왜곡된 상고사의 고찰
이문형(재미한국학교 워싱턴지역 이사장) 우리의 역사(특히 상고사)를 얘기하기가 쉽지 않다는 것을 압니다. 특히 상고사에 들어가면 우선 ‘주의’라든가 ‘사관 ’이라는 거대한 암벽에 먼저 부딛치게 됩니다.사대주의, 민족주의, 식민사관, 민족사관 등입니다. 옥석혼효(玉石混淆)라는 말이 있습니다.돌은 돌이고 옥은 옥인데 그것이 섞여 공존하고 있는 상태를 말합니다. 좋은 것과 나쁜 것이 공존할 수밖에 없는 세태 속에서 우리가 옥을 추구해야 한다면 옥만을 솎아 내 취하거나 돌을 가려내 고 옥 만을 남겨야 하겠지요. 그러기 위해서는 냉엄한 분별력이 우선해야 합니다.이제부터 우리 모두는 무슨 주의, 무슨 사관, 무슨 종교, 무슨 사상, 이런 것들의 굴레에서 벗어나 옥석을 가려내는 분별력 만으로 무장하고서 별로 특 별하지도, 또한 달변 자도 아닌 그저 평범한 이 강사의 강의 속에서 옥만을 골라내 주시기를 바랍니다.제게 있는 것 하나, 그것은 바른 역사문화 교육으로 우리 꿈나무들에게 올곧은 정체성을 심어주어야 한다는, 그것이 우리 선조들 의 넋과 민족의 혼을 일깨우며 종래에는 국가와 민족의 장래를 받쳐주는 버팀목이 될 것이라는 확신에 의한 열정, 그 하나만은 좀 남다른 데가 있다고 자부합니다. 본론에 들겠습니다.위 이러한 문제의 표면화는 1976 년 처음으로 국사교과서 정정 소송으로 시작되어 1981 년 대 한민국 국회국사청문회를 거치는 동안 세상의 화제가 되었고 1987 년 국사교과서 교정이라는 결과를 가져오게 되는 과정에서 국사교과서 파동이라는 말이 일반화 되었다고 보여집니다. 좀더 구체적으로 설명하자면 1976 년 안호상 박사, 임승국 선생, 박시인(서울대) 교수 등이 박창암 장군이 발행하는 <자유지> 등을 통해 기존의 국사학계를 식민주의 사관론 자라며, 특히 조선총독부의 조선사편수회의 우리의 역사 말살과 역사왜곡에 가담 했던 이병도, 신석호 등의 원로 사학자들을 친일 파로, 이들에 의해 형성된 국사학계의 학맥 도 같은 부류라고 맹공하면서 1978 년 안호상 박사(외 8 인 공동서명)가 국사의 고칠 점과 국사교과서 내용 시정에 관한 건의서를 대통령, 국무총리, 문교부장관 에게 제출 하였습니다. 그 내용을 간추려 보면 다음과 같습니다. 1. 고조선의 영역은 동북으로 바다까지, 북으로 흑룡강까지, 서남쪽은 북경까지이다. 2. 단군시대의 1200 년 역사를 삭제하였다. 3. 단군을 신화로 돌려 부정하고 있다. 4. 연나라 사람 위만을 고조선의 창건주로 삼았다. 5. 위만조선의 서울인 왕검성은 중국의 산해관 부근에 있었다. 6. 낙랑은 중국의 북경지방에 있었다. 7. 백제가 400 여 년 간 중국의 중남부를 지배하였다. 8. 신라통일 후 68 년 간의 영토는 길림에서 북경까지였다. 이러한 주장을 뒷받침하는 사료로서 중국의 <산해경>, <만주원류고> 등과 논문을 첨부 하여 비록 폄하는 되었으 나 제3 국의 사서 속의 조선에 대한 기록들을 제시하였습니다.이때 국사편찬위원으로 청문회에 참석한 분들은 20 명으로 당시 역사학계의 원로 및 중견 학자들이 총 망라되었으며 이분들은 원고인 안호상 박사를 비롯한 비 주류 학 자들을 재야사학자, 또는 과열 민족 주의 자들이라고 지칭하였으며, 또 이들은 위의 인물들을 비롯한 제도권 속의 학 자 내지 인물들을 사대주의자, 식민사학자 또는 친일파로 부르기를 주저하지 않았지요.