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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학연구론총 23집> 설화를 통해 본 포은의 충절과 그 인성 교훈 (김원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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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cademic year: 20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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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설화를 통해 본 圃隱의 충절과 그 인성 교훈

김원준

2 6)*

<목 차>

Ⅰ. 서론 - 충절이란

Ⅱ. 설화에 나타난 포은의 충절

Ⅲ. 포은 충절과 인성 교훈

Ⅳ. 결론

<국문초록>

본 연구의 일차적 작업은 포은 설화 가운데 그의 충절과 관련된 이야기만을 대 상으로 하여 그의 충절이 어떻게 구현되었는지 밝히는 것이다. 이를 통해 그가 보 여준 충절이 우리 시대 인성 교육의 바람직한 모범일 될 수 있는 가치를 찾아 시 대의 참교육으로 활용하고자 하는 데 있다. 논의의 진행을 위해 충절의 의미를 밝 히는 것이 우선이므로, 충절의 의미를 포은과 우리시대로 나누어 그 가치적 의미를 먼저 밝혔다. 다음으로 포은 설화 가운데 충절을 대변할 수 있는 대표적 설화를 중 심으로 포은의 충절이 지닌 가치와 의미를 구체적으로 제시했다. 이어 논의된 포은 충절 설화를 바탕으로 우리 시대 인성 교훈적 측면으로 접근하였다. 대의명분과 사 욕극복이란 철학적 삶의 바탕 위해서 보여준 포은 충절의 삶은 우리 시대의 인간다 운 길이 무엇인지를 보여준다.

* 영남대학교 교육대학원 조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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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핵심어>

충절, 포은 설화, 인성, 대의명분, 사욕극복

Ⅰ. 충절이란

요즘 시대에 와서 ‘충절’이란 말을 들으면 드라마의 사극을 연상 할 정도로 다소 진부하게 들릴지 모른다. 4차 산업혁명을 외치는 시대에 살아가고 있는 젊은이들에게 새삼 충절을 화두로 삼는다는 것이 세월을 역행해 과거의 기억에 머무는 퇴행적 모습은 아닌가 하는 의심을 자아내게 할 수도 있다. 그러나 현재는 과거의 진행형 이라는 점을 생각한다면 앞서 산 사람들의 삶과 철학을 지금과 분 리, 격리시킬 것이 아니라 진정한 가치를 우리의 혈류(血流) 속에 녹여 우리 시대 삶의 자양분으로 승화시켜야 할 필요가 있다. 그런 점에서 충절의 본래적 의미와 그 지향점이 어디에 있으며 무엇을 위한 것인지 구체적으로 살펴, 현재적 가치로 활용하는 것은 의미 있는 일이라 하겠다.

1. 포은 시대의 충절

포은 정몽주(圃隱 鄭夢周, 1337∼1392)는 우리 역사를 통틀어

충절을 대표하는 인물이라 할 만하다. 포은에 대한 일반인들의 인

식에는 늘 두 가지가 따라다닌다. 충신은 두 임금을 섬기지 않는다

는 절의 정신과 의로운 일을 위해서는 목숨까지도 버리겠다는 사생

취의(捨生取義)의 순절 정신이 그것이다. 그런 까닭에 포은하면 충

절의 이미지를 달고 다닌다. 이러한 포은의 충절을 자칫 왕조시대

군신관계의 의리에만 국한한다면 그의 충절은 본래적 의미를 상실

하고 편협한 시선 안에 갇히게 된다. 동방이학지조(東方理學之祖)라

(3)

불리는 포은임을 감안한다면, 그의 충절은 경직된 왕조시대 유교 질서를 고수하기 위한 것이라고 볼 수 없다. 포은의 충절은 성리학 의 도덕적 실천에 따른 것으로, 자신의 수양에서 출발하여 인간관 계로 확장되며 강상의리의 실천으로 귀결한다.

먼저 자기 수양으로서의 충을 본다. 충은 타인으로 향하기에 앞 서 자기 수양을 통한 자아 정립에서부터 출발한다. 충(忠)은 ‘中’과

‘心’으로 이루어진 글자로 자기의 마음과 힘을 다하는 진기진심(盡 己盡心) 또는 자기의 중심으로 주체성을 뜻하고 있다. 특히 진기진 심은 진심이며 실심(實心)으로 인간으로서의 모든 의무를 진심을 가지고 수행한다는 의미로, 충에는 바로 이 진기진심이 내포되어 있다. 그런 점에서 충은 타인으로 향하기에 앞서 자기 충실이라는 내면적 성찰과 도덕적 자아 완성이 먼저 이루어져야 한다. 이렇게 될 때 미루어 남에게 충실할 수 있게 된다. 즉 충이 내면적 양심에 서 외적 실천으로 나가기 위해서는 자기 수양이 완성되어 모든 일 을 진심으로 수행할 때 가능한 것이다. 이처럼 포의 충절은 수신을 통한 자기완성 위에서 출발하고 있다.

자기의 마음과 뜻을 진실하게 다하는 자기 성실의 충이 인간관계 로 확장될 때 신(信)이라는 구체적 사실로 나타난다. 즉 진실한 마 음인 충이 갖추어질 때 진실한 행위인 신으로 나가게 되는 것이다.

그런 까닭에 정자는 “사람의 도리는 다만 충신에 있으니 참되지 못 하면 사물이 없다”

1)

고 했다. 이 말은 되새겨 볼 필요가 있다. 세상 은 나와 나를 둘러싼 사물로 구성되어 있다. 그런데 나와 접하게 되는 사물에 대해 진정성 없고 믿음성 없는 마음으로 다가간다면 사물 또한 나에게 진실하게 다가오지 않게 된다. 이 경우 비록 사 물은 있으되 껍데기뿐인 형상에 불과한 것이다. 즉 자신에게 충실 한 마음이 없으면 진실한 관계가 형성될 수 없음을 말한다. 공자가

“충신을 주로 하라[主忠信]”고 강조한 이유가 여기에 있다.

1) 『論語』<學而> 集註 “程子曰 人道 惟在忠信 不誠 則無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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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에서 출발하여 신으로의 확장은 공동체의 일원으로서 강상(綱 常)의 의리를 실천에 옮기는 것이다. 강상의 의리는 도덕적 실천을 수반하므로 그에 대한 지절(志節)을 지켜나가기 위해서는 때로는 죽음도 마다하지 않아야 한다. 맹자는 “삶도 또한 내가 바라는 것 이며, 의롭게 사는 것도 또한 내가 바라는 것이지만, 두 가지를 아 울러 가질 수 없다면, 삶을 버리고 의롭게 사는 것을 선택하겠다”

2)

라 했다. 삶에 애착을 가지는 것은 인간으로서 당연하다. 문제는 생사의 갈림길에서 의를 버리고 삶을 쫓을 것인지, 의를 취하는 대 신 죽음을 받아들일 것인지 선택하기란 쉽지 않은 일이다.

충의 결실은 의롭게 삶을 마감하는 것인데, 여말의 상황은 포은 으로 하여금 의리의 보존이 아닌 의리의 실천을 요구했다. 사는 것 을 버리고 의리를 취하는 사생취의는 강상의 의리를 충을 통해 실 현한 것이다. 포은이라고 삶에 대한 애착이 없을 리 없다. 살아야 함을 알면서도 그렇게 하지 않은 것은 무엇 때문이겠는가?

고려의 사직이 종말을 앞둔 상황에서 포은은 의를 취함으로써 고 려와 운명을 같이 했다. 죽음은 누구에게나 두렵고 슬픈 일이겠지 만 죽음을 통해 도의(道義)를 지켜 갈 수 있다면 무엇이 슬프겠냐 는 것이 포은의 의지다. 이는 중국 송나라 말기의 삼걸 중 한 사람 인 문천상(文天祥)을 연상케 한다. 마지막까지 몽고에 대항하던 문 천상이 포로로 잡혀오자 칭기즈칸은 그를 회유하기 위해 “흥망성쇠 가 천하의 법도라면 얼마나 많은 제왕들이 있었는가? 세지도 못할 정도의 흥망성쇠가 무성하거늘 그대는 왜 이리 고집을 부리는가?”

라고 하자 문천상은 “흥망성쇠는 천하의 법도이고, 망국의 군신은 자고로 주살을 면치 못하거늘 나라고 살길 바라겠느냐? 나라에 충 성하다 죽는 나는 이제 죽어도 한이 없다.”고 했던 일화가 있다.

