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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9년 늦가을 폴란드 수도 바르샤바의 어느 호텔에서 독일 베를린장벽 붕괴 20주년 특집 방송을 시청한 적이 있었다. 그 방송에서 인상 깊었던 장면은 동독을 탈출한 한 가족의 인터 뷰였다. 기자가 아이들의 어머니에게 20년 전인 1989년 여름휴가 때 헝가리로 여행을 갔다 가 서독으로 탈출한 이유를 물었다. 그녀는 “내 아이들의 미래를 위해서”라고 대답했다. 동 독에서는 아이들의 미래가 보이지 않았다는 것이다. 이 대답은 통일이 우리에게 언제 어떻게 다가올 것인지 암시해주는 것 같았다.
2020년 10월 3일은 독일이 통일된 지 30년이 되는 날이다. 우리보다 먼저 통일시대를 구 가하고 있는 독일은 지난 30년간 괄목할 만한 발전을 해왔다. 통일 이후 동독지역은 낙후되 고 환경오염이 심한 중공업지역에서 현대화된 인프라와 생활환경을 갖춘 지역으로 변모하였 다. 하지만 지속적인 인구감소와 이등국민이라는 좌절감 등 여전히 해결해야 할 과제들도 많 이 있다. 이 글에서는 독일 통일 30년의 변화상과 그것이 우리에게 주는 교훈은 무엇인지 살 펴본다.
동서독의 교류협력과 통일과정
1949년 서독 및 동독정부가 수립되면서 독일이 분단된 이후, 동서독은 냉전 분위기에서 서 로 별다른 교류협력이 없었다. 그러다가 1972년 동서독 기본조약체결 이후 교역을 중심으로 이상준 국토연구원 선임연구위원 ([email protected])
통일 30년, 독일의 교훈
제467호 2020 September
간 자매결연과 이를 기반으로 한 교류를 통해 동서독 주민들은 상호 이해에 대한 폭을 넓히 고 깊이를 더할 수 있었다.
1980년대 후반기 동독경제가 침체국면에 들면서 동독체제는 흔들리기 시작했다. 1989 년 가을 라이프치히에서 시작된 시민봉기에 서 11월 9일의 베를린장벽 붕괴를 거쳐 1990 년 10월 3일 법적인 통일의 완성까지, 1년 동 안의 통일과정은 누구도 예상치 못했던 드라 마 그 자체였다. 1989년 10월 9일 동독 남부의 중심도시인 라이프치히에서 대규모 민주화 시 위가 발생하였다. 이어서 동독정부의 여행자 유화 조치 관련 시책발표 해프닝으로 11월 9
일 베를린장벽이 개방되었다. 1990년 3월 18일 동독지역에서의 첫 번째 자유 총선이 있었으 며, 1990년 5월 18일 ‘통화 · 경제 · 사회통합에 대한 국가조약’이 동서독 간에 체결되었다. 이 조약에서는 동서독 화폐의 1:1 통합비율이 결정되었다. 1990년 9월 12일 전체 독일의 완전한 주권인정을 위해 모스크바에서의 2+4(동서독+미국, 소련, 영국, 프랑스)회담이 개최되었고 1990년 10월 3일 독일 통일이 공포되었다.
통일 30년의 변화
지난 30년 동안 동독지역의 변화를 요약하자면, 주민들이 서독지역으로 이주하여 인구가 줄 어들었지만, 소득이 증가하여 동서독지역 간의 경제적 격차가 크게 줄어들었다는 것이다.
통일 직전인 1989년 동독의 인구는 서독의 약 4분의 1 수준이었다. 2018년 기준으로 독일 전 체 인구는 약 8302만 명이며, 동독 인구는 약 5분의 1 수준인 1619.6만 명이다. 1991부터 2017 년 동안 동독지역에서 서독지역으로의 이주가 370만 명, 서독지역에서 동독지역으로의 이주 가 250만 명으로 동독지역은 120만 명의 순인구 감소를 경험하게 되었다(Der Spiegel 2019,
1) 분단기간 중 동서독 도시 간 최초의 공식적인 자매결연은 1986년 9월 서독의 자를루이(Saarlouis, 인구 약 4만 명)와 동독의 아이젠휘텐슈타트(Eisenhuettenstadt, 인구 약 5만 명) 간의 체결이었음. 동서독 도시 자매결연의 대부분은 시장(市長)의 강력한 의지라기보다는 시민들의 바람/요청으로 이루어졌다고 할 수 있음. 독일의 시사주간지 ‘디 자이트(DIE ZEIT)’는 이것을 ‘아래 로부터의 외교’라고 묘사하였음(http://www.zeit.de/2016/02/staedtepartnerschaftenost-west-muentefering-interview).
