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自娛: 자기수양에 근거한 예술적 통찰력

문서에서 ‘自娛’의 예술창작관 연구 (페이지 21-25)

인문학적 지식과 삶의 철학을 기반삼아 자기 수양을 지향하는 문인들은 개 인의 뜻과 정취를 펼쳐내는 격조있는 회화세계를 창조해 내었다. 그에 따라 뜻에 따르는 적의(適意)의 생활과 천연의 미적 가치를 최고로 여기며 자오하는 경지로 나아가고자 하였다.

그러나 진정한 자오의 경지는 힘든 자기수양을 거친 후에야 가능하다. 자기

61) 김병종, 중국회화연구, p. 238

62) “精而造疏, 簡而意足, 惟得於筆墨之外者知之.” 葛守昌, 守昌論精簡 , 中國古代畵論類編, 67頁.

63) “運墨如己成, 操筆如無爲, 尺幅管天地, 山川, 萬物, 而心淡若無者, 愚去智生, 俗除淸至也.”

原濟, 苦瓜和尙畵語錄․脫俗章第十六 , 中國古代畵論類編(上), 157頁.

수양에 근거한 자오에 의한 붓놀림은 예술적 통찰력이 번뜩이는 수단이다. 인격 수양 및 학문을 닦고 심수상응을 넘어선 붓의 수련에 의하여 문인들은 자신들의 예술의지를 통쾌한 예술적 통찰력으로 승화시킬 수 있었다. 붓과 먹에 의해 한 번의 그어짐으로 마무리되는 문인화는 고통스러울 정도의 수련을 거친 후에 나오 는 멋들어진 통쾌함이다. 다음 글은 이 점을 잘 보여준다.

이것을 수련하는 방법은 먼저 마음을 수련하고 다음은 손을 수련하는 것으 로 붓은 곧 손이다. 옛사람들은 돌을 읽는 방법이 있었으니, 봉우리와 숲, 산기슭은 반드시 가슴에 숙독하였다. 대개 산천의 존재는 바깥의 형(形)이 고, 마음에 익숙한 것은 신(神)인데 신이 마음에 익숙해져야 이 마음도 신 을 수련하는 것이다. 마음이라는 것은 손을 거느리는 것이고, 손이라는 것 은 마음이 부리는 것이니 마음이 익숙한 바를 손으로 하게 하면 어찌 감히 손이 응하지 않겠는가? 그러므로 붓을 수련하는 자는 손을 수련하는 것이 아니라 마음을 수련해야 한다.64)

이상 살펴본 바에 따르면 붓을 운용하기 위해서는 마음을 수련해야 한다.

‘자오’의 경지는 문인들의 초탈적 삶에서 누리는 즐거움을 일컫는 것이지만 이것 은 자기 자신을 갈고 닦은 후에 맛볼 수 있는 참된 맛이다. 회화에서 중시한 것 은 전선(錢選)에 의하면 ‘선비의 기[士氣]’였고, 예찬에 의하면 ‘자유로운 기[逸氣]’

였는데, 이는 자기수양을 통한 고결한 인품의 표출을 중시한 것이었다. 이렇듯 사 기나 일기의 자유스러운 유출에 따라 그 예술적 통찰력이 ‘일필초초(逸筆草草)’,

‘불구형사(不求形似)’ 등으로 드러난다.

예도에 오른 경지로서의 예술적 통찰력을 갖춘 창조력은 로울리가 설명하는

‘일(逸)’의 개념에서 잘 표현되고 있다.

도(道)의 천연스러움을 전하는 도구가 되기 위해 예술가는 일(逸)이라는 결 실을 성취해야 한다. 이것은 자발성이나 심지어 개인적인 천재성을 훨씬 능 가한다는 의미인데, 일이 예술가와 우주 정신 사이의 조화에서 생겨나기 때 64) “練之之法, 先練心, 次練手, 筆卽手也. 古人有讀石之法, 峯巒林麓, 必當熟讀於胸中. 蓋山川之

存於外者形也, 熟於心者神也, 神熟於心此心練之也. 心者手之率, 手者心之用, 心之所熟, 使手 爲之, 敢不應手? 故練筆者非徒手練也, 心使練之也.” 布顔圖, 畵學心法問答․問練筆法 , 中 國古代畵論類編(上), 200頁.

문으로, 이것은 신비한 결합에 가까운 것이다. 중국인의 저술은 예술가가 우주를 그 심원한 사고 및 묘의(妙意)와 합일시키기 위해 갖추어야 할 것에 대한 이야기와 구절들이 풍부하다. 모든 시대에 최상의 창조적 준비상태에 도달하기 위해서 명상과 집중력의 필수성이 주장되었다. 그리고 그런 다음 에야 예술가는 ‘애쓰지 않아도 자연적인 것을 파악’할 수 있었다.65)

로울리는 예술가가 진정한 道의 경지에 오르기 위해서 逸의 경지를 달성해 야 하며 이는 개인적인 천재성을 훨씬 능가하는 것으로 심재를 통한 집중력의 수 양을 기본 바탕으로 하여 자연스럽게 이루어지는 것이라 생각했다. 이것은 결국 선가(禪家)에서 말하는 묘오(妙悟)를 깨닫는 경지이며, 인의(人意)와 천의(天意)가 결합된 최고의 경지이자, 흥으로부터 도출된 ‘심수상응(心手相應)’, 즉 창작자의 뜻 과 붓의 쓰임이 일체화된 경지를 넘어서 석도가 “무법이법(無法而法)”66), 즉 법이 없는 것으로서 법을 삼는다고 한 것과 맥을 같이 하는 것으로 예술적 통찰력이 극에 오른 경지이다.

