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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USTRIA 빈(Vienna)

문서에서 49687692 2017년 6월호 (페이지 71-78)

비포 선라이즈(1996)

감독: 리처드 링클레이터 출연: 에단 호크,

줄리 델피, 안드레아 에커트, 하노 포스클 등

기차에서 함께 내린 제시와 셀린이 처음으로 향한 촐암트슈테그 다리

상했고, ‘비포 선셋(Before Sunset)’, ‘비포 미드나잇 (Before Midnight)’으로 이어진 로맨스 연작의 첫 영 화이기도 하다. 이 영화는 100분이 넘는 상영시간 동 안 특별한 사건 없이 배경이 되는 빈의 곳곳에서 나누 는 두 남녀의 대화를 중심으로 스토리를 이끈다. 이러 한 연출 기법이 영화의 현실성을 높여 관객은 마치 그 둘과 함께 빈을 여행하고 있는 듯한 착각을 하게 한 다. 아름다운 남과 여, 그리고 고풍스러운 느낌이 가 득한 도시 곳곳을 비추는 장면들, 그리고 그들이 나누 는 깊이 있는 이야기를 중심으로 한 이러한 색다른 연 출 기법은 이 영화가 ‘빈 홍보영화’라는 별칭을 얻는 것을 당연하게 했다.

합스부르크 왕가와 함께 성장한 예술의 도시

빈은 오스트리아의 수도로 오스트리아의 북동쪽 도나 우 강변에 위치한다. 면적은 414.6km2로 우리나라의 세종시(464.9km2)와 비슷하고 인구는 약 182만 명 정 도이다. BC 500년, 이곳에 켈트족이 정착하며 도시가 형성되었고 기원전 15년, 로마 군대가 전초 기지를 건 설하면서 문명의 유입이 이루어졌다. 이후 1273년, 유

럽에서 가장 긴 역사와 전통을 지닌 가문인 합스부르 크 왕가의 시대가 시작되었고 약 640년 동안 그 세력 이 유지되면서 빈은 정치, 문화, 예술, 과학 및 음악의 중심지로 성장했다. 유럽 변방에 불과하던 빈은 국제 적인 도시로 발돋움하였으며, 사실상 신성 로마 제국 의 수도가 되었다. 도나우 강 주변을 따라 나란히 위 치한 프라하, 빈, 부다페스트가 어딘가 모르게 닮아 있는 이유는 중세 이래로 줄곧 합스부르크 왕가의 영 향권 아래에 있었기 때문일 것이다.

합스부르크 왕가는 빈이 오늘날 ‘예술의 고향, 예술 의 도시’로 자리매김할 수 있었던 가장 큰 원동력이었 다. 음악, 미술, 건축 등 다양한 예술 분야의 발전은 합 스부르크 왕가 및 귀족들의 역사와 그 맥락을 같이한 다. 전 세계의 많은 음악인들은 고전 음악의 정통성을 만나기 위해 빈으로 모여든다. 18세기 말부터 19세기 초 사이에 하이든, 모차르트, 베토벤, 브람스, 말러 등 의 위대한 음악가들에 의해 빈에서 완성된 현대 클래 식은 독일, 프랑스, 이탈리아의 여러 형식이 종합된 우 아한 선율과 화음을 특징으로 하고 있다. 이와 같은 클 래식 발전의 배후에는 왕가와 귀족들의 모범적인 노 블레스 오블리주(Noblesse Oblige)의 실천이 있었다.

합스부르크 왕가의 상징인 쇤부른 궁전

천부적 자질을 가진 음악가를 발굴하여 적극적으로 후 원하는 것이 그 주된 방식이었다. 또한, 빈의 대표적인 건축 및 도시공간의 건설 또한 합스부르크 왕가의 영 향력이 매우 크게 발휘되었다.

