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죽음을 택한 포은에게 범인인 우리가 한 번쯤 던져보고 싶은 말 이 있다. 이방원이 술자리에서 읊은 노랫가락처럼 “만수산 드렁칡 이 얽혀지듯” 한 백년 편히 사는 것도 좋지 않겠냐는 것이다. 개혁 을 통해 새롭게 깨어날 수 있는 왕조인데도 불구하고 일신의 안락 을 위해 드렁칡이 된다면 의를 저버리는 패륜의 신하가 되겠지만, 이미 그 생을 다한 왕조라면 백성의 신하로서 그 몫을 다 해야 하 지 않을까 하는 것이다. 즉 개혁의 선봉에 섰던 정도전 일파와 뜻 을 합쳐 새로운 왕조 개창에 일조하여 천하의 백성들을 위해 자신 의 뜻을 펼칠 수 있다면 이 또한 명분이 있는 일일 수 있다는 점 이다.

포은의 길은 한결같다. 드렁칡처럼 얽히는 것은 한마디로 정도가 아니라는 말이다. 새로운 시대를 열어 백성들을 평안하게 하자는 목소리가 그럴듯하지만 여기에는 이미 자신의 욕망이 깔려 있는 것 이다. 자신이 꿈꾸는 세상을 만들기 위해 조금의 사심도 없이 한결 같을 수 있는 사람은 성인에 해당하는 인물이다. 과연 개혁을 외치 는 인물들이 인의의 세상을 가능하게 하는 왕도정치(王道政治)를 펼칠 수 있느냐 하는 것이다. 쿠데타를 통해 고려를 무너뜨리고 새 왕조를 세우려는 의도 자체가 아무리 좋게 봐도 패도정치(覇道政 治)에 불과할 뿐이다.

왕도를 일컬어 성인의 도라 하므로 왕도정치는 성인의 도로 다스 려지는 정치를 의미한다. 즉 인의를 바탕으로 천하와 백성을 교화

하는 다스림으로, 요·순을 왕도를 실천한 대표적인 성왕으로 꼽는 다. 반면 패도정치는 권세와 무력을 인으로 가장하여 천하를 장악 하여 백성을 다스리는 정치다. 이렇게 본다면 조선은 인정(仁政)을 가장한 힘과 피로 점철된 건국에 불과하다.

포은을 동방이학지조라 하여 성리학의 종장으로 추대하고 있다.

이는 정치에 있어서도 왕도정치를 이상으로 하는 진정한 유자임을 의미한다. 그런 점에서 볼 때 이성계가 꿈꾸는 새 왕조는 힘에 의 한 역성혁명에 불과할 뿐이다. 지금의 임금[공양왕]이 걸·주(桀紂) 와 같은 패도한 폭군이 아닌 이상, 새로운 왕조의 건립은 명분에 맞지 않는 것으로 권력에 대한 야욕으로만 비쳐질 뿐이다. 그런 점 에서 자로의 물음에 대한 공자의 대답은 의미심장하다.

“자로가 묻기를 ‘군자는 용맹을 숭상합니까?”하니, 공자가 말하 길 “군자는 의로움을 으뜸으로 여긴다. 군자에게 용기만 있고 의로 움이 없다면 난을 일으키고, 소인이 용맹하고 의로움이 없다면 도 둑질을 하게 된다.”고 했다.”13)

이 글은 시사하는 바가 크다. 군자는 유가에서 말하는 이상적인 인간상으로 도덕적으로 완성된 인격자를 일컫는다. 그런 군자가 가 장 중시하는 것 중의 하나가 ‘의’이다. 의를 상실한 소인배에게 용 맹이 주어진다면 그 피해는 도둑질 정도에 그쳐 미미한 수준이 되 겠지만, 의를 져버린 군자라면 상황은 달라진다. 의를 상실했다면 이미 군자라 칭할 수 없겠지만 그런 거짓 군자에게 용맹함이 주어 진다면 그 폐해는 심각하지 않을 수 없다. 자칫 나라의 존립 기반 을 위태롭게 하는데 이를 수 있다.