이상 살펴본 바와 같이 동양에서의 예술적 성취는 그 권계적 효용성으로부 터 출발한 회화의 효용성이 문인화에 의해 예술적 자율성을 획득하였는데, 이는 인격수양과 학문의 도야를 넘어서 예도에 오른 경지로서의 예술적 통찰력을 갖추 는 것이며, 이는 문인들의 ‘자오’의 예술창작관으로 가능했다.

Ⅴ. 결론

예술창작관으로 살펴본 ‘자오’는 ‘스스로 즐긴다’라는 인간행복 실현에의 의 지이다. ‘자오’의 창작관은 자의로부터 오는 자기만족이든 사회적 가치개념으로부 터 획득된 학문적 이상이든 문인들은 ‘스스로 즐기는 것’에 대한 가치를 실천하는 것을 목표로 삼고 이러한 창작관을 갖추기 위한 학문적․인격적 도야를 삶 속에 서 실현하고자 했다.

송대 문인들은 스스로 즐기고[自娛] 뜻에 맞는[適意] 문인화를 발전시켰으며 65) G. Rowley, Principles of Chinese Painting (Princeton Univ. Press, 1947), pp. 34~35.

66) 石濤, 苦瓜和尙畵語錄․變化章第三 , 中國古代畵論類編(上), 148頁.

원대 이래로 문인화의 ‘자오’적 특징은 이제 무시할 수 없는 역사적 지위를 획득 하고, 중국회화를 예술과 심미의 차원에서 논할 수 있는 근거를 마련67)하였다.

‘자오’는 세속적인 것에 마음을 쓰지 않는 것이며, 마음을 비우고 스스로를 되찾는 노력이다. 그에 따라 문인들은 유․불․도의 종교적․학문적 지식을 습득 하여 생활 속에서 몸가짐을 바르게 하고, 욕심을 버리며, 무위자연의 삶을 실천하 려 노력했다. 그런 수양과정에서 문인들이 뜻을 즐기며 토해내듯 펼쳐낸 것이 문 인화였다. 자오의 경계에서 펼쳐낸 문인화는 그들의 학식과 철리성과 도덕성이 융입되어 어떤 물질적 이익도 추구하지 않으며 스스로 새로운 기법들을 창안해 내고 전통 속에서 새로움을 발견해 내며 회화 창작 및 감상에서 노니는 경지로 승화된 것이었다. 이런 일련의 과정에서 문인들은 비록 전문적인 화가는 아니었 으나 학문적․철리적․도덕적 수양을 근본으로 하면서 마음에서 이루어진 화의를 손으로 그려내기 위해 흥을 돋우며 수련을 거쳐 ‘예도에서 노니는 경지’에 오르고 자 하였다.

따라서 자오의 예술창작관은 다음과 같은 특성을 갖는다. 첫째, 학문적․철 리적․도덕적 자기수양을 전제로 한다. 둘째, 속됨을 버리는 허정한 마음을 갖춘 다. 셋째, 허정한 마음으로부터 손을 자유롭게 부리는 기교의 숙련도를 전제한다.

넷째 이러한 모든 수련을 통해 예도의 경지에서 노니는 예술적 통찰력을 갖춘다.

예술창작관으로 살펴 본 ‘자오’의 경계는 흘러가버린 옛 것으로서가 아니라 현대를 살아가는 동시대인들에게도 재고해 볼만한 가치가 있다. ‘자오’는 회화의 가치 측면에서 권계적 효용성으로부터 예술적 자율성을 획득한 개념이면서 예술 적 통찰력을 분출할 수 있는 모든 의지를 담고 있는 ‘예도’에서 노니는 마음이 자 유로운 경지이다. 다만 서양의 예술적 통찰력과 다른 것은 이 속에는 삶 속에 응 축된 윤리적 요소가 불가분 강하게 포함되어 있다는 사실이다.

결론적으로 ‘자오’의 예술창작관은 문인들이 학문도야와 인격수양을 통해 우 러나오는 초연한 마음자세를 근본으로 하여 그 뜻을 초월적으로 운용할 수 있는 경지로서 이로부터 예술적 통찰력이 발휘될 수 있다. 이는 반드시 다양한 삶에서 의 수양이 바탕이 되어야만 체험할 수 있는 경지이며, 이로부터 ‘도(道)’를 담지한 진정한 자유로운 창작에의 경지를 맛볼 수 있는 것이다.

1)

67) 김재숙, 북송대 문인화론에 나타난 동양예술정신-문인계층의 미학적 은일주의를 중심으 로 , p. 39.

* 논문투고일 : 2011년 2월 28일 / 심사기간 : 2011년 3월 2일-4월 14일 / 최종게재확정일 : 2011년 4월 16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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