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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自娛’의 예술창작관 연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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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김 연 주*

1)

Ⅰ. 서론

Ⅱ. 自娛: 회화의 권계적 효용성에서 예술적 자율성으로

Ⅲ. 自娛의 회화적 표출 1. 心手相應을 넘어서 2. 藝道를 담지한 遊의 경계

(1) 문인들의 초탈적 삶

(2) 법도를 넘어선 법도의 경지

Ⅳ. 自娛: 자기수양에 근거한 예술적 통찰력

Ⅴ. 결론

Ⅰ. 서론

본 연구는 ‘자오(自娛)’를 그 핵심어로 삼아 동양의 예술창작관을 문인화를 중심으로 살펴보고자 한다. ‘스스로 즐긴다’라는 예술적 ‘쾌’의 의미가 강조된 ‘자 오’의 창작관은 ‘무목적의 목적’이나 ‘예술을 위한 예술(art for art’s sake)’로 알려 진 예술적 자율성을 강조하는 서양의 예술창작관과 분명히 차이가 있다. 이는 회 화 창작관을 피력하고 있는 글을 서술한 대부분의 화론가나 화가가 자신의 학문 도야 및 인격수양이라고 하는 삶을 지속하고자 했던 문인사대부 계층에 속해 있 었기 때문이다. 이러한 특수성 때문에 ‘자오’의 창작관 속에는 문학적․철리적(哲

* 캐나다 웨스턴 온타리오 대학 매킨토시 갤러리(The McINTOSH Gallery in The University of Western Ontario, Canada) 연구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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理的)․인격도야적인 다양한 함의들을 포함한다.

문인사대부에 의한 회화는 글씨와 밀접히 관련되었으며, 문학적 상상력 및 감정의 표출과 사회적 교류를 이해하는 문(文)의 연속선상에 있었다. 따라서 문인 화는 사물의 단순한 반영이나 정감의 표출이라기보다 문인들의 삶이 응축된, 또 철리성이 배인 화의(畵意)가 드러나는 창작물로서 그 특징을 ‘사의성(寫意性)’1) 로 표현하기도 한다. ‘즐긴다’라는 쾌의 추구는 평범하면서도 자연스러운 것이지만 그러한 정신경계를 지닌 회화는 이미 평범함을 넘어 의미심장하고 ‘노님[遊]’의 화 의가 흘러넘치는 화도(畵道)의 경계였다.

중국 예술의 가장 두드러진 특징은 바로 인성(人性)을 드러내서 인간을 예 술의 주재(主宰)로 삼고 아울러 예술의 주요 표현 대상으로 삼는 것2)이므로 중국 은 고대로부터 자기수양을 중시했고 이를 목적삼은 예술 행위에의 은근한 즐거움 을 강조했다.

동양이건 서양이건, 고대이건 현대이건 인간의 창작행위는 그 힘겨운 작업 임에도 불구하고 면면히 이어지고 있다. 이러한 창작의 근본 동력 중 가장 중요 한 것이 ‘스스로 즐김’이라는 것은 의심할 여지가 없다. 따라서 ‘자오’의 예술창작 관에 대한 연구는 그저 옛 것을 돌아다보는 것이 아니라 현대인의 삶의 이상(理 想)이 되어버린 ‘즐기면서 추구하는 개인의 삶이 가장 행복하다’는 모토를 문인사 대부의 회화적 실천의 장으로써 반추하고자 하는 것이다.

Ⅱ. 自娛: 회화의 권계적 효용성에서 예술적 자율성으로

‘즐긴다’라는 인간 행위에 대한 효용성이 강조된 가장 유명한 말 중의 하나 는 논어(論語) 옹야편(雍也篇) 에 보이는 “알기만 하는 사람은 좋아하는 사람 만 못하고, 좋아하는 사람은 즐기는 사람보다 못하다(知之者, 不如好之者, 好之者, 不如樂之者.)”라는 언급으로서 이는 현대인들에게도 자주 회자된다. 현대인에게 있어서 행복이란 종종 ‘즐기는 삶의 가능 유무’에 달려 있다고 이야기 될 정도로

1) ‘寫意性’에 대한 자세한 의미는 졸고, 동양회화의 사의성에 관한 연구 (홍익대학교 대학원, 미학과 박사학위논문, 2004) 참고.

2) 董欣賓, 鄭奇, 中國繪畵對偶範疇論-中國繪畵原理論稿, 南京; 江蘇美術出版社, 1988, 39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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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삶을 즐긴다’라는 개념은 중요한 트렌드가 되었고, 따라서 이 ‘즐김’에의 관심은 개인의 삶에서 다른 어떤 것보다도 우위를 차지한다.

중국에서 회화가 ‘삶을 즐기는 방편’이라는 인식이 보편화된 것은 송대 이후 라고 할 수 있는데 송대는 다른 어떤 시대보다도 예술가 자신의 생각을 표출하려 는 의지가 강한 시기였다. 따라서 송대의 문인화는 문인들의 서정적인 감정 및 학식과 취향의 해설자로서의 역할을 톡톡히 했다. 산수․인물이건 초충․새․동 물이건 소재가 무엇이든지 문인들은 눈 앞에 있는 사물을 명확하게 묘사하기보다 는 본질을 끌어안고 내적인 것으로 향하는 데 몰두했다. 무엇보다도 문인화에는 어떤 실용적 목적에 근거를 두지 않은 순수한 즐거움에의 추구라는 의미가 강한 데, 이러한 창작관을 대표하는 용어가 ‘자오’이며 이는 원대의 창작관에서 뚜렷이 보인다.

원대에는 몽고족의 침임으로 한족이 그 주도권을 내주면서 전통을 고수하려 는 유가적 이상과 이민족의 통치에서 오는 정치에로의 무관심 사이에서 생기는 딜레마 극복을 위해 개인의 세계로 침잠하는 문인화가 번성하였다. 원대의 문인 들은 이로써 카타르시스를 위한 수단으로 삼아 새로운 창작을 위해 과거양식을 자유롭게 활용하였는데 ‘방작(倣作)’의 유행도 그러한 맥락에서 이해할 수 있다.

‘자오’에 대한 회화적 성찰로서 유명한 예찬(倪瓚, 1301~1374)의 다음과 같 은 언급은 원대에 문인화가 전성기였음을 분명하게 보여주는 언급이다.

그림이라는 것은 자유분방한 필치(逸氣)로 대충대충 그려내는 것(逸筆草草) 일 뿐으로 형사를 추구하지 않고(不求形似) 스스로 즐길(自娛) 뿐이다. 3)

이 글에서 예찬은 ‘일필’이라고 하는 자유로운 경지에서 이루어지는 붓놀림 을 강조하고 ‘자오’의 창작관을 피력하였다. 그의 회화는 양식과 주제 면에서 고결 한 금욕주의로 특성지워지는데 간결하면서도 형에 구속됨 없는 자유로운 그의 창 작의지는 ‘일기’로도 알려져 있다. 예찬의 ‘일(逸)’개념은 황휴복(黃休復, 10세기)이

‘일격(逸格)’을 “용필이 간결하면서도 형태는 갖추어져 자연스러움을 얻어내는 것”4)으로 정의하면서 신(神)․묘(格)․능격(能格)보다 더 높게 위치시킨 것과 관 3) “僕之所謂畵者, 不過逸筆草草, 不求形似, 聊以自娛耳.” 倪瓚, 雲林論畵山水 , 兪劍華 編著, 

中國畵論類編, 北京: 人民美術出版社, 1985, 702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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련 있다. 이렇듯 일필로 일기를 표출해내면서 예찬은 형사(形似)를 초월한 창작이

‘자오’로 충분함을 강조했고, 이러한 창작이 작품의 관조로 이어질 때 객관대상을 닮고 닮지 않음은 중요하지 않다고 하였다.

이중(以中)은 내가 그린 대나무를 매번 좋아해주었다. 내가 그린 대나무는 가슴 속의 일기를 그려냈을 뿐인데, 어찌 다시 그 닮음과 닮지 않음, 잎의 무성함과 성김, 가지의 비스듬함과 곧음을 비교하는가? 혹 그것을 칠하고 난 후에 다른 사람이 삼이나 갈대라고 여긴들 억지로 대나무라고 변론할 수도 없다. 보는 사람이 어떻게 보든 진정 어찌해볼 도리가 없다. 다만 이 중은 어떤 것으로 볼지 모르겠다.5)

위의 글에 의하면 예찬은 자신의 대나무 그림을 이중이 매번 좋아해 준 것 이 그림을 그리는 즐거움이며, 이를 위해 그리는 것이지 대상과의 닮음의 정도를 위한 것은 아님을 밝혔다. 일생동안 자유로운 삶을 구가했던 예찬은 일기를 담은 일필을 통해 자오의 예술적 경계를 실현하였다. 그러나 ‘일기’, ‘일필’, ‘불구형사’,

‘자오’ 속에 담고 있는 자유로운 의지는 단지 그가 하고 싶은 바를 하는 것이 아 니라, ‘무위(無爲)의 경지이며, 자기 자신을 태허(太虛) 속에 소멸시킨’6) 경계이다.

