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선을 앞두고 ‘경제민주화’란 용어가 한국사회를 떠들썩하게 하고 있다. 여야 정 치권이 앞 다투어 경제민주화를 이야기하니 이에 대한 관심은 높아지고 있는 반면, 정작 그 의미가 무엇인지에 대해서는 의견이 분분하다. ‘경제’민주화이니 경제학자 들에게 그 의미를 묻는 이들이 많이 있는데, 경제학자들도 고개를 갸웃거리기는 마 찬가지다. 사실 경제학을 전공한 사람들에게도 경제민주화란 용어는 매우 당황스럽 다. 요즈음 처음 들어본 용어라는 것이다. 필자도 미국에서 경제학과 관련된 많은 과목들을 수강했지만, 경제민주화(economic democratization)란 용어는 들어본 적 이 없다.
실체와 의미가 불확실한 대선용 정치용어‘경제민주화’
경제민주화가 고유의 경제적 의미를 가지는지 객관적으로 접근해 보자. 먼저 세 계적으로 널리 사용되는 온라인 백과사전인 Wikipedia를 통해 검색해 보면 economic democratization은 존재하지 않는다. 미국경제학회에서 1969년부터 현재 까지 발행된 총 73만 여건의 경제관련 학술논문 데이터베이스(EconLit)를 검색해 보면, economic democratization 주제를 가진 논문은 한건도 없다. 세계 최대 규모 의 초록 데이터베이스인 Scopus를 검색해 보아도 마찬가지이다. 100여년의 전통을 가진 미국의 대표적인 경제학 사전인 Palgrave Dictionary of Economics에서도 이 용어는 존재하지 않는다. 이 정도라면 경제민주화란 용어는 경제학에서는 학문적 근거가 없는 용어라고 평가할 수 있다. 물론 한국에서 경제민주화란 용어로 새로운 경제정책을 창조해 나갈 수 있지만, 200여 년 동안 쌓아온 주류 경제적 사고의 틀 에는 이 개념이 존재하지 않는다.
경제학의 일반적인 접근법은 먼저 용어를 정확히 정의한 후에 논리전개를 하는 것이다. 따라서 정의되지 않거나, 정의될 수 없는 용어는 분석대상에서 제외되는 절 차상의 엄격함이 있다. 그래서 경제학은 다른 사회과학에 비해서 다루는 영역이 좁 다. 일반인들이 많은 관심을 가지고 있는 정의(justice), 행복 등과 같은 용어가 경
경제학자도 모르는 경제민주화
현진권 한국경제연구원 사회통합센터 소장
2012-09-17
제학에서 발전하지 못한 이유이다. 경제민주화도 같은 맥락에서 이해해야 한다. ‘경 제’와 ‘민주화’ 각각은 확실한 개념을 가진 용어들이지만, 붙어서 한 용어가 되었을 때, 무슨 의미인지는 불확실하다.
경제민주화는 경제학적 개념이 없는 대선용 정치용어다. 정치인의 목표는 정치경 쟁에서 이기는 것이며 그러기 위해선 다수의 지지를 확보해야 한다. 유권자들은 경 제학적 엄격한 접근을 통해 정제된 용어사용에는 관심이 없다. 후보자의 출신, 머리 모양, 몸짓, 눈물, 말투 등과 같이 통치철학과는 무관한 것들에 의해 감성적 쏠림현 상을 보여준다. 그래서 정치인들은 들었을 때 기분 좋고, 뭔가 철학이 있는 듯한 효 과적인 용어를 개발하려고 경쟁한다. 경제민주화는 이런 조건에 맞는 대선용 정치 용어다. 그래서 정치경쟁을 하는 모든 진영에서 경제민주화를 외치고 있다.
정치권은‘경제민주화’라는 구호가 아닌 당장의 경제현실을 직면하여야
공자는 정치의 첫 출발은 정명(正名), 즉 용어를 바로 사용하는 것이라 했다. 정 치에서 정확한 용어사용은 사소한 것 같지만, 용어가 바로 서지 않으면, 세상은 어 지러워진다고 했다. 공자의 정명론은 정치경쟁이 존재하지 않았던 시대에 좋은 정 치의 규범적 방향을 제시한 것이다. 따라서 대선경쟁을 하는 현 정치인들에 정명론 을 강요하기는 어렵다. 공자의 규범적 방향은 국민들의 정치 지지를 확보하는데 효 과적이지 않기 때문이다. 경제민주화란 정치용어는 국민들의 지지를 확보하는데 좋 은 정치슬로건이지만, 세상을 어지럽게 한다. 정치권이 당장의 유혹을 뿌리치지 못 한다면 우리의 정치시장은 사회를 혼란스럽게 만들고, 경제발전에서도 장애요인이 될 수밖에 없다.
경제민주화의 정확한 의미도 모르고 경쟁적으로 정치깃발을 들다 보니 정치인마 다 제각각 다른 정책을 개발하고 있다. 불확실한 용어아래 대기업 때리기 경쟁, 복 지확대 경쟁 등 어디로 뛸지 모르는 정책들이 난무하고 있다. 같은 정당 내에서 조 차 경제민주화 개념과 방향에 대해 혼선이 있을 정도다. 혼란의 깃발을 앞세워서 다수 국민들의 지지를 받을 수 있는 가장 효과적인 방법은 사회를 두 진영으로 분 열시켜, 소수를 때림으로써 다수의 지지를 확보하는 것이다. 대기업과 같은 경제적 강자는 소수이기 때문에 가혹하게 때림으로써 다수의 지지를 얻을 수 있다. 지금 대기업을 규제하자는 많은 정책안들이 앞 다투어 개발되는 이유다.
지금 우리가 고민해야 하는 것은 ‘경제민주화’라는 구호가 아닌 당장의 경제 현실 이다. 국내외의 난관을 뚫고 우리 경제가 지속적으로 성장할 수 있으려면, 정치권에 서 분열의 리더십이 아닌 통합의 리더십이 발휘되어야 한다. 앞서가는 것을 주저앉
히는 방식의 경제민주화는 결국 대립과 갈등만 양산한다. 뒤쳐진 것을 끌어올려 주 는 것, 더 많은 기업이 대기업이 되고 그 속에서 일자리가 만들어져서 국민들이 내 일이 기다려지는 삶을 살 수 있도록 하는 것이 대선 국면에서 정치권이 정작 고심 해야 할 과제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