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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치 예술의 방법론적 위상 재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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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cademic year: 20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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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투고일_2016.02.10. 심사기간_2016.03.01.-20. 게재확정일_2016.03.28. 설치 예술의 방법론적 위상 재고 Repositioning Installation as Regenerating Medium 백영주, 중앙대학교 공연영상창작학부 공간연출전공 부교수 Baik, Young Ju_Department of Performing Arts and Media Chung-Ang University. 차례. 1. 들어가면서 2. 설치 개념의 의미 맥락과 양상 2.1. 현재와 현존 2.2. 해프닝: 소멸과 기록 2.3. 현장: 보존과 프로덕션 2.4. 현실 인식: 이미지 로케이셔닝 3. 맺음말 참고문헌.

(2) 설치 예술의 방법론적 위상 재고 Repositioning Installation as Regenerating Medium 백영주, 중앙대학교 공연영상창작학부 공간연출전공 부교수 Baik, Young Ju_Department of Performing Arts and Media Chung-Ang University. 요약 중심어 설치 해프닝 프로덕션 사이트 현장 현실. 설치 작업(installation work)은 작품 자체의 독립성과 자율성을 추구하기보다 맥락성과 경험에 기초하며, 예술에 있어 개별 매체의 특정성과 경계선을 해체하는 기폭제로 작용해왔다. 미술사에서 설치는 용어의 출현배경에 따라 그 의미가 다중적으로 맥락화되고 있다. 이는 ‘환경’과 ‘전시’ 개념과 관련되어 있으며, 두 경우 모두 ‘예술’이라는 개념을 둘러싼 경 험을 전제하고 있지만 방법론과 양상에 있어 차이를 보인다. 무엇보다 설치가 ‘공공’의 개념을 아우르게 되면서 설치 예술 은 오브제의 공간 확장적 표현일 뿐만 아니라 현실 참여적 이벤트로 인식되게 되었으며, 실질적으로 이는 예술의 외연을 확장해내는 역할을 하고 있다. ‘~을 ~에 세워 두다’를 칭하는 설치(設置)의 양상은 작품 수용적 측면에서의 디스플레이 개 념을 넘어, 현존재의 실시간 궤적이자 터로서 조직된다. 무엇보다 이는 상황에의 개입 장치로 기능함으로써 관계 쇄신적 으로 작동한다. 형식적으로 설치는 변동성과 시간성을 내재하는 형성(formation)의 개념을 아우름으로써 총합적인 결과 물보다는 과정으로서 ‘행태’와 ‘상태’로서 포착되며, ‘현존’과 ‘현실’의 문제를 공간적으로 양식화해낸다. 본고에서 논의 되는 해프닝(happening)과 현장 예술(art in-situ)은 심화되고 있는 기술매체의 발전과 소비주의에 탄력적으로 반응하 며 전개되고 있으며, 제도적 현실과 분리될 수 없는 예술의 존재 모순을 복합적인 경험으로 가시화해내고 있다. 이러한 맥 락에서의 설치 작업은 현실 인식 과정으로 행해지며, 마킹(marking), 프레이밍(framing), 브랜딩(branding), 프로그래 밍(programing), 로케이셔닝(locationing)에 이르기까지, 예술 활동에 있어 몸의 수행력과 사이트의 의미를 끊임없이 쇄신하고 있다.. ABSTRACT. Discarding the very notion of autonomy of art, installation work postulates an art form as a state of. Keyword. multiplicity and plurality. As methodology, installation engages and locates our body in the. installation happening production site in-situ reality. ever-shifting dynamics of perceptual and social surroundings. The conceptualization of installation as a performative art, has been manifested through the notion of ‘environment’ and the ‘exhibition’. As an art form on ‘public display’, it explores the unsettling interactions amongst the making of art, perception of art and the meaning of art. Reflecting upon the reciprocal reality of image production and reception system, installation art is now considered not only as a spatial expansion of art object but participatory event which epitomizes the ontology of art in real life settings. In this context, the notion of medium specificity has been debunked and the habituation of medium in institutional/spatial term is being challenged. This paper examines the ongoing evolution of Happening and Art in-situ within the context of advancing technology, martialism and consumerism of today: here, art as a state of being-in-formation, is hardly separable from the everyday life. Expanding its territory and leaving the physical prints/traces behind at the same time, the very meaning of ‘form’ in arts became temporal, situational and site-responsive. Its formative strategy includes ‘marking’, ‘framing’, ‘branding’, ‘programing’ and ‘locationing’. In this context, art becomes a field practice, constantly regenerating our being in the ever-fluctuating reality of actual/virtual site.. 이 논문은 2014년 정부 재원으로 한국연구재단의 지원을 받아 수행된 연구임 (NRF-2014S1A5A2A01013629)8.

(3) 1. 들어가면서 동시대 예술에서 형식성(formality)의 논의는 존재론적 차원에서 예술의 실천성이 추구되면서, 관 습의 부정이나 파괴를 넘어 외부조건에 탄력적으로 반응하는 개념으로 프레임 되고 있다. 이는 계열 화와 분화에 기초하며 불변적인 정태성을 강조하기보다 개인의 지향성과 활동성을 부각시키며 다양 성과 변동성을 포용한다. 이러한 맥락에서 ‘형식’(form)은 변동성과 시간성을 내재하는 ‘형 성’(formation)을 뜻하며, 과정에서 겪는 경험은 단발적 ‘사건’과 불가항력의 ‘해프닝’을 넘어 일련 의 내러티브로 재구조화된다. 재현 체계의 한계를 넘어 몸주체의 표현성이 중시되어온 현대 예술의 흐름 속에서, 작품은 환경적 맥락에 따라 그 의미가 재구성되고 공감각적 접촉을 도모하며 촉각적인 관계를 모색 중이다. 작업의 형태 또한 다수의 관람자를 물리적으로 포용하고 지각적 관여를 유도하 면서, 예술은 상호적이고 수행적인 ‘상황’이 되었고 독립적 체계로서 작동하던 형식 개념은 해체되고 있다. 페인팅-캔버스, 미술품-미술관, 관객-관객석, 영화-영화관 등, 정해진 구획과 자리 배치로써 구분 되던 개별 매체의 ‘특정성’이 와해되면서, ‘정체성’은 복수(複數)화 되고 다중적인 의미를 띠게 되었 다. 예술이 현실영역으로 들어오면서 일상의 사물은 ‘오브제'가 되었고, 기술ž자본 및 대중 매체와의 관계도 또한 복잡해졌다. 개인 미디어와 모바일 기기가 일상화됨에 따라 자리 이탈과 가로지르기는 일반화되고 있으며, 이에 경험 양식은 개인을 중심으로 개별화되고 있는 동시에, 이곳/저곳, 의식/무 의식, 가상/실재를 넘나들며 유동화 되고 있다. 규정된 자리, 몫, 역할을 벗어나, 불확실한 상태성을 포용하는 ‘과정’에의 관심은 ‘사이’를 매개하는 ‘매체’(medium)의 의미를 재발견하는 계기를 마련한 다. 이는 ‘특정 매체’의 본질을 무엇인지 묻기보다, 예술의 보편적 본질을 성찰하게 하는 기회를 마련 한다는 점에서, 융합적 사고가 부각되고 있는 디지털ž정보 시대의 흐름과 일맥상통하다. 이러한 배경에서 ‘설치’(installation)는 작품 그 자체에 대한 의미 추구보다, 어떻게 경험되는가의 맥 락성 인식에 기초하며 예술의 외연을 확장해왔기에, 다방면에서 연구가 진행되어왔다. 이는 전시ž디 스플레이, 무대, 실내ž외 환경, 건축, 디지털 가상현실(VR) 등, 기술발전과 더불어 경험을 연출하고 설계하는 디자인 영역과 불가분한 개념이 되었다. 설치 예술은 ‘볼거리’에서 더 나아가 ‘즐길 거리’를 제공한다. 때문에 이는 대중 친화력을 높인 동시에, 자본논리로 작동하는 현실에 예술영역을 예속시 키는 플랫폼을 자처한다는 비난을 받기도 한다.1) 대지 예술(Land art)에서 공공 예술(Public art)까 지, 설치는 조각이나 오브제의 공간적 확장태이자 참여적 이벤트로 인식되고 있는 반면, 근간과 체계 성에 대한 이해는 상대적으로 미비하다. 존재론적 차원에서 형식성의 문제는 ‘무엇인가’를 규정하기보다 ‘누구인가’의 물음을 통해 다뤄질 수 있다. 예술에서 정체성의 문제를 현상과 연계시켜봄으로써, ‘~이 되어가는 과정’을 논하는 것이다. 이는 흐르는 시간 속 존재의 내적 추동력과 외부성을 공시적으로 인지하며 생장체로서의 예술개념을 도모한다. 여기서 무엇보다, ‘~을 통해, 어떤 식으로’ 자기의식이 형성되는지가 방법론으로서 연구될 수 있다. 유기체로서 예술을 인식한다는 것은 작가의 일생이나 사회학적 관점에서의 기술(記述)을 넘어, 모더니즘의 해체과정에서 도외시되었던 매체성의 재고를 통해, 표현의 특이성과 보편성을 동 시에 포착하려는 시도이다. 이는 매체 가로지르기 현상이 일반화되면서, 창조 담론이 뉴미디어 프레 임에 의존하고 있는 현실에 대한 자각이기도 하다. 이러한 배경에서 본고는 ‘설치 예술’(Installation art)의 경우를 통해, 양식화된 장르개념을 넘어 끊임없이 의미ž쇄신되고 있는 재생적 매체로서, 그 양 상을 논하고자 한다. 가공된 시스템 안에서 태어난 개인이 보고, 접촉하고, 느끼며 살아가는 체현의 과정으로 ‘form’을 인 식한다면, 설치 예술은 체계 생성물인 동시에 대안적 비전의 투사체로 나타난다. 이는 운동심상으로 서 인간의 행태뿐만 아니라, 행위의 의미까지 공간화 해낸다. 이의 기록물은 수용자의 상상력에 의하 여, 경험을 계획하고 기술하는 과정을 역으로 펼쳐내면서 일종의 스크립트처럼 기능한다. 무엇보다 설치 예술은 기존 체제를 ‘전복’하고, 관계를 ‘쇄신’하며, 정체된 관계역학을 ‘재활성화’하는 연출된 ‘행위’이자 ‘개입물’이며, ‘판’이자 ‘터’로서 복합적 양상을 드러내고 있다. 동시에 이는 ‘경과’(經過), ‘경로’(passage), ‘단계’(stage) 등으로 포착되며, 상황적으로 해석되고 재구성된다. 이에 본문에서 1)Jameson, Fredric Postmodernism, or, The Cultural Logic of Late Capitalism, Duke University Press, 1992, p.165 기초조형학연구 17권 2호 (통권 74호). 147.