당시 교육부 역사담당 편수관 으로서 여러 번 증언에 나섰던 <국사교과서 파동>의 저자 윤종영은 제도권사학자(식민사학자)에 우호적일 수밖에 없는 입장이었음에도 저서 중‘재야사학자들은 공격적 이면서도 이해하기 쉬운 대중성 있는 내용을 발표하여 국회의원들 로부터 호응과 지지를 얻어낸 데 비해 기존학계의 발표자들은 극히 수세적인 입장에서 학설을 설득력 있게 설명하지 못해 서 국회의원들로부터 공격적인 질의와 수모를 받았다’고 기술하고 있습니다. 우여곡절 끝에 1987 년 국사교과서가 개정되었 으며 이를 국사교과서 1 차 개정이라고 합니다. 왜냐하면 이로부터 꼭 10 년 후인 2007 년에 국사교과서가 2 차 교 정이 이루어지기 때문입니다.이제 개정내용에 근거한 ‘단군조선은 신화가 아니다’는 내용에 접근해 보기로 하겠습니 다. 1987 년 6 월 ‘국사교육심의회’가 확정 발표한 교과서 개편내용(개편 35 개 항목/ 수정 9 개 항목) 신설된 항목, 고대사 부분 **구석기시대를 전기, 중기, 후기로 세분, 새로운 발굴성과를 반영한다. ** 백제의 중국 요서지방 진출사실을 명시, 3 국인의 해외활동 모습을 부각시킨다. ** 3 국 및 가야인의 일본진출과 이들의 문화전파로 일본에 큰 영향을 끼쳤다는 것을 명기한다. ** 3 국통일의 역사적 의의를 주체적인 민족주의사관에 입각하여 서술하고, 특히 당군(唐軍) 축출을 위한 신라인의 투쟁을 높이 평가하며 ** 통일신라의 정치체제와 권력구조에서 나타나는 독자적인 특성을 부각시킨다.중-근세사 부분 ** 신라 말기와 고려 초기에 새로운 사회세력으로 호족들이 대두, 종래 고대적인 골품제가 해체되고 중세적인 사회 체제가 형성됐음을 설명한다…… 이하 생략 또한 국사교육 심의회는 아래의 조항을 손질했다. ** 고조선의 성립이 청동기문화 위에 전개된 우리나라 최초의 국가형성이었다는 사실을 보다 명확히 하며. ** 기자조선을 고조선의 정치변혁으로 설명한다는 것을 삭제하고 ** 위만 이전의 고조선정치사를 보강, 실존인물의 활동을 부가하고. ** 한사군을 서술하되 한국사의 주류가 아니었음을 명기하고…… 이하생략 *** 2007 년도의 고교 국사교과서 개정내용 중에서 ** “신석기 시대 말인 기원전 2000 년경에 중국의 요령(랴오닝), 러시아의 아무르 강과 연해주 지역에서 들어온 덧 띠새김무늬 토기문화가 앞선 빗살무늬 토기문화와 약 500 년간 공존하다가 점차 청동기시대로 넘어간다. 이 때가 기원전 2000 년경에서 기원전 1500 년경으로, 한반도 청동기 시대가 본 격화 된다. 고인돌도 이 무렵 나타나 한반도의 토착사회를 이루게 된다.” ** “삼국유사와 동국통감의 기록에 따르면 단군왕검이 고조선을 건국하였다(기원전 2333 년).” 이상과 같이 수많은 역경과 우여곡절을 거쳐 초.중.고등학교의 역사교과서가 개정 됐습니다.그럼에도 아직 이를 무 시하거나 인정하지 않는 특정인들에 의해서 개정된 역사교과서는 빛을 발하지 못한 채 왜곡된 역사가 그대로 답습되 고 있는 실정이니 우리의 역사는 아직 독립을 보지 못한 채 방황을 지속하고 있는 셈이지요. 