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실존주의 비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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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cademic year: 20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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실존주의

실존주의의 등장배경에 대해 알아보자. 1차, 2차 세계대전과 수많은 내전(러시아 혁명 (1918), 대공황(1929), 나치즘의 지배적 세력(1933 이후), 에스파냐내란(1936), 제2차 세계 대전(1940), 그리고 그 후의 미 ·소간의 냉전, 엄청난 과학의 힘)을 겪었던 인류는 회의감에 빠지게 된다. 자기들이 그토록 맹신하고 믿었던 인간의 이성과 과학의 발전이 순식간에 사 람들 죽음으로 몰고 가는 결과를 낳았기 때문이다. 강력한 원자폭탄 앞에서 성실히 일하던 청년, 성경을 믿고 행한 사람도 예외 없이 모두가 죽음을 기다려야했다.

결국 풍요와 자유를 가져다 줄 것 같았던 이성과 과학발전은 황폐를 가져다주었고, 신조 차 그들을 그곳에서 구원하지 못 했다고 생각하게 만들었다. 왜냐하면 세상이 바르고 합리 적인 원리로 작동하는 것이고 그것을 중재하는 신이 있었다면 그런 결과는 생기지 않았을 것이기 때문이다. 이러한 생각은 결국 인간의 이성, 역사적 발전, 신의 권능에 대한 근본적 인 회의를 만들었다.

세상이 어떠한 합리적인 원리와 기준에 의해 작동하는 것이 아니기 때문에 인간에게도 어 떠한 기준이나 마땅히 해야 할 어떤 것이 부여되지 않는다. 이때 인간은 자유와 주체성을 얻는다. 그리고 그것으로 인간의 실존 그 자체와 본질적 모습을 찾게 된다.

사르트르

볼펜은 볼펜이 현실에 존재하기 전에, 다시 말해 실존하기 전부터 글을 쓰기 위해 필요한 도구라는 볼펜의 본질이 먼저 존재했다. 그러나 인간은 그렇지 않다. 인간은 실존하기 이전 에 선험적으로 존재하는 그 무엇이 있지 않다. 인간은 이유 없이, 우연에 의해 이 세계에 던져진 존재일 뿐이다. 실존이 본질에 앞서는 것이다. 인간은 태어난 이후에 스스로의 선택 을 통해 주체적으로 자기 자신의 본질을 찾고 만들어 나가야한다.

“인생은 B(birth)와 D(Death)사이에 C(Choice)이다.”

-자유

세계 내에 던져진 인간에게 미리 정해진 규범이나 본질이 없는 이상 인간은 무슨 행동이 든지 해도 좋다. 이를테면 그에게는 무한한 자유가 주어져 있기 때문에 어떤 행동이든 해도 좋다. 무한한 자유, 이 공허하고 덧없는 자유가 사르트르에게는 구토를 일으켰다. 나는 내 곁의 돌부리를 차도 좋고 안 차도 좋다. 나는 내 곁의 친구를 때려도 좋고 안 때려도 좋다.

그러므로 매순간 나는 수많은 행동 가운데서 선택을 해야 한다.

내가 그를 때릴 때 그는 내게 반응할 것이며, 내게 내 행동의 책임을 물을 것이다. 그리 하여 나는 항상 책임을 의식하며 행동을 선택해야 한다. 인간에게 있어 본질이란 바로 이 모든 선택의 결과이다. 내가 이런 선택을 했더라면 나는 이런 본질을 가졌을 것이며, 내가 저런 선택을 했더라면 나는 저런 본질을 가졌을 것이다.

카뮈

명징 ‘깨끗하고 맑다.’ 인은 이 세계의 원리에 명쾌히 하고 싶어 한다. 그러나 그럴 수 없 다. 인간은 무관심, 객관, 때때로의 모호함, 그리고 자연적 질서에 의한 의미를 가지고 있지 않는, 그러나 예비되고 불안정한 인간의 행동에 의하여 창조된 부조리적 세계의 신하라는 실존주의가 자주 취하는 관점을 따르고 있다. 인간은 삶과 존재가 더 위대해지는 데에 가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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를 두지만 동시에 언젠가 죽을 것을 알고 있다. 의미를 추구하지만 그와 동시에 무의미해 질 것을 알고 있다. 까뮈는 이러한 상황 속에서도 왜 사는가?' 하고 감히 질문하고, 이 질문 에는 이해할 만한 대답이 끝내 얻어질 수 없음을 확인한 '부조리에 대한 생각을 하는' 인간 은, 고뇌의 감정(사르트르의 구역질)을 느낀 뒤, 희망 없는 각성과 무제한의 자유에 도취함 을 느낀다(사르트르도 마찬가지였다). 이러한 도취를 유지하기 위해서, '부조리한' 인간은, 우리 운명의 불합리에 대해서 끊임없는 반항 상태에 자신을 유지하지 않으면 안 된다. '생 전의 카뮈는 스스로 가장 ‘부조리한 죽음’이라고 말했던 자동차 사고로 사망했다.

