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검색 결과가 없습니다.

치유의 힘

문서에서 저작자표시 (페이지 108-111)

삶은 계속되니까

수많은 풍경 속을 혼자 걸어가는 걸 두려워했을 뿐

하지만 이젠 알아

혼자 비바람 속을 걸어갈 수 있어야 했던 걸

―이상은(2007) 󰡔삶은 여행󰡕

가. 삶은 여행

20대에는 끊임없이 여행을 다녔다. 자꾸만 떠나고 싶은 충동이 들었 다. 나는 내 자신에 대해 끊임없는 갈증을 느끼고 있었고 그것은 비우고 채우는 하나의 의식과도 같았다.

2008/2/25 말레이시아, 쿠알라룸푸르

아빠, 거기도 비가 내리나요? 빗소리에 깼는데, 시원하게 내리는 소나기가 참 좋네요. 원현이와 같이 여행을 하고 있어요. 어제 밤기차 탄 게 많이 피 곤했는지 오늘은 내리 잠만 자고 있네요. 그래도 많이 기특해요. 잘 크고 있 는 것 같죠?

집을 떠나온지 며칠 지나지 않았는데 참 많은 생각이 들어요. 오기 전까지 여러 가지 일들에 고민이 겹쳐서 그런가 봐요. 그래도 이제 다시 돌아가면 충전된 에너지로 신나게 나아갈 수 있을 것 같아요. 아빠 딸이잖아요.

아빠도 비를 좋아하셨다고 원현이가 말한다. 내가 모르던 사실 하나.

여행도 일상생활도 그 안에 있을 때는 다 알지 못한다. 익숙한 곳을 뒤로 하고 걸을 때 느껴지는 것들, 살면서 잊지 말아야 할 작지만 소중한 그 무 엇. 파랑새는 언제나 우리 곁에 있다.

떠남으로써 얻는 것은 본디 있던 곳의 소중함이다. 그리고 돌아갈 곳 이 있다는 것에 대한 안도와 감사함이다. 길 위의 나는 부드럽고 온순하 며, 겸손하고 너그럽다. 그 모습이 좋아 자꾸만 길 위에 서고 싶어지나 보다.

2008/4/17 태국, 방콕

새로운 곳에 가는 일은 언제나 두근거리고 즐겁지만 어떤 대가와 책임을 필요 로 한다. 그런 것을 기꺼이 감내하면서 경험하고 비워가는 일은 진정 나를

미소 짓게 한다. 함께 하는 법을 익히고, 그 순간의 소중함을 깨닫고 있으니 그 사실만으로도 나는 가장 행복하다. 게다가 사랑하고 사랑받는 최고의 가 치를 누리고 있다. 다시 내 자리에 섰을 때 지금 담아가는 이 사랑과 행복을 모두 나누며 살 것이다. 산다는 건 신비하고 아름답다.

2009/4/8 카자흐스탄, 딸디구르간

바람의 자유로움을 좇아 여기까지 왔다. 이렇게 걷고 달리고 날아서 나는 바람이 된다. 어느새 바람 닮기를 넘어 진정한 아름다움을 오롯이 누리는 두 다리로 우뚝 선 여행자가 되었다.

처음 내 여행의 목적은 그저 호기심이었다. 새로운 나라와 문화에 대한 두 근거림에서 시작해 그 두근거림을 즐길 즈음이면 역시나 사람이 좋았다. 나 의 미소와 눈물엔 언제나 사람이 있다. 그들은 나를 살게 하는 힘이다. 우리 는 언제나 대화를 한다. 말로 눈으로 몸으로 마음으로 그리고 웃는다.

여행은 언제나 나를 자라게 한다. 나는 그 안에서 깨어 있고, 우주를 통 째로 품을 수 있다. 그것으로 인해 다시 서고, 달리고 마침내 날 수 있 는 힘을 얻는다. 그때 그 감각이 기억 속의 한 장면으로 여전히 내 안에 남아있다. 여행은 삶이다.

2008/11/23 충분한 슬픔.

슬프고 괴로울 때 슬픔에 충분히 젖어들 수 있다면 그것은 축복입니다.

그래야 마지막에 넘어지지 않습니다.

지금 이 순간 나는 보고, 듣고, 냄새 맡고, 만질 수 있다. 그러므로 나 는 살아있다.

나. 두 번째 고향, 카자흐스탄

문서에서 저작자표시 (페이지 108-111)

관련 문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