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루 살로메의 대상선택(對象選擇)에 관한 분석적 논평(分析的 論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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KISEP Original Article 精 神 分 析 :第 15 卷 第 2 號 2 0 0 4

J Korean Psychoanalytic Society Vol.15, No. 2, Page 180~190, 2 0 0 4

루 살로메의 대상선택(對象選擇)에 관한 분석적 논평(分析的 論評)

李 炳 郁

*

A Psychoanalytic Comment on the Object Choice of Lou Andreas-Salome

Byung-Wook Lee, M.D.*

머 리 말

루 안드레아스-살로메(Lou Andreas-Salome 1861~

1937)는 제정 러시아 치하에서 매우 명망 높은 장군의 막 내딸로 태어나 탁월한 지성과 문학적 소양을 겸비한 여성으 로, 한 시대를 풍미하며 뭇 남성들을 울리다가 나치 독일의 괴팅겐에서 생을 마친 화제의 인물이다. 그녀는 동시대 사람 들로부터 성녀와 마녀라는 전혀 상반된 평가를 받았는데 니 체, 릴케, 바그너, 하우프트만, 톨스토이, 마르틴 부버, 프로 이트 등과 교분을 지녔으며 20편의 소설 및 100여 편에 달 하는 평론을 남겼다. 또한 정신분석에도 관심을 지녀 프로 이트를 열렬히 지지하였으며 이 때문에 그녀는 나치독일에 서 요주의 인물이 되기도 했다. 루 살로메의 존재는 지금까 지도 마치 전설속의 주인공처럼 신비와 수수께끼로 가득 찬 인물로 다가온다. 그녀를 찬미하는 사람들은 다소 과장된 어 법으로 그녀가 수많은 남성들의 영혼을 구제한 것처럼 묘사 하기도 한다. 그러나 그녀의 삶을 분석적 시각에서 면밀히 탐색해보면 루 살로메라는 존재는 성녀도 아니고 마녀도 아 닌 단지 매우 뛰어난 지성과 미모를 지녔던 보기 드문 여성 의 한사람으로서 그녀 나름대로는 물리치기 어려운 신경증 적 갈등에 사로잡혀 살았음을 알 수 있다. 또한 그녀의 놀랍 고도 비범한 지성은 파격적이면서 반항적인 면모를 겸비하 였기에 당시의 획일적인 교양적 태도로 일관한 다른 상류층 여성들 가운데 그녀의 존재가 단연 돋보였을 것으로 보인다.

정신분석의 초기 역사 한가운데 돌연 뛰어든 루 살로메의 존 재는 실로 위험한 폭탄을 안고 있는 모습이었다. 그러나 빅 터 타우스크 한사람의 자살로 사태는 진정되었다. 그 후 그 녀는 남편의 곁으로 돌아갔으며 무모한 남성편력의 여정을

끝내고 조용히 여생을 보내며 문필생활에만 전념하는 모습 을 보였다. 루 살로메의 삶을 분석적 시각에서 조명하는 작 업은 그녀가 보여준 공적인 모습과는 또 다른 상충된 측면 을 드러낼 수도 있겠지만 오늘날의 관점에서 새롭게 해석해 볼 수 있다는 이점 또한 물리치기 어려운 유혹임에 틀림없다.

루 살로메의 삶과 죽음

루 살로메는 제정 러시아의 성 페테르스부르크에서 백계 러시아 귀족가문의 5남 1녀 중 막내로 태어났다. 그녀의 아 버지 살로메 장군은 인간적인 품위와 교양을 지녔던 사람으 로 가정에서뿐 아니라 사회적으로도 존경을 한 몸에 받았던 인물이었다. 그는 특별히 외동딸인 루 살로메를 극진히 사랑 했지만 자신의 아내를 자극하지 않기 위해 세심한 신경을 쓰 기도 했다. 루의 이름은 어머니 루이즈에서 따온 애칭이었 다. 루의 어린 시절은 제정말기 귀족 가문의 외동딸답게 인 생의 고달픔과 고통이 무엇인지 전혀 모르고 자란 시기였다.

마치 공주처럼 대우받으며 귀하게 자란 그녀는 비천한 하 층민들의 밑바닥 생활이 어떠한지 알 도리가 없었다. 그러한 점이 그녀의 빛나는 지성에도 불구하고 루 살로메의 가장 취약한 부분이기도 했다. 적어도 세상을 폭넓게 이해한다는 측면에서 그녀의 삶은 매우 제한적일 수밖에 없었던 것이다.

루의 정신적 방황은 아버지가 병석에 누우면서 더욱 심화 되었다. 그 무렵 17세였던 그녀는 당시 귀족사회 여성들로 부터 선망의 대상이었던 잘생기고 지적인 목사 헨드릭 길로 트와 스캔들을 일으켜 어머니를 격분케 만들었다. 그는 루 의 간청에 의해 그녀와 정기적으로 만나면서 그녀에게 신 학과 철학, 문학 등 폭넓은 지식을 전수했던 인물이었다. 그 러나 막상 유부남이었던 길로트가 이혼을 해서라도 루와 결 혼할 것을 제의하자 그녀는 실망감을 감추지 못하고 그에 게서 도피할 방법을 궁리했다. 그리고 스위스로 유학을 떠나 취리히 대학에 입학했다(Peters 1974).

*翰林大學校 醫科大學 精神科學敎室

Department of Psychiatry, Hallym University College of Medicine, Seoul, Korea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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꽃다운 나이 21세에 루 살로메는 어머니와 이태리 여행

중에 젊은 철학가 파울 레와 니체를 그곳에서 만났다. 그들 은 거의 동시에 루의 눈부신 미모와 지적인 매력에 정신없 이 빠져들었다. 그녀가 파울 레와 동거생활에 들어가자 니체 는 절망감에 빠졌지만 그러나 얼마가지 않아 파울 레는 그 녀에게 버림을 받고 비관하여 절벽에서 투신자살하고 말았 다. 루는 1887년에 독일 괴팅겐대학의 프리드리히 안드레아 스 교수와 결혼하지만 그것은 통상적인 부부관계가 아니라 우정관계를 전제로 한 결혼이었다. 다시 말해서 성생활을 배 제하고 사적인 행동의 자유가 보장된 계약결혼이었던 셈이 다. 자유분방한 사생활을 즐기면서 그녀는 36세에 릴케를 동반하고 러시아여행을 시도하지만 그의 암울한 분위기를 감당하기 어려워 결국 그와도 헤어지고 말았다. 그 후 그녀 는 1911년 바이마르에서 개최된 국제정신분석학회에서 프 로이트를 만났으며 그 이듬해 그의 문하에서 정신분석을 공 부하던 도중에 프로이트의 제자였던 빅터 타우스크와 열애 에 빠졌으나 그녀가 그의 곁을 떠나자 타우스크 역시 비관 자살하고 말았다. 죽음을 몰고 다니는 마녀의 이미지는 그렇 게 해서 생긴 것이다. 그것은 누구를 탓할 수도 없는 일이지 만 그러나 루 살로메의 정신역동을 이해한다면 미리 예견할 수 있는 일이었을 수도 있다.

루 살로메는 통상적인 결혼생활을 거부한 여성이었다. 물 론 성생활도 거부하였으며 아이를 낳고 기른 적도 없다. 그 녀는 어머니 역할을 맡아본 적이 없다. 마치 어머니라는 존 재는 이 세상에 있지도 않거니와 필요치도 않다는 듯이 그 녀는 모성적 기능을 부정했다. 반면에 그녀는 성적 매력으 로 숱한 남성들을 울렸다. 그리고 남성들이 자신에게 성적인 요구를 해오게 되면 가차 없이 거절하고 좌절시켜 버렸다.

루 살로메는 많은 남성들에게 지적인 어머니요 스승 노릇을 했다고 전해지지만 그것은 매우 피상적인 관찰에서 비롯된 오 해인 듯 하다. 그녀의 사전에 어머니란 단어는 존재하지 않 기 때문이다. 상징적 의미에서 그녀는 스스로 거세한 여성인 동시에 모든 남성들을 거세시키고자 애쓴 사람이었다. 그러 나 그녀가 어머니 역할을 스스로 가장했을 수는 있다. 자신 의 오빠들을 거느리듯이 많은 아들들을 거느린 어머니처럼 행세하는 것은 한시적 관계일 경우에 한하여 그다지 어려운 일도 아닐 것이다. 그러나 그 관계가 영속적이라면 그녀로 서는 도저히 감당하기 어려운 끔찍스런 고문처럼 받아들이 기 쉬웠을 것이다. 루 살로메는 한 남성과 고정된 틀 속에 서 깊고 의미 있는 관계를 지속시켜 나갈 수 없다는 심리적 조건하에 있었기 때문이다. 그러나 사회적인 관점에서 본다 면 오늘날의 페미니스트들이 주장하는 여성해방운동의 차원 에서 루 살로메의 존재는 동시대의 로자 룩셈부르크, 엠마

골드만, 버지니아 울프 등과 같이 선구자적인 위치에 놓일만 하다.