이러한 태도는 후대에 이어져 자유창작의 의지로서 많이 회자되었으나 본질 을 왜곡하여 형식적인 것만을 따르는 부작용7)도 있었다. 그러나 이러한 흐름이 형성될 수 있었던 것은 당 중엽 이후 수묵화의 출현과 함께 회화는 정치 선전이 나 교화 및 장식의 효용성에서 벗어나 원대에는 화가가 산림생활을 동경하고 정 4) “筆簡形具, 得之自然.” 黃休復, 益州名畵錄․四格 , 兪劍華 編著, 中國古代畵論類編(上),

北京: 人民美術出版社, 1998, 405頁.

5) “以中每愛余畵竹. 余之竹, 聊以寫胸中逸氣耳, 豈復較其似與非, 葉之繁與疏 枝之斜與直哉. 或 途抹久之, 他人視以爲麻、爲蘆, 仆亦不能强辯爲竹. 眞沒奈覽者何! 但不知以中視爲何物耳.”

倪瓚, 淸閟閣集․題自畵墨竹 , 陳雨楊, 倪瓚, 河北敎育出版社, 2003, 144頁.

6) 陳雨楊, 倪瓚, 131頁.

7) “요새 사람은 휑하니 셀 수 있을 정도의 몇 개의 획을 그려놓고도 스스로 고고하고 꾸밈이 없다고 자랑하거나, 평상을 겹쳐놓거나 집을 포개어 그리고도 무턱대고 아무렇게나 말을 바 꾸어서 형사(形似)를 구하지 않는다고 하는데, 옛사람이 말한 것처럼 형사를 구하지 않는다 는 것이 닮지 않았으면서도 닮는 것임을 어찌 알겠는가? 저 번잡스럽거나 간단해서 적절치 못한 자들과 어찌 함께 말할 수 있겠는가? 今人或寥寥數筆, 自矜高簡, 或重床疊室, 一味顢 頇, 動曰不求形似, 豈知古人所云不求形似者, 不似之似也. 彼繁簡失宜者烏可同年語哉!” 王紱,

書畵傳習錄論畵 , 兪劍華 編著, 中國古代畵論類編(上), 99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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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수양을 표현해내는 대상 및 예술적 통찰력의 표출의지로 발전할 수 있었기 때 문이다.

그러나 당 이전에는 확실히 회화의 권계적 기능이 뚜렷하다. 좌전(左傳)의 기록을 보면, 하(夏)나라가 “9주(九州)의 우두머리들로 하여금 쇠를 바치게 하여 솥을 주조하고 사물을 새기니, 온갖 사물들이 갖추어져 백성들에게 신령스러움과 사악함을 알게 하였다.”8)고 하여 백성들에게 신령스러운 것[神]과 사악함[姦]을 형상을 통해 가르치고 있다. 또한 동한(東漢)의 문고부화(文考賦畵) 에도 회화로 표현된 것이 “악한 것은 세상에 경계로 삼았고, 선한 것은 후세에 모범으로 보여 주었다”9)라고 하였는데 이렇듯 회화는 문자를 터득하지 못한 백성들을 교화시키 기 위하여 신성한 것과 사악한 것, 충신, 효자, 열사(烈士), 정녀(貞女) 등의 개념 을 형상으로 각인시키는 수단이었다. 또한 동일한 붓을 사용하는 서화(書畵)의 특 성상 글씨를 익혀 배움의 깊이를 더하고 형상으로써 인간관계를 익히는 수단으로 삼았다. 한대의 통치자들은 사회적 교화를 갖는 실질적인 지배로서의 공적인 업 무에 세밀하게 관여하였으므로 ‘예술을 위한 예술(art for art’s sake)’은 오래도록 숨겨진 채 남겨진 구호10)였다.

당대 장언원(張彦遠, 815~879)에 이르면 “그림은 교화를 이루고 인륜을 도 우며 신묘함과 변화를 궁구하며 그윽하고 미묘한 것을 헤아리니 육경의 역할을 하며 네 계절과 함께 운행한다.”11)고 서술하여 회화의 교화적 효용성을 강조하면 서도 그 지위를 육경(六經)과 나란히 하였다. 그는 또한 “사람의 전기는 일을 기 술하지만 모습을 묘사할 수는 없고, 문학의 찬과 송은 아름다움을 노래하지만 형 상을 갖출 수 없다. 그림을 그리는 것은 이것을 겸비할 수 있다.”12)고 하여 회화 8) “昔夏之方有德也(禹之世), 遠方圖物(圖畵山川奇異之物而獻之), 貢金九牧(使九州之牧貢金), 鑄 鼎象物, 百物而爲之備, 使民知神姦(象所圖物 著之於鼎).” 葛 路, 中國繪畵理論史, 姜寬植 譯, 미진사, 1997. p. 32. 번역, 원문 재인용. 괄호 안에 있는 원문은 春秋左氏傳 의 註인데 역자가 번역의 이해를 위해 삽입함.

9) “惡以誡世, 善以示後.” 王延壽, 文考賦畵 , 中國古代畵論類編(上), 10頁. “그림을 배우면 사제 간에 처신하는 도리를 알 수 있다. 學畵可以知師弟子行己之道.”는 것처럼 후대에는 인 간관계를 유지하는 방법을 익히는 효용성에 대해서도 논해졌다. 平南論畵 , 中國古代畵論 類編(上), 14頁.

10) Ching Yee, The Chinese Eye: An Interpretation of Chinese Painting, New York;

Frederick A. Stokes Company, 1937. p. 136.

11) “夫畵者, 成敎化, 助人倫, 窮神變, 測幽微, 與六籍同功, 四時並運.”

張彦遠, 書畵之源流 , 歷代名畵記, 京華出版社, 2000, 9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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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 서술적인 문학적 수단에 비해 형상까지 기록한다는 점에서 더 우월함을 피력 하였다.

이렇게 강조되던 회화의 효용성은 송대 이후 소식(蘇軾, 1036~1101)의 사인 화(士人畵)13) 개념과 변화된 문인들의 사상에 힘입어 예술의 자율성 개념이 형성 되기에 이르렀다. 그가 중시한 의기의 자유로운 표출이 곧 문인화이며 사인화이 며 이는 곧 자오의 창작태도로부터 출발한다.

중국에서 ‘회화’는 ‘문화’와 거의 동의어라고 할 수 있으므로 시대의 공통사 상과 관련하여 밀접하게 발생하고 변화하며 그 경향성들을 갖게 된다.14) 문인화 란 벼슬길이 순탄하면 유가(儒家)에 의지하여 일에 힘쓰고, 벼슬길이 순탄치 않으 면 도가(道家)에 의지하여 세상을 등지고 홀로 즐길 수 있게 된 문인들이 서화로 써 자오하는 경향을 유행시키면서 생겨난 시대적 결과물이다. 도가는 사회적 속 박뿐만 아니라 육체적 욕망에서 벗어나 자유를 논하였고15) 문인들은 이를 바탕으 로 사적(私的) 취미세계를 즐기며 풍류에 몰두하고 무리를 지어 소위 귀족풍에 의해 동시대나 전대의 직업화가들과는 다른 주관적․정신적 회화세계를 구축16) 였다. 문인들은 붓을 다루는 데에서 즐거움을 취했고, 그 즐거움은 벼슬, 권력, 재 물 등 현실과의 저만치 거리두기를 통해 얻어졌으며, 이는 물질적 차원으로부터 의, 지적 자만심으로부터의, 관료적 서열과 사회적 지위로부터의 초연함을 가져다 주었다.17) 권계적 효용성을 우선으로 하여 정치적․종교적 영향을 크게 받았던

12) “記傳所以叙其事, 不能載其容, 讚頌有以詠其美, 不能備其象, 圖畵之制, 所以兼之也.” 張彦遠,

歷代名畵記(上), 조송식 옮김, 시공아트, 2008, p. 24.