사회의 변화, 그리고 링슈트라세

‘비포 선라이즈’의 두 주인공이 약속된 하루 동안 빈 시내 이곳저곳을 누비며 대화를 나누던 배경 속에서 우리는 합스부르크 왕가의 이야기를 만날 수 있다. 빈 역에 내려 무작정 발길이 닫는 곳으로 향하던 셀린과 제시는 트램에 올라탄다. 두 주인공은 트램을 타고 달 리며 ‘진실게임’을 하기로 한다. 바로 몇 시간 전에 만 난 두 사람은 앞으로 몇 시간 후면 헤어질 것을 알기 에, 그 어떤 사이보다 솔직하게 서로의 질문에 대답할 수 있었다. 트램 창밖으로 보이는 빈 시내의 모습은 사랑에 빠지기에 충분할 정도로 아름답고, 그 풍광을 바라보며 둘은 지난 사랑에 대한 이야기를 나누며 서 로를 더 깊이 알아간다. 트램 안 좁은 공간에서 어느 덧 거리가 좁혀진 두 사람 뒤로 펼쳐지는 아름다운 가 로가 바로 링슈트라세(Ringstrasse)이다. 1200년 무 렵, 지금의 링슈트라세의 자리에 방어를 목적으로 성 곽이 건설되었고 이후 이곳은 중세 도시로서의 면모

를 갖추게 된다. 성곽을 따라 폭 200~500m에 이르 는 약 4km 길이의 원형 띠 형태로 완충 지대를 두었 던 것이다. 이러한 환상형 성곽은 1865년 황제 요제프 1세의 명령에 의해 해체되었다. 당시 이미 세계적인 대도시로 성장한 빈에서 성곽은 도시 내 유기적 흐름 에 방해가 될 뿐이었고, 1848년에 벌어진 시민혁명도 성곽 해체에 당위성을 더했다. 동시대의 파리와는 사 뭇 다르게 빈에서는 대타협이 이루어졌다. 황제와 귀 족, 부르주아와 노동자가 각기 대립된 관계를 형성했 지만 싸움이 아닌 성곽의 해체를 결과로 얻어낸 것이 다. 과거 슈테판 대성당을 중심으로 나무의 나이테처 럼 성장해온 유기체적 도시 구조는 그 형태적 특성으 로 인해 사회적 구분을 발생시켰다. 도시의 중심에는 왕궁과 귀족, 그 외곽으로는 돈 많은 부르주아, 그 바

레코드 가게 알트앤누에서 음악을 감상하는 제시와 셀린 링슈트라세를 달리는 트램

깥으로는 도시 노동자들이 거주했던 것이다. 19세기 후반, 부르주아들은 도시 외곽의 새롭고 쾌적한 지역 으로 빠져나갔고 도심은 점차 저가의 호텔과 상점들 로 채워졌다. 이에 빈 당국은 중세 도시의 탈피와 국 제도시로의 성장을 위해 성곽이 해체된 자리에 현대 적 번화가를 건설했고, 이것은 단순한 성곽의 해체를 뛰어 넘어 새로운 질서의 확립을 의미했다. 사회적으 로는 신, 황제, 귀족으로 이어지던 구조가 시민이라는 새로운 질서를 받아들이고 공간적으로는 기존의 원도 심과 새롭게 만들어진 도심이 접목되어 빈만의 특색 있는 질서로 확립된 것이다.

이러한 링슈트라세의 새로운 질서를 상징이라도 하듯, 셀린과 제시는 트램에서 내려 알트앤누(Alt &

Neu, 영어로 Old & New라는 의미)라는 레코드 가게 의 음악 감상실에 들어가 수줍고 설레는 눈빛을 나누

며 서로의 마음을 조금씩 알아간다. 둘은 오랜 시간이 축적된 링슈트라세를 걷거나 혹은 트램을 타고 느끼 며 서로에게 더욱 빠져간다.