비록 Martin(1991)의 주장처럼 루 살로메 역시 다른 여 성들과 마찬가지로 결국에는 자신의 현실과 타협한 것에 불 과하다는 평가도 있기는 하지만 그녀가 처했던 시대적 제약 을 고려한다면 그렇게 과소평가할 수만도 없다고 본다. 귀족 가문의 딸이면서도 그녀의 대학진학에 대해서 가족들도 처 음에는 맹렬히 반대했을 정도였던 시대였기 때문이다.

보수적인 괴팅겐의 주민들도 당연히 살로메라는 존재를 별 로 달가워하지 않았다. 그녀의 자유분방한 행보와 처신은 전 통적 가치관에 도전하는 것이었으며 독일사회에서 존경받는 교수의 부인으로서 상식적으로 요구되는 자질과는 거리가 멀었기 때문이다. 루의 남편 안드레아스는 1930년에 사망 했다. 그로부터 7년 후 루도 조용히 그의 뒤를 따랐다. 그녀 가 생존했을 당시에는 살로메에 대한 온갖 악의적인 소문 이 떠돌기도 했다. 인간의 심리를 꿰뚫어보는 이상한 내용 의 글을 쓴다거나 마법을 행한다는 소문도 돌았다. 유대인의 학문인 정신분석에 몰두한다거나 유대인 작가들의 저서를 소 장하고 탐독하는 루의 모습에 신경을 곤두세운 것은 오히려 나치독일의 게쉬타포였다. 그러나 그녀는 유대인이 아니었 으며 사회적으로 존경받는 교수의 아내라는 신분상의 특권 때문에 안전할 수 있었다. 그리고 나치는 이미 늙고 힘없는 그녀를 건드리지 않고 내버려 두기로 했다. 다만 그녀가 죽 은 후에는 게쉬타포가 괴팅겐의 집을 수색하여 그녀가 남긴 모든 문헌과 서적 등을 압수해갔다. 그녀는 76세를 일기로 자신의 괴팅겐 저택에서 요독증으로 조용히 사망했다.

살로메와 니체

루 살로메에게 있어서 니체(Nitcze 1844~1900)와의 만

남은 거의 운명적인 것이었다고 흔히들 말한다. 그러나 그

러한 표현은 두 사람의 만남에 보다 극적인 효과를 주기

위한 문학적 수사의 일부로 받아들인다 해도 심리적인 측

면에서 본다면 어느 정도 수긍이 갈 수 있는 여지가 있는

표현이라 할 수도 있다. 왜냐하면 두 사람 모두 근친상간적

욕구에서 자유롭지 못한 사람들이었기 때문이다. 루의 아버

지에 대한 무의식적 집착, 그리고 니체의 누이동생에 대한

무의식적 집착이 그들을 이어주는 보이지 않는 끈이 될 수

있기 때문이다. 그러나 그들의 관계는 처음부터 어긋날 수

밖에 없었다. 루는 니체를 이성으로 대한 것이 아니라 지적

인 동료로 인식했던 것이다. 그녀는 많은 오빠들 틈에서 말

괄량이처럼 자랐기 때문에 남성들 세계에 매우 익숙해 있었

으며 남성들 사이에 혼자 끼어있는 경우에도 전혀 어색해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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는 법이 없었다. 자유분방한 그녀의 태도는 많은 남성들 속 에서도 전혀 거리낌이 없었기 때문에 루의 존재는 단연 돋 보일 수밖에 없었다. 니체는 그러한 모습의 루를 처음 본 순 간 불같은 열정에 사로잡혔다. 그러나 기존의 기독교적 가 치관과 숨 막힐 정도의 고루한 전통에 얽매여 살기를 거부 했던 반항적 야심에 가득 찬 그녀에게 지성과 야성을 겸비 한 것으로 비쳐진 니체의 존재는 일종의 신적인 구원자로 다가온 것일 뿐이었다. 어린 소녀시절부터 신의 문제는 그녀 에게 가장 핵심적인 화두였다. 그런데 니체는 거침없이“신 은 죽었다” 고 선언한 인물이 아닌가. 전통적 가치관을 뒤집 어엎는다는 점에서 두 사람은 의기가 투합했다. 더군다나 루 는 길로트 목사와의 스캔들로 매우 난처한 입장에 놓여 있 었다.

스위스로 도피유학을 떠난 그녀는 젊은 철학자 파울 레와 니체를 만나 두 사람 모두를 동시에 매료시켰다. 그러나 엄 밀히 말하자면 그들이 처음으로 대면한 장소는 이태리 로 마에 있는 그녀의 어머니 친구 집에서였으며 파울 레가 니 체보다 먼저 그녀를 보고 반해버렸다. 레는 친구 니체에게 그녀에 대한 황홀한 첫인상을 전했던 것인데 나중에 니체도 루를 본 순간 사랑에 빠져버렸던 것이다. 그러나 처음에는 제각기 루를 짝사랑하고 있다는 사실을 친구 사이에서도 서 로 눈치채지 못했던 것이다. 두 사람이 동시에 자신을 좋아 하고 있다는 사실을 알면서도 루는 그 사실을 솔직히 공개 하지 않으면서 오히려 내심으로는 그러한 상황을 즐기고 있 었던 것으로 보인다. 1882년 니체는 단둘이 있는 기회를 이 용하여 그녀에게 청혼하였지만 일언지하에 거절당하고 말았 다. 니체는 비로소 그녀와 레의 사이가 보통 사이가 아니라 는 사실을 눈치 채게 되었다. 이들 세 사람이 함께 알프스 산행에서 찍은 기념사진에서 보듯이 니체는 자신이 마치 두 연인의 들러리 역할로 이용당한 것 같은 불쾌감을 억누르 지 못하고 있었다(Peters 1974). 이러한 삼각관계를 통하 여 자신의 우월한 위치를 확인하고자 시도하는 심리에 대 하여 Greene(2003)은 자신을 중심으로 니체와 파울 레를 경합시킨 루 살로메의 은밀한 전략을 예로 들었다. 그에게 있어 루 살로메는 지적인 무기를 동원한 유혹자에 해당된다.

그는 유혹자에게 삶은 게임이고 유희의 장소일 뿐이라고 하 였다. 유혹의 그물로 포획할 먹이는 사방에 널려있기 때문에 유혹자를 가로막을 방도는 현실적으로 없다는 것이다.

루의 제안으로 이들 세 사람은 기묘한 동거생활을 시작 하지만 그러나 루는 독일인 니체의 사랑을 거부하고 그 대 신 유대인 파울 레를 선택하여 그와 동거에 들어갔으며 이 때문에 니체는 정신적인 고통에 몸부림쳤다. 파울 레와 니 체는 제각기 질투심에 눈이 멀어 정신을 못차릴 정도에 이

르렀지만, 결국 파울 레 역시 그녀가 안드레아스 교수와 결 혼함으로써 버림을 받게 되자 절벽에서 뛰어내려 자살하고 말았다. 이처럼 기묘한 삼각관계는 결코 우연의 결과가 아니 다. 원인 제공자는 분명 루 살로메임에 틀림없다. 히스테리 여성의 심리적 역동을 이해한다면 그러한 삼각관계의 연출 은 수시로 벌어져왔음을 이내 알 수 있기 때문이다. 나중에 루는 유대인 분석가 타우스크를 자살로 내몰았다. 그녀는 분 명 유대인 킬러였다. 루 살로메에게 버림받은 독일인 니체 와 릴케는 그러한 시련을 오히려 불같은 창조적 작업으로 승 화시킨 반면에 파울 레와 타우스크 등의 두 유대인 지식인 은 자살로 생을 마감했다. 어쩌면 칼 융은 이러한 모습들을 지켜보면서 유대인 남성들의 심리적 특성은 남성답지 못하 고 매우 심약하고 비겁하기까지 하다고 생각했는지 모른다.