13) 천기주암(天琪周岩)은 소식의 회화이론을 네 가지 특성으로 정리했다. 첫째, 그가 처음 제 출한 사인화는 의기(意氣)에 중점을 두며 상리(常理)를 강구한다는 점에서 ‘화공화(畵工畵)’

와 다르다고 주장한 것, 둘째, 예술의 최고경계를 ‘得之於象外’, ‘妙在筆畵之外’라고 생각하 고, ‘소산간원(蕭散簡遠)’, ‘간고(簡古)’, ‘담박(淡泊)’을 요구한 것, 셋째, 예술창작 중에서 인 습 모방을 반대하고 변화․창신을 강력히 주장한 것, 넷째, 생활에 대한 세치(細緻)한 관찰 과 감수에 집중한 것, 다섯째, 시화(詩畵)의 관련성을 강조하고 그림 가운데 시의(詩意)가 심오하게 있을 것을 요구한 것이다. 김기주, 소식의 숭고관과 북송말 회화 , 미술사학보

19집(2003), p. 13 참고.

14) Ching Yee, ibid., p. 62.

15) 張法, 中西美學與文化精神, 유중하 외 역, 동양과 서양, 그리고 미학, 푸른숲, 1999. p.

262 참고.

16) 金炳宗, 中國繪畵硏究, 서울대학교출판부, 1997. p. 141.

17) 김재숙, 북송대 문인화론에 나타난 동양예술정신-문인계층의 미학적 은일주의를 중심으 로 , 철학연구 제115집, 대한철학회(2010), p. 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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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대까지의 회화는 당말의 정치적 혼란으로 형호(荊浩)․관동(關仝)․동원(董 源)․거연(巨然)․이성(李成)․범관(范寬) 등을 거치면서 제재 면에서 산수화의 발 전을 가져왔고, 이러한 산수화의 발전은 오대의 혼란기를 거치면서 선종과 도가 의 영향으로 더욱 가속화되었다. 원대에 더욱 발전한 문인화는 문인들의 ‘자오’하 는 필수 도야과정이 되었고 사물의 객관적 묘사나 교화를 위한 효용성 보다는 철 리성을 보전한 마음 속 뜻을 표출하는 경향이 강조되면서 예술의 자율적 특성을 확보했다.

회화 창작 능력에서 ‘자오’의 경지는 인품을 수련하는 허정한 마음가짐이 중 시되는데 이는 명대 이일화(李日華)의 죽란논화(竹嬾論畵) 18)에서 잘 드러난다.

그에 의하면 회화 창작은 그저 먹으로 그려내는 일이 아니라 속된 마음을 비우고 고귀한 인품을 이룬 후 생기를 모아 자연스럽게 이루어내야 하는 수련의 경지이 다. 또한 그는 “그림 그리는 일은 반드시 기이한 것을 구할 필요가 없으며, 반드 시 격을 따를 필요도 없다. 중요한 것은 가슴 속에 실제로 가지고 있는 것을 토 해내듯 털어놓으면 곧 되는 것이다.”19)라고 하여 수련으로 허정해진 자세에서 이 루어져 인위성 없이 토해내듯 그려내는 내면의 표출이어야 자연스러우면서도 즐 기는 단계가 될 수 있음을 서술하였다.

‘마음 속을 텅 비워서 하나의 물욕도 없이 한다’거나 ‘가슴 속에 가지고 있는 것을 토해내듯 털어 놓는다’고 하는 표현들은 중국회화가 “‘경(景)’과 ‘경(境)’의 추 구에서 ‘趣(기호, 심미)’의 추구로 방향을 전환했으며 그림의 객관적 특성을 중시 하는 관점에서 인간의 주관적 인식이 그림 평가의 중심이 되는 인문학적 특성이 더욱 중시되는 관점으로 시점이 이동되었음”20)을 의미하는 것이다. 청대 정판교 의 글을 참고하면 회화 창작 태도에 있어서 흥이 우러나와 주관이 스스로 즐기는 자오의 경지가 창작에 있어서 얼마나 소중한지를 엿보게 해 준다.

18) “문징명이 미불의 산수화에 쓰기를 ‘인품이 높지 않으면, 먹을 쓰는 것이 법이 없다’고 하 였는데 이에 먹을 찍어 종이에 그리는 것이 사소한 일이 아님을 알겠다. 반드시 마음 속을 텅 비워서 하나의 물욕도 없이한 후에야 연기와 구름의 빼어난 색채들이 천지와 함께 생 생한 기운으로 자연스럽게 모여 머물며 붓 아래에서 기이하고 이상한 모습들이 환상적으 로 드러난다. 文徵老自題其米山曰.. 人品不高, 用墨無法. 乃知點墨落紙, 大非細事, 必修胸中 廓然無一物, 然後煙雲秀色, 與天地生生之氣, 自然湊泊, 筆下幻出奇詭.” 李日華, 竹嬾論畵 ,

中國古代畵論類編(上), 131頁.

19) “繪事不必求奇, 不必循格, 要在胸中實有吐出便是矣.” 李日華, 앞의 책, 132頁.

20) 김백균, 남북종론의 역사적 인식 , 미술사학보 19집(2003), pp. 45~4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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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일토록 글자를 쓰고 그림을 그려서 휴식할 수 없으면 사람들에게 욕할 것이나, 3일 동안 붓을 쓰지 않으면, 또 그 어둡고 답답한 기운으로 번민하 면서 한 장의 종이를 내어놓고 생각하게 되니, 이것 또한 우리 같은 무리들 의 천한 모습이다. 오늘은 새벽에 일어나 일이 없어 땅을 쓸고 향을 태우고 차를 끓이며 벼루를 씻었다. 그리고 고인의 종이에 갑자기 이르러 기꺼이 붓을 움직여 대나무, 난, 괴석 몇 개를 그려내니 자못 깨끗한 흥취가 있었 다. 이것이 때를 얻어 그림을 그릴 수 있는 시간인가? 나에게 그림을 요구 하면 바로 그리지 않으려 하고, 나의 그림을 요구하지 않으면 그리려고 하 니, 정말 이해할 수 없는 일이다. 다만 이것을 이해하는 사람은 웃으면서 이 말을 들을 것이다.21)

여유 없이 하는 작업은 고단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좋아하는 일을 그치 면 또 하고자 하는 의욕이 솟구치며, 마음이 편안하고 작은 목적성이라도 배제되 면 그리고자 하는 회화 창작에의 자율적 의지가 솟구친다. ‘자오’라는 개념은 예술 이 그 권계적 효용성으로부터 그 자율적 의지를 확보해 가던 때 문인들이 그들의 예술적 삶에서 도출한 개념이다.

Ⅲ. 自娛의 회화적 표출

송대를 거치면서 회화 창작은 백성들의 교화에 그 효용성을 두기보다는 인 격도야를 위한 즐거운 소일거리로 여겨졌다. 회화 창작의 순간에도 목적하는 바 를 두고 이에 따르기 보다는 흥을 돋우는 노력과 더불어 마음이 가는 순간에 마 음을 비우고 토해내며 정화시키듯 하였다. 자오의 경계는 흥의 도출에 의해 심수 상응(心手相應)의 경계를 넘어선 것으로, 예도(藝道)를 담지한 ‘유(遊)’의 경지이다.

이로써 문인들은 전통 기법을 넘어서거나 새로운 도구와 소재를 다루기도 하면서 새로운 창작의지를 펼쳤다.

21) “終日作字作畵, 不得休息, 便要罵人; 三日不動筆, 又想一幅紙來, 以舒其沉悶之氣, 此亦吾曹 之賤相也. 今日晨起無事, 掃地焚香, 烹茶洗硯, 而故人之紙忽至, 欣然命筆, 作數箭蘭, 數竿竹, 數塊石, 頗有灑然淸脫之趣, 其得時得筆之候乎? 索我畵, 便不畵; 不索我畵, 便要畵, 極是不可 解處, 然解人於此, 但笑而廳之.” 鄭燮, 板橋題畵蘭竹 , 中國古代畵論類編(下), 1182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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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장에서는 자오의 예술창작관이 어떠한 회화적 표출로 이어졌는지 화론을 중심으로 그 구체적 사례를 살펴보고자 한다.

1. 心手相應을 넘어서

부재(符載)의 관장원외화송석서(觀張員外畵松石序) 에 장조(張操, 8세기)가 그림 그리는 순간이 묘사22)되어 있다. 이 글에는 ‘득어심, 응어수(得於心, 應於 手)’, 즉 ‘마음에서 얻고 손에서 응한다’라는 주된 핵심구절에 대한 중요한 순간들 이 묘사되어있다. 우선 장조가 주인에게 비단을 급히 청하는 모습은 그림을 그리 고자하는 표출의욕이 충만한 순간에 바로 창작하는 모습이며 그가 열정으로 가득 22) “형주에 감찰어사로 일하는 육예가 집에서 연회를 베푸니, 화려한 건물은 웅장하였고 연회 는 조용하면서도 아름다웠다. 정원의 대나무 숲은 비가 개이자 성근 것이 시원하여 사랑스 러웠다. 공은 하늘이 내린 듯 생각이 문득 가리키는 바 있어 급히 흰 비단을 청하여 뜻밖 의 자취를 그리고자 원하였다. 주인이 옷자락을 펄럭이고 소리를 지르면서 이에 응하였다.