(4) 는 형식성의 문제를 ‘1. 해프닝, 2. 현장, 3. 현실 인식’으로 주제화화고, 이의 대표 사례 분석을 통해 설치 예술의 의미 맥락을 재구축하고자 한다. 이를 통해 시공간적 존재 양태로서 설치 예술의 방법론 적 위상을 재고하고자 한다.. 2. 설치 개념의 의미 맥락과 양상 2.1. 현재(present)와 현존(presence) 미술사에서 ‘설치’는 용어의 출현배경에 따라 그 의미가 다중적으로 맥락화되고 있다. 이는 ‘환 경’(environment)과 ‘전시’(exhibition) 개념과 관련되어 있으며2) 두 경우 모두 예술에 대한 경험을 전제하고 있지만, 방법론과 양상에 있어 차이를 보인다. 뒤샹(M. Duchamp)의 레디메이드 (readymade), 다다(Dada)의 반체제적 퍼포먼스, 초현실주의의 전복적 자리배치와 더불어, 60년대 ‘액션’(action)과 역(逆)체제적 ‘저항 운동’(counter movement) 개념은 사물과 예술품뿐 아니라 삶 과 예술을 갈라놓았던 경계의식을 해체하는 기폭제로 작용했다. 창조한다는 것과 깨어 숨 쉬는 몸으 로 매순간을 살아간다는 것이 동일선상에서 인식되면서, 이성과 감각, 관념과 실재, 주체와 객체 사 이의 괴리감을 자초하였던 단절의식은 와해된다. 이러한 인식의 바탕에는 기술발전과 산업ž자본주 의 체제하에, 생산성과 효율성의 논리를 따라 획일화된 근대적 존재성에 대한 회의가 깔려있다. 이는 단위 마디로 분절되어 계측되며 균질화된 시계시간에 의해 계획ž통제되며 양식화된 것이기에, 이를 극복하려면 시간관념뿐만 아니라 의식 자체에 대한 반성이 요구되었던 것이다.3) 과거/현재/미래를 공간적으로 구획하며 가르는 표준화된 시계시간 대신, 매순간 질적 차이를 만들어 내며 지속되는 생성적 시간의 수용은 ‘지금 여기 존재함’(being) 자체가 예술이 될 수 있다는 상상력 과 맞닿게 되었다. 과거의 기억이나 미래 비전에 얽매이지 않는 ‘현존’(現存)은 바로 내 몸을 매개로 한 실천적 양식이자, 탈근대성을 표상하는 조형 방법론이 되었다. 이는 신체 예술(Body art), 퍼포먼 스 아트(Performance art), 대지 예술 및 공공 예술까지, 몸의 활동 범위를 시공간적으로 확장해내는 표현 양식을 출몰시켰다. 무엇보다 전후 모더니즘 예술의 추상성과 형식주의는 고립감을 키웠고, 이 는 작품/관람/주문/후원/제작/기획/교육/갤러리ž미술관 등, 작품이 만들어지고 유통되는 스튜디오 와 전시 환경의 체계를 통해 제도적으로 고착된 예술 프로덕션 조직도를 해체하려는 시도로 이어졌 다. 현실영역으로 들어온 예술의 현실로부터 예술을 해방하려는 모순적 상황은 예술가들이 새로운 작업 방식을 고안해내려는 시도에 그대로 투영되어 있으며, 설치 예술은 이러한 맥락 안에서 개념화 되고 있다. 2.2 해프닝: 소멸과 기록 이 가운데 앨런 캐프로(Allan Kaprow 1927-2006)는 창작 과정으로부터 분리되고 배제되었던 외부 조건과의 관계역학이 일깨어나면서 벌어지는 사건과 상황적 조건을 아울러 ‘해프닝’과 ‘환경’이라 칭 하며, 이를 방법론화 하였다.4) 캐프로는 예술개념을 통제하는 제도권의 역할 도식을 해쳐놓기 위해 전문가의 관할권을 벗어날 수밖에 없는 잠재적 차원을 끌어들이려 했고, 그 계획 속에 훈련되지 않은 일반인들을 협업자로서 동참시키고자 했다. 이에 날씨와 도로상황 같은 일상의 조건과 개별 참여자 들의 반응 및 행태가 작업 과정에 우발적이고 우연적인 인자로 작용하게 된다. 반면, 작업은 일시와 장소뿐만 아니라 작품 구상도, 수행절차, 지시사항 등의 형식을 갖춘 체험 프로젝트로서 사전 설계되 고 공지되는 아이러니를 보여준다. 예술가의 비전이 행해지는 과정에서 외부 조건이 분리될 수 없는 요소로 작동하면서, 예술은 구상된 결과물 그 자체가 아닌 참여적 수행을 통해 형성되는 이미지가 된다. 이의 성립은 감상자의 위치에서 <그림 1>유동체(Fluids) 해프닝, 1967, 포스터와 현장사진. 완성품을 바라만 보던 관람자의 ‘내부관여’를 통해서만 가능해지며, 역설적으로 예술은 절차 형식에 피동적으로 내맡겨지는 것이다. 사전 제작 미팅부터 철거까지, 포스터 공고를 통해 모인 자원자들은 2)Reiss, Julie H. From Margin to Center, MIT Press, 2001, p. 14 3)Bergson, Henri(저) Paul, Nancy(역), <Of the Selection of Images for Conscious Presentation>, Memory and Matter, Digireads.com, 2010, P.9-39 4)Kaprow, Allan(저) Kelly Jeff(편), <Happening in the New York City 1961> Essays on the Blurring of Art and Life, University of California Press, 1st Edition, 2003, p.20 148.