화자는 단군조선 앞 신시(배달겨레: 기원전 3898~기원전 2333) 제 1 세 거발환(居發桓)환웅으로부터 제 18 세 거 불단(居弗檀) 환웅까지 1565 년의 역사도 공부 하였습니다 만 이를 받아들여야 한다고 주장하지는 않습니다,반면, 검증되고 인증하여 학설로 정립된 그것까지는 따라가 알아야 하고 가르쳐 끌어야 한다는 주장은 게을리 하지 않습니 다.앞서 갈 수는 없더라도 뒤 처져서는 안 되겠지요, 그것이 진실과 허위 사이에서의 선택 문제라면 더는 주저할 수 없겠지요 그런 맥락에서 ‘단군조선은 신화다’라는 말의 뿌리를 추적해 보기로 하겠습니다.우리의 상고사는 진시황의 분서갱유, 공자의 춘추필법, 사마 천의 사기 등을 통해서 단군 조선(동이족) 의 역사가 폄하, 왜곡되었고, 또 일본의 한국사 말 살 및 축소 정책에 의해서 말살과 축소와 왜곡이 자행 되었는데, 중국이 자국의 기록들을 불사르고 다시 쓰거나 왜곡 한 반면 일본은 우리를 식민 지배 하면서 조선 총독부 산하에 조선사 편수 위원회를 두어 20 여 만권의 우리 역사서 를 수거, 모두 불태우고 한국의 역사는 한사군 이래 중국의 식민지로 출발했으며 외세에 의해 끊임없이 지배당해 온 민족 이라고 강조 하면서 일본의 식민지화를 정당화 시키는 데 초점이 맞추어 졌다고 하겠습니다. 일제 3 대 총독 사이또의 지시 사항을 보면 “조선인이 자신들의 역사와 정통을 알지 못하게 하고, 조선의 민족혼과 민 족문화를 상실하도록 하는 한편, 조상과 선인들의 무위 무능과 악행을 들추어내 그것을 과장하여 조선인의 후손들에 게 가르쳐라, 그래서 그 부조(父祖들을 경시하고 멸시하는 감정을 일으키게 하여 하나의 기풍으로 만들고, 그리하면 조선의 청소년들이 자국의 모든 인물과 역사 유적에 관하여 부정적으로 되어 실망감에 빠지게 될 것이다. 그때에 일 본의 사적, 일본 인물, 일본 문화를 소개하면 그 동화가 지대할 것이다. 이것이 제국 일본인이 조선인을 반(半) 일본 인으로 만드는 방법이다.”라고 되어 있습니다. ‘자국의 역사는 거창하고 장황하게 이민족(특히 동이족)의 역사는 최 대한 축소하여 왜소하게 쓴다’는 춘추필법과 많이 닮아 있지요. 그들이 그들의 역사와 문화를 알지 못하도록 하고 그들의 조상을 경멸하도록 하면서 일본의 혼을 심어주어야 한다는 목적을 가지고 쓰여진 역사서입니다. 그 그 한국대사관을 바탕으로 쓰여진 역사서가 바로 우리가 배웠던 그것입니 다. 우리가 기억하고 있는 기원전 194 년에 위만이 기자조선으로 망명하여 결국 기자조선을 무너뜨리고 위만조선을 세웠는데 기원전 108 년에 한나라 무제의 침공을 받아 멸망하고 한무제는 한사군을 설치 하여 조선을 다스렸다는 그 지도를 한번 보시지요. 가짜 낙랑봉니를 만들어 묻고, 저 산해관 아래쪽 갈석산으로 달려가 낙랑비정비를 뱃길로 실어와 평남에 세워놓은 것이라든가, 만리장성의 동쪽 끝을 황해도 수안으로 비정하는 등 온갖 속임수를 동원하여 우리의 역사를 조작한 그 가짜 역사를 60 년 이상 배우고 있는 우리이며 중국은 얼씨구나 우리의 이 가짜 역사를 통째로 가져가 동북공정의 바 탕을 삼고 있습니다.