이때에 손님으로 앉아있던 명성 있는 선비 24인이 그 좌우에 있었는데, 모두들 일어서서 주의 깊게 그것을 보았다. 장조가 그 가운데 앉아 다리를 쭉 뻗고 기를 돋우자 신기(神機) 가 비로소 발하였다. 번개가 공중에서 번쩍이는 것 같고 폭풍이 치는 것 같아 그 사람들을 놀라게 하였다. 붓을 꺾고 돌리고, 잡아당기며 붓 휘두르기를 빨리 하니 붓은 재빨라 언뜻 언뜻 갈라지는 듯했다. 붓이 나는 듯하고 먹은 뿜는 것 같은데 붓을 잡은 손바닥이 찢어지 는 것 같고, 어슴프레한 형상이 갈라지고 모아지더니 갑자기 괴이한 모양이 생겨났다. 붓 휘두르기를 마치자 바로 소나무 껍질이 나타나고, 돌은 가파른 바위가 되었으며, 물은 맑 고 구름은 그윽했다. 붓을 던지고 일어나 사방을 둘러보니 마치 천둥이 치며 내리던 비가 맑게 개인 것 같이 우레를 치며 내리던 비가 개이면서, 온갖 만물의 특성이 나타난 것 같 았다. 장공의 예를 보니 이는 그림이 아니고 진정 도(道)구나! 그림을 그릴 때에는 이미 기교를 버리고 뜻이 오묘하고 아득하게 변화함을 알아야 사물이 마음 속에 있게 되며 이 목에 있지 않게 된다. 그러므로 마음으로 터득한 것은 손에 응하게 되고 고고한 자태와 뛰 어난 형상이 붓을 대면 나타나 기가 심원하고 고요하게 교류하여 신과 함께 무리가 된다.

한도 내에서 장단을 헤아리고 비천한 안목으로 미추를 계산하여 법도를 이루고 먹을 빨며, 한참을 망설인다면 이것은 바로 그림의 혹 같은 것이니, 어찌 치아 사이에(나란한 위치에) 둘 수 있겠는가? 荊州從事監察御使陸澧陳讌宇下, 華軒沉沉, 尊俎靜嘉. 庭篁霽景, 疏爽可愛.

公天縱之思, 欻有所指, 暴請霜素, 願撝奇蹤. 主人奮裾, 鳴呼相和. 是時座客聲聞士凡二十四人, 在其左右, 皆岑立注視而觀之. 員外居中, 箕坐鼓氣, 神機始發. 其駭人也, 若流電激空, 驚飆突 天. 摧挫斡掣, 撝霍瞥列, 毫飛墨噴, 捽掌如裂, 離合惝恍, 忽生怪狀. 及其終也, 則松鱗皴, 石巉 巖, 水湛湛, 雲窈眇. 投筆而起, 爲之四顧, 若雷雨之澄霽, 見萬物之情性. 觀夫張公之藝非畵也, 眞道也. 當其有事, 已知夫遺去機巧, 意冥玄化, 而物在靈府, 不在耳目. 故得於心, 應於手, 孤 姿絶狀, 觸毫而出, 氣交沖漠, 與神爲徒. 若忖短長於隘度, 算硏蚩於陋目, 凝觚舐墨, 依違良久, 乃繪物之贅疣也, 甯置於齒牙間哉?” 符載, 觀張員外畵松石序 , 中國古代畵論類編(上), p.

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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찬 예술가의 모습을 지녔음을 알 수 있게 한다. 둘째, 그를 둘러싼 수많은 관중들 앞에서도 해의반박(解衣盤礡)의 태도로 기를 진작시키며 자유롭게 창작에 응하는 모습에서 어떤 주변 환경에도 흔들리지 않는 자유스러운 예술가의 모습도 보인다.

셋째, 붓을 한 치의 주저함도 없이 익숙하게 휘두르며 표현하고자 하는 정(情)과 경(景)을 모두 그려내는 모습에서 숙달된 전문가로서의 모습도 엿본다. ‘득어심, 응어수(得於心, 應於手)’에의 묘사는 결국 이를 넘어서는 스스로 즐기고자 하는 자유의지와 숙련된 몸놀림이라는 예술가로서 갖추어야 하는 조건들을 드러낸 것 이다.

이런 모습에서 부재는 장조의 기예가 단지 그리는 ‘그림이 아니라 진정한 도의 경지’라고 표현하고 있다. 장조는 사물을 마음으로 터득하고 그 터득한 경계 를 손으로 자유롭게 풀어내면서도 흥을 진작시켜 형상 안의 사물의 본질을 드러 낸 것이다. ‘득어심, 응어수’는 객관적 대상을 받아들여 창작자의 뜻을 표출하는 것이다. 예술가에 의한 뜻의 표출은 반드시 끝없는 수련과 배움의 단계를 거쳐야 가능하며 이런 내용이 전제되지 않은 형식적 창작은 무의미하며 무가치하며 일회 적이다. 자연스러움의 극치를 일컫는 ‘이천합천(以天合天)’의 기교는 단단한 수련 을 기반으로 하는 ‘자오’의 경지에서 우러나오는 것으로써 다음과 같이 흥이 발하 는 단계도 중요하다.

그림을 그리기 전에 완전히 흥취를 북돋는 데 있어서, 구름과 물을 바라보 거나, 꽃과 새를 살피거나, 산보를 하면서 그윽하게 읊조리거나, 향을 피우 거나, 차를 마시거나 하여, 가슴 속에 터득된 바 있어서 그림을 그리고 싶 어서 마음이 간질간질하여 흥이 발할 때 바로 종이를 펴서 붓을 들어 그리 고, 흥이 다되면 이를 중지해야한다. 흥이 지극하게 있을 때 계속하여 완성 하면, 저절로 반드시 천기가 생기 있게 되어 이 세상 밖으로 드러나게 된 다. 23)

23) “未作畵前全在養興, 或覩雲泉, 或觀花鳥, 或散步淸吟, 或焚香啜茗, 侯胸中有得, 技癢興發, 卽 伸紙舒毫, 興盡斯止. 至有興時續成之, 自必天機活潑, 迵出塵表.” 王昱, 東莊論畵 , 中國古 代畵論類編(上), 189頁. 이 밖에도 그림을 그릴 때에는 흥이 중요하다는 것, 그림을 그릴 때 기한을 정해놓고 그리는 것과 흥이 다했음에도 그리기를 재촉하는 것에 대한 저속함에 대해 서술( 谿山臥遊錄 , 中國古代畵論類編, 266頁)하고 있으며, 또 마음과 손이 움직이 는 것을 완전히 잊어서 자신을 의식하지 않아야 대가가 그린 것과 같이 된다고 설파(方薰,

山靜居畵論 , 中國古代畵論類編, 233頁)하기도 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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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는 가슴 속에 화의가 일어나도록 충분히 경험하고 흥이 발해서 자오하는 경지가 되어야 그림이 생동하는 경지에 오를 수 있다는 것을 보여준다. 송대 곽 약허(郭若虛, 11세기)가 그림은 인(印)으로서 “마음의 근원으로부터 근본하여 생각 이 형태와 자취를 이루어, 자취가 마음과 합치되는 것”24)이라고 한 바 있었는데 자취와 마음이 합치되는 것이 ‘마음이 간질간질하여 흥이 발해서 생동하는 경지’

인 것이다. 곽약허는 더 나아가 기운이 드러나야만 그림이며 이로 인해 군자와 소인을 구별할 수 있다고 하였다. 그러므로 곽약허에 따르면 그림이란 학식도 두 루 갖추고 많이 보고 듣고 즐길 수 있는 경지에 오를 수 있어야 그릴 수 있는 것 이다.

소식과 미불(米芾)도 “재주가 호방해서 붓을 빠르게 휘두르는데 한묵이 갖 추어져 유희하는 도구로 삼았다. 그러므로 술자리 주변에서 이야기하다가 뜻에 따라 그려내도 묘하지 않음이 없었다.”25)고 했으니 흥이 도달한 자리에서 즐거운 마음으로 흔쾌히 그려내는 창작의 돌발성과 그에 따른 자오의 경지를 유추해 볼 수 있다. 크게 자리를 갖추지 않고도 즐기면서 호방하게 휘두르는 회화 창작에의 멋스러움과 함께 이런 예술가의 행위는 자유로운 내면 뿐만 아니라 철리성 및 정 감의 역동성도 지닌다.