살로메가 니체를 끌어들인 것은 일종의 방패막이 역할 때 문이었는지도 모른다. 파울 레가 원할지도 모르는 성적 요구 에 대한 하나의 견제 세력으로서 제 3 자의 개입을 시도한 것일 수도 있다. 적어도 니체를 유혹하기 위해 미리 계산된 도발은 아닌 듯하다. 그러나 니체 역시 루 살로메를 사랑하 게 되었으며 그와 레 사이에는 루를 사이에 두고 미묘한 경 쟁관계에 놓이게 되었다. 그리고 루는 두 사람에게 잔뜩 사 랑싸움만 붙여놓고는 자신은 대학교수와 결혼함으로써 멀리 달아나고 말았다. 졸지에‘닭 쫓던 개’ 가 된 니체와 레는 엄 청난 충격에 심리적 균형감각을 완전히 상실하고 말았다. 특 히 레는 더욱 심각한 지경에 이르러 결국 절벽에서 뛰어내 려 스스로 목숨을 끊었으며 니체 역시 거의 발광 직전까지 갈 정도였다. 그러나 니체는 자살까지 고려할 정도로 심각한 우울증과 실연의 아픔에서 놀라운 순발력을 발휘하며 극복 해 내었다. 그는 미친 듯이 글을 쓰며 자신의 정신적 고통 에서 벗어나려 했으며 그 결과 놀라울 정도로 단기간에 완 성시킨 걸작 [짜라투스트라는 이렇게 말했다]를 세상에 내놓 았던 것이다. 그 책에서 한 노파가 짜라투스트라에게 던진 충고 한마디는 매우 의미심장하다.“그대는 여자에게 가려고 하는가? 그렇다면 채찍을 잊지 말게나.”앞서 언급한 세 사람 이 알프스 산행에서 함께 찍은 그 유명한 사진에서 루 살로 메는 작은 손수레 앞에 앉은 자세로 한손에 채찍을 들고 있 는 모습을 보여준다(Peters 1974). 루에게 거절당한 니체 의 분노가 어느 정도인지 짐작케 해주는 대목이 아닐 수 없 다. 그에게 루가 창조적인 영감을 불러일으켰다는 세평들은 이러한 갈등적 배경을 토대로 나온 결과였지 그녀가 사상적 으로 직접적인 영향을 주었다는 증거는 보이지 않는다. 그 녀는 니체의 무모하고도 돌출적인 행동을 통하여 그의 정 신상태가 이미 병들어 있음을 미리 간파했는지도 모른다.

Roge ́(1999)는 루 살로메가 니체와의 교류를 통하여 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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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인 정서적 불안정과 심각한 우울증 상태에 대해 이미 눈

치를 채고 있었으며 그의 저술내용과 정신상태의 관련성을 여러 경로를 통하여 언급하였음을 지적하였다. 물론 그녀의 진술은 당연히 니체의 가족들로 하여금 격렬한 분노를 야기 시켰다.

니체의 사랑은 불발로 끝났지만 그들의 관계가 실패로 끝 날 수밖에 없었던 숨은 이유 중의 하나는 니체의 누이동생 엘리자베드 때문이기도 했다. 니체는 그 자신의 최후 고백이 라 할 수 있는 [나의 누이와 나]에서 누이동생 엘리자베드와 의 근친상간적 관계에 대하여 자세한 내막을 밝히고 있다 (Nietzsche 1951). 그는 루 살로메와의 관계에 대하여 질 투심에 가득 찬 누이동생이 얼마나 자신을 비난하고 저항했 는지 솔직하게 털어놓았다. 실제로 엘리자베드는 살로메를 견제하기 위해 갖은 노력을 다 기울였다. 엘리자베드로서는 자신의 훌륭한 오빠가 천박하고 제멋대로인 러시아 여성의 유혹에 넘어가 정신을 잃고 있는 모습이 매우 안쓰러웠을 것이다. 그러나 그것은 표면적인 이유일 뿐이고 오빠에 대한 근친상간적 욕구에 의한 강한 질투심이 그녀를 자극했을 것 으로 보인다. 또한 니체 역시 살로메와 누이동생 둘 중에 누 구를 선택할 것인가에 대해 고민했을 것이다. 그뿐 아니라 엘리자베드의 배후에는 어머니라는 존재가 버티고 있었다. 그 들 모녀는 니체의 독립을 원하지 않았다. 그들은 니체가 영 원히 자신들에게 의존해 있기를 바랬던 것이다(Miller 1991).

어쨌든 니체는 그 후 정신적 착란상태에 빠진 것이 사실이다.

그리고 결국 그러한 광기에서 회복되지 못하고 생을 마쳤다.

루 살로메는 1894년에 니체에 관한 매우 도발적인 저서에 서 그의 철학과 광기가 결코 무관치 않음을 이미 언급한 바 있지만(Andreas-Salome 2001), 그의 누이동생 엘리자베 드는 이에 대해 즉각적인 반발을 보이고 살로메의 논평은 일고의 가치도 없는 것으로 단지 그녀의 복수심에 가득 찬 상상력에서 비롯된 음해일 뿐이라는 반응을 보였다. 그러나 복수라면 누구에 대한 복수라는 의미인가. 한때나마 오빠 니체를 자신에게서 빼앗으려 했던 루 살로메였기 때문인가.

니체의 광기가 매독 때문이었다 하더라도 그는 분명 루 살 로메와 누이동생 사이에서 감당하기 힘든 정신적 갈등으로 고통 받고 있었음에 틀림없다.

살로메와 릴케

라이너 마리아 릴케(Rainer Maria Rilke 1875~1926)는 거칠고 남성적인 니체와는 달리 매우 섬세하고 여성적인 취 향의 내성적 성격의 소유자였다. 그는 타고난 시인으로서 항 상 불안과 우수에 가득 찬 모습으로 여성들의 동정심과 모

성애를 자극하는 면이 있었던 사람이다. 그의 부모는 릴케 가 9세 때 이미 이혼하였으며 그 후로는 줄곧 어머니 밑에 서 성장했다. 여성들로 하여금 보호본능을 일으키게 하는 그 의 성격적 특성은 루 살로메와의 관계에서도 여실히 드러 난다. 용감하고 도전적인 루에 이끌려 릴케는 매우 의존적 인 태도를 드러내 보였다. 루 살로메는 릴케에게 있어서 일 종의 정신적 지주였으며 스승이기도 했다. 그녀는 매우 유 약한 기질의 이 남성을 상대로 자기 마음껏 주도권을 행사 했다. 릴케는 1897년 뮌헨에서 처음 살로메를 만난 이후 그 녀에게서 깊은 영향을 받았으며 1899년과 1900년 두 번에 걸쳐 그들이 함께 떠난 러시아여행은 일종의 지적인 밀월 여행인 동시에 그로 하여금 시인으로서 거듭나게 하는 계기 가 되었다. 여행에서 돌아온 이후 릴케는 루에게서 버림받 고 그 대신 여류조각가 베스토프를 만나 결혼하게 되지만 그 결혼은 결국 실패로 돌아갔다. 혹자는 릴케의 시에 종교 적 심오함과 경건성을 심어준 장본인이 바로 루 살로메였 다고 주장하기도 한다. 그러나 어떤 근거에서 나온 주장인 지 이해하기 어려운 부분이다. 살로메가 경건한 신앙심을 지 닌 여성이었다는 뜻이라면 그것은 잘못된 주장이다. 그녀는 아버지가 사망한 이후에는 종교의 세계를 이미 떠난 여성이 었다. 성직자를 유혹하고 굴복시켰던 그녀가, 그리고 남편 을 둔 여성이 외간남자와 함께 제멋대로 장기간 해외여행을 떠났던 그녀가 동행했던 젊은 시인 릴케에게 깊은 종교적 영 감을 주었다는 주장은 너무도 작위적이다. 오히려 삶의 의 욕을 잃고 오랜 침체기에 빠져있던 젊은 시인에게 구원의 여인상으로 나타난 그녀의 존재가 매우 신선한 활력소 역할 을 함으로써 그로 하여금 심기일전하는 계기를 심어주었을 가능성이 높다. 또한 그들의 관계가 순수한 영적 교류의 차 원이었음을 주장하는 견해들도 많다(Moore 1994). 물론 성 적인 관계를 배제한 차원의 지적 교류를 의미하는 것이라 면 이성간의 순수한 우정을 말하는 것인데 그러한 관계에 영적이라는 과장된 표현을 동원할 필요까지는 없다고 본다.