포은도 유사한 일화가 있는데, 평소 선생을 잘 알고 지내던 산승 이 찾아와 “세상이 다 변해 가는데 왜 그리 고절(苦節)을 지키려

2) 『孟子』<告子 上>, “生亦我所欲也 義亦我所欲也, 二者不可得兼 舍生而取義

者也”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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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려는가?” 하니 “한 왕조의 사직을 맡은 사람이 어찌 두 마음을 품을 수 있겠는가? 나의 갈 길은 이미 정해졌다.”고 했다. 두 일화 는 모두 풍전등화와 같은 국운을 지키기 위해 죽음으로써 저항했던 충절의 강의(剛毅)한 정신을 보여주는 사례라 하겠다.

이렇게 볼 때 포은의 충은 단순히 임금에 대한 신하의 충에 국 한된 것이 아니다. 그의 충은 심신 수양을 통한 실심의 충에서 출 발한다. 실심의 충은 진실한 행위인 신으로 나가 인간관계에 대한 의리의 실현을 이루게 되며, 이는 다시 국가와 민족을 위한 헌신으 로 확장되어 강상의 의리를 늘 품고 사는 충이 된다. 그런 까닭에 강상의리의 충은 생사를 초월할 수 있는 지대지강(至大至剛)한 충 절로 남을 수 있게 되는 것이다. 600여 년의 시공을 건너 뛴 지금 에도 포은을 기리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

2. 우리 시대의 충절

현대인들은 충을 단순히 국가나 군주 등을 향한 상대적 관계로 이해하려는 경향을 보인다. 이는 왜곡된 충의 개념으로 국가에 대 한 무조건적인 복종을 의미한다고 할 수 있다. 인간의 본성 중 올 곧은 마음이 진심으로 우러나는 충이 아니라, 정당·종교·통치자 등에 대한 일방적 충성(allegiance)의 의미를 띤다고 하겠다. 그런 까닭에 이들 충은 전통적 의식을 토대로 형성된 자생적 충이 아니 라 획일화된 일방향의 충으로 우리에게는 부정적으로 비쳐지기도 했다. 특히 긴 군부독재 시절을 겪었던 이들에게는 충의 본래적 의 미는 퇴색되고 위로부터의 일방적이고 무조건적인 복종이란 부정적 인식이 깔려있을 수 있다. 이처럼 현대인들에게는 충의 본래적 의 미는 퇴화되고 권위주의적 상징으로 비쳐져 무시하는 경향까지 띤 다. 그렇다면 과연 충은 우리시대 의미없는 구호로 그치는 것일까.

어쩌면 우리는 충의 본질을 대해 진지하게 생각해보지 않았던 때문

은 아닐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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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은 효와 함께 보편적인 윤리정신이다. 포은의 충에서도 보았듯 이 충은 자기 수양에서 출발한다. 충이 타인에게 실현되기에 앞서 진실한 마음인 자기 충실이 갖추어져야 한다. 이것이 충의 내향적 정신이라 할 수 있다. 인간 본성은 선하다는 것이 유가의 논리다.

그러나 선한 본성이 현실에서 그대로 온전하게 발휘되지만은 않는 다. 감각적인 욕망이 항상 선한 본성을 악으로 물들게 하기 때문이 다. 그런 까닭에 수시로 솟아나는 욕구들을 마음의 통제 하에 두어 야 한다. 정성(精誠)과 성의(誠意)를 자신에게 다할 때 진기(盡己) 에 이르게 된다. 즉 나의 내면적 덕성을 다 하는 것이 진기이며 달 리 말하면 충인 것이다. 따라서 충의 실현은 내면적 덕성을 닦아 내 마음에 내재한 선한 본성을 실현해 나가는 데까지 있다. 내 안 의 본성을 지켜 악을 물리치는 것은 예나 지금이나 인간 보편의 가 치이다. 이렇게 볼 때 우리 시대 충의 시작은 인간의 선한 본성을 닦아 지켜나가는 데서부터이다.

충이 자신에게 충실하여 자신의 인간다움을 완성하는 데서 출발 한다고 했다. 자기본심을 다한 충은 자기 마음을 미루어 타인에게 미쳐 충의 확장으로 나간다. 인간관계 즉 사회 윤리로서 충의 역할 이 요구되는 것이다. 내면 수양의 충에서 실천의 충이 필요하다.

인간관계에서 이루어지는 충은 신으로 연결된다. 충의 실질적 표현 은 바로 믿음이다. 신이란 글자가 말하듯 人+言이다. 즉 신은 사람 의 말로써 인간의 언어적 약속이 거짓 없이 실현되는 것을 의미한 다. 사회적 모든 인간관계는 신뢰를 토대로 이루어지는 것이다. 이 처럼 사회적 덕목으로서의 신뢰는 인간 내면의 본성이 가지는 성실 함이 전제되어야 한다. 그런 까닭에 인간의 삶이란 굳은 신뢰의 토 대 위에서만 가능하다. 우리는 살면서 서로를 신뢰하면서 인간적 관계를 맺어 간다. 믿음이라는 굳건한 다리를 통해 사람과 사람의 관계는 이어지는 것이다.

이상에서 보듯이 충은 진심이나 실심을 자아에게 돌려 자기 본심

을 다하는 데서 출발하여, 신의를 바탕으로 한 인간관계를 형성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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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간다. 그런 점에서 충은 우리 삶에 있어 가장 단순하면서도 근본 적인 덕목이 된다. 그런데 우리 시대는 충의 본질은 퇴락하고 그 자리에 형식적 충만을 강요하고 있다. 거대한 산업화의 구조 속에 변질된 충은 사소한 계획이나 거대한 음모에 많은 사람들이 참여하 도록 묶어주는 역할을 한다. 충에 대한 왜곡은 특히 높은 위치에 있는 사람들에 의해 강요되는데 이는 무조건적인 복종을 요구하는 데서 나오는 그릇된 충이다. 충은 양심에 따라 행동하는 것이며, 자신의 확신을 진실하게 따르는 것이다. 우리 시대 충의 모습도 여 기에서 출발해야 한다. 양심의 소리에 귀 기울이고 그 울림의 진폭 을 확고한 신념으로 뿌리 내려, 성실과 신뢰를 근간으로 개개인의 자주정신과 공동체 일원으로서의 윤리 규범을 준수하여, 공영하는 삶을 만드는 초석이 우리 시대 충의 모습이라 하겠다.

Ⅱ. 설화에 나타나 포은의 충절

포은 정몽주를 언급하면 남녀노소를 불문하고 누구나 그에 대한 이야기 하나쯤은 할 수 있을 만큼 대중적 인지도가 높은 인물이다.

600여 년이란 시간의 거리를 뛰어넘었으면서도 여전히 우리는 그 를 어떤 식으로든 기억하고 있다. 그 기억들 가운데 가장 많은 부 분을 차지하고 있는 것은 포은의 죽음과 관련된 이야기이다. 그의 설화자료를 대상으로 연구한 결과물을 보면, 문헌전승 자료는 32편 구비전승 자료 28편 등 총 60편이 있다. 그러나 앞서의 자료 외에 도 새로이 발견 내지 채록한 자료를 더 보탠다면 포은 설화는 지금 보다 훨씬 많을 것이다. 그러나 내용면에서 본다면 선생의 이인(異 人)적 행동

3)

을 이야기한 소수 자료를 제외하면 내용면에서는 기존 자료의 범주에서 크게 벗어나지 않는다.

3) 박기현, 「정몽주 설화에 나타난 인식 연구」, 圃隱學硏究4, 圃隱學會,

2009, 183~189쪽.

(8)

기존 연구 자료를 근거로 포은 선생의 설화를 유형별로 나누면, 1)포은의 탄생 및 개명, 2)선죽교에서의 순절, 3)포은의 묘자리, 4) 포은의 사당, 5)포은의 예지력 등으로 분류할 수 있다. 이 가운데 가장 많이 전승되는 설화는 ‘선죽교에서의 순절’이며 다음으로 ‘포 은의 탄생 및 개명’으로 그 뒤를 잇는다. 이 두 유형이 포은 설화 의 대부분을 차지하는데, 이 가운데서도 그의 죽음과 관련된 설화 가 지역적으로 가장 폭넓게 전승되고 있다. 묘자리와 관련한 설화 는 용인지역이 다른 지방보다 훨씬 높은 비중을 차지하는데, 그 까 닭은 그의 묘가 지금의 용인시 묘현면 능원리에 자리하고 있기 때 문이다. 시대를 초월하여 충절의 표상으로 각인된 포은의 가치를 재발견하기 위해 그와 관련한 다양한 이야기를 통해 우리 시대로 환원시켜본다.

