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꺼져가는 생명의 불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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할머니를 모시고 병원으로 이동하는 앰뷸런스. 그리고 병원에서의 석 달 열흘. 처음에는 예전처럼 말씀도 잘 하시고, 내 걱정도 하시면서 이

것저것 당부도 하셨다. 그리고 다행히 식욕이 남아있으신 상태여서 드시 고 싶은 것도 있었다. 그렇지만 그것도 겨우 몇 번이었다. 입원과 동시 에 할머니의 몸은 하루가 다르게 쇠약해졌고, 정신도 점차 혼미해졌다.

마치 양초가 마지막 남은 심지를 다 태우고 사그라지는 것 같았다.

주말 저녁, 친구들과 저녁을 먹고 있는데 병원에서 전화가 왔다. 병세가 위중하셔서 하루 이틀을 넘기기 힘들 것이라 했다. 놀란 마음에 바로 병원 으로 달려가니 그 사이 상태가 안정되어 잠들어 계셨다. 한숨 돌리는 나에 게 의사와 간호사가 다가와 서류를 내민다. 호흡과 심장이 정지했을 때, 심 폐소생술 등 인공적인 조치를 취하는 것을 원하지 않는다는 각서였다. 이미 생각해둔 터라 크게 흔들리지 않고 사인을 했다. 집에 돌아가 할아버지께 상황을 설명하고, 서류에 사인도 했다고 말씀드렸다. 수고했다고 하셨다. 그 날 저녁 우리 식구들과 가까운 분들께 전화를 걸어 할머니의 시간이 얼 마 남지 않았음을 알렸다. 다음날 서울에서 어머니가 내려오셨다. 그리 고 또 한 주가 지났다.

3) 긴 하루

새벽 3시 경, 병원에서 전화가 왔다. 할머니께서 돌아가셨다고 했다.

간호사의 설명으로는 한 시간 전에 체크할 때만 해도 안정적이었는데, 어느 순간 살펴보니 이미 돌아가신 상태였다고 한다. 좀 황당했지만 크 게 힘들지 않고 가신 것 같다는 생각에 한숨이 쉬어졌다. 할아버지께 자 초지종을 알리고 택시를 불러 부랴부랴 병원으로 향했다. 아직 병원 침 대 위에 누워계신 할머니의 손을 잡았다. 표정이 편안해 보였다. 그리고 나는 아직 따뜻한 할머니의 이마에 입을 맞췄다. 이 세상에서 모든 에너 지를 다 쓰고 가신 듯 몸이 정말 작고 가벼웠다. ‘그동안 고생 많으셨어 요. 할머니의 손녀딸로 태어나 행복했습니다. 고맙습니다. 안녕히 가세 요.’

익숙해져버린 절차가 차례로 진행되었다. 입관은 보지 않겠다고 했다. 병 원에서 모시고 나오기 전에 이미 작별인사를 나누었기 때문에 더 해야 할 말이 남아있지 않았다. 나는 할머니께서 병원에 입원하시는 순간부터 이별 을 준비하고 있었던 것 같다. 아니, 더 길게는 제주에 내려온 순간부터였던 것 같다. 그래서 크게 아프거나 마음 상하지 않았다. 할머니가 오래 아프시 지 않고 편히 가신 것에 감사했고, 그 육체와 영혼이 편히 돌아가길 조용히 바랐다.

또 다시 성산의 가족묘지에서 장례가 치러졌다. 재미있게도 할머니가 누우실 곳에서 보면 아버지와 주현이의 자리가 오소록하니 내려다 보였 다. 할머니가 두 사람을 꼭 끌어안고 있다는 느낌을 받았다. 고슬고슬한 눈송이가 이제 막 정돈을 마친 잔디 위에 살포시 내려앉는다. 내 마음의 무게도 한켠에 내려놓는다. 누군가는 작별의 순간에 애도를 완성하기도 한다. 그렇기 때문에 편안히 보낼 수 있다는 것은 축복이다.

죽음으로 인한 헤어짐은 사람이라면 누구에게나 찾아오는 일이다. 그와 동시에 이별은 여러 번 반복해서 겪더라도 익숙해지기 어려운 것이다. 그러 므로 우리는 잘 보낼 준비를 해나가야 한다. 떠나고 보내는 것이 아주 자연 스러운 일임을 받아들여야 한다. 만났으면 헤어지는 것이 삶이라니. 흥미롭 지 아니한가.

나. 아름다운 마무리

2012/3/4

툴툴 하시는 것 이면에 미처 감추시지 못한 애정이 느껴져 왠지 한동안 이 자리를 지키게 될 것 같다고 생각한다. 그래서 가족인가보다. 적응에 대 한 압박은 훌훌. 지금 당장 할 수 있는 것만 하자. 하루하루를 살아보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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