서구에도 군자로 대칭될 수 있는 노블레스 오블리주(noblesse oblige)가 있다. 사회적으로 높은 신분에 있는 사람에게는 그에 상 응하는 도덕적 의무가 부과되어 투철한 도덕의식과 솔선수범의 정

13)『논어』<陽貨> “子路曰 君子尙勇乎 子曰 君子義以爲上 君子有勇而無義 爲 亂 小人有勇而無義 爲盜”

신을 실천에 옮길 것을 요구한다. 서구식으로 한다면 이성계는 노 블레스 오블리주를 실천해야 할 인물이다. 그러나 새 왕조 건국을 꿈꾸는 이성계는 용맹은 있지만 의가 없는 중신(重臣)에 불과할 뿐 이다. 의로움이나 도덕적 의무를 상실한 자리에는 한결같이 이기적 욕망만이 찾아든다. 그러한 이기적 욕망에 용맹이 결합되면 세속적 권력과 부귀에 매달려 궁극적으로는 쿠데타를 통한 역성혁명으로 치닫게 되는 것이다.

의리는 위태롭고 어려운 상황에서 더욱 빛을 발하게 되므로 사리 (私利)에 현혹되거나 자신의 안위만을 찾는 일은 없어진다. 포은은 위난의 상황에도 사욕에 현혹되지 않고 흔들림 없이 자기 자리를 지켰다. 그 자리는 도의에 따른 변함없는 지조와 절개이다. 대쪽 같은 지절은 의의 실천으로 나가 위난의 순간에도 신하의 도리를 끝까지 행해 나간 것이다. 자신의 영달만을 추구한 속물적 인간이 라면 현실의 위압이나 유혹에 쉽게 넘어갔을 것이다. 범인인 우리 들 마음속에는 늘 욕망이나 욕정이 자리 잡고 있어 위태롭기만 하 다.

이처럼 항상 위태로운 욕망을 극복하기 위해서는 깨어있는 정신 으로 도심을 하나로 모아야 한다. 그렇지 않으면 욕망은 늘 우리를 휘두른다. 포은은 천지를 경영하고 우주를 떠받칠 만한 정일(精一) 한 충성과 커다란 절개를 지녔다고 한다. 포은의 충성과 지기(志 氣)는 현실의 어떤 압력이나 유혹에도 흔들리지 않고 자신의 신념 을 지켜나갈 수 있는 원천인 것이다.

인간은 누구나 욕망을 지니고 산다. 때로는 그 욕망이 우리에게 목표를 주고 성취하기 위한 동력으로 작용할 수 있음을 간과할 수 없다. 그러나 그 욕망이 오로지 자신만을 위한 것이라면 경계해야 할 대상이다. “존천리 알인욕(存天理 遏人欲)”이란 말이 있다. 말 그대로 천리를 보존하고 인욕을 막아야 한다는 것이다. 좀 더 구체 적으로 보자면, ‘천리’는 천지간의 보편적 이치이며 사람에게 있어 서는 지켜나가야 할 도덕이자 공동의 규율이다. 그런 점에서 천리

는 보존하고 실행해 나가야 할 인간의 도리이자 의무이다.

반면 ‘인욕’은 인간의 생리적 욕구나 생물학적 욕망까지 포함된 다. 그런 까닭에 무조건 나쁘다거나 배척해야만 하는 것은 아니다.

문제는 그 인욕의 충족을 위해 이기적으로만 움직일 경우이다. 인 욕이 사욕이 되어 자신의 욕망에만 집착하게 되면 공동의 선은 무 너진다. 즉 사회적 규범이나 공동의 이익은 무시되고 자신만의 욕 망을 달성하기 위해 인간 본성이 상실하게 된다.

인간의 욕망이란 물과 같아서 조금만 마음을 놓아도 항상 그 틈 을 비집고 들어오는 것이다. 그런 까닭에 선현들은 천리와 인욕 사 이의 갈등을 의식하며 천리를 보존하고 인욕을 막아내기 위해 신독 (愼獨)을 실천했다. 홀로 있을 때 삼가고 절제하는 신독은 잠시도 도道를 떠나지 않는 것으로 그 마음을 진실하게 하는 것이다. 인욕 은 혼자 있어 남이 듣지도 보지도 못할 때 무시로 찾아든다. 혼자 있을 때 자신의 뜻을 진실되게 다스려야 하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

신독이 갖추어질 때 도덕적 인간이 되어 천리를 따라 공동의 선을 실천할 수 있는 것이다.