-부조리

부조리는 인간'에'도, 세계'에'도 없다. 그것은 합리성을 열망하는 인간과 비합리성으로 가 득 찬 세계 '사이에' 있다. 세계 내에 던져진 실존에 부재하는 존재이유, 그리고 그 부재의 존재이유를 찾고자 하는 인간의 불굴의 이성, 부조리는 양자 간의 화해 없는 대립, 괴리, 갈 등으로부터 태어난다. 쉽게 말하면 어느 날 새벽 문득 잠에서 깨어 생명, 죽음, 우주, 존재, 무 등을 생각할 때 생기는 막막하고 아연한 감정, 그것이 바로 부조리의 감정이다.

-구토

로캉탱(Antoine Roquentin)이라는 30세의 그는 1만 5천 프랑의 연금이 있었으므로, 1932년에는 독립해서 살아갈 수 있었다. 그는 많은 여행을 하고, 부빌에 정착했다. 여기서 그는, '자기의 생존을 정당화하기 위해', 18세기의 모험가였던 롤르봉의 전기를 쓰려다가 포 기해 버린다.

그는 눈앞에 보이는 나무 뿌리를 보면서, 모든 것은 존재의 이유 없이 존재한다는 사실을 생각해 냈다. 그리고 그 모든 존재는 서로 아무 관계도 없이 존재한다는 부조리를 깨닫게 된 것이다. 로강탱 자신이 우연히 이 세상에 태어나 돌처럼 식물처럼 세균처럼 존재한다고 느낀 것이다. 이런 생각을 하면서 그는 갑자기 구토를 느끼게 된다.

그는 파리로 가서 6년 전에 헤어진 아내 아니와 만났다. 그녀는 이미 예전의 그녀가 아니 라, 로캉탱으로 하여금 더욱더 존재한다는 것의 부조리성을 확인시켜 주는 데 지나지 않았 다. 이 도시의 미술관이나 일요일의 산책이나 다방이나 식당에서 실존을 바로 볼 수 없는, 또 바로 보려고 하지 않는 사람들을 보았다. 로캉탱은 이 도시를 떠나려고 생각했다. 로강 탱은 기차를 기다리는 동안 우연히 재즈를 듣게 되는데, 그걸 통해 사람은 자기를 솔직하게 표현함으로써 자기의 생존을 정당화할 수 있을지도 모른다는 것을 생각한다. 그리고 그것은 로강탱에게 있어서는 책을 쓰는 일이었다. 그는 그곳에 희망을 가져본다.

-이방인

『이방인』은 “오늘, 엄마는 죽었다.”라는 문장으로 시작하여 곧바로 “아니 어쩌면 어제 였을지도 모른다.”라는 서술이 뒤따르는 간결한 문체와 밋밋하고 건조한 문장들이 독립적으 로 병치되어 있는 특징을 보여주고 있다. 또한 『이방인』은 ‘자기 자신과 사회에 대해 낯 설게 느끼는 자’ 혹은 ‘사회가 이상한 사람으로 치부하는 자’이고, 보통사람들과 다르게 생 각하고 다르게 행동하는 ‘괴팍한 인간’ 뫼르소가 등장한다.

주인공 뫼르소는 보통사람들과 다르게 생각하고 다르게 행동하는 괴팍한 인물로 비춰지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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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 한다. 하지만 뫼르소는 어머니의 사망을 전하는 간결한 전보를 받은 사람이라면 그 누구 라도 보여주었을 것처럼 뒤이을 의례화된 장례절차에 따랐으며, 어떤 면에서는 보통사람과 마찬가지로 무난히 장례를 마쳤다고 할 수도 있을 것이다.

겉으로 보기에 뫼르소는 엄마를 양로원에 보내 놓고 엄마의 나이도 잊을 만큼 무심한 아 들이다. 엄마의 죽음 앞에서 무덤덤했을 뿐더러 입관한 엄마의 시신을 보려고도 하지 않고, 오히려 그 옆에서 밀크 커피를 마시고 담배를 피운 냉혈한이다. 엄마의 장례를 치른 바로 다음 날 해수욕을 하고 평소에 호감이 있던 여자와 코미디 영화를 보고 관계를 갖는다. 사 회는 이런 자라면 능히 계획적인 범죄를 저지를 수 있다는 생각을 갖는다.

하지만 살라마노 영감이 개를 잃어버리고 침대가 삐걱거리고 울 때, 뫼르소는 죽은 엄마 를 생각한다. 살인을 저지르기 직전의 상황도 마찬가지이다. “뜨거운 햇볕에 뺨이 타는 듯 했고 땀방울들이 눈썹 위에 고이는 것을 나는 느꼈다. 그것은 어마의 장례식을 치르던 그 날과 똑같은 태양이었다. 특히 그날과 똑같이 머리가 아팠고, 이마의 모든 핏대가 한꺼번에 다 피부 밑에서 지끈거렸다.”라는 부분에서 알 수 있다.