1. 선죽교의 붉은 피

포은을 떠올리면 가장 먼저 선죽교를 연상하고 이방원의 회유와

그에 따른 선생의 단심가 등이 이어서 나타난다. 그만큼 포은의 충

절에 대한 강한 이미지가 수세기를 지나도 여전히 민중들의 뇌리에

깊숙하게 자리 잡고 있기 때문이다. 그런 까닭에 지금까지 전해지

는 포은의 이야기도 죽음으로써 절의를 지킨 단심(丹心)이 많은 이

들에게 회자되어 그 정신을 계승하고 있다. 지금까지 포은의 죽음

과 관련된 이야기는 여러 지역에서 고루 분포되어 전해져 오고 있

지만 그 내용에 있어서는 특별한 차이를 보이지 않는다. 다음 이야

기는 포은이 이성계를 문병하러 갔다가 이방원의 회유에 불응하자

그의 부하인 조영규 등에게 피살된다는 기본 서사 구조로 이루어졌

다. 전래하는 설화는 이와 같은 기본 서사 구조에서 전하는 이들에

따라 이야기의 내용이 가감되어 나타나고 있다. 다음은 가장 많이

회자되는 ‘선죽교에서의 죽음’ 이야기 가운데 가장 충실하게 내용을

담고 있는 이야기이다.

(9)

(앞 부분 생략) 사냥을 댕기다가 한번은 이성계가 그만 우에서 떨어져가지구 낙상을 해서 많이 다쳤거든. 다쳤는데 거저 이 지금 사람들하고 틀리는 게, 그런 분들은 또 그런대로 그 이유가 있을 테지만. 아무리 원수지간이구 서로 참 죽이고 싶지만 다 그것은 사 람의 임의대로 되는 게 아니구. 야간(여하간) 친구간이 친구가 사 냥을 갔다가 낙상을 해서 많이 다쳤다니께,

“병문안을 가긴 가야겠구나.”

그라구선 하루는 일어나서 자기 관, 거울로다가 관상을 보니께 그날 자기가 죽을 운수여, 그란디 그래도 기왕 갈라고 마음먹었던 건데. 이제 간다고 자기 어미니. 그 이 정포은이 자기 어머니한데,

“어머니, 저 이성계가 그렇게 많이 다쳤다니까 참 문병을 하고 와야겠습니다.”

그래 하니까. 이성계(정몽주 오기) 그 어머니 역시도 참 어- 이 조의 율곡의 어머니 폭이나(같이) 문장가였던 모양이야. 그 읊은 시가 있지. ‘까마귀 싸우는 골에 백로야 가지마라. 성앤 까마귀 흰 빛을 채우나니. 청파에 좋이 씻은 몸 더럽힐까 하노라’ 그 어미니 가 그랬어두.

“잘 다녀오겠습니다.”

갔거든. 가서 참 보니께 다치긴 좀 다쳤는데 죽을 정도는 아니 야.

“그래 자니(자네), 뭣하다 그렇게 다쳤나?”

그러니께. 그 저 내 운이 불길해서 다쳤노라고. 그라구선 들어 눕는디.

그때 인저 방원이가 그 즉시 그 온 김에 정포은을 어떻게든지 유혹해 볼라구. 이 사랑채로 불러내가지구. 술상을 차려오라 그랬 어. 주안상을 앞에 놓고선 거 한 잔씩 나누고 그라는데. 술은 한 잔을 권하면서 한 소리가 있지.

“이런들 어떠하리 저런들 어떠하리. 만수산 드렁칡이 얽혀진들 어떠하리. 우리도 이같이 백년을 살아보면 어떠리.”

그라구 술잔을 권했거든. 그랑께 정포은이 이걸 받어 마시구서 다시 반대로 하면서 하는 소리가,

“이몸이 죽고죽어 일백번 고쳐 죽어. 넋이라도 있고없곤 간에 임 향한 일편단심이야 가실줄이 있으랴”

이 안된다는 거지.

게 거절당하고 본께 방원이 생각엔 더 이상은 어떻게 할 수 가 없어. 그렁께 저뒤로다가 이제 군사들을 시켜가지구서 매복을 딱 시키는데. 어디냐면 선죽교. 선죽교 위에다가 이제 매복을 시켜놓 고선 술 참 잘 권해서 먹게 하구 그라구선 간다고 정포은이 일어 서니께.

“잘가시라구”

(10)

그라구선 보냈단 말이야. 보노는디 정포은은 참 전략가 군인도 아니구 참 선비이니께 그냥 겨우 저 마부 말꼬중잽이 하나만 데리 고 갔었는데 말이야. 근데 뭐 군사들을 매복 다 시켜놨는데 당할 수 가 있나. 게 선죽교 거기를 참 어찌 다다라 가지고 보니께, 군 사들이 사람들이 저 웅성웅성하는데, 거기가 필경은 자기 죽을 자 리라는 짐작하고선 그 마부를 뒤에 오라고 그라니께, 마부가,

“아이 그게 무슨 말씀이냐고 저 제가 앞장서겠습니다.”

그랑께 아니라고 자꾸 뒤에 서라 그러니께. 서로 인제 슬강이(실 랑이)를 하다 보니께 조족에서 화살이 냅다 날라온다 말이야. 그라 니께 이제 정포은이 말채를 후려치면서 빨리 가자고 외치고 말을 몰으니께, 정포은은 저이 빨리 어렇게 해서 그 자리라도 면하며는 또 저 위기를 피할 수는 있지 않나 해서 그랬던지 어땠던지, 참 말 을 몰아가지고 뛰는디. 아이 선죽교 거기 다다릉께 어떤 날샌 놈이 그만 정포은이 탄 그 말의 머리를 냅따 때렸단 말이야. 긍께 말이 껑충 뛰니께 정포은이 그만 말에서 떨어진 겨. 떨어지니께 이저 마 부가 쫓아가서,

“대감님!”

하고서 얼싸 안으니께. 그까짓꺼 뚝 떼집어놓고서 그냥 철퇴로 다가 저 정포은이의 머리를 몇 대 때려가지구 그냥 유혈이 낭자하 고 죽어서. 지금까지두 어 그 피의 흔즉이 있다는 그런 얘기가 있 는데 그렇게 해서 정포은이 참 죽은 거지. 죽고 어 그러다보니께 고려를 대변해서 일할 사람도 없고. 목은 이색선생도 그냥 산 속으 로 들어가버리고. 이저 선비들같이 사람들 72명이 두문동으로 모 두 들어가 가지고선 그 살게 되고. 아마 고 얘기까지는 먼저 전에 한번 있었을 걸. 4)

위의 설화에서 생략된 부분은 최영과 이성계의 갈등, 위화도 회 군, 퉁두란과 이성계의 이야기 등이 있다. 이후부터 포은이 선죽교 에서 죽기까지의 과정이 비교적 상세하게 이야기 된다. 설화 내용 을 서사 구조에 따라 정리하면 다음과 같다.

■ 사냥을 나갔던 이성계가 낙마로 인해 많이 다침

■ 포은이 이성계 병문안을 위해 어머니께 아룀

■ 포은을 염려하는 어머니가 시조를 읊고 주의를 당부함

■ 포은을 회유하려는 이방원의 술수, 시조를 통해 의중을 물어봄

4) 신동흔 외, 『도시전승설화자료집성』5, 민속원, 200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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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단심가로 포은 자신의 생각을 분명하게 밝힘

■ 이방원의 포은 암살 계획, 군사를 시켜 선죽교에 매복함

■ 죽음을 예감한 포은이 마부에게 뒤를 따르라고 함

■ 포은을 향해 화살이 날아옴

■ 위기를 모면하기 위해 말을 몰아 달아남

■ 선죽교에서 방원의 군사가 말머리를 가격하여 포은을 떨어뜨림

■ 떨어진 포은의 머리를 향해 철퇴로 내쳐 유혈이 낭자한 상태 로 죽음

■ 지금까지도 피의 흔적이 전하고 있음

■ 이색 선생의 은둔과 선비 72이 두문동으로 들어감

포은의 죽음과 관련한 설화는 대략 3유형으로 나뉜다. ①선생의 모친 시조, 이방원의 <하여가>, 포은의 <단심가>에 대한 일화가 결 합되어 선생의 죽음에 이르는 유형이 있고, ②그들의 시조는 없는 대신 선죽교의 혈흔과 대나무 생장을 통한 선생의 충절을 이야기 한 유형이 있으며, ③앞서의 두 유형을 모두 포함하는 유형이 있 다. 위 이야기는 대나무 이야기는 없지만 세 번째 유형에 해당한 다. 그런 점에서 이 이야기는 포은의 충절을 여러 상황 속에서 되 짚어 볼 수 있는 의미있는 자료다. 포은의 충절을 잘 대변할 수 있 는 사건 3개(피살 전, 피살 시, 피살 후)를 중심으로 전개해본다.