뛰어난 업적을 남긴 예술가에 대한 존경의 뜻으로 본다면 이 해할 수 있지만 개인심리의 차원에서 본다면 그들은 너무 도 많은 인간적 약점을 지녔던 사람들이었기에 지적인 교류 자체를 영적인 차원으로까지 승격시켜 신비화시킨다는 것은 그들의 인간적인 측면을 이해하는데 오히려 걸림돌이 될 것 같다. 그들 관계에 대한 감상주의적 접근은 일반인들의 흥 미와 호기심 그리고 환상을 더욱 촉진시킬 수는 있겠지만 그들의 실상을 더욱 모호하게 만들어 버리기 쉽다. 릴케는 뜨거운 열정을 지닌 시인(詩人)이라기보다는 어둡고 조용한 구도자(求道者)에 가까운 인물이었다.

Michaud(2000)는 릴케의 독특한 나르시시즘적 삼위일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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의 개념에 대해 지적하면서 그는 루와 자신의 관계를 쌍둥 이를 키우는 엄마에 비유하기 좋아했음을 상기시켰다. 그러 한 릴케의 환상은 그의 시와 산문 속에 자주 나타난 것으로 루에게도 영향을 주었던 것으로 보인다. 그리고 무엇보다도 그러한 삼위일체적 관계가 루 살로메의 삶에서 여러 차례 반복되어 일어났다는 점에 특히 주목했다. 루와 니체, 파울 레의 삼각관계, 쌍둥이 환상을 지닌 릴케와 루의 관계, 그리 고 프로이트라는 아버지를 중심으로 맺어진 안나 프로이트 와 루의 관계 등이 단적인 예라는 것이다. 실제로 프로이트 는 자신의 딸과 루에게 편지를 보낼 때, 스스로‘파파’ 라는 서명을 즐겨 사용했다(Freud 1972). 결국 루 살로메는 상 징적 연인관계, 모자관계 등의 경험을 통해서 실망과 좌절을 겪었으나 상징적 부녀관계로 심리적 안정을 얻은 것으로 보 인다. 그녀에게 어머니 역할은 어울리지 않는다는 것이 릴 케의 경험을 통해 확인된 것이다. 더욱이 항상 자극적인 경 험과 지적인 모험을 즐기는 루에게 있어서 두 번에 걸친 러 시아여행은 너무도 단조롭고 무미건조한 여정일 뿐이었다.

그리고 저자의 생각으로는 그녀의 러시아여행은 상징적인 아 들 릴케를 동반하고 그리운 아버지를 찾아 나선 심리적 여 정이기도 한 것으로 보인다. 그러나 아버지는 더 이상 존재 하지 않았으며 아버지가 없는 마당에 아들의 존재는 무의미 해 보였을 것이다. 더욱이 릴케가 그녀에게 가할 수 있는 자 극은 아무 것도 없었다. 단지 무한대의 모성적인 영양공급 만을 요하는 이 시인에게 루 살로메로서는 더 이상의 자양 분을 공급해줄 자원이 없었던 것이다. 그녀에게 어머니의 역 할은 어색하기만 했던 것이다. 그리고 실제로 그녀는 어머 니 노릇을 한번도 해본 적이 없었다. 그녀에게는 오로지 아 버지만이 존재했기 때문이다. 그녀에게 아들은 불필요한 존 재일 뿐이었다. 루와 릴케는 그렇게 해서 헤어진 것이다.

살로메와 프로이트

살로메와 프로이트(Freud)는 서로 성장 배경은 다르지만 거의 비슷한 시기를 살다 간 인물들이다. 루 살로메는 1912 년 빈을 방문하여 프로이트의 문하생이 되었다. 그녀의 나 이 갓 오십을 넘긴 시점이었다. 온갖 스캔들로 얼룩진 청춘 기를 보내며 산전수전 다 겪고 난 후의 살로메로서는 인생 의 황혼기를 맞이할 무렵에 이르러서야 비로소 자신의 내면 을 되돌아 볼 수 있는 정신분석의 세계와 마주쳤던 것이다.

그러나 살로메의 출현은 정신분석에 새로운 불씨를 남기고 말았다. 그녀의 마성이 여전히 빛을 발한 것이다. 프로이트 조차도 그녀의 마성에 이끌렸지만 그는 끝까지 냉정을 잃지 않았다. Garber(1997)에 의하면 프로이트는 루 살로메와

절친했던 인물들의 한결같은 공통점이 유혹에 약하다는 점 이었으며, 또한 루는 그러한 유혹에 손쉽게 무너지는 남성들 의 연약함에 대해 경멸과 혐오감을 표시하는 등 이율배반적 인 모습을 보인다는 사실을 이미 간파하고 있었다는 것이 다. 따라서 매우 유혹적인 동시에 남성적인 특성을 함께 지 녔던 루 살로메를 뮤즈의 여신으로 받아들인 니체나 릴케와 는 달리 프로이트는 그녀를 통하여 성서에 나오는 살로메의 이미지를 읽었다는 것이다. 같은 인물에 대한 인상이 그토 록 달랐다는 점은 그만큼 프로이트는 임상적인 경험이 쌓여 있었기 때문이다. 실제로 수많은 히스테리 여성들에서 그녀 와 유사한 정신역동과 행동유형을 발견하기란 그리 드문 일 이 아니다. 프로이트는 오랜 임상경험을 통하여 이미 수많은 살로메들을 분석하고 치료했던 것이다. 그러나 신뢰하는 제 자 칼 아브라함의 추천서는 프로이트의 마음을 바꿔 놓았 다. 프로이트는 루에게 그녀의 오빠들에 대한 질문을 던졌는 데 그녀는 이 세상 전체가 오빠들로 가득 차있다고 생각했 다. 그러나 진실로 그녀가 사랑했던 인물은 아버지뿐이었다.

어머니는 너무 차갑고 냉정한 여성으로 기억되었으며 그녀 의 아버지에 대한 숭배와 사랑은 누구에게도 밝힐 수 없는 그녀만의 비밀이었다. 따라서 1879년에 맞이한 아버지의 죽 음은 그녀에게 엄청난 충격과 좌절을 남겨주었던 것이다 (Stephan 1992).

살로메에 있어서 니체와 릴케가 강한 듯 하면서도 어린아 이같이 미숙한 독일남성의 양면성을 대표하는 인물들이었다 면 비천한 유대인 출신의 프로이트는 어떠한 모욕과 곤경에 도 흔들리지 않는 초연한 모습으로 전투를 진두지휘하는 정 신세계의 장군과도 같은 인상으로 다가왔다. 마치 그녀 자신 의 아버지처럼 프로이트는 자상하고 침착하며 자신의 말을 강요하기보다 상대의 말에 귀를 기울여주는 의연함을 보여 주었다. 야성적이지만 거칠기만 한 니체와 두려움에 겁먹기 쉬운 릴케의 심약함에 실망한 그녀는 이미 두 사람에게서 아버지다운 위엄과 자상함을 발견하지 못하고 관계를 청산 한 후였다. 그녀는 자신과 거의 동년배인 프로이트에게서 이 미 이 세상에 존재하지는 않지만 영원한 사랑과 존경의 대 상이었던 아버지와 비슷한 이미지를 보았다. 그리고 다섯 살 연상인 프로이트에게서 자신에게 항상 다정하게 대해주 었던 오빠들의 이미지가 아버지상과 한데 겹쳐지면서 상징 적인 부녀관계 그리고 오누이관계 비슷한 감정적 체험을 겪 었을 것이다. 그러나 문제는 엉뚱한 곳에서 터지고 말았다.

프로이트의 문하생이던 그의 제자 빅터 타우스크가 루의 매 력에 이성을 잃고 그녀에게 깊이 빠져버린 것이다.

프로이트는 루 살로메와 타우스크의 비극적인 관계에 대

해서는 공개적인 언급을 회피하였지만 루에 대한 짤막한 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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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문과 타우스크에 대한 회상을 통하여 단지 공식적이고도

의례적인 차원에서 살짝 언급만 하고 넘어갔을 뿐이다. Freud (1937)는 루 살로메에 대하여 그녀가 정신분석의 발전에 일 부 공헌한 점에 대하여 높이 평가하면서도 그녀의 성격문 제는 여전히 불분명한 상태로 남는다고 말끝을 흐렸다. 그 러면서도 그는 말하기를, 그녀를 가까이서 접촉했던 사람들 은 알 수 있듯이 루 살로메가 모든 여성들의 약점뿐 아니라 모든 인간적 약점에 대해서도 매우 이질감을 느꼈으며 그 녀 자신의 삶의 과정을 통해서 그러한 약점들을 정복했던 여성이었다고 평했다. 그리고 그녀가 1912년 프로이트의 문하생으로 들어오면서 자신의 딸 안나 프로이트에게 털어 놓기를 그녀가 젊은 시절부터 정신분석을 미리 알지 못했던 사실에 대해 후회스럽게 느낀다고 말한 사실을 전해들은 적 이 있음을 밝히고 있다. 루 살로메가 정신분석을 알게 된 것 은 그녀의 나이가 이미 오십을 넘긴 후였기 때문이다.