자료: Manfred Kühn 20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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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6: 한승완 2020, 5에서 재인용). 1990년부터 2008년 사이에 동서독지역 간 인구 이동만으 로는 180만 명이 동독지역에서 감소하였는데, 2009년부터 2017년 사이 동독에서 서독으로 의 이주에 따른 순인구 감소 규모가 60만 명 감소한 것은 그만큼 인구 이동이 안정화 국면에 접어들었음을 의미한다. 2013년부터는 베를린을 포함한 동독지역의 인구 이동이 순증가를 보였다. 2017년에는 처음으로 베를린을 제외한 동독지역으로의 이주가 서독지역으로의 이 주보다 많은 것으로 나타났다. 이러한 역전현상은 2018년에도 지속되었다(한승완 2020, 5).
지난 30년 동안 독일 내에서 동독지역과 서독지역의 경제적 격차는 크게 줄어들었다.
2018년 베를린을 포함한 동독지역의 1인당 국내총생산(GDP)은 3만 2108유로로, 서독지 역 4만 2797유로의 75%에 도달하였다. 동독지역의 1인당 국내총생산은 대략 EU의 평균치 에 해당하는 수준이다(Bundesministerium für Wirtschaft und Energie 2019, 12; 124).2) 2018년 기준으로 정규직 근로자의 월평균 임금은 베를린을 포함한 동독지역이 2790유로로, 서독지역 3340유로의 84%에 달하는 것으로 나타났다(한승완 2020, 5). 최저임금은 동독지 역과 서독지역 간의 격차가 거의 없어지게 되었다. 2018년 기준으로 동독지역의 실업률은 6.9%, 서독지역의 실업률은 4.8%를 기록했다. 2000년대 초반만 하더라도 동서독의 실업률 격차가 10%포인트에 달했으나 2018년 현재 약 2.1%포인트에 불과하다(Bundesministerium für Wirtschaft und Energie 2019, 37).
2) 베를린을 포함한 숫자이고, 베를린을 제외할 경우 2만 9664유로로 서독지역의 69%(Bundesministerium für Wirtschaft und Energie 2019, 12; 124).
<그림 2> 통일 이후 동독지역과 서독지역 간 인구 이동
자료: 독일 연방통계청 자료를 토대로 할레경제연구소(IWH 2019)에서 재작성.
200,000 100,000 0 -100,000 -200,000 -300,000
-400,000
1989 1991 1993 1995 1997 1999 2001 2003 2005 2007 2009 2011 2013 2015
서독에서 동독으로 인구 이동 동독에서 서독으로 인구 이동 균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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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30년간 독일이 통일을 통해 이룩한 가장 큰 성과는 동서독 간의 물리적, 사회경제 적 격차가 크게 줄어들었다는 점이다. 독일 내무부장관은 인터뷰를 통해 동서독 간의 구조적 격차(structural differences)가 앞으로 10년 이내에 사라질 것으로 전망하고 있다.3)
무엇보다도 지난 30년 동안 동독지역 주민들의 삶의 질이 높아졌다는 점은 분명하다. 필 자가 독일 베를린 공대(TU Berlin)에서 유학했던 1992년 당시 첫 숙소는 동베를린 판코브 (Pankow)의 5층짜리 아파트였는데, 과거 공무원들이 많이 살았다는 이곳에서 방 한 칸을 사용하였다. 외관은 1990년대 우리나라의 주공아파트와 비슷하였지만 내부 설비가 허술했 다. 베니어합판으로 된 현관문, 타일 벽지가 붙여진 욕실의 모습은 생경함 그 자체였다. 아 파트 인근의 노후한 주택들은 석탄난방을 해서 저녁이면 메케한 석탄 냄새가 진동하기도 하 였다. 집에 전화도 없었는데, 집주인 이야기로는 설치 신청을 했지만 2년 정도 후에나 설치 순서가 돌아올 것 같다고 하였다. 덕분에 전화 한 번 하려면 10분 정도 걸어 나가 공중전화 를 이용해야 했다. 동독의 수도였던 동베를린이 이 정도였으니 나머지 지역의 주거여건은 충 분히 상상하고도 남을 것이다. 필자가 2015년 다시 베를린의 판코브를 방문했을 때, 옛 동베 를린의 주거지는 이제 더 이상 서베를린지역과의 차이를 느낄 수 없을 정도로 깔끔하게 정 비되어 있었다. 이러한 성과가 나타난 것은 연방정부의 대규모 도시개발 투자 때문이었다.