청대 이원논화(頣園論畵) 에도 문인과 화사는 귀(貴)․아(雅)와 천(賤)․속 (俗)으로 구분되며 많은 경험을 하고 “한묵으로 즐기는(翰墨自娛)”26) 경지에 올라 야 그 가치를 인정받을 수 있음을 피력하고 있다. 따라서 이러한 즐김의 세계에 서는 필연적으로 새로운 창작 기법도 도출되었다.

하루는 함께 모여 있는데 큰 눈을 만나 산의 경치가 점점 오묘해지니, 왕몽 이 유윤에게 “이 그림을 고쳐서 눈경치로 만들면 어떻겠는가?”하고 물으니, 유윤이 “색을 어떻게 칠할까?”하여, 왕몽이 “내가 한번 시험해보겠네”라고 이르고는 바로 붓을 가지고 어지럽게 칠하니 색이 죽어 살아나지 않았다.

유윤이 한참을 깊이 생각하더니 “내가 터득하였다”라고 말하고는 작은 활 을 만들어 호분을 묻힌 붓을 끼워 가득 당겨 쏘니, 호분이 어지럽게 비단

24) “本自心源, 想成形迹, 迹與心合.” 郭若虛, 圖畵見聞志 , 中國古代畵論類編(上), 60頁.

25) “迨蘇玉局, 米南宮輩, 以才豪揮霍, 備翰墨爲戱具, 故於酒邊談次率意爲之, 而無不妙.”

李日華, 竹嬾論畵 , 中國古代畵論類編(上), 130頁.

26) 松年, 頣園論畵 , 中國古代畵論類編(上), 330~331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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위에 떨어지자 마치 날며 춤추는 형세 같았다. 서로 바라보면서 신기하게 되었다고 하였다.27)

이 일화는 이미 그려진 그림에 눈이 내리는 흥취를 더하여 그려내려는 즐거 운 시도로부터 시작되었다. 그러나 색을 덧칠해서는 눈 내린 경치의 흥취가 잘 살아나지 않자 붓을 화살삼아 쏘아 터트린 유희적 기법으로 눈 내린 경치의 정취 를 그려내었다. 이렇게 새롭게 돌출된 기법은 이 모든 행위를 즐기는 마음으로부 터 비롯할 수 있었다.

그러나 그림을 창작할 때 욕심을 버리고 즐기듯 그리는 태도는 쉽게 이루어 지는 것이 아니다. 노연논화․자제무주장사화(老蓮論畵․自題撫周長史畵) 28)에서 예로 든 것처럼 최고의 능력을 보여주지만 힘들여 창작한 듯 보이지 않는 자연스 러운 경지는 터득하기 어렵다. 이렇듯 물아일체(物我一體), 좌망(坐忘)의 경지에서 이루는 최고의 미적 경험은 심수상응(心手相應)하면서 즐기는 가운데 우러러 나 오는 천연의 이루어짐, 즉 행하지 않았지만 행해지지 않은 것이 없는 경지이다.

청대 포안도(布顔圖)는 그림을 가르쳐 달라고 온 대시승(戴時乘)과의 대화에 서 회화 창작의 목적은 “자신을 위한 배움(爲己學)”이어야 하며 이런 그림은 “담 박하고 자연스러운 정취가 있어 그리는 것으로써 스스로 즐기는 것이니 나같은 사람이라도 가능하다.”29)고 하면서 그림 그리는 일을 ‘낙업(樂業)’으로 불렀다.

27) “一日胥會, 値大雪, 山景愈妙, 叔明謂惟允曰..改此畵爲雪景何如? 惟允曰.. 如傅色何? 叔明曰..

我姑試之. 卽以筆塗紛色殊不活. 惟允沉思良久曰.. 我得之矣. 爲小弓夾紛筆, 張滿彈之, 紛落絹 上, 儼如飛舞之勢. 皆相顧以爲神奇.” 何良俊, 四友齋畵論 , 中國古代畵論類編(上), 111頁.

28) “나는 주장사의 그림을 두 번 세 번 모사했으나 지금도 그만 두려 하지 않는다. 어떤 사람 이 말하기를 “이 그림은 이미 주장사의 그림을 넘어섰는데 오히려 지금도 역시 모자라다 하니 어찌 그런 것인가?” 하였다. 내가 말하기를 “이것이 내가 미치치 못하는 것이다. 내 그림은 좋게 보이기는 쉬웠지만 뛰어난 능력을 본받지는 못했다. 장사는 본래 지극한 능력 에 도달했으나 능력이 없는 것같이 했는데 이것이 어려운 재주이다.”하였다. (중략) 그러므 로 그림 그리는 사람은 신묘한 경지에 든 작가가 있으며, 이름난 작가가 있으며, 보통 작 가가 있으며, 장인이 있는데 나는 오직 보통 작가를 면하지 못하니 이런 모자람에서 빚지 고 있는 것이다. 吾摹周長史畵至再至三, 猶不欲已. 人曰..此畵已過周而猶嗛嗛何也? 吾曰..此 所以不及者也. 吾畵易見好, 則能事未盡也. 長史本至能, 而若無能, 此難能也. (중략) 故畵者有 入神家, 有名家, 有作家, 有匠家, 吾惟不離乎作家, 以負此嗛也.” 陳洪綬, 老蓮論畵․自題撫 周長史畵 , 中國古代畵論類編(上), 139頁.

29) “爲己學澹然天趣, 以圖自娛, 雖愚者亦能.” 布顔圖, 畵學心法問答 , 中國古代畵論類編(上), 192 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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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대로 된 회화 창작은 결코 즐겁지만은 않다. 왜냐하면 그림 그리는 일이 즐거운 것은 각고의 노력을 거친 후에야 보답처럼 다가오는 경지에서나 가능하기 때문이다. 또한 그림을 그리는 일을 ‘즐거운 일[樂業]’이라고 하면서 마음과 손이 서로 응하고, 자신을 위한 그림을 담담하고 천연스러운 정취로서 자오하면서 그 릴 수 있는 이러한 경계는 화도에 오른 것이라 할 수 있다.

소식은 “그림이란 내 뜻에 맞게 그리는 것일 뿐”30)으로 여겼으며, 그가 강 조한 의기의 자유로운 표출이란 ‘무목적의 목적성’을 갖는 회화의 자유창작경계로 써 그가 제출했던 사인화의 필요충분조건이면서 자오를 전제로 하는 것이다. 다 음 죽란논화(竹嬾論畵) 에서 적의의 태도로 자오하는 소식의 회화 사랑이 잘 드 러난다.

동파 선생은 천부적인 재능이 탁월하다 하더라도, 글씨를 쓰고 그림을 그리 는 두 가지 일에 있어서는 천성이 무척 즐기는 것이어서 가는 곳마다 붓과 벼루를 손수 가지고 다니지 않은 적이 없었다. 해남에 사는 노파는 엄지손 가락을 등심지로 싸서 글씨를 쓰는 것을 보았다. (중략) 황주에 있을 때 우 연히 도로 사이 민가에 대나무와 오래된 나무가 무더기로 있는 것을 보고, 곧바로 닭장과 소 외양간 옆이라도 반드시 다가가서 그것을 그리니, 그것이 진실로 한 떄 천진함이 흘러넘친 것이고 닮기를 구하는 생각이 있었던 것 이 아니다. 31)

소개된 일화로 볼 때 소식은 붓과 벼루를 항상 지니고 다녔으며 화의가 일 어날 때는 장소를 가리고 않고 그렸다. 또한 흥이 충만할 때는 등심지를 사용할 정도로 창작도구에도 제한을 두지 않으며 형사에도 뜻을 두지 않았다. 소식의 선 친이 제자가 그림을 좋아하지 않으면 반드시 그것을 즐기도록 유도하였다32)는 일 화에서도 보듯 이들 부자의 회화 사랑은 남달랐다.

따라서 회화 창작에서 무엇보다도 중요한 것은 대상을 실컷 보고 마음에 새 30) “畵以適吾意而已.” 蘇軾, 東坡論畵․書朱象先畵後 , 中國古代畵論類編(上), 49頁.