Ⅳ. 결론

“국존여존 국망여망(國存與存, 國亡與亡)”은 유성룡이 포은을 두 고 평한 말로, “나라가 있을 때 함께 있었고, 나라가 망할 때 함께 죽었다.”는 뜻이다. 기나긴 역사의 흐름 속에서 무수한 인물들이 나고 죽었다. 그러나 죽음으로써 자신의 신념을 올곧게 지켜온 사 람은 그렇게 많지 않다. 삶에 대한 욕망이 간절할수록 자신의 신념 이나 의리는 무너지기 때문이다. 그렇다고 삶에 집착하는 범부들을 무조건 잘못됐다고 비판할 수만은 없다. 보통 사람이 담을 수 있는 그릇이 그 정도라면 그들을 이해해야 한다. 특히 생사의 갈림길에 서 죽음을 초월한다는 것은 범부의 그릇을 넘어서는 행위이기 때문

이다. 그런 까닭에 삶을 포기하고 의리를 취하는 사람을 시대를 초 월하여 존경하는 이유이다.

포은의 절의를 말할 때 항상 등장하는 것이 ‘일편단심’, 즉 한 조 각 붉은 마음이다. 한 조각 붉은 마음이 향한 곳은 님이다. 신하로 서 왕에 대한 충은 당연한 것이다. 그런 까닭에 포은이 향하는 님 이 고려의 왕이라 하겠다. 그러나 왕에 대한 충은 왕 일인에만 해 당한다고 할 수 없다. 왕은 한 국가를 상징한다. 왕이 선정을 베풀 때 백성들은 평안해질 수 있다. 그렇다면 왕에 대한 충은 국태민안 을 위한 신하의 도리이다.

여기서 국태민안만을 떼어내 포은에게 요구한다면 이방원의 권유 는 설득력이 있다. 이미 고려가 국가로서의 효력을 상실한 상황이 라면 새로운 세계를 지향하는 것이 치자의 입장에서는 당연한 것일 수 있다. 시대의 흐름으로 볼 때 조선의 건국은 당연한 수순이다.

영고성쇠(榮枯盛衰)의 순환과정이 자연의 이법이다. 인간세계라고 다를 것이 없다. 그런 점에서 고려의 패망과 조선의 건국은 어쩌면 지극히 당연한 결과인 셈이다.

그렇다면 누구나 다 그 변화의 물결을 타고 함께 흘러가야만 하 는 것인가? 지켜야 할 명분이 있다면 지켜야 한다. 포은 은 고려에 출사(出仕)하여 학문적·정치적으로 쇠퇴한 고려의 변혁을 위해 쉼 없는 행보를 이어갔다. 국가를 집에다 비유해 보자. 한 집안의 가 장이 노쇠하여 그 역할을 다하지 못하고 있다. 가장으로서의 책무 를 다하지 못하니 이제 물러나라고 할 자식은 없다. 오히려 자식의 역할이 더 중요한 시점이다. 이제는 자식으로서 주어진 명(命)을 다하여 아버지를 보필하고 가정을 지켜나가야 한다. 포은은 그렇게

그렇다면 누구나 다 그 변화의 물결을 타고 함께 흘러가야만 하 는 것인가? 지켜야 할 명분이 있다면 지켜야 한다. 포은 은 고려에 출사(出仕)하여 학문적·정치적으로 쇠퇴한 고려의 변혁을 위해 쉼 없는 행보를 이어갔다. 국가를 집에다 비유해 보자. 한 집안의 가 장이 노쇠하여 그 역할을 다하지 못하고 있다. 가장으로서의 책무 를 다하지 못하니 이제 물러나라고 할 자식은 없다. 오히려 자식의 역할이 더 중요한 시점이다. 이제는 자식으로서 주어진 명(命)을 다하여 아버지를 보필하고 가정을 지켜나가야 한다. 포은은 그렇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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