(5) 역할극을 하는 배우가 아닌 일상의 매 순간을 매개하는 수행자(performer)가 되고, 예술가는 기획자 인 동시에 제작 감독이 되며, 작업은 제시된 절차를 준수하며 지정된 일시와 장소에서 개시된다. 느 슨하고 한시적인 공동체를 형성하며 실시간으로 구현되는 캐프로의 ‘환경’은 반-환영적이고 반-재 현적이다. 무엇보다 이는 사이트의 역사성과는 무관한 관계역학의 실험장으로 대안적인 창조 시스템을 모색한 다. 여기서 구상-수행체계-완성품은 서로 이율배반 되도록 구축되며, 이를 통해 구현되는 이미지는 ~을 ‘세워 두다’를 가리키는 설치(設置)의 ‘행위 의미’를 무화한다. <그림 1> <유동체, Fluids>는 캘 리포니아의 여름 뙤약볕 아래서, 사전 주문 재단된 얼음블록을 날라 하나하나 쌓아올리고 이어 붙여 확장된 형태의 블록 구조물을 구축하고, 이를 도시 곳곳에서 설치하는 작업이다. 프로젝트에 내재된 모순은 첫째, 이미 녹아내리고 있는 얼음블록을 단위 모듈로 삼은 것이고, 둘째, 궁극적으로 이는 도 시외곽을 둘러칠 경계 장벽을 구상하며 계획된 마을 공동체 프로젝트라는 것이다. <그림 2> <수송, Transfer>에서 캐프로와 자원자들은 화학공장 창고에 적치되어 있는 빈 드럼통을 날라 컨테이너 트럭에 적재한 후, 다른 곳으로 이동하여 다시 이를 내려나르며 적치한다. 여기서 적 치된 드럼통에 페인트를 칠한 후, 이의 ‘성취’를 기념하기위해 “승리의 사진을 자랑스럽게 찍 음”(triumphant photo taken)5)으로써, 계획서에 명시된 행동강령을 이행한다. 작업은 동일한 절차 <그림 2>수송(Transfer) 해프 닝, 1968, 포스터와 (부분)현장 단체사진. 를 7회 되풀이 한 후, 창고로 돌아가 드럼통을 아무렇게나 차버리는 것으로 종료된다. ‘기념비적 업 적’으로서 ‘설치물’은 단위노동을 통해 말 그대로 차곡차곡 쌓아올려, “가지런히”(neatly)6) 세워둔 것이다. 그러나 설치물은 해체되기 위해 구축되는 부조리함을 보이며, ‘작품’은 내용물 없는 저장 컨 테이너를 수송하는 무의미한 절차형식을 통해 완성된다. 캐프로의 ‘환경’은 반-효율, 반-기능, 반-생산, 반-물질주의 정서를 반영하는 것이다. 이는 근대 산 업화를 배경으로 구성주가 표방했던 유토피아적 체계관에 역작용하며, 사회적 이념의 투사로서 구성 체에 내재된 기념비성을 해체한다. 그러나 여기서 폐타이어, 폐자동차, 비닐, 신문, 종이, 피켓 등, 대 량 생산되고 일상에서 소비되며 고물이 된 공산품과 일회용 자재들이 현장 기록사진을 통해 공간 구 성물로서 이미지화되면서, 한시적 지원 체계로서 작동하던 매개 장치가 심미화되는 모순이 생겨나게 된다. 캐프로의 ‘환경’이 관조나 소유 대상으로서 객체화된 예술개념을 부정한다는 점에서, 이리저리 이 용되다 걷어차이며 제자리와 꼴을 잃어버린 것들 ‘더미’가 ‘설치물’로 대상화된다는 것은 역설적이다. 여기서 ‘설치’는 심미적 더함이 없이, 들기, 나르기, 옮기기, 굴리기, 던지기, 채우기, 쌓기, 놓기 등의 동작을 단순반복 배치하는 것으로써, 설치물의 형상은 재료 자체의 단위성과 물성을 그대로 구조화. <그림. 3>마당(Yard). 1961,. Martha Jackson 갤러리, 뉴욕. 해낸다. 그러나 여기서 ‘행위 목표’와 재료는 합당히 부합되지 않기 때문에 설치물은 기능적으로 디 자인된 것이라고 볼 수 없다. 무엇보다 여기서 행사되는 ‘노동력’은 시간단위로 제도화된 자본주의의 가치체계를 거스르기 때문에, 체제 산물로서 설치물에는 의미가 부재하다. 더 나아가, 매개체를 몸으 로 다루며 이고지고, 칠하고, 이의 사진을 찍는 등, 행위의 능동성과 피동형인 설치물 사이의 직ž간접 적 접촉은 표기(表記)적으로 행해지는 것이다. 때문에 여기서 이루어지는 매체 간 결합ž분리ž와해, 그리고 재료의 변질ž변형ž변성이 불러일으키는 효과는 아상블라지(assamblage)와는 달리, ‘표현력’ 으로서 촉지되지 않는다. 무엇보다 여기서의 예술은 ‘환경’으로 현존함과 동시에 소멸함을 전제로 한다. 관람자 또한 참여자로 ‘진행 중’인 예술작업 안에 현존함으로써, 수행 도구로 쓰이던 매개체가 상황에서 분리되어 단독적으 로 작품화될 수 없다. 대상 개념이 성립되지 않기에 거리 의식은 부재한다. 의미 부여를 위해 참여자 가 ‘환경’으로부터 빠져나와 거리를 두는 순간 작품은 존재하지 않게 된다. 설치물은 인위적으로 철 거되거나 자연적으로 사라지며, 해프닝의 ‘궤적’과 ‘흔적’은 따로 보존되지 않는다. 대신, ‘증거’로서 사진 이미지가 과거의 기억을 매개한다. 기록물을 통해 사건은 재연 가능하며, 공간적으로 재현될 수 있다. 실제 캐프로의 작업은 이를 바탕으로 아직까지 곳곳에서 재연출되고 있다. 무엇보다 기록물의 지시성에도 불구하고, 이미지와 텍스트 사이의 행간은 사실관계를 떠나 보는 이로 하여금 자유로운 상상을 불러일으킨다. 5)Kaprow, <Transfer>1968, http://www.walkerart.org/collections/artworks/transfer 6)ibid 기초조형학연구 17권 2호 (통권 74호). 149.

(6) 그러나 창조물로서 ‘환경’은 이미 소멸된 사건이다. 이러한 맥락에서 ‘행위 결과’로서 설치 예술은 퍼 포먼스 아트와 동일 계통으로 범주화되며, ‘환경’은 이의 효시로 제시되고 있다.7) 이러한 맥락에서 설치 예술은 실체 없는 ‘순수ž경험’의 ‘매개ž체계’이다. ‘설치’는 ‘지시적 행위’이고 ‘설치물’은 작품을 가장한 ‘도구ž장치’이기에, 실제 예술의 성립이나 의미 진정성의 여부는 온전히 개별 참여자의 상상 력에 맡겨진다. 여기서 예술은 예술가의 구상도를 따라 참여자가 구현한 성취물이 아닌, 문자 그대로 형식을 빌려 일어나는 ‘happening’ 이다. 이에 설치 행위는 표기이며, 이는 인식의 테두리를 제공한 다. 참여자가 어떤 의미로서 들어오기 전까지 이는 비워져 있는 것이다. ‘환경’은 각자 타고난 위치와 역할 규정을 떠나, ‘흐르는 시간 안에 존재함’ 그 자체의 잠재력을 불러일으켜 세우는 장(場)이다. 때 문에 ‘시간 안에 있음’을 ‘~에 거주하다’로 치환시키며 존재의 의미를 특정적으로 담아내는 장소나 지형에 대한 고려는 최대한 배제된다. 이에 ‘~에 두다’ 즉, ‘placement’의 위치 값 또한 구체적이지 않다. ‘~곳’의 불특정성은 취향(趣向)의 기축이 유동적임을 암시한다. 이에 외부 형세와 시선을 의식하며 가공해낸 자아상도 없다. 변동성은 ‘I-eye’, ‘보는 것-아는 것’, ‘주체-환경’간 인과성을 약화시킴으로써, 내가 머무는 곳의 표준으로 보 편화되는 관점과 이 때문에 갈등하는 자의식을 해체한다. 흐름에 내맡겨져 삶은 자유로워질 수 있는 것이며, 통제욕구와 소유의식 또한 와해된다. 틀에 가두지 않아 정체되지 않는 ‘존재’ 그 자체로 그 무엇에 다다르는 과정, 즉 ‘be-coming’인 것이다. 해프닝의 ‘환경’은 ‘I’ 즉, 주체로서의 중심성과 함 께 대상성을 해체한다. 때문에 이는 설치물에 ‘오브제’의 지위를 부여하고 사물성(thingness)을 전면 에 내세움으로써, 수용자를 지각적으로 관여시키는 미니멀리즘(Minimalism)에 방법론적으로 반전 된다. 2.3.현장: 보존과 프로덕션 미니멀리즘에서 ‘환경’은 배치된 오브제와 관람자 사이의 관계가 상관적으로 구축되는 지각의 장으 로서 상정된다. 여기서의 관계가 상황적이고, 이의 지속은 관람자의 관여를 통해서 가능하다는 점에 서 이는 수행성이 강조되는 해프닝의 연장선상에서 설명된다. 그러나 여기서 설치물은 ‘사물’(thing) 그 자체로 현존하며, 관람자의 지각 체계에 관여하며 대상화된다. <그림 4> 건물의 내ž외부, 전면(全 面), 전 방향각으로 설치 가능한 오브제는 건축적으로 배치됨으로써, 시선의 머무름과 이동을 유도 하면서 동선의 흐름에 개입한다. 무엇보다 여기서 오브제의 “외면”(outside)과 “표면”(surface)이 중요시되면서, 산업 자재의 물성, 단위 모듈, 설치 과정에서의 행적까지가 최대한 ‘있는 그대로’ 제시 되는 반면, 역사적 인과성이나 작가 자신의 내면 표출은 의식적으로 최소화된다.8) 이는 은닉된 의미 나 상징성 없이 ‘바로 지금 여기’ ‘이 순간’, ‘보이는 그대로’의 중립성을 표방하는 것으로써, 오브제는 일상적 움직임을 통해 무심결에 포착도록 공간적으로 포맷된다. 여기서 공간은 ‘장소’(place)로서의 시간에 걸쳐 축적되는 정체성을 뜻하기보다, 오브제가 놓여있는 물리적 부지(敷地), 즉 중력이 작용하는 ‘현장’으로서의 ‘site’를 가리킨다. 사이트는 의미로써 층층 <그림 4>상:. 로버트 모리스. 이 구조화된 상징체계가 아닌 수용자의 위상에 따라 작동하는 지각체계인 것이다. 여기서 장소성. (Robert Morris),. (placeness)이란 현시적으로 구축되는 것이며, 경험의 의미는 오브제의 배치도에 의해 규정되기보. 매단 슬래브와 플랫폼. 다 수시로 재구성된다. 공간 지각적 관여를 통해 시점이 이합집산 되면서, 관점은 개별적이고도 비선. (Hanging Slab & Platform), 1973, 합판. 형적으로 경로화되는 것이다. 이에 개별 수용자의 시각선을 따라, 일상의 모습은 설치물의 형세를 타. 중: 칼 안드레(Carl Andre), 8. 며 시시각각 갱신되고, ‘곳’은 이미지로서 움직이는 몸으로써 환경적으로 촉지 된다. 이러한 맥락에. 컷(8 Cut), 1967, 시멘트 벽돌. 서 설치는 안정감을 쫓아 안주하려는 인간본능의 관성과 지각구조에 개입하는 행위이다. <그림 4>에. 하: 래리 벨(Larry Bell), 제목 없음(No Title), 1969, Plexi 합성수지판. 서 시각적으로 드러나듯이, 설치물의 가변성은 길잡이이자 미로로서, 반사판이자 투영체로서 기능 하며, 부동적 건축물의 형틀에 길들여진 몸의 방향과 위치감각을 해체하며 개별성을 회복하도록 관 람자의 시선을 밀고 당긴다. 예술의 초월성이 와해되면서 작품은 ‘현재성’이라는 맥락에 따라 조건 수용되는 개념이 되었고, 이에 더불어 예술개념을 재단하고 공인하는 제도권과 시스템이 표방해온 가치와 정통성에 대한 의구심 또 7)Reiss, Julie H. From Margin to Center, MIT Press, 2001, p.4-42 8)Causey, Andrew, Sculpture Since 1945, Oxford University Press, 1998, p.120 150.

