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 3 절 대학입학전형제도 변천과정에 대한 평가 12)
3. 혼합제(국가고사 병행제)
혼합제 즉, 국가고사제 와 대학별 단독시험제 의 병행제는 1954년과 1963년, 1969-80년, 1994년 이후 현재에 이르고 있다.
첫 번째의 혼합제 대학입학 전형제도는 1954년에 시행되었으나, 그것은 참담한 실패작이었다. 1953년 이전까지의 대학별 단독시험제 가 일부 사립 대학에 의해 갖가지 입시 부정과 비리로 얼룩지고, 그 결과 대학 교육의 질 적 저하현상이 나타나자 입학전형의 개선이 시도되었다.
대학간의 협의를 통해 대학입학 국가연합고사 를 실시하고 그 합격자에 한하여 대학별 본고사에 응시토록 하려는 것이었다. 그러나 여학생과 제대 자에게 특혜를 줌으로써 입학전형의 평등원리가 무너졌고, 국가연합고사와 대학별 본고사를 치르게 됨으로써 수험생들에게 이중 부담을 준다는 지적
이 거세게 나타났다. 이에 따라 국가연합고사는 실시만 한 채 그 결과는 백 지화 시키고, 대학의 본고사 성적만으로 합격자를 사정케 한 것이다.
그러나 국가연합고사가 백지화되고 대학별 단독시험제 로 되돌아가면서, 더구나 고등학교 내신성적 에 의한 무시험 전형 이라는 제도가 생긴 배경 에는 결코 바람직하지 못한 이유가 내재되어 있는 것으로 알려지고 있다.
그것은 일부 권력층의 자녀들이 국가연합고사에서 탈락하여 대학 진학의 길이 막히자 제도의 개편을 주도했다는 점이다.
두 번째의 혼합제 대학전형제도는 1963년에 이루어졌다. 그러나 이 경우 도 시행착오의 본보기가 되고 말았다. 5・16후 혁명정부는 강력한 대학정 비 정책과 함께, 대학의 부정입학과 능력부족자의 진학을 막고 이를 통하여 대학교육의 질적 향상과 정상적인 운영을 유도코자 하였다. 이를 위해 대 학입학 자격 국가고사 를 실시하여 이를 자격시험 겸 선발고사 의 성격으 로 삼았던 것이다.
세 번째의 혼합제 입학전형제도는 1969년에 채택되어 1980년까지 비교 적 장기간 시행되었다. 이 시기에는 대학입학 예비고사 로서 대학진학 적격 자를 가려내고 입시의 공공성을 높이며, 대학입학 본고사 로서 대학의 학생 선발권을 보장해 주는 형식이 취해졌다.
그러나 대학입학 예비고사 는 이 시기 중에서도 여러 차례의 수정・보완 을 거쳤다. 우선 그 성격으로 보아 1969-73년까지는 자격고사 의 성격이었 으나 1974년 이후에는 전형자료 의 성격으로 전환되었다. 또한 합격정원의 범위도 초기에는 전국적 단일 기준에 의해 150%이었으나 후기로 가면서 계 열별, 시・도별 기준을 적용하여 200%까지 확대되는 등 단계적으로 완화되 었다.
이상 살펴본 바와 같이 혼합제 입시제도가 실시된 시기를 종합하여 보 면 다음과 같이 정리될 수 있다.
첫째, 혼합제 입학전형제도는 대학 입학전형의 공공성과 대학의 자율성
을 함께 살리는 제도라는 점이다. 국가고사 를 통하여 국가 수준에서의 대 학교육 적격자를 가려냄으로써, 대학교육의 질적 수준을 향상시키면서, 대 학별 본고사 를 통하여 대학의 학생 선발권을 보장해 주려는 것이다.
둘째, 그러나 혼합제 입학전형제도는 교육적인 측면에서의 문제점도 지 적되어 왔다. 무엇보다도 국가고사 와 대학별 본고사 를 치름으로써 입시부 담이 가중된다는 점이 지적되어 왔다. 특히 국가고사 의 과목이 과다하고 본고사 의 과목도 많을 경우 더욱 그러했다. 또한 본고사 의 과목이 어떻게 선정되었는가에 따라 고등학교에서의 교육과정 운영과 학습활동이 파행적 으로 운영되는 현상이 나타났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