그런데 더 어처구니 없는 것은 믿을 수 없는 이 가짜 역사를 아직도 많은 사람들이 믿고 있다는 사실입니다. <후한 서>에도 ‘장잠현은 낙랑군에 속해 있는데 요동에 있다’ <사기> ‘하(夏)본기 태강지리지’에도 “낙랑군 수성현(遂城 縣)에는 갈석산(碣石山)이 있는데 만리장성이 시작되는 지점이다” 실체가 보이지 않는 기록을 믿지 않는 것은 차치하 고, 가보면 거기에 있는 움직일 수 없는 만리장성을 보고 들으면서도 갈석산에서 시작된 만리장성을 수천리나 떨어 진 황해도 수안까지로 그려놓은 기록을 믿고 있다는 것입니다. 불가사의 한 일이 아닙니까?심지어는 역사왜곡의 조 선인 시조랄 수 있는 이병도씨가 운명하기 직전에 최태영박사와 공저로 발간한 “한국상고사 입문”이 나오자 어떤 제 자는 [박수를 보내며 ‘역사 앞에서 조금은 사죄하게 된 셈]이라 며 반겼고, 다른 한편에서는[우리 스승께서는 최태영 의 꼬임에 넘어갔다], [우리 스승께서 연로하시어 노망이 들었다]며 그 책의 발간에 반발하며 스승을 욕되게 하기까 지 했다. 참회하는 마음으로 썼다는 그 책, <한국상고사 입문> 제1 장 고조선 편 제 1 절을 보면 [고조선을 창건한 최초의 제왕(제 1 대 단군) 이전, 즉 환웅까지의 신시시대의 긴 세월을 지나고서, 단군임금이 인민 의 추대를 받아 제위에 올라 조선이라는 강대한 국가를 창건함으로써 큰 나라(고조선) 의 제정(帝政: 檀君朝鮮의 君 主政)이 시작되었다…. 단군이 고조선을 세운 때부터는 강대한 광역(廣域) 국가인 조선의, 신화나 전설이 아닌 실존 인간인 단군왕검에 의한 단군왕조의 역사가 시작된 것이다 ….이하는 생략하고 그러면 왜 그토록 우리 강대한 실제의 역사를 스스로 왜소하다고 부르짖으며 훌륭한 선조들의 족적을 부정하면서 검 증에 검증을 거듭하여 겨우 점하나 찍었다고밖에 할 수 없는, 그저 시작에 불과한 그만큼 교정된 교과서의 내용마저 도 부정하며 ‘단군조선은 신화다’라고 만 외쳐대는지 그 속내를 살펴보 겠 습니다. 우선 김정권 역사학자의 <우리의 강역은 신화가 아니다>에서 발췌하 여 게재합니다. […유지(遺址)와 사료(史料)들이 무수히 발견, 발굴되고 있는데도 단군 을 신화거리로 몰아붙이면서 사대주의적 습성을 드러내고 심지어 우리 조국인 고조선의 강역을 한반도 내에만 있었으며 신라의 내물왕 이전까 지는 부족사회 수준이었다가 AD3 세기가 지나서야 겨우 국가로서의 모양새를 갖추기 시작하였다고 보며…. 그러한 우리나라의 저명하다는 논리 부재의 사학자들에게 그 이유를 물어보았 더니 다음과 같은 명답 들이 나왔다. (1) 스승님 또는 선배님들의 학설을 뒤집을 수 없고 (2) 또한 그분들이 역사적 상한선을 못박아버렸으니 그 이상의 추 정을 할 수도 없을 뿐만 아니라 손을 댈 수도 없었다. (3) 그리고 고조선에 대해서 틀린 것을 정답이라고 우기고 있다는 것을 모르는 사학자는 별로 없겠지만 그대로 넘어갈 수밖에 없 었다. 왜냐하면 신상문제에 불이익을 당하는 입장에서 서로서 로가 눈치를 보아야 하기 때문이다. (4) 사실은 모두(국내에서 박사학위 등을 수여 받은 자)가 그분들 에게서 배웠고 그분들에게 논문심사를 받아 학위를 수여 받았는데 지금 입장에서 반박하기란 매우 어렵다. 라는 것 등등입니다. 이래서 ‘일만 년 우리 역사를 밝힐 고서, 규원사화 발견’ 이라는 획기적인 발표가 나와도 이를 반 기기는커녕 55 년 동안이나 위서론에 시달리며 반신반의하게 만드는 게 우리의 실정입니다. 1945 년 말~1946 년 1 월 국립 중앙도서관이 서울의 한 책방에서 고 서 한 권을 발견, 우리 역사를 밝힐 중요한 책으로 판단하고 구입.