31) “東坡先生雖天才卓逸, 其於書畵二事, 乃性所篤嗜, 到處無不以筆硯自隨, 海南老媼, 見其擘裹 燈心紙作字. (中略) 其在黃州, 偶途路間, 見民間有叢竹老木, 卽鷄棲豕牢之側, 亦必就而圖之, 所以逸筆草草, 動有生氣, 彼固一時天眞發溢, 非有求肖之念也.” 李日華, 竹嬾論畵 , 中國古 代畵論類編(上), 134頁.

32) 서복관, 중국예술정신, 동문선, 1990, p. 406 참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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겨지도록 하고 흥을 북돋우고 그림 그리는 행위 자체를 즐기는 ‘자오’의 경계이며, 이러한 경계에서는 심수상응을 넘어 회화작품에 그 오묘함이 드러나 도(道)를 담 지한 노님의 경계를 구현할 수 있다.

2. 藝道를 담지한 遊의 경계

⑴ 문인들의 초탈적 삶

문인화가 발전한 송대에는 그 이전의 문인들과는 다른 문인들의 삶이 그 토 대를 마련하였다. 수대(隋代)에 시작된 과거제도는 당대(唐代)로 계승되었지만 귀 족제의 벽에 가로막혀 과거합격자는 좋은 가문이 아니면 좀처럼 관료로 승진할 수가 없었다. 그러나 당말 오대(唐末五代) 이후 동난으로 귀족이 몰락하고 출신가 문의 좋고 나쁨을 고려하지 않게 되자, 황제가 시험성적만으로 평가하여 우수한 인재를 등용할 수 있었다. 자신의 재능에 의해 관료로 출사한다는 의식을 강하게 가지고 있던 송대 사대부들은 이점에 있어서 당 이전의 귀족적인 사대부와는 구 33)된다.

문인화를 발전시킨 이들 문인들은 유가, 불가, 도가의 영향으로 다양하고 복 잡한 심리구조를 함께 보인다. 즉 내향적이면서도 진취적이거나 개방적이면서도 폐쇄적이다. 문인들에게 사회와 시대가 진취적 조건을 제공할 때, 다시 말해서 외 재적 이상 추구와 내재적 욕망 만족을 실현할 수 있는 길이 열려있을 때에는, 유 교 인생관의 적극적 일면이 주도적 역할을 차지하였다. 그러나 그 반대의 경우에 사대부들은 스스로의 껍질 속으로 숨어 들어가서 자신을 보전하며 제한적인 욕망 의 만족에 도취되었다. 인간 세상의 즐거움과 일신의 보전에 대한 추구는 처음부 터 끝까지 사대부들의 마음 속에 공존34)하는 딜레마였다. 이렇게 다양한 학문의 영향과 그에 따른 현실적 삶에 반영되는 복잡한 심리를 문인들은 회화 공간에서 유유자적하며 승화시키고자 했다.

문인화가 송대 이후 발전할 수 있었던 것은 이를 창작하고 감상할 수 있었 던 광범위한 문인사대부 계층이 사회적으로 주요 계층을 형성하였고, 이에 따라 문인층이 두터워지면서 정치 사회적 공무와 개인 간의 갈등을 불러일으키는 정치 33) 고지마 쓰요시, 사대부의 시대, 신현승 옮김, 동아시아, 2004, pp. 29~30.

34) 葛兆光, 禪宗과 中國文化, 임병권 역, 東文選 文藝新書 36, 1991, pp. 45~47 참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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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스템 하에서 문인들은 창작행위에 대한 가치를 새롭게 발견35)하게 되었기 때문 이다. 그들은 딜레마에 빠진 마음의 평정을 찾고 담백하고 세상을 초탈한 삶을 추구하면서 적의의 생활을 영위하고자 하였다. 이러한 삶의 경계는 그들이 추구 하는 최고의 예술적 경계, 즉 시화(詩畵)를 통한 예술적 상상력을 이끌어내는 예 도(藝道)의 실천으로 이어지면서 문인들은 자신을 끝없이 수양해야 했다.

예도로 이끌리는 자기수양적 삶은 논어 술이 편의 ‘유어예(游於藝)’의 진 정한 예술적 자유감을 추구하는 것이며, 장자가 추구했던 자유해방의 ‘유(遊)’의 정신은 최고의 자연스러운 경지인 ‘이천합천(以天合天)’의 경지로서 ‘도를 몸으로 깨닫는 즐거움(體道之樂)’을 최고의 즐거움으로 여기는 것이었다. 이러한 즐거움 은 현실에 속박당하지 않고 초탈하여 ‘구름을 타고 해와 달에 올라앉아, 세상 밖 에서 노니는’36) 절대적인 자유에서 느끼는 즐거움의 경지37)이다. 이는 심재(心 齋)․좌망(坐忘)의 미적 관조를 통해 사물의 본질을 추구하는 것이며 ‘포정해우 (庖丁解牛)’의 고사에서 보듯 단순한 기(技)가 아닌 도(道)의 경지를 추구하는 것 이다. 이를 추구한 회화적 특징은 자연스럽고 담박하며 형사(形似)보다는 사물의 본질인 신사(神似)의 표현에 중점을 두게 된다.

산수화에서 이러한 최초의 예를 찾아볼 수 있다. 최초의 산수화가로 알려진 왕미(王微, 415~443)와 종병(宗炳, 375~443)의 산수화론은 산수가 물질로서의 산 수가 아니라 사물의 본질을 담지하고 있는 도의 구현체임을 강조하였다. 자연을 그리는 것은 자신의 정신 속에서 유출된 산수의 정신이며, 산수전신을 이루게 하 는 근원도 예술가가 자기의 생명을 초월한 뒤에 나타나는 예술정신의 주체, 즉 장자가 말한 허정지심(虛靜之心)에서 나오는 것으로 바로 작품 중의 기운38)이다.

왕미의 산수론은 산수화를 그리는 일이 현장에서 직접적으로 실경(實景) 방식에 의해서만 그려질 수 있는 일차적인 묘사 방식을 탈피하여 시간과 대상의 공간을 초월한 상태로도 가능함을 설파하며, 그가 그린 산수는 ‘태허지체(太虛之體)’, ‘신 명강지(神明降之)’39)를 얻는다고 여겼다. 또한 종병이 제출한 산수화를 관람하는

35) 김재숙, 북송대 문인화론에 나타난 동양예술정신-문인계층의 미학적 은일주의를 중심으 로 , 철학연구 제115집, 대한철학회(2010), p. 23, p. 25.

36) “雲氣騎日月而遊於四海之外”, 齊物論 , 莊子, 안동림 역주, 현암사, 1993.

37) ‘逍遙遊’는 莊子內篇 첫부분에서 ‘구속이 없는 절대의 자유로움에서 노니는 경지’를 의미.

38) 서복관, 중국예술정신, p. 241.

39) 王微, 敍畵 , 中國古代畵論類編(上), 585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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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세인 ‘와유(臥遊)’40)는 ‘마음을 맑게 하여 상을 음미(澄懷味象)’하고 그로부터 마 음을 맑게 하여 도를 관조하는 경지이다. 따라서 그들의 그림은 바로 그들이 추 구한 현학의 구체화, 즉 그들이 추구한 장학의 도의 구현체41)로서 산수화는 곧 도가 드러난 모습이며 ‘와유’는 결국 예도에서 노니는 경지이다.

문인들은 회화 창작뿐만 아니라 감상에서도 초탈한 미적 관조의 자세로 임 하였다. 다음 곽약허의 글은 이러한 문인들의 감상태도를 잘 보여준다.

언제나 편안하게 빈 정원에 앉아 흰 벽에 높이 걸고 종일토록 그윽하게 바 라보고 있으면, 너무 기뻐서 천지가 크다는 것과 만물이 번잡하다는 것을 알지 못하게 되니, 하물며 권세와 이익의 장에서 놀라고 교만해지고 욕보이 며, 내달리고 질주하며 각축하는 영역에서 얻고 잃음을 헤아릴 수 있겠는 가? 다시 친구들을 우연히 만나면 놀고 체험하기를 멈추고 서로 유명한 자 취를 꺼내놓고서 토론하면, 이를 재료로 해서 깊이 비교하여 그로 말미암아 박식하게 되니, 대규․사혁과 함께 태어나지 못했더라도 바보스럽게도 남몰 래 사모하게 된다. 42)

이 글은 회화감상에 있어서 순수한 목적으로 그림을 대하는 문인들의 경험 에 대해 엿볼 수 있게 하는 글이다. 하루 종일 그림을 바라볼 수 있는 여유로운 시간들 속에서 세상의 번잡한 모든 일을 잊게 되고 또 친구들과 그림을 비평하면 서 지식을 더욱 깊게 하며 옛 선인들의 그림을 다시 생각하는 유유자적한 문인의 초탈적 일상생활을 묘사한 글이다. 이렇게 그림을 감상하는 일도 일상생활과의 거리두기가 가능했던 현실적․학문적 조건을 갖춘 문인들의 초탈적인 삶에서나 가능했다. 화설(畵說) 에는

40) 종병은 늙고 병이 들어 더 이상 유람을 다닐 수 없게 되자 “오직 마음을 맑게 하여 道를 관조하면서 누운 채로 그곳에서 노닐 것이다. 그 동안 돌아다녔던 곳을 모두 방안에 그려 놓으리라(唯當澄懷觀道, 臥以遊之, 凡所遊歷, 皆圖於壁.)”하였다. 이는 산수화의 효용성 뿐 만 아니라 그 관조방식을 드러내는 중요한 구절이다. 于安瀾 編, 宋書 隱逸傳 , 畵論叢刊

(上), 華正書局有限公司, 民國七十三年(1984), 1頁.