포은의 충절을 대변하는 첫 번째 사건은 이방원의 시조에 대한 선생의 답가에서 볼 수 있다. 사건의 발단은 다음과 같다. 이성계 가 해주에서 사냥을 나갔다가 낙마하여 벽란도에서 치료를 받는다 는 사실을 접한 포은은 그를 제거할 계획을 세웠으나 이방원이 기 미를 알아채고 부친을 서울로 오게 하였다. 포은은 이성계의 동향 을 살피고자 문병을 구실로 그를 방문하였다. 포은의 방문에 이방 원은 마지막으로 그의 진심을 떠보고 회유하기 위해 술자리를 마련 하여 자신의 의중을 <하여가>에 의탁해 불렀다.

이방원은 포은에게 이렇게 산들 어떻고 저렇게 산들 어떠냐고 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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의중을 떠보고 있다. 짧은 삶, 무엇 때문에 서로를 배척하며 살 필 요가 있느냐는 것이다. 이어서 너 내 없이 마구 뻗은 만수산의 칡 덩굴처럼 서로 얽혀서 사이좋게 살아보는 것이 어떠냐하는 회유가 재차 이어진다. 비유를 통해 관계를 개선하고자 했던 의중을 종장 에서는 구체적으로 요구하고 있다. 쇠퇴하고 몰락해가는 고려 왕조 를 굳이 끌어안을 필요가 있느냐는 것이다. 새 술은 새 부대에 담 듯이 새롭게 역동하는 왕조 건설에 동참하라는 권유이자 마지막 경 고 메시지인 셈이다. 이처럼 이방원은 고려의 멸망을 기정사실화하 고 이제 포은 당신도 고려에 대한 절개를 꺾고 새로운 왕조 건국에 동참할 것을 강요한 것이다. 이에 대해 포은은 강력한 메시지를

<단심가>에 담아 펼쳤다.

이방원의 답가로 읊은 <단심가>에는 한마디로 고려왕조에 대한 강렬한 충성심이 구절구절 배여 있다. 초장부터 포은은 죽음이라는 극단적 시어를 반복하여 타협의 여지를 일거에 제거했다. 여기에 더해 중장에서는 일백 번의 죽임을 당한 후 뼈가 썩어 문드러져 흙 먼지가 되고 영혼마저 없어지는 극한에 처하더라도 변하지 않겠다 는 강렬한 의지를 재차 확인시켰다. 종장은 초·중장에서 보여준 강렬한 의지의 대상인 임이 고려왕조임을 밝히고 신하로서 변함없 는 충절이자 고려의 마지막 양심을 죽음으로써 지켜나가겠다는 일 관된 결의를 보여주었다.

왕조 교체기에 나타나는 신구의 갈등은 역사를 비쳐볼 때 항상

있어왔던 사실이다. 개혁과 보수는 양자 모두 그 나름의 가치를 지

니는 것이므로 어느 한 쪽을 무조건적으로 비판 내지 찬양할 수 있

는 것은 아니다. 포은이라고 고려 왕조의 문제점과 고려의 몰락이

멀지 않았음을 몰랐겠는가. 현실적으로 본다면 새 나라의 도래는

필연적인 시대의 소명인 상황이다. 그런데도 포은이 무너지는 고려

를 부여잡은 까닭은 그가 고려의 신하라는 유가의 정명론에 입각했

기 때문이다. 바로 대의명분이 포은으로 하여금 고려에 대한 충절

을 지켜나가게 한 것이다.

(13)

두 번째 사건은 포은이 피살당하는 상황으로, 정리하면 다음과 같다. 이방원의 회유에도 추상같은 절의를 보여주자 부하로 하여금 살해를 명하고 이를 실행토록 했다. 이 과정에서 이야기는 조금씩 다르게 전하고 있다. 위의 이야기는 죽음을 직감한 포은이 마부에 게 뒤를 따르도록 명령하는 사이 활이 그를 겨냥했다. 화살이 빗나 가자 위기를 모면하기 위해 말을 몰았지만 선죽교에 다다르자 매복 한 날쌘 놈이 선생의 말머리를 쳐 말에서 떨어지게 했다. 떨어진 선생에게 철퇴로 머리를 가격해 죽음에 이르게 했다는 내용이다.

이 과정에서 구연자 간 다소 차이를 보인다. ①술을 마신 후 말 을 거꾸로 탄 채 괴한에게 쇠뭉치에 피격을 당했다는 이야기, ②선 죽교에서 조영규에게 격살 당했다는 이야기, ③말을 거꾸로 타고 가다가 몽둥이로 맞아 죽었다는 이야기, ④마부에게 말고삐를 길게 쥐고 저만큼에서 따르라고 명한 후 선죽교에서 쇠두깽이에 피살되 었다는 이야기, ⑤이방원이가 도리깨로 죽였다는 이야기 등 다양하 게 나타나고 있다. 대부분의 구연자가 포은을 피살한 인물에 대해 정확하게 알지 못한다는 점과 포은과 마부와의 대화 유무와 그 내 용에 차이를 보인다는 점이다.

이 사건 속에서 보여주는 포은의 충은 진기진심의 수양적 충이 주변으로 확장되어 가는 진실한 행위의 충으로 나타나고 있다. 이 는 포은과 마부와의 이야기 속에서 찾아볼 수 있다. 위 이야기는 죽음을 예감한 포은이 마부에게 뒤를 따르게 하고 있다. 이 상황이 구체적으로 나타난 다른 이야기를 보면 다음과 같다.

“오늘 오시에 내가 선죽교 다리에서 죽는다. 죽으니까 너 말고삐

를 길죽하게 쥐구선 내 뒤를 바짝 쫓아오지 말구 저만큼 서서 오

너라.” 그러니까는 저 이 하인이 하는 소리가 뭐라구 하니, “그 대

감 무신 말씀을 그런 말씀을 하십니까? 대감이 돌아가시는데 지가

살면 뭘 하것습니까?” 이말이야. 그러니깐, “대감이 돌아가실 바에

는 저도 그 한 칼에 맞아 죽겠십니다.” 말이야. 결국 더 바짝 말고

삐를 들구 들어갔다. 그러니 아니나 다를까, 선죽교 가는 데 쇠두

깽이를 쳐서 그걸 다 그 죽였어. 5)

(14)

죽기 직전에 오고간 마부와의 대화를 통해 실심의 충을 갖춘 포 은이 마부에게 전하는 진실한 행위인 신(信), 즉 충의 실천을 보여 주고 있다. 포은은 생사의 갈림길에서 의를 위해 죽음을 선택했기 에 죽음의 길에 초연할 수 있지만 자신으로 인해 마부까지 죽음에 이르게 하는 것은 피하고 싶었던 것이다. 아랫사람에 대한 윗사람 의 충이다.

충에는 상하의 위치에서 각자가 행해야할 충이 있다. 신하가 임 금을 섬길 때는 충으로써 섬겨야 하듯이, 임금 또한 신하를 대할 때는 예로써 부려야 한다. 충은 윗사람에 대한 아랫사람의 무조건 적인 강요가 되어서는 안 된다. 윗사람에 대한 충이 올바르게 이루 어지려면 아랫사람에 대한 윗사람의 충, 즉 예의가 우선 되어야 한 다. 예는 ‘차마 하지 못하는 인간의 마음[仁]’에서 나오는 것으로, 공경하고 겸손한 마음에서 출발한다. 마부 또한 죽음으로써 주인을 섬긴 이유는 바로 아랫사람을 대하는 주인의 인품에서 나온 것이라 하겠다. 죽음을 앞둔 마부와 주인에게 있어 그들 삶의 마감이 아름 다울 수 있었던 것은 서로에 대한 충을 통해 죽음을 극복했기 때문 이다.