장래가 촉망되던 프로이트의 제자 빅터 타우스크는 루 살 로메에게 깊이 빠져들었다가 그녀에게서 버림받은 후 자신 의 결혼을 일주일 앞둔 시점에서 성기를 거세하고 자살해 버렸다. 타우스크 자살사건은 스승인 프로이트에게도 큰 충 격을 안겨준 사건이었다. 한 재능 있는 제자를 어이없게 잃 고 말았다는 그의 자괴감이 타우스크를 위한 애도의 글에 배어있다. 그 애도문에서 Freud(1919)는 온갖 역경을 딛 고 일어선 이 제자의 재능을 아쉬워하고 그가 이미 장성한 두 아들의 헌신적인 아버지였으며 재혼을 눈앞에 두고 감당 할 수 없는 현실적 곤경(?) 때문에 생을 마감하고 말았음을 아쉬워하면서도 끝내 루 살로메와의 관계를 시사할만한 언 급은 일체 하지 않았다. 프로이트는 타우스크의 남다른 철 학적 재능에 많은 기대를 걸었던 것으로 알려져 왔다. 글의 마지막 문장에서 프로이트는 앞으로 할일이 많은 이 남성의 죽음을 애도하는 가운데 너무도 일찍 그를 빼앗긴 사실에 아 쉬움을 금치 못하고 있다. 그러나 빼앗겼다는 표현은 완곡 한 번역일 뿐이며 정확한 번역은 강탈당했다는 표현이 더 욱 적절할 것 같다. 당시 프로이트의 심경은 아까운 제자를 잃었다는 슬픔보다는 자신이 아끼던 제자를 정신적 파멸로 이끌고 유유히 사라진 루 살로메에 대한 분노의 감정을 억 지로 숨기고 있었는지도 모른다. 미모의 한 백인여성에게 농 락당한 유대인 제자를 그는 어이없이 강탈당한 셈이었기 때 문이다. 그러나 실제로는 Roazen(1969)이 밝힌 것처럼 프 로이트와 타우스크 사이에는 상당한 긴장관계가 감돌고 있 었다는 지적도 있다. 타우스크는 프로이트를 열렬히 추종했 지만 그는 지나치리만치 강박적으로 프로이트가 선택한 연 구 주제를 똑같이 반복해서 연구하는 모습을 보였는데 프로 이트 입장에서는 그러한 타우스크의 태도가 몹시 신경에 거

슬렸다는 것이다. 그들 사이의 미묘한 긴장감에 대해서는 루 살로메도 정확히 인식하고 있었던 것으로 보인다.

타우스크사건은 프로이트뿐만 아니라 정신분석학계 전체 에도 큰 충격을 안겨주었다. 한 여성으로 인해서 정신분석 이라는 학문 자체가 일격을 당한 것이다. 그것은 여성분석 가 헤르미네 후크 헬무트가 자신의 조카에게 살해당했던 사 건만큼이나 충격적인 사건이었다. 그리고 그 사건 이후 정 신분석학계에서는 타우스크에 대해 일체 입을 다물었다. 마 치 1980년에 철학자 루이 알튀세르가 자신의 아내를 살해 한 사건 이후 프랑스 지식인들이 그에 관해 굳게 입을 다 물었듯이 말이다. 공교롭게도 프로이트는 자신이 총애하던 제자 헬레네 도이치에게 타우스크의 분석을 맡겼으며 후크 헬무트를 살해한 조카 루돌프 후크의 분석까지 그녀에게 위 임했다. 그러나 그녀의 남편이 너무 위험하다고 만류하여 루 돌프 후크의 분석은 성사되지 않았다. 그토록 위험 부담이 있는 임무를 서슴없이 맡긴 프로이트의 판단은 지금까지도 여전히 잘 납득이 가지 않는 부분으로 남는다. 또한 타우스 크가 죽은 이후에도 프로이트는 계속해서 루와 서신 교환 을 나누며 우호적인 관계를 지속시켜나간 점도 다소 의외라 고 할 수 있다. 분명 루 살로메에 대한 프로이트의 태도는 매우 이례적인 것이었음에 틀림없다. 따라서 동일한 주제인 에로스 개념의 형이상학적인 확장을 시도한 융이나 타우스 크, 라이히 등에 대해서는 가차 없이 따가운 비판을 가했던 프로이트가 그들과 비슷한 시도를 했던 루 살로메에게만은 유독 그러한 비판을 가하지 않은 점에 대해 Fukushima (1996)가 참으로 기묘한 노릇이라고 의문을 제기한 것은 지극히 당연하다. 그러나 프로이트에 대한 당시의 적대적인 분위기로 봐서는 단 한 사람의 독일인 지지자도 아쉬웠던 그 에게 사회적으로 상당한 지명도가 있던 그녀의 지지는 천군 만마라도 얻은 기분이었음을 감안한다면 전혀 의외라고 할 수도 없을지 모른다. 게다가 아들러와 융을 잃은 난처한 입 장에 놓인 프로이트를 지지해주면서 그녀가 융에 대해서 지 적인 야망과 잔인성을 소유한 인물로 그를 대신해서 공격하 기도 했던 존재라는 점에서 더욱 그러했을 것이다(Bair 2003).

실제로 철학적 배경이 탄탄했던 그녀의 존재는 프로이트의

자문 역할을 톡톡히 해내었다. 일례로 그로덱의 이드 개념

을 어떻게 자신의 무의식 개념에 도입할 것인가에 대해 고

민했던 프로이트는 루에게 자문을 구하기도 했던 것이다(Gay

1998). 뿐만 아니라 나르시시즘에 대한 문제에 있어서도

그녀는 프로이트에게 자신의 독자적인 개념을 소개하기도

했다. 그러나 프로이트는 그녀의 견해를 전폭적으로 수용하

지는 않았다. 그에게 무엇보다 절실했던 것은 자신을 지지

해줄 지원군이었으며 고립된 섬에 갇혀있는 듯한 자신의 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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루 살로메의 대상선택(對象選擇)에 관한 분석적 논평(分析的 論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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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를 강화시켜줄 수 있는 비유대계 원군이 더욱 아쉬웠을 것이다.

다른 한편으로는 분석가 전체의 명예를 실추시킨 타우스 크의 심약하고 건강치 못한 정신상태에 대하여 프로이트는 내심으로 몹시 불쾌한 감정을 감추고 있었을지도 모른다. 그 러한 심경은 타우스크의 죽음에 대하여 별다른 반응을 보이 지 않았던 그의 태도뿐 아니라 루 살로메에게 보낸 서한에 서도“자신은 그를 잃은 사실에 대해 별로 섭섭할 것도 없 다.” 라고 쓴 내용을 통해서도 확인할 수 있다(Ferris 1999).