(7) 한 커졌다. 맥락성의 인식은 식민주의의 전리품을 전시해온 신고전주의 양식의 박물관이나 ‘화이트 박스’로 표상되는 모더니즘 갤러리 공간 양식에 맞춰 작품을 ‘전시’하는 대신, ‘설치’한다는 개념을 낳았다. 이러한 측면에서 설치는 작품을 만들고 접하는 공간 논리의 규정성을 극복해가는 과정을 시 각화한다. <그림 5> 개념 예술가 다니엘 뷔랑(Daniel Buren b.1938)의 ‘줄무늬 포스터’ 설치는 실제 작품과 작품이 만들어지는 곳의 관계를 보존하려는 욕구에서 촉발되었다.9) 여기서 ‘설치물’은 프랑스 일상의 의ž식ž주 영역에서 흔히 사용되는 패브릭 프린트를 모티프로 단위 화하여 수직 방향으로 재단한 것으로서, 이는 신체 부착용 선전 패널로 도로변을 활보하거나, 갤러리 창문을 관통하는 줄에 널려 장식용 휘장처럼 바람에 나부끼기도 하며, 지하철이나 옥외 광고판 위에 도배되어 거리 풍경에 합류한다. 50-60년대 침구류, 엄마 앞치마, 가족 식탁보 등, 익숙하고 가정적 인 세팅에서 접촉해왔던 기하학적 줄무늬 패턴의 낯선 자리배치는 환원적 익명성과 촉각적 친근함의 상충된 심상을 자아내며, 바쁘게 스치며 지나다니는 도시인의 시선을 순간적으로 붙드는 효과를 낸 다. 무엇보다 여기에서 작품은 화이트 박스를 벗어나, 공공장소에 오브제의 ‘설치 현장’ 바로 ‘그 자 리에서’(in-situ) 전시되며, 그 자리를 벗어나는 순간, 작품으로서의 지위를 상실한다.10) <그림 5>다니엘 뷔랑 (Daniel Buren). 수용자가 현존하는 환경으로부터 오브제는 따로 분리되어, 독립적인 예술품으로 존재하지 않는다는. 상: 샌드위치 맨 (Sandwich. 점에서 이는 미니멀리즘의 연장선상에 있다. 그러나 도시 건조물 표면에 가정용 벽지처럼 도배되는. Man) 1968. ‘줄무늬 포스터’는 물리적으로 찢기고 뜯겨 나가거나, 풍파에 헤지고 바래진다는 점에서, 개체로서. 중: 프레임의 안과 프레임을 넘 어서. 원형을 유지하면서 이동과 재설치가 가능한 여타의 미니멀리스트 조각품 오브제와 견주어, 기습적이. (Within and Beyond the. 고도 불시(不時)적이며 속도성이 부각된다. 이러한 연유에서 뷔랑의 작업 또한 앞서 캐프로의 경우. Frame), 1973. 처럼 현장 사진으로 남겨지는데, 이는 해프닝의 반어법적 계획성을 드러내는 ‘기록’(document)대신. 하: 와일드한 전망. 파편적인 “기억”(memoir)으로, 공식적인 ‘기록물’(documentation) 대신 개인적인 “기념사진”. (Affichages Sauvages ) 1968. (photo-souvenir)으로 지칭되고 있다.11) 재료, 패턴 배치ž방향, 설치법과 장소 섭외 등, 현장 조건을 따라 조형체계가 통합적으로 조직되면서, 여기서 예술은 익명적인 동시에 환원적이며, 지각 장치적 효과로 나타난다. 이는 뷔랑이 정의하는 예 술이 사이트의 상황과 물리적이고도 개념적으로 직결되어있음을 입증한다. 더욱이 일관화된 ‘줄무 늬’ 모티프는 작가 평생을 거쳐 여전히 진행형이다. 패턴 작업의 규칙성과 반복성은 예술은 대상 그 자체의 속성이 아닌, 맥락을 통해서 의미 부여되는 것임을 방증하는 것으로서, 이는 시점이 바뀔 때 구태의 쇄신이 가능하다는 것을 나타낸다.12) 변화무쌍한 도시환경의 일상은 예술의 생산과 수용이 공공연히 이루어지는 열린 체계로 작동하며, 예술은 시민적 가치로써 프레임 된다. 사이트 구성원 각 자가 지각주체로서 스스로의 미래비전을 만들어가는 것이며, 여기서 예술은 말 그대로 ‘표면적’ 계기 를 마련할 뿐이다. 작품이 만들어지고 수용되는 방식이 사이트로부터 정해진다는 전제는 감성구조는 타고나는 것이라기보다, 외부적 메커니즘의 소산이라는 결론을 낸다. 여기서 창조력은 속성이 아니 며, 오히려 권한으로써 부여된다는 것이다. 이러한 맥락에서의 예술은 대물림되며 가치가 축적되는 유산(遺産)이 된다. 이에 대해 ‘현장형’으로 역-제시되는 ‘art-in-situ’는 후원자 취향에 맞는 작품을 주문하고, 완성품으 로서 예술을 매입하여, 소장품 컬렉션으로 보존되는 제도권 예술 프로덕션에 의미적으로 반전된다. 이의 논리는 궁극적으로 기득권을 공고히 하기 위해, 건축물의 논리로서 공공의 감성을 길들이며 교 화하는 박물관과 미술관의 체제논리를 상쇄하는 것이다. 여기서 ‘설치’는 예술이 무엇인지를 미리 결 정하고 재단하는 주문 제작 체계의 메커니즘을 드러내는 역할을 해낸다. 이러한 논리 구도 안에서 ‘작품’은 부동자산인 ‘랜드마크’(landmark)가 아닌, 개별적인 ‘랜드-마킹’(land-marking)을 통해 만들어지며, 예술은 누구나 언제 어디서나 함께 공유할 수 있는 개념이 된다. 예술의 독립성과 기득권 보존을 위해 견고히 유지되던 보호 장벽이 와해됨에 따라, 실물 대신 개념이 9)Buren, Daniel, Repensek, T(역), <The Function of the Studio>, October 102, Vol. 10, MIT Press, 1979, p.56 10)Weibel, Peter(저), <Context Art: Towards a Social Construction of Art>, 1994, Doherty, Clair(편), Situation, MIT Press, 2005, p.50 11)http://www.danielburen.com/pages/archives/bibliographie_texts/text:11 12)Buren, Daniel, <Beware> 1969, Art in Theory,1900-2000, Harrison & Wood(편), Blackwell publishing, 2013, p.862-866 기초조형학연구 17권 2호 (통권 74호). 151.