세 번째 사건은 포은의 죽음 이후로 그의 혈흔과 대나무의 생장 에 얽힌 것이다. 이야기의 결말은 피를 흘리고 돌아가셨다는 것과 혈흔과 대나무를 언급하면서 이야기를 맺는 두 가지로 나뉜다. 과 학적인 시각에서 본다면 전자가 상식적일 수밖에 있다. 그런데 후 대의 구연자들이 왜 비과학적인 혈흔의 존재와 대나무의 생장 이야 기를 새로이 첨가했을까 하는 것이다. 두 가지 관점에서 볼 수 있 다.

① 이야기의 극적인 효과를 보여주기 위해서이다. 이야기가 전승 되어 오는 과정에서 구연자는 포은의 죽음에 이르러서 죽을 수밖에

5) 용인시 포곡면 설화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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없는 운명에 대한 안타까움과 함께 슬픔이 치닫게 된다. 그렇게 죽 음을 죽음으로 끝낸다면 이야기는 공허하게 마감한다. 그 공허함을 극복하기 위해서는 포은의 죽음에 대한 극적 반전이 필요한 시점이 다. 그런 점에서 혈흔과 대나무는 죽음의 극복이라는 반전 효과가 된다. 이 반전 효과는 그렇게 해서라도 선생을 잊지 않고 그가 간 직했던 충절을 전해주고자 한 것이다.

② 포은의 충절을 전승·고양하고자 데서 찾을 수 있다. 죽은 뒤 지워지지 않는 선혈, 그 자리에서 자라난 대나무. 붉은 피와 대나 무의 상징을 통해서 포은의 고절(苦節)한 충의를 보여주고 싶었다.

붉은 피는 이미 단심가에서 ‘일편단심’을 통해 어떤 일이 있어도 변 하지 않는 충절을 대변한 것이다. 대나무는 선생이 평소 아꼈던 것 으로 대나무를 통해 재차 자신의 절의를 각인시키고 있다. 대나무 는 평소 선생의 삶과 닮았다. 중통외직(中通外直)으로, 가운데는 통 하고 바깥은 곧은 것이 대나무의 모습이다. 사사로움에 막히지 않 고 올곧게 살고자 했던 선생의 삶을 대변하고 있다. 평소 보여준 꼿꼿한 선비의 모습이 죽음을 통해 화한 것이다.

2. 충절의 혼은 죽어서도

포은의 이야기 가운데 그의 사후와 관련한 내용으로는 묏자리, 화상의 서원 봉안, 그리고 부서진 비석 등이 거의 전부다. 특히 포 은의 죽음 직후와 관련해서는 전하는 이야기가 상당히 드물다. 용 인시에서 채록한 이야기 가운데에는 선죽교에서의 죽음 과정과 그 이후의 이야기가 함께 전하는 자료가 있는데 그 부분만 발췌하면 다음과 같다.

■ 돌보는 사람이 없이 뭐 하다가, 우현보라고 허는 양반이, 잉

저어 단양 우씨에 그 으른이 같이 벼슬했던 분인데, 중을 데리고

와서 어른의 시신을 응 수습을 해 가지고, 요새 개성 근처겠지, 개

풍 땅. 과거에는 그 경기도 개풍군이지만. 지금 이북으로 들어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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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풍 땅에다가 우선 수시를 해다가 모셨다 이런 얘기여.

■ 그의(포은) 시신은 산중의 중들이 충신의 시체를 방치할 수 없 다하여 목숨을 걸고 밤에 몰래 옮겨 장사지냈으며, 시중의 상인들 도 며칠간 상점을 철시하고 충신의 죽음을 애도했다고 전한다.

반면 문헌기록이나 사서(史書) 등에는 포은 죽음 직후의 처리 과 정이 기술되어 있는데, 철저히 조선의 사관중심으로 이루어졌다.

포은의 사후 처리에 관한 문헌 기록을 보면, 『고려사절요』,『포은집』

에서는 동일한 내용을 담고 있으나 뒷부분이 생략된 경우가 있다.

이덕무의『청장관전서』에 실린 내용은 앞서와 다소 차이를 보인다.

문헌기록의 내용은 다음과 같다.

■ 몽주의 머리를 저자에 매달고 방을 내걸어 알리기를, “거짓된 일을 꾸미고 대간을 꾀어 대신을 해치려 하였고 국가를 어지럽혔 다.”고 하였다. 태조 휘하의 군사들이 또 상소하여, 그 가산을 적 몰하였다. 6)

■ 몽주의 머리를 저자에 매달고 방을 내걸어 알리기를, “거짓된 일을 꾸미고 대간을 꾀어 대신을 해치려 하였고 국가를 어지럽혔 다.”고 하였다. 7)

■ 영규가 내리쳐서 왼쪽 귀를 떨어뜨리고 3일간 목을 효수했는 데, 녹사도 함께 죽었으나, 역사에는 그 이름이 기록되지 않았습니 다. 8)

이처럼 포은의 사후 기록은 설화와 문헌기록에서 차이를 보인다.

설화에 있어서는 대부분이 선죽교에서의 죽음으로 이야기를 끝맺고 있지만, 몇몇 구연자에 의해 산승이 포은의 시신을 수습하는 것으 로 종결되는 경우도 있다. 반면 상당수의 문헌기록, 그 가운데서

6)『고려사』「열전」<정몽주> “梟夢周首于市揭榜曰 飾虛事誘臺諫 謀害大臣 擾亂 國家 太祖麾下士又上疏 籍其家”

7) 『고려사절요』<공양왕> “梟夢周首于市揭榜曰 飾虛事誘臺諫 謀害大臣 擾亂 國家 ”

8) 『청장관전서』<西海旅言>, “英珪椎之落左耳 梟首三日 錄事死之 史失其名”

(17)

열전의 경우에는 포은이 죽은 뒤 저잣거리에 효수되었으며 국가를 어지럽혔다는 죄목을 덧보태 부정적인 인물로 글을 맺고 있다. 이 야기의 결말을 통해서 볼 때 포은에 대한 이조 사관과 민중들의 시 각차가 극명하게 대립되고 있음을 알 수 있다. 민중들의 이야기에 는 포은의 죽음을 죽음으로 끝내지 않고 사후의 신이함을 담아 전 하고 있는데, 이와 관련한 이야기로는 묏자리와 관련한 것이 대부 분이다.

묏자리 이야기는 포은의 설화로는 익히 알려진 것으로 내용을 정 리하면 다음과 같다. 포은이 죽고 난 이후 묘를 처음에는 개성 근 교에 있는 개풍군 야산에 안장했으나 후에 고향인 경북 영천으로 이장하기로 했다. 면례행렬(緬禮行列)이 시작되어 개성으로부터 먼 길을 가던 중 잠시 용인에 멈췄다. 이 때 갑자기 돌풍이 일어 앞세 웠던 명정(銘旌)이 바람에 날아가 지금의 묘소 자리에 떨어졌다.

다시 남쪽으로 길을 떠나려는데 상여가 움직이지 않는 대신 명정이 떨어진 곳으로는 상여가 움직였다. 결국 영천 이장을 포기하고 명 정이 떨어진 곳에 안장했다는 이야기가 전해지는데 이는 명당(明 堂) 설화에 해당한다.

이상에서 보았듯이 포은 선생의 사후 구비설화로는 그의 묏자리 와 관련한 것이 대부분을 차지한다. 그런 면에서 사후 선생의 충혼 을 엿볼 수 있는 이야기는 드문 상황이다. 그나마 선생의 충절에 대한 일면이라도 더듬을 수 있는 자료로는 무덤 앞에 세운 비석 이 야기가 현재로서는 전부인 셈이다.

Ⅲ. 포은 충절과 인성 교훈

충절의 의미가 퇴색화된 현재를 살아가는 우리에게도 포은 의 충

절은 시공을 초월하여 변함없는 깨침을 전해준다. 현대문명의 이기

를 누리며 자기중심적 삶만을 추구하며 사는 우리들에게 포은의 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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절 앞에서 숙연해지는 이유는 무엇일까. 어쩌면 그런 의기로운 삶 을 살아가지 못하는 우리들에 대한 반성 때문인지도 모른다.

마음에서는 정의를 외치지만 현실 앞에서는 늘 외면하고 돌아서 는 우리들의 모습이 불편하게 다가오기 때문이다. 실천은 진실의 정확한 이해와 깨침에서 나오는 것이다. 진실이 담고 있는 힘, 그 것은 실천의 원동력이 된다. 우리가 포은의 충절을 새로이 밝히는 것은 늘 그 진실을 우리 곁에 두고자 하기 위함이다. 문자화된 가 르침에서 벗어나 포은의 정신에 깃든 살아있는 목소리를 우리시대 에 되살려 삶의 지남철로 삼고자 한다.