카뮈는 “우리 사회에서 자기 어머니의 장례식에서 울지 않은 사람은 누구나 사형선고를 받을 위험이 있다”라는 말을 통해 삶의 논리에 대한 비판을 제기한다. 뫼르소 역시 어머니 의 죽음을 슬퍼했다. 다만 자기식대로 그 슬픔을 느꼈던 것이다. 어머니의 무덤 앞에서는 눈물을 흘려야 한다는 사회의 조리가 사실은 부조리인 것이다. 뫼르소는 이러한 부조리에 순응하지 않고, 변명하지 않는다. 그저 자신이 생각하는 대로 행동한다. 이처럼 뫼르소는 부 조리한 사회에 직면한 인간이 거기에 순응하지 않고 반항하는 모습을 보여준다.

실존주의 문학

이처럼 실존주의 문학이라는 것은 인간의 존재에 대한 탐구를 담고 있는 문학이다. 세상 에는 어떠한 불변의 정의나 법칙이 없고, 있다 하더라도 이해조차 할 수 없는 '부조리'를 보 여주며 어떻게 주인공이 대처하는지를 보여준다.

앞의 두 작품은 로캉탱과 뫼르소가 마주한 부조리에서 이들이 어떤 태도를 취했는지를 보 여주는 작품이다.

실존주의 비평

실존주의 비평은 작가의 작품서술 방식과 세계관 사이의 연관성을 드러내려고 노력했다.

작품의 중심에 위치해서 작가의 기도, 즉 작가가 글쓰기의 실천에 의해서 자신의 인격을 만 들어가는 방식을 찾아내려 한다. 작품 안에 작가가 바라보는 부조리한 세계가 드러난다고 보며, 그 안의 인물들이 어떻게 자신의 실존을 탐구하는 지를 분석한다.

앞의 두 작품은 각각 사르트르와 카뮈가 느낀 부조리한 상황을 보여주고. 로캉탱과 뫼르 소는 이러한 상황에서 사르트르와 카뮈가 취하는 실존의 탐구방법을 보여주고 있다고 보는 것이다. 이러한 점에서 보았을 때, <구토>와 <이방인>문학작품임과 동시에 철학적인 논지 가 담기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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실존주의 비평

목차 Ÿ 실존주의란

-실존 -실존주의

-실존주의 철학자 Ÿ 실존주의비평 -실존주의비평

-실존주의비평의 실례

--- 실존

본질- 어떤 것의 일반적 본성

그것이 개별자(個別者)로서 존재하는 것을 의미.

-옛날에는 모든 것에 관해 그 본질과 실존(존재)이 구별되었다.

--- 실존주의

20세기 전반(前半)에 합리주의와 실증주의 사상에 대한 반동으로서 독일과 프랑스를 중심으로 일어난 철학 사상.

개인으로서의 인간의 주체적 존재성을 강조하는 철학 및 문예사조.

--- 제1차 세계대전 후의 ‘생(生)의 철학’이나 현상학

제2차 세계대전 후에는 문학이나 예술의 분야에까지 확대

---

사르트르 –무신론적 실존주의

"실존은 반드시 본질에 앞선다(existence must precede essence)",

인간은 의자와는 다르다. 인간의 본질은 결정되지 않은데다 고정된 것도 아니다.

어떤 인간의 본질이 무엇이냐 하는 것은 그가 어떻게 살고 있느냐에 의해 결정된다.

즉 실존이 본질에 앞선다.

따라서 사르트르의 실존주의에서는 ‘신이 존재하든 존재하지 않든지‘가 아니라,

일단 "신이 없음을 가정"하고 전개되는 것이므로 무신론적 실존주의라고 부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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실존주의비평 Ÿ 비평 이론으로서의 하이데거 사상

1900년대 초, 유럽은 1차 세계대전-정치적 혼란과 경제적 어려움, 거기다 그 동안 신봉해 왔던 유럽 자본주의에 대한 회의로 인한 가치 혼란

하이데거는 '역사적 인식'을 강조

실제로 사람들이 어떻게 생각하고 살아가는지를 명상하는 철학 Ÿ 하이데거의 ‘존재’

실존, 즉 인간의 존재 방식을 주목하고 세계와의 관계 속에서 어떤 관계를 맺고 있는지를 주목한 하이데거에게 나온 결론이 '세계 내 존재'인 것이다. 세계는 주체와 객체로 나누어지는 것이 아닌 항상 대화하는 상대이다. 세계 안의 '나'는 끊임없이 나 자신을 투기, 즉 존재의 새로운 가능성들을 인식하고 깨달음으로써만 인간적인 삶을 살 수 있게 된다. '나'의 실존은 이런 가능성의 지속상태인 것이다.

--- 미국

실존주의는 원래 유럽에서 시작된 사상이다. 미국에는 1940년대 후반에서 50년대 초반에 소개되어 큰 인기를 끈다.

사르트르와 까뮈에 대한 관심으로 시작되었지만 실존주의에 대한 여러 방면의

연구가 진행되면서 현대 사회의 미국이 처한 어려움을 극복하는 방안으로 대두되게

된다.

참조

관련 문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