(8) 된 예술의 구조적 취약성도 더불어 드러난다. ‘현장형’ 예술은 사이트의 시류변화를 실시간 포용하면 서 서로 다른 주인의 목소리를 가진다. 이에 동시대 예술은 금융ž상업ž자본주의가 심화되면서 땅과 건물이 투자대상이 된 사이트의 메커니즘을 재생산해내는 과정에 동참하게 된다. 이를 증명하듯, 갤 러리 쇼윈도와 역사적 박물관의 육중한 열주 면을 대담히 덮어내며, 저항적 목소리를 내던 ‘줄무늬’ 는 다국적 패션 그룹(LVMH) 소속, 젊은 스타 디자이너의 시즌 컬렉션의 방향을 제시하는 디자인 콘 셉트가 되면서 쇼 무대를 장식하게 되었다. <그림 6> 여기서 예술가와 디자이너의 ‘협업’은 명품가방 엠블럼인 ‘체크보드’ 패턴과 ‘줄무늬’를 장 소 특정적으로 병치하는 작업으로 진행되었다. 루브르(Louvre, Paris) 광장 앞에 세워진 가설구조물 의 외피를 덮은 패턴은 근대 미래주의의 ‘메트로폴리스’를 연상시키는 하강 에스컬레이터 계단을 덮 어 타며 내려오다가, 하이글로시 코팅 처리된 바닥으로 펼쳐지며 런웨이를 활보하는 모델의 몸을 감 싼다. 더 나아가 이는 파리의 명품 거리 쇼윈도, 스크린 광고, 하이패션 잡지 지면으로까지 확장함으 로써, 감각적 슈퍼 그래픽이 된 ‘art-in-situ’의 현실을 그대로 보여준다. 예술이 이미지 브랜딩과 기업 프랜차이즈의 논리를 따라 라이프스타일 디자인에 동참하는 일이 빈번 해지면서, 예술가/디자이너와 기업/공공기관 간 협업은 패션-건축-대중매체를 가로지르며, 21세 기 글로벌 마케팅 트렌드로 자리 잡았다.13) 시장 논리를 통해 도시공간이 활성화 되면서, 문화의 향 유와 소비, 공공과 대중의 역할경계가 무너졌고, 예술의 의미는 협동 프로젝트로서 주관 주체의 정체 성을 따라 부여된다. 아트 마케팅은 도심 재생과 지역 활성화 정책의 전략으로, 공익적인 차원에서 받아들여지고 있는 추세이며, 이러한 상황은 예술의 제작 방식과 시스템에 그대로 투영되어 나타나 고 있다. ‘복고풍’으로 돌아온 ‘줄무늬’는 하이테크 매체 표면을 가로지르며, 문자 그대로 현실을 덮어버린다. 이는 미래비전을 제시하는 대신 첨단유행을 선도하며, 세계적인 문화ž예술ž관광의 중심지로서 파리 의 입지를 재확인시킨다. 체제 전복적이었던 뷔랑의 작품이 현실 지원적으로 인지되는 이유는 ‘줄무 늬 패턴’과 ‘설치 행위’가 그 자체로서 의미가 비어있는 도구적 장치라는 점에서 기인한다. 순수 기호 형식인 ‘줄무늬 설치’의 딜레마는 설치 행위의 ‘의미 대상’이 해체되어 없어진 것이 아니라, 사이트에 완전히 흡수되었다는 점에 기인하고 있다. 다시 말해, 초기 ‘줄무늬 설치’가 ‘저항 정신’으로 읽혔던 <그림 6>다니엘 뷔랑 (Daniel Buren) Vuitton). 루이비통(Louis 수석 디자이너였던. 이유는 ‘독점적’이라는 의미를 부여할 대상이 ‘제도권 예술’로 객관화되어 존재했기 때문이다. 그러 나 제도권 예술이 자본 시장에 흡수되면서 이를 향한 비평적 언표는 해체되었고, 이제 사이트에는 체. 마크 제이콥스(Mark Jacobs). 계화 된 조형도구, 즉 줄무늬 패턴과 설치 행위만 남게 된 것이다.. 와의 협업, 2013 파리 패션 위. 지각변동은 시장의 유동성을 의미하고, 자아실현은 자기 개발과 브랜딩을 통해 시장에서의 존재 가. 크(Paris Fashion Week) 쇼. 치를 높이는 일로 인식되는 작금의 현실에서, ‘줄무늬‘ 설치물이 선사하는 시각적 쾌감은 여전히 유. 무대 및 쇼윈도, 잡지 캠페인 사진. 효하다. 현실로부터 독립성과 절대성을 스스로 해체하는 길을 걸어온 예술은 각기/함께, 누구나/아 무나, 언제/어디서나 임의적으로 만들 수 있는 기호체계가 되었고, 작품은 본연의 성질이나 의미라 는 것은 존재하지 않는 기호 그 자체가 되었다. 개념 미술가 조셉 코수스(Joseph Kosuth b. 1945)는 예술은 상황에 따라 조건 수용되는 것이며, 이에 예술이란 개념 또한 수용자에 의해 언어적으로 결정 되는 것이라 주장했다. 이러한 맥락에서의 예술은 ‘아이디어’이자 ‘메커니즘’으로서, 물질적 대상이 아니라 행위를 통해 외현화되는 예술가의 활동이 된다.14) 작품을 구입하거나, 작가에게 커미션을 준다는 것은 현실 조건을 변형할 아이디어와 활동가치 그 자 체에 투자한다는 것을 의미한다. 그러나 여기서 창작자/수용자 양측 모두, 사이트에 매몰되어 대상 의 객관화가 이루어지지 않는다면 행위의 의미는 생성될 수 없다. 좀 더 구체적으로, 행위의 지향성 과 대상에 대한 관계 성찰이 부재할 때, 예술은 사이트 논리를 따라 도구화될 수밖에 없는 것이다. 후 기 자본주의의 맥락에서 설치는 외부자극에 지속적으로 노출되어 무뎌진 신경감각을 자극하기 위한 충격요법과 도발적 행위가 되고 있으며, 콜렉터의 트로피처럼 작품을 ‘과시’할 공간은 공공영역으로 확장하고 있는 추세이다. 이러한 현상은 <그림 7> 영국 출신의 스타 작가 데미안 허스트(Demian 13)Klingmann, Anna, Brandscapes: Architecture in the Experience Economy, MIT Press, 2010, p.65 14)Kosuth, Joseph,<Art after Philosophy>, Art in Theory, 1900-2000, Harrison & Wood(편), Blackwell publishing, p.859 152.

(9) Hirst b.1965)의 경우에서 총체적으로 나타난다. 여기서 예술 활동은 대량생산제로 스펙터클을 창출하고, 투자대상으로서 작가 자신의 가치를 상품화 하는 이미지 비즈니스로 체계화되고 있다. 이러한 맥락에서 예술가는 글로벌 부호들을 상대하며 큐 레이팅, 홍보, 마케팅, 경영, 경매에 이르기까지, 작품의 제작ž판매ž유통을 통합적으로 기획ž감독하는 역량을 갖춘다.15) 설치작업은 타자에게 지배당하기전에 스스로를 해체하여 적나라하게 꺼내 대상 화해 보이는 전법을 구사하며 ‘물질로서 존재함’ 그 자체를 ‘쇼 케이싱’ 한다. 예컨대 이는 유기체의 인위적 보존을 위해 병리학적으로 해부된 동물체를 쪽빛 포름알데히드 탱크에 담가둔다. 혹은 관점 을 반전시켜 살아있는 파리 떼와 꿈틀거리는 유충에 의해 젖소머리가 피를 쏟으며 실시간 해체되는 과정을 디스플레이 한다. 불로장생을 꿈꾸는 인간 삶의 피동성과 비인격적인 시간의 역동성을 병치 해냄으로써 생장의 역설을 설파하는 것이다. 상황에 대한 주체의식은 통제욕구를 통해 구축되고, 이는 붙잡아 ‘가두어놓기’와 이의 ‘증거’를 전리 품처럼 ‘전시’하는 행위로써 체계화되고 있다. 식당 홀 정중앙, 대형 TV용 선반위에 배치한 포름알데 히드 탱크 속 소ž닭을 무심히 쳐다보며 고기를 썰게 하는 등, 선정적 프레젠테이션은 지각적 불쾌감 <그림 7> 데미안 허스트(Demian Hirst),. 과 심리적 해방감을 상충적으로 맛보게 하며, 이미지의 진위나 진정성을 가리는 일은 관객의 몫으로. 상: 천년의 세월(A Thousand. 오롯이 돌려진다. 신자유주의가 잠식한 사이트에서 예술의 존재 가치는 ‘보이고 보여주는’ 쇼윈도 효. Years),1990, 젖소머리,. 과의 반향성과 직결되게 되었으며, 아트 마케팅을 통해 시선을 끌어 모으고 소외된 지역의 침체된 경. 파리ž유충. 기를 활성화시키는 ‘장소 브랜딩’(place branding)이 제도권 예술의 주요 기관업무이자 공공적 기능. 중: 분리된 어미와 아기. 으로 프레임 되는 현상을 낳았다.16). (Mother and Child. 이러한 맥락에서 예술은 ‘투자와 보존’이라는 전략적 지원체계를 통해 ‘장소 특정적’으로 대상화되고. Divided),1993. 있으며, 이로써 ‘창조’라는 노동력에 대한 보상은 현실화되고 있다. 실체 없이 부유하던 ‘해프닝’의. 소, 송아지, 포름알데히드. 정신은 지정학적 의미를 부여받음으로써, ‘소멸’ 대신 장소성이 불분명한 지역의 미래 비전을 표상하. 하: 수탉과 소(Cock and Bull),. 는 상시 전시물이 되었다. 생산의 논리를 거스르며 변방에서 이루어지던 설치 작업이 사이트에서의. 2012, 포름알데히드. 존재 가치를 입증하며 우위적 입지를 확보하게 된 것이다. 사이트는 물리적일뿐만 아니라, 삶을 조직. Tramshed 식당, 런던, 1900년대 지하철역을 개조한. 하고 공간적으로 의식화한다. 무엇보다 이는 지속되어온 삶의 터전이자 문화이기 때문에, 장소의 자. 공간, 장소 특정적 설치,. 