1. 대의명분을 지켜라

죽음은 인간에게 있어 언젠가는 맞이해야 할 필연적 과정이다.

인생의 유한성은 우리들로 하여금 삶에 강한 애착을 가지게 하며 그 애착이 때로는 삶을 부정적 결과로 이끌기도 한다. 특히 생과 사의 기로에 있을 때, 머리로는 대의를 생각해 죽음을 초월하지만 언행은 상반되어 자신의 이(利)를 쫓는 삶을 선택하며 그에 대한 합리화를 늘어놓는 것이 우리들의 자화상이다. 우리는 관계 속에서

‘의리’라는 말을 자주하지만 실상은 말뿐인 의리를 내세우는 경우가 비일비재하다. 그렇다면 왜 의의 실천이 어려운 것인가, 의가 무엇 이기에 보통의 우리들은 말로만 그치는 것일까?

의는 사전적 의미로 ‘옳음, 정당함, 도리’를 말한다. 맹자는 “의 는 사람의 길[義人路也]”이라 했다. 사람의 길은 옳음, 정당함, 도 리에 맞는 바른 길을 의미한다. 맹자는 그 바른 길를 버리고 따라 가지 않는 시대를 슬퍼했다. 바른 길을 가로막는 것은 무엇인가?

바로 인간의 사사로운 욕망으로, 이 욕망이 의를 누르기 때문이다.

그런 까닭에 군자와 소인의 구분을 의(義)와 이(利)로 나누었는데,

공자는 “군자는 의리에 밝고, 소인은 이익에 밝다”

9)

고 했다. 이처

럼 의는 올바름으로써 윤리적 기준이 되어 사람이 행동하는 바의

(19)

준칙이 되는 것이다.

포은이 죽음을 외면하지 않고 담담히 받아들인 이유는 바로 의리 의 실천에 있다. 자신의 갈 길이 정해져 있고 그 길이 옳은 길이라 면 죽음도 의기를 막을 수 없는 것이다. 포은이 죽음으로써 추구한 의리는 단순히 임금에 대한 충성, 이른바 사군이충(事君以忠)만이 아니다. 대의명분에 입각하여 자신이 해야 할 도리를 다한 것이다.

대의명분은 대의와 명분이 합친 것이다. 의에 대해서는 앞서 정리 했으니 생략하고 명분이란 무엇인지를 살펴본다. 명분을 제대로 이 해해야 포은이 죽음을 기꺼이 받아들인 이유를 알 수 있게 된다.

명분은 말 그대로 이름[名]과 분수[分]이다. 모든 사물에는 자신 만의 이름이 있으며 그 이름에는 자신만의 고유한 몫이 따르게 마 련이다. 인간에게 있어 고유한 몫이란 사회적 직분이나 위치에 따 라 주어진 역할이나 책임을 의미한다.

제나라 경공이 공자에게 정치에 대해서 묻자 공자의 대답은 간단 했다. “임금은 임금답고, 신하는 신하답고, 아버지는 아버지답고, 자식은 자식다워야 한다.”

10)

는 것이다. 각자의 위치에서 주어진 역 할을 충실하게 다하면 된다. 따라서 명분은 각각의 이름이나 신분 에 따라 마땅히 지켜야 할 도리이다. 임금이 임금이란 이름을 다 하기 위해서는 인(仁)을 널리 펼쳐야 하고, 신하가 되어서는 충으 로써 임금과 백성을 섬겨야 하며, 어버이는 자애(慈愛)로써 자식을 돌보아야 하며, 자식은 효로써 어버이를 봉양해야 하는 것이다.

인·충·자·효는 군·신·부·자가 각각 지극히 해야 할 자신의 몫이다.

우리는 앞서 포은이 혼탁한 시대에도 자신이 지켜나가야 할 명분 을 위해서는 목숨도 초개처럼 여겼던 것을 보았다. 후일 조선의 태 조와 태종이 된 이성계와 이방원의 대화를 통해서 포은의 대의명분 에 대한 생각을 엿볼 수 있다.

9)『논어』<里仁> “君子喩於義, 小人喩於利”

10)『논어』<안연> “君君臣臣父父子子”

(20)

태종이 일찍이 태조에게 아뢰기를, “정몽주가 어찌 우리 집안을 저버리겠습니까.” 하니, 태조가 말하기를 “우리가 무고한 모함을 받게 되면 몽주는 죽음으로써 우리를 변명해 주겠지만, 만약 나라 에 관계되는 일이라면 알 수 없다.” 하였다. 문충공의 마음과 형적 이 더욱 드러나자 ~ 태종은 문충공의 뜻이 변하지 않을 것을 알고 드디어 제거해 버리기로 마음 먹었다. 11)

태종의 물음에 대한 태조의 답에서 포은이 얼마나 대의명분에 충 실한 인물인지 말하고 있다. 태조는 자신이 무고한 모함을 받으면 포은은 죽음으로써 자신을 변명해 줄 것이라고 확신하고 있다. 벗 과 사귐에 있어 가장 중요한 것은 신의이다. 포은은 벗이 결코 불 의한 일을 하지 않았으리라는 확고한 믿음에 따라 죽음을 불사하고 라도 친구로서의 의리를 지켜나갈 수 있는 인물임을 태조는 간파한 것이다. 이러한 대의명분의 실천은 홍건적 난을 평정하고도 억울한 죽음을 당한 김득배의 처리 과정

12)

에서 이미 목도한 사실이다. 이 런 점에서 포은은 자신(태조)이 무고한 일을 당하면 벗으로서 동료 로서 불의한 일에 정면으로 부딪혀 문제를 해결해주리라 확신했던 것이다.

그러나 그 비교 대상이 국가인 경우는 상황이 달라진다. 나라를 위한 충성이냐 벗을 위한 신의냐를 선택해야할 경우에는 “알 수 없 다”고 태조는 말하고 있다. 일견 나라와 개인을 비교한다는 것 자 체가 말이 안 되는 것임에도 불구하고 태조는 “알 수 없다”고 한 것은 어디에 기인한 것일까? 군신간의 의리나 친구간의 의리는 도

11) 沈光世,『海東樂府』, “太宗嘗告太祖曰 鄭夢周豈負我家 太祖曰 我遭橫讒 夢周以死明我 若係于國家 有不可知 文忠公心跡倡著 ∼ 太宗知其不變 遂議 除之”

12) 당시 권력의 핵심에 있던 김용에 의해 시기 모함을 받은 김득배는 효수

를 당했다. 화가 미칠 것을 두려워해 아무도 시신을 수습하는 자거 없었

던 상황에서 포은은 김득배의 억울한 죽음을 왕에게 고하고 직접 그의 주

검을 수습하고 장례를 지냈다. 또한 제문을 지어 그의 충성스럽고 의로운

넋을 위로하였다.

(21)

덕적인 의리로 변하지 않는 도란 점에서 상도(常道)라고 한다. 이 렇게 상도와 상도 간에 상충할 경우에는 권도(權道)에 따라 저울질 해야 한다. 권도는 상황의 의리에 따른 도이다. 즉 군신과 붕우와 의 의리가 상충할 경우 권(權)이라는 저울질을 통해 경중을 가려 그 적중한 것을 취하는 것이다.

그렇다면 당연히 군신의 의가 무거울 수밖에 없다. 그런데도 태 조가 “알 수 없다”고 한 것은 당시의 상황을 고려한 것이다. 고려 의 패망을 누구나 예측할 수 있는 시대적 상황이고 보면 포은에게 새 국가 건설에 함께 힘을 모우고자 하는 협력의 손길을 내민 것인 지도 모른다. 태종이 문충공(정몽주)의 의중을 파악하기 위해 주연 을 베풀어 <하여가>를 불렀던 이유도 이에 따른 것이라 하겠다.