연방정부는 1990년부터 2018년까지 동독지역 도시개발지원 프로그램에 88억 5천만 유로를 투입하였는데, 이것은 독일 전체 도시개발지원 프로그램 투자액의 59%를 차지하는 것이다 (Bundesministerium für Wirtschaft und Energie 2019, 66). 인구비율이 15%에 불과한 지 역에 막대한 재정투자가 이루어진 것이다.
교통 분야도 괄목할 만한 개선이 이루어졌다. 통일 이전에는 철도로 세 시간이 넘게 걸리 던 베를린-라이프치히 구간이 고속철도 덕분에 한 시간대로 좁혀졌고, 동독지역 주민들은 어디에서나 자동차로 30분 안에 고속도로망에 접근할 수 있게 되었다. 서독지역 본(Bonn)에 서 동독지역 라이프치히(Leipzig) 간의 고속도로 통행시간이 통일 이전 9시간에서 현재는 5시간으로 축소되었다. 필자 가족은 2006년 독일 월드컵 당시 라이프치히에서 개최된 우리 나라와 프랑스와의 예선전을 보기 위해 일요일 오후 본에서 승용차로 출발하였는데, 현대화 된 고속도로 덕분에 평균 시속 100km로 달려서 무사히 경기 시간에 맞추어 경기장에 도착 할 수 있었다.
주거와 교통 분야의 이러한 성과들은 통일 이후 추진된 연방정부의 적극적인 개발 프로젝
3) https://www.dw.com/en/german-unity-day-reunification-is-ongoing-process-says-merke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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트에 따른 것이다. 특히 통일 이후 독일 연방정부가 추진한 ‘통일독일 교통 프로젝트’4)는 동독지역 교통인프라를 획기적으로 개선하는 데 기여하였다. 연방정부가 1991년 4월에 결의 한 총 390억 유로(약 46조 8천억 원) 규모의 이 프로젝트는 9개의 철도 프로젝트와 7개의 고 속도로 프로젝트, 1개의 수로 프로젝트로 구성되었으며, 2018년 말까지 373억 유로가 투자 되었다(Bundesministerium für Wirtschaft und Energie 2019, 60). 철도 분야의 9개 프로 젝트 가운데 프로젝트 2번(함부르크-베를린)부터 7번(베브라-에너푸르트)까지 6개의 프로 젝트가 완료되었다. 프로젝트 8번과 9번은 현재 공사 중인데, 일부 구간은 완료되었다. 프로 젝트 1번(뤼벡-스튜랄준트)은 경제성 부족으로 일부 구간의 보수와 전철화 외에는 본격 추 진되지 못하고 있다. 앞으로의 동독지역 교통시설 개발은 ‘연방교통망계획 2030’에 따라 진 행될 예정이라고 한다.
통일 초기부터 연방정부는 동독지역의 인프라 개발을 위해 대규모 투자를 하였는 데, 1990년대 투자의 초점은 도로, 상수도 그리고 지역 에너지공급망 건설이었다. 에너 지부문에서는 신재생에너지부문이 가장 큰 성과를 보이고 있다. 이 부문에서 전력 생 산과 일자리 그리고 연구개발 혁신이라는 성과를 거두었다(Bundesministerium für Wirtschaft und Energie 2019, 58). 교통부문에서는 1991년부터 2018년까지 독일 전체 교통부문 투자액 3220억 유로 가운데 약 32%인 1030억 유로가 동독지역에 투입되었다 (Bundesministerium für Wirtschaft und Energie 2019, 60). 이러한 인프라 투자를 바 탕으로 통일 이후 동독지역의 대도시들은 통일 이전보다 더 경쟁력 있는 도시로 변모하고 있다. 특히 교육과 문화관광, ICT 등을 중심으로 라이프치히와 드레스덴은 동독지역 남부 의 경제성장을 주도하고 있다.