생적 추동력을 끌어내지 못하는 설치작업은 미래 비전의 포석이 되기보다, 오히려 비전의 부재함의. 주문제작. 표상하는 대체물이 되는 역설을 낳고 있다. 2.4. 현실 인식: 로케이셔닝(locationing) 사이트 자본과의 협업을 통해 저항의 의미가 전복된 예술이 다시금 주류로 편입되는 모순은 구조적 으로 반복되고 있다. 독점 자본주의와 주류예술에 저항하며, 중심에서 배제된 비주류의 코드를 적극 포용해온 ‘거리 예술’(street art)또한 대중 문화시장에 편입되면서 입지가 구축되었다. 경계를 풀고 나와 일상의 스펙터클이 된 예술의 부조리함은 영국의 그래피티(graffiti)예술가/다큐 감독/사회 운 동가인 뱅크시(Banksy b.1974)가 기획ž조직ž감독한 <그림 9> <디즈멀랜드, 혼란의 공원 Dismaland, Bemusement Park>에 자조적으로 대상화되고 있다. 미국의 월트 디즈니사(The Walt Disney Company)의 프랜차이즈 테마파크인 디즈니랜드(Disneyland)를 패러디한 공간 작업은 유명 예술 가들의 대거 참여를 암암리에 이끌어내며, 장기 침체된 영국의 해변 리조트 마을에 ‘팝업 전 시’(pop-up exhibition) 형태로 개장했다. 지역 문화 재생사업의 일환으로 유치된 ‘아트 전시-놀이 시설’의 결함은 80년대 부동산 개발 붐을 타 고 열대지방을 뜻하는 ‘트로피카나’(Tropicana)로 명명된 실내 수영장 건물 파사드를 입구로, 해변 쪽을 등지고 임시 단지를 구성한다. 이는 ‘디즈니화’(化)의 표상인 <잠자는 숲속의 공주> 성과 <인어 공주> 상17)의 조악한 복제품을 중심으로 동선을 조직해낸다. 공간 배치는 이용자의 관심을 지속시 15)Mayer, Catherine, Damien Hirst: ‘What have I done? I’ve created a monster ’ http://www.theguardian.com/artanddesign/2015/jun/30/damien-hirst-what-have-i-done-ive-created-a-monster 영국, 더 가디언(The Guardian) 인터넷 판, 2015/6/30일자 16)Klingmann, Anna, Brandscapes: Architecture in the Experience Economy, MIT Press, 2010, p.273 17)독일, 바이에른(Bayern)주, 노이슈반슈타인(Neuschwanstein) 성 차용 복제 안데르센의 동화 캐릭터<The Little Mermaid., 덴마크, 코펜하겐 소재의 동상 차용 기초조형학연구 17권 2호 (통권 74호). 153.

(10) 키며 자율적 탐색이 가능하도록 18개의 독립적인 테마로 구역화 되어있다. 여기서 뱅크시는 설화/동 화/만화/애니메이션/공연/영화 등의 변용을 거쳐 정형화 된 판타지 캐릭터들과 지구촌 뉴스 속 전 쟁, 난민, 빈곤, 재해, 질병, 폭동, 연예인 파파라치 컷 이미지를 재연출한 장면들을 병치시킴으로써, 예술과 오락, 현실과 가상 간의 전치(轉置)18) 현상을 유도한다. 서커스 텐트 안, 황금색 경화 실버 프레임으로 업그레이드 된 허스트의 포름알데히드 탱크 속에는 금 뿔을 장착한 백색 조랑말이 유령처럼 보존되어 있고(The Child's Dream, 2008作), 합성수지 해부모 형이 된 신화 속 ‘유니콘’ 회전목마를 역방향으로 돌며 방독면과 전신 보호 장비를 착용한 스텝들이 소독약을 뿌리는 퍼포먼스를 한다. “내가 원하는 것으로부터 날 지켜줘”(Protect Me from What I Want) 등의 수사학적 텍스트 설치 작업으로 유명한 제니 홀저(Jenny Holzer b.1950)가 설치한 안내 용 LED 점멸판은 “항상”(IS ALWAYS)을 조용히 깜빡 꺼리며, “재앙이 될 잠재성이 없으면 예술이 아 니다”(It's Not Art, Unless It Has a Potential to be a Disaster)라는 폴 경고사인과 병치된다. 테크니컬러 화면의 흔들림을 따라 형상화한 빨간 머리 인어공주 상 대각선으로, 늪에 빠진 시위 진압 용 탱크에선 어린이용 미끄럼틀이 뻗어 나오고, <신데렐라>로 명의 이전 된 <잠자는 숲속의 공주> 성 안에는 백마쌍이 끌던 호박마차가 통째로 전복된 체 뒤집혀 있다. 이어 복면을 한 카메라맨들이 호박 창문을 뚫고 나와 거꾸로 늘어진 체, 손을 흔들며 미소 짓는 노랑머리 마네킹을 향해 플래시를 터드 리는 퍼포먼스가 펼쳐진다. 파파라치 추격전 중 차사고로 유명을 달리한 다이애나 황태자비의 패러 디 조형물을 뒤로한 체 뒷문을 나오면, 불안한 표정의 난민인형을 한 가득 태운 조그만 고무보트들과 장난감 경비정이 검은 물로 채워진 분수대를 부유하고 있다. 수많은 스타 예술가들의 참여에도 불구하고, 미술관 제도로부터 자발적으로 소외된 뱅크시의 음성적 입지와 후미진 사이트 위치 덕에, 프로젝트는 개장 전일까지 소리 소문 없이 진행되었다. 이러한 태 생성에 반격하듯, ‘디즈멀랜드’는 말초신경을 자극하는 동시에 교화적인 어법을 구사하며, 관중의 성 찰을 이끌어내려는 불가능한 작업을 감행한다. 이는 대책 없는 희망의 이미지로 포장한 현실에 매몰 되길 거부하는 대신, 현실의 고통을 희화적인 스펙터클로 만들어 호객행위를 하는 이중성을 보인다. 여기서 설치개념은 가상공간 콘텐츠로 확장하고 있으며, 장소 특정적 작업으로써 ‘지금 여기에 살아 <그림 8> 디즈멀랜드, 혼란의 공원(Dismaland, Bemusement Park). 있음’을 실천해온 현대 예술의 이상을 계승하고 있다. 이는 대신, 엄밀한 자기 절제를 통해 정제해낸 미니멀리즘의 추상적 표면을 뜯어내고, 주인 없이 퍼다 날라 매체 사이를 떠도는 이미지 파편들을 차. Weston-super-Mare 리조트,. 용ž패러디하며 콜라주 해낸다.. 서머셋,. 앞서 논의해온 ‘현존’(presence) 담론에서 의미체로서의 현실은 도외시된다. 불확실한 미래에 대한. (Sumerset) 영국. 실존적 불안감은 모더니즘에서는 ‘단절’, 후기 모더니즘 계보에서는 상황 ‘초월’ 혹은 ‘자조’, ‘체념’,. 2015년 8월~9월 기획ž감독: 뱅크시. ‘우위 점령’ 등의 의미 대상으로 나타났다. 체감과 동시에 반복함으로서 관성이 되는 ‘현실’(reality). 참여 작가: 데미안 허스트 외. 은 ‘현재’(present)라는 의식의 구조와는 다른 것이며, 개인의 의지와는 상관없이 실재하는 현실은. 57명. 사실상 간과되고 있다. 실시간으로 중계되며 각색되는 SNS 이미지는 지구촌 뉴스와 시시콜콜한 일 상사의 범주를 순식간에 넘나든다. 모바일 스마트폰을 매개로 하는 접촉 방식이 일상화되면서, 상대 적 박탈감, 좌절감, 두려움 등의 감정은 무의식적으로 억압된다. 모든 것이 자신의 통제 관할 밖에 있 는 상황에서, 가벼움을 추구하는 일은 ‘주인 의식’이라는 책임감에서 벗어나기 위한 자기방어 기제이 다. 신경생리학적으로 몸의 항상성을 지켜내려는 탈감(脫感) 본능인 것이다.19) 이러한 맥락에서 가공된 유년의 기억을 대체물로 만들어 심리적인 위안감을 안겨주고, 더 나아가 이 를 공유할 수 있는 추억으로 상품화하며 프랜차이즈화 하는 미디어 엔터테인먼트 산업의 부흥은 합 당한 귀결이다. 시장논리에 흡수된 ‘팝아트’(Pop art)는 대중 예술과의 구분이 어려워졌으며, 예술과 예능을 합성한 ‘아트테인먼트’ 등의 출처불명의 신조어를 만들어 내고 있다. ‘아트’가 주어가 아닌 수 식어가 된 현실에서, 현실 체제를 거부한다는 것은 ‘개념’을 넘어 ‘매체 현상’이 된 예술의 현실을 부 정하는 꼴이 된다. 이러한 배경에서 예술은 반항을 멈추고, 치유 기능을 부각시키며 공동체와 맞닿기 18)Freud, Sigmund(저), Strachey, J(역), Civilization and Its Discontents, Norton & Company, 2010, p.20 :여기서 전치 (displacement)는 이루기 어렵고 힘든 목표, 소망 등을 수용 가능한 다른 목표와 소망으로 대체, 이에 따르는 걱정을 덜기위해 무의식적으로 작동되는 방어기제를 일컫는다. 19)Hartmann, Klimmt, Voderr(공저),<Telepresence and Media Entertainment>, Bracken & Skalski(편), Immersed in Media, Routledge, 2010, p.141-146 154.