(소장 자: 김수일 / 구입가: 100 원(현 100 만원 수준) 1946 년 5.25—국립 중앙도서관 귀증본으로 등록(제작연도: 1675 년 조선조 숙종 2 년 3 월 상순) 1972 년 11 월 3 일—문화재 위원 3 명 고서 재심의 심의위원: 이가원(李家源-1917 년 생)-성균관대학교(문학박사), 중화 학술원(철학박사), 한문학회 회장, 학술원 회원(한 국한문학) 손보기(孫寶基-1922 년 생) 서울대학교 사학과, 몽골 과학아카 데미 역사연구소(명예철학 박사), 미국 캘리포니아 버클리대(철학박사), 연세대학교 박물관장, 문화재 위원, 단국대학교 중앙박물관장, 국사편찬위원, 단 국대학교 석좌교수. 임창순(任昌淳-1914 년 생)—한국정신문화원연구원(명예 문학박사), 서지학회 회장, 문화재위원회위원장.
심의 결과—조선조 숙종 2 년(1675 년), 북애노인이 작성한 진본임을 재확인하고 위원이 직접 기명날인. 1989 년 11 월 13 일—이가원 위원 문화방송에 출연하여 규원사화 진본의 존재 밝힘. 1990 년 8 월 25 일 – 한뿌리(출판사) 고동영 대표 ‘영인본’ 출판. 이렇게 검증, 발표를 거듭했음에도 2000 년까지 위 서론에 휩쓸려 공 개되지 못합니다. 규원사화는 1675 년(숙종 2 년)에 북애노인이 한국 상고사를 기록한 책으로 1 세 단군 왕검 /2 세 단군 부루왕검 / 3 세 단군 가륵왕검…… 이렇게 47 세 단 군 고열가 왕검까 지 2096 년의 역 사를 편년으로 기 록 하고 있습니다. 또한 1911 년 삼성기와 단군세기, 북부여기 그리고 태백일사를 계영 수 선생이 하나로 묶은 환(한)단고기 도 위서라고 합니다. 여기에는 환(한)국시대와 환 (한)웅시대는 물론 단군 1 세 왕검에서 47 세 왕검까 지 2096 년 간의 단군왕검 역대기가 실려있지요.자 기들의 주장과 다른 어떤 사료나 유물이나 유적은 믿 으려 하지도 인정하려 들지도 않습니다. 64 년 만에 설치된 국립박물관에는 구석기실, 신석 기실, 청동기 고조선실, 고구려, 부여, 삼한, 백제,가 야, 신라실이 있어 유적과 유물을 볼 수 있으며 고조 선은 청동기에 이어 철기문화를 꽃피우며 중국 라오 닝(遼寧)지역과 한반도 서북지역을 주요무대로 중국 연, 진, 한 등과 대등하게 겨루었다. 특히 고조선은 중계무역문제로 일어난 한과의 전쟁 에서 승리하고 1 년여에 걸쳐 맞 설 정도로 강성한 국가였으나 내부에서 분열이 일어나 기원전 108 년 에 멸망하였다는 가록과 고조선 이 멸망할 무렵 각 지역에서는 부여, 고구려, 옥저, 동예, 삼한이 일 정한 세력을 이루고 있었다는 내 용을 확인할 수 있을 것임에도 애써 무시합니다. ‘단군조선은 신화가 아니다’그렇습니다. 우리 고조선 의 강역을 지도로 한 번 보십시오 한걸음 한걸음 우 리역사의 진면목을 발굴해 가고 있는 이 시간에도 개 인의 영달과 명예를 지키기 위해 왜곡된 역사만을 되 뇌이고 있는 자들에 의해 상황과 정보에 열악한 이곳 우리들은 끝없는 혼미 속으로 끌려 들어가고 있는 실 태입니다. 우리들 스스로 현명해지지 않으면 우리는 혼미한 상태에서 민족의 얼과 넋을 잃을 것이며 조상은 물론 나라마저도 잃게 될지도 모르는 일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