실제로 당시의 분위기는 프로이트에 있어서 매우 곤혹스런 상황이기도 했다. 그를 따르던 많은 제자들이 내심으로는 스 승에 대해 반항심을 품고 있었으며 그중 일부는 노골적으 로 그에게 반발하고 분석학계를 떠났다. 아들러, 융, 페렌치, 랑크 등이 스승과의 견해 차이로 그와 멀어진 것이다. 루 살 로메는 그러한 분위기를 일컬어 프로이트는 온갖 부친살해 욕구로 가득 찬 분위기 속에서 홀로 고립무원의 상태에 놓 여있었다고 술회했다. 그러나 딸은 아버지를 죽일 이유가 없 었기 때문에 그는 안심하고 여자 제자들을 대할 수 있었다 는 것이다(Stephan 1992). 안나 프로이트와 헬레네 도이 치는 적어도 그렇게 보였을 것이다. 그리고 루 살로메 역시 그런 인식의 선상에서 지속적인 관계를 유지해 나갈 수 있 었던 것으로 볼 수 있다. 프로이트에게 중요한 것은 아버지 를 죽이려들지 않는 보다 온순하고 말 잘 듣는 자식들이었 는지도 모른다. 그 때문에 루 살로메의 존재는 지금까지도 정신분석의 어머니로 또는 좋은 엄마(good mother)로서의 이미지를 보존하고 있는지도 모른다. 그러나 다른 한편으로 는 정신분석이 루의 아기(Lou’ s baby)가 되었는지도 모른 다(Appignanesi와 Forrester 1992). 왜냐하면 그녀는 스 스로 분석을 받아본 적이 한 번도 없으면서 괴팅겐에 돌아 가서는 줄곧 환자들에 대한 분석을 시행했기 때문이다. 그리 고 그녀는 정신분석에 대해 계속해서 자문 역할을 했으며 충 고를 잊지 않았다. 자식이 엄마를 분석할 수는 없지만 엄마 는 자식에게 충고할 수는 있다. 루 살로메는 정신분석학계에 서도 특권을 행사했던 매우 특수한 신분이었다. 그녀는 특권 을 지니고 태어나 특권을 누리며 살다간 행운아였다고 할 수 있다.

살로메와 살로메

루 살로메의 인생 목표는 아버지를 되찾는 것이었다. 지적 (知的)으로 무장된 그녀의 다소곳한 태도와 성에 대한 무관 심, 그리고 상대 남성을 정면으로 응시하는 모습은 오히려 매 우 도발적이고도 유혹적인 효과를 배가시켰다. 마치 불과 얼

음을 함께 겸비한 듯한 그녀의 특성은 당시의 지식인들을 매료시키기에 족했다. 반면에 성서에 나오는 살로메의 존재 는 지성과는 관련 없는 단지 요부에 가까운 이미지를 보여 준다. 그녀는 의붓아버지인 동시에 친삼촌이기도 했던 헤롯 왕 앞에서 유혹적인 일곱 베일의 춤을 추어 환심을 사고 감 옥에 갇힌 세례 요한의 목을 자르도록 왕에게 요구하였다.

물론 기록에는 살로메의 어머니가 뒤에서 그녀를 사주한 것 으로 되어있다. 헤롯왕이 자신의 형수와 결혼한 것에 대해 세례 요한이 공개적으로 비난했기 때문이다. 결국 요한의 잘 린 목은 쟁반에 올려져 살로메에게 바쳐졌다. 참수는 남근 을 자르는 거세의 상징이기 때문에 예로부터 참수형은 인 간의 잠재적인 거세공포를 극도로 자극하는 효과가 있었던 것이다(Fenichel 1945). 그러나 살로메의 진정한 욕망은 상 징적인 아버지에게 향해진 것이었다. 요한은 단지 살로메의 근 친상간적 욕망의 대리적 희생물에 지나지 않은 것으로 볼 수도 있다. 그런 점에서 살로메는 진정으로 위험한 여인(femme fatale)이었다. 죽음을 부르는 그녀의 요염한 춤과 유혹은 실 로 도발적인 근친상간과 치명적인 환상을 자극하기에 충분 하다. Freud(1922)는[메두사의 머리]에서 거세공포를 야 기하는 끔찍스런 여성의 형상이 주는 심리적 효과에 대하여 언급한 바 있다. 그는 뒤엉킨 뱀의 형상을 한 메두사의 머 리가 음모로 가득 찬 어머니의 성기를 목격함으로써 강렬 한 거세공포에 대한 환상을 경험하는 아동기의 심리적 충격 을 자극한다고 보았다. 그러나 살로메의 정체는 분명치 않으 며 성서에도 정확한 기술이 나와 있지 않을 뿐 아니라 오 늘날 전해지고 있는 그녀의 이미지도 오스카 와일드의 단막 희곡과 그에 기초한 리하르트 쉬트라우스의 오페라에 의해 더욱 왜곡되었을 가능성이 짙다. Girard(1982)도 실제의 살 로메는 어린 소녀였을 것으로 추정하였으며 단지 세례 요한 에게 앙심을 품은 어머니의 사주에 의해 시킨 대로 한 것 뿐이라고 주장하기도 하였다. 그는 오히려 집단적 욕망의 은 폐에 살로메가 이용당한 것에 지나지 않는다고 보았다.

치명적인 여성에 대한 두려움과 선망은 매우 이율배반적

인 현상이긴 하지만 이 세상에는 적지 않은 남성들이 그러

한 여성과의 관계에서 어쩌면 죽음과 파멸이 다가올 지도

모른다는 사실을 미리 예감하면서도 그러한 위험을 기꺼이

감수하는 이유가 무엇인지 궁금해진다. 이러한 심리적 모순

에 대한 논의는 프로이트와 루 살로메간의 나르시시즘에 대

한 견해 차이에서 그 단서를 찾아볼 수도 있을 것 같다. 루

에게 있어서 여성의 나르시시즘은 독특한 자기충족적 경향

을 띄고 있기 때문에 대상선택에 있어서의 사회적 제약을

보상시켜주는 그러한 보호기능을 부여한다는 것이다. 따라

서 여성은 그녀 자신의 나르시시즘을 보존하지만 남성은 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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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신의 나르시시즘을 상실하고 항상 그것에 대한 향수에 젖

어있다는 것이다. 프로이트는 루의 이러한 입장을 받아들이 는데 주저하지 않았다. 그 역시 나르시시즘적 여성이 남성의 잃어버린 나르시시즘을 되찾고 대상상실의 세계를 보완해주 는 기능을 강조하기에 이르렀다. 따라서 치명적인 여성에 대 한 남성의 환상은 사랑에 있어서의 자기파괴적 요소의 위 험을 드러내는 것이기도 하다. 이러한 환상은 남성을 매우 수동적인 동시에 여성적인 위치로 몰고 가는데 그 이유는 대 상을 만족시키고 또한 그 대상의 상실을 미리 예방하기 위 한 목적으로 스스로 희생적인 위치에 자신을 고정시키기 때 문이다. Zizek(1999)은 포스트모던시대를 맞이한 현대의 여 성들은 모호한 신비감에 휩싸인 중세 미인의 고전적 이미지 를 벗어 내던지고 노골적으로 자신들의 공격성을 드러내 보 임으로써 남성들을 죽음으로까지 내모는데 결코 주저하지 않 음을 지적하였다. 이제 현대의 여성은 남성을 마음대로 죽 일 수도 있으며, 반대로 그들을 구원하고 재생시킬 수도 있 는 전지전능한 힘을 얻게 되었다는 것이다. 따라서 오늘날에 이르러 남성들로부터 관심을 이끄는 여성상은 적극적인 동 시에 도발적인 성적 매력이 넘치는 팜므 파탈(femme fatale) 로서 오랜 전통적인 가치관에 입각한 착하고 온순한 이미지 는 이미 그 매력을 잃었다고 보는 것이다. 독일의 여성심리 학자 Ehrhardt(2000)도“착한 여자는 죽어서 하늘나라로 가지만 나쁜 여자는 어디든지 간다.” 고 하면서 현대사회가 요구하는 여성은 어디까지나 나쁜 여성임을 강변한다. 이러 한 변화는 다시 말해서 남근을 소유한 어머니(phallic mother) 로 자신들의 정체성을 마음대로 바꿀 수 있게 되었음을 의 미하는 것이다. 폭력을 유도하고 자극하는, 성적으로 결코 만 족을 모르는 탐욕스런 여성에 대한 남성들의 피학적이고도 편집증적인 환상은 결국 이들 내면에 자리 잡은 자기파괴 적인 욕구의 투사(projection)를 의미한다. 그런 점에서 요 한의 목을 자르게 했던 살로메나 숱한 지식인들을 자살과 파멸로 이끌었던 루 살로메는 단지 시대를 잘못 만난 위험하 고 치명적인 여성들이었던 것이다.

루 살로메 역시 숱한 남성들의 편력을 통하여 자신의 오 이디푸스적 환상과 소망을 대리충족 시키고자 하였지만 그 녀에게 돌아온 것은 번번이 환멸과 실망뿐이었다. 그녀에게 있어서 구원의 아버지상은 신에게서도 찾을 수 없었으며 지 상의 수많은 유명 인사들에게서도 결코 확인할 수 없었다.