(11) 를 시도한다.20) 대신 이는 60년대 신체 예술이나 플럭서스(Fluxus)적 퍼포먼스에서 나타나던 외향 적이고 파행적인 주술성과 의식성(rituality)과는 다른 감성으로 나타나고 있다. 예컨대 카메라, 스크 린 프레임, 편집 프로그램 등의 뉴미디어 메커니즘을 따르며 몸주체로서의 본성을 ‘기억해내기’를 시 도하는 등, 체제 모순적인 방법을 고안해낸다.21) 이로써 매체 논리에 의해 피동적으로 통제되고 길 들여지고 있는 감성과 대면하며, 시스템에 흡착된 현실로부터 스스로를 분리시킴으로써, 다시금 현 존성에 대한 성찰을 꽤하는 것이다. 이러한 자기 쇄신적 타협안을 거부한 대가로 ‘디즈멀랜드’는 스스로를 가두어 고립된 신화 속 요새처 럼, 분리장벽을 둘러친 외딴 섬 형세의 놀이동산으로 퇴행적으로 구현되어 나타난다. 어린 시절 보고 듣고 상상하던 동화나라 판타지보다, 더 판타지 같은 환영이 된 예술이 자신이 처한 현실을 가상ž오 락물로 재현해내기에 이른 것이다. 비인격적으로 반복될 뿐인 삶의 구조를 있는 그대로 받아들이지 못하고, 그 어디에도 존재하지 않는 유토피아와 혁명을 꿈꿔온 예술이 있을 곳은 이제, 미술관도, 쇼 윈도도, 광장도, 뒷골목도 아닌, 회생을 꿈꾸는 낙후된 리조트 마을에서 한시적으로 운용되는 디스토 피안 테마파크이다. 그러나 이미지 브랜딩 전략이 가상의 사이트로까지 확대됨에 따라, 칭호 그대로 <그림 9>상: 트윈타워 (Twin Towers), 미국, 뉴욕, 테러 10 주년 기념일. ‘음울한 땅’의 의미는 또 한 번 전복되고 있다. 대상화와 자기 노출을 방법론화한 허스트와는 반전되게, 뱅크시는 자신의 신원을 철저히 감추며 익 명성을 대중적으로 구축하는 그림자 전략을 구사해왔다. 이는 지구촌 곳곳에서 세우고 허물기를 반. 중: 스티브 잡스, 프랑스, 칼레 (Calais)시, 시리아 난민 텐트. 복하는 다양한 양상의 담벼락에 기습적으로 스프레인 페인트 이미지를 남기는 동시에, 웹사이트에. 촌, 2015. 현장사진과 장소명만을 공지한다. <그림 9>에서 드러나듯이, 현장의 현실은 아무런 추가 설명 없이,. 하: 레미제라블(Les. 뱅크시의 트레이드마크가 된 패러디 이미지의 배경으로 제공됨으로써, 메시지는 광고 캠페인처럼 쉽. Misérables) 뮤지컬 로고, 영국, 프랑스 대사관, 2015,. 게 각인된다. 이에 한시적 이미지는 자기 복제하는 매체 논리를 따라 회자되며 재생산되게 된다. 무. 작가 웹 공지 사진.. 엇보다 2010년에 출시된 모바일 앱 ‘인스타그램’(Instagram)이 젊은 세대를 중심으로 유행하면서,. www.banksy.co,uk. 현장 작업의 의미 윤곽은 시각적으로 드러나기 시작했다. 스마트 폰에 설치해 쓰는 ‘인스타그램’은 매순간의 경험을 현장사진으로 포착해내고, 이는 각종 이모 티콘 사용과 더불어 특정 키워드로써 벽화 이미지를 ‘해시태그(#)’함으로써 정보의 공유ž배포ž데이 터화가 실시간으로 이루어진다. 정서표기와 함께 관객 반응까지 즉각적으로 공유ž수치화되며, 사용 자 네트워크 밖으로까지 링크되어 확산되는 것이다. 실제 뱅크시의 신화적 유명세는 소셜미디어와 모바일 기기를 기반으로 자생적으로 생겨난 팬덤(fandom) 현상을 통해 공고해졌다. 팬들은 현장에 누가 먼저 도착하는가를 앞 다투어 경쟁하며 ‘셀카’와 ’인증샷’을 남기고, 건물주나 땅 소유권자에 의 해 이미지가 철거되는 현장을 보고하거나, 스프레이가 흡착된 표면을 뜯어다 on & off 경매 사이트 에 올려 입찰하기도 한다.22) 더 나아가, SNS를 이용하는 현지인들과 관광객들까지 우연찮게 엮고 있는 팬덤은 팔레스타인의 분리장벽, 뉴욕 9/11 테러, ISIS 파리 테러 직후에 남긴 이미지에 이르기 까지, 벽화 이미지를 위치 추적하고 사이트의 상황을 ‘해시태그’하면서 작품 지도 만들기 놀이를 즐 기고 있다. 여기서 설치의 의미는 지정학적으로 구축되는 동시에 초-매체적 현상으로 나타난다. 예술로서 사이 트 작업은 인터넷 이용자 및 팬들의 참여로 이루어지는 동시에 이는 익명적으로 진행됨으로써, 지적 호기심과 과시 욕구, 우발성과 의도성, 장난스러움과 진지함이 복합적으로 투영된다. 여기서 예술은 집단 지성과 병리적 현상을 모두 포용해내며, 사용자 주도로 형성되는 전시환경 안에서 실시간으로 의미화 된다. on & off 사이트를 연동시킴으로써 일어나는 해프닝과 행동은 초-경계이고도 초-방향 적으로 참여의 장을 개시해내는 결과를 낳는다. 현실과 이상 사이에서 분열하던 예술은 가상 콘텐츠 로 확장하며 통합된다. 여기서 예술가는 시시각각 흐트러지는 시선을 문제의 현장에 일시적이나마 관여시킬 수 있도록, 가장 대중적으로 일상화된 기술매체 양식을 이용하고 있다. 이로써 상생 불가한 개념이었던 저항-상업-예술의 공존은 현실화되고 있다. 예술은 수용자 담론을 통해 일상 환경 안에 서 의미화 되는 것이라 주장했던 코수스의 관점은 여전히 유효한 것이다. 20)Bishop, Claire, Artificial Hells: Participatory Art and the Politics of Spectatorship, Verso, 2012 21)Krauss, Rosalind E, Under Blue Cup, MIT Press, 2011, p.24 22)Moukarbel, Chris, Banksy Does New York, 다큐멘터리, H.B.O, 미국, 2014 기초조형학연구 17권 2호 (통권 74호). 155.

