교수님으로 소속 대학에서 강의를 비롯한 여러 업무도 있을 것이라는 易地思之

(3)

KIC News, Volume 12, No. 3, 2009

63

의 입장에서, 또 나보다 많이 고령인 관계로 그렇게 적극적인 자세를 기대하지 않았었던 나로서 는 예상 밖의 그의 성실한 자세에 약간 의아함이 없지도 않았습니다. 그러나 그의 면학에 임하는 학생으로서의 初志의 자세는 박사학위를 하는 그 순간까지 一貫되었습니다. 강의실에 들어서는 그 순간부터 그는 대학교수의 신분이 아니라 철저한 학생의 신분으로 돌아오는 것 같았습니다.

이렇게 시작된 그의 박사학위 과정은 그렇게 진행되었고 이후 8학기 만에 그는 박사학위를 취 득하게 되었습니다. 그의 박사 학위 논문의 제목은 “금속황화물의 염소화 반응 및 그 활용에 관 한 연구” 입니다. 1995년 2월에 박사학위를 취득하고 올해 2009년 8월 31일 정년예정인 그는 다 름 아닌 조선대학교 화학공학과에 재직 중이신 송연호 교수님입니다. 송 교수님이 박사학위를 마 친 후 다시 14년의 세월이 지났습니다. 송 교수님은 지금도 나를 대할 때는 “선생님”이라는 명확 한 어조로 호칭하며 예의가 넘치는 제자로서의 자세를 취하며, 코가 삐뚤어지게 마신 술자리에서 도 그는 단 한 번도 지도교수로서 나에 대한 자세에 조금도 흐트러짐이 없었습니다. 19년 전 “광 주 시티힐관광호텔”에서 박사학위 공부를 위해 나의 지도학생으로 받아달라고 말씀하시던 8살 연상의 중년의 교수가 나에게 취하였던 그 예의와 자세가 19년이 지난 지금도 조금도 달라짐이 없습니다. 나에게도 역시 지도교수님이 계시고 많은 스승이 계십니다. 그런데 아직도 나는 스승에 대한 제자의 올바르고 훌륭한 자세가 무엇인지 잘 모릅니다. 그러나 옛날 우리 말에 ‘君師父一體’

라는 말이 있듯이 그에 합당하면 바른 자세가 될 것이 아닌가 생각합니다. 하지만 이 또한 마음 에 있다고 하더라도 행동에 옮기는 것은 쉬운 일이 아니라 생각합니다. 그것도 始終一貫된 자세 라고 하는 것은 비교할 수 없을 만큼 어려운 처신일 것입니다. 송연호 교수님이 지난 19년 동안 보여주었던 그 자세는 바로 학문에 임하는 初志一貫하고 제자로서 지도교수에 대한 始終一貫한 자세이며, 이는 아무나 할 수 있고, 쉽게 볼 수 있고, 들을 수 있는 흔한 인생의 이야기가 아니라 생각합니다.

독일의 유명한 문학자인 한스 카로사(Hans Carrossa, 1878~1956)는 “人生은 너와 나의 만남”

이라고 갈파한 바 있습니다. 송연호 교수님이 지난 19년간 보여준 人間關係에 대한 初志一貫하고 始終一貫한 그의 자세는 그가 나의 제자가 아니라 나의 인생의 스승이라 생각합니다. 송연호 교 수님과의 만남이 나의 인생에 있어 잊을 수 없는 소중한 인연이라 자랑하고 아울러 멋진 한사람 을 많은 분들에게 소개하고 싶습니다. 그리고 이렇게나마 몇 자의 글을 통해 大過없이 정년을 맞 이하게 될 송연호 교수님에게 賀詞를 대신하고자 하며 정년 후에도 항상 건강하시고, 좋아하는 술도 즐거이 마시면서, 행복한 노후를 가지시기 진심으로 바랍니다. 그러나 이제는 술은 조금씩 마시기를 바랍니다.

끝으로 건방진 소리인지 모르나 객지에서 만난 사람은 10살까지의 나이 차이는 친구가 될 수 있다고 하니 송연호 교수님이 허락하신다면 이제 남은 세월에 좋은 친구가 되었으면 합니다.

5월, 스승의 날이 있는 계절에 이 글을 씁니다.

참조

관련 문서

소나기 구름과 같은 작은 규모의 현상들은 국지적인 기 상현상에 큰 영향을 줄 수 있으며 나아가 전체 대기 시스템의 가장 중요한 요소일 수도 있다.. 그러한

이는 교단이라고 할 수 있는 세력이 무력화되어 서일 수도 있고, 東學 이래 민중 중심의 다양한 종교 경험이 있었기 때문일 수도 있지만, 어쨌든

 즉, 보호적 기능을 높이기 위하여 디자인된 부분이 표현적 기능을 수행할 수도 있고 표현적 목적으로 디자인된 부분이 보호적

선형 시불변 시스템의 임펄스 응답만 알면 시간 영역에서 출력을 계산할 수도 있고 임펄스 응답의 푸리에 변환을 통해서 주파수 특성도 파악할 수 있다 임펄스 응답

이 지 도는 자신의 태양광 발전소를 지도에 등록할 수 있고 지붕 임대와 임차 거래를 위한 장터형 게시판을 이용할 수도

Nikon 액세서리 이외의 제품을 사용할 경우 카메라가 손상될 수 있으며 Nikon 의 보증을 받지 못할 수도 있습니다.. A

문자와 식 영역의 학습을 통하여 학생들은 문제 상황을 수학적으로 표현할 수 있고 필요한 경우에 일반화된 식으로 나타낼 수도 있다 특히 식의 전개 .... 와

여러 가지 면 정의 방법을 제공하며 , 각각의 정의 방법에 따라 하나의 명령줄에서 면을 정의 (xplane, yplane, zplane, reflectsurf)할 수도 있고, 복잡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