성과와 함께 남겨진 과제
지난 30년 동안 동독지역과 서독지역 간의 외형적 격차는 많이 줄어들었지만, 내적 격차 도 그만큼 줄어들었는지는 불분명하다. 사회통합이라는 관점에서는 여전히 많은 과제가 남 은 것으로 보인다. 이 때문에 독일 총리 앙겔라 메르켈(Angela Merkel)은 2019년 독일통 일 29주년 기념식에서 “독일통일은 한 번에 완성될 수 있는 것이 아니라 지속되는 과정”이 라고 하였다.5) 동독지역의 경제적 개선에도 불구하고 2015년 이후 대규모로 유입된 난민
4) 통일독일 교통 프로젝트(Verkehrsprojekt Deutsche Einheit)는 통일 이후 동서독 간의 대규모 교통망 건설계획으로, 17개의 교통망 건설 프로젝트를 제시하고 있음. 이 프로젝트의 당초 총 투자계획액은 약 570억 마르크이며, 철도부문에 9개 프로젝트 300억 마르크(52.6%), 도로부문에 7개 프로젝트 230억 마르크(40.4%) 그리고 수운부문에 1개 프로젝트 40억 마르크(7%)를 투자하는 계획임(Bundesministerium fuer Verkehr und digitale Infrastruktur 2019).
5) https://www.dw.com/en/german-unity-day-reunification-is-ongoing-process-says-merke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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의 조사에 따르면 2019년 기준으로 동독지 역 주민의 57%가 자신들을 여전히 ‘이등국민’
으로 간주하고 있고, “통일은 성공적이었는 가”라는 물음에 대해 약 38%만이 동의하였 다(Bundesministerium für Wirtschaft und Energie 2019, 13). 또한 통일 이후 개인적인 생활에 긍정적인 변화가 있었다고 응답한 동 독지역 주민들의 비율은 2019년 60%로, 2009 년보다 7%포인트 감소하였다고 한다.7) 이러 한 결과들은 통일 이후 동독지역 주민들의 사
회적 · 심리적 영역에 많은 과제가 남아 있음을 시사하고 있다.
동독지역의 경제력이 지난 30년간 많이 성장한 것은 맞지만, 여전히 지역의 경쟁력 측 면에서 많은 과제를 안고 있다. 통일 초기인 1992년 동독지역의 생산성은 서독지역의 약 40% 정도였으나 2018년에는 80%를 조금 상회하는 수준으로 격차가 줄어들었다. 하지만 이 러한 생산성의 향상은 주로 불필요한 노동력의 해고를 통해서 이루어진 것이다(Gunther Schnable and Tim Sepp 2019, 4). 동독지역 지방자치단체의 재정적인 여력도 서독지역에 비해 크게 취약하다. 2018년 기준으로 동독지역 주정부의 주민 1인당 조세수입은 1301유로 로, 서독지역 주정부의 2334유로에 비하면 약 56%에 불과한 실정이다(Bundesministerium für Wirtschaft und Energie 2019, 57).
독일주가지수에 반영되는 30대 대기업(30 DAX-Unternehmen)들 중 동독지역에 본사 를 둔 기업은 하나도 없고, 500대 독일기업 중에서 동독에 본사를 두고 있는 기업은 36개에 불과하다(Rehint Gropp and Gerhard Heimpold 2019). 대학을 제외한 정부지원 연구기관 132개 중 동독지역에 있는 연구기관은 34개에 불과하고 심지어 217개의 정부부처 기관들 중 에서 동독지역에 위치하고 있는 기관은 23개에 불과하다(Gunther Schnable and Tim Sepp 2019, 14). 이처럼 지역혁신을 위한 환경조성이 여전히 미흡한 것이 현실이다.
2017년 기준으로 독일 전체 주택 214만 호 가운데, 동독지역의 공가(空家) 비율은 10.2%
6) 극우정당인 독일대안정당(AfD)의 지지율은 동독지역에서 전국 평균의 두 배에 달하고 있음. 알렌스바흐(Allensbach) 여론조사에서는 서독지역 주민들의 71%가 자신들을 ‘독일인’이라고 인식하는 반면에 동독지역 주민들은 44%만이 그렇다고 응답하였음. 동독지역 주민들은 자신들의 의견은 묻지도 않고 연방정부가 결정을 내린다고 느끼고 있음 (Anna Sauerbrey 2019).
7) 반면에 서독지역 주민들의 긍정적 응답비율은 같은 기간 동안 5%포인트 증가하여 56%였다고 함(https://www.
dw.com/en/germans-divided-on-unity-legacy-30-years-after-fall-of-berlin-wall/).
자료: 이미지투데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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로 서독지역의 4.4%보다 크게 높은 수준이다. 특히 2011년부터 2017년 사이에 공가가 29%
나 증가해서 72만 3천 호에 이르고 있다(Bundesministerium für Wirtschaft und Energie 2019, 68). 이러한 공가들은 주로 농촌지역과 중소도시에서 나타나고 있으며, 동독지역의 인 구감소와 취약한 성장기반을 대변하고 있다.