(12) 뱅크시의 작업 방식이 독점성과 통제의식에 대한 저항이고, 이러한 맥락에서 예술품이 아닌 예술의 프레임을 제시하고 있다는 점에서 이는 ‘현장 예술’의 가치를 계승하고 있다. 무엇보다 여기서 작품 을 쫓아다니면서 공감대를 찾아 이야기판을 깔아내고, 이를 통해 목소리를 내며 존재감을 드러내려 는 대중의 자기ž표출 욕구와 자발적 참여 덕분에, 생산성과 자본 논리에 흡수되었던 ‘현장 정신’이 갱 생된다. ‘작품과 작품이 만들어지는 곳의 관계 보전’의 주체는 미술관도, 콜렉터도, 예술가도 아닌, 현실상황을 방관하던 ‘관중’이다. 독점화된 자본권력에 대한 거부감이 폭력으로 세계 곳곳에 창궐중 이고, 레스토랑, 경기장, 콘서트장 등 여가를 즐기려는 불특정 다수를 상대로 테러가 빈번해지고 있 는 작금의 상황에서, 군중심리와 개인성을 탄력적으로 이용하며 ‘~위치함’의 의미를 자각(自覺)적 으로 되살려내는 뱅크시의 시도는 시의적이다. 예술과 미디어 활동의 경계 구분이 희미해지는 가운데, 여기서 설치는 현실에 대한 인식 장치로 거듭 나고 있다. 화이트박스가 블랙박스로 대체되고, 현실과 가상을 넘나들고 있는 동시대 예술에서 현장 에서, 위치성의 문제는 비단 작품 전시 환경의 변화에 관한 것만은 아니다. 장소 브랜딩을 넘어 지역 민의 삶에 기반을 둔 예술관련 정책 프로그래밍과 건축물 재생 사업 등, 외부 지원ž협력체를 통해 자 생력을 갖춘 공동의 장이 형성되고 있으나, 실제 작품이 장소의 현실의 변화를 촉발해낼 수 있는 영 향력은 미비하다. 제도권이 사이트에 흡수되며 힘은 분산되었지만, 삶이 뿌리내리는 정착지이자 제 도적 장치로서 사이트의 영향력은 여전히 막강하다. 때문에 설치물은 제도권과의 관계적 표상으로서 제작되고 있는 것 또한 구조적 현실이다. 현실이 변하려면 먼저 내부 구성원에게 현실이 보여야하고, 현실을 보이려면 현실 밖으로 빠져나와 거리를 확보해야 한다. 앞서 논의해온 해프닝과 현장 예술의 개념이 장소성을 초월하거나, 사이트 논 리에 흡수될 수밖에 없었던 이유는 예술이 환경으로부터 분리되지 않는다는 현존성에 전제하기 때문 이다. 이에 반해 뱅크시의 작업은 ‘~에 있다’의 실재적 위치성에 기초하기보다, ‘~에 와있다는 느낌’ 과 ‘~와 함께 한다는 느낌’, 즉 가상성과 동질감을 중요시한다. 여기서 작업의 의미는 끊임없이 위치 변동중인 이미지를 쫓으며, 공감대를 찾아 한시적으로 연대하는 다중(多衆)에 의해 실시간으로 생성 된다. 이 과정에서 구축되는 내러티브는 예술이 만들어져가는 현장의 기록이자 지도로서, 여기서 작 품의 경험은 지정적인 동시에 초경계적이다. 작품 행적을 추적하는 놀이를 통해 터-소속감의 의미 관계는 한시적이고 가변적으로 조직된다. 실시 간 내러티브로 경험되는 장소의 이미지는 특정적인 동시에 가상 공동체의 퍼포먼스이자 판타지로서 보편성을 획득한다. 이 또한 콘텐츠를 프랜차이즈화 해내는 엔터테인먼트 프로덕션 시스템의 일부가 되었지만, 이는 고단한 현실을 잊기 위해 만들어낸 대체물로 유통되길 거부한다. 오히려 여기서의 가 상은 외면하고픈 현실의 차원을 마주하도록 할 뿐만 아니라, 대면하고 싶지 않은 현실조차 스펙터클 이 되어가는 과정까지 직시할 것을 요구한다. 가상은 현실과의 거리를 만들어내고 있는 것이다. 이러 한 차원에서 설치는 예술가의 안목과 비전에 의존하는 장소 ‘브랜딩’과 ‘프레이밍’을 넘어서며, 이미 지 ‘로케이셔닝’ 작업으로 거듭난다. 여기서 예술가는 가상의 논리를 통해 현실을 보여주는 극장23) 을 구축하고, 이미지는 오롯이 사이트 이용자의 마음 가는데도 개시되고 연출되고 있으며, 형식으로 서 설치 예술의 의미는 지속적을 쇄신되고 있다.. 3. 맺음말 본고는 형식성의 문제를 중심으로 설치 예술의 의미와 방법론적 위상을 재고하였다. 본문에서는 ‘해 프닝’과 ‘현장’ 개념을 통해 형성과 변형과정으로서 설치 예술의 매체성을 논하였다. 여기서 직접경 험과 지각현상으로서 ‘현존함’과 대상화된 ‘매개물’로서 설치 예술의 의미 맥락을 재구축하였다. 이 어 ‘설치’를 존재 ‘행태’와 ‘상태’로 보고, 방법론적 차원에서 이의 양상을 분석하였다. 더 나아가 뱅 크시의 예를 통해, ‘현재성’을 중심으로 개념화된 예술에서 도외시되던 ‘현실’이 ‘가상’을 통해 의식 화되고 있는 상황을 포착해 분석하였다. 예술대상에 대한 거리 의식을 무너뜨리는 역할을 하였던 설 치는 ‘위치성’(locationality)의 의미 재건을 통해 현실 의식을 복구하고 있다. 이러한 배경에서 설치 예술은 장소에 얽매이지 않는 존재의 실천이자 환경이며, 제도화된 사이트의 상황적 현시물이자 위 23)theatre는 그리스어 테아트론 ‘théātron’에서 기원하며, 보는 곳, ‘seeing place’을 의미한다. 156.

(13) 상도로서, 복수적 역할과 정체성을 구축하고 있다. 무엇보다 작품이 물리적으로 위치하게 되는 사이트는 지각 체계인 동시에 프로덕션 시스템으로서, ‘설치’의 행위 메커니즘을 통해 끊임없이 의미 쇄신되고 있다. 이 과정에서 관람자의 위상은 좀 더 주 도적인 위치로 격상되고 있으며, 예술의 외연은 지속적으로 확장 중이다. 자율성을 포기한 대신 일상 으로 들어온 예술은 매체기술의 발전과 함께 소비시장의 논리를 따라, 가상 콘텐츠로 거듭나며 현장 정신을 지켜내는 역설을 보여준다. 이는 일상에 흡수된 예술의 존재 딜레마에 응답하며, ‘볼거리’가 되는 동시에 ‘보는 곳’으로 스스로의 위치를 변경해내며 관중을 관여시키고 있다. 이러한 다면성은 스크린 매체가 일상을 잠식할수록 부각되고 있다. 스크린은 기록-수용-전송이 동시적으로 일어나는 표면으로서, 여기서 이미지는 하나로 통합된 시각적 로고로 인지되며 차이보다는 동질성을 부각시킨 다.24) 반면 우발적 해프닝을 넘어 마킹(marking), 프레이밍, 브랜딩, 프로그래밍, 로케이셔닝에 이 르기까지, 설치의 지표성과 행동성은 실존과 공존의 전략으로 거듭나고 있다. 이는 존재함, 즉 ‘being’의 실시간 행적이자 궤적이고, 기록이자 표상이며, 살아있음의 입증으로서, 예술의 입지를 공공연히 일상의 터 안에서 개척하고 있다. 문자 그대로 ‘공공의 터’로 자리 잡고 있는 설치 예술은 도시에서 임시 테마마크, 난민촌에서 네트워크 시스템에 이르기까지, 현실과 이상 사이 를 오가며 가상으로 확장함으로써, 표면 아래의 현실을 드러내고 있다. 이제 예술은 삶을 재현해내는 기능을 벗어나 삶(life) 그 자체를 구성하고 있다. 예술가의 창조물에서 심미적 대상으로 학습되며, 취득자산 가치로 환원되던 예술이 자기 창출의 매체로서 상정되고 있는 것이다. 이러한 배경에서 설 치는 만들고, 보여주며, 관계를 보존할 뿐만 아니라, 현실 자각적 포지셔닝을 통해 일상과의 끊임없 는 관계 쇄신을 촉구하고 있다. 참고문헌 Bergson, Henri(저) Paul, Nancy(역), Memory and Matter, Digireads.com, 2010 Bishop, Claire, Artificial Hells: Participatory Art and the Politics of Spectatorship, Verso, 2012 Causey, Andrew, Sculpture Since 1945, Oxford University Press, 1998 Doherty, Clair(편), Situation, MIT Press, 2005 Jameson, Fredric Postmodernism, or, The Cultural Logic of Late Capitalism, Duke University Press, 1992 Harrison & Wood(편), Art in Theory, 1900-2000, Blackwell publishing, 2003 Jenkins, Henry, Convergence Culture: Where Old and New Media Collide, NYU Press; Revised edition, 2008 Kaprow, Allan(저) Kelly Jeff(편), Essays on the Blurring of Art and Life, University of California Press, 1st Edition, 2003 Klingmann, Anna, Brandscapes: Architecture in the Experience Economy, MIT Press, 2010 Krauss, Rosalind E, Under Blue Cup, MIT Press, 2011 Reiss, Julie H. From Margin to Center, MIT Press, 2001 Weber, Samuel, Mass Mediaruas: Form, Technics, Mediauras, Standford University Press, 1996 http://www.damienhirst.com http://www.danielburen.com/map?type=exhibits_current http://www.dismaland.co.uk/ http://banksy.co.uk/. 24)Weber, Samuel, Mass Mediaruas: Form, Technics, Mediauras, Standford University Press, 1996, p.110 기초조형학연구 17권 2호 (통권 74호). 15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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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치

그림  상 트윈타워 &lt;9&gt; :  (Twin  미국 뉴욕 테러 Towers), , ,  10 주년  기념일 중 스티브  잡스 프랑스 칼레: , ,  시 시리아  난민  텐트(Calais) ,  촌,  2015                  하 레미제라블:  (Les  Misé rables)  뮤지컬  로고 ,  영국 프랑스  대사관,  ,  2015,  작가  웹  공지  사진

참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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