그녀가 찾던 오아시스는 항상 헛된 신기루에 지나지 않았던 것이다. 그 오아시스는 그녀와 아버지가 서로 다정하게 손잡 고 노닐던 어릴 적 정원과 가로수 길과 같은 것이었다. 루 살로메의 비극은 바로 그 점에 있었다. 그녀가 교류하며 물 의를 빚었던 남성들은 모두 저명한 지식인이거나 상류계층

사람들이었다. 그것은 그녀 자신의 신분이 귀족이었기 때문 만은 아닐 것이다. 그녀의 마음속에서 적어도 아버지에 버 금가는 지성과 품위, 용기와 인자함을 겸비하려면 비천한 하 층민 출신들에서 그러한 뛰어난 소양들을 기대하기 어렵다 는 선입견 때문이었을 것이다. 그러나 그녀는 수많은 유명 인사들에게서 환멸만을 느꼈을 뿐이며 오히려 그녀 자신의 정신적 우월감을 재확인시켜주는 역할에 만족해야 했다. 다 만 유대인 출신의 대학자 프로이트에게서만은 예외적으로 그녀 자신의 자존심을 죽이고 배움의 길을 청해야 되는 입 장에 놓이게 되었다. 정신분석이라는 새로운 세계는 그녀에 게 과거에는 전혀 예상치 못한 충격으로 다가왔다. 그러나 그러한 지적인 충격도 예리한 감수성과 직관력을 지니고 있 던 그녀였기에 가능했을 것이다.

루가 보인 은밀한 유혹의 여정은 기혼남이었던 길로트 목 사에서부터 시작된다. 당시 성 페테르스부르크의 귀족사회 특히 여성들 사이에서 지적이고 잘생긴 길로트의 인기는 절 정에 달하고 있었다. 처음에 루는 개인적인 서한을 통해서 그와 접촉하였다. 그리고 그들의 만남은 표면적으로는 지적 인 교류의 형태를 띄우고는 있었지만 점차 연인의 관계로 발전했다. 그의 무릎 위에서 루는 수차례 의식을 잃고 쓰러 진 적도 있었다. 눈부시게 아름다운 처녀가 자신의 무릎에 얼굴을 기대고 앉아 신의 존재에 대해 이야기하는 모습을 한번 상상해보라. 유부남이면서 성직자였던 길로트의 마음 은 몹시 흔들리기 시작했다. 결국 그는 루에게 자신과 결혼 할 것을 요청하였고 당연히 루의 어머니는 격분하였다. 그러 나 루는 어머니의 반대 때문이 아니라 그녀 자신의 내적 갈 등에 의해 길로트의 요구를 거절했다. 그리고 그와 마주치 는 것을 피하기 위해 스위스로 도피유학을 떠나기로 결심 했다. 길로트 목사는 루에게 있어서는 신적인 존재였다. 그 러나 그것은 사춘기 소녀가 지닌 우상에 불과했다. 그녀의 진정한 신은 아버지였기 때문이다. 아버지를 잃은 루의 입 장에서 신의 죽음이란 상상도 할 수 없는 의문 부호였을 것 이다. 그 신의 대리자였던 길로트가 너무도 세속적인 요구 를 해오자 그녀는 자신의 환상과 기대가 무너지는 소리에 경악을 금치 못했던 것이다. 그리고 아버지의 죽음을 계기 로 그녀는 신의 곁을 떠났다. 루와 어머니는 서둘러 이태리 여행길에 올랐으며 그곳에서 또 다른 신경증적 만남과 헤어 짐을 반복해야만 되었다.

그녀의 이루어질 수 없는 사랑은 루 자신의 성적 거부감 과 남성에 대한 경쟁심 및 적대적 태도에 기초하는 것이다.

매우 역설적이고도 이율배반적인 태도이지만 그녀의 무의식

세계에서 성적인 결합이나 접촉은 근친상간적 의미를 지니

고 있기 때문에 내심으로는 두려움과 죄의식을 유발하는 것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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루 살로메의 대상선택(對象選擇)에 관한 분석적 논평(分析的 論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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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기도 하다. 따라서 그녀는 자신의 미모와 지성을 동원하여 남성을 유혹하지만 그 유혹에 넘어간 상대가 자신에게 깊은 관계를 요구하는 단계에 접어들면 자신도 모르게 회피하고 거부하는 태도로 돌변하게 되는 것이며 미련 없이 그를 배 신하고 또 다른 남성을 찾아 새로운 모험의 세계로 뛰어든 것이다. 자신의 유혹에 여지없이 굴복하고 마는 지식인 남 성들의 초라하고 추악한 모습에서 그녀는 승리감을 만끽하 는 동시에 지상의 모든 남성들이란 결국 성적인 욕구 앞에 서는 지성도 위신도 다 내던져버리는 도덕적으로 열등한 동 물적 존재일 뿐이라는 그녀 자신의 확신을 증명해주는 것 이었다. 물론 그녀는 자신의 회상기를 통하여 다소 분석적 인 시각에서 자신이 보여준 사랑과 우정관계를 재조명하고 자 시도하였지만 그러나 여전히 그녀가 아니었으면 니체와 릴케라는 존재는 절망의 나락에서 헤어나지 못했을 것이라 는 착각을 버리지 못하고 있었다(Andreas-Salome 1995).

프리드리히 교수와의 결혼은 일종의 도피처였다. 루는 소 위 결혼으로의 도피를 시도한 셈이다. 그들의 결혼이 성적 인 관계를 배제한다는 조건하에서 이루어졌다는 점을 고려 한다면 그러한 심증을 더욱 굳게 한다. 혹은 루 살로메는 성 적인 불감증이 있었는지도 모른다. 성에 대한 거부감이 강 한 히스테리 여성에게서 불감증은 매우 흔한 현상이기 때 문이다. 그러한 여성들은 무의식적으로 성적인 도발과 유혹 을 감행하지만 결정적인 순간에는 성을 거부하기 마련이다.

따라서 아이를 출산하고 양육하는 번거로움에서 벗어나 자 연스럽게 어머니의 역할을 떨쳐버리는 것이다. 루 살로메는 일생을 통하여 한 번도 자녀를 낳고 기르지 않았다. 어머니 역할에 대한 부정을 실현한 것이다. 단 한차례 우연히 임신 한 적이 있지만 유산을 시켰다는 기록도 있다. Livingstone (1985)은“루가 친구에게 자신이 사과나무에서 떨어졌기 때 문에 유산된 것이라 변명했지만 평소에도 여러 차례 모성 적 역할에서 벗어나는 길이 얼마나 유익한가에 대해 언급한 점을 들어 의도적으로 유산시킨 것이 아닌가?” 라고 의문을 표시했다. 그리고 Michaud(2000)는 그녀가 분명 인공유산 을 시킨 것으로 간주했다. 어찌됐건 루는 그토록 수많은 스 캔들을 일으켰음에도 불구하고 항상 자신의 순결을 지키며 살았던 점은 확실하다. 그녀는 오로지 아가페적인 사랑으로 일관했다는 점에서 이성간의 육체적인 성을 혐오하는 여성 들이나 동성애자들에게는 우상적 존재로 비쳐질 수도 있다.

그러나 루에게는 지적인 능력과 예술적 재능을 동시에 부여 받았기에 자신의 성적인 결함을 얼마든지 극복해 나갈 수 있 는 자신감과 긍지가 있었다고 본다.

그러나 루 살로메는 그것으로 만족할 수 없는 강력한 심 리적 동기에 사로잡혀 있었다. 그녀의 해결되지 못한 오이

디푸스적 갈등과 욕망은 지적인 사색만으로 극복되기에는 너 무도 강력한 것이었기 때문이다. 그러한 내면적 요구에 부 응할 수 있는 적절한 조역들이 다행히도 그녀 주변에는 얼 마든지 있었다. 그녀의 삶에서 세 가지 중요한 관계 형식을 가족관계, 연인관계, 동료관계로 요약한다면, 사춘기 이전의 가족관계에서 비롯된 미해결의 갈등적 요소가 사춘기 이후 의 성인기에 빚어진 다양한 연인관계에서 적나라하게 노출 된 것이며 그러한 우여곡절 끝에 인생의 황혼기에 접어들 어 비로소 적절한 동료관계를 통하여 지적인 차원으로의 승 화가 가능해졌다고 보는 것이다. 정신분석은 그러한 동료 관계의 형성에 도움이 되었으며 특히 프로이트와의 교류는 상징적으로 매우 안정적인 부녀관계의 의미를 부여함으로써 더 이상의 정서적 방황에서 벗어날 수 있는 여지를 준 것 으로 판단된다.