독일의 교훈: 뿌린 대로 거둔다
지난 30년 동안 독일은 큰 변화를 경험했다. 서독지역 4분의 1 정도에 머물던 동독지역의 경 제력은 이제 4분의 3 수준까지 올라왔고, 동독지역의 도시와 농촌은 이제 더 이상 서독지역 과의 차이를 느끼지 못할 정도로 변모하였다. 아직 많은 과제를 안고 있지만 동독지역이 통 일 이후 이 정도까지 발전할 수 있었던 이유는 통일 이전부터 뿌려진 씨앗들이 있었기 때문 이다. 바로 분단기간에 이루어진 교류와 협력이다. 동서독은 1971년 교통협약을 통해 육로를 통한 상호 방문의 기반을 마련하였다. 그리고 노후한 동독지역의 철도와 도로를 정비하는 공 동협력으로 양측을 연결하는 물리적 기반의 개선이라는 성과도 거두었다. 이러한 협력이 있 었기에 통일 이후 신속한 인프라 개발이 성공적으로 진행될 수 있었다. 동독지역이 오늘날 의 성과를 거두게 된 가장 큰 요인이 연방정부의 대규모 재정 이전인 것은 분명하나 서독지 역 도시들이 통일 전후에 동독지역 자매도시들을 위해 물적, 인적 지원을 아끼지 않았던 것 도 동독지역 발전에 큰 기여를 하였다.
교통인프라 개발 분야에 있어서 통일 직후 시행된 ‘통일독일 교통 프로젝트’와 같은 특별한 정책수단의 중요성을 우리는 주목할 필요가 있다. 통일 이후 동독지역의 신속한 개발을 위해 가장 시급했던 과제가 바로 동서독지역을 연결하는 교통망의 현대화였다. 분단기간에도 양 지역을 연결하는 교통망을 유지하기 위한 일부 협력이 있었지만, 통일 이후 대규모의 물자와 인력이 통행하기 위해서는 ‘통일독일 교통 프로젝트’와 같은 특별 프로젝트의 추진이 매우 중 요한 의미를 가진다. 독일의 사례처럼 우리도 적기에 적절한 정책수단을 준비할 필요가 있을 것이다.
동독지역의 인프라 개발과정에서 우리가 교훈으로 삼아야 할 부분도 많다. 동독지역의 주 정부와 지방정부는 정치적으로 지역의 인구성장과 발전을 위해 무리한 투자유치를 추진한 경우가 많았고, 이것이 과잉투자와 중복투자의 문제를 가져왔다. 동독지역 개발을 위한 대규 모 투자에도 불구하고 지역균형개발이라는 관점에서는 여전히 많은 문제를 보이고 있다. 통 일 이후 동독지역 내에서 지역경제의 남북 격차가 나타나고 있는 것이다. 북부지역(메클렌부 르크-포어포메른), 중부지역(베를린, 브란덴부르크, 작센-안할트), 남부지역(작센, 튜링엔) 등 세 지역 가운데 중부지역과 남부지역이 북부지역에 비해 지역총생산이 높은 추세가 유지 되어 지역 격차가 확대되었다. 우리는 통일독일의 교훈을 바탕으로 남북 간 균형발전과 북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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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권 관련 분쟁이 각종 개발을 지연시키는 부작용을 야기했기 때문인데, 통일독일의 연방정 부는 구 동독의 토지소유권 처리에 있어서 ‘원소유권 반환 원칙’을 시행하였다. 이 원칙에 따 라 구 동독의 토지 가운데에는 소유권을 주장하는 분쟁이 빈번하게 발생하였고, 이것이 신속 한 투자와 개발이 필요한 지역에 커다란 부담이 되었다. 원칙을 중시하다가 발생한 부작용이 라고 할 수 있다. 향후 통일이 되는 과정에서 우리는 이러한 실수를 반복하지 않도록 할 필요 가 있다.
많은 독일 학자들은 한국이 통일을 준비하면서 너무 경제적인 측면에만 관심을 두지 말라 고 충고한다. 경제만큼이나 중요한 것은 사회적 통합이라고 그들은 말하고 있다. 동서독 통 일의 가장 중요한 동인은 서독체제가 ‘기회의 제공’과 ‘미래가 있음’을 동독 주민들에게 보여 주었기 때문에 가능했다는 것을 잊지 말아야 한다고 충고하고 있다. 필자가 2009년 독일방 송에서 본 1989년 여름 동독 가족의 탈출 인터뷰가 다시 한번 머리에 떠오른다.
한승완. 2020. 2019년 독일 장벽붕괴 30년의 변화와 전망. 서울: 국가안보전략연구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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참고문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