41) 崔炳植, 동양회화미학-수묵미학의 형성과 전개, 東文選 文藝新書 31, 1994, pp. 71~72 참 고, 서복관, p. 275.

42) “每宴坐虛庭, 高懸素壁, 終日幽對, 愉愉然不知有天地之大, 萬物之繁, 況乎驚寵辱於勢利之場, 料得喪於犇馳之域者哉! 復遇朋遊覯止, 互出名蹤柬論, 得以資深銓較, 由之廣博, 雖不與戴謝 並生, 愚竊慕焉.” 圖畵見聞誌敍論․序 , 中國古代畵論類編(上), 52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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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속적인 선비는 안목도 필히 저속하여서 결코 더불어 그림을 논할 수 없 으니, 세상에 그림을 잘 그리는 사람은 지극히 드물며 그러므로 그림을 아 는 자도 매우 적다. 다만 스스로 즐기면 그뿐이니 반드시 세상이 알아주기 를 구하게 되면 이것은 길가는 사람을 잡고 그것을 알리는 것이다. 게다가 그림은 본래 하나의 기예일 뿐이니, 다른 사람이 알아주지 않은들 어찌 해 가 되는가?43)

문인에게 있어서 그림은 ‘스스로 즐기는 것’으로서 충분하며 이를 통해 명성 을 바라거나 다른 이득을 얻기를 바라는 것은 격조가 지극히 떨어지는 일이다.

이것은 전선(錢選, 13세기)이 언급한 사기(士氣)에 의한 그림이 비전문가의 그림 인 “예체(隸體)”이며 “세상으로부터 구하는 것이 없어서, 칭찬과 비난으로 마음이 어지럽혀지지 않아야 하는 것”44)으로서 초연할 것을 요구한 것과 같은 맥락이다.

기운생동이나 격조 역시 먹에서 나오는 것이 아니라 먹으로써 실어 낸 작가의 정 신 주체로부터 비롯되어지는 것이다. 기운생동을 구현하는 것은 절대적으로 작가 의 정신적 특질이나 힘인 것45)이다. 계산와유록 에서도 ‘스스로 즐기는[自怡悅]’

마음가짐으로 임하는 자가 일류에 속하는 진정한 인물이며, 벼슬이나 다른 이익 을 받을 것이라는 계산 하에 그림을 그리는 것은 창작자가 잘 그릴 수도 없을 뿐 만 아니라 혹여 잘 그린다고 해도 시화계의 ‘좀 같은 존재(詩畵之蠹)’46)라고 평가 하고 있다. 이로써 문인들의 유유자적하고 세속으로부터 초연한 삶이 어느 정도 강조되었는지를 알 수 있다.

이렇듯 문인화가 어떤 경지에 오르기 위해서는 이해득실의 목적성이 우선되 기 보다는 초월적인 삶을 영위하는 경지에서 노니는 ‘유(遊)’의 경계가 가장 중요 하며 “마음이 기쁨을 품고 신기가 화합하길 기다려서 방에 들어가 다리를 쭉 뻗 고 자유로워야 그것(묘한 경지에 들어가는 것)을 취할 수 있다.”47)고 하였는데 이

43) “俗士眼必俗, 斷不可與論畵, 世間能畵者寥寥, 故知畵者亦少. 但以自娛可耳, 必爲求知於世, 是執途人而告之也. 此畵本一藝耳, 人卽不知何害?” 華翼綸, 畵說 , 中國古代畵論類編(上), 316頁.

44) “無求於世, 不以贊毁撓懷.,” 錢選, 霅川翁論畵 , 中國古代畵論類編(上), 91頁.

45) 김병종, 중국회화연구, pp. 116~117.

46) 盛大士, 谿山臥遊錄 , 中國古代畵論類編(上), 266頁.

47) “須待心懷怡悅, 神氣冲融, 入室盤礡, 方能取之.” 布顔圖, 畵學心法問答 , 中國古代畵論類 編(上), 208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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러한 경계를 취해야 도(道)의 경지에 든 화의를 그려낼 수 있다. 이것의 성취여부 로써 포안도는 ‘천연으로 이룬 그림과 인력으로 이룬 그림’48)을 구별하였다.

도(道)는 일반 규율(規律)이며, 상(象)은 사물의 각기 다른 형식 표현이다.

예술형상은 이러한 상을 통해서 사물의 내용 본질을 발견할 수 있으며, 나아가 도를 직접 음미하며 구현할 수 있다.49) 그러므로 결국 화도(畵道)를 경험하는 일 이란 ‘회화가 성립될 수 있는 최고의 정신경계’50)에서 도를 체험하는 경지의 자유 로움으로부터 표출되는 즐거움이다. 이는 예술 창작 뿐만 아니라 예술 감상에 이 르러서도 마찬가지이며 이러한 삶은 문인들이 추구하던 문학성․철리성으로 무장 한 초탈적 삶으로 노니는 경계에서 가능한 것이었다.

⑵ 법도를 넘어선 법도의 경지

문인들의 회화 창작과 감상에의 노님, 즉 유(遊)의 경계로부터 표출된 자오 의 예술경지는 예술창작의 실천원리로서 법도를 넘어선 법도의 경지를 추구하였 다. 자오의 예술창작관은 채색을 넘어서 수묵을 향하고, 붓으로 한정된 창작보다 는 붓 이외의 도구 사용으로 향하게 했으며, 형사를 넘어서 신사로 향했고, 번잡 함보다는 간략하고 담박한 취미로, 역사화와 인물화보다는 산수화와 화조화에로 의 제재 변화에 일조했다.

유가는 윤리적 체계를 널리 전했지만 상상력에 대한 여지는 거의 남겨두지 못했으며 정신적인 편안함도 제공하지 못했다. 도가와 불가는 사람들에게 신선하 고 새로우며 색다른 사색공간을 제공했고 은자의 삶을 출가한 수도승이 아니라 자연을 애호하는 자로서 살아가게 하는 매력적인 것으로 만들었다.51) 석도(石濤, 1642~1718)가 “‘최고에 이른 사람은 법이 없다’고 말했다. 그러나 법이 없는 것이 아니고 법없음이 법인 것이 곧 최고의 법이다.”52)라고 지적한 것은 예술 창작의 창신의 정신을 강조한다. 법도를 넘어선 창의적인 세계에의 추구는 자유로운 사 유를 전제로 하는 자오의 태도로부터 시작된다.

48) “天成之畵與人力所成之” 앞의 책, 208頁.

49) 董欣賓, 鄭奇, 中國繪畵對偶範疇論-中國繪畵原理論稿, pp. 39~40.

50) 서복관, 중국예술정신, pp. 307~308.

51) Ching Yee, The Chinese Eye: An Interpretation of Chinese Painting, p. 86.

52) “曰 … 至人無法. 非無法也, 無法而法乃爲至法.” 原濟, 苦瓜和尙畵語錄․變化章第三 , 中 國古代畵論類編(上), 148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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먹의 사용과 관련해서 사혁(謝赫)이 그림의 품평으로 제출했던 육법(六法)에 는 용묵(用墨)에 대한 이론이 없다. 당대 왕유(王維, 701~761)에 이르러서야 수묵 선담법(水墨渲淡法)을 사용하여 수묵산수(水墨山水)를 창시하였음을 기록으로 살 펴볼 수 있으며, 이후 오대(五代) 형호(荊浩)의 육요론(六要論)에서 ‘기(氣)․운 (韻)․사(思)․경(景)․필(筆)․묵(墨)’으로 묵으로써 색을 대치하는 것을 강조하기 에 이르렀다. 수묵(水墨)은 먹의 물성(物性)이 입의(立意)에 의해 정신성이 강한 재료로 치환되는 것53)으로서 이미 이 시기에는 문인화의 시조로서 불리는 왕유의 회화경향으로 보아 먹은 색을 넘어서는 법도를 넘어선 법도의 경지였다. 소식의

<왕유오도자화(王維吳道子畵)>라는 시에 “왕유는 상외에서 그림을 터득하고 있 어, 신선이 자유롭게 훨훨 나는 것과 같네.(摩詰得之於象外, 有如仙翮謝籠樊.