결국 포은은 보편적·도덕적 의인 상도를 실천했다. 상도는 현실 의 불의와 부정을 거부하는 비판정신이 있다. 포은은 지금의 난세 상황을 상도의 실천을 통해 현재의 문제를 극복하고 해결하여 위기 의 고려를 구하고자 한 것이다. 대의명분은 천리의 당연함이므로 할 것과 하지 말아야 할 것에 대한 당위적 선택이 따라야 한다. 고 려의 신하로서 고려를 위해 신하의 도리를 다하는 것이 대의명분에 따른 당위적 선택이다. 또한 천리의 보편성에 바탕을 둔 대의명분 이므로 현실적 힘의 균형 속에 매몰될 것이 아니라 언제나 권력을 넘어서서 당위의 규범을 행동으로 옮겨야 한다. 그런 까닭에 선생 은 <단심가>을 통해 대의명분의 정당성을 보였고, 죽음으로써 대의 명분을 몸소 밝힌 것이다.

포은이 죽음으로써 실천한 대의명분은 지난 시대의 상도에 그치

는 것이 아니다. 우리도 우리 시대에 주어진 몫이 있다. 부자의

몫, 부부의 몫, 친구의 몫, 사제 간의 몫 등은 변함없는 상도에 해

당한다. 특히 우리 시대는 복잡한 관계와 관계 속에 맺어지고 있기

때문에 그에 따라 더 많은 몫이 주어진다. 그런데 그 몫의 주인은

우리 자신에게 있다. 늘어난 몫이 많다고 해서 더 힘들어지고 복잡

해진 것은 아니다. 늘 그래왔듯이 인간다운 삶을 살아가면 되는 것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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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다. 인간다움이란 도덕적이고 정의로운 삶이다. 각자가 자신의 위치에서 자기의 명분을 생각하고 의리를 지켜 마땅함을 행해나간 다면 사회는 질서정연하게 움직여 조화로운 세계를 이룩할 수 있 다. 그런 점에서 포은이 지켜나간 대의명분은 화석화된 시대정신이 아니라 우리시대에도 여전히 준수해 나가야 할 상도인 것이다.

2. 사욕을 경계하라

죽음을 택한 포은에게 범인인 우리가 한 번쯤 던져보고 싶은 말 이 있다. 이방원이 술자리에서 읊은 노랫가락처럼 “만수산 드렁칡 이 얽혀지듯” 한 백년 편히 사는 것도 좋지 않겠냐는 것이다. 개혁 을 통해 새롭게 깨어날 수 있는 왕조인데도 불구하고 일신의 안락 을 위해 드렁칡이 된다면 의를 저버리는 패륜의 신하가 되겠지만, 이미 그 생을 다한 왕조라면 백성의 신하로서 그 몫을 다 해야 하 지 않을까 하는 것이다. 즉 개혁의 선봉에 섰던 정도전 일파와 뜻 을 합쳐 새로운 왕조 개창에 일조하여 천하의 백성들을 위해 자신 의 뜻을 펼칠 수 있다면 이 또한 명분이 있는 일일 수 있다는 점 이다.

포은의 길은 한결같다. 드렁칡처럼 얽히는 것은 한마디로 정도가 아니라는 말이다. 새로운 시대를 열어 백성들을 평안하게 하자는 목소리가 그럴듯하지만 여기에는 이미 자신의 욕망이 깔려 있는 것 이다. 자신이 꿈꾸는 세상을 만들기 위해 조금의 사심도 없이 한결 같을 수 있는 사람은 성인에 해당하는 인물이다. 과연 개혁을 외치 는 인물들이 인의의 세상을 가능하게 하는 왕도정치(王道政治)를 펼칠 수 있느냐 하는 것이다. 쿠데타를 통해 고려를 무너뜨리고 새 왕조를 세우려는 의도 자체가 아무리 좋게 봐도 패도정치(覇道政 治)에 불과할 뿐이다.

왕도를 일컬어 성인의 도라 하므로 왕도정치는 성인의 도로 다스

려지는 정치를 의미한다. 즉 인의를 바탕으로 천하와 백성을 교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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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는 다스림으로, 요·순을 왕도를 실천한 대표적인 성왕으로 꼽는 다. 반면 패도정치는 권세와 무력을 인으로 가장하여 천하를 장악 하여 백성을 다스리는 정치다. 이렇게 본다면 조선은 인정(仁政)을 가장한 힘과 피로 점철된 건국에 불과하다.

포은을 동방이학지조라 하여 성리학의 종장으로 추대하고 있다.

이는 정치에 있어서도 왕도정치를 이상으로 하는 진정한 유자임을 의미한다. 그런 점에서 볼 때 이성계가 꿈꾸는 새 왕조는 힘에 의 한 역성혁명에 불과할 뿐이다. 지금의 임금[공양왕]이 걸·주(桀紂) 와 같은 패도한 폭군이 아닌 이상, 새로운 왕조의 건립은 명분에 맞지 않는 것으로 권력에 대한 야욕으로만 비쳐질 뿐이다. 그런 점 에서 자로의 물음에 대한 공자의 대답은 의미심장하다.

“자로가 묻기를 ‘군자는 용맹을 숭상합니까?”하니, 공자가 말하 길 “군자는 의로움을 으뜸으로 여긴다. 군자에게 용기만 있고 의로 움이 없다면 난을 일으키고, 소인이 용맹하고 의로움이 없다면 도 둑질을 하게 된다.”고 했다.” 13)

이 글은 시사하는 바가 크다. 군자는 유가에서 말하는 이상적인 인간상으로 도덕적으로 완성된 인격자를 일컫는다. 그런 군자가 가 장 중시하는 것 중의 하나가 ‘의’이다. 의를 상실한 소인배에게 용 맹이 주어진다면 그 피해는 도둑질 정도에 그쳐 미미한 수준이 되 겠지만, 의를 져버린 군자라면 상황은 달라진다. 의를 상실했다면 이미 군자라 칭할 수 없겠지만 그런 거짓 군자에게 용맹함이 주어 진다면 그 폐해는 심각하지 않을 수 없다. 자칫 나라의 존립 기반 을 위태롭게 하는데 이를 수 있다.

서구에도 군자로 대칭될 수 있는 노블레스 오블리주(noblesse oblige)가 있다. 사회적으로 높은 신분에 있는 사람에게는 그에 상 응하는 도덕적 의무가 부과되어 투철한 도덕의식과 솔선수범의 정

13)『논어』<陽貨> “子路曰 君子尙勇乎 子曰 君子義以爲上 君子有勇而無義 爲

亂 小人有勇而無義 爲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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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을 실천에 옮길 것을 요구한다. 서구식으로 한다면 이성계는 노 블레스 오블리주를 실천해야 할 인물이다. 그러나 새 왕조 건국을 꿈꾸는 이성계는 용맹은 있지만 의가 없는 중신(重臣)에 불과할 뿐 이다. 의로움이나 도덕적 의무를 상실한 자리에는 한결같이 이기적 욕망만이 찾아든다. 그러한 이기적 욕망에 용맹이 결합되면 세속적 권력과 부귀에 매달려 궁극적으로는 쿠데타를 통한 역성혁명으로 치닫게 되는 것이다.

의리는 위태롭고 어려운 상황에서 더욱 빛을 발하게 되므로 사리 (私利)에 현혹되거나 자신의 안위만을 찾는 일은 없어진다. 포은은 위난의 상황에도 사욕에 현혹되지 않고 흔들림 없이 자기 자리를 지켰다. 그 자리는 도의에 따른 변함없는 지조와 절개이다. 대쪽 같은 지절은 의의 실천으로 나가 위난의 순간에도 신하의 도리를 끝까지 행해 나간 것이다. 자신의 영달만을 추구한 속물적 인간이 라면 현실의 위압이나 유혹에 쉽게 넘어갔을 것이다. 범인인 우리 들 마음속에는 늘 욕망이나 욕정이 자리 잡고 있어 위태롭기만 하 다.

이처럼 항상 위태로운 욕망을 극복하기 위해서는 깨어있는 정신 으로 도심을 하나로 모아야 한다. 그렇지 않으면 욕망은 늘 우리를 휘두른다. 포은은 천지를 경영하고 우주를 떠받칠 만한 정일(精一) 한 충성과 커다란 절개를 지녔다고 한다. 포은의 충성과 지기(志 氣)는 현실의 어떤 압력이나 유혹에도 흔들리지 않고 자신의 신념 을 지켜나갈 수 있는 원천인 것이다.

인간은 누구나 욕망을 지니고 산다. 때로는 그 욕망이 우리에게

목표를 주고 성취하기 위한 동력으로 작용할 수 있음을 간과할 수

없다. 그러나 그 욕망이 오로지 자신만을 위한 것이라면 경계해야

할 대상이다. “존천리 알인욕(存天理 遏人欲)”이란 말이 있다. 말

그대로 천리를 보존하고 인욕을 막아야 한다는 것이다. 좀 더 구체

적으로 보자면, ‘천리’는 천지간의 보편적 이치이며 사람에게 있어

서는 지켜나가야 할 도덕이자 공동의 규율이다. 그런 점에서 천리

(25)

는 보존하고 실행해 나가야 할 인간의 도리이자 의무이다.