빈의 상징, 그리고 사랑의 상징

어느새 해는 저물어가고 제시와 셀린은 어둑해져 가 는 하늘 위 대관람차(리젠라트) 안에서 대화를 이어 간다. 빈 시내와 아름다운 도나우 강의 전경이 한눈 에 내려다보이는 대관람차 안에서 서로의 마음을 확 인한 두 사람은 사랑의 첫 키스를 나눈다. 빈을 상징 하는 대표적인 장소 중 하나인 프라터 공원의 대관람 차에서, 사랑의 상징인 첫 키스를 나눈다는 의미 있는 장면이 연출된 것이다. 프라터 공원은 도나우 강변의 도시공원으로 합스부르크 왕가의 사냥터로 사용되다

제시와 셀린이 마음을 확인한 프라터 공원의 대관람차

가, 1766년 일반인에게 개방되면서 위락시설과 카페, 레스토랑 등이 들어서며 빈 시민들이 즐겨 찾는 도시 공원이 되었다. 첫 키스 이후 더욱 친밀해진 두 사람 은 반짝이는 불빛과 신나는 음악이 가득한 프라터 공 원을 누비며 각자의 가족과 자라온 환경에 대해 이야 기를 나눈다. 성장하며 느꼈던 불안함, 두려움 등의 부정적인 감정들, 남자와 여자, 그리고 결혼과 사랑에 대한 각자의 생각들을 나누며 공감한 두 사람은 서로 를 더 깊이 이해하게 된다.

짙은 어둠이 깔리기 시작한 빈의 안길, 마차의 말발 굽 소리가 가득한 분수광장과 거리를 걷고 노천카페 에 앉아 차를 마시며 그들은 대화를 계속한다. 밤거리 를 걷던 둘은 깊은 울림의 종소리에 성당 앞에서 발을 멈춘다. 교회 안에 들어선 두 사람은 휴먼 스케일을 벗어난 웅장한 공간 속에서 대화를 나눈다. “수많은 세대의 고통과 행복이 한 장소에 융합되어 있다니…

정말 멋진 것 같아”라는 셀린의 대사는 마치 오랜 기 간의 크고 작은 이야기들을 담고 있는 빈을 말하는 것 만 같다. 역사적 건축 혹은 도시공간 속에서 사람들 은 과거를 경험하고 현재와 과거를 통합한다. 이는 도 시에 생기와 활력을 부여하며 특유의 어떤 분위기, 즉 정체성을 확립시키기도 한다. 이러한 빈의 특색 있는 정체성이 영화 ‘비포 선라이즈’에서 보여지는 일상을 떠난 남녀의 설레는 하루를 극대화시키고 있는 것이 다. 이 장면에서 등장하는 건물을 많은 사람들이 슈테 판 성당으로 오해하고 있는데, 사실 이 건물은 마리아 암 게슈타데(Maria am Gestade) 성당으로 빈에 현존 하는 가장 오래된 교회 중 하나이며 고딕 건축양식의 전형을 보여주는 건축물이다.

성당에서 나온 두 남녀는 도나우 운하를 따라 산책 을 나선다. 인생에서의 갈등에 대한 생각을 나누다가 한 남자를 만난다. 돈을 받고 시를 지어준다는 거리

의 부랑시인에게 ‘밀크쉐이크’라는 단어를 던져준다.

기대하지 않았지만 그는 두 사람에게 근사한 시 한 편 을 읊어준다. 멋진 시를 선물 받은 둘은 조금 다른 반 응을 보인다. 있는 그대로를 받아들이는 셀린과 다르 게 제시는 한 번 의심하고 본다. 둘은 서로의 같은 모 습뿐만 아니라 서로 다른 모습도 발견하면서 더 깊은 관계를 발전시켜 나간다. 다름이 틀림이 아닌 것을 인 정하며 대화를 이어가는 부드러운 분위기가 인상적인 장면이다.

도나우 강의 야경

골목에 앉아 이야기를 나누는 두 주인공

빈을 침공한 오스만튀르크인들이 남기고 간 물품들 중, 커피콩 자루를 발견한 한 통역사로부터 시작된 빈

빈을 침공한 오스만튀르크인들이 남기고 간 물품들 중, 커피콩 자루를 발견한 한 통역사로부터 시작된 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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