)”54)라고 하였는데 왕유가 신선이 날 듯 자유로운 경지에서 작품을 행했으며 이 러한 태도가 뛰어난 작품 창작으로 이끌리고 있음을 품평한 것이다.

이러한 변천과정은 용묵이론이 본래 없었던 것에서부터 생겨나게 되는 발전 과정이며, 성숙되지 못했던 것에서부터 성숙되어진 발전과정이다. 또한 이것은 중 국화가 색채와 수묵을 인식한 역사를 기록한 것이며, 색채이론상에 있어서 중국 화 예술의 각성을 보여주고 있는 것으로서 이 각성의 본질은 형이하(形而下)에서 형이상(形而上)으로 나아간 것55)이다. 송대 문인은 이러한 ‘정신 성향의 표출에 맞는 수묵’56)을 택하게 되었다. 수묵을 사용하여 자연스럽게 법도와 부합되며 변 화무쌍하면서도 자취가 없을 수 있는 것은 수묵 자체의, 즉 깊이를 측정할 수 없 는 약동하는 생기를 표현해 낼 수 있기 때문57)이다.

한편 붓은 스스로 즐기는 자오와 유의 경지에서 손가락으로 대치되기도 하 였다. 즐기는 것이 중요할 뿐 무엇으로 그리는가는 중요치 않았던 것이다. 장조가 마음으로부터 터득하여 손으로 응해서 그릴 때 몽당붓을 쓰거나 손으로 문질러서 그렸으며, 왕흡(王洽)도 머리와 발을 사용하여 그 뜻을 펼치고자 하였다. 이는 화 면의 효과를 위해서 즐기듯 자연스럽게 이루어낸 새로운 기법이다. 붓 대신 손가 락을 사용하는 것은 오히려 그 흥을 더 잘 표현해 낼 수 있다. 지두화설 에도 53) 김병종, 중국회화연구, p. 245.

54) 서복관, 중국예술정신, p. 216 재인용.

55) 董欣賓, 鄭奇, 中國繪畵對偶範疇論-中國繪畵原理論稿, p. 87.

56) 김기주, 소식의 숭고관과 북송말 회화 , p. 5.

57) 李澤厚, 華夏美學, 權瑚 譯, 東文選 文藝新書 21, 1990. p. 333.

(20)

가는 태점을 무명지와 새끼손가락을 사용하여 함께 점을 찍으면 생생한 가 지와 마른 가지의 정취가 풍부하게 있게 된다. (그러니) 찬삼취오(攢三聚五;

그림을 그릴 때 모여 있는 것을 그려내는 방법) 같은 규칙에 어찌 집착할 수 있겠는가? 큰 떨기의 태점과 가시는 세 개의 손가락을 함께 운용할 때 손가락의 등을 사용하여 그것을 탁본하듯 찍어내면 얕고 깊고 진하고 담박 함이 고르면서도 자연스럽게 이루어져 저절로 울창하고 푸르름에 도달하니 나뭇잎도 이 방법을 사용할 수 있다. 손가락을 색에 묻히고 먹을 바림하여 화조를 몰골화법으로 그려내면 그윽하고 고우면서도 고아하니 이미 홀로 뛰어나다 일컬어지게 된다. 58)

고 서술되어 있는데 나뭇가지의 정취를 위해 손가락을 모아 사용하는 기법 들은 마음에서 우러나오는 뜻을 표출하기 위해 자연스럽게 제한된 도구를 극복하 고 있는 화가의 자세로서 천연의 정취와 묘미를 드러내는 방법이었다. 더 나아가 대가의 그림을 모방하여 그릴 때 조차도 그 대가의 화법에 얽매이지않고 자연스 러운 경계로 화법을 이끌어야 자연스러운 법을 넘어선 법도의 경지를 획득한다.

옛사람의 그림을 모방할 때면 처음에는 오로지 닮지 않을까 두려워하다가 이내 너무 닮을까 걱정하게 된다. 닮지 않으면 그 법에 나아가지 못한 것이 고, 너무 닮으면 곧 내 법이 되지 않는다. 법과 내가 서로 잊고 평담천연해 야, 소위 목적을 이루기 위한 수단을 버려야만 바야흐로 지극한 이치를 궁 구할 수 있다. 59)

형사를 중시하던 회화의 재현에의 의지는 송대를 지나면서 문인의 뜻를 표 출하는 사의(寫意) 경향의 표현의지로 바뀌었다. 회화는 사물의 외양을 묘사하기 보다는 내재적 본질을 드러내는 화도를 요구하기 시작하였다. 즉 화도는 형(形)의 본질적 특징을 파악하는 것으로서 신(神)을 전하는 것이자 상리(常理)60)를 추구하

58) “細苔用無名持, 小持雙點, 饒有生枝․枯枝之趣. 攢三聚五, 何其拘執? 大叢苔棘, 則三持運並, 以持背搨之, 淺․深․濃․淡, 渾然天成, 自有鬱葱之致, 樹葉亦用此法. 指頭蘸色暈墨作沒骨花 鳥, 幽艶古雅, 已稱獨絶.” 高秉, 指頭畵說 , 中國古代畵論類編(上), 341頁.

59) “摹仿古人, 始乃惟恐不似, 旣乃惟恐太似. 不似則未處其法, 太似則不爲我法. 法我相忘, 平淡 天然, 所爲擯落筌蹄, 方窮至理.” 方薰, 山靜居畵論 , 中國古代畵論類編, 235頁.

60) 蘇軾의 淨因院畵記 에서 언급되는 개념으로써 사물이 갖는 고유의 법칙성을 의미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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는 것이다. 문인들은 절제된 표현 속에 사물의 본질을 드러내고 반면 내용은 풍 부히 하기를 희망하였으며 “인품이 무르녹아 혼연조화된 정신적 그림의 상태를 운(韻)”61)이라 칭하면서 중시하였다.

이렇듯 사의 경향을 중시하는 문인화의 경향은 일필휘지의 간결함과 세련됨 을 중시하여 “자세하면서도 성글고, 간결하면서도 뜻이 충분한 것은 오직 필묵의 밖에서 터득한 자만이 그것을 알 수 있다.”62)고 강조하였다.

다음 석도의 말은 이러한 지극한 간결함인 무위(無爲)의 태도로 임하는 ‘예 도’를 담지한 ‘유’의 경계 그 자체를 느끼게 해 준다.

먹을 운용할 때는 이미 이루어졌듯이 하고, 붓을 잡을 때에는 행함이 없는 듯하며, 화폭에 천지, 산천, 만물을 그려냈지만 마음이 담박하여 아무 것도 없는 듯한 것은 어리석은 것이 제거되고 지혜가 생겨났고, 속된 것이 제거 되고 맑은 것이 지극하기 때문이다.63)

이렇듯 무위한 듯한 간결한 표현방식을 통해 유유자적하는 창작의 경지는 회화감상에서도 상상력의 극대화를 이끌어 내고자 하는 데에 중점이 두어지는 것 으로 이는 ‘자오’의 예술적 통찰력이 있어야 가능한 경계이다.

Ⅳ. 自娛: 자기수양에 근거한 예술적 통찰력

인문학적 지식과 삶의 철학을 기반삼아 자기 수양을 지향하는 문인들은 개 인의 뜻과 정취를 펼쳐내는 격조있는 회화세계를 창조해 내었다. 그에 따라 뜻에 따르는 적의(適意)의 생활과 천연의 미적 가치를 최고로 여기며 자오하는 경지로 나아가고자 하였다.

그러나 진정한 자오의 경지는 힘든 자기수양을 거친 후에야 가능하다. 자기

61) 김병종, 중국회화연구, p. 238

62) “精而造疏, 簡而意足, 惟得於筆墨之外者知之.” 葛守昌, 守昌論精簡 , 中國古代畵論類編, 67頁.

63) “運墨如己成, 操筆如無爲, 尺幅管天地, 山川, 萬物, 而心淡若無者, 愚去智生, 俗除淸至也.”

原濟, 苦瓜和尙畵語錄․脫俗章第十六 , 中國古代畵論類編(上), 157頁.

참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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