그녀가 한창 젊었던 전성기 시절에 길로트 목사, 니체, 파 울 레, 릴케, 타우스크, 안드레아스 교수 등은 모두가 루 살 로메의 유혹에 굴복한 인물들이었으며 그들 모두는 사회적으 로 존경받는 지식인 계급이었다. 살로메를 사이에 두고 그 들이 보인 질투와 반목은 지상에 존재하는 모든 남성들의 심리적 취약성과 실상을 여지없이 드러낸 장면이 아닐 수 없 다. 살로메가 연출하는 대립적 삼각관계는 그녀 자신의 해결 하지 못한 부모와의 관계를 재연하는 것이기도 했다. 실제 로 루는 그들과 직접적인 성관계는 갖지 않았다. 그녀는 자 신의 성적인 욕망의 좌절을 남성들에게 투사함으로써 그들 스스로가 자진해서 거세하도록 유도한 것이며 파울 레와 타 우스크는 자신들의 목숨을 끊음으로써 그녀의 묵시적 요구 에 따라준 셈이 된다. 실제로 타우스크는 자신의 성기를 스 스로 거세하고 자살했던 것이다. 루 살로메는 요즈음 유행하 는 속된 말로 공주병의 원조쯤 되는 여성이라고 할 수 있 다. 그러나 사회적으로 높은 신분에 있었던 여성이었기에 그 리고 당시로서는 보기 드물게도 지적으로 잘 무장된 매력적 인 여성이었기에 어떠한 제약에도 얽매이지 않고 자신의 소 신대로 자유분방하게 행동할 수 있었던 특권을 누렸던 것으 로 보인다. 그러한 특권은 아무에게나 주어지는 것이 아니란 점에서 그녀는 매우 희귀한 행운을 누렸지만 개인적으로는 미해결의 정신적 갈등을 오랜 기간 반복하며 살았다는 점에 서 결코 성공적인 삶을 영위했던 것으로 보이지는 않는다.

다만 인생의 황혼기에 접어든 나이에 비로소 접하게 된 프

로이트의 정신분석은 그녀 자신의 고백처럼 인생의 커다란

전환점이 되었으며 그녀의 삶에 고귀한 선물을 가져다 준 것

으로 받아들임으로써 그 후 남은 20 여년에 걸친 여생을 조

용히 사색과 문필생활로 마무리했던 것으로 보인다. 그녀가

남긴 명언 중에“문학은 꿈과 그 해석 사이에 있는 그 무엇

(10)

李 炳 郁

189

이다” 라는 말은 마치 그녀 자신을 가리킨 말처럼 들린다. 그

녀의 삶 자체가 한편의 꿈 이야기 같은 것이지만 꿈은 아 니었으며 또한 그것은 결코 해석된 적이 없으면서도 많은 사 람들에게 매력을 잃지 않았다는 점에서 더욱 그러하다.

맺 음 말

성서(聖書)에서 비롯된 살로메라는 이름은 매우 불길한 느 낌을 주는 복수의 상징이 되었다. 그리고 19세기말에서 20 세기 초에 이르는 시대적 격동기를 통하여 서구 지식인 사 회에 뛰어든 한 러시아 여성으로 인하여 적지 않은 수의 유 명 지식인들이 정서적 파탄에 몰리는 위기를 겪어야 했다.

그녀의 이름 역시 루 살로메였다. 실제로 당시 그녀의 이름 은 숱한 남성들의 파멸과 비극적 종말을 불러오는 불길한 상징이었다. 그녀의 이상적인 아버지 구스타프 살로메 장군 에 대한 오이디푸스적 욕망은 아버지를 대신할 수많은 조 역들을 끝없이 요구했으며, 그녀의 무의식적 소망을 충족시 키기 위한 희생양으로 선택되었던 니체, 릴케, 파울 레, 빅 터 타우스크, 칼 안드레아스 등의 지식인들은 그녀로 인한 정신적 고통에 몸부림쳐야 했다. 그들 중 파울 레와 타우스 크는 결국 자살로 생을 마쳤다. 남성을 거세하려는 그녀의 욕망은 자신의 무의식적 근친상간 욕구의 좌절에 기인한 것 으로 그러한 좌절은 남근선망과 맞물려 남성에 대한 보복, 달리 말해서 남근에 대한 공격으로 이어졌으며 남성들의 성 적인 접근을 냉정하게 거부함으로써 그들에게 오히려 강한 좌절감을 심어주는 것으로 통쾌한 복수를 가한 것이다. 그런 점에서 그녀는 진정한 페미니스트요 여성해방운동의 선구자 였으며, 가부장적 남성우월주의 세계에 치명타를 가한 가장 최초의 백인여성이었다고 할 수 있다. 그러나 자신이 처한 시대적 아픔을 외면하고 사회적 변혁을 위한 노력에 동참하 기를 거부한 채 오로지 개인적인 지적 유희로 일관한 점은 그녀가 지닌 한계였다.

분명한 사실은 루 살로메라는 존재가 문제를 해결하는 사 람이 아니라 항상 문제를 일으키는 사람이었다는 점이다. 다 만 그녀가 비천한 유대인들이 살던 게토지역에서나 다른 하 층민들 세계에서 그런 문제들을 일으켰다면 아무도 그녀를 기억하지 않았겠지만 루 살로메는 백계 러시아 귀족출신 장 군의 딸로서 니체, 릴케, 프로이트 등의 유명 인사들과 교 류함으로써 오래도록 기억되는 것이다. 물론 그녀의 비범한 지성은 누구나 인정한 바이지만 자신만의 독특한 사상으로 발전시킨 것은 유감스럽게도 찾아보기 힘들다. 그녀가 남긴 수많은 일화들은 낭만적 환상에 들떠있는 일반 대중들에게 는 선망의 대상으로 비쳐질 수 있다. 그리고 일반인들을 더

욱 고무시키고 안도하게 만드는 것은 위대한 철학자나 시인 들도 결국 정서적으로는 매우 취약할 수밖에 없다는 점을 새삼 확인토록 해준다는 사실에 있다. 그들도 별 수 없는 인 간이다. 그러나 일반인들의 이러한 기대와 똑같은 동기에 의 해서 루 살로메는 이미 오래 전에 그들도 별 수 없는 인간 에 불과함을 증명해냈던 것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들은 루 살로메보다 위대한 업적을 낳았다. 그리고 이들 모두가 우리에게 확인시켜주는 사실은 인간은 누구나 신경증적 경 향을 지니고 있다는 점이며 중요한 것은 그러한 개인적 취 약성을 어떻게 극복하고 승화시킬 것인가 하는 문제라 하 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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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BSTRACT

A Psychoanalytic Comment on the Object Choice of Lou Andreas-Salome

Byung-Wook Lee, M.D.

The name Salome has been a symbol of revenge-incarnate since John the Baptist was beheaded at Salome’s re- quest, as recorded in the Bible. The name of Lou Salome was also a symbol of misfortune. She was regarded as a Muse by some intellectuals including Nietzsche and Rilke, but by many others she was regarded a Medea or Medusa because she often drove people into a corner and to death. Paul Ree and Victor Tausk killed themselves just after Lou Salome rejected them. Although she had great intelligence and beauty, she was definitely not a woman who solved problems but rather created problems. Freud kept up communication with Lou in spite of the tragic Tausk scandal.

This paper examines her motivations for being provocative and seducing so many intellectuals. It is my view that she had an incestuous desire and wish to idealize her father as a generous general. Her unresolved oedipal conflicts and male competitiveness, counter-castrating actions were the motivating forces for her endless pilgrimages against many intellectual males. She could not tolerate sexual relationships and deep, enduring intimacy. She was a psycho- logically frigid woman. Many intellectuals including Nietzsche, Rilke, Paul Ree, Tausk, and Andreas were the main targets and scapegoats for fullfilment of her unconscious oedipal wishes. Her revengeful attack on the intelligent males and their helplessness and frustration resulting from her rejection led her to conclude that all men are humiliating animals and that their reason is useless. In this respect, she was the true feminist and the pioneer of women’s libe- ration because she aimed a blow at male chauvinism and was a real femme fatale, like Salome in the Bible. But she was indifferent to social absurdities and ignorant to the miserable conditions of some, which was a weak point in her life. The scandalous stories about Lou Salome confirm that all human beings have neurotic tendencies, but I believe that the most important thing is how we overcome and sublimate our own personal vulnerability.

KEY WORDS

:Lou Salome·Object choice·Nietzsche·Rilke·Freud·Tausk.

참조

관련 문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