반면 ‘인욕’은 인간의 생리적 욕구나 생물학적 욕망까지 포함된 다. 그런 까닭에 무조건 나쁘다거나 배척해야만 하는 것은 아니다.

문제는 그 인욕의 충족을 위해 이기적으로만 움직일 경우이다. 인 욕이 사욕이 되어 자신의 욕망에만 집착하게 되면 공동의 선은 무 너진다. 즉 사회적 규범이나 공동의 이익은 무시되고 자신만의 욕 망을 달성하기 위해 인간 본성이 상실하게 된다.

인간의 욕망이란 물과 같아서 조금만 마음을 놓아도 항상 그 틈 을 비집고 들어오는 것이다. 그런 까닭에 선현들은 천리와 인욕 사 이의 갈등을 의식하며 천리를 보존하고 인욕을 막아내기 위해 신독 (愼獨)을 실천했다. 홀로 있을 때 삼가고 절제하는 신독은 잠시도 도道를 떠나지 않는 것으로 그 마음을 진실하게 하는 것이다. 인욕 은 혼자 있어 남이 듣지도 보지도 못할 때 무시로 찾아든다. 혼자 있을 때 자신의 뜻을 진실되게 다스려야 하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

신독이 갖추어질 때 도덕적 인간이 되어 천리를 따라 공동의 선을 실천할 수 있는 것이다.

Ⅳ. 결론

“국존여존 국망여망(國存與存, 國亡與亡)”은 유성룡이 포은을 두

고 평한 말로, “나라가 있을 때 함께 있었고, 나라가 망할 때 함께

죽었다.”는 뜻이다. 기나긴 역사의 흐름 속에서 무수한 인물들이

나고 죽었다. 그러나 죽음으로써 자신의 신념을 올곧게 지켜온 사

람은 그렇게 많지 않다. 삶에 대한 욕망이 간절할수록 자신의 신념

이나 의리는 무너지기 때문이다. 그렇다고 삶에 집착하는 범부들을

무조건 잘못됐다고 비판할 수만은 없다. 보통 사람이 담을 수 있는

그릇이 그 정도라면 그들을 이해해야 한다. 특히 생사의 갈림길에

서 죽음을 초월한다는 것은 범부의 그릇을 넘어서는 행위이기 때문

(26)

이다. 그런 까닭에 삶을 포기하고 의리를 취하는 사람을 시대를 초 월하여 존경하는 이유이다.

포은의 절의를 말할 때 항상 등장하는 것이 ‘일편단심’, 즉 한 조 각 붉은 마음이다. 한 조각 붉은 마음이 향한 곳은 님이다. 신하로 서 왕에 대한 충은 당연한 것이다. 그런 까닭에 포은이 향하는 님 이 고려의 왕이라 하겠다. 그러나 왕에 대한 충은 왕 일인에만 해 당한다고 할 수 없다. 왕은 한 국가를 상징한다. 왕이 선정을 베풀 때 백성들은 평안해질 수 있다. 그렇다면 왕에 대한 충은 국태민안 을 위한 신하의 도리이다.

여기서 국태민안만을 떼어내 포은에게 요구한다면 이방원의 권유 는 설득력이 있다. 이미 고려가 국가로서의 효력을 상실한 상황이 라면 새로운 세계를 지향하는 것이 치자의 입장에서는 당연한 것일 수 있다. 시대의 흐름으로 볼 때 조선의 건국은 당연한 수순이다.

영고성쇠(榮枯盛衰)의 순환과정이 자연의 이법이다. 인간세계라고 다를 것이 없다. 그런 점에서 고려의 패망과 조선의 건국은 어쩌면 지극히 당연한 결과인 셈이다.

그렇다면 누구나 다 그 변화의 물결을 타고 함께 흘러가야만 하 는 것인가? 지켜야 할 명분이 있다면 지켜야 한다. 포은 은 고려에 출사(出仕)하여 학문적·정치적으로 쇠퇴한 고려의 변혁을 위해 쉼 없는 행보를 이어갔다. 국가를 집에다 비유해 보자. 한 집안의 가 장이 노쇠하여 그 역할을 다하지 못하고 있다. 가장으로서의 책무 를 다하지 못하니 이제 물러나라고 할 자식은 없다. 오히려 자식의 역할이 더 중요한 시점이다. 이제는 자식으로서 주어진 명(命)을 다하여 아버지를 보필하고 가정을 지켜나가야 한다. 포은은 그렇게 가정을, 국가를 지키고자 한 것이다. 이것이 강상의 윤리라고 철저 히 믿고 실행했던 이유이다. 국가와 내가 분리될 수 없는 것이다.

국가가 없는 것은 바로 내가 없는 것과 같다. 그런 까닭에 결연하

게 죽음에 나서 스스로 분수를 지킴으로써 역사에 대한 책임을 다

한 것이다.

(27)

“적력지극 대월재천(積力之極 對越在天)”이란 말이 있다. 포은의 시 <척약재명(惕若齋銘)>에 나오는 구절이다. “지극한 노력이 쌓이 면 하늘과 마주할 수 있다”는 뜻이다. 포은이 지극한 노력을 쌓으 라고 한 것은 다름 아니라, 천리의 가르침이 무엇인지를 한시도 쉬 지 않고 배워서 깨치고 또 깨치라는 의미이다. 왜 우리는 하늘의 이치를 깨쳐야 하는가? 답은 간단하다. 인간으로서의 삶을 살아야 하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인간으로서의 삶은 무엇인가? 하늘이 명한 천리의 도 리를 다하는 것이다. 『중용』에 “하늘이 사람에 명한 것을 성이라 하 고, 그 성을 그대로 쫓는 것을 도다”

14)

라고 했다. 여기서 성(性)은 삼라만상에 부여하는 리(理)이지만 인간만이 오상)의 덕을 받고 태 어난다. 도는 바로 하늘이 부여한 성을 잘 따르면 된다. 결론적으 로 말하면 인간은 하늘이 부여한 본성인 인의예지신(仁義禮智信)을 어김없이 잘 지켜나가야 한다는 것으로 지선(至善)의 도덕적 가치 실현이라 해도 좋을 것이다.

우리는 포은을 두고 ‘동방이학지조’라고 한다. 이는 성리학의 이 론적 종장(宗匠)이란 점에서 칭한 것이 아니다. 경전은 참인간으로 서 삶을 제시한 인간학으로, 여기에는 항상 실천이 동반되어야 한 다. 머릿속에서의 깨침만으로는 도에 이르렀다고 할 수 없다. 도가 도다울 수 있는 것은 천리의 실현에 있는 것이다. 하늘과 마주하기 위해서는 이 도의 실천이 끊이지 않아야 한다. 선생의 삶은 늘 도 의 실천과 함께 했다. 그런 까닭에 죽음도 하늘의 존재와 마주하는 도의 실천이 되는 것이다. 포은은 암묵적으로 말하고 있다. 깨치고 깨쳐 인간다운 길이 무엇인지를 터득하여 그 길에서 한 점 부끄러 움 없이 행하라고.

14)『中庸』“天命之謂性 , 率性之謂道”

(28)

<참고문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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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 논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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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9)

■ Abstracter

Poeun's Loyalty and Lessons of Personality in His Tales

Yeungnam Univ. prof. Kim, Won-jun

The primary focus of this study was to investigate how Poeun's loyalty was embodied only in his tales related to his loyalty. This work intended to find values of his loyalty that would serve as desirable models for today's personality education and make use of them in true education today. An examination into the meanings of loyalty should come before a discussion. The study thus first examined the value meanings of loyalty during Poeun's days and in the present day. The study then addressed specifically the values and meanings of his loyalty with a focus on his representative tales of loyalty. Based on his loyalty tales discussed in the study, the investigator developed an approach to personality lessons today. His life of loyalty, based on the philosophical grounds of advocating a great cause and overcoming selfish interests, shows what a human path is today.

Key Word :

loyalty, Poeun's tales, personality, justification, overcoming

selfish interest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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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본 논문은 2019년 4월 16일에 투고되어 2019년 5월 31일에 심사를

완료하였고 2019년 6월 1일에 게재를 확정하였음.

참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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